장기문은 땅에 무릎을 꿇고 재빨리 외쳤다. “아버지, 안심하십시오. 좀처럼 얻기 힘든 좋은 기회인 것을 제가 압니다. 반드시 사부님께 열심히 배우고 절대 나태하거나 게으르지 않겠습니다. 또한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절대 하지 않겠습니다!”장기문은 시만자의 수업을 두 차례 들었었다. 하지만 다른 때는 당직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고, 그가 시간이 될 때는 시만자가 따로 가르쳐 주지 않아 매우 아쉬워하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 그의 부모님에게 몇 번이나 말하길, 만약 시 사부님께 직접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면 너무 좋겠다고 했었다.장기문은 성릉관에 갔다가 이렇게 운이 좋은 기회를 얻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자신의 방법이 좀 비겁하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없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어전 시위가 독립하게 되면 현갑군의 지휘를 받지 않게 될 것이고, 시 사부님은 송 대인의 체면을 봐서 그들을 가르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어전 시위가 독립한 후에도 황제가 계속 가르치도록 허락한다 해도, 수업에 참여할 기회가 줄어들어 예전처럼 여러 번에 한 번 겨우 수업에 참석할 수 있게 될 것이 뻔했다.장기문의 아내도 장기문과 함께 무릎을 꿇었다. 남편이 사부를 모시는 예를 갖추니 자신도 함께 절을 올린 것이다. 시만자는 제자 부부가 올린 차를 받아 마신 후, 제자의 아내에게 팔찌를 선물로 건넸다. 장기문의 아내는 그 팔찌의 귀중함을 알았기 때문에 너무 비싸다며 사양했다.시만자는 말했다."받으시오. 내게 싼 물건은 없소."장기문의 아내는 잠시 망설이며 도와 달라는 눈치로 시어머니를 바라보았다.그러자 장기문의 어머니가 말했다. "사부님께서 주신 것이니 받도록 하여라. 앞으로 시간이 될 때마다 사부님을 찾아 뵙고 제자 며느리로서의 본분을 다하도록 해라.""알겠습니다." 장기문의 아내는 그제야 팔찌를 받고 감사를 표하며 말했다."감사합니다. 사부님!"사부 예식을 마친 후 장기문은 부모님께 먼저 돌아가시라고 전했다. 장
시만자는 송석석을 곁에 앉혀 두고 경기를 지켜보게 했다. 그녀는 송석석이 지금 외조부를 걱정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제자들을 불러 시합을 하게 함으로써 그녀의 주의를 돌리려 했다. 무술은 송석석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니 이를 보면 마음을 다른 데로 돌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사여묵도 곁에서 함께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목적 역시 석석과 시간을 보내기 위함이었다. 그들이 어떻게 싸우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무관심했다.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장기문은 세 명을 상대하면서 거의 반격도 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얻어맞고 있었고, 그 모습은 꽤나 참혹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제자들이 적당히 조절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머리나 얼굴은 제외하고 주로 몸에 타격을 주었다. 누가 봐도 큰 문제가 없는 선에서 경기를 이어갔다.하지만 이렇게 계속 얻어맞다가는 장기문이 몇 번 버티지 못할 듯했다.사여묵이 경기를 멈추려는 찰나, 송석석이 먼저 나서서 멈추라고 외쳤다. 무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일방적인 폭행을 견디는 모습을 보기가 어려웠다. 장기문의 단점이 일찍이 드러났다. 기초는 그럭저럭 다져져 있지만 기술이든, 주먹질이든, 발차기든 전부 엉망진창이었고 전혀 체계가 없었다.시만자는 송석석의 주의가 완전히 전환된 것을 보고 안심이 되었다. 얻어맞아 바닥에 드러누워 있는 장기문을 바라보는 눈빛도 조금은 부드러워졌다.송석석이 장기문에게 물었다. "무술을 배운 지 얼마나 되었느냐?"장기문은 숨을 몰아 쉬며 막 대답하려는 찰나, 시만자가 재촉했다. “어서 사백께 대답 드려라.”송석석의 표정은 순간 굳어졌다. 그녀는 시만자와는 전혀 다른 문파였기 때문에 이들의 사부가 되고 싶지 않았다. 장기문은 비틀거리면서 힘들게 대답했다. “사백님께 말씀드리자면, 저는 일곱 살부터 무술을 배웠으니 지금까지 스무 해가 되었습니다.”“원래는 누구에게 배웠소?”장기문은 답했다. “정식으로 사부님을 모신 적은 없고, 집안의 교관과
그렇게 그는 열세 살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우여곡절을 겪으며 정식으로 사부를 모시지 못한 탓에 무술을 배우지 못한 것이었다. 매번 사부를 모시려 할 때마다 본인이 아프거나 사부에게 불길한 일이 닥치는 등 항상 문제가 생겼다. 결국 장기문의 아버지도 더 이상 강요하지 않고, 그냥 배울 수 있는 만큼만 배우라고 했다.시만자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미친듯이 복잡해졌다. ‘이 사람 혹시 불운의 화신이 아닐까? 이렇게까지 불운할 수가 있나? 게다가 사부를 해치는 기운도 있는 것 같은데…… 나에게도 불행이 닥치는 건 아니겠지?’하지만 장기문의 지난 경험을 보면 모두 사부로 모시기 전에 생긴 문제들이었다. 이번에는 무사히 사부를 청하여 제자가 되었으니 이제부터는 운이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장기문은 정식으로 큰형님, 둘째 형님, 셋째 형님께 인사를 드렸다. 그의 성실하고 공손한 태도에 형님들도 그를 특별히 어렵게 대하지 않았다.송석석은 그에게 한 가지를 물었다. “너는 현철위 소속이지 않느냐. 이렇게 대놓고 사부를 청하러 와도 현철위에서 출세하는 데 문제가 될까 두렵지는 않느냐?”장기문이 공손히 답했다. “지금 당장은 출세하지 못해도 상관없습니다. 충분한 실력을 쌓기만 하면 언젠가는 기회가 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무예를 갈고 닦지 않으면 설령 황제께서 중용하시더라도 능력이 부족해 결국 자리를 내려와야 할 테니 그게 더 볼품없을 것입니다. 저는 아직 젊으니 더 견딜 수 있습니다.”송석석은 그의 말을 듣고 격한 공감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로 불운을 겪고도 올바른 길을 고수해 온 그의 끈기에 정말 감탄했다. 사여묵이 그를 믿고 받아들였던 이유가 확실히 있음을 알 수 있었다.그들이 떠난 뒤, 몽동이가 들어와서 선물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하지만 예전처럼 다가가서 뒤적거리지 않았다. 연초에 자신의 사부의 집에 한번 다녀오면서 그간 벌었던 돈을 전부 사부에게 드렸는데 오히려 한바탕 얻어맞았다. 이유는 그가 사온 많은 장신구와 화장품들 때문이
다음날 밤, 사여묵과 송석석은 소부를 찾아갔는데, 소부 대문 밖에서부터 근용위가 정성껏 준비한 흔적이 눈에 들어왔다. 간판은 새로 걸렸고 문 앞은 깨끗하게 정돈되었으며 대문의 구리 몼가지 하나하나 빛나도록 닦여 있었다. 낮에는 백성들이 찾아와 그들의 정성을 담아 과일과 채소, 닭, 오리, 생선, 고기 등을 바쳤다. 백성들의 감정은 가장 소박했다. 더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힘을 보탠 것이었다.전북망은 문을 지켰지만 백성들과는 반대로 낮에는 올 염두를 내지 못하고 밤에 찾아와 보초를 섰다. 스스로 충분히 용기를 북돋은 후에 들어가서 죄를 고할 계획이었다.그러나 문을 밀고 들어갈 용기는 끝내 생기지 않았고, 매번 실패했다. 그러다 사여묵과 송석석이 다가오자 무심결에 뒤로 물러서며 몸을 숨겼다.이 반사적인 반응은 요즘 그를 향한 백성들의 엄청난 비난 때문이다. 그가 거리를 지나갈 때면 어떤 이는 그를 향해 썩은 채소를 던지기도 했다. 전북망은 성릉관에서의 공로가 지금은 백성들의 분노로 되돌아오는 것을 느꼈다.그러나 그는 묵묵히 그 비난을 감내하고 있었다. 이제는 어머니께 설명할 필요도, 그녀의 분노를 감당할 필요도 없었고 받을 것을 모두 받고 나면 이 일이 끝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여묵과 송석석이 말고삐를 함께 잡고 걸어오는 모습을 보며 그는 어쩐지 알 수 없는 감정이 마음속에서 피어올랐다.송석석은 어두운 구름 무늬와 큰 국화 문양이 수놓아진 넓은 소매의 운단 옷을 입고 있었는데, 검고 속은 붉은 외투가 바람에 흩날렸다.최근에 몇 번 그녀를 볼 때마다 늘 관복 차림으로 관의 위엄을 뽐내는 모습이었는데, 오늘은 여성복을 입어 한층 더 화려한 미모가 돋보였다. 살짝 붉어진 눈가가 마치 복숭아꽃 빛을 띈 듯 해 한 번 보면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모습을 자아냈다.전북망은 그녀를 한 번 힐끗 보고 곧바로 시선을 돌렸다. 문 앞의 등이 밝지 않기를 바라며 그들이 자신을 보지 않았기를 바랐다. 그는 사여묵을 마주 볼
그가 사여묵보다 먼저 손을 내밀어 그녀를 일으키며 어린 시절처럼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송석석은 어린 시절 조금이라도 억울하거나 불편한 일이 생기면 외조부를 찾아와 고자질을 하곤 했다. 작은 몸에 세상 불만이 가득 차, 누가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나쁜 말을 하면 모두 기억해 두었다가 외조부가 진성에 돌아오면 한껏 하소연하곤 했다.고자질을 마친 뒤에는 외조부의 품에 안겨 있었다. 겉으로는 억울해 보였지만 눈가에 가득 찬 웃음은 그녀가 얼마나 만족스러워하는지 드러냈다.송석석의 눈물이 끊어진 구슬처럼 뺨을 따라 굵게 흘러내렸다.외조부는 거친 손끝으로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애써 목소리의 떨림을 참으려 했지만 떨리는 목소리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이번에는 누가 우리 작은 석석이를 괴롭혔단 말이냐? 그러나 이제는 다 커서 외조부가 나설 필요도 없겠구나. 네가 스스로 되갚아 줄 수 있으니 말이다.”외조부의 애틋함과 자랑스러움이 섞인 목소리에 송석석의 마음은 더욱 아려 왔다. 그녀는 급히 눈물을 닦으며 스스로를 다잡았다. 이곳에 울려고 온 것도 아니고, 외조부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려 온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흐릿한 눈 너머로 바라보니 여전히 자신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외조부의 눈빛은 그대로였지만, 그의 연세가 뚜렷이 보였다.지난 몇 년 동안 그녀가 겪어온 일보다 외조부는 더 많은 고난을 겪어 왔을 것이다. 송가의 불행만으로도 충분히 힘드셨을 텐데 삼야 삼촌은 팔이 잘리고, 일곱째 외삼촌은 세상을 떠나고…… 본인도 화살을 맞아 중상을 입는 등 한 고비 한 고비를 넘기며 힘겹게 견뎌 왔을 것이다. 이 모든 고비를 넘겨 오면서도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는 외조부를 보며 다른 사람들은 존경할지 몰라도 그녀는 그저 마음이 아플 뿐이었다.사여묵 덕분에 가까스로 조부와 손녀는 마음을 달래고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송석석은 외삼촌과 외숙모의 안부를 묻고 싶었지만 일곱째 외삼촌을 떠올리게 할까 두려워 감히 말을 꺼내지도, 물어 보지도
소 대장군은 사여묵의 뜻을 단번에 이해했다. 서경의 복수는 일종의 주고받기가 된 것이다. 만약 상국이 서경 마을을 학살했을 때 그들이 아무런 복수 없이 지금처럼 사절을 파견했다면 상국이 절대적으로 잘못한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복수했다.소 대장군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맞습니다. 만약 우리에게 마을 학살의 잘못만 있었다면 그들의 복수는 이미 충분합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항복한 자를 죽인 일도 있다는 것입니다.”항복한 자를 죽였다는 말은 일종의 표현일 뿐이었다. 실상은 한 나라의 태자를 극도로 모욕해 비참하게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었다. 서경 황제도 원래 그 평민들을 위해 정의를 되찾아주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형을 위해 복수를 하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마을 학살은 덮을 수 있다 해도, 타국의 태자를 모살한 일은 어떻게 되는가?사여묵이 말했다. “지금은 항복한 자를 죽인 일이 겉으로 드러나진 않았습니다. 수란키가 전에 뒤로 물러난 것도 서경 태자의 체면과 서경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번에 사절단으로 온 사람이 냉옥 장공주이기 때문에 아직 희망은 있습니다.”송석석도 덧붙였다. “그리고 이전에 남강 전장에서 수란키가 말하길, 서경으로 도망친 정탐조들이 모두 죽었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평 사저의 조사에 따르면 두 명이 도망친 것으로 보입니다. 사저는 그 두 명을 계속 추적해왔고, 이미 발견하였습니다. 그들이 현재 이곳으로 오는 중입니다.”그들이 한마디씩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며 소 대장군은 마음이 무겁지만 한편으론 기쁘기도 했다. 그들이 남강 전장에서 돌아온 이후로 줄곧 자신을 위해 발 벗고 뛰어다녔으니, 그가 진성에 돌아와 조사를 받게 될 때 모든 준비를 완벽히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형부에 갈 필요도 없으니 말이다.어찌 됐든, 이 소부로 돌아와 며칠이라도 살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후회는 없었다.그는 두 손을 의자 팔걸이에 올리고 그들을 바라보며 깊은 목소리로
소 대장군은 손녀의 가냘픈 어깨를 보며 안쓰러워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석석이 모든 것을 감당하고도 바쁘게 뛰어다니며 멸문을 분동 삼아 나의 생명을 쟁취하다니.’ “외할아버지, 석석이 말이 맞습니다. 이런 일들은 떼어놓을래야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일은 외조부님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양국이 전쟁을 피면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따로 생각한다면 서경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와 배상까지 주겠지만 그러면 협상의 조건을 약화시키는 셈이었다. 소 대장군도 그 도리를 알고 있었지만 석석에게 너무 잔인한 일인 것 같아 그는 차마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조손이 마주해서 집안일은 감히 말할 수 없고 나랏일은 차마 말을 할 수 없으니 더 이상 할 말도 없었다. 하지만 모처럼 만나는 것이니 그냥 떠나기는 아쉬워 사여묵은 매산이라는 안전한 화제를 찾았다. “석석아. 외조부에게 매산에 있었을 때 일을 해드리면 어떻소? 외조부께서 재미있어할 것이오.” 그러자 소 대장군은 바로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래, 네가 매산에서 임 대협을 스승으로 모셨다고 들었다. 나도 임 대협을 두 번이나 만난 적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깊은 이야기까지 하지 못해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구나. 혹시 엄숙하더냐? 네 무공이 이렇게 좋아지기까지 매산에서 고생을 많이 했을 것이다. 그리고 임 대협의 엄격한 가르침 덕분이기도 하지.” 송석석은 웃으며 말했다. “사부님은 하나도 엄격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마치 우리의 대사형 같았고 심지어 우리보다 더 장난이 심해서 사숙님은 그의 행동을 아주 싫어했습니다. 매번 우리에게 벌주는 것도 사부님에게 일깨워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소 대장군은 의아해하며 말했다. “그가 장난이 심하다는 말이냐? 그건 아닌 것 같다. 외조부가 그를 본 적이 있는데 엄숙하고 친해질 수 없는 모습이라고 했다. 근데 어떻게 장난이 심하다는 말이냐?” 송석석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외조부께서는 그에게 속은 것입니다. 냉담하고 엄숙한 건 사부님께서 낯
사실 사여묵은 항상 송석석이 말하는 사부님이 낯설었다. 그의 눈엔 사부님은 분수가 있는 분이었고 엄숙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방임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좋은 일이 있으면 제자들을 가장 먼저 생각하며, 감싸주기도 하였다. 석석이 말한 사숙님은 그의 사부였는데 변덕이 심하고 걸핏하면 벌을 주어 모두들 그를 두려워했다. 소 대장군은 그들을 바라보며 의아해하며 물었다. “왜 한 명은 재미있고 한 명은 재미가 없는 것이냐?” 그러자 송석석이 말했다. “그는 사숙님의 직계 제자라 사숙님께서 그에게 잘해주니 당연히 재미있었겠지요. 하지만 사숙님은 그에게만 잘해주고 우리에겐 무거운 벌만 주었습니다. 침착하고 듬직한 대사형도 사부님의 눈엔 차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소 대장군이 물었다. “그럼 너희 둘이 사형제란 말이냐?” 그러자 송석석이 말했다. “사여묵이 나보다 입문을 늦게 했으니 제가 사저입니다.” 그러자 소 대장군은 가볍게 농담을 던졌다. “그럼 사제가 사저에게 잘해주느냐?” 그러자 송석석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잘해줍니다.” 소 대장군은 사여묵을 깊이 들여다보았다. 남자들은 때로 말을 하지 않고 눈빛만 봐도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예전에 성릉관에 있을 때부터 소 대장군은 석석이 재혼이라 북명왕이 그녀를 싫어하지는 않을까 걱정을 했었다. 사실 그는 북명왕이 왜 석석과 결혼을 하려고 하는지, 그중에 무슨 음모와 계략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그 후, 서신을 통해 그들 부부의 감정에 대한 언급이 없고 모두 녹분성에 대한 이야기만 하자 그는 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여묵은 친왕인 데다 공까지 세웠으니 원하면 어떤 여자와도 결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황제폐하가 공을 꺼린다고 해도 그의 선택지는 여전히 많았다. 그는 사여묵이 송석석에게 감정이 있어서 그런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렇게 확정해 버리면 경계심을 잃어 혹시라도 송석석을 해칠 까봐 두려워서 줄곧 의심해 오기만 했다. 하지만 남자의 마음속에 한 여자가 있으면 어떤 모습을 보
숙청제는 신하들을 어서방에 불러들였고, 그들은 밤늦게까지 논의했다. 논의는 결국 단신의가 들어가서 시간이 많이 늦었음을 알리며 중단을 요청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숙청제는 팔을 뻗고 웃으면서 말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다니. 그럼 궁문도 이제 잠가야겠으니 다들 돌아가시게.”그는 여전히 기운이 넘쳤고, 특히 지금은 얼굴에 혈색이 돌아 병든 사람 같지 않아 보였다.송석석은 논의 중이던 사여묵을 기다렸다. 그들은 함께 궁을 떠나 황실로 돌아갔다. 매우 피곤했던 그녀는 사여묵의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마차가 황실 문 앞에 도착하자 사여묵은 그녀를 안아 들었다. 송석석은 그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내려오기 귀찮았기에 그대로 안겨 있었다. 그의 넓고 따뜻한 품은 정말 편안했다.그와 떨어져 있던 세 달 동안 그녀는 성릉관에서만 편히 잠을 청할 수 있었으며, 그 외의 곳에서는 늘 경계하며 지냈다. 이제 집에 돌아오니 자연스럽게 긴장이 풀렸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불안함을 느꼈다. 무언가 뜨겁고 큰 손이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단 백부 말씀을 잊으셨나요?”귓가에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 백부가 이제 괜찮다고 말씀하셨소.”송석석은 감고있던 눈을 떠, 뜨겁고 열정적인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마주하며 물었다.“정말인가요?”“틀림 없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입술이 덮였다.불꽃이 강렬하게 타올왔다. 침실의 온도마저 높아진 듯 했다.두 사람은 뜨겁게 사랑했다. 오랜 시간 떨어져 있었기에 마치 새롭게 결혼한 듯한 기분이었다!한 달 후, 상국은 시박사를 설립할 예정이었다. 이는 상국과 해외 북당과의 화물 교류를 담당할 기관이었다.원래의 시역업도 시박사의 운영을 전폭적으로 지원할 것이며, 상국에서 다른 국가에 판매할 수 있는 화물 목록을 정리하여 서경으로 사신을 파견해 화물 교환 협정을 체결할 것이다.이 한 달 동안 단신의는 약을
10월 15일, 사절단은 드디어 진성에 도착했다.현갑군은 그 자리에서 먼저 해산했고, 이덕회와 홍려사경은 궁에 들어가 황제를 뵈러 갔다. 그동안 몸이 약해져 혼자서는 거동할 수 없었던 진왕은 이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자신도 궁에 가겠다고 말했다.송석석은 이미 성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여묵에게 인도되어 황실로 돌아갔다.그동안 사여묵은 매일같이 성문 앞에서 그녀를 기다렸고, 때로는 낮잠시간에 직접 가서 기다리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이 되어서야, 드디어 기다리던 그녀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이덕회와 그들이 궁에서 황제에게 보고할 때, 송석석은 이미 태비께 인사를 드린 후였다.혜 태비는 송석석이 피곤해 보이자, 가서 씻고 옷을 갈아입으라고 말했다.송석석은 사여묵과 함께 나와서 매화원으로 돌아갔다.목욕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나왔을 때, 송석석의 입술이 어쩐지 조금 부풀어 있었다. 서주는 깜짝 놀라 왕야를 바라보았다. 왕비가 목욕하는데 왕야께서 꼭 직접 모셔야 한다며 들어가더니, 보아하니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것이 틀림없었다.서방에서는 염선생과 심청화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송석석은 그들에게 서경에서의 일들을 말해주었다. 협상 결과는 그들이 이미 알고 있었기에, 송석석은 길에서 일어난 암살 시도, 원신제의 곤경, 그리고 북당의 안풍친왕이 말한 3년과 5년의 기한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다.사여묵은 두려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었는데, 서경이 그렇게 혼란스러웠음에도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음에 안도하며 다행이라 여겼다.안풍친왕이 성릉관을 자유롭게 오고 간 것과 그가 말한 3년, 5년 기한에 대해서, 심청화는 사부에게 편지를 보내면 알 수 있을 거라 말했다. 사부는 그들을 잘 알기 때문에 그 말의 숨은 의미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었다.이야기를 마친 후, 사여묵은 송석석이 휴식을 취하게 하기 위해, 송석석에게 더 이상 질문하지 못하게 그들을 막았다. 그는 오후에 휴가를 내어 일을 쉬려고 했지만, 황제가 사람을 보내 궁에 오라고 일렀다.송석석
성릉관에서 다섯 날을 지낸 진왕은 어느 정도 몸이 회복이 되었다.그가 회복되었다는 것은 이제 다시 진성으로 향해야 함을 의미했다.이별은 너무나 아쉬웠지만, 송석석은 눈물을 삼키며 그저 작별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소 대장군 앞에서 여러 번 절을 했는데, 그로 인해 소 대장군도 눈물이 거의 터져 나올 뻔했다.이덕회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바로 소 대장군이었다. 소 대장군은 상국을 위해 수십 년 동안 성릉관을 지킨 노장이었기 때문이다.송석석은 눈물을 삼켰지만, 그는 얼굴을 가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이 평생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미 노령에 접어든 듯, 이전에 만났을 때보다 훨씬 더 노쇠해 보였다. 설령 황제가 그를 진성으로 돌아가게 허락한다 할지라도, 긴 여정과 고된 일정을 고려했을 때 소씨 가문 사람들이 그를 돌아가지 못하게 할 수도 있었다.소 대장군은 이덕회와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그러자 이덕회는 더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외숙모 남씨는 회 왕비에 관한 질문을 하지 않았었다가 이별을 앞두고서야 송석석을 옆으로 데려와 그녀의 상황을 물었다.송석석은 회 왕비가 지금 감옥에 있다는 사실과 란이가 그녀를 위해 손을 써주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힘든 상황은 아닐 거라며, 혹시 태자가 세워지면 대사면이 내려져 그녀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남씨는 살짝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외조부께서 말씀하시지는 않으셨지만, 엄청 신경 쓰고 계실 거다. 세상에 정말로 모진 부모는 드무니까. 네 외조부는 모진 분이 아니시다. 그때 그녀가 란이에게 그렇게 까지 모질게 대했던 게 안타깝다. 란이가 여전히 그녀를 돌보아야 하다니."송석석이 말했다. "걱정 마세요. 란이는 지금 편안하고 자유롭게 지내고 있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더 잘 지낼 거예요.""그렇지. 분명히 잘 지낼 거야." 남씨는 아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송석석을 바라보다가, 이내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귀환길에 오를 무렵, 이미 9월 초가 되어, 날씨는 더 이상 뜨겁지 않았으며, 오히려 약간 선선했다.수란키는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나와 그들을 녹분성까지 배웅했다.이번 귀향길에서는 암살 시도가 없었기에 매우 순조로웠다.이들은 끝없이 이어지는 산을 넘어가 상국의 경계에 들어섰다.소 대장군에게 사전에 도착 예정일을 알리지 않았기에 아무도 마중을 나오지 않을 줄 알았지만, 상국의 경계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전북망이 이끄는 소씨 가문 군대와 마주했다.무사히 돌아온 그들을 보자, 전북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없이 말을 몰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는 말에서 내려 진왕과 이덕회를 비롯한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며 말했다."왕야와 이상서, 그리고 여러 대감님들, 소 대장군께서 저를 시켜 이곳에서 여러분을 맞이하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성릉관까지 호위하겠습니다."그러자 이덕회가 호기심에 차서 물었다. "대장군께서는 우리가 오늘 돌아올 것을 어떻게 아신 것입니까?"전북망이 대답했다. "대장군께서는 모르셨습니다. 매일 여기서 기다리라고 명하셔서 계속 기다린 것입니다.""그렇군요." 이덕회는 소 대장군의 매우 신중함에 감탄했다. 진왕은 오는 동안 몸이 좋지 않았다. 그는 마차의 발을 올리고 한 번 쓱 둘러보았다. 자신이 상국에 돌아온 것을 확인하자, 그는 그제서야 기운을 조금 차리며 말했다. "빨리 출발하게.""예!" 전북망은 재빨리 대답하고 말에 올라 선두를 이끌었다.시만자는 그가 한 손으로 능숙하게 말을 다루는 모습을 보며, 그가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말의 고삐를 잡고 송석석에게 말했다. "이 사람 나쁘지 않네. 어머니께서 그 당시 사람을 잘못 본 것이 아니었나봐. 마음을 예측하기 어렵긴 하지만..."송석석은 시만자가 전북망을 칭찬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사실 시만자는 여전히 전북망에 대한 모친의 기대를 저버린 것을 항상 마음에 두고 있었기에, 이 말을 함으로써 모두 안심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송석석은 아무 말도 하
안풍친왕이 말했다."이번 여정은 서경과 상국을 위한 것이지만, 북당을 위한 것이기도 하니 감사할 필요는 없습니다. 국가 간의 교류는 언제나 이익을 우선으로 하니까요. 개인적인 인연이 있을 때 진심으로 대하는 것이죠."송석석은 깨달음을 얻은 동시에 궁금한 점이 있어 물었다."혹시 제 사부 임양운을 아십니까?"안풍친왕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알지요. 그는 북당에 와서 제 채성루에서 잠시 머문 적이 있습니다. 제 호위 지휘사인 흑영위가 당신의 사부와 매우 친한 사이입니다. 그들은 자주 함께 술을 마셨죠.""그렇군요." 송석석은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 중 어떤 사람이 흑영위 선배인지는 모르겠지만, 만날 수 없다면 정말 아쉬운 일이었다.안풍친왕은 이내 그녀의 마음을 눈치 챘는지 웃으며 말했다.“우리 북당은 3년 혹은 5년 후에 상국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그때 흑영위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송석석이 막 감사의 말을 하려는데, 시만자가 말했다."왜 3년 혹은 5년 후인가요? 좀 더 일찍 갈 수 없나요? 왕야와 왕비께서 가시는 걸 기대하고 있습니다."안풍친왕은 미소를 지으며 깊은 뜻이 담긴 말을 했다."지금은 아직 그때가 아닙니다."그들이 말하지 않으니 더 이상 물어보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옆에서 조용히 앉아 있던 안풍왕비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으며, 그저 눈앞의 간식들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아무것도 특별할 것 없는 설탕절임과 육포였지만, 그녀는 그것을 매우 맛있게 먹었다.송석석은 탁자 아래에서 그들이 손을 서로 맞잡고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의 사랑이 누구보다 깊다는 것을 느꼈다.두 나라 간의 교류에 대해 더 얘기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들은 잠시 가볍게 잡담만 나눈 뒤 그들을 보내주었다. 떠나기 전에 안풍친왕비가 먼저 입을 열었다.“송대감, 시 소저, 4년 후에 상국에서 뵙겠습니다."송석석은 급히 손을 모으며 말했다."네. 왕야와 왕비께서는 반드시 오셔야 합니다."그들이 떠난 후, 별관 문이 닫혔다.송석석과 시만자
이틀 동안 돌아본 후, 수란키가 송석석에게 말했다. "귀국에 단신의라는 신의가 계십니다. 그분이 만든 단설환의 한 가지 재료인 설연화가 귀국에서 생산량이 매우 적다고 알고있습니다. 남강에 있기는 하지만, 설산 정상에 자생하고 있어 채집하기 매우 어려우며, 또한 드뭅니다. 하지만 저희 쪽에서는 설연화가 그리 희귀한 것이 아닙니다. 고산지대 어디에서나 볼 수 있지요. 그가 사용하는 설연화는 모두 서경 약장수에게 몰래 사서 쓰는 것으로, 가격이 매우 비쌉니다. 그 가격으로 단설환을 팔면, 한 알을 팔아서 한 알을 잃는 셈입니다."송석석은 단설환이 부족한 이유가 일부 약재를 구할 수 없기 때문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단 백부는 구체적으로 어떤 약재가 부족하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서경과 상국은 그동안 무역을 하지 않았고, 특히 약재는 더 조심스럽게 다뤄졌기 때문에 그가 서경 사람에게 약재를 산 것을 비밀로 한 이유가 이해가 됐다.수란키와 원신제는 한 마음으로 이렇게 세세하게 조사를 진행했으며, 두 나라 간에 상호 교역을 이루려는 계획이 이미 있었을 것이다. 안풍친왕을 불러들인 것도 이 일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단설환은 생명 구제용 약이라, 만약 약재만 부족하지 않다면 평민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어 실로 민생에 큰 이익이 된다. 송석석은 그들이 지나쳤던 약재 시장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럼 왜 약재 시장에서는 설연화를 본 적이 없죠?" 수란키가 웃으며 답했다. "그건 당연합니다. 우리 서경에서 설연화가 많이 자생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희귀한 재료입니다.고산지대를 올라가야만 채집할 수 있기에 위험하기도 하지요. 게다가 약효가 뛰어나지 않습니까. 심장을 강하게 하고 통증을 멈추는 효과가 있어, 시장에서 거래되는 법이 없습니다. 송대감께서 믿지 못하신다면, 제가 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서 설연화 한 바구니를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그것을 상국으로 가져가서 단신의께 검증받으시면 됩니다."그는 말을 마친 후 시 사람을 시켜 설연화 한 바구니를 가
그가 앉은 자리는 북당이 이번 협상에서 취한 입장을 대표했다.그는 중립의 위치에 있었다. 송석석은 다시 한 번 국가가 강성한 것이 정말 좋다며 감탄했다. 협상의 처음 부분은 조금 지루했다. 양쪽 모두 똑같은 말을 반복하며 강조하였고, 양쪽의 역관들이 그것을 전달하며, 모두 역사적 문제를 강조했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부터 양보를 한다면 계속해서 양보하게 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따라서 첫 번째 협상에서는 아무런 합의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서로의 한계를 시험하는 데 그쳤다. 다음 날, 바로 두 번째 협상이 시작되었다. 역시 초반에는 전날처럼 양쪽에서 강조하는 말들이 오갔다.그러다가 잠시 후, 안풍친왕이 먼저 말을 꺼냈다. "이렇게 계속해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두 나라의 국경 문제는 이미 수십 년간 지속되어 왔고, 이것은 하루아침에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우선 국경 문제는 잠시 제쳐두고, 본왕은 두 나라가 서로 친선을 맺고, 서로 침범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확인하고 싶습니다." 그의 말에, 모두 두 나라가 더 이상 분쟁을 일으키지 않기를 바란다며 긍정적인 의사를 내비쳤다. 안풍친왕은 한 장의 목록을 꺼냈다. 그 목록에는 양국의 상품들이 나열되어 있었고, 그 중에는 곡물, 가축, 비단, 직물, 수공예품, 찻잎, 모피, 도자기, 종이, 벼루, 각자의 나라에서만 자생하는 약초, 향료, 청염, 철광, 옥석 광물 등이 있었다. 양쪽은 그것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처음의 긴장감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막대한 이익 앞에서, 어떤 일들은 협상이 가능했다. 협상이 되지 않으면 잠시 미룰 수도 있었다. 수년간의 전쟁은 두 국가의 국고를 이미 소진시켰기에 양쪽 모두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었다. 북당의 발전 경험에 따르면, 농업을 중시하고 상업을 억제하는 것은 뒤처진 생각이며, 농업과 상업을 동시에 중시하는 것이 살길이었다. 상업세 또한 매우 높았다. 안풍친왕의 이 목록 덕분에 두 나라는 국경
하지만 송석석은 서경의 종친과 관리들이 북당이 협상에 개입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의 얼굴에는 놀람이 역력했다.놀란 마음이 지나고 나자, 그들은 기쁨과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들은 북당이 협상에 참여하는 것이 서경을 위한 든든한 지원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송석석은 이 장면을 보며 오히려 안심을 했다. 정말 그렇다면 원신제가 미리 그들에게 이를 알려줄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협상에 참여하는 관리들에게는 알렸어야 하는데, 그녀가 왜 말을 하지 않았는지이제야 확실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녀도 서로 양보하는 방향으로 가길 원했지만, 궁정의 문무 백관들 중 그녀를 지지하는 이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신복하는 북당 안풍친왕을 초대한 것이었다.이렇게 보니, 어제 원신제가 그녀와 시만자를 궁으로 부른 이유도 이해가 되었다. 처음에 말했던 그런 것들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여성의 과거 시험을 예로 든 것은, 그녀의 많은 결정들이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말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여기까지 분석을 마친 송석석은 점점 더 낙관적이게 되었다.궁중 연회가 끝난 후, 북당 사람들은 대접을 받으며 떠났다. 그들은 그 한 끼를 제외하고는 의견을 거의 내비치지 않았으며, 단지 짧은 대화를 나누었을 뿐이었다.그들이 떠난 후, 상국의 사절단도 일어나 인사를 하며 물러났다. 모두가 돌아가서 협상 준비를 해야 했다. 수란키가 제공한 일정을 따르면, 이틀 후부터 협상이 시작될 예정이었다.황궁 별관에 돌아가자, 이덕회는 모두를 모아 앉히고 논의했다.사실상 또 다른 진부한 이야기였다. 이번에도 양보를 해야 한다면, 모두가 지도 위에서 함께 논의해야 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출발하기 전에 황제가 이미 양보의 한계를 설정해 두었기 때문에 더 이상 양보를 하게 되면 돌아가기도 어렵고, 역사적인 죄인이 될 수도 있었다.그래서 아무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으며, 그저 지도만 바라보며 각자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사실 이런 자리에서는 모두 입맛이 그다지 좋지 않기 마련인지라, 많은 음식들이 한 입 먹고 나면 다시 치워지곤 한다.하지만 북당의 사람들은 정말 음식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떤 요리가 나와도 모두 다 먹어버렸으며, 가득 채운 술잔도 순식간에 비웠다. 그들을 시중드는 궁인들도 꽤 힘들었을 것이었다.시만자는 그들이 춘만루에서 먹었던 그 한 끼를 떠올렸다. 그때도 남은 음식이 하나도 없이 모든 것이 비워졌었다.그녀는 송석석에게 무언가 말을 건네고 싶었다. 하지만 식사 소리 외에는 아무 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기에 말을 꺼내기 어려웠다.그러나 그들은 눈짓만으로도 서로가 하고자 하는 말의 의미를 알아차렸다.시만자는 북당 사람들이 이곳에 등장한 것이 협상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했고, 송석석도 그렇게 생각했다.하지만 그녀는 그들이 중재자로 온 것인지, 아니면 서경을 돕기 위해 온 것인지 확실하게 알 수 없었다. 만약 중재자라면 협상 또한 오래 걸리지 않고 조약을 체결할 수 있을 테니 더 좋을 것이었다.하지만 만약 서경을 돕기 위해 온 것이라면 협상은 공방전이 될 것이 분명했다. 북당이 그들의 방패가 된다면 상국이 협상에서 어려움을 겪을 것이 틀림 없으니 말이다.이덕회와 홍려사경 등 상국의 사절단들은 상황을 어느 정도 눈치챈 듯 했다. 그래서 그들은 처음의 그 기쁨을 잃은 대신 마음속으로 여러 가지를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눈앞의 음식도 별로 먹고 싶지 않은 듯했지만, 모두가 식사를 하고 있었기에 그들도 어쩔 수 없이 천천히 먹었다.이 궁중 연회는 그들이 참석했던 연회 중 가장 이상한 연회였을 것이다. 마치 폭풍이 다가오는 듯한 무서운 고요함이 느껴졌다.궁중에서 준비한 요리는 총 32가지였다. 그러나 각 요리의 양은 매우 적었으며, 궁인들은 음식을 하나씩 들고 들어와서는 다시 하나씩 치워갔다.누군가 술잔을 들고 싶어했지만, 역시 원신제와 마찬가지로 한 번 쓱 훑어본 후, 술잔을 비우고 다시 내려놓고는 식사를 계속했다.마침내 32가지 요리가 모두 올라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