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사여묵은 항상 송석석이 말하는 사부님이 낯설었다. 그의 눈엔 사부님은 분수가 있는 분이었고 엄숙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방임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좋은 일이 있으면 제자들을 가장 먼저 생각하며, 감싸주기도 하였다. 석석이 말한 사숙님은 그의 사부였는데 변덕이 심하고 걸핏하면 벌을 주어 모두들 그를 두려워했다. 소 대장군은 그들을 바라보며 의아해하며 물었다. “왜 한 명은 재미있고 한 명은 재미가 없는 것이냐?” 그러자 송석석이 말했다. “그는 사숙님의 직계 제자라 사숙님께서 그에게 잘해주니 당연히 재미있었겠지요. 하지만 사숙님은 그에게만 잘해주고 우리에겐 무거운 벌만 주었습니다. 침착하고 듬직한 대사형도 사부님의 눈엔 차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소 대장군이 물었다. “그럼 너희 둘이 사형제란 말이냐?” 그러자 송석석이 말했다. “사여묵이 나보다 입문을 늦게 했으니 제가 사저입니다.” 그러자 소 대장군은 가볍게 농담을 던졌다. “그럼 사제가 사저에게 잘해주느냐?” 그러자 송석석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잘해줍니다.” 소 대장군은 사여묵을 깊이 들여다보았다. 남자들은 때로 말을 하지 않고 눈빛만 봐도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예전에 성릉관에 있을 때부터 소 대장군은 석석이 재혼이라 북명왕이 그녀를 싫어하지는 않을까 걱정을 했었다. 사실 그는 북명왕이 왜 석석과 결혼을 하려고 하는지, 그중에 무슨 음모와 계략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그 후, 서신을 통해 그들 부부의 감정에 대한 언급이 없고 모두 녹분성에 대한 이야기만 하자 그는 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여묵은 친왕인 데다 공까지 세웠으니 원하면 어떤 여자와도 결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황제폐하가 공을 꺼린다고 해도 그의 선택지는 여전히 많았다. 그는 사여묵이 송석석에게 감정이 있어서 그런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렇게 확정해 버리면 경계심을 잃어 혹시라도 송석석을 해칠 까봐 두려워서 줄곧 의심해 오기만 했다. 하지만 남자의 마음속에 한 여자가 있으면 어떤 모습을 보
송석석은 손가락으로 도자기 숟가락을 집어 들고 그릇을 살짝 부딪치며 말했다. “가끔은 울고불고하지 않는 게 더 아플 때가 있어.” “나도 나중에야 알았어.” 시만자는 일어나서 송석석을 꽉 껴안고 말했다. “그러니까 나도 줄곧 너의 곁에 있으면서 그날 청석샘에서의 순수한 송석석을 되찾을 수 있을 거야.” 송석석은 그녀를 살짝 밀어내더니 뜨거운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꼭 청석샘의 송석석이어야 하냐? 매화나무 아래에서 널 이긴 송석석은 안 되냐? 적염문 밖에서 널 이긴 송석석은 안 되냐? 산봉우리에서 널 이긴 송석석은……” 그러자 시만자는 이를 갈며 말했다. “그 입 다물지 못하느냐? 내가 만든 인생 오미국을 아직 충분히 마시지 못한 것 같으니 한 대야 더 퍼주마.” 그녀는 주먹으로 송석석의 어깨를 톡하고 때렸다. 송석석은 시만자의 소매를 당겨 눈물을 닦고 갑자기 그녀를 껴안더니 한참 동안 어깨를 부들부들 떨었다. 시만자도 눈물을 흘리며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마치 어릴 적 비무를 한 후 송석석이 진 그녀를 비웃고는 다시 와서 안아줄 때와 같았다. 한참 후에 송석석은 그녀를 놓고 다정하게 말했다. “고마워.” 시만자는 그녀에게 손수건을 건네며 말했다. “내 옷으로 눈물 콧물 다 닦지 말고 네 손수건 써.” 못난 손수건이 송석석의 손에 놓이자 그녀는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이 손수건 내가 예전에 너에게 준 것 아니냐? 평시에도 가지고 다녔어?” 그러자 시만자는 다시 앉아서 코가 막힌 소리로 말했다. “아니, 예전에 네가 준 건 진작에 버렸지. 이건 국공부에 있던 재고품들인데, 보주에게 달라고 했어.” 송석석은 눈물을 훔치고 빨갛게 부어 눈은 방금 구워 낸 호두 같았다. “그걸 가져가서 뭐 하게? 국공부에 예쁜 손수건이 수두룩한데!” 그러자 시만자는 시무룩해져서 말했다. “왜냐하면 이 손수건들 만이 네가 나보다 못하다는 것을 증명해 주니까.” 그녀의 말에 송석석은 끝내 참지 못하고 환하게 웃었다. 문 밖에 있던 몽동
다음날 저녁, 셋째 외숙모인 남 씨가 진성에 도착하자 그녀는 아무 데도 가지 않고 먼저 황실로 왔다. 송석석은 당연히 그녀가 올 줄 알았지만 이렇게 일찍 올 줄은 몰랐다. 외조부께서도 적어도 며칠 후에야 찾아온다고 했었는데 말이다. 그래서 시만자가 펄쩍 뛰며 소식을 알리자 그녀는 벗었던 관복을 다시 입고 밖으로 뛰어 나갔다. 날은 아직 어둡지 않아 노을이 하늘가에서 옅은 주황색을 띠었다. 부드러운 노을빛 아래에서 남 씨는 사람들에게 물건을 내려놓으라고 지시했다. 송석석은 외숙모라고 외치며 그녀가 돌아보기도 전에 달려가 그녀를 안았다. 송석석의 품에 안기자마자 남 씨는 눈물이 솟구쳤지만, 이내 억누르고 코를 훌쩍이며 웃어 보였다. “왜 그러느냐? 외숙모 방금 왔는데 내쫓기라도 하려는 것이냐?” 그러자 송석석은 그녀의 품에 한참 안겨 있다가 고개를 들어 말했다. “외숙모를 보니 기뻐서 그러지요!” 남 씨는 송석석의 얼굴을 부둥켜안고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입술을 떨면서 웃었다. “외숙모가 우리 석석이 키 얼나나 컸는지 보자. 아이고, 나보다 키가 더 컸잖아!” 그녀가 눈물을 흘리자 송석석이 웃으며 말했다. “키가 안 클 리 있겠습니까? 내 나이가 몇인데!” 외숙모는 그녀의 볼을 꼬집으며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게. 다만 성장하는 과정이 너무나도 힘들었지.’ 송석석은 혀를 내밀며 사랑스럽게 웃었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심호흡을 하여 마음속의 괴로움을 달랜 후, 일부러 저택의 하인들이 물건을 옮기는 것을 보며 물었다. “이게 다 무엇입니까?” 그러자 남 씨가 말했다. “해마다 널 위해 준비한 생일 선물인데 이번에 오면서 모두 가져왔단다.” “이렇게나 많이 말입니까?” “많긴? 한 사람이 한 개씩 준비한 것인데 몇 년 동안 보지 못해 누적된 거란다.” 남 씨는 잠깐 멈칫하더니 눈가가 촉촉해져 있었다. “네 일곱째 외삼촌이 준 것도 있으니 어디 마음에 드는지 보려무나.” 송석석은 가볍게 대답하고 한참 후에야 감정을 추스린듯
사람을 보내 사여묵보고 오라고 한 후 남 씨가 말했다. “혜 태비가 황실에 산다고 들었는데 얼른 외숙모 데리고 태비에게 인사를 드리러 가자꾸나.” 송석석은 그제야 생각난 듯 말했다. “네, 갑시다.” 남 씨 가 저택에 들어올 때 혜 태비는 고 씨 유모에게 말을 들었지만 송석석과 오랜만에 만나는 것이니 분명 할 말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어, 그들에게 식사를 하러 나가지 않겠다고 분부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송석석과 시만자는 남 씨를 데리고 문안 인사를 올렸고 혜 태비는 아주 만족스러워했다. 그녀는 남 씨 집안의 딸이라 역시 가정교육이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남 씨가 인사를 올린 후 혜 태비가 그녀에게 앉으라고 했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이 많으셨지요?” 그러자 남 씨는 송석석을 힐끗 보더니 사랑이 가득한 눈빛으로 말했다.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서 전혀 힘들지 않았습니다.” 태비는 그녀 얼굴의 모성애가 뿜어 나는 것을 보고 그녀가 송석석을 아낀다는 것을 알지만 결국 한 마디 했다. “당신이 돌아온 것도 어떻게 보면 잘 된 일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회 왕비는 당신의 시누이니 당신이 형수로서 그녀에게 한마디 하십시오. 사람이 어리석어도 너무 어리석습니다.” 남 씨가 곤혹스러워하는 기색을 보이자 고 씨 유모는 회 왕비가 한 짓에 대해서도 말해주었다. 남 씨는 이미 란이의 일을 알고 있었지만 회왕 부부가 자신의 딸도 돌보지 않는 망나니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시만자도 옆에서 적지 않게 털어놓았고, 회 왕비가 송석석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싹 다 말했다. 그러자 남 씨는 화가 치밀어 올라 당장이라도 회 왕부에 가서 그녀를 찾아 결판을 내리고 싶었다. 송석석과 시만자는 회왕이 연왕과 결탁한 일을 숨겼었기에, 그녀는 회왕이 겁이 많고 나약하다고 생각이 들어 화가 더욱 치밀어 올라 욕설을 퍼부었다. 회왕은 친왕이라 욕할 자격은 없지만 회 왕비는 소 씨 가문의 아가씨이기에 형수로서 욕을 해도 아무도 감히 그녀가 무례하다고 말할 사람은
선물은 냉매원에 보내졌고 사여묵이 그녀를 도와 하나씩 가지런히 정리했다. 사여묵은 목욕을 마치고 방에서 송석석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는 오늘 형부에 가서 이방의 자백서를 보았다. 원래는 저녁에 그들이 이방을 심문하는 것을 보고 오려고 했지만, 진이가 사람을 보내 왕비의 친척이 진성에 왔으니 속히 황실로 돌아오라는 말을 전해 재빨리 돌아온 것이었다. 셋째 외숙모가 진성으로 돌아오자 그 역시 아주 기뻤다. 왜냐하면 협상하는 일에 황제가 그를 참여시키든 말든 그는 반드시 참여할 것이었다. 그땐 송석석을 돌볼 겨를이 없었지만, 만자와 외숙모가 송석석과 함께 있다면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전 같았으면 그는 송석석이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믿었겠지만 이번 협상은 송 씨 가문의 몰락과 관련된 것이었고, 그녀의 마음속 가장 아픈 일이었기에 당분간 그녀가 많이 힘들어할 것이라는 것이라 생각했다. 발자국 소리를 들은 그는 엄숙한 표정을 거두고 환한 얼굴로 그녀를 맞이했다. “벌써 온 것이오?!” 송석석이 모자를 벗으며 말했다. “네, 외숙모께서 피곤하다고 하셔서 일찍 씻고 쉬라고 하셨습니다.” 송석석은 탁자 위에 놓인 선물들을 살펴보았는데 모두 아름다운 박스에 잘 포장되어 있었고, 누가 보냈는지도 적혀 있었다. 그녀는 찻상 위에 있는 일곱째 외삼촌이 보내온 네 개의 비단박스를 보더니 재빨리 눈길을 옮겼다. 그러자 사여묵이 물었다. “한 번 보겠소?” “지금은 보지 않겠습니다.” 송석석은 사여묵의 물음에 대답하고 보주에게 말했다. “보주야. 사람을 불러서 선물들을 창고에 따로 두게 하거라.” 보주는 들어오더니 머뭇거리며 물었다. “왕비님, 선물은 안 뜯어보십니까?” ‘예전엔 성릉관에서 선물을 보내오면 아가씨께서 기뻐서 바로 뜯었는데 이번에는 왜 뜯지 않는 것이지?’ 그러자 송석석은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는 듯 간단하게 말했다. “지금 피곤하니 일단 가지고 나가거라.”보주는 어쩔 수 없이 사람을 불러와서 일단 선물을 모두 창고
송석석은 목욕을 한 후 사람들을 물러나게 하고 사여묵의 어깨에 나른하고 힘없는 고양이처럼 기댔다. “오늘 당신이 형부에 갔다고 들었습니다.” “음, 그들이 이방을 심문하고 있길래 가서 자백서를 보았소. 아무리 보아도 같은 내용들뿐이라 오늘 밤에도 계속 심문할 것이라고 하오.” “자백할 건 모두 자백했습니까?” “우리가 아는 건 모두 자백했소. 하지만 자백에서 외조부에게 불리한 점이 있었던 탓에 그녀는 외조부의 명령에 따라 마을 백성을 학살한 것이라고 잡아땠소.” 그러자 송석석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그러니 이젠 말을 바꾸게 만들어야겠네요. 자백만 하게 해서는 안 되겠군요.” 사여묵이 말했다. “내가 요구하면 형부가 협조할 것이오.” “그녀가 외조부를 모함하는 건 명령을 받았을 뿐, 그녀는 주모자가 아닙니다.” 사여묵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자신이 주모한 것만 아니면 죽음을 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소. 하지만 걱정 마시오. 내가 그녀의 뜻대로 되게 두지 않을 것이니. 그녀 한 사람의 증거로는 확신할 수 없소. 성릉관 전장에서 외조부는 두 번이나 화살에 맞았는데 처음엔 그들이 도착한 전사였고, 두 번째는 그들이 녹분성으로 갈 때였는데, 외주부께서는 그땐 혼수상태였는데 어떻게 그녀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겠소?” “이제 급한 나머지 생각할 겨를도 없나 봅니다. 아무튼 어떻게든 그녀의 진술을 엎어야 합니다. 참, 그녀의 사촌 오라버니인 이천명은 데려갔습니까?”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통제했소. 오늘 밤에 함께 재판을 받을 예정이었지만 난 먼저 돌아왔소. 걱정하지 마시오. 형부의 사람들이 심문하고 있고 나도 내일 형부에 들를 것이오.” “네.” 송석석은 어쩌면 이천명 쪽이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녹분성에 있을 때 그들은 이방과 함께 있었다. 그러니 명을 받은 것인지 갑작스러운 결정인지 그들은 증언할 수 있을 것이었다. 다음날, 사여묵은 먼저 대리사에 들렸다가 형부로 갔다. 송석석은 궁에 들어가
저택에 돌아왔을 땐 시만자와 보주는 이미 서우를 데려와 외숙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송석석은 사람을 시켜 마차를 준비하고 일전에 준비한 비단이불과 옷, 그리고 은탄과 상처를 치료하는 약을 마차로 옮기라고 했다. 양마마는 몇 가지 떡을 만들었는데 대장군이 성릉관에서 돌아올 때마다 먹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엄청 많이 만들어서 3단 도시락마저도 가득 찰 정도였다. 그리고 태후의 명으로 남 씨도 함께 갔다. 복공공과 황실의 마차는 거의 동시에 도착했는데 그는 근용위를 지휘하며 물건을 들여보냈다. 복공공은 그곳에서 며칠을 묵어야 하기에 그중 어떤 옷들은 그의 것이었다. 그는 눈치가 빨라 그들이 모이는 것을 방해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황제폐하의 당부도 가져왔는데 태후의 사람이 지키고 있으니 누가 감히 안심하지 못하겠는가? 소 장군은 서우를 보고 기뻐하며 허리를 굽혀 서우를 안으며 말했다. “묵직한 게 잘 먹었나 보구나.” 그러자 서우는 활발한 표정으로 말했다. “서우는 많이 먹은 덕분에 키도 많이 컸습니다.” 마차에서 내리기 전에 송석석은 그에게 좀 더 즐겁게 해서 증조할아버지를 안심시키라고 했다. 소 대장군은 웃으며 물었다. “무술은 좀 익혔느냐?” 그는 천천히 서우를 내려놓고 일어설 때 손으로 허리를 받쳤는데, 그 모습을 본 송석석은 그의 몸도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증조 할아버지, 서우는 아직 무술을 연마하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서우의 다리가 다 낫지 않았다며 뼈가 모두 제자리를 찾아 안정되어야 무술을 연마할 수 있다고 하셔서요.”그러자 소 대장군은 마음 아픈 눈빛을 하며 걱정했다. “그래. 그럼 지금은 열심히 공부를 하고 다리가 다 나으면 무술을 연마해서 몸을 튼튼하게 하거라. 우리 서우는 공부도 잘해야 하고 무술도 잘해야 한다. 머리가 총명하고 강건한 신체와 정신이 있어야 만이 국공부를 지탱할 수 있지 않느냐?” 그러자 서우는 고분고분 답했다. “증조할아버지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소 대장군은
그러자 사여묵이 말했다. “진실하지 않은 진술을 황제폐하께 올려서 뭐 합니까? 황제폐하께서도 보고 찢어버릴 것입니다. 이택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지만 이미 여러 날을 심문했는데도 그녀는 말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그녀의 생명에 위험할 수 있어 중형도 사용 못하니 아무리 심문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자 사여묵이 말했다. “그럼 계속하십시오. 이 대인도 알지 않습니까? 반드시 그녀에게 말을 바꾸게 해야 합니다. 주요 책임은 소 대장군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녀에게 있습니다. 정 안 되면 전북망을 불러 심문해 보십시오.” 그러자 이택은 크게 놀랐다. “그게…… 황제폐하께서는 전 대인을 심문하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를 끌어들일 생각도 없으신 것 같았습니다.” “소 대장군까지 연루되었는데 그가 연루되지 않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황제폐하께서 심문하라는 말은 없었지, 심문을 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지는 않지 않았습니까?” “심문하지 말라는 명령은 없었지만 그를 잡으시겠다는 말씀도 하시지 않았습니다.” 사여묵이 그를 답답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그를 잡아오는 게 아니라 공손히 모셔오면 되지 않습니까? 녹분성의 작전은 그가 도맡았으니 그를 불러 몇 마디 물어보는 게 무슨 문제가 있다는 말입니까? 황제폐하께서 책임을 묻는다면 내 뜻이라고 하십시오.” 이택은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전엔 북명황실에서 황제폐하의 의심을 살까 봐 일부러 많은 일들을 회피해 왔는데, 지금 간섭을 하질 않나, 전북망을 불러 심문하라고 하질 않나. 갑자기 황제폐하의 의심이 두렵지 않아 진 것인가?’ 그는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전 황야님께서 너무 지나치게 간섭하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습니다. 새로운 진술이 나오면 바로 왕야님께 알리겠습니다.” 사여묵은 그를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이 상서가 내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한 것 같습니다. 내 말은 이방이 진술을 바꾸지 않으면 전북망을 데려와 물으라는 뜻이었습니다.” 이택은 의혹스러
말을 하고 있을 때, 영태비가 사적으로 사람을 보내 송석석을 초대했다. 송석석은 태후마마의 허락을 받은 후에야 그곳으로 향했다. 영태비는 문엄 황제의 빈이라 아들을 따라 봉지에 가서 복을 누려야 했지만 지금은 궁궐의 외딴곳에 홀로 남아 생활을 했다. 송석석이 고 공공을 따라 영수궁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설 분위기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고, 심지어는 몇 개의 전각이 아닌 하늘과 땅을 사이에 두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겨울이 되자 영태비의 병세가 악화되어 연왕의 아들인 사여령이 진성에 남았는데 오늘 입궁해서 조모의 곁을 지켰다. 송석석이 온 것을 보자 사여령은 일어나 인사를 했다. “왕비님, 오셨습니까?” 송석석은 그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큰 도련님도 계셨군요.” “네, 조모께 문안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사 여령은 송석석 앞에서 감히 그녀의 눈을 쳐다볼 수 없어 고개를 숙였고, 송석석은 아랑곳하지 않고 영태비께 인사를 올렸다. 영태비는 등에 비단 베개 두 개를 받치고 침대에 기대 있었는데 안색이 노란 데다 푸르스름했고, 희끗희끗한 머리는 풀어헤친 채 계속 누워있었던 탓에 헝클어져 있었다. 그녀는 연신 기침을 하더니 송석석에게 말했다. “왕비, 어서 앉게.” 영태비는 말하는 속도가 아주 느리고 힘이 없었다. 궁녀가 의자를 가져와 침대 옆에 놓자 고 공공이 말했다. “왕비님, 앉으십시오. 태비마마께서 몸이 허약해서 말소리가 크지 않으니 가까이 앉으셔야 들을 수 있습니다.” 송석석은 태비마마께 감사를 표하고 자리에 앉아서 말했다. “태비마마께서는 좀 괜찮으십니까?” “아마도 낫지 않을 것이다.” 영태비는 말을 하며 입술에 립밤을 좀 발랐는데 혈색을 더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창백해 보였다. 송석석은 영태비를 위로했다. “잘 치료한다면 금방이라도 괜찮아질 것입니다.” 전 중의 숯불은 아주 따뜻하게 타올라서 송석석은 조금 뜨겁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렇게 태우는데도 연기 한 점 보이지 않을 것으로 보아 좋은 숯임을 알 수
혜태비는 궁에 들어오자마자 덕귀태비와 제귀테비를 찾아가 정원을 노닐었다. 혜태비는 홍보석 장신구가 오늘 피부색을 잘 받쳐주어 모두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사여묵은 송석석과 함께 태후마마에게 문안을 드리러 태후전에 들어갔는데 많은 명부들 또한 때를 지어 태후에게로 왔다. 마침 방시원의 어머니인 오수인도 태후에게 인사를 드리러 궁으로 들어왔는데, 태후가 이렇게 많은 명부들 앞에서 방시원의 혼사를 물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 같았다. 오수인은 마음속으로 괴로움이 가득했지만, 감히 태후 앞에서 하소연하지는 못했다. “태후마마, 혼인을 조급해서는 안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자 태후도 한숨을 쉬며 말했다. “방시원이 고생이 많구나. 이유 없이 이런 일에 연루되고, 너희 집안은 더할 나위 없이 인자한데 하필이면 그 사람들 때문에 발칵 뒤집히다니.” 오수인은 그제야 태후께서 왜 갑자기 그 말을 물으셨는지 알았다. 알고 보니 방시원과 방 씨 가문을 위해서였다. 그녀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아무래도 복이 천박한 것 같습니다.” 그러자 태후가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말거라. 그는 우리 상국의 훌륭한 장군이자 황은을 받들고 있는데 복이 천박하다니? 그의 운명은 분명 찾아올 것이다.” “예, 태후마마께서 좀 더 신경을 써주십시오.” 사건이 일어난 후 사람들은 다소 조롱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었는데, 지금 현장에 있던 명부들의 오수인을 보는 눈빛은 순식간에 달라져 있었다.하지만 태후께서 말씀을 하시니 상황이 달라졌다. 태후는 방시원을 상국의 훌륭한 장군이라고 평가했다. 여태껏 조정의 일에 참견하지 않았지만 이번만큼은 방시원을 위해서 나선 것이었다.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모두 총명한 사람이기에, 태후의 이 뜻을 알아듣지 못할 리 없었다.그러니 앞으로 아무도 감히 방 씨 가문을 무시하지도, 함부로 입에 담지도 못할 것이다.태후마마께서는 방시원의 얘기를 길게 하지 않고 다른 가문의 일도 물어보았다. 그리고 제대부인이 보이지 않자
제황후는 그녀에게 대황자와 공주를 데리고 나가 놀라고 하고 제자예의 어머니인 경 씨를 불러들였다. 경 씨는 방시원의 일을 듣고 눈살을 약간 찌푸렸다. “황후마마, 그는 자예보다 나이도 훨씬 많아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광릉후의 향삼랑이 젊은 나이에 능력까지 있어 벌써 거인이 되지 않았습니까? 비록 작위를 물려받지는 못하겠지만 그의 능력에 제 씨 가문의 추대를 더하면 반드시 큰 성과를 이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삼랑은 풍채가 넘치는 데다 올해 열아홉 살 밖에 되지 않았는데 작년에 과거에 진급했으니 진사에 급제를 하기만 하면 앞날이 창창할 것입니다.” 경 씨의 말이 끝나자 란주가 옆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부인, 제 씨 가문의 아들 중 출세한 사람이 많습니까?” 그러자 경 씨는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지으며 말했다. “당연히 많지요. 우리 제 씨 가문의 아들들 중에 훌륭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셋째 집이 가장 모자라지만 제수찬도 공주와 결혼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황후가 웃으며 말했다. “셋째 삼촌은 모자란 게 아니라 머리를 다친 탓에 그런 것 입니다. 머리를 다치기 전엔 아주 총명했답니다. 우리 제 씨 가문엔 모자란 사람이 없습니다. 이렇게 큰 가문에 아들들은 모두 뛰어나고 이미 벼슬에 들어간 사람과 곧 벼슬에 들어갈 사람도 적지 않지요. 그렇다면 외가에 의해 올라온 향삼량이 무슨 좋은 벼슬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그녀는 자신의 손가락을 들여다보며 무심한 듯 계속 말했다. “사위가 아들과 앞길을 다투게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제 황후의 말을 들은 경 씨의 표정이 순간 엄숙하게 변했다. 그러자 란주가 말했다. “맞습니다. 부인, 사람은 많고 벼슬은 한계가 있으니 차라리 아가시의 사위는 제 씨 가문과 달리 다른 길을 개척하는 사람을 찾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방시원의 나이가 좀 만긴 하지만 벌써 삼 품 총병까지 올라갔고 어머니도 고명을 받았으니 아가씨께서 시집을 가 고명을 받으면 젊은 나이에
동지 날, 궁에서 단합연회를 열기 전에 내외 명부들이 입궁하여 문안인사를 올렸다. 태후께서는 평소에 조용한 것을 좋아하지만 이 날은 명부들의 방문을 허락해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황후는 먼저 와서 함께 있다가 다시 장춘궁으로 돌아가 친정 식구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친정어머니인 제대부인은 입궁하지 않고 오히려 숙모와 사촌 여동생들이 몰려왔다. 물어보니 어머니는 몸이 좋지 않아 바람을 맞으면 안 된다고 했다. 게다가 입궁을 하면 황태후께 문안을 드려야 할 텐데 태후에게 병을 전염시키면 큰일이라 오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제황후는 믿지 않았다. 그녀는 지난번에 어머니가 공방의 일을 말했는데 거절을 한 탓에 그녀가 화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제황후는 실망이 컸지만 내색하지 않고 란주에게 몇 마디와 효심을 전하라고 분부했다. 번잡한 예절이 끝난 후, 황후는 작은 사촌 여동생을 남겨놓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자예는 여학에서 주 장군의 손녀인 주창우와 광릉후의 막내딸인 향회옥과 함께 소란을 피워 안여옥을 못살게 굴었던 사람이다. 한바탕 혼쭐이 난 후부터는 좀 수그러들긴 했지만 가끔씩 안여옥을 격분시켜 다른 사람에게 성격이 조급하다는 말을 듣게 하려고 했다. 그해서 여학의 명성에도 큰 영향을 받았던 것이다. 제자예는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사촌 언니, 국태부인은 너무 무섭습니다. 심 선생도 저를 엄하게 꾸짖었으니 나도 당분간은 조용히 지내겠습니다. 그러니 이쯤에서 그만둡시다. 태후에게까지 알려지면 언니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황후는 몸을 반쯤 기울인 채 담담하게 그녀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는 내가 여학을 괴롭힌다고 생각하느냐? 황제도 나와 같은 생각이다. 여학이 설립되었을 때 황제는 송석석의 형세가 너무 세 질까 봐 걱정했단다. 다만 여학이 태후의 뜻이었기에 공개적으로 거절하기 어려워 수단을 써서 여학의 명성을 훼손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 그렇게 되면 나중에 태후가 원망을 하더라도 송석석이 훈장 노릇
고 공공은 울면서 무릎을 꿇고 공주를 부르더니 땅에 엎드려 통곡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온은 눈길도 주지 않았다. 치매에 걸려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것 같았다. 고 공공은 한바탕 울고 나서야 찬합에서 떡 한 접시를 꺼냈고 유은이 검사해 보겠다고 하자 만소가 말렸다. “왕야께서 떡은 검사할 필요 없다고 하셨습니다.” 고 공공은 무릎을 꿇고 눈시울을 붉히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공주님, 한 입만 드십시오. 이건 영태비께서 특별히 저에게 부탁하여 보내온 것입니다. 공주님께서 가장 좋아하는 달콤한 떡입니다. 아직 많이 있으니 천천히 드셔도 됩니다. 사온은 영태비의 이름을 듣고서야 천천히 눈을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검게 물들어 드러웠으며, . 눈가에도 검푸른 색깔이었지만 눈시울은 붉어졌다. “내려놓거라.” 그녀는 이가 없어 발음이 또렷하진 않았지만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옷도 한 벌 가져왔는데 제가 입혀드리겠습니다.” 고 공공은 옷을 받들고 와서 더러운 사온의 몸을 아랑곳하지 않고 한 손으로 그녀를 일으켜 부축해서 들어갔다. 그러자 유은은 다급하게 만소와 고 씨 유모를 보며 물었다. “들아가보지 않아도 괜찮습니까?” “괜찮아, 옷을 바꾸게 둡시다.” 만소는 말하며 떡 한 조각을 소매 속에 숨겼다. 유은은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왕야님과 왕비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상관하지 않았다. 반 시진 정도 지나자 고 공공은 사온을 업고 나왔다. 사온은 옷을 갈아입었는데 몸이 너무 말라서 옷이 헐렁해 보였다. 고 공공이 그녀를 떡 옆에 내려놓자 그는 다시 몸을 웅크렸다. 이때 만소가 말했다. “자, 이제 유 대인을 곤란하게 하지 말고 돌아가십시오.” 고 공공은 눈물을 글썽이며 다시 사온을 보더니 아쉬운 마음으로 떠났다.사온은 고 공공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더니 문이 닫히고 나서야 흐느끼며 울기 시작했다. 만소는 떡을 들고 약왕당에서 청작을 찾아 독이 들어있다는 것을 확인한 후, 왕야와 왕비에게 보고를
염선생 측에서 대대적인 조사를 진행한 결과 몇몇 용의자를 특정했고, 사람을 시켜 그들의 동태를 밀착 감시하도록 조치를 취했다.그러나 어디까지나 의심일 뿐, 확실한 증거는 없었다.무상은 연주로 돌아간 후 회왕 외에는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심지어 시씨 가문에도 방문하지 않아 정말로 깊이 숨어서 들어간 것 같았다.현재 들어온 단서에 의하면, 사병들은 한때 옹현에 있었으나 이후 매우 빠르게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이동 과정에서 많은 물건을 남겨두고 갔다.하지만 그들이 정확히 어디로 이동했는지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연주 지역은 본래 분열되어 있었으나, 무상이 돌아간 이후 세력이 다시 결집되었다. 지방 관료들은 연황실을 자주 드나들며 잔치를 즐기고 술자리를 벌이며 매우 즐겁게 지냈다.이 명단은 사여묵의 손을 거쳐 숙청제에게 전달되었다.그러나 여전히 그곳은 군주가 없는 상태로 보였다. 그렇다고 회왕과 무상을 군주로 볼 수도 없었다.숙청제는 사여묵과 논의한 끝에 연왕을 서둘러 연주로 보내야 한다고 판단했다. 연왕은 적어도 현재 무상의 세력을 억제할 수 있는 존재였기 때문이다.무상이 연왕의 손에서 권력과 자원을 완전히 빼앗으려면 그곳에 연왕이 없는 것이 유리했다. 그러나 연왕이 연주로 돌아가면 그곳에서 쌓아온 인맥과 자원은 여전히 연왕의 손에 있기 때문에, 무상이 그것을 차지하려면 더 큰 노력이 필요했다.숙청제는 연왕에게 부상을 회복했으니 연주로 돌아가라는 교지를 내렸다.연왕은 당장이라도 돌아가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부상을 치료하는 동안 그는 연주의 상황을 심히 걱정했고, 시씨 가문과의 관계를 어떻게 회복할지 깊이 고민해왔다.교지가 내려지자 그는 영태비께 작별 인사를 드릴 겨를도 없이 짐을 싸서 가족들과 함께 바로 진성을 떠났다.그는 신체에 장애를 입었고 그 방면에서도 기능을 잃었다. 그러나 한동안 침체된 시간을 보낸 후 오히려 투지가 되살아났다.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야망을 품고 있었지만, 예전에는 어느 정도 명예를 중시했기에 세상을
사여묵이 말했다. “맞다, 전에 최씨 부인이 부탁한 일 말이오, 오사형이 동의했소?”송석석이 대답했다. “오사형에게 이야기했는데 생각해보겠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 같아요.”"내 생각엔 그에게 이 일을 알려서 스스로 판단하게 하면 좋겠소. 그가 예전에도 최씨 부인이 내놓은 점포들을 산 적이 있는 걸로 보아 평서백부를 도울 의향이 있었던 걸로 보이오."송석석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평서백부를 돕고 싶었던 건 아니고 그저 자신을 아끼는 사람들과 아이들을 돕고 싶었던 것뿐이겠죠.”며칠간 많은 사실을 알게 되면서, 송석석은 점점 과거 노부인이 왕전의 계획에 관여했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마 한때 양심의 가책을 느껴 오사형을 찾아갔고, 오사형이 불에 타 죽은 것을 발견하자 왕전에게 분노를 돌린 것 같았다. 분명 이 죄책감을 감당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었다.이는 그녀가 오사형을 만나고 나서 이야기를 지어내어 용서를 구했지만, 정작 그가 어떻게 지냈는지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이유였다. 심지어 오사형에게 보상하겠다고 말한 후에도 사람을 보내 소식을 묻지도 않았다.그녀는 단지 마음의 안정을 원했을 뿐이었다. 그녀 곁에서 자라지 않은 아이에게는 왕표나 왕청여처럼 깊은 감정을 품지 않았던 것이다.“그럼 제가 오사형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송석석이 말했다.왕이장은 송석석의 말을 듣고 차갑게 욕을 퍼부었다.“뭐라고? 남강에서 첩이랑 호강하며 지내고 있다고? 애까지 배서 부인 행세를 하고 있다니, 그럼 진성에 있는 본처는 뭘로 보는 것이냐? 식모 취급하는 거냐?” “아마 최씨 부인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 거예요. 그래서 그런 부탁을 한 거죠. 오사형, 이제 오사형이 어떻게 하실 건지에 달려있어요.”왕악장은 더 이상 두말하지 않고 말했다."최씨 부인에게 전해. 내일부터 바로 시작하라고. 넘길 수 있는 건 전부 넘기라고 해. 이 일을 굳이 조용히 처리할 필요는 없어. 백부 쪽에서 지출이 너무
다음 날, 전북망은 소위 합동 훈련이라는 것이 병력 배치나 전술 훈련이 아니라 농사를 짓는 일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9월은 겨울 밀을 심기에 적기였다. 남강은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지역으로, 물자가 여전히 부족했으며 전쟁으로 인해 인구도 크게 줄어든 상태였다. 이에 병사들이 농사를 돕게 된 것이다. 밀 외에도 배추, 무, 과일 등을 심기도 했다.방천허는 전북망이 마침 좋은 시기에 도착했다며 서둘러 가서 합류하라고 말했다.전북망은 하루 종일 농사일에 시달렸지만, 그 와중에도 짬을 내어 필명에게 편지 한 통을 썼다.진성에서 전북망의 편지를 받은 필명은 편지를 본 후 한참 동안 멍하니 있다가 머리를 긁적였다. '음…… 우리 사이가 이렇게 좋았던가?' 편지에는 자잘한 이야기가 빼곡히 적혀 있어 무려 3장이나 되었다. 대부분은 전에 전북망이 술에 취해 늘어놓았던 말들과 비슷했다.전북망은 원수부에서의 생활을 적으며 원수부가 얼마나 호화롭고 웅장한지 왕실조차 능가할 정도라고 표현했다.그는 원수부에 하인들이 구름처럼 많고 임신한 주모를 모시고 있으며, 그녀가 사용하는 물건이 모두 사치스러워 천금에 맞먹는다고 묘사했다.또한 농번기로 인해 현재 병사들이 농사를 지어야 하고, 농사가 끝난 뒤에야 훈련이 시작된다는 점을 언급했다. 병사들의 피부는 모두 새까맣게 그을렸지만 원수는 돼지처럼 하얗다고 비꼬기도 했다.뒤죽박죽한 이야기들을 잔뜩 늘어놓은 뒤, 평서백 부인에게 안부를 전해달라는 말을 덧붙였다.그 말을 마치고 나서는 자신도 한때 그런 사람이었고 비슷한 실수를 저질렀지만, 다른 사람이 자신의 과거와 같은 길을 걷는 것은 차마 볼 수 없다고 말하며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이어갔다.편지를 읽던 필명은 전북망이 왜 이런 말을 적었는지 눈치챘다. 평서백 부인에게 이 이야기를 전해 그녀가 마음 속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하려는 의도였다.필명은 전북망이 괜한 걱정을 한다고 생각했다.'평서백 부인처럼 현명한 사람이 왕표의 상황을 모를 리가 있나?'그러나
왕표는 전북망이 자신의 위엄을 충분히 보도록 한 뒤에야 그를 불러들였다.남강에 머문 지 2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왕표는 살이 많이 쪘다. 비록 과도한 비만 상태는 아니었지만, 호랑이 가죽이 깔린 팔걸이 의자에 앉아 있을 때면 턱 밑의 주름이 겹겹이 드러났다.그는 높은 자리에서 전북망을 내려다보며 위압적인 태도로 말했다.“너와 왕청여의 일은 이미 들었다. 그래, 너같이 평범하고 포부도 없는 자는 내 여동생과 어울릴 자격도 없지."전북망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반응 없이 한마디 대꾸만 하고 입을 닫았다.왕표는 차가운 코웃음을 치며 꾸짖었다."네가 이렇게 무능할 줄은 몰랐다. 현철위 부사령관이었지만 결국 관직에서 쫓겨났으니. 장군부는 정말 무능한 자들로만 가득 찼구나. 네 조부께서 하늘에서 너희 같은 무용지물을 보고 계신다면 눈을 감지 못하실 거다."전북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이마에는 핏줄이 드러났다."불만이면 어쩔 거냐? 너희 장군부에서 나온 인간들이 대체 어떤 꼴이 났는지 봐라. 그리고 너 자신만 봐도 여자 하나한테 휘둘려 이 지경이 됐으니. 앞뒤로 세 명의 여자가 있었지만 그 누구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지 않냐……쯧, 우리 남자들의 체면을 다 구겨놨다!”왕표는 지금 그야말로 의기양양했다.그의 곁에는 절세미인이 있었고, 그 미인은 그의 아이를 임신 중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그녀 이전에도 왕표는 남강에서 원하는 여자는 누구든 손에 넣었다.언제나 여자들이 그를 즐겁게 하려고 애썼을 뿐이었다.그래서 그는 본능적으로 전북망을 깔보았다.위세를 충분히 떨친 뒤 왕표는 물었다."진성 쪽에 무슨 큰일이라도 있는 것이냐?"전북망은 대답했다."큰일은 없습니다."왕표는 의자 팔걸이를 매만지며 입가에 냉소를 띠고 말했다."그래? 그럼 여기로 오기 전에 최씨를 본 적이 있나?"전북망은 고개를 들고 답했다."원수께서 말씀하신 게 평서백 부인 입니까?"왕표는 그의 의도적인 물음 속 뜻을 간파하고 냉소를 지었다."왜? 내가 내 여자를 어떻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