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석석은 목욕을 한 후 사람들을 물러나게 하고 사여묵의 어깨에 나른하고 힘없는 고양이처럼 기댔다. “오늘 당신이 형부에 갔다고 들었습니다.” “음, 그들이 이방을 심문하고 있길래 가서 자백서를 보았소. 아무리 보아도 같은 내용들뿐이라 오늘 밤에도 계속 심문할 것이라고 하오.” “자백할 건 모두 자백했습니까?” “우리가 아는 건 모두 자백했소. 하지만 자백에서 외조부에게 불리한 점이 있었던 탓에 그녀는 외조부의 명령에 따라 마을 백성을 학살한 것이라고 잡아땠소.” 그러자 송석석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그러니 이젠 말을 바꾸게 만들어야겠네요. 자백만 하게 해서는 안 되겠군요.” 사여묵이 말했다. “내가 요구하면 형부가 협조할 것이오.” “그녀가 외조부를 모함하는 건 명령을 받았을 뿐, 그녀는 주모자가 아닙니다.” 사여묵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자신이 주모한 것만 아니면 죽음을 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소. 하지만 걱정 마시오. 내가 그녀의 뜻대로 되게 두지 않을 것이니. 그녀 한 사람의 증거로는 확신할 수 없소. 성릉관 전장에서 외조부는 두 번이나 화살에 맞았는데 처음엔 그들이 도착한 전사였고, 두 번째는 그들이 녹분성으로 갈 때였는데, 외주부께서는 그땐 혼수상태였는데 어떻게 그녀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겠소?” “이제 급한 나머지 생각할 겨를도 없나 봅니다. 아무튼 어떻게든 그녀의 진술을 엎어야 합니다. 참, 그녀의 사촌 오라버니인 이천명은 데려갔습니까?”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통제했소. 오늘 밤에 함께 재판을 받을 예정이었지만 난 먼저 돌아왔소. 걱정하지 마시오. 형부의 사람들이 심문하고 있고 나도 내일 형부에 들를 것이오.” “네.” 송석석은 어쩌면 이천명 쪽이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녹분성에 있을 때 그들은 이방과 함께 있었다. 그러니 명을 받은 것인지 갑작스러운 결정인지 그들은 증언할 수 있을 것이었다. 다음날, 사여묵은 먼저 대리사에 들렸다가 형부로 갔다. 송석석은 궁에 들어가
저택에 돌아왔을 땐 시만자와 보주는 이미 서우를 데려와 외숙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송석석은 사람을 시켜 마차를 준비하고 일전에 준비한 비단이불과 옷, 그리고 은탄과 상처를 치료하는 약을 마차로 옮기라고 했다. 양마마는 몇 가지 떡을 만들었는데 대장군이 성릉관에서 돌아올 때마다 먹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엄청 많이 만들어서 3단 도시락마저도 가득 찰 정도였다. 그리고 태후의 명으로 남 씨도 함께 갔다. 복공공과 황실의 마차는 거의 동시에 도착했는데 그는 근용위를 지휘하며 물건을 들여보냈다. 복공공은 그곳에서 며칠을 묵어야 하기에 그중 어떤 옷들은 그의 것이었다. 그는 눈치가 빨라 그들이 모이는 것을 방해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황제폐하의 당부도 가져왔는데 태후의 사람이 지키고 있으니 누가 감히 안심하지 못하겠는가? 소 장군은 서우를 보고 기뻐하며 허리를 굽혀 서우를 안으며 말했다. “묵직한 게 잘 먹었나 보구나.” 그러자 서우는 활발한 표정으로 말했다. “서우는 많이 먹은 덕분에 키도 많이 컸습니다.” 마차에서 내리기 전에 송석석은 그에게 좀 더 즐겁게 해서 증조할아버지를 안심시키라고 했다. 소 대장군은 웃으며 물었다. “무술은 좀 익혔느냐?” 그는 천천히 서우를 내려놓고 일어설 때 손으로 허리를 받쳤는데, 그 모습을 본 송석석은 그의 몸도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증조 할아버지, 서우는 아직 무술을 연마하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서우의 다리가 다 낫지 않았다며 뼈가 모두 제자리를 찾아 안정되어야 무술을 연마할 수 있다고 하셔서요.”그러자 소 대장군은 마음 아픈 눈빛을 하며 걱정했다. “그래. 그럼 지금은 열심히 공부를 하고 다리가 다 나으면 무술을 연마해서 몸을 튼튼하게 하거라. 우리 서우는 공부도 잘해야 하고 무술도 잘해야 한다. 머리가 총명하고 강건한 신체와 정신이 있어야 만이 국공부를 지탱할 수 있지 않느냐?” 그러자 서우는 고분고분 답했다. “증조할아버지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소 대장군은
그러자 사여묵이 말했다. “진실하지 않은 진술을 황제폐하께 올려서 뭐 합니까? 황제폐하께서도 보고 찢어버릴 것입니다. 이택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지만 이미 여러 날을 심문했는데도 그녀는 말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그녀의 생명에 위험할 수 있어 중형도 사용 못하니 아무리 심문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자 사여묵이 말했다. “그럼 계속하십시오. 이 대인도 알지 않습니까? 반드시 그녀에게 말을 바꾸게 해야 합니다. 주요 책임은 소 대장군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녀에게 있습니다. 정 안 되면 전북망을 불러 심문해 보십시오.” 그러자 이택은 크게 놀랐다. “그게…… 황제폐하께서는 전 대인을 심문하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를 끌어들일 생각도 없으신 것 같았습니다.” “소 대장군까지 연루되었는데 그가 연루되지 않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황제폐하께서 심문하라는 말은 없었지, 심문을 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지는 않지 않았습니까?” “심문하지 말라는 명령은 없었지만 그를 잡으시겠다는 말씀도 하시지 않았습니다.” 사여묵이 그를 답답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그를 잡아오는 게 아니라 공손히 모셔오면 되지 않습니까? 녹분성의 작전은 그가 도맡았으니 그를 불러 몇 마디 물어보는 게 무슨 문제가 있다는 말입니까? 황제폐하께서 책임을 묻는다면 내 뜻이라고 하십시오.” 이택은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전엔 북명황실에서 황제폐하의 의심을 살까 봐 일부러 많은 일들을 회피해 왔는데, 지금 간섭을 하질 않나, 전북망을 불러 심문하라고 하질 않나. 갑자기 황제폐하의 의심이 두렵지 않아 진 것인가?’ 그는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전 황야님께서 너무 지나치게 간섭하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습니다. 새로운 진술이 나오면 바로 왕야님께 알리겠습니다.” 사여묵은 그를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이 상서가 내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한 것 같습니다. 내 말은 이방이 진술을 바꾸지 않으면 전북망을 데려와 물으라는 뜻이었습니다.” 이택은 의혹스러
황실 서재. 숙청제는 차를 들고 컵 뚜껑으로 가볍게 쓸더니 한 모금 마신 후에야 사여묵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대리사도 형부와 함께 이 사건을 수사한 줄은 몰랐군. 내가 그런 지시를 내렸었나? 아니면 사온의 역모사건을 조사할 것이 없어 형부를 도와 사건을 처리하려는 것이느냐?” 질문을 하는 것 같았지만 말투는 꽤 언짢았다. 과거 형제간의 묵계에 따르면, 이럴 때 사여묵은 죄를 고하고 물러나서 두 사람의 평안함과 형제간의 화합을 유지해야 했다. 그래서 숙청제는 말을 마친 후 천천히 차를 마시며 그가 무릎을 꿇고 죄를 고하기를 기다렸다. 그는 이미 사여묵이 참고 양보하는 것에 습관이 되었다. 하지만 이번에 사여묵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사죄를 하지 않았다. “황제폐하, 전북망은 녹분성을 이끄는 장군입니다. 녹분성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그와 상관이 없을 리 없습니다.”숙청제는 잠깐 멈칫하더니 화가 치밀어 오른듯 찻잔을 어안 위에 힘껏 내려놓았고, 오대반은 놀라서 얼른 무릎을 꿇었다. 숙청제의 말투에는 노여움이 더해져 있었다. “넌 남강을 수복한 원수였으니 내가 묻겠다. 이런 큰 재앙이 일어났는데 전북망에게 책임을 묻는다고 성릉관 주장인 소승이 책임을 면할 수 있다고 보느냐?” 사여묵은 노기가 어린 황제의 눈동자를 마주하며 대답했다.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자 숙청제가 말했다. “그렇다면 왜 한 사람을 더 끌어들이려는 것이냐? 서경에서 사자를 보내 이 일을 심문하기 전에 난 이 일을 제기하고 싶지 않았고 소승과 이방에게 벌을 줄 생각도 없었단다. 지금 하는 모든 일은 다 서경에 대처하기 위해서다. 왕비의 전 부군이니 나도 네가 그를 싫어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해는 하지만 넌 상국의 친왕이자 관리로서 대국을 위해 생각할 줄 알아야 하지 않느냐? 미워하는 사람 따위 때문에 나에게 반항까지 하다니, 정말 실망스럽구나.”사여묵은 비굴하지 않고 꿋꿋이 말했다. “내가 이렇게 하는 건 사적인 원한과 무관하며, 전북망이 녹분성으로 군사
사여묵은 한쪽 무릎을 꿇고 있지만 여전히 물러서지 않았다. "공정성을 입증하기 위해 폐하께서는 형부를 통해 전북망을 심문하시고 그의 진술과 다른 사람들의 증언을 대조하여 사실을 밝혀주십시오. 신은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경 사람들은 우리가 전쟁포로를 죽이고 마을을 학살한 일에 대해 우리보다 더 잘 알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전쟁의 총책임자인 전북망을 배제한다면 그들은 더욱 분노하며 저희 협상에 진정성이 없다고 여길 것입니다."그는 고개를 들고 강한 눈빛으로 숙청제를 바라보며 계속 말했다. "게다가 성릉관의 군사와 백성들은 실망할 것이고 폐하께서 심복 무장을 키우려는 의도가 따로 있기에 오랜 세월 성문을 지킨 노장에게 모든 죄를 덮어씌운다고 생각할 것입니다.""쾅!"술잔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숙청제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는데, 눈 속에는 엄청난 분노가 서렸다. "무엄하도다!"오 대반은 몸을 떨며 숙청제에게 진정하라고 청한 뒤 사여묵에게 말했다."왕야, 더는 폐하를 노하게 하지 마십시오."숙청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사여묵을 위에서 차갑고 날카롭게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너의 공손한 태도는 모두 가식이었구나. 짐의 말을 거역하고 욕보이다니? 이런 일이 퍼지기라도 한다면 천하의 군사들이 짐에게 실망하지 않겠느냐?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보거라!"사여묵는 당당히 숙청제와 눈을 맞추며 말했다. "제가 무엇을 원하든지 모두 상국을 위한 것입니다. 도리어 여쭙고 싶습니다. 폐하께서는 신이 대체 무엇을 원한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평소보다 다른 사여묵의 모습에 숙청제는 화가 나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비록 숙청제가 군권을 빼앗은 건 사실이지만 아직 군심을 얻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남강 전투 후, 숙청제는 사여묵이 군무를 맡지 못하게 하여 서서히 군대에서의 영향력을 잃게 하려 했지만 그 과정은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며 아직 목적에 도달할 수
숙청제는 손을 내려놓고 차갑게 말했다. “틀린 말이 아니다. 내가 새로운 무장을 키우려는 건 맞지만 짐은 어리석은 임금이 아니다. 아무리 새로운 인물을 키운다고 해도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한 노장들을 버릴 순 없다.”“헌데 내가 어찌 새로운 무장을 키우려는지 그가 정녕 모른단 말이냐? 북명군의 군권이 이제는 그에게 없지만 위신은 여전히 강하다. 남강 수복의 공은 마치 큰 산처럼 그를 지키고 있다. 나는 그를 움직일 수 없고 오히려 북명군이 나에게 위협을 가하고 있다.”하도 세게 쥔 탓에 주필이 그의 손에서 부러졌다. 숙청제는 붓을 책상 위에 던지고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 “짐은 북명왕이 역적이 되지 않을 거라 믿겠지만, 만약 그에게 진정 불순한 야망이 있다면 나는 그를 어찌해야 할꼬?”오 대반은 속으로 급히 머리를 굴리며 말했다. “폐하, 북명왕은 결코 반역할 마음이 없습니다. 그는 폐하의 아우입니다.”하지만 숙청제는 싸늘하게 답했다. “짐은 그가 당장 반역할 생각은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고위직에 오래 있으면 어느 순간 다른 생각을 하게 되는 법이지. 나는 그를 경계하고 형제로서 싸우고 싶지 않으니 그가 그런 마음을 먹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도 단호히 처리할 수밖에 없다.”사여묵은 숙청제와 대립하며 그를 분노하게 만들었지만 숙청제는 오히려 안도했다. 만약 그가 더 큰 계획이 있었다면 소 대장군의 일로 그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은 사여묵이 반역의 야망을 품고 있지 않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잠시 후, 전북망이 형부에 도착했고 이택이 직접 심문했다.전북망은 성릉관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숨김없이 고백했는데 그와 이방이 성릉관에서 사적인 관계가 있었다는 것도 솔직히 인정했다. 사실 그는 이미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비록 황제가 그를 보호해 주고 있었지만 세상에 드러난 사실들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는 녹분성 작전의 장군이고 또 이방과도 관계를 가졌다. 그러니
이택은 날카롭게 말했다. “소 대장군께서 진성으로 돌아와 심문을 받는 것도 다 너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모든 죄를 뒤집어쓰길 바라는 거냐? 네가 어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누군가 그를 이 사건에서 빼려고 합니다. 누군가가요!” 이방은 마치 분노한 사자처럼 발버둥을 쳤으나 쇠사슬에 묶여 있는 탓에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공정하지 않습니다! 그는 성릉관의 주장이었으니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합니다. 당신들은 하나같이 권세가 두려워 사여묵과 송석석에게 아첨하며 전북망을 죽이려 들지 않습니까? 그는 내가 마을을 학살한 일을 전혀 모릅니다. 전북망은 억울하게 누명을 쓴 거란 말입니다!”“전북망이 모른다면 소 대장군은 더더욱 알 리가 없다.” 이택은 콧방귀를 뀌며 주부에게 명령했다. “기록하거라. 이방은 전북망과 소 대장군이 모두 몰랐다고 진술했다는 것을.”“아니, 나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방이 큰 소리로 부인했지만, 이택은 목소리를 높일 뿐이었다. “여기 귀가 몇 개인데 감히 말을 바꾼단 말이냐?”이방은 입을 열다 말고 자기가 처한 상황을 깨닫고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눈에 숨겨진 교만과 불만을 애써 감췄다.이택은 그녀를 지켜보며 생각했다. 역시 왕야는 단호하다. 전북망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녀의 주장은 성립되지 않는다. 전북망이야말로 작전의 지휘관이었고 그가 몰랐다면 소 대장군은 더욱 알 리가 없다. 이방은 전북망의 부장이라 절대 독립적으로 소 대장군의 명령을 받을 수 없었다.사실 이방은 전에 전북망이 자신에게 감정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가 자신을 배신했다고 여겼었기에 형부에 붙잡히기 전까지는 전북망을 연루시키는 것에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그날, 성릉관에서 그녀에게 했던 약속을 기억하고 자신의 미래를 걸고 그녀를 도와 도망치게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제서야 전북망의 마음을 알게 된 것이다.그래서 형부에 들어온 후 그녀는 소 대장군을 범인으로 몰아가는 것이 정확한 방법이며 황제는
주부는 이방의 말을 기록하며, 이천명 등 사람들의 입에서 나왔던 진실을 다시 한 번 되새겼다.그러고는 성릉관에 돌아가서 세부 사항을 정하자고 제안했지만 수란키는 이를 거절했다. 그는 이전에 두 나라가 이미 세부 사항을 발송했으며 서로 동의하지 않겠다고 했다고 말했는데, 그 세부 사항은 이방도 본 적이 있었다. 상국의 요구사항으로 전쟁을 멈추고 국경선을 원래의 선으로 돌려놓자는 내용이 담겨 있었고, 그 기준은 녹분성 외곽의 산기슭이었다."잠시 정신이 팔려서 내가 협정을 체결하면 공을 세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수란키에게 군대를 20리 후퇴시키고 단 12명만 남기게 했지요. 한편으로는 전북망이 양곡 창고를 불태우는 계획을 잘 진행했으면 싶어서였고, 또 한편으로는 협정이 체결된 후 제와 제 부하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본래 12명을 남기기로 한 것은 그들이 모두 능력 있는 사람들일까 봐 위험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상외로 그들이 남긴 사람 중에는 참모와 의무병 3명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걱정이 사라졌고 협정은 예상보다 훨씬 순조롭게 체결되었습니다. 협정이 체결된 후 우리는 그 소장을 붙잡고 산 아래로 내려가 풀어주었습니다."그 뒤 그녀는 전북망에게 협정 체결 사실을 알렸고 성릉관으로 돌아갔다.수란키는 사람을 보내 접선했고 그녀는 그렇게 얼떨결에 공신이 되었다.물론 소삼야는 반복해서 그녀에게 수란키와 어떻게 협정을 체결했는지 물었고 그녀와 그 부하들은 이미 만들어 놓은 이야기를 말했다. 그들은 산 아래에서 수란키와 12명을 만났는데 전투를 통해 수란키를 붙잡았고 그 뒤에 협정이 체결되었다고 했다.소삼야와 그들은 그 이야기를 잘 믿지 않았지만 수란키가 전선에서 사라진 사실과 협정에 수란키의 도장이 찍혀 있었다. 게다가 성릉관에서는 이제 소 대장군의 도장만 찍으면 그 협정은 공식적으로 성립될 수 있었다.주부는 그 기록에서 서경 태자에 대한 언급을 완전히 생략하고, ‘소장'이라는 표현만을 사용했다. 왜냐하면 서경의 국서에
양안은 승리가 확실해졌다는 것과 황제의 명령을 알고 있었기에 자신감이 생겨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장공주님,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자신의 나라에 대해 비하하는 발언은 옳지 않습니다. 저희는 두 가지 준비를 했습니다. 그들이 물러나기를 원하면 당연히 협상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만, 만약 그들이 물러나지 않는다면 결국 전쟁을 해야 할 것입니다. 북명왕비를 잡는 것 역시 이방이 선태자에게 했던 방식과 똑같은 것입니다. 만약 두 군이 전쟁을 벌이면 북명왕비는 성릉관 전장에서 포로로 나타날 것이고 소가는 그대로 물러날 것입니다. 이는 수란키 대장군이 선태자를 위해 체결했던 그 부끄러운 조약처럼 될 것입니다."장공주는 이를 듣고 격노했다. "어리석기 그지없소! 그때 수란키 대장군이 그렇게 한 이유는 이방이 우리나라의 태자를 잡았기 때문이오. 당시 황제의 병세가 위중하고 내란이 일어나고 있었으니 국본을 안정시키지 않으면 나라가 뒤집어질 수도 있었소. 그런데 북명왕비와 태자를 어떻게 비교될 수 있단 말이오? 나는 그대들이 너무 어리석다고 생각하오. 내 말이 틀렸소? 그대들은 송석석에 대해 알고 있소? 소가의 장군에 대해 알고 있소? 소가군에 대해서는 아냐는 말이오!"양안은 송석석이 대단하다는 말을 그다지 믿지 않았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송회안 대장군이고 그녀도 남강 전장에서 싸운 경험이 있지만, 결국 여성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정영수와 회왕의 사사들이 그들을 도와줄 테니 실패할 일은 없을 것이다."물론 알고 있습니다. 우리도 무작정 나선 것이 아닙니다. 철저히 준비한 계획이 있단 말입니다. 결론적으로 북명왕비는 반드시 우리 손에 들어올 것입니다. 가둬둘 장소도 이미 준비되어 있습니다. 우선 회왕부에 두었다가 기회가 오면 진성을 떠나도록 할 것입니다. 협상이 실패하면 우리는 안전하게 서경으로 돌아가면 되면 정식으로 전쟁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장공주는 차가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서경으로 돌아가면 전쟁을 선포한단 말이오? 그럼 우리
냉옥 장공주는 회동관에 돌아왔지만 수란석과 정영수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그녀의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으며 무언가 일이 틀어졌음을 직감했다.수란석은 그녀의 작은 외삼촌으로, 수가에서 가장 말썽을 일으키는 사람이었다.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지나치게 용감하고 호전적이며 성급하고 무모했다."양안을 불러라!" 그녀는 여관에게 명령했다. "당장!"양안은 내각 대학사이자 수란석의 처남이다. 두 사람은 상국에 오는 내내 함께 세밀히 논의했기에 양안은 그가 오늘 밤정영수와 함께 무엇을 하러 가는지 잘 알고 있었다. 양안은 방으로 돌아가 소식을 기다렸다.그는 이번 작전은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 철저히 준비된 계획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가 떠날 때 수란석이 이미 계획을 반쯤 성공시킨 것을 보고는 북명왕을 데려갔다.북명왕을 속여 데려가기만 하면 송석석을 잡는 것은 매우 쉬웠다. 이번 외출에는 단지 마차 한 대와 하녀 두 명, 그리고 북명왕 부부만 있었으므로, 북명왕이 수란석에 의해 데려가졌다면 송석석이 아무리 강한 무공을 가지고 있어도 정영수와 회왕이 보낸 사사들 앞에선 불리할 수밖에 없다.따라서, 이 작전은 확실히 성공할 수밖에 없었다."양학사, 장공주께서 부르십니다." 문밖에서 향병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양안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갔다. 이번 일은 냉옥 장공주에게 숨기려 했지만, 이미 실행에 옮겨졌고 성공할 확률이 매우 높았으므로 이제는 알려야 했다. 장공주는 전쟁을 원하지 않았고 그저 상국의 적절한 설명을 원했다. 또한, 전쟁이 있어야만 진짜 결과가 나온다고 생각하며 전쟁을 일으키지 않으면 어떻게 새 경계선을 정하고 사과와 배상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그는 향병을 따라 장공주가 머무는 별실로 향했다. 등불 아래의 장공주의 얼굴은 굳어 있었는데 오늘 밤 궁중 연회 때의 온화한 표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수란석과 정영수는 어디 간 게요? 지금 무엇을 몰래 꾸미고 있는 것이오?" 그가 예의를 차리
심지어 그는 송석석이 어떻게 피했는지조차 보지 못했다. 그저 긴 칼이 공중에서 빗나갔고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그대로 서 있었다. 마치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마차의 풍등이 어두운 빛을 발산하며 송석석의 얼굴을 비췄는데, 차가운 바람 속에서 서리가 내린 듯 차가워 보였다. 송석석이 그를 향해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미소는 순간적으로 그의 피부를 스쳐 지나가며 오싹한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 오싹함은 단지 기분 뿐만이 아니라 통증까지 전해지게 했다. 그가 반응하기도 전에 송석석의 채찍이 공중에서 그를 정확히 내려 찍어버렸다. 순간 채찍 끝이 그의 얼굴을 스쳐 지나가며 얼굴을 가리고 있던 검은 천이 떨어져 나갔다. 그는 몸을 돌려 공중으로 날아오르며 얼굴을 재빨리 가렸다.그는 벽 위로 올라가 몸을 돌렸는데, 그때 붉은 채찍은 마치 독사처럼 왼쪽 사사의 목을 감아 버렸다. 송석석은 힘을 주어 채찍을 당기며 그를 오른쪽으로 날려버리고는 몸을 한 바퀴 돌리며 그의 사사를 마차 앞으로 끌고갔다.곧 사사의 손에 들려 있던 무기는 손을 벗어났고 무기가 떨어지기 전 송석석은 발끝으로 그것을 날려 보냈다. 칼은 공중을 가르며 비행했고 그녀는 그 사사를 끌고 빠르게 공중으로 뛰어올라 칼을 향해 다리를 휘둘렀다. 그러자 그 칼은 또 다른 사사의 배꼽을 정확히 찔렀다.이 모든 일이 순식간에 일어난 탓에 정영수는 가까운 거리에서 이 장면을 직접 목격했지만 그 어떤 도움도 줄 수 없었다.그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진정으로 강한 것은 송석석이지, 자신들이 아니라는 사실을.그는 이를 악물고 칼을 휘두르며 채찍을 끊으려 했다. 그렇지 않으면 사사는 정말 죽게 될 것이다. 송석석은 채찍을 휘두르며 사람을 공중으로 던졌는데 그 속도는 정영수를 다시금 어지럽게 만들었다. 그는 방향을 급히 바꾸어 사사를 실수로라도 다치지 않게 하려고 했다.하지만 방향을 바꾼 순간 그의 큰 칼엔 피가 묻었고 사사의 머리는 그대로 떨어져 나갔다.송석
회왕비는 문밖에서 한참을 서 있다가 떠났다. 그녀는 왕야가 마치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 것 같아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게다가 회왕부에는 몇 명의 낯선 사람들이 왔는데 그들은 왕비인 그녀조차 안중에도 두지 않는 듯 마주쳐도 못 본 척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고요한 밤에 갑자기 말굽 소리가 들렸지만, 청석판 거리에는 아무도 다니지 않았다.진성의 밤은 동서성 및 강변 쪽에서만 번화했으며 그곳의 소음과 웃음소리가 남성까지 전해지지는 않았다.바로 그때 갑자기 말이 울부짖으며 멈추더니 공기 속에 이상한 떨림이 느껴졌다.몽동이는 채찍을 들고 허리에는 긴 칼을 찼다. 마차의 풍등은 먼 곳까지 비추지 못했고, 달이 구름 속에 숨어있는 탓에 주변은 어둠에 휩싸여 오싹할 정도로 음침했다.몽동이는 눈을 감고 공기 속의 변화를 귀 기울여 들으며 귀를 미세하게 움직였다.송석석도 채찍을 쥐고 있었는데 긴 채찍은 마치 붉은 뱀처럼 그녀의 발치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시만자는 검을 움켜잡으며, 검집을 살짝 튕기면 검이 쑥 빠져나오게 단단히 준비를 했다. 어둠 속에서 수십 명의 그림자가 조용히 내려앉았는데 발밑에는 먼지조차 닿지 않아 그들의 경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었다.몽동이는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전투력을 발휘했다. 그는 마치 천둥 같은 힘으로 채찍을 휘두르며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손에 쥐고 경공을 펼쳐 구름을 타듯 날아가면서 칼을 뽑아 그 사람을 향해 내리쳤다.암살자는 치명적인 일격을 피하기 위해 몸을 피했지만 긴 칼엔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피 냄새가 코를 찔러 암살자의 살육 본능을 자극했다.마차 안에서 두 사람은 창을 부수고 뛰쳐나왔다. 긴 채찍은 민첩하게 뱀처럼 휘어지더니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두 사람을 곧바로 밀어냈다.시만자는 보검을 뽑아 꽃처럼 휘두르고는, 송석석의 채찍을 밟고 그대로 공중으로 뛰어올라 능숙하게 방어막을 형성하며 암살자들을 단숨에 밖으로 밀어냈다.검은 옷과 가면을 쓴 정영수도 긴 칼을 들고 있었다. 그는 팔도장인 모든 무
해시중의 어가에는 마차 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몽동이는 앞에서 마차를 몰았는데 이제는 이 일에 꽤 능숙해진 것 같았다. 어쨌든 그는 이제 마차가 있는 사람이니 말이다. 이때 시만자가 송석석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오늘 정말 힘들었다며 푸념하기 시작했다. "너희는 안에서 맛있는 걸 먹고 마셨겠지만 우리는 밖에서 찬 바람이나 맞으며 기다렸다. 다행히 보주가 구운 오리와 과자를 준비해 주고 또 배려 깊게 차를 황피 물주머니에 담아 왔으니 말이지, 그렇지 않으면 지금 배고파서 쓰러져 버렸을 것이다."송석석이 웃으며 말했다."시만자 아씨를 굶게 두다니 정말 미안하구나. 일이 끝나면 내 너를 위해 잔치를 열어주겠다."시만자는 그제야 인상을 펴고 밝게 웃었다."역시 나를 가장 잘 아는 건 너밖에 없다. 내가 인생에서 가장 마음껏 쓸 수 있는 건 아마도 돈 뿐일 것이다."그녀는 주위 사람들에게 돈을 쓰는 걸 좋아했고 외부 사람들에게는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만약 동정심이 생기면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줄곧 아깝지 않게 돈을 썼다.송석석은 머리를 비스듬히 기울인 뒤 그녀의 머리와 맞대었다. 두 여인은 몽동이가 있으니 별문제 없을 것이라 믿어 외부 소음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회왕부.서재 안에는 어두운 불빛이 하나 켜져 있었다. 그 불빛은 그가 풍상에 쓸려온 얼굴을 비추고 있었는데 평소의 나약하고 소극적인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위험한 눈빛만 번쩍였다. 오늘 밤의 행동에서는 한 점의 실수도 용납될 수 없다.두 나라가 반드시 전쟁을 벌여야만 그들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남강 전쟁에서 그들이 이미 기회를 놓쳤기에 이번에는 절대 놓칠 수 없었다. 숙청제는 그들을 의심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자존심과 명예를 둘 다 취할 수 없었다. 아무리 반역자라고 하더라도 승자가 왕이 되는 법, 이후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지는 권력이 있는 자가 결정한다.과거 삼 형제는 명예를 너무 중시하여 그 좋은 기회를 놓쳤고 황자까지 희생시켰다.이제 성공적인 역
냉옥 장공주는 소란석과 정영수의 퇴장에 약간 불안한 마음을 느꼈다. 그들은 돌아왔을 때 서로 눈길을 주고받으며 무언가를 확인하는 듯한 모습이 보였지만 정영수에게 물을 수는 없었다. 궁중 연회에서 몇 번씩 정영수를 불러 내면 쉽게 눈에 띄기 마련이었다. 서경은 현재 내란이 일어나려 하고 냉옥 장공주는 이제 더이상의 충돌을 원하지 않는다. 이번에 공정한 해결을 요구하는 것도 삼황제의 황위를 안정시키고 백성들을 달래기 위해서였다.남강 전쟁에 나가 정의를 위해 싸웠을 때 이미 많은 군사들이 희생되었다. 게다가 사국에 전폭적으로 지원을 해주어 국고는 비어버렸기에 더는 민심을 잃는 전쟁은 감당할 수 없었다. 전쟁을 벌이려면 최소 5년은 더 기다려야 했다.궁거문고 연주가 울리고 무희들이 엄청난 기예를 선보이고 있었지만 모두 속마음을 숨긴 채 거짓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은 사람들을 몰래 살펴볼 뿐이었다. 연회가 끝났을 땐 이미 해시중으로 숙청제는 취기가 잔뜩 오른 상태였고 냉옥 장공주는 사절을 이끌고 퇴장 의례를 마쳤다. 술에 취한 숙청제는 궁인들의 부축을 받아 후궁으로 돌아갔다.오늘 밤의 연회는 모두 평화로웠고, 내일의 협상이 어떻게 진행될지, 어떻게 전쟁의 연료가 될지, 그가 직접 대면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사여묵의 사심이 마음에 들었다. 사여묵이야말로 진정 평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가 맘에 들었다. "대공무사"라며 나라와 백성을 위해 일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하도 위선적이라 그는 절대 믿지 않았다. 요구가 없는 사람이 더 두려운 법이다. 본성을 어긴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다.진정한 충신, 애국적인 순수한 신하가 있을 수 있긴 하다. 예를 들어 소 대장군은 정말 존경받을 만한 인물이다. 그는 말로만 하지 않고 실제로 평생을 걸어 행동으로 실천해 왔다. 하지만 사람 마음은 쉽게 변하는 법, 그는 이미 연주에 조사를 보냈는데, 현재까지도 연주에서 문제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심지어 옹현에도 사람을 보냈다. 옹현의 사온의 봉지로 만약
정영수는 이 방법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북명왕이 왕비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든 간에 이렇게 해서는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아무 소용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큰 위험을 동반할 수도 있었다."수 대인, 저는 여전히 이 방법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분명 우리의 소행임을 알아차릴 것입니다." 정영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뭐가 옳지 않다는 거냐?" 수란석의 눈빛에는 분노가 섞여 있었다. "우리를 의심하게 하는 것이 바로 내 목적이다. 만약 그가 전쟁을 원한다면 이것은 그에게 큰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는 협상 자체를 파괴하고 즉시 전쟁을 일으킬 것이다. 만약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면 그는 이 사건을 모른 척하고 비밀리에 사람을 보내 구출할 것이다. 그럼 우리가 그의 속셈을 알게 되지 않겠냐?""전쟁이 옳지 않다는 겁니다. 공주님께서 두 나라의 전쟁을 피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여인의 생각, 수란키와 똑같이 마음이 나약하구나." 수란석은 싸늘한 웃음을 지으며 주머니에서 손조를 꺼내 정영수에게 건넸다. "보거라. 이것이 바로 폐하의 진정한 뜻이다."등불 아래에서 정영수가 손조를 펼쳤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 손조가 진짜임을 확신했다. 그는 평소에도 황제 앞에서 시중을 들었기 때문에 황제의 필체를 잘 알고 있었다. 손조에는 엄격한 요구 사항이 담겨 있었는데, 상국이 이를 거부하면 즉시 상국을 떠나 전쟁을 선포할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정영수는 황제가 처음에는 전쟁을 원했으나 후에 장공주에게 설득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 만약 이 손조가 진짜라면... 정영수는 급하게 고개를 들었다. "그렇다면 수 대인은 북명왕을 시험하려는 것이 아니라 송석석을 납치하려는 것이군요."북명왕을 시험하는 것은 구실에 불과했다. 황제는 전쟁을 원했기에 송석석을 납치하여 그들 방식대로 갚으려는 것이다. 이는 예전에 이방이 태자를 납치하고 모욕해 성릉관에서 소가군을 물러나게 한 것과 같은 방법이었다
송석석은 그들의 대화를 모두 들었다. 그들은 전쟁을 피하려고 애쓰고 있지만 서경이 그들이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고 확신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특히 수란석에게는 송가와 소가만 전쟁을 원하지 않으며 북명왕은 오히려 군권을 되찾기 위해 전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야 했다. 송석석은 시선을 돌리며 냉옥 장공주의 유창한 상국 말에 귀 귀울였다. "본궁은 항상 왕비님을 뵙고 싶었습니다. 이번에 상국에 온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왕비님을 뵙기 위함입니다."그녀는 방금전에도 이렇게 말했었지만 이번에는 표정이 진지하고 진심에서 우러나 보였으며 아까 같은 가식적인 느낌이 들지 않았다. 송석석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공주님을 뵙게 되어 저 또한 영광입니다."가까이에서 보니 냉옥 장공주는 어제 성문에서 봤을 때보다 피로해 보이지 않았다. 어젯밤 충분한 휴식을 취한 모양이었다. 그녀의 눈 밑의 다크서클은 얇은 화장 덕분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전체적인 상태는 실제 나이보다 몇 년 더 많이 먹은 듯 지쳐보였다. 송석석은 그녀가 정권을 보좌했던 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서경은 내외의 위협을 겪었는데, 그들이 그동안 겪은 고통은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할 정도로 힘들었다고 했다. 내일 그녀와 신경전이 벌어질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녀에게 존경심을 느꼈다.서로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궁중 연회가 시작되었다.모두 자리에 앉아 식사를 준비했다. 서경의 사절단은 여전히 오른쪽에 앉아 있었고, 사여묵과 송석석은 나란히 앉았다. 태후는 음식을 같이 먹지 않았고 냉옥 장공주와 잠시 대면하기 위해 나왔다. 이는 사절단을 중시하는 태도였다.황제와 황후가 자리를 지키고 여러 왕야와 권신들도 함께 했다. 물론 회왕은 참석하지 않았고 회왕비도 오지 않았다. 연왕은 측비 김씨와 함께 자리에 앉았는데, 그는 이런 자리에 절대로 시민주를 데리고 오지 않는다. 아무리 시민주가 정비라도 말이다.연회 중 술잔이 오가며 두 나라는 우호적인 관계인 것처럼 보
북명왕이 자기를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자 수란석은 속으로 화가 치밀어 오르며 더는 참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그동안 성릉관의 일을 명확히 밝혀야겠다는 마음이 굴뚝같았다.두 눈에서 불꽃이 튀고 있을 때 사여묵이 물었다. "수 대장군이 부상을 입었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다 나으셨습니까?"수란석은 눈빛을 거두며 대답했다. "이리 신경 써 주시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형님께선 이제 큰 이상이 없습니다.""이번에 수 대장군과 함께 오실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수란석의 눈빛은 차갑고 냉랭했다. "형님께선비록 큰 이상은 없지만 과거에 중상을 입으셨기에 장거리 이동은 부적합합니다."사여묵은 수란키가 갇혔다는 사실을 모르는 척 말했다. "우리 소 대장군도 두 번이나 화살을 맞았고 게다가 이제 막 칠순을 넘긴 고령이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국의 일을 처리하러 성릉관에서 진성으로 돌아오셨습니다."수란석은 미간을 찌푸렸다. ‘저 말의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오늘은 분명 저런 얘기를 안 하기로 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나에게도 할 말이 아주 많은데.’하지만 수란석에게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듯 사여묵은 또 다른 화제로 말을 돌렸다. "아참, 듣자니 수 상서께서는 친히 검을 만드는 걸 좋아하신다 들었습니다. 최근에는 어떤 신검을 만드셨는지 보여주실 수 있을까요?"주제는 이렇게 자연스럽게 바뀌었고 수란석은 화가 난듯한 목소리로 눈을 크게 뜨며 대답했다. "군무가 바빠서 이제 더는 검을 만들지 않습니다. 왕야께서 서경의 무기가 보고 싶으시다면 기회는 얼마든지 있습니다."전장에 나가면 충분히 볼 수 있었기에 사여묵은 그를 가볍게 바라보며 한 마디 던졌다. "좋습니다."목소리는 매우 낮았지만, 수란석의 귀에는 아주 도발적으로 들렸다. 마치 그가 전쟁을 원한다는 것 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내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왕이 말하길 북명왕은 두 나라가 전쟁을 계속하는 걸 가장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두 나라가 전쟁을 하면 소가는 분명 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