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은 냉매원에 보내졌고 사여묵이 그녀를 도와 하나씩 가지런히 정리했다. 사여묵은 목욕을 마치고 방에서 송석석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는 오늘 형부에 가서 이방의 자백서를 보았다. 원래는 저녁에 그들이 이방을 심문하는 것을 보고 오려고 했지만, 진이가 사람을 보내 왕비의 친척이 진성에 왔으니 속히 황실로 돌아오라는 말을 전해 재빨리 돌아온 것이었다. 셋째 외숙모가 진성으로 돌아오자 그 역시 아주 기뻤다. 왜냐하면 협상하는 일에 황제가 그를 참여시키든 말든 그는 반드시 참여할 것이었다. 그땐 송석석을 돌볼 겨를이 없었지만, 만자와 외숙모가 송석석과 함께 있다면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전 같았으면 그는 송석석이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믿었겠지만 이번 협상은 송 씨 가문의 몰락과 관련된 것이었고, 그녀의 마음속 가장 아픈 일이었기에 당분간 그녀가 많이 힘들어할 것이라는 것이라 생각했다. 발자국 소리를 들은 그는 엄숙한 표정을 거두고 환한 얼굴로 그녀를 맞이했다. “벌써 온 것이오?!” 송석석이 모자를 벗으며 말했다. “네, 외숙모께서 피곤하다고 하셔서 일찍 씻고 쉬라고 하셨습니다.” 송석석은 탁자 위에 놓인 선물들을 살펴보았는데 모두 아름다운 박스에 잘 포장되어 있었고, 누가 보냈는지도 적혀 있었다. 그녀는 찻상 위에 있는 일곱째 외삼촌이 보내온 네 개의 비단박스를 보더니 재빨리 눈길을 옮겼다. 그러자 사여묵이 물었다. “한 번 보겠소?” “지금은 보지 않겠습니다.” 송석석은 사여묵의 물음에 대답하고 보주에게 말했다. “보주야. 사람을 불러서 선물들을 창고에 따로 두게 하거라.” 보주는 들어오더니 머뭇거리며 물었다. “왕비님, 선물은 안 뜯어보십니까?” ‘예전엔 성릉관에서 선물을 보내오면 아가씨께서 기뻐서 바로 뜯었는데 이번에는 왜 뜯지 않는 것이지?’ 그러자 송석석은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는 듯 간단하게 말했다. “지금 피곤하니 일단 가지고 나가거라.”보주는 어쩔 수 없이 사람을 불러와서 일단 선물을 모두 창고
송석석은 목욕을 한 후 사람들을 물러나게 하고 사여묵의 어깨에 나른하고 힘없는 고양이처럼 기댔다. “오늘 당신이 형부에 갔다고 들었습니다.” “음, 그들이 이방을 심문하고 있길래 가서 자백서를 보았소. 아무리 보아도 같은 내용들뿐이라 오늘 밤에도 계속 심문할 것이라고 하오.” “자백할 건 모두 자백했습니까?” “우리가 아는 건 모두 자백했소. 하지만 자백에서 외조부에게 불리한 점이 있었던 탓에 그녀는 외조부의 명령에 따라 마을 백성을 학살한 것이라고 잡아땠소.” 그러자 송석석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그러니 이젠 말을 바꾸게 만들어야겠네요. 자백만 하게 해서는 안 되겠군요.” 사여묵이 말했다. “내가 요구하면 형부가 협조할 것이오.” “그녀가 외조부를 모함하는 건 명령을 받았을 뿐, 그녀는 주모자가 아닙니다.” 사여묵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자신이 주모한 것만 아니면 죽음을 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소. 하지만 걱정 마시오. 내가 그녀의 뜻대로 되게 두지 않을 것이니. 그녀 한 사람의 증거로는 확신할 수 없소. 성릉관 전장에서 외조부는 두 번이나 화살에 맞았는데 처음엔 그들이 도착한 전사였고, 두 번째는 그들이 녹분성으로 갈 때였는데, 외주부께서는 그땐 혼수상태였는데 어떻게 그녀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겠소?” “이제 급한 나머지 생각할 겨를도 없나 봅니다. 아무튼 어떻게든 그녀의 진술을 엎어야 합니다. 참, 그녀의 사촌 오라버니인 이천명은 데려갔습니까?”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통제했소. 오늘 밤에 함께 재판을 받을 예정이었지만 난 먼저 돌아왔소. 걱정하지 마시오. 형부의 사람들이 심문하고 있고 나도 내일 형부에 들를 것이오.” “네.” 송석석은 어쩌면 이천명 쪽이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녹분성에 있을 때 그들은 이방과 함께 있었다. 그러니 명을 받은 것인지 갑작스러운 결정인지 그들은 증언할 수 있을 것이었다. 다음날, 사여묵은 먼저 대리사에 들렸다가 형부로 갔다. 송석석은 궁에 들어가
저택에 돌아왔을 땐 시만자와 보주는 이미 서우를 데려와 외숙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송석석은 사람을 시켜 마차를 준비하고 일전에 준비한 비단이불과 옷, 그리고 은탄과 상처를 치료하는 약을 마차로 옮기라고 했다. 양마마는 몇 가지 떡을 만들었는데 대장군이 성릉관에서 돌아올 때마다 먹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엄청 많이 만들어서 3단 도시락마저도 가득 찰 정도였다. 그리고 태후의 명으로 남 씨도 함께 갔다. 복공공과 황실의 마차는 거의 동시에 도착했는데 그는 근용위를 지휘하며 물건을 들여보냈다. 복공공은 그곳에서 며칠을 묵어야 하기에 그중 어떤 옷들은 그의 것이었다. 그는 눈치가 빨라 그들이 모이는 것을 방해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황제폐하의 당부도 가져왔는데 태후의 사람이 지키고 있으니 누가 감히 안심하지 못하겠는가? 소 장군은 서우를 보고 기뻐하며 허리를 굽혀 서우를 안으며 말했다. “묵직한 게 잘 먹었나 보구나.” 그러자 서우는 활발한 표정으로 말했다. “서우는 많이 먹은 덕분에 키도 많이 컸습니다.” 마차에서 내리기 전에 송석석은 그에게 좀 더 즐겁게 해서 증조할아버지를 안심시키라고 했다. 소 대장군은 웃으며 물었다. “무술은 좀 익혔느냐?” 그는 천천히 서우를 내려놓고 일어설 때 손으로 허리를 받쳤는데, 그 모습을 본 송석석은 그의 몸도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증조 할아버지, 서우는 아직 무술을 연마하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서우의 다리가 다 낫지 않았다며 뼈가 모두 제자리를 찾아 안정되어야 무술을 연마할 수 있다고 하셔서요.”그러자 소 대장군은 마음 아픈 눈빛을 하며 걱정했다. “그래. 그럼 지금은 열심히 공부를 하고 다리가 다 나으면 무술을 연마해서 몸을 튼튼하게 하거라. 우리 서우는 공부도 잘해야 하고 무술도 잘해야 한다. 머리가 총명하고 강건한 신체와 정신이 있어야 만이 국공부를 지탱할 수 있지 않느냐?” 그러자 서우는 고분고분 답했다. “증조할아버지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소 대장군은
그러자 사여묵이 말했다. “진실하지 않은 진술을 황제폐하께 올려서 뭐 합니까? 황제폐하께서도 보고 찢어버릴 것입니다. 이택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지만 이미 여러 날을 심문했는데도 그녀는 말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그녀의 생명에 위험할 수 있어 중형도 사용 못하니 아무리 심문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자 사여묵이 말했다. “그럼 계속하십시오. 이 대인도 알지 않습니까? 반드시 그녀에게 말을 바꾸게 해야 합니다. 주요 책임은 소 대장군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녀에게 있습니다. 정 안 되면 전북망을 불러 심문해 보십시오.” 그러자 이택은 크게 놀랐다. “그게…… 황제폐하께서는 전 대인을 심문하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를 끌어들일 생각도 없으신 것 같았습니다.” “소 대장군까지 연루되었는데 그가 연루되지 않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황제폐하께서 심문하라는 말은 없었지, 심문을 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지는 않지 않았습니까?” “심문하지 말라는 명령은 없었지만 그를 잡으시겠다는 말씀도 하시지 않았습니다.” 사여묵이 그를 답답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그를 잡아오는 게 아니라 공손히 모셔오면 되지 않습니까? 녹분성의 작전은 그가 도맡았으니 그를 불러 몇 마디 물어보는 게 무슨 문제가 있다는 말입니까? 황제폐하께서 책임을 묻는다면 내 뜻이라고 하십시오.” 이택은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전엔 북명황실에서 황제폐하의 의심을 살까 봐 일부러 많은 일들을 회피해 왔는데, 지금 간섭을 하질 않나, 전북망을 불러 심문하라고 하질 않나. 갑자기 황제폐하의 의심이 두렵지 않아 진 것인가?’ 그는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전 황야님께서 너무 지나치게 간섭하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습니다. 새로운 진술이 나오면 바로 왕야님께 알리겠습니다.” 사여묵은 그를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이 상서가 내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한 것 같습니다. 내 말은 이방이 진술을 바꾸지 않으면 전북망을 데려와 물으라는 뜻이었습니다.” 이택은 의혹스러
황실 서재. 숙청제는 차를 들고 컵 뚜껑으로 가볍게 쓸더니 한 모금 마신 후에야 사여묵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대리사도 형부와 함께 이 사건을 수사한 줄은 몰랐군. 내가 그런 지시를 내렸었나? 아니면 사온의 역모사건을 조사할 것이 없어 형부를 도와 사건을 처리하려는 것이느냐?” 질문을 하는 것 같았지만 말투는 꽤 언짢았다. 과거 형제간의 묵계에 따르면, 이럴 때 사여묵은 죄를 고하고 물러나서 두 사람의 평안함과 형제간의 화합을 유지해야 했다. 그래서 숙청제는 말을 마친 후 천천히 차를 마시며 그가 무릎을 꿇고 죄를 고하기를 기다렸다. 그는 이미 사여묵이 참고 양보하는 것에 습관이 되었다. 하지만 이번에 사여묵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사죄를 하지 않았다. “황제폐하, 전북망은 녹분성을 이끄는 장군입니다. 녹분성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그와 상관이 없을 리 없습니다.”숙청제는 잠깐 멈칫하더니 화가 치밀어 오른듯 찻잔을 어안 위에 힘껏 내려놓았고, 오대반은 놀라서 얼른 무릎을 꿇었다. 숙청제의 말투에는 노여움이 더해져 있었다. “넌 남강을 수복한 원수였으니 내가 묻겠다. 이런 큰 재앙이 일어났는데 전북망에게 책임을 묻는다고 성릉관 주장인 소승이 책임을 면할 수 있다고 보느냐?” 사여묵은 노기가 어린 황제의 눈동자를 마주하며 대답했다.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자 숙청제가 말했다. “그렇다면 왜 한 사람을 더 끌어들이려는 것이냐? 서경에서 사자를 보내 이 일을 심문하기 전에 난 이 일을 제기하고 싶지 않았고 소승과 이방에게 벌을 줄 생각도 없었단다. 지금 하는 모든 일은 다 서경에 대처하기 위해서다. 왕비의 전 부군이니 나도 네가 그를 싫어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해는 하지만 넌 상국의 친왕이자 관리로서 대국을 위해 생각할 줄 알아야 하지 않느냐? 미워하는 사람 따위 때문에 나에게 반항까지 하다니, 정말 실망스럽구나.”사여묵은 비굴하지 않고 꿋꿋이 말했다. “내가 이렇게 하는 건 사적인 원한과 무관하며, 전북망이 녹분성으로 군사
사여묵은 한쪽 무릎을 꿇고 있지만 여전히 물러서지 않았다. "공정성을 입증하기 위해 폐하께서는 형부를 통해 전북망을 심문하시고 그의 진술과 다른 사람들의 증언을 대조하여 사실을 밝혀주십시오. 신은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경 사람들은 우리가 전쟁포로를 죽이고 마을을 학살한 일에 대해 우리보다 더 잘 알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전쟁의 총책임자인 전북망을 배제한다면 그들은 더욱 분노하며 저희 협상에 진정성이 없다고 여길 것입니다."그는 고개를 들고 강한 눈빛으로 숙청제를 바라보며 계속 말했다. "게다가 성릉관의 군사와 백성들은 실망할 것이고 폐하께서 심복 무장을 키우려는 의도가 따로 있기에 오랜 세월 성문을 지킨 노장에게 모든 죄를 덮어씌운다고 생각할 것입니다.""쾅!"술잔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숙청제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는데, 눈 속에는 엄청난 분노가 서렸다. "무엄하도다!"오 대반은 몸을 떨며 숙청제에게 진정하라고 청한 뒤 사여묵에게 말했다."왕야, 더는 폐하를 노하게 하지 마십시오."숙청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사여묵을 위에서 차갑고 날카롭게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너의 공손한 태도는 모두 가식이었구나. 짐의 말을 거역하고 욕보이다니? 이런 일이 퍼지기라도 한다면 천하의 군사들이 짐에게 실망하지 않겠느냐?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보거라!"사여묵는 당당히 숙청제와 눈을 맞추며 말했다. "제가 무엇을 원하든지 모두 상국을 위한 것입니다. 도리어 여쭙고 싶습니다. 폐하께서는 신이 대체 무엇을 원한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평소보다 다른 사여묵의 모습에 숙청제는 화가 나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비록 숙청제가 군권을 빼앗은 건 사실이지만 아직 군심을 얻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남강 전투 후, 숙청제는 사여묵이 군무를 맡지 못하게 하여 서서히 군대에서의 영향력을 잃게 하려 했지만 그 과정은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며 아직 목적에 도달할 수
숙청제는 손을 내려놓고 차갑게 말했다. “틀린 말이 아니다. 내가 새로운 무장을 키우려는 건 맞지만 짐은 어리석은 임금이 아니다. 아무리 새로운 인물을 키운다고 해도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한 노장들을 버릴 순 없다.”“헌데 내가 어찌 새로운 무장을 키우려는지 그가 정녕 모른단 말이냐? 북명군의 군권이 이제는 그에게 없지만 위신은 여전히 강하다. 남강 수복의 공은 마치 큰 산처럼 그를 지키고 있다. 나는 그를 움직일 수 없고 오히려 북명군이 나에게 위협을 가하고 있다.”하도 세게 쥔 탓에 주필이 그의 손에서 부러졌다. 숙청제는 붓을 책상 위에 던지고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 “짐은 북명왕이 역적이 되지 않을 거라 믿겠지만, 만약 그에게 진정 불순한 야망이 있다면 나는 그를 어찌해야 할꼬?”오 대반은 속으로 급히 머리를 굴리며 말했다. “폐하, 북명왕은 결코 반역할 마음이 없습니다. 그는 폐하의 아우입니다.”하지만 숙청제는 싸늘하게 답했다. “짐은 그가 당장 반역할 생각은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고위직에 오래 있으면 어느 순간 다른 생각을 하게 되는 법이지. 나는 그를 경계하고 형제로서 싸우고 싶지 않으니 그가 그런 마음을 먹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도 단호히 처리할 수밖에 없다.”사여묵은 숙청제와 대립하며 그를 분노하게 만들었지만 숙청제는 오히려 안도했다. 만약 그가 더 큰 계획이 있었다면 소 대장군의 일로 그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은 사여묵이 반역의 야망을 품고 있지 않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잠시 후, 전북망이 형부에 도착했고 이택이 직접 심문했다.전북망은 성릉관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숨김없이 고백했는데 그와 이방이 성릉관에서 사적인 관계가 있었다는 것도 솔직히 인정했다. 사실 그는 이미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비록 황제가 그를 보호해 주고 있었지만 세상에 드러난 사실들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는 녹분성 작전의 장군이고 또 이방과도 관계를 가졌다. 그러니
이택은 날카롭게 말했다. “소 대장군께서 진성으로 돌아와 심문을 받는 것도 다 너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모든 죄를 뒤집어쓰길 바라는 거냐? 네가 어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누군가 그를 이 사건에서 빼려고 합니다. 누군가가요!” 이방은 마치 분노한 사자처럼 발버둥을 쳤으나 쇠사슬에 묶여 있는 탓에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공정하지 않습니다! 그는 성릉관의 주장이었으니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합니다. 당신들은 하나같이 권세가 두려워 사여묵과 송석석에게 아첨하며 전북망을 죽이려 들지 않습니까? 그는 내가 마을을 학살한 일을 전혀 모릅니다. 전북망은 억울하게 누명을 쓴 거란 말입니다!”“전북망이 모른다면 소 대장군은 더더욱 알 리가 없다.” 이택은 콧방귀를 뀌며 주부에게 명령했다. “기록하거라. 이방은 전북망과 소 대장군이 모두 몰랐다고 진술했다는 것을.”“아니, 나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방이 큰 소리로 부인했지만, 이택은 목소리를 높일 뿐이었다. “여기 귀가 몇 개인데 감히 말을 바꾼단 말이냐?”이방은 입을 열다 말고 자기가 처한 상황을 깨닫고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눈에 숨겨진 교만과 불만을 애써 감췄다.이택은 그녀를 지켜보며 생각했다. 역시 왕야는 단호하다. 전북망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녀의 주장은 성립되지 않는다. 전북망이야말로 작전의 지휘관이었고 그가 몰랐다면 소 대장군은 더욱 알 리가 없다. 이방은 전북망의 부장이라 절대 독립적으로 소 대장군의 명령을 받을 수 없었다.사실 이방은 전에 전북망이 자신에게 감정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가 자신을 배신했다고 여겼었기에 형부에 붙잡히기 전까지는 전북망을 연루시키는 것에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그날, 성릉관에서 그녀에게 했던 약속을 기억하고 자신의 미래를 걸고 그녀를 도와 도망치게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제서야 전북망의 마음을 알게 된 것이다.그래서 형부에 들어온 후 그녀는 소 대장군을 범인으로 몰아가는 것이 정확한 방법이며 황제는
숙청제는 현재 군사 상황을 논의하고 있었으며, 송석석을 어서방으로 불러 전쟁 상황을 논의하는 자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이 어서방에서의 논의 자리는 그녀가 현갑군을 이끌고 반군을 물리친 대가로 얻은 자리로, 피와 땀을 쏟은 결과였기에 아무도 이를 무시할 수 없었다.군사 상황의 구성은 성릉관과 남강에서 전해온 군사 첩보고를 바탕으로 조정 대신들이 다시 상황 분석을 하고, 후방 지원을 준비하며 전략을 세우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하지만 아무리 전략이 있어도 숙청제는 직접 명령을 내리지는 않았고, 항상 제안을 할 뿐이었다.이 점에서 그는 사여묵과 소씨 가문에 대해 신뢰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이 신뢰가 오직 군을 이끌고 전투를 벌이는 데만 국한되지만 말이다.겨울이 다가오고 있었기에 장병들은 더 많은 겨울 옷과 무기가 필요했다. 그들이 주로 논했던 부분도 바로 보급 문제였다.성릉관의 수란석과 빅토르의 상황은 비슷해 보였지만 다소 차이가 있었다.빅토르는 이미 물러날 길이 없는 데에 반해, 수란석은 아직 서경 황제가 그의 방패로 남아 있기 때문에 물러날 길이 있었다. 다만 서경 황제는 현재 냉옥 장공주와 많은 의견 차이가 있었고, 조정 내에서도 분파가 나뉘어 아수라장이 된 상태였다. 그러니 실제로 수란석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그나마 물러날 길이 남아 있다는 점이 다행이었지만 그 퇴로조차 수란석에게는 큰 수치로 느껴졌다. 그는 본래 영군왕과 협력하여 상국인들을 물리치고 기세를 타 성릉관을 흡수하려 했다. 그렇게 되면 그와 서경 황제 모두 백성들의 칭찬을 받으며 민심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그는 언제나 형인 수란키보다 앞서 나가기를 원했으며, 그 욕망은 거의 집착에 가까웠다.그래서 그는 전장에서 매우 잔인하게 싸웠고, 전력을 다해 싸웠으며, 죽지 않으면 물러서지 않는다는 각오로 임했다.전북망과 그 몇몇은 원래 소 대장군에게 축수 선물을 전하기 위해 갔으나, 왕표가 그들을 싫어하여 남강으로
비록 혜의궁의 정원이 크지는 않았지만 어화원과 비교하면 결코 비교할 수 없는 크기였다.만약 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꽃을 감상하거나, 잠시 잠깐 서서 꽃을 감상하려 한다면 반 시진 정도는 걸릴 것이었다. 하지만, 송석석은 빠르게 걷는 것이 익숙했기에 꽃들을 한 번 훑어보고는 바로 지나쳤다. 그녀에게는 큰 차이 없게 느껴졌다. 그녀는 이전에 온 산에 가득 피어 있는 갖가지의 꽃들을 본 적이 있었다. 서리를 맞은 차가운 매화꽃, 높은 산의 진달래, 3월에 피는 아름답고 화려한 복숭아꽃, 끝이 보이지 않는 각색의 동백꽃 등… 모두 눈을 번쩍 뜨이게 할 만한 경이로운 장관이었다.그런데 지금 이곳에서 화분에 정성스럽게 키운 모란을 보고 있자니 그다지 큰 흥미가 생기지 않은 것이었다.한 바퀴 돌고 나니 몇몇은 차 한 잔도 다 마시지 못했고, 첩여 동씨가 막 공방 이야기를 꺼낼 때쯤 그들은 이미 혜의궁의 정전에 도착했다.첩여 동씨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그럼 들어가서 수빈 마마께 축하를 올립시다."그러자 송석석이 말했다."저는 일이 있어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아, 왕비님!" 첩여 동씨가 급하게 그녀를 불러 세우자, 송석석이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소주께서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그러자 첩여 동씨가 웃으며 말했다."아무 일도 없어요. 다만, 세상 모든 여성을 대신해 왕비께 감사드리고 싶었어요. 왕비 마마는 넓은 마음을 가지시고,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어려운 백성들을 염려하시니, 비첩들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송석석은 그 말에 다소 당황스럽고 의아해 잠시 생각에 잠겼다.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백성들을 염려한다니? 자신은 그렇게까지 위대한 인물이 아니었다.게다가 부끄러우면 스스로만 부끄럽다 하면 됐지, 왜 굳이 비첩들이라고 말한 것일까? 이 말은 대체 누구를 의미하는 것이지? 그 자리에 있던 다른 후궁들한테 하는 말인가?그리고 정말로 세상의 여성을 대신해 감사하겠다는 뜻일까, 아니면 자신을 불쾌하게 만들려는 의도일까? 이는 칭찬하
수빈이 궁을 옮기자, 각 궁에서 선물을 보내왔고, 황족과 왕족들도 이 소식을 듣고 몇 번이고선물을 보냈다. 어떤 것을 보낼지에 대해서 다른 저택은 모두 주모가 결정을 내리는 반면, 북명황실에서는 염선생과 노 집사가 결정권을 가졌다.두 사람은 창고에서 선물로 줄만할 것을 이것저것 찾았지만, 적당한 것을 찾지 못했다. 값비싼 금은보화 같은 보석들을 주기에도 그렇고, 금과 옥으로 된 은병을 주기에도 너무 인색해 보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또한, 산호수나 병풍 같은 비교적 큰 물건들은 염선생이 잘 내놓지 않으려 했다. 산호수는 보기 드문 것이라, 황실에 있는 한 그루도 왕비의 혼례 때 만종문에서 선물한 것이었다.결국 그들은 창고에 가장 많은 물건을 눈여겨보았다. 그것은 바로 심청화 선생의 매화 그림이었다.이것은 내놓으면 매우 품격 있는 선물이 될 것이었고 값도 꽤 비쌌다. 그러나 황실에는 이런 그림이 많았다. 만약 부족하다면 곧 눈도 내리기 시작할 터이니, 매화도 피기 시작할 것이다. 심선생에게 다시 그려 달라고 부탁하면 되지만 그들은 심선생을 존중하여 먼저 허락을 구했고, 그는 아무런 이의 없이 허락하였다. 사실 이 매화 그림은 이미 너무 많이, 심지어는 여러 해동안 그려왔기 때문에 근육이 다 기억할정도였다. 종이를 펼치고 붓과 먹이 손에 있기만 하다면 한두 시간 내에 끝낼 수 있는 일이었다.송석석은 저녁에 돌아와 이 광경을 목격했다. 심선생의 그림을 보내야 한다니 마음이 조금 아쉬웠지만, 다행히도 그것이 수빈에게 보내는 것이었으니 괜찮았다. 어쨌든 궁 안에 남아 있을 것이므로 쉽게 팔려 나갈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수빈도 아마 묵보를 아끼는 사람일 터이니, 보내야 한다면 보내면 되었다.그녀는 선물을 가져다주러 직접 궁으로 갔다. 혜의궁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 기회를 이용해 궁에 들어가려는 내외의 명부들이 전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송석석도 잠시 기다렸다. 누군가 그녀가 왔다는 소식을 들어가서 알린 듯, 수빈은 송석석의 업무가
후비들 중에서 제 황후가 가장 꺼리는 사람은 덕비와 수빈이었다.덕비와 수빈은 각각 이황자와 삼황자의 어머니였다.사실 수빈의 삼황자는 친자가 아니고 나이도 어리기에 그녀가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수빈은 본래 성격이 거칠고 가문이 뛰어나며 권력을 휘두를 줄 아는 사람이었다.그러나 최근 일년 동안 수빈은 덕비와 함께 후궁의 일을 관리하며 성격도 많이 수그러들었고, 사람들의 마음을 사는 법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그녀는 송석석의 공방과 여학을 지원하며 민간에서도 명성을 얻고 있었다.반면 덕비는 훨씬 더 조용히 지냈다. 수빈과 후궁의 일을 관리하며 간혹 그녀의 의견을 묻기도 했고, 정말로 그녀를 황후로서 존중하며 대해주었다.하지만 덕비의 이황자는 총명하고 예의가 발랐고, 심지어는 태후와 황제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만약 지금 태자를 책봉한다면 당연히 적장자가 되겠지만, 황자들이 다 자라나면 누군가가 그 중 뛰어난 자를 태자로 삼자는 제안을 할 수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럼 대황자에게 강적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지금 덕비와 수빈 두 사람은 후궁의 일을 함께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아들들은 자연히 더 높은 대우를 받고 있었다.황후가 대황자를 데려와 키우기로 결심한 이유에는 단순히 앞서 말한 것뿐만이 아니라 하나의 이유가 더 있었다. 제씨 가문이 그녀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면 오히려 그녀의 발목을 잡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무슨 일이 생기면 황후의 자리를 빼앗길 수도 있는 것이었다.그러나 대황자가 황후의 곁에서 자라면 황제는 반드시 황후를 신경 쓸 수밖에 없을 것이다.그렇기에 황후는 이 말을 더더욱 감히 입 밖에 꺼내지 못했다.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몹시 떨린 탓에, 밤새 뒤척이느라 한 숨도 자지못했다. 그렇게 다음 날, 황제가 혜의궁을 수빈에게 주어 살게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혜의궁은 당시 혜안태후가 황후가 되기 전에 살던 곳이었는데,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엔 시원했다. 궁 앞에는 연못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안
한편, 황후는 장춘궁에서 비녀와 귀걸이도 풀지 않고 얼굴의 화장도 지우지 않은 채, 기대감 가득한 눈으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오늘 어전에서 일찍부터 황제가 오늘 밤 후궁에 오신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녀는 오랫동안 기다렸지만 황제께서 아직 간택하지 않으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음속으로 기뻐했다. 간택하지 않으셨다는 것은 이곳에 오시겠다는 의미였다."란주, 폐하가 오셨는지 한 번 확인해보거라." 그녀는 다시 한 번 재촉했다. 오늘 밤만 벌써 세 번째 재촉이었다.란주 상궁은 옆에서 시중을 들며 웃으며 말했다. "너무 서두르지 마세요. 황제께서 오실 때는 반드시 사람을 먼저 보내 맞이할 준비를 하시라 알리실 겁니다.""그치, 그랬었지. 황제께서 너무 오랫동안 장춘궁에 오시지 않으셔서 벌써 다 잊어버렸지 뭐냐." 황후는 머리를 쓸어내며 어여쁜 미소를 지었다."본궁과 황제는 결국 부부인데, 부부 사이에 원한이 어찌 그리 오래 있을 수 있겠는가? 이제 대황자도 많이 성장했으니 황제도 마음이 부드러워지셨을 테지."“황제께서 오시면 잘 말씀드리십시오. 너무 급하게 대황자를 데려오겠다고 말하지 마시고요."란주 상궁이 당부하자, 황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다. 오늘 밤에는 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겠지만, 어쨌든 그 아이를 하루빨리 돌아오게 해야 한다. 이제 대황자도 태부가 칭찬할 만큼 잘 하고 있으니, 더 이상 지안궁에 둘 필요가 없지. 대황자는 돌아와도 똑같이 잘 배울 수 있어. 만약 계속 지안궁에 둔다면 어쩌면 대황자가 어미인 나를 잊고 말 테야."란주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사실 대황자께서 이제 말을 더 잘 듣고, 더 좋아지셨습니다. 지안궁에서 계속 지내게 하면 어떨까요? 황제께서 황후의 금지령을 풀어주시기만 하면 언제든지 대황자를 보러 갈 수 있고, 대황자도 효심이 깊으니 결코 황후를 잊지 않을 겁니다."황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슬픔으로 가득찬 눈빛으로 말했다. "효심은 깊지만 아직 어리다. 그러니 누군
궁 안의 어서방에서는 지열이 아직 따뜻해지지 않은 탓에 차가운 기운이 서서히 스며들었다.비록 조서 처리는 이미 끝났으나, 숙청제는 여전히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그는 그저 눈앞의 어두운 불빛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그는 방금 전, 사여묵이 송석석에게 보낸 편지를 읽었었다. 그 편지에는 다할 수 없는 그리움과 속마음이 담겨 있었는데, 마치 처음 혼인한 신혼처럼 달콤하고 떼어놓을 수 없는 사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는 사실 그들의 편지를 이번에 처음 본 것이 아니었다. 예전에도 그리움이 담긴 편지를 읽었었지만, 이번처럼 이렇게 자유롭고 거침없는 내용은 아니었다.이런 내용은 입으로도 말하기 민망한데, 글로 쓴다는 건 더 민망하지 않겠는가?그는 황제의 동생이 이런 짓을 하다니 실로 부적절하고 경솔하다고 생각했다.여자들 달래는 방법은 많은데 왜 하필 이렇게 해야 했을까?그는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마음 속에 작은 돌이 떨어진 듯,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물결이 일기 시작했다. 그 물결은 점점 커져만 갔고, 아무리 애써도 가라앉히지 않았다. 그가 황제가 된 후, 얼마나 많은 것을 잃었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남녀 간의 정은 감히 생각할 수조차 없다. 마음이 흔들린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그는 그저 한순간일 뿐, 결국은 사라질 감정이라고 여겼다.그는 송석석에게도 마음이 흔들린 적이 있었다.당당하고 뛰어난 여성인데, 어느 누구나 마음이 뺏기지 않겠는가?하지만 흔들린 마음도 결국 정치적 도구가 되었다. 송석석을 자신의 동생에게 시집보내면 그의 병권을 해제할 수 있다는 마음에 그런 행동을 한 것이다. 이처럼 숙청제의 감정은 언제나 희생되어 어떤 목적을 달성하는 데 사용 되엇다.“폐하, 오늘 밤은 어느 궁녀의 궁에 가시겠습니까?”오대반이 그가 조서를 다 처리한 후 한참 말없이 앉아 있는 것을 보자, 조심스럽게 물었다.그러자 숙청제가 시선을 돌려 서서히 초점을 맞추며 물었다. “최근 황후의 궁에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오대반이
소부는 입성할 때 열 명 남짓한 사람만을 데리고 왔다. 그들은 모두 강건하고 체격이 건장했으며, 허리에 굽은 칼을 차고 있어 보기만 해도 위압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술과 고기를 먹기 시작하자, 그들의 검은 얼굴에는 어느새 화려한 미소가 번져 있었다.비록 군주 소부는 쉰이 넘었지만,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피부가 거무스름하며 광이 났고, 눈은 매우 총명하고 밝아 보였다. 또한, 그는 특별히 지혜롭고 치밀한 사람으로, 항상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는 북명왕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았다.그의 요구는 단 하나 뿐이었다. 이번 한 번만 협력하고, 사국을 물리친 후에는 즉시 초원을 떠나야 하며 허락이 떨어지지 않으면 초원의 핵심 지역에 다시는 발을 들여놓지 말라는 것이다. 사여묵은 그의 요구를 수락하고 즉시 협정을 체결했다. 협정 체결이 되자마자, 그들은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떠났다.초원 부락은 상국에 대해 그리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해마다 전쟁이 일어나 초원이 피해를 입곤 했기 때문이다. 초원에는 여러 부락이 있지만 하나로 뭉치지 못했다. 그래서 이들은 상국이나 사국에 대항할 수 없었다.방천허는 그들을 성 밖으로 호송한 후, 곧바로 수부로 돌아가 이번 추격전을 어떻게 준비할지 논의했다.초원 부락이 땅을 빌려준다면 그들은 종심까지 추격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추격전은 성을 방어하는 전투와 달랐다. 후방 지원, 식량, 활과 무기, 그리고 군의와 치료약, 들것 등 하나도 빠짐없이 준비해야 했다. 군대가 나갔을 때 겨울의 혹독한 추위와 싸워야 하는 위험도 따랐다. 하지만 이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그 효과는 클 것이었다. 최소한 10년에서 8년간 사국은 다시는 함부로 침범하지 못할 터였다.모든 장수들이 밤새 논의한 끝에 기본 전략이 세워져, 군령을 내렸다. 당연히 황제에게도 급보를 보냈다. 급보에는 매번처럼 송석석에게 보낼 편지도 함께 끼워 넣었다. 외지에 있는 동안, 아무리 부부 사이라도 어전에서는 비밀이 없으니 불필요한
시끌벅적한 혼례를 마친 후 황실로 돌아온 송석석은 매화원이 유난히 고요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사제가 생각났지만, 사제는 저 멀리 남강에 있다. 비록 헤어진 날들을 세진 않았지만 너무나도 길게 느껴졌다. 예전처럼 왕경루에 나가 사부도 찾고 싶었으나, 그가 이미 매산으로 돌아갔음이 기억났다. 마음속에 서서히 허전함이 몰려왔다.그러다가 또 아까 봤던 안여옥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본래 여자가 혼인할 때 이렇게 기뻐하고 기대하며,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넘쳐나는구나. 그 행복감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니…...’송석석은 두번의 혼인 모두 평화롭게 진행했다. 그때, 보주가 송석석의 화장을 지워준 뒤 목욕물을 준비하려 하자, 송석석이 고개를 저으며 그녀를 앉히고 말했다. "보주, 예전에 네 혼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지? 혹시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는 것이냐?"보주는 송석석을 한 번 보더니 능청스럽게 말했다. "아씨, 혼례 때 먹었던 음식과 술이 입에 맞으셨나 봅니다. 또 드시고 싶으신가요?"송석석은 웃으며 답했다. "내가 그렇게 먹는 걸 좋아하는 것 같으냐? 다 너 좋으라고 하는 말이다. 계속 이렇게 있으면 나중에 늙은 처녀가 되고 말 테니깐. 만자에게 영향을 받아서 혼인을 안 하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지?"그러자 보주가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아요. 저는 혼인할 거예요. 그러나 혼인한 후에도 아씨 곁에 있을 거예요."송석석은 보주의 코끝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 "혼인하고 나서도 남편이 아닌 내 곁에 남겠다는 거야?"보주는 눈물이 글썽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씨, 저에게는 아씨 외에 아무도 없어요. 아씨가 어디에 있든지 저는 그곳에 있을 거예요. 괜찮은 하인이나 호위가 있다면, 다른 건 상관없어요. 인품이 좋고 황실에 충성하기만 하다면 혼인할 거예요."말을 마친 후 보주는 눈물을 흘렸다.송석석은 손을 내밀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다정하게 말했다. "아니야. 가장 중요한 건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어야 해. 오늘
방시원과 안여옥의 혼사는 계속 미뤄지다가 결국 좋은 날을 잡아 혼례를 올렸다. 혼례가 비록 떠들썩하지는 않았지만, 태부의 손녀를 시집보내는 일이었으니 필요한 체면만큼은 갖추어져 있었다. 태후가 먼저 앞장서자, 후궁들도 차례차례 상을 내려 안여옥의 혼수품을 준비해주었다.아군여학의 학생들도 동참하여 안여옥에게 손수 만든 신혼 선물들을 보냈다. 여학의 학생들은 대부분 평민 가정의 아이들이었기에 비록 비싼 것은 없었지만, 손수 수놓고 만든 것들이라 특히 소중하게 느껴졌다.안여옥의 혼수는 일찍이 공방의 모 낭자에게 맡겼다. 그 혼례복은 공방의 자수점에서 전시된 적이 있었다. 그때 혼례를 앞둔 많은 처녀들이 그것을 보고 마음을 빼앗겼고, 자신도 그렇게 아름다운 혼례복을 입고 마음에 드는 남자에게 시집가기를 꿈꿨다.모 낭자는 본래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이제 태부의 손녀도 그녀가 만든 혼례복을 입었으니, 그 누가 여전히 그녀의 과거를 떠올리며 재수없다고 생각하겠는가? 이때부터 공방의 자수점은 사람들로 가득찼다. 자수점에는 혼례복을 만드는 사람도, 일상복을 만드는 사람도 있었다.혼례 당일, 송석석은 시만자와 함께 방씨 가문에 가서 혼례 연회를 즐겼다.방씨 가문에는 형제가 많은 데다가 방시원이 무장이라 그런지, 장난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신혼방을 어지럽히겠다고 말하며 놀려댔다. 그리고 다들 신부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고 싶어 하였는데, 예상과 달리 신부는 당당하고 여유롭게 나서서 말했다. "신혼방을 어지럽히는 것은 좋지만, 먼저 시를 지어야 합니다. 혼례를 통해 인연을 맺는 것을 주제로 시를 한 편 지으면 홍봉을 받을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신혼방 정원에서 권법과 검술을 선보여야 합니다."그렇게 방시원과 안여옥은 처마에 앉아 여러 차례의 권법과 검술을 감상했고, 홍봉은 나가지 않았다.그렇게 신혼방을 어지럽히는 대신 신혼부부가 손님들에게 장난을 치기 시작했는데, 이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태부부에서 태부 손녀의 혼례를 축하하는 손님들 중 대부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