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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4화

작가: 유애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1-04 20:00:01
고씨 가문에서 은전 오만 냥을 보내왔다. 그러면서 말하길, 여인들의 향후 거처를 잘 부탁한다고 했다. 더불어 고부인은 끊임없이 형편이 어렵다고 울먹거리며 오만 냥은 자신의 전 재산임을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송석석은 호통쳤다.

"전하께서 십만 냥이라 하셨다. 단 한 푼도 모자라선 안 된다. 삼 일 후에 형벌을 집행할 것이니, 마지막으로 만남을 가져도 좋다."

그녀가 열 달 품어 낳은 아들이었으니. 고부인은 마지막으로 아들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고씨 가문의 어르신, 고철갑의 차가운 시선에 그녀는 울먹이며 말을 바꿨다.

"아닙니다. 본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겠습니까? 그저 슬픔과… 분노만 더할 뿐이지요. 그가 그런 일을 저질렀으니, 우리 고씨 가문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집니다."

"맞습니다. 죄가 너무 크다보니 보지 않는 것이 더 낫겠습니다."

고철갑 또한 같은 대답이었다.

그들은 되도록 고부진과의 연을 끊어내고 싶어 했다. 아들을 아끼지 않아서가 아니라, 어차피 죽을 운명이라면 굳이 가문을 끌어들이지 않는 것이 나을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송석석이 이미 고지하였으니 만날지 말지는 그들의 결정이었고, 보지 않겠다고 했기에 은표를 받고 그들을 돌려보냈다.

오만 냥만 먼저 들이민 그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잘 알고 있었다.

단번에 십만 냥을 내면 부족함이 없다는 인상을 줄 것이고 공주부에서 몰수한 은전도 일부 내어놓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덜 내려고 했다.

어림없지! 단 한 푼도 줄일 수 없다!

다음 날, 그들은 나머지 오만 냥을 보내왔다. 송석석은 귀가할 수 있는 여인들에게 그중의 일부를 나눠주었고 더는 그 누구도 그들을 첩이라 부르지 못하도록 명했다. 이제 그들은 그들 자신일 뿐, 더 이상 누군가의 소유물이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 딸이 있었기에 나이가 적든 많든 떠나길 원치 않았다. 하여 일단 이수암으로 거처를 정했다.

고청란은 이수암에 가지 않아 시만자가 그녀의 행적을 책임지기로 했다.

휘왕과 함께 살고 있는 고청영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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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석석의 차가운 눈이 제릉서를 응시했다."그대는 사리에 밝다고 여겼는데 제가 착각했던 것 같습니다. 피해자가 아니라는 그대의 가벼운 말한마디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해를 입을지 생각은 해보셨는지요? 이 여인들뿐만이 아닙니다. 그녀들을 들였던 가문들도 연루될 것입니다."송석석이 그를 꾸짖으려는 것이 아니라, 황제의 신임을 받는 그였기에 송석석에게 할 수 있는 발언은 황제께도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염려한 것이었다. 황제께서 현재는 덕망을 쌓는 것에 집중하고 있지만 후년에 기반이 더욱 탄탄해졌을 때 그가 한 말을 되새기며 후환을 없애려 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이 여인들은 결코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자신이 방금 실언했음을 깨달은 제릉서도 더 이상 같은 말은 하지 않았다."송 대감께서 저 대신 방장께 고아 신분으로 여기에 머물 수 있도록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그들 모녀가 함께 있을 수 있으니 사실 그녀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하지만 송석석은 그 말에 냉소하며 답했다. "이것이 그대들의 결정이라면 방장과 상의할 수는 있습니다만. 이것이 최선이라 생각한다니, 저는 그리 보지 않습니다. 부모가 있는 아이를 고아로 둔갑시키고, 어머니와 딸이 함께 있으면서도 서로를 인정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 아닙니까? 처음에는 이들을 분리해야 할 텐데, 어떤 아이가 자신의 어머니를 알아보지 못하겠습니까? 고청묘가 아이를 외면할 수는 있어도 그 아이는 분명 어머니를 알아볼 것입니다."그럴듯한 말들로 장황하게 늘어놓는 제릉서의 말을 송석석은 단칼에 끊어버렸다. 송석석은 이미 그들에게 모녀가 함께 머물 수 있도록 제안을 한 적이 있었지만, 제릉서는 계속 모녀 관계를 숨기려 했다. 즉, 모녀가 한 지붕 아래 살 수는 있어도 함께 살을 부대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그들의 계획은 송석석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게다가 그들은 전에 아이의 문제에 대해서는 자신들이 알아서 해결할 것이라 호언장담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렇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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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806화

    밖으로 나온 시만자가 의아해하며 물었다.“무슨 일이야?”송석석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대략적인 상황을 설명했다.“고청묘 주변에 아이가 있어선 안 된다고 하던 제상서가 이제 와서 아이를 보내겠다고 하잖아! 상서가 되어서 말을 번복하기나 하고, 아이를 책임지지도 못하면서 대체 왜 낳는 거야? 아이만 불쌍하지.”시만자도 그런 자들을 혐오했다.“아마 그때는 일시적은 충동에 자신들이 해결하겠다고 했겠지만, 돌아가 다시 생각해 보니 그럴 수 없다고 여겨 여기에 맡기기로 한 거야. 그러면서도 모녀가 붙어있을 수는 없고 고아라 칭하게 만들다니, 정말 어처구니없네. 분명 부모가 있는데도 고아로 살아가게 만드는 건 상서란 직책에 스스로 먹칠하는 꼴이 아니겠어?”“내버려둬. 알 게 뭐야. 우리는 그냥 이들을 잘 안치하기만 하면 돼. 이토록 내치려 하니 이곳에서 잘 보살펴주면 돼. 사실 제상서 부인에게 고청묘와 그 아이는 모두 지극히 잔혹한 존재일 뿐이야.”시만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이미 깨진 행복을 다시 이어 맞출 수는 없다고 생각해. 정말 그녀가 아무것도 몰랐던 걸까?”“그건 그녀만 알겠지.”“아, 맞다.”명부를 확인했던 시만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덧붙였다. “위국공부의 고청아는 오지 않았어. 그녀가 도면을 훔친 것을 두고 황제께서 따로 처분을 내리실 건가 봐.”그러자 차가웠던 송석석의 눈빛이 조금은 부드러워졌다.“고청아에게는 곤장 20대를 내렸고 위국공부의 위해철에게는 곤장 30대와 감봉 2년을 내렸어. 하지만 고청아의 20대도 위해철이 감당하기로 하여 도합 50대지. 어제 형벌이 집행되었는데 거의 반 죽어버린 상태라 들었어.”“그나마 책임감은 있군. 제상서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말이야.”“높은 자리에 오르면 생각해야 할 것들이 많아지는 법이지. 제상서는 자신의 명성을 조금도 더럽힐 수 없었기에 쉽게 포기할 수 있었을 거야. 현재로서는 위국공부의 위해철이 더 책임감이 있어 보이지만, 그도 제상서와 같은 자리에 오르면 지금처럼 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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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석석도 시만자도 머리가 복잡해졌다.“영우야, 이모랑 함께 갈래?” 하지만 시만자는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아기에게 조용히 물었는데, 말을 아직 잘하지 못하는 한 살이라 입속으로 엄마만 찾을 뿐이었다.시만자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래, 우리 함께 엄마 보러 가자.”서로 시선을 맞춘 송석석과 시만자는 마음이 무거웠다. 이 아이는 돌아가더라도 엄마 곁에서 자랄 수 없었고 방장이 다른 사람이 돌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유모가 아이를 등에 업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시만자의 등에 업힌 아기는 유모가 따라오지 않자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시만자는 한참 달래주었고 그렇게 한참 후, 아기가 진정되고 나서야 말을 끌고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조장 밖에는 마차 한 대가 멈춰 서 있었는데, 마차에 있는 상서부의 표식을 확인한 송석석은 잠시 망설였다. 제상서인가, 제릉서인가, 아니면 또 다른 사람인가?그 광경에 시만자도 걸음을 멈췄다. 그녀는 말고삐를 단단히 잡고는 뒤로 손을 뻗어 영우의 엉덩이를 토닥였다.한참 뒤, 마차의 커튼이 열리더니 초췌한 얼굴의 한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어두운 청색 비단옷을 입은 그녀는 머리에 간단한 보석장식을 하고 있었다.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잠시 송석석과 시만자를 바라보다 입술을 벌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차에는 나이 든 유모가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조용히 위로하는 듯했다. 그녀가 바로 제상서의 부인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자 송석석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유모 한 명만 동행했기에 분명 아기를 해치러 온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제상서는 잘 처리했다고 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이었다. 그는 부인을 기만했다. 하지만 가문을 이끌어가는 그녀였으므로 그리 순진할 리는 없었다. 그녀는 단지 남편 앞에서만 모른 척했던 것뿐이다.송석석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고 그녀 역시 다가오지 않았다. 그저 잠시 눈빛만 주고받다가 송석석은 곧바로 말에 올라탔다. 불필요한 갈등을 피하려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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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깜짝 놀란 송석석은 믿기 힘들다는 듯 물었다. “데려가겠다는 말씀입니까? 부인, 이 아기는 아니… 대체 왜 데려가시려는 겁니까?”아이가 제상서의 자식이 아니라고 말하려던 송석석은 차마 거짓말은 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여기까지 온 것을 보면 이미 진실을 알고 있을 것이기에 더더욱 속일 이유가 없었다.제상서 부인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연히 보살피기 위해서지요. 이리도 어린것이 어찌 고생을 견딜 수 있겠습니까?”전숙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아기는 죄가 없지요. 부모를 선택할 수도, 환경을 선택할 수도 없습니다. 잘못을 저지른 건 어른들이니 책임은 그들이 져햐 합니다.”송석석은 그녀의 말에 깊이 공감했고, 또한 그녀가 매우 존경스러웠다. “제상서께서 이 사실을 계십니까? 당신이 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까?”전숙의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지만 흘러내리지 않았다. “그는 저를 속였다고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저도 처음엔 믿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것이 명확해졌습니다. 생각해 보니 알아내기 어렵지 않았습니다.”“부인이 아기를 데려가더라도 그는 고마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이 일이 드러나게 될 것이지요.”“철저한 준비를 마치고 온 것이니 비밀로 하려거든 얼마든지 감출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아이가 진소유가 낳은 아이라고 할 것입니다. 어차피 잡안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으니, 밖에서 소문이 돌더라도 인정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아닐 테지요.”송석석은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부인의 마음이 불편하시지는 않겠습니까?”전숙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저는 이미 마흔여덟의 아줌마라 세상의 많은 일들을 꿰뚫어 보았지요. 그가 저를 존중하긴 하지만, 남자의 마음은 워낙 넓은 법이니 많은 여자를 품을 수 있지요. 애초부터 독점할 수 없었으니 한 명 더 늘든 줄든 차이는 없습니다.”송석석은 그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혹시 아기의 어미도 데려가려는 생각이십니까?”전숙은 고개를 저었다.“아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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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809화

    황혼이 깃들자, 해가 서서히 지며 하늘은 비단처럼 겹겹이 물들어 갔다. 송석석과 시만자는 말을 타고 하산했다.사건이 아직 완전히 끝나지는 않았지만, 잠시나마 한숨을 돌릴 수 있는 순간이었다."내일 고부진이 처형될 텐데, 고씨 가문의 사람들이 나서서 시신을 거두러 올 것 같아?" 시만자가 물었다."잘 모르겠어." 송석석은 아이를 데려가겠다던 제상서 부인의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보였고, 그녀의 마음을 읽은 시만자가 다시 물었다.“제상서 부인이 정말로 아이를 데려가겠다고 했어?”“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일시적인 감정에서 한 말인지는 확실하지 않아.”“비록 그 아이들이 모두 사온의 희생양이라 아무런 죄가 없다 해도 왜 이 모든 일들을 그녀가 짊어져야 해? 이 아이의 등장으로 그녀는 기이하고도 힘든 상황에 놓였을 거야. 과거의 행복이 한낱 환영이 된 것 같아 너무 마음이 아파.”“마차에서 내게 만약 이런 상황에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더라.”송석석은 말의 고삐를 느슨하게 풀었다. 비탈길을 걷고 있는 번개는 여전히 꽤나 안정적이었다."만약 장군께서 밖에 외실을 두고 아이까지 낳았다면 내가 어떻게 할 것 같아?"시만자는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곧바로 대답했다. "매산에 있던 너라면 아마 그를 없애버리려 모든 힘을 모았겠지만, 지금의 너는 그냥 이혼을 하고 각자 삶을 선택했을 거야."송석석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너와는 너무 가깝게 지내면 안 될 것 같아."그러자 시만자가 그녀를 흘겨보며 말했다."내가 너를 모를까?""그럼 너는 어떻게 할 건데?" 시만자는 그저 웃음만 나왔다."그런 일은 나한테 절대 안 일어나지. 왜냐하면 나는 결혼하지 않을 것이니까 이런 고민을 할 필요도 없어.”"그래." 그러자 시만자가 대뜸 물었다."내가 결혼하지 않으려 하는 것에 대해 너는 어떻게 생각해? 너는 지금 아주 행복하게 살고 있으니까 나한테 결혼을 부추길 수도 있었잖아?"그녀를 한 번 쳐다보던 송석석이 입을 열었다.“그럴 리가? 네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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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810화

    먼저 자리에 앉은 전숙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릉서야, 문을 닫거라. 우리 셋이 앉아서 할 이야기가 있으니.”어머니의 태도에서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한 제릉서는 아버지를 한 번 힐끗 쳐다보았다. 하지만 제상서는 혼란스러운 듯한 얼굴이었고 입술은 굳게 닫혀 있었다. 문을 닫은 제릉서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돌아가 자리에 앉았다.전숙은 한 손을 팔걸이에 올려놓고, 다른 한 손은 무릎 위에 가만히 두었다. 그동안 그녀는 풍족한 생활을 누렸고, 남편과의 관계도 좋았기에 동년배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둥근 얼굴에는 고귀한 품위가 깃들어 있었지만, 최근 며칠 부쩍 수척해 보였다.그녀는 제상서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오늘 북명 왕비를 만났습니다.”제상서는 독사에게 물린 듯이 화들짝 놀랐다. “그녀가 당신을 찾았소? 무슨 헛소리를 했든 간에 믿어서는 안 되오!”제상서 부인은 여전히 차분하게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더 이상 반짝이지 않는 그녀의 눈동자에는 오히려 품위가 가득했다.“저는 북명 왕비를 잘 알지 못하긴 하지만 그녀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압니다. 게다가 그녀가 저를 찾은 것이 아니고, 조장에 갔을 때 그녀가 아기를 안고 나오는 것을 본 것입니다.”제상서는 입술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급기야 그녀의 시선을 피해버렸다.“아기라니, 그… 그게 대체 무슨 말이오?!”하지만 전숙은 여전히 온화함을 잃지 않았다.“이미 다 알고 있으니 입 아프게 설명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 저는 그 아기를 집으로 데려와 소유에게 맡기려 하였지요. 하지만 왕비께서는 당신들 중 한 사람이 직접 와서 데려가야 한다고 거절하였습니다.”그녀는 아무런 미동도 없었지만, 두 남자는 불가마에 든 개미마냥 안절부절이었다.유독 착잡해진 제상서는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했고 감히 말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제상서 부인이 담담히 말했다. “왜 데려와야 하는지는 당신들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제가 관대하여 이러는 것은 아닙니다. 첫째, 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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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811화

    다음 날, 제릉서는 영우를 데리러 곧바로 이수암으로 향했다.마침, 송석석도 있어 제릉서는 잠시 이야기를 나누자고 청하였다. "어머니께서 아기를 잘 돌봐줄 것입니다. 동생들에게도 아낌없는 사랑을 주시는 어머니라서 혹 하대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그 말에 송석석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저와 그대 어머니는 서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심중을 털어놓고 이야기하였으니 아기를 홀대하시진 않으리라 믿습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히 하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다. 어제 그대 어머니께서 아기의 이름을 물으시기에 내가 '강아'라 답하였고 영우라는 이름을 계속 쓸지에 대해서는 그대들이 알아서 정하시지요."제릉서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감사드립니다.""그대들이 아이를 데려가기로 하였는데 혹시 고청묘와 만나게 할 생각은 없으십니까?" 제릉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러지요. 사실 어머님께서도 만약 아버지께서 그녀를 데려오길 원하신다면 어머님께서도 동의하시겠다 하셨습니다."송석석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제 대감께서는 그리 순진한 분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분은 그대 어머니이지 않습니까? 어머니를 조금 더 소중히 여겨주시고, 그 마음을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제릉서가 급히 설명했다."오해입니다. 제 어머니는 소인배가 아닙니다. 오히려 모든 상황에 대비해 제씨 가문이 오해받지 않도록 미리 준비하신 것이지요.""오해한 적 없습니다. 그대 어머니께서는 큰 그림을 생각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상처받지 않는 사람으로 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힘든 사람이 아버지라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가장 힘들게 견디고 있는 분은 바로 그대의 어머니이십니다. 그러나 복잡한 마음을 안고도, 그대 가문의 미래를 생각하는 모습은 그대도 본받아야 할 품성입니다." 평소 제씨 가문의 사람들과의 대화를 자제했던 송석석은 어제 만났던 전숙이 너무 착하다고 여겼고, 어렵지 않게 그 이유를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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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고청묘는 고개를 저었다. "가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여기 머무르고 싶사옵니다.""따님은 제씨 가문에 있는데도 말입니까?" 송석석의 물음에 고청묘가 고개를 살짝 돌렸는데, 긴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알고 있습니다. 그 애는 평범한 아이들처럼 잘 자랄 것이니 걱정되지 않습니다."그녀는 꿈도 꿀 수 없었던 것들이지만 딸은 그 행복을 얻었기에 기뻤다.송석석은 다정하게 말했다."그대가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강요할 수 없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제씨 가무은 명분도 없어 그대를 억지로 데려가지는 못합니다.”맨발로 침대에서 내려온 고청묘는 송석석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울먹거렸다."감사하옵니다. 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 송 대감께선 모르실 것이옵니다. 머리 위에 드리워진 날카로운 칼날이 사라진 것이지요. 이제 더는 악몽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겠지요?"송석석이 그녀를 일으키며 말했다. "이 사건이 마무리되면 그대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셔도 되니, 조금만 참으시지요." "더 이상 저를 해치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니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침대로 다시 돌아간 고청묘는 가냘픈 미소를 지었지만, 눈물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저는 제상서가 싫습니다. 그가 다가올 때마다 두려웠습니다. 제가 그의 연민을 바란 것도 아니였는데, 그는 너무도 거칠었사옵니다." 고청묘가 옷을 풀어 헤치자, 몸에 남은 이빨 자국을 드러났다. 새로 생긴 것도 있었고 오래된 흔적도 남아 있었다. 가장 끔찍한 것은 부드럽고 새하얀 가슴에 빼곡히 새겨진 흉터들이었다.송석석은 마음 한구석이 쓰라렸다. 누가 그녀들이 피해자가 아니라고 하였던가? 그녀들이야말로 진정 궁지에 몰린 자들이었다. 그에 비해 어쩔 수 없었다고 늘어놓는 고부진은 너무나도 위선적이었다.송석석은 그녀의 옷을 다시 입혀주며 말했다. "이제는 아무도 그대를 괴롭히지 못할 것이니, 안심하고 지내시지요." "감사하옵니다. 정말로 감사드리옵니다. 대감께서 저희를 구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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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198화

    송석석은 차분하게 질서를 잘 정돈한 뒤, 학생들과 부모님들을 저택으로 돌려보냈고 비밀을 지켜달라는 얘기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 일은 언젠가 소문이 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그러고는 홍현에게 청작과 경조부의 사람을 불러오라고 했다.이 범인은 약을 먹은 게 확실하기에 반드시 매달아서 심문해야 하며 청작을 통해 무슨 약을 먹었는지 확실하게 알아내야 한다.한편, 도망친 범인들도 오진에게 전부 잡혀왔고 그들은 묶여 있는 중년 남성보다 정신이 훨씬 멀쩡해 보였지만 송석석과 홍현을 쳐다보는 눈빛은 여전히 야릇하고 이글거렸다.송석석은 안여옥을 살포시 안아주었고, 이제서야 평정심을 되찾은 안여옥이 되레 송석석을 위로했다.“괜찮아요. 저 괜찮습니다.”“왜 그런 말을 했어요? 선생님은 지금 자신을 망가트린 거라고요. 이를 어찌하면 좋을까요?”국태 부인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얼굴이 창백한 안여옥은 가까스로 미소를 지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국태 부인께서 제 걱정을 이리 하시니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전 애초부터 혼인할 생각이 없었고 저에게 있어서 명성은 그저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이제 그 짐을 벗어 던졌으니 차라리 잘 된 일이지요.”“그렇지만 모든 화를 혼자서 떠안겠다고 하시니… 사람들이 선생님을 어찌 얘기하고 다닐지 걱정됩니다. 선생님 조부께도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할지…”국태 부인은 안씨 어르신과 오랜 인연을 이어왔다. 이번에 안여옥을 여학 선생으로 데리고 올 때에도 안여옥을 잘 보살피겠다고 했는데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다.안 그래도 몸이 허약하신 안씨 어르신이 이 얘기를 들으면 충격에 쓰러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다들 안여옥을 위로하기 바빴고 안여옥은 많은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쳤다는 생각에 얼른 웃으면서 말했다.“전 정말 괜찮습니다. 그리 큰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사람이 살면서 더한 일도 경험하게 될 텐데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안여옥은 연신 괜찮다고 했지만 사람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197화

    이때, 송석석이 서원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조금 전 밖에 있을 때부터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고 있었다.송석석이 나타나자 부인들은 우르르 몰려가 송석석에게 이제 어떻게 해야 하냐고 닥달했다. 감히 대놓고 따져 묻지는 못했지만 송석석에게 합리적인 설명을 내놓으라는 뜻으로 말하고 있었다.송석석은 겉으로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분통이 터졌다. 여학 마지막 날에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오늘 서원 대문이 열려 있었던 이유는 학생들과 데리러 온 가문 사람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나올 때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인데 범인들이 이 틈을 노리고 학교 안으로 들이닥칠 줄은 몰랐다.이 일은 분명 여학을 겨냥해서 벌인 일이었다.“이 일은 제가 확실하게 처리하겠습니다.”송석석의 말에 부모들이 너도나도 한 마디씩 보탰다.“왕비님,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실 겁니까?”“그러게요.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였고 쳐다보는 눈이 이렇게 많은데 이 많은 입들을 다 단속할 수 있습니까? 소문이 이상하게 퍼지면 없는 사실도 있는 일처럼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여학에 호위병을 좀 많이 세워둬야 하는 거 아닙니까?”한편, 안여옥은 송석석이 궁지로 몰리자 얼른 눈물을 닦은 뒤, 벌떡 일어나 큰소리로 말했다.“여러분, 걱정하시 마십시오. 한 명도 다친 학생이 없습니다. 저 범인은 그저 저를 잠깐 껴안았을 뿐이지 다른 학생을 해치지 못했습니다.”안여옥의 말에 현장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고 다들 안여옥이 이 일을 이렇게 대놓고 얘기할 줄은 몰랐다.범인이 안여옥을 껴안은 게 사실이라고 해도 이를 숨겨야 하는데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얘기한단 말인가?그러다가 소문이라도 나면 안여옥은 평생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살게 될 수도 있다.이때, 정신을 번쩍 차린 국태 부인이 다급하게 부인했다.“선생님은 범인에게 당하지 않았습니다. 함부로 그런 얘기하지 마세요. 범인은 선생님에게 손을 댈 기회가 없었습니다.”하지만 안여옥은 국태 부인의 말을 따르지 않았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196화

    서원에 비명소리가 점점 더 커졌고 홍현은 왕지아를 달랜 뒤 바로 서원으로 뛰어갔다.“함부로 돌아다니지 말고 잘 숨어있으렴.”한편, 서원 안에서 너무 놀란 국태 부인과 정 부인은 재빨리 딸들을 등 뒤로 숨겼고 안여옥과 무씨 아가씨는 손에 긴 몽둥이를 들고 덜덜 떨면서 들이닥친 남자들을 향해 휘둘렀다.두 선생님은 혹시라도 뒤에 있는 여학생들이 다칠까 봐 최선을 다해 막았지만 힘이 부족했다.이때, 한 남자가 주창우를 향해 덮쳤고 화들짝 놀란 주창우가 비명소리를 지르자 안여옥은 몽둥이로 남자를 내리쳤다. 하지만 남자는 겁을 먹긴 커녕, 되레 사악하게 웃으며 안여옥을 향해 달려갔다.홍현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안여옥은 남자에게 강제로 안겨 있었고, 그 남자는 심지어 입을 맞추려고 했다. 겁에 질린 안여옥은 미친 듯이 발버둥쳤지만 힘으로는 이길 수 없어, 결국 손톱으로 남자의 얼굴을 할퀴었다.미간을 확 찌푸린 홍현은 바로 달려가 한 손으로 남자의 등을 확 잡더니 그를 바닥에 내리꽂았고 발로 남자의 배를 힘껏 짓밟았다.극심한 고통에 남자는 바닥을 굴러다녔고 홍현은 무씨 아가씨 손에서 몽둥이를 낚아채더니 남자들을 향해 무섭게 공격했다.안여옥을 침범하려고 했던 남자는 홍현이 휘두른 몽둥이에 다리뼈가 부러졌고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바로 이때, 딸을 데리러 온 가문들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어떻게 된 거예요? 왜 학교 안에 남자들이 들이닥친 겁니까?”서원 안으로 몰려든 사람들은 바닥에 누워 비명을 지르는 남자를 쳐다보았고 여학생들은 너무 큰 충격에 다들 넋이 나간 상태였다.그러다가 부모님을 발견한 여학생들은 엉엉 울면서 각자 가족의 품으로 달려갔다.“어머니, 아버지, 너무 무서워요! 저 남자들이 갑자기 서원으로 뛰어들어와서 안 선생님을 강제로 안았어요.”사람들은 이내 안여옥에게 고개를 돌렸다. 머리가 헝클어진 안여옥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무씨 아가씨 품에서 온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경험이 많은 국태 부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195화

    송석석은 이 사실을 염 선생에게 알리자, 염 선생은 흠칫하다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사국 사람들이 어떻게 진성에 진입하게 된 거죠? 심지어 이곳에서 살고 있다니.”송석석이 대답했다.“그래서 나머지 남풍관도 확실하게 조사해봐야 할 것 같아. 그리고 남풍관 주인장도 만나봐야지. 주인이 사국 사람들을 거둬서 남풍관에서 장사를 하는 거니까 아무것도 모르지는 않을 거야.”사국 사람들이 언제 진성에 왔고 누가 데리고 왔으며 무슨 목적으로 온 건지 확실하게 알아내야 했다. 송석석은 나머지 남풍관을 직접 방문해서 조사할 생각이었고, 시만자와 왕이장도 함께 했다.그렇게 며칠 동안 송석석은 남풍관 다섯 군데를 돌아다녔다. 그중 세 군데에 사국 사람들이 있었고 총 열다섯 명이었다.호흡 방식이나 걸음걸이로 보면 열다섯 명 전부 무술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확실히 사국 사람들 외모는 아니었으며 보통 몸매의 남강 사람들 같았다.보아하니 신경 써서 고른 듯했다.불빛이 어두운 환경에서는 사국 사람들을 알아보기 어려웠으며 더군다나 그들은 상국 말을 유창하게 쓰고 있었기에 아무도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다.그리고 세 가게의 주인은 동일인이었으며 그자가 바로 광릉후의 향봉천이다.상의 끝에 송석석 일행은 섣불리 움직이는 대신 사람들을 시켜 몰래 남풍관 가게들을 지켜보라고 했으며 그들의 진정한 목적을 알아내려 했다.그리고 염 선생은 광릉후를 다시 한번 제대로 조사하기 시작했다.광릉후의 향봉천은 남색을 즐기는 자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자를 싫어하지는 않았다. 평범한 사내들과 똑같이 혼인하여 아이도 낳고 첩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향회옥이 바로 향봉천의 막내딸이었다. 사람들은 새로운 사실에 조금 놀란 눈치였다. 평소에 광릉후 사람들의 행실이 조용하고 눈에 잘 띄지도 않았으며 향회옥이 가끔 제자예와 함께 여학에서 문제를 일으킨 것 외에는 그 어떤 추문도 없었다.하지만 그렇게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해 보이는 광릉후에서 남풍관을 세 군데나 운영하고 있는 것도 모자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194화

    송석석은 시만자를 의자에 앉히며 대답했다.“오사형이 아주 고맙게 생각하겠네. 하지만 난 맞추고 싶지 않아. 그래서 누굴 봤는데?”“빅토르! 그래, 맞아! 빅토르를 봤어! 그것도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의 빅토르를 봤지!”시만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고 송석석은 이마를 꾹꾹 누르며 다시 물었다.“여러 명의 빅토르를 본 거야 아니면 빅토르를 닮은 사람이 여러 명 있었던 거야? 너 대체 술을 얼마나 마셨길래 이렇게 취한 거야?”“빅토르… 아니야. 빅토르보다 젊었어.”시만자가 머리를 휘청거리며 대답했고 송석석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빅토르를 닮았다는 거지? 그럼 사국 사람들이네?”사국과 상국은 아직 길이 통하지 않았기에 사국 사람들이 상국에 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사국 사람들이 진성에 나타난 것도 모자라 진성에서 살고 있다니.이때, 시만자가 꼬인 혀로 힘겹게 대답했다.“맞… 맞아. 사국 사람들이야. 그런데 어떻게 진성에 사국 사람들이 살고 있는 거지? 남풍관에 숨어 있었는데 왜 남풍관에 갔던 손님들은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않았던 걸까? 내가 그 사람들을 봤다는 건 다른 손님들도 다 봤다는 뜻인데.”송석석은 조금 불안했다. 남풍관을 방문한 손님들은 절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남풍관에 갔었다고 얘기하지 않을텐데 말이다. 하지만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사국 사람들이 언제 진성에 몰래 들어왔냐는 것이다. 그들은 남풍관에 숨어 있었기에 아무도 그들을 발견하지 못했다.진성에 남풍관이 몇 개가 있지만 전부 비밀리에 운영되고 있었다. 선황제가 확실한 금지령을 내렸기에 엄격하게 조사했지만 숙청제가 황위에 오르고 나서 더 이상 이런 일에 신경을 크게 쓰지 않았다. 물론 엄하게 다루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권장하지도 않았다. 분위기는 선황제 때보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웠지만 남색은 여전히 이 나라에서 용납되지 않기에 아무도 대놓고 얘기하는 사람은 없었다.언급하는 사람이 없어서 아무도 주의 깊게 지켜보지 않았다.한편, 시만자는 털썩 눕더니 바로 잠이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193화

    송석석은 사여묵에게 항상 안전에 조심하고, 스쳐가는 여인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말라며 신신당부했다.사여묵은 질투를 하는 듯한 송석석의 모습에 기분이 좋아서 환하게 웃으며 대꾸했다.“내 절대 눈길도 안 줄 테니 걱정하지 마시오.”조금 뒤, 사여묵은 몽동이와 장대성을 데리고 길을 떠났고 혜 태비는 아들의 뒷모습을 몇 번 쳐다보고는 이내 돌아서서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염 선생과 양 마마도 돌아갔고 송석석과 시만자만 문 앞에 서서 사여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마음이 허전해?”시만자가 송석석의 어깨를 툭 치며 물었고 송석석은 울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조금.”송석석과 사여묵은 혼사를 치르고 나서 계속 각자 일로 바빴지만 거의 매일 밤 함께 보냈기에 하루도 못 보는 날이 없었다.그런데 최소 두 달은 떨어져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져 송석석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두 달이 참 길게 느껴지네.”“두 달이 길어? 2년도 아니고.”시만자가 송석석의 어깨를 팔로 감싸더니 말을 이어갔다.“내가 보기엔 넌 이 두 달 동안 자유를 만끽해야 돼. 서방이 곁에 없으니 하고 싶은 건 다 해봐야지. 나중에 널 데리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좋은 데도 같이 가야겠네! 내가 왕이장한테서 들었는데 진성에 꽤 괜찮은 주막들이 있대. 한 번쯤 가보고 싶었는데 전에는 북명왕이 있어서 널 부르기 조금 미안했지. 이제 됐네. 두 달 동안 자유이니까 마음껏 즐기자고.”“무슨 주막이길래 서방이 있을 땐 날 못 부른 것이냐? 왕경루 음식보다 맛있어?”의아한 듯 묻던 송석석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됐어. 나 지금 입맛이 없어서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그런 거 아니야! 남풍관이라고 남자들이 장사를 하는 곳이야. 그러니까 우리가 남장을 해서 들어가면…”시만자가 입꼬리를 씩 올리며 말하자 송석석이 걸음을 턱 멈추었다.“뭐야? 너 가봤어? 오사형이 널 데리고 간 거야? 오사형은 지금 어디 있어?”“그자가 날 데리고 가진 않았지. 그저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192화

    사여령이 대리사를 나올 땐 허리를 쫙 편 채 눈빛이 단호하고 당당한 모습이었다. 조금 전, 사여묵이 마지막에 그에게 했던 한 마디 덕분이었다.“네가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들었어. 조금만 더 노력하고 버티면 내가 승진을 시켜줄게.”그 순간, 사여령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지금까지 어머니를 제외하고 아무도 그의 능력을 인정해준 적이 없었으며 그를 진심으로 칭찬해준 사람도 없었다.어머니가 사여령을 칭찬하긴 하지만 그건 대부분 위로였다. 어렸을 때부터 문무가 모두 약했던 사여령에게 어머니는 항상 칭찬으로 자신감을 북돋아주었고 나중에 크면 잘하게 될 거라고 위로했다.하지만 그건 그저 위로일 뿐, 인정은 아니었다.지금, 사여령은 진정한 인정을 받았고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았으며 이 길을 계속 갈 수만 있다면 지금보다 더 노력할 자신이 있었다.사여령은 어렸을 때부터 부왕의 예쁨을 받지 못했고 통방이 낳은 자식이라며 늘 차별을 받았었다.그때 당시 부왕은 통방에게 회임하지 못하도록 약을 먹였는데 어찌된 일인지 결국 통방이 회임을 하게 되었고 부왕은 바로 통방에게 낙태약을 먹였지만 어머니의 노력으로 사여령의 친모는 결국 아이를 낳게 되었다.사여령의 어머니는 연왕이 체면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일부러 대놓고 갓난 사여령을 저택으로 데려왔고 연왕은 아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그때부터 사여령의 어머니는 연왕에게 미운 털이 박히게 된 것이다.이런저런 생각에 사여령의 발걸음도 몹시 가벼워졌다. 비록 아버지를 배신했다고 하지만, 심리적으로 부담이 되지도 않았고 미안한 마음도 들지 않았다.사여령이 미안한 건 어머니가 청목암으로 보내졌을 때 따라가지 않았던 점이었다.아버지라는 사람은 아들에게만 몹쓸 짓을 저질렀을 뿐만 아니라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에도 빨리 죽지 않는다고 욕설을 퍼부었다.한편, 북명황실 의사당 안의 불빛은 밤새 꺼지지 않았다.사여령한테서 들은 정보에 의하면 노주 한 곳만이 아니며 사여령의 정보도 부족한 부분이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191화

    사여령은 한참동안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주먹만 꼭 쥐고 있었고 손바닥에는 어느새 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사여령은 이제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대리사 감옥 관리자가 되고 나서 사여령은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속으로 수천 수백 번을 생각했지만 확실한 답을 얻지 못했다.나중에 진소경이 사여령의 고민을 눈치채고 사여령에게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눈앞에 닥친 일만 잘 해내면 된다고 방법을 제시했기에 사여령은 그 뒤로부터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았다.여태까지 답을 얻지 못했기에 갑작스러운 사여묵의 물음에 넋을 잃은 채 앉아있던 사여령은 위엄이 넘치는 사여묵 눈빛에 머릿속이 하얘졌다.덜컥 겁이 난 사여령은 본능적으로 대답했다.“노주에 병사가 정확하게 얼마나 많은지는 모릅니다.”“넌 그걸 어떻게 알았어?”사여묵이 물었고 사여령은 노주에 병사가 있다는 사실을 얘기한 뒤 오히려 마음이 많이 진정되었다.선택을 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사여령이 솔직하게 대답했다.“연주의 왕부에 서재가 두 층으로 되어 있습니다. 전 평소에 2층에서 책을 보는데 가끔 하루 종일 2층에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아래층에서 얘기하는 걸 들은 적이 몇 번 있습니다. 바로 아래층에서 얘기하고 있었지만 서재가 너무 큰 탓에 정확하게는 듣지 못했습니다. 노주에 대한 얘기가 몇 번 나왔고 노주 외에도 옹현, 간현, 부현 그리고 나현 등 지역도 언급된 적이 있습니다. 그 외에 다른 지역도 있는데 지역명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번에는 식량을 노주에 가져가야 한다는 말도 들었습니다.”사여묵은 미간을 찌푸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뭔가 이상한데? 연왕이 여러 지역에서 병사를 키우고 있다고? 그럼 세력이 대체 얼마나 큰 거지? 병사를 키운다는 게 점포를 여는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닌데 식량과 무기 공급은 문제가 없는 건가?’사여묵이 사전에 조사한 정보에 따르면 연왕에게는 그럴 만한 세력과 재력이 없었다.옹현과 간현은 그럴 가능성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190화

    북명왕 저택에는 호위병 외에 따로 비밀 호위무사를 양성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밖에서 정보를 캐내는 무술 실력이 강한 부하들이 몇 명 있긴 했지만 다들 매우 바빴기에 거의 한 달에 한번 저택으로 돌아와 얻은 정보를 보고하곤 했다.물론 정탐조도 있지만 이들은 적의 동향을 살피는 자들이기에 사적인 일로 움직일 수 없었다.비밀 호위무사를 두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 이유는 사여묵이 남강에 파견되기 전에 이미 큰 전공을 세웠고 현갑군도 거느리고 있었기에 선황제는 사여묵이 저택에 너무 많은 부병을 두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두 번째 이유는 사여묵이 남강 전쟁에 투입되고 나서 이런 부분에 신경 쓸 겨를도 없었기에, 전쟁을 승리하고 돌아왔을 땐 황제의 의심과 경계 때문에 더더욱 비밀 호위무사를 키울 수 없었다.지금 만약 황제가 대외적으로 사여묵을 노주로 정찰을 보낸다고 발표한다면 현갑군에서 병사들을 보낼 수 있지만 아무도 모르게 가는 것이기에 저택에 있는 사람들만 데리고 갈 수 있었다.“제가 같이 갈까요?”송석석의 물음에 사여묵은 피식 웃으며 송석석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괜찮소. 위험한 건 아니오. 그저 정보만 수집하는 일이라 몸을 쓸 일은 없소. 몸을 써야 한다면 우리 몇 명만 가지도 않았을 것이오. 그리고 이제 연말이라 경위부도 사건 사고가 많을 테니 이곳을 지키는 게 좋겠소.”사여묵이 말한 것처럼 연말에 경위부와 순방영은 평소보다 훨씬 일이 많았기에 송석석이 간다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하지만 몇 명만 보내기엔 도무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다음날, 이 사실을 전해 들은 심청화는 10일 뒤면 서원도 수업이 끝나니 며칠 앞당겨서 사여묵과 함께 떠날 수 있다고 했다.심청화가 함께 간다고 하니 송석석은 훨씬 마음이 놓였지만 그래도 이 일은 국태 부인과 상의를 해야 한다.심청화가 국태 부인에게 찾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다들 동의했으며 출발까지 아직 3일이나 남았으니 서원 시험만 보면 된다고 했다.심청화는 당연히 진짜 행방을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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