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제릉서는 영우를 데리러 곧바로 이수암으로 향했다.마침, 송석석도 있어 제릉서는 잠시 이야기를 나누자고 청하였다. "어머니께서 아기를 잘 돌봐줄 것입니다. 동생들에게도 아낌없는 사랑을 주시는 어머니라서 혹 하대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그 말에 송석석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저와 그대 어머니는 서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심중을 털어놓고 이야기하였으니 아기를 홀대하시진 않으리라 믿습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히 하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다. 어제 그대 어머니께서 아기의 이름을 물으시기에 내가 '강아'라 답하였고 영우라는 이름을 계속 쓸지에 대해서는 그대들이 알아서 정하시지요."제릉서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감사드립니다.""그대들이 아이를 데려가기로 하였는데 혹시 고청묘와 만나게 할 생각은 없으십니까?" 제릉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러지요. 사실 어머님께서도 만약 아버지께서 그녀를 데려오길 원하신다면 어머님께서도 동의하시겠다 하셨습니다."송석석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제 대감께서는 그리 순진한 분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분은 그대 어머니이지 않습니까? 어머니를 조금 더 소중히 여겨주시고, 그 마음을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제릉서가 급히 설명했다."오해입니다. 제 어머니는 소인배가 아닙니다. 오히려 모든 상황에 대비해 제씨 가문이 오해받지 않도록 미리 준비하신 것이지요.""오해한 적 없습니다. 그대 어머니께서는 큰 그림을 생각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상처받지 않는 사람으로 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힘든 사람이 아버지라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가장 힘들게 견디고 있는 분은 바로 그대의 어머니이십니다. 그러나 복잡한 마음을 안고도, 그대 가문의 미래를 생각하는 모습은 그대도 본받아야 할 품성입니다." 평소 제씨 가문의 사람들과의 대화를 자제했던 송석석은 어제 만났던 전숙이 너무 착하다고 여겼고, 어렵지 않게 그 이유를 알
하지만 고청묘는 고개를 저었다. "가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여기 머무르고 싶사옵니다.""따님은 제씨 가문에 있는데도 말입니까?" 송석석의 물음에 고청묘가 고개를 살짝 돌렸는데, 긴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알고 있습니다. 그 애는 평범한 아이들처럼 잘 자랄 것이니 걱정되지 않습니다."그녀는 꿈도 꿀 수 없었던 것들이지만 딸은 그 행복을 얻었기에 기뻤다.송석석은 다정하게 말했다."그대가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강요할 수 없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제씨 가무은 명분도 없어 그대를 억지로 데려가지는 못합니다.”맨발로 침대에서 내려온 고청묘는 송석석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울먹거렸다."감사하옵니다. 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 송 대감께선 모르실 것이옵니다. 머리 위에 드리워진 날카로운 칼날이 사라진 것이지요. 이제 더는 악몽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겠지요?"송석석이 그녀를 일으키며 말했다. "이 사건이 마무리되면 그대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셔도 되니, 조금만 참으시지요." "더 이상 저를 해치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니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침대로 다시 돌아간 고청묘는 가냘픈 미소를 지었지만, 눈물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저는 제상서가 싫습니다. 그가 다가올 때마다 두려웠습니다. 제가 그의 연민을 바란 것도 아니였는데, 그는 너무도 거칠었사옵니다." 고청묘가 옷을 풀어 헤치자, 몸에 남은 이빨 자국을 드러났다. 새로 생긴 것도 있었고 오래된 흔적도 남아 있었다. 가장 끔찍한 것은 부드럽고 새하얀 가슴에 빼곡히 새겨진 흉터들이었다.송석석은 마음 한구석이 쓰라렸다. 누가 그녀들이 피해자가 아니라고 하였던가? 그녀들이야말로 진정 궁지에 몰린 자들이었다. 그에 비해 어쩔 수 없었다고 늘어놓는 고부진은 너무나도 위선적이었다.송석석은 그녀의 옷을 다시 입혀주며 말했다. "이제는 아무도 그대를 괴롭히지 못할 것이니, 안심하고 지내시지요." "감사하옵니다. 정말로 감사드리옵니다. 대감께서 저희를 구하신 것입니다.
이튿날, 고부진은 참수를 앞두고 있었고, 참수관은 사여묵이다. 경위들은 선으로 형장을 보호하며 질서를 유지했다. 사여묵은 원래 송석석을 오지 못하게 하려고 했다. 고부진이 괘씸하긴 하지만 주범도 아니고 게다가 목을 베는 장면은 너무 잔인했기에 송석석에게 보여주기 싫었다. 하지만 송석석은 그보다 더 잔인한 상황까지 목격한 사람이었다. 고부진이 주범은 아니지만 공리심에 눈이 멀어 악인을 도왔을 뿐만 아니라 그의 나약함 때문에 많은 사람이 상처를 받았으니 그는 죽어 마땅한 죄인이었다. 그래서 송석석은 무조건 가봐야 한다고 했다. 아침 일찍부터 형장 밖은 사람들로 붐볐다. 정오에 형벌을 집행하기 때문에 경위는 아침 일찍 형장에 도착해 질서를 유지하지 못해서 형장 일대가 소란스러웠다. 심지어 가게의 상인들도 밖에서 장사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겁 많은 백성들은 구경하러 오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들도 구경하는 것을 금지했는데 금지하지 않는다고 해도 부모는 아이들을 이런 곳으로 데려오지 않을 것이었다. 그렇지만 세상 어디에나 구경꾼은 부족하지 않았다. 특히 고부진의 신분은 많은 사람의 주목을 이끌었다. 왜냐하면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참수를 당하는 건 흔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형장은 늘 가을쯤에 사람들로 붐볐다. 사형수들이 가을쯤에 사형을 집행하기 때문이었다. 사시가 되자 필명은 경위를 데리고 와서 질서를 유지했고 형장 주변에 줄을 당겨 경계를 그어 백성들을 모두 선 밖으로 물러나도록 했다. 고부진은 아직 대리사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형장에 가기 전에 대리사에서는 그에게 푸짐한 식사를 대접하고 배불리 먹인 후에 출발할 것이었다. 고무진은 처음엔 두렵지 않았지만 술과 음식이 나오자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먹지도 않고 말도 하지 않았다. 대리사의 허평안이 직접 그를 배웅하러 와서 말했다. “드십시오. 배불리 먹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고 하지 않습니까?”허평안의 말에 고부진은 어리둥절했다. 곧이어 그는 부들부들 떨며 젓가락을 들었다가 내려놓고
고부진은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내 뜻은 아니었습니다. 저에게 다시 한번 선택할 기회를 준다면 절대로 이러지 않을 것입니다. 고후부가 몰락하긴 했지만 기반이 있으니 무너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나는 거인 출신이라 진사에 응시할 수도 있으니 내가 갈 수 있는 길은 하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내가 왜 그렇게 어리석은 짓을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원래는 앞길이 창창했는데, 현량하고 숙덕 한 여자를 부인으로 맞아들이고 첩을 두 세명 들여 아들딸을 서너 명 낳으면 가문을 더욱 번영할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내가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던 게 죽음 길이었을 줄이야.” 그는 충격으로 들고 있던 젓가락을 떨구고 다시 몸을 부들부들 떨며 울었다. 허평안은 담담하게 젓가락을 주워 주며 말했다. “지금 후회해도 소용없습니다. 행동이야말로 가장 실질적인 것이지요. 아는 것을 모두 말하면 일말의 희망이 있을 것이고 말하지 않으면 당신은 죽을 것입니다.” 고부진은 얼굴을 가리고 울다가 손을 놓고 소매로 눈물 콧물을 닦아냈다. 고문을 받은 후 그의 동작은 굼뜨고 둔했고 등은 구부려졌다. “난 이미 죽음길에 들어섰습니다. 더 이상 기회는 없습니다.” 허평안은 오랫동안 공문에서 지내면서 각양각색의 악당들을 만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죽기 직전에 후회하고 모든 것을 자백하며 살 수 있는 기회를 얻으려고 했다. 하지만 고부진은 그런 악당 같지는 않았다. 그는 이성을 잃지 않고 참수형에 직면해서도 이해득실을 따졌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애초에 왜 사운의 이용을 피하지 못했을까? 결국엔 모두 이욕에 눈이 멀어서 그랬던 것이 분명하다. 처음엔 반항했을 수도 있지만 그다음에는 밀당을 하다가 결국 배후에게 조종을 당했을 것이다. 그는 범인이 사온이라고 생각했고 자신이 피해자처럼 행동하면 죄를 면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다. 허평안도 더 이상 그에게 말을 걸지 않고 조용히 기다렸다.나중엔 고부마도 울음을 그치고 고개를 들어 그에게 물었다.
형장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호송차에서 끌려 나와 형장 한가운데로 끌려가 무릎을 꿇렸다. 이때 덩치 큰 사형수가 칼을 들고 그의 곁에 서 있었는데 칼이 빛을 반사하는 것을 본 고부진은 놀라서 몸이 나른 해져 무릎도 제대로 꿇지 못하고 구조를 청하는 눈빛으로 구경하는 백성들을 바라보았다. 형장은 시끌벅적했지만 그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자신의 심장 소리만 들렸다. 그는 자신의 심장이 북을 두드리는 소리 같았고 당장이라도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는 뒤에 있는 참수관인 사여묵을 보지 못하고 그의 소리만 어렴풋이 들리는 것 같아 뒤를 돌아보려 했지만 그의 뒤엔 팻말이 세로로 묶여 있어 고개를 돌릴 수 없고 사형수가 질색을 하는 표정으로 코를 틀어막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제야 자신이 대소변을 실금 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두려움이 순식간에 독사처럼 그의 몸속 살갗을 뚫고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는 너무 두려웠다. 이때 군중 속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고, 그는 기쁜 나머지 쉰 목소리로 외쳤다. “청영아, 청영아…!” 휘왕은 고청영과 함께 줄 밖에 서 있었고, 고청영은 검은 포도알 같은 눈망울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시선은 마주쳤지만 고청영은 부친의 공포와 기쁨을 전혀 느끼지 못한 듯 아무런 감정도 없어 보였다. 이때 휘왕이 옆에 있는 구청영에게 말했다. “먹을 것 좀 갖다 주겠느냐?”그러자 고청영이 말했다.“이미 배불리 드셨을 것입니다.”휘왕이 말했다.“그래, 대리사에서는 참수를 하는 죄인에게 배불리 음식을 먹이긴 하지. 그런데 저 자에게 따로 할 말은 없느냐?”그러자 고청영이 잠시 생각하더니 물었다.“내가 올라가도 됩니까?”“그래, 마지막으로 작별인사 정도는 할 수 있을 거야.”그러자 고청영이 말했다.“한가지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가자, 내가 널 데리고 참수관을 만나러 가마. 참수관이 내 조카라 내 부탁이라면 들어줄 것이다. 그는 나에게서 노인네 냄새가 난다고 하지 않으니 말이다.”“나도 당신이 늙었다고만 했지,
송석석은 고청영이 정말 특별한 여자라고 생각했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억울함에 빠져버릴 수 있었지만 잘 살기 위해 노력해 왔기 때문이다. 고청영은 자신의 부친을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가 싫을 뿐이었다. 그녀는 송석석에게 물었다. “송 대인님, 참수를 한 후 시신을 수습해 줄 사람이 없으면 시신은 어디에 버려집니까? 아니면 그를 매달아 대중에게 보여주는 겁니까?” 그러자 송석석이 말했다. “시신을 거둬주는 가족이 없다면 대충 묻어버릴 생각입니다. 그가 역모사건의 주모나 돼야 성문에 걸어 백성들에게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녀는 담담히 말한 후 다시 묻지 않고 휘왕 곁으로 돌아갔다. “집에 아직 먹지 않은 대추 떡이 남았으니 얼른 돌아갑시다. 오래 두면 맛이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자 휘왕이 물었다. “정말 보지 않을 것이냐?” 고청영은 여전히 거절했다. “나는 피를 보는 게 두려우니 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자 휘왕은 그녀를 총애하는 말투로 말했다. “그럼 이만 가자. 내일 널 데리고 호수로 유람하러 가마.” 그녀는 망토를 두르고 말했다. “추운데 무슨 호수입니까? 집에서 난로를 두르고 차를 끓여 마시고 양고기를 구워 먹으면 얼마나 좋은데요.” “나는 널 데리고 기분전환을 하려고 한 건데, 이 계집애가 고마운 줄도 모르고 말이야!” 휘왕은 웃으며 사여묵에게 말했다. “어쩔 수 없군. 난 평생 여자에게 사로잡혀 살 운명인가 보구나. 늙어서도 다름이 없는 걸 보니.” 사여묵은 형장에서 가벼운 분위기를 만들지 말라고 하고 싶었지만 즐거워하는 숙부를 보자 그의 흥을 깨지 않고 싶어졌다. “나도 이번 생은 여자에게 잡혀 살 운명인 것 같습다.” 그러자 휘왕이 사여묵의 어깨를 토닥이더니 말했다. “그래, 넌 어서 가서 참수하거라. 나는 청영과 함께 돌아가겠다.” 사여묵은 마지못해 말했다. “내가 참수하는 게 아니라 저 자가 참수하는 것입니다.” “알겠다.” 휘왕은 웃으며 청영을
고청란은 수육 가게를 차리지 않고 이수암으로 들어가 매입을 맡았다. 이수암은 대부분 몸이 허약한 사람들 뿐이라 장기간 채식만 할 수 없었기에 새로 집을 한 칸 짓고 이수암과 분리해서 그곳에서 육수를 끓여 그곳의 여자들에게 몸을 보양할 수 있게 했다. 고기를 먹고 싶은 사람은 그곳으로 찾아가면 되었다. 이수암의 주지스님에겐 규칙이 있었는데 이수암이나 따로 지은 집에서 모두 직접 살생을 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고청란은 매일같이 산에서 내려가 고기를 사서 짊어지고 산으로 올라왔다. 하지만, 삼일 동안만 팔았을 뿐인데, 이곳의 여자들은 이제 더 이상 고기를 먹지 않았다. 아마도 암자가 그녀들에게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었으니 신앙심이 생겨 누구의 말도 필요 없이 스스로 고기 먹는 것을 포기했을 수도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수암에 산나물들이 많아서 보양식인 약재를 따서 국을 끓여줄 수 있었다. 그리고 비록 조잡한 물건이지만 관리들도 단삼과 인삼 같은 약재를 보내와서 여자들의 몸을 조리해 줄 수 있었다. 공주부의 사람들 중 처리할 사람은 다 처리한 상태였기에 이젠 방마마만 남았다. 태후는 특별히 지시를 내려 그녀에게 매일 사온에게 음식을 가져다주라고만 할 뿐, 시중을 들게 하지는 않았다. 종인부의 문 오른쪽 아래에는 작은 문이 있었는데 거기로 반찬을 들여보낼 수 있었다. 방마마는 가끔씩 엎드리고 반찬을 들여다주며 장공주를 볼 수 있었고, 방마마에겐 그것도 큰 은혜였다.하지만 서지도 못하고 기어서 올 수밖에 없는 장공주를 보고 있자니 방마마의 마음은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그녀 마음속의 부귀 롭고 오만하며 옷이 조금 더러워지기만 해도 내다 버리던 공주가 지금은 더럽고 악취가 진동하는 곳에 엎드려 먹고 싸니 말이다. 공주의 얼굴은 더 이상 부드럽지 않아졌다. 얼굴엔 주름이 가득했고 흰 머리카락이 검은 머리카락 사이에 섞여 있었는데 검은 머리보다 더 많아 보였다. ‘공주도 이제 늙었구나…’ 공주부의 시위장이었던 도준은 남강으로 보내져 5년 동안
전북망은 부상이 완쾌되고 나서야 정식으로 부임하게 됐다. 그는 우선 그동안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뒤이어 숙청제는 그를 불러다가 한동안 훈계와 조언을 해주면서 그에 대한 충분한 신임을 표명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감격에 겨운 전북망은 눈시울을 붉히며 어서방을 나섰다. 한편 궁 중에는 영시위부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현재 영시위부의 지휘를 맡고 있는 사람이 바로 송석석이었다. 그리하여 전북망은 이 틈을 타 대부분의 시간을 영시위부에서 보내고 있는 송석석을 만나러 가기로 했다. 한때는 부부사이였지만, 이젠 전북망이 직접 한쪽 무릎을 꿇고 송석석을 맞이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렇게 경위 부사 필명, 순방영 오진, 금군 부 사령관 왕정 그리고 어전 시위 사령관 전북망은 한 자리에 모이게 됐다. 전북망은 내심 마음이 매우 복잡했다. 송석석이 자신을 괴롭힐 거라 예상한 것과 반대로, 뜻밖에도 그녀는 담담하게 한마디만 하였다. "그만 일어나게." 이내 전북망은 눈을 깔고는 천천히 일어섰다. "감사합니다, 송 대감님." 그러자 필명이 다가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전 대감의 부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조만간 술판이라도 열어서 축하 의식을 갖는 건 어떨까요?" 필명은 어찌 됐든 한때는 전북망의 상사였기에, 전북망은 시종 그에게 존경심을 품고 있었다. "필 대감 시간이 날 때 한번 안배해 보지." "저뿐만이 아닙니다. 저희 경위에도 또 다른 형제들이 있지 않습니까?" 필명은 웃으며 말했다. "이제 보니 그렇네." 전북망은 어색하게 웃더니 이내 송석석을 흘깃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다음에 저희 집에서 연회석을 차리지요. 여러분들을 초대하겠습니다." "좋소." 왕정도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전 대감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서라도 가야 되지 않겠소? 그나저나 송 대감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군." 줄곧 송석석에 대해 불쾌한 마음을 갖고 있던 왕정은 일부러 이 틈을 타 송석석을 더욱 난처하게 만들려고 했다.
혜의궁에서는 삼황자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삼공주는 그의 젖은 머리카락을 닦아주며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어제 막 머리를 감았는데, 굳이 그 고양이랑 놀겠다고 해서 온 머리와 얼굴이 털투성이가 되었잖아. 다음번에도 이러면 엉덩이를 때려줄 거야."도자기처럼 매끄러운 분홍빛 살결의 귀여운 아이가 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며 공주의 품에 기댔다."누이, 고양이는 재미있고 귀여워요. 작은 발로 내 몸을 밟고 지나갈 때면, 포근해서 기분이 좋아요. 안고 있으면 따뜻하기도 하고요."그러자 삼공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어마마마께서 그러셨잖아. 아바마마께서는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으신다고. 그런데 넌 자꾸 아바마마께 고양이 이야기를 해서…… 그러니 요즘 아바마마께서 널 찾지 않으시는 거야."삼황자는 누이가 머리를 말려주는 대로 꼿꼿이 앉아 있으면서도 입을 다물지 않았다."아바마마와 나는 다른 사람이잖요. 당연히 각자 좋아하는 것이 다를 수도 있는 거지요. 아바마마께서 싫어한다고 해서 나까지 싫어해야 해요? 내가 고양이를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내가 이 아이를 사랑하니, 아바마마께서 아무리 싫어하셔도 나한테 버리라고 하시면 안 되는 거죠."삼공주는 그의 코끝을 톡 하고 건드리며 말했다."말은 참 잘하네."삼황자는 웃으며 말했다."누이가 나를 설득 수 없는 건 누이의 말이 논리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이에요. 황숙께서 그러셨는데, 이치에 맞게 말을 한다면 그 누구도 이길 수 있다고 하셨거든요.""그래? 그런데 요즘 왜 황숙께 무예를 배우러 가지 않는 거야?"삼황자는 고개를 기울였다."무예라 해도 기본적인 것만 가르쳐 주시니까요. 그런 건 궁에서도 연습할 수 있어서 이미 다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말 타기는… 아직 말 위에 혼자 올라갈 수가 없으니까 좀 더 자라서 다리가 길어지면 그때 배울거에요.""다 할 수 있다고? 못 믿겠는데." 삼공주가 말했다."정말 할 수 있다니까요!"삼황자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황숙께서 며칠 동안 같은 걸 반복해
복소의는 춘당의 입가에 스친 조소를 알아채지 못했다.춘당은 복소의가 첩여로 승급될 때부터 곁에서 그녀를 모셔왔다. 그녀는 영리하고 침착한 성품을 지녀 복소의에게 여러 차례 계책을 내주었고, 당시 황후가 그녀를 끌어들이려 했을 때도 춘당은 이렇게 말했었다.‘황후마마께서 여러 번 금족 처분을 당하신 것으로 보아, 폐하께서 이미 탐탁지 않게 여기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게다가 후궁을 다스릴 권한도 없으시니, 황후마마께는 겉으로만 응하는 척하고 실질적으로는 덕비 마마와 수빈 마마께 가까이 다가가시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그리고 춘당의 말은 역시나 옳았다. 덕비는 늘 그녀를 잘 대해주었고, 먹고 입는 것 모두 넉넉히 챙겨주었다. 그 덕분에 더 이상 감히 그녀를 깔보는 자도 없어졌다.예전의 덕비는 분명 좋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녀가 아이를 가졌다는 것을 이유로 폐하께 가까이 가려 하는 것 같아 못마땅했다."마마께서는 덕비 마마께서 오시는 것이 싫으십니까?"춘당이 그녀의 머리와 허리를 살짝 받쳐주며 말했다. 침상에 오래도록 누워만 있어 등이 아픈 그녀를 배려한 것이었다.그녀는 춘당을 신뢰했기에 자연스레 속내를 털어놓았다."내 태가 안정되었을 때는 덕비 마마께서 그리 열심히 오시지도 않으셨는데, 이제 와서 이렇게 자주 찾으시는 것이 진심이겠느냐? 분명 폐하를 의식해서 오는 것일 것이다. 게다가 폐하께서 날 아끼시기에 자주 찾아와 주시는 것인데, 매번 덕비 마마와 이황자가 끼어드는 바람에 폐하와 두세 마디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지 않느냐."춘당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하며 말했다."마마께서는 그저 몸을 잘 돌보시면 됩니다. 그 외의 일은 신경 쓰지 마세요."복소의는 한숨을 쉬었다."이렇게 밤낮으로 누워만 있어야 하다니…… 폐하께서 오실 때만 겨우 앉을 수 있구나. 이 아이는 나를 참 힘들게 한다. 부디 황자가 되어주기를 바랄 뿐이지. 내가 이 고생을 한 보람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춘당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반드시 마마께서 바라시는
복소의의 태는 안정적이었기에, 태의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겨울이 지나면서 태가 점점 불안정해져, 두 번의 출혈을 경험했다. 금태의는 그녀의 태를 지키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그 덕분에 그녀는 겨우 안정을 찾을 수 있었지만 계속해서 침상에 누워 있어야 했기에 바닥에 내려갈 수가 없었다.갑자기 이런 상황이 발생하자, 태의는 신중히 식단과 궁에서 사용하는 모든 것들을 점검했다. 하지만 별다른 문제가 발견되지는 않았다. 아마 황제가 장기간 약을 복용한 탓에 태아가 불안정해진 것일 가능성이 있었다. 숙청제는 그녀의 태에 매우 긴장하고 있었다. 숙청제는 그녀가 침상에서 요양을 시작한 후 거의 이틀에 한 번씩 그녀를 보러 갔으며, 가끔은 같이 식사를 하기도 했다.상황이 이렇게 되자 그는 수빈의 궁에 자주 가지 않았고, 삼황자를 어서방에 불러 들이지도 않았다.덕비는 후궁을 관리하는 일을 맡고 있었기에 시간이 날 때마다 이황자와 함께 복소의를 보러 갔고, 이로 인해 황제와 함께 몇 번의 식사를 함께했다.복소의는 첩여 시절 후궁에서 자신이 의지할 사람을 찾으려 했고, 비밀리에 수빈과 덕비에게 아첨하며 양쪽을 오갔다. 하지만 수빈은 늘 거만하게 행동했으며, 그녀가 한때 황제의 총애를 얻었기도 했기에, 복소의는 수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반면 덕비는 후궁에서 유명한 온화하고 자애로운 인물로,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며 위치가 낮은 여인들까지 보살펴 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복소의는 점차 덕비에게 더 접근했지만 지금은 조금 고심했다. 황제가 그녀에게 올 때, 덕비가 여러 번 이황자를 데리고 왔고, 그 목적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수빈의 성격에 이런 일을 할 리가 없었기에, 그녀는 오히려 수빈의 도도함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결국 불만을 마음속으로에만 토로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덕비는 후궁을 관리하는 권한이 있기에 그녀를 적대할 수도 없었다. 이러한 날들이 지속되자, 그녀는 덕비가 오지 않
후궁에서는 황제의 병에 대해 추측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지금 복소의가 임신을 했다고는 하지만, 단신의가 궁에 들어와 치료하고 있다는 사실은 황제의 몸이 단순히 요양을 하면 괜찮아질 상태가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황제의 편애가 계속될수록 몇몇 사람들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특히 황후는 더욱 불안해했다. 그녀는 황제의 병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지금 단신의가 궁에 들어와 치료하고 있지만 치료의 효과는 확실하지 않다고 생각해, 그녀는 황제가 심각한 상태라고 여겼다. 황후는 복소의의 임신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아이의 성별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을 뿐더러, 설령 황자가 태어난다고 해도 그에게 까지 순서가 올 리 없었다. 그러나 삼황자에게 집중된 황제의 편애는 그녀에게 위기의식을 가져다 주었던 것이다.황제는 그녀에게 선택권을 주었을 때 그녀는 황후 자리를 선택하며 생명을 보장받았다. 하지만 며칠의 시간을 보내자, 황후는 황제가 대황자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요즘 대황자가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며, 태부와 황숙도 그를 칭찬하고 있었다. 황제도 대황자의 그러한 모습에 매우 만족해 한다고 전해 들었다.이황자와 삼황자는 그녀에게 모두 위협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황후는 황제가 이황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여겼다.최근 몇 달 동안 그녀는 거의 이황자를 본 적이 없었고, 또한 이황자가 이제는 예전처럼 열정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후는 강력한 뒷배경이 없는 덕비가 여전히 유력하지 않다고 여겼지만 수빈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수빈의 아버지는 형부상서이며, 사여묵과 같은 공문이었다. 공무의 일이든 사적인 일이든 접촉이 분명 많았을 것이고, 수빈의 어머니인 이씨 부인은 송석석에게 잘 보이기 위해 공방에 많은 돈을 기부했다. 어쩌면 이미 그녀를 손에 넣었을지도 모른다.“마마, 오늘 대황자께서 또 왕야의 칭찬을 받으셨습니다.”란주 상궁이 들어오며 웃으며 말했다.황후는 별다른 감정을 보이
숙청제는 신하들을 어서방에 불러들였고, 그들은 밤늦게까지 논의했다. 논의는 결국 단신의가 들어가서 시간이 많이 늦었음을 알리며 중단을 요청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숙청제는 팔을 뻗고 웃으면서 말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다니. 그럼 궁문도 이제 잠가야겠으니 다들 돌아가시게.”그는 여전히 기운이 넘쳤고, 특히 지금은 얼굴에 혈색이 돌아 병든 사람 같지 않아 보였다.송석석은 논의 중이던 사여묵을 기다렸다. 그들은 함께 궁을 떠나 황실로 돌아갔다. 매우 피곤했던 그녀는 사여묵의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마차가 황실 문 앞에 도착하자 사여묵은 그녀를 안아 들었다. 송석석은 그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내려오기 귀찮았기에 그대로 안겨 있었다. 그의 넓고 따뜻한 품은 정말 편안했다.그와 떨어져 있던 세 달 동안 그녀는 성릉관에서만 편히 잠을 청할 수 있었으며, 그 외의 곳에서는 늘 경계하며 지냈다. 이제 집에 돌아오니 자연스럽게 긴장이 풀렸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불안함을 느꼈다. 무언가 뜨겁고 큰 손이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단 백부 말씀을 잊으셨나요?”귓가에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 백부가 이제 괜찮다고 말씀하셨소.”송석석은 감고있던 눈을 떠, 뜨겁고 열정적인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마주하며 물었다.“정말인가요?”“틀림 없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입술이 덮였다.불꽃이 강렬하게 타올왔다. 침실의 온도마저 높아진 듯 했다.두 사람은 뜨겁게 사랑했다. 오랜 시간 떨어져 있었기에 마치 새롭게 결혼한 듯한 기분이었다!한 달 후, 상국은 시박사를 설립할 예정이었다. 이는 상국과 해외 북당과의 화물 교류를 담당할 기관이었다.원래의 시역업도 시박사의 운영을 전폭적으로 지원할 것이며, 상국에서 다른 국가에 판매할 수 있는 화물 목록을 정리하여 서경으로 사신을 파견해 화물 교환 협정을 체결할 것이다.이 한 달 동안 단신의는 약을
10월 15일, 사절단은 드디어 진성에 도착했다.현갑군은 그 자리에서 먼저 해산했고, 이덕회와 홍려사경은 궁에 들어가 황제를 뵈러 갔다. 그동안 몸이 약해져 혼자서는 거동할 수 없었던 진왕은 이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자신도 궁에 가겠다고 말했다.송석석은 이미 성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여묵에게 인도되어 황실로 돌아갔다.그동안 사여묵은 매일같이 성문 앞에서 그녀를 기다렸고, 때로는 낮잠시간에 직접 가서 기다리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이 되어서야, 드디어 기다리던 그녀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이덕회와 그들이 궁에서 황제에게 보고할 때, 송석석은 이미 태비께 인사를 드린 후였다.혜 태비는 송석석이 피곤해 보이자, 가서 씻고 옷을 갈아입으라고 말했다.송석석은 사여묵과 함께 나와서 매화원으로 돌아갔다.목욕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나왔을 때, 송석석의 입술이 어쩐지 조금 부풀어 있었다. 서주는 깜짝 놀라 왕야를 바라보았다. 왕비가 목욕하는데 왕야께서 꼭 직접 모셔야 한다며 들어가더니, 보아하니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것이 틀림없었다.서방에서는 염선생과 심청화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송석석은 그들에게 서경에서의 일들을 말해주었다. 협상 결과는 그들이 이미 알고 있었기에, 송석석은 길에서 일어난 암살 시도, 원신제의 곤경, 그리고 북당의 안풍친왕이 말한 3년과 5년의 기한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다.사여묵은 두려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었는데, 서경이 그렇게 혼란스러웠음에도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음에 안도하며 다행이라 여겼다.안풍친왕이 성릉관을 자유롭게 오고 간 것과 그가 말한 3년, 5년 기한에 대해서, 심청화는 사부에게 편지를 보내면 알 수 있을 거라 말했다. 사부는 그들을 잘 알기 때문에 그 말의 숨은 의미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었다.이야기를 마친 후, 사여묵은 송석석이 휴식을 취하게 하기 위해, 송석석에게 더 이상 질문하지 못하게 그들을 막았다. 그는 오후에 휴가를 내어 일을 쉬려고 했지만, 황제가 사람을 보내 궁에 오라고 일렀다.송석석
성릉관에서 다섯 날을 지낸 진왕은 어느 정도 몸이 회복이 되었다.그가 회복되었다는 것은 이제 다시 진성으로 향해야 함을 의미했다.이별은 너무나 아쉬웠지만, 송석석은 눈물을 삼키며 그저 작별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소 대장군 앞에서 여러 번 절을 했는데, 그로 인해 소 대장군도 눈물이 거의 터져 나올 뻔했다.이덕회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바로 소 대장군이었다. 소 대장군은 상국을 위해 수십 년 동안 성릉관을 지킨 노장이었기 때문이다.송석석은 눈물을 삼켰지만, 그는 얼굴을 가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이 평생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미 노령에 접어든 듯, 이전에 만났을 때보다 훨씬 더 노쇠해 보였다. 설령 황제가 그를 진성으로 돌아가게 허락한다 할지라도, 긴 여정과 고된 일정을 고려했을 때 소씨 가문 사람들이 그를 돌아가지 못하게 할 수도 있었다.소 대장군은 이덕회와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그러자 이덕회는 더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외숙모 남씨는 회 왕비에 관한 질문을 하지 않았었다가 이별을 앞두고서야 송석석을 옆으로 데려와 그녀의 상황을 물었다.송석석은 회 왕비가 지금 감옥에 있다는 사실과 란이가 그녀를 위해 손을 써주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힘든 상황은 아닐 거라며, 혹시 태자가 세워지면 대사면이 내려져 그녀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남씨는 살짝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외조부께서 말씀하시지는 않으셨지만, 엄청 신경 쓰고 계실 거다. 세상에 정말로 모진 부모는 드무니까. 네 외조부는 모진 분이 아니시다. 그때 그녀가 란이에게 그렇게 까지 모질게 대했던 게 안타깝다. 란이가 여전히 그녀를 돌보아야 하다니."송석석이 말했다. "걱정 마세요. 란이는 지금 편안하고 자유롭게 지내고 있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더 잘 지낼 거예요.""그렇지. 분명히 잘 지낼 거야." 남씨는 아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송석석을 바라보다가, 이내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귀환길에 오를 무렵, 이미 9월 초가 되어, 날씨는 더 이상 뜨겁지 않았으며, 오히려 약간 선선했다.수란키는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나와 그들을 녹분성까지 배웅했다.이번 귀향길에서는 암살 시도가 없었기에 매우 순조로웠다.이들은 끝없이 이어지는 산을 넘어가 상국의 경계에 들어섰다.소 대장군에게 사전에 도착 예정일을 알리지 않았기에 아무도 마중을 나오지 않을 줄 알았지만, 상국의 경계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전북망이 이끄는 소씨 가문 군대와 마주했다.무사히 돌아온 그들을 보자, 전북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없이 말을 몰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는 말에서 내려 진왕과 이덕회를 비롯한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며 말했다."왕야와 이상서, 그리고 여러 대감님들, 소 대장군께서 저를 시켜 이곳에서 여러분을 맞이하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성릉관까지 호위하겠습니다."그러자 이덕회가 호기심에 차서 물었다. "대장군께서는 우리가 오늘 돌아올 것을 어떻게 아신 것입니까?"전북망이 대답했다. "대장군께서는 모르셨습니다. 매일 여기서 기다리라고 명하셔서 계속 기다린 것입니다.""그렇군요." 이덕회는 소 대장군의 매우 신중함에 감탄했다. 진왕은 오는 동안 몸이 좋지 않았다. 그는 마차의 발을 올리고 한 번 쓱 둘러보았다. 자신이 상국에 돌아온 것을 확인하자, 그는 그제서야 기운을 조금 차리며 말했다. "빨리 출발하게.""예!" 전북망은 재빨리 대답하고 말에 올라 선두를 이끌었다.시만자는 그가 한 손으로 능숙하게 말을 다루는 모습을 보며, 그가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말의 고삐를 잡고 송석석에게 말했다. "이 사람 나쁘지 않네. 어머니께서 그 당시 사람을 잘못 본 것이 아니었나봐. 마음을 예측하기 어렵긴 하지만..."송석석은 시만자가 전북망을 칭찬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사실 시만자는 여전히 전북망에 대한 모친의 기대를 저버린 것을 항상 마음에 두고 있었기에, 이 말을 함으로써 모두 안심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송석석은 아무 말도 하
안풍친왕이 말했다."이번 여정은 서경과 상국을 위한 것이지만, 북당을 위한 것이기도 하니 감사할 필요는 없습니다. 국가 간의 교류는 언제나 이익을 우선으로 하니까요. 개인적인 인연이 있을 때 진심으로 대하는 것이죠."송석석은 깨달음을 얻은 동시에 궁금한 점이 있어 물었다."혹시 제 사부 임양운을 아십니까?"안풍친왕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알지요. 그는 북당에 와서 제 채성루에서 잠시 머문 적이 있습니다. 제 호위 지휘사인 흑영위가 당신의 사부와 매우 친한 사이입니다. 그들은 자주 함께 술을 마셨죠.""그렇군요." 송석석은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 중 어떤 사람이 흑영위 선배인지는 모르겠지만, 만날 수 없다면 정말 아쉬운 일이었다.안풍친왕은 이내 그녀의 마음을 눈치 챘는지 웃으며 말했다.“우리 북당은 3년 혹은 5년 후에 상국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그때 흑영위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송석석이 막 감사의 말을 하려는데, 시만자가 말했다."왜 3년 혹은 5년 후인가요? 좀 더 일찍 갈 수 없나요? 왕야와 왕비께서 가시는 걸 기대하고 있습니다."안풍친왕은 미소를 지으며 깊은 뜻이 담긴 말을 했다."지금은 아직 그때가 아닙니다."그들이 말하지 않으니 더 이상 물어보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옆에서 조용히 앉아 있던 안풍왕비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으며, 그저 눈앞의 간식들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아무것도 특별할 것 없는 설탕절임과 육포였지만, 그녀는 그것을 매우 맛있게 먹었다.송석석은 탁자 아래에서 그들이 손을 서로 맞잡고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의 사랑이 누구보다 깊다는 것을 느꼈다.두 나라 간의 교류에 대해 더 얘기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들은 잠시 가볍게 잡담만 나눈 뒤 그들을 보내주었다. 떠나기 전에 안풍친왕비가 먼저 입을 열었다.“송대감, 시 소저, 4년 후에 상국에서 뵙겠습니다."송석석은 급히 손을 모으며 말했다."네. 왕야와 왕비께서는 반드시 오셔야 합니다."그들이 떠난 후, 별관 문이 닫혔다.송석석과 시만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