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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3화

Author: 유애
장공주 다음은 고부진 차례였다.

칙명이 전달되자 그의 죄목이 발표되었다. 고부진은 한마디로 감음, 약탈, 살해 등으로 안 해본 악행이 없는 나쁜 놈이다.

이미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한 고부진은 첩들을 만나고 싶다고 간청했다.

"그들과 나는 한 때 부부였고 아이도 낳았으니 나를 너무 미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도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 힘겹게 살아온 것도 그들을 지키기 위해서였고 사온에게 살해당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느니라. 허나 결국 그들에게는 몹쓸 짓이니… 그저 무릎이라도 꿇고 사죄할 수 있도록 네가 전하께 말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는 끝까지 책임을 회피했고 반성할 마음은 눈곱만치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는 고후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고후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보호하려는 것 같았다.

비록 고후부는 후작의 지위를 잃었으나, 황제께서 그들을 조사하지 않으셨기에 아직은 기반이 남아 있어 어렵지 않게 살아갈 수 있었다.

사여묵은 한 때 고모부였던 그를 조용히 바라보다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위선적인 가면은 이제 벗으시지요. 당신이 사랑한다 말하던 림봉아조차도 당신을 만나려 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이미 오래전에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사죄하고 싶다면 죽은 후에 한 명 한 명 꼼꼼히 사죄하세요.”

고부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죽은 후에도 꼭 사죄할 것이다. 모두 내 잘못이라는 것을 안다. 내가 그들을 지키지 못하였다… 왕야, 내가 그대의 고모부였던 것을 생각해서라도 청란이를 만나게 해다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친족을 만나고 싶구나.”

그러자 사여묵이 냉소했다.

"친족을 만나고 싶다고?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니 내가 곧바로 고후부로 사람을 보내 자손들을 불러오겠다. 아니면 가의 군주라도 괜찮겠느냐?"

고부진의 애원 가득한 얼굴은 즉시 굳어졌다. 그는 손을 천천히 내리며 말했다.

"아니다, 됐다. 어차피 죽은 목숨이니 만난들 무엇하리? 부디 나 대신 그들에게 사죄의 뜻을 전해주길 바란다. 다음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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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석석이 무릎을 꿇고 있던 순간이 비록 아주 잠깐이었지만, 마치 한 세기가 지나간 듯했다. 그리고 마침내 숙청제의 미묘한 한숨과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 녀석아, 어쩌다 이렇게 버럭 화를 내는 거냐?"숙청제의 말에 송석석의 마음이 조금 놓였다.처음에는 분노와 억울함이 가득해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그렇게 말을 쏟아낸 것이었고, 그 뒤의 말들은 약간의 도박과도 같았다.그녀의 마음속에도 두려움이 가득했다. 생명이 거의 다한 황제가 잔혹해지면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그가 그 질문을 했을 때, 그녀는 자신이 어떻게 증명해 보이려 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다. 오직 이렇게 버럭 화를 내는 것만이 효과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행동한 것이었다."일어나라." 숙청제의 목소리는 이미 훨씬 부드러워졌고, 앙상하고 누런 얼굴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너는 여전히 어릴 적 그대로 입에 발린 말을 절대 못 참는구나. 그냥 한마디 물어봤을 뿐인데 하늘을 뒤엎을 듯이 짐을 꾸짖어 대는 거 하고는. 정말 네게는 당해낼 수가 없구나."송석석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한층 깊어졌다. "너 말이다, 죽어가는 사람과 언쟁하여 어디에 쓰려고 그러느냐? 하늘에 올라가 네 둘째 오라버니에게 네가 짐을 괴롭혔다고 말할까 봐 걱정되지는 않느냐? 어렸을 때 너 또한 짐에게 형님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잊지 말거라. 그리고 지금도 짐은 네 형님이다."송석석은 고개를 돌렸다.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이제 와서 형님이라 하다니……"왕비님, 일어나십시오." 오 대반이 곁에서 가볍게 몸을 일으키는 시늉을 하자, 송석석이 일어나고는 몸을 돌려 눈물을 닦았다.반면, 숙청제는 여전히 고통을 참지 못해, 손을 들어 그녀에게 물러나라고 손짓한 뒤, 우원정을 불러들였다.잠시 후 들려오는 고통의 신음소리에 송석석은 한동안 멈춰 서 있다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그녀는 황제에 대한 감정이 복잡했다. 때로는 군주이자 형님 같았고, 때로는 그렇게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470화

    송석석은 부친을 끌어들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황제가 무엇을 말하든 부친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기에 부친의 충군애국을 계속 강조하며 답해야 할 질문을 강요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하지만 그녀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것은 황제의 고려 사항이 아니었다.그녀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말씀하십시오. 듣고 있습니다."뼛속까지 스며드는 듯한 고통으로 인해 숙청제는 예전처럼 우회적으로 묻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너는 사여묵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일 테지. 만약 짐이 죽으면 그가 섭정왕이 되어 어린 황제를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오를 것이라고 생각하느냐?"송석석의 마음은 세차게 가라앉았고, 분노가 눈에 가득 차올랐다. 남강에서 막 죽을 고비를 넘기고 돌아온 그가 이렇게 노골적인 의심을 받아서는 안 되었다. 그녀는 사여묵을 대신해 억울함을 느끼며 차갑고 빠른 말투로 말했다. "폐하, 저는 그와 부부가 된지 겨우 삼 년밖에 되지 않았으니, 이 세상에서 그를 가장 잘 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그의 형님이신 폐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폐하께서는 그가 그런 일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화낼 필요 없다. 짐은 상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것이다. 너는 신하로서 네 부친과 마찬가지로…...""폐하!" 송석석은 바로 그의 말을 끊었다. 불경을 저지르는 것이든 아니든 그녀는 상관하지 않았다. "제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은 저 자신을 대변하는 것이지, 제 부친과는 관계없습니다. 부친은 이미 남강 전장에서 전사하셨고, 그의 공로는 후세 사람들이 평가할 것입니다."숙청제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송석석, 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느냐? 너와 네 부친이 한 일이 서로 다르다고 말하려는 것이냐?"오 대반이 깜짝 놀라 급히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폐하, 진정하십시오. 화를 내시면 안 됩니다." 송석석이 벌떡 일어나 단호히 말했다. "그렇다면 폐하께서는 지금 무슨 말을 하고 계신지 아십니까? 이 질문은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469화

    몇일 전, 숙청제는 오 대반을 약왕당에 보내 단신의의 행방을 묻게 했다. 그러자 약왕당에 있던 이들은 단신의가 이미 성을 떠나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고 전했다.오 대반이 돌아와 위 사실을 보고하였고, 숙청제는 단번에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아바마마께서 당시 민간 명의를 처형했던 일이 있었기 때문에, 단신의가 궁으로 들어와 치료하기를 꺼리는 것이 분명했다.그는 단신의를 궁으로 불러오기 위해 사람을 보낼까 생각했다. 천하에 왕의 땅이 아닌 곳은 없는 법이기에 그가 어디 있든지 간에 반드시 그를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그가 원하지 않는다면 노력할 필요도 없었다. 데려온다 해도 소용이 없었다.숙청제는 단신의를 부를 수 있는 단 한 사람을 떠올렸다. 바로 송석석이었다.그러나 그의 병세는 계속 비밀에 부쳐져 있었고, 그는 조정의 문무백관들이 이를 너무 일찍 알아차리지 않기를 원했다. 특히, 사여묵에게는 더욱 알리고 싶지 않았다.사여묵은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뒤 막 돌아온 덕분에 민심이 하늘을 치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병세를 미리 알고 준비하여 계획을 세운다면, 성공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사람은 결국 육신을 지닌 존재일 뿐, 병의 고통에 시달리며 그는 더 이상 예전처럼 이성적일 수 없게 되었다.그는 그저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고통을 완화하고 싶을 뿐이었다.단신의는 그런 그의 마지막 희망이었다.사여묵은 송석석과 함께 궁에 들어갔는데, 오랜만에 황제를 다시 보게 된 두 사람은 깜짝 놀랐다.그는 몹시 말라 뺨이 움푹 들어갈 정도였으며, 얼굴은 창백하고 누렇게 질려 있었다. 삼월의 추운 날씨임에도 그의 이마는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옆에는 방금 갈아입은 옷이 놓여 있었는데, 그것도 젖어 있었다.궁 안은 태의들로 가득 차 있었고, 그들 또한 매우 지쳐 보였다. 아마도 근래 줄곧 황제 곁을 지킨 듯했다.숙청제는 침상에 기대어 앉아 허리 뒤에 부드러운 방석을 받치고 있었다. 목이 머리를 잘 지탱하지 못해 흔들렸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468화

    다음 날, 공로 축하연은 취소되었다. 궁에서는 황제가 갑자기 풍한에 걸려 기침이 심하다고 전해왔다.비록 축하연은 열리지 않았지만 공적에 대한 상훈은 곧바로 내려졌다.방천허는 남강군을 이끈 공을 인정받아 정이품 정국장군으로 진위하였다.제린과 다른 무장들은 정삼품과 종삼품 무관으로 진위하여 여전히 남강에 주둔하게 되었다. 동시에 남강에 장군부를 세우는 비용 또한 지급된 덕분에 가족을 모두 데리고 갈 수 있었다.전사한 장병들에게는 일률적으로 위로금이 지급되었고, 부상당한 장병들에게는 십 량의 은하가 지급되었다.모든 이들의 공로가 명확하게 정해진 가운데, 유독 사여묵의 공로만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따라서 그에게는 우선 천 금과 오십 필의 비단과 옷감이 상으로 주어졌으며, 여전히 대리시경에 임명되었다.상 지급에 관한 명령에서는 북명왕 사여묵의 노고와 공을 확실히 인정하며, 상국을 위해 큰 공을 세운 것을 칭찬했다.칭찬은 매우 화려했지만 다소 공허한 느낌이었고, 사실 천 금보다 실질적이지도 않았다.사여묵도 그것을 딱히 바라지 않았다. 그는 그저 친왕으로서 조정과 백성의 은혜를 받으며 자라왔기에 그에 따른 책임을 다했을 뿐이었다.황제의 이 풍한은 두 번의 아침 조회를 연속으로 결석하게 만들었고, 사여묵이 궁에 들어가 알현을 요청했지만 소집되지 못했다. 조정의 문무백관들은 모두 황제의 병세에 대한 소식을 파악하려 했지만, 어떤 병에 걸렸는지 알아낼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이 중병이라고 거의 확신했다.황제가 풍한에 걸린 이후로 태의들은 모두 궁에 상주하여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3월 13일, 약왕당의 청작이 사여묵의 재진을 위해 방문해서 단신의의 말을 전했다.“사부께서 말씀하시길, 만약 폐하께서 사부를 청해오라 명하신다면, 그저 승낙하면 된다고 하셨습니다.”사여묵의 상처는 이미 완전히 치유되었기에 더 이상 단신의가 직접 올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이 두 번 모두 청작이 왔던 것이다.옆에서 청작의 말을 들은 송석석이 놀라며 물었다. “폐하께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467화

    그는 송석석의 손을 잡고 진지하게 말했다. “나는 결코 측비나 첩을 맞이할 생각이 없소. 낭자에게 두 마음을 품고 있지 않다는 말이오. 항상 나를 믿어야 하오.”송석석은 애틋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물론 믿지요. 그렇지 않았다면 제가 당시 어찌 그렇게 단호히 거절했겠습니까?”그는 손을 내밀어 그녀를 품에 안았다. 두 사람은 서로를 의지하고 믿었으며, 이는 그들에게 안정감을 가져다주었다. 그들은 감정의 파란이 일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폐하의 병은 단신의의 진찰을 받았소?” 사여묵이 물었다.송석석은 그의 품에서 살짝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받지 않았습니다. 폐하께서 직접 그를 언급하지 않으셨기에 감히 누군가 그를 추천하지도 못했습니다. 태후께서도 언급하지 않으셨습니다.”사여묵은 살짝 한숨을 쉬며 말했다. “폐하는 마치 십 년은 더 늙은 것 같았소. 처음 폐하를 봤을 때, 마음속으로 정말 깜짝 놀랐소.”송석석은 가끔 황제를 봐왔기 때문에 그가 갑자기 십 년을 더 먹은 것처럼 보인다고 느끼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는 확실히 초췌했고, 그 눈동자마저 흐릿했다.송석석이 말했다. “육부상서와 허어사가 단신의를 추천하지 않은 것은 폐하께서 궁을 나서서 황실에 왔을 때 비밀리에 단신의를 찾아온 것이라고 변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육부는 더 이상 추천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목 승상마저 추천하지 않은 건 의아합니다.”목 승상은 모든 일의 전말을 알고 있었다.사여묵은 갑자기 예전 일을 떠올라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예전에 폐하께서 병중이셨을 때, 목 승상이 민간의 유명한 의사를 불러 입궁시켰소. 그러나 폐하는 병세가 다시 악화되자 분노하시어 그 명의를 처형시켰소. 아마 목 승상은 그래서 더 이상 추천하지 않은 것일 거요.”송석석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그렇소. 듣기로는 그 명의가 단 백부의 친구라고 하던데.”사여묵은 놀라 말을 잠시 멈추었다. “모후께서도 단 백부와 그 명의의 관계를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466화

    상처를 치료받고 난 후, 송석석은 단신의와 그의 제자를 직접 배웅했다.단신의는 낮은 목소리로 계속해서 주의를 주었다.“내력을 다시 사용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싸움도 되도록 피하게 하고. 상처 입은 곳이 단전인데다가 내력을 과도하게 사용하여 상처가 아물지 않은 채로 무리하게 급히 돌아왔으니…… 진맥할 때도 기를 모아 몸을 보호하려 하더군. 정말 큰일 날 뻔하였다. 지금 그는 깨지기 쉬운 계란처럼 아주 연약한 상태이기에 누군가 그의 목숨을 노리면 쉽게 해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매우 조심해야 한다, 알겠냐?”“그리고 그의 이러한 상황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을 거다. 지금 이 상황에서 사람의 마음은 가장 믿을 수 없으니 말이다.”송석석은 단 백부의 세심한 배려에 감사를 표하며, 그가 말한 대로 신중하게 행동할 것을 다짐했다.같은 시각, 황실에서는 염선생이 사람들을 모두 물러가게 하고, 왕야가 충분히 휴식할 수 있도록 했다. 긴 여정에 피로가 많이 쌓여 있었고, 게다가 추운 날씨 속에서 오랫동안 전투를 치르며 눈으로 배를 채워 위장이 상했으니 이제는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회복해야 했다.염선생도 더 이상 방해하지 않기로 했다. 오늘 밤은 그들 부부만의 시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송석석은 사여묵을 부축하여 함께 혜 태비의 방으로 갔다. 그들은 정중하게 머리를 숙이며 문안 인사를 올렸다.단신의를 청했다는 소식을 들은 혜 태비는 고 씨 유모를 보내 상황을 물어보았고, 사여묵이 위장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러나 그 외에는 별다른 상황은 알지 못했다.혜 태비는 수척해진 아들을 보며 마음이 아파져,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얘야, 이제 남강은 가고 싶은 자들이 가게 하고, 싸우고 싶은 자들이 싸우게 해라. 너는 이제 그곳에 가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안정된 삶을 살아야지. 아니면 아이라도 낳는 것이 어떻겠냐? 그래야 더 이상 싸우며 죽고 살고 하지 않아도 될 테니 말이다.”혜 태비는 그가 싸우고 싶어서가 아니라 나라를 위해 충성하는 것임을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465화

    그들은 단신의를 따라 내실에 들어섰다. 발이 내려지자 단신의는 그들을 향해 진지하고 엄숙하게 말했다. “밤일은 금지입니다. 함부로 하지 마십시오. 알겠습니까?”사여묵은 귀가 붉어진 채 말문을 열었다. “그…… 그렇게 심각하지 않습니다.”단신의는 여전히 엄숙한 표정으로 단호히 말했다. “반드시 금지해야 합니다.”송석석의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상황이 그녀가 예상한 것보다 혹은 훨씬 더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단신의는 계속 말을 덧붙였다. “밖에는 사람들이 많으니 말도 많아 믿을 수 없는 이들도 있을지 몰라서 더 이상 말씀드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상처가 완전히 낫지 않았는데 병에도 걸렸으니, 한기가 오장육부에 들어가 큰 손상을 입힌 모양입니다. 몸에 내력이 없었다면 상한을 이기지 못했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내력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결국 내력을 쓰게 된 셈입니다. 지금 원기와 내력이 많이 소진되어 있으니, 신경 써서 회복하지 않으면 무공은 다 잃게 될 것이며 수명도 단축될 수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린 것도 다 부드럽게 표현한 것입니다.”“그렇게 심각한가요?” 송석석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당황한 표정으로 단신의를 바라보았다. “몸을 회복하면 괜찮아질까요…?”“천천히 잘 돌보거라. 며칠 뒤에 다시 진맥하러 오겠다.” 단신의는 특히나 엄숙하게 당부했다. “이 일을 너무 많은 사람에게 알리지 마십시오. 지금은 내력을 거의 쓰지 못하는 상태이기에, 일부 사람들이 이 기회를 노릴지도 모릅니다.”사여묵은 자신의 상태를 잘 알고 있어 숨기려고 했으나, 단신의가 다 말해버려 숨길 수 없어졌기에 지금은 그저 송석석을 위로할 수 밖에 없었다. “별일 아니오. 단 백부의 말을 잘 들으면 곧 좋아질 거요.”송석석은 안타까운 마음에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조금 괜찮아지자 조심히 그에게 물었다. “상처가 어디에요?”“하복부 단전에 있다.” 단신의가 대신 대답했다. “단전은 본래 내력을 쓸 수 없는 곳이다. 그러나 그때는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464화

    그들이 막 황실에 도착하자, 곧이어 폭죽 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두가 몰려나와 그를 둘러싸고 맞이했다. 국공부의 진복과 황 마마, 심지어는 서우도 왔다.사여묵은 두 손으로 서우를 번쩍 들어 어깨 위에 올려 태우고 위풍당당하게 본채로 들어갔다.서우는 너무나 기뻐하며 두 손으로 그의 이마를 잡았다. 서우의 웃음은 귀 뒤까지 번졌고, 눈에는 고모부에 대한 존경과 애정이 가득했다.본채에 들어가자 사여묵은 서우를 내려놓고 먼저 그의 학습 상황을 물었다. 궁에서 대황자의 학습을 도우며 태후와 태부의 칭찬을 받고 있다는 말을 들은 사여묵은 연속으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그의 근면과 노력을 칭찬했다.서우는 고모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약간 부끄러워하면서도 기쁨이 가득한 모습이었다.송석석의 눈빛은 환하게 빛나고 있었지만, 눈가에는 여전히 눈물이 맺혀 있었다.혜 태비는 원래 아들이 와서 절을 하며 안부를 전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직접 나와 그를 맞이했다. 이렇게나 수척해진 아들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리지 않을 수 없었다.차려진 음식은 매우 풍성했다. 그러나 혜 태비는 그들과 함께 먹지 않고 그들이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도록 했다.사여묵은 배가 고팠지만 가벼운 음식만 먹었고, 그와 멀리 떨어져 있는 두부만 몇 번 떠먹었다.송석석이 그에게 준 고기 요리는 조금만 먹고 더 이상 먹지 않았다. 그리고는 두세 번 위를 움켜쥐는 동작을 보였다.이를 눈치챈 송석석은 눈물이 금방 눈가로 차올랐고, 곧바로 나가 사람을 청해 단신의를 부르도록 했다.모두가 이를 알아채고 안타까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사여묵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송석석의 손을 잡으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별일 아니오. 그러니 단 백부 또한 부를 필요 없소. 위장은 천천히 돌보면 곧 나아질 것이오."염선생이 말했다. "그래도 진찰은 한 번 받아보십시오. 그래야 모두 안심할 것입니다."그러자 시만자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아타목에 있을 때 위장이 상하신 겁니까? 먹을 것도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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