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성 들판의 군영에서는 북명왕이 양손으로 책상을 짚고, 큰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눈을 반짝였다."명령을 내려라. 새벽에 대대적으로 공격한다. 이리성을 점령하기만 하면 식량은 충분할 것이다. 고기도 충분하고, 솜옷과 이불, 각종 군수품도 있다. 부유한 서경인들이 남강으로 수레에 가득 실어 왔다."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말에 모두의 눈이 반짝였다. 북명군은 오랫동안 고기 맛을 보지 못했다. 그들은 제대로 생고기를 맛보고 싶었다.지도를 편 북명왕은 이리성의 작은 원을 가리키며 송석석을 앞으로 불렀다. 그리고 길고 검은 손가락으로 그 작은 원을 짚으며 말했다. "송 천호, 성이 무너진 후 너는 3,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락녕(樂寧)으로 직행하라. 군수품과 식량은 그곳에 저장되어 있다. 사국과 서경은 지금 부상자가 많아서 성이 무너지면 부상자를 먼저 이동시키고 군수품은 나중에 옮길 것이다. 시몬에도 있으니, 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절실하게 필요하다."이제야 모두가 북명왕이 왜 전투에서 적을 죽이기보다 부상자를 많이 만들려고 했는지 이해했다.전장에서 그는 결코 성모의 마음을 가진 적이 없었다.그는 16세에 왕으로 봉해(封)졌고, 호는 북명이었으며, 그의 칼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으로 어찌 자비로울 수 있겠는가?그의 말을 들은 송석석은 온몸에 피가 들끓었다. 식량, 고기, 갑옷, 솜옷, 이불, 너무나도 필요했다."결코 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 송석석은 크게 말했다."3,000명으로 부족하면 5,000명, 7,000명이라도 기꺼이 내줄 것이다. 필요한 인원을 말하거라." 북명왕이 말했다.송석석은 지형도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락녕은 성의 서쪽에 있으며, 그곳에는 좁은 골목이 없어 한 번에 밀고 나가 군수품을 보호할 수 있었다."필요 없습니다. 3,000명으로 족합니다." 송석석은 자신 있게 말했다.북명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말했다. "송 천호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나와 함께 적을 섬멸하고 이리에서 그들을
북명왕은 번개처럼 신속하게 명령을 내려 병력을 점검하고, 전투 북을 치고 공격 나팔을 불게 했다.오늘 막 성을 공격했기 때문에 이리성 내의 서경 사국 연합군은 새벽에 또다시 성을 공격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궁노기가 작동하고, 궁수들이 자리를 잡았다. 성벽 위에 모닥불이 밝혀져 있는 반면, 공격 부대는 보이지 않았다. 적은 밝은 곳에, 북명군은 어두운 곳에, 그리고 그들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송석석 일행 다섯 명은 말을 타고 달려 성문에 도착하자마자 날아올라 성루로 향했다. 송석석은 도화창을 휘둘러 궁노기를 조종하는 병사를 찌르고, 주먹 한 방으로 궁노기를 부숴버렸다.궁수들은 그녀를 조준했다.그러나 북명왕이 곧이어 날아올랐다. 횃불은 북명왕의 원수 금갑옷을 비췄고, 누군가가 외쳤다. "북명왕이다! 죽여라, 죽여라!"궁수들은 모두 북명왕을 조준했고, 화살비를 퍼부었다. 북명왕은 금색 단검을 돌리며 화살비를 막아냈다.이윽고 병사들이 몰려와 북명왕을 공격했다.그녀는 만두와 함께 신속히 궁노기를 파괴한 후, 함께 성문을 열기 위해 뛰어내렸다.두 명이 문을 열고, 세 명이 엄호했다.칼과 창, 검과 창의 공격 속에서 성문이 열렸다.이 번개 같은 속도에 연합군은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수란키는 아직도 잠에 빠져 있었다. 누군가가 그를 깨우며 북명군이 다시 성을 공격해 왔다고 했지만, 그는 비웃으며 손을 휘둘렀다. "또 왔다고? 완전히 장난이군. 화살을 쏴서 겁을 주면 될 것이다.""아니요, 원수님, 그들이 성안으로 들어왔습니다!""북명군이 성안으로 들어왔습니다!""성문이 열렸습니다!"비명 소리에 깜짝 놀란 수란키는 벌떡 일어나 곧바로 갑옷을 입고 뛰쳐나갔다.빅토르와 눈이 마주친 그는 빅토르의 눈에 담긴 경멸을 보았다. 수란키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네 병사들이 성문을 지키고 있었는데 적이 성을 공격하는 것도 몰랐다니, 정말 어처구니없군."빅토르는 이미 그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다.지난 2~3년 동안 북명왕과 싸
땀과 피가 섞여 머리 위에서부터 흘러내렸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 땀은 금세 얼음으로 변했고, 아직 열기가 식지 않았는데도 이미 뼛속까지 스며드는 추위가 되었다."석아…" 만두는 거칠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의 속눈썹에는 서리가 맺혀 있었다. "우리, 정말로 도우러 가지 않아도 돼? 여기서 지키기만 한다고?""군령은 산과 같아. 우리가 지키라고 명령받았으면 지키기만 하면 돼." 송석석은 성벽에 기대어 말했다. 그녀는 금갑옷을 입고 있었지만, 팔에 칼을 두 번 맞았다. 피가 흐르지는 않았고 아프지도 않았다. 그저 끈적하고 찬 기운이 전신을 불편하게 만들었다.그녀는 동료들을 한 번 쓱 보았다. 모두 상처를 입었고 대나무 갑옷은 산산조각이 났다. 이번 전투는 너무 처참했다."다들 괜찮아?" 손을 젓는 시만자는 말할 기운도 없었다.옆에 쌓인 시체들을 바라보니, 적군과 아군이 섞여 있었다. 다섯 명 모두 너무 슬펐다.그때 적군이 다시 공격해 오자, 송석석은 벌떡 일어나 외쳤다. "또 왔다! 죽여라!"다시 한번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해와 달이 빛을 잃을 정도로 살육이 벌어졌고, 눈앞에는 오직 피비린내만이 가득했다.마침내, 적군 대부분이 섬멸되었고 더 이상의 지원군은 오지 않았다.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그들은 숨을 쉬기도 힘들 정도로 지쳐 있었다.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지만, 드디어 누군가 북을 치며 외쳤다. "적군이 철수했다! 우리가 승리했다!"송석석과 동료들은 식량 창고에서 환호성을 들었다. 북명왕이 대승을 거두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긴장된 신경이 비로소 서서히 풀렸다."북명왕은 정말 명불허전이야, 신의 용맹을 갖췄어." 추위에 몸을 떨며 말하는 송석석은 입술마저 떨리고 있었다.."사국이 패했다니, 정말 잘됐어. 이제 고기를 먹을 수 있겠어." 만두는 둥근 얼굴에 굳은 웃음을 띠며 손을 비볐다.송석석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가자!"그들은 식량 창고를 떠나 대부대에 합류했다.북명왕은 피로 물든 갑옷을 입
북명왕이 말했다. "돌아가서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어라. 너와 함께 가야 할 곳이 있다."송석석이 고개를 들고 물었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북명왕이 말했다. "가면 알게 될 것이다. 모두 해산하라. 나도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어야겠다."송석석과 여러 장군은 물러갔다.이렇게 추운 날 목욕을 하려면 뜨거운 물이 많이 필요했다. 다행히 이리성에는 장작이 충분했다. 탑성 들판의 군영에서는 따뜻한 물을 마시는 것조차 어려웠고, 목욕은 사치였다.송석석은 이제 무관 직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북명왕이 한 명의 노비를 보내 그녀의 시중을 들게 했다.이 노비는 대략 마흔 살쯤 되었고, 온몸에서 냄새가 났다. 이름은 양미었다. 원래 회성에서 작은 장사를 했는데, 작은 분쟁으로 인해 꽃병으로 상대의 머리를 내리쳤고 다행히 죽지는 않았지만, 상대는 멍청이가 되고 말았다.그녀는 군영에 노예로 유배되어 12년의 형을 선고받았고, 이제 11년이 지나면 해방될 예정이었다.양미는 송석석에게 뜨거운 물을 끓였고 목욕통까지 구해왔다. 그녀가 숨겨두었던 비누도 꺼내 송석석의 머리를 씻어주었다. 피가 엉겨 붙은 머리는 누군가가 씻어주지 않으면 깨끗이 씻을 수 없었다.양미는 오랜 시간 끝에 그녀의 머리에 묻은 피를 깨끗이 씻을 수 있었다. 머릿결이 아무리 좋아도 비누로 씻으면 결이 거칠어지기 마련이었다.얼굴도 깨끗이 씻어내자, 정교한 이목구비가 드러났다. 피부는 이전처럼 매끄럽지 않았다. 얼굴을 너무 닦아서 붉어졌고, 딱지 진 피를 닦아내느라 거의 피부가 벗겨질 뻔했다.송석석은 원래 입고 온 옷으로 갈아입고, 검은 망토를 둘렀다.흰옷에 검은 망토를 입고 반쯤 젖은 머리로 높은 포니테일을 묶었다. 강호 사람들은 원래 머리를 틀어 올리기보다 이렇게 묶는 것을 즐겼다. 싸울 때도 편리했다.목욕을 마친 후, 송석석은 도화창의 피를 깨끗이 닦고, 붉은 깃털을 하나하나 빗었다.그리고 도화창의 무늬를 어루만지며 슬픔에 잠겼다.북명왕이 그녀를 어디로 데려갈지 짐작할 수
그곳은 작은 언덕이었다. 나뭇잎은 이미 떨어져 있었고, 언덕에는 식물이 별로 없었다. 작은 길들이 사방으로 뻗어 있었고, 그 뒤에는 더 높은 산으로 이어졌다.바람이 세게 불어, 마치 혼들이 울부짖는 것 같았다.언덕 위에 선 사여묵은 두 손을 뒤로 한 채 왼쪽의 작은 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길옆에는 글이 새겨지지 않은 비석이 하나 서 있었다.사여묵은 그녀에게 말했다. "저 이름없는 비는 이리성의 백성들이 네 아버지를 위해 세운 것이다. 그는 혼자서 저 길을 막고 수많은 화살을 맞고도 여전히 큰 칼을 짚고서 쓰러지지 않았다."송석석은 눈물이 앞을 가렸다. 북명왕이 그녀를 아버지가 희생한 장소로 데려올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고통은 여전히 너무나도 컸다."당시 그는 여기서 병력을 이끌고 사국으로 가는 식량과 군수품을 차단했다. 그는 전력을 다해 싸우려고 했지만, 연이은 성 공격으로 병사들이 지쳐 있었고, 당시 황제가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조정에서 위엄있지도 못했기 때문에 지원군이 늦게 도착했다. 그는 이미 오랜 시간 동안 고군분투하고 있었단다.""내가 이리성에 첩자를 두고 있었고 모두 첩자가 알아낸 것이다. 당시 이리성의 백성들이 이 광경을 보고 깊이 감동하여 몰래 여기에 비를 세웠다. 사국인들이 보면 파괴할까 봐 그렇게 한 것이지. 명절 때는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와서 제사를 지내기도 하고."그는 말 안장에 걸려 있던 술병을 꺼내 송석석에게 건네며 말했다. "가서 네 아버지께 한 잔 올려라. 너는 이미 매우 뛰어난 무장이 되었다고 말씀드려라."눈물을 닦고 술병을 받아 든 송석석은 섬광을 끌고 언덕 아래로 걸어가 무석 앞에 도착했다.무릎을 꿇고 술을 땅에 따르는 그녀는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그녀는 그 상황을 상상할 수 있었다. 전장에 나가본 사람만이 그런 고군분투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었다.후퇴할 길도, 계속 싸울 수 있는 능력도 없었지만, 적의 보급을 끊으면서 조정의 지원군을 기다리는 길
첫 군사 보고서를 받은 숙청제는 흥분한 나머지 온몸의 피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송석석, 송회안의 여식이자 진국공부의 적녀. 그녀가 이렇게 뛰어나다니, 이방보다 훨씬 뛰어났다.이리성 함락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탁자를 치며 크게 웃었다. "좋다, 좋아. 장군의 집안에는 나약한 여식이 없구나."그는 즉시 승상과 병부 상서를 불러들여, 승전보를 보여주었다. 목승상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이리성이 회복되었군요. 송석석의 공이 크옵니다. 그녀가 식량 창고를 점령하고 지켰기에 보급을 줄일 수 있었사옵니다. 이로 인해 상국은 얼마나 많은 식량과 은전을 절약했는지 모르옵니다. 형님, 저세상에서 보이십니까? 그대의 여식이 정말 대단합니다. 송씨 가문의 명예를 잇고 있습니다."병부 상서 이덕회도 흥분한 나머지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저희 상국은 앞서 송회안이 있었고, 뒤에는 북명왕이 있으며, 이제는 송석석이 있사옵니다. 저희 조정의 젊은 무장(武將) 중 두 명은 명장으로 불릴 만하옵니다. 신구 교체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사옵니다."숙청제는 눈에 띄는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남쪽 변경에 이제 시몬만 남았다는 것이다. 시몬을 함락시키기만 하면 사국은 반격할 힘이 없을 것이다. 사국이 물러나면 서경이 남쪽 변경 전장에 머무를 이유가 없다. 서경이 성릉관에서 우리와 다시 한번 싸우지 않는 한 말이다."목승상은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말했다. "남쪽 변경이 곧 돌아오겠군요. 노신이 살아서 남쪽 변경의 회복을 볼 수 있다니, 죽어도 여한이 없사옵니다."이덕회는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전하, 이는 모두 전하께서 인재를 잘 활용하신 덕분이옵니다. 전하께서 송석석을 남쪽 변경으로 보내 북명왕을 도와 이리성을 함락시키고, 많은 식량과 군수품을 확보하도록 하셨사옵니다. 저는 서경 사람들이 남쪽 변경 전장에 온 것은 저희에게 군수품과 식량을 보내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될 정도이옵니다."사실 송석석은 황제가 보낸 것이 아니었지만, 여기서는
먼저 5품 장군을 수여한 뒤 4품 무관직을 수여할 것을 약속했으니, 이는 숙청제가 송석석에게 얼마나 큰 기대를 걸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었다.승상은 이에 대해 의견이 없었고, 이 이례적인 승진은 실로 송석석의 능력이 아닐 수 없었다. 목 승상이 말했다."원군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이방 장군이 약속한 기한은 지났습니다."숙청제는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이내 누그러뜨렸다."눈이 오는 날은 확실히 오는 길이 험하군 그래."이덕회가 말했다."폐하, 송석석이 5품 무덕 장군으로 승진한 반면, 전 장군과 이방 장군은 현재 5품 무략장군으로 품계가 송 장군보다 낮습니다."전북망과 이방이 큰 공헌을 하여 서경과의 평화 조약을 체결하고, 전쟁을 멈추고 국경선을 세웠으니 이 공로는 송석석이 북명왕을 도와 성을 점령하는 데 공로를 한 것보다 크다는 걸 암시했다.따라서, 이덕회가 이 말을 덧붙인 것이다. 그러자 숙청제가 말했다. "무엇이 문제인가? 두 사람의 공적은 이미 내가 이루어주지 않았는가?"이덕회는 머리를 긁적였고, 이 일을 하마터면 잊을 뻔했다. 전북망이 전공으로 장가를 들려 했을 때, 그는 이자가 그다지 쓸모없다고 느꼈지만 황제는 굳이 젊은 장군들을 지원하겠다고 고집했으니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확실히 지금 무장은 춘궁기이니 황제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틀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송씨 가문에는 식객 노릇을 하는 자는 한 명도 없었다. 숙청제는 아직 몇 가지 사항을 명확하게 조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이방에 대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고, 황제가 보낸 밀서에서 성릉관 대첩을 언급한 것과 서경의 달라진 태도로 보아 그 또한 성릉관 전투에 문제가 있다고 느꼈다.잠입 수사가 이뤄졌지만 아직까지 성과는 나오지 않고 있었고, 현재는 남강의 전투가 더 중요했다."아직 전방 전투는 치열하다, 그러니 이리성을 함락하는 일은 조회 때 언급할 수 있지만 송석석의 공로는 당분간 언급하지 않겠다. 대첩이 끝난 후 돌아가 공적을 논할 테고, 짐은 절대 그
두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 알현했다."말장(末將, 장군을 스스로 낮추는 말)전북망이 원수님을 뵈옵니다!""말장 이방이 원수님을 뵈옵니다!"사여묵은 고개를 들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드디어 왔구나."전북망이 대답했다."오는 길에 폭설이 내려 길이 막혀 늦었습니다, 벌을 달게 받겠습니다.""하늘이 도와주지 않았군, 이는 장군의 잘못이 아니네."사여묵은 송석석을 힐끗 쳐다보았고, 그녀는 단지 한 번 쳐다볼 뿐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을 보고 둘 사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방천허와 임 장군, 송씨 가문의 장군 두 명이 전북망이 온 것을 보자 그를 훑어보았고, 과연 용모가 준수하고 남자다운 기개가 있어 만족스러워했다.결국 송씨 부인이 직접 고른 사위이니 어찌 나쁠 수 있겠는가?방천허는 앞으로 나아가 전북망의 어깨를 두드리곤 웃으며 말했다."전 장군님, 오늘 드디어 뵙게 되었군요. 장군님께서는 훌륭한 부인을 얻으셔서 매우 좋으시겠습니다."임 장군도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거들었다."저도 축하드립니다, 두 부부가 힘을 합쳐 공을 세우니 반드시 장군님 댁의 가문을 다시 빛낼 수 있을 겁이다.""전 장군님, 장군님의 부인은 이토록 싸움에 능하고 뛰어나게 용맹스러우니, 저를 비롯한 남정네들이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전북망은 잠시 넋을 잃었다, 자신이 이방에게 장가간 일을 이곳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다는 말인가?그들은 송회안의 옛 부하인데, 어째서 이방을 아내로 맞은 것을 축하하고 있는 거지?그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감히 함부로 말을 하지 못하고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옆에 있던 이방은 조금 자랑스러워했다, 그들의 혼사가 무장의 인정을 받은 것 같았고 당연히 장군은 여장군과 혼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겼다. 송석석과 같은 소위 대갓집 규수들은 남자들이 가져다주는 영광을 누릴 줄만 알고, 자리에 있는 장군들은 모두 피를 흘리며 싸우는 최전방 무장들이니 당연히 이 도리를 알 것이다.그러자 그녀는 미소를 지은
이튿날 아침, 송석석은 경위부로 돌아갔는데, 회왕비가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이번에 회왕이 진성으로 잡혀왔을 때, 그의 아들은 아직 잡히지 않았기에 목종욱은 여전히 병사들을 이끌고 회왕의 아들을 수색하고 있었다.회왕비는 자신의 아들도 왕표처럼 요참형에 처형당할까 봐 걱정되어 급하게 송석석을 찾아온 것이다.사실 전에 회왕이 진성으로 압송되었을 때에도 회왕비가 란이를 찾아가 송석석에게 도움을 청해보라고 시켰지만 란이는 단호하게 거절했었다. 심지어 송석석 앞에서 단 한번도 언급한 적이 없었기에, 송석석도 석소 사저를 통해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이었다.회왕비가 재빨리 송석석에게 다가가 조급한 표정으로 말했다.“석석아! 이모가 너에게 부탁할 일이 있어. 일단 조용한 데 가서 얘기 좀 할까?”“지금 처리할 일이 많아서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송석석이 돌아서서 떠나려고 하자 회왕비는 얼른 두 팔을 활짝 벌려 다시 그녀의 앞을 막았다.“몇 마디만 하면 돼. 네가 네 사촌 오라버니를 좀 살려주면 안 돼? 네 사촌 오라버니는 아무 잘못이 없어. 걔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어. 전부 걔 아버지 때문에 벌어진 일이야. 제발 네가 좀 구해줘!”송석석은 눈시울이 붉어진 회왕비를 보며 예전에 외할아버지가 진성으로 돌아와 관아에 갇혀 있었을 때 회왕비가 단 한번도 외할아버지를 보러 가지 않았던 일이 떠올랐다.송석석은 이기적이고 냉정하며 나약한 회왕비와 단 한 마디도 섞고 싶지 않았으며 회왕비를 슬쩍 피해 경위부 안으로 들어갔고 경위대에게 회왕비를 쫓아내라고 지시했다.이때 등 뒤에서 회왕비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석석아, 너 어찌 이리 인정머리가 없을 수 있느냐? 네가 어렸을 때 이모가 너에게 얼마나 잘해줬는데 벌써 다 잊은 거야?”송석석이 뒤도 안 돌아보자 회왕비는 더욱더 큰소리로 외쳤다.“송석석, 네 어머니는 나를 제일 사랑하고 아꼈다! 네가 날 이렇게 모른 척하면 분명 네 어머니 상심이 클 것이다!”자신의 어머니가 언급되자, 걸음을 멈춘 송석석은 싸늘하게 굳은
한편, 송석석은 서재에서 편지 한 장을 쓴 뒤, 편지를 염구진에게 주면서 사람을 시켜 남강에 있는 사여묵에게 전달하라고 했다. 송석석은 현재 남강의 상황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빅토르는 병사들만 끌어 모을 뿐 공격도 하지 않고 물러서지도 않은 채 대치를 하고 있었다. 빅토르가 시간을 끌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남강 전쟁에 참여하겠다고 황제에게 먼저 얘기한 빅토르는 전쟁을 이기지 못하면 군령에 의해 처벌을 받겠다는 서약서까지 썼지만 사청엄이 반역에 성공하지 못했기에 빅토르에게 성을 나눠줄 수 없었고 빅토르도 공을 세울 수 없었다.이대로 섣불리 자신의 나라로 돌아갔다가 자신이 쓴 서약서 때문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빅토르는 초원과 연합하여 자신의 퇴로를 확보하려고 했지만 초원은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초원은 애초부터 전쟁을 싫어했을 뿐만 아니라 중간에 끼어 마음을 졸이면서 어렵게 생존하고 있었기에 반드시 중립을 유지해야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만약 둘 중 한 나라를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면 초원은 반드시 상국을 선택할 것이다.전에 사제가 송석석에게 보낸 서신에 의하면 남강 병사들은 빅토르를 확실하게 공격하여 다시는 전쟁을 일으킬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만들 거라고 했다.송석석이 생각에 잠겨 있었던 그때, 시만자가 문을 두드렸다.“석석아!”“들어와.”송석석의 말에 시만자가 최숙심과 함께 방으로 들어왔다.“최씨께서 너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싶다고 하셔서 모시고 왔어.”최숙심은 한걸음 앞으로 다가가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왕비님, 그동안 신경 써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제가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까요?”송석석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농담을 던졌다.“전 여색을 즐기지 않으니 몸으로만 갚지 않으시면 됩니다.”송석석은 분위기가 무거워지는 게 싫어서 농담을 하자, 흠칫하던 최숙심도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시만자는 잠깐 앉아있다가 왕경루로 가야 한다고 방을 나섰다. 종문파와 시씨 가문 사람들은
오후 3시 정각, 커다란 판대기가 처형장에 올라왔다. 철로 만들어진 판대기는 매우 단단했으며 상국에서 요참형에 쓰이는 유일한 판대기였기에, 오랫동안 방치되어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었다.문엄 황제 때 요참형이 너무 잔인하다는 평가가 많았기에 죄가 아무리 중한 범인이라고 해도 요참형을 내리지 않았다.하지만 이 형이 현재까지 폐지되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 반역자에게 겁을 주기 위한 것이다.요참형을 처형할 때 백성들에게 보여주지 않는 게 원칙이지만 국정을 어지럽히고 역적들과 손을 잡고 나라를 배신한 건 역천 대죄이기에 이러한 방식으로 반역의 마음을 품고 있는 사람들에게 겁을 주려고 했다.왕표는 이내 입고 있던 옷이 전부 벗겨졌고 관원 부하 두 명이 왕표를 판대기에 눕혀 어깨를 꾹 누른 뒤 꿈쩍도 못하게 제압했다.공포에 질린 왕표는 순간 정신을 잃은 채 기절했고 망나니가 대도를 치켜 들자 대부분 사람들이 급하게 고개를 돌렸다.구경꾼들과 달리 영군오아과 연왕 등 사람들은 전방을 직시하게 고정되어 있었기에 고개를 돌릴 수 없었고 눈을 꼭 감은 채 온몸을 덜덜 떨었다.연왕은 그 중에서 가장 겁이 많은 사람이었다. 망나니가 대도를 든 순간 눈을 꽉 감은 연왕은 심지어 비명까지 질렀다.하지만 겁을 먹은 사람들과 달리 추몽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전방만을 직시했다.망나니의 대도가 왕표의 허리를 자른 순간에도 추몽의 표정은 한 치의 변화도 없었다.왕표에 이어 고청우가 처형당할 때에도 그는 눈을 피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주변의 비명소리나 흐느끼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듯 왕표와 고청우가 발버둥 치다가 완전히 의식을 잃을 때까지 빤히 지켜 보았다.한편, 왕청여는 왕표가 처형되기 전에 노부인을 데리고 이미 처형장을 떠났고, 최숙심은 처형이 끝나고 나서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최숙심은 결국 왕표가 처형당하는 모습을 보지 않았다. 눈을 꼭 감고 있다가 주변에 모여 있던 백성들이 왕표가 죽었다는 말에 그제야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가족들이 시체를 거둬가지 않으면
경위대가 노부인과 최숙심 그리고 왕청여를 처형장 안으로 호송했고 다리에 힘이 쫙 풀린 노부인은 온몸을 덜덜 떨면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이 멍청한 놈아! 넌 우리 집안 조상님들과 네 아버지의 얼굴을 보기 창피하지도 않아? 이제 하늘나라로 가면 어떻게 마주하려고 이런 짓을 저지른 거야!”그러고는 노부인은 엉엉 울면서 왕표의 뺨을 강하게 내리쳤다.한편, 감당할 수 없는 공포에 영혼이 나간 왕표는 어머니를 보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소리를 질렀다.“어머니, 저를 구해주세요! 제발 저를 구해주세요! 전 이대로 죽고 싶지 않다고요!”“네가 이렇게 큰 죄를 저질렀는데 내가 무슨 수로 너를 구해? 황제 폐하께서 너를 얼마나 중히 여기고 믿어줬는데 네가 어찌 이런 배은망덕한 짓을 저지른단 말이냐!”“어머니, 저 정말 잘못했어요. 제 죄를 다 뉘우쳤어요. 다시는 그러지 않을 거예요! 나라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울게요. 제발 이 아들을 살려주세요!”왕표가 오열했지만 노부인은 그저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이때, 곁에 서있던 최숙심이 직접 만든 음식과 술을 꺼내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당신과 나 사이에 부부의 연은 끝났지만 어머님과 아이들은 제가 잘 돌볼게요. 그러니 걱정 말고 떠나세요.”왕표는 담담하게 말을 하는 최숙심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네가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와! 서방을 배신한 천박한 년! 감히 나에게 부부의 연을 운운해?”“그래요. 저희는 이제 부부가 아닙니다. 그러니 앞으로 각자 갈 길을 가는 게 좋겠지요.”“나쁜 년!”왕표가 잔뜩 분노한 목소리로 외치자, 이를 들은 백성들이 너도나도 최숙심을 불쌍하게 여겼다. 평생 전전긍긍하면서 왕표를 위해 아들과 딸을 낳고 집안일을 처리하면서 시부모에게도 최선을 다했는데 결국 저런 말을 듣다니.뒤로 한 걸음 물러난 최숙심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한편, 고청우는 왕씨 가문의 일에 전혀 관심이 없었으며 모여 있는 백성들을 자세하게 쓱 훑었다. 이제 곧 죽을 텐데 정말 아무도
그렇게 한참 지나고 나서야 눈물을 그친 노부인은 결국 왕표를 구하는 일은 포기했지만, 그의 형이 집행되기 전에 최후의 만찬을 직접 먹일 것이라고 고집을 부리기 시작했다. 노부인의 눈은 퉁퉁 부었고, 목소리도 심하게 갈라져 있었다.“형이 집행되기 전에 범인은 가족들을 마지막으로 한 번 만날 수 있다는 걸 알아. 그러니까 이것만 하게 해줘. 아들이 마지막으로 배불리 먹고 길을 떠날 수 있게 해줘.”노부인은 다시 최숙심을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며느리 너도 자식이 있으니 부모의 마음을 이해할 거야. 세상 사람들 눈에 걔가 백 번 죽어 마땅한 나쁜 놈이라고 해도 나에게는 그저 한없이 어린 아이일 뿐이야.”한참동안 침묵하던 최숙심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어머님, 형이 집행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만난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아시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집행장에서 아들이 요참형을 당하는 모습을 정말 직접 보실 수 있으시겠습니까?”노부인은 온몸을 덜덜 떨면서 대답했다.“네가 가서 북명 왕비에게 부탁을 좀 해보거라. 난 감옥에 가서 아들을 만나고 싶다.”노부인의 말에 고청락이 어이없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참 말씀을 쉽게 하시네요. 어머님께서 부탁하면 왕비님께서 무조건 그 부탁을 들어줘야 하시는 겁니까?”“어머님, 전 그런 부탁을 드릴 수 없습니다. 이 일은 왕비께서 결정할 수 있는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최숙심이 대답하자 노부인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술을 꽉 깨문 채 말했다.“집행장이라도 갈 것이다. 절대 내 아들을 굶겨서 하늘나라로 보낼 수는 없어.”“어머니, 오라버니는 안 굶어요. 형이 집행되기 전에 감옥에서 오라버니에게 맛있는 밥을 준비해줄 거예요. 심지어 술도 준비해준다고 들었어요.”왕청여의 말에도 노부인은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그건 달라!”최숙심이 계속 한숨을 살짝 내쉴 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곁에서 지켜보던 모종윤이 고청락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그렇게 시간이 흘러 집행 당일 날이 되었고, 하늘은 한없이 맑았다.문엄
궁으로 들어가 황제에게 자초지종을 보고하자, 최숙심의 딱한 사정을 운운하면서 그녀의 선한 마음씨 또한 찬양했다.그녀의 삶도 이토록 엉망진창인데 힘든 사람들에게 죽도 나눠주고 갈 곳 없는 여인들을 소주방에서 지내게 도와준 사실들을 일일이 읊으면서 감탄했다. 솔직히 숙청제에게는 지금 최숙심처럼 백성들을 교화할 수 있는 모범적인 사람이 필요했다. 때문에 바로 어명을 내려 그녀에게 순금 백 냥과 집 한 채까지 하사했다. 그리고 유방 당했던 왕씨 가문 남자들도 남강 전쟁만 끝나면 북명왕과 함께 진성으로 돌아오는 것에 허락했다.그렇게 최숙심은 죽을 고비를 넘어 인생 역전까지 이뤄냈다!한편, 왕표에게는 요참형이 내려졌고 역적과 손잡고 왕표를 선동한 고청우에게도 똑같은 형을 내렸다. 그러자 숙청제는 예전에 고씨 가문 여인들을 살려준 일이 후회되었다. 고청우를 진작 감옥에 가뒀다면 남강에 이렇게 큰 화란이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니 말이다.이후 숙청제는 척귀에게 걱정되니깐 암자에 가끔 가보라고 했는데, 이는 실은 감시하기 위해서였다. 송석석은 척귀를 보자마자 황제가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지 바로 알아차리고는, 사람을 보내 고씨 여인들에게 고청우의 형이 집행될 때 고청우와의 옛정 때문에 잘못된 행동을 저지르지 말라고 확실하게 당부했다.한편, 소주방에 있는 노부인은 자신의 아들인 왕표가 결국 체포되었고 요참형을 받는다는 소식에 큰 충격을 받은 채, 죄 없는 왕청여와 최숙심에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갖은 욕설을 퍼부으며 화풀이를 했다. 노부인은 두 사람이 어떻게 가족이며, 서방인 왕표를 배신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점점 더 흥분하다가 결국 최숙심과 왕청여의 뺨을 강하게 내리쳤다.그리고는 지금 당장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왕표를 구해내라고 억지를 부렸다.최숙심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노부인에게 노여움을 풀라고 빌었지만, 노부인은 오히려 점점 언성을 높였다. 그러자 최숙심도 더 이상 참지 못해 벌떡 일어나 주막에서 칼을 가져오더니 바닥에 툭 던졌다
왕표는 중범죄자이기에 바로 대리사로 이송되어야 하지만, 송석석은 그를 일단 경위부로 압송했다. 경위부에서 심문을 마친 후, 어전에 보고를 올리며 최숙심의 공을 황제에게 잘 얘기한다면,왕준과 현이 하루 빨리 진성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더군다나 고청우도 아직 경위부에 갇혀 있기에 왕표와 고청우가 만난다면 더욱 많은 일들을 알아낼 수도 있었다.그렇게 고청우와 왕표는 같은 곳에 갇혔으며, 중간에 나무 울타리 하나를 세워 두 사람을 갈라놓았다.고청우와 왕표가 서로 눈이 마주치자,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었으며 왕표가 먼저 이를 갈면서 마구 소리를 질렀다.“천박한 놈! 결국 네 놈 꼴도 이렇게 되었구나! 드디어 벌을 받은 게야!”그러자 고청우가 실눈을 살짝 뜨며,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비아냥거렸다.“내가 천박한 년이면 왕표 너는 뭔데? 나도 벌을 받았지만 너도 결국 이렇게 갇혀 있잖아! 넌 뭐 다를 것 같아?”“이게 다 네 놈 때문이야!”왕표가 울타리 사이로 손을 뻗어 고청우를 잡으려고 허우적거렸고 뒤로 살짝 물러난 고청우는 오아표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코웃음을 쳤다.“버러지 같은 놈!”“네 놈이 감히…! 지금 뭐라고 했느냐! 네 놈이 역적과 손잡고 날 꼬셔서 야반 도주하게 만들지 않았다면 난 지금 남강 원수의 신분으로 잘 살고 있었을 거야! 절대 이런 꼴을 당할 리 없었을 거라고!”왕표가 씩씩거리며 소리를 지르자 고청우가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널 꼬셨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 넌 결국 죽음이 두려워서 그런 선택을 한 거야. 넌 내가 무엇인가 노리고 접근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잖아. 그런데 내가 아이까지 낳으니 이제 날 곁에 묶어 둘 수 있겠다고 확신한 거지. 이 세상 모든 여자들이 네 본처처럼 아이들을 위해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줄 알아? 가족애라는 건 이 세상에서 가장 우스운 거야. 그딴 걸로 날 묶어 둘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멍청한 놈! 내가 널 버리고 갈 때 분명하게 얘기했잖아. 넌 무능하고 무술 실력도 보잘것없는데
한편, 송석석은 시만자를 데리고 일반 손님으로 위장한 채 직접 보화사로 향했다. 보화사에 도착한 뒤 절을 올리고 초를 꽂고는 주지 스님을 찾아 신분을 밝힌 뒤, 여람 스님에 관해서 물었다.주지 스님은 바로 지객 스님을 불러왔다. 각지 스님들이 보화사에 찾아와 며칠 묵고 갈 때마다 지객 스님이 그자들을 모셨기 때문에 자세한 상황을 제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보화사는 진성 3대 절 중의 하나일 정도로 꽤 유명했기에, 매년 보화사에 찾아와 경을 들으면서 며칠동안 이곳에 묵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많아도, 실제로 이곳에 머물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었다. 지객 스님은 여람 스님에 대해 인상이 꽤 깊었다. 수련의 경지가 그리 높지 않았기에 원칙대로라면 이곳에서 지낼 수 없는데 몇 년 전부터 남강에서 죽은 이의 영혼들을 제도했기에 그 자비로운 마음을 높이 평가하고 덕행도 많이 쌓았기에 지객 스님은 의례적으로 여람 스님을 받아준 것이다.“며칠동안 매일 여람 스님께서 밖에 돌아다니셨습니다. 진성 내에 전란이 일어나 사상자가 많았기에 여람 스님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죽은 이들의 영혼을 제도하느라 고생이 많았습니다.”지객 스님은 여람 스님을 매우 좋게 평가했다. 송석석은 그런 지객 스님의 말을 조용하게 듣고 있을 뿐, 반박하지는 않았다.그러고는 지객 스님에게 여람 스님을 만나보고 싶다고 얘기하며, 여람 스님을 존경하는 마음에 돈을 기부하며 여람 스님을 위해 따로 절 하나를 지어주고 싶다는 말도 함께 전해달라고 했다.한편, 지객 스님은 송석석과 시만자의 신분을 알지 못했지만, 두 사람이 수수한 옷차림과 달리 기품이 넘쳐 흘렀기에 모 훈작 세가의 부인이나 아가씨일 것이라고 추측해,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인 후 바로 왕표에게 말을 전했다.왕표는 자신을 찾아온 자가 있다는 말에 흠칫 놀랐다가 절을 만들어주며 돈까지 기부하겠다는 소식에 바로 표정이 환하게 바뀌었다.평서백이었던 왕표는 가문의 번영을 위해 절에 돈을 기부하는 명문 가문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그렇게
이내 표정을 숨긴 최숙심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얼른 가십시오. 돈을 구하면 바로 서방님을 찾으러 가겠습니다. 아, 그리고 요즘 진성 순찰이 삼엄하니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마십시오.”왕표는 자신을 걱정하는 최숙심의 말을 듣자, 그녀가 밖에서 아무리 대단한 여인이라고 불려도 결국 자신에게 만큼은 마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뿌듯함에 경계심이 완전히 풀렸다.“최대한 3일 안에 마련해주면 고맙겠소.”그러자 최숙심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그건 안 됩니다. 지금 상황이 어려운데, 어떻게 3일 안에 그 큰돈을 마련할 수 있겠습니까?”“우리 딸 지아가 지금 북명 황실에서 지내고 있지 않소? 그러니 난 부인이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믿소. 부인의 소식을 기다리겠소. 그리고 내가 부인을 찾아왔다는 말은 아무한테도 하지 마오. 어머니와 왕청여한테도 얘기해서는 안 되오!”말을 마친 왕표는 삿갓을 쓰고는 돌아서서 빠르게 떠났다.표정이 확 어두워진 최숙심은 그를 얼른 따라갔지만 골목 밖에도 순찰하는 경위대가 보이지 않았기에 섣불리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왕표는 궁지에 몰린 순간 백성들을 인질로 잡아 어떻게든 진성을 벗어나려고 할 것이고 만에 하나 왕표가 진성을 빠져나가게 되면 그를 찾아내는 건 더 어려워질 것이다.최숙심은 빠른 걸음으로 소주방에 돌아와 석소를 구석으로 불렀다.“석소 아가씨, 얼른 왕비에게 찾아가서 왕표 그자가 보화사에 여람 스님 신분으로 위장하여 숨어있다고 전하시오.”“네, 지금 바로 다녀오겠습니다.”그렇게 석소가 돌아서서 소주방을 떠나려던 그때, 최숙심이 그를 불러 세웠다.“잠깐만요! 왕비님께 너무 대놓고 보화사에 왕표를 잡으러 가지는 말라고 전해주세요. 저에게 거짓말을 한 것일 수도 있으니 일단 몇 사람만 데리고 가서 상황만 파악해보시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전하세요.”현재 수색이 삼엄해서 왕표는 더 이상 도망갈 곳도 없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조심해야 한다. 이는 최숙심이 공을 세울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고 단번에 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