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객들은 필명과 순방영의 육 대감을 이끌고 다른 지하 감옥에 침입했다. 그곳에서 송지안의 일가족 네 명과 더불어 일곱, 여덟 명의 미쳐있거나 병약한 여인들이 발견되었다. 필명은 송씨 가문의 네 식구를 보자마자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는 즉시 명령을 내렸다. “즉시 이들을 부인들 곁으로 호송하라. 그곳에는 경위병과 부병들이 지키고 있으니 안전하다.” 옆방에 갇혀 있던 여인들은 모두 불구 상태였다. 어떤 이는 팔이 잘렸고, 어떤 이는 다리가 잘렸으며, 또 어떤 이는 얼굴이 망가졌거나 혀가 잘려 있었다. 상처는 제대로 치료되지 않아 아물지 않았고 그중 한 여인의 잘린 다리에는 구더기가 득실거리고 있었다.눈 앞에 펼쳐진 참상에 경위병들은 이곳이 공주부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이곳은 지옥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그들은 그녀들의 몸에서 풍기는 악취를 참으며 한 명 한 명 구출했다.정원에서는 지원 스님이 고승들과 함께 계속해서 경을 읊고 있었다. 경위병과 순방영의 병력은 점점 많아지자 이에 몇몇 사람들은 자객의 수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졌다.시민주를 비롯한 몇몇 부인들은 도망치고 싶었으나, 지원 스님이 그들을 저지했다. 자비롭고 온화하기로 유명한 지원 스님이 드물게도 날카로웠다.“여기까지 왔으면 끝까지 있어야 합니다. 다시 자리에 앉으시오.” 시민주는 두려움에 떨며 급기야 눈물까지 흘렸다.“자객이 있는데 왜 나갈 수 없단 말입니까? 영혼을 위로하려다 목숨까지 잃는 건 너무 어리석지 않습니까? 자비를 말하면서 사람 목숨을 위협하고 있군요.” 그러자 승상 부인이 담담하게 말했다. “경위병과 순방영이 모두 왔거늘 무엇을 두려워하시는지요? 김측비를 보시지요. 얼마나 침착합니까.” 김측비는 침착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심장은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지경이었다.연왕과 오랜 세월을 함께한 그녀이기에 연왕의 모든 계획을 알고 있었고 장공주의 지하 감옥에 무엇이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만약 그 물건들이 발각된다면,
그들에게서 악취가 진동했다. 그중 두 명은 정신이 온전치 않았고 들어오자마자 제사상에 놓인 과일을 미친 듯이 먹어 치웠다. 마치 굶주려 미쳐버린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리고 몇몇은 그저 바닥에 누워 있을 뿐이었다. 오랫동안 병에 시달린 듯 얼굴은 잿빛으로 변해 있었다. 사람들이 이들의 정체를 몰라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또 다른 무리가 들어왔고 들어오기 전부터 지독한 악취가 진동했다. 그 냄새는 마치 썩은 고기에서 나는 냄새처럼 역겨웠다. 시민주는 손수건으로 코를 틀어막고 몸을 숨겼다. 손발이 불구인 여인들이 한 명씩 들려오는 것을 본 고승들은 ‘아미타불’이라 되뇌었다.자비심을 지닌 이들조차 이 끔찍한 광경에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부인들은 숨을 삼키며 하나같이 뒷걸음질을 쳤다. 안여옥은 손수건을 꺼내 코를 가리고 태부인들과 함께 상황을 확인하러 다가갔다. 그들이 다가가 보니, 상처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처참했다.안여옥의 얼굴에는 분노가 서렸다. “어서 이들을 의원에 보내거라.” 안여옥이 다급히 외쳤지만, 사람들은 도망치기 바빴다. 견디기 힘든 악취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광경 때문이었다. “부의가 있지 않느냐? 부의는 어디에 있느냐?” 량아진은 밖으로 도망치는 어느 한 시녀를 붙잡고 덧붙였다.“어서 부의를 모셔 오거라!” 시녀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들은 정원에서 시중을 드는 시녀들로, 지하 감옥의 실태를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끔찍한 상태로 들려오는 여인들 중 몇몇은 낯익었고, 또 몇몇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으나, 그들의 모습은 모두 형편없었다. 량아진의 외침에 시녀들은 헐레벌떡 부의를 찾아 나섰다.평소에 손끝 하나 베어도 난리가 났던 부인들은 이 처참한 광경에 완전히 혼비백산했다.다리가 잘린 여인은 너무나 쇠약해 스스로 몸을 가누지도 못한 채 바닥에 누워있었다. 두 눈을 뜬 그녀는 슬피 우는 것 같기도 하고 크게 웃는 것 같기도 한 것이 너무나 소름 끼쳤다.“마침내 죽이려는 겁니까? 제발 빨
싸움이 계속될수록 전북망은 죽음이 가까이 다가오는 느낌을 받았다.그는 처음 성릉관 전장에 나갔을 때를 떠올렸다. 적에게 포위되어 죽을 뻔했을 때, 소장군이 그를 구하려다 팔을 하나 잃었다. 그때도 죽음이 임박한 두려움을 느꼈었다. 잠시 한눈판 순간, 전북망은 적에게 발로 차여 바닥에 쓰러졌고 다음 순간, 번쩍이는 칼날이 날아와 본능적으로 구르기 시작했다. 그러다 장공주의 발밑에 다다르자, 장공주가 사악한 얼굴로 칼을 들어 그의 가슴을 향해 찔렀다.“죽어라!”전북망은 두 손으로 칼을 간신히 붙잡았다. 다시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그 순간 부병들이 다시 달려들었다.바로 그때, 경위병들이 지하 감옥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계단 위에 있던 필명이 공중으로 날아올라 전북망을 향해 칼을 휘두르던 부병을 차버리고 전북망을 구했다.싸움은 계속되었다. 필명이 이끄는 정예 부대는 순식간에 적을 제압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병들의 목에 칼이 겨눠졌다. 장공주는 순식간에 뒤집힌 상황을 바라보며, 이미 각오는 했지만 너무나 빠르고 갑작스러운 패배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녀는 기운이 빠진 듯,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경위병들은 횃불을 들고 지하 감옥을 밝혔다. 이곳은 단순한 감옥이 아니었다. 이곳은 작은 무기고였다. 화약을 발견한 필명의 얼굴이 굳어졌다. “당장 횃불을 꺼라.” 필명은 즉시 명령했다. 횃불이 꺼지자, 희미한 등불이 은은한 빛나고 있는 무기들을 비추었다. 이 무기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자리에 있는 이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필명은 전북망과 부상을 입은 경위병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도록 명령했고 그 외의 모든 사람은 끌려 나갔다. 장공주에 대해서는 처벌할 권한이 없었기에, 필명은 사람을 보내 지하 감옥을 지키게 하고 장공주를 감시하도록 했다. 그녀의 행동을 제한하진 않았으나, 공주부를 떠나는 것은 금지되었다. 처분은 황제의 결정에 달려 있었다. 부상을 당한 전북망과 네 명의 경위병들은 상태가 심각하여 우
여러 태부인들과 안여옥 등이 차례로 떠나고, 승상 부인만이 장공주부에 남아 있었다. 이렇게 많은 고통받은 여인들을 치료하려면 누군가는 책임을 지고 처리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대장공주가 아직 체포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녀를 감시할 사람도 필요했다.어느 정도 치료를 마친 전북망과 그의 동료들은 경위병과 순방영이 마무리 작업을 끝낸 후 그들을 책임지러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경단에 배치되어 있었고 여자들과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부병들을 모두 제압한 필명은 공주부의 하인들도 한곳에 모아놓고, 모든 관리들을 통제한 뒤에야 전북망과 그 일행에게 다가와 물었다. “어떻습니까? 견딜만하신지요?” 다섯 명 중 두 명은 중상을 입었고, 피는 멈췄으나 상황은 여전히 위태로웠다. 의원이 아직 움직여선 안된다 하여 두꺼운 담요로 덮어주었다. 전북망과 다른 두 사람도 심하게 부상당했으나, 그나마 생명에 지장은 없었다. 전북망은 이제서야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엄습해왔고 이를 악물며 간신히 대답했다.“괜찮소.” 필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잘 견뎌주셨습니다.”잠시 망설이던 전북망이 다시 물었다. “그 자객들은 모두 잡혔소?” 그러자 필명이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자객들은 모두 도망쳤고 한 명도 잡지 못했습니다.” 지하 감옥에서 거의 죽을 뻔한 순간을 떠올린 전북망은 분노가 솟구쳤다. “그 자객들... 우리가 이용당한 것일 수도 있소. 자객 중 한 명과 겨뤘고 얼굴을 가렸지만, 나는 그자를 알아볼 수 있었소.” 필명은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제가 지하 감옥을 어떻게 찾았는지 아십니까? 그대는 공을 세웠습니다.” 깜짝 놀란 전북망은 잠시 멍해졌다. 공을 세웠다고? 이 문제는 깊이 생각할 틈이 없었다. 아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는 필명의 말을 되새겼다. 어떻게 자신이 위치한 지하 감옥을 찾을 수 있었을까? 장공주가 들어온 후 지하 감옥은 잠겨 있었으니, 입구를
장공주에게 머리채를 잡힌 채 바닥에 쓰러져버린 림봉아는 고통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감히 소리 한 번 지르지 못했다. 함께 있던 경위병들은 장공주에게 함부로 손을 댈 수 없어, 그저 경고만 할 뿐이었다. “그만하시오. 그녀를 놓으시오.” 장공주는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얼굴의 반을 가려 음침하기 이를 데 없었다.“너 따위가 감히 나에게 명령을 해? 다시 한번 지껄여보거라!” 그녀는 림봉아의 머리카락을 잡은 채 경위병들에게 다가갔다. 경위병들은 그녀를 건드릴 수 없어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그때 승상부인이 다가오더니 장공주의 따귀를 힘껏 날려버렸다. “내가 쳤다. 어쩔 테냐? 이 미친년아!” “네가 감히!” 장공주는 림봉아를 놓고 승상부인에게 달려들었다. 이제는 그냥 둘 수 없었던 경위병들이 급히 그녀를 막아섰다. 장공주는 승상부인에게 닿지 못하자 경위병의 얼굴을 긁으며 발광했다. 얼굴이 긁혀 피투성이가 된 경위병들은 계속 난폭하게 구는 그녀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그렇게 앞으로 넘어진 장공주는 이마가 바닥에 세게 부딪히고 말았다.승상부인이 차갑게 명령했다. “밧줄을 가져오거라. 너희가 묶지 못하겠다면, 내가 직접 하겠다.” 경위병들은 급히 밧줄을 가져왔다. 승상부인의 명령이 떨어졌기에 그녀가 직접 나설 필요 없었다. 명을 받은 경위병들이 장공주를 기둥에 단단히 묶었다.장공주의 이마에는 커다란 멍이 들었다. 그녀는 미친 사람처럼 계속 몸부림쳤지만, 단단히 묶인 터라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녀는 증오에 찬 눈빛으로 승상부인을 노려보며 거친 목소리로 욕설을 퍼부었다. “나는 이 나라의 장공주다! 네가 감히 황족을 모욕했으니, 너와 네 집안은 죄를 면치 못할 것이다! 네 놈들은 전부 참형을 당할 것이다!” 하지만 승상부인은 차갑게 대꾸했다. “미친 척은 그만하거라. 한 짓이 있으니, 그에 따른 결과도 받아들여라. 네가 미쳤든 아니든, 국법은 모두를 공정하게 처벌할 것이다.” 장공주의 쉰 목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사여묵의 심각한 표정에 그들은 서원 지하에 뭔가 큰일이 터졌음을 직감했다. 사여묵이 자리에 앉자마자 송석석이 차 한 잔을 따라 건네며 말했다. “먼저 물 한 잔 마셔요. 제가 곧 데워둔 음식을 가져오게 할 겁니다.” 사여묵은 지하 감옥에서 아무것도 먹지 못했으니 분명 배가 고플 터였다. 물 한 컵을 단숨에 마셔버리는 것을 보니 꽤나 목이 말랐던 모양이다.분부를 마친 송석석이 다시 서재로 돌아왔다. 사여묵은 그들이 묻기도 전에 입을 열었다. “당신 당숙 일가는 무사하오. 다행히 심한 고초는 없었고, 그저 지하 감옥에 갇혀 겁만 먹었을 뿐이오.” 송석석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당숙께서 진짜로 잡혀갔던 거군요.” “그렇소. 그가 있어서 처와 자식들이 그나마 놀라지 않았던 것 같소.” 사여묵은 스스로 다시 물을 따라 마신 뒤 말을 이었다. “지하 감옥에 갇힌 자들은 대부분 고부진의 첩들이었고 모두 구출했지만, 많은 이들이 상처를 입고 불구가 되었소. 잔인하기 이를 데 없었소. 서원 지하 감옥에는 무기와 갑옷, 화약까지 숨겨져 있었고 반란을 일으키면 장공주가 무기와 갑옷을 제공하기 위함이었소.” 송석석은 눈을 반짝 빛났다.“역시! 저는 처음부터 서원이 단순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무기를 공주부에 숨기다니, 이리도 대담할 줄은 몰랐네요. 만약 발각되면 큰일 날 텐데, 그녀는 어찌 그런 위험을 감수할 생각을 했을까요?” 염 선생이 대답했다. “만약 친왕부였다면 감히 그런 일을 하지 못했겠지요. 어느 누가 공주부에 지하 감옥이 있을 것이라 상상이나 하였겠습니까? 더욱이 공주부는 수색하기 어려운 곳이니, 무기를 숨기기에 가장 안전한 곳이었을 것입니다. 무기가 있어도 쉽게 발견되지 않을 테니까요.” 사여묵도 고개를 끄덕였다.“맞소. 천재지변 같은 큰 일이 아니라면, 아무도 감히 공주부를 수색하려 하지 않소. 그래서 공주부를 선택한 것이고 가장 안전하다 생각했을 것이오.” 장공주와 연왕이 결탁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
염 선생이 말했다. “이번 일은 단순히 사람을 구출한 것만이 아니라, 큰 사건을 밝힌 것이라 우리 북명왕부가 감당할 수 있는 무게는 아니지요. 목숨을 걸고 싸운 이가 그 공을 가져가는 것이 당연합니다. 전북망에 대해선 더 이상 말하지 맙시다. 장군께서는 어서 식사하시고 씻으셔야 합니다.”염 선생은 더 이상 전북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화제를 돌렸다. 왕비가 불편해할까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여 식사를 재촉하고 되도록 빨리 씻을 것을 권할 셈이었다. 몸에 풍기는 감옥의 냄새가 너무 지독하기도 했다.하지만 시만자는 여전히 불만스러웠다. “어쨌든 전북망이 우리 계획에 끼어들어 공을 세운 건 정말 불쾌합니다. 차라리 필명이 그 공로를 가져갔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지요.” 시만자는 전북망이 송석석에게 상처를 주고 그녀의 지참금까지 탐낸 일을 절대 잊을 수 없었다. 비록 그들과 함께 전장에 나갔었지만, 시만자는 전북망을 결코 같은 부류로 보지 않았다. 그녀는 전북망을 항상 경멸했다.염 선생은 웃으며 말했다. “필명도 분명히 공로를 세웠습니다. 전북망이 모든 공을 가져간 것이 아니니, 너무 개의치 마십시오. 그리고 전북망이 혼자 지하 감옥에 들어간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 진짜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시만자는 송석석을 바라보며 물었다. “석석아, 넌 어때?” 송석석은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말해서 과거를 떠올리면 마치 전생에 있었던 일처럼 느껴져. 너무 오래된 일이라 장군부에 시집간 적도 없었던 것처럼 말이야. 심지어 ‘전북망’이라는 이름도 낯설어. 그러니 완전히 낯선 사람으로 여길래.” 시만자도 마지못해 말했다.“좋아, 그럼 아주 불쾌한 낯선 사람으로 생각하자.” 송석석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사여묵은 송석석을 한 번 쳐다보았다. 과거의 일에 대해서 그다지 개의치 않았지만, 송석석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 좋았다. 그녀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이것이 그녀의 진심이라는 것을 사여묵은 느낄 수
숙청제는 이번 사건에서 반역과 관련된 증거가 발견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저 내실의 음모로 짐작했고 너무 도가 지나치다 느껴 한번 나서서 제재를 가하려 했으나, 직접 개입할 수 없었기에 한발 물러서서 이번 한의절에 맞춰 조치를 취한 것이었다.사실 오늘 밤 장공주부에 공격이 있을 거라고는 확신하지 못했다. 최근 들리는 소문이 너무 많았다. 특히 량소가 흠뻑 빠졌던 그 여인이 장공주의 서녀라는 말에 그는 공주부와 고부빈을 조사하게 했다. 그 결과 고부진이 상인 림씨 가문과 교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공교롭게도 림씨 가문의 한 여인이 북명왕부에 몇 번이나 드나든 것으로 밝혀졌다.몇 가지 소소한 정보들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공주부는 이번 한의절에도 늘 그랬듯이 고승을 초청해 초도식을 거행한다는 점과, 마침, 심청화가 한의절 전에 진성에 도착했다는 점이 맞아떨어졌다. 그는 송석석과 장공주 사이에 있었던 갈등을 떠올리고 이번 일들이 림씨 가문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송석석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지만, 그녀가 옳고 그름을 분명히 아는 사람이라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 만약 림씨 가문이 그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면, 그리고 장공주에 대해 불만이 있었기에 그녀가 돕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무엇보다도 이 시점에서 송지안의 아내와 자식들이 실종되었으니 만약 이 일이 장공주와 관련되어 있다면, 송석석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이것이 그가 내렸던 전반적인 추측이었다. 하지만 무기가 발견되고 대량의 화약이 쌓여 있는 것을 본 그 또한 충격을 금치 못했다.마음속으로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사여묵은 즉시 황제의 명을 받들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숙청제는 목승상에게 말했다. “승상은 먼저 물러가거라. 나는 아우와 몇 마디 더 나눠야겠다.” 목승상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다음에 뵙도록 하시지요. 승상!” 사여묵은 공손히 작별 인사를 건넸다. 사여묵을 한 번 바라본 목
이날 저녁, 송석석은 약왕당에서 받아온 약을 사여묵에게 건넸고 약의 위험성까지 자세하게 얘기했다.사여묵은 망설이는 듯한 송석석의 모습에 환하게 웃으며 위로했다.“이 정도 상해는 충분히 견딜 수 있소. 그리고 원기를 회복할 수 있는 약들도 이렇게 잔뜩 가지고 오지 않았소? 나중에 어의에게 진단만 받으면 바로 단설환을 먹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오. 남강으로 가는 길에도 단 신의의 당부를 잊지 않고 매일 약을 꼬박꼬박 챙겨 먹겠소.”“그래도 결국 독약 아닙니까? 그러지 말고 저희 다른 방법을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요?”송석석이 미간을 찌푸리며 묻자 사여묵이 담담하게 대답했다.“내가 보기엔 지금으로써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소. 단 신의가 말을 무섭게 해서 그렇지 그 정도로 심각한 상해를 입히지 못할 거요. 그렇게 위험한 약이었다면 애당초 꺼내지도 않았겠지.”“그럼 일단 염 선생과 상의라도 해보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그럴 필요 없소!”사여묵이 약을 내려놓은 뒤, 커다란 손으로 송석석의 허리를 감싸며 말을 이어갔다.“이 일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유리하오. 나중에 내가 대리사에서 쓰러지면 진이가 내 옥패를 들고 어의를 찾아갈 것이고 황실로 달려온 어의가 우왕좌왕하는 염 선생을 보아야 의심을 하지 않을 것이오.”송석석은 사여묵의 가슴팍에 기대어 불안한 마음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전 장군님이 너무 걱정됩니다. 몸이 회복되기도 전에 남강으로 출발해야 하는데 가는 내내 제대로 쉴 수도 없지 않습니까? 그러다가 남강에 가서도 몸 상태가 회복되지 않으면 전장에 어떻게 나가시려고 그러십니까?”송석석의 걱정에 기분이 좋아진 사여묵이 다정하게 웃으며 그녀를 위로했다.“난 왕표를 무조건 대체하겠다는 게 아니오. 일단 제린을 찾아 병사들 속에 숨어 있다가 왕표가 제대로 군을 이끈다면 난 남강 구경이나 하다 올 것이오.”사여묵의 위로에도 송석석은 시름이 놓이지 않았다. 왕표가 군을 제대로 이끌지 못할 거라는 확신 때문에 두 사람이 지금 이런 모험을 하고 있는
화가 난 단 신의는 송석석의 말에 설득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버럭 언성을 높였다.“난 멍청한 사람을 돕지 않소. 당신들은 그런 천하의 멍청이가 따로 없소!”“세상에 이런 멍청이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번 한번만 더 모험하고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겁니다. 약속할게요.”송석석이 환하게 웃으며 말하자 단 신의가 미간을 찌푸렸다.“모험을 하고 싶어도 이제 못할 수도 있소. 돌아오면 황제께서 그 죄를 어떻게 물으실 줄 알고 이러는 것이오. 그러다가 머리가 잘릴 수도 있소.”“정말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고 해도 저에게 방법이 있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단 신의는 고집을 부리는 송석석을 보며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말한 것처럼 백성들에게는 두 사람과 같은 멍청이들이 필요하긴 했지만, 단 신의는 그 멍청이가 송석석과 사여묵은 아니길 바랐다.결국 단 신의는 먼지가 뽀얗게 쌓인 작은 상자를 꺼내 먼지를 툭툭 털어내곤 조심스럽게 열었다.상자 안에는 땅콩 만한 검은 알약 하나가 있었다.“똑똑히 기억하시게. 이건 독이오. 이 약을 먹고 나면 맥박이 이상해지고 갑작스러운 발작을 일으키네. 그리고 짧은 시간내에 심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지. 이건 그저 보여지는 현상이 아니라 실제로 죽을 수도 있다는 뜻이네. 이 약을 먹고 3일 정도 버틸 수 있는데 3일 뒤에는 반드시 단설환을 복용해야 하오. 그러지 않으면 심장에 영구적인 손상을 입을 수도 있소.”단 신의의 말에 송석석이 흠칫 놀란 표정이었다.“정말로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뜻입니까?”“그럼 당연하지. 이건 독이오.”“그럼 단설환을 먹고 나면 바로 정상적인 몸 상태로 돌아올 수 있는 겁니까?”“그렇지 않소. 며칠 동안 안정을 취해야 하네. 눈속임을 하고 나서 바로 출발하면 절대 안 되오.”위험할 수도 있다는 단 신의의 말에 송석석은 단 신의가 건네는 약을 받지 않았다.“그럼 혹시 다른 약은 없는지요? 폐하를 속이고 나서 장군님은 바로 출발하려고 할 겁니다. 실제로 중독되
사여묵은 온몸에 힘이 쭉 빠진 채 침대에 앉아 등을 벽에 기대고 있었다.남강에서 돌아와 병권을 황제께 바친 뒤에도 황제는 여전히 사여묵을 의심하고 경계했지만 사여묵은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황제가 의심과 경계를 조금은 풀 수 있도록 사여묵은 지금까지 최대한 언행에 조심했으며 서경과의 담판이 끝나고 나서도 황제 앞에서 일부러 약한 모습을 보였다.나중에 혹시라도 전쟁이 일어났을 때 더 이상 황제의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조심하고 또 조심했는데 황제의 태도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사국이 이번에 다시 쳐들어온 건 사국과 손잡은 내국 역적이 남강에 이미 함정을 파 놓았다는 사실을 폐하께서도 알고 계신 것이오. 그래서 사국은 저렇게 겁도 없이 남강을 계속 공격하고 있는 것이지. 하지만 폐하는 내가 폐하께 대한 위협이 사국 병사들을 물리치는 것보다 더 중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소.”사여묵이 씁쓸하게 웃으며 마지막 남은 술을 벌컥벌컥 마시자, 송석석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황제께서 이런 결정을 하신 게 처음은 아니잖아요.”사여묵은 송석석을 품에 꼭 끌어안은 채 그녀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고 조금 전 혼자 술을 마시고 있을 때부터 계속 이렇게 숨막히는 인고를 견뎌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다.“난 무조건 그런 비극이 다시 일어나게 하지 않을 것이오.”송석석을 놓아준 사여묵은 강경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말을 보탰다.“난 당신처럼 용감하게 변할 것이오.”예전에 송석석이 입궁하여 황제께 상황을 보고했을 때 황제는 그녀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그때 당시 송석석은 마냥 기다리거나 손을 놓은 것이 아니라 홀로 남강까지 찾아갔다.송석석은 그때 자신의 생사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한편, 사여묵의 말을 들은 송석석은 바로 뜻을 알아챘고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전 장군님을 응원합니다. 아무 걱정도 하지 말고 다녀오세요. 폐하께서 아무것도 묻지 않으신다면 전 평소와 같이 진성을 지키고 있을 것이고 만약 폐하께서 죄를 물으신다면 전 북명
사여묵이 방시원을 잘 달래어 돌려보낸 뒤, 염구진이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다들 감정이 격해지는 것도 당연합니다. 남강 땅을 되찾기 위해 그들은 청춘을 다 바쳤는데 이제 또 전쟁이 난다고 하니 마음이 안 좋을 수밖에 없지요.”말을 하던 염구진은 고개를 돌려 사여묵을 힐끔 쳐다보았으며 방시원의 마음을 가장 잘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은 사여묵일 것이라고 생각했다.한편, 한참동안 말이 없던 사여묵이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잘 지켜보고 있다가 무슨 소식이 들리면 바로 나에게 보고하게.”“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사여묵은 다시 연주에 관한 일에 대해 물었다.“연주에서 성문을 봉쇄했다고 들었는데 소식은 끊기지 않은 것이오? 혹시 그쪽에서 움직임이 보이지는 않나? 계획대로 행동하고 있는 건가?”“아직 확실한 소식은 접하지 못했지만 소인은 모성을 믿습니다. 계획한대로 잘 하고 있을 겁니다.”“그래. 나도 그자를 믿네.”염구진의 대답에 사여묵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성은 연주 좌부승이었고 연왕이 반역을 도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여묵은 바로 사람을 시켜 모성에게 접근했다.총명하고 무술 실력까지 겸비한 모성은 선황제 때부터 이름을 널리 알렸지만 성격이 너무 오만했기에 아직까지도 직급은 그저 부승이었다. 평소에 시를 즐겨 쓰는 모성은 시문의 대부분 내용이 세상을 향한 불만 표시였기에 연왕은 모성이 조정에 불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여 그를 곁에 두기로 했다.그렇게 모성은 오랜 세월동안 외로운 싸움을 했다. 그 중 더 높은 관직으로 승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모성은 연왕의 반역죄 증좌를 수집하기 위해 모든 걸 포기하고 연주에 남았다.하지만 연왕은 섣불리 움직이지도 않고 핵심 병력의 상황도 모성에게 전혀 알려주지 않았으며 심지어 중요한 일을 논의할 때에는 모성에게 나가 있으라고 하기도 했다.때문에 모성은 하상지의 잡일을 처리해주면서 간간이 상황을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확실한 증좌가 없는 탓에 모성은 지금까지도 연왕
”소인도 오늘 폐하께 감히 많은 얘기를 드리지는 못했습니다. 혹시 폐하께서 오해하실까 봐 왕야를 찾아가지도 못했지요.”이덕회가 대답하자 목 승상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잘하셨습니다. 병부는 최대한 사적으로 북명왕을 접촉하지 않아야 합니다. 아니면 혹시 병사 감찰대로 폐하께 한 사람을 추천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혹시 왕표 그자가 남강 전쟁 원수를 맡기엔 걱정된다면 방시원 장군을 황제께 추천해보십시오.”“하지만 방시원 장군님은 주군 총병이라 남강 전쟁에 보낼 수는 없지 않습니까? 방 장군을 보낼 바에는 차라리 방천허와 제린에게 전사를 맡기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내란이 터지고 있는 지금 진성 주군에 대장이 없어서는 안 되는 일이지요.”이덕회의 말에 목 승상이 의미심장한 말투로 대꾸했다.“도리는 그게 맞지요. 제 말은 폐하께 왕야 한 사람만 추천할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몇 명 더 추천하라는 뜻입니다.”이덕회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입술을 살짝 오므렸다.“소인이 솔직한 성격이라 말을 돌려서 할 줄 모르니 그냥 말하겠습니다. 소인이 보기엔 왕야가 가장 적합한 원수인데 어차피 역적은 아직 나라에 위협이 될만한 존재는 아니니까 나중에 목종욱한테 처리하라고 하면 되지요.”“그 어떤 반역자도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 일은 그리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알다시피 반역자들은 사국 사람들과도 엮여 있습니다. 사국과 손을 잡았다는 건 그만큼 충분한 준비를 해왔다는 뜻이지요. 절대 쉬운 상대가 아닙니다.”목 상승이 손을 저으며 말하자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이덕회가 대답했다.“승상 말씀도 일리가 있는 것 같네요. 그럼 소인 북명왕과 함께 내일 다시 궁으로 가서 폐하를 만나 뵙고 내란에 대해서도 의논해보겠습니다.”“그렇게 합시다!”목 승상이 고개를 끄덕였다.한편, 사청엽은 여전히 옥에 갇혀 있었다. 황제가 아직 명령을 내리지는 않았지만 사청엽은 자신이 사형을 면치 못할 거라고 확신했다.이날 저녁, 혼인을 앞둔 방시원이 황실을 찾아왔다. 치석
한편, 목종욱은 최선을 다해 산적들을 잡아들이고 있었다. 싹을 다 자르진 못했지만 크게 겁을 먹은 산적들이 산 속에 꽁꽁 숨어서 다시는 문제를 일으키진 않을 것이다. 숙청제도 제린이 보낸 소식을 접했고, 사국 대군들이 변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다.제린은 사국 대군이 25만 명 정도 된다고 보고를 했고 여전히 빅토르가 대군을 이끌고 있다고 했다.숙청제는 바로 병부 대신들을 불러 남강에서 사국의 25만 대군을 상대로 승산이 있는지 의견을 물었다.이덕회는 황제의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이길 수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최대한 신속하게 전쟁을 이겨야 한다는 것이 관건이다.“폐하, 남강은 오랜 시간의 전사와 왜란으로 지칠 대로 지친 상태입니다. 남강 땅은 아직 전쟁에 버틸 수 있지만 백성들은 더 이상 전쟁을 견딜 힘이 없습니다. 만약 정말 전쟁이 난다면 확실한 한 방으로 빠르게 적을 물리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메뚜기 떼처럼 매년 한 번씩 이렇게 날뛸 것입니다. 이는 저희 남강 지역의 치안에 치명적인 상해를 입힐 수밖에 없습니다.”“그럼 자네 생각엔 송씨 가문 병사들과 북명군이 적들을 신속하게 물리치지 못할 것 같은가?”숙청제의 물음에 이덕회가 바로 대답했다.“이제 송씨 가문 군대아 북명군을 나눌 것도 없습니다. 전부 다 남강 병사들입니다.”이덕회는 숙청제가 남강의 병사들을 모은 게 송씨 가문과 북명왕이라고 생각할까 봐 일부러 강조했지만 숙청제의 생각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만약 남강 전쟁이 오래 전에 끝난 전쟁이고 사여묵이 병권을 상납한지 꽤 오래 됐다면 숙청제는 이런 걱정을 전혀 하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왕표가 군심을 얻지 못하고 있는 지금, 남강에 있는 병사들이 송씨 가문 군대이든 북명군이든 결국 전부 사여묵의 명령에 따르고 있다.사여묵을 남강에 보낸다는 건 병권을 다시 사여묵에게 쥐여주어야 한다는 뜻이다.현재 연왕도 역모를 일으켰고 황제 자리를 대놓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
숙청제가 사여묵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그건 사국이 네 위엄에 겁을 먹은 것이야. 빅토르가 너를 많이 두려워하는 것 같아.”사여묵은 숙청제의 말이 진심이 아니라 살짝 비꼬고 있다는 것을 잘 알기에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황제께서 소인을 너무 높이 평가하고 계신 겁니다. 소인은 그렇게 대단한 능력도 없고 빅토르도 소인에게 겁을 먹어서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전쟁 때문에 너무 많은 걸 잃었기 때문입니다.”“네 말대로 전쟁으로 많은 걸 잃었다면 짧은 시간 내에는 원기를 쉽게 회복할 수 없지 않느냐?”“소인이 감히 추측을 해보자면 사국은 원기를 회복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절대 저희 남강이 순조롭게 발전하는 모습을 보고 있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가끔씩 비열한 수법으로 훼방을 놓아야 정상인데 지금까지 그런 적이 한 번도 없는 게 너무 수상합니다.”숙청제가 사여묵을 빤히 쳐다보다가 물었다.“그럼 네 말은 누군가가 사국과 손잡고 적절한 시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냐?”“그럴 가능성도 있지 않겠습니까?”사여묵은 전에도 숙청제와 이 문제를 분석하고 논의한 적이 있었으며 그때 당시 숙청제도 사여묵의 의심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주관적으로 보았을 때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숙청제는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사여묵은 그런 황제를 힐끗 쳐다보고는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지만 꾹 참았다.사실 숙청제도 왕표가 무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사국을 상대하려면 사여묵을 다시 남강 전장으로 내보내는 게 가장 적합한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있다.하지만 숙청제는 쉽게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그때 당시 겨우 송석석을 이용하여 사여묵에게서 병권을 빼앗았는데 이렇게 쉽게 다시 내놓을 수가 없었으며 최후의 순간이 오지 않는 이상, 숙청제는 절대 사여묵을 전장에 내보낼 생각이 없었다.때문에 사여묵이 며칠동안 어서방에 남아 숙청제와 이런저런 상의를 해봤지만 숙청제는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그렇게 어서방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고 아무도 먼저
그날 밤, 연왕은 뜬 눈으로 밤을 지새게 되었다.솔직히 지금 상황은 연왕의 오랜 계획과 차질이 조금 있었다. 지방 지역에서 역모를 일으키고 심지어 진성에 준비된 게 아무것도 없이 무작정 진성까지 쳐들어간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연왕과 무상의 계획은 따로 있었다.일단 병사들을 일정한 수량까지 늘이고 아무도 모르게 서서히 진성 일대로 전이하여 병사들을 안치한 뒤 적절한 시기를 기다릴 생각이었다.그땐 사온이 진성에서 계략을 짜고 있을 것이고 많은 세가들의 지지도 받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예전에 고부진의 딸들을 세가에 시집 보냈기에 세가들은 지지할 수밖에 없다.그리고 나서 적절한 시기만 잘 고르면 반드시 성공한다. 진성에 전란이 일어나고 산적과 유랑민들이 판을 칠 때 연왕은 병사들을 거느리고 성내로 쳐들어가 바로 궁 전체를 포위할 생각이었다.하지만 지금, 갑자기 대석촌에 일이 터져 버려 사청엽이 체포된 탓에 연왕은 급하게 병사들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승산이 너무 낮았기에 연왕도 망설였던 것이며 지방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난다고 해서 진성까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물론 백성들은 반란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고 한동안 수군거리겠지만 대부분 백성들은 갑작스럽게 일어난 반란과 격문을 그저 우습게 생각할 것이다.그뿐만 아니라 사국에서 남강을 공격한다고 해도 처음 있는 일이 아니고 사국에서 오래 전부터 호시탐탐 야망을 보였기에 황제가 나랏일에 관심이 없어서 일어난 일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그리고 아직 사국과의 전쟁이 일어나지도 않았고 전패했다는 소식도 없기에 상국 무장이 무능하다는 비판을 하기에도 애매했다.나라가 평안하고 백성들이 태평한 상황에서 연주도 꽤 부유한 땅이었기에 괜히 문제를 만들고 싶어도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때문에 모두 그저 연왕이 언제 잡히는지, 언제 역모죄로 목이 잘릴지를 보고 싶어할 뿐이었다. 그리고 상국에는 사국 사람들을 물리친 북명왕이 있기에 다들 역적 따위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으며 되레 연왕이 왜 역모를 일으키
무상이 아니라는 말에 연왕은 회왕에게로 고개를 돌렸고 화들짝 놀란 회왕이 변명하려던 그때, 연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회왕일 리는 없어.”회왕은 의심조차 하지 않는 연왕의 태도에 기분이 조금 묘했다.한편, 연왕은 당연히 회왕을 의심할 리가 없었다. 회왕은 무일푼으로 연주로 왔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진성에서도 아무런 성과도 따내지 못했으며 사온의 비교 대상이 될 자격조차 없었다.회왕이 연주에 온 뒤로 연주 백성들은 회왕을 만나면 겉으로는 왕야라고 부르며 인사를 올리긴 하지만 뒤에서는 다들 그를 만만하게 여기고 아니꼽게 생각했다.때문에 회왕은 절대 마총우를 명령하지 못한다.조금씩 차분해진 연왕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면서 말했다.“다들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마총우 그자가 귀순한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가 나를 무너트리고 싶어서 일부러 꾸민 짓인가?”여전히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던 무상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마총우가 귀순한 건 절대 아닐 것입니다. 왕야께서 격문을 보낸 지 며칠밖에 되지 않았고 더군다나 저희 병력은 대여섯 군데에 분산되어 있습니다. 전의하는 데만 6개월 넘게 걸렸는데 조정에서 절대 쉽게 조사해낼 수 없을 겁니다. 그런데 조정에서 마총우 그자를 찾아서 귀순 시킨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날 일부러 무너트리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거네. 그럼 그자가 누구일 것 같은가?”연왕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연왕이 몇 년 동안 끌어 모은 사람들 중에 황제의 친인척과 세도가들도 있지만 친왕은 연왕과 회와 두 사람밖에 없었다.연왕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상대가 없었다. 연왕의 부하들 중에서 황제의 친인척들이 제일 무능하고 멍청했으며 파장을 일으킬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리고 종합적으로 생각해보았을 때 가장 의심되는 상대는 여전히 무상이었다.하지만 역모의 마음을 품은 연왕이 무상을 끌어들이고 나서 지금까지 무상은 강한 충성심을 보였고 심지어 평소에 연왕에게 쓸만한 제안도 가장 많이 하고 계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