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 바닥에는 묶여 있는 화살 더미와 노기, 그리고 한 줄로 늘어선 칼, 검, 활들이 있었다. 그리고 구석에는 커다란 통들이 쌓여 있었다. 그가 가까이 다가가자, 화약 냄새가 진동했다. 통들은 밀봉되어 있었고 위에 여러 겹으로 덮여 있었지만 화약 냄새는 여전히 새어 나왔다. 그 통들이 있는 곳에는 등불이 없었고, 지하 감옥의 입구 쪽에만 등불이 있었다. 사여묵이 뒤를 돌아보자, 경호병들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감옥 안의 상황을 본 그들은 충격을 받은 듯 멍하니 서 있었다. 자객을 상대하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까먹은 듯했다. 검을 휘둘러 몇 명을 쓰러뜨린 사여묵은 전북망이 경위병과 함께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전북망은 아직 이곳을 둘러볼 새도 없이 자객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사여묵은 그와 몇 차례 칼을 맞대었고, 어두운 불빛 아래 전북망은 그의 눈을 마주하고 말았다. 그 순간, 전북망은 잠시 멈칫했다. 사여묵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번개처럼 몸을 날려 계단을 세 걸음에 뛰어올라 지하 감옥을 빠져나갔다. 잠시 멍하니 서 있던 전북망은 지하 감옥에 가득한 무기와 장비들을 보고 그만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던 그가 경위병들에게 외쳤다.“당장 필명 대감에게 보고하라!” 전북망은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으며 덧붙였다.“그리고 순방영의 총령 육 대감도 불러오거라! 빨리 움직여라!” 바로 그때, 지하 감옥의 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혔고 장공주가 치맛자락을 움켜쥐고 내려왔다.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검을 필명을 찾아가려는 경위병들에게 겨누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 움직이지 말라!” 경위병들은 한 걸음씩 뒷걸음질 치자 그녀는 부병들에게 명령했다. “이들을 모두 죽여라.” 경위병들과 전북망을 포함해 모두 다섯 명뿐이었지만 부병들은 약 30명 가까이 있었다. 부병들이 사여묵 앞에서는 아무런 힘도 쓰지 못했지만, 전북망과 네 명의 경위병들을 상대하기에는 충분했다.부병들이 검을 들고 다섯 명을 향해 다가가
자객들은 필명과 순방영의 육 대감을 이끌고 다른 지하 감옥에 침입했다. 그곳에서 송지안의 일가족 네 명과 더불어 일곱, 여덟 명의 미쳐있거나 병약한 여인들이 발견되었다. 필명은 송씨 가문의 네 식구를 보자마자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는 즉시 명령을 내렸다. “즉시 이들을 부인들 곁으로 호송하라. 그곳에는 경위병과 부병들이 지키고 있으니 안전하다.” 옆방에 갇혀 있던 여인들은 모두 불구 상태였다. 어떤 이는 팔이 잘렸고, 어떤 이는 다리가 잘렸으며, 또 어떤 이는 얼굴이 망가졌거나 혀가 잘려 있었다. 상처는 제대로 치료되지 않아 아물지 않았고 그중 한 여인의 잘린 다리에는 구더기가 득실거리고 있었다.눈 앞에 펼쳐진 참상에 경위병들은 이곳이 공주부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이곳은 지옥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그들은 그녀들의 몸에서 풍기는 악취를 참으며 한 명 한 명 구출했다.정원에서는 지원 스님이 고승들과 함께 계속해서 경을 읊고 있었다. 경위병과 순방영의 병력은 점점 많아지자 이에 몇몇 사람들은 자객의 수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졌다.시민주를 비롯한 몇몇 부인들은 도망치고 싶었으나, 지원 스님이 그들을 저지했다. 자비롭고 온화하기로 유명한 지원 스님이 드물게도 날카로웠다.“여기까지 왔으면 끝까지 있어야 합니다. 다시 자리에 앉으시오.” 시민주는 두려움에 떨며 급기야 눈물까지 흘렸다.“자객이 있는데 왜 나갈 수 없단 말입니까? 영혼을 위로하려다 목숨까지 잃는 건 너무 어리석지 않습니까? 자비를 말하면서 사람 목숨을 위협하고 있군요.” 그러자 승상 부인이 담담하게 말했다. “경위병과 순방영이 모두 왔거늘 무엇을 두려워하시는지요? 김측비를 보시지요. 얼마나 침착합니까.” 김측비는 침착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심장은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지경이었다.연왕과 오랜 세월을 함께한 그녀이기에 연왕의 모든 계획을 알고 있었고 장공주의 지하 감옥에 무엇이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만약 그 물건들이 발각된다면,
그들에게서 악취가 진동했다. 그중 두 명은 정신이 온전치 않았고 들어오자마자 제사상에 놓인 과일을 미친 듯이 먹어 치웠다. 마치 굶주려 미쳐버린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리고 몇몇은 그저 바닥에 누워 있을 뿐이었다. 오랫동안 병에 시달린 듯 얼굴은 잿빛으로 변해 있었다. 사람들이 이들의 정체를 몰라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또 다른 무리가 들어왔고 들어오기 전부터 지독한 악취가 진동했다. 그 냄새는 마치 썩은 고기에서 나는 냄새처럼 역겨웠다. 시민주는 손수건으로 코를 틀어막고 몸을 숨겼다. 손발이 불구인 여인들이 한 명씩 들려오는 것을 본 고승들은 ‘아미타불’이라 되뇌었다.자비심을 지닌 이들조차 이 끔찍한 광경에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부인들은 숨을 삼키며 하나같이 뒷걸음질을 쳤다. 안여옥은 손수건을 꺼내 코를 가리고 태부인들과 함께 상황을 확인하러 다가갔다. 그들이 다가가 보니, 상처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처참했다.안여옥의 얼굴에는 분노가 서렸다. “어서 이들을 의원에 보내거라.” 안여옥이 다급히 외쳤지만, 사람들은 도망치기 바빴다. 견디기 힘든 악취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광경 때문이었다. “부의가 있지 않느냐? 부의는 어디에 있느냐?” 량아진은 밖으로 도망치는 어느 한 시녀를 붙잡고 덧붙였다.“어서 부의를 모셔 오거라!” 시녀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들은 정원에서 시중을 드는 시녀들로, 지하 감옥의 실태를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끔찍한 상태로 들려오는 여인들 중 몇몇은 낯익었고, 또 몇몇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으나, 그들의 모습은 모두 형편없었다. 량아진의 외침에 시녀들은 헐레벌떡 부의를 찾아 나섰다.평소에 손끝 하나 베어도 난리가 났던 부인들은 이 처참한 광경에 완전히 혼비백산했다.다리가 잘린 여인은 너무나 쇠약해 스스로 몸을 가누지도 못한 채 바닥에 누워있었다. 두 눈을 뜬 그녀는 슬피 우는 것 같기도 하고 크게 웃는 것 같기도 한 것이 너무나 소름 끼쳤다.“마침내 죽이려는 겁니까? 제발 빨
싸움이 계속될수록 전북망은 죽음이 가까이 다가오는 느낌을 받았다.그는 처음 성릉관 전장에 나갔을 때를 떠올렸다. 적에게 포위되어 죽을 뻔했을 때, 소장군이 그를 구하려다 팔을 하나 잃었다. 그때도 죽음이 임박한 두려움을 느꼈었다. 잠시 한눈판 순간, 전북망은 적에게 발로 차여 바닥에 쓰러졌고 다음 순간, 번쩍이는 칼날이 날아와 본능적으로 구르기 시작했다. 그러다 장공주의 발밑에 다다르자, 장공주가 사악한 얼굴로 칼을 들어 그의 가슴을 향해 찔렀다.“죽어라!”전북망은 두 손으로 칼을 간신히 붙잡았다. 다시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그 순간 부병들이 다시 달려들었다.바로 그때, 경위병들이 지하 감옥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계단 위에 있던 필명이 공중으로 날아올라 전북망을 향해 칼을 휘두르던 부병을 차버리고 전북망을 구했다.싸움은 계속되었다. 필명이 이끄는 정예 부대는 순식간에 적을 제압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병들의 목에 칼이 겨눠졌다. 장공주는 순식간에 뒤집힌 상황을 바라보며, 이미 각오는 했지만 너무나 빠르고 갑작스러운 패배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녀는 기운이 빠진 듯,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경위병들은 횃불을 들고 지하 감옥을 밝혔다. 이곳은 단순한 감옥이 아니었다. 이곳은 작은 무기고였다. 화약을 발견한 필명의 얼굴이 굳어졌다. “당장 횃불을 꺼라.” 필명은 즉시 명령했다. 횃불이 꺼지자, 희미한 등불이 은은한 빛나고 있는 무기들을 비추었다. 이 무기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자리에 있는 이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필명은 전북망과 부상을 입은 경위병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도록 명령했고 그 외의 모든 사람은 끌려 나갔다. 장공주에 대해서는 처벌할 권한이 없었기에, 필명은 사람을 보내 지하 감옥을 지키게 하고 장공주를 감시하도록 했다. 그녀의 행동을 제한하진 않았으나, 공주부를 떠나는 것은 금지되었다. 처분은 황제의 결정에 달려 있었다. 부상을 당한 전북망과 네 명의 경위병들은 상태가 심각하여 우
여러 태부인들과 안여옥 등이 차례로 떠나고, 승상 부인만이 장공주부에 남아 있었다. 이렇게 많은 고통받은 여인들을 치료하려면 누군가는 책임을 지고 처리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대장공주가 아직 체포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녀를 감시할 사람도 필요했다.어느 정도 치료를 마친 전북망과 그의 동료들은 경위병과 순방영이 마무리 작업을 끝낸 후 그들을 책임지러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경단에 배치되어 있었고 여자들과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부병들을 모두 제압한 필명은 공주부의 하인들도 한곳에 모아놓고, 모든 관리들을 통제한 뒤에야 전북망과 그 일행에게 다가와 물었다. “어떻습니까? 견딜만하신지요?” 다섯 명 중 두 명은 중상을 입었고, 피는 멈췄으나 상황은 여전히 위태로웠다. 의원이 아직 움직여선 안된다 하여 두꺼운 담요로 덮어주었다. 전북망과 다른 두 사람도 심하게 부상당했으나, 그나마 생명에 지장은 없었다. 전북망은 이제서야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엄습해왔고 이를 악물며 간신히 대답했다.“괜찮소.” 필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잘 견뎌주셨습니다.”잠시 망설이던 전북망이 다시 물었다. “그 자객들은 모두 잡혔소?” 그러자 필명이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자객들은 모두 도망쳤고 한 명도 잡지 못했습니다.” 지하 감옥에서 거의 죽을 뻔한 순간을 떠올린 전북망은 분노가 솟구쳤다. “그 자객들... 우리가 이용당한 것일 수도 있소. 자객 중 한 명과 겨뤘고 얼굴을 가렸지만, 나는 그자를 알아볼 수 있었소.” 필명은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제가 지하 감옥을 어떻게 찾았는지 아십니까? 그대는 공을 세웠습니다.” 깜짝 놀란 전북망은 잠시 멍해졌다. 공을 세웠다고? 이 문제는 깊이 생각할 틈이 없었다. 아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는 필명의 말을 되새겼다. 어떻게 자신이 위치한 지하 감옥을 찾을 수 있었을까? 장공주가 들어온 후 지하 감옥은 잠겨 있었으니, 입구를
장공주에게 머리채를 잡힌 채 바닥에 쓰러져버린 림봉아는 고통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감히 소리 한 번 지르지 못했다. 함께 있던 경위병들은 장공주에게 함부로 손을 댈 수 없어, 그저 경고만 할 뿐이었다. “그만하시오. 그녀를 놓으시오.” 장공주는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얼굴의 반을 가려 음침하기 이를 데 없었다.“너 따위가 감히 나에게 명령을 해? 다시 한번 지껄여보거라!” 그녀는 림봉아의 머리카락을 잡은 채 경위병들에게 다가갔다. 경위병들은 그녀를 건드릴 수 없어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그때 승상부인이 다가오더니 장공주의 따귀를 힘껏 날려버렸다. “내가 쳤다. 어쩔 테냐? 이 미친년아!” “네가 감히!” 장공주는 림봉아를 놓고 승상부인에게 달려들었다. 이제는 그냥 둘 수 없었던 경위병들이 급히 그녀를 막아섰다. 장공주는 승상부인에게 닿지 못하자 경위병의 얼굴을 긁으며 발광했다. 얼굴이 긁혀 피투성이가 된 경위병들은 계속 난폭하게 구는 그녀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그렇게 앞으로 넘어진 장공주는 이마가 바닥에 세게 부딪히고 말았다.승상부인이 차갑게 명령했다. “밧줄을 가져오거라. 너희가 묶지 못하겠다면, 내가 직접 하겠다.” 경위병들은 급히 밧줄을 가져왔다. 승상부인의 명령이 떨어졌기에 그녀가 직접 나설 필요 없었다. 명을 받은 경위병들이 장공주를 기둥에 단단히 묶었다.장공주의 이마에는 커다란 멍이 들었다. 그녀는 미친 사람처럼 계속 몸부림쳤지만, 단단히 묶인 터라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녀는 증오에 찬 눈빛으로 승상부인을 노려보며 거친 목소리로 욕설을 퍼부었다. “나는 이 나라의 장공주다! 네가 감히 황족을 모욕했으니, 너와 네 집안은 죄를 면치 못할 것이다! 네 놈들은 전부 참형을 당할 것이다!” 하지만 승상부인은 차갑게 대꾸했다. “미친 척은 그만하거라. 한 짓이 있으니, 그에 따른 결과도 받아들여라. 네가 미쳤든 아니든, 국법은 모두를 공정하게 처벌할 것이다.” 장공주의 쉰 목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사여묵의 심각한 표정에 그들은 서원 지하에 뭔가 큰일이 터졌음을 직감했다. 사여묵이 자리에 앉자마자 송석석이 차 한 잔을 따라 건네며 말했다. “먼저 물 한 잔 마셔요. 제가 곧 데워둔 음식을 가져오게 할 겁니다.” 사여묵은 지하 감옥에서 아무것도 먹지 못했으니 분명 배가 고플 터였다. 물 한 컵을 단숨에 마셔버리는 것을 보니 꽤나 목이 말랐던 모양이다.분부를 마친 송석석이 다시 서재로 돌아왔다. 사여묵은 그들이 묻기도 전에 입을 열었다. “당신 당숙 일가는 무사하오. 다행히 심한 고초는 없었고, 그저 지하 감옥에 갇혀 겁만 먹었을 뿐이오.” 송석석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당숙께서 진짜로 잡혀갔던 거군요.” “그렇소. 그가 있어서 처와 자식들이 그나마 놀라지 않았던 것 같소.” 사여묵은 스스로 다시 물을 따라 마신 뒤 말을 이었다. “지하 감옥에 갇힌 자들은 대부분 고부진의 첩들이었고 모두 구출했지만, 많은 이들이 상처를 입고 불구가 되었소. 잔인하기 이를 데 없었소. 서원 지하 감옥에는 무기와 갑옷, 화약까지 숨겨져 있었고 반란을 일으키면 장공주가 무기와 갑옷을 제공하기 위함이었소.” 송석석은 눈을 반짝 빛났다.“역시! 저는 처음부터 서원이 단순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무기를 공주부에 숨기다니, 이리도 대담할 줄은 몰랐네요. 만약 발각되면 큰일 날 텐데, 그녀는 어찌 그런 위험을 감수할 생각을 했을까요?” 염 선생이 대답했다. “만약 친왕부였다면 감히 그런 일을 하지 못했겠지요. 어느 누가 공주부에 지하 감옥이 있을 것이라 상상이나 하였겠습니까? 더욱이 공주부는 수색하기 어려운 곳이니, 무기를 숨기기에 가장 안전한 곳이었을 것입니다. 무기가 있어도 쉽게 발견되지 않을 테니까요.” 사여묵도 고개를 끄덕였다.“맞소. 천재지변 같은 큰 일이 아니라면, 아무도 감히 공주부를 수색하려 하지 않소. 그래서 공주부를 선택한 것이고 가장 안전하다 생각했을 것이오.” 장공주와 연왕이 결탁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
염 선생이 말했다. “이번 일은 단순히 사람을 구출한 것만이 아니라, 큰 사건을 밝힌 것이라 우리 북명왕부가 감당할 수 있는 무게는 아니지요. 목숨을 걸고 싸운 이가 그 공을 가져가는 것이 당연합니다. 전북망에 대해선 더 이상 말하지 맙시다. 장군께서는 어서 식사하시고 씻으셔야 합니다.”염 선생은 더 이상 전북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화제를 돌렸다. 왕비가 불편해할까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여 식사를 재촉하고 되도록 빨리 씻을 것을 권할 셈이었다. 몸에 풍기는 감옥의 냄새가 너무 지독하기도 했다.하지만 시만자는 여전히 불만스러웠다. “어쨌든 전북망이 우리 계획에 끼어들어 공을 세운 건 정말 불쾌합니다. 차라리 필명이 그 공로를 가져갔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지요.” 시만자는 전북망이 송석석에게 상처를 주고 그녀의 지참금까지 탐낸 일을 절대 잊을 수 없었다. 비록 그들과 함께 전장에 나갔었지만, 시만자는 전북망을 결코 같은 부류로 보지 않았다. 그녀는 전북망을 항상 경멸했다.염 선생은 웃으며 말했다. “필명도 분명히 공로를 세웠습니다. 전북망이 모든 공을 가져간 것이 아니니, 너무 개의치 마십시오. 그리고 전북망이 혼자 지하 감옥에 들어간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 진짜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시만자는 송석석을 바라보며 물었다. “석석아, 넌 어때?” 송석석은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말해서 과거를 떠올리면 마치 전생에 있었던 일처럼 느껴져. 너무 오래된 일이라 장군부에 시집간 적도 없었던 것처럼 말이야. 심지어 ‘전북망’이라는 이름도 낯설어. 그러니 완전히 낯선 사람으로 여길래.” 시만자도 마지못해 말했다.“좋아, 그럼 아주 불쾌한 낯선 사람으로 생각하자.” 송석석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사여묵은 송석석을 한 번 쳐다보았다. 과거의 일에 대해서 그다지 개의치 않았지만, 송석석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 좋았다. 그녀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이것이 그녀의 진심이라는 것을 사여묵은 느낄 수
연왕은 그제서야 자신이 정말로 패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입술을 덜덜 떨었고,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린듯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당황함과 두려움이 끊임없이 밀려와, 역대 왕조들 중 역정의 후과를 떠올리니 온몸이 싸늘하게 굳어갔다. 이전에도 비록 실패했을 경우를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는 기껏해야 자신의 목숨을 끝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포로가 되어 비녀까지 빼앗겨 산발이 된 채로 이곳에 갇혀 버렸다. 세 면이 창살이고 한쪽만 벽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단단했지만 머리를 박는다고 해도 죽을 수 있을지는 몰랐다. 감옥 밖에는 사람이 지키고 있어, 박는다고 해도 아프기만 할 뿐 고생할 것이 뻔했다. 그는 화를 참을 수 없어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왜 이 지경까지 이른 것이지? 설령 실패하더라도 내 곁엔 생사를 함께 하는 사람들이 남아 있어야 하건만, 지금은 곁에 사람은 있지만 한마음이 아니다.’ 그러고는 분노와 증오가 찬 눈빛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희가 날 배신하고 좋은 결과가 있을 줄 알았느냐? 결국은 나와 함께 갇힌 죄수가 되지 않았느냐? 사청엄이 너희를 구해준다더냐?” 죽음이 두려운 회왕은 그 말을 듣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무상의 곁으로 가서 그의 소매를 덥석 잡았다. “대체 무슨 상황이오? 그들이 우릴 구하러 오긴 온 단 말이오…? 말 좀 해 보오. 죽더라고 이런 건 알고 죽어야 하지 않겠소!” 그러자 무상이 거칠고 참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도 우릴 구하러 오지 않을 것입니다. 추몽과 하상지가 모두 오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들은 성 밖에서 매복 공격을 당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는 보름 동안 포위되어 소식이 늦으니 아마도 목종욱은 일찍 각처의 대란을 평정하고 매복해 있었을 것입니다.”무상의 말을 들은 회왕의 눈빛은 절망으로 변했다. ‘어쩐지 그들이 성을 포위하고 공격하지 않더라니, 지금 보니 목종욱을 기다리고 있었구나. 어떻게 이런 실수를 할 수 있는 거지? 애초에 사청엄의
야외에서의 전쟁 또한 싸우면서 물러설 수 있기 때문에 유리한 위치에 있기만 하면, 상황은 쉽게 되돌릴 수 있었다.그래서 방시원은 그들의 퇴로를 차단하고 이길 때까지 그들이 도망갈 수 없게 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한편, 연주 성내에서 무상도 붙잡혀 연왕 등의 사람들과 함께 갇혔다.그 모습에 회왕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무상 선생, 당신은 대체 왜 잡힌 것이오? 추몽이 전패했소?”무상의 옷은 엉망진창이 됐고 온몸에 상처가 났으며 입가의 고인 피는 굳어 낭패하기 그지없었다.연왕은 아직도 자신이 배신당했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고 밤새도록 왜 아무도 자신을 구하러 오지 않는지 걱정만 했다. 그러고는 추몽을 바랄 수는 없는 것 같으니,하상지라도 오길 바랐다. 왜냐하면 하상지는 반드시 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하지만 무상까지 갇힌 것을 보자, 마지막 희망조차 사라져 버렸다.그는 이전에 자신의 몸으로 적을 성으로 유인하려고 할 때 실패할 가능성을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반면, 회왕은 아니었다. 그는 줄곧 추몽과 하상지가 도착하기만 하면 경군을 모조리 섬멸할 수 있다고 했기에, 무상이 갇히는 것을 보고 당황해하며 말했다.“어서 말해보시오! 대체 어떻게 된 거요? 추몽이 전패한 것이오, 아니면 오지 않는 것이오?”무상은 입을 오므리고 있었는데, 그의 눈 밑에는 여전히 굴복하지 않는 기색이 띠었다.그는 결국 두괴산으로 도망치기로 결정했고 상황이 돌이킬 수 없을 때가 되어서야 곧장 진성으로 달려가 영군왕에게 의지하려 했지만 너무 늦은 뒤였다. 두괴산은 이미 경군에 의해 봉쇄되어 도망칠 수 없었기에, 무상은 그렇게 그들에게 체포가 된 것이었다. 그러자 회왕이 화가 잔뜩 난 목소리로 소리쳤다.“말을 안 하는 걸 보니, 정말 추몽이 안 왔다는 말이오?! 추몽이 왔다면 하룻밤 만에 전패하지는 않을 것인데. 우린 그들에게 속은 것이오… 무상, 모두 당신 때문이오. 당신이 영군왕에게 의탁하고 셋째 형을 배신하라고 하지 않았소? 우린 당신과 영군왕에게 속은 것이오!
김수덕도 어리둥절해서 말했다. “나도 모르겠소. 분명히 추몽 선생이 직접 말씀하셨는데 말이오.” 그러자 무상은 점점 두려움이 앞섰다. 추상이 평소에 시간을 정하면 일찍 오면 왔지 늦은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설마 도중에 매복이라도 당했단 말이오? 그럴 리가 없소. 전에 조사한 바로는 목종욱의 병마가 분리되어 비적을 토벌하고 있다고 했소. 지금쯤 이미 월지로 갔으니 돌아올 리가 없소.” “만약 병마가 도중에 가로막았다면 추몽 선생은 바로 사람을 보내 통지할 것이오.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그들에게 정탐꾼이 있는 것 같소.” 김수덕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공포에 가득 찬 말투로 물었다. ‘무상 선생, 이제 어떡한 단 말이오? 우리는 경군을 이길 수 없소.” 무상은 심호흡을 몇 번 한 후에 진정하고 말했다. “그러니 지금 우린 탈출하여 추몽과 합류할 수밖에 없소.” “하지만 그렇게 되면… 연주는 함락될 것이오.” 김수덕이 조급해져서 말했다. “가족이 이렇게나 많은데 어찌 탈출한 단 말이오? 그들이 성문을 막고 있는 탓에 두괴산으로 밖에 도망갈 수 없소. 노약자와 아이들이 이렇게 많은데 대체 어찌 두괴산으로 도망간단 말이오?” 그러자 무상이 연황실의 하인과 호위를 지휘하며 말했다. “그런 것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소. 일단 우리 먼저 탈출하고 다시 계획을 짜봅시다. 방시원은 평민을 죽이지 않으니 가족들은 무사할 것이오.” 김수덕이 급히 뒤뜰로 달려갔는데, 측비 김 씨는 이미 소식을 들은듯 짐을 싸고 있었다. 그녀는 무상의 분석을 듣지 않아도 지금 도망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연왕의 아들 딸들 또한 모두 놀라서 비싼 물건을 정리하려고 했으나 하인들은 전혀 말을 듣지 않았고, 심지어는 장신구를 모두 빼앗아 뒷문으로 도망쳐 버렸다. 김수덕이 검을 들고 연달아 몇 명을 죽이고 나서야 하인들이 더 이상 날뛰지 않았다. 측비 김 씨가 오라버니의 손을 덥석 잡고 말했다. “오라버니, 얼른 사람을 파견해 우리가 도망가는 것을 보호해 주
두 지역에서 전쟁이 벌어질 때 무소위는 이미 무림인들을 데리고 영주에 도착했다. 시간까지 모두 잘 맞춰져 있었는데 이때쯤이면 영주에 일을 결정지을 만한 사람이 없었고 싸울 수 있는 병사들은 거의 출동하여 천 명의 사람과 관아의 관리만이 남아서 영주를 지키고 있었다. 무소위는 영패를 들고 곧장 지부의 관아로 가서 지부를 파면하고 관아를 차지했다. 그와 동시에 시 씨 가문의 가주는 직접 여러 표국과 상회의 호위들을 이끌고 왔다. 노 휘왕의 영패가 있어 영군황실이 모두 봉쇄되었기 때문에 영주는 가장 공략하기 좋은 곳이었다. 더불어 영군황실에는 더 이상 노휘왕의 사람은 없었고 예전의 사람들은 모두 마을로 쫓겨난 상황이었다. 무소위는 관아를 점거한 후, 사람을 이끌고 영군황실로 가서 사람들을 모두 체포하고 고문 끝에 그들이 연락하는 암호를 모두 알아냈다. 게다가 추몽이 기르던 전서구까지 모두 챙겼다. 전서구는 정해진 노선이 있었는데 그중 몇 마리는 특별히 영군왕에게 연락하는 데만 사용되었다. 추몽이 대승하면 전서구의 다리에 붉은 비단을 묶고 실패하면 전서구의 다리에 흰색 비단을 묶었다. 만약 전황이 교착되어 승부를 가리기 어렵다면 전서구의 다리에 아무것도 묶지 않고 보내 소식을 알린 것이었다. 그리고 각종 은밀한 언어를 사용했는데 이는 전서구가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가 정보가 새어 나가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했다. 심지어, 참모들이 제출한 암어록에는 암어의 뜻이 모두 기록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돼지, 개, 소, 말, 늑대, 호랑이, 뱀, 여우 등의 호칭이 있었는데 참모들의 진술에 따르면 모두 지정된 상대가 있다고 했다. 돼지는 연왕, 개는 회왕, 뱀은 숙청제, 늑대는 송석석, 호랑이는 사여묵, 그리고 용은 자기 자신이었다. 그중 승상과 육부상서는 그들만의 호칭이 있다고 했다.그리고 영군왕과 역모를 꾸민 사람들이 주고받은 편지도 찾아냈는데 그중 많은 단어들을 알아볼 수 없었다. 다만 시 씨 가주와의 서신 왕래는 명확했는데 생명을 구해준 은혜로 그
무상이 직접 보내 연왕과 회왕은 함께 성문에서 압송되었다. 회왕은 인수할 때 무상이 자신을 풀어줄 줄 알고 있엇는데, 경군들이 그들을 억류할 때까지 무상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자 당황해서 허우적거리며 의문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무상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안심하라는듯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는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전에도 그를 묶어 놓고, 나중에 같이 나간다고 했지만 결국엔 셋째 형만 넘겨주겠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무상이 자신까지 경군에게 넘기는 것을 본 회왕은 그가 자신까지 진성으로 보내려고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들자 당황해서 크게 소리쳤다. “나는 무죄요! 내가 연왕을 체포한 것이니 난 놔주오!” 그러자 방시원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어리석긴.” “무상…!” 회왕의 얼음처럼 차가워진 눈빛으로 무상을 바라보았다. 그는 사나운 표정에서 이내 애원하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무상 선생, 당신은 내가 억울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소…? 얼른 방 장군에게 말해주시오!” 하지만 무상은 눈을 내리깔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저희 황제폐하께서 유무죄를 잘 판단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니 전하께서는 안심하십시오.” ‘저희 황제폐하’라는 말을 힘 있게 말하자 회왕은 일말의 희망을 잡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 때가 되어 추몽이 병마를 이끌고 쳐들어오면 경군의 목숨은 모두 연주에 남게 될 테니 난 당연히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야. 하지만 정말 그런 거라면 무상이 왜 미리 말하지 않는 것이지?’ 그는 마음속으로 걱정하면서도, 자신을 위로했다. ‘나는 그들의 비밀을 알고 있어. 그들이 정말로 날 버린 것이라면 직접 죽이겠지 왜 방시원의 손에 넣겠어? 내가 추몽이 병마를 이끌고 성을 포위해서 습격할 것을 말할까 봐 두렵지도 않나?’그가 다시 고개를 들어 무상을 바라보자, 무상이 그를 향해 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그제야 마음이 놓이는 것 같았다. 어떻게 되었든 경군은 연주를 떠
연왕은 이번 협상이 단지 허위 계략일 뿐이며, 자신이 결국 방시원에게 넘겨져 그를 성 안으로 유인하는 미끼로 사용될 것이라는 사실을 역시나 몰랐다.방시원이 협상에 동의하며 단독으로 이동했고, 무상 또한 단독으로 이동했다. 양측 뒤에는 호위병이 따랐으나 모두 열 장 떨어진 거리에서 머물렀다.무상은 자신과 연주의 대다수 관리들이 연왕의 반란 계획을 알지 못했으며, 설령 알았던 사람들이라도 연왕의 세력에 눌려 감히 말하지 못했음을 설명했다.그러나 방시원은 이를 믿지 않았다. 방시원은 그들이 모두 오래전부터 음모를 꾸민 자들이라고 단언했었기에, 그의 태도는 매우 강경했으며, 이는 무상에게 그가 영군왕의 배후와 비밀 병력의 존재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는 확신을 줄 수 있었다.무상은 그의 태도를 통해 확인하려 했을 뿐 아니라 추몽을 굳게 신뢰하고 있었다.이 신뢰와 존경은 그가 시씨 가문을 설득했다는 점에서 비롯되었다.무상과 연왕은 오랫동안 시간 시씨 가문을 공략했었지만, 시철진은 결코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었다. 그들이 처음으로 연왕을 배신하기로 결정한 것도 바로 이 점에서 영군왕의 실력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무상은 참모이니 자연히 승산 있는 자를 따라야 했다. 연왕은 이미 몰락하였으니 그를 따라 계속 반란을 도모한다면 죽음뿐이었다.협상 과정 자체는 사실상 중요하지 않았다. 양측 모두의 목적은 성에 들어가는 것이었고, 단지 각자 계산이 다를 뿐이었다.무상은 해가 저물어가는 것을 보며 생각했다. 추몽이 요구한 대로 해가 지기 전, 방시원의 군대를 성 안으로 유인해야만 했다. 지금까지 남은 시간은 한 시진 남짓이었다.그래서 협상은 오래 지연되지 않았다. 무상은 연왕을 그들에게 넘기기로 동의했지만, 방시원에게 반드시 약속을 지켜 진성으로 돌아간 뒤 관대한 처분을 황제께 청할 것을 요구했다.사실 연왕을 넘기는 것은 필수적이었다. 그래야 방시원의 경계를 느슨하게 할 수 있으니 말이다.수장이 없으면 방시원은 그들이 더는 큰일을 벌일 수 없다고 생각할
방시원은 이미 첩자의 보고를 받아 몇몇 신비한 부대가 영주 밖에서 합류하여 연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그보다 더 일찍, 그는 염선생으로부터 받은 서신을 통해 연왕이 항복하는 척하며 군대를 성 안으로 유인한 뒤, 안팎에서 협공을 가하려 한다는 정보를 받았었기에, 연왕이 단지 영군왕의 한 수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알았다.방시원은 오랫동안 정보 첩자로 일한 경험이 있어, 이런 두세 개의 정보만으로도 실제 상황을 분석하고 전략을 세울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한편, 노홍과 제방은 원래 진성에 남아 있어야 했지만, 어제 갑작스럽게 연주 밖에서 그와 합류하게 되었는데, 방시원은 처음에 진성이 가장 위험할 때에 왜 이 둘을 보낸 건지 의아해했다. 하지만 송대감의 사부이자 만종문의 문주가 직접 진성에 왔고, 심지어 많은 무림인을 데리고 내려와 지원 중이라는 제방의 설명을 듣고 이내 안심했다.일반적으로 무림인은 조정의 다툼에 관여하지 않지만, 만약 반란이 발생하면 정의를 지키기 위해 산에서 내려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방시원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만종문의 문주 임양운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지략과 용맹을 겸비하면서 묵가의 기술에 능했고, 특히나 기계 무기 분야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육안통 또한 그의 손에 의해 개량되었으니 말이다.그가 진성을 지키고 있으니 영군왕은 결코 뜻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이틀 후, 정말로 염선생의 말대로 연주 성벽 위에서 누군가의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방 장군, 우리는 이미 역적 연왕과 사청엽, 회왕과 사청엄을 붙잡았습니다. 많은 관리와 병사들은 그들에게 미혹당했을 뿐 반역할 의도는 없었으며, 지금은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공적을 세움으로써 죄를 보상하려하니 방 장군께서는 성에 들어와 상의해 주시길 바랍니다.”소리치는 사람은 김수덕으로, 측비 김씨의 오라버니였다.방시원은 천리경을 들어 확인해보았다. 김수덕 옆에는 무상이 서 있었고, 연왕과 회왕은 온몸이 결박된 채 대검이 그들의 목에 겨누어져 있었
밤이 되자, 김수덕이 첩자를 데리고 돌아와 급히 보고했다."왕야, 하상지가 이미 흩어져 있던 병력을 모두 소집하였으며, 시씨 가문의 군마 500필을 얻었습니다. 지금 돌아오는 중으로, 걸음 속도로 보아 사흘 뒤 도착할 것입니다."연왕은 벌떡 일어나며 크게 기뻐했다."정말인가?!""정말 확실합니다! 첩자가 바로 문밖에 있으니 왕야께서 직접 물어보십시오 .""어서 들여 라!"연왕의 가슴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마침내 병력을 모두 소집하게 되었지만, 시씨 가문에서 군마 500필이 나온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시만자의 사건 이후로 시씨 가문과는와는 이미 갈라선 사이였는데 말이다.그때 첩자가 들어와 한쪽 무릎을 꿇고 말했다."왕야, 하대감께서 소인을 보내 보고하도록 하셨습니다. 사병은 모두 소집되었으며, 영군왕의 참모인 추선생도 5천 병력과 500필의 군마를 이끌고 지원한다고 했습니다. 단, 영군왕의 요구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노 휘왕을 구출하는 것입니다."연왕은 영군왕이라는 말을 듣고 잠시 멍해졌다. 그는 이전에도 영군왕을 끌어들이려 했지만 그의 태도는 모호하기만 했고, 도저히 속내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이미 영군왕을 배제한 상태였다.이번에는 오히려 처음에는 동조했던 사람들이 모두 발을 뺀 상황에서 영군왕이 나서준 것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그의 아버지인 노 휘왕은 진성에 있었지만, 실상은 인질로 잡혀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사청엄이 화가 난 것은 당연했다.그는 사청엄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학문이 깊고 의젓한 군자였고, 효심이 깊어 그의 효성은 강남 전역에 알려져 있었다.노 휘왕이 홀로 진성에 갇혀 있는 상황에서 사청엄도 어쩔 수 없이 이쪽으로 손을 내밀었을 것이다.연왕은 즉시 사람들을 소집하여 사흘 뒤의 계획을 논의했다.그는 거짓 항복 계략에 동의했다.무상이 처음 이 계략을 제안했을 때는 상당히 위험하다고 생각했었지만, 이제 안팎으로 협공만 할 수 있다면 방시원을 속여 성 안으로 유인해 잡는 것이 가능할 것 같
노 휘왕은 두 주먹을 움켜쥔 채 뒤따라갔다.의원이 진찰한 결과, 정삼숙의 두 다리는 부러졌고 이가 세 개나 빠졌으며 얼굴의 여러 뼈에도 골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노 휘왕을 향해 웃으려 했다. 고통에 일그러진 몰골이었지만 끝내 웃음을 잃지 않으며, 게속 괜찮다고 했다.노 휘왕은 순간 마음이 아파져 고개를 돌렸다. 평생을 함께한 사람이 이런 참혹한 꼴을 당했으니,그는 분노하면서도 동시에 무력감을 느꼈다.그의 영패는 이미 영주에 있을 때 하나 더 만들어 두었었다. 이는 혹시 누군가가 후에 영패를 훔쳐 그의 부하들을 지휘하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 다른 영패를 사용해 이를 저지하기 위해서였다.그렇기에 지금 이 상황에서 쓰이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한편, 수로 작업의 혼란은 빠르게 진정되었고, 김창명은 관리 소홀의 책임으로 체포되어 황실 감옥에 갇힌 탓에 이후 수로 작업은 선평후가 직접 감독하게 되었다.하도사의 다른 관리들도 모두 직무 태만의 문제로 교체되었다.이렇게 모두 겉으로는 김창명이 수로 작업을 책임지고 있는 듯 보였지만, 숙청제와 송석석은 실제로 이미 내부에 또 다른 지도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김창명이 죽는다고 해서 큰 영향은 없을 것이었기에 사청엄은 조금도 급하지 않았다. 그는 추몽의 좋은 소식을 기다리고만 있었다.연주에서의 연왕은 이미 마음이 불안해진듯 가만히 앉아 있질 못했다.방시원이 성을 포위한 지 2주나 넘었지만 아무런 움직임이나, 공격의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기에더욱 초조해진 것이다. 성을 포위했다는 말은 외부의 소식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또한, 각지에 퍼뜨린 도적들의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목종욱이 방시원과 합류했는지, 그리고 진성의 상황이 어떤지도 전혀 알 수 없었다.포위된 상황에서도 소식을 완전히 차단할 수 없었다. 단지 시간이 오래 걸릴 뿐, 산길을 타고 밀림을 넘어가면 연주에 충분히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즉, 만약 소식이 도착했다면 그것은 열흘 전의 상황일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