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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5화

작가: 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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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여묵의 심각한 표정에 그들은 서원 지하에 뭔가 큰일이 터졌음을 직감했다.

사여묵이 자리에 앉자마자 송석석이 차 한 잔을 따라 건네며 말했다.

“먼저 물 한 잔 마셔요. 제가 곧 데워둔 음식을 가져오게 할 겁니다.”

사여묵은 지하 감옥에서 아무것도 먹지 못했으니 분명 배가 고플 터였다.

물 한 컵을 단숨에 마셔버리는 것을 보니 꽤나 목이 말랐던 모양이다.

분부를 마친 송석석이 다시 서재로 돌아왔다. 사여묵은 그들이 묻기도 전에 입을 열었다.

“당신 당숙 일가는 무사하오. 다행히 심한 고초는 없었고, 그저 지하 감옥에 갇혀 겁만 먹었을 뿐이오.”

송석석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당숙께서 진짜로 잡혀갔던 거군요.”

“그렇소. 그가 있어서 처와 자식들이 그나마 놀라지 않았던 것 같소.”

사여묵은 스스로 다시 물을 따라 마신 뒤 말을 이었다.

“지하 감옥에 갇힌 자들은 대부분 고부진의 첩들이었고 모두 구출했지만, 많은 이들이 상처를 입고 불구가 되었소. 잔인하기 이를 데 없었소. 서원 지하 감옥에는 무기와 갑옷, 화약까지 숨겨져 있었고 반란을 일으키면 장공주가 무기와 갑옷을 제공하기 위함이었소.”

송석석은 눈을 반짝 빛났다.

“역시! 저는 처음부터 서원이 단순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무기를 공주부에 숨기다니, 이리도 대담할 줄은 몰랐네요. 만약 발각되면 큰일 날 텐데, 그녀는 어찌 그런 위험을 감수할 생각을 했을까요?”

염 선생이 대답했다.

“만약 친왕부였다면 감히 그런 일을 하지 못했겠지요. 어느 누가 공주부에 지하 감옥이 있을 것이라 상상이나 하였겠습니까? 더욱이 공주부는 수색하기 어려운 곳이니, 무기를 숨기기에 가장 안전한 곳이었을 것입니다. 무기가 있어도 쉽게 발견되지 않을 테니까요.”

사여묵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천재지변 같은 큰 일이 아니라면, 아무도 감히 공주부를 수색하려 하지 않소. 그래서 공주부를 선택한 것이고 가장 안전하다 생각했을 것이오.”

장공주와 연왕이 결탁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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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 선생이 말했다. “이번 일은 단순히 사람을 구출한 것만이 아니라, 큰 사건을 밝힌 것이라 우리 북명왕부가 감당할 수 있는 무게는 아니지요. 목숨을 걸고 싸운 이가 그 공을 가져가는 것이 당연합니다. 전북망에 대해선 더 이상 말하지 맙시다. 장군께서는 어서 식사하시고 씻으셔야 합니다.”염 선생은 더 이상 전북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화제를 돌렸다. 왕비가 불편해할까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여 식사를 재촉하고 되도록 빨리 씻을 것을 권할 셈이었다. 몸에 풍기는 감옥의 냄새가 너무 지독하기도 했다.하지만 시만자는 여전히 불만스러웠다. “어쨌든 전북망이 우리 계획에 끼어들어 공을 세운 건 정말 불쾌합니다. 차라리 필명이 그 공로를 가져갔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지요.” 시만자는 전북망이 송석석에게 상처를 주고 그녀의 지참금까지 탐낸 일을 절대 잊을 수 없었다. 비록 그들과 함께 전장에 나갔었지만, 시만자는 전북망을 결코 같은 부류로 보지 않았다. 그녀는 전북망을 항상 경멸했다.염 선생은 웃으며 말했다. “필명도 분명히 공로를 세웠습니다. 전북망이 모든 공을 가져간 것이 아니니, 너무 개의치 마십시오. 그리고 전북망이 혼자 지하 감옥에 들어간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 진짜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시만자는 송석석을 바라보며 물었다. “석석아, 넌 어때?” 송석석은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말해서 과거를 떠올리면 마치 전생에 있었던 일처럼 느껴져. 너무 오래된 일이라 장군부에 시집간 적도 없었던 것처럼 말이야. 심지어 ‘전북망’이라는 이름도 낯설어. 그러니 완전히 낯선 사람으로 여길래.” 시만자도 마지못해 말했다.“좋아, 그럼 아주 불쾌한 낯선 사람으로 생각하자.” 송석석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사여묵은 송석석을 한 번 쳐다보았다. 과거의 일에 대해서 그다지 개의치 않았지만, 송석석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 좋았다. 그녀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이것이 그녀의 진심이라는 것을 사여묵은 느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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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여묵은 잠시 고민하는 척하다 대답했다. “무장들에 대해서는 아직 특별히 의심할 만한 사람은 없습니다.” 썩 만족스러운 답변은 아니었지만 숙청제는 격분하지 않았다. “대리사는 이 사건만 처리하거라, 내가 따로 사람을 보내 조사할 것이다.” “예, 폐하.” 숙청제는 엄지손가락의 옥반지를 돌리며 말했다. “전에 듣기로 당분간 자녀를 가질 생각이 없다고 했던가?” “그렇습니다, 아직 계획이 없습니다.” 숙청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말했다. “석석은 현갑군의 부지휘관이고 너는 이미 대리사 경이 되었으니, 현갑군 지휘관 자리는 내려놓거라. 나는 석석이를 현갑군 지휘관으로 임명할 생각이다.” 사여묵은 조금 놀랐다.“폐하, 실권이 있는 자리로 말입니까?” “그렇다. 그 애가 바로 그 자리에 오를 것이다.” 사여묵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폐하, 조정에 여인이 장군으로 임명된 전례는 있으나, 관직을 맡은 선례는 없습니다.” “그런 선례는 만들면 그만이다.” 사여묵은 황제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었다. 송석석에게 황실의 치안을 맡기는 것은 그를 더 이상 경계하지 않겠다는 뜻인지, 아니면 의도가 있는 것인지.“석석이는 여고를 세우고 싶다며 일찍 부지휘관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한 적이 있고 명예직이었기에 사직하지 않았던 것일 뿐입니다.” “그러면 사직할 필요는 없고 명예직도 아니니라. 현갑군은 경위와 금군을 포함하고 있으니, 실권을 가지게 될 것이다. 석석이가 나를 실망시키지 않기를 바란다.” 사여묵이 아무 말 없자 숙청제가 웃으며 물었다. “왜 그러느냐? 석석이에 대한 믿음이 없는 것이냐 아니면 감당하지 못할까 두려운 것이냐? 것도 아니면 세상에 보여주고 싶지 않고 집안에만 가두고 싶은 것이냐?” 이에 사여묵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는 그녀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무엇이든 지지합니다. 다만 그녀는 관직을 원하지 않았고, 여고를 세우고 싶다는 소망을 말했을 뿐입니다. 폐하, 신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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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001화

    혜 태비는 아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즐기지 않았다. 두 사람의 입맛이 워낙 다를 뿐만 아니라 대화도 몇 마디 나누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태후는 한 달에 몇 번은 함께 식사를 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나 당부했다. 하인들이 입방아를 찧으며 사여묵과 석석이 불효한다는 소문을 퍼뜨릴까 걱정했기 때문이다.'휴, 사람 사는 게 원래 다 이런 거지. 항상 여기저기서 얽매여 원하는 대로 살 수는 없으니 말이야.'고 씨 유모는 늘 혜 태비를 향해 복을 누리면서도 그 가치를 몰라본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그녀는 세상에 진정으로 아무 걱정 없이 행복하기만 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좋은 나날을 보내더라도 그 나름의 걱정이 있고,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라 해도 그 부유함에 따른 고민이 있는 법이니 말이다.아무튼 그녀는 기쁠 때는 마음껏 기뻐하고, 고민이 있을 때는 누구도 자신에게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다. 그녀는 고민하는 것도 자신의 권리라고 여기는 사람이었다.사여묵과 송석석은 말이 많은 성격이 아니었기에 보통 시만자를 불러 함께 식사를 했다. 시만자는 분위기를 밝게 만드는 데 능숙하여 지루하고 딱딱한 식사 시간을 흥미롭고 생기 있게 바꿔 놓곤 했다.한편, 전북망은 결국 사직하지 않았다. 며칠 후 관복을 다시 입고 풀이 죽은 채 복직했다.숙청제는 그를 다시 불러들여 얼굴에서 조금이라도 투지를 읽으려 했으나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전북망은 마치 집을 잃은 개처럼 온몸에서 나약함과 패배감만 뿜어냈다.숙청제는 속으로 크게 화가 치밀었다. 전북망을 순수한 신하로 만들어 잘 훈련시키면 훗날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었기 때문이다. 적을 토벌하고 전장을 누빈 경험이 있는 무장이자, 몰락한 가문의 출신으로 황제의 은혜에 깊이 감사할 줄 아는 전북망은 최소한 충성심 하나만큼은 믿을 수 있는 인물이었다.하지만 숙청제는 이제서야 깨달았다. 충성심이 중요한 건 맞지만 능력이 없는 충성심은 쓸모없다는 사실을 말이다.숙청제는 전북망이 조금 더 분발하여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000화

    시만자는 늘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바라보곤 했다. 그녀는 잠시 침묵하더니 고개를 돌려 송석석에게 물었다. “황제가 직위를 강등하고 녹봉을 삭감한 것에 불만을 품고 그만두겠다고 한 거 아닌지?”전북망이 그런 생각인지 아닌지 그녀는 몰랐지만 확실했다. 집에서나 사부님이나 기대보다 적게 주면 그녀는 자기 이익을 지키기 위해 일부러 더 발끈하고 나섰다. 송석석의 어두운 안색에 그녀는 즉시 말을 돌렸다. “전북망 말은 그만하자. 전북망 얘기만 나오면 머리가 아프구나. 폐하께서 사직을 불허하셨으니 더 이상 꼴불견을 부리지 못할 것이다.”모두들 다른 주제로 대화를 돌리며 청단을 먹었다. 사여묵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기에 보주는 왕야을 위해 일부분을 남겨두자고 했다.모두가 떠난 후, 시만자가 송석석에게 물었다. “사실 사직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 저런 사람이 어떻게 현철위 사령관 자리에 어울리겠어?”송석석이 답했다. “이 시점에서는 성릉관과 관련된 사람들은 조용히 있는 것이 최선이다. 어떤 식으로든 논란을 일으키지 않는 게 중요하지. 그가 사직하든, 폐하가 그를 해임하든 얘기는 외조부와 외삼촌 쪽으로 번질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마음먹은 사람이 빌미를 잡아서 또다시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크지 않겠느냐.”“일리가 있다.” 시만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허나 대체 어떤 문제들이 생길 수 있다는 말이냐?”송석석은 화를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설명했다. “연왕은 줄곧 소가를 성릉관에서 철수시키고 싶어 했다. 녹분성에서 벌어진 일은 서경과 성릉관 모두에 파문을 일으켰으니, 이 일에는 서경과 연왕이 손을 잡고 개입한 게 분명할 것이다. 지금 이방이 첫 번째로 서경에 압송되었고, 외조부에겐 성릉관 총사령관으로서 감독 소홀과 군기 해이의 책임을 물었지. 전북망은 녹분성으로 병력을 이끌고 갔기 때문에 일정 부분 책임을 지게 되었다. 사건 전체를 보면 외삼촌에게까지 연루되지 않았기 때문에 합리적인 처분이지만 전북망이 사직을 청하면 연왕은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999화

    어서방. 숙청제는 눈살을 찌푸린 채 무릎을 꿇고 있는 전북망을 냉랭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사직이라? 잘 생각했느냐?"전북망은 머리를 조아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신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신은 폐하의 큰 은혜를 저버렸고 소가의 신임도 저버렸습니다."숙청제는 분노로 머리가 아파질 지경이었다. "너에게 그토록 큰 기대를 걸었는데 너는 그 기대를 저버리고 관직을 사직하려 하다니 말도 안 되는 짓이다."전북망은 다시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폐하, 신이 무능하고 나약하여 현철위 부사령관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폐하께서 허락해 주시길 바랍니다."이 모습을 지켜보던 오 대반도 참지못하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지금 이 상황에서 한사코 자기가 죄인이라고 운운한다면 황제가 판단력이 흐려졌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숙청제는 한층 차가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며칠간 자숙하고 다시 찾아오거라. 물러가라."전북망은 결국 어쩔 수 없이 일어나 몸을 숙이며 답했다. "예!"그가 물러나자마자 숙청제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오 대반, 전북망에게 가서 진정 소 대장군에게 빚진 마음이 있다면 이 시기에 관직을 내놓지 말라고 전해주어라."오 대반은 명을 받고는 전북망을 쫓아가 말했다. "전 대인, 잠시 멈추십시오."전북망은 잠시 멈춰서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오 공공, 무슨 일이십니까?"그의 멍한 표정을 보고 오 대반은 등을 곧게 펴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 대인, 이렇게 사직을 한다면 소가의 여러 장군들까지 연루될 것입니다. 전 대인은 어전의 사람입니다. 모르는 사람은 전 대인이 면직당한 줄 알 겁니다. 사직을 하려거든 이 시기를 피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소가에 더 큰 누를 끼치는 것이 될 것입니다."그러자 전북망은 크게 놀랐다. "제가 사직하는 것이 소가와 대체 무슨 상관입니까?"오대반이 말했다. “전 대인이 자책감으로 사직을 한다면 소가의 사람들이 어찌하겠습니까? 그들 또한 죄를 자청하며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998화

    필명이 정신을 차렸을 땐 전북망은 이미 술을 절반 이상 마시고 의식을 잃어버린 뒤였다. 더욱 후회가 밀려왔다. 이런 무뢰한을 데려온 자신을 자책하면서도 이렇게 많이 마셔서 죽지 않겠냐는 걱정도 들었다.화가 난 그는 당장이라도 차가운 물통을 가져와 전북망의 머리 위로 쏟아붓고 싶었지만 마치 시체처럼 차가운 전북망의 얼굴을 보니 결국 물을 붓는 것도 망설이게 되었다. 그래도 도저히 그냥 둘 수 없어서 하인을 시켜 마차를 준비하게 하고 직접 전북망을 집으로 데려가기로 결심했다.마차가 덜컹거리자 전북망은 그 안에서 정신없이 토하기 시작했다. 그의 위장에서 올라오는 썩은 냄새가 바깥까지 진동해 마차가 움직이는 내내 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필명은 분노가 폭발한 나머지 마차 안으로 고함을 질렀다. “설마 마차를 배상할 생각이십니까!”사실 이 마차는 그의 부인이 외출할 때 사용하는 유일한 마차라 빌려주는 것을 망설였는데 이렇게 엉망이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필명은 반드시 부인에게 제대로 혼날 것이다.역시 사람은 너무 착하면 안 되고 호기심이 많아서도 안 되었다.곧 마차는 장군부에 도착했고 그는 씩씩거리며 내려와 장군부의 사람을 불렀다.“당장 전 장군을 끌어내거라, 당장!” 전북경과 하인들이 마차 문을 열자마자 끔찍한 악취가 코를 찔렀다. 전북경은 역겨움에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동생을 마차에서 끌어내려 하인에게 그를 안으로 모시라고 했다. 전북경은 필명에게 전북망이 왜 이 정도로 취했는지 물었고 필명은 전북망에게 직접 물으라며 자신은 마차를 씻으러 가겠다고 했다.전북경은 하는 수 없이 필명에게 인사를 건넸고 필명은 불쾌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집에 돌아온 필명은 부인에게 크게 혼났다. “다른 자를 데려오는 건 괜찮다지만 저런 자는 처음부터 데려오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이 마차가 얼마나 중요한 줄 아십니까? 내일 사부님께 청단(떡)을 보내려면 마차가 꼭 필요한데 이젠 어떻게 하실 겁니까? 하필이면 은혜도 모르는 사람을 건드리시다뇨!” 사실 필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997화

    필명의 부인은 전북망을 좋아하지 않기에 하인에게 대강 술안주 몇 가지를 내오게 하고는 이내 방을 나가버렸다. 심지어 하인들마저도 모두 데리고 나가며 그가 냄새난다는 이유로 시중을 들지 않게 했다. 전북망은 그저 술만 홀짝거릴 뿐 안주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필명의 부인이 그를 싫어하는 것을 알았기에 그는 더더욱 우울해졌다."안주도 좀 드십시오. 대체 왜 그러시는 겁니까?"필명이 물었다.전북망은 술잔을 비우더니 갑자기 술상에 엎드려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큰 소리로 우는 것도 아니고 마치 부드러운 베개로 입과 코를 막은 것처럼 답답하게 흐느꼈다.필명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혼자 술과 안주를 즐길 뿐이었다. 전북망은 단지 마음 편히 울 곳을 찾고 싶었던 것 같았다. 그가 왜 우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한참 울던 전북망은 아무도 자신을 위로해 주지 않는 걸 깨닫고는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들었다. 눈가에 쌓였던 먼지와 때가 눈물에 씻겨 나가자 그의 모습은 더없이 우스웠다.필명은 결국 웃음을 떠트리며 물었다. "필 대인도 내가 우스운 게요?" 전북망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는 그저 웃음거리일 뿐이지."필명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덕을 쌓으려면 절대 이렇게 대답해서는 안 된다. 그가 물었다. "왜 댁으로 돌아가지 않는 겁니까?"전북망은 술 두 잔을 단숨에 들이키고 말했다. "돌아간들 어쩌겠소? 가봐야 욕이나 먹고 조롱이나 당할 테지."필명의 입가엔 경련이 일었다. "관직도 포기할 셈입니까? 폐하를 노하게 한다면 장군님의 앞날도 끝나는 겁니다.""어차피 끝난 거나 마찬가지요. 아니, 애초에 나에겐 앞날 같은 건 없었던 걸지도 모르지요. 직위 강등에 3년간의 봉급까지 깎여 집으로 돌아가 폐인처럼 사느니 차라리 밖에서 유랑이나 하는 게 낫겠소. 그러면 더는 폐하의 눈에 거슬리지 않을 테니."필명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러지 마시고 열심히 하십시오. 장군님의 능력과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996화

    오진의 이런 생각은 송석석이 그를 잘못 이끌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황제는 지금 순방영을 정리할 생각이 없었다. 단지 일이 너무 커지지만 않으면 그는 굳이 이런 작은 일에 관여할 생각이 없었고 균형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현재 반역 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비록 연왕과 회왕이 그의 시선에 들어왔지만 아직 명확한 증거는 없다. 그런데 만약 그들을 정리해버리면 연왕이 암암리에 손을 쓸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반역으로 온 가족이 반역자로 취급되는 건 아주 흔한 일이었다.또한 그는 더 깊은 계략을 가지고 있었다. 현갑군을 통제할 수 없다면 현갑군이 완전히 썩어버리게 두어 현철위가 그 자리를 대신하도록 하는 것이 순리였다. 그러나 송석석은 이 무능한 자들이 순방영을 어지럽히는 것에 대해 참을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권력을 쥐면 백성을 학대하는 자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순방영을 완전히 폐지하지 않는다면 철저히 정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순방영은 나라의 봉급을 받는 악당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황제가 움직이지 않는 것은 사건들이 모두 덮여 있어서 그에게까지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속 캐낸다면 어떨까? 사건을 찾아 어사대에 보내고 조정 회의에서 탄핵을 하면 황제는 모른 척할 수 없게 된다. 그녀는 황제와 맞서려는 게 아니지만 현갑군의 사령관으로서 부하들이 백성을 해치고 현갑군의 명성을 더럽히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현갑군은 백성을 보호하는 정예가 아니라 백성을 학대하는 악당으로 전락할 것이다.오진은 곧 명단을 제출했고 송석석도 바로 명단을 확인했다.늦은 밤이 되자, 그녀는 시만자와 홍시를 불러 말했다. “이 몇 사람을 조사하거라.”평사저는 떠날 때 진성에 몇 사람을 남겨 운익각 지부를 열었는데 지부는 망경루에 자리 잡았다. 마침 시만자는 맡은 일이 없어서 운익각 지부를 관리하게 되었고 지금 지부의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우두머리로 모시고 있다.이틀 뒤, 전북망이 형부에서 쫓겨났다.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995화

    정말 형부에 눌러 앉으려는 건가? 신기하기도 하지. 보통 사람은 하루라도 빨리 형부라는 곳을 떠나는 게 정상인데 왜 아직도 형부에 붙어있는 걸까?너무 이상한 일이었다. "왜 일까요?""모르겠소. 오늘 이 대인이 사건 기록을 전하며 말했는데 전북망이 유실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하루에 밥도 한 끼만 먹으며 매일 거기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했소. 원래는 하루만 있을 거라고 했는데 지금은 아예 나가려고 하지 않는다고 하였소.""정말 이상합니다. 혹시 직위마저 포기한 겁니까?" 황제의 처분이 아니라는 말에 송석석도 바로 화제를 바꿨다. "협상 중에 일어난 일들을 폐하에게 보고한 후, 폐하는 조사하지 않으셨습니까?"정영수의 암살 시도는 어찌어찌 넘어갔지만 향병이 장공주에게 독을 준 일은 예전에 비주 사건과 똑같은 독이었으므로 황제도 연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조사는 반드시 할 거요. 아마 오월이가 조사할 것 같소."대리사에서는 비록 반역 사건을 다루고 있긴 하지만 공식적으로 공개되지 않은 일이라 황제는 대리사에게 조사를 맡기지 않을 생각이었다.보주가 들어와 남은 음식을 치우자 궁녀 영씨가 말했다. "왕야님, 왕비님, 목욕은 일찍 준비하셔야 합니다."최근 협상 때문에 사여묵이 살이 빠진 것 같아 궁녀 영씨는 심히 걱정하고 있었다. 협상이 끝났으니 이제는 잘 회복해야 하는데 말이다. 사여묵은 잠시 눈을 깜박이더니 송석석의 손등에 손을 올리고 새끼손톱으로 송석석의 손목 피부를 스치며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빨리 준비해야겠소."설마 이 동작은…?송석석의 얼굴은 즉시 빨개졌고 귀끝까지 붉어져 급히 손을 뺐다.궁녀 영씨와 보주도 있는 데 왜 이리 가벼운 행동을 한 거지?궁녀 영씨는 그 모습에 몰래 웃으며 뒤돌아섰고 보주는 잠시 멈칫하더니 송석석의 얼굴이 갑자기 빨개진 이유를 궁금해했다.보주는 의아한 듯 궁녀 영씨의 뒷모습을 한 번 쳐다봤다. "궁녀 영씨는 왜 웃으시는 겁니까?"송석석이 급히 일어서며 말했다. "아무것도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994화

    송석석이 말했다. “나도 생각해 본 적은 있지만 지금은 아직 그 단계가 아니니 그 문제는 나중에 고민하자꾸나. 정말 안 되면 다른 곳에 팔아버리면 그만이니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중요한 건 우리가 첫걸음도 제대로 떼지 못했다는 것이야.”“그래,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다니... 여학은 더 힘들지 않겠느냐?”“아니다, 여학은 자리가 늘 부족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 송석석이 말했다.그러자 시만자가 턱을 괴며 말했다. “그래. 기분이 좋지 않으니 오늘 밤 네 제자들에게 추가 훈련을 시켜야겠다.”송석석이 가볍게 웃었다. “시 사부, 어서 공지를 내려라. 네 제자들은 무공에 대한 열정이 아주 대단하더구나.”시만자도 웃으며 말했다. “장기문이 제일 부지런하다. 이 녀석은 항상 최선을 다해 발전도 빠르지. 무공을 배우기에 정말 좋은 자질이야. 어릴 때 사부를 만났다면 지금쯤 무공이 얼마나 뛰어났을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제야 배우는 걸 보니 조금 아쉬울 뿐이다.”그 후, 송석석은 평서백부로 향했고, 시만자는 가죽 채찍을 들고 네 제자들에게 추가 훈련을 시켰다.최씨가 송석석의 말을 듣자마자 기꺼이 도와주겠다고 하자 송석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웃었다. “부인이 도와주시니 이제 마음이 놓입니다.”“여인은 살기가 너무 힘드니 도울 수 있으면 돕는 게 복을 쌓는 일이지요.” 최씨는 깊은 슬픔이 깃든 눈빛으로 말했다. 지난번 만났을 때는 그렇게 힘들어 보이지 않았었는데 이번에는 왠지 걱정이 가득해 보였다.송석석은 그녀의 표정을 보고 한가지 의문이 들었다. “부인, 무슨 일이 있으신겝니까? 괜찮으시면 말씀해 보십시오.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최씨도 그녀를 여러 번이고 도왔기에 그녀는 진심으로 최씨에게 보답하고 싶었다. 최씨는 씁쓸하게 웃으며 머리를 흔들었다. “몇 가지 작은 문제가 있긴 하다만 왕비님께 걱정을 끼칠 일은 아닙니다.”송석석도 더는 묻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 그때, 하녀가 급히 뛰어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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