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 태비는 눈물을 닦으며 하인이 외부의 상황을 보고하는 것을 듣고 자신이 평범한 백성이 아니라 밖에 나가 함께 즐기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요즘 설화 선생들이 하는 이야기를 하인들이 모두 아뢰었는데 그녀는 매우 감동했다. 다만 그녀가 지금 눈물을 흘리는 것은 바깥의 떠들썩한 분위기 때문이 아니라 송석석이 돌아온 후 자신을 방안에 가두고 오랫동안 나오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혜 태비도 송석석이 왜 괴로워하는지 알 수 있었다. 생사의 재회에 그녀가 없었고 그녀의 부친과 오빠들이 모두 전장에서 희생했기 때문이었다. “이리 오너라.” 혜 태비는 무릎을 꿇고 인사하는 며느리를 보며 손짓했다. “이리 와서 내 옆에 앉거라.” 송석석은 몸을 일으켜 혜 태비에게 다가가려는데 갑자기 혜 태비에게 끌려 그녀의 품에 안겨 버렸다. 그렇게 그녀는 혜 태비에게 꽉 안겼는데, 갑자기 울먹이는 시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넌 영원히 나를 어머니로 생각하고 가족으로 생각하거라. 나도 영원히 널 보호해 주마.” 송석석은 너무 꽉 안겨 숨이 쉬어지지 않아 고개를 들어 혜 태비와 거리를 두려고 했지만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먹먹하고, 코끝이 찡해오며 눈가가 촉촉해지더니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었다. 송석석은 태후의 보호를 받던 시어머니가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그녀는 혜 태비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았던 걸로 알고 있었는데 이런 말을 하니 순간 울고 싶었다. 하지만 송석석은 40이 넘은 시어머니가 몸매가 이렇게 좋을 줄은 몰랐다. 얼굴이 가슴에 묻혀 하마터면 질식할 뻔했다.사여묵은 이 장면을 지켜보면서 자신이 먼저 송석석을 안아주지 못한 것이 후회되었다. 그래서 괜히 어머니가 송석석에게 감동을 준 게 화가 났다. 고 씨 유모는 옆에서 눈물을 훔치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다행이야. 태비마마께서 사람을 아낄 줄 알아서 다행이야.’ 포옹한 후 태비는 송석석을 놓고 모두 앉게 하고 분부했다. “여봐라, 차를 내오너라.” 그녀는
한녕 공주부는 황성에서 가장 많은 귀족이 모여 있는 지역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백성들이 이곳을 권귀가라고 불렀고 어길과 삼 사리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공주부와 북명황실도 매우 가까워 걸으면 향 한 대 피울 정도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태비마마는 그 마저도 걷기 싫어해 함께 가마를 타고 갔다. 공주부에는 이미 누군가가 들어와 있었는데 태후가 보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청소를 하고 정원관리를 해서 이미 심어진 꽃과 나무가 적지 않았다. 숙청제는 한녕에게 잘해주는 편이었다. 저택은 엄청 큰 데다 앞마당의 건물은 웅장하고 위엄이 있었으며 뒷마당의 방엔 모두 환하게 불빛이 켜져 있었다. 화원에는 인공 호수에 정자까지 있었으며 가산에 물이 졸졸 흘러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했다. 이곳은 진성의 건축처럼 차갑고 딱딱하지 않고 오히려 강남의 운치가 있었다. 한녕의 마당은 부풍원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그 이름엔 부부가 상부상조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들어가 보니 안에는 가구, 병풍, 박달나무 침대, 귀비 금침대가 있었는데 모두 귀중한 목재로 만든 것이었다, 혜 태비는 잠시 둘러보더니 말했다. “혼수에도 가구가 많은데 가져오지 않아도 되겠어.” 그러자 송석석이 말했다. “책자에 적었으니 그대로 보내주십시오. 공주부가 이렇게 큰데 당연히 진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긴, 네가 애초에 좋은 재료로 장만한 가구라 한녕에게 주지 않으면 낭비긴 해.” 태비는 한 바퀴 돌더니 계속 말했다. “낭비가 아니지. 부마도 가끔만 여기서 밤을 보내고 자신의 저택이 있으니 그곳에 놓으면 되겠군.” 상국의 규칙에 따르면 부마는 공주와 함께 생활할 수 없었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공주가 총애해서 부마를 불러야지 사람을 파견해 부마를 데려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지금처럼 사랑한다면 결혼한 후 함께 생활할 수 있다. 따로 생활하더라도 모양새만 갖추며 말이다. 송석석이 말했다. “마당을 하나 마련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어머님께서 한녕이 보고
한동안 시끌벅적하더니 잠시 후 열한 명의 전사들 중 수주의 두 명을 제외하고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왕두와 왕오는 염 선생이 국공부로 데려가 잠시 머물다가 내일 황제폐하의 부름을 기다리도록 했다. 방시원이 방 씨 가문에 발을 들여놓자 육 씨는 눈물을 흘리며 아들을 끌어안고 울었는데 몇 번이고 기절할 뻔했다. 다른 사람들도 울면서 겨우 육 씨를 부축해 앉혔다. 방 씨 가문엔 아들이 많지 않은 데다 여러 명이나 희생되었기에 방시원이 돌아온 건 방 씨 가문의 모든 사람들의 위안이었다. 그는 돌아오자마자 가족의 어른들에게 일일이 절을 올렸고 가족 중에서 가장 연로하신 분은 셋째 집의 어르신이었는데 그가 울자 모두 따라 눈물을 훔쳤다. 몇 년 동안의 못했던 이야기를 가볍게 나누고는 방시원 모자는 방으로 돌아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방시원에게 설명해야 할 일이 있었다. 육 씨는 방으로 돌아온 뒤 모든 하인들을 돌려보내고 아들을 바라 보며 침울하게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네 부인 일은 너희 형이 남강에서 너에게 말했겠지만 내가 다시 자세하게 말해주고 싶어 이렇게 부른 것이다. 너의 아버지가 전장에서 희생을 했으니 과부 생활이 얼마나 힘든지 나는 알고 있었지만 나에게는 너와 네 동생이 있으니 희망이라도 있었단다. 하지만 청여는 자식이 없어 나와는 달랐지. 그래서 나는 네가 나라를 위해 희생을 했으니 더 이상 그녀를 붙잡고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서 가족들과 상의해서 그녀를 친정으로 돌려보냈단다.” 그때의 일을 말하자니 육씨는 여전히 가슴이 떨렸다. 잠시 후 차를 한 잔 마시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청여도 처음에는 돌아가지 않겠다며 널 위해 평생 과부로 살겠다고 했지. 그녀를 친정으로 보내는 문서를 받고도 그렇게 말했단다. 나는 그녀가 친정에 가서 고생할까 봐 네 위로금과 두 가게를 몽땅 그녀에게 주었다. 하지만 그녀가 다시 시집을 간 후 평서백부에서 사람을 보내 위로금과 가게를 돈으로 환산해서 나에게 돌려주더군. 그러니 이젠 두 가문에서 깨끗이
다음날 고청란과 시녀가 황실로 찾아와 말을 돌려줌과 함께 답례품도 건넸다. 노집사가 그들을 대접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송석석이 오지 않자 결국 자리를 떴다. 그들이 갈 때 마침 시만자를 만났는데 시만자가 열정적으로 맞이했다. “말 돌려주시러 오신 겁니까? 요즘은 황실이 바빠서 시간이 없으니 며칠 후에 함께 무공을 논합시다.” 고청란을 몸을 굽히고 인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그럼 며칠 후에 다시 방문하겠습니다.” 시만자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럼 저도 할 일이 있어서요, 먼저 돌아가십시오.” 향귀와 고청란은 황실에서 나와 마차에 올라탄 후 향귀가 중얼거렸다. “보아하니 길을 좀 더 멀리 돌아가야 할 것 같구나. 시만자라는 여자가 그렇게 열정적일 줄은 몰랐네. 내가 보기엔 네가 시만자와 먼저 친해져서 황실로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권한을 획득하는 게 더 빠를 것 같군.” 이리저리 굽이도는 바람에 향귀는 기분이 좋지 않아져 담담하게 말했다. “비록 네 언니가 말을 잘 듣진 않지만 확실히 일 하나는 깔끔하게 처리하더군. 허나 넌 왜 이리도 느릿한 것이냐? 네 어머니를 뵙기 싫은 것이냐?” 그러자 고청란이 무릎을 꿇고 빌었다. “사부님, 제발 공주 어머님께 말씀 좀 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어머니를 한 번만 뵐 수 있다면 정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며칠만 기다리거라.” “지금이 가장 좋은 시기인 것 같습니다. 한녕공주의 혼사가 임박했으니 그들이 가장 분주할 때 아닙니까? 지금은 공주부로 돌아갈 수 있지만 만약 내가 왕야의 눈에 띄어서 날 조사한다면 그땐 어머니를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고청란은 그녀가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울먹이며 분노가 섞인 말투로 말했다. “내가 목숨을 걸고 일을 하길 원하시면 나에게 단맛이라도 맛보게 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머니를 보지 못했으니 어머니가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는 마당에 어떻게 온 힘을 다해 공주 어머님을 위해 일을 하겠습니까?”그러자 향귀는 눈살을 찌
8월 8일은 한녕이 시집가는 날인데, 공주가 시집가는 건 보통 귀족 딸이 시집가는 것과 달랐다. 한녕과 혜 태비는 하루 전날 밤에 궁으로 돌아갔고 송석석도 따라갔다. 미우 장공주와 민지 장공주는 곁에서 동생인 한녕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부마와 시댁과 잘 생활할 수 있는 비법을 전수해 주었다. 미우 장공주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제씨 가문과 염 씨 가문은 우리 상국에서 가장 유명한 학자 집안이라고 할 수 있지. 공부하는 사람이 많아 겉으로는 아주 조화로울 것이다. 그리고 규칙이 많아봤 자 황궁만 하겠니? 게다가 넌 공주인 데다 자신의 저택까지 있으니 그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하지만 네 시부모가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니 네가 제씨 가문에 가서 잠깐 머무른다고 해도 아무도 너에게 뭐라고 하진 못할 것이다.” 한녕도 이런 상황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녀의 시아버지는 여덟 살 즘에 머리를 다쳤고 시어머니는 그와 죽마고우였기 때문에 그가 어리석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성공해서 제수찬과 그의 동생인 제진을 낳았던 것이었다. 제씨 가문의 사람들은 모두 함께 지내기 편한 사람들이었다. 한녕은 사실 조금도 긴장되지 않았는데 왜 다들 자신이 긴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참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긴장하는 척을 하기로 택했다. 그래야 사람들이 더 이상 뭐라고 하지 않을 테니까. 그녀는 아무래도 다 괜찮았다. 인생은 연극과 같은 것이니 모두가 기뻐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예복을 입은 하녕의 이목구비는 몹시 뚜렷해져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특히 눈이 유난히 밝았다. 한녕의 몸에서는 황실의 공주다운 날카로운 귀기가 없었고 오히려 성스럽고 포근한 느낌을 주었다.제 황후도 대황자와 둘째 공주를 데리고 왔는데 한녕이 자신의 사촌 동생에게 시집가는 것이기에 그녀는 형수로서 혼수를 많이 보냈다. 수민은 잠시 들르더니 여전히 오만한 태도로 축하한다는 말만 남기고 떠났다. 그녀는 떠날 때 송석석을 힐끔 쳐다보아 오히려 송석석을 더욱 얼떨떨하게 했다. ‘참
한녕이 결혼하던 날, 제씨 가문에는 매우 떠들썩해졌다. 혼수는 어제 이미 공주부로 보냈지만 혼례식과 잔치는 제씨 저택에서 올렸다. 손님들이 하도 많이 와 제씨 저택의 문턱이 다 밟혀 사라질 정도였다. 장공주가 제씨 저택으로 가기 전에 청란이 한 번 돌아오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 림봉아는 공주부의 지하 감옥에 갇혀 있었는데 그 지하 감옥은 비린내가 하도 심해서 매일 한 시간씩 문을 열고 통풍을 했는데 그것도 장공주의 마음이 자비로워서 배푼 결과였다. 그곳에는 림봉아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첩들과 잘못을 저지른 하인들이 몇 명 더 있었다. 하인은 그곳에 들어가면 다신 나갈 수 없었다.그곳에서 풍기는 비린내는 피 비린내라 고청란은 들어가자마자 속이 울렁거렸다. 하지만그녀는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곧장 어머니가 수감된 감옥으로 향했다. 이 감옥은 철창으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벽으로 쌓여서 아무도 볼 수 없었다. 감옥 문 아래에는 작은 창이 있었는데 바로 거기로 음식을 넣어주었다. 모두 독방에 살아 함께 이야기를 나눌 사람도 없었다. 각 감방에는 침대와 변기가 있었고, 한 달에 한 번씩 목욕을 할 수 있었는데 부마가 올때청결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또한 만약 한 달 동안 난리를 피우지 않는다면 반나절 동안은 돌아다닐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고청란은 임무를 나가기 전에 장공주의 자비하에 이곳에 와본 적이 있었다. 장공주는 그녀에게 어머니가 얼마나 비참한 지 직접 보여주었다. 향귀가 문을 열라고 하자 고청란은 어머니를 보기 위해 바로 뛰어들어갔다. 감방 안에는 매우 여윈 한 부인이 누워 있었는데 소리를 듣고 기침을 하며 문 쪽을 바라보았다. 들어온 사람이 자신의 딸이라는 것을 본 그녀는 몸부림치며 벌떡 일어났다. “어머니.” 고청란은 그녀를 껴안고 눈물을 쏟으며 말했다. “그들이 의사를 찾아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왜 아직 기침이 이렇게도 심하신 겁니까..?” 림봉아가 고청란을 확 끌어 안았는데 뼈만 앙상하게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힘이
제씨 가문의 잔치엔 손님들로 붐비었다. 제씨 가주가 지금의 이부상서이기도 하고 셋째 집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황후의 아버지인 제씨 어르신은 진성의 권력자들 중에 초대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초대했다. 그중엔 장군부도 포함되어 있었다. 장군부가 비록 권세가에서 밀려나기 일보직전이긴 하지만 조상 중에 대장군을 배출한 건 사실이고, 그렇지 않았다면 장군부는 지금 없어졌을 것이다. 제상서는 조정의 요원이자 국장이니 대외적으로 당연히 공평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방 씨 가문 또한 당연히 초대를 받았다. 방시원이 돌아온지 사흘 만에 척사 탐정단의 모든 사람에게 황령이 내려왔다. 방시원은 3품 참장으로, 제방은 4품 장군으로 책봉되었다. 그리고 선평후부의 장문수는 정원백으로 책봉을 받았고 그의 부인인 이석은 3품 숙인으로 책봉받았다. 전례를 깨트린 봉작은 장문수가 척사단의 주력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비록 체포된 후 모진 고문을 당했지만 한 사람도 말하지 않고 끝까지 견뎌냈다. 숙청제는 이러한 정신으로 군대의 사기를 북돋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는 한쪽 다리를 다쳐서 앞으로 전쟁터에 나갈 수 없게 되었기에 백작의 자리를 주고 아내를 숙인으로 책봉하여 남은 생을 편히 보낼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숙청제는 척사단의 방시원과 제방, 노홍, 그리고 진 씨 가문의 두 아들을 특히나 쓸 계획이었다. 그저 병사인 왕두와 왕오, 그리고 장태 등인도 각자 품계를 올려 황명이 파견되기만을 기다렸다. 방시원은 진성으로 돌아온 후 처음으로 잔치에 참석한 것이었고 처음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을 봐 놀랐다. 방 씨 저택에도 방시원이 돌아온 것을 축하하기 위해 잔치를 열 계획이었지만 그는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고 육씨 부인도 그가 정신이 없을 때 손님을 대접하는 것을 원하지 않아 일단 미뤄두었다.방시원의 정신 또한 그다지 좋지 않았다. 진성으로 돌아온 후부터 밤마다 악몽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꿈속에서 그는 여전히 척사 탐정단의 사람이었는데 한 번 깨어나면
“아가씨.” 최 씨의 시녀인 금숙이 왕청여를 불르자 왕청여는 시선을 돌리고 창백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저 사람이 이제 3품 참장이라니.” “아가씨, 누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남의 일을 의논하는 건 좋지 않습니다.” 금숙은 최 씨를 오랫동안 따라다녔고 최 씨 곁에서 가장 유능한 시녀라 왕청여가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 바로 알아채고 귀띔해 주었다. 그러나 왕청여는 금숙의 귀띔을 전혀 듣지 못하고 계속 말했다. “오빠는 남강으로 떠나기 직전에야 황제폐하께서 참장으로 책봉했었지. 참장은 한 곳을 지키는 주장이라는 뜻인데 그는 어디로 파견되는 것일까?” 그러자 금숙은 정색하며 말했다. “아가씨, 아가씨께서 신경 쓰셔야 하는 사람은 전 도련님입니다. 전 도련님도 오늘 여기에 오셨다고 합니다.” “대체 무슨 근거로 책봉한 것이지?” 왕청여는 금숙의 말을 못 들은 듯 씁쓸하게 말했다. “이석의 부군은 작위까지 받고 그는 3품 참장을 책봉받다니. 대체 얼마나 큰 공을 세웠기에 이러는 것일까? 그저 정보를 주고받은 것밖에 없는데 이렇게까지 하다니 전장에서 피 흘리며 싸우는 전사들이 서운해하지는 않을까?” 금숙은 왕청여의 팔을 힘껏 잡고 말했다. “아가씨, 여긴 제씨 가문입니다. 말 조심하십시오.” 팔에서 전해오는 아픔이 왕청여를 정신 들게 했다. 정신을 차린 그녀는 부끄러움과 분노가 교차하여 언짢은 말투로 말했다. “누가 너보고 나를 따라오라고 하였느냐?” 그러자 금숙이 담담하게 말했다. “부인께서 아가씨가 길을 잃을까 봐 저보고 따라가라고 하셨습니다.” 왕청여는 차갑게 말했다. “정말로 내가 길을 잃을까 봐 널 보낸 것이냐? 내가 분수도 모르고 망신을 당해 평서백부의 명성을 손상할까 봐 두려워서 그러는 건 아니고?” “아가씨께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부인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택 안에 사람이 많아 시끄러우신 것이면 저와 함께 정원에 가서 산책을 좀 하시겠습니까? 오늘은 바람이 산들산들 불어 머리를 식히기 좋을 것입니다.
송석석은 사여묵으로부터 복소의의 유산 소식을 전해 들었다.진왕비는 송석석에게 함께 입궁하여 문병을 가자고 제안했고, 송석석도 이를 받아들였다.본래 송석석과 진왕비는 별다른 왕래가 없었으나, 진왕이 그녀와 함께 서경을 다녀온 이후, 진왕비는 동서지간에 자주 왕래하는 것이 좋다며 송석석에게 더욱 살갑게 굴었다.하지만 진왕비는 제씨 가문의 여인으로, 황후의 종매이긴 했지만, 황후가 금족 된 이후로는 단 한 번도 황후를 찾아가지 않았다.즉, 그녀가 말하는 동서지간에 자주 왕래하는 것이 좋다는 말의 진짜 의미는 귀찮은 일이 없을 때는 교류할 수 있지만, 문제가 생기면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뜻이었다.예전에 황제가 북명황실을 경계하던 시기에도 진왕비는 송석석을 철저히 피하며 혹여 화를 입을까 두려워했다.사실 이번에 진왕이 특별한 공을 세웠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저 황제의 가벼운 칭찬 한마디를 들은 정도였지만, 진왕에게는 그 한마디가 두 해나 자랑할 거리였다.그들은 함께 입궁하면서도 특별한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진왕비는 그저 몇 마디 가벼운 이야기만 했는데, 송석석은 그런 진왕비가 영리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때때로 일부러 어리숙한 척 행동하며, 평온하고 안락한 삶만을 바랬기 때문이다.그렇기에 단둘이 있을 때에 그녀는 더욱 쓸데없는 말을 하지도, 남에게 꼬투리를 잡힐 행동도 하지 않았다.입궁하여 복소의를 만나게 되자, 진왕비는 이 아이와 그녀의 인연이 이미 닿아 있었다며, 결국 그 인연 덕분에 품계를 올리게 된 것이니 조만간 다시 태중으로 돌아와 전생의 모자 인연을 이어갈 것이라는 위로의 말을 한 가득 쏟아냈다.그녀가 나긋한 목소리로 덧붙였다."그러니 지금 해야 할 일은 그저 몸을 잘 돌보는 것 뿐이다. 괜히 이 일로 침울해 하면 안된다. 폐하께서 정무로 바쁘신데, 소의가 매일 울기만 하면 보시기에 번거롭지 않겠는가?"진왕비의 말은 빈틈이 없어 송석석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그녀가 한참 이야기하다가 문득 송석석을 향해 한 마디 던졌다.
자신의 궁으로 돌아오자, 숙청제는 비로소 실망한 기색을 드러냈다.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이 곧 아무 문제가 없다는 뜻은 아니었기 때문이다.후궁에서 벌어지는 수작들은 때로는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법이다.단신의가 복소의의 태아를 보전하기 어려울 수 있으며, 설령 무사히 태어난다 해도 선천적으로 허약하거나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을 아이일 가능성이 높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숙청제는 한때 복소의에게 약을 직접 먹일까 고민한 적도 있었지만, 이 아이가 어쩌면 자신의 마지막 자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끝내 결단을 내리지는 못했다.한 번쯤 걸어보고 싶긴 했다.이번 일은 누군가 개입한 것이 분명했다. 그가 최근 들어 복소의의 궁에 자주 드나들었으니, 누군가는 불만을 품었을 것이 틀림없었다.덕비는 분명 복소의를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복소의는 황제의 총애를 믿고 오만하게 굴며, 심지어는 덕비를 원망하는 마음까지 품었다. 그날 그녀에게 경고를 주었지만 아쉽게도 그녀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덕비는 후궁을 총괄하는 인물이었다. 때문에 그녀와 수빈이 배치한 사람들이 후궁 곳곳에 퍼져 있었으니, 복소의의 태아를 해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그렇다고 해서 덕비가 직접 손을 썼을 가능성은 낮았다. 만약 덕비가 아이를 해하려 했더라면 애초에 복소의를 보호해주지 않았을 것이었다. 게다가 덕비가 이황자를 데리고 자주 드나든 것도 반은 아들을 위한 것이었지만, 반은 복소의의 태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었다.복소의가 황제에게 덕비를 험담했던 것은 반드시 덕비의 귀에 들어갔을 것이었다. 덕비가 이후 더 이상 찾아오지 않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그녀가 복소의에게 손을 떼자, 마음 속에 꿍꿍이가 있던 자들이 움직이기 훨씬 쉬워졌다.그가 실망한 이유는 복소의의 태아를 잃은 것 때문이 아니었으며, 그가 바라지 않았던 후계 경쟁이 결국 벌어지고 말았다는 점이었다.그는 이 일을 벌인 자가 누구인지 거의 확신할 수 있었다. 황후이거나 수빈 둘 중 하나일 것
혜의궁에서는 삼황자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삼공주는 그의 젖은 머리카락을 닦아주며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어제 막 머리를 감았는데, 굳이 그 고양이랑 놀겠다고 해서 온 머리와 얼굴이 털투성이가 되었잖아. 다음번에도 이러면 엉덩이를 때려줄 거야."도자기처럼 매끄러운 분홍빛 살결의 귀여운 아이가 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며 공주의 품에 기댔다."누이, 고양이는 재미있고 귀여워요. 작은 발로 내 몸을 밟고 지나갈 때면, 포근해서 기분이 좋아요. 안고 있으면 따뜻하기도 하고요."그러자 삼공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어마마마께서 그러셨잖아. 아바마마께서는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으신다고. 그런데 넌 자꾸 아바마마께 고양이 이야기를 해서…… 그러니 요즘 아바마마께서 널 찾지 않으시는 거야."삼황자는 누이가 머리를 말려주는 대로 꼿꼿이 앉아 있으면서도 입을 다물지 않았다."아바마마와 나는 다른 사람이잖요. 당연히 각자 좋아하는 것이 다를 수도 있는 거지요. 아바마마께서 싫어한다고 해서 나까지 싫어해야 해요? 내가 고양이를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내가 이 아이를 사랑하니, 아바마마께서 아무리 싫어하셔도 나한테 버리라고 하시면 안 되는 거죠."삼공주는 그의 코끝을 톡 하고 건드리며 말했다."말은 참 잘하네."삼황자는 웃으며 말했다."누이가 나를 설득 수 없는 건 누이의 말이 논리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이에요. 황숙께서 그러셨는데, 이치에 맞게 말을 한다면 그 누구도 이길 수 있다고 하셨거든요.""그래? 그런데 요즘 왜 황숙께 무예를 배우러 가지 않는 거야?"삼황자는 고개를 기울였다."무예라 해도 기본적인 것만 가르쳐 주시니까요. 그런 건 궁에서도 연습할 수 있어서 이미 다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말 타기는… 아직 말 위에 혼자 올라갈 수가 없으니까 좀 더 자라서 다리가 길어지면 그때 배울거에요.""다 할 수 있다고? 못 믿겠는데." 삼공주가 말했다."정말 할 수 있다니까요!"삼황자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황숙께서 며칠 동안 같은 걸 반복해
복소의는 춘당의 입가에 스친 조소를 알아채지 못했다.춘당은 복소의가 첩여로 승급될 때부터 곁에서 그녀를 모셔왔다. 그녀는 영리하고 침착한 성품을 지녀 복소의에게 여러 차례 계책을 내주었고, 당시 황후가 그녀를 끌어들이려 했을 때도 춘당은 이렇게 말했었다.‘황후마마께서 여러 번 금족 처분을 당하신 것으로 보아, 폐하께서 이미 탐탁지 않게 여기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게다가 후궁을 다스릴 권한도 없으시니, 황후마마께는 겉으로만 응하는 척하고 실질적으로는 덕비 마마와 수빈 마마께 가까이 다가가시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그리고 춘당의 말은 역시나 옳았다. 덕비는 늘 그녀를 잘 대해주었고, 먹고 입는 것 모두 넉넉히 챙겨주었다. 그 덕분에 더 이상 감히 그녀를 깔보는 자도 없어졌다.예전의 덕비는 분명 좋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녀가 아이를 가졌다는 것을 이유로 폐하께 가까이 가려 하는 것 같아 못마땅했다."마마께서는 덕비 마마께서 오시는 것이 싫으십니까?"춘당이 그녀의 머리와 허리를 살짝 받쳐주며 말했다. 침상에 오래도록 누워만 있어 등이 아픈 그녀를 배려한 것이었다.그녀는 춘당을 신뢰했기에 자연스레 속내를 털어놓았다."내 태가 안정되었을 때는 덕비 마마께서 그리 열심히 오시지도 않으셨는데, 이제 와서 이렇게 자주 찾으시는 것이 진심이겠느냐? 분명 폐하를 의식해서 오는 것일 것이다. 게다가 폐하께서 날 아끼시기에 자주 찾아와 주시는 것인데, 매번 덕비 마마와 이황자가 끼어드는 바람에 폐하와 두세 마디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지 않느냐."춘당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하며 말했다."마마께서는 그저 몸을 잘 돌보시면 됩니다. 그 외의 일은 신경 쓰지 마세요."복소의는 한숨을 쉬었다."이렇게 밤낮으로 누워만 있어야 하다니…… 폐하께서 오실 때만 겨우 앉을 수 있구나. 이 아이는 나를 참 힘들게 한다. 부디 황자가 되어주기를 바랄 뿐이지. 내가 이 고생을 한 보람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춘당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반드시 마마께서 바라시는
복소의의 태는 안정적이었기에, 태의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겨울이 지나면서 태가 점점 불안정해져, 두 번의 출혈을 경험했다. 금태의는 그녀의 태를 지키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그 덕분에 그녀는 겨우 안정을 찾을 수 있었지만 계속해서 침상에 누워 있어야 했기에 바닥에 내려갈 수가 없었다.갑자기 이런 상황이 발생하자, 태의는 신중히 식단과 궁에서 사용하는 모든 것들을 점검했다. 하지만 별다른 문제가 발견되지는 않았다. 아마 황제가 장기간 약을 복용한 탓에 태아가 불안정해진 것일 가능성이 있었다. 숙청제는 그녀의 태에 매우 긴장하고 있었다. 숙청제는 그녀가 침상에서 요양을 시작한 후 거의 이틀에 한 번씩 그녀를 보러 갔으며, 가끔은 같이 식사를 하기도 했다.상황이 이렇게 되자 그는 수빈의 궁에 자주 가지 않았고, 삼황자를 어서방에 불러 들이지도 않았다.덕비는 후궁을 관리하는 일을 맡고 있었기에 시간이 날 때마다 이황자와 함께 복소의를 보러 갔고, 이로 인해 황제와 함께 몇 번의 식사를 함께했다.복소의는 첩여 시절 후궁에서 자신이 의지할 사람을 찾으려 했고, 비밀리에 수빈과 덕비에게 아첨하며 양쪽을 오갔다. 하지만 수빈은 늘 거만하게 행동했으며, 그녀가 한때 황제의 총애를 얻었기도 했기에, 복소의는 수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반면 덕비는 후궁에서 유명한 온화하고 자애로운 인물로,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며 위치가 낮은 여인들까지 보살펴 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복소의는 점차 덕비에게 더 접근했지만 지금은 조금 고심했다. 황제가 그녀에게 올 때, 덕비가 여러 번 이황자를 데리고 왔고, 그 목적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수빈의 성격에 이런 일을 할 리가 없었기에, 그녀는 오히려 수빈의 도도함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결국 불만을 마음속으로에만 토로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덕비는 후궁을 관리하는 권한이 있기에 그녀를 적대할 수도 없었다. 이러한 날들이 지속되자, 그녀는 덕비가 오지 않
후궁에서는 황제의 병에 대해 추측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지금 복소의가 임신을 했다고는 하지만, 단신의가 궁에 들어와 치료하고 있다는 사실은 황제의 몸이 단순히 요양을 하면 괜찮아질 상태가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황제의 편애가 계속될수록 몇몇 사람들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특히 황후는 더욱 불안해했다. 그녀는 황제의 병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지금 단신의가 궁에 들어와 치료하고 있지만 치료의 효과는 확실하지 않다고 생각해, 그녀는 황제가 심각한 상태라고 여겼다. 황후는 복소의의 임신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아이의 성별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을 뿐더러, 설령 황자가 태어난다고 해도 그에게 까지 순서가 올 리 없었다. 그러나 삼황자에게 집중된 황제의 편애는 그녀에게 위기의식을 가져다 주었던 것이다.황제는 그녀에게 선택권을 주었을 때 그녀는 황후 자리를 선택하며 생명을 보장받았다. 하지만 며칠의 시간을 보내자, 황후는 황제가 대황자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요즘 대황자가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며, 태부와 황숙도 그를 칭찬하고 있었다. 황제도 대황자의 그러한 모습에 매우 만족해 한다고 전해 들었다.이황자와 삼황자는 그녀에게 모두 위협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황후는 황제가 이황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여겼다.최근 몇 달 동안 그녀는 거의 이황자를 본 적이 없었고, 또한 이황자가 이제는 예전처럼 열정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후는 강력한 뒷배경이 없는 덕비가 여전히 유력하지 않다고 여겼지만 수빈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수빈의 아버지는 형부상서이며, 사여묵과 같은 공문이었다. 공무의 일이든 사적인 일이든 접촉이 분명 많았을 것이고, 수빈의 어머니인 이씨 부인은 송석석에게 잘 보이기 위해 공방에 많은 돈을 기부했다. 어쩌면 이미 그녀를 손에 넣었을지도 모른다.“마마, 오늘 대황자께서 또 왕야의 칭찬을 받으셨습니다.”란주 상궁이 들어오며 웃으며 말했다.황후는 별다른 감정을 보이
숙청제는 신하들을 어서방에 불러들였고, 그들은 밤늦게까지 논의했다. 논의는 결국 단신의가 들어가서 시간이 많이 늦었음을 알리며 중단을 요청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숙청제는 팔을 뻗고 웃으면서 말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다니. 그럼 궁문도 이제 잠가야겠으니 다들 돌아가시게.”그는 여전히 기운이 넘쳤고, 특히 지금은 얼굴에 혈색이 돌아 병든 사람 같지 않아 보였다.송석석은 논의 중이던 사여묵을 기다렸다. 그들은 함께 궁을 떠나 황실로 돌아갔다. 매우 피곤했던 그녀는 사여묵의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마차가 황실 문 앞에 도착하자 사여묵은 그녀를 안아 들었다. 송석석은 그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내려오기 귀찮았기에 그대로 안겨 있었다. 그의 넓고 따뜻한 품은 정말 편안했다.그와 떨어져 있던 세 달 동안 그녀는 성릉관에서만 편히 잠을 청할 수 있었으며, 그 외의 곳에서는 늘 경계하며 지냈다. 이제 집에 돌아오니 자연스럽게 긴장이 풀렸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불안함을 느꼈다. 무언가 뜨겁고 큰 손이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단 백부 말씀을 잊으셨나요?”귓가에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 백부가 이제 괜찮다고 말씀하셨소.”송석석은 감고있던 눈을 떠, 뜨겁고 열정적인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마주하며 물었다.“정말인가요?”“틀림 없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입술이 덮였다.불꽃이 강렬하게 타올왔다. 침실의 온도마저 높아진 듯 했다.두 사람은 뜨겁게 사랑했다. 오랜 시간 떨어져 있었기에 마치 새롭게 결혼한 듯한 기분이었다!한 달 후, 상국은 시박사를 설립할 예정이었다. 이는 상국과 해외 북당과의 화물 교류를 담당할 기관이었다.원래의 시역업도 시박사의 운영을 전폭적으로 지원할 것이며, 상국에서 다른 국가에 판매할 수 있는 화물 목록을 정리하여 서경으로 사신을 파견해 화물 교환 협정을 체결할 것이다.이 한 달 동안 단신의는 약을
10월 15일, 사절단은 드디어 진성에 도착했다.현갑군은 그 자리에서 먼저 해산했고, 이덕회와 홍려사경은 궁에 들어가 황제를 뵈러 갔다. 그동안 몸이 약해져 혼자서는 거동할 수 없었던 진왕은 이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자신도 궁에 가겠다고 말했다.송석석은 이미 성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여묵에게 인도되어 황실로 돌아갔다.그동안 사여묵은 매일같이 성문 앞에서 그녀를 기다렸고, 때로는 낮잠시간에 직접 가서 기다리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이 되어서야, 드디어 기다리던 그녀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이덕회와 그들이 궁에서 황제에게 보고할 때, 송석석은 이미 태비께 인사를 드린 후였다.혜 태비는 송석석이 피곤해 보이자, 가서 씻고 옷을 갈아입으라고 말했다.송석석은 사여묵과 함께 나와서 매화원으로 돌아갔다.목욕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나왔을 때, 송석석의 입술이 어쩐지 조금 부풀어 있었다. 서주는 깜짝 놀라 왕야를 바라보았다. 왕비가 목욕하는데 왕야께서 꼭 직접 모셔야 한다며 들어가더니, 보아하니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것이 틀림없었다.서방에서는 염선생과 심청화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송석석은 그들에게 서경에서의 일들을 말해주었다. 협상 결과는 그들이 이미 알고 있었기에, 송석석은 길에서 일어난 암살 시도, 원신제의 곤경, 그리고 북당의 안풍친왕이 말한 3년과 5년의 기한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다.사여묵은 두려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었는데, 서경이 그렇게 혼란스러웠음에도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음에 안도하며 다행이라 여겼다.안풍친왕이 성릉관을 자유롭게 오고 간 것과 그가 말한 3년, 5년 기한에 대해서, 심청화는 사부에게 편지를 보내면 알 수 있을 거라 말했다. 사부는 그들을 잘 알기 때문에 그 말의 숨은 의미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었다.이야기를 마친 후, 사여묵은 송석석이 휴식을 취하게 하기 위해, 송석석에게 더 이상 질문하지 못하게 그들을 막았다. 그는 오후에 휴가를 내어 일을 쉬려고 했지만, 황제가 사람을 보내 궁에 오라고 일렀다.송석석
성릉관에서 다섯 날을 지낸 진왕은 어느 정도 몸이 회복이 되었다.그가 회복되었다는 것은 이제 다시 진성으로 향해야 함을 의미했다.이별은 너무나 아쉬웠지만, 송석석은 눈물을 삼키며 그저 작별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소 대장군 앞에서 여러 번 절을 했는데, 그로 인해 소 대장군도 눈물이 거의 터져 나올 뻔했다.이덕회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바로 소 대장군이었다. 소 대장군은 상국을 위해 수십 년 동안 성릉관을 지킨 노장이었기 때문이다.송석석은 눈물을 삼켰지만, 그는 얼굴을 가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이 평생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미 노령에 접어든 듯, 이전에 만났을 때보다 훨씬 더 노쇠해 보였다. 설령 황제가 그를 진성으로 돌아가게 허락한다 할지라도, 긴 여정과 고된 일정을 고려했을 때 소씨 가문 사람들이 그를 돌아가지 못하게 할 수도 있었다.소 대장군은 이덕회와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그러자 이덕회는 더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외숙모 남씨는 회 왕비에 관한 질문을 하지 않았었다가 이별을 앞두고서야 송석석을 옆으로 데려와 그녀의 상황을 물었다.송석석은 회 왕비가 지금 감옥에 있다는 사실과 란이가 그녀를 위해 손을 써주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힘든 상황은 아닐 거라며, 혹시 태자가 세워지면 대사면이 내려져 그녀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남씨는 살짝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외조부께서 말씀하시지는 않으셨지만, 엄청 신경 쓰고 계실 거다. 세상에 정말로 모진 부모는 드무니까. 네 외조부는 모진 분이 아니시다. 그때 그녀가 란이에게 그렇게 까지 모질게 대했던 게 안타깝다. 란이가 여전히 그녀를 돌보아야 하다니."송석석이 말했다. "걱정 마세요. 란이는 지금 편안하고 자유롭게 지내고 있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더 잘 지낼 거예요.""그렇지. 분명히 잘 지낼 거야." 남씨는 아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송석석을 바라보다가, 이내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