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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작가: 유애
노부인이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이제 겨우 한 번 만나봤을 뿐인데, 함부로 판단하고 싶지는 않구나. 그리고 어차피 폐하께서 정하신 혼사, 무를 수는 없잖니. 앞으로 두 사람은 밖에서 나랏일을 하고, 너는 내실 관리하면서 함께 영광을 누리는 것도 나쁘지 않잖니.”

“나쁘지 않죠.”

송석석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만 명색이 장군님이신데, 첩으로 들어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옵니다.”

노부인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반문했다.

“그게 무슨 말이니? 폐하께서 하사하신 혼인인데, 어떻게 첩으로 들어오게 할 수가 있겠어. 게다가 그녀는 조정(朝廷)의 대신, 나랏일 하는 관리(官員)다. 그런 분을 어떻게 첩으로 앉힐 수가 있겠니? 당연히 평처로, 본부인과 다를 바가 없는 대우를 받아야지.”

송석석이 대답했다.

“당연히 본부인과 다를 바가 없는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요? 조정에 그런 규칙도 있었습니까?”

노부인이 다소 냉담해진 표정으로 다시 말을 꺼냈다.

“석석아, 너 마음이 넓은 아이였잖아. 장군부에 시집왔으면, 장군부의 며느리 답게 굴어야지. 병부(兵部: 군사 업무를 담당하는 나라 부서) 심사에서도 이방 장군이 북망보다 더 큰 공을 세웠다는 것이 발표됐어. 너는 그들 부부와 한 마음이 되어 앞으로도 쭉 내실 관리를 해주면 돼. 그럼 언젠가 너에게도 좋은 일이 생기게 될 거야.”

송석석이 냉담하게 말했다.

“그들 부부와 한 마음이 되라고요? 전 사양하겠습니다.”

노부인이 불쾌한 표정으로 물었다.

“사양하겠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처음부터 내실 담당은 너였잖니?”

송석석이 말했다.

“아니죠. 내실 담당은 원래 큰형수님의 소관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은 큰형수님이 몸이 안 좋으셔서 제가 잠시 돌봤지만, 이젠 괜찮아졌으니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게 맞죠. 내일 장부 맞춰서 인수인계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큰형수라 불린 여인, 민씨가 다급히 끼어들었다.

“나 아직 다 회복 못 했어. 지난 일 년 동안 네가 잘해왔으니, 앞으로 내실 관리는 네가 계속 맡아줬으면 좋겠어. 우리 모두 네 관리 능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어.”

송석석의 입가에 조소가 맺혔다. 들어간 돈이 얼마인데, 당연히 높게 평가할 수밖에. 노부인의 비싼 약값부터, 집안의 작고 큰 지출까지, 그녀의 돈이 안 들어간 곳이 없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들어간 것이 바로 노부인의 약값이었다. 1년 동안 천 냥에 가까운 돈이 치료비로 들어갔다.

거기에 부족해 후작부가 가지고 있는 사업체에서 계절마다 나오는 비단까지, 돈으로 환산하면 금액이 어마어마했다. 그래도 앞으로 전북망과 함께 살아야 했기 때문에, 불만 없이 모든 것을 제공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송석석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저는 한 번 한 결정, 번복하지 않습니다. 내일 장부 정리해 내어드리고 집안일에 손을 떼겠습니다.”

“잠깐!”

노부인이 다급히 송석석을 불러 세우며,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석석아, 너 이러면 안 된다. 요즘 첩을 들이지 않는 남자가 어디 있니? 이 정도도 받아들이지 못하면, 밖에 사람들이 너를 속 좁고 질투 많은 여자라고 손가락질할 거야.”

지난 1년 동안 송석석이 워낙 순종적인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에, 당연히 쉽게 설득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 같았다. 그런데 오늘 모습에, 그들은 자신들이 착각했음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송석석이 온순한 모습을 집어던지고 당당히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수근거리든, 전 별로 신경 안 써요.”

노부인은 안 그래도 몸이 안 좋은데 화가 치밀어 오르니 자꾸만 기침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송석석은 평소처럼 그녀를 달래주거나 등을 쓰다듬어 주지 않았다.

“언니, 생각이 있어요, 없어요? 어머니가 지금 화나셨잖아요.”

셋째 전소환이 다가오더니, 젖살이 덜 빠진 얼굴로 화가 난 듯 송석석을 노려보았다.

“뭐가 그리 억울해요? 후작부가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 같나요? 부모는 물론 형제들도 모두 죽고 혼자 남았는데, 이제 와서 명문가의 자존심을 부리고 싶나요? 지금은 작은 오라버니한테 버림당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때가 아닌가요?”

송석석이 그녀를 담담한 얼굴로 바라봤다. 전소환은 연두색 비단 옷을 입고 있었는데, 이 또한 송석석이 선물해준 것이었다. 그녀는 송석석을 비난할 자격이 없었다.

“입고 계신 옷부터 벗고 그런 말씀을 하세요.”

전소환이 빨개진 얼굴로 소리쳤다.

“제가 언제 달라고 했어요? 먼저 갖다 줬으면서, 생색은. 가져갈 테면 가져가세요.”

“그래요. 그럼 머리에 꽂힌 그 장신구도 돌려주세요.”

송석석이 방을 쭉 둘러보면서 말했다. 모두 불만 어린 표정을 하고 있었는데, 오직 둘째 노부인만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더 할 말 없으시면,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송석석은 이 말을 끝으로 성큼성큼 방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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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희
송석석.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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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정
2024. 10. 07. AM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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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85화

    솔직히 송석석은 왕표의 상황이 조금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믿을 만한 조력자를 데리고 다니면서 최소 3년은 숨어서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도주하자마자 금전을 빼앗기고 여자에게 버림까지 받았으니 말이다. 지금 왕표는 어떤 심정일까? 혹시 자신의 무모한 선택을 후회하고 있을까?중년이 되어서도 진정한 사랑 따위를 믿고 전전긍긍 가문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본처를 버릴 생각까지 하다니. 결국 그 대가를 치르게 된 것이다.고청우의 성격에 분명 떠나기 전 갖은 말로 왕표를 모욕했을 것이다.그녀는 자신의 미모를 이용하여 남자를 홀리고 다니면서, 한 편으로는 줄곧 자신의 미모를 탐하는 남자들을 증오했었기 때문이다.그러자 송석석은 왕표가 어쩌면 옹현에 남아있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주하고 있는 죄인으로 절대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있지 못할 것이며 여기저기 몸을 숨길 수 있는 곳을 찾아다니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더군다나 왕표는 아이까지 데리고 있으니 결국 숨을 곳을 못찾고 몰래 진성으로 돌아오지는 않았을까는 생각이었다. 왕표가 조금 멍청하긴 하지만 완전히 바보는 아니기에 가장 위험한 곳이 바로 가장 안전한 곳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한때 남강을 지키는 장군이도 했으니, 도망치기 전에 가짜 신분을 만들어 아이를 데리고 신분을 바꾼 채로 진성으로 돌아온다면 성문을 지키는 병사들이 눈치채지 못했을 수도 있다.송석석은 바로 오진에게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남자를 유의하라고 지시한 뒤, 이 사실을 최숙심에게 알리러 소주방으로 향했다.만약 최숙심이 왕표를 발견하여 제보하는 공을 세운다면 가문에 큰 도움도 될 것이다.하지만 송석석은 누군가가 마음이 약해질까 봐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이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무릎을 꿇고 사정하면 결국 용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한편, 송석석에게서 왕표의 상황을 들은 최숙심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그녀가 왕표가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할 사람이 아니니 분명 긴박한 상황이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84화

    고청우는 주먹을 꽉 쥔 채 다시 날카로운 눈빛으로 송석석을 쳐다보았다.“그래서 다들 하늘이 불공평하다고 말하는 겁니다.”“네가 말한 것처럼 출생이 좋은 걸 뭐 어떡하겠느냐? 근데 네가 조금 전에 언급했던 못난 본처인 그 여인도 귀한 집에서 태어나셨거든.”송석석이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담담한 말투로 말하자, 고청우는 그녀에게서 예전의 장공주가 생각나 너무도 싫었다.장공주 앞에서 고청우는 기어다니는 벌레보다 약하고 보잘것없는 존재였었기 때문이다.화가 잔뜩 난 고청우가 씩씩거리면서 말했다.“귀하게 태어났다고 해도 결국 부군에게 버림받는 꼴이지 않습니까?”“왕표 그자를 얘기하는 건가? 그분은 왕표를 전혀 마음에 두고 있지도 않아. 너만 왕표 그자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다.”송석석의 말에 고청우가 미간을 확 찌푸리며 반박했다.“왕표 그자는 저에게도 소중한 존재가 아닌 걸요? 그저 무능한 버러지일 뿐입니다!”“그럼 내가 아는 사실과는 다르구나. 넌 왕표 그자를 위해 아이까지 낳아주지 않았느냐? 왕표 그자가 야반 도주로 큰 죄를 저질렀음에 불구하고 넌 그자를 따라갔지. 이렇게 너처럼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들을 난 많이 봤다.”송석석이 경멸의 눈빛으로 피식 웃으면서 말하자 고청우가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만 고청우는 이내 평정심을 되찾은듯 차갑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이런 방법으로 저에게서 뭔가 알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십시오. 왕비님 말이 다 맞습니다. 전 그 남자를 미친 듯이 사랑합니다. 그래서 함께 야반 도주까지 한 겁니다.”송석석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어깨를 들썩였다.“그래, 너에게 들켰구나. 하지만 상관없다. 난 그저 절차에 따라 너에게 심문하는 것이야. 나중에 내가 원하는 심문의 답을 만들어서 폐하께 제출하기만 하면 돼.”고청우는 눈이 휘둥그레졌다.“지금 저를 모함하겠다는 뜻입니까?”“모함이 아니라 사실이다. 왕표가 장군들에게 약을 탄 일도 네가 꼬드긴 것이고 야반 도주도 네 머리에서 나온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83화

    풍수가 좋은 땅은 흠 천감이 엄선했으며 산이 푸르고 물이 맑은 곳으로 근처에는 작은 마을도 두 개나 있었다.황릉 근처라고 하지만 사실 황릉에서 30리도 넘게 떨어진 곳이었다.발인이 끝난 뒤, 고청영은 송석석과 시만자에게 찾아가 작별 인사를 했고 휘왕의 시신이 묻힌 땅 근처의 마을로 가서 작은 집을 짓고 살 거라고 말했다.시만자는 고청영에게 금전적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지 물었지만, 그는 괜찮다며 고개를 저으며, 전에 갖고 있던 장신구들을 전부 팔면 평생 먹고 살 걱정은 없다고 말했다.고청영이 진성을 떠나던 날, 마침 방시원이 연왕 등 사람들을 압송하여 진성으로 돌아왔고 성문 앞에서 창에 갇힌 연왕과 회왕을 본 고청영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하지만 백성들이 너도나도 손가락질하면서 썩은 야채 이파리를 마구 던지는 모습에 고청영은 모든 원망과 증오를 내려놓았다.나쁜 놈은 언젠가 그 벌을 확실하게 받게 될 것이다.고청영은 이제 자유의 몸으로 그 누구에게도, 그 어떤 일에도 속박을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한편, 진성에 압송된 죄인들 사이에는 영주의 관원들과 추몽도 있었으며 송석석은 의외의 인물도 발견하게 되었다.그자는 바로 고청우였다.송석석과 대리사 소경 진이는 죄인들을 인계 받으면서 방시원에게 왕표를 보았는지 물었지만 방시원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성문을 봉쇄했다가 다시 열었을 때 고청우의 행적을 발견하게 되었고 바로 그녀를 체포한 것이었기에, 죄인들은 아직 심문을 받지 않은 상황이었다. 숙청제는 중죄를 저지른 죄인들은 대리사로 끌고 가고 나머지 죄인들의 심판은 경위부에 맡기라고 했다.연왕과 회왕, 추몽, 무상에 이어 하상지와 김수덕 6인은 논란의 여지 없이 중범죄자들이었기에, 현장에서 바로 대리사에게 넘겨졌고, 그들을 심문할지 말지는 황제가 결정하기에 대리사에서는 먼저 그들을 감옥에 가뒀다. 나머지 죄인들인 영주와 연주의 관원들 그리고 고청우는 경위부의 심문을 받았다. 범죄 정황이 심각한 죄인들도 그렇게 결국 대리사로 이송 되었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82화

    그렇게 5일에 걸려 역적의 잔여 세력을 전부 숙청했다.방시원과 목종욱도 역적 추몽을 생포했다는 소식을 전해왔고 연왕과 회왕 그리고 무상 등 죄인들을 진성으로 압송하고 있기에 오늘 안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했다.왕표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죄인이 잡혔다.7월 25일, 휘황실 내부에서 휘왕을 위해 상을 치렀다. 사청엄이 반역을 저지른 탓에 상은 매우 조촐하게 치러졌으며 숙청제는 휘왕을 친왕릉에 안장할 지에 대해 대신들을 불러 진지하게 논의했다.휘왕은 비록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지만 사청엄이 저지른 죄는 가문 전체에 연좌되는 중죄이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한편, 송석석은 이번 논의에 참여하지 않고, 황실 사람들을 거느리고 휘왕의 장례에 참석했다.장례식에는 관원이 거의 참석하지 않았으며 황제께서 휘왕을 친왕릉에 안장하지 않는 이상, 관원들은 감히 함부로 장례식에 참석할 수 없었다.휘왕의 시신은 이미 관 안에 들어가 있었지만 관을 아직 봉쇄하지는 않았다.고청영은 상복을 차려 입은 채 관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고 송석석과 시만자 등 사람들이 도착했을 때 눈을 감은 휘왕의 시신을 볼 수 있었다.관 세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는데, 휘왕과 정삼숙의 시신이 들어있는 관 외에 하나가 비어 있었다.고청영이 얼음으로 시신을 지금까지 보존하고 있었던 덕분에 지금까지도 시신이 전혀 부패되지 않았던 것이다.고청영은 한참동안 넋을 놓고 있다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왕야께서는 전에 자신이 죽으면 이 옷을 입혀서 관에 넣어달라고 하셨는데 그나마 그 소원은 제가 들어드렸습니다.”“휘왕께서는 사청엄이 반역을 일으키는 순간부터 자결하기로 마음을 먹으신 겁니까?”시만자도 눈물을 뚝뚝 흘리며 묻자 고청영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저희는 오래전부터 함께 죽기로 약속했었습니다. 왕야께서 자결하실 때 제가 바로 옆에 있었습니다. 정삼숙이 먼저 돌아가시고 왕야께서는 한참동안 버티다가 저에게 꼭 살아남으라고 말씀하신 뒤 눈을 감으셨습니다.”송석석이 비어 있는 관을 힐끔 처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81화

    휘왕이 자결했다는 말에 잠깐 흠칫하던 사청엄은 곧바로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부왕…! 부왕께서 자결할 필요는 없으셨습니다…! 이 아들이 대신 죄를 뒤집어쓰겠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안 그래도 더 이상 살 마음이 없었던 고청영은 사청엄의 말을 듣고 입술을 꽉 깨물더니 빠르게 달려가 그의 머리를 세게 내리쳤다.화들짝 놀란 사청엄은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한참동안 넋을 잃고 있다가 고개를 홱 돌려 싸늘하고 음산한 눈빛으로 고청영을 노려보았다.하지만 고청영은 그런 사청엄에게 오히려 침을 툭 뱉으며 화를 냈다.“짐승만도 못한 놈 같으니라고! 넌 지금까지 영주 백성들의 목숨과 왕야 저택 사람들의 목숨으로 왕야를 협박하지 않았느냐! 심지어 왕야께 너의 죄를 뒤집어쓰라고 강요했어! 왕야께서는 반역의 마음을 단 한번도 품은 적이 없어! 심지어 너의 감시 속에서도 어떻게든 송 대감께 정보를 알리려고 최선을 다했어! 그러니까 왕야의 명예를 더럽힐 생각하지도 마!”사청엄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고청영은 이내 앞으로 한발짝 나서더니 바닥에 무릎을 털썩 꿇었다.“폐하, 부디 고명한 판단을 내리시어 주시옵소서. 왕야는 반역을 저지르지 않았고, 이 모든 건 사청엄 저자의 협박 때문입니다. 사청엄은 자신의 계획이 성공하면 만사대길이지만 실패할 경우 영주 백성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겠다고 협박했습니다. 왕야 곁에서 왕야를 보필하던 사람들도 전부 살해당해서 몇 명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왕야께서는 저런 사악한 아들을 낳고 키운 게 너무 창피하고 폐하와 백성들에게 미안하다고 하시면서 결국 자결하신 겁니다. 폐하, 어서 영주의 백성들을 지켜주십시오. 더 늦어지면 그자들은 전부 목숨을 잃게 될 것입니다!”한편, 이덕회는 오열하는 고청영이 흥분해서 황제에게 실례되는 일을 저지를까 봐 얼른 고청영을 부축하며 말했다.“울지 마십시오. 영주 백성들은 무사할 겁니다. 폐하께서 이미 영주에 사람을 보냈고 그자는 왕야의 옥패를 들고 영주로 출발했습니다. 현재 영주는 조정의 관할 지역이 되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80화

    숙청제는 높은 곳에서 그를 내려다보며, 눈빛에서 숨길 수 없는 증오를 담으며 말했다. “그래? 네 아버지를 대신해 벌을 받겠다고 해도, 나는 무고한 사람을 억울하게 만들 수는 없다. 역모를 꾸미고 나라를 빼앗으려 한 자가 누구인지, 짐이 직접 조사하여 밝혀내겠다.”“폐하...”사청엄이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고통스럽게 말했다.“조사를 할 필요 없이 제 죄를 물어주십시오. 아버지께서는 잠시 이성을 잃고 실수하신 것뿐입니다.”숙청제가 냉소를 띠었다.“실망이구나. 황위를 노렸던 자가 이렇게 기개가 없다는 말이냐? 이 꼴로 황제가 되려고 하느냐? 그러면 사청엄, 너를 따르는 사람들 모두가 실망할 것이다.”“아버지를 대신해 벌을 받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아버지를 용서해 주십시오.”사청엄은 아무리 황제가 뭐라고 말해도, 이 한마디밖에 할 수밖에 없었다.그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다들 그의 야심을 비난하였지만, 그는 여전히 아랑곳하지 않고 비난을 신경 쓰지 않았다.그는 여전히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아버지를 더 이상 욕하지 마시지요. 그도 그저 잠시 실수를 한 것 뿐일 겁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로서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그의 말에 대부분의 관리는 큰 분노를 느꼈다. 그의 터무니없는 말에 어이가 없어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때, 숙청제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수년 동안 계획을 세우며 영리한 척했지만, 결국 궁문도 통과하지 못하는 자가 어찌 황제가 되려고 했단 말이냐? 연왕처럼 무식한 자였다면 아마도 이런 꼴은 안 당했겠지?”그동안 사청엄은 늘 자신이 연왕보다 똑똑하고 뛰어나다며 자부했었고, 연왕의 신하 앞에서도 그런 태도를 보였었다. 그 후부터 연왕의 부하들도 사청엄을 따른 후 연왕을 무시하기 시작했고 연왕의 무능함을 비웃었던 것이다. 그러니 숙청제가 연왕보다 못하다고 말하자, 사청엄은 마음이 괴로울 것이다.하지만 사청엄은 그저 낫빛이 잠시 바뀌었을 뿐, 다시 같은 말만 되뇌었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79화

    석홍심의 지휘 아래, 이 사병들은 물러나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용감해졌다.그들은 연왕의 사병이 아니었지만, 만 명이 넘는 병사들은 모두 사청엄이 수년간 정성껏 고른 병사들이었고 수많은 훈련에 참여한 경험이 있었다.그중 많은 이들이 비참한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이 세상에 대한 분노를 품고 있었기에, 그들은 이 전투를 통해 인생을 역전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누군가가 지휘를 하는 이상 쉽게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현갑군은 그들을 이길 수 있지만, 쉽고 빠르게 승리하긴 어려웠다.송석석은 그들이 항복하지 않으면 죽는 사람이 점점 더 많아질 것을 알고 있었기에 정예병을 뽑기로 했다. 그들 중에는 매산 분대도 포함되었으며, 반란군 중에서 석홍심의 목을 취할 계획을 세웠다.군대에는 장수부터 사라져야 전쟁을 더 빨리 끝낼 수 있다.송석석은 계획을 세운 후, 만두와 몽둥이가 먼저 그들의 진형을 무너뜨린 뒤, 그녀와 시만자가 앞서 나가 적장들의 목을 베고 신속히 후퇴할 계획이었다.천군만마 속에서 적장의 목을 베는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들은 이미 전투에 열중해 있었고, 혹시라도 주저할 새에 적의 무차별 공격에 맞을 수도 있었다.석홍심은 전장에서 많은 경험을 가진 장군이었다. 그는 단번에 송석석의 계책을 알아챘고, 일부러 빈틈을 보여 송석석와 시만자가 그에게 다가올 수 있도록 하였다.그도 송석석의 생각과 같이 상대의 장군부터 잡으려 했다.송석석과 그는 서로를 잡으려고 했다.빈틈이 보이자, 그는 빠르게 공중으로 뛰어들며 검을 내려쳤다.송석석과 시만자는 짧은 무기를 사용했다. 경공으로 공격하려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했기에, 석홍심의 대검이 더욱 유리한 상황이었다.위험한 순간이었지만, 두 사람은 죽이 척척 맞게 협력했다. 시만자는 그를 향해 몸을 던져 그의 배를 머리로 가격했지만, 석홍심의 칼이 결국 송석석의 어깨에 떨어져 버렸고, 시만자도 석홍심의 병사에게 상처를 입고 말았다.이 상황에 만두와 몽둥이가 신속히 두 사람을 도우러 왔다. 한명은 유성추를 휘둘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78화

    사청엄은 마차를 타고 갈 때 멀리서 추몽을 보곤, 그제야 진심으로 안심했다.그는 추몽이 얼마나 단호한 성격인지 알고 있었다. 한 사람이 전력을 다해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으면 반드시 큰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이 전쟁은 그가 가장 갈망하던 것이었다. 자신의 위대한 계획을 위해 싸우는 것이기에 그는 지금 과거의 침착함과 여유로움을 모두 잃었지만, 오랫동안 억눌려왔던 열정이 온몸을 타고 돌기 시작했고 세상을 지배하고 싶은 갈망이 그에게 강력한 힘과 신념을 주었다.그는 야망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이며,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하며, 진실을 알지 못했다. 야망은 결코 가장 강력한 힘이 아니라는 것을, 가장 강력한 힘은 사랑과 증오, 정의와 단결이라는 것을 말이다.진정한 야망은 현갑군 통령 송석석의 애국심이며, 현갑군 통령 송석석의 가족을 잃은 증오이다.그리고 병사들과 무림 사람들이 하나로 결합하여 반역자를 쫓아내며 백성을 위한 정의를 지키려는 마음이다.사청엄은 순간 무엇인가 이상함을 느꼈다. 추몽이 이끄는 병사들이 모두 병복을 벗고 평상복을 드러내었으며, 평상복에는 ‘沈’자의 문양이 자수로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그들은 모두 심가 사람들이었다!그는 그제서야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곳에 온 자는 추몽이 아니라 심가 사람들과 무림 인사였던 것이다. 그의 무공이 아무리 뛰어난다고 해도, 임양운이 나타나면 곤경에 처할 것이며, 심지어는 지휘권조차 얻지 못할 것이다.석홍심의 반군은 정말 강력했다. 그들은 단번에 기세 좋게 강을 건너 동서 두 거리로 쳐들어갔고, 좀만 앞으로 나가면 곧 어길이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송석석는 그들을 어길로 이끌었다. 어길은 왕궁과 가장 가까운 곳이지만, 백성이 거의 없어서 백성을 다치지 않기 딱 좋은 곳이기 때문이다.경성의 귀족들과 대신들의 집안 대문은 꽉 닫혀 있었고, 가장 유능한 호위들이 문을 지켰다. 백성들 대부분은 반군이 쳐들어와 자신들을 포로로 잡을까 봐 두려워했지만,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77화

    휘황실.잔잔한 비가 방 처마 끝에서 주르륵 떨어지며, 왕부 전체를 축축하게 만들었다.한편, 늙은 휘왕은 복도에 서서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어디선가 싸우는 소리가 들리는 듯도 했고, 빗소리인 것 같기도 했다. 그는 그렇게 한참 동안 서 있다가 방으로 들어갔다.정삼숙 또한 이곳에 머물고 있었는데, 두 다리가 부러져 다시는 일어설 수 없게 되었다.다리뿐만 아니라 얼굴에도 골절상이 있어, 뼛속을 찌르는 듯한 고통을 주며 계속 그를 괴롭혔다. 하지만, 휘왕이 올 때마다 정삼숙은 아픈 척 연기를 한 탓에, 그는 이곳에 자주 오지 않았고, 정삼숙의 모습을 볼 때마다 그의 마음은 더욱 아파왔다.방 안에서는 고청영이 정삼숙의 얼굴을 닦아주고, 손과 등을 주물러주고 있었다. 누워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몸에 욕창이 생길까 염려해서였다.휘왕이 들어오자, 고청영이 물을 들고 나가며 말했다.“죽을 대령하던 참입니다. 전하께서서는 진지를 잡수셨습니까?”“아직 먹지 않았다. 죽 한 그릇을 더 가져오너라. 함께 먹자꾸나.”휘왕이 의자를 하나 가져와 침대 옆에 두며 말했다.정삼숙은 그를 향해 미소를 지었으나, 갈라진 입술이 아직 낫지 않은듯 부어오른 상태였기에, 웃을 때마다 다시 터질까 봐 걱정스러워, 비바람에 시달리는 단풍잎처럼 억지스러워 보였다. “웃지 않아도 된다.”휘왕은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아프면 말을 하거라.”“안 아픕니다.”휘왕이 죽그릇을 들어 그녀에게 떠먹여주자, 정삼숙은 붉어진 눈으로 천천히 죽을 받아먹었다.하지만 많이 먹지는 못하고 몇 숟가락만 넘길 뿐이었다. 이전에 사청엄이 의원을 불러 주었지만,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은 적이 없었기에 더 아픈 것 같았다. 휘왕은 고청영이 죽을 더 가져오기도 전에 정삼숙이 먹다 남은 죽을 먹기 시작했다.그러자 정삼숙이 놀라며 말했다.“더럽습니다.”그때, 휘왕의 앞에 놓여진 죽 그릇에 무엇인가 툭하고 떨어졌다. “삼숙아, 우리 한평생을 함께 살았구나.”정삼숙은 멍하니 그런 그를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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