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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Author: 유애
그녀가 나가고 나자 서로의 눈치를 보기 시작하는 사람들. 그 누구도 송석석이 이런 반응을 보일 줄은 예상치 못했다. 심지어 노부인의 말조차 무시할 줄은 더더욱 몰랐다.

“내버려둬. 지까짓게 말을 듣지 않으면 어쩔 테야? 어차피 다른 선택지는 없어.”

맞는 말이었다. 그녀는 의지할 친정도 없었으며 장군부 외에 머물 곳도 없었다. 게다가 그들은 송석석을 억압하지도 않았다. 이방이 들어온다고 해도 그녀는 여전히 정실 부인이었다.

다음 날 아침, 송석석은 보주를 데리고 진북후부로 돌아갔다. 진북후부는 반년이나 방치되어 있어 곳곳에 먼지가 가득 쌓여 있었다. 심지어 정원은 낙엽이 쌓이다 못해 잡초가 무성히 자라 있었다. 그런 진북후부를 바라보며 송석석은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차갑게 식은 할머니와 어머니의 시신, 사방에 뿌려진 피, 도륙된 하인들, 모든 것이 그저 악몽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제 이곳에 돌아와도 그 누구도 그녀를 반겨주지 않았다.

송석석은 보주와 함께 제사 음식을 준비해 가족들의 위패가 놓여 있는 사당(祠堂)으로 향했다. 그런 다음 무릎을 꿇고 고인들을 향해 절을 올렸다. 다시 몸을 일으킨 그녀의 눈빛엔 결연한 결심이 담겨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 만약 하늘에서 저를 지켜보고 계신다면, 부디 앞으로 제가 내리게 될 결정을 용서해 주세요. 두 분의 소원대로 시집가 자식도 낳으면서 평온한 삶을 살고 싶었지만, 전북망은 좋은 지아비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보주도 옆에 있고, 꼭 행복하게 살아 갈게요.”

옆에 있던 보주도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인사를 마치고, 그녀들은 다시 마차를 타고 황성으로 향했다.

정오(正午: 낮 12시), 가을 햇살이 따갑게 내리쬐는 가운데, 송석석과 보주는 궁문 앞에서 미동도 없이 황제의 허락을 기다렸다. 하지만 한 시간이 지나도록 아무도 두 사람을 불러주지 않았다.

보주가 구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께서 아가씨의 의도를 알아차리셔서 만나주지 않으시려나 봐요. 어젯밤 저녁도 안 하셨는데, 오늘 조반도 안 드시고, 정말 괜찮으세요? 뭐라도 드실 거 좀 가지고 올까요?”

“아니, 괜찮아. 안 배고파.”

송석석은 배고픔을 느끼지 못했다. 그녀의 마음은 오직 하나, 한시라도 빨리 전북망과의 관계를 정리하는 것뿐이었다.

“아가씨, 너무 자기 자신한테 모질게 굴지 마세요. 몸이 상하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이에요. 차라리 그냥 넘어가 주는 건 어때요? 어차피 이방 장군님이 들어오신다고 해도, 정실 부인의 자리는 아가씨 거잖아요. 평처라고 해도, 결국 첩일 뿐, 조금만 참으시면 안 돼요?”

송석석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보주, 너까지 그런 나약한 소리 하지 마.”

보주는 한숨이 나왔다. 장군이 돌아오면 아가씨도 좀 편한 날을 보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더 큰 일이 터지고 말았다. 그녀는 송석석을 지지해야 할지, 아니면 말리고 나서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어소방(御書房: 왕이 책을 읽거나 집무를 보는 방), 오 대반이(大伴: 황실 고위 관리직) 벌써 세 번이나 황제에게 보고를 올렸다.

“폐하, 전 장군 부인이 아직도 궁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숙청제(肅清帝: 황제의 이름 또는 호칭)가 상소문을 내려놓고 미간을 문질렀다.

“가서 만날 수 없다고 전해라. 교지가 내려진 이상, 철회는 있을 수 없다. 어서 돌려보내거라.”

“금군(禁军: 황제 직속 군대)들이 말렸지만, 말을 듣지 않습니다. 벌써 한 시진째 폐하를 아뢰옵기를 청하고 있나이다.”

숙청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군공의 명목으로 혼인 교지를 내려달라는데, 아무리 짐이라도 어찌 거절할 명목이 없었다. 두 사람 모두 나라에 큰 공로를 세운 장군들인데, 들어주지 않으면 안 좋은 본보기가 될 게 뻔하지.”

오 대반이 답했다.

“폐하, 군공으로 따지면 진북후부와 소(蕭) 대장군의 공로가 더 큽니다.”

숙청제는 이제는 고인이 된 송석석의 아버지, 송회안을 떠올렸다. 송회안은 그가 아직 태자였던 시절, 처음 군에 들어갔을 때 이끌어준 사람이었다. 황제는 송석석하고도 인연이 있었다. 그는 아직도 어린 시절의 그녀의 귀여운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난세를 딛고 황제가 된 인물이었다. 그는 누구보다 전쟁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전북망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지금 조정에는 황제의 동생 북명왕(北冥王) 말고는 든든한 무장이 없었다. 대외적으로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번 서경과의 전쟁에서 소 대장군의 셋째 아들은 팔을 잃었고 일곱째는 전사했다. 그래서 황제는 더욱 인재를 아꼈다.

하지만 오 대반의 말대로, 전북망과 이방보다는 진북후부의 군공이 훨씬 더 컸다.

“들여보내거라. 그녀가 이 혼인을 받아들인다면,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들어줄테니.”

오 대반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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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정
2024. 10. 07. AM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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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74화

    하지만, 궁으로 돌아온 후 그는 다신 일어나지 못했다. 단신의는 태후에게 몇 마디 말했는데 요 이틀에 돌아가실지 모르니 황제폐하께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빨리 만나게 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황제가 가장 먼저 보고 싶은 사람은 태후였다. “그 아이가 날 보자마자 가장 먼저 황조모에 대해 물었습니다. 모후께서 그를 아끼셨던 보람이 있군요.” 그러자 태후가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불쌍한 녀석, 평생 산에 숨어 살 수밖에 없게 되었구나. 그나저나 그의 다리는 정말 가망이 없는 것이냐?” “예, 희망은 없는 것 같습니다.” 숙청제의 입술에는 핏기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제가 떠나기 전에 그가 말했습니다. 의술을 배워서 나중에 제 병을 고쳐주겠다고요.” 그의 말을 들은 태후는 가슴이 쓰리고 아파왔다. “참으로 착한 아이구나.” 숙청제는 천장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렇지요. 참 착한 아이예요.” 그는 태후와 잠시 이야기를 나눈 후, 사여묵에게 태자를 데리고 들어오라고 했다. 숙청제는 병세가 엄중하지 않았을 때, 태자를 데리고 조정에 가고 상주문을 수정하고 그를 데리고 대신들과 논의를 했다. 숙청제는 그가 강제로 성장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다른 방법은 없었다. 생모를 일찍 잃은 데다 모가는 세력이 약해 조금의 도움도 되지 못했다. 수빈은 그를 친자식처럼 여겼고, 그를 보호하기 위해 죽음을 선택했다. 그러니 이 씨 가문만 남았는데 그들은 어떻게 해야 태자에게 좋은 건 지 모르는 것 같았다. 병상 앞에서 그는 태자를 사여묵에게 정중히 넘겼다. 하지만 이번엔 그에게 맹세하라고 하지 않고 바라보기만 했다. “내가 태자를 너에게 맡길 테니 잘 가르쳐 줘. 말을 듣지 않으면 숙부로서 혼낼 때는 혼 내고 때릴 일이 있으면 때려도 된다. 너희는 군신 사이가 아니라, 숙부와 조카니까.”사여묵이 눈물을 참고 말했다. “황형, 걱정하지 마십시오. 반드시 황형의 부탁을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태자.” 숙청제는 천천히 고개를 돌리고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73화

    숙청제는 신약산장에 잠시 자리를 잡았다. 이곳에는 없는 약이 없었지만 그의 병은 이미 약효가 들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하지만 이곳에 남아 있으니 그는 마음이 홀가분하고 마치 진정으로 무거운 짐을 벗어 놓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평범한 부친처럼 매일 아들과 함께했으니 더욱 좋았다.병문안을 올 수 있어, 송석석은 안으로 들어가 대황자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대황자는 계속 서우에게 새로운 친구가 생겼는지 물었다.그가 질투하는 줄 알았던 송석석은 서우에게 대황자 말고는 다른 친구가 없다고 답했다.그러자 대황자는 한참 동안 침묵하더니 이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전 새로운 친구가 생겼습니다… 길상이 바로 제 친구입니다. 서우도 새로운 친구가 생겨야 할 텐데요. 그가 걱정되긴 하지만 이번 생에는 아마 만날 수 없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그는 실망으로 가득해 보였다.그러자 송석석이 물었다.“왜 앞으로 서우를 못 볼 것이라고 생각하느냐?”“어른들이 허락하지 않을 테니까요. 어른들은 항상 고려할 것도 많고 두려운 것도 많으니까요.”송석석은 말했다.“앞으로 너희도 어른이 될 테니 그땐 너희 스스로 결정하였으면 한다.”그러자 그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서우는 저를 잊을 것이고, 길상도 언젠간 신약산장을 떠나겠지요. 하지만 전 평생 여길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그가 낙마하여 부상당한 후로부터 지금까지 그의 인생은 아주 큰 변화를 겪었다. 모든 변고가 갑작스럽게 일어나 그는 지금까지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다만 산장의 사람들이 걱정하지 않도록 위장한 것이었다.송석석은 그를 바라보았다. 예전엔 모두가 그가 철이 들기를 바랐지만 이젠 너무 철이 들어 마음이 아팠다.“너흰 이미 서로를 마음에 두었으니, 평생 잊지 않을 것이다. 서우든 길상이든 그들은 평생 너의 친구이다.”송석석은 어떻게 아이를 달래야 할지 몰랐지만, 단호하게 말을 하면 설득력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그러자 대황자가 그녀를 향해 웃으며 말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72화

    해가 지자 산속의 기온도 함께 떨어졌다. 숙청제는 산을 오를 때는 누군가에게 실렸지만 지금은 대황자를 업고 산장으로 돌아갔다. 대황자는 부황의 야윈 등에 엎드려 눈물을 멈추지 않았다. 이건 그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장면이었다. 그를 업어주기는커녕 부황이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도 그는 욕심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부황께서 왜 이렇게 말랐지? 등에 살이 하나도 없잖아.’ 송석석 등 사람들은 여전히 산문 밖에 있었고, 척귀도 들어가지 못했다. 방금 가마를 들고 들어간 사람들 마저 충성스러운 심복들 뿐이었기에, 남은 사람들은 당연히 대황자가 살아있다는 걸 알 수 없었다. 그들은 황제가 이번에 신약산장에 온 것은 치료를 하기 위한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숙청제는 그를 업고 자신의 마당으로 돌아갔다. 사실 이 산장은 별천지였다. 밖에서 보면 단지 하나의 장원일뿐인데 들어가 보면 장원은 모두 독립된 마당이었고, 마당과 마당 사이에는 꽃들이 가득 심어져 있어 좋은 향기로 가득했다. 그중, 대황자가 사는 곳은 평안각이라는 곳인데 작은 홀에 본채, 별채, 옆방, 그리고 곁방으로 이루어졌다. 집 안에 있는 책상과 의자는 대부분 대나무로 만들어져 아주 고급스러워 보였다. 작은 홀에는 두 개의 창문이 마주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중 하나가 바깥쪽 정원을 향하고 있었다. 창문 아리에는 의자가 하나 있는데, 그곳에 앉으면 바깥 경치를 볼 수 있었다. 숙청제는 그가 여기에서 보낸 날들을 모두 알고 싶어져 생각나는 대로 그에게 물었다. 하지만 상처를 치료하던 부분에 대해서는 감히 묻지 못했다. 대황자는 황조모, 서우, 둘째 동생, 셋째 동생, 그리고 누나들에 대해 물었다. 심지어 란이까지 물었는데 유독 황후에 대해서만 묻지 않았다. 숙청제는 그를 속일 생각이 없었다. 훗날 다른 사람에게 듣는 것보다 직접 말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오늘 만난 김에 모든 일을 그에게 털어놓았다. “어째서 모후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 것이냐?”그러자 대황자는 얇은 담요를 위로 잡아당겨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71화

    신약산장으로 가는 길이 멀고 험한 탓에 숙청제의 병세도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단신의는 그에게 침을 놓고, 처방을 내려도 그저 완화될 뿐이기에, 계속 간다면 병세는 점점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숙청제는 의지가 강해서 가는 길이 아무리 힘들어도 이를 악물고 참았다.신약산장은 남쪽 명주에 위치해 있으며, 기후가 사계절 봄과 같아서 몸을 추스르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었다. 그래서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춥기는커녕 금방 가을에 들어선 것 같았다.명주 현지인들은 신약산장에 대해 별로 들어본 적이 없지만 명주에 가장 큰 약국인 약왕당이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사실, 신약산장이 명주에만 있는 건 아니지만 명주의 신약산장이 귀중한 약재를 가장 많이 생산한 곳이었다.끊임없이 기복이 있는 산에 많은 보물이 숨겨져 있었다.신약산장은 산속에 위치해 있어 그리 높지는 않았지만 곡경이 깊었다. 길에도 온통 꽃들로 가득 차 있었고, 눈에 띄는 곳마다 다양한 색상의 꽃들이 피어났다.숙청제는 평생 동안 이렇게 많은 꽃을 본 적이 없어 구경하느라 바빴다. 동백꽃부터 장미, 진달래에 수국까지,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꽃들도 많았다. 그리고 끝없이 펼쳐진 황금 은행길도 있었다.그의 정신도 갑자기 많이 좋아진 것 같았고 기분도 좋아졌다. 비록 정이가 여기서 평생을 지내야 하긴 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라면 나쁘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앞으로 더 나아가자 커다란 은행나무 숲 속에 가려져 있는 산장이 보였다.산장은 흰 벽과 푸른 지붕으로 되어 있었고 매우 컸다. 바로 산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위로 올려다보면 구름과 안개가 피어올라 산꼭대기를 덮고 있었다.햇빛이 그의 어깨와 길을 비추어 구름과 극도의 조화와 매력을 형성했다. 이내 산바람이 불자, 그는 약간 쌀쌀한 느낌이 들어 옷깃을 여미고 멀지 않은 산장을 바라보았다.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낀 그는 결국 그를 만난다고 생각했다. 송석석은 사람들에게 밖에서 대기하라고 한 후 숙청제를 모시고 들어갔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70화

    숙청제가 진성을 떠나기 전에 사여묵은 이미 섭정왕으로서 대리 조정의 직책을 맡고 있었다. 그에겐 전공이 많아 그에게 불복하는 문무백관들이 없었고, 심지어 모두가 그를 존경했다. 하지만 지금 황제가 병을 무릅쓰고 미복 외출을 하자, 조정에서 섭정왕을 경계해야 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를 경계하는 것은 태자가 어려서 섭정왕이 어린 왕을 괴롭히고 그 자리를 대신할 마음이 생길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의심과 소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사여묵을 존경하지 않고, 그에게 겉으로는 복종하는 척하며 뒤에서는 호박씨를 깠다. 이덕회는 몇몇 대신들의 이러한 행동을 보고 마음이 조급해져서 먼저 형부상서인 이택을 찾아갔다. 이택은 태자의 외조부이자 돌아가신 수빈의 아버지이기도 했다. 섭정왕에게 이런 소문이 돌았으니 이덕회는 이택이 나서서 모범을 보여 섭정왕을 지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또한 지금 소문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이었다. 딸이 세상을 떠난 후 그는 오랫동안 슬퍼했다. 비록 태자가 수빈의 친 아들이 아니긴 했지만 수빈이 목숨을 걸고 지키려던 사람이었다. 그는 섭정왕의 인품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권세가 가져온 영향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전의 역왕은 가문과 생명도 아랑곳하지 않고,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 수년 동안 계획했었다. 하지만 지금 섭정왕에게 이렇게 좋은 기회가 주어졌는데 그가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는 마음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덕회에게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헛소문일 뿐이니 섭정왕께서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오. 그러니 자네도 신경 쓸 필요 없소.”그러자 이덕회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유언비어가 호랑이처럼 퍼져 섭정왕의 위신에 영향을 미쳤고, 더 나아가 시정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소. 섭정왕은 황제폐하께서 직접 선택해서 나라를 감독하고 태자를 지지하라고 한 사람이오. 그가 위신이 없다면 앞으로 태자가 어찌 자리를 잡을 수 있겠소? 외조부가 되어서 어찌 조금도 걱정되지 않는 단 말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69화

    첫눈이 내리던 날, 숙청제는 갑자기 기발한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조정에 가지 않은 그는 의자에 앉아 미복 차림으로 상국의 아름다운 강산을 보겠다고 했다. 조정은 여전히 섭정왕에게 맡길 생각이었다. 숙청제는 매우 초췌하고 여윈 상태였기에, 대신들은 너도나도 가지 말라고 말렸지만 그는 이미 결정을 내린 뒤였다. 그는 송석석과 척귀, 그리고 단신의와 금태의를 데리고 다음 날 바로 출발했다. 숙청제는 이번에 미복으로 외출하는 건 문득 떠오른 생각이 아니었다. 그는 진작에 사여묵과 송석석과 상의했었다. 단신의는 제안하지 않았지만 그가 고집스럽게 가려고 해서 단신의 또한 어쩔 수 없이 함께 가기로 한 것이었다. 숙청제는 아름다운 강산을 더 보고 싶었지만 그의 진정한 목적은 신약산장이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아들을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단신의는 사적으로 사여묵과 송석석에게 황제가 이번에 가면 신약산장에 도착할 수는 있지만 진성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그리고 최악의 결과는 그가 살아서 신약산장에도 도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생각에 사여묵 부부도 안 가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황제가 미복으로 외출한다고 해도, 외출하면 반드시 사람들의 주의를 끌 것이었다. 그날 역적의 잔당이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것이 첫 번째 이유였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대황자 때문이었는데, 대황자가 앞으로 안정된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는 외부인들에게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려서는 안 되었다.하지만 마약 황제가 신약산장으로 간다면 의심을 불러일으킬지도 몰랐다. 왜냐하면 단신의가 전에 신약산장에서 1년 동안이나 머물렀기 때문에 곰곰이 생각해 보면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하지만 도리는 도리일 뿐, 아버지로서 마지막으로 아들을 한 번 보고 싶다는데 감히 누가 막을까.출발하기 전날 밤, 송석석은 사여묵에게 서우가 대황자를 많이 그리워하는데 함께 데리고 가면 안 되는지 물었다. 하지만 사여묵은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지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68화

    시 가주는 그녀가 세 번 절을 한 후에야 비로소 울먹이며 말했다. “양심도 없는 녀석, 어서 일어나거라.” 시만자는 천천히 일어나며 눈물을 글썽였다. 이내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고는 순간 후회했다. ‘내가 왜 가족과 친척도 없는데 굳이 편리만 추구해서 진성에서 결혼한다고 했을까?’ “아버지, 오늘 결혼식이 끝나면 아버지를 따라 집에 가서 연회를 한 번 열고, 집에서 연회를 마친 후 다시 스승님에게 가서 연회를 한 번 더 열겠습니다.” 시 가주는 당연히 기뻤지만 그녀가 이리저리 다니며 고생하는 것이 싫었다. “강남에 친구가 없어서, 그곳에서 연회를 열기 싫다고 하지 않았느냐?” “제 친구는 얼마 없지만 아버지, 그리고 시 씨 가문의 친구분들이 있지 않습니까? 제가 이기적으로 아버지의 체면을 깎을 순 없지 않습니까?” 시 가주는 그녀를 바라보며 마음이 흐뭇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내 딸이 드디어 철이 들었는데… 오늘 시집가서 다른 집 며느리가 되다니.” 시만자는 앞으로 다가가 시 가주의 팔짱을 끼고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 혹시 잊으셨어요? 제가 시집가는 건 맞지만 저의 저택으로 가는 것이니 아버지께 사위를 데려온 것이나 마찬가지지 않습니까?” 그러자 시 가주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너희 둘이 잘 사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지 데릴사위는 필요 없단다. 그가 이렇게까지 양보하는 것을 보니 너에게 잘해주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겠다.” 시만자는 웃으며 말했다. “그가 잘해주지 않으면 내가 왜 시집을 가겠습니까?”왕이장에 대해서 시 가주도 당연히 조사해 본 적이 있었다. 예전에 약간의 소문이 있었지만 조사한 결과 심각한 행동은 없었고 사람은 성실했다. 게다가 만종문 출신인 데다 만종문에서 손에 꼽히는 실력이기에 그에 대해서는 만족했다. “자, 시간이 다 되었으니 사위 보고 들어와서 절을 하게 하고 꽃가마에 올라가거라.” 왕이장은 장인을 뵈러 강남에 갈 준비를 했었는데, 오늘 갑자기 만나니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67화

    송석석은 오늘 시만자와 이야기할 시간이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결혼식에는 여러 가지 번거로운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특별히 화장하는 낭자를 찾아 화장을 하고 머리를 빗는 것만 해도 한 시진은 훌쩍 지나갔다. 시만자가 원래 아름답고 요염한 데다, 화장하는 낭자의 손재주가 좋아 더욱 아름다워졌다. 점심을 대충 때우자, 시집보내는 손님들이 잇달아 찾아오기 시작했다. 원래 최 씨 부인은 남자 쪽 형수라 이곳에 오지 말았어야 했는데 최숙심은 기어코 오려고 했다. 그녀는 남자 쪽이자 여자 쪽이니 충돌하지 않는다고 했다. 좋은 날이기도 하니 아무도 그런 걸 따지지 않았다. 신부 옷을 입었을 때 시만자는 이유 없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 시집가는 것인가? 시집을 가는 순간 집안일을 도맡아하고 아이를 낳아야 할 텐데, 그렇게 되면 다신 지금처럼 자유롭고 제멋대로 살 수는 없겠지? 그런데… 보주는 예전에 시집간다더니 왜 아직 안 간 거지?’ 시만자는 이런 생각에 갑자기 보주를 보며 물었다. “너 왜 아직까지도 시집 안 갔어?” 그러자 보주가 놀라서 말했다. “말했잖아요. 아직 인연을 만나지 못했다고.” 시만자가 중얼거렸다. “괜히 내가 약속을 어긴 것 같잖아. 난 한다면 하는 사람인데 말이야.” 송석석은 그런 그녀를 보더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꿰뚫은 듯 말했다. “그래. 넌 한다면 하는 사람이지. 오 사형에게 시집간다고 했으니 후회하면 안 돼.” 시만자는 자신의 봉관을 바로 하고 옷을 정리하며 말했다. “후회라니? 내가 시집간다고 했으면 꼭 가는 거야!”‘난 평생 다채롭게 살 거야. 전쟁터도 두렵지 않은데 결혼을 두려워하겠어?’ 그녀도 주장이 없는 사람이 아니니 왕이장이 잘해주지 않으면 이혼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불안한 느낌은 그녀의 강한 마음에 의해 사라져갔다. 그녀는 기쁜 날이니 안 좋은 것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다시 다짐했다. 송석석이 위로를 하려고 했는데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시만자가 턱을 치켜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66화

    황금빛이 물드는 10월은 왕이장과 시만자의 결혼 날이였다. 작년 추석 때 시만자는 왕이장의 청혼을 받아들였고, 함께 동행하며 왕이장이 진심을 베풀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가 승낙했을 땐 그 순간의 느낌으로 진심으로 결혼하고 싶었다. 그런데 꼬박 1년이 지나서야 혼례를 치르는 건 혼수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은 아니었다.시만자가 태어난 해부터 시 씨 가문에서 그녀의 혼수를 장만하기 시작했고 해마다 늘여가 이제는 진성에서 집과 장원까지 샀기 때문이다. 그리고 혼례에 관해서는 매산에서도 이미 준비를 마쳤다. 혼사를 지금까지 미룬 것은 시 씨 가문, 적염문, 만종문, 그리고 시만자의 의견이 통일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시만자는 황실에서 시집가서 왕이장이 그녀를 그녀의 저택으로 맞이하길 바랐다. 그렇게 하면 편리한 데다 긴 여정을 거쳐 강남으로 돌아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 가주는 시 씨 가문이 대 가문이니 반드시 크게 치러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크게 치르려면 강남에서 시집을 가야 맞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는 연회를 열흘 밤낮을 열 생각이었다. 하지만 시만자가 적염문의 제자이고, 왕이장은 만종문의 제자이니 그렇게 복잡하게 할 필요 없이 적염문에서 만종문으로 시집을 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적염문의 명성을 얻기 위해 무림의 친구들을 초대하여 연회를 열고 싶었다. 만종문의 무소위는 왕이장은 왕 씨 가문의 사람이고, 그의 뿌리도 진성에 있기 때문에 혼사를 진성에서 치르는 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솔직히 말해서 만종문이 성대한 혼사를 치르려 한다면 무소위는 지쳐 죽게 될 것이었다.그는 돈은 지원할 수 있지만 힘은 쓰기 싫었다. 사람들과 왕래하는 걸 좋아하지 않던 임양운은 애초에 그의 소중한 제자였던 송석석이 매산에서 연회를 열지 않았으니 이번에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만종문에는 제자가 많은 탓에 연회를 열기 시작하면 해마다 연회를 열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속세를 피해 매산으로 간 그에겐 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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