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신의를 배웅한 뒤, 송석석은 곧바로 문희거로 돌아왔다. 그렇게 약 반시간 정도 지났을까, 전북망이 이방을 데리고 그녀를 찾아왔다.송석석은 작은 서재에 앉아 이 달의 장부를 정리하고 있다가 두 사람이 들어오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전북망과 이방은 두 손을 맞잡은 채였다. 금색 향로엔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침향이 타고 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숨을 들이켜며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송석석은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그녀는 보주에게 나가라고 한 뒤,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앉으세요, 두 분.”이방은 오늘 갑옷이 아닌 일반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치마에 금색 나비 수가 놓아져 있었다. 이방은 아름다운 외모는 아니었으나, 기개가 넘쳤다.“이보세요!”그녀가 먼저 송석석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전장에서 수도 없는 적군들을 죽여온 경험으로 이방의 몸에선 일반 여자들은 감당하기조차 힘든 분위기가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송석석은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 눈빛을 맞받아치며 말했다.“하실 말씀 있으시면 하십시오, 장군님.”그러자 이방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저를 보고 싶어 했다고 들었는데, 묻겠습니다. 저와 평화롭게 지낼 생각 있으십니까?”그녀의 태도는 매우 강압적이었다. “솔직하게 말하십시오. 앞에서는 괜찮은 척하면서, 뒤에 가서 또 딴소리 하지 말고.”송석석이 그녀를 바라보며 답했다. “태후마마께서 이방 장군님은 여자들의 본이 되는 분이시라 하셨죠. 그럼 제가 되묻겠습니다. 저에게 장군님과 잘 지내는 것 말고, 다른 선택지가 있나요?”이방이 엄격한 표정으로 말했다.“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선택은 그대 몫이지, 다른 사람이 대신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송석석은 냉소적으로 웃었다. 그러나 그 모습조차 너무 아름다워 이방은 왠지 모를 불편함을 느꼈다. 송석석이 다시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야 당연히 장군님과 잘 지내고 싶죠.”이혼 후엔 더 이상 그들과 얽히지 않고 평화롭게 지내고 싶었다. 그러니 잘 지
이방은 속에서 질투심이 살짝 올라왔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전 질투가 많지 않습니다. 그쪽도 아이를 가져야 남은 생, 의지할 곳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임신한 뒤에도 그대와 잠자리를 가지건 말건, 그의 선택에 맡길 생각입니다.”마지막 말엔 분명 화가 난 기색이 담겨 있었다.전북망이 서둘러 약속했다. “걱정할 것 없소. 임신한 뒤에는 다시는 건드리지 않을 것이오.”“그럴 것 없습니다. 저 그렇게 속 좁은 사람 아닙니다.”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방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이걸 송석석이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은 그녀가 아닌 이방이었다. 그녀는 더 이상 이 역겨운 상황을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꾸짖듯 이방을 향해 쏟아붙였다. “이미 여인인 것만으로도 살기 벅찬 세상인데, 같은 여자끼리 돕고 살지는 못할지 언정 짓밟으려 드시는군요. 그래봤자 당신도 여인 아닌가요? 전쟁터에서 좀 활약했다고 이렇게 사람을 무시해도 되나요? 당신들 눈엔 제가 겨우 자식한테 의지해야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연약한 여자로 보이나요? 저도 하고 싶은 게 있고 원하는 삶이 있어요. 당신들 때문에 한낱 병풍이 될 생각이 없단 말이에요. 본인들만 중요하고 남들은 하찮게 여기지 마세요.”이방은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눈살을 찌푸리며 반박했다.“말 너무 심하게 하시는 거 아닙니까?”송석석이 차갑게 말했다. “긴말 하지 않겠습니다. 이혼합시다. 서로 얼굴 붉히지 말고.”“이혼? 지금 날 협박하려 드는 것이오?”이방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 그렇게 만만한 사람 아닙니다. 어디 마음껏 소란 피워 보십시오. 그럴수록 그쪽만 창피를 당할 테니.”그녀는 명문가의 여인들이 얼마나 명예를 중요하게 여기는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송석석처럼 태어났을 때부터 높은 신분을 가진 여인들일수록 더 했다.“난 그대와 이혼하지 않을 것이오. 우리가 이러는 것은 다 그대를 위해….”“그만하세요!”송석석이 표정을 가다듬으며
보주는 송석석이 괴롭힘을 당하는 모습을 그냥 바라볼 수만 없었다. 그동안은 모시는 주인의 품위를 지키느라 참아왔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마당에 가만이 있는 것이 더 바보 같은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비록 천한 몸종이기는 하나, 예의와 염치는 있습니다. 그런데 나라에서 큰 일을 하는 사람이 남의 남자와 염문을 일으키고, 군공을 빌미로 우리 아가씨를 괴롭히다니요….”짝! 고개가 돌아가며, 보주는 날아가다시피 바닥에 엎어졌다. 하지만 전북망은 뺨을 내리친 거로는 성에 안 차는지, 씩씩거리며 송석석을 노려보았다.“도대체 아랫사람 교육을 어떻게 한 것이오? 참으로 버릇도 예의도 없는 여종이구나.”송석석은 재빨리 달려가 보주를 부축했다. 얼마나 세게 때렸는지, 보주의 얼굴이 빨갛다 못해 부어오르고 있었다.송석석은 참지 않고 고개를 돌려 똑같이 전북망의 뺨을 후려쳤다. “제 사람입니다. 어디 감히 함부로 손을 올리십니까!”전북망은 송석석이 겨우 하녀 때문에 자신의 뺨을 내리칠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게다가 옆엔 이방까지 있었다. 그의 체면을 조금도 배려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시 되갚아줄 수는 없었다. 그는 차갑게 송석석을 쏘아보고는 이방을 데리고 방을 떠났다. 송석석이 보주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괜찮아?”“하나도 안 아파요.”보주는 울지 않고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래도 다행이네요. 곧 장군부를 떠날 수 있게 되었으니.”“그래, 곧 폐하의 성지(聖旨: 황제의 명령)가 내려올 것이다. 며칠만 견디면 곧 여길 떠날 수 있을 거야.”송석석은 하루라도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첫날, 전북망이 군공을 인정받아 황제한테서 혼인 교지를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그녀는 당연히 이방도 이 상황을 달가워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만큼 이방은 태후한테서도 인정받은 여장군이고 모든 여자들의 존경 대상이었다. 하지만 오늘의 만남 뒤로, 송석석은 이방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바꾸게 되었다. 이방은
전북망이 모두가 난처해하는 것을 보고 예물 목록을 가져와 보았다. 그리고 잠시 뒤, 이상하다는 듯 둘째 노부인에게 물었다.“뭐가 문젭니까? 만 냥, 금 팔찌 두 쌍, 양지옥 팔지 두 쌍, 장신구 두 쌍, 비단 50필이 전부인데, 많은 편 아니잖습니까?”“많지 않다고?”둘째 노부인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안타깝지만, 지금 우리 집엔 천냥도 없어.”전북망이 놀라 물었다.“말이 됩니까? 도대체 누가 장부 관리를 했습니까? 혹시 횡령이라도 한 거 아닙니까?”“제가 했습니다.”송석석이 담담히 말했다.“당신이 관리했다고? 그럼 돈은 어디에 있소?”전북망이 물었다.“그러게 말이다. 어디에 있을까?”둘째 노부인이 비웃듯 말꼬리를 올렸다.“우리가 무슨 대단한 명문가라도 되는 줄 아니? 이 장군부는 너의 할아버지가 처음 장군으로 임명 받았을 때 받은 하사품이고, 너의 아버지와 내 남편이 받는 봉급과 쌀을 다 합쳐도 이천 냥을 넘지 못해. 너는 그 두 사람보다 더 적게 받는 사품 장군이고.”“그래도 할아버지가 남긴 재산은 있지 않습니까? 그걸로 좀 수익 봤을 텐데요?”전북망이 말했다. 그러자 둘째 노부인이 반박하고 나섰다.“겨우 그 정도로는 이 큰 집안을 먹여 사릴 수 있을 것 같아? 네 어미가 매일 드시는 약만 해도 삼 냥, 삼 일마다 복용하는 약환은 한 알에 오 냥. 너의 현처의 지참금이 없었다면 이 집은 진작에 망했어!”전북망은 믿기지 않았다. 그는 둘째 노부인이 송석석과 작당해 자신을 골탕먹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실망한 얼굴로 예물 목록을 내려놓았다. “솔직하게 말씀하십시오. 그냐 이 돈을 내놓고 싶지 않았다고. 예물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전쟁의 공로가 있으니, 폐하께서 상금을 내려 주실 겁니다.”둘째 노부인이 말했다.“전쟁의 공로? 이미 이방과 혼인하기 위해 사용한 거 아니었어? 둘의 마음이 진심이라면, 예물정도야 좀 줄이면 되잖아. 둘이 다시 상의해 봐.”이때, 노부인이 기침하며 말했다.“폐하께서 하사하신 혼사인데,
노부인은 잠시 할말을 잃었다. 빌리다니? 그런데 자신이 직접 한 말이라, 차마 무를 수가 없었다. 다만 속으로 철없는 송석석의 모습에 원망을 쏟아낼 뿐이었다. 온 집안에 자기 혼자밖에 안 남았는데, 남편한테 돈을 쓰지 않으면 어디에다가 쓰겠단 말인가?전북망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내가 알아서 해결하겠소. 당신 돈 따위 필요 없소.”이 말을 끝으로 그는 방을 나가버렸다. 그러자 또다시 시선이 모두 송석석에게 쏟아졌다. 송석석은 그들을 향해 고개를 숙여 보인 뒤 말했다.“그럼 다른 일 없으면 이만 물러가보겠습니다.”“석석아, 넌 남거라!”노부인이 분노한 목소리로 나가려던 송석석을 불러 세웠다. 아직 단신의가 남겨둔 약이 있었기에, 잔기침 하나 없이 매우 기력이 넘치는 모습이었다.송석석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더 하실 말씀 남았어요?”노부인이 진지한 목소리로 답했다.“네가 궁에 가서 폐하를 만났다는 걸 알고 있다. 참 지혜롭지 못했구나. 이방이 북망에게 시집오게 되면 공을 세울 때마다 우리 가문도 같이 올라가지 않겠느냐? 그럼 너도 덕을 쌓고 영예를 누릴 수 있을 것이야. 안 그러니?”송석석은 반박하지 않았다.“틀린 말씀은 아니네요.”그녀가 다시 수그리는 듯한 태도를 보이자, 노부인은 다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요구했다. “만 냥, 너한텐 그리 많은 금액도 아니잖아. 거기에 머리 장식과 장신구를 더하면 대략 2, 3천 냥만 더하면 될 텐데, 대신 내주는 게 어떠냐?”송석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안 될 건 없죠.”노부인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송석석이 홧김에 그런 황당한 말을 내뱉은 것이라 생각하며 다시 인자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석석아, 넌 참 마음이 넓구나. 걱정하지 말거라. 앞으로 북망이 너를 속상하게 하면 내가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야.”오직 둘째 노부인만이 안절부절 송석석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녀는 송석석이 결정을 철회하길 바랐다. 자신의 혼인 지참금을 다시 남편의 첩을 들여오는 데다가
더 이상 단신의의 진료를 받을 수 없다니, 노부인은 믿을 수 없었다. 엊그저께만 해도 건강을 걱정하며 약을 잘 복용해야 한다며 신신당부하던 사람이었다. 그녀는 약왕당(藥王堂)으로 보내 즉시 사실을 확인시키게 했다. 그리고 돌아온 결과, 단신의의 그림자는 어디에도 볼 수 없었으며, 약방에 앉아 있던 다른 의원이 대신 거절의 의사를 전했다. 노부인은 이 소식에 충격 받아 하마터면 뒤로 넘어질 뻔했다. 의원이 단신의를 대신해 전달한 말은 이러했다.“앞으로 다시는 진료를 청하지 마시오. 장군부의 사람들만 봐도 소름이 끼치니, 더 이상 진료를 진행하다 가는 내 수명이 줄 것 같소. 나는 일찍 죽고 싶지 않소이다.”노부인이 분노가 가득 담긴 목소리로 외쳤다.“분명 송석석의 짓이다! 사람이 이렇게 독할 줄이야! 그동안 보여준 모습도 있었기에, 현명하고 온화한 성품을 가졌을 거라 생각했거만, 참으로 잔인하도다! 지금 이 행위는 나를 죽이려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단신의의 약이 없이, 앞으로 나보고 어떻게 버티란 말이냐!”전기 또한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마음엔 며느리에 다한 불만이 서서히 쌓이고 있었다. 처음엔 전북망이 갑자기 동의도 없이 첩을 데리고 왔으니, 충분히 투정 부릴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기 시어머니의 약까지 끊어버리다니, 이건 지나쳤다. 그가 작은 아들 전북삼에게 명령했다.“가서 네 형을 불러오거라. 어떻게든 네 형수를 달래 이 소란을 멈추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 어머니의 목숨이 위태로워진다.”“예!”전북삼은 곧바로 뛰쳐나갔다. 오늘 일도 그 또한 송석석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꾸게 되었다. 송석석은 정말 지독한 여자였다. 전소환 또한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문희거로 달려갔다. 그러나 굳게 닫힌 문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고래고래 소리치기 시작했다.“송석석, 당장 나와! 이제야 알겠어, 둘째 오라버니가 이방 장군한테 마음 뺏긴 이유가 있었네! 이방 장군은 너처럼 비겁하지 않으니까! 넌 둘째 오라버니한테 미움 받아
전북망은 돈을 빌리기 위해 여기저기 다 돌아다녔지만, 겨우 얻은 것이 천 냥이었다. 예물과 예금, 연회 비용까지 감당하기엔 터무니없는 금액이었다. 물론 얼굴에 철판을 깔고 좀 더 고위직을 가진 관료를 찾아간다면, 더 큰 돈을 빌릴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는 이제 막 떠오르는 신예, 겨우 쌓아 올린 명성을 한 번에 깎아먹고 싶지 않았다.돈을 빌린다는 것 자체가 이미 예민하고 부끄러운 일이었다. 온 조정에 돈을 빌리고 다녔다는 소문이 나는 것보단, 자존심이 상해도 말할 데가 없는 송석석한테 빌리는 것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쯤이었다.멀리서 막내 동생 전북삼이 말을 타고 다급히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형님, 빨리 집으로 돌아오셔야 할 것 같아요. 어머니가 형수님 때문에 화가 나서 쓰러지기 직전이에요.”또 송석석의 이름이 나오자, 전북망은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이번엔 또 무슨 일인데 그러냐?”전북삼이 답했다.“형수께서 어머니의 치료를 막은 것 같아요.”전북망은 그게 왜 큰 일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수도에 의사가 단신의 뿐이더냐? 단신의가 진료를 거절했으면, 다른 의원을 찾으면 될 거 아니냐? 정 안되면 태의(太醫: 황실 의원)라도 불러오도록 하마.”하지만 덕분에 그는 다시 한번 송석석이 얼마나 지독한 여자인지 알게 되었다. 어머니의 병을 빌미로 협박하려는 속셈인게 분명했다. 이방이었으면 절대로 쓰지 않을 계략이었다. 전북망의 반응에 다급해진 것은 전북삼이었다. “형님, 그렇게 간단히 해결될 문제면 제가 여기까지 찾으러 오지도 않았어요. 형님이 출정하고 얼마되지 않아 갑자기 어머니의 병이 악화되었는데, 그때 이미 형수님이 태의까지 불렀었어요. 하지만 결국 해결되지 않자, 단신의까지 오게 된 거예요. 단신의의 약이 없다면 어머니는 진작에 돌아가셨을지도 몰라요.”그 말을 듣자, 전북망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정말이냐? 송석석이 어머니의 목숨을 담보로 날 협박하려 작정한 모양이구나.”전북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전북망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송석석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는 송석석이 또다시 협박하려 이 말을 꺼낸 것인지, 아니면 진심으로 이혼을 바라고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무엇이 되었든, 그는 이혼할 마음이 없었다. 이혼하면 송석석의 말 대로 모든 비난이 그와 이방에게로 쏟아질 것이다. 또한 백성들도 그를 손가락질할 것이다. 진북후부는 온 백성에게 영웅으로 칭송받는 집안이었다. 송석석과 이혼한다는 것은 그런 그들의 신뢰를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송석석, 난 그대와 이혼할 생각 없소.”그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당신을 억압할 생각도 없소. 앞으로는 부디 자중하며 사시오. 이번에 어머니를 이용해 나를 협박하려 든 건, 정말 도를 넘었소. 요구든 불만이든 내게 하시오. 괜히 어머니를 끌어들이지 말고. 이 일이 밖에 알려지면 당신의 명성에도 도움이 안 될 테니.”하지만 송석석은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참으로 솔직하지 못하십니다. 저와 이혼할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할 용기가 없는 것이겠지요. 저와 이혼하게 되면 장군한테 피해가 갈 테니까. 사람들이 당신을 무정한 남편이라며 욕할 것이며, 부하들도 당신을 달리 보게 되겠죠. 사랑과 명예, 두개 모두 얻으려 하니까 일이 꼬이는 겁니다. 사람 아주 잘못 보셨어요. 전 장군부가 없어도 충분히 혼자서 잘 살아갈 수 있습니다.”그녀의 말을 듣고, 전북망은 자존심이 상한 듯 얼굴이 붉어졌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 늘어 놓으시오. 혼인은 폐하께서 정하신 것이니, 절대로 무를 수 없소. 그러니 조건을 말하시오. 어떻게 하면 이방을 받아들이겠소?”“조건이요? 그런 거 없습니다.”송석석은 당당히 어깨를 편 채, 굳건히 그를 바라봤다. 그녀의 얼굴은 그 어느때보다 빛났으며 아름다웠다.전북망은 더 이상 화를 내지 못하고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솔직히 난 당신이 이 혼사를 기꺼이 받아들일 거라 생각했소. 그대의 아비와 오라비, 모두 무장 출신이었으니, 이방 또한 품어줄 줄 알았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