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망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송석석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는 송석석이 또다시 협박하려 이 말을 꺼낸 것인지, 아니면 진심으로 이혼을 바라고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무엇이 되었든, 그는 이혼할 마음이 없었다. 이혼하면 송석석의 말 대로 모든 비난이 그와 이방에게로 쏟아질 것이다. 또한 백성들도 그를 손가락질할 것이다. 진북후부는 온 백성에게 영웅으로 칭송받는 집안이었다. 송석석과 이혼한다는 것은 그런 그들의 신뢰를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송석석, 난 그대와 이혼할 생각 없소.”그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당신을 억압할 생각도 없소. 앞으로는 부디 자중하며 사시오. 이번에 어머니를 이용해 나를 협박하려 든 건, 정말 도를 넘었소. 요구든 불만이든 내게 하시오. 괜히 어머니를 끌어들이지 말고. 이 일이 밖에 알려지면 당신의 명성에도 도움이 안 될 테니.”하지만 송석석은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참으로 솔직하지 못하십니다. 저와 이혼할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할 용기가 없는 것이겠지요. 저와 이혼하게 되면 장군한테 피해가 갈 테니까. 사람들이 당신을 무정한 남편이라며 욕할 것이며, 부하들도 당신을 달리 보게 되겠죠. 사랑과 명예, 두개 모두 얻으려 하니까 일이 꼬이는 겁니다. 사람 아주 잘못 보셨어요. 전 장군부가 없어도 충분히 혼자서 잘 살아갈 수 있습니다.”그녀의 말을 듣고, 전북망은 자존심이 상한 듯 얼굴이 붉어졌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 늘어 놓으시오. 혼인은 폐하께서 정하신 것이니, 절대로 무를 수 없소. 그러니 조건을 말하시오. 어떻게 하면 이방을 받아들이겠소?”“조건이요? 그런 거 없습니다.”송석석은 당당히 어깨를 편 채, 굳건히 그를 바라봤다. 그녀의 얼굴은 그 어느때보다 빛났으며 아름다웠다.전북망은 더 이상 화를 내지 못하고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솔직히 난 당신이 이 혼사를 기꺼이 받아들일 거라 생각했소. 그대의 아비와 오라비, 모두 무장 출신이었으니, 이방 또한 품어줄 줄 알았소.”
“흥!”보주가 경멸이 가득한 얼굴로 코웃음 쳤다.“예물로 만 냥을 요구하다니, 장군부를 너무 과대평가했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아가씨도 시집올 때 더 부를 걸 그랬습니다. 정말 저희만 손해 본 것 같아요.”그러자 송석석이 장난스레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내가 나를 너무 저렴하게 팔아 넘겼구나.”그러자 보주도 웃었다. 하지만 머릿속엔 그 동안 송석석이 당했던 억울한 일들이 생생히 떠올랐다. 절대 첩을 두지 않겠다던 약속만 믿고 한 혼인인데, 결국 거짓이었다. 그는 결국 송석석의 인생을 망치고 말았다. 보주는 차마 이 안타까운 마음을 송석석 앞에 티 낼 수 없어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그러다 문득, 보주는 황제가 떠올랐다. 혹시나 황제가 이 이혼을 허락하지 않겠다고 나온다면, 큰 일이었다. 황제의 허락 아래에 진행되는 이혼과 그렇지 않은 것은 천지차이였다. 여인이 이혼을 당하는 거면, 혼수품을 받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겨우 종이 쪼가리 하나 쓰면 되는 일인데, 도대체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것일까? 설마 둘이 결혼한 뒤에 내릴 작정인가?그렇게 되면 정말 고통스러울 것 같았다. 보주는 이곳에서 한 순간이라도 더 머물고 싶지 않았다. 늦은 저녁, 송석석은 장부를 넘겨주기 위해 전북경의 아내, 큰며느리 민씨를 불렀다. 진작에 해치웠어야 할 일이었지만, 그동안 이런저런 일들이 겹치는 바람에 미뤄졌었다.하지만 민씨는 골치덩어리 장부를 맡고 싶지 않았다. 그녀도 남편이 있는 입장에서 송석석을 동정했지만, 이방이 시집오게 된다면 장군부에 큰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번에 서경의 항복을 받아낼 수 있었던 것도 이방의 덕이 컸다고 들었었다. 병부에도 이 공로를 잊지 않을 것이다.비록 이번 공로는 혼인과 맞바꾼 탓에 다른 공로는 없었지만, 전북망과 이방은 아직 한참 창창할 때였다. 또한 황제도 젊은 장군들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분명 조만간 좋은 소식이 전해질 것이다. 더군다나 송석석은 진북후부의 유일한 혈육이었다. 그녀의 친정은 조
장부를 넘긴 뒤, 송석석은 친정에서 함께 온 사람들을 모두 불러 문희거 문을 닫아버렸다. 식사도 다들 문희거 내부에 있는 작은 주방에서 해결했다. 장군부에서 하녀장 역할을 하던 황 마마(嬷嬤: 나이든 노련한 하녀)와 양 마마도 함께였다.송석석이 진북후부의 사람들을 모두 빼 가자, 장군부는 큰 혼란에 휩싸였다.민씨는 급한대로 집사를 불러 쓸만한 사람들을 뽑아 일단 공백을 채웠지만, 효율은 좋지 않았다.그런데 혼인식까지 준비해야 하는 지금, 인력이 딸려도 너무 딸렸다. 송석석이 시집온 후, 인력 관리의 대부분을 황 마마가 맡아서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자리가 비자, 마치 몸을 잃은 도마뱀 꼬리처럼, 사람들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민씨는 수습할 수 없는 사태에, 노부인에게 이 사실을 고할 수밖에 없었다. 노부인이 머리를 짚으며 분노가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정말 해도해도 너무 하는구나. 내가 정말 사람을 잘못 본 게야. 그동안 잘해줬거니만 이렇게 하룻밤 사이에 얼굴을 갈아엎다니. 처음부터 버릇을 잘 들였어야 했는데.”민씨는 그 말에 공감할 수 없었다. 그녀가 시집왔을 때만 해도 노부인은 엄격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송석석은 시집올 때 그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재산을 가지고 왔다. 그리고 가사는 물론 노부인의 병간호까지 모두 도맡아 했는데, 무슨 버릇을 더 들인다 말인가?하지만 차마 노부인 앞에서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기에, 얼른 화제를 돌렸다.“어머니, 저희 안 그래도 자금이 부족한데 무슨 수로 하인을 늘리죠?”노부인은 고민하는 도중에 돈을 보태 주지 않는 송석석이 떠올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지금 상황에 송석석이 가지고 있는 재산을 가지고 올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이 해결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장은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작은 집에 연락을 넣어보거라. 그쪽은 송석석과 사이가 좋은 편이잖냐.”그러자 민씨가 답했다. “여쭤봤으나 염치가 없어 차마 말을 못 꺼낸다 하십니다. 그리고 지금은 예
노부인이 아파 들어 눕자, 장군부는 혼란에 빠졌다.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전북망은 급히 태의를 불렀다. 잠시 뒤, 진찰을 완료한 태의가 전북망을 바라보며 말했다.“사실 전에도 노부인을 뵌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 의술로는 도무지 병을 낫게 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 노부인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은 단신의 뿐입니다. 그의 단설환(丹雪丸)은 곧 노부인의 생명줄과 같습니다. 지금 당장은 제가 병세를 안정시킨 것 같아 보여도, 이건 모두 지난 일년간 단설환을 복용한 효과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복용하지 못한다면 발병 횟수가 늘어나면, 저도 해드릴 것이 없습니다.”말을 마친 태의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넨 뒤, 장군부를 떠났다. 전북망은 분노와 슬픔이 뒤섞여 눈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는 태의의 조언대로 바로 단신의를 찾아갔다. 하지만 단신의는 만나주지도 않고 그를 거절했다. 전북망은 이 모든 것이 송석석의 탓임을 깨달았다. 노부인의 생명을 협박으로 이방과의 혼인을 막으려는 음모였다. 정말 악독하고 비열하기 짝이 없는 여자였다. 그는 곧바로 문희거로 쳐들어갔다. 늦은 밤이긴 했지만, 다행히 송석석도 잠들기 전이었다. 그녀는 은은한 등불 아래에 조용히 책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예고도 없이 쳐들어온 전북망을 발견하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분명 또 노부인의 병세와 단신의 때문에 추궁하려고 온 것일 터, 송석석은 다른 사람들에게 나가라고 명령했다. “다들 일단 나가거라.”“내일 당장 단신의를 부르시오! 그렇지 않으면….”전북망의 커다란 그림자가 서서히 송석석을 향해 다가왔다. 그의 얼굴은 얼음장처럼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하지만 송석석은 전혀 두려운 기색이 없이 그를 똑바로 마주보았다.“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그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그렇지 않으면, 그대를 쫓아낼 것이오!”송석석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절 쫓아내겠다고요?”그러자 전북망도 차갑게 맞받아쳤다.“그대의 말 대로, 그대가 저지른 짓은
노부인의 방은 밤이 깊어지도록 불이 꺼지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전북망의 이혼 발표 때문이었다. 전북망의 아버지, 전기가 타이르듯 말했다. “네가 정실 부인을 먼저 내쫓게 되면, 모든 언관(言官: 왕에게 직언과 비판을 하는 관직)이 널 탄핵하라고 상소를 올릴 거다. 그러면 너는 더 이상 조정에서 높은 관직으로 올라가지 못해.”형 전북경도 옆에서 말을 보탰다.“둘째야, 아버지의 말씀 들어. 군에 송석석 아버지 부하로 있던 장병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니? 이번에 네가 큰 공을 세울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야. 그들의 지지를 잃게 되면, 네 입지가 불안해질 거다.”“하지만 저 여자가 어머니의 목숨을 가지고 저를 협박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그냥 넘어갑니까!”전북망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노분인은 지금 안정을 찾은 상태였지만, 좀 전에 발병했던 고통으로 송석석을 더욱 증오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때, 노부인이 뭔가 생각난 듯 거칠게 소리쳤다.“당장 내쫓거라! 이혼당하는 여자는 혼수품을 가지고 못 가게 되어 있어!”전북망이 말했다.“전 그걸 바라고 이혼하자고 한 거 아닙니다.”“그게 뭐 어때서? 자기가 잘못한 것 때문에 내쫓기는 건데, 혼수품은 당연히 두고 가야지!”노부인이 가슴을 문지르며 말했다. 아직도 가슴에 알싸한 고통이 남아 있었다.“혼수품을 두고 가면, 그 돈으로 다시 단신의를 부르면 되지 않느냐? 북망아, 너도 밖에 돈을 빌리러 다녀 봐서 알 것 아니냐? 돈이 없으면 아무리 뛰어난 장군이라도 무시당할 수밖에 없어. 그리고 예물을 준비한다고 가게와 땅을 다 팔아버린 바람에 우리 지금 완전 빈털터리야.”전기가 다급히 끼어들었다.“부인, 혼수품이 중요하오? 아니면 북망의 앞길이 더 중요하오? 제발 생각 좀 하고 말하시오!”노부인도 사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것보다 돈이 더 급했다.“당신도 전에 말씀하셨잖아요. 조정엔 지금 무장들이 필요하다고, 폐하께서도 뛰어난 장군들을 많이 배출하려고 노력하고
전북망이 급히 막아서며 말했다. “어머니, 제발 이러지 마세요. 그 혼수품을 제가 어떻게 받습니까?”노부인이 화가난 목소리로 말했다.“바보 같은 생각하지 말 거라. 네가 그 년한테 당한 게 얼마인데? 네가 마음 이렇게 약한 모습 보여주니까, 그 년도 이렇게 함부로 나오는 거 아니야! 네 어미가 또 그 년 때문에 목숨이 위태로워지길 바라느냐?”하지만 전북망은 이미 마음을 굳게 먹은 상태였다. “아버지, 어머니, 형님. 제가 그 자의 혼수품까지 가져가버리면, 정말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을 것 같아 그럽니다. 내일 아버지와 형님께서는 양쪽 가문을 대표하는 어르신들을 불러주십시오. 그리고 혼인을 중매해줬던 중매인도 불러 증인으로 세워주면 감사하겠습니다.”“너희 혼인, 연왕비(燕王妃)가 중매해줬던 것 같다만.”전기가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연왕비는 송씨 부인의 친척이야. 송석석과도 가깝고.”노부인인 말했다. “그럼 연왕비는 빼고, 그날 섰던 다른 중매인을 부르도록 하지.”연왕비는 몸이 좋지 않아 연왕부(燕王府: 연왕이 거주하는 관저) 관리는 진작에 측비(側妃)에게 맡겨졌다. 그렇기에 굳이 연왕비를 두려워할 이유는 없었지만, 황실 집안 사람들과의 갈등은 최대한 피하는 것이 좋았다. 전북망이 말했다.“그럼 나머지는 어머니께서 맡아주십시오. 저는 잠시 나갔다가 오겠습니다.”“이 늦은 밤에 어디 가려고?”전북경이 물었다. “그냥 좀 바람 쐬고 오겠습니다.”전북망은 그 말을 끝으로 성큼성큼 밖으로 향했다. 그가 늦은 밤 집을 나선 이유는 이방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이방은 여자에게 나쁘게 구는 남자를 가장 싫어했다. 그는 이 일 때문에 이방이 괜한 오해를 할까 두려웠다. 그러니 이혼의 사유가 송석석에게 있음을 분명히 밝혀야만 했다. 물론 이 시간에 이방의 집을 방문하는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이방의 아버지 이청명(易天明)은 한때 진북후부의 부하로 있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전투 중 부상을 입게 되어 다리를 절면서 어쩔 수 없이 퇴역하게 되
이방은 생각에 잠겼다. 무엇이 더 이득인가, 무엇이 더 손해인가? 현재 상황에서, 이혼은 이익보다 손해가 더 큰 선택지였다. 정실자리는 확실히 탐나긴 했지만, 지금 이혼하면 출세길이 막힐 수도 있었다.이방에겐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앞길에 걸림돌이 생기는 건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 하지만 상대는 송석석이었다. 얼마 전에 만남을 가지고 난 뒤, 이방은 왠지 모를 불안을 느꼈다. 송석석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아름답고 매혹적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아니지만, 전북망이 앞으로도 지금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을 거란 보장이 없었다. 또한 송석석을 내쫓게 되면, 그녀는 곧바로 정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방의 아버지가 처음 혼인을 반대했던 것도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말이 평첩이지, 딸이 첩과 다를 바가 없는 처지가 되는 것을 좋아할 부모는 없었다. 비록 어찌저찌 설득은 했지만, 진짜 정실이 된다면 이방의 부모도 싫어할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전북망과 송석석은 아직 첫날밤을 치르기 전이었다. 송석석을 만나기 전엔, 이방은 전북망에게 본처가 있다는 것을 크게 개의치 않았었다. 분명 곱게 자란 여인일 테니, 쉽게 다룰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첫만남 이후, 이방은 생각을 완전히 뒤집을 수밖에 없었다. 송석석은 결코 연약한 여인이 아니었다. 여장군인 그녀의 앞에서도 전혀 꿀리는 기색이 없이 맞받아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번이 아니면 또 언제 송석석을 몰아낼 기회가 생길지 몰랐다. 이방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어떻게 이렇게 악독한 짓을, 참을 수 없군요. 당신 마음대로 해요. 혼수품에 대해서는….”그리고는 잠시 뜸을 들이다, 말을 이었다.“법률에 쫓겨난 여인은 혼수품을 가지고 갈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긴 하지만, 자비를 베풀고 말고는 당신이 선택해주세요. 혼수품을 돌려준다면 당신의 명예에 도움이 될 것이고 돌려주지 않는다고 해도 법적인 문제는 없으니까요.”“혼수품은 돌려줄 것이오.”전북망의 의지는 확고해보였다. 이방이 그를
전북망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내가 무슨 낯으로 그녀의 지참금을 받는다는 말이오? 명색에 사품 장군이자, 사내라는 놈이, 어떻게 자기 손으로 내쫓은 여인의 지참금을 쓸 수 있겠소?”이방은 잠시 생각한 뒤, 침착한 목소리로 다시 한번 쇠기를 박았다. “어머님께서도 계속 약을 드셔야 한다면서요. 돈도 적게 들지 않을 텐데, 우리가 군공의 대가로 혼인을 요청한 탓에 따로 받은 상금도 없잖습니까. 당신과 제가 비록 모두 사품 장군이긴 하지만, 봉급이 그리 많은 것도 아니잖아요. 그 모든 것을 다 들이부어도, 감당할 수 있을 거란 보장이 있습니까? 게다가….”잠시 뜸을 들이던 이방이 이를 악물며 말을 이었다. “우리가 앞으로 계속 군공을 세운다고 해도,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일은 아니잖아요. 무장의 삶은 불안정해요. 어머니가 여기서 더 나빠지게 할 수는 없잖습니까. 모든 것을 돌려주면 당신은 명예를 지킬 수 있겠지만, 어머니에겐 불효자가 될지도 모르죠.”전북망은 그녀의 입에서 이런 말까지 나올 거란 생각은 전혀 못하고 있었다. 실망인지 무력함인지 모를 것이 그의 가슴을 어지럽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녀의 말이 이해되기도 했다. 그녀의 입장에선 충분히 걱정될만한 것들이었다. 불효와 명예, 이방은 그 사이에서 그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조언해주고 있는 것이었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전북망은 마음이 따뜻해졌다.“이방, 걱정하지 마시오. 내가 알아서 잘 처리하겠소.”이방의 성향상 꺼내기 쉬운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전북망은 그녀가 자신을 생각해주는 만큼, 자신도 보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절대로 이번 일로 사람들이 이방을 욕하게 만들어서는 안 되었다.이방이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말했다. “당신이 어떤 결정을 내리던, 전 언제나 당신 편에 설 거예요.”전북망은 힘이 났다. 그는 벅차오름을 못 이기고 이방을 품에 꽉 끌어안고 말았다. “알겠소. 걱정하지 마시오. 절대 당신을 고생시키지 않으리다.”그녀가 이렇게 행동한 것은 송석석의 지참금이 탐나
숙청제는 눈을 들어 사여묵을 바라보았다. 용모가 준수했었던 그 남자는 남강의 바람과 눈보라에 의해 이제 세월의 흔적이 보였다.숙청제는 무언가에 의해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함과 불편함을 느꼈다.그는 그 전투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추위와 굶주림이 사람의 의지를 얼마나 꺾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견뎌내며 아름다운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전선에서 적과 싸우는 동안 그는 송석석에게 다른 감정을 품었다.숙청제는 마음속에 자책이 있었지만, 그 자책과 함께 찾아온 것은 두려움이었다. 그 두려움은 마치 그의 마음에 단단히 새겨져 있는 듯, 어떻게 해도 눌러버릴 수 없었다.이 감정들은 그를 괴롭게 만들어 줄곧 이렇게 모순적인 감정을 느끼곤 했다.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을 정도였다."이번 전투를 통해 아마 모든 관리들이 네게 복종할 것이다. 민심이 너에게로 향하고 민족의 기대가 너에게 있지. 네가 몰래 전선에 나가서 마지막으로 힘을 다해 싸워 이겼으니 말이다."분명 마음 한 켠에서는 그를 걱정하고 있는데, 입에서는 조금 씁쓸한 말이 나왔다.숙청제는 웃으며 덧붙였다."물론 짐 역시 너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단다."사여묵은 숙청제의 말을 들으며 눈빛이 서서히 차가워졌다. 숙청제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자신이 또 일을 망쳐 버렸음을 깨닫고는 말을 돌렸다."짐에게 그 전투에 대해 다시 이야기해 보거라."사여묵은 전투에 대해 다시 이야기했지만, 아까의 흥분과 기쁨은 이미 사라지고 없는듯 했다. 그는 빠르게 말을 마친 후, 집에 있는 아내가 그리워 빨리 돌아가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숙청제는 그의 말을 들으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짐이 너를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말한 건 진심이다.""알고 있습니다."사여묵은 대답했다. 그 모든 말들이 진심이었다. 그를 괴롭히는 말도, 그를 탓하는 말도, 그를 칭찬하는 말도 전부 말이다.어떤 감정들은 마음속에 너무 오래 쌓여 있었다. 사여묵은 무언가를 말하려 했으나, 고개를 들어 바라본 숙
목 승상은 내뱉으려던 말이 목까지 올라왔으나 결국 삼켰다. 잠깐의 망설임이었지만, 그 순간만으로도 숙청제는 그의 속마음을 단번에 알아차렸다.숙청제가 웃으며 말했다. "북명왕은 이미 남강을 수복하는 공을 세웠고, 사국 병사를 몰아내어 우리 상국의 어려움을 해결한 큰 공을 세웠다. 이제 그 밑의 사람들도 나서야 할 때가 왔다. 동생도 그들에게 기회를 줄 거라 믿는다. 군을 다스리는 것에는 사람을 잘 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니 말이다."목 승상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폐하의 말씀이 옳습니다."곰곰이 생각해보니 북명왕이 빨리 돌아오는 것이 오히려 좋을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그가 협상에 나서면 사국으로부터 더 많은 이익과 배상금을 끌어낼 수 있겠지만, 황제의 병세가 언제 악화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진성은 북명왕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안정될 것이기 때문이다.목 승상이 떠난 후, 숙청제는 한참 동안 침묵하다가 오 대반을 향해 말했다. "짐도 그들 부부가 빨리 재회하길 바란다. 오랜 시간 떨어져 있었지 않느냐.” 오 대반이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다 폐하의 덕이십니다."숙청제는 다시 침묵을 이어갔다. 어느새 승전의 기쁨은 그의 마음속 고민으로 인해 서서히 사라졌다. 그는 항상 선택의 여지 없이 진심이 아닌 말을 해야 하고 내키지 않는 일을 해야 했다. 한편, 북명황실에서는 설날에 긴 폭죽을 터뜨리지 못했다며 몽동이가 매우 아쉬워하고 있었다.하지만 이제 더 이상은 아쉬워하지 않아도 된다. 염선생이 직접 나가서 폭죽을 잔뜩 사온 덕분에,그가 원하는 대로 터뜨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앞문과 옆문, 뒷문과 심지어 자신의 방에서도 터뜨릴 수 있게 했다.하지만 염선생은 단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폭죽을 어디서 터뜨리든 상관없지만 자신이 그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편, 송석석은 급히 재단사를 불러들여 가장 최신 유행하는 양식으로 몇 벌의 옷을 만들게 했다.긴 겨울을 보내는 탓에 그녀의 피부도 많이 건조해졌기에, 시만자와 신신과
이 전투는 온 하늘과 땅이 캄캄해질 때까지 치열하게 진행되었다. 피와 시체, 잘린 팔다리와 비명소리가 백안산을 가득 채웠다.죽음의 신은 햇살과 함께 다가왔고, 백안산 전체는 얇고 따뜻한 금빛으로 물들었다.사여묵은 말을 타고 달려가며, 그들에게 항복을 촉구하고 빅토르를 넘기라고 외쳤다.빅토르도 큰 소리로 외쳤다. "상국 사람들은 교활하다! 무기를 내려놓으면 기다리는 건 죽음뿐이다. 싸워 나가면 한 줄기 생명의 희망이 있다!"하지만 어떻게 싸워 나갈 수 있겠는가? 상국의 무기는 정밀하며 육안통으로 멀리서도 사살할 수 있었으니 전혀 상대가 될 수 없었다.빅토르의 주변 사람들은 하나둘씩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졌다.빅토르는 다가오는 사여묵을 향해 칼을 겨누었다. 그의 눈에는 실패와 죽음, 그리고 절망의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북명왕이 남강에 도착하기 전, 그는 명예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가족은 그 덕분에 급격히 지위가 상승했으며, 그는 사국 사람들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영웅이었다.그의 모든 것은 남강에서 얻었고, 이제 모든 것을 남강에서 잃었다.그는 사여묵을 바라보았다. 칼을 든 손은 더 이상 힘을 내지 못했지만 힘없이 떨리는 손으로 여전히 숙적을 향해 칼을 겨누었다. 그에게는 너무 많은 억울함이 남았다.그의 칼은 결국 자신의 목을 향했다. 비록 이미 네 방향에서 들이민 긴 칼들이 목에 놓여 있었지만, 그는 그 칼로 턱을 막고 피를 흘렸다.그는 힘겹게 고개를 들고는, 사여묵을 차갑게 바라보며 말했다. "너희는 나를 죽일 수 없다. 나는 내 손으로 죽을 것이다."말을 마친 후, 그는 머리를 뒤로 젖혔다. 날카로운 칼날이 그의 목을 가르며 피가 쏟아졌다.제린은 칼을 거두며 말했다. "네가 죽는 방법은 선택할 수 있지만 뭐든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네 머리만 원할 뿐이다."무리 지어 날고 있는 까마귀와 독수리들이 백안산 상공을 맴돌았는데, 거의 하늘을 가릴 정도로 먹구름처럼 깔렸다.까마귀의 울음소리는 조종이 울리는 소리와도 같았다. 빅토르의
피수산은 본래 이름이 없는 산이었다. 사여묵이 그곳을 차지한 후, 그 산에 이름을 붙여 피수산이 된 것이다.이는 첫째로는 그 지형이 마치 피수라고 불리우던 맹수가 누워있는 듯한 모습으로 보였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이곳에 적이 들어올 수는 있어도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군량을 운반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기에, 그들은 여전히 몸에 휴대하고 있던 마른 고기를 먹었고, 목이 마르면 눈을 파서 물을 끓여 마셨다.이 위치의 좋은 점이라 함은 세 면이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정찰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병력을 주둔시킨 위치에는 자연적인 장벽이 형성되어 있어, 불을 피워도 밖에서 보이지 않았다.물론 큰 불을 피워서 따뜻하게 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가장 힘든 점은 배고픔이 아니라 밤의 찬 바람이었다.다행히 낮에는 햇볕이 비쳤기에 하루 내내 추운 것은 아니었다."원수님, 밤이 되었으니 따뜻한 물 한 잔 드시고 잠시 쉬십시오." 부장 천위가 와서 갓 끓인 따뜻한 물을 건네며 말했다. 그 물은 따뜻해서 손에 닿는 순간 가슴까지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사여묵은 큰 나무에 기대어 장갑을 벗고는 따뜻한 물을 마시기 전에 먼저 손을 따뜻하게 했다. "돌은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혹시 모르니 내일 계속 파고 운반하자.""예!" 천위가 대답했다.사여묵은 그대로 앉아 물을 한 모금씩 마셨다. 그의 얼굴은 온갖 먼지로 덮여 있었으며 수염은 엉켜 있었다. 갑옷을 벗자 머리카락은 엉켜서 한 올 한 올 붙어 있었다. 몇 모금 마시고 나서, 그는 몸을 떨며 마지막 남은 마른 고기 한 조각을 꺼내어 힘겹게 씹었다. 이 남은 말린 고기는 거의 남지 않아 하루에 한두 조각 정도만 먹을 수 있었다. 배고프면 눈을 뭉쳐 먹거나 불을 피운 후 뜨거운 물을 마셔서 허기를 채웠다."원수님, 빅토르는 언제쯤 움직일 것 같습니까?" 천위가 옆에서 물었다.사여묵은 고개를 들어 말린 고기를 삼키고 있엇는데, 갑자기 위장이 아파오자 급히 물을 두 모금 마시고 난 후에 말했다.
이택은 송석석이 이렇게 말한 것에 다소 놀랐다. 잠시 멍하니 있던 그는 그녀의 침착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남편이 전선에서 실종되었는데도, 송석석은 여전히 차분하고도 이성적인 분석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지금 지원군을 추가하는 방법은 목종욱이 군을 이끌고 가거나, 성릉관 또는 방시원의 경군이 가는 것밖에 없었다.하지만 모두 거리가 너무 멀어서 가까운 불을 끌 수 없었다. 그들은 남강에서 전투를 벌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아타목까지 갔기 때문에, 지원군의 의미는 남강을 지키는 데 불과했기 때문이다.숙청제는 모든 의견을 들은 후,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않고 기다리자고 했다. 지원군을 추가로 파견하지 않을 생각이었다.그날 저녁, 방시원은 아내인 안여옥과 함께 송석석을 찾아갔다. 왕비가 여전히 걱정할 것 같아, 아내와 함께 다시 그녀에게 분석을 해주어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자 한 것이었다.방시원이 말했다. "이번 전투는 확실히 어려운 싸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목표는 적의 여러 주요 인물을 처치하고, 그들의 기력을 크게 약화시키는 것입니다. 원수님의 이번 전략은 적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것이며, 백안산을 잘 활용하면 큰 이점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송석석이 물었다. "방 장군은 아타목산맥을 잘 아십니까?""완전히 잘 알지는 못하지만, 예전에 탐색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지형이 복잡하지만 남강군은 이미 그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유리한 지형을 이미 파악했을 것입니다. 그 지형만 잘 활용한다면 승산이 큽니다."송석석은 고개를 약간 끄덕이며 말했다. "그가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방시원은 자신이 그린 지형도를 송석석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 지형도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남강군이 현재 있는 위치는 꽤 명확하게 나와 있습니다."송석석은 지형도를 펼쳐본 후, 방시원에게 물었다. "방 장군의 뜻은 제가 사람을 시켜 이것을 왕야에게 전달하라는 말씀인가요?"그러자 방시원은 고개를 저으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왕야께서도 이미
황제가 토혈하고 난 이튿날, 남강에서 급보가 도착했다. 북명왕이 함정에 빠져 실종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이 소식은 남강에서 군량을 운반하는 일을 담당한 감독군이 사람을 보내 800리의 거리를 급히 보내온 것이었다. 그들은 드디어 군량을 지원했지만, 돌아온 소식은 남강군이 함정에 빠졌고, 북명왕이 실종되었다는 것이었다.목 승상은 육부상서들과 내각 고위 관료, 군정 관리들과 송석석을 소집하여 논의하였다. 지도가 펼쳐진 후 전달된 보고에 따르면, 남강군은 아타목산맥의 백안산에서 매복을 당했다고 했다. 매복을 당한 후 대열이 분산되었고, 현재는 임시로 여섯 개의 군대로 나뉘었으나, 군의 사기가 불안정해져서 빅토르의 대군과 맞서 싸우기 힘든 상황이라는 것 또한 전해졌다.숙청제도 병약한 몸을 이끌고 왔다. 그의 얼굴은 창백할 정도로 심각했으며, 놀라고 두려워 심장이 튀어나올 듯했다.그는 먼저 본능적으로 송석석을 한 번 쳐다보았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었고, 걱정하는 듯 보였지만 당황한 기색은 없었다.모든 신하들이 예를 갖추어 문안 인사를 드리자 숙청제는 목 승상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보았다. 아타목산맥은 마치 땅을 가로막고 드러누운 용처럼 지형을 가로질러 있었다. 지도에서는 그저 작은 선 하나로 보였지만, 실제로 그 선은 매우 크고 넓었다.그리고 함정에 빠졌다는 지점은 백안산이었다. 이곳은 지형이 험하고, 낮은 곳과 높은 곳의 고도가 50장 정도 차이가 나며, 심지어는 중간에 평지가 있어서 그야말로 매복하기 좋은 곳이었다. 그러나 매복하기 좋은 곳이라면 남강군 또한 함정에 빠지지 말았어야 했다.숙청제는 다시한번 송석석을 바라보았다. 아까보다 더 차분해진 그녀를 보아하니 그녀도 문제를 깨달은 것 같았다.사여묵의 전투 능력에 대해서는 숙청제가 최고의 평가를 내린 바 있다. 숙청제는 문신과 무장들의 의견을 듣고 싶어 했다.걱정과 의문 속에서 다른 관리들이 여러 가지 의견을 내놓을 때, 주 장군과 이덕회, 그리고 방시원은 지형이
왕이장은 말했다. "청혼은 좀 충동적으로 했다. 돌아보니 그 때를 이용한 것 같기도 해. 그 당시 그녀는 기분이 우울했으니, 승낙했어도 진심으로 혼인하고 싶었던 건 아닐 거야. 매산으로 돌아가서 사숙께 한바탕 혼나고 나니 나도 좀 진정이 됐다."송석석은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미 사숙께 말했다고요?""돌아가자마자 말했지. 그때는 열정이 넘쳤거든."그러자 송석석이 궁금한듯 물었다. "그럼 사숙은 뭐라고 하며 혼내셨나요? 반대하셨나요?"왕이장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반대한다 만다 할 단계도 아니었어. 그냥 혼냈지. 욕은 평소에 듣던 그런 말들이었고.""어떤 말들이요?"왕이장은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나를 두꺼비라고 부르시면서, 내 피부에 난 여드름을 보라고 하시더라."송석석이 낄낄대며 말했다."사숙이 사형에게 조금은 자비를 베풀었나 봅니다."그녀는 시만자가 말한 것을 전해줬다. 왕이장은 이를 들은 후,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웃었다. 그의 눈빛은 마치 꿀이 담긴 듯 달콤하게 빛났다."괜찮아, 나는 기다릴 수 있어. 천천히 기다릴 수 있고 말고. 인생은 길잖아. 안 그래?"송석석은 그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그렇게 자유롭고 과감한 오사형이 시만자의 손안에 있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그가 인생을 논하다니!매산에서 편안히 지낸 지 4일째, 매산의 문파들을 모두 방문하자 사숙은 그들을 쫓아내기 시작했다.당연히 송석석과 보주 두 사람끼리 돌아가지는 못하게 하였기에, 그는 또다시 평무종을 시켜 운익각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을 보호하게 했다. 그리고 왕이장의 상태가 괜찮아진 것을 확인하자, 그 역시 함께 쫓겨나 버렸다.진성으로 돌아온 후, 일이 아직 시작되지 않았음에도 여러 가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송석석을 방문했고, 그녀는 그들을 매일 대면하며 이전보다 더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왕이장과 시만자의 상황에 대해서는 그녀가 개입하지 않았고, 그들이 해결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송석석은 애써 눈물을 삼키며, 감정을 잡고 말했다."그럼 그들은 계속 아타목산에서 전투를 치르고 있는 건가요? 이쯤 되면 군량이 이미 바닥났을 텐데, 대군은 도대체 뭘 먹고 버티고 있는 거죠?""그 부분은 걱정 안 해도 된다. 초원 쪽에서 지원을 안 한다고 말은 했지만, 결국 말린 고기 전부를 내줬어. 게다가 그들이 원래 가지고 있던 군량과 밀전병도 있으니 당분간은 버틸 수 있을 거다. 게다가 아타목산의 깊고 긴 산맥과 빙호에서, 무기도 있으니 사냥을 해서라도 먹을 건 구할 수 있을 거고. 그러니 지금은 대충 배를 곯으면서 버티고 있겠지."그녀는 말을 마치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하지만 오래 버티기는 어려울 거다."송석석은 고개를 들고 단호하게 말했다."사국이야말로 더 버티지 못할 겁니다."두 나라의 상황은 거의 비슷했다. 남강군이 그나마 나았지만, 빅토르가 군량 지원을 받지 못한다면 결국 남강군과 정면으로 맞서려고 할 것이었다.어떻게든 승패가 갈릴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다.하지만 지금은 군대가 뿔뿔이 흩어져 있어, 사국의 주력 부대와 정면으로 맞붙는 것은 쉽지 않을 터였다.도대체 어쩌다 매복에 걸린 것일까? 사제는 그렇게 부주의한 사람이 아닌데 말이다.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르자, 그녀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녀는 곧장 평무종에게 물었다."남강군이 매복당한 뒤, 사상자가 많았나요?"평무종이 곰곰이 생각하더니 답했다. "그건 아니다. 사상자는 한명도 없었고, 그냥 뿔뿔이 흩어진 것 뿐이야."송석석은 곧바로 아타목 일대의 지형을 떠올리며, 현재 양측의 상황을 정리했다.사국 군대는 이미 오래전부터 버티기 어려운 상태였으며, 추격을 당해 도망친 끝에 결국 궁지에 몰렸다. 이제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 최후의 발악으로 매복을 설치한 것으로 봐도 무방했다.그렇다면 사제가 일부러 매복에 걸린 것은 아닐까? 사국군이 승리를 착각하고 방심하게 만든 뒤, 군대를 분산시켜 포위 작전을 펼치는 거라면?송석석이 자신의 추측을 평무종에게 말하
하지만 시만자는 바로 답을 내리지 못하고, 하룻밤을 고민했다.그리고 다음 날이 되자, 송석석에게 말했다."그가 정말로 청혼을 하고 집에서도 허락한다면…… 난 혼인할 거야. 하지만 내가 정말 원하느냐고 묻는다면…… 아직 내 마음이 어떤지 모르겠어. 그때와 지금의 마음이 같지 않으니까."송석석은 그녀를 위로해 준 뒤, 그날 바로 보주를 데리고 매산으로 향했다. 첫째는 직접 오사형과 대화를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오랜만에 매산에서 설날을 지내고 싶었기 때문이며, 셋째는 평 사저도 매산으로 돌아갔기에 그녀를 직접 만나 남강의 소식을 물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걱정하는 것은 평 사저가 무언가 나쁜 소식을 들었지만 차마 자신에게 말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직접 만나 묻는다면 평 사저가 거짓말을 하는지 아닌지 알아챌 수 있기 때문이다.그렇게 그녀가 보주를 데리고 매산에 도착하자, 임양운과 무소위는 깜짝 놀라 황급히 그녀를 안으로 데리고 갔다. 혹시라도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부터 앞섰다.송석석은 사부와 사숙의 긴장된 표정을 보자 코끝이 시큰해졌다. 진성에서는 늘 강하게 버텨야 했지만, 만종문에 오면 그녀는 언제까지나 사부 앞에서 어린아이가 됐다.그녀는 눈가를 닦고는 일부러 애교 섞인 말투로 말했다."그냥 오랜만에 보고 싶어서 왔어요. 사부랑 사숙도 뵙고, 사형과 사저들이랑도 모처럼 함께 지내려고요."무소위는 꾸짖으며 말했다."우리가 진성에서 돌아온 지 얼마나 됐다고 겨우 그걸 핑계로 돌아왔다는 거냐? 그런데 어째서 보주만 데리고 왔지? 다른 놈들은? 길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누가 널 보호한단 말이냐? 설마 네가 이제 제법 실력 좀 쌓았다고 생각하는 거냐? 아직 한참 멀었대도!""네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원한을 샀는지 생각해봤느냐? 남아있는 세력들이 다 정리된 것도 아닐 텐데, 하물며 네 남편이 전장에서 싸우고 있는 와중에 널 잡아 위협하려는 놈들이 없을 거라고 생각……"임양운이 손을 들어 무소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