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부인의 방은 밤이 깊어지도록 불이 꺼지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전북망의 이혼 발표 때문이었다. 전북망의 아버지, 전기가 타이르듯 말했다. “네가 정실 부인을 먼저 내쫓게 되면, 모든 언관(言官: 왕에게 직언과 비판을 하는 관직)이 널 탄핵하라고 상소를 올릴 거다. 그러면 너는 더 이상 조정에서 높은 관직으로 올라가지 못해.”형 전북경도 옆에서 말을 보탰다.“둘째야, 아버지의 말씀 들어. 군에 송석석 아버지 부하로 있던 장병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니? 이번에 네가 큰 공을 세울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야. 그들의 지지를 잃게 되면, 네 입지가 불안해질 거다.”“하지만 저 여자가 어머니의 목숨을 가지고 저를 협박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그냥 넘어갑니까!”전북망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노분인은 지금 안정을 찾은 상태였지만, 좀 전에 발병했던 고통으로 송석석을 더욱 증오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때, 노부인이 뭔가 생각난 듯 거칠게 소리쳤다.“당장 내쫓거라! 이혼당하는 여자는 혼수품을 가지고 못 가게 되어 있어!”전북망이 말했다.“전 그걸 바라고 이혼하자고 한 거 아닙니다.”“그게 뭐 어때서? 자기가 잘못한 것 때문에 내쫓기는 건데, 혼수품은 당연히 두고 가야지!”노부인이 가슴을 문지르며 말했다. 아직도 가슴에 알싸한 고통이 남아 있었다.“혼수품을 두고 가면, 그 돈으로 다시 단신의를 부르면 되지 않느냐? 북망아, 너도 밖에 돈을 빌리러 다녀 봐서 알 것 아니냐? 돈이 없으면 아무리 뛰어난 장군이라도 무시당할 수밖에 없어. 그리고 예물을 준비한다고 가게와 땅을 다 팔아버린 바람에 우리 지금 완전 빈털터리야.”전기가 다급히 끼어들었다.“부인, 혼수품이 중요하오? 아니면 북망의 앞길이 더 중요하오? 제발 생각 좀 하고 말하시오!”노부인도 사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것보다 돈이 더 급했다.“당신도 전에 말씀하셨잖아요. 조정엔 지금 무장들이 필요하다고, 폐하께서도 뛰어난 장군들을 많이 배출하려고 노력하고
전북망이 급히 막아서며 말했다. “어머니, 제발 이러지 마세요. 그 혼수품을 제가 어떻게 받습니까?”노부인이 화가난 목소리로 말했다.“바보 같은 생각하지 말 거라. 네가 그 년한테 당한 게 얼마인데? 네가 마음 이렇게 약한 모습 보여주니까, 그 년도 이렇게 함부로 나오는 거 아니야! 네 어미가 또 그 년 때문에 목숨이 위태로워지길 바라느냐?”하지만 전북망은 이미 마음을 굳게 먹은 상태였다. “아버지, 어머니, 형님. 제가 그 자의 혼수품까지 가져가버리면, 정말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을 것 같아 그럽니다. 내일 아버지와 형님께서는 양쪽 가문을 대표하는 어르신들을 불러주십시오. 그리고 혼인을 중매해줬던 중매인도 불러 증인으로 세워주면 감사하겠습니다.”“너희 혼인, 연왕비(燕王妃)가 중매해줬던 것 같다만.”전기가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연왕비는 송씨 부인의 친척이야. 송석석과도 가깝고.”노부인인 말했다. “그럼 연왕비는 빼고, 그날 섰던 다른 중매인을 부르도록 하지.”연왕비는 몸이 좋지 않아 연왕부(燕王府: 연왕이 거주하는 관저) 관리는 진작에 측비(側妃)에게 맡겨졌다. 그렇기에 굳이 연왕비를 두려워할 이유는 없었지만, 황실 집안 사람들과의 갈등은 최대한 피하는 것이 좋았다. 전북망이 말했다.“그럼 나머지는 어머니께서 맡아주십시오. 저는 잠시 나갔다가 오겠습니다.”“이 늦은 밤에 어디 가려고?”전북경이 물었다. “그냥 좀 바람 쐬고 오겠습니다.”전북망은 그 말을 끝으로 성큼성큼 밖으로 향했다. 그가 늦은 밤 집을 나선 이유는 이방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이방은 여자에게 나쁘게 구는 남자를 가장 싫어했다. 그는 이 일 때문에 이방이 괜한 오해를 할까 두려웠다. 그러니 이혼의 사유가 송석석에게 있음을 분명히 밝혀야만 했다. 물론 이 시간에 이방의 집을 방문하는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이방의 아버지 이청명(易天明)은 한때 진북후부의 부하로 있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전투 중 부상을 입게 되어 다리를 절면서 어쩔 수 없이 퇴역하게 되
이방은 생각에 잠겼다. 무엇이 더 이득인가, 무엇이 더 손해인가? 현재 상황에서, 이혼은 이익보다 손해가 더 큰 선택지였다. 정실자리는 확실히 탐나긴 했지만, 지금 이혼하면 출세길이 막힐 수도 있었다.이방에겐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앞길에 걸림돌이 생기는 건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 하지만 상대는 송석석이었다. 얼마 전에 만남을 가지고 난 뒤, 이방은 왠지 모를 불안을 느꼈다. 송석석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아름답고 매혹적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아니지만, 전북망이 앞으로도 지금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을 거란 보장이 없었다. 또한 송석석을 내쫓게 되면, 그녀는 곧바로 정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방의 아버지가 처음 혼인을 반대했던 것도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말이 평첩이지, 딸이 첩과 다를 바가 없는 처지가 되는 것을 좋아할 부모는 없었다. 비록 어찌저찌 설득은 했지만, 진짜 정실이 된다면 이방의 부모도 싫어할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전북망과 송석석은 아직 첫날밤을 치르기 전이었다. 송석석을 만나기 전엔, 이방은 전북망에게 본처가 있다는 것을 크게 개의치 않았었다. 분명 곱게 자란 여인일 테니, 쉽게 다룰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첫만남 이후, 이방은 생각을 완전히 뒤집을 수밖에 없었다. 송석석은 결코 연약한 여인이 아니었다. 여장군인 그녀의 앞에서도 전혀 꿀리는 기색이 없이 맞받아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번이 아니면 또 언제 송석석을 몰아낼 기회가 생길지 몰랐다. 이방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어떻게 이렇게 악독한 짓을, 참을 수 없군요. 당신 마음대로 해요. 혼수품에 대해서는….”그리고는 잠시 뜸을 들이다, 말을 이었다.“법률에 쫓겨난 여인은 혼수품을 가지고 갈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긴 하지만, 자비를 베풀고 말고는 당신이 선택해주세요. 혼수품을 돌려준다면 당신의 명예에 도움이 될 것이고 돌려주지 않는다고 해도 법적인 문제는 없으니까요.”“혼수품은 돌려줄 것이오.”전북망의 의지는 확고해보였다. 이방이 그를
전북망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내가 무슨 낯으로 그녀의 지참금을 받는다는 말이오? 명색에 사품 장군이자, 사내라는 놈이, 어떻게 자기 손으로 내쫓은 여인의 지참금을 쓸 수 있겠소?”이방은 잠시 생각한 뒤, 침착한 목소리로 다시 한번 쇠기를 박았다. “어머님께서도 계속 약을 드셔야 한다면서요. 돈도 적게 들지 않을 텐데, 우리가 군공의 대가로 혼인을 요청한 탓에 따로 받은 상금도 없잖습니까. 당신과 제가 비록 모두 사품 장군이긴 하지만, 봉급이 그리 많은 것도 아니잖아요. 그 모든 것을 다 들이부어도, 감당할 수 있을 거란 보장이 있습니까? 게다가….”잠시 뜸을 들이던 이방이 이를 악물며 말을 이었다. “우리가 앞으로 계속 군공을 세운다고 해도,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일은 아니잖아요. 무장의 삶은 불안정해요. 어머니가 여기서 더 나빠지게 할 수는 없잖습니까. 모든 것을 돌려주면 당신은 명예를 지킬 수 있겠지만, 어머니에겐 불효자가 될지도 모르죠.”전북망은 그녀의 입에서 이런 말까지 나올 거란 생각은 전혀 못하고 있었다. 실망인지 무력함인지 모를 것이 그의 가슴을 어지럽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녀의 말이 이해되기도 했다. 그녀의 입장에선 충분히 걱정될만한 것들이었다. 불효와 명예, 이방은 그 사이에서 그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조언해주고 있는 것이었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전북망은 마음이 따뜻해졌다.“이방, 걱정하지 마시오. 내가 알아서 잘 처리하겠소.”이방의 성향상 꺼내기 쉬운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전북망은 그녀가 자신을 생각해주는 만큼, 자신도 보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절대로 이번 일로 사람들이 이방을 욕하게 만들어서는 안 되었다.이방이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말했다. “당신이 어떤 결정을 내리던, 전 언제나 당신 편에 설 거예요.”전북망은 힘이 났다. 그는 벅차오름을 못 이기고 이방을 품에 꽉 끌어안고 말았다. “알겠소. 걱정하지 마시오. 절대 당신을 고생시키지 않으리다.”그녀가 이렇게 행동한 것은 송석석의 지참금이 탐나
송태공이 성격이 불 같다는 건 전기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여기서 바로 해명하려 든다는 건, 끓는 물에 기름을 붓는 거나 마찬가지, 전기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말했다.“어르신, 진정하십시오. 오늘 모신 이유는 두 아이의 일을 좀 더 분명하게 처리하기 위함이지, 나쁜 의도는 없습니다.”송세안도 옆에서 그를 달래며 말했다.“좀 이따가 석석이가 오면, 좀 더 상황을 자세히 알아보도록 해요, 할아버지. 상황을 파악한 뒤에 움직여도 늦지 않습니다.”하지만 송태공은 여전히 화를 누그러뜨리지 않았다.“무슨 일이든지 간에, 전북망이 출정간 지난 일년 동안 석석이가 이 집 부모를 모시고 살림을 했던 것은 사실 아니오? 모두를 위해 말없이 희생한 대가가 겨우 이거요?”“어르신, 일단 진정하시죠. 하실 말씀 있으시다면, 이따가 사람들이 다 모인 후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전북망이 담담히 말했다. 그는 꼭 참석해야 할 사람들 외에, 최대한 사람을 줄일 수 있으면 줄이고 싶었다. 비록 명목상 송석석이 잘못을 한 것은 맞으나, 이혼하기엔 정말 안 좋은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막 조정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한 장군, 안 좋은 호평이 생긴다면 앞길에 걸림돌이 될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집들처럼 이웃을 불러 공표하지 않기로 했다.대신 가문의 어르신들을 모두 불러모았다.전북망의 할머니는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둘째 집의 태부인은 아직 살아있었다. 하지만 이 집에도 인재는 별로 없었다. 관직에 오른 사람이 겨우 한 명뿐인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 한명조차 전기와 전북경과 별 다를 바가 없었다.두 집안은 거의 명절이나 경사 아니면 따로 만날 일이 없을 정도로 왕래가 깊지 않았다.그런데 어제 갑작스레 전북망이 이혼하게 되었다면서 증인으로 와달라는 소식을 듣고 태부인은 깜짝 놀랐다.이 시점에 이혼하다니, 왜 그런 어리석은 짓을? 의문이 들었지만, 이내 상황을 전해 듣고 이해할 수 있었다. 송씨 집안엔 이제 딸 한 명 빼놓고 방계 쪽 친척들 밖
그의 반응에 송석석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제 지참금의 절반이나 남겨 주라고 청하다니, 이방 장군께서 절 이렇게 생각해줄 줄은 몰랐네요?”“아니, 이건 이방이 쓴 것이 아니오. 이방이 이런 말 했을 리가 없잖소!”전북망은 변명했지만, 이미 필체가 모든 것을 증명주고 있어 소용없었다.송석석이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그래요? 그럼 장군님께 묻겠습니다. 오늘 이혼하고 나면, 남은 지참금 제가 다 가져가도 되겠습니까?”이 편지를 보기 전까진, 전북망은 확실히 모두 돌려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방이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들어주지 않으면 크게 실망할 것 같았다. 송석석이 미소를 지은 채 미꼬았다.“망설이네요? 역시 당신도 다른 사람들과 별 다를 바가 없었네요.”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한마디, 한마디, 비수가 되어 그의 마음에 꽂혔다. 전북망은 부끄럽고 화가 났다. 하지만 차마 반박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멍하니 그녀가 비웃음을 날리며 자신을 지나쳐 가는 것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송석석을 발견한 송태공이 다급히 손짓하며 물었다.“석석아, 장군부에서 너를 괴롭혔느냐? 그렇다면 두려워하지 말 거라. 이 태숙조가 널 지켜주마.”그를 보자 송석석은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차올랐다.“태숙조, 또 폐를 끼쳐드려서 죄송해요.”“울지 말거라!”송석석을 보자 송태공은 진북후부에 있었던 비극이 떠올랐다. 그 사건은 그에게도 매우 슬프고 충격적인 일이었다. “네가 꿀릴 게 뭐가 있다고, 눈물 그치고 당당히 얘기하거라. 비록 전북후부에 너 혼자밖에 안 남았지만, 절대로 기죽어서는 안 된다!”“어르신,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이방은 처음부터 평처로 들어오기로 약속되어 있었어요. 본부인 자리는 언제나 변함이 없을 것이라 말했는데,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송석석이에요! 그런데 마치 우리가 뭔가 잘못한 듯 말씀하시네요?”그의 말을 들은 노부인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석석아, 너에게 직접 묻겠다. 네가 시집온 후로, 여기 중에 누구라도 널 때리거나 욕
“절반!”전북망이 문가에 서서 안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이상하게 송석석과 눈을 마주보기가 힘들었다.“절반만 걷고, 절반은 돌려주겠습니다.” 송세안이 화난 목소리로 외쳤다.“절반?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단 말이오? 석석이가 이 집에 시집올 때 가지고 온 혼수가 얼마나 되는지,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 어떻게 그런 욕심을 부릴 수가 있단 말이오!”전북망이 구겨진 서신을 자시한번 힘주어 잡으며 차갑게 말했다.“이미 말했듯이, 정 불만이시면 관청에 신고하십시오. 이혼장은 여기 있으니, 한번 살펴보십시오.”그는 집사에게 이혼장을 건네라고 지시했다. 곧 송석석이 내밀어진 종이를 받아들였고 집사는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송석석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알고 있었다. 그녀는 결코 이렇게 불명예스럽게 쫓겨나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무척 익숙한 글씨체가 보였다. 전북망의 필체였다. 전에 편지를 받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송석석은 단번에 알아봤다. 이혼장에 들어있는 내용은 아주 간단했다. 질투에 눈이 멀어 불효를 저질렀으며, 마지막엔 그녀가 다시 좋은 짝을 만나길 기원한다고 적혀 있었다.“조언하 건데, 만약 앞으로 다시 시집가게 된다면 이런 짓, 다시는 저지르지 마시오. 그럼 최소한의 행복은 보장될 테니까.”후련해야 하거만, 전북망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복잡했다. “가르침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송석석이 이혼장을 들어올리며 말했다.“그런데 아직 관청 도장이 없군요.”전북망이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답했다.“도장은 곧 내가 관청에 가서 직접 받을 것이오. 지참금 절반밖에 회수하지 않은 것에 감사하시오. 법대로 했으면 당신은 한 푼도 가져갈 수 없었을 것이오. 그러니 나를 탓하지 마시오. 이 모든 것은 그대가 자초한 일이니.”지참금 정리는 완료된 상태였다. 가져간다고 해도 가져갈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교지가 내려온 뒤에 이혼을 했다면 좀 더 깔끔했겠지만, 송석석은 더 이상 여기서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송태공과 송세안은 노부인의 꾸지람에 한마디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녀의 말대로 송씨 가문엔 지금 딱히 인재라고 할만한 사람이 남아 있지 않았고, 전북망은 한참 주목받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이방이라는 여장군까지 더해지면, 확실히 미래가 밝아 보이긴 했다.“어머니, 그만하세요. 여기서 더 싸워봤자 의미없습니다!”전북망은 더 이상 불쾌한 상황을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는 이 일을 빨리 해결하고 이방을 아내로 맞이하는데 집중하고 싶었다. 하지만 본의 아니게 송석석에게 혼수품을 절반밖에 못 돌려주게 된 것은 확실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그리고 그와 마찬가지로, 이 자리에 초대된 다른 사람들도 마음이 불편했다. 비록 용기가 없어 노부인처럼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는 못했지만, 모두 이 상황에 대해 거북함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둘째 집 사람들이 가장 표정이 안 좋았다. 일가 친척 없는 여인을 내쫓는 것도 모자라 지참금 절반이나 빼앗다니, 비록 당사자는 아니었지만 같은 성을 가진 사람으로서 부끄럽게 느껴졌다.“송석석, 얼른 혼수 목록을 내놓거라!”노부인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혼수 목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북망에 너에게 절반은 내어주겠다고 했으니, 그 목록대로 나누거라!”혹시라도 꼼수를 부려 혼수품을 줄일까 걱정되었던 노부인이 경고했다.“혼수 목록 사본도 이미 다 만들어 놓았으니, 가짜 목록을 가지고 날 속이려 들지 말거라!”송석석이 웃으며 말했다.“그러면 그 사본 꺼내서 직접 보시면 되겠네요. 저한테 달라고 하지 마시고.”결혼 후, 그녀는 집안 살림을 맡아 운영하게 되면서 혼수 목록을 개인 금고에 보관해 두었다. 열쇠 또한 그녀가 직접 보관했다. 그러니 사본 따위 만들 여유가 있었을 리 없었다. 게다가 지난 일년 동안 집안 생활비와 약값도 모두 그녀의 손에서 나갔다. 결국 이렇게 될 줄은 송석석 본인도 몰랐는데, 저들이라고 예상했을 턱이 없었다. 그러니 노부인의 주장은 거짓이었다!노부인이 콧방귀를 뛰며 말했다.“내놓으라면 내
복소의의 태는 안정적이었기에, 태의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겨울이 지나면서 태가 점점 불안정해져, 두 번의 출혈을 경험했다. 금태의는 그녀의 태를 지키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그 덕분에 그녀는 겨우 안정을 찾을 수 있었지만 계속해서 침상에 누워 있어야 했기에 바닥에 내려갈 수가 없었다.갑자기 이런 상황이 발생하자, 태의는 신중히 식단과 궁에서 사용하는 모든 것들을 점검했다. 하지만 별다른 문제가 발견되지는 않았다. 아마 황제가 장기간 약을 복용한 탓에 태아가 불안정해진 것일 가능성이 있었다. 숙청제는 그녀의 태에 매우 긴장하고 있었다. 숙청제는 그녀가 침상에서 요양을 시작한 후 거의 이틀에 한 번씩 그녀를 보러 갔으며, 가끔은 같이 식사를 하기도 했다.상황이 이렇게 되자 그는 수빈의 궁에 자주 가지 않았고, 삼황자를 어서방에 불러 들이지도 않았다.덕비는 후궁을 관리하는 일을 맡고 있었기에 시간이 날 때마다 이황자와 함께 복소의를 보러 갔고, 이로 인해 황제와 함께 몇 번의 식사를 함께했다.복소의는 첩여 시절 후궁에서 자신이 의지할 사람을 찾으려 했고, 비밀리에 수빈과 덕비에게 아첨하며 양쪽을 오갔다. 하지만 수빈은 늘 거만하게 행동했으며, 그녀가 한때 황제의 총애를 얻었기도 했기에, 복소의는 수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반면 덕비는 후궁에서 유명한 온화하고 자애로운 인물로,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며 위치가 낮은 여인들까지 보살펴 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복소의는 점차 덕비에게 더 접근했지만 지금은 조금 고심했다. 황제가 그녀에게 올 때, 덕비가 여러 번 이황자를 데리고 왔고, 그 목적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수빈의 성격에 이런 일을 할 리가 없었기에, 그녀는 오히려 수빈의 도도함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결국 불만을 마음속으로에만 토로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덕비는 후궁을 관리하는 권한이 있기에 그녀를 적대할 수도 없었다. 이러한 날들이 지속되자, 그녀는 덕비가 오지 않
후궁에서는 황제의 병에 대해 추측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지금 복소의가 임신을 했다고는 하지만, 단신의가 궁에 들어와 치료하고 있다는 사실은 황제의 몸이 단순히 요양을 하면 괜찮아질 상태가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황제의 편애가 계속될수록 몇몇 사람들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특히 황후는 더욱 불안해했다. 그녀는 황제의 병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지금 단신의가 궁에 들어와 치료하고 있지만 치료의 효과는 확실하지 않다고 생각해, 그녀는 황제가 심각한 상태라고 여겼다. 황후는 복소의의 임신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아이의 성별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을 뿐더러, 설령 황자가 태어난다고 해도 그에게 까지 순서가 올 리 없었다. 그러나 삼황자에게 집중된 황제의 편애는 그녀에게 위기의식을 가져다 주었던 것이다.황제는 그녀에게 선택권을 주었을 때 그녀는 황후 자리를 선택하며 생명을 보장받았다. 하지만 며칠의 시간을 보내자, 황후는 황제가 대황자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요즘 대황자가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며, 태부와 황숙도 그를 칭찬하고 있었다. 황제도 대황자의 그러한 모습에 매우 만족해 한다고 전해 들었다.이황자와 삼황자는 그녀에게 모두 위협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황후는 황제가 이황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여겼다.최근 몇 달 동안 그녀는 거의 이황자를 본 적이 없었고, 또한 이황자가 이제는 예전처럼 열정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후는 강력한 뒷배경이 없는 덕비가 여전히 유력하지 않다고 여겼지만 수빈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수빈의 아버지는 형부상서이며, 사여묵과 같은 공문이었다. 공무의 일이든 사적인 일이든 접촉이 분명 많았을 것이고, 수빈의 어머니인 이씨 부인은 송석석에게 잘 보이기 위해 공방에 많은 돈을 기부했다. 어쩌면 이미 그녀를 손에 넣었을지도 모른다.“마마, 오늘 대황자께서 또 왕야의 칭찬을 받으셨습니다.”란주 상궁이 들어오며 웃으며 말했다.황후는 별다른 감정을 보이
숙청제는 신하들을 어서방에 불러들였고, 그들은 밤늦게까지 논의했다. 논의는 결국 단신의가 들어가서 시간이 많이 늦었음을 알리며 중단을 요청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숙청제는 팔을 뻗고 웃으면서 말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다니. 그럼 궁문도 이제 잠가야겠으니 다들 돌아가시게.”그는 여전히 기운이 넘쳤고, 특히 지금은 얼굴에 혈색이 돌아 병든 사람 같지 않아 보였다.송석석은 논의 중이던 사여묵을 기다렸다. 그들은 함께 궁을 떠나 황실로 돌아갔다. 매우 피곤했던 그녀는 사여묵의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마차가 황실 문 앞에 도착하자 사여묵은 그녀를 안아 들었다. 송석석은 그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내려오기 귀찮았기에 그대로 안겨 있었다. 그의 넓고 따뜻한 품은 정말 편안했다.그와 떨어져 있던 세 달 동안 그녀는 성릉관에서만 편히 잠을 청할 수 있었으며, 그 외의 곳에서는 늘 경계하며 지냈다. 이제 집에 돌아오니 자연스럽게 긴장이 풀렸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불안함을 느꼈다. 무언가 뜨겁고 큰 손이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단 백부 말씀을 잊으셨나요?”귓가에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 백부가 이제 괜찮다고 말씀하셨소.”송석석은 감고있던 눈을 떠, 뜨겁고 열정적인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마주하며 물었다.“정말인가요?”“틀림 없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입술이 덮였다.불꽃이 강렬하게 타올왔다. 침실의 온도마저 높아진 듯 했다.두 사람은 뜨겁게 사랑했다. 오랜 시간 떨어져 있었기에 마치 새롭게 결혼한 듯한 기분이었다!한 달 후, 상국은 시박사를 설립할 예정이었다. 이는 상국과 해외 북당과의 화물 교류를 담당할 기관이었다.원래의 시역업도 시박사의 운영을 전폭적으로 지원할 것이며, 상국에서 다른 국가에 판매할 수 있는 화물 목록을 정리하여 서경으로 사신을 파견해 화물 교환 협정을 체결할 것이다.이 한 달 동안 단신의는 약을
10월 15일, 사절단은 드디어 진성에 도착했다.현갑군은 그 자리에서 먼저 해산했고, 이덕회와 홍려사경은 궁에 들어가 황제를 뵈러 갔다. 그동안 몸이 약해져 혼자서는 거동할 수 없었던 진왕은 이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자신도 궁에 가겠다고 말했다.송석석은 이미 성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여묵에게 인도되어 황실로 돌아갔다.그동안 사여묵은 매일같이 성문 앞에서 그녀를 기다렸고, 때로는 낮잠시간에 직접 가서 기다리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이 되어서야, 드디어 기다리던 그녀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이덕회와 그들이 궁에서 황제에게 보고할 때, 송석석은 이미 태비께 인사를 드린 후였다.혜 태비는 송석석이 피곤해 보이자, 가서 씻고 옷을 갈아입으라고 말했다.송석석은 사여묵과 함께 나와서 매화원으로 돌아갔다.목욕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나왔을 때, 송석석의 입술이 어쩐지 조금 부풀어 있었다. 서주는 깜짝 놀라 왕야를 바라보았다. 왕비가 목욕하는데 왕야께서 꼭 직접 모셔야 한다며 들어가더니, 보아하니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것이 틀림없었다.서방에서는 염선생과 심청화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송석석은 그들에게 서경에서의 일들을 말해주었다. 협상 결과는 그들이 이미 알고 있었기에, 송석석은 길에서 일어난 암살 시도, 원신제의 곤경, 그리고 북당의 안풍친왕이 말한 3년과 5년의 기한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다.사여묵은 두려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었는데, 서경이 그렇게 혼란스러웠음에도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음에 안도하며 다행이라 여겼다.안풍친왕이 성릉관을 자유롭게 오고 간 것과 그가 말한 3년, 5년 기한에 대해서, 심청화는 사부에게 편지를 보내면 알 수 있을 거라 말했다. 사부는 그들을 잘 알기 때문에 그 말의 숨은 의미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었다.이야기를 마친 후, 사여묵은 송석석이 휴식을 취하게 하기 위해, 송석석에게 더 이상 질문하지 못하게 그들을 막았다. 그는 오후에 휴가를 내어 일을 쉬려고 했지만, 황제가 사람을 보내 궁에 오라고 일렀다.송석석
성릉관에서 다섯 날을 지낸 진왕은 어느 정도 몸이 회복이 되었다.그가 회복되었다는 것은 이제 다시 진성으로 향해야 함을 의미했다.이별은 너무나 아쉬웠지만, 송석석은 눈물을 삼키며 그저 작별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소 대장군 앞에서 여러 번 절을 했는데, 그로 인해 소 대장군도 눈물이 거의 터져 나올 뻔했다.이덕회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바로 소 대장군이었다. 소 대장군은 상국을 위해 수십 년 동안 성릉관을 지킨 노장이었기 때문이다.송석석은 눈물을 삼켰지만, 그는 얼굴을 가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이 평생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미 노령에 접어든 듯, 이전에 만났을 때보다 훨씬 더 노쇠해 보였다. 설령 황제가 그를 진성으로 돌아가게 허락한다 할지라도, 긴 여정과 고된 일정을 고려했을 때 소씨 가문 사람들이 그를 돌아가지 못하게 할 수도 있었다.소 대장군은 이덕회와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그러자 이덕회는 더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외숙모 남씨는 회 왕비에 관한 질문을 하지 않았었다가 이별을 앞두고서야 송석석을 옆으로 데려와 그녀의 상황을 물었다.송석석은 회 왕비가 지금 감옥에 있다는 사실과 란이가 그녀를 위해 손을 써주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힘든 상황은 아닐 거라며, 혹시 태자가 세워지면 대사면이 내려져 그녀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남씨는 살짝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외조부께서 말씀하시지는 않으셨지만, 엄청 신경 쓰고 계실 거다. 세상에 정말로 모진 부모는 드무니까. 네 외조부는 모진 분이 아니시다. 그때 그녀가 란이에게 그렇게 까지 모질게 대했던 게 안타깝다. 란이가 여전히 그녀를 돌보아야 하다니."송석석이 말했다. "걱정 마세요. 란이는 지금 편안하고 자유롭게 지내고 있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더 잘 지낼 거예요.""그렇지. 분명히 잘 지낼 거야." 남씨는 아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송석석을 바라보다가, 이내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귀환길에 오를 무렵, 이미 9월 초가 되어, 날씨는 더 이상 뜨겁지 않았으며, 오히려 약간 선선했다.수란키는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나와 그들을 녹분성까지 배웅했다.이번 귀향길에서는 암살 시도가 없었기에 매우 순조로웠다.이들은 끝없이 이어지는 산을 넘어가 상국의 경계에 들어섰다.소 대장군에게 사전에 도착 예정일을 알리지 않았기에 아무도 마중을 나오지 않을 줄 알았지만, 상국의 경계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전북망이 이끄는 소씨 가문 군대와 마주했다.무사히 돌아온 그들을 보자, 전북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없이 말을 몰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는 말에서 내려 진왕과 이덕회를 비롯한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며 말했다."왕야와 이상서, 그리고 여러 대감님들, 소 대장군께서 저를 시켜 이곳에서 여러분을 맞이하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성릉관까지 호위하겠습니다."그러자 이덕회가 호기심에 차서 물었다. "대장군께서는 우리가 오늘 돌아올 것을 어떻게 아신 것입니까?"전북망이 대답했다. "대장군께서는 모르셨습니다. 매일 여기서 기다리라고 명하셔서 계속 기다린 것입니다.""그렇군요." 이덕회는 소 대장군의 매우 신중함에 감탄했다. 진왕은 오는 동안 몸이 좋지 않았다. 그는 마차의 발을 올리고 한 번 쓱 둘러보았다. 자신이 상국에 돌아온 것을 확인하자, 그는 그제서야 기운을 조금 차리며 말했다. "빨리 출발하게.""예!" 전북망은 재빨리 대답하고 말에 올라 선두를 이끌었다.시만자는 그가 한 손으로 능숙하게 말을 다루는 모습을 보며, 그가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말의 고삐를 잡고 송석석에게 말했다. "이 사람 나쁘지 않네. 어머니께서 그 당시 사람을 잘못 본 것이 아니었나봐. 마음을 예측하기 어렵긴 하지만..."송석석은 시만자가 전북망을 칭찬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사실 시만자는 여전히 전북망에 대한 모친의 기대를 저버린 것을 항상 마음에 두고 있었기에, 이 말을 함으로써 모두 안심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송석석은 아무 말도 하
안풍친왕이 말했다."이번 여정은 서경과 상국을 위한 것이지만, 북당을 위한 것이기도 하니 감사할 필요는 없습니다. 국가 간의 교류는 언제나 이익을 우선으로 하니까요. 개인적인 인연이 있을 때 진심으로 대하는 것이죠."송석석은 깨달음을 얻은 동시에 궁금한 점이 있어 물었다."혹시 제 사부 임양운을 아십니까?"안풍친왕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알지요. 그는 북당에 와서 제 채성루에서 잠시 머문 적이 있습니다. 제 호위 지휘사인 흑영위가 당신의 사부와 매우 친한 사이입니다. 그들은 자주 함께 술을 마셨죠.""그렇군요." 송석석은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 중 어떤 사람이 흑영위 선배인지는 모르겠지만, 만날 수 없다면 정말 아쉬운 일이었다.안풍친왕은 이내 그녀의 마음을 눈치 챘는지 웃으며 말했다.“우리 북당은 3년 혹은 5년 후에 상국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그때 흑영위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송석석이 막 감사의 말을 하려는데, 시만자가 말했다."왜 3년 혹은 5년 후인가요? 좀 더 일찍 갈 수 없나요? 왕야와 왕비께서 가시는 걸 기대하고 있습니다."안풍친왕은 미소를 지으며 깊은 뜻이 담긴 말을 했다."지금은 아직 그때가 아닙니다."그들이 말하지 않으니 더 이상 물어보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옆에서 조용히 앉아 있던 안풍왕비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으며, 그저 눈앞의 간식들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아무것도 특별할 것 없는 설탕절임과 육포였지만, 그녀는 그것을 매우 맛있게 먹었다.송석석은 탁자 아래에서 그들이 손을 서로 맞잡고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의 사랑이 누구보다 깊다는 것을 느꼈다.두 나라 간의 교류에 대해 더 얘기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들은 잠시 가볍게 잡담만 나눈 뒤 그들을 보내주었다. 떠나기 전에 안풍친왕비가 먼저 입을 열었다.“송대감, 시 소저, 4년 후에 상국에서 뵙겠습니다."송석석은 급히 손을 모으며 말했다."네. 왕야와 왕비께서는 반드시 오셔야 합니다."그들이 떠난 후, 별관 문이 닫혔다.송석석과 시만자
이틀 동안 돌아본 후, 수란키가 송석석에게 말했다. "귀국에 단신의라는 신의가 계십니다. 그분이 만든 단설환의 한 가지 재료인 설연화가 귀국에서 생산량이 매우 적다고 알고있습니다. 남강에 있기는 하지만, 설산 정상에 자생하고 있어 채집하기 매우 어려우며, 또한 드뭅니다. 하지만 저희 쪽에서는 설연화가 그리 희귀한 것이 아닙니다. 고산지대 어디에서나 볼 수 있지요. 그가 사용하는 설연화는 모두 서경 약장수에게 몰래 사서 쓰는 것으로, 가격이 매우 비쌉니다. 그 가격으로 단설환을 팔면, 한 알을 팔아서 한 알을 잃는 셈입니다."송석석은 단설환이 부족한 이유가 일부 약재를 구할 수 없기 때문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단 백부는 구체적으로 어떤 약재가 부족하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서경과 상국은 그동안 무역을 하지 않았고, 특히 약재는 더 조심스럽게 다뤄졌기 때문에 그가 서경 사람에게 약재를 산 것을 비밀로 한 이유가 이해가 됐다.수란키와 원신제는 한 마음으로 이렇게 세세하게 조사를 진행했으며, 두 나라 간에 상호 교역을 이루려는 계획이 이미 있었을 것이다. 안풍친왕을 불러들인 것도 이 일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단설환은 생명 구제용 약이라, 만약 약재만 부족하지 않다면 평민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어 실로 민생에 큰 이익이 된다. 송석석은 그들이 지나쳤던 약재 시장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럼 왜 약재 시장에서는 설연화를 본 적이 없죠?" 수란키가 웃으며 답했다. "그건 당연합니다. 우리 서경에서 설연화가 많이 자생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희귀한 재료입니다.고산지대를 올라가야만 채집할 수 있기에 위험하기도 하지요. 게다가 약효가 뛰어나지 않습니까. 심장을 강하게 하고 통증을 멈추는 효과가 있어, 시장에서 거래되는 법이 없습니다. 송대감께서 믿지 못하신다면, 제가 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서 설연화 한 바구니를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그것을 상국으로 가져가서 단신의께 검증받으시면 됩니다."그는 말을 마친 후 시 사람을 시켜 설연화 한 바구니를 가
그가 앉은 자리는 북당이 이번 협상에서 취한 입장을 대표했다.그는 중립의 위치에 있었다. 송석석은 다시 한 번 국가가 강성한 것이 정말 좋다며 감탄했다. 협상의 처음 부분은 조금 지루했다. 양쪽 모두 똑같은 말을 반복하며 강조하였고, 양쪽의 역관들이 그것을 전달하며, 모두 역사적 문제를 강조했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부터 양보를 한다면 계속해서 양보하게 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따라서 첫 번째 협상에서는 아무런 합의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서로의 한계를 시험하는 데 그쳤다. 다음 날, 바로 두 번째 협상이 시작되었다. 역시 초반에는 전날처럼 양쪽에서 강조하는 말들이 오갔다.그러다가 잠시 후, 안풍친왕이 먼저 말을 꺼냈다. "이렇게 계속해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두 나라의 국경 문제는 이미 수십 년간 지속되어 왔고, 이것은 하루아침에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우선 국경 문제는 잠시 제쳐두고, 본왕은 두 나라가 서로 친선을 맺고, 서로 침범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확인하고 싶습니다." 그의 말에, 모두 두 나라가 더 이상 분쟁을 일으키지 않기를 바란다며 긍정적인 의사를 내비쳤다. 안풍친왕은 한 장의 목록을 꺼냈다. 그 목록에는 양국의 상품들이 나열되어 있었고, 그 중에는 곡물, 가축, 비단, 직물, 수공예품, 찻잎, 모피, 도자기, 종이, 벼루, 각자의 나라에서만 자생하는 약초, 향료, 청염, 철광, 옥석 광물 등이 있었다. 양쪽은 그것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처음의 긴장감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막대한 이익 앞에서, 어떤 일들은 협상이 가능했다. 협상이 되지 않으면 잠시 미룰 수도 있었다. 수년간의 전쟁은 두 국가의 국고를 이미 소진시켰기에 양쪽 모두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었다. 북당의 발전 경험에 따르면, 농업을 중시하고 상업을 억제하는 것은 뒤처진 생각이며, 농업과 상업을 동시에 중시하는 것이 살길이었다. 상업세 또한 매우 높았다. 안풍친왕의 이 목록 덕분에 두 나라는 국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