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망은 충격이 빠졌다. 그녀의 무공이 단순 좀 높은 정도가 아니라, 상상 이상으로 뛰어났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사람이 10명이 있어도 상대가 안 될 가능성이 컸다.이 실력을 가지고 있었으면서, 그동안은 왜 숨겼던 것일까?송석석은 혼수 목록을 든 채 그를 향해 입꼬리를 올렸다. 마치 한여름의 태양처럼 눈부시고 찬란한 미소였다.하지만 곧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그녀가 혼수 목록을 공중으로 던지더니, 순식간에 눈꽃처럼 산산조각이 났다. 눈으로는 도무지 따라갈 수 없는 속도였다.“혼수 목록이! 혼수 목록이…! 이럴 수가!”그 모습을 본 노부인이 절규하며 소리쳤다.“이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넌 이제부터 장군부에서 아무것도 못 가져 갈 거야! 일 푼도 못 줘!”송석석이 웃으며 말했다.“제가 가지고 가겠다고 마음먹는다면, 여기서 절 막아 세울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것 같으세요?”노부인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감히 뭐 어쩌겠다고? 혼수품에 손을 대기만 해봐, 바로 관부(官府)에 신고할 거야. 이혼당한 주제에, 어디서 감히 혼수품을 노려!”그리고는 옆에 있던 하녀를 향해 다급히 외쳤다.“여봐라, 이년에게 아무것도 주지말고 쫓아내라. 함께 온 하인들도 모두 나가지 못하게 해라!”그렇게 하인들이 망설이며 우물쭈물하던 사이에, 갑자기 정문 밖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성지를 받들라!”모두가 사색이 된 채 얼른 몸을 가다듬었다. 노부인 또한 송석석을 내버려두고 정문으로 향했다.“얼른 무릎들 꿇어라! 성지를 받아야 한다!”하인들도 함께 서둘러 줄을 맞추어 무릎을 꿇었다. 곧이어 금군과 함께 오 대반이 성지를 들고 장군부 안으로 들어섰다.이때, 전북망이 가장 앞에서 외쳤다.“신(臣: 신하) 전북망, 성지를 받듭니다!”그러자 오 대반이 웃으며 답했다.“장군, 일어나십시오. 이 성지는 장군한테 내려온 것이 아닙니다. 송석석 양에게 주는 것이지.”이 집에 자신 말고 성지를 받을만한 사람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송석석의 이름이 나오자
송석석이 고개를 숙이며 크게 절을 올렸다. 좀 늦긴 했지만, 그래도 드디어 기다리던 성지가 도착했다.“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전북망은 창백해진 얼굴로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봤다. 그럼 그때 궁에 들어간 것이 혼인을 방해하기 위함이 아니었단 말인가? 도대체 언제부터 이혼을 결심했지? 설마 교지 받았다는 말을 전하자마자?온갖 생각이 그의 머리를 어지럽혔다. 그는 송석석을 질투심이 많고 이기적인, 자신을 독차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여자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오해였다.전북망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곧이어 그의 눈에 환한 표정으로 성지를 받아들이는 송석석의 얼굴이 보였다. 곧이어 처음 청혼하러 갔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때도 지금처럼 아름다웠었다. 전북망은 그녀의 눈부신 외모에 숨을 쉬는 것도 잊고 한참을 멍하니 바라봤었다.하지만 출정 뒤에, 이방을 만나게 되면서 그는 그때의 기분을 잊고 살았다. 노부인도 이런 결말은 한 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송석석이 먼저 이혼을 요청했을 줄이야.황제가 허락한 이혼이니, 혼수품도 모두 돌려줘야만 했다. 장군부는 이미 빈껍데기 신세인데, 송석석의 혼수품까지 돌려주게 되면 정말 생계가 위태로워질 수도 있었다.“석석아, 석석아! 내가 오해했다!”노부인이 다급히 송석석의 손목을 붙잡으며 말했다.“내가 널 오해했어. 난 네가 당연히 북망과 이방의 결혼을 막으려고 황제폐하를 찾아간 줄 알았어. 그게 아닌 줄 알았더라면, 절대로 널 내쫓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돌아온 것은 송석석의 싸늘한 말 한마디였다.“오해였다고 한들,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그리고는 노부인을 등진 채, 오 대반에게 말을 건넸다. “오 공공, 뭐라도 대접해드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네요. 언제 진국부후에 오시게 되면 반드시 거하게 차려드리겠습니다. 저희 집 보주 음식 솜씨가 매우 뛰어납니다.”“좋습니다!”오 대반이 그녀를 보며 설명을 덧붙였다. “성지가 좀 많이 늦었
“좋다!”송태공(宋太公)은 눈물이 앞을 가려 눈앞에 서 있는 소녀를 똑똑히 볼 수 없었지만, 그녀의 의기양양한 모습에 매우 기뻤다. “이곳은 오래 머물 곳이 못 된다. 불길하니, 나는 먼저 떠나겠다. 너도 곧 떠나도록 하여라.”“네!”송석석은 일어나 송태공과 송세안을 배웅했다.둘째 부인도 이 틈을 타 떠났다. 본래 몇 마디 하려던 그녀였지만 방금 송석석이 괴롭힘을 당할 때 나서지 못했기에 오늘 오지 않은 척하기로 했다.전씨 가문의 모든 사람들은 자리에 벙졌다. 그들은 이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송석석이 순식간에 국공부(國公府)의 적녀가 되었고, 그녀의 남편도 국공의 자리를 이어받을 수 있었다.이건 전례 없는 일이었다.어떻게 뿌리가 다른데 작위(爵位)를 이어받을 수 있단 말인가?하지만, 황제는 분명히 가능하다고 했다. 전북망이 만약 그녀와 이혼하지 않았다면 작위를 이어받을 수 있었다.그들은 이 엄청난 부귀를 눈앞에서 놓쳐버린 것이다.분산을 떨었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했고, 심지어 그녀의 지참금(嫁妝)도 한 푼 받지 못했다.송석석은 그들이 멍하니 있는 동안 방으로 돌아갔다. 양 마마(嬤嬤)와 황 마마는 네 명의 하녀와 네 명의 집정, 그리고 보주와 함께 모든 물건을 깔끔하게 포장하고 있었다.송석석이 그들을 마다한 것은 방 안에서 물건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지참물(陪嫁之物) 중에는 책상과 의자, 장롱이 많아 한동안 옮길 수 없으니 내일 다시 사람을 보내 옮기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황 마마가 말했다.“그래요, 침기(痰盂)까지도 다 가져갑시다, 그들한테 줄 수 없습니다.”양 마마가 화가 난 듯 말했다.송석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이제 돌아갑시다!”지참물을 마차에 싣고, 하인이 달려가 마차 두 대를 더 고용해 호화롭게 장군부(將軍府)를 떠났다.장군부 사람들은 붙잡을 수 없었다. 모두 정청에 숨어 나오지 않았고, 이혼서가 이미 내려왔기 때문에 송석석과 전씨 가문은 더 이상 관계가 없었다. 게다가 국공부의 딸이고 작위를
그날 저녁, 이방은 전북망을 불러내었다. 두 사람은 호숫가를 거닐고 있었다.전북망은 계속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이방은 상황을 잘 몰랐기 때문에 그를 불러내면 이혼의 상황을 이야기할 줄 알았다. 하지만 전북망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얼굴은 고양이에게 할퀸 것 같기도 했다.그러던 중,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이방이 멈춰 서며 물었다. “끝난 것입니까? 예단의 절반도 돌려받았습니까?”노을이 지면서 이방의 어두워진 얼굴을 비췄다.전북망은 갑자기 송석석의 아름다운 얼굴이 떠올라 가슴이 아팠다. “돌려받지 못했습니까?”이방은 그가 말이 없자, 한숨을 쉬며 다시 물었다. “제가 서신을 보내서 예단의 절반은 반드시 돌려받으라고 했잖습니까. 장군부의 재정이 바닥나서 돌려받지 않으면 앞으로 어떻게 살려고 그럽니까?”전북망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건 석석의 예단이지, 내 것이 아니고, 내가 번 것도 아니오. 이방, 당신은 나와 결혼한 게 고생하기 싫어서요?”“그런 뜻이 아니잖습니까.” 이방은 돌아서며 그의 눈에 비친 자신의 계산적인 눈빛을 숨기려 했다. “저는 단지 우리가 앞으로 군에만 집중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서 하는 말입니다. 돈 문제로 고민하는 것이 아닙니다.”“장군부가 당장 무너지는 것도 아니고 검소하게 살면 그럭저럭 지낼 수 있소.”전북망이 말했다.이방은 돌아서며 재차 확인했다.“그래서, 정말로 돌려받지 않았습니까? 예단을 모조리 가져갔습니까?”그녀의 눈에 비친 실망과 분노에 전북망은 가슴이 시렸고 조금씩 싫증이 나기 시작했다.“이혼서를 건네려는데 황제의 명이 도착했소. 알고 보니 이미 궁에 들어가 황제에게 이혼을 청했고 처음부터 이혼할 생각이었던 것 같소. 당신과 지아비를 나눌 생각이 없었던 것 같소.”“네?”“그 사람은 역겹다고 했소.”이방은 냉소했다. “역겹다고요? 그녀가 한 말입니까? 제가 신경 쓰지 않는다는데 정말 웃기지 않습니까? 설마 자신이 아주 대단한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요?”전북망은 무
전북망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오늘의 싸움에서 완패했던 말하기 부끄러웠다.“참말입니까?”이방이 재차 물었다.전북망은 한숨을 쉬었다.“됐소, 그 얘기는 그만하오.”그러자 이방이 장난스럽게 말했다.“거 보세요. 저를 속이려던 거였군요. 이혼이든 별거든, 일이 해결됐으니 되어습니다. 저와의 이부를 경멸했다니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의 음험한 짓은 저는 흉내도 내지 못합니다. 그게 그녀의 진짜 능력이겠지요.”이방은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덧붙였다.“그런 능력들을 제가 흉내 낼 수도 없지만 나긋한 말투로 달콤하게 말할 수는 있습니다.”그녀는 손을 다소곳이 앞에 모으고 몸을 배배 꼬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낭궁님!”그러고 나서 일부러 몸을 떨었다.“세상에, 정말 너무 소름 끼치고 너무 가식적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가식적일 수 있습니까?”전북망도 소름이 쫙 돋았다. 그것은 이방의 가식적인 모습때문이였다.사실 송석석은 그렇게 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부드러웠지만, 결코 비굴하지 않았고, 온화하면서도 단호했으며, 절대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았다.이방은 콧노래를 부르며 뛰어갔다. 비록 예단의 절반은 돌려받지 못했지만, 송석석이 떠났으니, 그녀가 정실 아내가 되었다. 더 이상 평처가 될 필요 없었다.인생이란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그녀는 언제나 긍정적이었고, 절대 송석석처럼 유치하게 굴지 않으려 했다.전북망은 그녀를 따라가는 대신 호숫가에 앉았다.오늘 이혼령이 내려졌다. 마치 맑은 날의 벼락처럼 그의 머릿속을 더욱 혼란스럽게 했다.수많은 기억들이 떠올랐다.송석석과의 첫 만남, 그녀의 방문을 두드리고 청혼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녀가 몇 가지 질문을 하고 난 후, 그와의 혼인을 동의했을 때 그는 너무도 기뻤다.혼인 준비를 하며 그녀를 맞이할 때의 심경을 떠올렸다. 혼인 당일 출정해야 했을 때, 그는 송석석을 떠나기 싫었다.심지어 행군하는 동안에도, 붉은 면사포를 벗겼을 때의 송석석을 떠올리며, 자신이 그녀와
송세안은 송씨 가문의 자제들을 불러와 물건을 정리하도록 했다. 한창 바쁘게 움직인 후, 송세안과 송석석은 함께 저택 곳곳을 걸었다. 한때는 매우 활기찼던 저택이 지금은 너무 조용했다.송세안은 그녀에게 말했다. “이제 국공부에는 네가 혼자고, 하인도 본가에서 데려온 사람들뿐이니, 먼저 힘을 쓸 수 있는 남 집사를 찾도록 해라. 그리고 기가 센 하녀와 하인도 필요하다. 부엌과 정원, 마구간, 마차(馬廄車) 준비도 사람이 빠질 수 없다. 혹시 여의찮다면, 내가 대신 찾아주마.”송석석은 감사를 표했다.“안 그래도 바쁘신데, 폐를 끼칠 수는 없습니다. 황 마마와 양 마마가 알아서 할 겁니다.”송세안은 그녀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한 집안끼리 폐를 끼치다니 무슨 소리냐? 예전에 네 아버지가 군을 지휘할 때, 늘 우리 집안 형제들을 불러 모아 전쟁터의 위험한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우리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경외감에 가슴이 두근거렸고 무엇보다도 자랑스러웠다. 왜냐하면 우리 송씨 가문의 사람들이 나라를 지키고 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우리 가문에 무장이 없을 것 같구나.”송씨 가문의 다른 자제들은 대부분 글공부나 장사를 선택했다. 위망 높은 가문에서 무장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것이 정말 안타까웠다.송석석은 말이 없었지만, 눈에는 슬픔이 가득했다.“앞으로는 전씨 가문과의 연락을 끊고, 원망하지도 만나지도 마라. 너의 인생을 잘 살아가면 된다.” 송세안이 당부했다.“숙부님,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알고 있습니다.” 송석석은 고개를 숙였다.송세안은 그녀의 평온한 모습을 보며 말했다.“언젠가 전북망은 틀림없이 후회할 것이다.”송석석의 눈빛이 흔들림이 없었다.“그럴 테죠. 하지만 저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송씨 가문의 사람들은 놔야 할 때는 내려놓을 수 있었다.그녀의 굳센 모습에 송세안은 미소 지으며 만족스럽게 바라보았다. “내일은 내가 사람을 보내서 예단 가구를 다시 가져오게 할 테니, 너는 나설 필요 없다.”송석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국공부는 무장 세가(武將世家)였지만 견식이 있는 아가씨는 분명히 곁에서 시중드는 사람들이 글을 아는 것을 원할 것이다.“좋다, 너희는 아가씨 곁에서 시중들도록 해라. 이름은 나중에 아가씨께서 지어주실 거다.”네 사람은 매우 기뻐하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마마!”황 마마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 “아직 고맙다고 하기엔 이르다. 먼저 아가씨 곁에서는 규칙을 배워야 한다. 잘 익히지 못하면 등급이 내려갈 거다.”네 사람은 고개를 숙였다. “꼭 잘 배우겠습니다.”네 명을 고른 후, 두 마마는 또 몇 명의 하녀와 하인을 더 고용했다. 그리고 아행의 사람들에게 마부, 목수, 말을 관리하고 화초를 돌볼 사람들을 찾도록 했다.외원의 총괄 집사와 계원은 맨입으로는 구할 수 없었다.아행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폈다. “내일 보내드리면 마마께서 선택하면 되옵니다.”그는 매매 계약서를 건넨 후, 두 마마에게 붉은 봉투를 건네며 웃으며 말했다. “마마, 잘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필요하신 것이 있으면 저희 아행을 찾아주세요. 저희는 여러 가지 일을 다루고 있습니다.”마마는 붉은 봉투를 받고 살짝 고개를 끄덕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사람을 보내 아행을 배웅시켰다.아가씨가 이제 막 이혼하고 돌아왔으니, 사람들은 현재 어떤 상황인지 알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마마는 말을 아꼈고 아행들이 함부로 추측하여 소문을 퍼뜨리지 않도록 했다.아직 사람들이 다 모이지 않아서 황 마마는 오늘 뽑은 네 명의 하녀를 데리고 아가씨에게로 갔다.송석석은 여전히 출가 전 살던 영롱각(玲瓏閣)에 살고 있었다. 영록각은 그녀가 출가한 후로 아무도 살지 않아 청소 외에는 손댄 적이 없었다. 그래서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이곳은 그대로였다. 핏자국이 없었기에 벽을 덧바를 필요도 없었다.영롱각에는 그녀의 무기를 두는 무기고가 있었고, 그녀가 읽었던 책을 두는 작은 서재도 있었다. 대부분은 병서 책론(兵書策論)이었다.출가한 1년은 마치 악몽 같았다. 만약 그녀가 혼인하지
하지만, 이 일은 이제 조사할 수 없다. 첩자들은 거의 죽었고, 살아남은 자는 서경으로 도망갔기에 찾을 수 없었다. 그녀는 아버지와 형제들을 떠올리며 설움을 삼켰다.아버지와 형제들은 남강을 되찾았지만, 지키지 못하고 다시 빼앗겼고, 결국 전장에서 비참하게 전사했다. 만약 북명왕이 승리하여 남강을 되찾는다면, 아버지와 형제들의 소원을 풀어주는 셈이 될 것이다첫날 밤, 송석석은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꿈에 어머니, 형수, 조카들이 살해당하는 장면이 떠올라 한밤중에 깬 그녀는 다시 잠들 수 없었다. 그녀는 천장을 응시하며 끊임없이 생각했다.친인들의 상처를 보면 범인의 극악무도함이 낱낱이 드러났다. 그들은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 전쟁 중 서경이 패했다고 해서 이렇게 할 수는 없다. 그들은 전에도 패한 적 있었다. 당시 아버지와 형제들에게 3만 병사를 잃었을 때에도 서경의 첩자들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 전쟁에서는 왜 이렇게 움직이는 걸까?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면서까지 고아와 과부를 죽이려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뒤척이던 송석석은 결국 날이 밝을 때까지 잠들지 못했다.시중들러 온 보주는 초췌한 송석석의 얼굴을 보고 그녀가 전북망의 무정함에 상처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하여 그녀는 묻지도 못하고 몰래 눈물을 훔쳤다.다음 날, 송세안은 송씨 가문의 자제들을 거느리고 예단을 옮겼다. 담나무로 만든 탁자와 의자, 가구, 금실로 수놓은 병풍 등 예단 목록에 있는 모든 것을 챙기며 조금도 남기지 않았다.노부인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 통곡하며 송석석이 무정하고, 옹졸하고 이기적이면서 질투심으로 가득한 사람이라고 욕설을 퍼부었다.그 말을 들은 송세안이 너무 화가 나서 크게 소리쳤다. “내 조카가 너희들에게 얼마나 지극정성이었는지, 이웃들에게 한번 물어보아라. 그녀를 나쁘게 말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석석이가 옹졸하고 이기적이라 나무라면서 왜 너희 장군이 무슨 나쁜 짓을 했는지는 물어보지 않았느냐? 혼인날 출정하고 돌아와서는 전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