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부인은 발을 동동 굴렀다.“모두 가져가고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앞으로 장군부는 내 약조차도 살 수 없게 되었다.”전북망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어머니를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걱정 마세요. 남강 전장은 나와 이방이 필요할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 공을 세워 돌아올 것입니다.”노부인은 목이 터져라 울며 말했다. “어떻게 이렇게 무정할 수 있느냐? 평처가 어떻다고 용납할 수 없다는 거냐? 고아 주제에 자신을 귀족이라고 생각하는 거냐?”전북망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이제 그녀는 국공부의 적녀이니, 당연히 귀족이었다.“가문이 전멸한 건 자업자득이다, 자업자득!” 노부인이 화를 내며 말했다.서경 첩자들에게 몰살당한 송씨 가문에 대해 전북망도 이상하게 여겼다. 서경 첩자들이 왜 그 노약자들을 죽였을까?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하지만 이제 송씨 가문은 그와 이제 상관이 없었다. 그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송석석은 반드시 후회할 것이다. 사실 이 일을 알고 그는 그녀를 도와 조사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가 그 기회를 거부한 것이었다.송씨 가문 사람들이 값비싼 가구를 모두 가져가는 것을 본 노부인은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던 중 복도에 서서 차가운 눈빛으로 광경을 지켜보는 큰 며느리 민씨가 보였다.노부인은 화가 치밀어 올라 말했다. “너는 왜 막지 않았느냐?”민씨는 담담하게 말했다. “저는 그런 뻔뻔한 짓을 할 수 없습니다.”노부인은 더욱 화가 났다.“무례하다! 너도 나를 거역하려는 거냐?”그런 노부인을 보며 민씨는 송석석이 시집온 후의 일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지금의 사악하고 독한 시어머니의 모습에 마음이 차가워졌다. “무례라. 송석석은 효도했지만, 얻은 게 뭐가 있는 지요? 곧 시집올 이방도 그녀처럼 효도하길 바라시는 건 아니겠지요?”“반드시 그럴 것이다!” 노부인은 악에 받쳐 말했다. “그 년의 이름을 다시는 꺼내지 마라. 그 애가 정말 효도했다면 내 약을 끊지 않았을 것이다.”
송세안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예단을 모두 진국공부로 옮겼다. 송석석이 감사 인사를 하며 모두를 안으로 들어와 차를 마시라고 청했다.그러나 송세안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차는 다음에 마시겠다. 지금은 다른 중요한 일이 있어서. 아, 그리고 전북망이 너에게 후회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하더구나.”송석석은 시선을 떨구었다. “그에게 전할 말은 없습니다. 숙부님께서 바쁘시니 강제로 붙잡지는 않겠습니다.”송세안은 그녀의 대답에 매우 만족했다. 송씨 가무은 모든 것을 잃어도 이런 기개만큼은 잃어서는 안 되었다. 그는 사람들을 이끌고 떠났다. 차를 마시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진국공부가 아직 정리되지 않았고, 새로 온 사람들이 아직 익숙치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 혼자라면 괜찮았겠지만, 다른 집안 자제들도 데리고 있었다. 사람이 많으면 말이 많은 법.자칫 부족한 점이 드러나면 좋지 않은 소문이 퍼질 수 있었다. 지금 진국공부는 사소한 루머도 견딜 수 없었다.영롱각으로 돌아온 송석석은 서신을 보내 사문에 빨리 전달하게 했다. 내용은 서경과 상국의 성릉관에서 치른 전투에 대해 조사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짐작하는 부분이 있었지만 확신할 수 없어 조사하고 증거를 얻어야 했다.외조부 소 대장군과 셋째 삼촌, 일곱째 삼촌은 성릉관(成凌關)을 지키고 있었다. 작년 말, 성릉관은 남강 전장을 지원하기 위해 10만 명의 병력을 빌려주었고, 그로 인해 서경과 성릉관이 전투를 벌였을 때 외조부는 조정에 지원군을 요청해야 했다. 이때 전북망과 이방은 지원군으로 갔던 것이다.그러나 이 전투의 실제 상황이 어땠는지 그녀는 알지 못했다. 외조부와 삼촌들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녀의 의심이 사실이라면 외조부는 원수로서 큰 죄를 짓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그 후 한 달 동안, 송석석은 문을 닫고 손님을 만나지 않았다. 별로 찾아오는 이도 없었다. 송씨 가문은 중요한 일이 아니면 그녀를 방해하지 않았다. 집 안은 거의 정리되었고, 그녀를 시중드는 몇 명의 하녀
문제는 아무도 그녀에게 병사들이 올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의 머릿수는 백여 명이나 되었고 많은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에, 청첩장을 받고 온 손님들이 앉을 자리가 없었다. 이들은 모두 체면을 중시하는 문무 관리들이며, 조정의 고위 인사들이었다. 이들과 관계를 잘 유지하면 전북망이 관직 생활에 큰 도움이 될 텐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모두 매서운 바람에 떨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정말로 안타까울 뿐이었다.노부인은 급히 민씨에게 달려가 빨리 해결책을 찾으라고 했다. 당황한 민씨도 어쩔 줄을 몰라 했다.아무도 그녀에게 병사들이 올 것이라고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손님 명단에 따라 자리를 배치했었다.매우 당황한 손님들은 그저 막무가내로 와서 자리를 차지하고 먹고 마시는 병사들을 보며 어리둥절해했다.게다가 신부와 장난치며 웃고 떠드는 모습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그들 중에는 황제의 체면을 보고 온 명문가의 귀족들도 이런 광경은 처음이다.비록 명문가는 아니지만 여러 세대에 걸쳐 내려온 가문인데 황제가 주관하는 결혼식에서 이런 혼란을 가져온 장군부의 처사가 이해되지 않았다.처음에는 주인집의 안내를 기다리며 서 있었지만, 아무도 자리를 마련해주지 않자, 상황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누구도 아무 말 않고, 전북망에게 조용히 다가가 집에 급한 일이 있어 떠난다고만 했다. 전북망은 완전히 당황했다. 그도 병사들이 올 줄은 전혀 몰랐다. 손님들이 가족과 함께 떠나는 것을 보며 그는 마치 뺨을 한 대씩 맞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너무 부끄러웠고 화가 치밀기 시작했다.그는 아직 자리에 앉아 있는 손님들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이방을 끌어당겼다. “나랑 얘기 좀 해야겠소.”이방은 일어서며 병사들에게 웃으며 말했다. “먼저 마시고들 있어. 금방 돌아올게.”“장군님이 무지 급했나 봅니다? 하하하!”“장군님, 빨리 끊내야 합니다. 이제 곧 술도 따라야 하잖습니까”“하하하, 맞습니다. 부대 오두막이 아니라는 것만 명심하십시오.”이런 노
이방은 그의 비난이 전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며 냉소했다. “오늘 막 시집온 날인데 이렇게 큰 소리로 나를 꾸짖다니, 앞으로는 어떨지 겁이 납니다. 그리고 이 병사들도 당신과 함께 생사를 함께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연회에 초대한 것을 미리 말하지 않은 잘못이긴 하지만, 이렇게 큰 경사를 치르면서 여분의 자리도 준비하지 않는 가문이 대체 어디 있단 말입니까? 그들이 진영을 이탈했다는 것은 당신이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유 장군은 그렇게 비합리적인 사람이 아니니까요.”이방이 기세를 올리자, 전북망은 약해졌다. 결혼식 날 그녀와 불화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던 그는 그저 재차 확인할 뿐이었다.“그럼, 그들이 진영을 떠난 것은 유장군의 허락을 받은 거요?”이방은 유 장군에게 묻지 않았고 명령을 내려 반드시 참석하게 했다. 유 장군은 이야기가 잘 통하는 사람이라 그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그래서 그녀는 자연스럽게 이 문제를 건너뛰었다. “이건 준비가 부족한 것입니다. 혼인식을 크게 하는 가문이 여분의 자리도 준비하지 않다니요? 저는 이 혼인식을 누가 준비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체면을 구기게 하고, 어떻게 저를 탓할 수 있는 지요?”전북망은 조금 자신이 없어졌다. 일반적인 대가족에서 경사를 치를 때, 초대받은 손님들 외에도 이웃들에게 음식을 돌린다고 알고 있었다. 만약 어머니와 형수가 외부에 음식을 돌렸다면 병사들이 왔을 때 최소한 앉을 자리가 있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손님의 자리를 빼앗지 않았을 것이다.그는 분노를 큰형수 민씨에게 돌렸다. 결혼식의 모든 일은 그녀가 준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굴이 붉어진 이방이 조금 전 병사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친밀하게 행동하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술을 그만 마시고 방으로 돌아가오.”손님들이 모두 떠난 것을 본 이방은 이제 병사들과 함께 있어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그녀의 특별함을 알아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손님들은 모두 떠나고, 무례한 병사들만 남아 노부인은 화가 나 심장병이 도질 뻔했다. 장군부의 다른 사람들도 당혹스러워하며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이렇게 큰 경사가 이런 식으로 치러진 적은 없었고, 더군다나 황제가 주선한 결혼식이 이 모양이 될 줄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이 소식이 퍼지면 장군부는 경성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 분명했다.민씨를 찾아간 전북망은 더 이상 분노를 억제할 수 없었다. 그는 탁자를 내리치며 말했다. “형수, 만약 내 혼인식을 제대로 준비하고 싶지 않았다면, 미리 말씀해 주시지 그러셨습니까? 이제 혼인식은 웃음거리가 되었고, 손님들이 모조리 떠났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조정에서 관직 생활을 하란 겁니까?”민씨는 억울함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사람 수대로 준비했을 뿐인데, 갑자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올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게 제 잘못입니까? 그리고 원래 집안을 관리하던 사람은 제가 아니었습니다. 예전에는 모든 경사나 다과 모임을 송석석이 준비했지요. 저도 이런 일은 처음인지라 송석석이 하던대로 해봤으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올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그 이 얘기는 하지 마세요!”전북망은 혼란스러웠다. “이전에는 이런 일을 책임지지 않았다고 해도 혼인 같은 큰 잔치에서는 여분의 자리를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저도 두 상정도는 여분으로 남겨놓았습니다.”민씨는 남편 전북경(戰北卿)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못 미더우면 큰형에게 물어보세요. 큰형이 두 상을 더 준비하면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부른 손님들이 모두 부유하고 귀한 사람들이라 잔치상은 제일 좋은 식자재들로 준비했고 그중 6가지는 산해진미…”말하자면, 손에 쥔 돈이 한정되어 있었다는 것이다.전북경은 아내가 동생에게 질책받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말했다. “형수를 그렇게 몰아세울 거 없다. 이 혼인식은 이미 충분히 성대하게 치러졌다. 갑자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지 않았더라면 아무 문제도 없었을 일이다.”전북망은 말했다. “그러나 여분
잠시 침묵하던 그는 방을 나서며 하인에게 청소하라고 명령했다. 이 여자는 그가 공으로 얻은 여자였다. 오늘의 결혼식은 엉망이었고 누구의 잘못이든지 간에 그녀는 충분히 서운했을 것이다. 그는 참기로 했다.그는 후회하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았다. 그는 자신이 아니라 송석석이 후회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송석석이 자신과 이방의 결혼식이 이렇게 엉망으로 치러졌다는 것을 알게 되면, 분명히 속으로 비웃을 것 같았다.같은 시각, 진국공부.무술 훈련을 하고 땀을 흘린 송석석은 뜨거운 물로 목욕을 하고 보주에게 복숭아꽃 술 한 병 가져오라고 했다. 그녀는 홀로 술을 마셨다. 한 달 동안, 그녀는 거의 이와 같이 지냈다. 낮에는 책을 읽고, 밤에는 훈련을 했다. 장군부에서 1년 동안 결혼 생활을 하던 그녀는 한 번도 무술을 연습하지 못했다. 실력이 녹슬지는 않았지만, 몇몇 기술은 예전과 같지 않았다.그녀는 예전의 실력을 되찾아야 했다. 그녀는 오늘이 전북망과 이방의 결혼식 날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황마마와 양마마는 하인들을 엄격하게 단속해 장군부와 관련된 일은 일절 논의하지 못하게 했다.술에 조금 취했을 때, 보주가 문을 열고 들어와 손에 든 쪽지를 건넸다.“아가씨, 소식이 왔습니다.”송석석은 술잔과 병법서를 내려놓고 일어나서 쪽지를 받아 펼쳐 보았다. 내용을 읽고 난 그녀는 얼굴이 갑자기 굳어졌다.“아가씨, 무슨 일입니까?”보주는 급히 물었다.송석석은 의자에 앉아 오랫동안 멍하니 있었다. “보주, 소주 한 병을 가져와라.”보주는 놀라며 말했다. “아가씨,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보주는 항상 그녀의 곁을 지켰다. 본가에서 사문(師門)으로, 사문에서 진성으로, 장군부로 시집가서 지금까지, 그녀가 술을 마신 것은 단 두 번이었다.첫 번째는 만종문에서 돌아왔을 때, 어르신과 장군들이 모두 남강 전장에서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였고 두 번째는 후부가 처참하게 당했을 때였다.큰일이 발생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녀가 소주를 마시겠
그녀는 외조부가 보내온 전투 보고서를 볼 수 없었다. 그 보고서는 먼저 병부로 갔고 그들이 사본을 작성한 후 원본을 황제에게 제출했을 것이다. 따라서 병부에는 외조부가 보낸 전투 보고서와 승전 보고서가 있을 것이다. 그녀는 병부에 몰래 들어가야 했다.병부에는 밤에 사람이 거의 없지만, 육부 관청(六部衙門)은 천보가(千步街)양쪽에 위치해 있고, 황궁과 인접해 있었다. 금군은 천보가를 순찰하지 않지만, 순방영(巡防營)의 사람들이 그쪽을 순찰할 것이다. 하지만 전투 보고서와 외조부가 제출한 전후 보고서를 반드시 봐야 했다. 외조부가 이방의 공을 인정했기에 병부도 인정한 것이 분명했다.서경 사람들은 반드시 복수한다. 이방이 항복한 마을을 학살했기 때문에 어떤 이유로 항복했든 쉽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가장 큰 가능성은 그들이 사국과 동맹을 맺고 남강 전장에 나타나는 것이다.그녀는 지도를 찾아보았다. 서경 사람들이 상국을 거치지 않고 남강 전장에 나타나려면 사국에 먼저 도착한 후 다시 남강으로 가야 한다. 이 과정은 약 석 달이 걸린다. 현재 남강을 반드시 차지하려는 사국은 북명왕(北冥王)이 그곳을 지키고 있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전투는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서경 사람들이 합류하면 북명왕은 패배할 것이다. 북명왕은 이 변수를 전혀 알지 못해 미리 대비할 방법이 없다. 미리 알더라도 지원군이 없으면 역시 패배할 수밖에 없다.서경 사람들은 복수를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이다. 이 점은 그들이 경성에 있는 모든 첩자를 동원해 후부를 몰살시킨 것으로 알 수 있다.남강 전투는 이미 너무 오래 끌었다. 병사들은 지치고, 군사도 부족해 북명왕의 상황은 매우 어려워졌다. 만약 그녀의 추측이 맞다면, 조정은 즉시 남강으로 지원군을 보내야 한다. 진성이나 회주 위소(淮州衛所)에서 남강으로 병력을 보내려면 최소 한 달, 심지어 더 오래 걸릴 것이다. 더는 지체할 수 없다.하지만 서경이 사국으로 병력을 이동하고 있다는 증거가 없으니 큰 오라버니의 소식을 기다릴
별이 빛나는 밤, 송석석은 병부 문서 방에 무사히 잠입했다.힘들게 찾을 필요도 없이, 성릉관 전투의 모든 당보는 선반의 왼쪽 상단에 있었다. 그녀는 가지고 온 야명주(夜明珠)를 가볍게 천으로 감싸 빛을 가리고, 구석에 숨어 하나씩 읽었다. 그녀는 온몸이 얼어붙었고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렀다.전북망과 이방은 지원군으로 갔다. 성릉관에 도착한 후 그들은 전투에 참여했으나, 전장 경험이 많지 않았던 그들을 구하던 중 셋째 삼촌이 팔 한쪽을 잃었다. 일곱째 삼촌은 지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이미 전사했다. 그녀의 기억 속에서 의기양양했던 소년은 전장에서 희생되었다. 외할아버지도 지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이미 화살에 맞아 부상을 입었기 때문에, 마지막 전투는 거의 전북망이 주도했다.마지막에 대승리를 거둔 것은 전북망과 이방이었다. 그들은 병력을 이끌고 서경의 녹분성에 쳐들어간 후, 전북망은 서경의 군수창과 식량을 불태웠고, 이방은 병사 몇 명과 일부 병사를 포로로 잡았다. 이 소장들이 포로가 되면서 서경은 항복을 선언했고, 녹분성(鹿奔兒城)에서 조약을 체결했다. 조약 체결 후 이방은 부대를 이끌고 성릉관으로 돌아와서야 포로들을 풀어주었다.당보에는 마을을 학살하고 항복한 병사를 죽였다는 내용이 전혀 적혀 있지 않았다. 외할아버지가 숨겼거나, 전혀 몰랐을 것이다. 그가 알고 있었든 아니든, 사실이 밝혀지면 주장으로서 그는 반드시 처벌받을 것이다.송석석은 당보(塘報)와 상소(奏本)를 제자리에 돌려놓고 병부를 떠났다.영롱각으로 돌아오니, 보주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녀가 야행복을 입고 돌아오는 것을 본 보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쪽지를 건넸다. “이건 사제분의 전서구가 가져온 것입니다.”즉시 받아 펼쳐본 송석석은 숨이 멎을 뻔했다. 그녀의 추측이 맞았다.언니는 서경의 30만 병력이 이미 사국으로 통하는 길을 따라 남강 전장으로 향하고 있으며, 식량을 가득 지녔다고 말했다.사국과 서경이 정말 동맹을 맺었거나, 아니면 복수 하기 위해 그리고 남강을
상서원과 지안궁에서 벌어진 일은 순식간에 숙청제의 귀에 들어갔다. 그는 마음이 나날로 초조해져갔다.게다가 연일 계략까지 모색하느라 두통이 심해져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플 정도였다.황후의 금족령을 해제한 것도, 대황자를 태자로 책봉하기 위한 준비였다. 태자가 될 인물에게 금족된 어머니가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숙청제는 금족된 황후가 자식을 방치하는 것이 곧 자식을 해치는 일임을 깨달을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착각이었다.황후는 반성하긴 커녕, 오히려 황자가 자신의 곁에 있어야만 자신의 지위를 굳힐 수 있다고 확신할 뿐이었다. 한편, 숙청제는 입맛이 없는듯 저녁 식사를 대충 때운 뒤 약탕을 마셨다. 아무리 지쳐도 약은 반드시 복용해야 했다. 하루라도 더 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매번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누구나 겪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항상 죽음은 먼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이리도 갑자기, 예고도 없이 다가온 것이니 말이다. 그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국가의 중대사나 미래의 계획 같은 무거운 이야기가 아닌 단순히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숨을 돌리며, 마음을 편히 하고 싶었다. 하지만 한참을 머리를 굴린 끝에 떠오른 인물은 단 한 사람, 송석석뿐이었다. 송석석은 부상 치료로 며칠간 어서방에 오지 않았다. 숙청제는 임태의를 불러 침술로 두통을 진정시켰으나, 어지러운 증상과 불안감은 점점 커져만 갔다. 어지러움 때문인지, 검은 하늘이 빙글빙글 도는가 싶더니 금방이라도 자신을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그러다 문득 터무니없는 생각이 떠올랐는데, 그것은 단순한 충동이 아닌 의심할 여지조차 없는 확신이었다.한편, 북명왕부에서 노 집사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급히 달려왔다.“무슨 일이오?” 염 선생이 서재에서 나오며 물었다. 노 집사는 빠르게 계단을 올라가서는 목소리를 낮췄다. “폐하께서 오셨습니다. 왕비마마를 뵙고 싶다 하시옵니
황후는 시간을 맞춰 다시 상서원으로 간 후, 대황자를 데리고 함께 지안궁으로 가서 태후에게 문안 인사를 올렸다. 앞뒤로 늘어선 수행원들의 위세는 대단했다.대황자마저 어린 환관의 등에 업혀 궁문에 이르러서야 그를 내려놓았다.황후는 의복을 단정히 하고 대황자의 손을 잡고 지안궁으로 들어갔다. 꿇어앉아 예를 올린 후, 태후의 안부를 여쭈어 보았다. 비록 예법은 완벽했으나, 태후는 한동안 그녀에게 일어나라는 말을 하지 않았고 다만 대황자를 불러 물었다. “오늘 태부께 칭찬을 들었느냐?” 그러자 대황자는 태후의 눈치를 살짝 살피더니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늘 태부께서 칭찬을 잊으신 것 같사옵니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황후가 서둘러 말을 보탰다. “태부께서는 엄격하시어 쉬이 칭찬을 하시지 않으십니다.” 황후는 태후가 이미 태부와 약속을 해둔 일을 모르고 있었다.대황자가 그날 착실하고 성실히 임하면 수업이 끝날 때 한마디 칭찬을 해 주기로, 그렇지 않으면 칭찬은 없기로 말이다. 이를 통해 태후는 대황자의 하루 태도를 알 수 있었다. 태후는 황후의 말을 무시한 채 담담히 대황자를 향해 말했다. “규율은 기억하고 있느냐?” 그러자 순간 대황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그는 급히 변명하며 말했다. “태부께서는 어머니가 저를 찾으신 것을 못마땅히 여기셔서 칭찬하지 않으신 것 같사옵니다.” “그렇다면 벌을 받아야 하는 건 너냐, 아니면 네 어미냐?” 태후가 묻자, 대황자는 황후를 가리키며 재빨리 말했다. “어머니를 벌하옵소서! 어머니께서는 글을 베끼시는 것을 가장 즐기시옵니다!” “맞습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저는 글을 베끼는 것을 좋고 자식을 가르치지 못한 죄도 있으니 응당 벌을 받아야 하옵니다.” 황후도 서둘러 맞장구를 치자, 태후는 그녀를 흘끗 보더니 금마마에게 명했다. “대황자를 저녁을 차려주고 작은 서재로 보내라. 해시 전까지 모두 베끼지 못하면 출입을 금하라.” 그러자
두 사람은 그렇게 어서방에서 거의 한 시진가량 이야기를 나눴다.태후가 떠난 뒤, 숙청제는 황후의 금족령을 해제하라는 어명을 내릴 뿐, 후궁을 관리하는 권한은 돌려주지 않았다.오대반으로부터 어명을 전해 들은 제황후는 처음엔 믿을 수 없었다. 어째서 갑자기 금족령이 해제했단 말인가?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아마도 자신이 전에 퍼뜨리도록 지시했던 말들이 효과를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후가 살아 있는데, 적자를 태후궁에서 보살피는 것은 규율에 어긋난다는 말이었다.금족령이 해제된 제황후는 감사의 인사는 뒤로하고 대신, 곧장 서대신, 곧장 대황자를 만나러 상서원으로 향했다. 대황자는 황후를 보자마자 봅시 기뻐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태부가 강의를 하고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새장 속에서 풀려난 새처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녀에게 달려갔다. “어머니, 아들은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었사옵니다! 언제쯤 저를 다시 데려가시겠나이까!” 황후는 허리를 숙여 그의 어깨를 잡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들을 찬찬히 살폈다. 초구를 걸치지 않은 대황자는 많이 야워어 턱선이 뽀쪽하게 드러난 모습에 황후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어찌 이렇게 수척해졌느냐? 잘 먹지 못한 것이냐?” 대황자는 입을 삐죽이더니 금세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서재에서 돌아가면 황조모께서는 또 글을 외우게 하십니다. 외우지 못하면 밥을 주지 않으시니 황조모궁에 더는 있고 싶지 않아졌습니다. 빨리 돌아가고 싶사옵니다!” 제황후는 태후가 엄격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방금 금족령이 풀린 상황에서 태후와 맞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는 다만 대황자를 달래며 말했다. “조금만 더 참거라. 어미가 네 부황을 설득할 것이다.” 대황자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말하려다, 안만수 태부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말문을 닫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이때 안만수가 제황후에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 “마마, 대황자께서는 수업 중이시옵니다.” 제황후는 안
이튿날, 목 승상은 바로 태의원으로 향하였다. 태의원에서는 모든 태의와 원정이 대기 중이었다. 자리에 앉은 목 승상은 그들을 바라보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딱 한 가지만 묻겠다. 폐하의 병을 치료할 자신이 있느냐?” 태의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 마침내 오원정이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목 승상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없사옵니다.” “조금이라도 말이냐?” 목 승상은 쉽게 납득할 수 없어 다시 물었다. “단 한 가닥의 희망이라도, 혹 다른 방도라도 없단 말이냐?” 모두가 다시 침묵하자, 목 승상의 눈빛은 점차 어두워졌고 그러다 완전히 빛을 잃었다.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태의원의 명성을 걸고서라면, 이 기한을 2년으로 늘릴 수는 없겠느냐?” 오원정은 얼굴에 깊은 자책감이 서려 있었다. “승상, 폐적증은 발작하면 기세가 매우 심각하여 2년은커녕 1년조차도… 쉽지 않을 것이옵니다.” 이번에는 목 승상이 한참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러고는 마침내 한 마디 내뱉었다.“입들 조심하거라.” 그는 천천히 태의원을 나서며 망토를 단단히 여몄다. 이렇게도 빨리 또 연말이 다가왔다. 날씨가 갈수록 추워져 뼛속까지 스며들었다.태후는 겉으로는 아무 일도 모르는 듯했지만, 태의원의 밤새 꺼지지 않는 불을 보고일이 터졌음을 짐작했다. 그녀는 두통을 핑계로 오원정을 불러 진맥을 청했다. 그러자 진맥을 마친 오원정이 말했다. “태후마마께서는 수면이 부족하신 듯하옵니다.” 꼿꼿이 서 있는 그는 태후가 이미 무엇인가를 눈치챘음을 알고 있었다. 궁에서 태후의 눈과 귀를 피해 갈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태후가 알고 싶어 하지 않을 때만 예외였다. 태후는 주변 사람들을 돌려 보내고, 오원정만 남게 했다. 문지방 위로 햇살이 드리웠지만 매서운 바람이 드리워, 그 햇살조차 싸늘하게 느껴졌다. “말해보거라.” 태후는 자리에 앉아, 오원정의 멍든 눈가를 바라보며 말했다. “폐하께서 얼마나 심각한 상황이기에
오늘 밤, 목 승상은 궁에 묵기로 하였다. 한편, 숙청제는 여전히 후궁에 들지 않았으며, 자신의 침전에 돌아가지도 않고 어서방 안의 침상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목 승상은 황제가 약을 다 마시는 것을 보고 사탕 하나를 건넸다.숙청제는 사탕을 받아 들고 한참을 바라보다가 눈가에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어릴 적, 부황에게 호되게 꾸짖음을 당하고 나면 승상께서 꼭 사탕 하나를 건네며 격려의 말을 해주시곤 하였지요.” 목 승상도 그를 바라보았다.“그렇습니다. 저 역시 기억하고 있사옵니다. 황상께서 당시 말씀하셨지요. 훗날 현군이 되겠노라고 말입니다.” “혹 승상을 실망시킨 적이 있었는지요?” 숙청제는 사탕을 입에 넣었다. 그로 인해 목소리가 다소 흐릿해졌다. “없사옵니다. 소인에게 폐하는 이미 현군이시옵니다.” 숙청제는 고개를 저으며, 눈에 실망스러운 빛을 띠우고 말했다. “난 현군이 아닙니다. 하고 싶은 일이 아직 많이 남아 있지만 이제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태의원에서 아직 진단을 내리지 않았으니, 폐하께서는 비관하시면 안되옵니다.” 목승상의 위로는 다소 건조하게 느껴졌다. “조금은 아쉽기는 하지만 더 많은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숙청제는 침상에 비스듬히 누운 채 무거운 눈빛으로 말했다. “우선, 태자를 정해야 할 텐데 승상께서는 대황자가 어떠신지요?” 목승상이 답했다. “대황자는 장남이자 중궁의 적자로서, 지금은 태부의 가르침 아래 점점 나아지고 있사옵고 예전의 제멋대로이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시간이 지나면 더욱 믿음직스러운 인물이 될 것입...” 그러자 숙청제가 그의 말을 끊었다. “저는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현재를 이야기하시지요. 그럼, 이황자는 어떻습니까?” 잠시 생각에 잠기던 목 승상이 답했다. “이황자는 영민하고 총명하지요. 비록 이제 막 학문을 시작하셨으나, 근면하고 배우려는 의지가 강한 점이 눈에 띕니다. 다만 이를 지속할 수 있을지는
너무나도 큰 일이라 송석석은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황제가 만약 승하한다면, 의심할 여지도 없이 대황자가 황위에 오를 것이고, 조만간 태자로 책봉될 것이다. 어린 황제가 즉위한다면, 반드시 보정 대신이 필요할 것이며, 그 수는 한 명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이로 인해 조정은 여러 당파로 갈리게 될 것이고, 혼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컸다. 만약 보정대신을 두지 않는다면, 태후나 제황후가 수렴청정할 것이다. 황후는 야망이 가득한 사람으로, 현재 금족 된 상태에서도 대황자를 위해 계략을 꾸미고 있었다. 제씨 가문의 세력이 너무나 강해져 최근 황제가 억누르고는 있으나, 만약 황제가 승하하고 대황자가 즉위하면 제씨 가문은 다시 힘을 얻게 될 것이었다. 누군들 권력을 탐하지 않겠는가? 목승상은 고령이라 퇴의를 염두에 두고 있었기에, 신황을 위해 나라를 돌보려 해도 상황이 그리 녹록지 않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나중에 벌어질 일들이고 현재 가장 우려되는 것은 황제에게 1년이란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면 그가 승하하기 전에 황후는 대황자를 위해 모든 장애물과 위협을 제거하려 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명왕부가 가장 큰 위협이었다. 오대반도 이 점을 깨달았는지, 얼굴이 갑자기 창백해졌다. 그는 황제의 병세를 알게 되었을 때, 오직 북명왕만이 어린 황제를 도와 정국을 안정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만 생각했다.하지만 송석석의 근심 어린 얼굴을 마주하게 되자 그 끔찍한 가능성을 깨닫게 되었다.아니, 이것은 단순한 가능성이 아니었다. 현실이 될 가능성이 너무나도 컸다. “왕비마마, 차라리 떠나시는 것이…” 송석석이 서둘러 손을 들어 그를 막았다. “그만하시옵소서. 지금은 태의조차 확실히 진단 내리지 못하였으니, 어쩌면 단순한 두통이거나 종기일 수도 있사옵니다.” 그녀는 오대반이 조언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혹여 훗날 황제에 대한 자신의 불충함을 느끼고 괴로워할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먼지떨이를 꽉 쥔 오대반은 그녀의 뜻을 바
와야 할 사람들은 모두 만났기에, 이제 송석석은 마음 놓고 쉴 수 있을 것 같았다.간혹 임 태의가 상처 치료와 흉터 제거를 위한 약을 챙겨 찾아오긴 했지만, 그럴 때마다 염 선생이 그를 환대해 주었고 황제께 대신 감사를 전해줄 것을 바랐다. 이날은 임 태의가 오대반과 함께 찾아왔다. 염 선생은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그는 임 태의에게 흉터 제거에 관련한 질문이 있다며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면서 송석석이 오대반과 단둘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했다. “폐하께서 보내신 것이옵니까?” 송석석이 묻자, 오대반은 손에 든 먼지떨이를 팔꿈치 위에 걸친 채 문밖에 함께 온 친위병들을 힐끗 보며 답했다. “황상께서 보내신 것도 맞고, 내 스스로도 오고 싶었사옵니다. 왕비 마마는 좀 나으셨사옵니까?” 잠시 망설이던 송석석이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어때 보이시나요?” 오대반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왕비 마마께서는 통찰력이 깊으시옵니다. 좀 나아진 듯하나, 아직은 거동이 어려우신 것 같습니다만.” 송석석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공공께서 말씀하신 대로, 좀 나아지긴 했으나 아직 걸을 수는 없사옵니다.” “왕비마마께서는 마음 졸이지 마시고, 우선 몸부터 잘 돌보셔야 하옵니다.” 오대반이 위로하자, 송석석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마음이 급하지만 어쩔 수 없지요. 단신의 말로는 골절은 백일이 걸린다 하였으니, 이 백일 동안 잘 요양해야 할 듯하옵니다.” 그때 시만자가 안쪽을 들여다보며 미소를 지었다.“멀리서 보고 척귀대인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 와보니 내가 착각했군.” 그 말을 들은 친위병들은 그녀가 장기문 대감의 사부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서둘러 예를 갖춰 인사했다. 시만자는 그들의 이름을 물은 뒤,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재미있군요. 내 제자들이 그대들 무예가 뛰어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던데, 오늘 잘 만났군. 내 그대들과 몇 수 겨루도록 하지.” 그 말에 친위병들의 눈이 반짝였
안여옥이 몸을 굽히며 작별 인사를 했다.“그럼 더 이상 방해하지 않겠사옵니다.” “살펴 가세요.” 최숙심은 미소를 띈 얼굴로 그녀를 배웅했다. 안여옥이 떠난 후, 최숙심이 왕청여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녀의 얼굴에 드리운 검은 그림자는 또 다시 후회를 하고 있다는 증거였다.“이미 지난 일을 되새긴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어서 들어가시지요.” 왕청여가 송석석을 문병하러 온 것은 큰 용기를 낸 것이었다. 그녀는 송석석에게 사과와 감사를 동시에 전해야 했기에, 오늘은 그저 형수님들을 따라온 척했지만, 사실은 과거의 모든 일을 마주하기 위해 찾아왔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과대평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송석석을 마주할 용기는 냈지만, 안여옥을 보는 순간, 알 수 없는 감정이 북받쳤다. 마치 무언가로 세게 맞은 듯 머릿속이 하얘졌고, 그 미소조차 억지로 지어낸 것이었다. 심지어 자신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까 두려웠다. 멍하니 형수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간 왕청여는 송석석을 마주한 순간 이미 눈물은 시야를 가렸다. 그녀를 한 번 쳐다보던 송석석은 미소 지으며 자리에 앉으라 권하고 차를 내렸다. 그녀의 다리에 감긴 붕대를 바라보던 최숙심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심하게 다친 것은 아닌지요? 얼마나 많이 아프셨습니까?” 그녀의 진심 어린 염려에 송석석은 오히려 태연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 정도 작은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지요.” “어찌 아프지 않을 수 있겠사옵니까? 듣자 하니 뼈까지 부러졌다던데, 얼마나 오래 요양해야 한답니까? 나중에 걷는 데 지장은 없겠사옵니까?” “이것 보세요. 아주 멀쩡하지 않습니까? 정말로 괜찮습니다. 전장에서의 부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요.” 송석석은 태연하게 다리를 살짝 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녀의 의연한 모습에 최숙심의 눈이 더더욱 슬퍼졌다. “전장에서 얼마나 힘드셨겠습니까?” “늘 있는 일이지요. 이제 다 나았사옵니다.” 그때 옆에 있던 남희가
그렇게 궁을 떠난 혜태비는 왕부에 들어서자마자 서우와 함께 곧장 송석석에게로 향했다. 계속 입이 근질거렸던 그녀는 송석석과 대화를 마치자마자 돌아서서는 서우가 멀어지기 바쁘게 오늘 궁에서 들은 이야기와 태후가 내린 엄벌 조치를 모두 털어놓았다. 그러자 모든 것을 전해 들은 송석석은 오히려 혜태비를 위로했다. 후궁에 갇혀 있다 싶이 하는 자들이라 너무나 한가해서 그러는 것이라고 그녀처럼 거리를 산책하거나 연극을 보러 갈 수도 없기에 자연스레 이야기를 꾸며내며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을거라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 길고 지루한 나날을 어떻게 보내겠냐며 말이다.하지만 혜태비는 여전히 화가 났다."그렇다 해도 함부로 입을 놀리면 안 되는 것이니라. 게다가 듣기 거북할 정도이니 용서할 수 없느니라. 우리 묵이가 낙동강 오리알이 될 수도 있다니, 이게 사람이 할 소리냔 말이다! 나이만 먹었지. 기본 예의라곤 없는 사람이니라!" 송석석은 한숨을 내쉬었다. 애초 이상함을 느꼈을 때 자신이 곧장 액션을 취하지 않았음이 후회되었다. 하지만 그 탕약을 마시기 전에는 이상하다고 느꼈어도 이렇게까지 심각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고, 도리어 황제가 만종문의 일을 알아내려는 줄로만 여겼다. 지금까지도 황제가 무슨 의도로 그러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원체 생각이 많은 그인지라 생각을 꿰뚫었다는 느낌이 왔어도 크게 어긋날 때가 더욱 많았다. 비록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군정 회의에 직접 참여할 수는 없으니, 전선의 소식은 오직 사매에게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가한 나날들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그녀가 부상을 입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이들이 문병하러 찾아왔기 때문이다.아프지 않을 때는 알 수 없던 관계망이, 병환에 있게 되니 얼마나 넓은지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저마다 선물 꾸러미와 약재를 한가득 들고 찾아왔다.모두 오래 머물지는 않는다 하였으나 날마다 많은 이들이 찾아오니 일일이 응대해야 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서야 비로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