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들은 모두 떠나고, 무례한 병사들만 남아 노부인은 화가 나 심장병이 도질 뻔했다. 장군부의 다른 사람들도 당혹스러워하며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이렇게 큰 경사가 이런 식으로 치러진 적은 없었고, 더군다나 황제가 주선한 결혼식이 이 모양이 될 줄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이 소식이 퍼지면 장군부는 경성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 분명했다.민씨를 찾아간 전북망은 더 이상 분노를 억제할 수 없었다. 그는 탁자를 내리치며 말했다. “형수, 만약 내 혼인식을 제대로 준비하고 싶지 않았다면, 미리 말씀해 주시지 그러셨습니까? 이제 혼인식은 웃음거리가 되었고, 손님들이 모조리 떠났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조정에서 관직 생활을 하란 겁니까?”민씨는 억울함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사람 수대로 준비했을 뿐인데, 갑자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올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게 제 잘못입니까? 그리고 원래 집안을 관리하던 사람은 제가 아니었습니다. 예전에는 모든 경사나 다과 모임을 송석석이 준비했지요. 저도 이런 일은 처음인지라 송석석이 하던대로 해봤으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올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그 이 얘기는 하지 마세요!”전북망은 혼란스러웠다. “이전에는 이런 일을 책임지지 않았다고 해도 혼인 같은 큰 잔치에서는 여분의 자리를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저도 두 상정도는 여분으로 남겨놓았습니다.”민씨는 남편 전북경(戰北卿)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못 미더우면 큰형에게 물어보세요. 큰형이 두 상을 더 준비하면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부른 손님들이 모두 부유하고 귀한 사람들이라 잔치상은 제일 좋은 식자재들로 준비했고 그중 6가지는 산해진미…”말하자면, 손에 쥔 돈이 한정되어 있었다는 것이다.전북경은 아내가 동생에게 질책받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말했다. “형수를 그렇게 몰아세울 거 없다. 이 혼인식은 이미 충분히 성대하게 치러졌다. 갑자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지 않았더라면 아무 문제도 없었을 일이다.”전북망은 말했다. “그러나 여분
잠시 침묵하던 그는 방을 나서며 하인에게 청소하라고 명령했다. 이 여자는 그가 공으로 얻은 여자였다. 오늘의 결혼식은 엉망이었고 누구의 잘못이든지 간에 그녀는 충분히 서운했을 것이다. 그는 참기로 했다.그는 후회하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았다. 그는 자신이 아니라 송석석이 후회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송석석이 자신과 이방의 결혼식이 이렇게 엉망으로 치러졌다는 것을 알게 되면, 분명히 속으로 비웃을 것 같았다.같은 시각, 진국공부.무술 훈련을 하고 땀을 흘린 송석석은 뜨거운 물로 목욕을 하고 보주에게 복숭아꽃 술 한 병 가져오라고 했다. 그녀는 홀로 술을 마셨다. 한 달 동안, 그녀는 거의 이와 같이 지냈다. 낮에는 책을 읽고, 밤에는 훈련을 했다. 장군부에서 1년 동안 결혼 생활을 하던 그녀는 한 번도 무술을 연습하지 못했다. 실력이 녹슬지는 않았지만, 몇몇 기술은 예전과 같지 않았다.그녀는 예전의 실력을 되찾아야 했다. 그녀는 오늘이 전북망과 이방의 결혼식 날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황마마와 양마마는 하인들을 엄격하게 단속해 장군부와 관련된 일은 일절 논의하지 못하게 했다.술에 조금 취했을 때, 보주가 문을 열고 들어와 손에 든 쪽지를 건넸다.“아가씨, 소식이 왔습니다.”송석석은 술잔과 병법서를 내려놓고 일어나서 쪽지를 받아 펼쳐 보았다. 내용을 읽고 난 그녀는 얼굴이 갑자기 굳어졌다.“아가씨, 무슨 일입니까?”보주는 급히 물었다.송석석은 의자에 앉아 오랫동안 멍하니 있었다. “보주, 소주 한 병을 가져와라.”보주는 놀라며 말했다. “아가씨,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보주는 항상 그녀의 곁을 지켰다. 본가에서 사문(師門)으로, 사문에서 진성으로, 장군부로 시집가서 지금까지, 그녀가 술을 마신 것은 단 두 번이었다.첫 번째는 만종문에서 돌아왔을 때, 어르신과 장군들이 모두 남강 전장에서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였고 두 번째는 후부가 처참하게 당했을 때였다.큰일이 발생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녀가 소주를 마시겠
그녀는 외조부가 보내온 전투 보고서를 볼 수 없었다. 그 보고서는 먼저 병부로 갔고 그들이 사본을 작성한 후 원본을 황제에게 제출했을 것이다. 따라서 병부에는 외조부가 보낸 전투 보고서와 승전 보고서가 있을 것이다. 그녀는 병부에 몰래 들어가야 했다.병부에는 밤에 사람이 거의 없지만, 육부 관청(六部衙門)은 천보가(千步街)양쪽에 위치해 있고, 황궁과 인접해 있었다. 금군은 천보가를 순찰하지 않지만, 순방영(巡防營)의 사람들이 그쪽을 순찰할 것이다. 하지만 전투 보고서와 외조부가 제출한 전후 보고서를 반드시 봐야 했다. 외조부가 이방의 공을 인정했기에 병부도 인정한 것이 분명했다.서경 사람들은 반드시 복수한다. 이방이 항복한 마을을 학살했기 때문에 어떤 이유로 항복했든 쉽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가장 큰 가능성은 그들이 사국과 동맹을 맺고 남강 전장에 나타나는 것이다.그녀는 지도를 찾아보았다. 서경 사람들이 상국을 거치지 않고 남강 전장에 나타나려면 사국에 먼저 도착한 후 다시 남강으로 가야 한다. 이 과정은 약 석 달이 걸린다. 현재 남강을 반드시 차지하려는 사국은 북명왕(北冥王)이 그곳을 지키고 있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전투는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서경 사람들이 합류하면 북명왕은 패배할 것이다. 북명왕은 이 변수를 전혀 알지 못해 미리 대비할 방법이 없다. 미리 알더라도 지원군이 없으면 역시 패배할 수밖에 없다.서경 사람들은 복수를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이다. 이 점은 그들이 경성에 있는 모든 첩자를 동원해 후부를 몰살시킨 것으로 알 수 있다.남강 전투는 이미 너무 오래 끌었다. 병사들은 지치고, 군사도 부족해 북명왕의 상황은 매우 어려워졌다. 만약 그녀의 추측이 맞다면, 조정은 즉시 남강으로 지원군을 보내야 한다. 진성이나 회주 위소(淮州衛所)에서 남강으로 병력을 보내려면 최소 한 달, 심지어 더 오래 걸릴 것이다. 더는 지체할 수 없다.하지만 서경이 사국으로 병력을 이동하고 있다는 증거가 없으니 큰 오라버니의 소식을 기다릴
별이 빛나는 밤, 송석석은 병부 문서 방에 무사히 잠입했다.힘들게 찾을 필요도 없이, 성릉관 전투의 모든 당보는 선반의 왼쪽 상단에 있었다. 그녀는 가지고 온 야명주(夜明珠)를 가볍게 천으로 감싸 빛을 가리고, 구석에 숨어 하나씩 읽었다. 그녀는 온몸이 얼어붙었고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렀다.전북망과 이방은 지원군으로 갔다. 성릉관에 도착한 후 그들은 전투에 참여했으나, 전장 경험이 많지 않았던 그들을 구하던 중 셋째 삼촌이 팔 한쪽을 잃었다. 일곱째 삼촌은 지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이미 전사했다. 그녀의 기억 속에서 의기양양했던 소년은 전장에서 희생되었다. 외할아버지도 지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이미 화살에 맞아 부상을 입었기 때문에, 마지막 전투는 거의 전북망이 주도했다.마지막에 대승리를 거둔 것은 전북망과 이방이었다. 그들은 병력을 이끌고 서경의 녹분성에 쳐들어간 후, 전북망은 서경의 군수창과 식량을 불태웠고, 이방은 병사 몇 명과 일부 병사를 포로로 잡았다. 이 소장들이 포로가 되면서 서경은 항복을 선언했고, 녹분성(鹿奔兒城)에서 조약을 체결했다. 조약 체결 후 이방은 부대를 이끌고 성릉관으로 돌아와서야 포로들을 풀어주었다.당보에는 마을을 학살하고 항복한 병사를 죽였다는 내용이 전혀 적혀 있지 않았다. 외할아버지가 숨겼거나, 전혀 몰랐을 것이다. 그가 알고 있었든 아니든, 사실이 밝혀지면 주장으로서 그는 반드시 처벌받을 것이다.송석석은 당보(塘報)와 상소(奏本)를 제자리에 돌려놓고 병부를 떠났다.영롱각으로 돌아오니, 보주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녀가 야행복을 입고 돌아오는 것을 본 보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쪽지를 건넸다. “이건 사제분의 전서구가 가져온 것입니다.”즉시 받아 펼쳐본 송석석은 숨이 멎을 뻔했다. 그녀의 추측이 맞았다.언니는 서경의 30만 병력이 이미 사국으로 통하는 길을 따라 남강 전장으로 향하고 있으며, 식량을 가득 지녔다고 말했다.사국과 서경이 정말 동맹을 맺었거나, 아니면 복수 하기 위해 그리고 남강을
서재.숙청제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송석석을 바라보았다.그녀는 흰색의 허리띠를 한 옷을 입고, 파란색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머리는 지난번 궁에 들어왔을 때의 부인 머리 모양이 아니라, 높은 포니테일로 묶고 흰색 비단 끈으로 단단히 묶었다.그녀의 얼굴은 창백했고, 눈가에 약간 붉은 기운이 돌았으며, 눈 밑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제대로 눈을 붙이지 못한 듯하다.미세하게 굽어진 그녀의 속눈썹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그 모습은 눈물을 머금은 배꽃처럼 아름다웠지만, 측은한 느낌이 아니라 오히려 굳건함이 담겨 있었다.“신녀(臣女)가 폐하께 문안드리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쉰 소리였다. 어젯밤 보주가 떠난 후, 그녀는 이불속에서 오랫동안 흐느껴 울었다.“울었느냐?” 눈살을 찌푸린 숙청제는 잘생긴 얼굴에 불쾌함을 드러냈다.“전북망과 이방의 혼례 때문이더냐?”송석석이 고개를 저었다.그녀가 대답하려 했으나, 숙청제가 계속 말을 이었다. “이혼 조서(旨意)는 네가 궁에 들어와 청한 것이다. 이미 이혼했으니, 각자의 길을 가는 것인데, 어찌하여 옛일에 집착하는가? 만약 잊지 못한다면 처음부터 나에게 이혼 조서를 청하지 말았어야 했다.”온화하게 하게 들리는 목소리였지만 짜증이 한가득 섞여 있었다.송석석은 황제가 말을 끊지 않도록 빠르게 말했다. “신녀가 울었던 것은 전북망 때문이 아니옵니다. 이미 이혼했으니 감정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신녀가 슬픈 이유는 사저의 서신을 받고 신녀의 칠촌이 희생되었고, 숙부님이 한 팔을 잃었으며, 외조부가 화살에 맞아 아직 완쾌되지 못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옵니다.”병부에 잠입해 당보를 훔쳐본 것은 당연히 말하지 않았다.순간 멈칫하던 숙청제는 천천히 한숨을 쉬었다. “네 가족이 반년 전에 몰살당했기 때문에 이 일을 너에게 숨겼다. 네 칠촌은 나라를 위해 희생했으니, 그 자는 상국의 영웅이다. 나는 이미 그를 영웅 신장(神將)으로 추서하였으니 너무 슬퍼하지 말고 몸을 돌보거라.”눈에는 눈물
심청화가 보낸 서신이란 말에 숙청제는 오대반에게 편지를 가져오라고 급히 명령했다.그는 서신의 글씨를 보았고, 분명히 청하 스승의 필체였다. 태자 시절 청화 스승의 글을 받은 적이 있어서 그의 필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편지의 대부분은 그의 여행기였지만, 마지막 부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낙하산을 넘고 나니, 수십만의 서경 군사들이 모두 사국 군복으로 갈아입고 식량을 가지고 가고 있었으며, 사국의 삼황자가 직접 맞이하여 경내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사옵니다. 서경과 사국이 동맹을 맺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동맹을 맺었다면 왜 30만 군사를 받아들이는지 이해가 가지 않사옵니다. 저는 현재 그들을 몰래 따라가고 있으며, 그들이 남강 전장으로 가는 것을 발견했사옵니다. 이는 국가의 중대한 일이므로 황제폐하께 보고할지 여부를 신중히 판단해 주시옵소서...]송석석은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마음속으로는 황제가 이를 눈치채지 않기를 바랐다.서신을 읽은 숙청제는 오대반에게 심청화의 글을 가져와 비교해 보라고 명령했다. 필체에는 차이가 없었다.본래 서예를 좋아하여 글자를 연구하고 있던 숙청제는 이 서신의 필체가 심청화의 필체와 비슷하지만, 모방한 흔적이 있음을 알아차렸다.또한, 심청화가 사국에서 이 서신을 썼다면, 더더욱 불가능했다. 사국에는 이와 같은 생선지(宣紙)가 없기 때문이다. 이 종이는 상국의 선성(宣城)에서 제조된 것이며, 사국이 남강을 침략한 이후로 두 나라 간에는 무역이 중단되어 사국에서는 이 종이를 살 수 없다.잉크의 냄새를 더 자세히 맡아보니, 이는 확실히 경성 백서재의 먹물에서 나는 냄새였다. 특별히 향은 아니지만, 태자 시절에 백서재(白書齋)의 먹물을 자주 샀기 때문에 구별할 수 있었다.따라서, 이 서신은 가짜였다.송석석은 황제의 눈빛에서 이 서신이 들통났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황제 폐하는 현명하고 똑똑했다. 평소 심청화를 매우 존경하여 그의 글을 연구했던 것이 분명하다.급한 상황에서 그녀는 더 좋은 방법을 생각하지 못했다. 출병은
그녀는 금군과 싸울 수 없었다. 황제는 그녀가 전북망과 이방의 혼인 문제로 더 소란을 피운다고 생각할 것이다.황제가 옷자락을 휘날리며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녀는 급히 외쳤다. “폐하, 신녀의 부친은 상국의 굳건한 무장이었으며, 형제들도 전장에서 적에게 두려움을 심어준 장군들이었사옵니다. 신녀는 그들만큼은 아니지만, 자식의 감정에 얽매이지는 않사옵니다. 이미 전북망과 이혼했으니, 감정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군국의 대사(軍國大事)를 자식의 감정과 연결 짓지 않으니, 폐하께서 신녀를 한 번만 믿어 주시 옵소서.”숙청제는 멈춰 섰으나 돌아보지 않고 차갑게 말했다. “네가 그들이 용맹한 영웅이라는 것을 안다면, 그들의 명성을 손상시키는 더러운 일을 하지 마라. 나는 너에게 명예를 줄 수도 있고, 거둘 수도 있다. 돌아가라, 오늘 네가 오지 않은 것으로 하겠다. 스스로 잘하여라.”그 말을 끝으로 황제는 걸음을 옮겼다.송석석은 어쩔 수 없이 손을 내려놓았다. 더러운 일? 다른 사람들, 심지어 황제의 눈에도 그녀가 이렇게 옳고 그름을 분간하지 못하고 소란만 피우는 사람으로 보이는가?송회안의 딸이 자신의 감정을 제어 못 할 리가 있는가? 그녀는 어릴 적 만종문에 들어갔고, 2년 전에 돌아와 첫해에는 어머니를 따라 규칙을 배우며 진정한 부인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두 번째 해에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장군부를 관리했다. 최소한 진성에서는 한 번도 엉뚱한 일을 하지 않았다. 단지 이혼 때문에 모두가 그녀를 소심하고 이기적인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는가?그녀는 어쩔 수 없이 서재를 떠났다. 금군이 따라붙으며 어디도 가지 못하게 했고 그녀가 더 극단적인 일을 벌일까 두문불출하라고 단단히 일렀다.돌아온 그녀가 금군들과 함께인 것을 본 진복은 놀란 기색을 드러내지 않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안으로 들어 차 한잔하시지요.”금군은 담담히 대답했다.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문 앞에서 지키면서 아가씨를 방해하지 않겠습니다.”비록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지만
몇 개의 비단 상자를 가지고 말을 탄 진복이 출발했다. 금군은 그가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았다. 그저 아가씨가 집을 나서지 않으면 상관하지 않았다. 황제가 출입을 금한 것은 그녀일 뿐, 다른 사람들과는 상관없었고, 거대한 국공부에서가 물건을 사들이는 일은 지극히 평범한 일이었다.회왕부(淮王府)에 도착한 진복은 진국공부 아가씨가 군주에게 혼수 선물을 보내 왔다고 말했다.문지기가 들어가 알리자 잠시 후 회왕비의 집사가 나와 인사를 했다.“진 집사, 안녕하시오. 왕비님께서 말씀하시길, 국공부 아가씨가 이혼 후 돌아와서 지금 돈이 필요할 때이고 군주는 혼수 선물이 필요하지 않으니, 그 마음만 받겠다고 하셨습니다. 집사님은 돌아가세요, 특별한 일이 없다면 오실 필요 없습니다.”멍하니 집사의 무심한 얼굴을 보던 진복은 마침내 깨달았다.회왕비는 아가씨가 이혼한 몸이어서, 그녀가 선물하는 것이 불길하다고 생각해 받지 않는 것이다.진복은 화가 났지만, 큰 가문에서 길러진 교양으로 예의를 지켰다. “그렇다면 저희 아가씨의 축복을 전해 주십시오. 안녕히 계십시오.”“안녕히 가십시오.” 집사는 냉담하게 말했다.진복은 몹시 화가 났다. 사실 아가씨가 손님을 받았던 지난 한 달 동안, 밖에서 무슨 소문이 도는지 그는 모두 알고 있었다.사람들은 모두 전북망의 첩을 받아들이지 못한 아가씨가 질투심은 물론 시어머니께도 공경하지 않아 장군부에서는 쫓아낼 수도 있었지만, 황제가 후부의 충성을 감안하여 이혼 조서를 내렸다고 말했다.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다 쳐도, 회왕비와 부인은 친자매였다. 부인이 살아 계셨을 때 두 자매는 자주 왕래하며 돈독한 사이였다. 회왕비가 군주를 낳을 때 난산으로 어려웠던 것도 부인이 단신의를 불러와 두 생명을 구해냈다.아가씨가 전씨 가문에서 모욕을 당했을 때도 이모는 나서서 도와주지도 않았고 이제 선물을 보내는 것도 천대하고 있다.아가씨가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울분이 터졌지만, 진복은 아가씨가 부탁한 중요한 일을 잊지 않았
“사정언, 너 말 좀 그만해.” 송석석은 눈살을 찌푸리고 서우에게 매달려 쉴 새 없이 말하는 딸을 혼냈다. 새빨갛게 그을린 작은 얼굴에 닭장처럼 헝클어진 머리카락은 한 눈에 봐도 밖에서 뛰어놀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우가 돌아오자마자 그녀는 쉬지도 않고 사촌 오빠에게 길에서 본 재미있는 일들을 물었다. “어머니.” 사정언은 눈을 크게 떴다.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뜨니 왠지 억울해 보였다. 그녀의 외모는 부모님의 장점만 닮아 있었다. “제가 이렇게 오랫동안 사촌 오라버니를 만나지 못했으니, 당연히 할 말이 많지요. 하루만 못 봐도 3년 못 본 것처럼 길게 느껴진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게 무슨 말이야? 대체 누가 그런 말을 가르쳐줬어?” 송석석이 눈살을 더욱 찌푸렸다. “왕사백이요. 그가 며칠 전에 매산으로 갔었는데, 돌아오자마자 시 고모를 안고 그렇게 말했었습니다.” 그녀의 말에 시만자는 고개를 숙여 송석석의 눈빛을 피했다. 그녀는 그때 정언이 나무 위에 숨어 있을 줄은 몰랐다. 알았다면 아이 앞에서 껴안고 그런 오글거리는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이었다. 그녀는 이 아이가 말을 따라 하는 능력이 아주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 나이의 아이들이 왜 어른들의 말을 듣는 것을 좋아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는 이맘때쯤에 최대한 어른들과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말이다. 사정언은 대답한 후에도 계속 서우를 잡고 말했다. “오라버니, 혹시 상서에 갔어? 상서에서 시신 업는 것을 봤어? 정말 소국이 말한 것처럼 앞에서 종을 흔드는 도인이 있고, 뒤에 좀비들이 따라가는 거야? 그들은 걸어가 아님 뛰어가? 꼭 밤에만 볼 수 있는 거야? 낮에는 햇볕이 쨍쨍해서 볼 수 없는 거야? 그들은 말할 줄 알아? 뭘 먹어? 그리고 그곳엔 주술을 잘한다고 들었는데 혹시 미인을 본 적이 있어? 그런 미인은 오라버니가 마음에 드는지…….” “그만해!” 송석석도 이내 참지 못하고 호통을 쳤다. “보주, 서주, 어서
송석석은 이번에 외출할 때 황제에게 유람하러 간다고 했다.하지만 그녀는 신약산장에 오래 머물지 않고 7일 만에 떠나 만종문으로 향했다.그녀는 원래 진성으로 돌아가 홍현 고모를 찾고 싶었지만 평무종 고모를 직접 찾아가서 분장술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분장술은 어렵지 않지만 능숙하게, 아무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하려면 한두 달 만에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간단한 분장술은 기존의 얼굴에도 할 수 있었지만 비가 오기만 해도 쉽게 흔적이 드러날 수 있었다.그러니 간단한 분장술만 배워서는 안 되었다.그리고 또 다른 미용술은 가면을 만드는 것인데 일반적인 가면은 일정한 두께가 있어 답답하고 오랫동안 착용하면 얼굴에 상처가 날 수 있다.게다가 가면을 착용할 때는 특수 물약을 묻혀야 했기에, 뜯을 때도 얼굴에 상처가 입을 수 있었다.운익각 사람들은 가면을 착용할 때 오래 착용하지 않았다. 게다가 정탐꾼들은 무공도 괜찮고 경공도 높아 임무를 수행할 때만 가면을 착용해서 물약을 묻힐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벗겨져도 얼굴에 검은 천으로 복면을 쓰고 있어서 알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그리고 일반인들이 변장해서 탐문할 때 사용하는 것은 변장의 첫 번째 방법이었다.평무종은 서우의 요구를 듣고 말했다.“얼굴에 오래 쓰고 있을 수 있으면서도 원래 피부를 해치지 않고 잘 벗겨지지 않는 가면이라, 그럼 상어가죽으로 만드는 것은 어떠냐.”“상어가죽이 무엇입니까?”서우는 매미의 날개처럼 얇고 물에 젖어도 흔들리지 않는 상어비단은 들어본 적이 있었지만 그건 엄청 귀중한 비단이었다.그러자 평무종이 설명했다.“상어가죽은 분장술에서 쓰이는 가장 좋은 소재이다. 통풍이 잘 되고, 얼굴에 단단히 붙어 쉽게 떨어지지 않아 빗물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심지어 눈으로 보나 만지나 모두 진짜 피부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상어가죽으로 가면을 만들려면 상어 눈물을 사용해서 실을 짜내고 다시 밑감을 만들어야 해서 매우 번거롭다.”그러자 서우가 물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촛불을 들고 한참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조정의 일은 일절 말해주지 않은 탓에, 수철은 지금 나라가 안정적이라는 사실만 알 수 있었다. 그는 이미 대황자가 아니다. 따라서 지금 그가 지켜야 할 것은 자신의 목숨뿐이고, 다른 것은 이미 그와 상관이 없어졌다. 그는 조정에 관한 화제를 꺼내면 모두가 예민해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릴 때 그는 왜 자신이 죽어야 하는지 몰랐지만, 나중에 단 사공이 와서 조금씩 분석해 주었고, 그의 사부님도 이해관계에 대해 이야기해준 적이 있었다. 그와 셋째 동생 사이에 가족의 정으로 목숨을 걸고 불안정한 여생을 걸어야 한다면 결코 모두에게 좋은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받아들기로 한 것이었다. 삶은 계속될 텐데, 매일을 의미 있게 잘 보내야 목숨을 건진 보람이 있기 때문이다. 서우가 그의 다리에 대해 물었다. “내가 오기 전에, 고모가 그러던데 넌 다리를 다쳐서 일어날 수 없다고 했는데 지금은 어떻게 걸을 수 있게 된 거야?” 그러자 수철이 말했다. “부황께서 승하하신 해에 산장에서 몇 사람이 와서 진찰해 보더니 정말 심하게 다쳤다며 이대로 두었다가는 계속 아플 테니 반드시 극단적인 방법으로 치료해야 한다고 하더군.” 그러자 서우는 호기심에 물었다. “어디서 온 신의야? 그럼 그때부터 치료한 거야?” 그 물음에 수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북당에서 왔는데 그 사람은 그 말만 하고 날 치료해주지 않고 당일에 떠났어. 그러다가 지난달에 와서 약주를 줘서 그걸 마셨는데, 난 하루 종일 혼수상태에 빠졌어. 심지어 깨어나니 다리가 아파 죽을 것 같았지.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점점 좋아지더니 누군가 부축하면 일어날 수 있게 되었어. 처음에는 잘 일어나지 못했는데 시간이 지나자 점점 똑바로 설 수 있게 되었지. 그리고 지금은 혼자 몇 걸음은 걸을 수 있게 됐어.” 그러자 서우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북당신의? 그분께서 아직 살아 계셔?” “아니, 돌아가셨어. 내가 일어나
[번외편]신약산장의 진달래가 온 산천지에 피었다. 다채로운 경치는 사람들로 하여금 황홀하게 만들었다. 특히 신약산장에 가본 적이 없는 사람들마저 그곳에 살고 싶어 할 정도였다. 하지만 예외인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는 말을 타고 산 아래에 도착해 말을 잘 배치한 후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직 눈앞의 길만 보았고 찬란한 꽃들은 그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빠르게 걸으며, 가끔 경공을 사용하기도 했다. 신약산장이 비록 높지는 않았지만 은밀하게 숨겨져 있었고 많은 갈림길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지도를 수도 없이 봐 온 덕분에 신약산장으로 향하는 길을 이미 마음속에 깊이 새기고 있었다. 약관 때 그가 작위를 계승했을 당시, 작은 고모가 많은 선물을 주었는데 그중 가장 큰 선물이 바로 지도였다. 그리고 그에게 온몸의 피가 끓게 하는 소식을 알려주었는데 바로 수철이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이었다. 당시, 그는 한숨도 자지 못했고 옛날의 모든 일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작위를 받은 후 입궁해서 사은하고 선조들에게 제사를 지낸 후 답방 인사를 드려야 했는데, 작은 고모의 말로는 인맥을 굳건히 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그래서 무려 보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신약산장으로 출발했다. 산 아래에 도착하자 그는 날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막상 산문을 본 순간, 강한 슬픔에 휩싸여 발걸음을 멈추고 그저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작은 고모는 그에게 수철이가 두 다리를 못 쓰게 되었고, 불행 중 다행히 치료 후에 목숨은 건졌지만 약 없이는 살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 그것은 평생 약을 달고 의자에 앉아 있거나 침대에 누워서 지낼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그의 기억 속의 수철의 모습은 두 가지로 나뉘었는데, 하나는 제멋대로며 횡포한 모습이었고, 다른 하나는 성실하고 열심히 공부하며 태후마마와 황제폐하를 실망시킬까 봐 무술이든 공부든 최선을 다 했던 모습이었다. 특히 무술은 고모부가 재미있게 가르쳐 준 덕분에 그들은 항상 활기차게 뛰어다닐 수
사여묵이 그 옷을 바라보며 말했다.“그거 내 옷이잖아. 그럼 내가 살이 쪘다는 말이오? 나 살 안 쪘는데.”“당신 것이었습니까? 그럼 나중에 길이를 고쳐야겠군요.”그러자 사여묵이 다시 투덜거렸다. “헐렁한 옷을 입고 싶으면 사람 시켜 만들어 입으면 되지, 왜 내 낡은 옷을 고쳐 입으려는 것이오?”“내가 매산으로 돌아가서 1년 동안 있을 텐데 당신 옷을 입어야 당신이 내 옆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 것 아닙니까?”송석석은 마치 평생을 떠나는 사람처럼 말했다.“1년? 왜 매산에서 1년이나 있어야 하지?”“당연히 사부님이 날 보고 싶어하셔서지요.”송석석은 허리를 짚고 옆에서 웃고 있는 보주에게 옷을 건넸다.“하지만 당장 간다는 건 아닙니다. 서우가 국공부를 계승할 예정이니 그 일이 끝난 후에 매산으로 돌아갈 것입니다.”“왜 그렇게 오래 있어야 하는 것이오?”사여묵은 그녀의 자세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그에 대해 묻지는 않았다.송석석은 자리에 앉아 느릿느릿 말했다.“매산으로 돌아가 1년 살다가 아이를 하나 주워 와서 우리가 낳았다고 하려고요.”“뭐가 그렇게 번거롭소? 황족 중에 한 명을 양자로 삼으면 되지 않소?”사여묵은 잠시 생각하더니 계속 말을 이어갔다.“게다가 주워 와서 우리가 낳았다고 하는 건 좀 그렇지 않소?”송석석은 퉁명스럽게 그를 한 번 쏘아보았다.‘이렇게 분명하게 말했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하다니.’그러자 보주가 웃으며 말했다.“왕야님. 왕비님께서 지금 임신 중이셔서 매산으로 돌아가서 아기를 낳을 때까지 휴양하시려고 하는 겁니다.”“뭐?”사여묵의 놀란 목소리는 지붕을 떠날 것 같이 컸다.그는 가능성이 그렇게 작은 인연이 그들에게 찾아왔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그는 이내 쪼그려 앉아 조심스럽게 손바닥으로 송석석의 배를 만졌다.‘이 안에 나와 송석석의 아이가 있다니, 말도 안 돼.’그러고는 약간 믿을 수 없다는듯 물었다.“정말이야? 당신도 낳고 싶어?”송석석은 눈을 내리깔고 그를 바라보며 웃으며 말했다.“물론
동월 13일이 되자, 그는 갑자기 정신이 맑아져 배가 고프다며 고기 죽과 크림과자를 먹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오 대반은 급히 사람을 시켜 고기 죽과 크림과자를 준비하도록 했다. 진 황후는 평소처럼 침대 옆에 앉아 그에게 먹여주려고 했지만 그는 오히려 앉아서 먹겠다고 했다. 오 대반은 얼른 앞으로 나서서 일으켜 세우고 등 뒤에 두꺼운 쿠션을 깔아주었다. 숙청제는 여위어서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어 앉아있을 때도 몸이 계속 미끄러지는 탓에 오 대반은 어쩔 수 없이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그의 허리를 받쳤다. 그는 죽 한 그릇을 조금도 남기지 않고 모두 먹고는, 과자도 한 점 먹더니 느끼한 지 더 이상 손을 대지 않았다. 단신의는 태후를 모시고 몇 마디 하자 태후는 안색이 급히 변하더니 눈물이 쏟아졌다. 비록 이미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막상 때가 되자 태후의 마음은 칼에 도려낸 듯 아파진 것이었다. 그렇게 한참 후에야 사람을 시켜 섭정왕과 태자, 그리고 후궁의 공주와 마마들까지 모셔오라고 했다. 숙청제는 마치 자신의 병이 심각한지 전혀 모르는 듯 많은 사람들이 온 것을 보자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는 이내 상냥하게 모든 사람에게 한 마디씩 한 후, 다시 주위를 둘러보며 오 대반에게 물었다. “왜 대황자와 이황자가 보이지 않느냐?” 그 말이 나오자마자 일부 후궁들이 눈물을 참지 못하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오 대반은 웃으면서 말했다.“황제폐하,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이미 사람을 보내 모시러 갔으니 곧 도착할 것입니다.” “너무 서두르지 말고 수업에 집중하라고 하거라. 태부에게 욕먹지 말고.” 숙청제는 두 손을 들어 올리려 애썼지만, 힘이 없었다. “좀 피곤하구나. 쉴 테니 눕혀다오. 한잠 자고 서재로 가도 늦지 않을 것이다.” 오 대반이 급히 그를 부축해 눕혀 주었다.이내 흐느끼는 소리가 나자 숙청제가 고개를 들고 물었다. “누가 우는 것이냐? 무슨 억울한 일을 당한 것이냐?”진 황후가 몸을 돌려 날카로운 눈빛으로 사람들을
하지만, 궁으로 돌아온 후 그는 다신 일어나지 못했다. 단신의는 태후에게 몇 마디 말했는데 요 이틀에 돌아가실지 모르니 황제폐하께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빨리 만나게 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황제가 가장 먼저 보고 싶은 사람은 태후였다. “그 아이가 날 보자마자 가장 먼저 황조모에 대해 물었습니다. 모후께서 그를 아끼셨던 보람이 있군요.” 그러자 태후가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불쌍한 녀석, 평생 산에 숨어 살 수밖에 없게 되었구나. 그나저나 그의 다리는 정말 가망이 없는 것이냐?” “예, 희망은 없는 것 같습니다.” 숙청제의 입술에는 핏기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제가 떠나기 전에 그가 말했습니다. 의술을 배워서 나중에 제 병을 고쳐주겠다고요.” 그의 말을 들은 태후는 가슴이 쓰리고 아파왔다. “참으로 착한 아이구나.” 숙청제는 천장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렇지요. 참 착한 아이예요.” 그는 태후와 잠시 이야기를 나눈 후, 사여묵에게 태자를 데리고 들어오라고 했다. 숙청제는 병세가 엄중하지 않았을 때, 태자를 데리고 조정에 가고 상주문을 수정하고 그를 데리고 대신들과 논의를 했다. 숙청제는 그가 강제로 성장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다른 방법은 없었다. 생모를 일찍 잃은 데다 모가는 세력이 약해 조금의 도움도 되지 못했다. 수빈은 그를 친자식처럼 여겼고, 그를 보호하기 위해 죽음을 선택했다. 그러니 이 씨 가문만 남았는데 그들은 어떻게 해야 태자에게 좋은 건 지 모르는 것 같았다. 병상 앞에서 그는 태자를 사여묵에게 정중히 넘겼다. 하지만 이번엔 그에게 맹세하라고 하지 않고 바라보기만 했다. “내가 태자를 너에게 맡길 테니 잘 가르쳐 줘. 말을 듣지 않으면 숙부로서 혼낼 때는 혼 내고 때릴 일이 있으면 때려도 된다. 너희는 군신 사이가 아니라, 숙부와 조카니까.”사여묵이 눈물을 참고 말했다. “황형, 걱정하지 마십시오. 반드시 황형의 부탁을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태자.” 숙청제는 천천히 고개를 돌리고
숙청제는 신약산장에 잠시 자리를 잡았다. 이곳에는 없는 약이 없었지만 그의 병은 이미 약효가 들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하지만 이곳에 남아 있으니 그는 마음이 홀가분하고 마치 진정으로 무거운 짐을 벗어 놓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평범한 부친처럼 매일 아들과 함께했으니 더욱 좋았다.병문안을 올 수 있어, 송석석은 안으로 들어가 대황자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대황자는 계속 서우에게 새로운 친구가 생겼는지 물었다.그가 질투하는 줄 알았던 송석석은 서우에게 대황자 말고는 다른 친구가 없다고 답했다.그러자 대황자는 한참 동안 침묵하더니 이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전 새로운 친구가 생겼습니다… 길상이 바로 제 친구입니다. 서우도 새로운 친구가 생겨야 할 텐데요. 그가 걱정되긴 하지만 이번 생에는 아마 만날 수 없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그는 실망으로 가득해 보였다.그러자 송석석이 물었다.“왜 앞으로 서우를 못 볼 것이라고 생각하느냐?”“어른들이 허락하지 않을 테니까요. 어른들은 항상 고려할 것도 많고 두려운 것도 많으니까요.”송석석은 말했다.“앞으로 너희도 어른이 될 테니 그땐 너희 스스로 결정하였으면 한다.”그러자 그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서우는 저를 잊을 것이고, 길상도 언젠간 신약산장을 떠나겠지요. 하지만 전 평생 여길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그가 낙마하여 부상당한 후로부터 지금까지 그의 인생은 아주 큰 변화를 겪었다. 모든 변고가 갑작스럽게 일어나 그는 지금까지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다만 산장의 사람들이 걱정하지 않도록 위장한 것이었다.송석석은 그를 바라보았다. 예전엔 모두가 그가 철이 들기를 바랐지만 이젠 너무 철이 들어 마음이 아팠다.“너흰 이미 서로를 마음에 두었으니, 평생 잊지 않을 것이다. 서우든 길상이든 그들은 평생 너의 친구이다.”송석석은 어떻게 아이를 달래야 할지 몰랐지만, 단호하게 말을 하면 설득력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그러자 대황자가 그녀를 향해 웃으며 말
해가 지자 산속의 기온도 함께 떨어졌다. 숙청제는 산을 오를 때는 누군가에게 실렸지만 지금은 대황자를 업고 산장으로 돌아갔다. 대황자는 부황의 야윈 등에 엎드려 눈물을 멈추지 않았다. 이건 그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장면이었다. 그를 업어주기는커녕 부황이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도 그는 욕심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부황께서 왜 이렇게 말랐지? 등에 살이 하나도 없잖아.’ 송석석 등 사람들은 여전히 산문 밖에 있었고, 척귀도 들어가지 못했다. 방금 가마를 들고 들어간 사람들 마저 충성스러운 심복들 뿐이었기에, 남은 사람들은 당연히 대황자가 살아있다는 걸 알 수 없었다. 그들은 황제가 이번에 신약산장에 온 것은 치료를 하기 위한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숙청제는 그를 업고 자신의 마당으로 돌아갔다. 사실 이 산장은 별천지였다. 밖에서 보면 단지 하나의 장원일뿐인데 들어가 보면 장원은 모두 독립된 마당이었고, 마당과 마당 사이에는 꽃들이 가득 심어져 있어 좋은 향기로 가득했다. 그중, 대황자가 사는 곳은 평안각이라는 곳인데 작은 홀에 본채, 별채, 옆방, 그리고 곁방으로 이루어졌다. 집 안에 있는 책상과 의자는 대부분 대나무로 만들어져 아주 고급스러워 보였다. 작은 홀에는 두 개의 창문이 마주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중 하나가 바깥쪽 정원을 향하고 있었다. 창문 아리에는 의자가 하나 있는데, 그곳에 앉으면 바깥 경치를 볼 수 있었다. 숙청제는 그가 여기에서 보낸 날들을 모두 알고 싶어져 생각나는 대로 그에게 물었다. 하지만 상처를 치료하던 부분에 대해서는 감히 묻지 못했다. 대황자는 황조모, 서우, 둘째 동생, 셋째 동생, 그리고 누나들에 대해 물었다. 심지어 란이까지 물었는데 유독 황후에 대해서만 묻지 않았다. 숙청제는 그를 속일 생각이 없었다. 훗날 다른 사람에게 듣는 것보다 직접 말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오늘 만난 김에 모든 일을 그에게 털어놓았다. “어째서 모후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 것이냐?”그러자 대황자는 얇은 담요를 위로 잡아당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