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개의 비단 상자를 가지고 말을 탄 진복이 출발했다. 금군은 그가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았다. 그저 아가씨가 집을 나서지 않으면 상관하지 않았다. 황제가 출입을 금한 것은 그녀일 뿐, 다른 사람들과는 상관없었고, 거대한 국공부에서가 물건을 사들이는 일은 지극히 평범한 일이었다.회왕부(淮王府)에 도착한 진복은 진국공부 아가씨가 군주에게 혼수 선물을 보내 왔다고 말했다.문지기가 들어가 알리자 잠시 후 회왕비의 집사가 나와 인사를 했다.“진 집사, 안녕하시오. 왕비님께서 말씀하시길, 국공부 아가씨가 이혼 후 돌아와서 지금 돈이 필요할 때이고 군주는 혼수 선물이 필요하지 않으니, 그 마음만 받겠다고 하셨습니다. 집사님은 돌아가세요, 특별한 일이 없다면 오실 필요 없습니다.”멍하니 집사의 무심한 얼굴을 보던 진복은 마침내 깨달았다.회왕비는 아가씨가 이혼한 몸이어서, 그녀가 선물하는 것이 불길하다고 생각해 받지 않는 것이다.진복은 화가 났지만, 큰 가문에서 길러진 교양으로 예의를 지켰다. “그렇다면 저희 아가씨의 축복을 전해 주십시오. 안녕히 계십시오.”“안녕히 가십시오.” 집사는 냉담하게 말했다.진복은 몹시 화가 났다. 사실 아가씨가 손님을 받았던 지난 한 달 동안, 밖에서 무슨 소문이 도는지 그는 모두 알고 있었다.사람들은 모두 전북망의 첩을 받아들이지 못한 아가씨가 질투심은 물론 시어머니께도 공경하지 않아 장군부에서는 쫓아낼 수도 있었지만, 황제가 후부의 충성을 감안하여 이혼 조서를 내렸다고 말했다.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다 쳐도, 회왕비와 부인은 친자매였다. 부인이 살아 계셨을 때 두 자매는 자주 왕래하며 돈독한 사이였다. 회왕비가 군주를 낳을 때 난산으로 어려웠던 것도 부인이 단신의를 불러와 두 생명을 구해냈다.아가씨가 전씨 가문에서 모욕을 당했을 때도 이모는 나서서 도와주지도 않았고 이제 선물을 보내는 것도 천대하고 있다.아가씨가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울분이 터졌지만, 진복은 아가씨가 부탁한 중요한 일을 잊지 않았
장군부는 민씨를 밖에 두었다.장군부에 대해 양 마마는 한마디도 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진복의 어두운 얼굴을 보고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진복은 마부에게 말을 넘겨주고 왼쪽 다리 근육을 풀었다. 오늘 돌아다닌 곳이 많아, 다친 다리가 조금 부어올랐다.“회왕비는 아가씨가 군주에게 보낸 선물을 받지 않았습니다.” 진복은 다른 사람들이 듣지 않도록 조심스레 속삭였다.양 마마는 잠시 멈칫했다.“왕비와 우리 부인은 자매였고, 평소 돈독한 사이였는데... 알겠습니다.”비록 황제가 진국공부의 지위를 주었지만, 이혼 이후로 외부에서는 험담이 끊이질 않았다.게다가 부인도 이미 세상을 떠났으니, 이모와 조카의 정도 끊어진 셈이다.명문대가의 시선 속 아가씨는 아버지와 형제의 보호를 받았기에 황제의 특별한 관심을 받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아무도 아가씨를 존중하지 않았다.진복이 말했다. “그 선물은 별채의 옆방에 두었습니다. 오늘 밤에 떠나는 아가씨는 발견하지 못할 것이니 알리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맞습니다, 속상할 테니까 알리지 않겠습니다.” 양 마마가 고개를 끄덕였다.민씨가 왔다 간 일도 양 마마는 알리지 않았다. 오늘 밤에 멀리 떠날 예정이라 장군부의 잡다한 일로 그녀에게 영향 주고 싶지 않았다.진복은 단신의 약을 영롱각에 있는 송석석에게 건넸다. 다양한 약들과 고급 한약들이 들어 있었고 그중에는 단설환(丹雪丸)도 한 병 있었다. 이것은 심장병에 좋은 약으로 매우 비쌌다.“이건 비싼 약이다. 돈은 지불했느냐?” 송석석이 물었다.“그분이 받지 않으시며 그냥 가져가라고 했습니다.”송석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내가 돌아와서 갚도록 하겠다.”그녀는 또 다른 보따리를 열었다. 그 속에는 몇 가지 과자와 식량이 들어 있었다. 진복이 말했다. “눈이 많이 내릴 것 같습니다. 큰 눈으로 여관에 묵지 못할 때를 대비한 것입니다.”송석석은 조용히 말했다. “고맙다.”진복은 고개를 돌렸다.“아가씨, 짐은 다 챙기
이 훈련은 반 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그녀는 두 다리를 공중에 펼치고, 민첩하고 가벼운 몸을 빠르게 몇 번 회전시킨 후, 내력을 동원하여 창을 한 번 휘둘렀다. 그러자 돌덩이가 즉시 가루가 되었다.진복이 감탄하며 다가가서 보니, 모든 낙엽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예외는 없었다.진복은 기뻐하며 말했다. “아가씨의 실력은 장군들보다 더 나은 것 같습니다. 거의 국공부의 주군과 맞먹는 수준입니다.”손에 창을 든 송석석은 만족스러워했다.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 그녀는 얼굴에 홍조가 띠어 피어나는 붉은 매화 같았다. 한 달간의 고된 훈련 끝에 드디어 하산했을 때의 수준으로 돌아왔다. “이번에 출발할 때는 이 매화 창을 가지고 가야겠다.”지원군은 분명히 올 것이다. 다만 늦을 수도 있었기에 만종문의 사람들과 옛 친구들을 소집해 먼저 전장에 가서 북명왕과 함께 시간을 벌려는 것이었다.북명왕은 지금 남강에서 사국과 싸우고 있다. 사국의 움직임은 그도 알 것이다. 첩자가 사국 깊숙이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정보를 얻었다 해도 신속하게 전술을 조정하기 어려울 것이고 병력도 제한적이다.눈이 내리기 시작했고 가지에 소복이 쌓였다.오후를 지나 신시 하늘은 온통 하얗게 변했다.아름다운 설경이었지만, 송석석은 감상할 마음이 없었다. 그저 남강 전장으로 최대한 빨리 도착할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조랑말(棗紅馬)이 하루에 천 리를 갈 수 있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불가능하다. 하루에 오백 리는 가능할 수도 있었다.밤낮으로 달릴 수도 없었고 반드시 휴식 시간도 줘야 했다.보수적으로 잡아도 남강에 도착하는 데 다섯 날이 걸렸다. 말의 속도가 빠르면 나흘이면 도착할 수도 있다.그녀가 매화 창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자 설주가 뜨거운 차를 올려 주었다. 송석석은 몇 모금 마신 후 말했다. “보주에게 내 비둘기 우리를 가져오라고 하고 종이와 붓을 준비하여라.”만종문에 있는 8년 동안 천방지축 뛰어다니기만 했다. 그러다가 누군가에게 눌려 반격도 못하고 나서야 열심
이 첫눈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멈췄다.송석석은 여전히 순백의 옷을 입고, 흰 꽃을 꽂은 채로 있었다. 그녀의 옷은 거의 흰색이었고, 부모상을 치르기 위해 세 해 동안 화려한 옷을 입지 않았다.그녀는 여전히 장군부에서처럼 행동하며, 느긋하게 안으로 들어와 먼저 둘째 노부인께 절했다. “둘째 노부인께 인사드립니다.”그리고 민씨에게 평례(平禮)를 하며 고개를 약간 숙였다.자리에서 일어선 둘째 노부인은 그녀의 손을 잡고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얼굴에 혈색이 도는 것을 보니 한결 나아 보였고 장군부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아름다워진 것 같았다.그제야 마음을 놓인 그녀는 장군부에서의 날들이 떠올라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간 잘 지내고 있었느냐?”“저는 잘 지냈습니다.”송석석은 그녀를 부축하며 살짝 미소 지었다. “잘 계셨는지요?”“무탈하게 잘 지내고 있다.”자리에 앉은 둘째 노부인은 전북망과 이방에 결혼한 것에 전혀 개의치 않는 그녀를 보고 마음이 놓였다.“석아.”민씨가 인사했다. “사실은……”“뭘 그렇게 서두르느냐!”둘째 노부인이 그녀를 힐끔 보며 말했다. “네 시어미가 당장 죽지는 않으니, 나와 석석이 이야기를 좀 나눠야 겠다.”노부인의 병이 다시 도졌음을 송석석도 알아차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둘째 노부인과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다.둘째 노부인은 손을 앞으로 모았다. 파란색의 여의문양(如意紋樣) 외투는 작년 가을에 송석석이 그녀를 위해 만들어준 것이었고, 옆에 놓인 흰 여우 목도리도 마찬가지였다.“밖에서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든 신경 쓰지 말거라. 사람들은 잘 잊어버리니까, 해가 지나면 기억도 못 할 것이다. 그러니 그런 헛소문 때문에 마음을 상하지 말아라.”송석석이 말했다.“밖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저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그녀의 말에 둘째 노부인은 더욱 안심하며 더 이상 같은 주제를 다루지 않았다. 밖에 왜 금군이 있는지 묻지도 않았고, 그저 그녀의 일상과 취미에 대해 물었다.두 사람은 차 한 잔을 마실
초조해하는 민씨의 모습에 송석석은 미소를 지었다. “괜찮으니 말씀하세요.”그녀는 오늘 밤 진성을 떠날 예정이었기에, 일이 해결되지 않으면 내일이나 모레 그녀는 다시 올 것이다. 매일 부문 앞에서 송석석을 만나지 못해 소란을 피우는 일은 피하고자 했다.송석석은 민씨가 노부인에게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들을 낳지 못한 것 외에도 친정이 힘이 없었고, 지참금도 많지 않았으며, 귀족 집안의 여성들처럼 기개와 풍모도 없었다.민씨는 그녀를 괴롭힌 적도, 윗사람의 체면을 내세운 적도 없었기에, 그녀의 고충을 들어주기로 했다.민씨의 눈물은 끊어진 구슬처럼 계속 흘러내렸다. 그녀는 울먹이며 혼인식의 혼란했던 상황을 이야기했다. 그들은 도망간 손님과 불쾌하게 돌아간 병사들이 모두 그녀때문이라고 비난하고 있었다. 남편인 전북경도 마찬가지였다.첫날밤에 식탁을 뒤엎은 이방을 떠났던 전북망은 이 일을 알게 된 노부인의 설득에 다시 돌아갔다.“이 정도면 말도 하지 않겠다.”화가 난 민씨는 억울함을 호소했다.“오늘 아침에 손수건을 가지러 신혼 방에 들렀는데 피가 묻지 않은 것이다. 어머님은 그들이 싸워서 밤을 보내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이방은 진성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미 잠자리를 가졌다고 고백하며 그들과 함께 돌아온 장병들도 모두 알고 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어머님이 바로 기절하신 것이다.”옆에서 듣고 있던 양 마마는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이런 일들까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아가씨는 아직 그런 일을 경험하지 못했으니, 듣기 좋지 않습니다.”고고한 우리 아가씨께 어떻게 이런 무례한 말을 한단 말인가? 장군부가 지금은 몰락했지만, 노부인은 체면을 매우 중시하였다. 지참금을 탐낸 그녀는 여러 가지 핑계를 댔고 이혼한 후에도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아가씨를 나무랐다.밖에서 돌고 있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그녀가 퍼뜨린 것이고, 헛소문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거기에 살을 붙여 엉뚱한 루머가 되었다.양 마
민씨의 절망적인 눈빛을 바라보던 송석석은 당시 장군부에서 민씨를 내쫓으려 했던 일을 떠올렸다.그녀는 그것 때문에 잔뜩 겁먹은 것이다.그만 울음을 터뜨린 그녀는 급히 손수건으로 입을 가렸다.그리고 한참 후에야 말을 이었다.“제가 속이려는 게 아니고 어머님은 장군부가 지금과는 다르다고 생각하시며 이제 진성의 명문가에 들 수 있다고 여기는 눈치입니다. 제가 가문을 관리할 때, 어머님은 제가 큰며느리의 기품이 없다고 불평하면서 저를 들인 것을 후회한다고도 했습니다.”“저는 아가씨와 다릅니다. 거기서 쫓겨나면 친정에도 돌아갈 수 없고, 오히려 저를 꾸짖고 그로 인해 동생들과 조카들의 혼사에도 악영향을 줄 겁니다. 그래서 저는 쫓기더라도 장군부에서 죽어야 합니다. 절에도 갈 수 없는 몸이지요.”민씨의 친정에 대해 송석석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그녀의 아버지는 추밀원의 7품 편수로, 비록 높은 직책은 아니었지만, 학문을 중시하는 가문으로서 예의와 명성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만약 딸이 내쫓겼다는 것을 알면 민씨의 아버지는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노부인은 이제 장군부가 달라졌다고 생각했다. 결혼식이 엉망이었지만, 그저 한순간일 뿐, 전북망과 이방의 앞길에 지장이 없다고 생각했다. 장군부는 점점 더 높은 위치로 올라갈 것이며, 장남 전북경도 그 혜택을 받을 것이다. 하여 장군부에는 내외를 안정시킬 수 있는 종부가 필요했다.민씨는 그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가 집안에 들어왔을 때 노부인이 그녀에게 가문을 맡겼을 것이다.둘째 노부인은 민씨의 말을 듣고 입술을 다물었다. 그녀도 사실을 알고 있었다.그런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살아온 것은 그녀의 일생 최대의 오점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가문에도 훌륭한 인재가 없었고, 장군부는 단 하나였으며, 여러 해 동안 분가하지 않아 모든 수입이 공적으로 모였다. 작은 집이라도 살 여유도 없어 장군부를 떠날 수 없는 것이다.그래서 그녀는 아무도 보호할 수 없었다. 송석석도, 민씨도...잠시 생각하던
둘째 노부인과 민씨가 떠난 후에도 송석석은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 이미 해가 지고 있었고, 어두워지면 출발해야 했으므로 오늘은 자지 않기로 했다.민씨가 말한 전북망의 결혼식 이야기를 떠올리니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알고 보니, 이게 전북망이 좋아하는 진정성이었구나.하지만 이는 결국 그를 행복하게 하지 못했고, 장군부의 체면을 완전히 잃게 만들었다. 모든 손님이 떠난 결혼식...전례가 없는 일이었다.‘이방…’이 두 글자를 낮게 읊조리자 억누르려던 증오와 분노가 다시 솟구쳤다.만약 그녀가 공을 탐내지 않고 항복한 자들을 학살하지 않았다면, 후부의 모든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전에는, 그녀가 남편을 빼앗고 무시하고 모욕해도, 서경과 상국의 평화를 위해 전쟁에 나섰다는 점에서 여전히 존경했었다.하지만 이제 송석석은 이방이 미워 죽겠다.이방이 항복한 자들을 학살한 일에 대해 외할아버지가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황제는 모를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모든 보고서에 이 일이 언급되지 않았고 병부가 이와 관련된 보고서를 은폐하지 않았다는 보장도 없었다.이 문제는 더 조사해야 했지만, 남강으로 가는 일은 시급했다.깊은 밤, 야행복을 입고 긴 창을 든 그녀는 보주의 걱정스러운 눈빛을 뒤로하고 길을 떠났다.금군은 정문을 지키고 있었고, 이 시간에는 대부분 졸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송석석은 후문으로 나가 어둠 속에서 경공을 발휘하여 빠르게 떠났다.다음 날 아침, 그녀는 성 외곽의 별장에 나타났다. 정원으로 뛰어 들어가니, 적갈색 말이 정원 외곽에 묶여 있었다. 진복이 준비한 것이었고, 말에게 먹이도 준비해 두었다. 그녀는 먹이를 한 줌 집어 말에게 주었다.말을 쓰다듬으며 송석석은 조용히 말했다. “섬광, 이제 남강으로 출발해야 해. 아주 먼 길을 가야 하는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아. 힘들겠지만 잘 부탁할게.”섬광은 코로 그녀의 이마를 톡톡 건드리더니 계속 먹이를 먹었다. 그녀는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편당의
밤에는 여관에 투숙해서 섬광이와 그녀 모두 푹 잘 수 있었다. 외출할 때부터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기에, 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 세수하고, 얼굴에 검은 천을 두른 후 다시 출발했다.여정은 험난하고, 날도 추웠다. 얼굴에 검은 천을 두르고 있어도 바람에 거칠어 피부가 많이 거칠어졌다.밤에 여관에 투숙했을 때, 거울 속 원래 뽀얀 자신의 피부가 붉게 변하고 갈라질 것 같은 징조를 보이자, 차씨 기름을 꺼내어 얼굴에 발랐다.이는 예쁘게 보이기 위함이 아니었다. 정말로 갈라지면 아프기 때문이다.출발한 지 다섯째 날 아침, 그녀는 남강에 도착했다.그녀가 느낀 불안한 점은 관도에서 양곡을 운반하는 행렬을 전혀 볼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이는 북명왕이 승리를 확신하여 더 이상 양곡을 지속적으로 공급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을 의미했다.하지만 곧 큰 전쟁이 있을 것이다.남강에 도착해 알아본 결과, 이제 일리와 시몬만 남아 있었다.북명왕은 병법에 능해 이미 잃어버린 남강의 국토 90%를 회복했으며, 이 두 도시만 남아 있었기 때문에 양곡 운반 행렬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현재 북명왕의 군사는 모두 일리에 주둔해 있으며, 일리를 회복한 후 사국인을 시몬으로 몰아넣고, 계속 공격하여 몰아내면 남강의 전 지역이 상국의 영토가 될 것이다.그녀는 말을 타고 일리로 직행했다. 말은 이미 너무 지친 상태였지만 마지막으로 속도를 내도록 했다.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는 오늘 안에 북명왕을 만나야 했다.어둠이 깔린 뒤, 그녀는 전방의 전투 지역에 도착했다. 북명왕은 일리 성 밖에 병력을 주둔시키고 있었고, 아직 일리 성을 함락시키지는 못했다.남강에 다다르자, 주위는 온통 비참한 광경이었다. 전쟁의 참혹함이 가득했다.송석석은 이 땅을 사랑했지만,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왜냐하면 그녀의 부친과 오라버니들은 이 땅에서 희생되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지체할 시간이 없다.그녀는 진영으로 향하며, 도화창을 높이 들고 외쳤다. “송회안의 여식 송석석이, 북명군 주사령관과
양안은 승리가 확실해졌다는 것과 황제의 명령을 알고 있었기에 자신감이 생겨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장공주님,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자신의 나라에 대해 비하하는 발언은 옳지 않습니다. 저희는 두 가지 준비를 했습니다. 그들이 물러나기를 원하면 당연히 협상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만, 만약 그들이 물러나지 않는다면 결국 전쟁을 해야 할 것입니다. 북명왕비를 잡는 것 역시 이방이 선태자에게 했던 방식과 똑같은 것입니다. 만약 두 군이 전쟁을 벌이면 북명왕비는 성릉관 전장에서 포로로 나타날 것이고 소가는 그대로 물러날 것입니다. 이는 수란키 대장군이 선태자를 위해 체결했던 그 부끄러운 조약처럼 될 것입니다."장공주는 이를 듣고 격노했다. "어리석기 그지없소! 그때 수란키 대장군이 그렇게 한 이유는 이방이 우리나라의 태자를 잡았기 때문이오. 당시 황제의 병세가 위중하고 내란이 일어나고 있었으니 국본을 안정시키지 않으면 나라가 뒤집어질 수도 있었소. 그런데 북명왕비와 태자를 어떻게 비교될 수 있단 말이오? 나는 그대들이 너무 어리석다고 생각하오. 내 말이 틀렸소? 그대들은 송석석에 대해 알고 있소? 소가의 장군에 대해 알고 있소? 소가군에 대해서는 아냐는 말이오!"양안은 송석석이 대단하다는 말을 그다지 믿지 않았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송회안 대장군이고 그녀도 남강 전장에서 싸운 경험이 있지만, 결국 여성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정영수와 회왕의 사사들이 그들을 도와줄 테니 실패할 일은 없을 것이다."물론 알고 있습니다. 우리도 무작정 나선 것이 아닙니다. 철저히 준비한 계획이 있단 말입니다. 결론적으로 북명왕비는 반드시 우리 손에 들어올 것입니다. 가둬둘 장소도 이미 준비되어 있습니다. 우선 회왕부에 두었다가 기회가 오면 진성을 떠나도록 할 것입니다. 협상이 실패하면 우리는 안전하게 서경으로 돌아가면 되면 정식으로 전쟁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장공주는 차가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서경으로 돌아가면 전쟁을 선포한단 말이오? 그럼 우리
냉옥 장공주는 회동관에 돌아왔지만 수란석과 정영수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그녀의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으며 무언가 일이 틀어졌음을 직감했다.수란석은 그녀의 작은 외삼촌으로, 수가에서 가장 말썽을 일으키는 사람이었다.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지나치게 용감하고 호전적이며 성급하고 무모했다."양안을 불러라!" 그녀는 여관에게 명령했다. "당장!"양안은 내각 대학사이자 수란석의 처남이다. 두 사람은 상국에 오는 내내 함께 세밀히 논의했기에 양안은 그가 오늘 밤정영수와 함께 무엇을 하러 가는지 잘 알고 있었다. 양안은 방으로 돌아가 소식을 기다렸다.그는 이번 작전은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 철저히 준비된 계획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가 떠날 때 수란석이 이미 계획을 반쯤 성공시킨 것을 보고는 북명왕을 데려갔다.북명왕을 속여 데려가기만 하면 송석석을 잡는 것은 매우 쉬웠다. 이번 외출에는 단지 마차 한 대와 하녀 두 명, 그리고 북명왕 부부만 있었으므로, 북명왕이 수란석에 의해 데려가졌다면 송석석이 아무리 강한 무공을 가지고 있어도 정영수와 회왕이 보낸 사사들 앞에선 불리할 수밖에 없다.따라서, 이 작전은 확실히 성공할 수밖에 없었다."양학사, 장공주께서 부르십니다." 문밖에서 향병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양안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갔다. 이번 일은 냉옥 장공주에게 숨기려 했지만, 이미 실행에 옮겨졌고 성공할 확률이 매우 높았으므로 이제는 알려야 했다. 장공주는 전쟁을 원하지 않았고 그저 상국의 적절한 설명을 원했다. 또한, 전쟁이 있어야만 진짜 결과가 나온다고 생각하며 전쟁을 일으키지 않으면 어떻게 새 경계선을 정하고 사과와 배상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그는 향병을 따라 장공주가 머무는 별실로 향했다. 등불 아래의 장공주의 얼굴은 굳어 있었는데 오늘 밤 궁중 연회 때의 온화한 표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수란석과 정영수는 어디 간 게요? 지금 무엇을 몰래 꾸미고 있는 것이오?" 그가 예의를 차리
심지어 그는 송석석이 어떻게 피했는지조차 보지 못했다. 그저 긴 칼이 공중에서 빗나갔고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그대로 서 있었다. 마치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마차의 풍등이 어두운 빛을 발산하며 송석석의 얼굴을 비췄는데, 차가운 바람 속에서 서리가 내린 듯 차가워 보였다. 송석석이 그를 향해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미소는 순간적으로 그의 피부를 스쳐 지나가며 오싹한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 오싹함은 단지 기분 뿐만이 아니라 통증까지 전해지게 했다. 그가 반응하기도 전에 송석석의 채찍이 공중에서 그를 정확히 내려 찍어버렸다. 순간 채찍 끝이 그의 얼굴을 스쳐 지나가며 얼굴을 가리고 있던 검은 천이 떨어져 나갔다. 그는 몸을 돌려 공중으로 날아오르며 얼굴을 재빨리 가렸다.그는 벽 위로 올라가 몸을 돌렸는데, 그때 붉은 채찍은 마치 독사처럼 왼쪽 사사의 목을 감아 버렸다. 송석석은 힘을 주어 채찍을 당기며 그를 오른쪽으로 날려버리고는 몸을 한 바퀴 돌리며 그의 사사를 마차 앞으로 끌고갔다.곧 사사의 손에 들려 있던 무기는 손을 벗어났고 무기가 떨어지기 전 송석석은 발끝으로 그것을 날려 보냈다. 칼은 공중을 가르며 비행했고 그녀는 그 사사를 끌고 빠르게 공중으로 뛰어올라 칼을 향해 다리를 휘둘렀다. 그러자 그 칼은 또 다른 사사의 배꼽을 정확히 찔렀다.이 모든 일이 순식간에 일어난 탓에 정영수는 가까운 거리에서 이 장면을 직접 목격했지만 그 어떤 도움도 줄 수 없었다.그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진정으로 강한 것은 송석석이지, 자신들이 아니라는 사실을.그는 이를 악물고 칼을 휘두르며 채찍을 끊으려 했다. 그렇지 않으면 사사는 정말 죽게 될 것이다. 송석석은 채찍을 휘두르며 사람을 공중으로 던졌는데 그 속도는 정영수를 다시금 어지럽게 만들었다. 그는 방향을 급히 바꾸어 사사를 실수로라도 다치지 않게 하려고 했다.하지만 방향을 바꾼 순간 그의 큰 칼엔 피가 묻었고 사사의 머리는 그대로 떨어져 나갔다.송석
회왕비는 문밖에서 한참을 서 있다가 떠났다. 그녀는 왕야가 마치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 것 같아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게다가 회왕부에는 몇 명의 낯선 사람들이 왔는데 그들은 왕비인 그녀조차 안중에도 두지 않는 듯 마주쳐도 못 본 척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고요한 밤에 갑자기 말굽 소리가 들렸지만, 청석판 거리에는 아무도 다니지 않았다.진성의 밤은 동서성 및 강변 쪽에서만 번화했으며 그곳의 소음과 웃음소리가 남성까지 전해지지는 않았다.바로 그때 갑자기 말이 울부짖으며 멈추더니 공기 속에 이상한 떨림이 느껴졌다.몽동이는 채찍을 들고 허리에는 긴 칼을 찼다. 마차의 풍등은 먼 곳까지 비추지 못했고, 달이 구름 속에 숨어있는 탓에 주변은 어둠에 휩싸여 오싹할 정도로 음침했다.몽동이는 눈을 감고 공기 속의 변화를 귀 기울여 들으며 귀를 미세하게 움직였다.송석석도 채찍을 쥐고 있었는데 긴 채찍은 마치 붉은 뱀처럼 그녀의 발치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시만자는 검을 움켜잡으며, 검집을 살짝 튕기면 검이 쑥 빠져나오게 단단히 준비를 했다. 어둠 속에서 수십 명의 그림자가 조용히 내려앉았는데 발밑에는 먼지조차 닿지 않아 그들의 경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었다.몽동이는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전투력을 발휘했다. 그는 마치 천둥 같은 힘으로 채찍을 휘두르며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손에 쥐고 경공을 펼쳐 구름을 타듯 날아가면서 칼을 뽑아 그 사람을 향해 내리쳤다.암살자는 치명적인 일격을 피하기 위해 몸을 피했지만 긴 칼엔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피 냄새가 코를 찔러 암살자의 살육 본능을 자극했다.마차 안에서 두 사람은 창을 부수고 뛰쳐나왔다. 긴 채찍은 민첩하게 뱀처럼 휘어지더니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두 사람을 곧바로 밀어냈다.시만자는 보검을 뽑아 꽃처럼 휘두르고는, 송석석의 채찍을 밟고 그대로 공중으로 뛰어올라 능숙하게 방어막을 형성하며 암살자들을 단숨에 밖으로 밀어냈다.검은 옷과 가면을 쓴 정영수도 긴 칼을 들고 있었다. 그는 팔도장인 모든 무
해시중의 어가에는 마차 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몽동이는 앞에서 마차를 몰았는데 이제는 이 일에 꽤 능숙해진 것 같았다. 어쨌든 그는 이제 마차가 있는 사람이니 말이다. 이때 시만자가 송석석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오늘 정말 힘들었다며 푸념하기 시작했다. "너희는 안에서 맛있는 걸 먹고 마셨겠지만 우리는 밖에서 찬 바람이나 맞으며 기다렸다. 다행히 보주가 구운 오리와 과자를 준비해 주고 또 배려 깊게 차를 황피 물주머니에 담아 왔으니 말이지, 그렇지 않으면 지금 배고파서 쓰러져 버렸을 것이다."송석석이 웃으며 말했다."시만자 아씨를 굶게 두다니 정말 미안하구나. 일이 끝나면 내 너를 위해 잔치를 열어주겠다."시만자는 그제야 인상을 펴고 밝게 웃었다."역시 나를 가장 잘 아는 건 너밖에 없다. 내가 인생에서 가장 마음껏 쓸 수 있는 건 아마도 돈 뿐일 것이다."그녀는 주위 사람들에게 돈을 쓰는 걸 좋아했고 외부 사람들에게는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만약 동정심이 생기면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줄곧 아깝지 않게 돈을 썼다.송석석은 머리를 비스듬히 기울인 뒤 그녀의 머리와 맞대었다. 두 여인은 몽동이가 있으니 별문제 없을 것이라 믿어 외부 소음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회왕부.서재 안에는 어두운 불빛이 하나 켜져 있었다. 그 불빛은 그가 풍상에 쓸려온 얼굴을 비추고 있었는데 평소의 나약하고 소극적인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위험한 눈빛만 번쩍였다. 오늘 밤의 행동에서는 한 점의 실수도 용납될 수 없다.두 나라가 반드시 전쟁을 벌여야만 그들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남강 전쟁에서 그들이 이미 기회를 놓쳤기에 이번에는 절대 놓칠 수 없었다. 숙청제는 그들을 의심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자존심과 명예를 둘 다 취할 수 없었다. 아무리 반역자라고 하더라도 승자가 왕이 되는 법, 이후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지는 권력이 있는 자가 결정한다.과거 삼 형제는 명예를 너무 중시하여 그 좋은 기회를 놓쳤고 황자까지 희생시켰다.이제 성공적인 역
냉옥 장공주는 소란석과 정영수의 퇴장에 약간 불안한 마음을 느꼈다. 그들은 돌아왔을 때 서로 눈길을 주고받으며 무언가를 확인하는 듯한 모습이 보였지만 정영수에게 물을 수는 없었다. 궁중 연회에서 몇 번씩 정영수를 불러 내면 쉽게 눈에 띄기 마련이었다. 서경은 현재 내란이 일어나려 하고 냉옥 장공주는 이제 더이상의 충돌을 원하지 않는다. 이번에 공정한 해결을 요구하는 것도 삼황제의 황위를 안정시키고 백성들을 달래기 위해서였다.남강 전쟁에 나가 정의를 위해 싸웠을 때 이미 많은 군사들이 희생되었다. 게다가 사국에 전폭적으로 지원을 해주어 국고는 비어버렸기에 더는 민심을 잃는 전쟁은 감당할 수 없었다. 전쟁을 벌이려면 최소 5년은 더 기다려야 했다.궁거문고 연주가 울리고 무희들이 엄청난 기예를 선보이고 있었지만 모두 속마음을 숨긴 채 거짓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은 사람들을 몰래 살펴볼 뿐이었다. 연회가 끝났을 땐 이미 해시중으로 숙청제는 취기가 잔뜩 오른 상태였고 냉옥 장공주는 사절을 이끌고 퇴장 의례를 마쳤다. 술에 취한 숙청제는 궁인들의 부축을 받아 후궁으로 돌아갔다.오늘 밤의 연회는 모두 평화로웠고, 내일의 협상이 어떻게 진행될지, 어떻게 전쟁의 연료가 될지, 그가 직접 대면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사여묵의 사심이 마음에 들었다. 사여묵이야말로 진정 평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가 맘에 들었다. "대공무사"라며 나라와 백성을 위해 일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하도 위선적이라 그는 절대 믿지 않았다. 요구가 없는 사람이 더 두려운 법이다. 본성을 어긴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다.진정한 충신, 애국적인 순수한 신하가 있을 수 있긴 하다. 예를 들어 소 대장군은 정말 존경받을 만한 인물이다. 그는 말로만 하지 않고 실제로 평생을 걸어 행동으로 실천해 왔다. 하지만 사람 마음은 쉽게 변하는 법, 그는 이미 연주에 조사를 보냈는데, 현재까지도 연주에서 문제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심지어 옹현에도 사람을 보냈다. 옹현의 사온의 봉지로 만약
정영수는 이 방법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북명왕이 왕비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든 간에 이렇게 해서는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아무 소용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큰 위험을 동반할 수도 있었다."수 대인, 저는 여전히 이 방법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분명 우리의 소행임을 알아차릴 것입니다." 정영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뭐가 옳지 않다는 거냐?" 수란석의 눈빛에는 분노가 섞여 있었다. "우리를 의심하게 하는 것이 바로 내 목적이다. 만약 그가 전쟁을 원한다면 이것은 그에게 큰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는 협상 자체를 파괴하고 즉시 전쟁을 일으킬 것이다. 만약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면 그는 이 사건을 모른 척하고 비밀리에 사람을 보내 구출할 것이다. 그럼 우리가 그의 속셈을 알게 되지 않겠냐?""전쟁이 옳지 않다는 겁니다. 공주님께서 두 나라의 전쟁을 피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여인의 생각, 수란키와 똑같이 마음이 나약하구나." 수란석은 싸늘한 웃음을 지으며 주머니에서 손조를 꺼내 정영수에게 건넸다. "보거라. 이것이 바로 폐하의 진정한 뜻이다."등불 아래에서 정영수가 손조를 펼쳤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 손조가 진짜임을 확신했다. 그는 평소에도 황제 앞에서 시중을 들었기 때문에 황제의 필체를 잘 알고 있었다. 손조에는 엄격한 요구 사항이 담겨 있었는데, 상국이 이를 거부하면 즉시 상국을 떠나 전쟁을 선포할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정영수는 황제가 처음에는 전쟁을 원했으나 후에 장공주에게 설득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 만약 이 손조가 진짜라면... 정영수는 급하게 고개를 들었다. "그렇다면 수 대인은 북명왕을 시험하려는 것이 아니라 송석석을 납치하려는 것이군요."북명왕을 시험하는 것은 구실에 불과했다. 황제는 전쟁을 원했기에 송석석을 납치하여 그들 방식대로 갚으려는 것이다. 이는 예전에 이방이 태자를 납치하고 모욕해 성릉관에서 소가군을 물러나게 한 것과 같은 방법이었다
송석석은 그들의 대화를 모두 들었다. 그들은 전쟁을 피하려고 애쓰고 있지만 서경이 그들이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고 확신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특히 수란석에게는 송가와 소가만 전쟁을 원하지 않으며 북명왕은 오히려 군권을 되찾기 위해 전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야 했다. 송석석은 시선을 돌리며 냉옥 장공주의 유창한 상국 말에 귀 귀울였다. "본궁은 항상 왕비님을 뵙고 싶었습니다. 이번에 상국에 온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왕비님을 뵙기 위함입니다."그녀는 방금전에도 이렇게 말했었지만 이번에는 표정이 진지하고 진심에서 우러나 보였으며 아까 같은 가식적인 느낌이 들지 않았다. 송석석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공주님을 뵙게 되어 저 또한 영광입니다."가까이에서 보니 냉옥 장공주는 어제 성문에서 봤을 때보다 피로해 보이지 않았다. 어젯밤 충분한 휴식을 취한 모양이었다. 그녀의 눈 밑의 다크서클은 얇은 화장 덕분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전체적인 상태는 실제 나이보다 몇 년 더 많이 먹은 듯 지쳐보였다. 송석석은 그녀가 정권을 보좌했던 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서경은 내외의 위협을 겪었는데, 그들이 그동안 겪은 고통은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할 정도로 힘들었다고 했다. 내일 그녀와 신경전이 벌어질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녀에게 존경심을 느꼈다.서로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궁중 연회가 시작되었다.모두 자리에 앉아 식사를 준비했다. 서경의 사절단은 여전히 오른쪽에 앉아 있었고, 사여묵과 송석석은 나란히 앉았다. 태후는 음식을 같이 먹지 않았고 냉옥 장공주와 잠시 대면하기 위해 나왔다. 이는 사절단을 중시하는 태도였다.황제와 황후가 자리를 지키고 여러 왕야와 권신들도 함께 했다. 물론 회왕은 참석하지 않았고 회왕비도 오지 않았다. 연왕은 측비 김씨와 함께 자리에 앉았는데, 그는 이런 자리에 절대로 시민주를 데리고 오지 않는다. 아무리 시민주가 정비라도 말이다.연회 중 술잔이 오가며 두 나라는 우호적인 관계인 것처럼 보
북명왕이 자기를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자 수란석은 속으로 화가 치밀어 오르며 더는 참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그동안 성릉관의 일을 명확히 밝혀야겠다는 마음이 굴뚝같았다.두 눈에서 불꽃이 튀고 있을 때 사여묵이 물었다. "수 대장군이 부상을 입었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다 나으셨습니까?"수란석은 눈빛을 거두며 대답했다. "이리 신경 써 주시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형님께선 이제 큰 이상이 없습니다.""이번에 수 대장군과 함께 오실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수란석의 눈빛은 차갑고 냉랭했다. "형님께선비록 큰 이상은 없지만 과거에 중상을 입으셨기에 장거리 이동은 부적합합니다."사여묵은 수란키가 갇혔다는 사실을 모르는 척 말했다. "우리 소 대장군도 두 번이나 화살을 맞았고 게다가 이제 막 칠순을 넘긴 고령이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국의 일을 처리하러 성릉관에서 진성으로 돌아오셨습니다."수란석은 미간을 찌푸렸다. ‘저 말의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오늘은 분명 저런 얘기를 안 하기로 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나에게도 할 말이 아주 많은데.’하지만 수란석에게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듯 사여묵은 또 다른 화제로 말을 돌렸다. "아참, 듣자니 수 상서께서는 친히 검을 만드는 걸 좋아하신다 들었습니다. 최근에는 어떤 신검을 만드셨는지 보여주실 수 있을까요?"주제는 이렇게 자연스럽게 바뀌었고 수란석은 화가 난듯한 목소리로 눈을 크게 뜨며 대답했다. "군무가 바빠서 이제 더는 검을 만들지 않습니다. 왕야께서 서경의 무기가 보고 싶으시다면 기회는 얼마든지 있습니다."전장에 나가면 충분히 볼 수 있었기에 사여묵은 그를 가볍게 바라보며 한 마디 던졌다. "좋습니다."목소리는 매우 낮았지만, 수란석의 귀에는 아주 도발적으로 들렸다. 마치 그가 전쟁을 원한다는 것 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내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왕이 말하길 북명왕은 두 나라가 전쟁을 계속하는 걸 가장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두 나라가 전쟁을 하면 소가는 분명 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