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세안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예단을 모두 진국공부로 옮겼다. 송석석이 감사 인사를 하며 모두를 안으로 들어와 차를 마시라고 청했다.그러나 송세안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차는 다음에 마시겠다. 지금은 다른 중요한 일이 있어서. 아, 그리고 전북망이 너에게 후회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하더구나.”송석석은 시선을 떨구었다. “그에게 전할 말은 없습니다. 숙부님께서 바쁘시니 강제로 붙잡지는 않겠습니다.”송세안은 그녀의 대답에 매우 만족했다. 송씨 가무은 모든 것을 잃어도 이런 기개만큼은 잃어서는 안 되었다. 그는 사람들을 이끌고 떠났다. 차를 마시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진국공부가 아직 정리되지 않았고, 새로 온 사람들이 아직 익숙치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 혼자라면 괜찮았겠지만, 다른 집안 자제들도 데리고 있었다. 사람이 많으면 말이 많은 법.자칫 부족한 점이 드러나면 좋지 않은 소문이 퍼질 수 있었다. 지금 진국공부는 사소한 루머도 견딜 수 없었다.영롱각으로 돌아온 송석석은 서신을 보내 사문에 빨리 전달하게 했다. 내용은 서경과 상국의 성릉관에서 치른 전투에 대해 조사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짐작하는 부분이 있었지만 확신할 수 없어 조사하고 증거를 얻어야 했다.외조부 소 대장군과 셋째 삼촌, 일곱째 삼촌은 성릉관(成凌關)을 지키고 있었다. 작년 말, 성릉관은 남강 전장을 지원하기 위해 10만 명의 병력을 빌려주었고, 그로 인해 서경과 성릉관이 전투를 벌였을 때 외조부는 조정에 지원군을 요청해야 했다. 이때 전북망과 이방은 지원군으로 갔던 것이다.그러나 이 전투의 실제 상황이 어땠는지 그녀는 알지 못했다. 외조부와 삼촌들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녀의 의심이 사실이라면 외조부는 원수로서 큰 죄를 짓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그 후 한 달 동안, 송석석은 문을 닫고 손님을 만나지 않았다. 별로 찾아오는 이도 없었다. 송씨 가문은 중요한 일이 아니면 그녀를 방해하지 않았다. 집 안은 거의 정리되었고, 그녀를 시중드는 몇 명의 하녀
문제는 아무도 그녀에게 병사들이 올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의 머릿수는 백여 명이나 되었고 많은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에, 청첩장을 받고 온 손님들이 앉을 자리가 없었다. 이들은 모두 체면을 중시하는 문무 관리들이며, 조정의 고위 인사들이었다. 이들과 관계를 잘 유지하면 전북망이 관직 생활에 큰 도움이 될 텐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모두 매서운 바람에 떨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정말로 안타까울 뿐이었다.노부인은 급히 민씨에게 달려가 빨리 해결책을 찾으라고 했다. 당황한 민씨도 어쩔 줄을 몰라 했다.아무도 그녀에게 병사들이 올 것이라고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손님 명단에 따라 자리를 배치했었다.매우 당황한 손님들은 그저 막무가내로 와서 자리를 차지하고 먹고 마시는 병사들을 보며 어리둥절해했다.게다가 신부와 장난치며 웃고 떠드는 모습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그들 중에는 황제의 체면을 보고 온 명문가의 귀족들도 이런 광경은 처음이다.비록 명문가는 아니지만 여러 세대에 걸쳐 내려온 가문인데 황제가 주관하는 결혼식에서 이런 혼란을 가져온 장군부의 처사가 이해되지 않았다.처음에는 주인집의 안내를 기다리며 서 있었지만, 아무도 자리를 마련해주지 않자, 상황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누구도 아무 말 않고, 전북망에게 조용히 다가가 집에 급한 일이 있어 떠난다고만 했다. 전북망은 완전히 당황했다. 그도 병사들이 올 줄은 전혀 몰랐다. 손님들이 가족과 함께 떠나는 것을 보며 그는 마치 뺨을 한 대씩 맞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너무 부끄러웠고 화가 치밀기 시작했다.그는 아직 자리에 앉아 있는 손님들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이방을 끌어당겼다. “나랑 얘기 좀 해야겠소.”이방은 일어서며 병사들에게 웃으며 말했다. “먼저 마시고들 있어. 금방 돌아올게.”“장군님이 무지 급했나 봅니다? 하하하!”“장군님, 빨리 끊내야 합니다. 이제 곧 술도 따라야 하잖습니까”“하하하, 맞습니다. 부대 오두막이 아니라는 것만 명심하십시오.”이런 노
이방은 그의 비난이 전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며 냉소했다. “오늘 막 시집온 날인데 이렇게 큰 소리로 나를 꾸짖다니, 앞으로는 어떨지 겁이 납니다. 그리고 이 병사들도 당신과 함께 생사를 함께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연회에 초대한 것을 미리 말하지 않은 잘못이긴 하지만, 이렇게 큰 경사를 치르면서 여분의 자리도 준비하지 않는 가문이 대체 어디 있단 말입니까? 그들이 진영을 이탈했다는 것은 당신이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유 장군은 그렇게 비합리적인 사람이 아니니까요.”이방이 기세를 올리자, 전북망은 약해졌다. 결혼식 날 그녀와 불화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던 그는 그저 재차 확인할 뿐이었다.“그럼, 그들이 진영을 떠난 것은 유장군의 허락을 받은 거요?”이방은 유 장군에게 묻지 않았고 명령을 내려 반드시 참석하게 했다. 유 장군은 이야기가 잘 통하는 사람이라 그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그래서 그녀는 자연스럽게 이 문제를 건너뛰었다. “이건 준비가 부족한 것입니다. 혼인식을 크게 하는 가문이 여분의 자리도 준비하지 않다니요? 저는 이 혼인식을 누가 준비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체면을 구기게 하고, 어떻게 저를 탓할 수 있는 지요?”전북망은 조금 자신이 없어졌다. 일반적인 대가족에서 경사를 치를 때, 초대받은 손님들 외에도 이웃들에게 음식을 돌린다고 알고 있었다. 만약 어머니와 형수가 외부에 음식을 돌렸다면 병사들이 왔을 때 최소한 앉을 자리가 있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손님의 자리를 빼앗지 않았을 것이다.그는 분노를 큰형수 민씨에게 돌렸다. 결혼식의 모든 일은 그녀가 준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굴이 붉어진 이방이 조금 전 병사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친밀하게 행동하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술을 그만 마시고 방으로 돌아가오.”손님들이 모두 떠난 것을 본 이방은 이제 병사들과 함께 있어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그녀의 특별함을 알아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손님들은 모두 떠나고, 무례한 병사들만 남아 노부인은 화가 나 심장병이 도질 뻔했다. 장군부의 다른 사람들도 당혹스러워하며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이렇게 큰 경사가 이런 식으로 치러진 적은 없었고, 더군다나 황제가 주선한 결혼식이 이 모양이 될 줄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이 소식이 퍼지면 장군부는 경성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 분명했다.민씨를 찾아간 전북망은 더 이상 분노를 억제할 수 없었다. 그는 탁자를 내리치며 말했다. “형수, 만약 내 혼인식을 제대로 준비하고 싶지 않았다면, 미리 말씀해 주시지 그러셨습니까? 이제 혼인식은 웃음거리가 되었고, 손님들이 모조리 떠났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조정에서 관직 생활을 하란 겁니까?”민씨는 억울함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사람 수대로 준비했을 뿐인데, 갑자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올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게 제 잘못입니까? 그리고 원래 집안을 관리하던 사람은 제가 아니었습니다. 예전에는 모든 경사나 다과 모임을 송석석이 준비했지요. 저도 이런 일은 처음인지라 송석석이 하던대로 해봤으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올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그 이 얘기는 하지 마세요!”전북망은 혼란스러웠다. “이전에는 이런 일을 책임지지 않았다고 해도 혼인 같은 큰 잔치에서는 여분의 자리를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저도 두 상정도는 여분으로 남겨놓았습니다.”민씨는 남편 전북경(戰北卿)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못 미더우면 큰형에게 물어보세요. 큰형이 두 상을 더 준비하면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부른 손님들이 모두 부유하고 귀한 사람들이라 잔치상은 제일 좋은 식자재들로 준비했고 그중 6가지는 산해진미…”말하자면, 손에 쥔 돈이 한정되어 있었다는 것이다.전북경은 아내가 동생에게 질책받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말했다. “형수를 그렇게 몰아세울 거 없다. 이 혼인식은 이미 충분히 성대하게 치러졌다. 갑자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지 않았더라면 아무 문제도 없었을 일이다.”전북망은 말했다. “그러나 여분
잠시 침묵하던 그는 방을 나서며 하인에게 청소하라고 명령했다. 이 여자는 그가 공으로 얻은 여자였다. 오늘의 결혼식은 엉망이었고 누구의 잘못이든지 간에 그녀는 충분히 서운했을 것이다. 그는 참기로 했다.그는 후회하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았다. 그는 자신이 아니라 송석석이 후회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송석석이 자신과 이방의 결혼식이 이렇게 엉망으로 치러졌다는 것을 알게 되면, 분명히 속으로 비웃을 것 같았다.같은 시각, 진국공부.무술 훈련을 하고 땀을 흘린 송석석은 뜨거운 물로 목욕을 하고 보주에게 복숭아꽃 술 한 병 가져오라고 했다. 그녀는 홀로 술을 마셨다. 한 달 동안, 그녀는 거의 이와 같이 지냈다. 낮에는 책을 읽고, 밤에는 훈련을 했다. 장군부에서 1년 동안 결혼 생활을 하던 그녀는 한 번도 무술을 연습하지 못했다. 실력이 녹슬지는 않았지만, 몇몇 기술은 예전과 같지 않았다.그녀는 예전의 실력을 되찾아야 했다. 그녀는 오늘이 전북망과 이방의 결혼식 날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황마마와 양마마는 하인들을 엄격하게 단속해 장군부와 관련된 일은 일절 논의하지 못하게 했다.술에 조금 취했을 때, 보주가 문을 열고 들어와 손에 든 쪽지를 건넸다.“아가씨, 소식이 왔습니다.”송석석은 술잔과 병법서를 내려놓고 일어나서 쪽지를 받아 펼쳐 보았다. 내용을 읽고 난 그녀는 얼굴이 갑자기 굳어졌다.“아가씨, 무슨 일입니까?”보주는 급히 물었다.송석석은 의자에 앉아 오랫동안 멍하니 있었다. “보주, 소주 한 병을 가져와라.”보주는 놀라며 말했다. “아가씨,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보주는 항상 그녀의 곁을 지켰다. 본가에서 사문(師門)으로, 사문에서 진성으로, 장군부로 시집가서 지금까지, 그녀가 술을 마신 것은 단 두 번이었다.첫 번째는 만종문에서 돌아왔을 때, 어르신과 장군들이 모두 남강 전장에서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였고 두 번째는 후부가 처참하게 당했을 때였다.큰일이 발생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녀가 소주를 마시겠
그녀는 외조부가 보내온 전투 보고서를 볼 수 없었다. 그 보고서는 먼저 병부로 갔고 그들이 사본을 작성한 후 원본을 황제에게 제출했을 것이다. 따라서 병부에는 외조부가 보낸 전투 보고서와 승전 보고서가 있을 것이다. 그녀는 병부에 몰래 들어가야 했다.병부에는 밤에 사람이 거의 없지만, 육부 관청(六部衙門)은 천보가(千步街)양쪽에 위치해 있고, 황궁과 인접해 있었다. 금군은 천보가를 순찰하지 않지만, 순방영(巡防營)의 사람들이 그쪽을 순찰할 것이다. 하지만 전투 보고서와 외조부가 제출한 전후 보고서를 반드시 봐야 했다. 외조부가 이방의 공을 인정했기에 병부도 인정한 것이 분명했다.서경 사람들은 반드시 복수한다. 이방이 항복한 마을을 학살했기 때문에 어떤 이유로 항복했든 쉽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가장 큰 가능성은 그들이 사국과 동맹을 맺고 남강 전장에 나타나는 것이다.그녀는 지도를 찾아보았다. 서경 사람들이 상국을 거치지 않고 남강 전장에 나타나려면 사국에 먼저 도착한 후 다시 남강으로 가야 한다. 이 과정은 약 석 달이 걸린다. 현재 남강을 반드시 차지하려는 사국은 북명왕(北冥王)이 그곳을 지키고 있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전투는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서경 사람들이 합류하면 북명왕은 패배할 것이다. 북명왕은 이 변수를 전혀 알지 못해 미리 대비할 방법이 없다. 미리 알더라도 지원군이 없으면 역시 패배할 수밖에 없다.서경 사람들은 복수를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이다. 이 점은 그들이 경성에 있는 모든 첩자를 동원해 후부를 몰살시킨 것으로 알 수 있다.남강 전투는 이미 너무 오래 끌었다. 병사들은 지치고, 군사도 부족해 북명왕의 상황은 매우 어려워졌다. 만약 그녀의 추측이 맞다면, 조정은 즉시 남강으로 지원군을 보내야 한다. 진성이나 회주 위소(淮州衛所)에서 남강으로 병력을 보내려면 최소 한 달, 심지어 더 오래 걸릴 것이다. 더는 지체할 수 없다.하지만 서경이 사국으로 병력을 이동하고 있다는 증거가 없으니 큰 오라버니의 소식을 기다릴
별이 빛나는 밤, 송석석은 병부 문서 방에 무사히 잠입했다.힘들게 찾을 필요도 없이, 성릉관 전투의 모든 당보는 선반의 왼쪽 상단에 있었다. 그녀는 가지고 온 야명주(夜明珠)를 가볍게 천으로 감싸 빛을 가리고, 구석에 숨어 하나씩 읽었다. 그녀는 온몸이 얼어붙었고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렀다.전북망과 이방은 지원군으로 갔다. 성릉관에 도착한 후 그들은 전투에 참여했으나, 전장 경험이 많지 않았던 그들을 구하던 중 셋째 삼촌이 팔 한쪽을 잃었다. 일곱째 삼촌은 지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이미 전사했다. 그녀의 기억 속에서 의기양양했던 소년은 전장에서 희생되었다. 외할아버지도 지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이미 화살에 맞아 부상을 입었기 때문에, 마지막 전투는 거의 전북망이 주도했다.마지막에 대승리를 거둔 것은 전북망과 이방이었다. 그들은 병력을 이끌고 서경의 녹분성에 쳐들어간 후, 전북망은 서경의 군수창과 식량을 불태웠고, 이방은 병사 몇 명과 일부 병사를 포로로 잡았다. 이 소장들이 포로가 되면서 서경은 항복을 선언했고, 녹분성(鹿奔兒城)에서 조약을 체결했다. 조약 체결 후 이방은 부대를 이끌고 성릉관으로 돌아와서야 포로들을 풀어주었다.당보에는 마을을 학살하고 항복한 병사를 죽였다는 내용이 전혀 적혀 있지 않았다. 외할아버지가 숨겼거나, 전혀 몰랐을 것이다. 그가 알고 있었든 아니든, 사실이 밝혀지면 주장으로서 그는 반드시 처벌받을 것이다.송석석은 당보(塘報)와 상소(奏本)를 제자리에 돌려놓고 병부를 떠났다.영롱각으로 돌아오니, 보주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녀가 야행복을 입고 돌아오는 것을 본 보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쪽지를 건넸다. “이건 사제분의 전서구가 가져온 것입니다.”즉시 받아 펼쳐본 송석석은 숨이 멎을 뻔했다. 그녀의 추측이 맞았다.언니는 서경의 30만 병력이 이미 사국으로 통하는 길을 따라 남강 전장으로 향하고 있으며, 식량을 가득 지녔다고 말했다.사국과 서경이 정말 동맹을 맺었거나, 아니면 복수 하기 위해 그리고 남강을
서재.숙청제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송석석을 바라보았다.그녀는 흰색의 허리띠를 한 옷을 입고, 파란색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머리는 지난번 궁에 들어왔을 때의 부인 머리 모양이 아니라, 높은 포니테일로 묶고 흰색 비단 끈으로 단단히 묶었다.그녀의 얼굴은 창백했고, 눈가에 약간 붉은 기운이 돌았으며, 눈 밑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제대로 눈을 붙이지 못한 듯하다.미세하게 굽어진 그녀의 속눈썹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그 모습은 눈물을 머금은 배꽃처럼 아름다웠지만, 측은한 느낌이 아니라 오히려 굳건함이 담겨 있었다.“신녀(臣女)가 폐하께 문안드리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쉰 소리였다. 어젯밤 보주가 떠난 후, 그녀는 이불속에서 오랫동안 흐느껴 울었다.“울었느냐?” 눈살을 찌푸린 숙청제는 잘생긴 얼굴에 불쾌함을 드러냈다.“전북망과 이방의 혼례 때문이더냐?”송석석이 고개를 저었다.그녀가 대답하려 했으나, 숙청제가 계속 말을 이었다. “이혼 조서(旨意)는 네가 궁에 들어와 청한 것이다. 이미 이혼했으니, 각자의 길을 가는 것인데, 어찌하여 옛일에 집착하는가? 만약 잊지 못한다면 처음부터 나에게 이혼 조서를 청하지 말았어야 했다.”온화하게 하게 들리는 목소리였지만 짜증이 한가득 섞여 있었다.송석석은 황제가 말을 끊지 않도록 빠르게 말했다. “신녀가 울었던 것은 전북망 때문이 아니옵니다. 이미 이혼했으니 감정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신녀가 슬픈 이유는 사저의 서신을 받고 신녀의 칠촌이 희생되었고, 숙부님이 한 팔을 잃었으며, 외조부가 화살에 맞아 아직 완쾌되지 못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옵니다.”병부에 잠입해 당보를 훔쳐본 것은 당연히 말하지 않았다.순간 멈칫하던 숙청제는 천천히 한숨을 쉬었다. “네 가족이 반년 전에 몰살당했기 때문에 이 일을 너에게 숨겼다. 네 칠촌은 나라를 위해 희생했으니, 그 자는 상국의 영웅이다. 나는 이미 그를 영웅 신장(神將)으로 추서하였으니 너무 슬퍼하지 말고 몸을 돌보거라.”눈에는 눈물
사실 이런 자리에서는 모두 입맛이 그다지 좋지 않기 마련인지라, 많은 음식들이 한 입 먹고 나면 다시 치워지곤 한다.하지만 북당의 사람들은 정말 음식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떤 요리가 나와도 모두 다 먹어버렸으며, 가득 채운 술잔도 순식간에 비웠다. 그들을 시중드는 궁인들도 꽤 힘들었을 것이었다.시만자는 그들이 춘만루에서 먹었던 그 한 끼를 떠올렸다. 그때도 남은 음식이 하나도 없이 모든 것이 비워졌었다.그녀는 송석석에게 무언가 말을 건네고 싶었다. 하지만 식사 소리 외에는 아무 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기에 말을 꺼내기 어려웠다.그러나 그들은 눈짓만으로도 서로가 하고자 하는 말의 의미를 알아차렸다.시만자는 북당 사람들이 이곳에 등장한 것이 협상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했고, 송석석도 그렇게 생각했다.하지만 그녀는 그들이 중재자로 온 것인지, 아니면 서경을 돕기 위해 온 것인지 확실하게 알 수 없었다. 만약 중재자라면 협상 또한 오래 걸리지 않고 조약을 체결할 수 있을 테니 더 좋을 것이었다.하지만 만약 서경을 돕기 위해 온 것이라면 협상은 공방전이 될 것이 분명했다. 북당이 그들의 방패가 된다면 상국이 협상에서 어려움을 겪을 것이 틀림 없으니 말이다.이덕회와 홍려사경 등 상국의 사절단들은 상황을 어느 정도 눈치챈 듯 했다. 그래서 그들은 처음의 그 기쁨을 잃은 대신 마음속으로 여러 가지를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눈앞의 음식도 별로 먹고 싶지 않은 듯했지만, 모두가 식사를 하고 있었기에 그들도 어쩔 수 없이 천천히 먹었다.이 궁중 연회는 그들이 참석했던 연회 중 가장 이상한 연회였을 것이다. 마치 폭풍이 다가오는 듯한 무서운 고요함이 느껴졌다.궁중에서 준비한 요리는 총 32가지였다. 그러나 각 요리의 양은 매우 적었으며, 궁인들은 음식을 하나씩 들고 들어와서는 다시 하나씩 치워갔다.누군가 술잔을 들고 싶어했지만, 역시 원신제와 마찬가지로 한 번 쓱 훑어본 후, 술잔을 비우고 다시 내려놓고는 식사를 계속했다.마침내 32가지 요리가 모두 올라갔
다음날, 궁중 연회는 신시에 시작되었고, 여전히 수란키가 직접 그들을 맞아 궁으로 안내해주었다.예상했던 대로 즉위식은 이미 끝난 상태였고, 이번 연회의 주요 목적은 국경선의 협상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궁에 들어간 후에도 다른 나라의 사절단을 보지 못했다.궁 안은 황실의 측근과 문무 백관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들은 상국의 사절단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고, 친근한 분위기도 없었다.이런 자리에서는 역관의 도움이 필요했기에 대화의 주제가 그리 넓지 않아, 서로 간단한 인사 정도만 나눌 뿐이었다.다른 나라의 사절단이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입석할 때 원신제가 상국의 사절단에게 말했다."오늘 북당에서 귀빈들이 오십니다. 곧 도착할 것인데, 여러분이 그들과 바로 친해질 것이라 믿습니다."이덕회는 즉시 흥분하며 말했다. "북당의 귀빈이라 하셨습니까? 어떤 분이 오시는지요?"그가 흥분하는 것은 당연했다. 왕이장이 가져온 임양운의 육안총과 포차는 모두 북당에서 개량된 것이었고, 임양운 선생이 북당에서 배운 적이 있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상국의 병부상서로서 그는 정말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었다.북당은 상국이 항상 배우고자 했던 본보기였다. 그들의 첨단 무기와 치국책은 상국보다 훨씬 진보적이었다.물론 국가의 상황이 다르기에 모든 것을 배울 수는 없을 테지만, 대화를 깊이 나누면 분명히 얻을 것이 있을 것이었다.원신제는 그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도착하면 알게 될 것입니다."연회는 지루하고 피곤했지만, 북당의 귀빈이 온다면 그 이야기는 달라진다.모두가 기대하고 있을 때, 한 외침이 들렸다.“북당 안풍친왕과 왕비께서 도착하셨습니다!"이덕회는 놀라서 입을 막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의 눈에는 기쁨이 넘치고 있었다.송석석도 사부로부터 안풍친왕의 호를 들어본 적이 있었다. 사부는 그를 매우 존경한다고 했다. 생각치도 못하게 오늘 그를 만날 수 있으니 그녀도 말할 수 없이 기뻤다.반면, 만두와 몽동이 그들은 비교적 담담했
원신제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씁쓸한 게 한 가지 더 있네. 지금까지 짐은 장공주의 신분으로 여인에게도 과거 시험을 볼 자격이 있어야 한다고 높이 외쳤지. 하지만 황제가 된 지금, 어쩔 수 없이 각 세력들의 이익을 고려해줘야 하고 그자들이 짐에 대한 적대심과 경계를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네. 짐은 이제 고려한 일이 더 많아졌어. 가끔은 속에 천불이 나서 반대파 세력들의 가슴에 칼을 꽂고 싶기도 하네.”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송석석이 대꾸했다.“사실 한 나라의 황제나 대신들은 남녀를 막론하고 결국 최종 목적은 같지 않겠습니까? 폐하께서도 그렇듯 다들 나라의 안정과 백성들의 평안을 바라고 있는 겁니다. 나라에 영원히 전란이 일어나지 않고 창성해야 폐하께서 원하시는 개혁을 진행하셨을 때 반대의 목소리가 잦아드는 것입니다. 그러니 폐하, 현재 가장 중요한 건 폐하의 자리부터 굳건히 지키시는 겁니다.”대놓고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원신제는 송석석의 말뜻을 확실하게 알아들었다. 현재까지 나라가 혼란에 빠져 있고 각 세력들의 제지도 심하기에 이 국면을 해결하는 것도 충분히 힘든 일이다.황제의 자리도 흔들리고 있는 지금, 원신제가 개혁까지 고집하려는 건 더욱 위험한 일이었기에, 미래가 불안정할 수밖에 없었다.시만자 또한 송석석의 말에 동의하는 바였다.“사실 한 가지 일을 처리하는 데에 방법이 한 가지밖에 없는 건 아닙니다. 강경하게 상대방과 맞서 싸우는 것도 방법이지만 이는 가장 현명하지 못한 하책입니다. 한 사람의 성격도 바꾸기 쉽지 않은데 천 년이나 넘게 지속된 규정을 바꾸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폐하께서 관념의 씨앗을 심으시면 언젠가 누군가가 폐하께서 남긴 발자국을 따라 한 걸음씩 나아갈 것입니다.”잠시 머뭇거리던 시만자는 이내 다시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저와 석석도 매산에서 무술을 공부할 때 그랬습니다. 다들 저희를 비웃고 하찮게 여겼지만 저희는 결국 실력으로 그자들을 한 명씩 쓰러트렸습니다. 구호만 외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실력이
서경의 황궁은 금빛으로 반짝였으며 기세가 어마어마했다. 어둠이 깃든 고요한 밤에는 기 장엄함이 더욱 돋보였다.첫 번째 궁문을 들어서고 나서도 마차는 궁 안을 자유롭게 누빌 수 있었다.궁 안 곳곳에는 커다란 나무들 위에는 등불이 잔뜩 걸려 있어 대낮처럼 밝았으며, 누군가가 몰래 나무 위에 숨어있는다고 해도 너무 밝아서 바로 들킬 정도였다.수란키는 앞장서서 걷다가 한 궁전 밖에 도착했는데, 궁녀 두 명이 다가와 수란키와 서경 언어로 몇 마디 나누다가 고개를 돌려 송석석과 시만자에게 환하게 웃으며 허리를 숙여 인사를 올렸다.수란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송 대감님, 만자 낭자, 폐하께서 두 분에게 궁전으로 모시라고 하셨습니다.”두 궁녀가 앞에서 길을 안내했고 송석석과 시만자는 이내 궁전 안으로 들어갔다.휘황찬란한 궁전 내부에는 커다란 조각 기둥이 양측에 세워져 있었으며 그 모습은 압박감이 넘쳤다.원신제는 용상에 앉아 환한 미소로 두 사람을 반겼지만 얼굴에는 피로함이 가득해 보였다.송석석과 시만자는 이내 인사를 올렸고 원신제는 그들에게 편하게 앉으라고 했다.그리고는 송석석을 쳐다보며 말을 걸었다.“짐은 송 대감이 사절단과 함께 이곳으로 온다고 하여 며칠 전부터 계속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보니 너무 반갑네.”송석석은 웃으면서도 진지하게 대답했다.“폐하께서 황위에 오르셨다는 소식을 듣고 소인도 너무 기뻤습니다. 원하는 바를 이루신 걸 감축드립니다.”송석석은 원신제를 힐끔 쳐다보았다. 원신제에게서 냉옥 장공주의 모습이 보였고 예전과 크게 변한 건 없었으며 여전히 피로해 보이고 여전히 진중하고 엄숙했다.냉옥 장공주에게 있어서 황제의 역할이든 실권을 손에 쥔 장공주 역할이든 똑같이 신경 쓸 일이 많을 것이다.“원하는 바를 이루느라 많이 힘들었네. 하지만 다행히도 이제 일처리는 훨씬 쉬워졌네.”원신제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조금 뒤, 궁녀들이 서경 특색이 돋보이는 다과들을 내왔다. 송석석과 시만자는 조금 전에 저녁 식사를 했기에 배가 고프지
서경 수도에 도착했을 땐 8월 13일이었기에, 송석석 일행이 떠난 지 한 달은 족히 넘은 상황이었다. 점심이 되자, 햇빛이 따스하게 비추어졌다.진왕은 마차 안에 몸을 웅크려 누운 채 입성에 진입했다. 하지만 마지막 자객들은 머릿수도 많고 기세도 등등해, 서경 지대에 들어서고 나서도 송석석 일행은 총 일곱 번이나 습격을 당했다. 현갑군은 대부분 부상을 당했고 시만자마저 어깨가 칼에 찔렸지만 다행히 신경까지 다치지는 않았다.진왕이 이렇게까지 크게 논란 건, 자객에게 습격을 당할 당시, 그는 변소 안에 있었다.일을 마치고 변소를 나선 순간, 갑자기 나타난 자객이 검으로 진왕의 가슴을 베었고 그 검을 진왕의 가슴에 꽂으려던 순간, 송석석이 제때에 나타나 손에 들고 있던 검을 한 발 빠르게 자객의 가슴에 꽂았다.하지만, 이내 자객의 머리채를 뒤로 확 잡아당긴 덕분에 진왕은 무사할 수 있었다.그는 가슴팍이 조금 베인 게 전부였지만 큰 중상을 입은 것 마냥 밤새 괴로운 신음소리를 내고 나서야 겨우 진정이 되었다. 수도에 도착하자 수란키가 관원들을 데리고 성문 앞에 서서 진왕을 반겼다. 수란키는 이제 서경의 승상이 되었다.한눈에 송석석을 알아본 수란키는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송 장군님,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여전히 기품이 넘치시네요.”송석석은 말에서 내려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인사를 하며 상대방을 힐끗 살폈다. 솔직히 조금 전에 수란키를 알아보지 못했다.전보다 훨씬 늙어 보였고 백발인 데다가 수염도 허옇게 변해 버렸다. 하지만 눈빛은 여전히 카리스마가 넘쳤고 남강 전장에서 봤을 때보다 되레 활기가 넘쳐 보이기까지 했다.남강 전장에서 봤던 수란키는 온몸에서 분노가 들끓고 있었다. 위엄이 넘치고 엄숙한 그는 삶의 의지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으며 그저 복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그런 느낌이었다.“승상께서 이렇게 직접 마중까지 나오시고. 너무 민폐를 끼치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되네요.”송석석이 웃으면서 말하자 수란키가 호탕하게 웃었다.“너
한편, 크게 놀란 진왕은 태의를 불러 심신을 안정할 수 있는 약을 처방받았다.송석석이 찾아갔을 때, 진왕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창백한 얼굴에는 핏기가 전혀 보이지 않았으며 덜덜 떨리는 입술로 송석석에게 자객은 어떻게 됐냐고 물었다.송석석이 진왕에게 자객이 도망쳤다고 얘기하고 나서야 그는 조금 안정을 찾은 듯했다.사실 진왕을 보필하는 사람들이 자객이 도망쳤다고 진작 얘기했지만 진왕은 믿지 않았다. 이제 송석석에게서 듣고 나니 그제야 안심이 된 것이다.송석석은 진왕에게 몸조리 잘 하라고 당부한 뒤 방을 나섰다.이와 동시에, 이덕회는 나머지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있었다. 병부 상서인 이덕회는 지금까지 산전 수전 공중전까지 전부 겪어 보기도 했고 또한 왕비와 현갑군을 믿었기에 전혀 겁을 먹지 않았다.한편, 매산 출신 몇 명은 한데 모여 전에 성릉관에서 만났던 검은 복장 차림의 무리들을 의심하고 있었다.어쩌면 그자들이 바로 자객일지도 모른다는 의심 말이다.이 의심을 가장 먼저 제기한 건 바로 시만자였다. 그는 그 무리들이 갑자기 사라진 게 너무 수상했고 비밀 경로를 통해 계획적으로 도망친 거라고 확신했다.더군다나 조금 전 자객들도 전부 검은색 옷차림이었기에, 비록 머릿수가 조금 차이 나긴 했지만 그리 이상하지도 않다. 일부 사람들은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을 수도 있으니까.“성릉관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출동했던 건 아마 우리한테 손을 쓰려고 그랬을 가능성이 커. 하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성릉관에서 우리를 죽이면 쉽게 도망칠 수 없을 것 같아서 일단 포기한 거야.”시만자는 분석할수록 자신의 의심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서 고개를 돌려 송석석에게 물었다.“내 말이 맞는 것 같지 않아?”송석석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그자들은 아니야. 정확히 얘기하자면 조금 전 자객들은 그자들보다 무술 실력이 확연히 떨어져. 그자들은 성릉관에서도 자유롭게 나타났다가 사라졌어. 그렇게 보면 네 의심이 성립되지 않다는 거지. 그자들은 성릉관에
이날 아침, 송석석 일행은 서경으로 출발했다.송석석은 딱히 아쉬운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나중에 돌아올 때 성릉관을 또 지나야 했기에, 이후에도 외조부 가족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성릉관을 떠나자마자, 평탄한 길이 사라졌다. 여기저기가 다 울퉁불퉁했고 일부러 인위적으로 파괴한 곳도 있었기에 마차가 지나가기엔 무리가 있었다.하지만 진왕은 절대 다시 말을 타려고 하지 않았다. 며칠동안 안정을 취했지만 다리 안쪽의 쓸림 상태가 아직 심했기에 걸을 땐 괜찮아도 말에 타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때문에 성릉관에서 공을 세우고 육아당까지 설립한 진왕은 까탈스럽게 마차를 고집했고 마차가 도무지 지나갈 수 없는 곳은 현갑군이 말에서 내려 마차를 밀면서 힘겹게 전진했다.하지만 불행 중 다행인 건, 현재 양국으로 통하는 길이 개방되었기에 그 길을 따라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산길밖에 없었다면 고귀한 진왕의 엉덩이가 엄청나게 고생했을 것이다.그렇게 겨우 서경 지대에 진입하여 루벌로 향하자, 서경의 관원과 병사들이 그들을 맞이하며 가는 길까지 호송해주었다.송석석 일행들 중에서 통역관을 제외하고는 서경에 와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똑 같은 변경 도시라고 해도, 루벌은 성릉관보다 훨씬 낙후했다. 여기저기에는 망가지고 훼손된 집채가 많았으며 행색이 누추한 거지나 근심이 많아 보이는 백성들도 많았다.송석석은 이 광경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두 나라가 전쟁을 치른 건 사실이지만 이곳까지 침투되지는 않았는데 말이다. 전에 전북망과 이방이 이곳 마을을 공격했다고 해도 공격당한 그 마을만 피해를 받아야지 루벌 전체가 이렇게 엉망진창이 된 것은 말이 안 되었다.루벌의 한 역관에 도착하고 나서야 송석석은 호송하고 있던 관원한테서 그 이유를 듣게 되었다. 수란석이 성릉관에서 전쟁을 일으켰을 때, 후방 공급이 부족한 탓에 병사들이 루벌로 돌아와 약탈을 진행한 것이었다.수란석 당시의 상황이 빅토르와 거의 비슷하다고 했다. 그때 당시 전쟁을 바라는 사람들이 많지 않
소 팔야는 곧바로 송석석이 말한대로 지시를 내렸고 이 지시를 실행에 옮긴 사람은 바로 전북망이었다. 그는 서둘러 부하들을 데리고 여기저기 수색하기 시작했다.송석석이 성릉관에 왔다는 사실은 전북망도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녀를 맞이하던 그날, 그는 멀리 서서 지켜볼 뿐, 가까이 다가가지는 않았다.하지만 거리가 너무 먼 탓에 전북망은 송석석을 정확히 보지도 못했고 그저 그림자만 볼 수 있었다.전북망은 자신이 지금 참 쓸모없는 짓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느껴지기도 했다. 송석석은 이제 자신과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이고 진성의 일과 관련된 사람은 이제 멀리해야했기 때문이다. 한편, 시절단은 성릉관에서 잠시 쉬는 사이에도 담판의 기교에 대해 상의했으며 상황 모의도 여러 번 해보았다.이번 담판이 저번에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어렵지는 않았지만 절대적으로 쉬운 건 아니었다. 이는 여제가 계속 마음에 두고 있던 일이기에 쉽게 타협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소씨 가문에서도 상대방이 몰래 사람을 보내 사절단의 책략을 몰래 엿듣는 것은 아닌지 걱정됐다. 사절단의 책략을 알게 된다면 상대방은 그에 맞는 대책을 미리 준비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상국은 열세에 처하게 된다.때문에 소 팔야는 전북망에게 반드시 철저하게 관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몰래 침입한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찾아내야 하고 이와 동시에 사절단 곁에서 시중을 드는 하인들 사이에도 첩자가 있을 수 있으니 확실하게 조사해야 한다고 했다.이틀 동안 수색했지만 전북망은 수확이 없었다. 그리고 수부를 샅샅이 수색했지만 위장술을 쓰거나 몰래 정보를 외부에 빼돌리는 사람도 없었다.전북망이 유일하게 알아낸 정보는 검은 복장을 입은 사람들이 춘만루에서 밥을 한 번 먹은 적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들이 춘만루를 떠난 뒤, 이들을 목격했다는 가게 주인도 있었지만 어디에 묵었고 어디로 갔는지는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서른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심지어 전부 검은 복장을 차려 입었는데 이렇게 쥐도 새도 모르게
춘만루는 오늘 손님들로 꽉 차 있었다. 가게가 그리 크지 않기도 했고, 다른 손님들도 있었을 뿐만 아니라, 조금 전 낭자가 데리고 오겠다고 했던 검은 복장을 입은 남자들까지 가게 안 나머지 자리를 전부 차지했다.송석석과 시만자 그리고 남자까지 앉을 자리가 없었기에 가게 주인은 급하게 작은 탁자 하나를 펴서 가게 앞에 자리를 마련했다.그렇게 세 사람은 일행들과 떨어져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이때, 남자가 미안한 목소리로 송석석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저자들은 전부 제 일행입니다. 저와 똑같이 이틀 전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거든요. 혹시 불편하시다면 저자들에게 가게 앞에서 기다리라고 하겠습니다. 나중에 저자들에게 호빵이나 하나씩 나눠줘도 충분합니다.”멈칫하던 시만자는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그럴 필요 없어요. 편하게 드시고 싶은 거 시키시면 됩니다.”남자가 환하게 웃으며 대꾸했다.“낭자는 정말 얼굴도 예쁘시고 마음도 선하시군요. 그럼 저희 편하게 시키겠습니다.”“그… 그래요.”고개를 끄덕이던 시만자는 가게 안에 앉아있던 사람들을 힐끗 쳐다보았다. 이자들의 옷차림은 꽤 눈에 띄었으며 옷소매에 수놓은 글씨들이 보이기도 했다.하지만 옷이 구겨지고 먼지도 많이 묻었기에 수놓은 글씨를 정확하게 확인할 수 없었다.그렇게 한참동안 쳐다본 시만자는 그제야 이자들의 옷에 수놓은 글씨들이 각자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중에서 흑영위나 전광위 등 글씨들이 보이기도 했다.이자들은 예의가 없거나 우악스럽지는 않았다. 각자 자리를 찾은 뒤 자신들에게 밥을 사준 시만자와 송석석에게 일제히 고개를 숙여 감사인사를 했다.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머리가 하얬지만 얼굴은 불그스름한 게 나이가 그렇게 많아 보이지는 않았다.그 중에서 생김새가 매우 추악한 사람들도 몇 명 있었으며 쳐다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송석석과 시만자 그리고 몽동이는 서로를 힐끔 쳐다보다가 왠지 이 식사자리가 자신들의 마음에서 우러러 나온 게 아니라는 기분이 들었다.송석석은 식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