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저녁, 이방은 전북망을 불러내었다. 두 사람은 호숫가를 거닐고 있었다.전북망은 계속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이방은 상황을 잘 몰랐기 때문에 그를 불러내면 이혼의 상황을 이야기할 줄 알았다. 하지만 전북망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얼굴은 고양이에게 할퀸 것 같기도 했다.그러던 중,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이방이 멈춰 서며 물었다. “끝난 것입니까? 예단의 절반도 돌려받았습니까?”노을이 지면서 이방의 어두워진 얼굴을 비췄다.전북망은 갑자기 송석석의 아름다운 얼굴이 떠올라 가슴이 아팠다. “돌려받지 못했습니까?”이방은 그가 말이 없자, 한숨을 쉬며 다시 물었다. “제가 서신을 보내서 예단의 절반은 반드시 돌려받으라고 했잖습니까. 장군부의 재정이 바닥나서 돌려받지 않으면 앞으로 어떻게 살려고 그럽니까?”전북망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건 석석의 예단이지, 내 것이 아니고, 내가 번 것도 아니오. 이방, 당신은 나와 결혼한 게 고생하기 싫어서요?”“그런 뜻이 아니잖습니까.” 이방은 돌아서며 그의 눈에 비친 자신의 계산적인 눈빛을 숨기려 했다. “저는 단지 우리가 앞으로 군에만 집중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서 하는 말입니다. 돈 문제로 고민하는 것이 아닙니다.”“장군부가 당장 무너지는 것도 아니고 검소하게 살면 그럭저럭 지낼 수 있소.”전북망이 말했다.이방은 돌아서며 재차 확인했다.“그래서, 정말로 돌려받지 않았습니까? 예단을 모조리 가져갔습니까?”그녀의 눈에 비친 실망과 분노에 전북망은 가슴이 시렸고 조금씩 싫증이 나기 시작했다.“이혼서를 건네려는데 황제의 명이 도착했소. 알고 보니 이미 궁에 들어가 황제에게 이혼을 청했고 처음부터 이혼할 생각이었던 것 같소. 당신과 지아비를 나눌 생각이 없었던 것 같소.”“네?”“그 사람은 역겹다고 했소.”이방은 냉소했다. “역겹다고요? 그녀가 한 말입니까? 제가 신경 쓰지 않는다는데 정말 웃기지 않습니까? 설마 자신이 아주 대단한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요?”전북망은 무
전북망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오늘의 싸움에서 완패했던 말하기 부끄러웠다.“참말입니까?”이방이 재차 물었다.전북망은 한숨을 쉬었다.“됐소, 그 얘기는 그만하오.”그러자 이방이 장난스럽게 말했다.“거 보세요. 저를 속이려던 거였군요. 이혼이든 별거든, 일이 해결됐으니 되어습니다. 저와의 이부를 경멸했다니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의 음험한 짓은 저는 흉내도 내지 못합니다. 그게 그녀의 진짜 능력이겠지요.”이방은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덧붙였다.“그런 능력들을 제가 흉내 낼 수도 없지만 나긋한 말투로 달콤하게 말할 수는 있습니다.”그녀는 손을 다소곳이 앞에 모으고 몸을 배배 꼬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낭궁님!”그러고 나서 일부러 몸을 떨었다.“세상에, 정말 너무 소름 끼치고 너무 가식적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가식적일 수 있습니까?”전북망도 소름이 쫙 돋았다. 그것은 이방의 가식적인 모습때문이였다.사실 송석석은 그렇게 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부드러웠지만, 결코 비굴하지 않았고, 온화하면서도 단호했으며, 절대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았다.이방은 콧노래를 부르며 뛰어갔다. 비록 예단의 절반은 돌려받지 못했지만, 송석석이 떠났으니, 그녀가 정실 아내가 되었다. 더 이상 평처가 될 필요 없었다.인생이란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그녀는 언제나 긍정적이었고, 절대 송석석처럼 유치하게 굴지 않으려 했다.전북망은 그녀를 따라가는 대신 호숫가에 앉았다.오늘 이혼령이 내려졌다. 마치 맑은 날의 벼락처럼 그의 머릿속을 더욱 혼란스럽게 했다.수많은 기억들이 떠올랐다.송석석과의 첫 만남, 그녀의 방문을 두드리고 청혼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녀가 몇 가지 질문을 하고 난 후, 그와의 혼인을 동의했을 때 그는 너무도 기뻤다.혼인 준비를 하며 그녀를 맞이할 때의 심경을 떠올렸다. 혼인 당일 출정해야 했을 때, 그는 송석석을 떠나기 싫었다.심지어 행군하는 동안에도, 붉은 면사포를 벗겼을 때의 송석석을 떠올리며, 자신이 그녀와
송세안은 송씨 가문의 자제들을 불러와 물건을 정리하도록 했다. 한창 바쁘게 움직인 후, 송세안과 송석석은 함께 저택 곳곳을 걸었다. 한때는 매우 활기찼던 저택이 지금은 너무 조용했다.송세안은 그녀에게 말했다. “이제 국공부에는 네가 혼자고, 하인도 본가에서 데려온 사람들뿐이니, 먼저 힘을 쓸 수 있는 남 집사를 찾도록 해라. 그리고 기가 센 하녀와 하인도 필요하다. 부엌과 정원, 마구간, 마차(馬廄車) 준비도 사람이 빠질 수 없다. 혹시 여의찮다면, 내가 대신 찾아주마.”송석석은 감사를 표했다.“안 그래도 바쁘신데, 폐를 끼칠 수는 없습니다. 황 마마와 양 마마가 알아서 할 겁니다.”송세안은 그녀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한 집안끼리 폐를 끼치다니 무슨 소리냐? 예전에 네 아버지가 군을 지휘할 때, 늘 우리 집안 형제들을 불러 모아 전쟁터의 위험한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우리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경외감에 가슴이 두근거렸고 무엇보다도 자랑스러웠다. 왜냐하면 우리 송씨 가문의 사람들이 나라를 지키고 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우리 가문에 무장이 없을 것 같구나.”송씨 가문의 다른 자제들은 대부분 글공부나 장사를 선택했다. 위망 높은 가문에서 무장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것이 정말 안타까웠다.송석석은 말이 없었지만, 눈에는 슬픔이 가득했다.“앞으로는 전씨 가문과의 연락을 끊고, 원망하지도 만나지도 마라. 너의 인생을 잘 살아가면 된다.” 송세안이 당부했다.“숙부님,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알고 있습니다.” 송석석은 고개를 숙였다.송세안은 그녀의 평온한 모습을 보며 말했다.“언젠가 전북망은 틀림없이 후회할 것이다.”송석석의 눈빛이 흔들림이 없었다.“그럴 테죠. 하지만 저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송씨 가문의 사람들은 놔야 할 때는 내려놓을 수 있었다.그녀의 굳센 모습에 송세안은 미소 지으며 만족스럽게 바라보았다. “내일은 내가 사람을 보내서 예단 가구를 다시 가져오게 할 테니, 너는 나설 필요 없다.”송석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국공부는 무장 세가(武將世家)였지만 견식이 있는 아가씨는 분명히 곁에서 시중드는 사람들이 글을 아는 것을 원할 것이다.“좋다, 너희는 아가씨 곁에서 시중들도록 해라. 이름은 나중에 아가씨께서 지어주실 거다.”네 사람은 매우 기뻐하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마마!”황 마마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 “아직 고맙다고 하기엔 이르다. 먼저 아가씨 곁에서는 규칙을 배워야 한다. 잘 익히지 못하면 등급이 내려갈 거다.”네 사람은 고개를 숙였다. “꼭 잘 배우겠습니다.”네 명을 고른 후, 두 마마는 또 몇 명의 하녀와 하인을 더 고용했다. 그리고 아행의 사람들에게 마부, 목수, 말을 관리하고 화초를 돌볼 사람들을 찾도록 했다.외원의 총괄 집사와 계원은 맨입으로는 구할 수 없었다.아행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폈다. “내일 보내드리면 마마께서 선택하면 되옵니다.”그는 매매 계약서를 건넨 후, 두 마마에게 붉은 봉투를 건네며 웃으며 말했다. “마마, 잘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필요하신 것이 있으면 저희 아행을 찾아주세요. 저희는 여러 가지 일을 다루고 있습니다.”마마는 붉은 봉투를 받고 살짝 고개를 끄덕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사람을 보내 아행을 배웅시켰다.아가씨가 이제 막 이혼하고 돌아왔으니, 사람들은 현재 어떤 상황인지 알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마마는 말을 아꼈고 아행들이 함부로 추측하여 소문을 퍼뜨리지 않도록 했다.아직 사람들이 다 모이지 않아서 황 마마는 오늘 뽑은 네 명의 하녀를 데리고 아가씨에게로 갔다.송석석은 여전히 출가 전 살던 영롱각(玲瓏閣)에 살고 있었다. 영록각은 그녀가 출가한 후로 아무도 살지 않아 청소 외에는 손댄 적이 없었다. 그래서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이곳은 그대로였다. 핏자국이 없었기에 벽을 덧바를 필요도 없었다.영롱각에는 그녀의 무기를 두는 무기고가 있었고, 그녀가 읽었던 책을 두는 작은 서재도 있었다. 대부분은 병서 책론(兵書策論)이었다.출가한 1년은 마치 악몽 같았다. 만약 그녀가 혼인하지
하지만, 이 일은 이제 조사할 수 없다. 첩자들은 거의 죽었고, 살아남은 자는 서경으로 도망갔기에 찾을 수 없었다. 그녀는 아버지와 형제들을 떠올리며 설움을 삼켰다.아버지와 형제들은 남강을 되찾았지만, 지키지 못하고 다시 빼앗겼고, 결국 전장에서 비참하게 전사했다. 만약 북명왕이 승리하여 남강을 되찾는다면, 아버지와 형제들의 소원을 풀어주는 셈이 될 것이다첫날 밤, 송석석은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꿈에 어머니, 형수, 조카들이 살해당하는 장면이 떠올라 한밤중에 깬 그녀는 다시 잠들 수 없었다. 그녀는 천장을 응시하며 끊임없이 생각했다.친인들의 상처를 보면 범인의 극악무도함이 낱낱이 드러났다. 그들은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 전쟁 중 서경이 패했다고 해서 이렇게 할 수는 없다. 그들은 전에도 패한 적 있었다. 당시 아버지와 형제들에게 3만 병사를 잃었을 때에도 서경의 첩자들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 전쟁에서는 왜 이렇게 움직이는 걸까?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면서까지 고아와 과부를 죽이려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뒤척이던 송석석은 결국 날이 밝을 때까지 잠들지 못했다.시중들러 온 보주는 초췌한 송석석의 얼굴을 보고 그녀가 전북망의 무정함에 상처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하여 그녀는 묻지도 못하고 몰래 눈물을 훔쳤다.다음 날, 송세안은 송씨 가문의 자제들을 거느리고 예단을 옮겼다. 담나무로 만든 탁자와 의자, 가구, 금실로 수놓은 병풍 등 예단 목록에 있는 모든 것을 챙기며 조금도 남기지 않았다.노부인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 통곡하며 송석석이 무정하고, 옹졸하고 이기적이면서 질투심으로 가득한 사람이라고 욕설을 퍼부었다.그 말을 들은 송세안이 너무 화가 나서 크게 소리쳤다. “내 조카가 너희들에게 얼마나 지극정성이었는지, 이웃들에게 한번 물어보아라. 그녀를 나쁘게 말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석석이가 옹졸하고 이기적이라 나무라면서 왜 너희 장군이 무슨 나쁜 짓을 했는지는 물어보지 않았느냐? 혼인날 출정하고 돌아와서는 전공을
노부인은 발을 동동 굴렀다.“모두 가져가고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앞으로 장군부는 내 약조차도 살 수 없게 되었다.”전북망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어머니를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걱정 마세요. 남강 전장은 나와 이방이 필요할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 공을 세워 돌아올 것입니다.”노부인은 목이 터져라 울며 말했다. “어떻게 이렇게 무정할 수 있느냐? 평처가 어떻다고 용납할 수 없다는 거냐? 고아 주제에 자신을 귀족이라고 생각하는 거냐?”전북망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이제 그녀는 국공부의 적녀이니, 당연히 귀족이었다.“가문이 전멸한 건 자업자득이다, 자업자득!” 노부인이 화를 내며 말했다.서경 첩자들에게 몰살당한 송씨 가문에 대해 전북망도 이상하게 여겼다. 서경 첩자들이 왜 그 노약자들을 죽였을까?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하지만 이제 송씨 가문은 그와 이제 상관이 없었다. 그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송석석은 반드시 후회할 것이다. 사실 이 일을 알고 그는 그녀를 도와 조사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가 그 기회를 거부한 것이었다.송씨 가문 사람들이 값비싼 가구를 모두 가져가는 것을 본 노부인은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던 중 복도에 서서 차가운 눈빛으로 광경을 지켜보는 큰 며느리 민씨가 보였다.노부인은 화가 치밀어 올라 말했다. “너는 왜 막지 않았느냐?”민씨는 담담하게 말했다. “저는 그런 뻔뻔한 짓을 할 수 없습니다.”노부인은 더욱 화가 났다.“무례하다! 너도 나를 거역하려는 거냐?”그런 노부인을 보며 민씨는 송석석이 시집온 후의 일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지금의 사악하고 독한 시어머니의 모습에 마음이 차가워졌다. “무례라. 송석석은 효도했지만, 얻은 게 뭐가 있는 지요? 곧 시집올 이방도 그녀처럼 효도하길 바라시는 건 아니겠지요?”“반드시 그럴 것이다!” 노부인은 악에 받쳐 말했다. “그 년의 이름을 다시는 꺼내지 마라. 그 애가 정말 효도했다면 내 약을 끊지 않았을 것이다.”
송세안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예단을 모두 진국공부로 옮겼다. 송석석이 감사 인사를 하며 모두를 안으로 들어와 차를 마시라고 청했다.그러나 송세안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차는 다음에 마시겠다. 지금은 다른 중요한 일이 있어서. 아, 그리고 전북망이 너에게 후회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하더구나.”송석석은 시선을 떨구었다. “그에게 전할 말은 없습니다. 숙부님께서 바쁘시니 강제로 붙잡지는 않겠습니다.”송세안은 그녀의 대답에 매우 만족했다. 송씨 가무은 모든 것을 잃어도 이런 기개만큼은 잃어서는 안 되었다. 그는 사람들을 이끌고 떠났다. 차를 마시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진국공부가 아직 정리되지 않았고, 새로 온 사람들이 아직 익숙치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 혼자라면 괜찮았겠지만, 다른 집안 자제들도 데리고 있었다. 사람이 많으면 말이 많은 법.자칫 부족한 점이 드러나면 좋지 않은 소문이 퍼질 수 있었다. 지금 진국공부는 사소한 루머도 견딜 수 없었다.영롱각으로 돌아온 송석석은 서신을 보내 사문에 빨리 전달하게 했다. 내용은 서경과 상국의 성릉관에서 치른 전투에 대해 조사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짐작하는 부분이 있었지만 확신할 수 없어 조사하고 증거를 얻어야 했다.외조부 소 대장군과 셋째 삼촌, 일곱째 삼촌은 성릉관(成凌關)을 지키고 있었다. 작년 말, 성릉관은 남강 전장을 지원하기 위해 10만 명의 병력을 빌려주었고, 그로 인해 서경과 성릉관이 전투를 벌였을 때 외조부는 조정에 지원군을 요청해야 했다. 이때 전북망과 이방은 지원군으로 갔던 것이다.그러나 이 전투의 실제 상황이 어땠는지 그녀는 알지 못했다. 외조부와 삼촌들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녀의 의심이 사실이라면 외조부는 원수로서 큰 죄를 짓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그 후 한 달 동안, 송석석은 문을 닫고 손님을 만나지 않았다. 별로 찾아오는 이도 없었다. 송씨 가문은 중요한 일이 아니면 그녀를 방해하지 않았다. 집 안은 거의 정리되었고, 그녀를 시중드는 몇 명의 하녀
문제는 아무도 그녀에게 병사들이 올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의 머릿수는 백여 명이나 되었고 많은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에, 청첩장을 받고 온 손님들이 앉을 자리가 없었다. 이들은 모두 체면을 중시하는 문무 관리들이며, 조정의 고위 인사들이었다. 이들과 관계를 잘 유지하면 전북망이 관직 생활에 큰 도움이 될 텐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모두 매서운 바람에 떨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정말로 안타까울 뿐이었다.노부인은 급히 민씨에게 달려가 빨리 해결책을 찾으라고 했다. 당황한 민씨도 어쩔 줄을 몰라 했다.아무도 그녀에게 병사들이 올 것이라고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손님 명단에 따라 자리를 배치했었다.매우 당황한 손님들은 그저 막무가내로 와서 자리를 차지하고 먹고 마시는 병사들을 보며 어리둥절해했다.게다가 신부와 장난치며 웃고 떠드는 모습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그들 중에는 황제의 체면을 보고 온 명문가의 귀족들도 이런 광경은 처음이다.비록 명문가는 아니지만 여러 세대에 걸쳐 내려온 가문인데 황제가 주관하는 결혼식에서 이런 혼란을 가져온 장군부의 처사가 이해되지 않았다.처음에는 주인집의 안내를 기다리며 서 있었지만, 아무도 자리를 마련해주지 않자, 상황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누구도 아무 말 않고, 전북망에게 조용히 다가가 집에 급한 일이 있어 떠난다고만 했다. 전북망은 완전히 당황했다. 그도 병사들이 올 줄은 전혀 몰랐다. 손님들이 가족과 함께 떠나는 것을 보며 그는 마치 뺨을 한 대씩 맞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너무 부끄러웠고 화가 치밀기 시작했다.그는 아직 자리에 앉아 있는 손님들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이방을 끌어당겼다. “나랑 얘기 좀 해야겠소.”이방은 일어서며 병사들에게 웃으며 말했다. “먼저 마시고들 있어. 금방 돌아올게.”“장군님이 무지 급했나 봅니다? 하하하!”“장군님, 빨리 끊내야 합니다. 이제 곧 술도 따라야 하잖습니까”“하하하, 맞습니다. 부대 오두막이 아니라는 것만 명심하십시오.”이런 노
송석석은 그들의 대화를 모두 들었다. 그들은 전쟁을 피하려고 애쓰고 있지만 서경이 그들이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고 확신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특히 수란석에게는 송가와 소가만 전쟁을 원하지 않으며 북명왕은 오히려 군권을 되찾기 위해 전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야 했다. 송석석은 시선을 돌리며 냉옥 장공주의 유창한 상국 말에 귀 귀울였다. "본궁은 항상 왕비님을 뵙고 싶었습니다. 이번에 상국에 온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왕비님을 뵙기 위함입니다."그녀는 방금전에도 이렇게 말했었지만 이번에는 표정이 진지하고 진심에서 우러나 보였으며 아까 같은 가식적인 느낌이 들지 않았다. 송석석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공주님을 뵙게 되어 저 또한 영광입니다."가까이에서 보니 냉옥 장공주는 어제 성문에서 봤을 때보다 피로해 보이지 않았다. 어젯밤 충분한 휴식을 취한 모양이었다. 그녀의 눈 밑의 다크서클은 얇은 화장 덕분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전체적인 상태는 실제 나이보다 몇 년 더 많이 먹은 듯 지쳐보였다. 송석석은 그녀가 정권을 보좌했던 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서경은 내외의 위협을 겪었는데, 그들이 그동안 겪은 고통은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할 정도로 힘들었다고 했다. 내일 그녀와 신경전이 벌어질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녀에게 존경심을 느꼈다.서로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궁중 연회가 시작되었다.모두 자리에 앉아 식사를 준비했다. 서경의 사절단은 여전히 오른쪽에 앉아 있었고, 사여묵과 송석석은 나란히 앉았다. 태후는 음식을 같이 먹지 않았고 냉옥 장공주와 잠시 대면하기 위해 나왔다. 이는 사절단을 중시하는 태도였다.황제와 황후가 자리를 지키고 여러 왕야와 권신들도 함께 했다. 물론 회왕은 참석하지 않았고 회왕비도 오지 않았다. 연왕은 측비 김씨와 함께 자리에 앉았는데, 그는 이런 자리에 절대로 시민주를 데리고 오지 않는다. 아무리 시민주가 정비라도 말이다.연회 중 술잔이 오가며 두 나라는 우호적인 관계인 것처럼 보
북명왕이 자기를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자 수란석은 속으로 화가 치밀어 오르며 더는 참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그동안 성릉관의 일을 명확히 밝혀야겠다는 마음이 굴뚝같았다.두 눈에서 불꽃이 튀고 있을 때 사여묵이 물었다. "수 대장군이 부상을 입었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다 나으셨습니까?"수란석은 눈빛을 거두며 대답했다. "이리 신경 써 주시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형님께선 이제 큰 이상이 없습니다.""이번에 수 대장군과 함께 오실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수란석의 눈빛은 차갑고 냉랭했다. "형님께선비록 큰 이상은 없지만 과거에 중상을 입으셨기에 장거리 이동은 부적합합니다."사여묵은 수란키가 갇혔다는 사실을 모르는 척 말했다. "우리 소 대장군도 두 번이나 화살을 맞았고 게다가 이제 막 칠순을 넘긴 고령이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국의 일을 처리하러 성릉관에서 진성으로 돌아오셨습니다."수란석은 미간을 찌푸렸다. ‘저 말의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오늘은 분명 저런 얘기를 안 하기로 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나에게도 할 말이 아주 많은데.’하지만 수란석에게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듯 사여묵은 또 다른 화제로 말을 돌렸다. "아참, 듣자니 수 상서께서는 친히 검을 만드는 걸 좋아하신다 들었습니다. 최근에는 어떤 신검을 만드셨는지 보여주실 수 있을까요?"주제는 이렇게 자연스럽게 바뀌었고 수란석은 화가 난듯한 목소리로 눈을 크게 뜨며 대답했다. "군무가 바빠서 이제 더는 검을 만들지 않습니다. 왕야께서 서경의 무기가 보고 싶으시다면 기회는 얼마든지 있습니다."전장에 나가면 충분히 볼 수 있었기에 사여묵은 그를 가볍게 바라보며 한 마디 던졌다. "좋습니다."목소리는 매우 낮았지만, 수란석의 귀에는 아주 도발적으로 들렸다. 마치 그가 전쟁을 원한다는 것 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내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왕이 말하길 북명왕은 두 나라가 전쟁을 계속하는 걸 가장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두 나라가 전쟁을 하면 소가는 분명 죄
둘째 날, 평사저의 사람들로부터 소식이 전해졌다. 어제 서경 사절들이 회동관에 도착하자 회왕은 몰래 집으로 돌아갔고 오늘 아침 일찍 다시 변장을 하고 외출했다고 하는데 어쩌면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 같았다.평사저는 잠시 생각한 후 회왕의 의도를 대충 짐작해 보았다. “조심하거라. 그가 수란석과 결탁한 것이라면 너에게 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으니.”“알겠습니다.” 송석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어젯밤 사제는 그녀에게 서경의 호위무사 중 한 명이 회왕처럼 보였다고 했다. 하여 두 사람은 밤새 여러 가지 가능성을 추측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이다. 궁중 연회의 화려한 조명은 별처럼 빛났고 소명 연회당은 낮처럼 환했다.사여묵과 송석석이 입구에 도착했을 때, 서경 사절들이 이미 도착해 궁궐의 오른편에 앉아 있었고 호위와 서경의 궁인들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입궁 시에는 무기를 지닐 수 없기 때문에 호위들 모두 검을 차지 않았다.태후와 황후는 자리에서 대기 중이었는데 식사가 아직 시작되지 않아 서경의 냉옥 장공주를 맞이하고 있었다. 평소라면 태후는 몸이 아파 나오지 않지만 오늘은 냉옥 장공주가 오기 때문에 기꺼이 나와서 손님을 맞이한 것이다.냉옥 장공주와 태후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놀라운 점은 두 사람이 통역사의 도움 없이 때로는 상국어로, 때로는 서경어로 대화를 원만하게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냉옥 장공주가 상국어를 잘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지만 태후가 서경어를 할 줄 아는 것은 송석석에게 매우 의외였다.사여묵과 송석석은 먼저 황제에게 인사를 올린 후 태후에게 인사를 올렸다. 냉옥 장공주는 그녀가 송회안의 딸이자 소 대장군의 외손녀, 남장 전투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친 송석석이라는 사실에 저도 몰래 송석석을 몇 번 쳐다보았다.북명왕부는 냉옥 장공주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냉옥 장공주도 상국의 중요한 인물들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특히 송석석와 이방에 대해서는 더 잘 알았다. 송석석은 가문과 능력이 뛰어난 여인이고,
다음 날 정오쯤, 서경 사절단이 진성에 도착하자 예부와 홍려사에서 그들을 접대해 회동관으로 안내했다. 서경의 관제는 상국과 비슷하지만 서경은 승상 자리를 두지 않고 내각과 육부구경을 두고 있었다. 이번에 상국에 온 사절단은 냉옥공주와 병부 상서 수란석을 필두로 내각 대학사 고공과 양안, 홍려사 사정 소진, 통역관 두 명, 친군령 정영수, 냉옥 장공주부의 위장 임화옥과 세 명의 여관으로 구성됐고, 여관의 이름은 보고되지 않아 알 수 없었다. 그 외에는 모두 호위와 수행 인원들이다.사여묵과 송석석 일행은 성문 근처의 술집에서 사절단이 지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냉옥 장공주는 보라색 관복에 자홍색의 준마를 탄 채 대열을 따라 천천히 진성에 들어섰다. 냉옥 장공주의 실제 나이는 서른두 살이지만 아마도 긴 여행의 피로로 인해 더 늙어 보이는 것 같았다.“장공주 뒤에서 검은 준마를 타고 있는 사람이 바로 수란석입니다. 그는 수란키의 친동생이긴 하지만 서로 사이가 좋지 않지요. 예전에 성릉관에서 전투를 이끈 사람이 바로 그이고, 지금은 정원제의 전쟁을 적극적으로 종용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정원제는 장공주를 매우 존경하지만 사실 선태자를 더 존경하였습니다. 정원제는 전쟁을 원하고 그는…” 염구진은 잠시 말을 멈추고 적당한 표현을 찾았다. “… 어쨌든 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문무를 겸비했고 선태자를 오래 따랐지요. 서경에서 덕망도 높고 꽤 중요한 인물이지만 본성은 좀 미쳐 있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장공주와 선태자가 그를 지켜봐 주고 또 수란키가 귀띔을 해줘서 본성이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장공주가 그를 뒷받침해서 높은 자리에 올린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그러나 장공주가 모르는 사실은 그의 마음속엔 형인 수란키보다 집안과 나라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지요.”송석석이 그 말을 이어받았다. “장공주가 나라를 우선시한다고 생각해서 정원제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 여겼겠죠.”“네, 하지만 이제 장공주는 깨달았을 겁니다. 이번에 그녀가 직접 와서 여러 논의를 이끌어가
진술서를 어전에 제출한 후 숙청제는 이택이 말한 이방의 자백 세부 사항을 들으며 이마를 찌푸렸다.녹분성 사건은 숙청제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긴 하지만 마을 학살과 포로 처형 네 글자는 모두 피비린내 나는 말들 뿐이었다. 세부 사항은 있는 줄은 몰랐다. 진술서에는 포로 처형과 마을 학살의 구체적인 내용은 적혀 있지 않았지만 이택이 말한 내용을 들으며 숙청제는 자기가 상국의 황제라는 사실을 잊어 버리고 미처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고 책상을 내리쳤다.이택도 마찬가지로 등골이 오싹해져 황제의 분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심지어는 이런 사람이 전쟁 공로로 혼인 허락을 받아 다행이라고 생각되었다. 만약 북명왕비처럼 입직해서 관직에 나가거나 군에서 무장으로 활동했다면 그것은 큰 위험 요소가 될 수 있었다."북명왕은 이 진술서를 보았느냐?" 숙청제는 한차례 질책을 마친 후 이택에게 물었다.이택은 북명왕이 먼저 사람을 보내 전북망에게 전한 뒤 황제가 명을 내린 것을 알고 있기에 신중하게 대답했다. "이방의 자백이 있자마자 신은 즉시 이 진술서를 가지고 궁으로 들어왔습니다."숙청제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그에게도 이 진술서를 전달하거라. 비록 대리사가 이 사건에 관여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소 대장군은 북명왕비의 외조부이니 그도 알아야 할 것이야."이택은 잠시 놀랐다. ‘설마 황제가 북명왕의 개입을 허락한 것인가?’ 그는 황제와 북명왕 사이에 어떤 불편한 감정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하지만 이택은 얼굴에 감정을 나타내지 않고 공손히 대답했다. "예, 제가 직접 가서 전달하겠습니다."어전에서 나온 후, 이택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여묵과 입을 맞춰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일은 시작부터 긴장감이 가득했다. 북명왕이 개입한 만큼 황제의 명령을 받은 후 이 일의 결과를 어떻게 처리할지는 아주 중요했다. 만약 잘 처리된다면 공로를 얻을 수 있겠지만 실수하면 직위가 내려가고 처벌을 받을 수도 있었다.그래서 이택은 마음속으로 안도하며 빠르게
주부는 이방의 말을 기록하며, 이천명 등 사람들의 입에서 나왔던 진실을 다시 한 번 되새겼다.그러고는 성릉관에 돌아가서 세부 사항을 정하자고 제안했지만 수란키는 이를 거절했다. 그는 이전에 두 나라가 이미 세부 사항을 발송했으며 서로 동의하지 않겠다고 했다고 말했는데, 그 세부 사항은 이방도 본 적이 있었다. 상국의 요구사항으로 전쟁을 멈추고 국경선을 원래의 선으로 돌려놓자는 내용이 담겨 있었고, 그 기준은 녹분성 외곽의 산기슭이었다."잠시 정신이 팔려서 내가 협정을 체결하면 공을 세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수란키에게 군대를 20리 후퇴시키고 단 12명만 남기게 했지요. 한편으로는 전북망이 양곡 창고를 불태우는 계획을 잘 진행했으면 싶어서였고, 또 한편으로는 협정이 체결된 후 제와 제 부하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본래 12명을 남기기로 한 것은 그들이 모두 능력 있는 사람들일까 봐 위험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상외로 그들이 남긴 사람 중에는 참모와 의무병 3명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걱정이 사라졌고 협정은 예상보다 훨씬 순조롭게 체결되었습니다. 협정이 체결된 후 우리는 그 소장을 붙잡고 산 아래로 내려가 풀어주었습니다."그 뒤 그녀는 전북망에게 협정 체결 사실을 알렸고 성릉관으로 돌아갔다.수란키는 사람을 보내 접선했고 그녀는 그렇게 얼떨결에 공신이 되었다.물론 소삼야는 반복해서 그녀에게 수란키와 어떻게 협정을 체결했는지 물었고 그녀와 그 부하들은 이미 만들어 놓은 이야기를 말했다. 그들은 산 아래에서 수란키와 12명을 만났는데 전투를 통해 수란키를 붙잡았고 그 뒤에 협정이 체결되었다고 했다.소삼야와 그들은 그 이야기를 잘 믿지 않았지만 수란키가 전선에서 사라진 사실과 협정에 수란키의 도장이 찍혀 있었다. 게다가 성릉관에서는 이제 소 대장군의 도장만 찍으면 그 협정은 공식적으로 성립될 수 있었다.주부는 그 기록에서 서경 태자에 대한 언급을 완전히 생략하고, ‘소장'이라는 표현만을 사용했다. 왜냐하면 서경의 국서에
이택은 날카롭게 말했다. “소 대장군께서 진성으로 돌아와 심문을 받는 것도 다 너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모든 죄를 뒤집어쓰길 바라는 거냐? 네가 어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누군가 그를 이 사건에서 빼려고 합니다. 누군가가요!” 이방은 마치 분노한 사자처럼 발버둥을 쳤으나 쇠사슬에 묶여 있는 탓에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공정하지 않습니다! 그는 성릉관의 주장이었으니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합니다. 당신들은 하나같이 권세가 두려워 사여묵과 송석석에게 아첨하며 전북망을 죽이려 들지 않습니까? 그는 내가 마을을 학살한 일을 전혀 모릅니다. 전북망은 억울하게 누명을 쓴 거란 말입니다!”“전북망이 모른다면 소 대장군은 더더욱 알 리가 없다.” 이택은 콧방귀를 뀌며 주부에게 명령했다. “기록하거라. 이방은 전북망과 소 대장군이 모두 몰랐다고 진술했다는 것을.”“아니, 나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방이 큰 소리로 부인했지만, 이택은 목소리를 높일 뿐이었다. “여기 귀가 몇 개인데 감히 말을 바꾼단 말이냐?”이방은 입을 열다 말고 자기가 처한 상황을 깨닫고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눈에 숨겨진 교만과 불만을 애써 감췄다.이택은 그녀를 지켜보며 생각했다. 역시 왕야는 단호하다. 전북망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녀의 주장은 성립되지 않는다. 전북망이야말로 작전의 지휘관이었고 그가 몰랐다면 소 대장군은 더욱 알 리가 없다. 이방은 전북망의 부장이라 절대 독립적으로 소 대장군의 명령을 받을 수 없었다.사실 이방은 전에 전북망이 자신에게 감정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가 자신을 배신했다고 여겼었기에 형부에 붙잡히기 전까지는 전북망을 연루시키는 것에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그날, 성릉관에서 그녀에게 했던 약속을 기억하고 자신의 미래를 걸고 그녀를 도와 도망치게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제서야 전북망의 마음을 알게 된 것이다.그래서 형부에 들어온 후 그녀는 소 대장군을 범인으로 몰아가는 것이 정확한 방법이며 황제는
숙청제는 손을 내려놓고 차갑게 말했다. “틀린 말이 아니다. 내가 새로운 무장을 키우려는 건 맞지만 짐은 어리석은 임금이 아니다. 아무리 새로운 인물을 키운다고 해도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한 노장들을 버릴 순 없다.”“헌데 내가 어찌 새로운 무장을 키우려는지 그가 정녕 모른단 말이냐? 북명군의 군권이 이제는 그에게 없지만 위신은 여전히 강하다. 남강 수복의 공은 마치 큰 산처럼 그를 지키고 있다. 나는 그를 움직일 수 없고 오히려 북명군이 나에게 위협을 가하고 있다.”하도 세게 쥔 탓에 주필이 그의 손에서 부러졌다. 숙청제는 붓을 책상 위에 던지고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 “짐은 북명왕이 역적이 되지 않을 거라 믿겠지만, 만약 그에게 진정 불순한 야망이 있다면 나는 그를 어찌해야 할꼬?”오 대반은 속으로 급히 머리를 굴리며 말했다. “폐하, 북명왕은 결코 반역할 마음이 없습니다. 그는 폐하의 아우입니다.”하지만 숙청제는 싸늘하게 답했다. “짐은 그가 당장 반역할 생각은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고위직에 오래 있으면 어느 순간 다른 생각을 하게 되는 법이지. 나는 그를 경계하고 형제로서 싸우고 싶지 않으니 그가 그런 마음을 먹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도 단호히 처리할 수밖에 없다.”사여묵은 숙청제와 대립하며 그를 분노하게 만들었지만 숙청제는 오히려 안도했다. 만약 그가 더 큰 계획이 있었다면 소 대장군의 일로 그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은 사여묵이 반역의 야망을 품고 있지 않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잠시 후, 전북망이 형부에 도착했고 이택이 직접 심문했다.전북망은 성릉관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숨김없이 고백했는데 그와 이방이 성릉관에서 사적인 관계가 있었다는 것도 솔직히 인정했다. 사실 그는 이미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비록 황제가 그를 보호해 주고 있었지만 세상에 드러난 사실들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는 녹분성 작전의 장군이고 또 이방과도 관계를 가졌다. 그러니
사여묵은 한쪽 무릎을 꿇고 있지만 여전히 물러서지 않았다. "공정성을 입증하기 위해 폐하께서는 형부를 통해 전북망을 심문하시고 그의 진술과 다른 사람들의 증언을 대조하여 사실을 밝혀주십시오. 신은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경 사람들은 우리가 전쟁포로를 죽이고 마을을 학살한 일에 대해 우리보다 더 잘 알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전쟁의 총책임자인 전북망을 배제한다면 그들은 더욱 분노하며 저희 협상에 진정성이 없다고 여길 것입니다."그는 고개를 들고 강한 눈빛으로 숙청제를 바라보며 계속 말했다. "게다가 성릉관의 군사와 백성들은 실망할 것이고 폐하께서 심복 무장을 키우려는 의도가 따로 있기에 오랜 세월 성문을 지킨 노장에게 모든 죄를 덮어씌운다고 생각할 것입니다.""쾅!"술잔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숙청제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는데, 눈 속에는 엄청난 분노가 서렸다. "무엄하도다!"오 대반은 몸을 떨며 숙청제에게 진정하라고 청한 뒤 사여묵에게 말했다."왕야, 더는 폐하를 노하게 하지 마십시오."숙청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사여묵을 위에서 차갑고 날카롭게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너의 공손한 태도는 모두 가식이었구나. 짐의 말을 거역하고 욕보이다니? 이런 일이 퍼지기라도 한다면 천하의 군사들이 짐에게 실망하지 않겠느냐?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보거라!"사여묵는 당당히 숙청제와 눈을 맞추며 말했다. "제가 무엇을 원하든지 모두 상국을 위한 것입니다. 도리어 여쭙고 싶습니다. 폐하께서는 신이 대체 무엇을 원한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평소보다 다른 사여묵의 모습에 숙청제는 화가 나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비록 숙청제가 군권을 빼앗은 건 사실이지만 아직 군심을 얻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남강 전투 후, 숙청제는 사여묵이 군무를 맡지 못하게 하여 서서히 군대에서의 영향력을 잃게 하려 했지만 그 과정은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며 아직 목적에 도달할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