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망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오늘의 싸움에서 완패했던 말하기 부끄러웠다.“참말입니까?”이방이 재차 물었다.전북망은 한숨을 쉬었다.“됐소, 그 얘기는 그만하오.”그러자 이방이 장난스럽게 말했다.“거 보세요. 저를 속이려던 거였군요. 이혼이든 별거든, 일이 해결됐으니 되어습니다. 저와의 이부를 경멸했다니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의 음험한 짓은 저는 흉내도 내지 못합니다. 그게 그녀의 진짜 능력이겠지요.”이방은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덧붙였다.“그런 능력들을 제가 흉내 낼 수도 없지만 나긋한 말투로 달콤하게 말할 수는 있습니다.”그녀는 손을 다소곳이 앞에 모으고 몸을 배배 꼬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낭궁님!”그러고 나서 일부러 몸을 떨었다.“세상에, 정말 너무 소름 끼치고 너무 가식적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가식적일 수 있습니까?”전북망도 소름이 쫙 돋았다. 그것은 이방의 가식적인 모습때문이였다.사실 송석석은 그렇게 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부드러웠지만, 결코 비굴하지 않았고, 온화하면서도 단호했으며, 절대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았다.이방은 콧노래를 부르며 뛰어갔다. 비록 예단의 절반은 돌려받지 못했지만, 송석석이 떠났으니, 그녀가 정실 아내가 되었다. 더 이상 평처가 될 필요 없었다.인생이란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그녀는 언제나 긍정적이었고, 절대 송석석처럼 유치하게 굴지 않으려 했다.전북망은 그녀를 따라가는 대신 호숫가에 앉았다.오늘 이혼령이 내려졌다. 마치 맑은 날의 벼락처럼 그의 머릿속을 더욱 혼란스럽게 했다.수많은 기억들이 떠올랐다.송석석과의 첫 만남, 그녀의 방문을 두드리고 청혼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녀가 몇 가지 질문을 하고 난 후, 그와의 혼인을 동의했을 때 그는 너무도 기뻤다.혼인 준비를 하며 그녀를 맞이할 때의 심경을 떠올렸다. 혼인 당일 출정해야 했을 때, 그는 송석석을 떠나기 싫었다.심지어 행군하는 동안에도, 붉은 면사포를 벗겼을 때의 송석석을 떠올리며, 자신이 그녀와
송세안은 송씨 가문의 자제들을 불러와 물건을 정리하도록 했다. 한창 바쁘게 움직인 후, 송세안과 송석석은 함께 저택 곳곳을 걸었다. 한때는 매우 활기찼던 저택이 지금은 너무 조용했다.송세안은 그녀에게 말했다. “이제 국공부에는 네가 혼자고, 하인도 본가에서 데려온 사람들뿐이니, 먼저 힘을 쓸 수 있는 남 집사를 찾도록 해라. 그리고 기가 센 하녀와 하인도 필요하다. 부엌과 정원, 마구간, 마차(馬廄車) 준비도 사람이 빠질 수 없다. 혹시 여의찮다면, 내가 대신 찾아주마.”송석석은 감사를 표했다.“안 그래도 바쁘신데, 폐를 끼칠 수는 없습니다. 황 마마와 양 마마가 알아서 할 겁니다.”송세안은 그녀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한 집안끼리 폐를 끼치다니 무슨 소리냐? 예전에 네 아버지가 군을 지휘할 때, 늘 우리 집안 형제들을 불러 모아 전쟁터의 위험한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우리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경외감에 가슴이 두근거렸고 무엇보다도 자랑스러웠다. 왜냐하면 우리 송씨 가문의 사람들이 나라를 지키고 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우리 가문에 무장이 없을 것 같구나.”송씨 가문의 다른 자제들은 대부분 글공부나 장사를 선택했다. 위망 높은 가문에서 무장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것이 정말 안타까웠다.송석석은 말이 없었지만, 눈에는 슬픔이 가득했다.“앞으로는 전씨 가문과의 연락을 끊고, 원망하지도 만나지도 마라. 너의 인생을 잘 살아가면 된다.” 송세안이 당부했다.“숙부님,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알고 있습니다.” 송석석은 고개를 숙였다.송세안은 그녀의 평온한 모습을 보며 말했다.“언젠가 전북망은 틀림없이 후회할 것이다.”송석석의 눈빛이 흔들림이 없었다.“그럴 테죠. 하지만 저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송씨 가문의 사람들은 놔야 할 때는 내려놓을 수 있었다.그녀의 굳센 모습에 송세안은 미소 지으며 만족스럽게 바라보았다. “내일은 내가 사람을 보내서 예단 가구를 다시 가져오게 할 테니, 너는 나설 필요 없다.”송석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국공부는 무장 세가(武將世家)였지만 견식이 있는 아가씨는 분명히 곁에서 시중드는 사람들이 글을 아는 것을 원할 것이다.“좋다, 너희는 아가씨 곁에서 시중들도록 해라. 이름은 나중에 아가씨께서 지어주실 거다.”네 사람은 매우 기뻐하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마마!”황 마마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 “아직 고맙다고 하기엔 이르다. 먼저 아가씨 곁에서는 규칙을 배워야 한다. 잘 익히지 못하면 등급이 내려갈 거다.”네 사람은 고개를 숙였다. “꼭 잘 배우겠습니다.”네 명을 고른 후, 두 마마는 또 몇 명의 하녀와 하인을 더 고용했다. 그리고 아행의 사람들에게 마부, 목수, 말을 관리하고 화초를 돌볼 사람들을 찾도록 했다.외원의 총괄 집사와 계원은 맨입으로는 구할 수 없었다.아행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폈다. “내일 보내드리면 마마께서 선택하면 되옵니다.”그는 매매 계약서를 건넨 후, 두 마마에게 붉은 봉투를 건네며 웃으며 말했다. “마마, 잘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필요하신 것이 있으면 저희 아행을 찾아주세요. 저희는 여러 가지 일을 다루고 있습니다.”마마는 붉은 봉투를 받고 살짝 고개를 끄덕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사람을 보내 아행을 배웅시켰다.아가씨가 이제 막 이혼하고 돌아왔으니, 사람들은 현재 어떤 상황인지 알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마마는 말을 아꼈고 아행들이 함부로 추측하여 소문을 퍼뜨리지 않도록 했다.아직 사람들이 다 모이지 않아서 황 마마는 오늘 뽑은 네 명의 하녀를 데리고 아가씨에게로 갔다.송석석은 여전히 출가 전 살던 영롱각(玲瓏閣)에 살고 있었다. 영록각은 그녀가 출가한 후로 아무도 살지 않아 청소 외에는 손댄 적이 없었다. 그래서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이곳은 그대로였다. 핏자국이 없었기에 벽을 덧바를 필요도 없었다.영롱각에는 그녀의 무기를 두는 무기고가 있었고, 그녀가 읽었던 책을 두는 작은 서재도 있었다. 대부분은 병서 책론(兵書策論)이었다.출가한 1년은 마치 악몽 같았다. 만약 그녀가 혼인하지
하지만, 이 일은 이제 조사할 수 없다. 첩자들은 거의 죽었고, 살아남은 자는 서경으로 도망갔기에 찾을 수 없었다. 그녀는 아버지와 형제들을 떠올리며 설움을 삼켰다.아버지와 형제들은 남강을 되찾았지만, 지키지 못하고 다시 빼앗겼고, 결국 전장에서 비참하게 전사했다. 만약 북명왕이 승리하여 남강을 되찾는다면, 아버지와 형제들의 소원을 풀어주는 셈이 될 것이다첫날 밤, 송석석은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꿈에 어머니, 형수, 조카들이 살해당하는 장면이 떠올라 한밤중에 깬 그녀는 다시 잠들 수 없었다. 그녀는 천장을 응시하며 끊임없이 생각했다.친인들의 상처를 보면 범인의 극악무도함이 낱낱이 드러났다. 그들은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 전쟁 중 서경이 패했다고 해서 이렇게 할 수는 없다. 그들은 전에도 패한 적 있었다. 당시 아버지와 형제들에게 3만 병사를 잃었을 때에도 서경의 첩자들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 전쟁에서는 왜 이렇게 움직이는 걸까?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면서까지 고아와 과부를 죽이려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뒤척이던 송석석은 결국 날이 밝을 때까지 잠들지 못했다.시중들러 온 보주는 초췌한 송석석의 얼굴을 보고 그녀가 전북망의 무정함에 상처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하여 그녀는 묻지도 못하고 몰래 눈물을 훔쳤다.다음 날, 송세안은 송씨 가문의 자제들을 거느리고 예단을 옮겼다. 담나무로 만든 탁자와 의자, 가구, 금실로 수놓은 병풍 등 예단 목록에 있는 모든 것을 챙기며 조금도 남기지 않았다.노부인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 통곡하며 송석석이 무정하고, 옹졸하고 이기적이면서 질투심으로 가득한 사람이라고 욕설을 퍼부었다.그 말을 들은 송세안이 너무 화가 나서 크게 소리쳤다. “내 조카가 너희들에게 얼마나 지극정성이었는지, 이웃들에게 한번 물어보아라. 그녀를 나쁘게 말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석석이가 옹졸하고 이기적이라 나무라면서 왜 너희 장군이 무슨 나쁜 짓을 했는지는 물어보지 않았느냐? 혼인날 출정하고 돌아와서는 전공을
노부인은 발을 동동 굴렀다.“모두 가져가고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앞으로 장군부는 내 약조차도 살 수 없게 되었다.”전북망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어머니를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걱정 마세요. 남강 전장은 나와 이방이 필요할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 공을 세워 돌아올 것입니다.”노부인은 목이 터져라 울며 말했다. “어떻게 이렇게 무정할 수 있느냐? 평처가 어떻다고 용납할 수 없다는 거냐? 고아 주제에 자신을 귀족이라고 생각하는 거냐?”전북망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이제 그녀는 국공부의 적녀이니, 당연히 귀족이었다.“가문이 전멸한 건 자업자득이다, 자업자득!” 노부인이 화를 내며 말했다.서경 첩자들에게 몰살당한 송씨 가문에 대해 전북망도 이상하게 여겼다. 서경 첩자들이 왜 그 노약자들을 죽였을까?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하지만 이제 송씨 가문은 그와 이제 상관이 없었다. 그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송석석은 반드시 후회할 것이다. 사실 이 일을 알고 그는 그녀를 도와 조사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가 그 기회를 거부한 것이었다.송씨 가문 사람들이 값비싼 가구를 모두 가져가는 것을 본 노부인은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던 중 복도에 서서 차가운 눈빛으로 광경을 지켜보는 큰 며느리 민씨가 보였다.노부인은 화가 치밀어 올라 말했다. “너는 왜 막지 않았느냐?”민씨는 담담하게 말했다. “저는 그런 뻔뻔한 짓을 할 수 없습니다.”노부인은 더욱 화가 났다.“무례하다! 너도 나를 거역하려는 거냐?”그런 노부인을 보며 민씨는 송석석이 시집온 후의 일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지금의 사악하고 독한 시어머니의 모습에 마음이 차가워졌다. “무례라. 송석석은 효도했지만, 얻은 게 뭐가 있는 지요? 곧 시집올 이방도 그녀처럼 효도하길 바라시는 건 아니겠지요?”“반드시 그럴 것이다!” 노부인은 악에 받쳐 말했다. “그 년의 이름을 다시는 꺼내지 마라. 그 애가 정말 효도했다면 내 약을 끊지 않았을 것이다.”
송세안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예단을 모두 진국공부로 옮겼다. 송석석이 감사 인사를 하며 모두를 안으로 들어와 차를 마시라고 청했다.그러나 송세안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차는 다음에 마시겠다. 지금은 다른 중요한 일이 있어서. 아, 그리고 전북망이 너에게 후회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하더구나.”송석석은 시선을 떨구었다. “그에게 전할 말은 없습니다. 숙부님께서 바쁘시니 강제로 붙잡지는 않겠습니다.”송세안은 그녀의 대답에 매우 만족했다. 송씨 가무은 모든 것을 잃어도 이런 기개만큼은 잃어서는 안 되었다. 그는 사람들을 이끌고 떠났다. 차를 마시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진국공부가 아직 정리되지 않았고, 새로 온 사람들이 아직 익숙치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 혼자라면 괜찮았겠지만, 다른 집안 자제들도 데리고 있었다. 사람이 많으면 말이 많은 법.자칫 부족한 점이 드러나면 좋지 않은 소문이 퍼질 수 있었다. 지금 진국공부는 사소한 루머도 견딜 수 없었다.영롱각으로 돌아온 송석석은 서신을 보내 사문에 빨리 전달하게 했다. 내용은 서경과 상국의 성릉관에서 치른 전투에 대해 조사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짐작하는 부분이 있었지만 확신할 수 없어 조사하고 증거를 얻어야 했다.외조부 소 대장군과 셋째 삼촌, 일곱째 삼촌은 성릉관(成凌關)을 지키고 있었다. 작년 말, 성릉관은 남강 전장을 지원하기 위해 10만 명의 병력을 빌려주었고, 그로 인해 서경과 성릉관이 전투를 벌였을 때 외조부는 조정에 지원군을 요청해야 했다. 이때 전북망과 이방은 지원군으로 갔던 것이다.그러나 이 전투의 실제 상황이 어땠는지 그녀는 알지 못했다. 외조부와 삼촌들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녀의 의심이 사실이라면 외조부는 원수로서 큰 죄를 짓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그 후 한 달 동안, 송석석은 문을 닫고 손님을 만나지 않았다. 별로 찾아오는 이도 없었다. 송씨 가문은 중요한 일이 아니면 그녀를 방해하지 않았다. 집 안은 거의 정리되었고, 그녀를 시중드는 몇 명의 하녀
문제는 아무도 그녀에게 병사들이 올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의 머릿수는 백여 명이나 되었고 많은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에, 청첩장을 받고 온 손님들이 앉을 자리가 없었다. 이들은 모두 체면을 중시하는 문무 관리들이며, 조정의 고위 인사들이었다. 이들과 관계를 잘 유지하면 전북망이 관직 생활에 큰 도움이 될 텐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모두 매서운 바람에 떨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정말로 안타까울 뿐이었다.노부인은 급히 민씨에게 달려가 빨리 해결책을 찾으라고 했다. 당황한 민씨도 어쩔 줄을 몰라 했다.아무도 그녀에게 병사들이 올 것이라고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손님 명단에 따라 자리를 배치했었다.매우 당황한 손님들은 그저 막무가내로 와서 자리를 차지하고 먹고 마시는 병사들을 보며 어리둥절해했다.게다가 신부와 장난치며 웃고 떠드는 모습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그들 중에는 황제의 체면을 보고 온 명문가의 귀족들도 이런 광경은 처음이다.비록 명문가는 아니지만 여러 세대에 걸쳐 내려온 가문인데 황제가 주관하는 결혼식에서 이런 혼란을 가져온 장군부의 처사가 이해되지 않았다.처음에는 주인집의 안내를 기다리며 서 있었지만, 아무도 자리를 마련해주지 않자, 상황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누구도 아무 말 않고, 전북망에게 조용히 다가가 집에 급한 일이 있어 떠난다고만 했다. 전북망은 완전히 당황했다. 그도 병사들이 올 줄은 전혀 몰랐다. 손님들이 가족과 함께 떠나는 것을 보며 그는 마치 뺨을 한 대씩 맞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너무 부끄러웠고 화가 치밀기 시작했다.그는 아직 자리에 앉아 있는 손님들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이방을 끌어당겼다. “나랑 얘기 좀 해야겠소.”이방은 일어서며 병사들에게 웃으며 말했다. “먼저 마시고들 있어. 금방 돌아올게.”“장군님이 무지 급했나 봅니다? 하하하!”“장군님, 빨리 끊내야 합니다. 이제 곧 술도 따라야 하잖습니까”“하하하, 맞습니다. 부대 오두막이 아니라는 것만 명심하십시오.”이런 노
이방은 그의 비난이 전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며 냉소했다. “오늘 막 시집온 날인데 이렇게 큰 소리로 나를 꾸짖다니, 앞으로는 어떨지 겁이 납니다. 그리고 이 병사들도 당신과 함께 생사를 함께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연회에 초대한 것을 미리 말하지 않은 잘못이긴 하지만, 이렇게 큰 경사를 치르면서 여분의 자리도 준비하지 않는 가문이 대체 어디 있단 말입니까? 그들이 진영을 이탈했다는 것은 당신이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유 장군은 그렇게 비합리적인 사람이 아니니까요.”이방이 기세를 올리자, 전북망은 약해졌다. 결혼식 날 그녀와 불화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던 그는 그저 재차 확인할 뿐이었다.“그럼, 그들이 진영을 떠난 것은 유장군의 허락을 받은 거요?”이방은 유 장군에게 묻지 않았고 명령을 내려 반드시 참석하게 했다. 유 장군은 이야기가 잘 통하는 사람이라 그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그래서 그녀는 자연스럽게 이 문제를 건너뛰었다. “이건 준비가 부족한 것입니다. 혼인식을 크게 하는 가문이 여분의 자리도 준비하지 않다니요? 저는 이 혼인식을 누가 준비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체면을 구기게 하고, 어떻게 저를 탓할 수 있는 지요?”전북망은 조금 자신이 없어졌다. 일반적인 대가족에서 경사를 치를 때, 초대받은 손님들 외에도 이웃들에게 음식을 돌린다고 알고 있었다. 만약 어머니와 형수가 외부에 음식을 돌렸다면 병사들이 왔을 때 최소한 앉을 자리가 있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손님의 자리를 빼앗지 않았을 것이다.그는 분노를 큰형수 민씨에게 돌렸다. 결혼식의 모든 일은 그녀가 준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굴이 붉어진 이방이 조금 전 병사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친밀하게 행동하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술을 그만 마시고 방으로 돌아가오.”손님들이 모두 떠난 것을 본 이방은 이제 병사들과 함께 있어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그녀의 특별함을 알아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어떤 힘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걷기도 버거워 보이던 노부인이 갑자기 날렵하게 움직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금숙과 천마마조차 그녀를 따라잡지 못할 정도였다.노부인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자신의 심장 박동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눈앞에는 정원의 풍경도, 주변의 사물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머릿속에는 수년간 불타오르던 큰` 화재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불길 속에서 울려 퍼지던 처절한 비명이 귀를 맴돌았다.그때 그녀는 누군가에게 끌리고 붙잡혀 움직이면서도 그 불길이 모든 것을 삼키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았다.그녀의 막내아들은 그렇게 불 속에서 죽었다.불길 속에서 여러 시신이 끌려 나왔지만 그녀는 그 시신들 중 어느 것이 자신의 아들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그녀는 몇 번이나 의식을 잃을 정도로 크게 오열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아들이 죽지 않았을 가능성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감히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병약해 걷는 것조차 누군가의 부축이 필요했던 아들이 어떻게 그 불바다 속에서 살아남았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노부인이 본채에 도착했을 때, 그녀의 눈에는 오직 한 사람만이 보였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눈물이 계속 흘러내리면서 그녀의 시야는 더욱 흐릿해졌다. 그녀는 온 힘을 다해 그 희미한 그림자를 따라 걸어갔다.노부인은 고개를 약간 기울이며 힘없고 불확실한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네가 내 아들이냐?"왕이장은 그녀를 알아보았다. 마음속으로 가장 원망스러워했던 사람이었다.하지만 그 순간 노부인의 끊임없이 흐르는 눈물을 보고 왕이장은 가슴 한구석에서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그는 움직이지 않고 대답도 하지 않았다."어머니, 저 아이가 교여예요." 왕준이 울면서 옆에서 외쳤다."아……!"노부인은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지르며 왕이장을 끌어안았다. 그녀의 기억 속 깊은 과거가 검고 짙은 밤을 뚫고 되살아났다. 그녀의 가슴은 마치 한 조각이 도려내
왕준이 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화난 목소리로 외쳤다."여기서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거냐? 어머니께서 언제 친아들을 버린 적이 있다고 그래? 나도, 큰형도 잘 지내고 있지 않느냐!""너희는 잘 지낸다고? 그럼 나는?"왕이장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너무 힘을 준 나머지 위와 목이 자극을 받아 고통스러워졌다. 그는 위를 부여잡고 웅크린 채 앉아 내력으로 속을 진정시키려 애썼다.그의 말에 왕준은 한동안 얼어붙었다. 그러다 무언가를 떠올린 듯 그를 급히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최씨 역시 무언가 기억난 듯 당황스러운 기색을 보였다. 그녀가 처음 집에 들어왔을 때 들었던 이야기였다. 어머니에게는 세 명의 아들이 있었고, 막내아들은 병에 걸려 치료하지 못해 사찰로 보내져 길러졌다. 그러나 사찰에 화재가 발생해 어머니는 막내아들이 불타 죽는 것을 두 눈으로 지켜봐야 했다.‘설… 설마 그때 죽지 않았던 건가?’"이름이 무엇이냐?"왕준은 이미 울먹이며 물었다. 그의 입술은 계속해서 떨렸다. 그는 왕이장을 간절히 바라보았다."노부인에게 물어보십시오, 노부인에게."왕이장은 위를 부여잡고 힘겹게 의자에 앉아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더 이상 힘이 없었다.최씨는 다가가며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기억났어요. 당신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아요. 여러 번 백부 문 앞에서 서성였잖아요."왕이장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최씨는 곧바로 시만자를 바라보았다.하지만 시만자 또한 최씨를 보지 않고 왕이장에게 말했다. "왕노오, 여기까지 왔으니 이들에게 분명히 말해. 왕교여라는 이름으로 어릴 적 여자 아이처럼 길러졌고, 다섯 살 때 사찰에 버려졌으며 학대받아서 몇 달 만에 죽을 뻔하다가 또 다시 버려졌다고. 사부가 널 주워서 살려줬지. 너는 아무 잘못도 없어. 잘못한 건 이들이야. 그러니까 제대로 따져봐."왕준은 마치 벼락을 몇 차례나 맞은 사람처럼 멍하니 굳어버리고 말았다. 눈동자조차 움직이지 않았다.그리고 곧 크
술에 취한 두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평서백부에 도착했다. 시만자의 신분을 아는 덕분에 밤늦은 시간임에도 문이 열렸다. 하지만 최씨가 병을 앓고 있는 관계로 하인은 왕준과 남희에게 이를 알리러 갔다.소식을 들은 왕준과 남희는 다소 당황스러웠다. 이렇게 늦은 밤에 시 소저가 대체 무슨 일로 온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왕준이 먼저 물었다.“남자를 데려왔다고? 그 남자는 누구인가?" 문지기가 답했다."전혀 본 적이 없는 이였고, 태도도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들어오자마자 여기저기 둘러보더니 의자를 두 개나 발로 차서 넘어뜨렸습니다. 입으로는 험한 말을 뱉으며 정말 너무한다며 계속 중얼거렸습니다."왕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분란을 일으키러 온 건가? 혹시 왕청여가 화를 산 사람인가?"그는 최근 이런 일이 몇 차례 있어 겁을 먹은 상태였다. 누군가 찾아와 문제를 일으키면 첫 번째로 왕청여가 일을 벌인 게 아닌지 의심하곤 했다."아닐 겁니다." 문지기가 잠시 망설이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그 사람이 욕한 대상은 노부인과…… 돌아가신 선대대인 이었습니다."왕준은 작위를 물려받지 못했기에 백작이라 불리지 못했다. 그래서 평서백부의 하인들은 그를 선대대인이라 부르며 존경을 표했다.왕준은 효심이 매우 깊은 아들인지라, 어머니와 돌아가신 아버지를 욕하고 있다는 말을 듣자마자 크게 분노했다. 시만자가 데려온 사람인지 아닌지는 상관하지 않고 바로 말했다."가자, 내가 직접 나가서 누군지 보겠다. 평서백부에 와서 감히 행패를 부리다니, 무슨 배짱을 가진 놈인가 보자!"왕준은 죽은 자는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죽은 이를 욕하는 것은 성격이 비열하고 교양이 없는 사람만이 할 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분노에 차 남희를 데리고 성큼성큼 나갔다.한편 왕이장이 의자를 발로 차는 소란이 있자, 다른 하인이 이를 최씨에게 보고하러 갔다. 모두가 이런 문제를 진정시킬 사람은 오직 최씨뿐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왕준도 관직이 있기는 했지만, 성격이 대게
심청화가 급하게 그를 따라 나서서 붙잡자, 왕이장은 걸어가며 손을 휘저으면서 말했다."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말할 가치도 없습니다."심청화는 왕이장에 대해 너무 잘 알았다. 마음속에 무언가 괴로움이 있어도 그는 절대 내색하지 않고 그저 다른 곳으로 떠나 은둔하는 것을 선택했다."이건 우리가 추측한 것일 뿐이야. 진실이라고 단정할 수 없어."왕이장이 웃으며 말했다."괜찮습니다. 정말 괜찮아요. 이제 술을 마시러 갈 겁니다. 마침 지금 가을바람도 불고 날씨도 시원한데, 미인과 함께하면 더할 나위 없겠죠."시만자가 나서서 그의 손목을 붙잡고 말했다."가자. 내가 함께 마셔줄게."시만자도 지금이 되어서야 그가 사실 첩의 아들이 아니라 평서백부인의 친아들이며, 왕표와 왕청여와 같은 친남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왕이장은 시만자가 따라오는 것 또한 원하지 않았다. 그는 시만자에게 말했다."내가 가려는 곳은 너에게 어울리지 않는 곳이야."시만자는 막무가내로 그의 손을 잡아 끌며 말했다."술값은 내가 계산해줄게."하지만 왕이장은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태도가 날카롭고 신랄하게 변한 것이다."돈 있어. 따라오지 마. 정말 내가 가난하다고 생각하냐? 정말 네가 나를 먹여 살려야된다고 생각해? 나는 네가 자꾸만 살려준 은혜를 갚으려 해서 그랬던 거야. 너희 여자들은 정말 진절머리가 나. 스스로 얼마나 귀찮은지조차 모르잖아."시만자는 전혀 화내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여자들만 귀찮아? 남자들은 안 귀찮고?"그녀의 웃는 얼굴을 보며, 왕이장은 못마땅한 듯 말했다."다 귀찮아. 똑같이 귀찮아."시만자는 그의 손을 계속 잡아끌며 마구간 쪽으로 향하며 말했다. "그럼 말타러 가자. 남자도 여자도 보지 않으면 되잖아. 바람이 얼마나 시원한데. 바람 맞으며 말을 타면 모든 걸 날려버릴 수 있을 거야.""안 간다고!"“가자니까!”시만자는 웃음을 거두고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말 타러 가지 않으면 술을 마시러 갈 거야. 네가 나랑 같이 가야 해. 나도
염선생과 노 집사가 여러 경로를 통해 조사한 결과, 이 일이 결코 간단한 사건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심청화의 말에 따르면, 사부님께서 처음 조사한 바로는 왕전은 그 아이가 자신에게 복을 가져다준다고 했었다. 다만 몸이 상해 이미 건강이 나빠진 탓에, 진성의 많은 명의들에게 치료를 받았지만 효과가 없어서 결국 어느 사찰로 보냈다는 것이다.이 점은 왕전이 이 아이에게 부성애를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게다가 막내아들은 대개 더 많은 사랑을 받기 마련이다.하지만 노 집사와 평서백부의 몇몇 노관리와 노집사들이 제공한 정보에 따르면, 왕전은 죽은 그 아이를 매우 싫어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어떤 태도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나중에는 정말로 냉대했다는 것이다.그들은 몇 가지 사례도 제시했다.지금의 왕이장이 옛날 그 당시에는 왕교여라고 불렸다. 때는 할아버지의 생신 날, 할아버지는 그를 직접 안고 생신 연회장에 데리고 들어갔다. 그때는 할아버지의 건강이 많이 회복되어 정정하게 걸으실 수 있었다.그러나 그 일 이후, 왕교여가 할아버지를 피곤하게 했다는 이유로 왕전은 그를 끌어내 손바닥을 열 대나 맞는 벌을 내렸다.이 일은 다른 이들이 알지는 못하지만, 하인들 중 일부가 목격했다고 한다.또 다른 예로, 할아버지가 왕교여를 데리고 사냥을 갔을 때 흰 여우를 잡아 여우 가죽을 그에게 주었다. 그러나 나중에 그 가죽은 셋째인 왕청여가 입고 있었다.그 외에도 왕전이 왕교여에게 싫은 기색을 드러냈다는 이야기는 하인들 사이에서 여러 번 회자되었다. 노 집사에게 정보를 제공한 이들도 이를 보았다고 말했다.당시 분가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가 같은 저택에서 생활했다. 왕전은 감정을 잘 숨기지 못하는 성격이어서 얼굴에 감정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았다. 본인조차 이를 자각하지 못했을 정도였다.또한 왕교여의 병을 치료할 때 당시 의원은 모두 그의 할아버지가 초빙한 명의들이었다. 그렇게 약을 달이는 과정에서 몇 가지 약재가 바뀌었는데, 왕전은 약을 달이는 하녀나 하인들에게
하지만 그녀는 순간 집사의 보고가 매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매각한 점포가 곧바로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으며, 그 가격 또한 상당히 높게 책정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시세보다 10~20% 더 높은 가격이었다.그녀는 집안을 관리한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점포 거래를 여러 번 해보았다. 거래는 대개 시세를 기준으로 이루어져 있다. 간혹 한두 건 정도 시세를 약간 웃도는 경우도 있었지만, 최근 매각한 모든 점포가 이처럼 높은 가격에 거래되니 매우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그래서 그녀는 왕비가 자신이 점포를 매각하는 것을 알고, 자신이 급히 은자가 필요한 줄로 여겨 일부러 높은 가격에 매입한 것이 아닐까 의심하기까지 했다.그녀는 집사에게 매매 계약서를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계약서에 써 있는 매수인의 이름이 고효풍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녀가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북명황실에 고효풍이라는 이름의 집사가 있느냐?" 최씨가 집사에게 물었다."들어본 적 없습니다.""그럼 이 매수인은 대체 누구인 것인가?"그녀의 마음속에 약간의 불안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시세보다 이렇게 높은 가격에 매수하다니, 혹시 나중에 어떤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염려되었다.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모든 거래가 합법적이고 합리적으로 진행되었으며 공식 문서를 통해 등기되었고, 또한 증인이 보증한 합법적인 절차였기 때문에 큰 문제가 생길 이유는 없어 보였다."됐다. 일단 신경 쓰지 말고 남은 점포는 더 이상 팔지 마라. 어머니를 놀라게 할 필요는 없으니." 그녀거 집사에게 말했다.점포를 매각하는 일은 그녀가 노부인 몰래 진행한 것으로, 심지어 왕준이나 남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그들이 집안일은 관리하지 않으니 이런 일에는 관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들이 이를 알게 되더라도 나중에 이유를 설명하면 될 터였다. 어차피 이 일은 그녀만을 위해 진행한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매수인에 대한 의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날 송석석이 그녀를
홍이의 말에 왕청여가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대답했다.“하지만… 내 서방님은 출세를 못하잖아. 가서 계급도 달지 못한 병사를 한다는데.. 그럼 내 체면은 어떡하라고? 난 내 자신을 더욱 소중하게 대하고 싶은 거야. 그때 당시 송석석이 내 서방과 이혼할 땐 어명까지 내려졌잖아. 그런데 난 왜 안 되는 거야? 내가 뭐가 부족해서 이렇게 손가락질을 받고 욕을 먹어야 하는 거냐고.”홍이는 이 모든 게 왕청여가 자초한 일이라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감히 그럴 수 없었다.“사람과 사람 사이를 비교할 수는 없는 겁니다. 각자 다른 선택으로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습니까? 북명 왕비님보다 못한 사람도 있지만 더 행복하게 살고 있는 사람도 분명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세상 모든 사람들보다 행복한 건 아닙니다.”왕청여가 씁쓸하게 웃으며 물었다.“왜 예전에는 나한테 이런 말을 해주지 않은 것이냐?”“제가 얘기를 해도 아가씨께서는 제 말을 듣지 않았을 겁니다.”문발을 내린 홍이가 마부에게 말했다. “이보시게, 이만 출발합시다.”마차 안에 멍하니 앉아있던 왕청여는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고 앞으로 그녀를 원하는 남자는 더 이상 없을 거라는 생각에 너무 불안했다.‘송석석은 한 번 이혼을 하고도 외모가 수려하고 나라에 큰 공까지 세운 서방을 만날 수 있는데 난 왜 안 되는 걸까?’이런 생각에 왕청여는 홍이의 손을 덥석 잡으며 하얗게 질린 얼굴로 물었다.“홍이야, 설마 나중에 전북망 그 사람이 나라에 큰 공을 세우는 일은 절대 없겠지?”홍이가 담담하게 대답했다.“아가씨, 사람 일은 모르는 겁니다. 그분은 나중에 다시 장군님이 될 수도 있고 혹은 다시는 재기하지 못하고 평생 그저 평범하게 살다가 결국 장군부까지 잃을 수도 있겠죠.”“그 사람 능력으로 다시 재기한다는 건 말도 안 돼. 내가 그 사람과 이혼하지 않고 계속 산다면 늙어 죽을 때까지 예물마저 다 탕진하고 결국 장군부까지 빼앗겨 길바닥에 나앉게 될 수도 있어. 그럼 내 인생은 정말 망가지는 거야. 내
시만자는 오늘 계속 방씨 가문에 있었다. 오수인의 몸 상태가 안 좋아서 약왕당의 청작을 불러서 방씨 가문으로 같이 간 것이다.저녁이 될 때까지 방씨 가문에 있었던 시만자는 방씨 가문 사람들을 통해 오늘 편서백부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 듣게 되었다. 방천허의 부인은 이 사실을 절대 오수인에게 알리지 말라고 명령을 내렸지만 그리 오래 숨길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간 남자와 간통한 것도 모자라 낙태까지 하다니. 방시원은 이제 더 이상 왕청여의 서방이 아니지만 왕청여가 방씨 가문에 있을 때 벌어졌던 일이기에 방시원도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외부에 방시원이 잠자리에 약해서 왕청여가 다른 남자에게 관심이 생긴 게 아니냐는 추측도 남발했다. 그렇지 않으면 왜 전장에 나간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사이에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이와 반대로 왕청여가 태생부터 한 남자에 만족하지 못하는 천박한 여자라는 비판도 무성했으며 노세진을 뻔뻔하다고 욕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방씨 가문에서 착한 마음으로 노세진을 거둬줬는데 노세진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고, 파렴치한 인간이라고 손가락질을 했다.사람들의 평가를 종합해보면 결론은 하나였다. 노세진과 왕청여는 천벌 받아 마땅한 나쁜 놈들이고 방시원은 아무 잘못 없이 억울하게 엮였다는 결론이 내렸다. 반면, 전북망을 언급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전씨 가문에 어떤 일이 벌어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전북망에 큰 관심이 없었고 심지어 왕청여와 이혼한 사실도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이날 밤, 함께 황실로 돌아온 시만자와 송석석은 오늘 서로에게 있었던 일을 상대방에게 얘기해주다가 이내 동시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전에는 구경 삼아 지켜보던 일이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자 시만자와 송석석도 걱정되고 마음이 불편했다.한편, 현이는 오늘 밤에도 무술을 연습하러 찾아왔고 평소보다 더 열정적으로 연습에 임했다. 현이는 능력이 부족한 자신이 도울 수 없는 일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최대한 빨리
송석석은 사람을 시켜 약왕당으로 가서 홍작을 모셔왔다. 다행히 이마의 상처가 깊지 않았고 신속적으로 지혈도 했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하지만 며칠 동안 고열을 앓고 있었던 최씨는 몸이 허약한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화까지 낸 탓에 새까만 피를 왈칵 토했을 뿐만 아니라 의식도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최씨 눈가에서는 계속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송석석이 아무리 닦아도 눈물은 계속 흘렀다.“의원님, 상황은 좀 어떤가요?”홍작이 최씨에게 진맥 검사를 마치자 송석석이 물었고 홍작은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부인께서 고열을 며칠이나 앓으셨는데 조금 전에 등을 확인해보니 폐에 문제가 조금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화병 때문에 간에도 어혈이 생겼습니다. 전에 복용하시던 약으로는 더 이상 해결되지 않을 겁니다. 일단 극약 처방으로 간과 폐를 치료하고 나머지 부분은 몸조리를 통해 천천히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 이렇게 과로하시면 절대 안 됩니다.”말을 하던 홍작은 송석석을 구석으로 끌고 가서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간에 어혈이 심각한 상태입니다. 이는 마음속에 늘 화병이 잠재되어 있어서 생긴 현상입니다. 부인께서 마음속에 어떤 일을 숨기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계속 이렇게 혼자서 쌓아 두면 나중에 큰일이 날 수도 있습니다.”송석석은 최씨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혹시 왕표가 반역 사건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집안 사람들까지 엮이지 않을까 매일 전전긍긍하면서 속앓이를 했을 것이다.“일단 약을 좀 복용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홍작은 말을 마치자마자 돌아서서 떠났다.송석석은 밖으로 나와 순방영 사람들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절대 아무한테도 얘기해서는 안 된다고 입단속을 단단히 시켰다.이내 순방영 사람들까지 떠났고 송석석은 돌아선 순간, 기둥에 가까스로 기댄 채 눈이 벌겋게 충혈된 왕청여를 발견하게 되었다.왕청여는 다음 순간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모습으로 송석석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북명 왕비님, 제가 뭐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