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3화

작가: 유애
보주가 지참금 목록을 가져오며 말했다.

“근 1년 동안, 아가씨께서 이 집안 살림에 보탠다고 사용한 화폐만 해도 6천 냥이 넘어요. 그래도 다행히 상점과 주택, 장원은 그대로예요. 또한 부인께서 남겨주신 예금 증서와 집문서, 땅문서도 그대로 상자에 담겨 있어요.”

“알겠어.”

송석석은 목록을 보며 전에 어머니가 준 지참금을 떠올렸다. 그녀의 어머니는 혹시라도 딸이 시집에서 고생할까 봐 참 많은 지참금을 챙겨줬었다. 정말 그리움이 사무쳤다.

옆에 있던 보주도 그녀의 기분에 공감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이곳을 나간다면 저희는 어디로 갑니까? 진북후부, 아니면 매산입니까?”

송석석은 아직도 그 처참했던 진북후부의 현장이 생생했다. 참을 수 없는 슬픔이 가슴속에서 밀려 나왔다.

“어디로 가든 여기 있는 것보다는 낫겠지.”

“아가씨, 이대로 떠나면 진짜 후회 안 하시겠어요?”

송석석이 담담히 답했다.

“후회할 게 뭐 있어. 내가 떠나지 않으면 평생 이들 사이에 괴롭게 살아야 할 텐데. 보주, 우리 집엔 이제 나밖에 없어. 내가 잘 사는 모습을 보여줘야 우리 가족들도 저승에서 마음 편히 쉬지.”

“아가씨!”

보주가 기어이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녀는 송석석과 마찬가지로 진북후부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었다. 송석석의 가족들이 몰살당할 때, 보주의 가족들도 함께 희생되었다.

장군부를 떠나게 되더라도, 진북후부로 돌아가는 건 편치 않았다. 그곳은 두 사람 모두에게 큰 아픔이었다.

“아가씨, 정말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송석석이 한층 깊어진 눈동자로 답했다.

“있기는 하지. 폐하께 아뢰어 그동안 아버지와 오라버니들이 이룬 공로를 명목으로 교지를 철회해 달라고 요청해 봐야지. 통하지 않는다면, 금란전(金鑾殿: 황제의 궁) 벽에 확 머리 박고 죽어버리겠다고 협박도 해보고.”

보주가 놀라 송석석의 다리를 부여잡았다.

“아가씨, 그건 절대로 아니될 말입니다!”

송석석이 냉철히 눈을 빛내며 나지막이 웃었다.

“농담이야. 설마 내가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할까? 교지를 철회해주지 않는다면, 이혼을 허락해달라고 요구할 거야.”

전북망이 이방이 이토록 당당할 수 있는 건, 황제의 교지 덕분이었다. 만약 교지가 철회된다면, 혼인의 정당성이 없어진다. 송석석은 떠나더라도 쫓기듯이 떠나는 것이 아닌, 당당히 떠나고 싶었다. 어차피 부모가 남긴 재산이 있었기에, 그녀는 평생 일하지 않아도 돈 걱정은 하지 않고 살 수 있었다. 그러니 마음이 편한 대로 움직이고 싶었다.

이때, 밖에서 누군가가 송석석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부인, 노부인께서 부르십니다!”

보주가 조용히 옆에서 속삭였다.

“노부인의 시녀, 취아의 목소리옵니다. 노부인께서 아가씨를 설득하려고 부르시는 것 같습니다.”

방엔 전북망의 어머니뿐만 아니라, 큰형 전북경과 그의 부인 민씨, 셋째 여동생 전소환 그리고 다른 서출(庶出)의 자식들도 함께 있었다. 그런데 유독 작은집의 노부인 육씨만, 이 상황이 달갑지 않은 듯 표정이 좋지 않았다.

“어머님, 작은어머님, 큰아주버님, 큰형수님!”

송석석은 여전처럼 차례대로 인사를 건넸다.

“석석아, 이리 오너라.”

노부인이 그녀를 침대 앞으로 부르더니, 친근하게 손을 잡아왔다.

“이제 북망이가 돌아왔으니, 너에게도 의지할 곳이 생겼구나. 지난 1년 동안 정말 고생이 많았다. 친정도 그렇게 되고, 너의 가문엔 이제 너 혼자뿐이구나. 그래도 다 지나갔다.”

노부인이 노련한 말솜씨를 뽐내며 서두를 떼기 시작했다. 하지만 송석석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녀의 말속에 담긴 뜻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너는 이제 혼자이니, 앞으로 모든 일은 전적으로 자신들에게 달렸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송석석이 잡힌 손을 슬며시 빼내며 담담히 말했다.

“어머님, 오늘 이방 장군과 만나셨다고 들었습니다.”

노부인은 그녀의 직설적인 화법에 놀란 듯 잠시 표정이 굳어졌지만, 이내 다시 표정을 가다듬으며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만났다. 성격이 꽤 거칠고 급하더구나. 외모도 너와 비교할 바가 못되고.”

송석석이 노부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다면 어머님은 이방 장군이 이 집에 들어오는 거, 탐탁지 않다는 말씀이십니까?”
댓글 (1)
goodnovel comment avatar
이호정
2024. 10. 07. AM 07:06
댓글 모두 보기

관련 챕터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4화

    노부인이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이제 겨우 한 번 만나봤을 뿐인데, 함부로 판단하고 싶지는 않구나. 그리고 어차피 폐하께서 정하신 혼사, 무를 수는 없잖니. 앞으로 두 사람은 밖에서 나랏일을 하고, 너는 내실 관리하면서 함께 영광을 누리는 것도 나쁘지 않잖니.”“나쁘지 않죠.”송석석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다만 명색이 장군님이신데, 첩으로 들어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옵니다.”노부인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반문했다.“그게 무슨 말이니? 폐하께서 하사하신 혼인인데, 어떻게 첩으로 들어오게 할 수가 있겠어. 게다가 그녀는 조정(朝廷)의 대신, 나랏일 하는 관리(官員)다. 그런 분을 어떻게 첩으로 앉힐 수가 있겠니? 당연히 평처로, 본부인과 다를 바가 없는 대우를 받아야지.”송석석이 대답했다.“당연히 본부인과 다를 바가 없는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요? 조정에 그런 규칙도 있었습니까?”노부인이 다소 냉담해진 표정으로 다시 말을 꺼냈다.“석석아, 너 마음이 넓은 아이였잖아. 장군부에 시집왔으면, 장군부의 며느리 답게 굴어야지. 병부(兵部: 군사 업무를 담당하는 나라 부서) 심사에서도 이방 장군이 북망보다 더 큰 공을 세웠다는 것이 발표됐어. 너는 그들 부부와 한 마음이 되어 앞으로도 쭉 내실 관리를 해주면 돼. 그럼 언젠가 너에게도 좋은 일이 생기게 될 거야.”송석석이 냉담하게 말했다.“그들 부부와 한 마음이 되라고요? 전 사양하겠습니다.”노부인이 불쾌한 표정으로 물었다.“사양하겠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처음부터 내실 담당은 너였잖니?”송석석이 말했다.“아니죠. 내실 담당은 원래 큰형수님의 소관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은 큰형수님이 몸이 안 좋으셔서 제가 잠시 돌봤지만, 이젠 괜찮아졌으니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게 맞죠. 내일 장부 맞춰서 인수인계 하도록 하겠습니다.”그러자 큰형수라 불린 여인, 민씨가 다급히 끼어들었다.“나 아직 다 회복 못 했어. 지난 일 년 동안 네가 잘해왔으니, 앞으로 내실 관리는 네가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5화

    그녀가 나가고 나자 서로의 눈치를 보기 시작하는 사람들. 그 누구도 송석석이 이런 반응을 보일 줄은 예상치 못했다. 심지어 노부인의 말조차 무시할 줄은 더더욱 몰랐다.“내버려둬. 지까짓게 말을 듣지 않으면 어쩔 테야? 어차피 다른 선택지는 없어.”맞는 말이었다. 그녀는 의지할 친정도 없었으며 장군부 외에 머물 곳도 없었다. 게다가 그들은 송석석을 억압하지도 않았다. 이방이 들어온다고 해도 그녀는 여전히 정실 부인이었다.다음 날 아침, 송석석은 보주를 데리고 진북후부로 돌아갔다. 진북후부는 반년이나 방치되어 있어 곳곳에 먼지가 가득 쌓여 있었다. 심지어 정원은 낙엽이 쌓이다 못해 잡초가 무성히 자라 있었다. 그런 진북후부를 바라보며 송석석은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차갑게 식은 할머니와 어머니의 시신, 사방에 뿌려진 피, 도륙된 하인들, 모든 것이 그저 악몽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제 이곳에 돌아와도 그 누구도 그녀를 반겨주지 않았다. 송석석은 보주와 함께 제사 음식을 준비해 가족들의 위패가 놓여 있는 사당(祠堂)으로 향했다. 그런 다음 무릎을 꿇고 고인들을 향해 절을 올렸다. 다시 몸을 일으킨 그녀의 눈빛엔 결연한 결심이 담겨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 만약 하늘에서 저를 지켜보고 계신다면, 부디 앞으로 제가 내리게 될 결정을 용서해 주세요. 두 분의 소원대로 시집가 자식도 낳으면서 평온한 삶을 살고 싶었지만, 전북망은 좋은 지아비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보주도 옆에 있고, 꼭 행복하게 살아 갈게요.”옆에 있던 보주도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인사를 마치고, 그녀들은 다시 마차를 타고 황성으로 향했다.정오(正午: 낮 12시), 가을 햇살이 따갑게 내리쬐는 가운데, 송석석과 보주는 궁문 앞에서 미동도 없이 황제의 허락을 기다렸다. 하지만 한 시간이 지나도록 아무도 두 사람을 불러주지 않았다.보주가 구슬픈 목소리로 말했다.“폐하께서 아가씨의 의도를 알아차리셔서 만나주지 않으시려나 봐요. 어젯밤 저녁도 안 하셨는데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6화

    송석석은 방에 들어오자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조아렸다. 숙청제는 전북후부를 떠올리며 혼자 남게 된 그녀를 안쓰럽게 바라봤다.“됐다. 고개를 들거라.”하지만 송석석은 더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폐하, 이렇게 갑작스레 찾아오는 것이 무례인 것은 아오나, 달리 선택지가 없어 만남을 청하게 되었사옵니다.”숙청제가 답했다.“교지가 내려진 이상, 번복할 수는 없다.”송석석이 살며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한 번 내려진 교지, 번복하기 어렵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대신 새 교지를 내려주실 것을 간청드리옵니다. 부디 저와 전 장군님의 이혼을 허락해 주시옵소서.”황제가 놀란 표정을 지은 채 물었다.“이혼? 지금 이혼하길 원한단 말이냐?”황제는 그녀가 혼사 취소가 아닌 이혼을 요구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송석석이 눈물을 억누르며 말을 이었다.“폐하, 이번 혼인이 군공으로 하사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오늘은 제 아비와 오라버니들의 기일입니다. 신녀(臣女)도 저희 가문이 세운 군공을 빌어 이혼 교지를 청하옵니다. 부디 저에게도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숙청제가 머리를 짚으며 말했다.“석석아, 여인이 이혼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느냐?”정말 오랜만에 들어본 친근한 호칭이었다. 황제가 아직 태자였을 적, 매번 진북후부를 방문할 때마다 그녀를 위해 작은 선물을 준비해오곤 했다. 그러나 매산에 올라가게 되면서 다시는 그를 보지 못하게 되었다.“알고 있사옵니다!”송석석이 단호하지만 씁쓸함이 느껴지는 표정으로 답했다.“군자는 다른 사람을 위해 양보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저는 비록 군자는 아니지만, 두 사람이 사랑하는데 방해물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석석아, 전북후부엔 이제 아무도 없는데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냐? 생각해둔 바가 있느냐?”송석석이 말했다.“안 그래도 오늘 본가에 돌아가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오는 길입니다. 비록 지금은 비어 있지만, 전북후부에 돌아간다면 아들을 입양해 대가 끊기지 않도록 할 생각이옵니다.”숙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7화

    송석석이 떠난 후, 오 대반이 급히 들어오며 말했다.“폐하, 태후마마께서 만남을 요청하셨습니다.”숙청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석석의 일 때문에 걱정되셨나 보구나. 알겠다. 가자.”수강궁(壽康宮: 태후의 궁전) 정원에는 모란꽃이 가득 피어 있었으며, 궁전 외벽은 화려한 장미로 둘러싸여 있었다. 하지만 화사한 궁의 분위기와 달리, 태후는 원형 등받이 의자에 앉아 초췌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태후마마, 절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숙청제가 방으로 들어가며 가볍게 절을 올렸다. 그러자 태후가 주변인들을 물리며 한숨을 내쉬었다.“주상, 어쩌자고 혼사 교지를 허락하셨습니까? 그 결정으로 인해 돌아가신 송 후(侯: 후작 작위)만 우습게 되었습니다. 다른 이들에게도 안 좋은 본보기가 될 것입니다.”태후의 목소리가 점점 심각해졌다.“또한 상국(帝國)의 법률에도 어긋나는 일입니다. 조정 관리들은 혼례 후 5년 이내엔 첩을 들이지 못한다고 되어 있지 않습니까? 사실상 5년도 짧습니다. 개인적으로는 40세가 넘어도 자식이 없을 때만 첩을 들이게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폐하께서 결혼한 지 1년밖에 안 되는 전북망 장군에게 평처를 들이게 하셨다니, 앞으로 또 같은 사례가 나올까 두렵습니다.”“게다가 전북망 장군은 혼인 당일 첫날밤도 치르지 않고 출정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돌아오자마자 이방 장군과 혼례를 올리려 하다니, 석석이의 처지가 얼마나 우스워질지 생각해 보셨습니까?”태후는 감정이 북받쳐 올랐는지 눈가가 촉촉해졌다.“진북후부에 남은 핏줄이라고는 석석이 밖에 없는데, 왜 이런 취급을 당해야 합니까?”태후와 송석석의 어머니는 어린 시절 친구였다. 그래서 더 송석석의 상황이 안타까웠다.태후의 눈물을 본 숙청제는 죄송스러운 마음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태후마마,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당시 저도 이 교지가 적절치 않다는 걸 느꼈지만, 적군을 물리친 공로가 컸기에 거절하기 어려웠습니다. 전북망은 작정하고 왔는지 모든 것을 사양하고 오직 혼인만을 바랐습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8화

    다음날, 전북망은 황제의 명령을 받고 입궁하게 되었다. 그는 요즘 한참 떠오르는 샛별로, 당연히 곧바로 황제를 만났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 밖에도 한참을 밖에서 기다려도 들어오라는 허락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약 한시간 반쯤 지났을 때쯤인가, 오 대반이 황제의 어서방(御書房: 왕이 책을 읽거나 집무를 보는 방)에서 그에게 알렸다.“전 장군님, 폐하께서 지금 바쁘셔서 내일 부를 테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시랍니다.”전북망은 어리둥절했다. 한시간 반이나 기다리는 동안, 어서방을 출입하는 그 어떠한 관리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다른 일로 의논을 나누느라 그와 만나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뜻했다.전북망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오 공공(公公: 내시를 높여 부르는 말), 폐하께서 절 부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오 대반이 웃으며 답했다.“저도 모르옵니다.”전북망은 당혹스러웠지만, 차마 황제의 방에 들어가 직접 물어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조금만 귀띔해주라면 안 되겠습니까? 혹시 제가 뭔가 잘못한 것입니까?”오 대반은 여전히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답했다. “이제 막 전장에서 돌아오신 분이, 무슨 잘못이 있겠사옵니까.”“그럼 왜 폐하께서….”오 대반이 허리를 굽히며 전북망에게 인사를 건넸다.“장군님, 이만 돌아가십시오.”전북망은 더 캐묻고 싶었지만, 오 대반은 이미 등돌려 어서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궁금증을 앉고 황궁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축하연이 열렸을 때만 해도 그렇게 칭찬하던 황제가 하루아침에 이토록 차갑게 변하다니, 그는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황궁을 빠져나가던 도중, 정문을 지키고 있는 금군들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어제 전 장군님 부인이 궁에 왔었다며? 그런데 오늘 곧바로 호출되다니, 혹시 혼사에 차질이 생긴걸까?”“말도 안 돼. 폐하께서 공식적으로 발표하신 일이야, 어떻게 번복하실 수 있겠어?”전북망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는 결국 참지 못하고 숙덕거리고 있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9화

    전북망은 그제야 안도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이 혼인은 내가 전쟁의 공로를 인정받아 얻은 것이오. 폐하께서 교지를 철회하게 된다면 장병들도 사기가 꺾일 텐데, 섣불리 움직이기 전에 생각이라는 걸 먼저 하시오. 오늘 폐하께서 날 소환하시고도 만나주지 않았다는 건 아시오? 그대가 쓸데없이 가서 폐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이오. 더 이상 이 일로 소란을 만들지 마시오. 난 할 만큼 했으니, 부디 조용히 지내시오. 이방과 결혼한다고 해도 그대와 자식은 볼 것이니, 그대도 의지할 곳이 생길 것이오.”송석석이 냉담히 그를 바라보며 담담히 말했다.“보주야, 손님 배웅주거라.”보주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장군님, 이만 나가주시길 바랍니다!”전북망이 소매를 휘날리며 방을 나갔다. 그가 나가자마자 보주는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놀란 송석석이 보주에게 다가가며 달래듯 말했다.“보주야, 왜 그래?”“아가씨가 너무 불쌍해서요. 아가씨, 억울하지도 않으세요?”보주가 코맹맹이 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송석석이 웃으며 답했다.“억울하지. 하지만 운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고, 차라리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는 게 낫지. 나 송씨야, 왜 이래? 송씨는 절대로 꺾이지 않아”보주가 손수건으로 눈을 닦으며 입술을 삐죽였다.“왜들 아가씨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지 모르겠어요. 그동안 아가씨가 이 집 사람한테 얼마나 잘했는데.”“그들의 마음엔 내가 없나 보지.”송석석이 웃으며 말했다. 이들은 어쩌면 처음부터 지참금을 노리고 혼인을 허락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말을 들은 보주는 더 서글프게 울었다. 누가 뭐라해도 그녀에겐 송석석이 항상 우선이었다. “자, 이제 그만 울고 일하자. 그대로 우린 살아있잖니.”송석석이 그녀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어서!”“네, 아가씨.”보주가 눈을 벅벅 닦으며 말했다.“처음 아가씨와 온 사람들도 모두 데려가실 건가요?”“내가 데리고 온 사람들이니, 여길 떠나게 된다면 좋은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0화

    단신의를 배웅한 뒤, 송석석은 곧바로 문희거로 돌아왔다. 그렇게 약 반시간 정도 지났을까, 전북망이 이방을 데리고 그녀를 찾아왔다.송석석은 작은 서재에 앉아 이 달의 장부를 정리하고 있다가 두 사람이 들어오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전북망과 이방은 두 손을 맞잡은 채였다. 금색 향로엔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침향이 타고 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숨을 들이켜며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송석석은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그녀는 보주에게 나가라고 한 뒤,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앉으세요, 두 분.”이방은 오늘 갑옷이 아닌 일반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치마에 금색 나비 수가 놓아져 있었다. 이방은 아름다운 외모는 아니었으나, 기개가 넘쳤다.“이보세요!”그녀가 먼저 송석석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전장에서 수도 없는 적군들을 죽여온 경험으로 이방의 몸에선 일반 여자들은 감당하기조차 힘든 분위기가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송석석은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 눈빛을 맞받아치며 말했다.“하실 말씀 있으시면 하십시오, 장군님.”그러자 이방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저를 보고 싶어 했다고 들었는데, 묻겠습니다. 저와 평화롭게 지낼 생각 있으십니까?”그녀의 태도는 매우 강압적이었다. “솔직하게 말하십시오. 앞에서는 괜찮은 척하면서, 뒤에 가서 또 딴소리 하지 말고.”송석석이 그녀를 바라보며 답했다. “태후마마께서 이방 장군님은 여자들의 본이 되는 분이시라 하셨죠. 그럼 제가 되묻겠습니다. 저에게 장군님과 잘 지내는 것 말고, 다른 선택지가 있나요?”이방이 엄격한 표정으로 말했다.“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선택은 그대 몫이지, 다른 사람이 대신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송석석은 냉소적으로 웃었다. 그러나 그 모습조차 너무 아름다워 이방은 왠지 모를 불편함을 느꼈다. 송석석이 다시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야 당연히 장군님과 잘 지내고 싶죠.”이혼 후엔 더 이상 그들과 얽히지 않고 평화롭게 지내고 싶었다. 그러니 잘 지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1화

    이방은 속에서 질투심이 살짝 올라왔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전 질투가 많지 않습니다. 그쪽도 아이를 가져야 남은 생, 의지할 곳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임신한 뒤에도 그대와 잠자리를 가지건 말건, 그의 선택에 맡길 생각입니다.”마지막 말엔 분명 화가 난 기색이 담겨 있었다.전북망이 서둘러 약속했다. “걱정할 것 없소. 임신한 뒤에는 다시는 건드리지 않을 것이오.”“그럴 것 없습니다. 저 그렇게 속 좁은 사람 아닙니다.”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방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이걸 송석석이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은 그녀가 아닌 이방이었다. 그녀는 더 이상 이 역겨운 상황을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꾸짖듯 이방을 향해 쏟아붙였다. “이미 여인인 것만으로도 살기 벅찬 세상인데, 같은 여자끼리 돕고 살지는 못할지 언정 짓밟으려 드시는군요. 그래봤자 당신도 여인 아닌가요? 전쟁터에서 좀 활약했다고 이렇게 사람을 무시해도 되나요? 당신들 눈엔 제가 겨우 자식한테 의지해야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연약한 여자로 보이나요? 저도 하고 싶은 게 있고 원하는 삶이 있어요. 당신들 때문에 한낱 병풍이 될 생각이 없단 말이에요. 본인들만 중요하고 남들은 하찮게 여기지 마세요.”이방은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눈살을 찌푸리며 반박했다.“말 너무 심하게 하시는 거 아닙니까?”송석석이 차갑게 말했다. “긴말 하지 않겠습니다. 이혼합시다. 서로 얼굴 붉히지 말고.”“이혼? 지금 날 협박하려 드는 것이오?”이방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 그렇게 만만한 사람 아닙니다. 어디 마음껏 소란 피워 보십시오. 그럴수록 그쪽만 창피를 당할 테니.”그녀는 명문가의 여인들이 얼마나 명예를 중요하게 여기는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송석석처럼 태어났을 때부터 높은 신분을 가진 여인들일수록 더 했다.“난 그대와 이혼하지 않을 것이오. 우리가 이러는 것은 다 그대를 위해….”“그만하세요!”송석석이 표정을 가다듬으며

최신 챕터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80화

    숙청제는 높은 곳에서 그를 내려다보며, 눈빛에서 숨길 수 없는 증오를 담으며 말했다. “그래? 네 아버지를 대신해 벌을 받겠다고 해도, 나는 무고한 사람을 억울하게 만들 수는 없다. 역모를 꾸미고 나라를 빼앗으려 한 자가 누구인지, 짐이 직접 조사하여 밝혀내겠다.”“폐하...”사청엄이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고통스럽게 말했다.“조사를 할 필요 없이 제 죄를 물어주십시오. 아버지께서는 잠시 이성을 잃고 실수하신 것뿐입니다.”숙청제가 냉소를 띠었다.“실망이구나. 황위를 노렸던 자가 이렇게 기개가 없다는 말이냐? 이 꼴로 황제가 되려고 하느냐? 그러면 사청엄, 너를 따르는 사람들 모두가 실망할 것이다.”“아버지를 대신해 벌을 받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아버지를 용서해 주십시오.”사청엄은 아무리 황제가 뭐라고 말해도, 이 한마디밖에 할 수밖에 없었다.그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다들 그의 야심을 비난하였지만, 그는 여전히 아랑곳하지 않고 비난을 신경 쓰지 않았다.그는 여전히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아버지를 더 이상 욕하지 마시지요. 그도 그저 잠시 실수를 한 것 뿐일 겁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로서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그의 말에 대부분의 관리는 큰 분노를 느꼈다. 그의 터무니없는 말에 어이가 없어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때, 숙청제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수년 동안 계획을 세우며 영리한 척했지만, 결국 궁문도 통과하지 못하는 자가 어찌 황제가 되려고 했단 말이냐? 연왕처럼 무식한 자였다면 아마도 이런 꼴은 안 당했겠지?”그동안 사청엄은 늘 자신이 연왕보다 똑똑하고 뛰어나다며 자부했었고, 연왕의 신하 앞에서도 그런 태도를 보였었다. 그 후부터 연왕의 부하들도 사청엄을 따른 후 연왕을 무시하기 시작했고 연왕의 무능함을 비웃었던 것이다. 그러니 숙청제가 연왕보다 못하다고 말하자, 사청엄은 마음이 괴로울 것이다.하지만 사청엄은 그저 낫빛이 잠시 바뀌었을 뿐, 다시 같은 말만 되뇌었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79화

    석홍심의 지휘 아래, 이 사병들은 물러나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용감해졌다.그들은 연왕의 사병이 아니었지만, 만 명이 넘는 병사들은 모두 사청엄이 수년간 정성껏 고른 병사들이었고 수많은 훈련에 참여한 경험이 있었다.그중 많은 이들이 비참한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이 세상에 대한 분노를 품고 있었기에, 그들은 이 전투를 통해 인생을 역전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누군가가 지휘를 하는 이상 쉽게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현갑군은 그들을 이길 수 있지만, 쉽고 빠르게 승리하긴 어려웠다.송석석은 그들이 항복하지 않으면 죽는 사람이 점점 더 많아질 것을 알고 있었기에 정예병을 뽑기로 했다. 그들 중에는 매산 분대도 포함되었으며, 반란군 중에서 석홍심의 목을 취할 계획을 세웠다.군대에는 장수부터 사라져야 전쟁을 더 빨리 끝낼 수 있다.송석석은 계획을 세운 후, 만두와 몽둥이가 먼저 그들의 진형을 무너뜨린 뒤, 그녀와 시만자가 앞서 나가 적장들의 목을 베고 신속히 후퇴할 계획이었다.천군만마 속에서 적장의 목을 베는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들은 이미 전투에 열중해 있었고, 혹시라도 주저할 새에 적의 무차별 공격에 맞을 수도 있었다.석홍심은 전장에서 많은 경험을 가진 장군이었다. 그는 단번에 송석석의 계책을 알아챘고, 일부러 빈틈을 보여 송석석와 시만자가 그에게 다가올 수 있도록 하였다.그도 송석석의 생각과 같이 상대의 장군부터 잡으려 했다.송석석과 그는 서로를 잡으려고 했다.빈틈이 보이자, 그는 빠르게 공중으로 뛰어들며 검을 내려쳤다.송석석과 시만자는 짧은 무기를 사용했다. 경공으로 공격하려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했기에, 석홍심의 대검이 더욱 유리한 상황이었다.위험한 순간이었지만, 두 사람은 죽이 척척 맞게 협력했다. 시만자는 그를 향해 몸을 던져 그의 배를 머리로 가격했지만, 석홍심의 칼이 결국 송석석의 어깨에 떨어져 버렸고, 시만자도 석홍심의 병사에게 상처를 입고 말았다.이 상황에 만두와 몽둥이가 신속히 두 사람을 도우러 왔다. 한명은 유성추를 휘둘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78화

    사청엄은 마차를 타고 갈 때 멀리서 추몽을 보곤, 그제야 진심으로 안심했다.그는 추몽이 얼마나 단호한 성격인지 알고 있었다. 한 사람이 전력을 다해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으면 반드시 큰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이 전쟁은 그가 가장 갈망하던 것이었다. 자신의 위대한 계획을 위해 싸우는 것이기에 그는 지금 과거의 침착함과 여유로움을 모두 잃었지만, 오랫동안 억눌려왔던 열정이 온몸을 타고 돌기 시작했고 세상을 지배하고 싶은 갈망이 그에게 강력한 힘과 신념을 주었다.그는 야망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이며,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하며, 진실을 알지 못했다. 야망은 결코 가장 강력한 힘이 아니라는 것을, 가장 강력한 힘은 사랑과 증오, 정의와 단결이라는 것을 말이다.진정한 야망은 현갑군 통령 송석석의 애국심이며, 현갑군 통령 송석석의 가족을 잃은 증오이다.그리고 병사들과 무림 사람들이 하나로 결합하여 반역자를 쫓아내며 백성을 위한 정의를 지키려는 마음이다.사청엄은 순간 무엇인가 이상함을 느꼈다. 추몽이 이끄는 병사들이 모두 병복을 벗고 평상복을 드러내었으며, 평상복에는 ‘沈’자의 문양이 자수로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그들은 모두 심가 사람들이었다!그는 그제서야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곳에 온 자는 추몽이 아니라 심가 사람들과 무림 인사였던 것이다. 그의 무공이 아무리 뛰어난다고 해도, 임양운이 나타나면 곤경에 처할 것이며, 심지어는 지휘권조차 얻지 못할 것이다.석홍심의 반군은 정말 강력했다. 그들은 단번에 기세 좋게 강을 건너 동서 두 거리로 쳐들어갔고, 좀만 앞으로 나가면 곧 어길이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송석석는 그들을 어길로 이끌었다. 어길은 왕궁과 가장 가까운 곳이지만, 백성이 거의 없어서 백성을 다치지 않기 딱 좋은 곳이기 때문이다.경성의 귀족들과 대신들의 집안 대문은 꽉 닫혀 있었고, 가장 유능한 호위들이 문을 지켰다. 백성들 대부분은 반군이 쳐들어와 자신들을 포로로 잡을까 봐 두려워했지만,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77화

    휘황실.잔잔한 비가 방 처마 끝에서 주르륵 떨어지며, 왕부 전체를 축축하게 만들었다.한편, 늙은 휘왕은 복도에 서서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어디선가 싸우는 소리가 들리는 듯도 했고, 빗소리인 것 같기도 했다. 그는 그렇게 한참 동안 서 있다가 방으로 들어갔다.정삼숙 또한 이곳에 머물고 있었는데, 두 다리가 부러져 다시는 일어설 수 없게 되었다.다리뿐만 아니라 얼굴에도 골절상이 있어, 뼛속을 찌르는 듯한 고통을 주며 계속 그를 괴롭혔다. 하지만, 휘왕이 올 때마다 정삼숙은 아픈 척 연기를 한 탓에, 그는 이곳에 자주 오지 않았고, 정삼숙의 모습을 볼 때마다 그의 마음은 더욱 아파왔다.방 안에서는 고청영이 정삼숙의 얼굴을 닦아주고, 손과 등을 주물러주고 있었다. 누워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몸에 욕창이 생길까 염려해서였다.휘왕이 들어오자, 고청영이 물을 들고 나가며 말했다.“죽을 대령하던 참입니다. 전하께서서는 진지를 잡수셨습니까?”“아직 먹지 않았다. 죽 한 그릇을 더 가져오너라. 함께 먹자꾸나.”휘왕이 의자를 하나 가져와 침대 옆에 두며 말했다.정삼숙은 그를 향해 미소를 지었으나, 갈라진 입술이 아직 낫지 않은듯 부어오른 상태였기에, 웃을 때마다 다시 터질까 봐 걱정스러워, 비바람에 시달리는 단풍잎처럼 억지스러워 보였다. “웃지 않아도 된다.”휘왕은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아프면 말을 하거라.”“안 아픕니다.”휘왕이 죽그릇을 들어 그녀에게 떠먹여주자, 정삼숙은 붉어진 눈으로 천천히 죽을 받아먹었다.하지만 많이 먹지는 못하고 몇 숟가락만 넘길 뿐이었다. 이전에 사청엄이 의원을 불러 주었지만,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은 적이 없었기에 더 아픈 것 같았다. 휘왕은 고청영이 죽을 더 가져오기도 전에 정삼숙이 먹다 남은 죽을 먹기 시작했다.그러자 정삼숙이 놀라며 말했다.“더럽습니다.”그때, 휘왕의 앞에 놓여진 죽 그릇에 무엇인가 툭하고 떨어졌다. “삼숙아, 우리 한평생을 함께 살았구나.”정삼숙은 멍하니 그런 그를 바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76화

    그들은 순간 노 휘왕의 처지가 떠올랐다. 그가 편지를 보내는 것조차 이렇게 우여곡절이 많은 것을 보면 그의 처지도 좋지는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만자 등 사람들이 휘 황실에 거주할 때는 줄곧 알아차리지 못하다가 떠날 때가 되어서야 관백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챈 것이었다. “휘왕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포기하려나 보군요.” 염 선생이 탄복하는 말투로 말했다. 사 씨 가문의 자손으로서 노 휘왕은 이 역모 전쟁을 원하지 않을 것이며, 자신의 아들이 역적이라는 것은 더욱 받아들이지 못해 마음이 찢어질들 아플 게 분명했다. 염 선생은 전에도 조사를 해서 내막을 알고 있었기에, 더욱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사청엄은 노 휘왕의 이름으로 역모를 일으켜 왕위를 찬탈하려는 것입니다. 말년에 자신의 아버지에게 이런 오명을 뒤집어씌우다니.” 부자일체라고, 설령 노 휘왕이 어쩔 수 없이 황위에 오른 것이라고 해도 천하의 사람들은 그가 무죄라는 것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이내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성을 되찾았고, 송석석은 바로 싸울 준비를 하라고 명령했다. 일단 지금은 내일 아침의 전쟁을 위해 준비해야 했다. 북명황실은 바로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시만자는 밤새 자신에게 어울리는 무기를 골랐는데, 가까이서 싸우는 것이 좋을 테니 쌍두 단검을 골랐다. 만두는 망치로 적의 머리통을 깨트리겠다며 잽싸게 망치를 골랐다. 신신은 검술과 채찍 기술이 모두 뛰어났는데, 전쟁에 나가 적을 죽이기 위해서 쉽게 피를 볼 수 있는 검을 선택했다.심청화는 깃털로 만든 옥골 부채와 피리 대신 단도를 선택했다.뒤에서 지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에, 이들 모두 최전선으로 가야 했기 때문이다. 몽동이는 쇠몽둥이를 골르며 한 대에 다섯 명이나 죽이겠다며 당당하게 말했다. 그들은 무기를 고르며, 전투의 긴장감 없이 모두 웃고 떠들었다. 이전부터 그들은 이미 수도 없이 연습을 했고, 궁 안의 수비도 충분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낮에 진성에서 전쟁이 시작되면 백성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75화

    방금 전, 암영위는 점원만 주시했었다. 회계사가 점원에게 은표를 주는 것을 보고, 암영위가 문간에서 그의 몸을 뒤졌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해 결국 놓아주었던 것이다.점원은 큰 모욕감을 느꼈지만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금경루에서 오랫동안 장사를 해오면서, 많은 손님들이 은표를 지불한 후에 차나 간식을 줬던 반면, 휘황실처럼 몸을 수색한 경험은 드물었다.암영위는 이 일을 사청엄에게 보고했지만 사청엄은 이미 수색했고, 금경루에 있을 때도 계속 주시했으니 신경을 쓰지 않았다.그는 그저 고청영이 온갖 방법을 써서 장신구를 사려는 욕심 많은 여자라고만 말했다. 그는 오랫동안 고청영을 관찰하면서, 먹고 마시고 노는 것을 좋아하며, 금은보석만 좋아하는 별 생각 없는 여자라고 여겼다. 그리고 뚱뚱해서 무엇을 입어도 예쁘게 느껴지지 않았다. 고청영은 사실 돈을 위해 노인에게 시집을 온 것이었다. 암영위가 이전에 그녀와 부왕의 대화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녀는 부왕이 죽으면 따라 죽겠다고까지 말했었다.그는 부왕이 어린 여자에게 속아서 매일 그녀를 데리고 먹고 마시고 금은보화를 사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정말 그 여자의 말을 믿는 건가? 부왕도 참 단순하긴.’송석석은 암살을 겪은 후에도 매일 경위부로 돌아갔는데, 오늘은 비가 너무 세게 와서 심청화가 막아서야 외출하지 않았다.계획에 따르면 내일 큰 전쟁을 위해 이미 명령을 내린 상태이기에, 오늘 경위부로 가든 말든 상관은 없었다.그래서 금소주가 북명황실에 왔을 때 그녀는 경과를 들은 후 즉시 편지를 열었는데, 편지를 다 본 그녀의 얼굴은 이미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심청화는 상황을 보더니 편지를 가지고 염 선생과 함께 보았다. 두 사람 또한 편지를 다 본 후, 약속이나 한 듯이 함께 이를 갈며 말했다.“그 놈이었다니…!”그때, 금소주가 물었다. “상황이 긴급해서 나와 집사가 편지를 보긴 했는데 밑으로 보지 않았으니 죽임을 당하지 않겠지요?” “그럴 리가요?” 염 선생은 엄숙한 표정을 감추고 공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74화

    비는 여전히 많이 내렸기에, 그들은 몇 개의 가게를 둘러보다 진성 제일의 금은방인 금경루가 아직 문을 닫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고청영이 장신구를 몇 개 사고 싶다고 하자 노 휘황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그럼 바로 가지!” 금경루의 금소주도 마침 가게에 있었는데, 그가 노 휘왕을 보자마자 3층의 별실로 모시자, 암영위도 자연스럽게 따라 올라갔다. 노 휘왕은 고청영을 데리고 이곳에 몇 번 왔었고, 그들은 중요한 고객이었기에 금소주 외에도 두 명의 점원이 옆에서 시중을 들었다. 정교한 다과가 나오자 노 휘왕은 암영위를 불러 함께 앉아 차를 마시라고 하고는, 고청영에게 직접 고르라고 했다. 하지만 암영위는 감히 앉지 못하고 곁에 서서 노 휘왕이 다정하게 금소주와 대화하는 모습을 보며 그들이 다른 물건을 주고받지 않도록 주의했다. 그리고 가끔씩 고청영도 한 번 쳐다보았는데 고청영은 풍채가 있는 탓에 계산대에 놓인 장신구를 가려서 조금도 보이지 않아, 그는 다가가서 그녀가 장신구를 착용하는 것은 재빨리 확인하고는 바로 노 휘왕의 곁으로 돌아왔다. 노 휘왕과 금소주는 최근에 비가 많이 내린다는 둥 수로가 뚫렸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홍재가 일어났을지도 모른다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올해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농작물이 피해를 볼 것 같다며 한탄했다. 농작물에 피해가 가면, 백성들이 굶주릴 수 있기에 노 휘왕은 연신 한숨을 쉬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금소주에게 농담을 했다. “금 씨 가문도 쌀장사를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나중에도 절대로 쌀 가격을 올려서는 안 된다.” 그러자 금소주는 급히 손을 흔들며 말했다. “당연히 저희 금경루는 그런 파렴치한 짓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자 노 휘왕은 금소주의 가슴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무슨 일을 하든지 겉모습만 보는 게 아니라 속마음도 봐야 한다. 알겠느냐?” 금소주는 웬지 모르게 찔려 민망했지만, 애써 모른척하며 웃었다. “네, 왕야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73화

    사청엄은 자신의 계획이 얼마나 대단한지 자랑하듯 계속해서 말했다. “수란키라는 자는 제가 일찍이 사적으로 접촉해서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서경에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하면 그들이 진성에서 알아낸 소식을 알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서경 내부의 사람을 끌어들이려고 하던 참에 수란석을 만난 것이었습니다. 수란석은 자신의 형님 밑에서 빛을 발하지 못했지만 저는 그의 야망을 알고 있었고 무슨 짓이든 그는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지요. 당시 서경 태자가 전장에 나간 것도 수란석이 장수들이 봉급을 받고 공을 세우기 위해 백성을 죽인다는 소식을 퍼뜨려 태자가 신분을 숨기고 조사하러 간 것입니다.” “그가 녹분성으로 간 게 너에게 무슨 이득이 있느냐?” 노 휘왕이 물었다. “제가 나서서 그를 설득해 동맹을 맺는 게 원래 목적이었지요.” 사청엄은 유감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하지만 중간에 이방이 나타나서 제 계획을 다 망쳐버렸습니다. 그래도 수란석은 자신이 전장에서 얼굴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제가 그에게 만들어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수란석이 왕위에 오른 후, 죽은 태자의 복수를 한다는 이유로 새 황제에게 중용되었고, 새 황제와 세력을 형성하여 냉옥 장공주와 대항했지요. 그리고 서경이 혼란스러워진 것이 내가 바라던 바입니다. 그들이 혼란스러워야 그 틈을 타서 제게 유리한 일을 할 수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성릉관에 도발을 일으키는 것이지요.” 그의 말투는 평범했지만 표정은 여전히 의기양양했다. “사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빅토르는 전패해서 돌아간 후 문책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냉대와 굴욕까지 당했지요. 그가 다시 일어날 생각이 없겠습니까? 제가 그에게 준 조건은 남강의 몇 개의 성이었으니 그가 사국에서 명성을 펼치기엔 충분하였습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기회를 잡았고 모든 힘을 동원해서 사국왕에게 전쟁을 허락해 달라고 빌었습니다. 그렇게 전쟁이 일어났고, 드디어 제게 기회가 온 것입니다. 부왕, 이 모든 일을 하기까지 쉽지 않았습니다. 온갖 정성과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72화

    사청엄은 우산을 받쳐 들고 노휘왕의 마당에 도착한 후,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가 단번에 수하를 물리쳤다. 심지어 고청영도 남겨두지 않았다. 노휘왕은 방금 식사를 마치고 하인들이 치우려던 중이었고, 사청엄은 앉아서 노 휘왕의 젓가락과 그릇을 들고 남은 음식들을 먹는 중이었다. 그는 예전과 같은 엄중한 모습으로 먹는 반면, 노 휘왕은 화가 치밀었고 역겹기까지 했다. 어릴 적부터 그를 잘 양성해서 그의 행동은 모두 번왕의 기질에 부합했지만 아쉬운 건 야망이 하늘을 찌를 듯하고 잔인한 점이었다. 그는 노 휘왕이 먹다 남긴 음식을 다 먹고 젓가락을 내려놓더니 손수건으로 입가를 닦으며 말했다. “낭비하면 안 되지 않습니까? 마침 제가 배가 고파서 먹었는데 괜찮지요?” 그러자 노 휘왕이 차갑게 답했다. “괜찮다. 남아도 개를 먹일 것이니, 그건 네가 먹어도 같은 것이다.” “제가 개면 부왕은 대체 무엇입니까?”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하. 전 그저 부왕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러 온 것 뿐입니다. 우리의 소원이 곧 이룰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노 휘왕은 순간 가슴이 철렁했지만, 애써 진정하며 말했다. “예로부터 역적에겐 좋은 결말이 없었으니 너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사청엄은 오히려 가볍게 웃었다. “부왕께서 제 걱정까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전 반드시 예외일 것입니다. 그러니 부왕께서는 용포를 입고 황제가 되는 것만을 기다리시면 됩니다.” 노 휘왕이 냉소하며 말했다. “네가 그렇게 자신 있다니 나도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다만 한 가지 일이 마음에 계속 걸리는데, 답해주겠느냐?” 사청엄은 무슨 일인지 묻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답했다. “제가 한 거 맞습니다.” 그러자 노 휘왕의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갑자기 탁자를 치며 소리쳤다. “대체 왜 그런 것이냐?!”사청엄은 한숨을 쉬며 눈살을 찌푸리고 말했다. “본래 목표는 성릉관의 소 씨 가문이었지만, 소 씨 온 가문이 멸망한다면 성릉관에선 더 이상 수란석을 죽일 수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