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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작가: 유애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05-28 22:32:58
보주가 지참금 목록을 가져오며 말했다.

“근 1년 동안, 아가씨께서 이 집안 살림에 보탠다고 사용한 화폐만 해도 6천 냥이 넘어요. 그래도 다행히 상점과 주택, 장원은 그대로예요. 또한 부인께서 남겨주신 예금 증서와 집문서, 땅문서도 그대로 상자에 담겨 있어요.”

“알겠어.”

송석석은 목록을 보며 전에 어머니가 준 지참금을 떠올렸다. 그녀의 어머니는 혹시라도 딸이 시집에서 고생할까 봐 참 많은 지참금을 챙겨줬었다. 정말 그리움이 사무쳤다.

옆에 있던 보주도 그녀의 기분에 공감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이곳을 나간다면 저희는 어디로 갑니까? 진북후부, 아니면 매산입니까?”

송석석은 아직도 그 처참했던 진북후부의 현장이 생생했다. 참을 수 없는 슬픔이 가슴속에서 밀려 나왔다.

“어디로 가든 여기 있는 것보다는 낫겠지.”

“아가씨, 이대로 떠나면 진짜 후회 안 하시겠어요?”

송석석이 담담히 답했다.

“후회할 게 뭐 있어. 내가 떠나지 않으면 평생 이들 사이에 괴롭게 살아야 할 텐데. 보주, 우리 집엔 이제 나밖에 없어. 내가 잘 사는 모습을 보여줘야 우리 가족들도 저승에서 마음 편히 쉬지.”

“아가씨!”

보주가 기어이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녀는 송석석과 마찬가지로 진북후부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었다. 송석석의 가족들이 몰살당할 때, 보주의 가족들도 함께 희생되었다.

장군부를 떠나게 되더라도, 진북후부로 돌아가는 건 편치 않았다. 그곳은 두 사람 모두에게 큰 아픔이었다.

“아가씨, 정말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송석석이 한층 깊어진 눈동자로 답했다.

“있기는 하지. 폐하께 아뢰어 그동안 아버지와 오라버니들이 이룬 공로를 명목으로 교지를 철회해 달라고 요청해 봐야지. 통하지 않는다면, 금란전(金鑾殿: 황제의 궁) 벽에 확 머리 박고 죽어버리겠다고 협박도 해보고.”

보주가 놀라 송석석의 다리를 부여잡았다.

“아가씨, 그건 절대로 아니될 말입니다!”

송석석이 냉철히 눈을 빛내며 나지막이 웃었다.

“농담이야. 설마 내가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할까? 교지를 철회해주지 않는다면, 이혼을 허락해달라고 요구할 거야.”

전북망이 이방이 이토록 당당할 수 있는 건, 황제의 교지 덕분이었다. 만약 교지가 철회된다면, 혼인의 정당성이 없어진다. 송석석은 떠나더라도 쫓기듯이 떠나는 것이 아닌, 당당히 떠나고 싶었다. 어차피 부모가 남긴 재산이 있었기에, 그녀는 평생 일하지 않아도 돈 걱정은 하지 않고 살 수 있었다. 그러니 마음이 편한 대로 움직이고 싶었다.

이때, 밖에서 누군가가 송석석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부인, 노부인께서 부르십니다!”

보주가 조용히 옆에서 속삭였다.

“노부인의 시녀, 취아의 목소리옵니다. 노부인께서 아가씨를 설득하려고 부르시는 것 같습니다.”

방엔 전북망의 어머니뿐만 아니라, 큰형 전북경과 그의 부인 민씨, 셋째 여동생 전소환 그리고 다른 서출(庶出)의 자식들도 함께 있었다. 그런데 유독 작은집의 노부인 육씨만, 이 상황이 달갑지 않은 듯 표정이 좋지 않았다.

“어머님, 작은어머님, 큰아주버님, 큰형수님!”

송석석은 여전처럼 차례대로 인사를 건넸다.

“석석아, 이리 오너라.”

노부인이 그녀를 침대 앞으로 부르더니, 친근하게 손을 잡아왔다.

“이제 북망이가 돌아왔으니, 너에게도 의지할 곳이 생겼구나. 지난 1년 동안 정말 고생이 많았다. 친정도 그렇게 되고, 너의 가문엔 이제 너 혼자뿐이구나. 그래도 다 지나갔다.”

노부인이 노련한 말솜씨를 뽐내며 서두를 떼기 시작했다. 하지만 송석석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녀의 말속에 담긴 뜻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너는 이제 혼자이니, 앞으로 모든 일은 전적으로 자신들에게 달렸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송석석이 잡힌 손을 슬며시 빼내며 담담히 말했다.

“어머님, 오늘 이방 장군과 만나셨다고 들었습니다.”

노부인은 그녀의 직설적인 화법에 놀란 듯 잠시 표정이 굳어졌지만, 이내 다시 표정을 가다듬으며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만났다. 성격이 꽤 거칠고 급하더구나. 외모도 너와 비교할 바가 못되고.”

송석석이 노부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다면 어머님은 이방 장군이 이 집에 들어오는 거, 탐탁지 않다는 말씀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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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정
2024. 10. 07. AM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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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149화

    시만자는 오늘 계속 방씨 가문에 있었다. 오수인의 몸 상태가 안 좋아서 약왕당의 청작을 불러서 방씨 가문으로 같이 간 것이다.저녁이 될 때까지 방씨 가문에 있었던 시만자는 방씨 가문 사람들을 통해 오늘 편서백부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 듣게 되었다. 방천허의 부인은 이 사실을 절대 오수인에게 알리지 말라고 명령을 내렸지만 그리 오래 숨길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간 남자와 간통한 것도 모자라 낙태까지 하다니. 방시원은 이제 더 이상 왕청여의 서방이 아니지만 왕청여가 방씨 가문에 있을 때 벌어졌던 일이기에 방시원도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외부에 방시원이 잠자리에 약해서 왕청여가 다른 남자에게 관심이 생긴 게 아니냐는 추측도 남발했다. 그렇지 않으면 왜 전장에 나간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사이에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이와 반대로 왕청여가 태생부터 한 남자에 만족하지 못하는 천박한 여자라는 비판도 무성했으며 노세진을 뻔뻔하다고 욕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방씨 가문에서 착한 마음으로 노세진을 거둬줬는데 노세진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고, 파렴치한 인간이라고 손가락질을 했다.사람들의 평가를 종합해보면 결론은 하나였다. 노세진과 왕청여는 천벌 받아 마땅한 나쁜 놈들이고 방시원은 아무 잘못 없이 억울하게 엮였다는 결론이 내렸다. 반면, 전북망을 언급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전씨 가문에 어떤 일이 벌어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전북망에 큰 관심이 없었고 심지어 왕청여와 이혼한 사실도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이날 밤, 함께 황실로 돌아온 시만자와 송석석은 오늘 서로에게 있었던 일을 상대방에게 얘기해주다가 이내 동시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전에는 구경 삼아 지켜보던 일이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자 시만자와 송석석도 걱정되고 마음이 불편했다.한편, 현이는 오늘 밤에도 무술을 연습하러 찾아왔고 평소보다 더 열정적으로 연습에 임했다. 현이는 능력이 부족한 자신이 도울 수 없는 일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최대한 빨리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148화

    송석석은 사람을 시켜 약왕당으로 가서 홍작을 모셔왔다. 다행히 이마의 상처가 깊지 않았고 신속적으로 지혈도 했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하지만 며칠 동안 고열을 앓고 있었던 최씨는 몸이 허약한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화까지 낸 탓에 새까만 피를 왈칵 토했을 뿐만 아니라 의식도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최씨 눈가에서는 계속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송석석이 아무리 닦아도 눈물은 계속 흘렀다.“의원님, 상황은 좀 어떤가요?”홍작이 최씨에게 진맥 검사를 마치자 송석석이 물었고 홍작은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부인께서 고열을 며칠이나 앓으셨는데 조금 전에 등을 확인해보니 폐에 문제가 조금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화병 때문에 간에도 어혈이 생겼습니다. 전에 복용하시던 약으로는 더 이상 해결되지 않을 겁니다. 일단 극약 처방으로 간과 폐를 치료하고 나머지 부분은 몸조리를 통해 천천히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 이렇게 과로하시면 절대 안 됩니다.”말을 하던 홍작은 송석석을 구석으로 끌고 가서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간에 어혈이 심각한 상태입니다. 이는 마음속에 늘 화병이 잠재되어 있어서 생긴 현상입니다. 부인께서 마음속에 어떤 일을 숨기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계속 이렇게 혼자서 쌓아 두면 나중에 큰일이 날 수도 있습니다.”송석석은 최씨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혹시 왕표가 반역 사건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집안 사람들까지 엮이지 않을까 매일 전전긍긍하면서 속앓이를 했을 것이다.“일단 약을 좀 복용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홍작은 말을 마치자마자 돌아서서 떠났다.송석석은 밖으로 나와 순방영 사람들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절대 아무한테도 얘기해서는 안 된다고 입단속을 단단히 시켰다.이내 순방영 사람들까지 떠났고 송석석은 돌아선 순간, 기둥에 가까스로 기댄 채 눈이 벌겋게 충혈된 왕청여를 발견하게 되었다.왕청여는 다음 순간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모습으로 송석석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북명 왕비님, 제가 뭐 하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147화

    량씨 부인의 폭탄 발언에 순간 현장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량씨 부인이 데리고 온 사람들은 아이의 존재에 대해 전혀 몰랐으며 심지어 운향월조차도 모르고 있었다.지금 이 상황에서 제일 놀란 사람은 운향월이었다. 그녀는 연신 뒷걸음질을 치면서 모든 걸 잃은 듯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사실 량씨 부인도 전까지는 확신이 없었다. 약왕당 사건이 터지고 나서 량씨 부인은 사람을 시켜 왕청여를 조사했고 조사 과정에서 그 의원을 찾아내게 되었는데 마침 그 의원은 량씨 부인의 서방과 아는 사이였다.그 의원에게 왕청여가 왜 전씨 가문의 아이를 지키지 못했는지 묻자, 의원은 솔직하게 이유를 얘기해주었다.그중 한 가지 추측이 바로 왕청여가 낙태 경험이 있어서 몸이 많이 상했다는 것이다.의원은 왕청여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기에 그저 뱃속 태아를 지키지 못한 게 너무도 흔한 일이라고 얘기할 뿐이었다. 낙태를 하고 나서 몸조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여자들은 당연히 몸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량씨 부인은 왕청여와 방시원 사이에 아이가 있었는데 알 수 없었으며 방씨 가문 집안일까지 조사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모든 건 그녀의 추측일 뿐이다.왕청여가 하도 건방진 태도로 운향월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자 화가 치밀은 량씨 부인은 자신의 추측을 사실인냥 내뱉은 것이었다.이로써 왕청여에게 제대로 한 방을 먹이고 교활하게 화제를 돌려가면서 문제점을 흐리지 않게 만들려고 했다.하지만 량씨 부인이 말을 뱉은 순간, 최씨와 왕청여의 안색이 한순간에 하얗게 질렸기에 량씨 부인은 자신의 추측이 정확하다는 것을 눈치채게 되었다.한편, 온몸에 힘이 쫙 풀린 왕청여는 바닥에 주저앉았고 그저 량씨 부인의 추측이었다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다.이때, 운향월이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말했다.“그러니까 이 모든 건 제가 의심이 많고 질투가 많아서 생긴 일이 아니라 왕청여 당신은 정말 그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약왕당에 찾아갔던 거네요. 두 사람 사이는 실수가 아니었어요. 심지어 아이까지 있었네요. 당신이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146화

    운향월의 물음에 왕청여는 이리저리 시선을 피하며 끝까지 앉으려고 하지 않았고, 그저 냉랭하게 말할 뿐이었다. “그때 당시 난 술을 많이 마셔서 실수로 그 사람을 방시원으로 착각한 것뿐이에요. 하지만 그 사람은 전혀 술에 취하지 않았어요. 맨 정신이었다고요. 그 사람은 내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어요. 물론 나도 잘못이 있지만 그 사람 잘못이 더 크다고요!”“서방님이 저한테 해준 말은 그게 아니었어요. 그날 당신은 술을 많이 마셨지만 취하지 않았고 서방님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고 했어요. 그리고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당신은 제 서방님 이름까지 불렀다고 했어요.”운향월은 가까스로 눈물을 참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반박했고 왕청여의 눈빛이 격하게 흔들렸다.“그 사람이 거짓말을 한 거예요!”왕청여는 고개를 홱 돌려 송석석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그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라고요! 못 믿겠으면 지금 당장 그 사람을 불러서 내 앞에서 다시 한번 물어봐요! 전 그때 당시 분명 방시원의 이름을 부른 거예요!”송석석은 이런 안건을 해결해본 적은 없었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왕청여가 여전히 그때 당시 방시원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것으로 보면 확실히 많이 취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한다.정신이 멀쩡한 상태에서 방시원과 노세진의 얼굴을 헷갈린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한편, 왕청여의 말에 운향월은 말문이 턱 막혔지만 곁에 서있던 량씨 부인은 바로 왕청여의 말에서 허점을 눈치챘다.량씨 부인은 어이없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그때 당시 술에 많이 취했다고 하지 않았나? 그 상황에서 누구의 이름을 불렀는지는 어떻게 그렇게 똑똑히 기억하지? 술에 취했어도 정신이 멀쩡했다면 상대방이 방시원이 아니라는 걸 바로 알았을 텐데?”“말도 안 되는 소리!”왕청여가 씩씩거리며 돌아서서 현장을 떠나려고 했다. 과거의 망신거리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다시 언급되자 왕청여는 너무 창피하고 화도 났다.이때, 금숙이 다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145화

    최씨는 서럽게 우는 운향월을 보며 너무 안쓰러웠다. 운향월도 벼랑 끝에 몰리지 않는 이상 절대 가문 체면까지 팔아가면서 이렇게 난동을 부리지는 않았을 것이다.순간, 표정이 확 굳은 최씨가 금숙에게 말했다.“지금 당장 가서 셋째 아가씨를 데리고 나와. 어떤 방법을 쓰든 무조건 데리고 나와.”시녀 금숙이 하인들과 함께 왕청여를 데리러 현장을 떠나자 최씨가 운향월을 보며 당부했다.“향월 낭자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하자고 이곳에 찾아온 겁니다. 그러니 셋째 아가씨가 어떤 대답을 하든, 그 대답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낭자 느낌대로 잘 분별하시길 바랍니다. 그래야만 마음이 편해질 것이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명확해질 것입니다.”최씨의 말에 운향월은 눈물을 닦은 채 창백한 얼굴로 대답했다.“감사합니다, 부인.”한편, 곁에 서있던 량씨 부인도 최씨와 송석석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딸이 이런 불공평한 대우를 받은 게 너무 마음이 아팠고 친척들까지 데리고 평서백부에 찾아온 것도 그저 한 마디 설명이라도 듣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했다.운씨 가문 사람들은 노세진과 왕청여의 과거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운향월에게서 전해 듣게 된 것이다. 집안 사람들은 운향월에게 그저 한때 지나간 과거뿐이라고 설득했으며 지난 일 때문에 부부 사이가 나빠지면 안 된다고 했다.운향월은 가족들의 설득을 받아들였고 노세진과의 결혼 생활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더군다나 결혼하고 나서부터 노세진은 여자 문제를 단 한번도 일으킨 적이 없었으며 심지어 첩도 들이지 않았다.그러던 어느 날, 운향월이 엉엉 울면서 친정으로 돌아갔다. 노세진과 왕청여 사이에 아직 왕래가 있고 약왕당에서 두 사람이 꽁냥거리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고 하면서 눈물을 줄줄 흘리는 딸을 보고 있으니 가족들은 마음이 아프지 않을 수가 없었다.한편, 량씨 부인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송석석은 남의 집안일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렸으며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많았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최씨는 고열을 앓고 있는 상황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144화

    집안 허물은 밖으로 소문내지 않는 것이 법이지만 운향월은 더 이상 그런 체면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다가 송석석의 위압감 넘치는 모습에 덜컥 겁을 먹은 운향월은 가가스로 눈물을 참은 채 모친과 친척들을 데리고 평서백부 내부로 들어갔다.왕준이 아직 퇴청하지 않은 탓에 평서백부 안에는 남희 혼자서 하인들을 데리고 서있었다.단 한번도 이런 상황을 처리해본 적 없는 남희는 하인에게 왕청여를 데리고 나오라고 지시했지만 방에 숨어있던 왕청여는 송석석까지 출동했다는 말에 더더욱 나가지 않으려고 했다.결국 상황을 전해들은 최씨가 열이 펄펄 나는 몸을 이끌고 나와서 문제를 수습했다. 송석석은 그런 최씨를 보자마자 마음이 안쓰러웠다. 며칠 사이에 최씨는 눈에 보일 정도로 심각하게 말라져 있을 뿐만 아니라 안색이 너무 창백하고 입술은 고열 때문에 벌겋게 변해 있었다. 하인의 부축 없이는 혼자서 걸을 수도 없을 정도로 몸이 허약한 것 같았다.송석석은 평소에도 최씨와 사이가 가까웠지만 최씨가 왕이장의 형수라는 사실을 알고 난 뒤로부터 최씨에게 더욱 내적 친밀감을 느꼈다.최씨가 이토록 몸 상태가 안 좋은 상황에서도 왕청여의 뒤처리를 해주기 위해 사람들 앞에 선 모습을 보자 송석석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평서백부 셋째 아가씨께서 끝까지 나오기 싫다고 하신다면 노부인께서라도 나오시라고 하세요. 아픈 사람을 이렇게 혹사시키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왕비님, 저희 어머님께서도 몸이 안 좋으십니다…”남희가 대답했다.한편, 운향월은 말이 전혀 안 통하고 막무가내인 사람은 아니었다. 다만 일이 이 지경까지 됐으니 왕청여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을 뿐이다. 확실한 대답만 들으면 마음이 조금 풀릴 것 같았다.운향월은 눈시울이 붉어진 채 말했다.“전 아무도 힘들게 할 생각 없습니다. 다만 왕청여에게 한 마디 물어보고 싶을 뿐입니다. 그날 약왕당에 일부러 그 사람을 찾아간 건지, 아니면 정말 단순히 약을 사러 간 건지 그것만 솔직하게 대답해주길 바랍니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143화

    노씨 부인이 평서백부까지 찾아온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외부에 떠도는 유언비어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었고 노세진이 약왕당에서 약재를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이 매일 약왕당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약왕당은 환자가 많아진 게 아니라 노세진을 한 마디라도 욕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들썩였으며 이 때문에 약왕당은 도무지 제대로 된 장사를 할 수가 없었다.사태가 더 이상 수습이 안 될 정도로 심각해지자 약재를 캐서 돌아온 단신의는 약왕당 앞에 서서 오늘부로 노세진을 약왕당에서 내보내겠다고 대외적으로 발표했고 노세진은 더 이상 약왕당 직원이 아니라고 명확하게 얘기했다.그리고 이 외에도 또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 방씨 가문에서 겨우 마음에 드는 여인이 생겼고 방시원의 모친 노수인도 상대방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여자 측에서도 좋다고 동의했고 이제 방시원만 동의하면 혼사를 준비할 수 있을 텐데 하필 이 상황에서 이런 일이 터지는 탓에 여자 측에서 바로 중매쟁이를 보내 없던 일로 하자고 말을 전했다.평소에 만나서 차나 마시고 담소는 나눌 수 있지만 혼사에 관해서는 더 이상 얘기하지 말자고 명확한 뜻을 보였다.화가 잔뜩 난 노수인은 친정으로 돌아가 노씨 가문 어르신들에게 고자질을 했다.노씨 가문 어르신들은 바로 노세진을 집안으로 불러 호되게 나무랐고 형제에게 민폐만 끼치는 멍청한 놈일 뿐만 아니라 노씨 가문 전체에 먹칠한 것도 모자라 방시원과 방씨 가문의 명성까지 더럽혔다고 호통을 쳤다.안 그래도 약왕당에서 쫓겨난 노세진은 노씨 가문 어르신들에게 욕까지 먹자 화도 나고 너무 창피해서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부인에게 이혼하자고 소리를 지른 것이다.노세진이 홧김에 이혼 얘기를 꺼냈을 수도 있고 혹은 오래 전부터 이혼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을 수도 있지만 이유가 어찌 됐든 이혼이라는 단어를 들은 노씨 부인 운향월은 분노가 순식간에 치밀었다.운향월의 친정은 6품 관원으로 권력이나 힘이 있는 건 아니지만 딸이 이렇게 괴롭힘을 당하는 꼴은 절대 가만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142화

    염구진과 노 집사는 자신의 인맥을 통해 예전에 있었던 일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평서백부 방계 어르신들에게 물어보니 다들 왕이장이 불에 타 죽은 뒤로 왕전 부부가 오랜 세월동안 슬퍼했다고 한다.방계 어르신들의 말은 예전에 임양운이 조사했던 내용과 똑같애 그저 겉으로 보여지는 거짓일 뿐이었다. 한편, 전북망과 왕청여는 결국 합의하에 이혼하게 되었다. 두 당사자가 동의한 일이라 별다른 분쟁도 없었고 예물도 그대로 다 되돌려 받았다.그때 당시 두 사람의 결혼식은 진성 전체가 들썩거릴 정도로 화려하고 성대했지만 이혼할 때만큼은 아무도 모르게 최대한 조용하게 진행했다.왕청여는 최씨에게 장군부의 어려운 상황을 잘 알고 있다고 하면서 큰 예물은 필요 없으니 비단과 액세서리만 돌려주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말과 달리 예물로 줬던 집과 땅은 이혼하자마자 사람을 시켜 돌려받았다.최씨는 직접 해결하는 대신, 집안일을 돕는 집사를 보내 처리하게 했다.한편, 왕청여와 노부인은 끝까지 최씨에게 노씨 부인을 찾아가서 해명을 부탁하라고 시켰으며 돈은 얼마든지 줄 수 있다고 하기도 했다.하지만 최씨와 남희 두 사람은 반대했다. 큰돈을 들여 셋째 아가씨의 명성을 되돌릴 가치가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모든 일이 마무리되자 최씨는 결국 앓아눕고 말았다.야밤에 갑자기 고열을 앓기 시작하더니 의식마저 흐릿해졌다. 급하게 의사를 불러 진료를 받아보니 속에 화병이 나서 온몸에 열이 나는 거라고 했고 더군다나 쌀쌀한 가을바람까지 맞아 상태가 더욱 악화된 것이다.최씨가 아프다는 소식에 친아들과 친딸에 이어 서자와 서녀까지 한걸음에 달려와 최씨를 보살폈다.서녀들은 아군서원에 합격하지는 못했지만 최씨는 그들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마마를 구해서 전문적인 교육까지 받게 했다. 이렇듯 최씨는 결혼 생활에 최선을 다했으며 남들이 절대 못하는 부분도 어떻게든 해내려고 애를 썼다.평서백부 노부인은 자신이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 탓에 최씨가 앓아눕게 되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며 미안한 마음에 왕청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141화

    심청화는 사여묵이 얘기한 부분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왕전이 승작을 하지 않았다고? 그럼 사부께서 조사하라고 보낸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었다는 거야?”심청화의 말에 사여묵이 대답했다.“염 선생한테 물어보면 바로 알 수 있겠죠.”조금 뒤, 서재로 들어선 염구진은 예전에 평서백부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묻자 확실히 뭔가 알고 있는 듯했다.명문 가문들의 집안일은 위로 삼대까지 알고 있지만 대충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알고 있을 뿐 완벽하게 알지는 못했다.“왕전이 승작한 적 없는 건 사실입니다. 그때 당시 평서백부 어르신께서 병을 앓고 계셔서 세자를 정하지 않으셨거든요. 왕전이 전공을 세우고 돌아온 뒤, 어르신은 왕전을 세자로 임명했고 그 뒤로부터 어르신의 몸 상태가 점점 호전되다가 기적처럼 완치가 되셨어요. 그래서 승작에 관한 일도 계속 뒤로 미루어진 거죠. 나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어르신께서 장손 왕표를 세손으로 책봉했어요. 그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외부인은 아무도 모르죠. 물론 저도 모릅니다. 아마 평서백부 몇몇 어르신들과 현재의 평서백부 노부인만 정확한 내막을 알고 계실 거예요.”염구진의 말에 이 일은 더욱 미궁속으로 빠지게 되었다.만약 그때 당시 왕전이 승작하지 않았다면 단순히 세자로 임명된 것으로 아들인 왕이장이 자신의 운명의 바꿔줄 것이라고 확신한 것인지 싶었다. 왕이장이 태어난 그 해에 왕전은 세자로 책봉되었지만, 다섯 살이 된 왕이장이 점쟁이한테 보내질 때까지도 왕전은 승작을 하지 못했다.이렇게 듣고 보면 왕이장의 출생은 아버지가 아닌 할아버지의 운명을 바꾼 것 같기도 하다.어찌 됐든 이 속에는 문제가 많다. 그리고 어쩌면 평서백부의 몇몇 어르신들도 정확한 사실을 모르고 있을 수도 있으며 모든 사실을 확실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평서백부의 노부인밖에 없을지도 모른다.“일단 조사하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오사형이 직접 결정해야죠. 저희는 그냥 알고 있기만 하다가 오사형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지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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