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며칠 동안 국공부의 문턱이 닳도록 사람들이 들락거렸다. 예전에 왕래가 드물었던 세가의 명부와 관솔들이 갑자기 번갈아 방문하게 된 이유는 황제의 구두 명령 때문이 아니라 송석석이 공을 세워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국공가문에 그녀만 남았지만 국공가문을 책임질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이혼할 때, 관솔들은 사적인 모임에서 모두 송석석을 문제 삼았고, 그녀는 모든 사람의 화젯거리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송석석을 대하는 태도가 180도로 변해 아무도 감히 그녀를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송석석에게 있어 손님 접대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장군의 저택으로 시집오기 전에 어머니가 특별히 사람을 불러 1년 동안 훈련시켰기 때문이었다. 접대란 바로 연극을 하듯 웃고, 말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다른 사람의 화제에 따라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모두들 즐겁게 말하고 웃고, 헤어질 때 아쉬워하는 표정을 짓다가도 문을 나서면 얼굴의 웃음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시큰한 볼을 어루만지면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다음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그리고 이날 저녁, 회왕비와 란군주도 왔다. 송석석은 퇴짜 맞은 선물들을 떠올리며 여전히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모랑 동생도 왔군요. 어서 들어오세요.” 회 왕비는 송석석이 자신을 이모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서야 마음이 놓였다. 그녀는 송석석의 손을 잡고 눈시울을 붉혔다. “석석아, 이모가 너한테 사과할 게. 그날 네가 사람을 보내서 사촌 여동생에게 선물한 거 좋은 마음이었을 텐데 이모는 네가 이혼하고 돈이 넉넉하지 못할까 봐 돌려보낸 거야. 그러니까 너도 이모 탓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그러자 송석석은 웃으며 말했다. “그럴 리가요, 이모도 저 위해서 그런 건데 제가 왜 이모 탓을 하겠어요? 그런 말 하지 마세요.” 그녀는 말을 마치고 고개를 돌려 하인에게 분부했다. “여봐라, 다과를 올려오너라.” 그러고는 내색하지 않고 회 왕비를 부축해 좌석에 앉히고 슬쩍 손을 빼냈다. 회 왕비는 진지하게 말했다.
회 왕비와 란군주는 30분 동안 앉아 있다가 떠났다. 송석석은 혐오가 조금도 섞이지 않은 얼굴로 그들을 밖으로 배웅했다. 보주는 그녀 대신 억울해서 말했다. “아가씨께서 군주께 선물을 드렸는데 회 왕비께서 돌려보낸 건 분명 아가씨를 경멸해서 그런 거예요. 그런데 아가씨는 왜 오늘 그분들에게 그렇게 잘해주신 거예요?” 송석석은 화장대 앞에 앉아 보주에게 비녀와 액세서리를 모두 떼라고 분부했다. “누굴 접대하든 다를 건 없어. 그냥 웃는 척하며 인사하면 그만인걸. 그리고 이모가 예전엔 나한테 잘해줬어. 주제도 모르고 이혼한 몸으로 사촌 동생에게 선물을 한 내 탓이지.” “하지만 아가씨께서 직접 간 것도 아니잖아요. 게다가 아가씨께서 이혼당한 게 아니라 황제 폐하께서 이혼을 허락하신 건데 왜 선물도 할 수 없어요?” “보주야,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 마. 일일이 따지면 피곤하지 않니?” 송석석은 동경 속의 피곤한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요 며칠 동안 파도처럼 사람들이 몰려와서 정말 쉴 새 없이 손님을 맞이했어. 진성에 관솔이 이렇게나 많은 지 몰랐었어. 하긴, 천하의 가장 존귀한 사람들이 모두 진성에 모였으니 당연한 건가?) 그러자 보주가 말했다. “아가씨께서 마음이 너그러우신 거예요.” 송석석은 동경 속의 자신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런 것까지 따지면 힘들어서 난 벌써 목숨을 끊었을 거야.) 송석석은 회 왕비에게도 다른 관솔들을 대하듯 조금도 진심을 섞지 않았다. (사람은 원래 이기적인 거야. 내가 이혼하고 국공부로 돌아왔을 땐 저택에 아무도 없었어. 그러니 쇠퇴하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 하지만 그땐 전북망과 이방의 형세가 한창이었기에 회 왕비가 나와 거리를 두면 적어도 장군부의 미움은 사지 않을 테니까 그런 거였고.) 진성에서 회왕부의 원칙은 되도록 미움을 사지 않는 것이었는데 만약 반드시 누군가의 미움을 살 일이 생긴다면 가장 만만한 상대를 골라 미움을 사는 것이었다. 오늘날 송석석은 공을 세웠는데 이방은 아무런 공훈도 없이 군
전 노부인은 전북경과 민 씨, 그리고 전소환과 함께 왔다.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전 노부인은 발목이 삐어 국공부 문 앞에 털썩 주저앉아 울부짖기 시작했다. “석석아, 평소에 나는 널 친딸처럼 대했어. 네가 장군부에 시집와서 억울한 적 있었니? 내가 너에게 어떤 규칙도 세운 적이 없고, 이혼도 네가 황제 폐하께 부탁해서 한 것인데 왜 날 미워하는 거야? 넌 내가 단신의의 약을 써야만 연명할 수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 단신의가 날 치료하는 걸 금지하다니. 넌 내가 죽는 꼴을 보고 싶은 거냐?” 이때 전소환도 울며 말했다. “그래요, 둘째 형수. 사람이 은혜를 잊으면 안 되지. 애초에 형수 집안이 참혹하게 멸문당했을 때, 어머니는 형수가 너무 슬퍼할까 봐 밤낮으로 형수와 함께 있었고 형수와 함께 힘든 나날을 보냈는데 어떻게 이렇게 매정할 수 있어요?” 전 노부인은 가슴을 움켜쥐고 가슴이 찢어질 듯 울면서도 또박또박 말했다. “석석아. 이혼하는 날 네가 날 영원히 어머니로 대하겠다고 해서 내가 너 고생할까 봐 목돈까지 꺼내 너에게 줬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단신의가 나에게 치료해 줄 수 없게 막다니.” 이혼 당일 송석석이 장군부에서 나올 때 확실히 많은 물건을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 백성들도 모두 그 모습을 보았던 것이었다. 크고 작은 물건은 물론이고, 송 씨 자제들은 병풍, 의자, 심지어 생필품까지 모두 옮겼다. 그래서 전 노부인이 이렇게 울부짖으니 구경하는 백성들은 당연히 사실이라고 믿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황제 폐하의 허락 하에 이혼했으니 서로 좋게 헤어지면 그만이지, 왜 전 시어머니의 살길까지 막는 거야? 국공부의 명의로 단신의가 전 노부인을 치료하는 걸 금지하다니, 이건 시어머니를 죽이려는 거 아니야?”“이건 너무 지독하잖아. 장군부의 노부인께서 그 정도 했으면 괜찮은 거지. 새로운 규칙도 세우지 않고 국공부의 가문이 망했을 때 심지어 며느리와 밤낮 함께 있어줬다는데, 솔직히 이렇게까지 하는 시어머니가 어디 있어?”“그러게. 전
그의 말에 노부인은 대답할 수가 없었다. 바늘 하나 실오라기 하나 해준 게 없는데 뭘 말하겠는가? 노부인은 할 말이 없어 울기만 했다. “해준 게 있는지 없는지는 석석이 오면 알 수 있겠지.” 진복은 계속 평화로운 목소리로 말했다.“게다가 노부인은 저희 아가씨를 친딸처럼 대했다고 했죠. 송 씨 가문이 망할 때 아가씨 곁에 있어준 게 틀린 건 아니지만 실은 노부인께서 편찮으셔서 저희 아가씨가 노부인을 돌보느라 같이 있었던 거잖아요. 심지어 전북망 장군께서 출정하신 후 줄곧 저희 아가씨께서 노부인을 돌본 것으로 알고 있어요. 아가씨께서 자신의 방에서 산 날이 손에 꼽을 만큼 적어요. 그리고 장군부의 수입과 지출이 고르지 않아 궁중의 사람들이 일 년 사계절 입는 옷 역시 저희 아가씨의 혼수로 산 것이죠? 전 어르신부터 시누이까지, 비녀 고리에서 신는 신발까지 어느 하나 저희 아가씨가 마련한 게 아닌가요? 심지어 평처까지 신경 썼죠.마지막으로 저희 아가씨께서 단신의가 전 노부인에게 가는 걸 금지했다고 하는데 그건 더더욱 말이 되지 않습니다. 아가씨께서 전 씨 가문으로 시집갈 때부터 노부인의 몸은 좋지 않아서 아가씨께서 단신의를 모셔 노부인의 병을 봐 드린 겁니다. 어르신의 병은 단신의가 만든 단설환을 드셔야 하는데 단설환은 한 알에 은 열 냥은 넘습니다. 일 년 동안 노부인께서 얼마나 드셨는지 모르신다면 단신의에게 기록이 있으니 모셔올까요?” “단신의를 한 번 모셔오는 게 좋겠네요. 저희 아가씨가 단신의에게 당신의 병을 치료하지 못하게 금지한 것인지, 아니면 단신의가 그쪽 가문의 행위를 참지 못해 그런 것인지 알 수 있겠네요. 심지어 애초에 단설환도 주기 싫었는데 그쪽 큰 부인께서 약왕당에 가서 무릎을 꿇어 단신의가 감동해서 준 거였잖아요. 그리고 노부인께서 나잇값을 못하시니 이젠 더 이상 방문해서 치료하지 않겠다고 한 겁니다.” 진복은 백성들을 한 눈 보고 계속 말했다. “노부인께서 방금 하신 말씀은 구구절절 울부짖기만 했지 증거는 없어요. 하지만 제
양마마는 냉담한 표정으로 노부인의 말을 끊었다. “황제 폐하께서 결혼을 하사했다니요? 전북망 장군이 전공을 세워 황제 폐하께 결혼을 허락해 달라고 부탁한 거 아닙니까? 그리고 애초에 이방 씨는 평처를 요구했던 거고요. 전북망과 이방이 함께 저희 아가씨에게 찾아가서 어떤 말을 했는지 제가 그대로 한 번 말해볼까요?” “전북망은 앞으로 이방과 결혼하면 다신 저희 아가씨의 방문에 발을 들여놓지 않을 것이라며, 아가씨더러 아내로서 계속 혼수로 장군부를 보조하되 앞으로 이방이 아기를 낳으면 저희 아가씨에게 맡길 테니 그거로 만족하라고 하셨죠. 어디 그것뿐입니까? 이방이 너무 많은 예물을 요구해서 장군부에서 내놓지 못해 저희 아가씨에게 요구했었죠. 저희 아가씨께서 줄 수는 없고 빌려줄 수는 있다고 하니 무정하다며 비난했었고요. 결국 방법이 없으니 저희 아가씨가 불효하다며 쫓아내려고까지 했죠. 쫓겨난 여자는 혼수를 가져올 수 없으니까요. 얼마나 독했으면 이럴 수가 있어요?” “저희 아가씨가 불효하다니요? 장군부로 시집간 후부터 매일 노부인의 병을 간호하고 신혼 첫날부터 출정을 간 전북망을 기다렸지만 그는 이방을 데려와 결혼하겠다고 했죠. 저희 아가씨의 손가락 하나 건드리지 않는데 임신은 저희 아가씨 혼자서 한답니까?”진복과 마마의 말이 끝나자 백성들은 발칵 뒤집혔다. “그렇다면 송 씨 아가씨가 아직 결백한 몸이라는 건가?” “장군부에서 너무 한 거 아니야? 전북망이 결혼하겠다고 황제 폐하께 부탁해 놓고서는 송 씨 아가씨의 혼수까지 탐내다니.” “이렇게 뻔뻔한 가문이 어디 있어? 천벌받을까 봐 무섭지도 않나?” “내가 처음부터 이상하다 했어. 송국공 가문은 항상 떳떳하고 남강에서 전공까지 세웠는데 그런 사람일 리가 없잖아?” “내가 듣기론 처음 이혼할 때 송태공께서 장군부에서 너무 사람을 업신여긴다고 화를 냈다던데.” “그리고 단신의의 얘기가 나와서 생각난 건데 작년에 내가 약왕당에 갔을 때 장군부 큰 부인이 문 앞에 무릎 꿇어 단신의에게 약을 부탁했지만
진복이 은근슬쩍 주위의 사람들을 치켜세워주고 듣기 좋은 말을 하니 사람들은 정의감이 자극되어 모두 장군부 사람들을 꾸짖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송석석에게 욕을 먹이기는커녕 송석석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자 전 노부인은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걸 알고 떠나버렸다. 전 노부인은 원래 송석석이 돌아오기를 원했지만 전북망이 동의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국공부에 와서 한바탕 소란을 피워 백성들의 화젯거리를 송석석에게로 돌리려고 했다. 그녀는 자신이 소란을 피우면 송석석을 구설수에 빠뜨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국공부의 사람들이 그녀를 쫓아내기라도 하면 송석석은 더 이상 이치를 따질 수 없는 입장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들이 증거까지 대며 반박하고 증인까지 찾아오겠다고 하니 전 노부인은 당황해서 떠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 일들은 조사하면 안 되는 일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송석석은 홀에서 차를 마시며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들었다. 진작부터 장군부의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고 있었던 송석석은 그들의 말에 놀라지도 않았다.송석석은 그들이 여기까지 와서 소란을 피운 목적을 잘 알고 있었다. (이방에게 쏠려있던 백성들의 시선을 돌리고, 내가 화젯거리가 되어 이방과 장군부를 사람들의 입에서 해방시키려는 거겠지. 그리고 백성들의 동정을 얻어내 이방이 공을 탐한 소문을 덮으려는 거겠지. 못난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일일이 화내고 따지면 살 수 있겠어?) 불타는 듯한 날씨에 보주는 송석석의 더위를 식히고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 찬 음료를 만들어 주었다. 국공부에 돌아온 지 며칠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송석석의 피부는 눈에 띄게 하얗고 보드랍게 변했다. 송석석은 웃으며 말했다. “집사와 두 마마에게도 나누어 줘. 화를 가라앉힐 사람은 그들이니까.” 그러자 보주가 말했다. “걱정 마세요. 모두 준비했어요. 그리고 얼음도 충분합니다.” 진복과 두 마마는 돌아올 때 안색이 좋지 않았지만 방에 들어가 아가씨를 보자마자 웃음을 지었다
사여묵은 문을 닫고 며칠 동안 면회를 사절했다. 요즘 찾아오는 사람이 엄청 많을 텐데 그는 한 사람도 만나지 않았다. 사여묵은 황궁을 떠나자마자 장난기가 가득 찬 표정을 거두었다. 그는 이 어명 뒤에 숨겨진 황제폐하의 뜻을 알고 있었다. 송석석이 3개월 내에 시집가지 않으면 황궁으로 들어가 황비가 되어야 한다는 어명은 사실 사여묵에게 선택권을 넘긴 것이었다. 황실 서재에서 웃고 떠들던 말이 실은 진심이 담긴 말들이었다. 송석석이 입궁을 하든 말든 황제폐하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모든 건 황제폐하의 말 한마디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몇 년 전부터 황제폐하는 송석석에 대한 그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그는 남강 전쟁터에 나가기 전 송 부인을 찾아가 송석석의 혼인을 미뤄달라며 남강의 승리를 예물 삼아 송석석을 부인으로 맞이하겠다며 부탁했다. 황제폐하도 이 일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남강전쟁이 끝난 오늘날 그가 송석석과 결혼하길 바라는 것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형제간의 우애가 좋아 보였지만 실은 그날 황실 서재에서 했던 모든 말 중의 핵심은 바로 송석석이 어떤 세자와 결혼하든 군대를 거느리고 자신의 지위를 강화할 위협이 있으니 그녀와 결혼하려면 병권을 내려놓고 북명군의 통솔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말은 그에게 들으라고 한 말이었다. 그는 황제폐하가 자신을 줄곧 꺼려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당시 남강 전쟁터에 긴급 상황이 발생했지만 황제폐하는 그와 북명군을 보내 남강을 지원하는 것을 주저했다. 황제폐하는 송원수가 남강을 한 번 되찾았으니 이번에도 꼭 성공할 줄 알았다.하지만 전쟁은 오랫동안 지속되었고 식량과 병기, 솜옷 등이 모두 부족한 상황에서 송원수는 끝까지 버텼지만 지원군을 기다리지 못했다. 그들이 희생하자 황제폐하께서는 그제야 그를 보내 북명군을 통솔해 남강 전쟁터로 갔다. 그 후로 그는 남강 모든 병마를 인수하고 관리했다. (그러니 형님이 날 꺼려하지 않을 리가 없지.) 북명군은 그가 키운 것이었다. 그리고 부황이
사여묵은 역시 어릴 때 가 좋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때는 형님과 모든 것을 얘기할 수 있고 할 말이 있어도 지금처럼 빙빙 돌려서 말하지 않고 직접 얘기했으니까. 노 집사는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 “황제폐하께서 은혜를 베풀어 태비님을 여기로 보낸다고 해서 사람을 시켜 봉명원을 깨끗이 청소했습니다. 그리고 태비께서 지목한 가구를 마련하는데 총 은 3만 냥이 들었습니다.그의 말에 사여묵은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 “3만 냥? 무슨 가구를 사는데 3만 냥이나 써?” 말을 마친 그는 일어나 직접 봉명원으로 갔다. 정원에 들어서자 모란, 작약이 심어져 있었는데 특별히 온실까지 제작했다. 하지만 이 여름엔 쓸모가 없고 겨울을 대비해서 제작한 것이었다. “원래 있던 매화나무는 모두 베었어?” 사여묵은 미간을 더 찡그리고 물었다. 노 집사는 조심스럽게 그의 뒤를 따라가며 말했다. “태비께서 매화는 곰팡이가 껴서 싫다고 해서 모두 옮겼습니다.” 사여묵이 궁에서 나온 후부터 정원에 각종 매화나무를 심었었다. 그래서 겨울이면 정원에 매화의 향기가 풍겨 마치 매산에 사는 것 같이 가슴을 시원하게 했다. 방에 들어가 보니 가구가 가지런히 놓여 있고, 모든 건 배나무로 제작한 것이었는데 그래도 3만 냥이 될 만큼 비싸 보이지는 않았다. 정말로 비싼 건 골동품 선반 위의 골동품과 벽에 걸려 있는 서화였다. 그리고 침실에 있는 화장대, 여름 침대, 푹신한 침대, 귀비의자, 이 모든 건 다 배나무로 제작되었고 조각 솜씨가 정교해서 황궁의 물건보다 조금도 뒤지지 않았다.이것도 노 집사가 가격을 깎고 깎아서 3만 냥에 살 수 있었던 것이었다. 사여묵은 돈을 흥청망청 쓰는 것이 아니라 쓸 땐 쓰고 아낄 땐 아끼는 사람이었다. 그는 은 3만 냥으로 정원을 장식하기엔 너무 사치스럽다고 생각했다. 사여묵도 어마마마와 함께 살고 싶지 않지만 출정하기 전에 형님께서 남강을 정복하면 어마마마와 황궁 밖에서 사는 걸 허락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모셔온 것이었다. 듣기에는 은혜
그의 이름은 신이었는데 그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에 대해서 말할 때, 경멸하는 기색을 띠었고,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모르는 사람까지 모두 침을 뱉으며 뻔뻔하다고 할 정도였다. 알다시피 애인과 야반도주하는 것은 사람을 죽이고 불을 지르는 것보다 더 욕먹을 일이니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에게 후회하냐고 묻기도 했다. 그녀는 시집간 것을 후회하지 않지만 죄책감을 느끼긴 했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시 씨 가문의 명성이 손상되어 형제자매들과 조카들이 혼사에 어려움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신이는 시 씨 가문의 아가씨로서, 태어날 때부터 온갖 보살핌을 받아왔다. 먹는 것은 물론 모두 산해진미이고, 입는 것도 모두 능라 비단이었다. 게다가 보모님과 오라버니의 총애까지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그녀에겐 한 가지 결함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열네 살 때까지 월사가 오지 않은 것이었다. 많은 의사들을 불러 진찰을 받고 밤낮으로 약을 먹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어머니는 그녀에게 몸이 차서 그러니 몸조리를 하면 나을 수 있다고 위로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몰래 의사가 부모님께 하는 말을 들었다. 의사는 그가 몸이 차서 그런 병이 생긴 것이 아닌, 아이를 키우는 곳이 어린아이와도 같아서 평생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의 몸이 마치 작은 꽃병과 같아서 꽃을 꽂을 수는 있지만 나무를 심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 건 불가능하다고 비유했다. 그녀는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건 여자에게 어떤 의미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녀를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나중에 좋은 사람에게 시집가서 부군에게 첩을 들인 후, 첩이 낳은 아이를 친자식처럼 키우라고 조언해주었다.시 씨 가문이라는 후원이 있으면 그녀가 아이를 낳을 수 없어도 아무도 그녀의 지위를 흔들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 씨 가문의 재물은 그녀가 평생 부귀하게 살기에 충분했다. 신이의 조모도 그녀에게 아이를 낳을 수 없으니 자세를 낮춰야 한다고 했다. 시 씨 가문의 딸이라고
추운 겨울이 되자 눈이 내려 성릉관은 하얗게 뒤덮였다. 세상이 마치 깨끗해진 것처럼 보였다. 이황자는 몇 년 동안 너덜너덜한 승복을 입고 발우를 받쳐 들고는, 가는 길에 동냥을 하다가 절을 보면 이틀 묵으며 부처님께 참회하면서 살았다. 사실 그는 원래 있던 절에서 계속 지낼 수 있었다. 편안하진 않지만 풍찬노숙할 필요도 없고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그런 안일한 곳에서는 평생 죄를 씻을 수 없다고 생각했고, 계속 길을 걷고 계속 고생해야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했다. 그가 성릉관에 도착했을 때 짚신은 이미 찢겨 있었고 발바닥에는 두꺼운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이제는 신발을 신지 않고도 자갈이 가득한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추운 날씨에는 모든 옷을 껴입어도 추위를 막을 수 없었지만 이미 익숙해진 뒤였다. 그는 눈보라를 맞으며 성릉관에 위치한 감은사로 향했는데, 몇 년 동안 발걸음을 멈춘 적이 없는 탓에 고단함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심지어는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아 그는 눈이 가득 쌓인 길에서 의식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깨어났을 때 그는 따뜻한 두꺼운 이불 속에 누워 있었다. 그가 있는 방에는 숯불이 피워져 있었고, 살짝 열린 창문으로 눈에 눌려 허리가 굽은 나뭇가지가 보였다. 그는 눈동자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렇게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의 마음속에 순간 욕심이 생겨 조금만 더 누워있고 싶어졌다. 그런데 바로 그때, 문이 활짝 열렸다. 그가 벌떡 일어나 앉았는데, 갑자기 눈앞이 핑핑 돌더니 다시 힘없이 침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누워 있거라.” 이때 누군가가 부드러운 말투로 말하면서 약그릇을 그의 침대 옆에 놓았다. 그는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익숙해, 어지러움을 가라앉히고 고개를 돌려보니, 그 사람은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오랜만이야.” ‘서우 형?!’ 그는 자신이 잘못 보았을까 봐 다시 자세히 보려 했지만, 몸이 너무 어지러운
대황자는 봄 사냥 때 숙청제에게 꾸중을 듣고 돌아간 후 앓아누웠다. 당시 이황자와 서우가 모두가 걱정했는데 덕비는 오히려 기뻐했다. 그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황제폐하께서는 분명히 대황자를 싫어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덕비는 이황자를 안고 반드시 부지런해야 하고, 태부와 황숙의 말을 잘 듣고 누구보다 잘 배워 황형을 제압해야 한다고 당부까지 했다. 그로 인해 이황자의 마음은 몹시 복잡했다. 덕비가 줄곧 그에게 태자와 황제가 되는 것이 얼마나 좋은 지 말해주었을 때 비록 그도 마음이 설렜지만 자신과 거리가 먼 얘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금 그와 대황형, 서우 형, 그리고 셋째 동생이 사이가 좋아 도저히 대황형을 미워할 수가 없었다. 매일 모순적으로 지내다 보니 오히려 학업이 나빠졌고 승마 연습을 할 때도 여러 번 실수를 했다. 하지만 덕비는 이상하게 그를 탓하지 않았고 며칠 동안 계속 게으르게 하라고 했다. 그렇게 덕비는 이황자를 데리고 복마마를 자주 뵈러 갔고, 복마마 궁전에서 숙청제를 만날 수도 있었다. 덕비는 며칠 동안 그곳을 드나들더니 어느 날 굳은 표정으로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차가운 말투로 청이에게 자신의 보살핌이 없으면 아이가 태어날 수 있는지 보겠다고 했다. 황제폐하를 자주 뵈러 갈 수 없어 아쉬웠지만 이황자는 마음을 가다듬고 공부와 승마술에 전념했다. 이황자는 당시 앞날이 어떻게 될지도 몰랐고, 비록 매일 힘들긴했지만 한편으로는 즐거웠기에, 계속 이렇게 지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숙청제의 천추세에 승마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니 세 황자와 서우도 가서 겨뤄 보기로 했다. 원래 그런 대회에서 황자들은 재미있게 참석만하면 되지만, 덕비는 그 경기를 몹시 중시했다. 덕비가 이황자에게 마름쇠를 건넬 때, 그는 하늘이 무너져내리는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황자는 원하지 않았다. 그는 절대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대황형의 목숨을 앗으려 하다니, 이황자는 처음으로 어마마마가 무서워졌다.하
이황자의 출가하기 전의 이름은 사범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이황자가 가장 많이 들었던 평가는 총명하고 지혜로우며 세 황자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것이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는 진짜라고 믿으며, 자신이 자랑스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이런 말로 인해 자랑스러워할 때마다 덕비는 매번 그를 바닥으로 밀쳤다. 그녀는 늘 연민과 복잡한 감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보며 말했다. “내 뱃속에서 태어나 평생 그 바보에게 밀리게 생겼구나. 바보 주제에 운은 또 얼마나 좋은 지.” 그는 어릴 때부터 그런 말을 귀에 익힐 정도로 들었다. 하지만 덕비는 사람들 앞에서 말하지 않고 매번 사적으로만 그에게 말했다. 그는 어렸을 때 어마마마가 대황형을 가장 싫어하면서 왜 매번 자애롭고 온화한 눈빛으로 대황형을 보며, 분명 바보라고 해놓고 총명하다고 칭찬하는지 몰랐다. 이해가 안 돼서 몰래 청이에게 물어보았더니 청이는 한숨을 쉬며 그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이황자 님, 마마께서는 이황자 님을 위해서 계획을 세우고 계신 거예요.”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어머니가 자신을 위해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지 몰랐다. 하지만 그가 말을 들을 때마다 어머니는 기뻐하셨고 그에게 한숨을 쉬거나 애처로운 눈빛을 보이지 않았다. 숙청제가 그를 보러 올 때마다 덕비는 그가 책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려주었다. 그러자 숙청제는 그에게 어떤 책을 읽는지, 그리고 어떤 내용을 기억했는지도 물었다.그는 매번 대답을 아주 잘해서 숙청제를 흡족하게 했다. 답은 모두 미리 외운 것이기 때문에 어려울 건 없었다.가끔은 숙청제가 그에게 대황형이 괴롭히거나 장난감을 빼앗지는 않는지 물어보기도 했다.하지만 그런 질문에도 정답이 있었는데, 그는 매번 자기가 동생이니 황형에게 양보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이황자가 매번 그렇게 대답할 때마다 숙청제의 눈빛은 몹시 복잡했는데, 이황자는 그 눈빛을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숙청제가 잠시 침묵한 후에 그의 머리
어릴 때부터 친했던 두 친구는 각자의 분야에서 항상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수철이 약을 접하게 되면서 약과 의리는 그가 신약산장을 의지하는 모든 것이 되었다. 산에 내려가 의관을 차리고 사람들을 치료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매번 참기만 했는데 서우가 왔다 간 후 보내온 편지를 본 그는 산에서 내려갈 희망이 생겨 마음이 부풀어 잠이 오지 않았다. 그는 예전에 부상에 시달린 적이 있어서 열심히 통증과 부상을 치료하는 약을 연구했는데, 의술이 전면적인 나머지 뒤처지지도 않았다. 그의 마음속에는 지난 몇 년동안 한 번도 타오르지 않았던 한 줄기의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신약산장에 도착한 순간부터 그는 자신이 설령 살아갈 수 있다 하더라도 이번 생은 그곳에서 지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채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신분과 얼굴을 바꾸고, 배운 것을 가지고 산에서 내려갈 수 있다면, 그는 유용한 사람이 될 수 있고 더 이상 숨지 않고 떳떳하게 살 수 있었다. 그 생각에 그는 며칠 동안 흥분한 상태로 제약 공장에서 먹고 마셨다. 사부님은 그런 그의 모습이 조금 두렵게 느껴져 사공에게 편지를 써 알리려고 했다. 그는 사부에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환한 미소를 띠었다. 그 웃음에 놀란 사부님은 심지어 무당을 불러 귀신이 씐 건 아닌지 보려고까지 했다. 하지만 서우 형이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그는 사부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비록 그가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긴 하지만 나중에 너무 실망하지 않도록 마음의 준비를 항상 해야 했다. 날이 지나고 더위와 추위가 오가더니 벌써 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추분, 날씨가 상쾌한 어느 가을, 하늘의 밝은 태양은 사람을 뜨겁게 하지 않았고 하얀 구름들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불어 들어오고 있었다. 서우는 다시 한번 신약산장에 발을 들였는데, 이번엔 그의 서동인 진소설을 데리고 왔다. 진소설은 몽동이를 따라 무술을 익혔다. 그런데 노력한 사람은 역시 보답을 받는다고, 비록
“사정언, 너 말 좀 그만해.” 송석석은 눈살을 찌푸리고 서우에게 매달려 쉴 새 없이 말하는 딸을 혼냈다. 새빨갛게 그을린 작은 얼굴에 닭장처럼 헝클어진 머리카락은 한 눈에 봐도 밖에서 뛰어놀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우가 돌아오자마자 그녀는 쉬지도 않고 사촌 오빠에게 길에서 본 재미있는 일들을 물었다. “어머니.” 사정언은 눈을 크게 떴다.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뜨니 왠지 억울해 보였다. 그녀의 외모는 부모님의 장점만 닮아 있었다. “제가 이렇게 오랫동안 사촌 오라버니를 만나지 못했으니, 당연히 할 말이 많지요. 하루만 못 봐도 3년 못 본 것처럼 길게 느껴진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게 무슨 말이야? 대체 누가 그런 말을 가르쳐줬어?” 송석석이 눈살을 더욱 찌푸렸다. “왕사백이요. 그가 며칠 전에 매산으로 갔었는데, 돌아오자마자 시 고모를 안고 그렇게 말했었습니다.” 그녀의 말에 시만자는 고개를 숙여 송석석의 눈빛을 피했다. 그녀는 그때 정언이 나무 위에 숨어 있을 줄은 몰랐다. 알았다면 아이 앞에서 껴안고 그런 오글거리는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이었다. 그녀는 이 아이가 말을 따라 하는 능력이 아주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 나이의 아이들이 왜 어른들의 말을 듣는 것을 좋아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는 이맘때쯤에 최대한 어른들과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말이다. 사정언은 대답한 후에도 계속 서우를 잡고 말했다. “오라버니, 혹시 상서에 갔어? 상서에서 시신 업는 것을 봤어? 정말 소국이 말한 것처럼 앞에서 종을 흔드는 도인이 있고, 뒤에 좀비들이 따라가는 거야? 그들은 걸어가 아님 뛰어가? 꼭 밤에만 볼 수 있는 거야? 낮에는 햇볕이 쨍쨍해서 볼 수 없는 거야? 그들은 말할 줄 알아? 뭘 먹어? 그리고 그곳엔 주술을 잘한다고 들었는데 혹시 미인을 본 적이 있어? 그런 미인은 오라버니가 마음에 드는지…….” “그만해!” 송석석도 이내 참지 못하고 호통을 쳤다. “보주, 서주, 어서
송석석은 이번에 외출할 때 황제에게 유람하러 간다고 했다.하지만 그녀는 신약산장에 오래 머물지 않고 7일 만에 떠나 만종문으로 향했다.그녀는 원래 진성으로 돌아가 홍현 고모를 찾고 싶었지만 평무종 고모를 직접 찾아가서 분장술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분장술은 어렵지 않지만 능숙하게, 아무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하려면 한두 달 만에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간단한 분장술은 기존의 얼굴에도 할 수 있었지만 비가 오기만 해도 쉽게 흔적이 드러날 수 있었다.그러니 간단한 분장술만 배워서는 안 되었다.그리고 또 다른 미용술은 가면을 만드는 것인데 일반적인 가면은 일정한 두께가 있어 답답하고 오랫동안 착용하면 얼굴에 상처가 날 수 있다.게다가 가면을 착용할 때는 특수 물약을 묻혀야 했기에, 뜯을 때도 얼굴에 상처가 입을 수 있었다.운익각 사람들은 가면을 착용할 때 오래 착용하지 않았다. 게다가 정탐꾼들은 무공도 괜찮고 경공도 높아 임무를 수행할 때만 가면을 착용해서 물약을 묻힐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벗겨져도 얼굴에 검은 천으로 복면을 쓰고 있어서 알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그리고 일반인들이 변장해서 탐문할 때 사용하는 것은 변장의 첫 번째 방법이었다.평무종은 서우의 요구를 듣고 말했다.“얼굴에 오래 쓰고 있을 수 있으면서도 원래 피부를 해치지 않고 잘 벗겨지지 않는 가면이라, 그럼 상어가죽으로 만드는 것은 어떠냐.”“상어가죽이 무엇입니까?”서우는 매미의 날개처럼 얇고 물에 젖어도 흔들리지 않는 상어비단은 들어본 적이 있었지만 그건 엄청 귀중한 비단이었다.그러자 평무종이 설명했다.“상어가죽은 분장술에서 쓰이는 가장 좋은 소재이다. 통풍이 잘 되고, 얼굴에 단단히 붙어 쉽게 떨어지지 않아 빗물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심지어 눈으로 보나 만지나 모두 진짜 피부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상어가죽으로 가면을 만들려면 상어 눈물을 사용해서 실을 짜내고 다시 밑감을 만들어야 해서 매우 번거롭다.”그러자 서우가 물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촛불을 들고 한참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조정의 일은 일절 말해주지 않은 탓에, 수철은 지금 나라가 안정적이라는 사실만 알 수 있었다. 그는 이미 대황자가 아니다. 따라서 지금 그가 지켜야 할 것은 자신의 목숨뿐이고, 다른 것은 이미 그와 상관이 없어졌다. 그는 조정에 관한 화제를 꺼내면 모두가 예민해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릴 때 그는 왜 자신이 죽어야 하는지 몰랐지만, 나중에 단 사공이 와서 조금씩 분석해 주었고, 그의 사부님도 이해관계에 대해 이야기해준 적이 있었다. 그와 셋째 동생 사이에 가족의 정으로 목숨을 걸고 불안정한 여생을 걸어야 한다면 결코 모두에게 좋은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받아들기로 한 것이었다. 삶은 계속될 텐데, 매일을 의미 있게 잘 보내야 목숨을 건진 보람이 있기 때문이다. 서우가 그의 다리에 대해 물었다. “내가 오기 전에, 고모가 그러던데 넌 다리를 다쳐서 일어날 수 없다고 했는데 지금은 어떻게 걸을 수 있게 된 거야?” 그러자 수철이 말했다. “부황께서 승하하신 해에 산장에서 몇 사람이 와서 진찰해 보더니 정말 심하게 다쳤다며 이대로 두었다가는 계속 아플 테니 반드시 극단적인 방법으로 치료해야 한다고 하더군.” 그러자 서우는 호기심에 물었다. “어디서 온 신의야? 그럼 그때부터 치료한 거야?” 그 물음에 수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북당에서 왔는데 그 사람은 그 말만 하고 날 치료해주지 않고 당일에 떠났어. 그러다가 지난달에 와서 약주를 줘서 그걸 마셨는데, 난 하루 종일 혼수상태에 빠졌어. 심지어 깨어나니 다리가 아파 죽을 것 같았지.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점점 좋아지더니 누군가 부축하면 일어날 수 있게 되었어. 처음에는 잘 일어나지 못했는데 시간이 지나자 점점 똑바로 설 수 있게 되었지. 그리고 지금은 혼자 몇 걸음은 걸을 수 있게 됐어.” 그러자 서우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북당신의? 그분께서 아직 살아 계셔?” “아니, 돌아가셨어. 내가 일어나
[번외편]신약산장의 진달래가 온 산천지에 피었다. 다채로운 경치는 사람들로 하여금 황홀하게 만들었다. 특히 신약산장에 가본 적이 없는 사람들마저 그곳에 살고 싶어 할 정도였다. 하지만 예외인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는 말을 타고 산 아래에 도착해 말을 잘 배치한 후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직 눈앞의 길만 보았고 찬란한 꽃들은 그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빠르게 걸으며, 가끔 경공을 사용하기도 했다. 신약산장이 비록 높지는 않았지만 은밀하게 숨겨져 있었고 많은 갈림길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지도를 수도 없이 봐 온 덕분에 신약산장으로 향하는 길을 이미 마음속에 깊이 새기고 있었다. 약관 때 그가 작위를 계승했을 당시, 작은 고모가 많은 선물을 주었는데 그중 가장 큰 선물이 바로 지도였다. 그리고 그에게 온몸의 피가 끓게 하는 소식을 알려주었는데 바로 수철이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이었다. 당시, 그는 한숨도 자지 못했고 옛날의 모든 일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작위를 받은 후 입궁해서 사은하고 선조들에게 제사를 지낸 후 답방 인사를 드려야 했는데, 작은 고모의 말로는 인맥을 굳건히 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그래서 무려 보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신약산장으로 출발했다. 산 아래에 도착하자 그는 날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막상 산문을 본 순간, 강한 슬픔에 휩싸여 발걸음을 멈추고 그저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작은 고모는 그에게 수철이가 두 다리를 못 쓰게 되었고, 불행 중 다행히 치료 후에 목숨은 건졌지만 약 없이는 살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 그것은 평생 약을 달고 의자에 앉아 있거나 침대에 누워서 지낼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그의 기억 속의 수철의 모습은 두 가지로 나뉘었는데, 하나는 제멋대로며 횡포한 모습이었고, 다른 하나는 성실하고 열심히 공부하며 태후마마와 황제폐하를 실망시킬까 봐 무술이든 공부든 최선을 다 했던 모습이었다. 특히 무술은 고모부가 재미있게 가르쳐 준 덕분에 그들은 항상 활기차게 뛰어다닐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