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복이 은근슬쩍 주위의 사람들을 치켜세워주고 듣기 좋은 말을 하니 사람들은 정의감이 자극되어 모두 장군부 사람들을 꾸짖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송석석에게 욕을 먹이기는커녕 송석석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자 전 노부인은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걸 알고 떠나버렸다. 전 노부인은 원래 송석석이 돌아오기를 원했지만 전북망이 동의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국공부에 와서 한바탕 소란을 피워 백성들의 화젯거리를 송석석에게로 돌리려고 했다. 그녀는 자신이 소란을 피우면 송석석을 구설수에 빠뜨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국공부의 사람들이 그녀를 쫓아내기라도 하면 송석석은 더 이상 이치를 따질 수 없는 입장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들이 증거까지 대며 반박하고 증인까지 찾아오겠다고 하니 전 노부인은 당황해서 떠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 일들은 조사하면 안 되는 일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송석석은 홀에서 차를 마시며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들었다. 진작부터 장군부의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고 있었던 송석석은 그들의 말에 놀라지도 않았다.송석석은 그들이 여기까지 와서 소란을 피운 목적을 잘 알고 있었다. (이방에게 쏠려있던 백성들의 시선을 돌리고, 내가 화젯거리가 되어 이방과 장군부를 사람들의 입에서 해방시키려는 거겠지. 그리고 백성들의 동정을 얻어내 이방이 공을 탐한 소문을 덮으려는 거겠지. 못난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일일이 화내고 따지면 살 수 있겠어?) 불타는 듯한 날씨에 보주는 송석석의 더위를 식히고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 찬 음료를 만들어 주었다. 국공부에 돌아온 지 며칠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송석석의 피부는 눈에 띄게 하얗고 보드랍게 변했다. 송석석은 웃으며 말했다. “집사와 두 마마에게도 나누어 줘. 화를 가라앉힐 사람은 그들이니까.” 그러자 보주가 말했다. “걱정 마세요. 모두 준비했어요. 그리고 얼음도 충분합니다.” 진복과 두 마마는 돌아올 때 안색이 좋지 않았지만 방에 들어가 아가씨를 보자마자 웃음을 지었다
사여묵은 문을 닫고 며칠 동안 면회를 사절했다. 요즘 찾아오는 사람이 엄청 많을 텐데 그는 한 사람도 만나지 않았다. 사여묵은 황궁을 떠나자마자 장난기가 가득 찬 표정을 거두었다. 그는 이 어명 뒤에 숨겨진 황제폐하의 뜻을 알고 있었다. 송석석이 3개월 내에 시집가지 않으면 황궁으로 들어가 황비가 되어야 한다는 어명은 사실 사여묵에게 선택권을 넘긴 것이었다. 황실 서재에서 웃고 떠들던 말이 실은 진심이 담긴 말들이었다. 송석석이 입궁을 하든 말든 황제폐하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모든 건 황제폐하의 말 한마디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몇 년 전부터 황제폐하는 송석석에 대한 그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그는 남강 전쟁터에 나가기 전 송 부인을 찾아가 송석석의 혼인을 미뤄달라며 남강의 승리를 예물 삼아 송석석을 부인으로 맞이하겠다며 부탁했다. 황제폐하도 이 일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남강전쟁이 끝난 오늘날 그가 송석석과 결혼하길 바라는 것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형제간의 우애가 좋아 보였지만 실은 그날 황실 서재에서 했던 모든 말 중의 핵심은 바로 송석석이 어떤 세자와 결혼하든 군대를 거느리고 자신의 지위를 강화할 위협이 있으니 그녀와 결혼하려면 병권을 내려놓고 북명군의 통솔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말은 그에게 들으라고 한 말이었다. 그는 황제폐하가 자신을 줄곧 꺼려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당시 남강 전쟁터에 긴급 상황이 발생했지만 황제폐하는 그와 북명군을 보내 남강을 지원하는 것을 주저했다. 황제폐하는 송원수가 남강을 한 번 되찾았으니 이번에도 꼭 성공할 줄 알았다.하지만 전쟁은 오랫동안 지속되었고 식량과 병기, 솜옷 등이 모두 부족한 상황에서 송원수는 끝까지 버텼지만 지원군을 기다리지 못했다. 그들이 희생하자 황제폐하께서는 그제야 그를 보내 북명군을 통솔해 남강 전쟁터로 갔다. 그 후로 그는 남강 모든 병마를 인수하고 관리했다. (그러니 형님이 날 꺼려하지 않을 리가 없지.) 북명군은 그가 키운 것이었다. 그리고 부황이
사여묵은 역시 어릴 때 가 좋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때는 형님과 모든 것을 얘기할 수 있고 할 말이 있어도 지금처럼 빙빙 돌려서 말하지 않고 직접 얘기했으니까. 노 집사는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 “황제폐하께서 은혜를 베풀어 태비님을 여기로 보낸다고 해서 사람을 시켜 봉명원을 깨끗이 청소했습니다. 그리고 태비께서 지목한 가구를 마련하는데 총 은 3만 냥이 들었습니다.그의 말에 사여묵은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 “3만 냥? 무슨 가구를 사는데 3만 냥이나 써?” 말을 마친 그는 일어나 직접 봉명원으로 갔다. 정원에 들어서자 모란, 작약이 심어져 있었는데 특별히 온실까지 제작했다. 하지만 이 여름엔 쓸모가 없고 겨울을 대비해서 제작한 것이었다. “원래 있던 매화나무는 모두 베었어?” 사여묵은 미간을 더 찡그리고 물었다. 노 집사는 조심스럽게 그의 뒤를 따라가며 말했다. “태비께서 매화는 곰팡이가 껴서 싫다고 해서 모두 옮겼습니다.” 사여묵이 궁에서 나온 후부터 정원에 각종 매화나무를 심었었다. 그래서 겨울이면 정원에 매화의 향기가 풍겨 마치 매산에 사는 것 같이 가슴을 시원하게 했다. 방에 들어가 보니 가구가 가지런히 놓여 있고, 모든 건 배나무로 제작한 것이었는데 그래도 3만 냥이 될 만큼 비싸 보이지는 않았다. 정말로 비싼 건 골동품 선반 위의 골동품과 벽에 걸려 있는 서화였다. 그리고 침실에 있는 화장대, 여름 침대, 푹신한 침대, 귀비의자, 이 모든 건 다 배나무로 제작되었고 조각 솜씨가 정교해서 황궁의 물건보다 조금도 뒤지지 않았다.이것도 노 집사가 가격을 깎고 깎아서 3만 냥에 살 수 있었던 것이었다. 사여묵은 돈을 흥청망청 쓰는 것이 아니라 쓸 땐 쓰고 아낄 땐 아끼는 사람이었다. 그는 은 3만 냥으로 정원을 장식하기엔 너무 사치스럽다고 생각했다. 사여묵도 어마마마와 함께 살고 싶지 않지만 출정하기 전에 형님께서 남강을 정복하면 어마마마와 황궁 밖에서 사는 걸 허락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모셔온 것이었다. 듣기에는 은혜
이틀 후, 참모 우금과 부장 장대성이 돌아왔다. 방금 폭우가 내려 우금은 방에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서둘러 왕야님을 만나러 서재로 향했다. 우금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황제폐하께서 병권을 회수하려는 것 같은데, 어차피 왕야님께서도 돌려드릴 예정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돌려주세요. 하지만 절대로 왕야님의 혼사로 거래를 해서는 안 됩니다. 황제폐하도 왕야님께서 송 씨 아가씨와 결혼을 하려고 했다는 걸 알고 그거로 상을 내려 맘 편히 병권을 회수하려나 본데, 제가 보기엔 그럴 필요 없습니다. 병권을 돌려준 후 왕야님과 송 씨 아가씨의 결혼은 두 사람이 결정할 문제입니다. 거기에 황제폐하께서 참견한다면 본질이 변하게 될 겁니다. 두 사람의 결정 하에 성사된 것이 아닌 혼인에 왕야님과 송 씨 아가씨가 모두 어색할 거예요.” (혼인은 자고로 순수해야 하는데 이익이 섞이면 왕야님의 감정까지 저버리게 될 거야.) 사여묵은 눈썹을 찌푸리고 말했다. “나도 같은 생각이야. 하지만 북명군의 호부는 부황께서 나에게 하사한 거야. 애초에 부황께서 북명군은 영원히 나에게 속할 것이며 앞으로도 강산을 지키는데 사용할 것이라고 문무백관 앞에서 말씀하셨는데 지금 그걸 가져가려고 하니 형님도 나에게 큰 상을 내려야 부황과 문무백관에게 설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겠지. 체면을 세우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야 하니까. 나는 황제폐하가 직접 혼인을 하사할 까봐 가장 걱정이야. 그리고 혼인을 하사하려면 문무백관에게 내가 출정하기 전에 송석석과 결혼을 청했다는 걸 알려야 할 거고.” 우금도 눈썹을 찌푸리고 말했다. “그럼 모두들 송 부인께서 딸을 전북망에게 시집보낼지언정 왕야님이 남강을 정복하길 기다리지 않는다고 하겠지요. 혹은 송 부인께서 왕야님이 남강을 정복할 수 없다고 여겼다고 할 수도 있고, 아무튼 별의별 소문이 돌겠네요.” “그게 내가 가장 걱정하는 거야.” 사여묵은 손을 들어 탁자 위의 종이를 쓸어내며 말했다. “황제폐하의 이런 행위가 날 아주 곤란하게 하고 있어.”
우금이 장대성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라고 하자 장대성은 이해할 수가 없어 몰래 물었다. “우 선생, 왕야님께서 송석석과 결혼하고 병권을 내놓지 않으면 되지 않소?” 그러자 우금은 그의 머리를 한 대 때리며 말했다. “이런 멍청한 놈을 보았나? 병권을 넘기지 않으면 황제폐하께서 바로 태비마마를 내세워 이 혼사를 반대할 거 아니야?” 장대성은 여전히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도 태비마마께서 막을 수 있잖아.” 태비가 어떤 사람인지는 모두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누가 시켜서 막는 거랑은 차원이 다르지.” 우금은 더 이상 해명하지 않고 재촉했다. “얼른 가서 편지나 전해주고 와. 쓸데없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말고.” 장대성이 말을 끌고 나가는 것을 본 우금은 그제야 한숨을 쉬었다. (왕야님께서 효도하지만 뒤에 황제의 지지만 없다면 태비마마께서 반대를 해도 송 씨 아가씨와 결혼했을 거야.) 국궁부에서 북명왕의 편지를 받은 송석석은 약간 의아했다. (북명왕께서 군무가 있다면 사람을 보내 나보고 오라고 하면 그만인데 왜 직접 방문해서 미리 편지까지 보내주셨을까? 이건 분명히 군무 때문에 보낸 게 아니야.) 송석석은 원수께서 실직을 맡지 않겠냐고 물어보려고 쓴 편지라고 생각하고 집사에게 내일 북명왕을 대접할 준비를 하라고 한 후 마음속으로는 단신의에게 연왕비의 몸상태가 어떤 지 물어볼 생각을 했다. 연왕 가문의 영지는 진성에서 백 리 떨어진 연주였는데, 애초에 전북망과의 혼사 역시 그녀가 중매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혼할 때 연왕비가 소식을 전해오지 않은 걸 보아 이 일을 모르는 게 분명했다. 단신의의 여제자인 국춘이 연주에서 연왕비를 돌보고 있어 송석석은 단신의께서도 연왕비의 병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그리고 단신의가 자신의 일을 국춘에게 말했지만 국춘이 연왕비에게 전하지 않은 것을 보아 병이 심각해진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송석석은 보주에게 약왕당에 다녀오라고 했다. 왜냐하면 직접 나섰다가는 사람들에게 쫓기기 마련이기
약물로 목욕을 했더니 온몸에 온기가 도는 것 같았다. 그리고 취침 전 명주가 발을 담그는 약물을 가져와 매일 발까지 담가야 한다고 했다. 송석석은 순순히 발을 담그고 마음을 진정시키는 차를 마셨다. 이것 또한 단신의가 처방한 약인데 수면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전쟁터에서 방금 돌아왔을 땐 너무 피곤해서 이틀 동안 기절한 듯 잠을 잤지만, 피곤이 사라지자 송석석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고, 설령 잠이 들었다고 해도 악몽이 끊이지 않았다. 아버지, 오빠 그리고 모든 살아있던 가족들이 피투성이가 되어 그녀의 앞에 나타나 놀라서 깨어나면 다시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가문이 멸문당했을 때 그녀는 후사를 치르고 장군부로 돌아갔을 때도 매일 안정제를 마셔야 잠을 잘 수 있었다. 단신의가 그녀의 모든 일을 마음에 두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녀가 약을 다 마시자 명주는 약과 한 알을 주며 말했다. “보주 언니가 아가씨께서 쓴 약을 먹는 것을 거부해서 약을 먹은 후에는 반드시 약과 한 알을 드셔야 한다고 했어요.” 송석석이 약과를 입으로 넣자 새콤달콤한 맛이 입안에서 풍겼다. 사실 그녀는 이제 쓴 약을 먹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어릴 땐 쓴 약이 두려워서 약을 먹은 후 어머니의 품에 안겨 애교를 부리면 온 가족이 달래 줬었는데. 지금은 아무리 쓴 약을 먹어도, 아무리 애교를 부려도 받아줄 사람이 없잖아.) 순간, 입안의 단 맛은 사라지고 약의 쓴맛과 시큼한 맛만 남아 마치 무의식적으로 떠오른 그녀의 기분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감정을 억누르는데 익숙해 얼굴에 털끝만큼도 드러나지 않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세심해서 이렇게 하지 않으면 그녀가 기분이 나쁜 것을 알아채고 모두 마음 아픈 표정을 짓기 때문이었다. 진복은 약을 가져다 드리고 태공이 직접 그린 서화도 가져왔다.태공은 수십 년 동안 그림을 연구한 결과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래서 송 씨 가문은 매년 은화를 기부하여 가난한 이들이 각자 꿈을 펼칠
미혼 남녀가 단둘이 한 방에 있겠다는데, 만약 다른 사람이라면 진복이 무조건 보주나 명주를 남겨 송석석의 옆에 있으라고 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원수와 장군이라는 호칭에 진복은 두 사람이 군무에 대해 말하려는 것을 알아채고 차를 한 잔 더 드리고 바로 모든 사람을 데리고 나가 문을 닫았다. 그리고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사여묵은 찻잔을 들고 긴 손가락으로 잔에 그려진 꽃무늬를 만지며 굳은 표정을 지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말을 하지 않자 송석석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원수님, 혹시 남강 전쟁터에서…….” “그런 거 아니야!” 사여묵은 그녀의 말을 끊고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내려놓고 말했다. “나는 오늘 개인적인 일로 온 것이지 군무 때문에 온 게 아니야.” 송석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사적인 일? 나와 원수 사이에 무슨 사적인 일이 있지?) 사여묵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황제폐하께서 당신에게 3개월 내에 시집가라고 하셨지. 그렇지 않으면 궁에 들어가 황비가 되라고 하셨고, 그렇지?” 송석석은 사여묵이 이 일을 알고 있는 것에 조금도 놀라지 않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혹시 입궁해서 마마가 되고 싶어?” 사여묵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송석석은 그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혹시 황제폐하께서 보내신 건가요?” “아니, 이 문제는 내가 묻는 거야.” 송석석은 그의 맑은 눈을 보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싫습니다.” 그러자 사여묵이 또 물었다. “그럼 마음에 둔 사람은 있어?”그는 송석석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그녀 얼굴의 표정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자 송석석이 대답했다. “아뇨, 없어요.” “그럼 관심 가는 사람은?” “그것도 없어요.” 사여묵은 송석석의 마음속에 자신의 자리는 없다는 걸 진작에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관심 있는 남자가 없다고 하니 마음이 벌에게 쏘인 것처럼 살짝 아팠다. 하지만 괜찮았다. 어차피 모든 남자에게 관심이 없는 것이니까. 송석석은
감동스러운 말이었지만, 그럼에도 송석석은 거절했다. “황제께서 저에게 3개월 안으로 남편감을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후계자를 내정하려고 하시는 것 같은데 제가 원수와 위장 혼인을 한다하면 황제께서 허락하지 않으실 겁니다.”사여묵은 그녀가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줄 몰랐다. 아직 황제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는 잠시고민한 뒤 손에 힘을 주었다. “그건 자네가 걱정할 필요 없네. 폐하께는 내가 말씀드리지. 후계자를 고민하시는 이유는 아마 전북망처럼 제멋대로에 난폭한 사람일까봐 걱정하셔서 그런 것일 세.”전임자를 비하하는 것이 썩 좋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녀도 납득이 가는 이유였다.송석석은 전북망의 이야기를 듣고도 아무런 감정 변화가 없었지만 그럼에도 원수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국공의 지위를 차지하고 뒤로는 송씨 가문의 군대를 두는 것이니, 후계자 선정은 신중해야 한다.예전에 아버지가 황제로부터 추봉 되었을 때, 훗날 그녀의 사위가 그 직위를 계승할 수도 있다고 말하였다. 그녀가 전쟁에 참여해 송씨 가문 군대로부터 인정을 받을 줄 몰랐던 모양이다.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으니, 아무나 선택할 수는 없다.3개월 동안 그녀에게 남편감을 알아보라고 하기는 했지만, 사실 황제는 그녀가 적절한 사람을 고를 수있도록 돕고 있었다. 하지만 황제는 후계자로써 적합한 지만을 고려할 뿐, 그녀와 맞는 사람인지, 그녀의 인생을 함께 할만한 사람인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원수지간이 될 수도 있다.사여묵은 그녀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눈치채고 말했다. “짐은 사모하는 여인이 혼인한 뒤부터아내를 들일 생각이 없었네. 하지만 황제 폐하께서 혼인을 원하시고 짐은 폐하의 동생이니, 그 명을 따를 수밖에. 다른 여인과 혼인하는 것보단 당신과 혼인하는 편이 나을 걸세.”송석석은 그의 깊은 눈빛을 마주보고 잠시 멈칫하더니 말했다. “원수님, 소인이 혼인하여도 사모하시는 분이 따로 있다면 저는 첩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소인 그런 건 원치 않습니다. 소인은 이미 이
그의 이름은 신이었는데 그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에 대해서 말할 때, 경멸하는 기색을 띠었고,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모르는 사람까지 모두 침을 뱉으며 뻔뻔하다고 할 정도였다. 알다시피 애인과 야반도주하는 것은 사람을 죽이고 불을 지르는 것보다 더 욕먹을 일이니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에게 후회하냐고 묻기도 했다. 그녀는 시집간 것을 후회하지 않지만 죄책감을 느끼긴 했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시 씨 가문의 명성이 손상되어 형제자매들과 조카들이 혼사에 어려움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신이는 시 씨 가문의 아가씨로서, 태어날 때부터 온갖 보살핌을 받아왔다. 먹는 것은 물론 모두 산해진미이고, 입는 것도 모두 능라 비단이었다. 게다가 보모님과 오라버니의 총애까지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그녀에겐 한 가지 결함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열네 살 때까지 월사가 오지 않은 것이었다. 많은 의사들을 불러 진찰을 받고 밤낮으로 약을 먹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어머니는 그녀에게 몸이 차서 그러니 몸조리를 하면 나을 수 있다고 위로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몰래 의사가 부모님께 하는 말을 들었다. 의사는 그가 몸이 차서 그런 병이 생긴 것이 아닌, 아이를 키우는 곳이 어린아이와도 같아서 평생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의 몸이 마치 작은 꽃병과 같아서 꽃을 꽂을 수는 있지만 나무를 심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 건 불가능하다고 비유했다. 그녀는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건 여자에게 어떤 의미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녀를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나중에 좋은 사람에게 시집가서 부군에게 첩을 들인 후, 첩이 낳은 아이를 친자식처럼 키우라고 조언해주었다.시 씨 가문이라는 후원이 있으면 그녀가 아이를 낳을 수 없어도 아무도 그녀의 지위를 흔들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 씨 가문의 재물은 그녀가 평생 부귀하게 살기에 충분했다. 신이의 조모도 그녀에게 아이를 낳을 수 없으니 자세를 낮춰야 한다고 했다. 시 씨 가문의 딸이라고
추운 겨울이 되자 눈이 내려 성릉관은 하얗게 뒤덮였다. 세상이 마치 깨끗해진 것처럼 보였다. 이황자는 몇 년 동안 너덜너덜한 승복을 입고 발우를 받쳐 들고는, 가는 길에 동냥을 하다가 절을 보면 이틀 묵으며 부처님께 참회하면서 살았다. 사실 그는 원래 있던 절에서 계속 지낼 수 있었다. 편안하진 않지만 풍찬노숙할 필요도 없고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그런 안일한 곳에서는 평생 죄를 씻을 수 없다고 생각했고, 계속 길을 걷고 계속 고생해야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했다. 그가 성릉관에 도착했을 때 짚신은 이미 찢겨 있었고 발바닥에는 두꺼운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이제는 신발을 신지 않고도 자갈이 가득한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추운 날씨에는 모든 옷을 껴입어도 추위를 막을 수 없었지만 이미 익숙해진 뒤였다. 그는 눈보라를 맞으며 성릉관에 위치한 감은사로 향했는데, 몇 년 동안 발걸음을 멈춘 적이 없는 탓에 고단함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심지어는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아 그는 눈이 가득 쌓인 길에서 의식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깨어났을 때 그는 따뜻한 두꺼운 이불 속에 누워 있었다. 그가 있는 방에는 숯불이 피워져 있었고, 살짝 열린 창문으로 눈에 눌려 허리가 굽은 나뭇가지가 보였다. 그는 눈동자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렇게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의 마음속에 순간 욕심이 생겨 조금만 더 누워있고 싶어졌다. 그런데 바로 그때, 문이 활짝 열렸다. 그가 벌떡 일어나 앉았는데, 갑자기 눈앞이 핑핑 돌더니 다시 힘없이 침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누워 있거라.” 이때 누군가가 부드러운 말투로 말하면서 약그릇을 그의 침대 옆에 놓았다. 그는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익숙해, 어지러움을 가라앉히고 고개를 돌려보니, 그 사람은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오랜만이야.” ‘서우 형?!’ 그는 자신이 잘못 보았을까 봐 다시 자세히 보려 했지만, 몸이 너무 어지러운
대황자는 봄 사냥 때 숙청제에게 꾸중을 듣고 돌아간 후 앓아누웠다. 당시 이황자와 서우가 모두가 걱정했는데 덕비는 오히려 기뻐했다. 그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황제폐하께서는 분명히 대황자를 싫어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덕비는 이황자를 안고 반드시 부지런해야 하고, 태부와 황숙의 말을 잘 듣고 누구보다 잘 배워 황형을 제압해야 한다고 당부까지 했다. 그로 인해 이황자의 마음은 몹시 복잡했다. 덕비가 줄곧 그에게 태자와 황제가 되는 것이 얼마나 좋은 지 말해주었을 때 비록 그도 마음이 설렜지만 자신과 거리가 먼 얘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금 그와 대황형, 서우 형, 그리고 셋째 동생이 사이가 좋아 도저히 대황형을 미워할 수가 없었다. 매일 모순적으로 지내다 보니 오히려 학업이 나빠졌고 승마 연습을 할 때도 여러 번 실수를 했다. 하지만 덕비는 이상하게 그를 탓하지 않았고 며칠 동안 계속 게으르게 하라고 했다. 그렇게 덕비는 이황자를 데리고 복마마를 자주 뵈러 갔고, 복마마 궁전에서 숙청제를 만날 수도 있었다. 덕비는 며칠 동안 그곳을 드나들더니 어느 날 굳은 표정으로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차가운 말투로 청이에게 자신의 보살핌이 없으면 아이가 태어날 수 있는지 보겠다고 했다. 황제폐하를 자주 뵈러 갈 수 없어 아쉬웠지만 이황자는 마음을 가다듬고 공부와 승마술에 전념했다. 이황자는 당시 앞날이 어떻게 될지도 몰랐고, 비록 매일 힘들긴했지만 한편으로는 즐거웠기에, 계속 이렇게 지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숙청제의 천추세에 승마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니 세 황자와 서우도 가서 겨뤄 보기로 했다. 원래 그런 대회에서 황자들은 재미있게 참석만하면 되지만, 덕비는 그 경기를 몹시 중시했다. 덕비가 이황자에게 마름쇠를 건넬 때, 그는 하늘이 무너져내리는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황자는 원하지 않았다. 그는 절대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대황형의 목숨을 앗으려 하다니, 이황자는 처음으로 어마마마가 무서워졌다.하
이황자의 출가하기 전의 이름은 사범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이황자가 가장 많이 들었던 평가는 총명하고 지혜로우며 세 황자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것이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는 진짜라고 믿으며, 자신이 자랑스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이런 말로 인해 자랑스러워할 때마다 덕비는 매번 그를 바닥으로 밀쳤다. 그녀는 늘 연민과 복잡한 감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보며 말했다. “내 뱃속에서 태어나 평생 그 바보에게 밀리게 생겼구나. 바보 주제에 운은 또 얼마나 좋은 지.” 그는 어릴 때부터 그런 말을 귀에 익힐 정도로 들었다. 하지만 덕비는 사람들 앞에서 말하지 않고 매번 사적으로만 그에게 말했다. 그는 어렸을 때 어마마마가 대황형을 가장 싫어하면서 왜 매번 자애롭고 온화한 눈빛으로 대황형을 보며, 분명 바보라고 해놓고 총명하다고 칭찬하는지 몰랐다. 이해가 안 돼서 몰래 청이에게 물어보았더니 청이는 한숨을 쉬며 그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이황자 님, 마마께서는 이황자 님을 위해서 계획을 세우고 계신 거예요.”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어머니가 자신을 위해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지 몰랐다. 하지만 그가 말을 들을 때마다 어머니는 기뻐하셨고 그에게 한숨을 쉬거나 애처로운 눈빛을 보이지 않았다. 숙청제가 그를 보러 올 때마다 덕비는 그가 책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려주었다. 그러자 숙청제는 그에게 어떤 책을 읽는지, 그리고 어떤 내용을 기억했는지도 물었다.그는 매번 대답을 아주 잘해서 숙청제를 흡족하게 했다. 답은 모두 미리 외운 것이기 때문에 어려울 건 없었다.가끔은 숙청제가 그에게 대황형이 괴롭히거나 장난감을 빼앗지는 않는지 물어보기도 했다.하지만 그런 질문에도 정답이 있었는데, 그는 매번 자기가 동생이니 황형에게 양보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이황자가 매번 그렇게 대답할 때마다 숙청제의 눈빛은 몹시 복잡했는데, 이황자는 그 눈빛을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숙청제가 잠시 침묵한 후에 그의 머리
어릴 때부터 친했던 두 친구는 각자의 분야에서 항상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수철이 약을 접하게 되면서 약과 의리는 그가 신약산장을 의지하는 모든 것이 되었다. 산에 내려가 의관을 차리고 사람들을 치료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매번 참기만 했는데 서우가 왔다 간 후 보내온 편지를 본 그는 산에서 내려갈 희망이 생겨 마음이 부풀어 잠이 오지 않았다. 그는 예전에 부상에 시달린 적이 있어서 열심히 통증과 부상을 치료하는 약을 연구했는데, 의술이 전면적인 나머지 뒤처지지도 않았다. 그의 마음속에는 지난 몇 년동안 한 번도 타오르지 않았던 한 줄기의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신약산장에 도착한 순간부터 그는 자신이 설령 살아갈 수 있다 하더라도 이번 생은 그곳에서 지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채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신분과 얼굴을 바꾸고, 배운 것을 가지고 산에서 내려갈 수 있다면, 그는 유용한 사람이 될 수 있고 더 이상 숨지 않고 떳떳하게 살 수 있었다. 그 생각에 그는 며칠 동안 흥분한 상태로 제약 공장에서 먹고 마셨다. 사부님은 그런 그의 모습이 조금 두렵게 느껴져 사공에게 편지를 써 알리려고 했다. 그는 사부에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환한 미소를 띠었다. 그 웃음에 놀란 사부님은 심지어 무당을 불러 귀신이 씐 건 아닌지 보려고까지 했다. 하지만 서우 형이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그는 사부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비록 그가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긴 하지만 나중에 너무 실망하지 않도록 마음의 준비를 항상 해야 했다. 날이 지나고 더위와 추위가 오가더니 벌써 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추분, 날씨가 상쾌한 어느 가을, 하늘의 밝은 태양은 사람을 뜨겁게 하지 않았고 하얀 구름들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불어 들어오고 있었다. 서우는 다시 한번 신약산장에 발을 들였는데, 이번엔 그의 서동인 진소설을 데리고 왔다. 진소설은 몽동이를 따라 무술을 익혔다. 그런데 노력한 사람은 역시 보답을 받는다고, 비록
“사정언, 너 말 좀 그만해.” 송석석은 눈살을 찌푸리고 서우에게 매달려 쉴 새 없이 말하는 딸을 혼냈다. 새빨갛게 그을린 작은 얼굴에 닭장처럼 헝클어진 머리카락은 한 눈에 봐도 밖에서 뛰어놀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우가 돌아오자마자 그녀는 쉬지도 않고 사촌 오빠에게 길에서 본 재미있는 일들을 물었다. “어머니.” 사정언은 눈을 크게 떴다.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뜨니 왠지 억울해 보였다. 그녀의 외모는 부모님의 장점만 닮아 있었다. “제가 이렇게 오랫동안 사촌 오라버니를 만나지 못했으니, 당연히 할 말이 많지요. 하루만 못 봐도 3년 못 본 것처럼 길게 느껴진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게 무슨 말이야? 대체 누가 그런 말을 가르쳐줬어?” 송석석이 눈살을 더욱 찌푸렸다. “왕사백이요. 그가 며칠 전에 매산으로 갔었는데, 돌아오자마자 시 고모를 안고 그렇게 말했었습니다.” 그녀의 말에 시만자는 고개를 숙여 송석석의 눈빛을 피했다. 그녀는 그때 정언이 나무 위에 숨어 있을 줄은 몰랐다. 알았다면 아이 앞에서 껴안고 그런 오글거리는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이었다. 그녀는 이 아이가 말을 따라 하는 능력이 아주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 나이의 아이들이 왜 어른들의 말을 듣는 것을 좋아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는 이맘때쯤에 최대한 어른들과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말이다. 사정언은 대답한 후에도 계속 서우를 잡고 말했다. “오라버니, 혹시 상서에 갔어? 상서에서 시신 업는 것을 봤어? 정말 소국이 말한 것처럼 앞에서 종을 흔드는 도인이 있고, 뒤에 좀비들이 따라가는 거야? 그들은 걸어가 아님 뛰어가? 꼭 밤에만 볼 수 있는 거야? 낮에는 햇볕이 쨍쨍해서 볼 수 없는 거야? 그들은 말할 줄 알아? 뭘 먹어? 그리고 그곳엔 주술을 잘한다고 들었는데 혹시 미인을 본 적이 있어? 그런 미인은 오라버니가 마음에 드는지…….” “그만해!” 송석석도 이내 참지 못하고 호통을 쳤다. “보주, 서주, 어서
송석석은 이번에 외출할 때 황제에게 유람하러 간다고 했다.하지만 그녀는 신약산장에 오래 머물지 않고 7일 만에 떠나 만종문으로 향했다.그녀는 원래 진성으로 돌아가 홍현 고모를 찾고 싶었지만 평무종 고모를 직접 찾아가서 분장술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분장술은 어렵지 않지만 능숙하게, 아무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하려면 한두 달 만에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간단한 분장술은 기존의 얼굴에도 할 수 있었지만 비가 오기만 해도 쉽게 흔적이 드러날 수 있었다.그러니 간단한 분장술만 배워서는 안 되었다.그리고 또 다른 미용술은 가면을 만드는 것인데 일반적인 가면은 일정한 두께가 있어 답답하고 오랫동안 착용하면 얼굴에 상처가 날 수 있다.게다가 가면을 착용할 때는 특수 물약을 묻혀야 했기에, 뜯을 때도 얼굴에 상처가 입을 수 있었다.운익각 사람들은 가면을 착용할 때 오래 착용하지 않았다. 게다가 정탐꾼들은 무공도 괜찮고 경공도 높아 임무를 수행할 때만 가면을 착용해서 물약을 묻힐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벗겨져도 얼굴에 검은 천으로 복면을 쓰고 있어서 알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그리고 일반인들이 변장해서 탐문할 때 사용하는 것은 변장의 첫 번째 방법이었다.평무종은 서우의 요구를 듣고 말했다.“얼굴에 오래 쓰고 있을 수 있으면서도 원래 피부를 해치지 않고 잘 벗겨지지 않는 가면이라, 그럼 상어가죽으로 만드는 것은 어떠냐.”“상어가죽이 무엇입니까?”서우는 매미의 날개처럼 얇고 물에 젖어도 흔들리지 않는 상어비단은 들어본 적이 있었지만 그건 엄청 귀중한 비단이었다.그러자 평무종이 설명했다.“상어가죽은 분장술에서 쓰이는 가장 좋은 소재이다. 통풍이 잘 되고, 얼굴에 단단히 붙어 쉽게 떨어지지 않아 빗물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심지어 눈으로 보나 만지나 모두 진짜 피부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상어가죽으로 가면을 만들려면 상어 눈물을 사용해서 실을 짜내고 다시 밑감을 만들어야 해서 매우 번거롭다.”그러자 서우가 물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촛불을 들고 한참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조정의 일은 일절 말해주지 않은 탓에, 수철은 지금 나라가 안정적이라는 사실만 알 수 있었다. 그는 이미 대황자가 아니다. 따라서 지금 그가 지켜야 할 것은 자신의 목숨뿐이고, 다른 것은 이미 그와 상관이 없어졌다. 그는 조정에 관한 화제를 꺼내면 모두가 예민해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릴 때 그는 왜 자신이 죽어야 하는지 몰랐지만, 나중에 단 사공이 와서 조금씩 분석해 주었고, 그의 사부님도 이해관계에 대해 이야기해준 적이 있었다. 그와 셋째 동생 사이에 가족의 정으로 목숨을 걸고 불안정한 여생을 걸어야 한다면 결코 모두에게 좋은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받아들기로 한 것이었다. 삶은 계속될 텐데, 매일을 의미 있게 잘 보내야 목숨을 건진 보람이 있기 때문이다. 서우가 그의 다리에 대해 물었다. “내가 오기 전에, 고모가 그러던데 넌 다리를 다쳐서 일어날 수 없다고 했는데 지금은 어떻게 걸을 수 있게 된 거야?” 그러자 수철이 말했다. “부황께서 승하하신 해에 산장에서 몇 사람이 와서 진찰해 보더니 정말 심하게 다쳤다며 이대로 두었다가는 계속 아플 테니 반드시 극단적인 방법으로 치료해야 한다고 하더군.” 그러자 서우는 호기심에 물었다. “어디서 온 신의야? 그럼 그때부터 치료한 거야?” 그 물음에 수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북당에서 왔는데 그 사람은 그 말만 하고 날 치료해주지 않고 당일에 떠났어. 그러다가 지난달에 와서 약주를 줘서 그걸 마셨는데, 난 하루 종일 혼수상태에 빠졌어. 심지어 깨어나니 다리가 아파 죽을 것 같았지.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점점 좋아지더니 누군가 부축하면 일어날 수 있게 되었어. 처음에는 잘 일어나지 못했는데 시간이 지나자 점점 똑바로 설 수 있게 되었지. 그리고 지금은 혼자 몇 걸음은 걸을 수 있게 됐어.” 그러자 서우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북당신의? 그분께서 아직 살아 계셔?” “아니, 돌아가셨어. 내가 일어나
[번외편]신약산장의 진달래가 온 산천지에 피었다. 다채로운 경치는 사람들로 하여금 황홀하게 만들었다. 특히 신약산장에 가본 적이 없는 사람들마저 그곳에 살고 싶어 할 정도였다. 하지만 예외인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는 말을 타고 산 아래에 도착해 말을 잘 배치한 후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직 눈앞의 길만 보았고 찬란한 꽃들은 그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빠르게 걸으며, 가끔 경공을 사용하기도 했다. 신약산장이 비록 높지는 않았지만 은밀하게 숨겨져 있었고 많은 갈림길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지도를 수도 없이 봐 온 덕분에 신약산장으로 향하는 길을 이미 마음속에 깊이 새기고 있었다. 약관 때 그가 작위를 계승했을 당시, 작은 고모가 많은 선물을 주었는데 그중 가장 큰 선물이 바로 지도였다. 그리고 그에게 온몸의 피가 끓게 하는 소식을 알려주었는데 바로 수철이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이었다. 당시, 그는 한숨도 자지 못했고 옛날의 모든 일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작위를 받은 후 입궁해서 사은하고 선조들에게 제사를 지낸 후 답방 인사를 드려야 했는데, 작은 고모의 말로는 인맥을 굳건히 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그래서 무려 보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신약산장으로 출발했다. 산 아래에 도착하자 그는 날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막상 산문을 본 순간, 강한 슬픔에 휩싸여 발걸음을 멈추고 그저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작은 고모는 그에게 수철이가 두 다리를 못 쓰게 되었고, 불행 중 다행히 치료 후에 목숨은 건졌지만 약 없이는 살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 그것은 평생 약을 달고 의자에 앉아 있거나 침대에 누워서 지낼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그의 기억 속의 수철의 모습은 두 가지로 나뉘었는데, 하나는 제멋대로며 횡포한 모습이었고, 다른 하나는 성실하고 열심히 공부하며 태후마마와 황제폐하를 실망시킬까 봐 무술이든 공부든 최선을 다 했던 모습이었다. 특히 무술은 고모부가 재미있게 가르쳐 준 덕분에 그들은 항상 활기차게 뛰어다닐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