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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6화

작가: 유애
송석석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녀가 어떻게 공방까지 갔지?”

소진 소주방은 외부에 이미 알려진 곳으로, 문전 박대를 당해 갈 곳이 없고 당장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여인들을 받아주는 곳이었다. 하지만 가의라면 상황이 다르다. 가의는 비록 이혼을 당해 내쫓겼다 해도 생계를 유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송석석이 아는 바로 가의는 몇 채의 저택과 가게를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쫓긴 뒤에도 여전히 부유한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처지였다.

이씨 집안의 시녀가 말했다.

“그녀가 갈 곳이 없다고 억지를 부리며, 계속 공방에 들어가겠다고 떼를 쓰고 있습니다. 부인께 욕까지 하면서요. 공방이 내쫓긴 여인들을 받아주는 곳이라면 자신도 조건에 부합한다면서, 받아주지 않으면 공방은 위선적이고 보여주기식이라고 계속 비난하고 있습니다. 부인께서 화가 많이 나셔서 왕비님과 시 소저께 이 일을 말씀드리라고 저를 보내셨습니다.”

시만자는 이씨 부인이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말을 듣자 화를 참을 수 없었다.

“내가 가볼게.”

이상서는 늘 이씨 부인을 호랑이라고 불렀지만 그래도 그녀는 말이 통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가의처럼 무리하게 논쟁을 벌이는 사람을 상대하는 것은 이씨 부인에게도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가의는 이제 버림받아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다는 식으로 막 나가고 있었고, 이씨 부인은 공방의 명성을 지켜야 했기에 직접 나서서 그녀를 내쫓지도 못했다. 그러다 보니 더욱 화가 난 것이었다.

송석석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나도 같이 갈게.”

시만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염선생께서 왕야께 그쪽 일을 전해 드리도록 하시지요! 이미 제가 염선생께 다 말씀드렸으니, 염선생 측에서도 어느 정도 내막을 알아봤을 겁니다.”

염선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다녀오세요.”

두 사람은 시녀를 데리고 소진 소주방으로 향했다. 공방의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시녀가 나서서 문을 두드리며 신분을 알리자 문이 열렸다.

소진 소주방의 정원은 그리 큰 편은 아니었다. 보통 외부 손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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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금 전까지만 해도 거만했던 가의는 송석석과 시만자를 보자마자 기세가 한풀 꺾이고 말았다.그녀는 옷깃을 꽉 쥐며 턱을 살짝 들어 올렸다. 몰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귀에는 작은 금빛 나비 모양의 귀걸이가 걸려 있었는데 지금 입은 거친 옷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마치 마지막 자존심과 체면을 간신히 붙잡고 있는 듯했다.그녀는 혼자였다. 곁에는 시녀 한 명조차 없었다.“왕비, 시 소저, 딱 잘 왔네.”이씨 부인은 화가 잔뜩 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말했다.“무례하게 구는 사람은 많이 봤어도 이렇게까지 막무가내로 나오는 사람은 처음 봅니다. 공방에 들어오겠다고 하더니 심지어 이름까지 바꾸라고 하지 뭡니까. 그래서 무슨 이유로 쫓겨났는지 물어봤더니 우물쭈물하면서 말도 제대로 안 하더군요.”이씨 부인이 화를 낼 만했다. 공방을 설립할 당시, 송석석과 이씨 부인은 규칙을 정했다. 악랄하거나 천인공노할 일을 저질러 쫓겨난 사람은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그래서 가의가 찾아왔을 때는 당연히 이유를 물어야 했고 그 이유를 조사한 뒤 받아들일지 말지를 결정해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저 변명만 늘어놓으며 제대로 대답하지도 않고, 오히려 거만하고 무례한 태도를 보였으니 이씨 부인이 어찌 화가 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송석석과 시만자가 자리에 앉았다. 가의는 그들의 비단옷과 화려한 장신구를 바라보며 자신이 군주로 지내던 시절과 다름없는 그들의 모습에 눈길이 멈췄다. 반면, 지금의 자신은 거친 옷을 입고 나무 비녀를 꽂은 초라한 모습에 화장조차 하지 못한 채 늙고 빈곤해진 상태였다. 이 강렬한 대비는 그녀의 마음에 분노와 수치심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그러나 이곳에 오지 않을 수는 없었고 송석석 앞에서 예전처럼 거만한 모습을 드러낼 수는 더더욱 없었다. 송석석은 조정의 관리였고, 그녀의 어머니 사건은 사여묵이 맡아 처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송석석이 그녀를 살피며 물었다.“정말 공방에 들어오고 싶은 겁니까? 여기에서 산다는 게 비단옷을 입고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008화

    가의는 송석석과 이씨 부인이 서로 눈빛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자 마음이 급해졌다. 송석석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잊은 듯 목소리를 높여 소리쳤다."역시 너희는 위선자였어. 억울하게 내쫓긴 여자들을 받아들일 마음도 없으면서 착한 척은 왜 하는 건데? 내가 너희의 정체를 다 까발리고 말거야!”그녀는 당당하게 외쳤지만 정작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자리에 앉은 채로 이씨 부인을 노려보기만 했다. 송석석은 가의를 바라보며 약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이씨 부인의 시녀가 가의의 방문 소식을 전했을 때는 단순히 소란을 피우러 온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공방에 와서 본 그녀의 모습은 예상과 달랐다.지금도 그녀는 목소리만 높일 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고, 자리를 떠날 기색조차 없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지? 설마 내쫓긴 이후로 정말 이렇게까지 궁핍해진 건 아니겠지?’ "듣자 하니 우리 소진 소주방의 이름을 바꾸려 했다고?"시만자도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고 전처럼 날카롭지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 특히 지금의 가의는 자존심를 부리고 싶어도 부릴 수 없는 처지였기에 그녀의 모습이 어쩐지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가의는 입을 삐쭉 내밀며 말했다."나는 단지 죽은 사람 이름으로 공방을 부르는 게 불길하다고 생각했을 뿐이야.""불길하면 오지 마."시만자의 목소리가 다시 높아졌다. ‘어디까지 추락했든, 사람을 화나게 하는 능력만큼은 여전하군.’ 시만자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정말 탐이라도 난다고 생각해?” 가의는 코웃음을 치며 비웃듯 말했다. 독설 몇 마디를 더 하려다가도 송석석의 침착하고 단호한 표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그럼 가라니까? 진짜 웃겨! 여기까지 와서 싫다느니 뭐니 불평은 왜 하는거야? 여기서 호사를 누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여긴 스스로 살아가야 하는 곳이야.”가의는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절대 안가. 나는 그저 너희가 진짜 위선자인지 아닌지 확인해보고 싶을 뿐이야."송석석은 이씨 부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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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일은 송석석과 시만자까지 나설 필요가 없었다.노 집사는 평양후부 집사와 오랜 친구였기에 다음 날 두 사람이 식사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모든 사정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다.알고 보니 지난해 새로 첩이 된 조 씨의 성을 가진 여인이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재능이 우수한 자였으며, 그녀 또한 학문이 깊어 일찍이 혼사를 논했었다. 하지만 2년 전 약혼자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남편을 잡아먹는 팔자라는 소문이 돌며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아왔다.어떻게 평양후와 인연이 닿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평양후가 그녀를 눈여겨보고 첩으로 들인 것이다.풍집사의 말에 따르면, 조미진을 들인 이유 중 하나는 그녀에게 집안일을 도우게 하려는 목적도 있었다고 한다. 측실 부인이 오랫동안 병약했고 작년 겨울에는 거의 죽을 뻔했다. 올해 봄이 되어 날이 따뜻해지면서 겨우 회복된 상황이었다.조미진은 집안일을 잘 알았고 들어온 후부터는 항상 노부인의 집안 관리도 도왔다. 노부인도 그녀를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그러나 가의는 당연하게도 조미진을 좋아하지 않았다. 겉으로나 속으로나 항상 그녀를 괴롭혔다. 노부인이 몇 차례 꾸짖고, 거기에 그녀의 어머니와 관련된 일까지 겹쳐지고 나서야 겨우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세 달 전, 조미진은 아이를 가지게 되었는데, 임신 초기 증상이 심해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고, 유독 그녀의 어머니가 만들어준 가벼운 요리만 찾았다. 노부인은 한때 아이를 가진 경험이 있어 임신 중에는 집 생각이 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조미진의 어머니를 초대해 곁에서 함께 하게 했다.그런 가의가 조미진에게 모질게 대한다는 것을 알게 된 노부인은 몇 차례 그녀를 꾸짖었다. 가의는 이 화를 화풀이할 곳이 없자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전소환을 괴롭히기 시작한 것이었다.이야기가 여기까지 왔을 때, 노 집사는 한숨을 크게 쉬며 말했다."전소환은 평양후부에 들어온 후, 정말 그녀에게 시달리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시만자는 재촉하며 물었다."전씨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010화

    송석석은 그가 오늘 이렇게 일찍 돌아온 것을 보고 눈매가 활짝 휘어지며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사건은 다 처리했나요?""아니, 하지만 오늘은 밤을 새고 싶지 않아서."사여묵은 그녀의 눈을 마주 보며 무심코 얼굴에 온화한 기색이 돌았다. 미소를 머금은 채 그녀 곁으로 다가가 앉았다.염선생은 뒤돌아 차를 내오라고 지시했다."목이 타들어가겠군. 개여주차를 준비해 주시오."시만자가 웃으며 물었다."염선생님, 오늘 뭘 하셨길래 목이 쉴 정도로 바쁘셨습니까?""가게를 둘러보고 사람들과 가격 협상을 했습니다."염선생은 송석석에게 가볍게 인사를 한 뒤 자리에 앉았다.시만자는 가게 정리에 관심 없었다. 곧바로 사여묵에게 물었다."시경님께서 아까 가의의 상황을 안다고 하셨는데, 대체 무슨 일인가요?"사여묵이 대답했다."그녀에게는 본래 은전도 많지 않았소. 사온의 역모 사건 때 가의가 운영하던 가게들의 수익이 전부 사온에게 돌아갔다는 사실이 밝혀졌소. 게다가 그녀가 일부 부인들과 제귀태비, 덕귀태비와 함께 운영하던 가게들까지 모두 사건에 연루되었소. 그리고 관련된 가게들은 이미 조사 후 폐쇄되었소. 그녀의 개인 가게 두 곳이 남아 있었으나 그 또한 당시 고부진의 명의로 되어 있었소. 고부진이 처형되면서 그 가게들 역시 몰수되어 국가 소유로 전환되었소. 이 사실을 가의는 평양후에게 끝까지 숨겼소. 평양후에게 무시당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수입이 끊긴 그녀는 손에 있는 은전을 꺼내 고리대금업에 투자하기 시작했소. 수익은 꽤 괜찮았던 모양이오. 그러다 연왕비 시민주에게 만 냥을 빌려 함께 고리대금을 돌리며 이익을 반씩 나누기로 했다하오."사촌 언니가 이것에 관여했다는 이야기를 듣자, 시만자의 얼굴이 금세 어두워졌다."하지만 최근 조정에서 고리대금업을 엄격히 단속하기 시작했소. 그녀도 바로 적발되어 ㅇ벌금으로 많은 돈을 물게 되었소. 평양후에게 쫓겨날 때 가져갔던 돈도 모두 벌금으로 내고도 모자라서 집과 장신구를 팔아야 했소. 그렇지 않으면 감옥에 갈 처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0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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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012화

    송석석이 평양후부 노부인을 찾아가기도 전에, 이튿날부터 이미 공방에 대한 소문이 온 거리를 떠돌았다.북명왕비와 이씨 부인은 위선자들이며, 버림받은 여인이 도움을 요청했는데 거절한 것도 모자라 온갖 방법으로 괴롭혔다고 말이다.원래도 많은 사람들이 공방에 적대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그들은 공방이 버림받은 여인들을 받아들이는 것을 예법에 도전하는 행위라 여겼다. 버림받은 여인이라면 분명 죄가 있어서 그렇게 되었을 것이며, 설령 자손을 낳지 못한 탓이라 해도 죄가 있다는 식이었다.이런 소문이 퍼지자 무너지는 벽을 밀어대듯 모두가 달려들어 비난하기 시작했다. 위선적이라고 욕하는 사람도 있었고, 속셈이 있는 것 아니냐며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으며, 돈을 챙기려는 것 아니냐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다.저녁이 되자 시만자가 분노에 차서 탁자를 쾅쾅 내려치며 외쳤다."가의 혼자 이렇게 큰 소동을 일으켰다고? 믿을 수 없어!"말을 마치고는 바람처럼 밖으로 뛰쳐나갔다. 송석석이 뒤에서 물었다."어디 가는데?""왕경루에. 사람을 찾아서 조사해보려고." 시만자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발걸음을 재촉했다.시만자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분노를 억누르지 못했다. 그녀는 공방에 많은 정성을 쏟았고 그 초심은 순수했다. 그녀는 버림받은 여인들의 운명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했으며 공방이 그들에게 평생 의지할 수 있는 안식처가 되길 바랐다.그런데 이렇게 악의적으로 모함을 당하다니…… 그녀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송석석도 속이 상했지만 시만자처럼 흥분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이 일을 시작할 때부터 순조로울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세상에는 선의와 재력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이 일이 그렇게 쉬웠다면 이미 누군가가 나서서 했을 일이었을 테니 말이다.송석석은 우선 평양후부 노부인에게 방문 요청서를 보냈다. 내일 방문하겠다는 뜻을 담은 것이었는데, 평양후부 노부인이 병석에 누워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몇 일이 지나 기운을 좀 차리면 친히 북명왕부를 찾아뵙겠다는 답이 돌아왔다.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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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왕은 진성에 온 이후로 시민주에게 시만자를 자주 만나보라고 시키곤 했다. 그녀들은 혈연관계로 연결되어 있었으니 오랜 시간 함께하지 않았더라도 앞으로 더 많은 교류를 하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송석석보다 사이가 깊어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러나 연왕이 미처 고려하지 못한 사실이 있었다. 바로 시민주는 무능할 뿐만 아니라 심술까지 많다는 점이었다. 그녀는 한두 번 시만자를 찾아갔다가 냉대를 받고는 더 이상 가지 않으려 했다. 이 사촌 동생이 자신을 너무 얕잡아 본다는 이유였다. 자신은 이제 왕비의 신분이니 그런 모욕은 받고 싶지 않으며, 또한 자매 사이에 왕래가 필요하다면 앞으로는 시만자가 자신을 찾아와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연왕비의 이러한 태도에 연왕은 화가 날뿐더러 이해도 되지 않았다. 혹시 두 사람 사이에 과거 어떤 사적인 원한이라도 있었나 싶어 사람을 시켜 조사까지 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어린 시절 두 사람은 꽤나 사이가 좋았다. 다만 시만자가 매산 적염문에 무술을 배우러 간 뒤로 왕래가 뜸해진 것뿐이었다.연왕은 이 관계가 충분히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지금 시만자가 찾아온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이건 자매 관계를 회복할 절호의 기회였다. 그래서 그는 즉시 사람을 시켜 시민주를 서재로 부르게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시민주가 춘향을 데리고 서재로 들어왔다. 그녀의 얼굴에는 희미하게 기쁨이 스쳤다. 그녀는 몸을 숙이며 말했다."저를 부르셨다니 무슨 일이신가요?"연왕은 시민주가 경례하는 모습을 보며 여전히 예의도 없고 조잡한 태도에 혀를 내둘렀다. 황실에 시집온 지도 오래되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예법을 배울 마음이 없었다. 하루 종일 첩들과 다투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연왕은 속에서 올라오는 불만을 애써 억누르며 말했다. “너의 사촌 동생 시만자가 찾아왔소. 본왕이 이미 사람을 시켜 그녀를 본채로 안내했소. 조금 있다가 본왕이 함께 갈 것이니 이 기회를 빌려 그녀와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며 자매끼리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눠보시오. 손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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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400화

    이튿날 아침, 송석석은 경위부로 돌아갔는데, 회왕비가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이번에 회왕이 진성으로 잡혀왔을 때, 그의 아들은 아직 잡히지 않았기에 목종욱은 여전히 병사들을 이끌고 회왕의 아들을 수색하고 있었다.회왕비는 자신의 아들도 왕표처럼 요참형에 처형당할까 봐 걱정되어 급하게 송석석을 찾아온 것이다.사실 전에 회왕이 진성으로 압송되었을 때에도 회왕비가 란이를 찾아가 송석석에게 도움을 청해보라고 시켰지만 란이는 단호하게 거절했었다. 심지어 송석석 앞에서 단 한번도 언급한 적이 없었기에, 송석석도 석소 사저를 통해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이었다.회왕비가 재빨리 송석석에게 다가가 조급한 표정으로 말했다.“석석아! 이모가 너에게 부탁할 일이 있어. 일단 조용한 데 가서 얘기 좀 할까?”“지금 처리할 일이 많아서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송석석이 돌아서서 떠나려고 하자 회왕비는 얼른 두 팔을 활짝 벌려 다시 그녀의 앞을 막았다.“몇 마디만 하면 돼. 네가 네 사촌 오라버니를 좀 살려주면 안 돼? 네 사촌 오라버니는 아무 잘못이 없어. 걔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어. 전부 걔 아버지 때문에 벌어진 일이야. 제발 네가 좀 구해줘!”송석석은 눈시울이 붉어진 회왕비를 보며 예전에 외할아버지가 진성으로 돌아와 관아에 갇혀 있었을 때 회왕비가 단 한번도 외할아버지를 보러 가지 않았던 일이 떠올랐다.송석석은 이기적이고 냉정하며 나약한 회왕비와 단 한 마디도 섞고 싶지 않았으며 회왕비를 슬쩍 피해 경위부 안으로 들어갔고 경위대에게 회왕비를 쫓아내라고 지시했다.이때 등 뒤에서 회왕비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석석아, 너 어찌 이리 인정머리가 없을 수 있느냐? 네가 어렸을 때 이모가 너에게 얼마나 잘해줬는데 벌써 다 잊은 거야?”송석석이 뒤도 안 돌아보자 회왕비는 더욱더 큰소리로 외쳤다.“송석석, 네 어머니는 나를 제일 사랑하고 아꼈다! 네가 날 이렇게 모른 척하면 분명 네 어머니 상심이 클 것이다!”자신의 어머니가 언급되자, 걸음을 멈춘 송석석은 싸늘하게 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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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송석석은 서재에서 편지 한 장을 쓴 뒤, 편지를 염구진에게 주면서 사람을 시켜 남강에 있는 사여묵에게 전달하라고 했다. 송석석은 현재 남강의 상황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빅토르는 병사들만 끌어 모을 뿐 공격도 하지 않고 물러서지도 않은 채 대치를 하고 있었다. 빅토르가 시간을 끌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남강 전쟁에 참여하겠다고 황제에게 먼저 얘기한 빅토르는 전쟁을 이기지 못하면 군령에 의해 처벌을 받겠다는 서약서까지 썼지만 사청엄이 반역에 성공하지 못했기에 빅토르에게 성을 나눠줄 수 없었고 빅토르도 공을 세울 수 없었다.이대로 섣불리 자신의 나라로 돌아갔다가 자신이 쓴 서약서 때문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빅토르는 초원과 연합하여 자신의 퇴로를 확보하려고 했지만 초원은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초원은 애초부터 전쟁을 싫어했을 뿐만 아니라 중간에 끼어 마음을 졸이면서 어렵게 생존하고 있었기에 반드시 중립을 유지해야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만약 둘 중 한 나라를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면 초원은 반드시 상국을 선택할 것이다.전에 사제가 송석석에게 보낸 서신에 의하면 남강 병사들은 빅토르를 확실하게 공격하여 다시는 전쟁을 일으킬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만들 거라고 했다.송석석이 생각에 잠겨 있었던 그때, 시만자가 문을 두드렸다.“석석아!”“들어와.”송석석의 말에 시만자가 최숙심과 함께 방으로 들어왔다.“최씨께서 너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싶다고 하셔서 모시고 왔어.”최숙심은 한걸음 앞으로 다가가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왕비님, 그동안 신경 써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제가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까요?”송석석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농담을 던졌다.“전 여색을 즐기지 않으니 몸으로만 갚지 않으시면 됩니다.”송석석은 분위기가 무거워지는 게 싫어서 농담을 하자, 흠칫하던 최숙심도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시만자는 잠깐 앉아있다가 왕경루로 가야 한다고 방을 나섰다. 종문파와 시씨 가문 사람들은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98화

    오후 3시 정각, 커다란 판대기가 처형장에 올라왔다. 철로 만들어진 판대기는 매우 단단했으며 상국에서 요참형에 쓰이는 유일한 판대기였기에, 오랫동안 방치되어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었다.문엄 황제 때 요참형이 너무 잔인하다는 평가가 많았기에 죄가 아무리 중한 범인이라고 해도 요참형을 내리지 않았다.하지만 이 형이 현재까지 폐지되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 반역자에게 겁을 주기 위한 것이다.요참형을 처형할 때 백성들에게 보여주지 않는 게 원칙이지만 국정을 어지럽히고 역적들과 손을 잡고 나라를 배신한 건 역천 대죄이기에 이러한 방식으로 반역의 마음을 품고 있는 사람들에게 겁을 주려고 했다.왕표는 이내 입고 있던 옷이 전부 벗겨졌고 관원 부하 두 명이 왕표를 판대기에 눕혀 어깨를 꾹 누른 뒤 꿈쩍도 못하게 제압했다.공포에 질린 왕표는 순간 정신을 잃은 채 기절했고 망나니가 대도를 치켜 들자 대부분 사람들이 급하게 고개를 돌렸다.구경꾼들과 달리 영군오아과 연왕 등 사람들은 전방을 직시하게 고정되어 있었기에 고개를 돌릴 수 없었고 눈을 꼭 감은 채 온몸을 덜덜 떨었다.연왕은 그 중에서 가장 겁이 많은 사람이었다. 망나니가 대도를 든 순간 눈을 꽉 감은 연왕은 심지어 비명까지 질렀다.하지만 겁을 먹은 사람들과 달리 추몽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전방만을 직시했다.망나니의 대도가 왕표의 허리를 자른 순간에도 추몽의 표정은 한 치의 변화도 없었다.왕표에 이어 고청우가 처형당할 때에도 그는 눈을 피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주변의 비명소리나 흐느끼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듯 왕표와 고청우가 발버둥 치다가 완전히 의식을 잃을 때까지 빤히 지켜 보았다.한편, 왕청여는 왕표가 처형되기 전에 노부인을 데리고 이미 처형장을 떠났고, 최숙심은 처형이 끝나고 나서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최숙심은 결국 왕표가 처형당하는 모습을 보지 않았다. 눈을 꼭 감고 있다가 주변에 모여 있던 백성들이 왕표가 죽었다는 말에 그제야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가족들이 시체를 거둬가지 않으면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97화

    경위대가 노부인과 최숙심 그리고 왕청여를 처형장 안으로 호송했고 다리에 힘이 쫙 풀린 노부인은 온몸을 덜덜 떨면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이 멍청한 놈아! 넌 우리 집안 조상님들과 네 아버지의 얼굴을 보기 창피하지도 않아? 이제 하늘나라로 가면 어떻게 마주하려고 이런 짓을 저지른 거야!”그러고는 노부인은 엉엉 울면서 왕표의 뺨을 강하게 내리쳤다.한편, 감당할 수 없는 공포에 영혼이 나간 왕표는 어머니를 보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소리를 질렀다.“어머니, 저를 구해주세요! 제발 저를 구해주세요! 전 이대로 죽고 싶지 않다고요!”“네가 이렇게 큰 죄를 저질렀는데 내가 무슨 수로 너를 구해? 황제 폐하께서 너를 얼마나 중히 여기고 믿어줬는데 네가 어찌 이런 배은망덕한 짓을 저지른단 말이냐!”“어머니, 저 정말 잘못했어요. 제 죄를 다 뉘우쳤어요. 다시는 그러지 않을 거예요! 나라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울게요. 제발 이 아들을 살려주세요!”왕표가 오열했지만 노부인은 그저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이때, 곁에 서있던 최숙심이 직접 만든 음식과 술을 꺼내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당신과 나 사이에 부부의 연은 끝났지만 어머님과 아이들은 제가 잘 돌볼게요. 그러니 걱정 말고 떠나세요.”왕표는 담담하게 말을 하는 최숙심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네가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와! 서방을 배신한 천박한 년! 감히 나에게 부부의 연을 운운해?”“그래요. 저희는 이제 부부가 아닙니다. 그러니 앞으로 각자 갈 길을 가는 게 좋겠지요.”“나쁜 년!”왕표가 잔뜩 분노한 목소리로 외치자, 이를 들은 백성들이 너도나도 최숙심을 불쌍하게 여겼다. 평생 전전긍긍하면서 왕표를 위해 아들과 딸을 낳고 집안일을 처리하면서 시부모에게도 최선을 다했는데 결국 저런 말을 듣다니.뒤로 한 걸음 물러난 최숙심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한편, 고청우는 왕씨 가문의 일에 전혀 관심이 없었으며 모여 있는 백성들을 자세하게 쓱 훑었다. 이제 곧 죽을 텐데 정말 아무도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96화

    그렇게 한참 지나고 나서야 눈물을 그친 노부인은 결국 왕표를 구하는 일은 포기했지만, 그의 형이 집행되기 전에 최후의 만찬을 직접 먹일 것이라고 고집을 부리기 시작했다. 노부인의 눈은 퉁퉁 부었고, 목소리도 심하게 갈라져 있었다.“형이 집행되기 전에 범인은 가족들을 마지막으로 한 번 만날 수 있다는 걸 알아. 그러니까 이것만 하게 해줘. 아들이 마지막으로 배불리 먹고 길을 떠날 수 있게 해줘.”노부인은 다시 최숙심을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며느리 너도 자식이 있으니 부모의 마음을 이해할 거야. 세상 사람들 눈에 걔가 백 번 죽어 마땅한 나쁜 놈이라고 해도 나에게는 그저 한없이 어린 아이일 뿐이야.”한참동안 침묵하던 최숙심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어머님, 형이 집행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만난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아시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집행장에서 아들이 요참형을 당하는 모습을 정말 직접 보실 수 있으시겠습니까?”노부인은 온몸을 덜덜 떨면서 대답했다.“네가 가서 북명 왕비에게 부탁을 좀 해보거라. 난 감옥에 가서 아들을 만나고 싶다.”노부인의 말에 고청락이 어이없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참 말씀을 쉽게 하시네요. 어머님께서 부탁하면 왕비님께서 무조건 그 부탁을 들어줘야 하시는 겁니까?”“어머님, 전 그런 부탁을 드릴 수 없습니다. 이 일은 왕비께서 결정할 수 있는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최숙심이 대답하자 노부인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술을 꽉 깨문 채 말했다.“집행장이라도 갈 것이다. 절대 내 아들을 굶겨서 하늘나라로 보낼 수는 없어.”“어머니, 오라버니는 안 굶어요. 형이 집행되기 전에 감옥에서 오라버니에게 맛있는 밥을 준비해줄 거예요. 심지어 술도 준비해준다고 들었어요.”왕청여의 말에도 노부인은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그건 달라!”최숙심이 계속 한숨을 살짝 내쉴 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곁에서 지켜보던 모종윤이 고청락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그렇게 시간이 흘러 집행 당일 날이 되었고, 하늘은 한없이 맑았다.문엄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95화

    궁으로 들어가 황제에게 자초지종을 보고하자, 최숙심의 딱한 사정을 운운하면서 그녀의 선한 마음씨 또한 찬양했다.그녀의 삶도 이토록 엉망진창인데 힘든 사람들에게 죽도 나눠주고 갈 곳 없는 여인들을 소주방에서 지내게 도와준 사실들을 일일이 읊으면서 감탄했다. 솔직히 숙청제에게는 지금 최숙심처럼 백성들을 교화할 수 있는 모범적인 사람이 필요했다. 때문에 바로 어명을 내려 그녀에게 순금 백 냥과 집 한 채까지 하사했다. 그리고 유방 당했던 왕씨 가문 남자들도 남강 전쟁만 끝나면 북명왕과 함께 진성으로 돌아오는 것에 허락했다.그렇게 최숙심은 죽을 고비를 넘어 인생 역전까지 이뤄냈다!한편, 왕표에게는 요참형이 내려졌고 역적과 손잡고 왕표를 선동한 고청우에게도 똑같은 형을 내렸다. 그러자 숙청제는 예전에 고씨 가문 여인들을 살려준 일이 후회되었다. 고청우를 진작 감옥에 가뒀다면 남강에 이렇게 큰 화란이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니 말이다.이후 숙청제는 척귀에게 걱정되니깐 암자에 가끔 가보라고 했는데, 이는 실은 감시하기 위해서였다. 송석석은 척귀를 보자마자 황제가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지 바로 알아차리고는, 사람을 보내 고씨 여인들에게 고청우의 형이 집행될 때 고청우와의 옛정 때문에 잘못된 행동을 저지르지 말라고 확실하게 당부했다.한편, 소주방에 있는 노부인은 자신의 아들인 왕표가 결국 체포되었고 요참형을 받는다는 소식에 큰 충격을 받은 채, 죄 없는 왕청여와 최숙심에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갖은 욕설을 퍼부으며 화풀이를 했다. 노부인은 두 사람이 어떻게 가족이며, 서방인 왕표를 배신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점점 더 흥분하다가 결국 최숙심과 왕청여의 뺨을 강하게 내리쳤다.그리고는 지금 당장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왕표를 구해내라고 억지를 부렸다.최숙심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노부인에게 노여움을 풀라고 빌었지만, 노부인은 오히려 점점 언성을 높였다. 그러자 최숙심도 더 이상 참지 못해 벌떡 일어나 주막에서 칼을 가져오더니 바닥에 툭 던졌다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94화

    왕표는 중범죄자이기에 바로 대리사로 이송되어야 하지만, 송석석은 그를 일단 경위부로 압송했다. 경위부에서 심문을 마친 후, 어전에 보고를 올리며 최숙심의 공을 황제에게 잘 얘기한다면,왕준과 현이 하루 빨리 진성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더군다나 고청우도 아직 경위부에 갇혀 있기에 왕표와 고청우가 만난다면 더욱 많은 일들을 알아낼 수도 있었다.그렇게 고청우와 왕표는 같은 곳에 갇혔으며, 중간에 나무 울타리 하나를 세워 두 사람을 갈라놓았다.고청우와 왕표가 서로 눈이 마주치자,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었으며 왕표가 먼저 이를 갈면서 마구 소리를 질렀다.“천박한 놈! 결국 네 놈 꼴도 이렇게 되었구나! 드디어 벌을 받은 게야!”그러자 고청우가 실눈을 살짝 뜨며,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비아냥거렸다.“내가 천박한 년이면 왕표 너는 뭔데? 나도 벌을 받았지만 너도 결국 이렇게 갇혀 있잖아! 넌 뭐 다를 것 같아?”“이게 다 네 놈 때문이야!”왕표가 울타리 사이로 손을 뻗어 고청우를 잡으려고 허우적거렸고 뒤로 살짝 물러난 고청우는 오아표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코웃음을 쳤다.“버러지 같은 놈!”“네 놈이 감히…! 지금 뭐라고 했느냐! 네 놈이 역적과 손잡고 날 꼬셔서 야반 도주하게 만들지 않았다면 난 지금 남강 원수의 신분으로 잘 살고 있었을 거야! 절대 이런 꼴을 당할 리 없었을 거라고!”왕표가 씩씩거리며 소리를 지르자 고청우가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널 꼬셨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 넌 결국 죽음이 두려워서 그런 선택을 한 거야. 넌 내가 무엇인가 노리고 접근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잖아. 그런데 내가 아이까지 낳으니 이제 날 곁에 묶어 둘 수 있겠다고 확신한 거지. 이 세상 모든 여자들이 네 본처처럼 아이들을 위해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줄 알아? 가족애라는 건 이 세상에서 가장 우스운 거야. 그딴 걸로 날 묶어 둘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멍청한 놈! 내가 널 버리고 갈 때 분명하게 얘기했잖아. 넌 무능하고 무술 실력도 보잘것없는데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93화

    한편, 송석석은 시만자를 데리고 일반 손님으로 위장한 채 직접 보화사로 향했다. 보화사에 도착한 뒤 절을 올리고 초를 꽂고는 주지 스님을 찾아 신분을 밝힌 뒤, 여람 스님에 관해서 물었다.주지 스님은 바로 지객 스님을 불러왔다. 각지 스님들이 보화사에 찾아와 며칠 묵고 갈 때마다 지객 스님이 그자들을 모셨기 때문에 자세한 상황을 제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보화사는 진성 3대 절 중의 하나일 정도로 꽤 유명했기에, 매년 보화사에 찾아와 경을 들으면서 며칠동안 이곳에 묵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많아도, 실제로 이곳에 머물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었다. 지객 스님은 여람 스님에 대해 인상이 꽤 깊었다. 수련의 경지가 그리 높지 않았기에 원칙대로라면 이곳에서 지낼 수 없는데 몇 년 전부터 남강에서 죽은 이의 영혼들을 제도했기에 그 자비로운 마음을 높이 평가하고 덕행도 많이 쌓았기에 지객 스님은 의례적으로 여람 스님을 받아준 것이다.“며칠동안 매일 여람 스님께서 밖에 돌아다니셨습니다. 진성 내에 전란이 일어나 사상자가 많았기에 여람 스님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죽은 이들의 영혼을 제도하느라 고생이 많았습니다.”지객 스님은 여람 스님을 매우 좋게 평가했다. 송석석은 그런 지객 스님의 말을 조용하게 듣고 있을 뿐, 반박하지는 않았다.그러고는 지객 스님에게 여람 스님을 만나보고 싶다고 얘기하며, 여람 스님을 존경하는 마음에 돈을 기부하며 여람 스님을 위해 따로 절 하나를 지어주고 싶다는 말도 함께 전해달라고 했다.한편, 지객 스님은 송석석과 시만자의 신분을 알지 못했지만, 두 사람이 수수한 옷차림과 달리 기품이 넘쳐 흘렀기에 모 훈작 세가의 부인이나 아가씨일 것이라고 추측해,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인 후 바로 왕표에게 말을 전했다.왕표는 자신을 찾아온 자가 있다는 말에 흠칫 놀랐다가 절을 만들어주며 돈까지 기부하겠다는 소식에 바로 표정이 환하게 바뀌었다.평서백이었던 왕표는 가문의 번영을 위해 절에 돈을 기부하는 명문 가문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그렇게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92화

    이내 표정을 숨긴 최숙심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얼른 가십시오. 돈을 구하면 바로 서방님을 찾으러 가겠습니다. 아, 그리고 요즘 진성 순찰이 삼엄하니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마십시오.”왕표는 자신을 걱정하는 최숙심의 말을 듣자, 그녀가 밖에서 아무리 대단한 여인이라고 불려도 결국 자신에게 만큼은 마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뿌듯함에 경계심이 완전히 풀렸다.“최대한 3일 안에 마련해주면 고맙겠소.”그러자 최숙심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그건 안 됩니다. 지금 상황이 어려운데, 어떻게 3일 안에 그 큰돈을 마련할 수 있겠습니까?”“우리 딸 지아가 지금 북명 황실에서 지내고 있지 않소? 그러니 난 부인이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믿소. 부인의 소식을 기다리겠소. 그리고 내가 부인을 찾아왔다는 말은 아무한테도 하지 마오. 어머니와 왕청여한테도 얘기해서는 안 되오!”말을 마친 왕표는 삿갓을 쓰고는 돌아서서 빠르게 떠났다.표정이 확 어두워진 최숙심은 그를 얼른 따라갔지만 골목 밖에도 순찰하는 경위대가 보이지 않았기에 섣불리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왕표는 궁지에 몰린 순간 백성들을 인질로 잡아 어떻게든 진성을 벗어나려고 할 것이고 만에 하나 왕표가 진성을 빠져나가게 되면 그를 찾아내는 건 더 어려워질 것이다.최숙심은 빠른 걸음으로 소주방에 돌아와 석소를 구석으로 불렀다.“석소 아가씨, 얼른 왕비에게 찾아가서 왕표 그자가 보화사에 여람 스님 신분으로 위장하여 숨어있다고 전하시오.”“네, 지금 바로 다녀오겠습니다.”그렇게 석소가 돌아서서 소주방을 떠나려던 그때, 최숙심이 그를 불러 세웠다.“잠깐만요! 왕비님께 너무 대놓고 보화사에 왕표를 잡으러 가지는 말라고 전해주세요. 저에게 거짓말을 한 것일 수도 있으니 일단 몇 사람만 데리고 가서 상황만 파악해보시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전하세요.”현재 수색이 삼엄해서 왕표는 더 이상 도망갈 곳도 없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조심해야 한다. 이는 최숙심이 공을 세울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고 단번에 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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