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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6화

Author: 유애
last update Last Updated: 2024-12-01 20:00:00
송석석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녀가 어떻게 공방까지 갔지?”

소진 소주방은 외부에 이미 알려진 곳으로, 문전 박대를 당해 갈 곳이 없고 당장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여인들을 받아주는 곳이었다. 하지만 가의라면 상황이 다르다. 가의는 비록 이혼을 당해 내쫓겼다 해도 생계를 유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송석석이 아는 바로 가의는 몇 채의 저택과 가게를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쫓긴 뒤에도 여전히 부유한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처지였다.

이씨 집안의 시녀가 말했다.

“그녀가 갈 곳이 없다고 억지를 부리며, 계속 공방에 들어가겠다고 떼를 쓰고 있습니다. 부인께 욕까지 하면서요. 공방이 내쫓긴 여인들을 받아주는 곳이라면 자신도 조건에 부합한다면서, 받아주지 않으면 공방은 위선적이고 보여주기식이라고 계속 비난하고 있습니다. 부인께서 화가 많이 나셔서 왕비님과 시 소저께 이 일을 말씀드리라고 저를 보내셨습니다.”

시만자는 이씨 부인이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말을 듣자 화를 참을 수 없었다.

“내가 가볼게.”

이상서는 늘 이씨 부인을 호랑이라고 불렀지만 그래도 그녀는 말이 통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가의처럼 무리하게 논쟁을 벌이는 사람을 상대하는 것은 이씨 부인에게도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가의는 이제 버림받아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다는 식으로 막 나가고 있었고, 이씨 부인은 공방의 명성을 지켜야 했기에 직접 나서서 그녀를 내쫓지도 못했다. 그러다 보니 더욱 화가 난 것이었다.

송석석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나도 같이 갈게.”

시만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염선생께서 왕야께 그쪽 일을 전해 드리도록 하시지요! 이미 제가 염선생께 다 말씀드렸으니, 염선생 측에서도 어느 정도 내막을 알아봤을 겁니다.”

염선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다녀오세요.”

두 사람은 시녀를 데리고 소진 소주방으로 향했다. 공방의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시녀가 나서서 문을 두드리며 신분을 알리자 문이 열렸다.

소진 소주방의 정원은 그리 큰 편은 아니었다. 보통 외부 손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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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금 전까지만 해도 거만했던 가의는 송석석과 시만자를 보자마자 기세가 한풀 꺾이고 말았다.그녀는 옷깃을 꽉 쥐며 턱을 살짝 들어 올렸다. 몰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귀에는 작은 금빛 나비 모양의 귀걸이가 걸려 있었는데 지금 입은 거친 옷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마치 마지막 자존심과 체면을 간신히 붙잡고 있는 듯했다.그녀는 혼자였다. 곁에는 시녀 한 명조차 없었다.“왕비, 시 소저, 딱 잘 왔네.”이씨 부인은 화가 잔뜩 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말했다.“무례하게 구는 사람은 많이 봤어도 이렇게까지 막무가내로 나오는 사람은 처음 봅니다. 공방에 들어오겠다고 하더니 심지어 이름까지 바꾸라고 하지 뭡니까. 그래서 무슨 이유로 쫓겨났는지 물어봤더니 우물쭈물하면서 말도 제대로 안 하더군요.”이씨 부인이 화를 낼 만했다. 공방을 설립할 당시, 송석석과 이씨 부인은 규칙을 정했다. 악랄하거나 천인공노할 일을 저질러 쫓겨난 사람은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그래서 가의가 찾아왔을 때는 당연히 이유를 물어야 했고 그 이유를 조사한 뒤 받아들일지 말지를 결정해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저 변명만 늘어놓으며 제대로 대답하지도 않고, 오히려 거만하고 무례한 태도를 보였으니 이씨 부인이 어찌 화가 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송석석과 시만자가 자리에 앉았다. 가의는 그들의 비단옷과 화려한 장신구를 바라보며 자신이 군주로 지내던 시절과 다름없는 그들의 모습에 눈길이 멈췄다. 반면, 지금의 자신은 거친 옷을 입고 나무 비녀를 꽂은 초라한 모습에 화장조차 하지 못한 채 늙고 빈곤해진 상태였다. 이 강렬한 대비는 그녀의 마음에 분노와 수치심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그러나 이곳에 오지 않을 수는 없었고 송석석 앞에서 예전처럼 거만한 모습을 드러낼 수는 더더욱 없었다. 송석석은 조정의 관리였고, 그녀의 어머니 사건은 사여묵이 맡아 처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송석석이 그녀를 살피며 물었다.“정말 공방에 들어오고 싶은 겁니까? 여기에서 산다는 게 비단옷을 입고

    Last Updated : 2024-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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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st Updated : 2024-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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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st Updated : 2024-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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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석석은 그가 오늘 이렇게 일찍 돌아온 것을 보고 눈매가 활짝 휘어지며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사건은 다 처리했나요?""아니, 하지만 오늘은 밤을 새고 싶지 않아서."사여묵은 그녀의 눈을 마주 보며 무심코 얼굴에 온화한 기색이 돌았다. 미소를 머금은 채 그녀 곁으로 다가가 앉았다.염선생은 뒤돌아 차를 내오라고 지시했다."목이 타들어가겠군. 개여주차를 준비해 주시오."시만자가 웃으며 물었다."염선생님, 오늘 뭘 하셨길래 목이 쉴 정도로 바쁘셨습니까?""가게를 둘러보고 사람들과 가격 협상을 했습니다."염선생은 송석석에게 가볍게 인사를 한 뒤 자리에 앉았다.시만자는 가게 정리에 관심 없었다. 곧바로 사여묵에게 물었다."시경님께서 아까 가의의 상황을 안다고 하셨는데, 대체 무슨 일인가요?"사여묵이 대답했다."그녀에게는 본래 은전도 많지 않았소. 사온의 역모 사건 때 가의가 운영하던 가게들의 수익이 전부 사온에게 돌아갔다는 사실이 밝혀졌소. 게다가 그녀가 일부 부인들과 제귀태비, 덕귀태비와 함께 운영하던 가게들까지 모두 사건에 연루되었소. 그리고 관련된 가게들은 이미 조사 후 폐쇄되었소. 그녀의 개인 가게 두 곳이 남아 있었으나 그 또한 당시 고부진의 명의로 되어 있었소. 고부진이 처형되면서 그 가게들 역시 몰수되어 국가 소유로 전환되었소. 이 사실을 가의는 평양후에게 끝까지 숨겼소. 평양후에게 무시당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수입이 끊긴 그녀는 손에 있는 은전을 꺼내 고리대금업에 투자하기 시작했소. 수익은 꽤 괜찮았던 모양이오. 그러다 연왕비 시민주에게 만 냥을 빌려 함께 고리대금을 돌리며 이익을 반씩 나누기로 했다하오."사촌 언니가 이것에 관여했다는 이야기를 듣자, 시만자의 얼굴이 금세 어두워졌다."하지만 최근 조정에서 고리대금업을 엄격히 단속하기 시작했소. 그녀도 바로 적발되어 ㅇ벌금으로 많은 돈을 물게 되었소. 평양후에게 쫓겨날 때 가져갔던 돈도 모두 벌금으로 내고도 모자라서 집과 장신구를 팔아야 했소. 그렇지 않으면 감옥에 갈 처

    Last Updated : 2024-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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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석석은 그녀가 몇 푼의 동전이라도 허겁지겁 줍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녀는 정말로 막다른 처지에 몰린 듯했다.하지만 이번 일은 정말 난처한 상황으로 보였다. 원래 그녀는 조미진의 어머니를 해하려 했을 뿐이었지만 결국 그 결과로 조미진이 유산하게 되었고, 이후에는 전소환을 호수에 밀어버렸다. 전소환이 수영을 못 한다는 걸 그녀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즉, 그녀는 전소환을 일부러 해치려는 마음을 먹었던 셈이다."잘못한 건 알지만……" 시만자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전소환이 호수에 빠진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나오네."그러고는 잃은 공덕을 만회하려는 듯 불경을 읊었다."아미타불, 죄송하옵니다. 죄송하옵니다."그러자 송석석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나는 도대체 이해가 안 돼요. 그녀는 지금 군주의 신분도 아니고, 평양후부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며 어머니는 감금되고 아버지는 참수당했는데…… 대체 왜 이렇게까지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거죠? 이 삶을 정말 계속 살고 싶지 않은 걸까요?"염선생이 말했다."살고 싶지 않았다면 공방에 도움을 요청하러 가지도 않았을 겁니다." 송석석은 고개를 돌려 사여묵을 보며 물었다."장군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사여묵이 대답했다."이 일에는 아직 숨겨진 진실이 더 있을 수도 있소. 풍집사도 진상을 모두 아는 것은 아닐 테고, 대저택 안에서 벌어지는 더러운 일들은 대부분 숨기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적어도 평양후부 노부인 입장에서는 가의를 내쫓지 않을 수는 없었던 것 같소. 아마도 노부인이 가의가 고리대금을 돌렸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일 것이오."송석석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아마 여러 가지 일들이 겹쳤겠죠. 평양후부 노부인도 더는 참을 수 없었던 것 같아요. 사실 평양후는 원래 결단력이 없는 사람이라 집안일은 전적으로 노부인이 맡아왔으니까요. 그리고 평양후는 가의를 부부로서 진심으로 사랑한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그들은 서로를 혐오하는 사이였던 셈이오. 부부가 그런 상태까지 간다는 건 정말 비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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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날, 전북망은 소위 합동 훈련이라는 것이 병력 배치나 전술 훈련이 아니라 농사를 짓는 일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9월은 겨울 밀을 심기에 적기였다. 남강은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지역으로, 물자가 여전히 부족했으며 전쟁으로 인해 인구도 크게 줄어든 상태였다. 이에 병사들이 농사를 돕게 된 것이다. 밀 외에도 배추, 무, 과일 등을 심기도 했다.방천허는 전북망이 마침 좋은 시기에 도착했다며 서둘러 가서 합류하라고 말했다.전북망은 하루 종일 농사일에 시달렸지만, 그 와중에도 짬을 내어 필명에게 편지 한 통을 썼다.진성에서 전북망의 편지를 받은 필명은 편지를 본 후 한참 동안 멍하니 있다가 머리를 긁적였다. '음…… 우리 사이가 이렇게 좋았던가?' 편지에는 자잘한 이야기가 빼곡히 적혀 있어 무려 3장이나 되었다. 대부분은 전에 전북망이 술에 취해 늘어놓았던 말들과 비슷했다.전북망은 원수부에서의 생활을 적으며 원수부가 얼마나 호화롭고 웅장한지 왕실조차 능가할 정도라고 표현했다.그는 원수부에 하인들이 구름처럼 많고 임신한 주모를 모시고 있으며, 그녀가 사용하는 물건이 모두 사치스러워 천금에 맞먹는다고 묘사했다.또한 농번기로 인해 현재 병사들이 농사를 지어야 하고, 농사가 끝난 뒤에야 훈련이 시작된다는 점을 언급했다. 병사들의 피부는 모두 새까맣게 그을렸지만 원수는 돼지처럼 하얗다고 비꼬기도 했다.뒤죽박죽한 이야기들을 잔뜩 늘어놓은 뒤, 평서백 부인에게 안부를 전해달라는 말을 덧붙였다.그 말을 마치고 나서는 자신도 한때 그런 사람이었고 비슷한 실수를 저질렀지만, 다른 사람이 자신의 과거와 같은 길을 걷는 것은 차마 볼 수 없다고 말하며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이어갔다.편지를 읽던 필명은 전북망이 왜 이런 말을 적었는지 눈치챘다. 평서백 부인에게 이 이야기를 전해 그녀가 마음 속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하려는 의도였다.필명은 전북망이 괜한 걱정을 한다고 생각했다.'평서백 부인처럼 현명한 사람이 왕표의 상황을 모를 리가 있나?'그러나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162화

    왕표는 전북망이 자신의 위엄을 충분히 보도록 한 뒤에야 그를 불러들였다.남강에 머문 지 2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왕표는 살이 많이 쪘다. 비록 과도한 비만 상태는 아니었지만, 호랑이 가죽이 깔린 팔걸이 의자에 앉아 있을 때면 턱 밑의 주름이 겹겹이 드러났다.그는 높은 자리에서 전북망을 내려다보며 위압적인 태도로 말했다.“너와 왕청여의 일은 이미 들었다. 그래, 너같이 평범하고 포부도 없는 자는 내 여동생과 어울릴 자격도 없지."전북망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반응 없이 한마디 대꾸만 하고 입을 닫았다.왕표는 차가운 코웃음을 치며 꾸짖었다."네가 이렇게 무능할 줄은 몰랐다. 현철위 부사령관이었지만 결국 관직에서 쫓겨났으니. 장군부는 정말 무능한 자들로만 가득 찼구나. 네 조부께서 하늘에서 너희 같은 무용지물을 보고 계신다면 눈을 감지 못하실 거다."전북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이마에는 핏줄이 드러났다."불만이면 어쩔 거냐? 너희 장군부에서 나온 인간들이 대체 어떤 꼴이 났는지 봐라. 그리고 너 자신만 봐도 여자 하나한테 휘둘려 이 지경이 됐으니. 앞뒤로 세 명의 여자가 있었지만 그 누구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지 않냐……쯧, 우리 남자들의 체면을 다 구겨놨다!”왕표는 지금 그야말로 의기양양했다.그의 곁에는 절세미인이 있었고, 그 미인은 그의 아이를 임신 중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그녀 이전에도 왕표는 남강에서 원하는 여자는 누구든 손에 넣었다.언제나 여자들이 그를 즐겁게 하려고 애썼을 뿐이었다.그래서 그는 본능적으로 전북망을 깔보았다.위세를 충분히 떨친 뒤 왕표는 물었다."진성 쪽에 무슨 큰일이라도 있는 것이냐?"전북망은 대답했다."큰일은 없습니다."왕표는 의자 팔걸이를 매만지며 입가에 냉소를 띠고 말했다."그래? 그럼 여기로 오기 전에 최씨를 본 적이 있나?"전북망은 고개를 들고 답했다."원수께서 말씀하신 게 평서백 부인 입니까?"왕표는 그의 의도적인 물음 속 뜻을 간파하고 냉소를 지었다."왜? 내가 내 여자를 어떻게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161화

    그러나 뜻밖에도, 왕표는 전북망이 남강에 도착한 것을 알고 직접 그를 원수부의 부병으로 지명했다.원수부의 부병은 주로 왕표의 출행 준비와 그의 안전을 책임지는 역할이었다. 적의 자객이 잠입해 주군을 해치려는 시도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왕표가 있는 동안에는 이런 일이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과거 송회안이나 사여묵 시절에는 여러 번 이런 자객 사건이 있었다.왕표는 이미 진성의 노부인으로부터 온 편지에서 전북망이 왕청여와 협의 이혼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었다.왕표가 그의 여동생에게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차치하고, 현재 그의 신분으로 보아 전북망이 그의 여동생을 그런 식으로 대했다는 것은 곧 자신에게 도전하고 자신의 권위를 모욕하는 행위라고 여겼다.그래서 왕표는 전북망을 불러 물 긷기, 장작 패기, 마당 쓸기, 꽃에 물 주기 같은 자질구레한 일감들을 시켰다. 심지어 주방에서 음식을 나르고 물을 따르는 일까지 맡겼다.전북망은 아무 말없이 모든 지시에 순순히 따랐다. 그는 스스로 먼지 속에 가라앉을 만큼 비천해진 존재로 여겼기에, 짓밟힐 자존심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며칠 동안 그는 수부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여기저기를 살폈다. 그리고 그는 수부가 이전에 그가 알던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겉모습만 비슷할 뿐 내부는 거의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예전에는 수부에 부엌일을 도맡은 여자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인원이 남자였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많은 시녀와 하녀들이 추가되었고, 심지어 한 명의 주모가 살고 있었다. 그는 그 여인을 두세 번 본 적이 있었는데, 그녀는 임신 중이었으며 대략 5~6개월 정도로 보였다.수부에는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그녀는 외출할 때 가벼운 비단으로 얼굴을 가리곤 했다. 가려진 얼굴 사이로 보이는 눈은 사람의 혼을 빼앗을 만큼 매혹적이었다. 전북망은 그녀의 신분을 사적으로 캐묻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야기는 자연히 들려왔다.사람들은 그녀를 원수의 부인이라 불렀다. 그녀가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160화

    송석석 일행은 왕이장과 시만자가 돌아오길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이 평서백부에 갔다는 소식과 심지어 모든 것을 터놓고 이야기를 했다는 말을 전해 들은 송석석은 약간 걱정스러웠다.요즘 평서백부의 상황이 불안정했기 때문이다."걱정하지 마. 화해하지 않았어."왕이장은 송석석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미소를 지었다."처음엔 꽤 감동적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나중엔 가식적이라는 생각이 들더라."돌아오는 길 내내 그는 노부인이 말하던 장면을 떠올리며 점점 더 명확하게 깨달았다.왕준의 진심 어린 감정 표현과 달리, 노부인의 모든 말은 마치 노부인 자신에게 들려주기 위해 한 것 같았다.그래서 그녀가 왜 그동안 그가 어떻게 지냈는지 묻지 않았는지도 설명이 된다. 그녀가 신경 쓴 것은 그와 최씨가 그녀의 말을 믿는지에 대한 여부였지, 왕이장 그 자체를 걱정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송석석은 이해하지 못한 채 시만자를 바라보았다. 시만자는 고개를 저으며 자신도 모른다는 뜻을 전했다."이제 가서 자자. 나도 졸리네."왕이장은 손을 뒤로 깍지 낀 채 방으로 돌아갔다. 이런 일에 더이상 얽매이지 않는 듯, 한결 가벼워 보이는 왕이장의 모습에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시만자는 남아있던 사람들에게 말했다."왕준과 노부인 모두 무척 격앙된 상태였고 계속 울더라고. 그런데 왕이장이 왜 가식적이라고 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송석석은 최씨도 방 안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는 얘기를 듣고 말했다."다음에 최씨 부인에게 물어봐야겠어."그전까지 묻지 않은 이유는 단지 오사형이 먼저 얘기를 꺼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그가 얘기를 꺼냈으니 묻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다음 날 아침, 송석석이 최씨를 찾아가려던 찰나에 최씨가 먼저 찾아왔다.최씨는 아주 직접적으로 두 가지 일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첫째, 평서백부의 일부 재산을 왕이장에게 "판매"하도록 그를 설득해달라는 것이었다.둘째, 왕이장이 노부인의 말을 믿지 않도록 하고, 그녀와 화해하지도 말고, 왕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159화

    왕이장과 시만자는 말을 끌고 나가 넓은 거리를 걸었다. 살랑살랑 부는 밤바람에 취기가 모두 날아갔다."오늘 밤 일은 너무 충동적이었어. 너를 데리고 오는 게 아니었는데…"시만자가 약간 후회하는 표정으로 말했다."나쁘지 않았어."왕이장이 대답했다."지금 마음이 어떤데? 그들과 화해한 거야?""아니."왕이장은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전보다는 훨씬 여유로운 표정을 지어보였다."노부인이 나와 최씨를 방으로 불러서 정말 많은 이야기를 했어. 하지만 단 한 번도 묻지 않더라. 그동안 내가 어떻게 지냈는지, 내가 끌려간 뒤에 무슨 일을 겪었는지 말이야. 그저 자신이 했던 일에 대해 변명하고, 잘못이 없다고 강조할 뿐이었어.""그랬구나"왕이장은 약간 흐트러진 머리카락과 함께 다시 자유분방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나는 처음 산을 내려갔을 때를 기억해. 한 달 동안 외지에서 지내고 돌아오니 사부와 사숙이 나를 둘러싸고 묻더라. 뭘 먹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어떤 여관에서 묵었는지, 싸움은 했는지, 남에게 속여 돈을 빼앗긴 적은 없는지, 그리고 어떤 경치를 봤는지.""내 사부님께서도 그랬어."시만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게 당연하지.""맞아."왕이장은 다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나는 어릴 때부터 사랑받고 자란 아이였어. 내게도 집이 있었다고."시만자는 그의 기분이 어떤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꽤 좋아 보였다."그래서, 이제는 마음을 정리한 거야?""응. 그런데 그렇게 나쁘지도, 좋지도 않아. 그러니 굳이 화해할 필요도, 원망할 필요도 없지."왕이장은 노부인이 남편을 독살해 복수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감동해야 마땅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감동하지 않았다.그에겐 비록 아이가 없지만 만약 있었다면, 심지어 그 아이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라면, 멀리 떨어진 곳으로 보내어 법도의 가호를 받게 해야 한다 할 때 그는 반드시 함께 갔을 것이다. 자신이 직접 가지 못한다면 믿을 만한 사람이라도 꼭 붙여 함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158화

    노부인은 여전히 격한 기쁨과 슬픔에 잠겨 있었다. 그녀는 왕이장의 소매를 꼭 붙잡고 놓지 않았다. 아무리 바라봐도 부족하다는 듯이 만족할 줄 모르며 그를 쳐다보았다. 눈물은 마를 틈이 없었다."이 어미를 용서해줄 수 있겠니? 나는 정말 몰랐단다… 어미가 이미 너의 복수를 해줬으니 제발 용서해주거라…"그러자 왕이장은 잠시 침묵하더니 고개를 천천히 저으며 말했다."노부인, 왕교여는 확실히 죽었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는 그 화재 속에서 죽은 것이 아닙니다. 석산에 보내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에서 고통받다 죽었습니다. 장청 도인은 그에게 온갖 고된 일을 시켰고, 툭하면 때리고 욕하여 결국 그를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습니다. 마지막엔 그를 밖으로 내던져버렸고, 그는 굶주린 늑대들에게 먹히고 말았습니다.""그럴 리가 없어!"노부인은 눈을 크게 뜨고 왕이장을 바라보며 소리쳤다."처음에는 인정하더니, 왜 지금 와서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냐? 넌 여전히 나를 원망하고 있구나, 그렇지?"왕이장은 그녀의 손을 뿌리치며 차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저는 당시 그곳에 교여와 함께 있었던 도동입니다. 교여와 친하게 지냈기 때문에 그의 일을 알고 있는 것일 뿐, 저는 교여가 아닙니다.""하지만 네 이 얼굴은…….""어머니!"최씨가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말했다."이 사람은 시숙의 친구입니다. 시숙이 아닙니다!"노부인은 멍한 눈빛으로 며느리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는 분명…….최씨는 왕이장에게 말했다."먼저 돌아가십시오. 며칠 후에 제가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안돼, 못 가! 절대 못 간다!"노부인은 필사적으로 왕이장을 붙잡으려 했지만, 그는 이미 일어나 떠난 뒤였다. "어머니."최씨가 그녀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억지로 강요하지 마십시오. 그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나요? 그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어머니는 모르시잖아요. 분명 그의 마음속에 원망이 가득할 겁니다. 어머니께서 죄책감을 느끼신다면 그를 위해 보상해주세요. 집안의 재산 대부분을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157화

    최씨는 인삼탕을 노부인에게 건네 마시게 했다. 그녀는 왕이장과 함께 자리에 앉아 노부인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그때 나는 정말 속았다. 장청 도인이 늘 했던 말이, 우리 교여가 복을 가져다줄 아이라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교여를 아주 아끼는 것처럼 보였어. 교여가 병에 걸렸을 땐 나보다 더 안절부절못하며 약을 구하고 의원을 찾으러 다녔지. 하지만 교여의 몸은 날이 갈수록 약해졌다. 다섯 살이 넘자 거의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할 정도였단다."이것은 노부인의 가슴 깊이 새겨진 상처였다.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여전히 숨조차 쉬기 힘들 만큼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장청 도인이 말하길, 방법을 쓰지 않으면 교여는 한 달도 버티지 못할 거라고 하더구나. 석산의 사철에 보내어 부처의 가호를 빌어야만 18살 고비를 넘기게 되고 그 이후로는 평생 순탄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하였다.""네 조부는 이런 말을 전혀 믿지 않으셨다. 다 거짓말이라며 반대하셨지. 하지만 네 아버지가 장청 도인을 데리고 조부를 찾아갔고, 뭔가를 얘기한 끝에 조부는 결국 동의했다. 심지어 매년 삼천 냥의 은화를 그 도인에게 주며 네 수명을 늘리기 위해 연꽃등을 밝혔다. 불교와 도교의 가호를 모두 받아야 한다는 이유였단다.""그런데 그 모든 것이 거짓말이었다니!"노부인의 목소리가 갑자기 높아졌다. 그녀의 표정에는 분노와 살기만이 가득했다."나를 속였고 네 조부를 속였다. 아니, 모든 사람을 속였어! 사실 장청 도인이 네 아버지에게 한 말은 네가 조부에게 복을 가져다주는 존재라는 것이었다. 네가 살아 있는 한 네 아버지는 작위를 이어받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일찍 죽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지. 그래서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널 죽이려 했다. 의원이 준 약을 전부 바꿔치기 했는데, 일부는 미세한 독을 섞었고, 일부는 약효가 상충되게 했으며, 일부는 심맥과 기혈을 깎아내리는 성분으로 바꿔 놓았다. 그래서 네 몸이 점점 악화된 게야."노부인은 숨을 헐떡이며 말을 쏘아붙였는데, 눈빛에는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156화

    어떤 힘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걷기도 버거워 보이던 노부인이 갑자기 날렵하게 움직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금숙과 천마마조차 그녀를 따라잡지 못할 정도였다.노부인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자신의 심장 박동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눈앞에는 정원의 풍경도, 주변의 사물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머릿속에는 수년간 불타오르던 큰` 화재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불길 속에서 울려 퍼지던 처절한 비명이 귀를 맴돌았다.그때 그녀는 누군가에게 끌리고 붙잡혀 움직이면서도 그 불길이 모든 것을 삼키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았다.그녀의 막내아들은 그렇게 불 속에서 죽었다.불길 속에서 여러 시신이 끌려 나왔지만 그녀는 그 시신들 중 어느 것이 자신의 아들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그녀는 몇 번이나 의식을 잃을 정도로 크게 오열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아들이 죽지 않았을 가능성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감히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병약해 걷는 것조차 누군가의 부축이 필요했던 아들이 어떻게 그 불바다 속에서 살아남았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노부인이 본채에 도착했을 때, 그녀의 눈에는 오직 한 사람만이 보였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눈물이 계속 흘러내리면서 그녀의 시야는 더욱 흐릿해졌다. 그녀는 온 힘을 다해 그 희미한 그림자를 따라 걸어갔다.노부인은 고개를 약간 기울이며 힘없고 불확실한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네가 내 아들이냐?"왕이장은 그녀를 알아보았다. 마음속으로 가장 원망스러워했던 사람이었다.하지만 그 순간 노부인의 끊임없이 흐르는 눈물을 보고 왕이장은 가슴 한구석에서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그는 움직이지 않고 대답도 하지 않았다."어머니, 저 아이가 교여예요." 왕준이 울면서 옆에서 외쳤다."아……!"노부인은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지르며 왕이장을 끌어안았다. 그녀의 기억 속 깊은 과거가 검고 짙은 밤을 뚫고 되살아났다. 그녀의 가슴은 마치 한 조각이 도려내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155화

    왕준이 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화난 목소리로 외쳤다."여기서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거냐? 어머니께서 언제 친아들을 버린 적이 있다고 그래? 나도, 큰형도 잘 지내고 있지 않느냐!""너희는 잘 지낸다고? 그럼 나는?"왕이장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너무 힘을 준 나머지 위와 목이 자극을 받아 고통스러워졌다. 그는 위를 부여잡고 웅크린 채 앉아 내력으로 속을 진정시키려 애썼다.그의 말에 왕준은 한동안 얼어붙었다. 그러다 무언가를 떠올린 듯 그를 급히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최씨 역시 무언가 기억난 듯 당황스러운 기색을 보였다. 그녀가 처음 집에 들어왔을 때 들었던 이야기였다. 어머니에게는 세 명의 아들이 있었고, 막내아들은 병에 걸려 치료하지 못해 사찰로 보내져 길러졌다. 그러나 사찰에 화재가 발생해 어머니는 막내아들이 불타 죽는 것을 두 눈으로 지켜봐야 했다.‘설… 설마 그때 죽지 않았던 건가?’"이름이 무엇이냐?"왕준은 이미 울먹이며 물었다. 그의 입술은 계속해서 떨렸다. 그는 왕이장을 간절히 바라보았다."노부인에게 물어보십시오, 노부인에게."왕이장은 위를 부여잡고 힘겹게 의자에 앉아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더 이상 힘이 없었다.최씨는 다가가며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기억났어요. 당신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아요. 여러 번 백부 문 앞에서 서성였잖아요."왕이장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최씨는 곧바로 시만자를 바라보았다.하지만 시만자 또한 최씨를 보지 않고 왕이장에게 말했다. "왕노오, 여기까지 왔으니 이들에게 분명히 말해. 왕교여라는 이름으로 어릴 적 여자 아이처럼 길러졌고, 다섯 살 때 사찰에 버려졌으며 학대받아서 몇 달 만에 죽을 뻔하다가 또 다시 버려졌다고. 사부가 널 주워서 살려줬지. 너는 아무 잘못도 없어. 잘못한 건 이들이야. 그러니까 제대로 따져봐."왕준은 마치 벼락을 몇 차례나 맞은 사람처럼 멍하니 굳어버리고 말았다. 눈동자조차 움직이지 않았다.그리고 곧 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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