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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7화

작가: 유애
방금 전까지만 해도 거만했던 가의는 송석석과 시만자를 보자마자 기세가 한풀 꺾이고 말았다.

그녀는 옷깃을 꽉 쥐며 턱을 살짝 들어 올렸다. 몰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귀에는 작은 금빛 나비 모양의 귀걸이가 걸려 있었는데 지금 입은 거친 옷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마치 마지막 자존심과 체면을 간신히 붙잡고 있는 듯했다.

그녀는 혼자였다. 곁에는 시녀 한 명조차 없었다.

“왕비, 시 소저, 딱 잘 왔네.”

이씨 부인은 화가 잔뜩 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말했다.

“무례하게 구는 사람은 많이 봤어도 이렇게까지 막무가내로 나오는 사람은 처음 봅니다. 공방에 들어오겠다고 하더니 심지어 이름까지 바꾸라고 하지 뭡니까. 그래서 무슨 이유로 쫓겨났는지 물어봤더니 우물쭈물하면서 말도 제대로 안 하더군요.”

이씨 부인이 화를 낼 만했다. 공방을 설립할 당시, 송석석과 이씨 부인은 규칙을 정했다. 악랄하거나 천인공노할 일을 저질러 쫓겨난 사람은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가의가 찾아왔을 때는 당연히 이유를 물어야 했고 그 이유를 조사한 뒤 받아들일지 말지를 결정해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저 변명만 늘어놓으며 제대로 대답하지도 않고, 오히려 거만하고 무례한 태도를 보였으니 이씨 부인이 어찌 화가 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송석석과 시만자가 자리에 앉았다. 가의는 그들의 비단옷과 화려한 장신구를 바라보며 자신이 군주로 지내던 시절과 다름없는 그들의 모습에 눈길이 멈췄다. 반면, 지금의 자신은 거친 옷을 입고 나무 비녀를 꽂은 초라한 모습에 화장조차 하지 못한 채 늙고 빈곤해진 상태였다. 이 강렬한 대비는 그녀의 마음에 분노와 수치심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곳에 오지 않을 수는 없었고 송석석 앞에서 예전처럼 거만한 모습을 드러낼 수는 더더욱 없었다. 송석석은 조정의 관리였고, 그녀의 어머니 사건은 사여묵이 맡아 처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송석석이 그녀를 살피며 물었다.

“정말 공방에 들어오고 싶은 겁니까? 여기에서 산다는 게 비단옷을 입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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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의는 송석석과 이씨 부인이 서로 눈빛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자 마음이 급해졌다. 송석석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잊은 듯 목소리를 높여 소리쳤다."역시 너희는 위선자였어. 억울하게 내쫓긴 여자들을 받아들일 마음도 없으면서 착한 척은 왜 하는 건데? 내가 너희의 정체를 다 까발리고 말거야!”그녀는 당당하게 외쳤지만 정작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자리에 앉은 채로 이씨 부인을 노려보기만 했다. 송석석은 가의를 바라보며 약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이씨 부인의 시녀가 가의의 방문 소식을 전했을 때는 단순히 소란을 피우러 온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공방에 와서 본 그녀의 모습은 예상과 달랐다.지금도 그녀는 목소리만 높일 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고, 자리를 떠날 기색조차 없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지? 설마 내쫓긴 이후로 정말 이렇게까지 궁핍해진 건 아니겠지?’ "듣자 하니 우리 소진 소주방의 이름을 바꾸려 했다고?"시만자도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고 전처럼 날카롭지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 특히 지금의 가의는 자존심를 부리고 싶어도 부릴 수 없는 처지였기에 그녀의 모습이 어쩐지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가의는 입을 삐쭉 내밀며 말했다."나는 단지 죽은 사람 이름으로 공방을 부르는 게 불길하다고 생각했을 뿐이야.""불길하면 오지 마."시만자의 목소리가 다시 높아졌다. ‘어디까지 추락했든, 사람을 화나게 하는 능력만큼은 여전하군.’ 시만자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정말 탐이라도 난다고 생각해?” 가의는 코웃음을 치며 비웃듯 말했다. 독설 몇 마디를 더 하려다가도 송석석의 침착하고 단호한 표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그럼 가라니까? 진짜 웃겨! 여기까지 와서 싫다느니 뭐니 불평은 왜 하는거야? 여기서 호사를 누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여긴 스스로 살아가야 하는 곳이야.”가의는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절대 안가. 나는 그저 너희가 진짜 위선자인지 아닌지 확인해보고 싶을 뿐이야."송석석은 이씨 부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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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석석이 평양후부 노부인을 찾아가기도 전에, 이튿날부터 이미 공방에 대한 소문이 온 거리를 떠돌았다.북명왕비와 이씨 부인은 위선자들이며, 버림받은 여인이 도움을 요청했는데 거절한 것도 모자라 온갖 방법으로 괴롭혔다고 말이다.원래도 많은 사람들이 공방에 적대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그들은 공방이 버림받은 여인들을 받아들이는 것을 예법에 도전하는 행위라 여겼다. 버림받은 여인이라면 분명 죄가 있어서 그렇게 되었을 것이며, 설령 자손을 낳지 못한 탓이라 해도 죄가 있다는 식이었다.이런 소문이 퍼지자 무너지는 벽을 밀어대듯 모두가 달려들어 비난하기 시작했다. 위선적이라고 욕하는 사람도 있었고, 속셈이 있는 것 아니냐며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으며, 돈을 챙기려는 것 아니냐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다.저녁이 되자 시만자가 분노에 차서 탁자를 쾅쾅 내려치며 외쳤다."가의 혼자 이렇게 큰 소동을 일으켰다고? 믿을 수 없어!"말을 마치고는 바람처럼 밖으로 뛰쳐나갔다. 송석석이 뒤에서 물었다."어디 가는데?""왕경루에. 사람을 찾아서 조사해보려고." 시만자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발걸음을 재촉했다.시만자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분노를 억누르지 못했다. 그녀는 공방에 많은 정성을 쏟았고 그 초심은 순수했다. 그녀는 버림받은 여인들의 운명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했으며 공방이 그들에게 평생 의지할 수 있는 안식처가 되길 바랐다.그런데 이렇게 악의적으로 모함을 당하다니…… 그녀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송석석도 속이 상했지만 시만자처럼 흥분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이 일을 시작할 때부터 순조로울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세상에는 선의와 재력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이 일이 그렇게 쉬웠다면 이미 누군가가 나서서 했을 일이었을 테니 말이다.송석석은 우선 평양후부 노부인에게 방문 요청서를 보냈다. 내일 방문하겠다는 뜻을 담은 것이었는데, 평양후부 노부인이 병석에 누워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몇 일이 지나 기운을 좀 차리면 친히 북명왕부를 찾아뵙겠다는 답이 돌아왔다.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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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왕은 진성에 온 이후로 시민주에게 시만자를 자주 만나보라고 시키곤 했다. 그녀들은 혈연관계로 연결되어 있었으니 오랜 시간 함께하지 않았더라도 앞으로 더 많은 교류를 하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송석석보다 사이가 깊어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러나 연왕이 미처 고려하지 못한 사실이 있었다. 바로 시민주는 무능할 뿐만 아니라 심술까지 많다는 점이었다. 그녀는 한두 번 시만자를 찾아갔다가 냉대를 받고는 더 이상 가지 않으려 했다. 이 사촌 동생이 자신을 너무 얕잡아 본다는 이유였다. 자신은 이제 왕비의 신분이니 그런 모욕은 받고 싶지 않으며, 또한 자매 사이에 왕래가 필요하다면 앞으로는 시만자가 자신을 찾아와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연왕비의 이러한 태도에 연왕은 화가 날뿐더러 이해도 되지 않았다. 혹시 두 사람 사이에 과거 어떤 사적인 원한이라도 있었나 싶어 사람을 시켜 조사까지 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어린 시절 두 사람은 꽤나 사이가 좋았다. 다만 시만자가 매산 적염문에 무술을 배우러 간 뒤로 왕래가 뜸해진 것뿐이었다.연왕은 이 관계가 충분히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지금 시만자가 찾아온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이건 자매 관계를 회복할 절호의 기회였다. 그래서 그는 즉시 사람을 시켜 시민주를 서재로 부르게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시민주가 춘향을 데리고 서재로 들어왔다. 그녀의 얼굴에는 희미하게 기쁨이 스쳤다. 그녀는 몸을 숙이며 말했다."저를 부르셨다니 무슨 일이신가요?"연왕은 시민주가 경례하는 모습을 보며 여전히 예의도 없고 조잡한 태도에 혀를 내둘렀다. 황실에 시집온 지도 오래되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예법을 배울 마음이 없었다. 하루 종일 첩들과 다투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연왕은 속에서 올라오는 불만을 애써 억누르며 말했다. “너의 사촌 동생 시만자가 찾아왔소. 본왕이 이미 사람을 시켜 그녀를 본채로 안내했소. 조금 있다가 본왕이 함께 갈 것이니 이 기회를 빌려 그녀와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며 자매끼리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눠보시오. 손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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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송석석은 서경의 종친과 관리들이 북당이 협상에 개입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의 얼굴에는 놀람이 역력했다.놀란 마음이 지나고 나자, 그들은 기쁨과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들은 북당이 협상에 참여하는 것이 서경을 위한 든든한 지원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송석석은 이 장면을 보며 오히려 안심을 했다. 정말 그렇다면 원신제가 미리 그들에게 이를 알려줄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협상에 참여하는 관리들에게는 알렸어야 하는데, 그녀가 왜 말을 하지 않았는지이제야 확실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녀도 서로 양보하는 방향으로 가길 원했지만, 궁정의 문무 백관들 중 그녀를 지지하는 이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신복하는 북당 안풍친왕을 초대한 것이었다.이렇게 보니, 어제 원신제가 그녀와 시만자를 궁으로 부른 이유도 이해가 되었다. 처음에 말했던 그런 것들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여성의 과거 시험을 예로 든 것은, 그녀의 많은 결정들이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말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여기까지 분석을 마친 송석석은 점점 더 낙관적이게 되었다.궁중 연회가 끝난 후, 북당 사람들은 대접을 받으며 떠났다. 그들은 그 한 끼를 제외하고는 의견을 거의 내비치지 않았으며, 단지 짧은 대화를 나누었을 뿐이었다.그들이 떠난 후, 상국의 사절단도 일어나 인사를 하며 물러났다. 모두가 돌아가서 협상 준비를 해야 했다. 수란키가 제공한 일정을 따르면, 이틀 후부터 협상이 시작될 예정이었다.황궁 별관에 돌아가자, 이덕회는 모두를 모아 앉히고 논의했다.사실상 또 다른 진부한 이야기였다. 이번에도 양보를 해야 한다면, 모두가 지도 위에서 함께 논의해야 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출발하기 전에 황제가 이미 양보의 한계를 설정해 두었기 때문에 더 이상 양보를 하게 되면 돌아가기도 어렵고, 역사적인 죄인이 될 수도 있었다.그래서 아무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으며, 그저 지도만 바라보며 각자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10화

    사실 이런 자리에서는 모두 입맛이 그다지 좋지 않기 마련인지라, 많은 음식들이 한 입 먹고 나면 다시 치워지곤 한다.하지만 북당의 사람들은 정말 음식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떤 요리가 나와도 모두 다 먹어버렸으며, 가득 채운 술잔도 순식간에 비웠다. 그들을 시중드는 궁인들도 꽤 힘들었을 것이었다.시만자는 그들이 춘만루에서 먹었던 그 한 끼를 떠올렸다. 그때도 남은 음식이 하나도 없이 모든 것이 비워졌었다.그녀는 송석석에게 무언가 말을 건네고 싶었다. 하지만 식사 소리 외에는 아무 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기에 말을 꺼내기 어려웠다.그러나 그들은 눈짓만으로도 서로가 하고자 하는 말의 의미를 알아차렸다.시만자는 북당 사람들이 이곳에 등장한 것이 협상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했고, 송석석도 그렇게 생각했다.하지만 그녀는 그들이 중재자로 온 것인지, 아니면 서경을 돕기 위해 온 것인지 확실하게 알 수 없었다. 만약 중재자라면 협상 또한 오래 걸리지 않고 조약을 체결할 수 있을 테니 더 좋을 것이었다.하지만 만약 서경을 돕기 위해 온 것이라면 협상은 공방전이 될 것이 분명했다. 북당이 그들의 방패가 된다면 상국이 협상에서 어려움을 겪을 것이 틀림 없으니 말이다.이덕회와 홍려사경 등 상국의 사절단들은 상황을 어느 정도 눈치챈 듯 했다. 그래서 그들은 처음의 그 기쁨을 잃은 대신 마음속으로 여러 가지를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눈앞의 음식도 별로 먹고 싶지 않은 듯했지만, 모두가 식사를 하고 있었기에 그들도 어쩔 수 없이 천천히 먹었다.이 궁중 연회는 그들이 참석했던 연회 중 가장 이상한 연회였을 것이다. 마치 폭풍이 다가오는 듯한 무서운 고요함이 느껴졌다.궁중에서 준비한 요리는 총 32가지였다. 그러나 각 요리의 양은 매우 적었으며, 궁인들은 음식을 하나씩 들고 들어와서는 다시 하나씩 치워갔다.누군가 술잔을 들고 싶어했지만, 역시 원신제와 마찬가지로 한 번 쓱 훑어본 후, 술잔을 비우고 다시 내려놓고는 식사를 계속했다.마침내 32가지 요리가 모두 올라갔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09화

    다음날, 궁중 연회는 신시에 시작되었고, 여전히 수란키가 직접 그들을 맞아 궁으로 안내해주었다.예상했던 대로 즉위식은 이미 끝난 상태였고, 이번 연회의 주요 목적은 국경선의 협상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궁에 들어간 후에도 다른 나라의 사절단을 보지 못했다.궁 안은 황실의 측근과 문무 백관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들은 상국의 사절단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고, 친근한 분위기도 없었다.이런 자리에서는 역관의 도움이 필요했기에 대화의 주제가 그리 넓지 않아, 서로 간단한 인사 정도만 나눌 뿐이었다.다른 나라의 사절단이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입석할 때 원신제가 상국의 사절단에게 말했다."오늘 북당에서 귀빈들이 오십니다. 곧 도착할 것인데, 여러분이 그들과 바로 친해질 것이라 믿습니다."이덕회는 즉시 흥분하며 말했다. "북당의 귀빈이라 하셨습니까? 어떤 분이 오시는지요?"그가 흥분하는 것은 당연했다. 왕이장이 가져온 임양운의 육안총과 포차는 모두 북당에서 개량된 것이었고, 임양운 선생이 북당에서 배운 적이 있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상국의 병부상서로서 그는 정말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었다.북당은 상국이 항상 배우고자 했던 본보기였다. 그들의 첨단 무기와 치국책은 상국보다 훨씬 진보적이었다.물론 국가의 상황이 다르기에 모든 것을 배울 수는 없을 테지만, 대화를 깊이 나누면 분명히 얻을 것이 있을 것이었다.원신제는 그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도착하면 알게 될 것입니다."연회는 지루하고 피곤했지만, 북당의 귀빈이 온다면 그 이야기는 달라진다.모두가 기대하고 있을 때, 한 외침이 들렸다.“북당 안풍친왕과 왕비께서 도착하셨습니다!"이덕회는 놀라서 입을 막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의 눈에는 기쁨이 넘치고 있었다.송석석도 사부로부터 안풍친왕의 호를 들어본 적이 있었다. 사부는 그를 매우 존경한다고 했다. 생각치도 못하게 오늘 그를 만날 수 있으니 그녀도 말할 수 없이 기뻤다.반면, 만두와 몽동이 그들은 비교적 담담했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08화

    원신제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씁쓸한 게 한 가지 더 있네. 지금까지 짐은 장공주의 신분으로 여인에게도 과거 시험을 볼 자격이 있어야 한다고 높이 외쳤지. 하지만 황제가 된 지금, 어쩔 수 없이 각 세력들의 이익을 고려해줘야 하고 그자들이 짐에 대한 적대심과 경계를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네. 짐은 이제 고려한 일이 더 많아졌어. 가끔은 속에 천불이 나서 반대파 세력들의 가슴에 칼을 꽂고 싶기도 하네.”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송석석이 대꾸했다.“사실 한 나라의 황제나 대신들은 남녀를 막론하고 결국 최종 목적은 같지 않겠습니까? 폐하께서도 그렇듯 다들 나라의 안정과 백성들의 평안을 바라고 있는 겁니다. 나라에 영원히 전란이 일어나지 않고 창성해야 폐하께서 원하시는 개혁을 진행하셨을 때 반대의 목소리가 잦아드는 것입니다. 그러니 폐하, 현재 가장 중요한 건 폐하의 자리부터 굳건히 지키시는 겁니다.”대놓고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원신제는 송석석의 말뜻을 확실하게 알아들었다. 현재까지 나라가 혼란에 빠져 있고 각 세력들의 제지도 심하기에 이 국면을 해결하는 것도 충분히 힘든 일이다.황제의 자리도 흔들리고 있는 지금, 원신제가 개혁까지 고집하려는 건 더욱 위험한 일이었기에, 미래가 불안정할 수밖에 없었다.시만자 또한 송석석의 말에 동의하는 바였다.“사실 한 가지 일을 처리하는 데에 방법이 한 가지밖에 없는 건 아닙니다. 강경하게 상대방과 맞서 싸우는 것도 방법이지만 이는 가장 현명하지 못한 하책입니다. 한 사람의 성격도 바꾸기 쉽지 않은데 천 년이나 넘게 지속된 규정을 바꾸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폐하께서 관념의 씨앗을 심으시면 언젠가 누군가가 폐하께서 남긴 발자국을 따라 한 걸음씩 나아갈 것입니다.”잠시 머뭇거리던 시만자는 이내 다시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저와 석석도 매산에서 무술을 공부할 때 그랬습니다. 다들 저희를 비웃고 하찮게 여겼지만 저희는 결국 실력으로 그자들을 한 명씩 쓰러트렸습니다. 구호만 외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실력이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07화

    서경의 황궁은 금빛으로 반짝였으며 기세가 어마어마했다. 어둠이 깃든 고요한 밤에는 기 장엄함이 더욱 돋보였다.첫 번째 궁문을 들어서고 나서도 마차는 궁 안을 자유롭게 누빌 수 있었다.궁 안 곳곳에는 커다란 나무들 위에는 등불이 잔뜩 걸려 있어 대낮처럼 밝았으며, 누군가가 몰래 나무 위에 숨어있는다고 해도 너무 밝아서 바로 들킬 정도였다.수란키는 앞장서서 걷다가 한 궁전 밖에 도착했는데, 궁녀 두 명이 다가와 수란키와 서경 언어로 몇 마디 나누다가 고개를 돌려 송석석과 시만자에게 환하게 웃으며 허리를 숙여 인사를 올렸다.수란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송 대감님, 만자 낭자, 폐하께서 두 분에게 궁전으로 모시라고 하셨습니다.”두 궁녀가 앞에서 길을 안내했고 송석석과 시만자는 이내 궁전 안으로 들어갔다.휘황찬란한 궁전 내부에는 커다란 조각 기둥이 양측에 세워져 있었으며 그 모습은 압박감이 넘쳤다.원신제는 용상에 앉아 환한 미소로 두 사람을 반겼지만 얼굴에는 피로함이 가득해 보였다.송석석과 시만자는 이내 인사를 올렸고 원신제는 그들에게 편하게 앉으라고 했다.그리고는 송석석을 쳐다보며 말을 걸었다.“짐은 송 대감이 사절단과 함께 이곳으로 온다고 하여 며칠 전부터 계속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보니 너무 반갑네.”송석석은 웃으면서도 진지하게 대답했다.“폐하께서 황위에 오르셨다는 소식을 듣고 소인도 너무 기뻤습니다. 원하는 바를 이루신 걸 감축드립니다.”송석석은 원신제를 힐끔 쳐다보았다. 원신제에게서 냉옥 장공주의 모습이 보였고 예전과 크게 변한 건 없었으며 여전히 피로해 보이고 여전히 진중하고 엄숙했다.냉옥 장공주에게 있어서 황제의 역할이든 실권을 손에 쥔 장공주 역할이든 똑같이 신경 쓸 일이 많을 것이다.“원하는 바를 이루느라 많이 힘들었네. 하지만 다행히도 이제 일처리는 훨씬 쉬워졌네.”원신제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조금 뒤, 궁녀들이 서경 특색이 돋보이는 다과들을 내왔다. 송석석과 시만자는 조금 전에 저녁 식사를 했기에 배가 고프지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06화

    서경 수도에 도착했을 땐 8월 13일이었기에, 송석석 일행이 떠난 지 한 달은 족히 넘은 상황이었다. 점심이 되자, 햇빛이 따스하게 비추어졌다.진왕은 마차 안에 몸을 웅크려 누운 채 입성에 진입했다. 하지만 마지막 자객들은 머릿수도 많고 기세도 등등해, 서경 지대에 들어서고 나서도 송석석 일행은 총 일곱 번이나 습격을 당했다. 현갑군은 대부분 부상을 당했고 시만자마저 어깨가 칼에 찔렸지만 다행히 신경까지 다치지는 않았다.진왕이 이렇게까지 크게 논란 건, 자객에게 습격을 당할 당시, 그는 변소 안에 있었다.일을 마치고 변소를 나선 순간, 갑자기 나타난 자객이 검으로 진왕의 가슴을 베었고 그 검을 진왕의 가슴에 꽂으려던 순간, 송석석이 제때에 나타나 손에 들고 있던 검을 한 발 빠르게 자객의 가슴에 꽂았다.하지만, 이내 자객의 머리채를 뒤로 확 잡아당긴 덕분에 진왕은 무사할 수 있었다.그는 가슴팍이 조금 베인 게 전부였지만 큰 중상을 입은 것 마냥 밤새 괴로운 신음소리를 내고 나서야 겨우 진정이 되었다. 수도에 도착하자 수란키가 관원들을 데리고 성문 앞에 서서 진왕을 반겼다. 수란키는 이제 서경의 승상이 되었다.한눈에 송석석을 알아본 수란키는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송 장군님,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여전히 기품이 넘치시네요.”송석석은 말에서 내려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인사를 하며 상대방을 힐끗 살폈다. 솔직히 조금 전에 수란키를 알아보지 못했다.전보다 훨씬 늙어 보였고 백발인 데다가 수염도 허옇게 변해 버렸다. 하지만 눈빛은 여전히 카리스마가 넘쳤고 남강 전장에서 봤을 때보다 되레 활기가 넘쳐 보이기까지 했다.남강 전장에서 봤던 수란키는 온몸에서 분노가 들끓고 있었다. 위엄이 넘치고 엄숙한 그는 삶의 의지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으며 그저 복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그런 느낌이었다.“승상께서 이렇게 직접 마중까지 나오시고. 너무 민폐를 끼치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되네요.”송석석이 웃으면서 말하자 수란키가 호탕하게 웃었다.“너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05화

    한편, 크게 놀란 진왕은 태의를 불러 심신을 안정할 수 있는 약을 처방받았다.송석석이 찾아갔을 때, 진왕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창백한 얼굴에는 핏기가 전혀 보이지 않았으며 덜덜 떨리는 입술로 송석석에게 자객은 어떻게 됐냐고 물었다.송석석이 진왕에게 자객이 도망쳤다고 얘기하고 나서야 그는 조금 안정을 찾은 듯했다.사실 진왕을 보필하는 사람들이 자객이 도망쳤다고 진작 얘기했지만 진왕은 믿지 않았다. 이제 송석석에게서 듣고 나니 그제야 안심이 된 것이다.송석석은 진왕에게 몸조리 잘 하라고 당부한 뒤 방을 나섰다.이와 동시에, 이덕회는 나머지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있었다. 병부 상서인 이덕회는 지금까지 산전 수전 공중전까지 전부 겪어 보기도 했고 또한 왕비와 현갑군을 믿었기에 전혀 겁을 먹지 않았다.한편, 매산 출신 몇 명은 한데 모여 전에 성릉관에서 만났던 검은 복장 차림의 무리들을 의심하고 있었다.어쩌면 그자들이 바로 자객일지도 모른다는 의심 말이다.이 의심을 가장 먼저 제기한 건 바로 시만자였다. 그는 그 무리들이 갑자기 사라진 게 너무 수상했고 비밀 경로를 통해 계획적으로 도망친 거라고 확신했다.더군다나 조금 전 자객들도 전부 검은색 옷차림이었기에, 비록 머릿수가 조금 차이 나긴 했지만 그리 이상하지도 않다. 일부 사람들은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을 수도 있으니까.“성릉관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출동했던 건 아마 우리한테 손을 쓰려고 그랬을 가능성이 커. 하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성릉관에서 우리를 죽이면 쉽게 도망칠 수 없을 것 같아서 일단 포기한 거야.”시만자는 분석할수록 자신의 의심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서 고개를 돌려 송석석에게 물었다.“내 말이 맞는 것 같지 않아?”송석석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그자들은 아니야. 정확히 얘기하자면 조금 전 자객들은 그자들보다 무술 실력이 확연히 떨어져. 그자들은 성릉관에서도 자유롭게 나타났다가 사라졌어. 그렇게 보면 네 의심이 성립되지 않다는 거지. 그자들은 성릉관에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504화

    이날 아침, 송석석 일행은 서경으로 출발했다.송석석은 딱히 아쉬운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나중에 돌아올 때 성릉관을 또 지나야 했기에, 이후에도 외조부 가족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성릉관을 떠나자마자, 평탄한 길이 사라졌다. 여기저기가 다 울퉁불퉁했고 일부러 인위적으로 파괴한 곳도 있었기에 마차가 지나가기엔 무리가 있었다.하지만 진왕은 절대 다시 말을 타려고 하지 않았다. 며칠동안 안정을 취했지만 다리 안쪽의 쓸림 상태가 아직 심했기에 걸을 땐 괜찮아도 말에 타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때문에 성릉관에서 공을 세우고 육아당까지 설립한 진왕은 까탈스럽게 마차를 고집했고 마차가 도무지 지나갈 수 없는 곳은 현갑군이 말에서 내려 마차를 밀면서 힘겹게 전진했다.하지만 불행 중 다행인 건, 현재 양국으로 통하는 길이 개방되었기에 그 길을 따라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산길밖에 없었다면 고귀한 진왕의 엉덩이가 엄청나게 고생했을 것이다.그렇게 겨우 서경 지대에 진입하여 루벌로 향하자, 서경의 관원과 병사들이 그들을 맞이하며 가는 길까지 호송해주었다.송석석 일행들 중에서 통역관을 제외하고는 서경에 와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똑 같은 변경 도시라고 해도, 루벌은 성릉관보다 훨씬 낙후했다. 여기저기에는 망가지고 훼손된 집채가 많았으며 행색이 누추한 거지나 근심이 많아 보이는 백성들도 많았다.송석석은 이 광경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두 나라가 전쟁을 치른 건 사실이지만 이곳까지 침투되지는 않았는데 말이다. 전에 전북망과 이방이 이곳 마을을 공격했다고 해도 공격당한 그 마을만 피해를 받아야지 루벌 전체가 이렇게 엉망진창이 된 것은 말이 안 되었다.루벌의 한 역관에 도착하고 나서야 송석석은 호송하고 있던 관원한테서 그 이유를 듣게 되었다. 수란석이 성릉관에서 전쟁을 일으켰을 때, 후방 공급이 부족한 탓에 병사들이 루벌로 돌아와 약탈을 진행한 것이었다.수란석 당시의 상황이 빅토르와 거의 비슷하다고 했다. 그때 당시 전쟁을 바라는 사람들이 많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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