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우미는 눈을 크게 뜨고, 의아해하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눈앞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그는...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어떻게... 갑자기 선배 얘기로 이어진 거야?’아까 비행기에서 차우미가 무심코 온이샘을 언급했을 때, 그녀는 나상준이 온이샘 얘기를 하면서 그녀를 난처하게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의외로 그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고, 심지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그런데 지금,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은 나예은의 일인데 그는 오히려 온이샘 이야기를 꺼냈다.차우미는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나상준이 왜 갑자기 상관없는 사람을 언급했는지 정말로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나상준은 차우미의 표정을 보지 못한 것처럼 말을 이었다.“온이샘과의 관계를 확실히 정하지 않은 상황에서 지금 나와 이렇게 거리를 두고 있는 이유가 뭐야?”“당신도 싱글이고, 나도 싱글인데 난 당신 곁에 나타나면 안 되고 당신에게 가까이 가면 안 되는 거야?”“아니면 온이샘만 가까이 할 수 있는 거야? 온이샘 빼고 다른 남자들은 가까이할 수 없는 거야?”그의 말은 하나하나가 마치 돌처럼 그녀의 마음에 떨어지면서 불안감을 느끼게 했다.이제야 그녀는 나상준의 의도를 어느 정도 이해했지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차우미는 입술을 달싹이며, 말하려 했지만, 나상준의 말이 다시 그녀의 귀에 들려왔다.“가까이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직장의 남성 동료, 하성우, 그리고 밖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다 돼.”“유일하게 나만.”“나 나상준만 안되는 거지.”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이유 때문인지, 아니면 좁은 차 안의 거리가 가까워서인지 그의 숨결이 따뜻하게 다가왔다가 차가워지면서 그녀의 마음은 더 긴장됐다.그리고 이 순간 그의 차갑고 무미건조한 말에 차우미의 마음은 더 움츠러들었다.차우미는 눈썹을 찡그리며 곧바로 말했다.“아니야, 난...”“우미 씨, 왜 나에게 이러는지 말해줘 봐.”“내가 뭘 했길래 나를 이렇게 뱀이나 전갈처럼 피하는
나상준이 갑자기 차우미의 말을 끊었다. 그의 시선은 한순간에 싸늘하게 변해 있었다.그는 말을 이었다.“우린 3년간 부부였고, 한방에서 지내고 같은 침대에서 잤어. 그런데도 우리 3년간의 부부 감정이 다른 남자들과 비교될 수 있다고 생각해?”“온이샘이 감히 비교할 수 있겠어?”차우미: “...”나상준이 그녀의 말을 끊자, 차우미는 멍해졌다.그런데 나상준의 이어지는 말을 듣는 순간, 입이 떡 벌어져 더더욱 말문이 막혔다.차우미는 믿을 수 없다는 의아한 눈빛으로 남자를 쳐다보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원래는 아주 간단하게 풀리는 일이었지만 나상준 앞에서는 왜 순식간에 꼬이고 마는 건지 알 수 없었다.마치 실타래가 뒤얽힌 것처럼, 말하면 할수록 더 복잡해지는 기분이었다.처음에 차우미는 풀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더 이상 풀리지 않는 상황이 돼버렸다.그녀는 이제는 나상준과는 소통할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소통이 전혀 되지 않았다.나상준은 그의 말에 놀라 말을 잇지 못하는 차우미를 바라보았다. 눈에 있던 차가운 기운은 어느새 사라지고, 평소의 무덤덤한 표정이었다.그는 시선을 앞으로 돌리며 담담하게 말했다.“당신도 혼자고, 나도 혼자고, 온이샘도 혼자야. 온이샘이 당신 옆에 있을 수 있다면, 나 역시 그럴 수 있어.”“다른 남자가 당신에게 가까이 갈 수 있다면, 나도 마찬가지로 가까이 갈 수 있어.”“이건 내 자유고, 당신은 간섭할 권리가 없다고.”“온이샘이 당신과 친구라면 난 당신과 3년간의 부부정이 있지. 설령 우리가 이혼했다고 해도, 우린 여전히 엮여 있어.”“나씨 가문과 차씨 가문은 우리가 이혼했다고 해서 관계를 끊을 수는 없고, 나도 당신과 이혼했다고 해서 완전히 인연을 끊을 수는 없으니까.”“우미 씨, 나는 당신과 아무런 원한이 없고 결혼 생활에서 당신에게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해. 우리 이혼도 평화롭게 끝났으니 원한 같은 건 존재하지 않잖아. 그래서 우리는 온이샘보다 더 가까운 사이여야 한다고 생각해.
하지만 어떤 일은 아무리 해도 바꿀 수 없는 게 있다. 안 되는 건 정말 안 되는 거다.차우미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나상준도 아무 대답이 없었다. 차 안은 순간적으로 너무 조용해서, 바늘 떨어지는 소리마저 들릴 것 같았고 숨소리마저 크게 들리는 것 같아 듣는 사람의 마음을 졸이게 했다.차우미는 시선을 돌려 창밖으로 빠르게 스쳐 가는 풍경을 바라봤다.불과 몇 달 전에 이 도시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지만 3년 동안 살았던 곳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낯설게 느껴졌다. 마치 처음 온 것처럼 낯설었다.어느새 차우미의 마음속엔 묘한 감정이 피어올랐고, 머릿속엔 여러 장면이 떠올랐다.그 장면들은 모두 그녀가 청주에서의 기억들이었다.청주를 떠나면서 그 기억들도 봉인되었는데, 오늘 그녀가 돌아오자 조용히 풀려나듯 다시 떠올랐다.차우미의 생각은 점점 멀어졌고, 지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나상준과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도 잊어버렸다.시간은 소리 없이 흘렀지만, 이곳은 정지된 것 같았다. 마치 일시 정지 버튼이 눌러진 것처럼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옆 사람의 낮고 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주소.”차우미는 잠시 멈칫하고는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남자를 바라봤다.나상준은 이미 눈을 떴고, 앞의 짙은 어둠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깊은 눈은 마치 끝없는 바다 같아서, 보는 사람의 마음을 떨리게 했다.차우미는 마음을 가다듬고 휴대폰을 꺼내 자신이 예약한 호텔을 찾으며 말했다.“금난 호텔이야.”나상준이 입을 열었다.“금난 호텔로 가주세요.”“알겠습니다, 대표님.”곧이어, 운전기사는 방향 지시등을 켜고 다른 길로 들어섰다.차우미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옆의 남자를 보며 조용히 말했다.“고마워.”그가 자신을 설득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결국 그녀의 뜻을 존중해줬다는 것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차우미의 눈에 미소가 떠올랐다.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차가운 성격이었지만, 그렇다고 막무가내인 사람은 아니었다.
밤이 끝없이 내려앉아 도시 전체가 깊은 어둠에 덮였다. 마치 혼돈의 시작처럼, 모든 것이 잠들어 있는 것 같았다.호텔을 떠나 차는 약 20분 정도를 달려서 별장 앞에 멈췄다.운전기사는 차에서 내려 짐을 내려놓고 별장 안으로 들어가, 짐을 나상준의 방에 옮겼다.하지만 짐을 다 옮기고 나와 보니, 나상준은 계단 앞에 서서 불이 켜진 저택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의 눈빛은 깊고 고요했다.운전기사는 호텔 앞에서 차우미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나상준의 모습을 보다가 앞으로 나아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대표님께서 저녁 식사를 안 하셨다고 사모님께서 말씀하시던데. 식사를 시킬까요? 아니면 사람을 불러 준비해 드릴까요?”운전기사는 나상준을 오랫동안 모셨다. 차우미가 결혼하기 전부터 나상준을 모셨고 두 사람이 결혼하고 이혼하는 과정도 모두 지켜보았다.운전기사의 눈에 두 사람은 그냥 평범한 부부였다. 서로 예의를 지키며, 다투지도 않고 특별히 달콤하거나 로맨틱한 순간도 없었다. 그저 평온하고 아주 평범한 부부 생활이었다. 다만 나상준이 차우미에게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운전기사는 잘 알지 못했다.하지만 오랫동안 나상준의 곁에 있으면서 그는 차우미 외에 다른 여자는 본 적이 없었다.그래서 차우미가 이 집의 안주인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비록 두 사람이 이혼했어도 차우미는 낯선 사람이 아니었다.그러나 오늘 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운전기사는 뭔가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 예전에도 얘기는 나누었지만 이렇게 작은 일로 오랫동안 논쟁을 벌인 적은 없었다. 특히 나상준은 이런 사소한 일에 집착하지 않았다.물론, 운전기사는 남자로서 나상준이 무슨 말을 하고자 했는지 그 의미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예전의 나상준은 오늘 밤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없었다.단 한 번도 없었다.이혼하기 전, 두 사람은 같이 차에 앉아도 거의 대화가 없었고, 말이 있어도 딱 필요한 말만 하고 금방 끝냈을 뿐 오늘처럼 오랫동안 다투는 일은 없었다.과
거의 열한 시이다.그녀가 이렇게 오래 자는 건 드문 일이었다.차우미는 휴대폰에 읽지 않은 메시지나 부재중 전화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휴대폰을 침대 머리맡 협탁에 놓은 뒤 일어나 씻고 준비를 했다.나상준은 막 청주로 돌아왔으니 당연히 일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에게 먼저 연락하기가 좀 그랬다.그녀는 그가 먼저 연락해 주길 기다렸다.하지만 차우미는 이미 마음을 정했다. 그녀는 이따가 준비를 마치고 나가서 점심을 먹고, 제과를 만들 재료를 살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나상준이 그녀에게 연락해 시간을 확정하면, 그녀는 그 재료를 들고 그의 집에 가서 만들어 놓고, 바로 나예은을 보러 갈 것이다.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차우미는 금세 세수와 단장을 끝냈고, 가방과 휴대폰을 챙긴 후 시간을 한 번 더 확인하고 호텔을 나섰다.청주는 남쪽에 위치해 있어서 기후가 안평과 비슷했다. 모두 정상적인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고 큰 일교차는 없었다.다만 청주는 해안가에 가까워서 여름철에는 안평보다 해가 더 일찍 뜨고 더 일찍 졌다.그리고 청주는 발달한 도시로 도시의 모습이나 지리적 환경 모두 자연적인 이점을 가지고 있어 이곳의 발전은 안평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차우미는 청주를 떠난 지 몇 달 되었지만, 몇 달이라는 시간이 이곳을 변하게 할 수는 없었다. 이곳은 여전히 그녀가 익숙한 청주였다. 그래서 차우미가 호텔을 나서자 익숙한 공기가 그녀를 맞이하였고, 그녀는 발걸음을 멈추고 눈을 가늘게 뜨고 이 햇빛 아래 만개한 풍경을 바라보았다.어젯밤 청주에 도착했을 때, 차에 앉아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그녀는 마음속에 낯선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녀는 햇빛 아래 서서 밤의 어둠이 걷히고 흐릿했던 풍경들이 서서히 드러나는 모습을 보며 그 낯선 느낌이 어느새 사라진 것을 느꼈다.완전히 사라졌다.차우미는 눈앞에 펼쳐진 익숙한 거리와 햇살에 반짝이는 상점들, 지나가는 차들을 보며 드물게 감회에 잠겼다.청주에 다시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 적은
그 목소리는 어딘가 익숙하고 친근하면서도, 약간의 의문과 불확실함이 섞여 있었다. 그 소리에 차우미는 카트를 밀던 걸음을 멈췄다.차우미는 자신을 부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그 목소리는 어딘가에서 들어본 것 같았지만, 당장 기억이 나지 않았다.차우미는 조금 어리둥절해하며 무의식적으로 돌아보았다.그리고 그 순간 그녀는 깜짝 놀랐다.앞쪽, 한 줄로 늘어선 진열대 끝에 있는 긴 통로 앞에 최신형 에르메스 가방을 들고 수수하고 깔끔한 분위기의 롱스커트에 굽이 낮은 뾰족한 단화를 신은 진문숙이 서있었던 것이다. 머리는 특별히 손질한 듯했고 얼굴에는 화장을 하고 있어 전혀 40, 50대로 보이지 않고 오히려 30대처럼 어려 보였다.이런 진문숙의 모습은 차우미가 영소에서 봤던 진문숙과는 완전히 달랐다. 말 그대로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차우미는 진문숙을 기억하고 있었다. 비록 지금의 차림새는 영소 병원에서 만났을 때와는 전혀 다르지만 차우미는 한눈에 시선 속의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봤다.이 얼굴은 온이샘과 닮았고, 이전에 잠깐 만났을 뿐인데도 그녀에게 매우 친절하고 잘 대해준 사람이었기에 차우미는 기억이 또렷했다.하지만 이렇게 빨리 온이샘의 어머니를 다시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것도 청주에 온 지 이틀 만에 말이다.이건 정말 뜻밖이고 갑작스러운 일이었다.청주는 큰 도시로, 경제가 발전한 만큼 인구도 많았다. 이런 대도시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솔직히 쉽지 않은 일이었다.그런데 하필 차우미는 쇼핑몰에서, 그것도 이렇게 큰 생활용품 매장에서 진문숙을 만난 것이다.게다가 진문숙이 먼저 그녀를 불러 세웠다.이건 정말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차우미는 이곳에서 진문숙을 만난 것이 너무 갑작스러워 한동안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랐지만, 진문숙은 반응이 빨랐다. 차우미가 몸을 돌리는 순간, 그녀의 조용하고 부드러운 얼굴이 진문숙의 시야에 들어오자, 진문숙의 눈이 반짝였다.“정말 너구나, 우미야!”진문숙은 여기서 차우미를 만날 줄은 정
차우미는 진문숙이 이렇게 말할 거라는 걸 예상하였기에 전혀 놀랍지 않았다. 온이샘의 어머니는 정말 좋은 분이고, 매우 열정적이었다. 안 만나면 모를까, 만난 이상 빠져나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아주머니, 그게 아니라, 사실 저는 회성에서 일을 막 끝냈고, 부모님께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이틀 정도 금방 처리하고 돌아간다고 말씀드렸어요.”“이번 출장은 시간이 길어서 오랫동안 집에 가지 못했으니, 이틀만 일을 마치고 바로 돌아갈 생각이에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청주에 와서 찾아뵐게요.”차우미는 진문숙의 제안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상황상 그러는 게 맞았다. 그녀와 온이샘은 지금 단순한 친구 사이일 뿐이었고, 설령 연인 관계라 해도 이렇게 청주에 머물러 있는 건 적절하지 않았다.상냥하고 진심 어린 차우미의 대답에 진문숙은 순간적으로 미간을 찌푸리더니, 이내 표정이 부드러워졌다.“회성에서 일을 그렇게 오래 한 거야?”차우미가 대답할 틈도 없이 진문숙이 말을 이어갔다.“내가 이렇게 넓은 청주에서 널 만난 것도 참 드문 일 아니겠니? 넌 안평 사람이고 그동안 회성에서 출장 중이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만났다는 건 진짜 인연이 아니겠어?”“우미야, 아줌마 말 들어. 청주에서 며칠 더 머물러. 네 일이 다 끝나면 아줌마가 청주 구경도 시켜 줄게.”“너 청주에 처음 와봤지? 우리 청주는 정말 좋아. 발전도 잘 되고, 환경도 좋고, 역사도 풍부하거든. 너 조각하는 걸 좋아하니까 아줌마가 청주의 옛날 장소들을 구경시켜 줄게. 너 분명히 좋아할 거야.”진문숙은 어떻게든 차우미를 붙잡아 두고 싶었다. 물론 차우미가 머물러 주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만날 기회도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말을 마친 후, 문득 떠오른 게 있는 듯, 진문숙은 재빨리 차우미의 손을 꼭 잡으며 빠르게 말했다.“우미야, 네가 청주에 온 걸 이샘은 아예 아줌마한테 말하지 않았어. 우리 완전 우연히 만난 거야, 절대 계획한 게 아니야.”“이 점은 꼭 믿어줘야
묻고 난 뒤, 진문숙은 서둘러 말했다.“오해하지 말아. 아줌마가 이렇게 묻는 건 네 일이 얼마나 복잡한지, 해결할 수 있는지 궁금해서야. 만약 어려운 일이면 아줌마한테 말해. 아줌마가 도와줄게.”“청주에서 웬만한 일은 아줌마가 충분히 해결할 수 있어.”진문숙도 방금 전의 화제에 집착하지 않고, 곧바로 화제를 돌려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방향을 바꾸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었다.차우미는 진문숙이 자신에게 무슨 일을 처리하러 왔냐고 묻는 게 약간 뜻밖이었다. 보통 사적인 일이라면 물어보지 않으니까.하지만 진문숙의 뒤따르는 설명에 차우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했다. 그러고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사실 별거 아니에요. 예전에 친구 아이에게 뭘 만들어 주기로 약속했는데 지난 몇 달 동안 일이 많아서 자꾸 미뤄지다 보니 결국 못 해줬거든요. 애가 자꾸 졸라대서 이번에 일이 끝난 김에 그 약속을 지키러 왔어요.”차미우는 숨기지 않고 사실대로 말했다.그녀와 나상준는 이혼했지만 나씨 가문과 차씨 가문의 관계 덕분에 서혜지와는 여전히 대화를 잘 나누는 친구 사이였다.“아, 그런 일이었구나. 알았어.”“그렇다면 별로 복잡한 일이 아니네, 간단한 일이잖아.”말하면서 진문숙은 차우미의 손을 잡고 카트 안의 물건을 바라보며 물었다.“그럼 지금... 아이한테 줄 걸 사는 중이구나? 뭘 만드는 거니? 장난감인가?”진문숙은 외동아들인 온이샘밖에 없어서 아직 할머니가 되지 않았지만, 가족 중 다른 어린아이들은 그녀를 할머니라고 불렀기 때문에 그녀에게 있어서, 아이는 곧 장난감을 좋아하는 존재였다.차우미는 진문숙의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니었다. 지금 진문숙이 이런 것들을 물어보는 의도는 분명 그녀가 남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녀의 상황을 파악하고, 어떻게든 설득하려는 것이었다.차우미는 잠깐 속눈썹을 떨더니 이내 말했다.“장난감이 아니라 간식이에요. 제가 만든 간식을 그 아이가 좋아해요.”“간식?”진문숙의 눈에 놀라움이 스쳐 갔다.“우미는 간식도 만들 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