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 나상준이 차우미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그는 차우미를 부르고 싶었지만 아무리 소리쳐도 소리가 나가지 않았다. 그는 달려가서 차우미를 잡고 싶었지만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는 나상준이 차우미를 데려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차우미는 그렇게 그에게서 점점 멀어져 갔다.무기력감과 다급함이 몰려왔지만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는 너무 괴로웠다. 꿈에서 깼지만 여전히 마음이 아팠다.그게 현실이 아닌 꿈이라고 해도 그는 여전히 불안했다.그래서 그는 차우미에게 문자를 보냈다.차우미가 이 시간에 자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그는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그는 불안하고 무서웠다.차우미가 정말 나상준에게 간다면 김온은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윙 하고 핸드폰이 진동하며 답장이 날라왔다.김온은 꿈에서 조금은 깬듯했지만 여전히 그 꿈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이 울리며 그의 생각을 끊었다. 그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가슴을 졸이며 바로 핸드폰을 확인했다.액정에 차우미에게서 날라온 문자가 보였다.이 순간, 김온은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그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바로 차우미에게서 온 문자를 확인했다.[선배, 무리하지 말고 안평으로 돌아갔으니 푹 쉬어.]그를 관심하는 문자였다. 마치 그가 안평에서 바쁠 거라는 걸 알고 특별히 신신당부하는듯했다.차우미는 김온의 건강에 매우 신경을 썼다.순간, 김온은 마음속에 있던 불안감이 전부 사라지며 더는 무섭지 않았다. 그는 그제서야 평온해지며 한 시름 놨다.어떨 때에는 한마디 말이, 심지어 한마디의 관심이 사람을 평온하게 만들곤 한다.그녀의 관심을 받은 그는 만족했다.김온은 차우미가 보내온 문자를 보며 미소지었다. 창밖을 바라보니 어느덧 날이 밝아 있었다.언제부터 그가 이렇게 안정감이 없어지게 된 거지?언제부터 그가 이렇게 불안해 한 거지?눈앞에 많은 장면이 떠올랐다. 3년 전과 3년 후의 모습이었다. 차우미가 이혼해서부터 지
차우미는 김온에게 문자를 보낸 뒤 테이블 앞에 서서 핸드폰을 바라봤다. 어젯밤에 안평으로 돌아간 김온이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난 거로 보아 일하러 가는 게 틀림없었다.김온은 진지하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었다. 요 며칠 휴가를 다녀왔기에 밀린 일이 많아 바쁜 듯했다.차우미는 요 며칠 김온이 야근 때문에 밤을 새울 것 같았다. 그건 몸에 좋지 않았다.어른이 되면 생각처럼 안 되는 일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일도 생활도 모두 자신이 예상한 대로 흘러가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예를 들자면 그동안 발생했던 수많은 일로 차우미의 일과 휴식이 모두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것처럼 말이다.일이 없으면 괜찮지만 일이 생기면 어쩔 수 없었다.속으로 한숨을 내쉬던 차우미는 한 시름 놨다.삶에는 예상치 못한 일들이 많았다. 인생은 불확실하고 모든 것이 쉽게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다.차우미는 가볍게 생각하며 중요한 것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생각이 정리된 그녀는 마음이 편안해졌고 이마도 더 이상 찡그리지 않았다.차우미는 핸드폰을 집어 들고 테이블 위의 물을 바라보았다. 물잔을 손에 쥐고 온도를 느끼니 예전보다는 시원한 느낌이었지만 여전히 뜨거웠다.한 모금을 마셔보니 여전히 뜨거웠기에 그녀는 조금 더 식혀야겠다고 생각했다.생각을 정리한 후 차우미는 물잔을 내려놓고 침실을 바라보았다. 바로 그때 나상준이 단정하게 정장을 입고 나왔다.그는 이미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정장을 입고 머리를 깔끔하게 빗은 그의 모습이 전혀 아파 보이지 않았다.그가 말을 하지 않았다면 차우미는 그가 아프다는 걸 몰랐을 것이다.차우미는 머뭇거리며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목소리가 아직도 갈라진 것 같네? 다른 곳은 어디 아픈 곳 없어?”나상준이 대답하기도 전에 차우미가 이어서 말했다.“내가 봤을 때 병원에 한번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내가 함께 가줄게. 의사 선생님께 여쭤보고 약 처방 받자. 아무래도 내가 어젯밤에 상준 씨에게 먹인 약이 약효가 별로 없는 것 같아.”차우미는 나상준에게
김온은 인내심 있게 핸드폰의 통화 연결음을 듣고 있었다.전화가 연결되자 차우미의 목소리가 핸드폰 너머에서 들려왔다. 어제처럼 평온하고 안정된 차우미의 목소리를 들은 김온은 한시름 놓았다. 수많은 감정이 순식간에 사라지며 평온을 되찾았다.김온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오늘은 왜 이렇게 빨리 깼어?”그의 목소리에는 부드러운 웃음이 섞여 있었다. 이 순간 그가 안도하고 있음을 들을 수 있었다.이를 알아챈 차우미는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원래는 일이 순조롭게 해결될 줄 알았는데 아직 해결 못 했어. 그래서 오늘 일찍 일어나서 일하려고.”“그러면... 내가 지금 너 방해하고 있는 거 아니야?”김온이 미간을 찌푸리며 자책했다. 일찍 일어나지 않던 그녀가 일찍 일어난 데에는 무슨 일이 있음이 틀림없었다.잠시 생각하던 김온이 입을 열었다.“그럼 가서 일 봐. 시간 있을 때 다시 연락할게.”“응, 선배. 선배도 안평에 돌아갔다고 너무 무리하지는 마.”차우미가 관심해 주는 말을 들은 김온이 웃으며 말했다.“응. 내가 시간 잘 조절할게. 걱정하지마.”“그리고, 너도 그쪽에 혼자 있는데 몸조심해. 너무 무리하지 말고. 도울 거 있으면 어려워하지 말고 언제든지 내게 연락해.”“전화해도 되고 톡 보내도 돼. 내가 확인하면 바로 연락할게. 만약 내가 연락이 안 되면 강서흔에게 연락해. 걔가 도와줄 거야. 혼자 너무 무리하지마.”차우미가 안평에 있다면 괜찮았지만 지금은 회성에 있기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을 때 자신이 바로 달려갈 수 없을까 봐 걱정했다.김온은 회성에 친구가 없었기에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녀에게 여러 번 주의하라고 했었다. 차우미가 잔소리를 한다고 말할지라도 그는 계속 말할 수밖에 없었다.그는 그녀를 잘 알고 있었다. 마지못해서가 아니라면 그녀는 그를 찾는 일이 없었다.자신을 걱정하고 있는 김온의 말을 들은 차우미는 웃음을 지었다.“알았어. 무리하지 않을게.”차우미는 김온의 뜻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 문제가 생
그런 그녀를 그는 어떻게 믿지 않을 수 있겠는가?비록 나상준이 회성에서 있다는 걸 안다고 해도 그는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여가현의 말이 맞았다. 차우미가 결정을 내린 일은 절대 바뀌지 않았다. 나상준이 아무리 뛰어나고 훌륭하다고 해도 차우미가 이혼을 선택했다면 다시 나상준과 함께하지 않을 것이다.이 점에 대해 그는 확신하고 있었다.왜냐하면 차우미는 절대로 번복하는 사람이 아니며 그녀는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을 매우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이 순간 김온의 마음은 제자리에 놓인 듯 평온하게 뛰었다. 그는 더 이상 혼란스럽지 않았다.그가 좋아하는 그녀는 바로 이렇게 남다른 그녀였다.핸드폰을 침대 옆 탁자에 놓고 그는 화장실에 가려고 했다. 하지만 막 핸드폰을 내려놓자마자 핸드폰이 울렸다.김온은 잠시 멈추고 다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차우미에게서 온 카톡이었다. 최신 카톡이었다.마음이 들뜬 그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는 카톡을 확인했다.[선배, 이번에 회성에 많은 동료가 일하러 왔어. 모두 이전에 봤던 사람들이야. 그리고 진정국 아저씨도 있어. 나 혼자가 아니야. 여기서 모두 날 잘 챙겨 주고 있고, 여기 책임자도 모든 것을 잘 해줘. 난 아무 문제 없어. 혹시 문제가 생기면 동료들과 진정국 아저씨에게 도움을 구할게. 그러니까 선배, 너무 걱정하지마.]장문의 카톡이었다. 그녀가 회성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명확히 알려주며 그를 안심시켰다.김온은 웃음을 지었다. 한순간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며 눈길도 매우 부드러워졌다.그녀는 그가 자신을 신경 쓰고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모든 것을 이해했다.그리고 그녀가 그를 이해하고, 위로해주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없다.이렇게 그는 만족하고, 충분히 기뻐했다.김온은 차우미에게 답장을 보냈다.[알았어.]차우미는 핸드폰에 온 답장을 보며 웃었다.사람들 사이에 서로 돕고, 이해하고, 배려하고, 마음을 써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해야 감정이 오래 지속할 수 있다.가
겨울의 한기가 아직 가시지도 않았는데 벌써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네 시를 넘기자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비가 내리면서 아지랑이가 피어올라 봄의 시작을 알리며 아늑하면서도 생기 넘치는 초봄의 시작을 알렸다.시내의 어느 유치원.사무실을 나온 차우미는 처마 밑에 서서 부슬부슬 내리는 봄비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느릿느릿 우산을 펴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오늘은 시댁에 가족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시할머니는 가족간의 우애를 가장 중요시 여기는 분이었다. 나 회장이 돌아가신 뒤로 가문에는 아무리 바빠도 한 달에 하루는 꼭 시간을 내서 본가로 돌아와 저녁을 같이 하는 풍습이 생겼다.이 풍습은 차우미가 NS그룹 며느리가 되기 전부터 이미 오십 년이나 전해져 내려온 풍습이었다.아침부터 비 온다는 예고는 있었지만 오후에 뒤늦게 내리기 시작한 비는 저녁이 되어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차우미는 조용히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시간을 확인해 보니 다섯 시가 다 돼가고 있었다. 나상준은 며칠째 출장 중이었다. 아침에 나상준의 비서인 허영우에게 문자를 보내 확인했을 때는 예정대로 세 시 사십 분에 공항에 도착한다고 했다.네 시가 넘었으니 아마 지금쯤은 도착했을 것이다.차우미는 방향을 틀어 주차장을 벗어났다.청주에 있는 시댁은 그들이 살고 있는 집에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었다.차우미는 직접 시댁으로 가지 않고 집으로 향했다. 나상준이 집에 도착하면 그와 같이 시댁으로 가기로 예정되어 있었다.관강동은 청주의 유명한 부유층들이 사는 주택가였다. 나상준과 차우미가 결혼생활을 시작한 곳이었다.창 밖에서 바람이 불어오자 금방 싹을 피워내기 시작한 비에 젖은 나뭇가지들이 춤을 추는 것이 보였다.차우미는 익숙한 길을 따라 저택으로 들어가서 검은색 롤스로이스 뒤에 차를 세웠다.차가 도착한 걸 보니 그가 돌아온 모양이었다.시동을 끈 그녀는 핸드백을 챙겨 집으로 들어갔다.“일단 그렇게 알고 진행해.”커다란 거실 창문을 통해 커튼 사이로 거실에 앉아 담배를 피우
시댁은 청주시 남부의 교외에 위치해 있었다. 번화한 시내와 떨어져 산과 들을 등지고 지은 호화저택은 요양하기 최적인 곳이었다.차가 서서히 정원으로 들어서자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날은 이미 저물었고 저택에서는 밝은 불빛이 새어 나왔다. 빗소리와 가족들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어우러져 아늑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풍겼다.최우미는 곱게 포장한 쿠키를 들고 나상준과 함께 차에서 내렸다. 집 안에서 어린 소녀가 뛰어나오더니 앳된 목소리로 그들을 맞아주었다.“큰아빠, 큰엄마!”최우미는 미소 띈 얼굴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박스를 아이에게 건넸다.“열어봐.”아이의 눈이 반짝하고 빛나더니 환호를 질렀다.“와! 백설공주랑 일곱 난쟁이다!”최우미는 동화이야기를 좋아하는 아이들 취향을 고려해 동화 속 캐릭터를 닮은 쿠키를 만들어 아이에게 자주 선물하고는 했는데 여느 베이커리 전문가와 비해도 전혀 뒤쳐지지 않았다.“마음에 들어?”“네! 너무 마음에 들어요! 감사합니다, 큰엄마!”“마음에 들었으면 됐어.”가족들은 이미 모두 도착해서 최우미와 나상준을 기다리고 있었다. 늘 있는 일이었기에 지각했다고 뭐라 하는 사람은 없었다.둘은 가족들에게 늦어서 미안하다는 사과를 전하고 자리에 앉았다.나상준의 할아버지인 전대 회장님은 아주 일찍 돌아가셨다고 했다. 네 아이와 함께 졸지에 든든한 가장을 잃었지만 이혜정 여사는 낙담하지 않았다. 그녀는 홀로 가장의 무게를 짊어지고 네 아이를 돌보고 회사까지 이끌었다. 하지만 회장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회사는 점차 기울기 시작했고 결국 빚더미에 허덕이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나 회장이 사망한지 불과 3년이 되던 해에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막내아들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남편을 잃은지 얼마 되지도 않아 자식까지 잃은 이혜정 여사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대로 주저앉는 대신, 다시 일어서서 홀로 아이들을 길러냈고 지금의 NS를 대기업으로 성장시켰다.장남인 나상준의 아버지 나명덕은 슬하에 1
“따라와.”문하은은 싸늘하게 한마디 던지고 홀로 위층으로 올라갔다.차우미는 시선을 아래로 떨구고 시어머니를 따라갔다.시댁은 전형적인 전통식 궁전의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기왓장 하나하나 신경을 썼고 목재도 은은한 나무 향이 풍기는 원목 자재를 사용했다.시할머니는 원래 청주에서 잘나가는 재벌가의 딸이었으나 경제위기가 찾아오면서 가문이 몰락하여 당시는 아직 평범한 직장인에 불과했던 나동석과 결혼했다고 했다.빗소리가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차우미는 문하은을 따라 서재로 들어가 열린 창문을 닫았다.방 안에 싸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앉아.”문하은이 먼저 자리에 앉고 차우미는 그녀와 조금 떨어진 소파에 앉았다.“네가 우리 집에 시집온 지도 벌써 3년이 돼가는구나.”문하은은 대대로 교수를 배출한 학자 가문의 출신이었다. 그녀가 나명덕과 결혼할 당시, 이혜정 여사는 이미 혼자 힘으로 NS그룹을 일으켜 세웠기에 그녀와 나명덕의 결합은 잘 어울리는 가문과 가문의 결합이라고 볼 수 있었다.이혜정은 돈보다는 자라온 가정환경을 더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이 집에 3년을 살면서 눈칫밥에는 이골이 난 차우미였기에 문하은이 자신을 따로 불렀을 때 무슨 말을 할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자식 문제.그녀와 나상준은 결혼한지 3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아이가 없었다. 품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어머니였기에 3년 동안 심한 말 한번 하지 않았지만 은근히 눈치를 준 것도 사실이었다.“네, 어머니.”남 얘기하듯이 담담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시어머니 앞에서 차우미는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다.문하은은 인상을 살짝 찌푸리더니 참았던 불만을 토로했다.“처음부터 난 이 결혼 반대했다. 집안이나 학벌 어느 것 하나 우리 상준이에 비해 많이 떨어졌으니까. 하지만 어머님이 널 지목했고 상준이도 불만이 없다고 해서 가만히 있었어.”“하지만 3년 동안 기쁜 소식 한번 없는 건 좀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니?”엄격한 가정교육을 받고 자란 문하은이었기에 책망하는 말조차도 차분하고 부드러
서예를 사랑하는 나명덕은 유명 서예가였고 그의 부인 문하은은 화가였다. 나명석은 학술을 사랑해서 오랜 시간 연구원에서 생활하며 수많은 논문을 써냈다. 그의 부인은 의사였고 유명 병원 원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나준우는 엄마의 재능을 물려받아 의사가 되었다. 판사인 나명희는 이혜정 여사를 꼭닮아 강인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녀의 딸도 엄마를 동경해서 판사가 꿈이었다.나상준의 첫째 누나는 유명 피아니스트였고 둘째 누나는 고고학자였다. 이혜정 여사의 사업가 기질을 완벽히 물려받은 후대는 나상준이 유일하다고 볼 수 있었다.나희연은 집안의 도움보다는 스스로 성장하기를 바랐다. 승부욕이 강한 그녀는 혼자 힘으로 성과를 내려고 열심히 공부하고 일했다. 그런 그녀에게 나상준은 훌륭한 본보기였다.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나동석 회장의 조상은 장군 출신이었다. 그는 훤칠한 체격에 짙은 이목구비를 가졌으며 조상이 고위 관료 출신인 이혜정 역시 뛰어난 외모의 소유자였다. 그랬기에 그들의 자식들은 외형이나 능력적으로 어디 빠지는 것 없이 출중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3세도 선조의 이러한 유전자를 물려받아 각자의 영역에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다.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단연 나상준이었다.사실 나상준의 외모는 아버지보다 할아버지를 닮았다. 그는 190에 육박하는 훤칠한 키에 조각 같은 이목구비, 선이 분명한 입체적인 얼굴선을 가진, 전형적인 미남의 외모를 소유하고 있었다.그는 창가에 서서 비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자 그의 긴 속눈썹이 미세하게 흔들렸다.“이제 용건을 말해봐.”나희연이 눈을 곱게 휘며 말했다.“영해만 부지를 구매했다고 들었어. 리조트에 들어갈 초목 공사 관련 사업은 나한테 좀 떼주면 안 돼?”나희연은 조경 인테리어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넓은 땅을 구입해 나무와 각종 식물을 재배하고 인테리어 전문가를 고용해서 여러 건설 사업에 참여하여 조경 인테리어를 해주고 이윤을 챙기는 쉽고 간단하지만 이윤이 많이 남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