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뒤로 빠르게 이틀이라는 시간이 지났다.여준재의 몸 상태로 많이 나아졌다.고다정이 다시 그의 상태를 살펴본 뒤 그제야 긴장감이 풀린 얼굴로 웃으면서 말했다.“남은 독도 이젠 사라졌어요. 앞으로 몸조리만 잘하면 완벽하게 나을 것 같네요.”“그럼 앞으로도 부탁할게요.”여준재는 웃음기 머금은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고다정은 사양하지 않고 말했다.“그건 당연한 일이죠. 앞으로 여 대표님 식단도 더 엄격하게 관리할 거예요. 제가 하라는 대로 해야 할 거예요.”일부러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는 고다정의 모습에 여준재는 꿀이 떨어지는 눈길로 그녀를 보았다.그는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다정 씨 말대로 할게요.”그의 말에 고다정은 저도 모르게 귀가 화끈 뜨거워졌다.특히 그의 그윽한 눈동자를 보았을 때 일정한 소리를 내며 뛰고 있던 심장도 쿵쾅쿵쾅 요란한 소리를 내게 되었다.“그럼, 제가 가서 여 대표님 보양식이 준비되었나 확인해볼게요.”말을 마친 그녀는 얼른 서재에서 도망치듯 나왔다.여준재는 허둥지둥 달려나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해탈 감에 한숨을 살짝 내쉬었다.이때 구남준이 방문 앞에 서 있었다.그는 똑똑 노크를 하곤 서재로 들어와 심각한 얼굴로 보고를 올렸다.“대표님, 원씨 집안 두 사람이 석방되고 나서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합니다.”“그게 무슨 소리지?”여준재의 표정이 순식간에 싸늘해졌다.그러자 구남준이 말을 이었다.“원시혁이 언제부터 준비해왔는지 모르겠지만 이민 신청을 완료한 상태였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해 교도소를 빠져나간 것 같습니다.”그의 말에 여준재의 안색도 심각해졌다.“늙은 여우 같으니라고! 도망만 잘 피해 다니는군!”그는 코웃음을 치더니 바로 지시를 내렸다.“사람을 풀어 계속 알아봐.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 앞에 잡아 와!”ZH 그룹이 망했으니 원시혁과 원준이 절대 그를 가만둘 리가 없었다.그리고 마찬가지로 그는 어떠한 위험 요소를 남겨두지 않을 것이다.구남준은 고개를 끄덕이더
다음 날 아침 일찍 여준재는 고다정과 아이들을 데리고 가까운 디즈니랜드로 향했다.도착했을 때 이미 사람들로 북적였고 귀여운 인형 탈을 쓴 스태프들도 있었다.하윤이는 귀여운 인형들에 눈을 반짝였다.“엄마, 저것 좀 봐요! 앨리스예요, 너무 귀엽죠?”고다정은 아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자 멀지 않은 곳에 앨리스 인형 탈을 입은 스태프가 웃으며 행인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고다정은 시선을 거두고는 고개를 숙여 귀여운 꼬마 공주를 보며 말했다. “그럼 하윤이도 가서 인사할까?”“네!” 하윤이가 흥분된 듯 고개를 끄덕였다.고다정은 웃으며 아이의 손을 잡고 앨리스 인형 탈을 쓴 스태프를 찾아갔고 여준재도 하준이를 데리고 따라갔다.“앨리스, 진짜 귀여워요.”하윤이가 인형 탈 앞으로 쪼르르 달려가더니 애교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인형 탈을 쓴 스태프는 눈앞의 선남선녀 가족들을 보며 깜짝 놀랐다.그녀는 허리를 살짝 숙이며 꼬마 공주님에게 인사했다. “우리 어린이도 너무 귀여워요. 같이 사진 찍을까요?”“그래도 돼요?”하윤이의 두 눈이 순식간에 반짝였다.인형 탈을 쓴 스태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당연하죠, 이렇게 예쁜 꼬마 공주님이랑 사진을 찍을 수 있다니, 오히려 영광인데요?”역시 달콤한 말에 기분이 좋아진 하윤이는 제 자리에서 퐁당퐁당 뛰며 돌더니 다정을 보며 말했다. “엄마, 언니가 같이 사진 찍어도 된다고 했는데 우리 사진 찍어주면 안 돼요?”“그래!” 고다정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마침 사진기를 들고 찍으려 할 때 커다란 손이 훅 들어오더니 귓가에 준재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제가 할게요. 하준이 하윤이랑 같이 찍어요.”“할 수 있어요?”고다정이 눈을 깜박이더니 못 미덥다는 듯 쳐다봤다.여준재는 고다정의 마음을 알아챈 듯 실소하며 말했다. “전에 놀러 갔을 때 사진 많이 찍어줬던 거 잊지 않았죠?”그 말에 고다정 역시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그럼 부탁할게요.”
고다정은 그 말에 잠시 홀렸던 정신을 다잡았다.의식적으로 여준재와 거리를 두려고 하자 그녀의 허리춤에 놓였던 손에 순식간에 힘이 들어갔다. 귓가에 뜨거운 숨결이 느껴지더니 준재의 매력적인 목소리가 울렸다. “움직이지 말아요.”고다정은 움직일 수가 없었다.여준재는 굳어진 채 뚝딱이는 다정을 바라보며 싱긋 웃더니 말했다. “편하게 있어요. 잡아먹지 않으니까.”그 말에 순간 고다정은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 어떻게 편히 있냐고 따질 뻔했다.그녀의 눈에 비친 뜻을 읽어냈는지 여준재가 다시 입술을 말아 올리며 살짝 웃었다.“결혼사진도 찍은 마당에 이것도 적응이 안 되는 거요?”“누가 당신이랑 결혼사진을 찍었다고 그래요.”고다정이 부끄러우면서도 열 받았는지 눈에 힘을 주며 대답했다. 힘껏 여준재의 품에서 벗어나 그를 밀어낸 후 고개도 돌리지 않고 가버렸다.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여준재는 못 말린다는 듯한 눈빛을 했다.자신의 장난에 고다정이 이토록 열 받을 줄 몰랐던 모양이다.두 녀석은 엄마가 씩씩거리며 걸어오는 모습에 눈을 마주치더니 물었다. “엄마 왜 벌써 와요, 아직 채 못 찍었는데.”“엄마가 목이 말라서. 우리 다른 데로 가서 좀 쉴까?”고다정은 진실을 말할 수 없어 아무렇게나 둘러댔다.두 녀석은 눈을 깜빡이더니 고다정이 거짓말을 하는지 알고 있음에도 뭐라 하지는 않았다.하준이 엄마의 손을 잡고 웃으며 애교를 부렸다. “아까 올라오던 길에 카페 하나 있었는데 거기로 가서 쉬어요.”말하며 동생에게 눈짓했다. 하윤이가 뜻을 알아채고 알겠다는 손짓을 하더니 여준재에게로 뛰어갔다.“아저씨, 엄마랑 무슨 일 있어요?”여준재에게 뛰어가 작은 소리로 소곤소곤 물으면서도 눈에는 걱정을 가득 담고 있었다.여준재는 상황을 지켜보더니 하윤이의 손을 잡고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 엄마랑 아무 일도 없었어. 그냥 엄마가 부끄러우셨나 봐.”그제야 꼬맹이는 휴 한숨을 내쉬었다.“그럼 됐어요. 아저씨 우리 엄마랑 잘 지내야 해요. 전 아저
퍼레이드를 따라 둘러싼 인파도 함께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불쌍한 두 녀석은 아직 어린애인 데다 키도 작아 까치발을 들고서야 조금이라도 볼 수 있었다. 퍼레이드가 지나가는 것을 보며 조급해졌는지 말했다.“엄마, 저 안 보여요”하윤이가 고다정의 옷소매를 잡아끌었고 하준이도 기대에 찬 눈빛으로 바라봤다.고다정은 이 상황에 난감한 기색을 드러냈다.그녀 혼자 힘도 얼마 없어 한꺼번에 두 아이를 안아 들 수는 없었다.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눈앞의 두 녀석이 갑자기 슝 하고 높이 들려졌다.깜짝 놀라 다시 보니 여준재가 한 손에 한 아이를 번쩍 쳐들고 있었다.“우와 높아요!”하윤이가 흥분된 목소리로 외쳤다. 하준이도 여준재의 목을 끌어안고 헤실헤실 웃었다.고다정은 안심되지 않는다는 듯 손을 내밀었다. “하준이 이리 주세요. 둘 다 가볍지도 않은 애들인데 몸속 상처가 다시 벌어질까 걱정이에요!”“괜찮아요, 다 생각이 있죠.”여준재가 그녀의 손을 피하고는 아이들에게 물었다.“지금은 잘 보여?”“네 잘 보여요! 아저씨 최고!”하윤이가 신난다는 듯 작은 손을 흔들어댔다.고다정은 어이가 없었지만 여준재가 원하는 대로 아이 둘을 안고 있게 놔뒀다.잠시 후 퍼레이드가 끝나고 사람들도 흩어지자 고다정은 여준재에게 당장 아이들을 내려주라고 했다.이번엔 여준재 역시 거절하지 않고 아이들을 내려놓은 뒤 가볍게 손을 털었다.그렇게나 오래 안고 있었으니 아무리 팔 힘이 좋다 한들 시큰거렸을 것이다. 두 녀석도 빤히 보더니 철이 들었는지 아저씨에게 다가가 애교 섞인 말투로 말했다. “아저씨 앉아봐요, 우리가 안마해 줄게요.”“괜찮아” 여준재가 고개를 저었다.고다정은 그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보고는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 직접 땀을 닦아줬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여준재가 잠시 멈칫하더니 웃음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고마워요.”순간 고다정은 왠지 모르게 쑥스러워져 손을 거두고 가볍게 헛기침했다.“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헛된 생각을 하던 고다정은 여준재의 앞으로 걸어왔지만 왠지 눈앞의 이 남자를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그냥 누워요. 누워서 발라줄게요.”“그냥 이대로 하죠.”여준재는 누울 생각이 없었다. 앉아서 약을 발라야만 고다정을 품에 안고 있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고다정은 그의 속셈을 눈치채지 못한 채 고집을 부리지 않고 허리를 살짝 숙여 약을 발라줬다.이 행동은 둘 사이의 거리를 훅 좁혀줬다.여준재는 눈앞에서 열중하고 있는 다정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다. 특히 그의 가슴팍에 따뜻한 손길이 전해질 때마다 마음속에 눈앞의 이 여자를 와락 품속에 껴안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하지만 애써 자신을 제지한 채 행동에 옮기지는 않았다.그도 잘 알고 있었다. 평소 웃으며 장난치거나 한두 번 선을 넘는 것은 고다정도 뭐라 하지 않았지만 다급하게 선을 넘어 마음을 내보인다면 다정은 반드시 그에게서 숨으려 할 것이다.반면 고다정은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일에 집중하면 누구보다 몰입해 딴생각을 하지 않는 게 고다정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약을 다 바르고 다시 붕대를 감고 나서야 허리를 펴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한마디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됐어요. 편히 쉬어요. 저녁 먹을 때 다시 부르러 올게요.”“알겠어요.”여준재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답하고는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고다정은 상태를 보더니 몸을 돌려 방을 나갔다.……다음 날 일찍, 고다정은 준재의 상처가 마음에 걸려 아침 일찍부터 준재의 방을 찾아왔다.“여 대표님, 깨셨나요?”“들어와요.”여준재의 살짝 잠긴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고다정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샤워 가운을 입은 준재가 침대맡에 앉아있었다.다정을 보고는 여준재가 물었다. “무슨 일 있어서 온 거에요?”“상처가 괜찮은지 보러 왔어요.”고다정이 솔직하게 대답했다.여준재는 웃으며 답했다.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요.”대답에도 안심되지 않았는지 고다정은 끝까지 상처를 보겠다고 했다.어쩔 수
고다정은 여준재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몰라서 그러는 것이 아니었다.아직 엄마의 죽음을 명확하게 조사하지 못한 채로 여준재를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여준재 역시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도 엄마의 죽음은 그녀에게 넘지 못할 하나의 선 같은 존재였다.고다정은 복도에 잠시 멈춘 채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는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아래에서는 두 녀석이 소파에서 조심조심 귓속말하고 있었다.“오빠, 엄마랑 아저씨가 만난단 말이야?”“그렇겠지. 두 번이나 뽀뽀했으니까.”하준이가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 속으로는 이렇게 했는데도 사귀지 않는다면 둘 다 책임감이 없다고 생각했다.말하다 엄마가 내려오는 것을 보더니 배시시 웃으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엄마, 내려왔어요? 아저씨는요?”하윤이가 말하며 목을 빼 들어 고다정의 뒤를 쳐다봤지만 여준재는 보이지 않았다.고다정은 눈치채고 평소와 다름없는 목소리로 답했다.“아저씨는 조금 있다 내려오실 거야.”몇 분 지나지 않아 여준재가 계단에 나타났다.두 녀석은 여준재를 발견하고는 기뻐하며 물었다.“아저씨 오늘 유니버설 가는 거죠?”하준이가 기대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여준재는 평소 같은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아침 먹고 바로 출발하자.”두 녀석은 환호하며 주방으로 뛰어갔다.잠시 후 아침을 먹고 난 뒤 출발했고 가는 길에 고다정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여준재와 정상적으로 이야기를 나눴다.하지만 자세히 보면 고다정이 말과 행동에서 여준재와 거리를 두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여준재 역시 느낄 수 있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눈빛을 하면서도 후회는 하지 않았다.서서히 고다정에게 스며들기로 했어도 명확한 태도를 보여 고다정이 알게 해야 했다.두 시간이 지나자 이들은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도착했다.유니버셜 안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주위에 영화에서 볼법한 큰 로봇과 괴물이 가득했다.하준이는 로봇들을 보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저건 아이언맨이에요. 너무 멋있죠! 그리고 저건... 마블
고다정은 이 말을 듣고는 여준재가 자신들을 생각해서 하는 말임을 알았지만, 거절의 뜻을 전하고 싶었다.하지만 말을 꺼내기도 전에 여준재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가고 싶지 않은 거 알아요. 그래도 외할머니한테 위험이 되는 일은 없어야겠죠?”역시 고다정의 약점을 한꺼번에 꿰뚫는 말이었다.외할머니는 연세도 많아 놀랄 일을 겪게 하면 안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결국 타협하고만 고다정은 입술을 달싹였다.“그럼 여 대표님, 신세 좀 질게요.”두 녀석은 아저씨 집에서 잔다는 소식에 기뻐했다.“엄마, 우리 고양이도 데려오면 안 돼요? 앙꼬랑 크림이도 데리고 와요.”“앙꼬랑 크림이랑 마왕이랑 같이 놀게 해요.”두 녀석은 흥분한 듯 고다정을 바라봤다.고다정은 아이들이 눈치 없이 좋아만 하자 지쳤다는 듯 문제를 여준재에게 넘겨버렸다.“아저씨한테 물어봐. 아저씨가 동의하면 짐 정리하고 돌아가서 데리고 오자. 외증조할머니도 뵙고.”그 말에 두 녀석은 바로 여준재를 쳐다봤고 쌍둥이들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여준재가 먼저 입을 뗐다. “그래, 앙꼬랑 크림이도 데려와.”“너무 좋아요, 감사합니다. 아저씨!”두 녀석은 기쁨에 감사 인사를 했다.잠시 후 제란원에 도착하자 이상철이 미리 소식을 접하고 집사들과 함께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도련님이 고다정과 쌍둥이를 데리고 차에서 내리는 걸 보자 기뻐하며 한달음에 마중을 나왔다. “도련님 돌아오셨어요. 고 선생님, 하준 도련님, 하윤 아가씨, 방은 다 준비됐습니다.”“고생 많으셨어요.”고다정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짐을 푼 후 다정은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갈 준비를 했다. 며칠간 집에 돌아가지 않아 외할머니가 걱정됐다.여준재는 회사에 급한 미팅이 잡혀 이상철에게 차로 다정네 세 식구를 데려다주라고 분부했다.저녁쯤 되자 다정이 두 녀석을 데리고 집에 도착했다.강말숙은 일찍 소식을 듣고는 아줌마를 시켜 식사를 준비시키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다만 집에 돌아온 다정이네 가족이 트렁크도 없이 온 모습에
그 말에 강말숙도 미심쩍은 눈빛을 보내자 고다정은 계속 말하게 뒀다간 영영 해명하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두 번이라니, 한 번이잖아.”말을 꺼내자 어딘가 잘못된 기분에 또 덧붙여 변명했다.“그건 그냥 우연한 사고였어. 사고!”마지막 두 글자에 힘을 주어 이야기했다.아쉽게도 임은미는 들은 척도 안 하고 입을 삐죽거렸다.“사고라고 해도 둘이 뽀뽀한 건 숨길 수 없지.”“맞아요!”두 녀석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고다정은 이 모습에 화가 나면서도 웃음이 나왔다.그녀는 눈을 치켜뜨고 두 녀석을 보며 겁을 주듯 말했다.“너희들은 나중에 혼낼 거야!”두 녀석은 놀랬는지 황급히 강말숙에게 뛰어가 불쌍한 목소리로 소리 질렀다.“외증조할머니, 엄마가 우릴 때리려고 해요.”강말숙은 바로 아이들을 막아나서며 고다정을 노려봤다.“네 문제를 가지고 왜 우리 쌍둥이한테 그러냐. 네가 애들을 때리면 난 널 때릴 거야!”고다정은 그 말에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외할머니 품에서 의기양양해 있는 두 녀석을 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할머니, 애들 너무 오냐오냐해주면 안 돼요. 지금 애들 하는 짓을 보세요, 혼내지 않으면 제 엄마도 팔아치울 기세라니까요.”“내가 보기엔 좋기만 하고만. 애들이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생각은 못 해봤어?”강말숙도 외손녀를 흘겨봤다.고다정은 침묵에 잠겼다. 당연히 그녀도 쌍둥이들의 생각을 알고 있었다.강말숙은 다정의 표정을 보더니 더는 말을 이어나가지 않았다. 지금 해서는 안 될 말들이 분명히 존재했기 때문이었다.밥을 다 먹은 후 임은미는 두 녀석과 함께 놀이를 했고 강말숙은 고다정을 끌고 약방으로 가 조용히 물었다.“도대체 여 대표님이랑은 무슨 사이인 거니? 사귈 셈이냐 아니면 그럴 생각이 없는 거냐?”“... 아직 모르겠어요.”고다정은 솔직하게 자기 생각을 털어놨다.강말숙은 미간을 좁히더니 말했다. “지금은 모르겠어도 나중에는? 아이들도 아버지가 필요해.”그 말에 고다정은 입술을 깨물고는 낮게 투덜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