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소식을 전하러 왔어.”거실 소파에 앉아 차를 한 모금 마시던 성시원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고다정은 그의 태도 변화에 여준재와 시선이 마주쳤다.하지만 여준재는 그녀에게 고개를 저으며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기다리라는 신호를 보냈다.역시나 성시원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자연스레 말을 이었다.“M 국의 특효약보다 더 좋은 효능을 가진 새로운 종류의 특효약을 개발했다고 말했던 걸 기억해? 이전에 임상 시험하는 곳으로 보냈었는데 반년이 지난 지금, 임상 시험 데이터가 매우 성공적이어서 이미 생산 허가도 받게 되었어. 앞으로 두 달만 지나면 국내에도 우리만의 특효약이 있게 될 것이고 더 이상 비싼 돈을 주고 M 국의 특효약을 살 필요가 없어!”성시원의 눈빛은 환희로 가득 차 있었다.고다정은 그의 모습을 보고는 비록 예전의 기억은 아직 없지만 이 일이 기쁜 일이란 건 알고 있었다.외할머니가 뇌암 환자여서 암세포 억제제 구입에 대해 알아봤고, M국과 본국에서 구입에 대해 많은 조항을 두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이건 그렇다 치고, 하필이면 약 한 병의 가격은 2천만 원도 넘어서 일반 가정에서는 도저히 감당하기 힘들었다.하지만 앞으로는 달라질 것이다. 본국에 그들만의 특효약이 나왔고 심지어 효과는 M국의 약보다 더 좋아 앞으로 그들이 도리어 사정하면서 사 갈 것이다.이때, 성시원의 약간 상기된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하마터면 중요한 일을 잊어버릴 뻔했네. 이틀 뒤에 나랑 함께 M국 가서 교베르 시상식에 참석해야 해. 특효약이 임상시험에 들어갔을 때, 사람을 시켜 약을 국제의약국에 보냈는데 글쎄 교베르 창작자 상을 받게 되었대!”“진짜예요? 우리 이 특효약이 진짜 창작자 상을 받게 되었다고요?”고다정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여준재도 어리둥절했다.다른 게 아니라, 교베르 상은 국제적으로 가장 영예가 높은 의학상이다. 보통 여기의 상을 받는 사람은 모두 의학계의 최고 거물이라고 할 수 있다.성시원은 놀란 얼굴을 한 두 사람을 보더니 그들이
M 국에 도착해보니 이미 12시간이 지난 뒤였다.두 아이는 이미 지쳐 고다정과 여준재의 품에 안긴 채 깊은 잠에 빠졌다.비행기에서 내린 뒤 성시원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방금 들었는데 교베르 주최 측에서 이번에 우리를 직접 차로 데리러 온대.”고다정을 포함한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인 뒤 그를 따라 공항 밖으로 나왔다.나오자마자 웬 전형적인 M 국 사람일 것 같은 남자가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성시원을 향해 다가왔다.“성 교수, 오랜만이야. 이렇게 다시 만나서 너무 기뻐!”남자는 말을 마치자마자 성시원을 크게 안아줬다.성시원도 미소를 짓더니 같이 포옹했다.그러다가 얼마 안 지나 그 남자한테서 급히 떨어지더니 대뜸 물었다. “호준아, 오랜만이야. 근데 네가 마중 나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네.”“놀랐지. 내가 특별히 마중 나오고 싶어서 어렵게 기회를 뺏어왔지.”백호준은 성시원에게 눈을 한번 찡긋하더니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말을 마친 뒤 그제야 성시원 뒤에 서있는 사람들을 보고 감탄했다.“와, 정말 아름답고 잘생긴 젊은이들이네. 혹시 모두 네 제자들인가? 너무 행복하겠다.”평소 이쁘장하게 생긴 건 다 좋아하는 사람이라 그의 과장된 말투를 듣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성시원은 순서대로 고다정과 채성휘를 소개해 줬다.“이 두 사람만 내 제자야. 여기는 고다정, 그리고 여기는 채성휘. 이분은 두 사람의 가족이야.”여준재와 임은미까지 소개를 마친 성시원은 잊지 않고 자기 친구도 소개했다.“이 사람은 백호준, 내 친구야. 그리고 09년도 교베르 의학상 수상자이고.”“저도 메르즈병의 최초 발견자이자 치료 과정을 만든 창시자인 백호준 교수님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교수님께서 발표하신 모든 의학 논문도 열심히 봤었고요.”채성휘는 팬심이 가득한 얼굴로 백호준을 바라보았다.백호준은 전혀 놀란 기색이 없이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별말씀을요. 아니면 제 밑으로 전입하는 건 어때요? 마침 최근에 학생들이 모두 졸업했거든요.”“백 교수님께서
“주최 측에서도 지금 스미스 가문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습니다. 근데 그쪽에서 추궁하기 시작하면 아마 그 시상식은 취소될 가능성이 높아요. 아니란 사실이 밝혀져야 다시 평가에 들어갈 수 있다지만 그러면 이번 연도 시상식은 때를 놓치게 되어 다시 4년 뒤를 기다려야 하니까요.”백호준은 자신이 추측한 내용들을 말했다.하지만 스미스 집안은 전 M 국의 특효약을 장악하고 있는 대가문이었다.말을 듣고 있던 성시원이 차가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이 벤저민은 여전히 주최 측의 빈틈만 파고드네.”고다정은 그들의 걱정을 단번에 눈치챘다. 만약 스미스 가문에서 이 일에 대해 추궁하기 시작하면 이 상장은 분명 그 벤저민이라는 사람 손에 넘어갈 것이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답답했다.“스승님, 우리 쪽에서도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을까요?”“확실히 미리 준비해야겠어요.”채성휘도 맞장구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그 사람이 상장을 채가는 걸 가만히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성시원은 진지해진 두 사람의 얼굴을 보고 살짝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그쪽에서 먼저 수를 쓰기 시작했으니 우리도 맞장구쳐줘야지. 혹시 애초에 왜 우리가 이 특효약을 개발했던지 기억해?”“기억해요. 우리나라 모든 암 환자들이 억제제를 사용하고 적은 돈으로 더 나은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잖아요.”채성휘가 엄숙한 얼굴로 답했다.그의 단어 하나하나가 결의와 끈기로 가득 차 있어서 가만히 듣고 있던 고다정과 임은미도 같이 격앙되기 시작했다.하지만 여준재는 오히려 눈빛을 반짝이며 성시원을 보고 말했다.“어르신은 특효약의 제조법을 공개할 것입니다.”여준재는 결의에 차서 말했다.성시원도 그의 생각을 짐작하고는 부정하지 않았다.“사실 이 일에 대해서 예전부터 생각하고 있었어. 원래는 상을 받은 후에 공개하려고 했지만 누군가 이 기회를 이용해서 우리를 해치려고 한다면 나중에 말할 필요가 없겠지. 만약 스미스 쪽에서 진짜 벤저민을 도와 우리 쪽의 트집을 잡
“그들도 분명 동의할 겁니다.”채성휘는 진지한 눈빛으로 답했다.고다정은 그의 안색이 수상해 보였지만 어디까지나 남의 집 사적인 일이라 더 이상 물을 수 없었다.그러나 그녀는 자기 동료이자 제자인 그에게 충고 한마디는 해야 했다.“저랑 은미는 친자매나 다름없어요. 또한 제 세 아이의 두 번째 엄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런 제 사람을 만약 채 선생님께서 조금이라도 괴롭힌다면 결과가 어떨지는 익히 알 거로 생각합니다.”“알아요. 그런 일은 절대로 없을 겁니다.”채성휘는 엄숙한 표정으로 다짐했다.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엘리베이터도 멈췄다.임은미는 자신을 걱정해 주는 친구랑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번갈아 보면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걸 느끼고 그들의 손을 한 손씩 잡더니 웃으며 말했다.“됐어, 두 사람이 나를 얼마나 아끼는지 나도 알아. 근데 지금 이 장소에서 나눌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 더구나 지금 우리는 잘 쉬고 오후에 놀러 나가는 게 제일 중요해. 아까 어르신께서도 우리한테는 오늘 반나절밖에 놀 시간이 없다고 하셨잖아. 그렇지 않으면 두 사람이 일이 끝나야 시간이 있을 것 같아.”고다정과 채성휘는 서로 눈이 마주쳤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임은미의 뒤를 따라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여준재는 고하윤을 안고 맨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는데 얼굴에는 웃음기가 가득했다. 고다정이 기억을 잃어도 임은미와의 관계에는 조금도 영향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얼마 지나지 않아 일행은 복도에서 헤어졌다.스위트룸에 들어서자 여준재와 고다정은 안고 있던 아이들을 조심스레 침대에 눕혔다.두 아이가 곤히 잠든 모습을 보더니 고다정은 참지 못하고 그들의 이마에 뽀뽀한 뒤 낮은 소리로 여준재에게 말했다.“너무 깊게 잠들어서 우리가 이렇게 대화해도 깨지 않네요.”“비행기 타는 것도 힘든 일인데 어제 늦게까지 놀았으니 당연히 오늘에는 깊게 잘 겁니다.”여준재는 말을 마친 뒤 외투를 벗고 욕실로 향했다.“다정 씨도 피곤할 텐데 제가 욕조에 물을 받아놓을게요
복도에 서 있는 성시원의 얼굴은 평소의 자상함이라곤 온데간데없이 한껏 어두워진 낯빛에 기분이 많이 언짢아 보였다.고다정 일행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은 뒤 걱정스레 물었다.“스승님,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요? 안색이 너무 안 좋아요.”“설마 그 벤저민이라는 사람이 찾아왔던가요?”채성휘도 다급히 물었다.다른 사람들도 성시원을 주시하며 그의 답만 기다리고 있었다.여준재도 얼굴을 한껏 찌푸렸다.성시원은 그들의 걱정스런 눈빛을 눈치챘지만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그러다가 그들의 손에 들려진 쇼핑백들을 보고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먼저 가서 손에 든 물건들을 내려놓고 다시 내 방으로 와.”성시원의 말대로 그들은 저마다 방에 돌아가서 물건들을 내려놓은 뒤 다시 그의 방으로 향했다.준이랑 윤이는 어른들이 급히 토론할 게 있어 보여 굳이 따라가지 않았다.몇 분이 안 되어 커다란 거실에는 사람들로 꽉 찼다고다정은 더는 기다리지 못하고 성시원에게 다시 물었다.“스승님, 대체 무슨 일이에요?”그녀의 물음에 성시원은 그들을 저마다 훑어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지금 M국 고위층 사람들이 우리를 노리고 있어. 요 며칠 은미랑 준재는 밖에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고 최대한 경호원을 데리고 다녀.”“왜 갑자기 고위층 사람들의 눈에 띄게 되었나요?”임은미는 눈이 휘둥그레진 채 걱정스레 물었다.순간 예전에 영화에서 봤던 장면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설마 우리를 납치하거나 그러지는 않겠죠?”그녀의 말을 듣더니 여준재와 고다정, 또한 채성휘마저 낯빛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성시원을 바라보며 그가 대답해 주기만을 기다렸다.다행히 성시원은 더 뜸 들이지 않고 오후에 겪었던 이야기를 대충 설명해 줬다.“교베르 시상식이 끝나기 전까지는 안전하겠지만 일단 시상식이 끝나면 그들이 움직일 수 있어. 이미 위쪽에 연락했지만 여기가 아무래도 그들의 지역이라 위쪽사람들도 움직이기 힘들 거야. 하여 요 며칠 동안 준이랑 윤이, 그리고 은미를
두 아이는 그녀의 말을 당연히 따랐다.그들이 언제 돌아가면 되는지 물어보려던 찰나 문밖에서 누군가의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내가 가서 열게.”여준재는 문을 열어주려고 몸을 일으켰다.문을 열자마자 문밖에 임은미와 채성휘가 서있는 모습을 보고 의아해서 물었다.“여기까지 무슨 일이에요?”“다정이에게 부탁할 일이 있어요. 혹시 들어가도 되나요?”임은미는 조급했지만 그래도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방안으로 먼저 뛰어드는 실례는 범하지 않았다.아무리 고다정과 사이가 좋다고 해도 그건 선을 넘는 일이다.이때 고다정도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침실에서 나왔다.그녀도 여준재와 마찬가지로 의아해서 물었다.“은미야, 무슨 일 있어?”네 사람이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임은미는 더 이상 숨기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너한테 부탁 할 일이 있어.”“무슨 부탁?”고다정의 물음에 임은미가 답했다.“혹시 우리 성휘 씨를 보호해 줄 보디가드 몇 명만 붙여줄 수 있어?”말을 마친 뒤 그녀는 고다정을 빤히 쳐다보았는데 만약 고다정이 거절이라도 하면 각종 애교를 부릴 기세였다.물론 고다정도 거절할 사람이 아니었다.“그건 당연한 거야. 채 선생님은 우리 팀에서도 중요한 사람인데 당연히 보호해 드려야지.”“역시 우리 다정이가 최고야. 우리 아이가 나중에 아버지가 있는지 없는지는 이제부터 너한테 달렸어. 아무런 일도 없게 잘 부탁해.”임은미는 고다정의 품에 안겨 애원했다.이런 웃픈 상황에 고다정은 얼떨결에 그녀를 안아줬지만 마음속으로는 꼭 채성휘에게 아무런 일도 없게 하리라 다짐했다.이때,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발생했다. 갑자기 두 아이가 그녀에게 볼멘소리로 외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엄마가 저희를 또 속였네요! 우리에게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숨겼잖아요!”두 아이는 뾰로통해서 고다정을 노려보았다.고다정도 그들이 화난 모습을 발견하고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순간 준이랑 윤이가 이 방안에 같이 있다는 걸 잊어버렸다.“헤헤, 너희들이 걱정할까 봐
다른 사람들의 의심을 사고 싶지 않아 임은미와 두 아이는 즉시 떠나지 않았다.그들은 인근 관광지를 돌아다니다 급히 귀국하는 척했다.고다정도 그들이 돌아간 뒤 밖에서는 많이 언짢은 티를 내며 성시원 뒤를 따라 토론회에 참석했다.하지만 여준재는 매일 현지에 설립한YS그룹에 가서 회사 일을 처리해야 했다.이날 오후, 고다정과 채성휘는 성시원을 따라 다시 학술 토론회에 참석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뜻밖에도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그 의학계의 독이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성 교수님, 몇 년 못 본 사이에 많이 초췌해졌네요.”벤저민은 눈앞의 세 사람들을 향해 비웃듯이 말을 건넸다.하지만 성시원은 그런 벤저민을 아랑곳하지 않고 태연하게 답했다.“어쩔 수 없죠. 제가 제일 중시하는 게 양심, 도덕, 그리고 인내심뿐이거든요. 그리고 아무리 연구 결과가 좋지 못하다고 해도 누구처럼 제자의 작품을 뺏지는 않습니다.”이 말은 의심할 여지 없이 벤저민을 저격하는 말이다.역시나 벤저민의 얼굴은 순간 험악해졌다.하지만 성시원은 그의 모습을 아랑곳하지 않고 고다정과 채성휘를 데리고 계속 앞으로 걸어 나갔다.그의 무시로 벤저민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그러다 차가운 눈빛으로 고다정과 채성휘를 훑어보고 다시 그들의 학력을 떠올리더니 자기도 모르게 코웃음을 쳤다.“성 교수님, 보아하니 10년 전의 일이 당신에게 큰 타격을 준 것 같네요. 지금은 제자들을 받아들이는 데 점점 더 신경을 쓰지 않고 있잖아요. 제 기억으로는 예전에 석사생 밑으로는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하긴 예전에 그 학생들도 성 교수님이 직접 뽑았지만 결국에는 이익 때문에 모두 배신하고 도망쳤죠.”그의 말을 듣고 성시원의 발걸음이 순간 멈춰졌지만 고개는 돌리지 않았다.그는 제 자리에 가만히 서있었는데 순간 예전의 기억들이 떠오르면서 그를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게 만들었다.고다정과 채성휘는 제일 먼저 그가 지금 기분이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다. 특히 고다정은 성시원이 예전에도 학생들을 받
결국 고다정은 구남준이 가져온 옷들을 입어보지 못했다.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교베르 의학상 시상식이 열리는 장소는 전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대학 강당이었다.성시원이 고다정과 채성휘를 데리고 도착했을 때, 강당에는 이미 고위층 사람들과 기자들이 많이 도착해 있었다.이때, H 국 기자가 네 사람을 발견하고는 반가운 듯 장비를 챙겨서 그들에게 다가왔다.“안녕하세요. 성 교수님 팀원들이 이번 교베르 제작자 상 수상자라고 들었는데 혹시 시상식이 끝나면 잠깐 시간을 내서 저희와 단독 인터뷰에 참여해 주실 수 있을까요?”기자들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성시원을 바라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고다정과 여준재에게 시선이 쏠렸다.어쩔 수 없다. 두 사람이 나란히 서있기만 해도 뛰어난 외모와 범상치 않은 분위기 때문에 도저히 안 보려야 안 볼 수 없었다.두 사람도 당연히 기자의 시선을 눈치챘지만 개의치 않고 성시원의 뒤에 서있었다.어쨌든 오늘 밤의 주인공은 성시원이기 때문이다.하지만 성시원은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기자들이 아무리 애원하고 성시원을 설득해 봐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이날 오전 9시 시상식이 정식으로 시작되었다.주최 측은 특별히 세계적으로 유명한 MC분을 초청해서 시상식의 진행을 맡겼다.역시나 탑은 탑이었다. 이제 막 무대에 올라섰지만 고작 몇 마디로 장내의 분위기를 후끈 달아오르게 만든 것이다.“이제 오늘 첫 번째 교베르 상을 수상할 팀을 발표하겠습니다...”사회자가 한껏 격앙된 표정으로 대본을 낭독하자 객석에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수상자는 일반적으로 낮은 상부터 높은 상 순서대로 발표되었고 제일 마지막에 우수상을 발표한다.하여 고다정 일행들은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그래도 네 사람은 수상하는 팀마다 그들의 정보들을 알아보고 가끔 그들과 몇 마디 주고받기도 했다.세 사람의 학구 열정에 비교하면 여준재는 많이 조용했다.그는 그저 사업가이기 때문이다.시간이 1분 1초가 지나고, 눈 깜짝할 사이에 한 시간이나 지나 마침내 고
“하윤 씨, 좋아해요. 제 여자친구가 되어줄래요?”임지호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여자애를 바라보며 긴장해서 손에 땀을 쥐었다.하윤은 잠깐 얼떨떨해하더니 이내 환한 웃음을 지었다.“네.”그녀의 얼굴에 피어난 예쁜 미소를 보고 임지호도 해맑게 웃었다.햇빛 아래 선남선녀는 너무 잘 어울렸다.임은미와 고다정은 구석에 숨어 이를 지켜보며 들떠서 소곤거렸다.“하윤이 저렇게 활짝 웃는 걸 보니 서로 고백한 것 같아.”“고백한 게 맞아. 둘이 같이 앉은 걸 봐.”“역시 내 실력이 아직 녹슬지 않았어. 내가 나서면 안 맺어지는 커플이 없다니까.”임은미는 마침내 자화자찬하기 시작했다.고다정은 그녀를 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속으로 저 남자애가 하윤을 좋아해서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이렇게 무모하게 나섰다가 맺어주는 게 아니라 끝내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두 사람은 한참 더 보다가 호기심이 충족된 듯 제대로 자리에 앉아 요리를 주문했다.기왕 온 김에 뭘 좀 먹어야지.식사하면서 고다정이 감탄했다.“애들이 어느새 커서 애인까지 생겼네.”“그러게. 우리도 늙었어.”임은미도 같이 탄식했다.뒤이어 그녀는 맞은편의 절친을 바라보며 물었다.“앞으로 무슨 계획 있어?”“보름 동안 쉬면서 준재 씨랑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 후 새로운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할 거야.”고다정은 자기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임은미는 이 말을 듣고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너 점점 일벌레가 되어가는 것 같다.”“그건 내가 이 일을 좋아하기 때문이야.”고다정이 웃으면서 말했다.둘이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청아한 목소리가 그들의 귓전을 때렸다.“여하준 씨, 거기 서요.”이 소리를 듣고 눈빛을 주고받는 고다정과 임은미의 머릿속에 똑같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이런 우연이! 이 작은 레스토랑에서 두 남매를 모두 만난다고?’하윤도 너무 뜻밖이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여하준 쪽을 바라보았다.“오빠?!”“하윤?!”여하준도 이때 하윤과 그 옆의 청년을 발견하고 미간을
하윤은 정말 돌아오지 않았다.하민이 가지 못하게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여준재에게는 무척 즐거운 밤이었다....이튿날 아침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했다.금빛 햇살이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와 이불 밖에 나온 고다정의 피부에 내려앉았다.피부에 생긴 흔적에서 어젯밤에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었다.여준재는 일찍 깼지만 아침의 따스함을 놓치기 싫어 고다정을 안고 만족스럽게 침대에 누워있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갑자기 누군가가 방문을 쾅쾅 두드렸다.“엄마, 일어나요.”하윤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여준재는 순식간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역시 자식은 빚쟁이라는 말이 맞다. 이전에 좋아했던 만큼 지금은 싫다.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품속의 여인이 깨어났다.고다정이 정신이 흐릿한 상태로 물었다.“누가 밖에서 문을 두드려요?”“하윤이에요. 내가 돌려보낼 테니 자요.”여준재가 그녀를 풀어주고 일어나려 했다. 너무 졸렸던 고다정은 막지 않았다.그녀는 오후까지 자고 임은미가 전화해서야 겨우 일어났다.30분 후 두 사람은 시내 중심의 쇼핑몰에서 만났다.임은미는 잠이 덜 깬 것 같은 고다정을 보고 놀려댔다.“너랑 여 대표님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좀 절제해.”“나한테만 그러지 말고 너도 절제해. 목에 난 흔적이 가려지지도 않아.”지금의 고다정은 약간 야한 농담에도 얼굴을 붉히던 10년 전의 고다정이 아니다.지금의 그녀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역습한다.임은미도 말문이 막히지 않았나.그녀는 채성휘와 자주 싸우지만 둘 사이의 감정에는 조금도 영향이 없었다.그녀가 코웃음을 쳤다.“네가 이겼어. 이제 너를 쉽게 놀리지 못하겠어.”그녀는 말하면서 고다정과 어느 가게에 들어갈지 사방을 둘러보는데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다정아, 저기 하윤이 아니야?”“하윤이?”고다정이 놀라며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정말 멀지 않은 곳의 레스토랑에 하윤과 깔끔해 보이는 잘생긴 남자가 마주 앉아 있는 것이
이 말을 들은 하윤은 즉시 고다정의 말에 흥미를 보였다.“저, 오빠, 그리고 이모 세 사람 외에 또 있어요?”그녀는 의문스레 고다정을 쳐다보았다. 설마 그때 아빠, 엄마를 맺어주려고 애쓴 사람이 또 있나?그런데 그녀가 말하자마자 고다정이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일 줄이야.“그래, 너와 오빠, 이모가 도와준 걸 말하는 거야. 그때 너희 셋이 나랑 너희 아빠를 맺어주려고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어? 그러니까 너 혼자 좋아하는 사람을 쫓아다니면 이뤄지기 힘들지 않겠어?”“좀 일리가 있네요.”갑자기 엄마한테 설득당한 하윤이 무심코 말했다.“그럼 엄마랑 이모가 좀 방법을 생각해 주세...”‘요’자를 내뱉기 전에 그녀는 씩씩거리며 또 한 번 엄마를 째려보았다.“또 엄마한테 걸려들었어요.”고다정은 이번에는 정말 참을 수 없어 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계집애, 어렸을 때와 똑같이 잘 속아.”그녀는 너무 웃어서 눈물까지 나왔다.이를 보고 화가 난 하윤이 손을 뻗어 고다정을 간지럽히려 했다.“엄마 나빠요.”그렇게 모녀는 온천에서 웃고 떠들었다.이쪽의 따뜻한 분위기와 달리 남자 노천탕은 썰렁했다.“자식, 어렸을 때는 귀여웠는데 크면 클수록 얄미워.”옆방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여준재는 눈앞의 두 아들이 보면 볼수록 눈에 거슬렸다.하준이 판에 박은 것 같이 똑같은 표정으로 아빠를 힐끗 쳐다보더니 시큰둥하게 말했다.“피차일반입니다.”하민은 형과 아빠가 티격태격하자 조용히 구석에 숨었다.그는 어렸을 때부터 집안에서 지위가 가장 낮다는 것을 알았다.여준재는 막내아들의 속마음을 모른 채 자기한테 말대꾸하는 큰아들을 보며 문득 한 가지 꾀가 떠올랐다.“너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허구한 날 남의 마누라를 생각하지 말고 네 마누라를 찾아. 아니면 네 할머니한테 맞선을 주선하라고 할까?”그렇다. 여준재가 생각해 낸 방법은 하준을 결혼시키는 것이다.‘이 자식이 자기 마누라가 생기면 더 이상 내 마누라를 생각하지 않겠지.’하준이 그의 생각을 모를
그날 저녁 여씨 삼남매는 결국 남아서 고다정을 축하해 주었다.식사가 끝난 후 임은미는 두 딸을 데리고 떠나갔다.가기 전에 그녀는 고다정과 내일 오후에 같이 쇼핑하기로 약속했다.임은미를 보낸 후 다섯 식구는 남녀가 분리된 온천 노천탕에 갔다.고다정은 따뜻한 온천에 몸을 담그고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이렇게 느긋한 시간을 보낸 게 얼마 만인가.그녀가 눈을 감고 즐기고 있을 때 어깨 위에 갑자기 손이 올라오더니 그녀의 어깨를 주물렀다.고개를 돌려 보니 둘째 딸이 그녀의 뒤에서 얼쩡거리고 있었다.“엄마...”“왜?”고다정이 나지막이 묻자 하윤이 바짝 붙으며 말했다.“엄마가 아빠한테 사정 좀 해 주시면 안 돼요?”그녀는 고다정의 환심을 사려고 방긋 웃었다.“오늘 엄마랑 단둘이 시간을 보내려는 아빠의 계획을 제가 망쳤으니 아빠가 틀림없이 내일 저한테 일을 시킬 거예요.”그녀가 이렇게 단언하는 원인은 그동안 이런 일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학교 다닐 때는 그녀가 엄마한테 너무 달라붙는다고 아빠가 그녀를 속여 공부를 많이 시켰다.후에 점차 크고 오빠가 폭로해서야 그녀는 아빠의 꾀에 넘어갔다는 것을 알았다.고다정은 고민 가득한 딸애 얼굴을 보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이 계집애는 어릴 때부터 말을 잘 듣지 않았는데, 매번 아빠의 권위에 도전했다가, 결국 비참하게 혼쭐이 나고 불쌍한 모습으로 엄마를 찾아왔다.“이제야 두려워? 이모를 꼬드길 때는 뒷감당을 어떻게 할지 생각 안 했어?”“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요. 엄마가 원래 여가 시간이 많지 않은데 아빠가 항상 엄마를 차지하니까.”계집애는 말하면서 고다정의 어깨를 껴안고 또 응석을 부렸다.애교 공세에 당할 수 없는 고다정은 이내 동의했다.하윤은 기쁜 나머지 고다정을 안고 뽀뽀하더니 배시시 웃었다.“역시 엄마밖에 없어요.”“너도 참, 빨리 온천에 몸을 담가.”고다정이 말하면서 그녀를 잡아당겨 노천탕에 앉혔다.그러나 하윤은 가만히 앉아 있지 못했다. 그녀는
한편, 서쪽 외곽에 위치한, YS그룹에서 개발한 온천 리조트에 세련된 곡선미를 자랑하는 검은색 마이바흐 한 대가 도착했다.차가 천천히 입구에 멈춰 서더니 검은색 수작업 맞춤 양복을 입은 여준재가 차에서 뛰어내렸다.똑바로 선 후 그는 돌아서서 허리를 살짝 굽히더니 차 문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준수한 얼굴에서는 꿀 뚝뚝 다정함이 넘쳐흘렀다.“부인, 도착했습니다.”검은색 여성 정장 차림의 고다정이 가늘고 예쁜 손을 우아하게 여준재의 손바닥 위에 얹더니 차에서 내렸다.지금의 그녀는 풋풋함을 벗은 대신 카리스마와 여유가 넘쳤다.옆에 있던 매니저가 알랑거리며 그녀를 맞이했다.“사모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건 저와 직원들의 작은 성의입니다. 인류 의학에 공헌한 사모님께 감사드립니다.”말하고 나서 그는 들고 있던 꽃다발을 건넸다.사방에서 박수와 축하가 쏟아졌다.“축하드립니다, 사모님.”“사모님, 진짜 대단하십니다!”“사모님은 제 롤모델입니다!”이 말을 듣고 고다정은 얼굴에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감사합니다.”옆에 서 있는 여준재도 눈에 자랑스러운 기색이 가득했다.뒤이어 두 사람은 매니저의 안내로 룸에 들어섰다.룸에는 이미 고다정이 좋아하는 음식들이 준비돼 있었다.두 사람이 오붓하게 식사하고 있을 때 가방 속에 있는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다.임은미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은미야, 무슨 일이야?”고다정이 전화를 받았다.옆에 있던 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두 눈을 가늘게 떴다.고다정을 쳐다보던 그는 그녀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고다정의 표정을 보니, 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제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은미가 축하 파티를 준비했다고 오래요.”“은미 씨는 인터넷을 안 본대요?”여준재가 답답한 듯 한마디 했다. 그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분명 고다정은 그의 아내인데, 지난 12년간 그는 아내와 단둘이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 궐에서 전하를 만나는 것보다 어려웠다.안팎에 강적이 있는 데다 고다정이 그동안 암세포를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어느새 1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12년간 지도층이 바뀌고, 많은 연예인이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심지어 국제 정세에도 많은 변화가 생긴 등 많은 일들이 발생했지만 여준재와 고다정의 애정 전선은 변함이 없었다.현재 두 사람은 주변에서 누구나 부러워하는 잉꼬부부가 됐다.사람들이 그들을 부러워하는 것은 금실이 좋은 것도 있지만 잘생기고 철이 든 아들딸을 두었기 때문이다.지금 여씨 가문의 큰 도련님, 아가씨, 작은 도련님 얘기가 나오면 엄지척 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특히 여하준은 19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도와 두 회사를 관리하고 있다.물론 여하윤도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어 젊은 나이에 세계 최고의 콘서트홀에서 연주했을 정도로 뛰어나다.그리고 여씨 가문의 작은 도련님은 형, 누나만큼 대단하지는 않지만 어려서부터 말솜씨가 좋아 많은 귀염을 받았고, 지금은 연예계 인기 아역 스타다....운산공항 로비의 스크린에 최신 국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12년 만에 암세포를 죽이는 약을 개발해 낸 고다정 교수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는 우리 인류 역사상 가장 의미 있는 연구 성과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암을 두려워할 필요도, 암 얘기에 놀랄 필요도 없게 됐습니다.”뉴스 진행자는 감격을 금치 못했다.최근 몇 년 고다정 연구팀의 약물 연구 덕분에 암세포 억제제가 꾸준히 개진되긴 했지만 암세포를 철저히 소멸할 수는 없어 암에 걸린 후 결국 치료하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이 뉴스는 방송되자마자 많은 행인의 주의를 끌었다.인터넷에서도 큰 화제가 됐고 고다정에 대한 축복이 쏟아졌다.[고 원장님이 해낼 줄 알았어!][너무 기쁜데 어떡하지? 우리나라를 빛낸 고 원장님을 지지하기 위해 약방에 가서 그 회사 약들을 대량 구매할 거야.][나도. 우리 집에는 환자가 없지만 이 약들을 필요한 기관에 기증할 수 있어!][하하하, 속이 다 시원하네. 그때 고 원장님이 안 된
열 몇 시간 후 비행기는 드디어 평온하게 착륙했다. 여준재가 낮은 소리로 옆에서 달게 자는 아내를 깨웠다.“여보, 일어나요.”그 소리에 고다정이 눈을 뜨더니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낯선 환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여기 어디예요?”“아직 비밀이에요. 비행기에서 내리면 알 거예요.”여준재는 그녀의 손을 잡고 비행기에서 내린 후 공항을 나섰다.그들을 마중 나온 차량이 벌써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차에 탄 후 고다정이 또 한 번 참지 못하고 물었다.“우리 지금 어디 가요?”“먼저 밥 먹으러 가요. 지금 너무 배고프죠?”여준재가 기사에게 근처의 가장 좋은 레스토랑으로 가자고 말했다.고다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할 때 아무것도 먹지 않은 데다 이렇게 장시간 비행한 까닭에 확실히 배가 고팠다.레스토랑에 도착한 두 사람은 웨이터의 안내에 따라 룸에 들어갔다.주문한 후 얼마 되지 않아 레스토랑 직원이 예쁘게 플레이팅된 음식들을 들여왔다.훈훈하고 달콤한 분위기 속에서 여준재가 고다정의 식사를 챙겼다.이때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는데, 국내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엄마, 아빠랑 같이 어디 갔어요?”쌍둥이의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흘러나왔다.이 목소리를 들은 고다정은 갑자기 뜨끔했다.“컥컥, 엄마랑 아빠가 일이 있어서 외출했어. 며칠 뒤에 돌아오니까 집에 얌전히 있어. 할머니, 할아버지 말을 잘 듣고. 알았지?”“흥! 엄마랑 아빠가 둘만의 시간을 보내려고 몰래 나간 거잖아요.”쌍둥이가 직접 고다정의 거짓말을 폭로했다.고다정은 무안해하며 도와달라는 듯 여준재를 바라보았다.당연히 아내 편인 여준재는 휴대폰을 받아 들고 말했다.“아빠와 엄마가 신혼여행 중이야. 돌아갈 때 너희 선물을 사 갈게.”말하고 나서 그는 직접 전화를 끊어버렸다.전화기 건너편에서 신호가 끊긴 스마트워치를 바라보는 쌍둥이의 앳된 얼굴에 화난 기색이 역력했다.“아빠 나빠.”“너무 나빠!”쌍둥이는 아빠한테 잔뜩 화가 났다.이때 임은미가 오더니 그들의 안색이 안 좋은
이 말이 나오자 고다정과 임은미는 서로 마주 보며 웃더니 손을 잡고 무대 옆으로 나와 하객들을 등지고 섰다.“부케를 받은 사람은 내년에 솔로 탈출합니다.”두 사람이 부케를 던진 후 뒤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회자가 입을 열었다.“부케를 누가 받았는지 신부님들 뒤를 돌아보세요.”고다정과 임은미는 두 젊은 아가씨가 부케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축복의 말을 건넸다.“두 분도 내년에 행복을 찾길 바랍니다.”“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두 아가씨가 감사 인사를 했다.사람들 뒤에 서 있던 구남준은 속이 답답하기 그지없었다.분명 자기도 동작이 빠른데 부케를 하나도 받지 못하다니. 설마 평생 혼자 살 운명인가?...결혼식이 끝난 후 신혼방으로 돌아온 두 사람.“피곤하죠? 좀 쉴래요?”여준재가 애정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안쓰러워했다.“아니요. 방금 결혼식장에서 잠깐 쉬었더니 지금 괜찮아요. 당신 먼저 옷부터 갈아입어요.”고다정이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알았어요. 고생했어요, 여보.”순간 여준재가 고다정을 꽉 껴안더니 다정하게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여준재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고다정은 황급히 그의 입술을 피하더니 얼굴을 붉히며 작은 소리로 주의를 주었다.“아직 밤도 아닌데, 이미지에 좀 신경 쓰세요.”“당신 앞에서 무슨 이미지에 신경 써요? 당신을 안고 자려는 것뿐인데.”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억울한 표정으로 고다정을 바라보았다.“알았어요. 놀리지 않을게요.”여준재의 불쌍한 모습을 보고 고다정은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당신은 웃을 때 진짜 예뻐요.”여준재가 넋이 나간 듯 고다정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당신도 참.”그의 칭찬에 고다정은 얼굴이 더 빨개졌다.여준재는 고개를 숙이더니 고다정의 입술에 키스를 퍼부었다. 고다정은 피하려고 했지만 여준재가 그녀를 꽉 껴안고 반항하지 못하게 했다.키스는 오랫동안 지속됐고, 고다정이 호흡 곤란이 올 정도가 돼서야 여준재는 그녀
결혼식 현장은 환상적이었다.전 세계 명문가에서 대표를 파견해 참석했다.이렇게 많은 유명인들 앞이라 고다정과 임은미는 몹시 긴장했다.“준재 씨, 좀... 긴장돼요.”가볍게 입술을 깨물며 여준재를 쳐다보는 고다정의 눈에는 약간 당황한 기색이 감돌았지만 수줍음과 기대감도 보였다.“괜찮아요. 제가 항상 곁에 있을게요.”여준재가 약간 차가운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더니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긴장 풀어요. 당신은 신부 노릇만 잘하면 돼요. 다른 건 다 저한테 맡겨요.”여준재의 말을 들은 고다정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마음이 놓이는 대신 열정이 넘치고 약간 기대도 됐다.“신부가 진짜 예쁘네.”“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에요.”“신부네 집안도 보통이 아니래. 여씨 가문이 더 번창하겠어.”하객들이 쑥덕거렸다. 그중 고다정을 부러워하는 상류층 부잣집 따님도 적지 않았다.오늘 여준재는 유난히 멋있었다. 매끈한 양복 차림에 준수한 외모가 불빛 아래에서 유달리 돋보였다.고다정은 여준재와 팔짱을 끼고 사람들의 부러운 눈빛 속에서 천천히 버진로드의 종점을 향해 걸어갔다.두 사람이 무대에 선 후 채성휘와 임은미가 뒤늦게 입장했다.이들 둘도 버진로드를 따라 행진해 여준재와 고다정의 옆에 섰다.결혼식 사회자는 두 쌍의 신랑 신부가 모두 입장한 것을 보고 결혼식의 시작을 알렸다.“존경하는 하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결혼식을 시작합니다!”이 말이 끝나자 무대 아래의 하객들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오늘 이 자리에 계신 모든 하객분이 증인이 되어 두 쌍의 신랑 신부가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도록 축복해 주시길 바랍니다.”사회자의 말에 무대 아래에서 또 한 번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여준재 씨는 옆에 있는 아름답고 우아한 신부를 아내로 맞아 평생 사랑하고 아끼고 보호하고 돌보기를 원합니까?”사회자가 웃음 띤 얼굴로 무대 위에 서 있는 여준재를 보며 물었다.“물론입니다!”여준재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한 후 확고한 눈빛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