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을 열어보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사진 한 장이었다. 진원우와 임지훈이 고개를 돌려 함께 확인했다.“강 대표님.”임지훈이 말했다. 송연아는 사진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지만 아무 움직임이 없었다.송연아와 강세헌이 함께 한 시간이 짧지 않은데 같은 침대에서 같은 이불을 덮고 자는 사이이기에 강세헌의 몸에 대해서는 송연아가 제일 잘 알았다. 사진 속의 남자는 강세헌과 비슷한 키와 체격을 가지고 있었지만 단지 비슷하기만 했다. 송연아는 이 사람이 강세헌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윽고 또 메시지 한 통이 왔다.“강세헌의 사진 보내줬으니 이제 믿겠지?”송연아는 빠르게 메시지에 답장을 보냈다.“이건 절대 강세헌이 아니야!”이 메시지를 보고 임지훈은 의아해졌다.“사모님, 강 대표님 아니에요?”송연아가 부정의 대답을 했다.“아니에요.”“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죠? 이 체격과 옷차림 모두 강 대표님 모습이고 머리에는 검은 두건을 써서 얼굴이 보이지도 않는 데 아니라고 하시면 안 되죠!”송연아는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사진에서 왜 얼굴을 못 보게 했는지 알아요?”심재경과 진원우는 무슨 뜻인지 알았지만, 아직 모르는 듯한 임지훈이 물었다.“왜요?”송연아가 말했다.“이 사람은 세헌 씨가 아니니까요. 그래서 사진 속 남자의 얼굴을 보여주지 못하는 거예요.”이 때문에 체격이 강세헌과 비슷한 남자를 찍어서 송연아가 이 사람이 바로 강세헌이라고 오해를 하게 만들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송연아를 협박하여 그의 요구를 들어주게 할 속셈이었다. 하지만 민호준은 송연아를 너무 얕잡아봤다. 자신의 남자를 송연아는 알아볼 수 있다. 가짜는 그냥 가짜인 것이다. 그쪽도 아마 송연아가 이렇게까지 단호하게 얘기를 하여 의아할 것이다. 하여 어떻게 이 담판을 진행해야 할지 모를 것이다. 송연아는 그들을 보고 말했다.“전에는 세헌 씨가 정말 이 사람의 손에 있을지 몰랐다면 지금은 확신할 수 있겠네요. 세헌 씨는 이 사람 손에 없어요. 만약 이 사람 손에
심재경은 그 물음에 잠시 넋이 나가서 한동안 반응이 없다가 의아하게 송연아를 바라보면서 물었다.“갑자기 그건 왜?”너무 뜬금이 없어서 그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송연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다시 말을 이었다.“당연히 아이를 좋아하지. 근데 연아야.”심재경은 진지하게 송연아를 쳐다보며 말했다.“나한테 기회가 있을까?”송연아가 물었다.“무슨 기회요?”“아빠가 될 기회.”심재경은 어이가 없었다. ‘이것도 몰라? 자기가 묻고도 까먹었나?’“좋은 여자 만나면 소중하게 여겨요.”송연아의 말에 심재경이 대답했다.“알아.”좋은 사람 만난다면 당연히 잘해줄 것이다. 심재경은 웃으며 말했다.“오늘 묻는 말이 되게 이상하네.”송연아는 먼 곳을 보며 말했다.“그저 갑자기 궁금해서요.”심재경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진원우한테 들었어. 안이슬 보러 갔다며. 아이 낳은 거야?”심재경은 잠시 머뭇거렸다.“남자애야, 여자애야? 안이슬 닮았어, 아니면 그 남자를 닮았어?”송연아가 대답했다.“여자애예요. 이슬 언니 닮았어요.”심재경이 말했다.“안이슬 닮으면 좋지. 이쁘니까. 남자를 닮으면 투박해.”차가 들어오고 송연아가 차에 타자 심재경도 함께 탔다. 어차피 여기 집이 커서 그도 리조트에 함께 지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는 리조트에 도착하여 그들은 차에서 내렸다. 찬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와서 송연아는 성큼성큼 빠르게 걸어갔다. 아직 채 낫지 않은 발목에 통증이 몰려와 걸음을 좀 늦췄다. 멀리서는 이영이 찬이를 안고 달래주고 있었다. 이영은 크고 튼실한 남자였고 찬이는 새하얗고 말랑말랑한데 그의 품에 안긴 모습이 어색했지만, 또 이상하게 잘 어울려서 뭐라고 형용할 수가 없었다. 송연아가 물었다.“무슨 일이에요?”이영이 그녀를 보며 대답했다.“넘어졌어요.”송연아는 팔을 뻗었다.“내가 안을게요.”찬이도 손을 뻗자 이영은 찬이를 송연아에게 주면서 물었다.“사모님, 다친 데는 좀 어때요?”심재경이 천천히 걸어와 물었다.“연아야,
여자는 못 들은 척 재촉했다.“얼른 식사하세요.”강세헌은 미간을 찌푸렸다. 여자는 분명히 일부러 말을 돌린 것이다.“궁금해요. 당신들이 저를 여기에 잡아두는 목적이 뭐예요?”강세헌이 묻는 말에 여자가 대답했다.“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그러고는 뒤돌아 나갔고 강세헌은 얼굴을 찌푸렸다. 여자는 음식을 가지고 포도밭에 가서 남편을 찾았다. 남편은 일하던 자리에 앉아 장갑을 벗었고 여자는 남편의 곁에 쪼그려 앉아 말했다.“저 남자, 어떻게 할 거예요?”남편은 고개를 숙이고 식사를 할 뿐 말이 없었다. 어떻게 할지 아직 생각을 못 한 모양이다.“아니면 그냥 풀어줄까요?”여자가 떠보듯 물었는데 남편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밥만 먹을 뿐 대답이 없었다. 그는 밥 한 공기를 비우고 고개를 들더니 말했다.“풀어줘?”여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네, 풀어줘요. 한국 사람이니까 아마 아닐 거예요...”“우리 여기가 이렇게 외진 곳인데 어떻게 여기에 나타난 것인지 이상하지 않아?”남자는 아내를 보며 말했다.“우리 포도밭은 속임수잖아. 그 뒤에 있는 것들은 다른 사람들이 알면 안 되는 거야. 만약 저 사람이 나가서 얘기하면 우리는 어떡해? 우리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잊지 마.”여자는 입을 다물고 더 얘기하지 못했다.“계속 저한테 물어보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여자가 말했다. 남자는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그냥 못 알아듣는 척해.”여자는 계속 이렇게 했다.“풀어주지도 못한다면 그럼 이렇게 계속 가둬두고 있을 거예요? 만약 윗사람들이 와서 발견하면 어떡해요?”“그때면 지하실에 가두면 돼. 살인을 저지를 수는 없잖아.”남자는 밥그릇을 놓더니 다시 고개를 묻고 일을 했고 여자는 식기를 정리해서 돌아갔다.강세헌은 침대에 앉아 있었다. 그는 여기의 음식조차 먹기 두려웠다. 여자가 돌아와서 그대로 있는 음식을 보더니 말했다.“드세요.”강세헌이 여전히 움직이지 않자 여자가 또 말했다.“우리가 만약 당신을 죽이려거든 진작에
강세헌은 의아해서 물었다.“무슨 비밀을 누설해요?”“여기 와서 아무것도 못 봤어요?”여자가 묻는 말에 강세헌이 고개를 저었다.“아무것도 못 봤어요.”여자는 다시 한번 확인했다.“정말 아무것도 못 봤어요?”강세헌은 아주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았다.“맹세코, 아무것도 못 봤습니다.”여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앞으로 가서 강세헌을 부축했다.“나쁜 사람 같아 보이지 않는데 한국 사람 맞죠?”강세헌은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여자는 강세헌을 부축하여 방으로 돌아갔다.“푹 쉬고 있어요!”...저녁에 여자와 남편이 나란히 침대에 누웠다. 여자가 말했다.“그 사람은 아무것도 못 봤다고 해요.”남편이 말했다.“뭔가를 보았다면 순순히 인정할까?”여자가 또 말했다.“한국 사람이라고 하던데 아닐 거예요...”“모르지. 일부러 한국 사람을 보내서 우리를 방심시킨 다음에 조사하려고 할 수도 있지.”남자는 매우 경계가 심했는데 여자는 남편을 이해할 수 없었다.“이럴 줄 알았으면 구하지 말 걸 그랬어요. 거기서 죽게 놔뒀으면 이렇게 번거롭지도 않을 거잖아요.”남편이 말했다,“저 사람이 눈이 멀지 않았다면 나도 구하지 않았을 거야.”이 부부는 여기에서 포도재배를 속임수로 두고 사실은 불법인 동물을 키우고 있었다. 이 동물의 체내에서는 아주 희귀하고 값비싼 물건을 채취할 수 있었다. 이들은 사실 나쁜 사람이 아니었고 핍박 때문에 여기로 왔다. 아들이 돈을 빚졌기에 어쩔 수 없이 부부가 여기로 쫓기다시피 오게 되었다. 만약 그들이 말을 안 듣는다면 그들의 아들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일이 누설된다면 그들 또한 목숨을 잃을 것이다. 그들은 강세헌이 조사를 하러 파견된 사람일까 싶어 두려워서 떠나지 못하게 했던 것이었다.다행히 강세헌은 다리를 다치고 눈도 다쳤다. 만약 눈이 멀쩡하였다면 아마 그를 구하지 않았을 것이고 죽였을 수도 있다.강세헌은 잠이 들지 못했다. 그는 여기가 수상하다고 여겼지만 사실 여기에서 불법적인 일이 행해지고 있다고는 생각하
송연아가 물었다.“네?”“집사님이 오셨었는데 제가 사모님을 깨우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가정교사가 오셨다고 합니다.”송연아는 알았다고 하며 찬이를 안고 거실로 향했다. 찬이는 이제 정말 많이 무거워졌다. 송연아가 찬이를 내려놓자, 집사가 가정교사 몇 명을 데리고 왔는데 남자 2명, 여자 2명이었고 모두 프랑스 사람이었다. 그중 일남일녀는 나이가 들어 보였고 나머지 두 명은 젊었다. 집사가 송연아에게 이력서를 보여주었는데 모두 대학생이었고 그중 3명은 가정교사 경험이 있었다. 송연아는 통통하고 인자한 얼굴의 나이 든 여성이 인내심이 많을 것으로 보였다. 가정교사는 인내심이 많아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송연아가 집사를 불러서 귓속말로 나이 든 여자를 남기자고 얘기하려는데 찬이가 갑자기 젊은 여자를 가리키며 말했다.“엄마, 저는 저분이 좋아요.”송연아는 찬이를 보며 생각했다.‘벌써 예쁜 것만 좋아하다니?’송연아가 젊은 여자를 선택하지 않은 건 아직 젊기도 하고 가정교사 경험도 없었기 때문이다. 송연아가 고개를 저으며 안 된다고 거절하자, 찬이가 말했다.“싫어요. 저는 저분이 좋아요.”송연아는 한참을 침묵하더니 찬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같이 공부도 하기 싫어할까 봐 고민 끝에 찬이의 의견을 접수하여 젊은 여자를 선택했다.집사가 물었다.“언제부터 오라고 할까요?”“우선 며칠 동안 능력이 어떤지 지켜봐요.”젊은 여자를 남기고 다른 사람은 집사가 데리고 나갔다.젊은 가정교사는 먼저 주동적으로 찬이에게 말을 건넸는데 한국어를 할 줄 알아서 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송연아는 이력서를 관심 있게 보지 않았기에 한국어를 하는지 전혀 몰랐다.윙윙…그때 주머니 속 휴대폰 진동이 울려서 보니 임지훈의 전화였다.“여보세요.”“전문가를 찾아서 측정해 봤는데 떨어진 곳이 높아서 착지 가능성이 있는 범위가 넓다고 해요.”송연아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준비하고 이쪽으로 오세요. 회사에도 사람이 없으면 안 되니까 원우 씨와 재경 선배는 여기에 남고
심재경은 의아한 눈길로 송연아를 바라봤다.“연아야, 그런데 왜 그렇게 긴장해?”송연아는 부정했다.“제가요? 아닌데요.”“아니야? 너 혹시 나한테 숨기는 게 있어?”송연아는 심재경의 눈을 피하며 말했다.“제가 선배한테 숨길 일이 뭐가 있겠어요. 참…”심재경은 송연아가 최근에 계속 자기를 피하는 걸 느껴서 대체 왜 그러는지 물었는데 지금 그녀의 반응도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고 뭔가 속이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대체 뭘 숨기는 거지?’심재경은 다시 신중한 눈빛으로 송연아를 보며 물었다.“연아야, 저번에 갑자기 나한테 아이를 좋아하냐고 물었었잖아, 혹시…”“혹시 뭐요?”송연아는 황급히 그의 팔을 잡으며 말을 돌렸다.“선배, 세헌 씨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겠죠? 너무 걱정돼요.”“송연아, 말을 돌리려 하지 말고 내 눈 똑바로 보고 말해봐, 이슬이 아이 내 아이야?”심재경은 우신시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날 밤 안이슬이 분명했었고 시간을 계산해 봐도 맞는 것 같았다. 송연아는 애써 침착한 척하며 말했다.“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예요? 이슬 선배 아이가 어떻게 선배 아이예요.”“나 우신시에 갔었는데 시간이 맞아. 그리고 너도 아무 이유 없이 나에게 애를 좋아하냐고 물어보지 않았을 거 아니야, 맞는 거지?”심재경은 아주 확신하는 어조로 말했다.“그냥 물어본 건데 생각이 너무 많으시네요…”“내 생각이 많은 건지 아닌지는 물어보면 알 수 있겠지.”송연아가 황급히 말했다.“안 돼요.”“왜 안 돼? 아니라며, 이슬이도 두려워할 거 없잖아.”“이슬 선배는 지금 새 삶을 살고 있어요. 그런데 선배가 그런 질문을 하면 이슬 선배를 방해하는 것밖에 더 돼요? 다행히 양명섭 씨가 현명하다고는 하지만 만약 속이 좁은 사람이었다면 이슬 선배 입장이 난감하지 않겠어요?”심재경이 반응하기도 전에 송연아가 말을 이었다.“제가 왜 우신시에 다녀왔는지 알아요?”심재경이 대답했다.“이슬이가 애 낳아서 다녀온 거잖아.”“그렇긴
송연아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만약 저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면 포기할 거예요.”심재경이 또 물었다.“멋지게 눈물도 흘리지 않을 수 있어?”송연아는 눈물까지는 흘리지 않을 자신은 없었는지 침묵했다. 필경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가 포기한다는 건 가슴이 찢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걱정하지 마. 네가 한 말 알아들었고 이슬이 행복 방해하지 않을 거야. 그런데 연아야, 사랑하는 사람이 왜 헤어지는지 알아?”송연아가 말했다.“외적 원인요.”심재경과 안이슬을 봐도 그들 사이에는 수많은 일이 있었고 또한 안이슬이 다시 마음을 돌린다고 해도 최초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힘들었다. 감정이란 아주 귀한 도자기와 같이 한번 깨지면 그 어떤 방법으로도 복구하기 힘든 것이다.“연아야, 가필드 영화 봤어?”심재경이 갑자기 묻자, 송연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어린 시절은 만화를 볼 시간마저 없었다.“가필드 영화에서 가필드가 길을 잃고 애완동물 가게에 팔려 간 적이 있었는데 주인인 존이 자기를 많이 생각할까 봐 마음이 아파했어.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존이 그 애완동물 가계에 들어왔는데 가필드를 보고 너무 기뻐하며 또다시 가필드를 데리고 집에 돌아갔어. 영화 마지막에 가필드는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영원히 존에게 그날 왜 그 애완동물 가게에 들어왔는지 묻지 않을 거라고 말했어. 그리고 존 역시 그날 마지막 희망을 품고 도시의 마지막 애완동물 가게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영원히 말하지 않았어.”심재경의 말이 끝나자, 송연아 뿐만 아니라 차 안 전체가 조용해졌다. 임지훈은 가끔 백미러로 두 사람을 살폈는데 평소 여자 친구가 없다고 진원우에게 놀림을 당하지만 이처럼 힘든 사랑을 할 바에는 싱글이 낫다고 생각했다.‘사랑은 무슨? 우정도, 사업도 모두 사랑보다는 나은 것 같아.’그들은 첫 번째 목적지에 도착해서 호텔에 찾아 며칠 묵으면서 찾아보려고 했다.…부부가 나가려고 할 때 강세헌이 불렀다.“저와 얘기하실 수 있을까요?”“당신하고 할 얘기 없어요. 가만히 있으
“뭘 봤어요?”여인이 묻자, 남편이 제지했다.“우리 여기는 포도 농장이야. 뭘 봤다고 그래? 그냥 큰 포도 농장을 봤겠지!”강세헌은 여자의 말에서 포인트를 잡았다.‘뭘 봤냐고? 이 말은 여기에 보면 안 되는 무언가가 있다는 건데 그렇다면 포도 농장은 그냥 페이크일 뿐인가?’그런데 이 부부는 나쁜 사람 같지 않았다. 만약 정말로 나쁜 사람이라면 강세헌은 지금까지 살아있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부부는 좋은 사람이다.“두 분이 저를 살려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만약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여인은 더는 말하기가 무서워 조심스레 남편의 옷을 당겼다. 눈빛으로 이 사람을 한번 믿어보자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남편은 부인처럼 아무나 믿지 않고 신중했는데 아내에게 아무나 믿으면 안 된다는 눈빛을 보내고는 바구니를 들고 말했다.“같이 나가자.”그는 강세헌이 도망칠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첫째로 이곳은 워낙 외진 곳이라 걸어서 나갈 수 없었고, 둘째는 강세헌의 눈이 멀었기 때문이다. 설령 눈이 멀쩡한 정상인이라도 길을 찾을 수 없는데 시각장애인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강세헌이 한마디 더 했다.“최근의 뉴스를 한번 보세요.”부부는 고개를 돌려 강세헌을 한번 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갔다. 여인은 남편을 따라 나갔는데 점심때 다시 돌아와서 저녁을 하곤 했다. 강세헌은 그들이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확신하고 여인이 가져온 음식을 시름 놓고 먹었다.여인은 여느 때처럼 남편에게 음식을 가져다주었는데 남편이 포도나무 아래에 앉아서 포도를 먹으며 휴대폰을 보는 모습을 보았다. 그의 휴대폰은 일반적으로 그쪽 사람들과 연계할 때만 사용했는데 매번 남편이 전화를 받을 때마다 여인은 가슴을 졸였다.멀지 않은 곳에 있는 여인을 보고 남편이 손짓하자, 여인은 가까이 다가가서 음식을 내려놓았는데 안 좋은 소식이 있을까 봐 두려웠다. 그런 여인의 마음을 들여다본 듯 남편은 여인을 옆에 앉으라고 하고 휴대폰을 보여줬다.
결혼식을 마친 후 방유정 아버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회사를 완벽하게 인계하려고 회사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임지훈은 송연아와 강세헌 일행과 같이 먼저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쪽 일을 마무리했다. 비록 임지훈이 회사에 있으면 강세헌은 보다 한가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냥 조금 더 바쁠 뿐이다. 어느 회사든 누가 떠나면 절대 안 되는 건 없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임지훈은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귀국해서 방씨 가문 회사에 들어갔다.임지훈도 국내에 집이 있었지만 방유정과 같이 방씨 가문에 들어갔다. 데릴사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유정 아버지의 병을 알고 방유정이 부모님과 많을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임지훈 역시 사위로서 그럴 의무가 있었다....반년 후, 방유정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방유정 어머니는 그 충격에 순식간에 많이 늙었다.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집안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는데 방유정의 대부분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예전의 임 비서는 이제 임 대표가 되어 그의 능력으로 방씨 가문은 아주 관리가 잘 되었고 3개월 후 방유정 어머니의 상황도 많이 좋아졌다.방유정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면서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간 일도 어느 정도 잊혀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방유정도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방유정 어머니 역시 곧 외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정말로 모두 행복해할 만한 일이었다.방유정이 임신 6개월 때 그들은 프랑스로 갔는데 구애린은 남자아이를 낳았고 심재경의 딸은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샛별이가 유일한 여자아이여서 모두가 예뻐했다. 샛별이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찬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찬이는 샛별이 다리가 짧다고 계속 놀려줬으며 그게 재밌다고 샛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찬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샛별이는 오빠라고 불렀는데 너무 귀여웠다.방유정이 말했다.“저도 딸을 낳고 싶어요.”구애린이 말했다.“그게
비록 손을 놓기 싫었지만, 방유정 아버지는 결국 방유정의 손을 임지훈에게 넘겨줬다.“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방유정도 아버지에게 말했다.“꼭 그렇게 할게요.”이어서 결혼식은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피로연까지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방유정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는데 딸이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을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나니 또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그런가 보다.임지훈은 방유정을 데리고 강세헌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는 비록 모두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모두 방유정을 다시 한번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심재경 친구의 사촌 동생이 아닌 임주훈의 아내로 말이다.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방유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윤이도 어른들 따라 한마디 했다.“축하해요.”방유정은 윤이를 보며 말했다.“너무 귀여워요.”그녀가 손을 뻗어 윤이의 얼굴을 만지자, 윤이가 손을 내밀었다.“안아줘요.”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야, 안 돼.”방유정이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윤이를 안으며 말했다.“무겁지 않아요.”윤이는 그녀의 머리에 있는 금색 비녀를 보고 만지려고 했다. 방유정이 한복을 입고 있었기에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다. 방유정은 아주 시원하게 바로 비녀를 빼서 윤이에게 주었는데 송연아는 윤이를 제지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다.“이러면 안 돼요. 오늘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괜찮아요.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에요. 윤이가 좋아하니 놀게 해요.”방유정은 정말 성격이 좋았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만큼 성품이 좋았다. 가끔 조금 오만하긴 하지만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그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달래려고 했다.“윤이 착하지. 이건...”송연아는 윤이가 방유정을 어떻게 부르면 될지 생각했는데 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호칭일 뿐이니까 편
“지금 막 들었는데 유정 씨와 결혼한다면서요. 지금 방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난리 났어요.”임지훈이 웃었다.“저 이래 봐도 능력 있는 남자예요.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아요. 봐요, 결혼도 금방 하죠?”구애린이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짝이 있네요.”찬이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지훈이 삼촌, 축하해요.”“고마워.”임지훈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심재경이 물었다.“그런데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하던데요?”심재경의 말에 모두 놀라며 시선이 일제히 임지훈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임지훈의 조건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데 말이다.“하긴, 방씨 가문에 가장이 필요하긴 해요.”심재경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마디 했다....임지훈의 결혼식으로 송연아와 강세헌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췄다. 아무도 심재경의 결혼식을 보러 왔다가 임지의 결혼식까지 보게 될 줄을 생각을 못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건 임지훈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듯이 방유정과의 결혼은 정말로 찰나의 결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 역시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임지훈이 진원우에게 말했다.“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진원우가 말했다.“그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방씨 가문은 돈도 많고 유정 씨도 예쁘고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만족해. 다만 너무 빠른 것 같아서 그래.”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결혼식은 방씨 가문에서 모두 준비했는데 방유정 딸 하나이고 또 사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방씨 가문의 친척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록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임지훈 측은 심재경이 준비했는데 심재경 본인도 금방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익숙한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방유정은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값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는
“잠도 잤는데 왜요? 모른 척하려고요?”방유정이 옷을 입더니 침대에서 꼼짝 안 하는 임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 거예요?”임지훈이 말했다.“내 옷을 가져오지 않았잖아요. 나 입을 옷 없어요.”방유정은 그제야 임지훈이 옷이 없다는 걸 생각했다.“가져다 줄게요.”그녀는 곧바로 차에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뭐 입을지는 알아서 찾아서 입고 내려와요.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방유정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지훈은 침대에서 내려 결혼 얘기이니만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방유정은 부모님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임지훈이 건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저기...”“우리 딸 줄게요.”“아니에요. 지훈 씨가 저한테 시집 오는 거예요.”방유정이 정정했다.“...”“...”“...”방유정을 제외한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유정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방유정은 자신이 여자이며 이 집안에 다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병이고 자기는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기에 어찌 보면 자기가 남편을 찾는다기보다는 방씨 가문의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찾는 거였다. 인제야 그녀는 부모가 조급해하는 의도를 이해했고 그녀 역시 가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임지훈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임지훈을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겠는가.“유정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임지훈은 뼈대가 있는 남자로서 데릴사위 할 생각은 없었다.방유정이 말했다.“후회하면 안 돼요!”“왜 안 돼요? 유정 씨가 뭘 원하든지 저 모두 만족시켜 줄 수...”“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방유정이 외치자, 임지훈은 오히려 우스웠다. 한 여자가 나한테 시집오라고 하다니!“우리 유정이가 시집가는 거 맞아요
지금 그녀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으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나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지? 결혼, 그래 결혼해야 해.’그녀는 자기가 결혼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상대도 지금 바로 방에 있지 않겠는가?‘남자 친구인 척을 해줬으니 이제 남편인 척해달라고 해야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도 되니까 결혼하자고 해야겠어.’방유정은 진료 기록부를 다시 원래 위치에 넣고 비틀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임지훈이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침대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자, 임지훈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는데 침대에 자기의 옷이 보이지 않아 방유정의 옆에 서서 물었다.“내 옷은요?”그는 방유정이 잊은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내 옷은 지금 당신 차 트렁크에 있어요.”방유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결혼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약을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었는데 임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울었어요? 누가 괴롭혔어요? 얘기해 봐요. 제가 가서 때려줄게...”임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방유정이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임지훈은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게... 유정 씨...”그가 말하려고 할 때 방유정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손이 아래로 드리는 순간 몸에 걸친 유일한 가운마저 벗겨져서 흘러내렸다.“...”방유정은 워낙 임지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 행동이 충격에 의한 도발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옷의 단추를 벗겨 가슴을 드러내고는 그의 가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저를 좀 봐봐요.”임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목젖을 굴렸는데 이름 모를 불길이 아랫배에서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딱딱해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임지훈도
방유정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하시는 거였다.“화이팅!”방유정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지금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만 좋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선 자리를 만들어주고 남자를 유혹하라고까지 하시다니?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이제 나가야 해.”방유정의 아버지는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나갔고 방유정은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차가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어차피 임지훈이 자고 있었기에 지루할 것 같아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임지훈을 놀려주려고 그가 곤히 자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가져다가 침대 옆에 앉아 임지훈에게 예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임지훈이 깨지 않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 오니 옆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임지훈은 이미 깨어나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언, 언제 깼어요?”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유정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훈의 얼굴은 정말로 오페라 가수 같았는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팠다. 임지훈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물었다.“다 웃었어요?”방유정은 곧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맘대로 제 몸에 손을 대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를 저에게 준다고 해도 거절이에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뭐라고요? 저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면 프랑스까지는 갈 거예요. 그런데 지훈 씨는 내가 싫다고요?”임지훈이 흠칫하자, 방유정이 그를 잡고 물었다.“지금 그
“방유정은 부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알았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어서 지훈 씨 방으로 데려가.”방유정이 물었다.“어느 방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 어떡해. 게스트룸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우선 네 방으로 데려가서 휴식하게 해.”방유정은 어머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아빠, 엄마,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어요? 어떻게 제 방에 술 취한 남자를 데려가라고 하세요?”“네 말대로 취했는데 뭐 어때?”“술김에 어떤 짓도 한다는 말 몰라요?”방유정이 묻자, 그녀의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몰라.”방유정은 철저히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과 임지훈이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임지훈이 그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나를 결혼시키고 싶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만약 진짜로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바로 결혼시킬 거야.”임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바탕 뿜었다. 방유정의 부모님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본인이 천당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귀여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방유정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말이야.’방유정은 역겨워하며 말했다.“지훈 씨,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화장실로 가야지.”“취했잖아.”방유정 어머니가 가정부를 불러 치우게 했다.“그만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어서 방으로 데려다 쉬게 해.”방유정은 혼자서 임지훈을 옮길 수 없어서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임지훈을 침대에 던졌는데 임지훈은 몸이 포근한 세계에 떨어진 듯 따뜻하고 향기로웠다.“무슨 향수를 써요?”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유정이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임지훈은 취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말짱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말했다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해명하지 않아도 화는 나지 않았을 건데, 굳이 해명하니 용서해 줄게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아요. 그럼 좋은 말이 안 나가니까.”“...”임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그때 방유정의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집어 그의 앞접시에 건넸다.“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요리인데 맛봐요.”임지훈이 집어서 입어 넣고 먹어보더니 말했다.“맛있습니다.”방유정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방유정 아버지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평소 주량이 어떻게 돼요?”임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못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잘 마실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네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방유정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아빠, 지훈 씨는 일이 바빠서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요.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술을 많이 주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네. 그러니까 한 잔씩만 해요.”말하면서 방유정은 술을 가져갔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분위기를 깬다.”방유정이 말했다.“두 분의 건강을 생각해서예요.”방유정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임지훈에게 한 잔 따르고 또 남편에게도 한 잔 따랐다.“많이 마시게 되면 우리 집에 방이 많으니 그냥 휴식하면 돼요. 비행기는 내일 타면 되는데 급해 할 거 없잖아요.”방유정은 어머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엄마, 이 사람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서 잠을 자래요?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요?”“걱정하지 마. 조사해 봤는데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방유정과 임지훈이 순간 놀랐다. 방유정은 평생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체면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었다.방유정 아버지는 아내를 힐끗 쳐다
“지훈 씨는 취미가 뭐예요?”방유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임지훈은 방유정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생활을 떠올렸는데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심재경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더구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의 생활이 정말로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내를 맞이해서 함께 서로 보살펴주며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만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방유정을 바라봤는데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유정은 아직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은 모를 것 같았다.“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방유정의 물음에 임지훈이 되물었다.“어디가 이상한데요?”방유정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왜요?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죠?”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당신은 성격도 안 좋고 또 엄청 잘난체하는데 내가 왜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들어가요.”시간을 보며 임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굶었어요?”방유정이 그를 비웃었다.“식사 끝나면 저는 가도 되죠.”방유정은 순간 왠지 서운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여기는 제집이 아닌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방유정은 그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자, 임지훈은 의아해했다.“왜 그래요?”“내가 뭐요?”방유정은 짜증을 냈다.“유정 씨는 정말 변덕이 많네요. 그걸 고쳐요. 남자들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방유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임지훈은 고개를 돌려 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방유정이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만 보였기에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