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세헌은 말이 없었다. 넘어지기 전까지는 아무 일 없었는데 넘어지다가 어떻게 눈을 다칠 수가 있는지 생각했다. 다리가 다친 데 대해서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정신을 잃기 전에 확실히 오른쪽 다리에 강한 통증이 느껴졌었다.“물 한잔 드릴게요.”중년 여자는 물을 떠 왔다. 강세헌은 마시지 않고 물었다.“여기는 어디예요?”중년 여자가 대답했다.“노르웨이에요.”“구체적으로는요?”강세헌이 또 물었다. 중년 여자는 뭐라고 대답을 했지만, 강세헌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지역명이었다. 아무래도 노르웨이의 유명한 곳들은 얘기하면 다 알법하지만 그렇지 않은 곳은 정말 알기가 어려웠다.“전화 한 통만 할 수 있을까요?”강세헌의 물음에 중년 여자가 되물었다.“전화가 뭐예요?”“...”강세헌은 자신이 정말 노르웨이에 있는지 의심했다. 전화가 뭔지 모르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어서 강세헌은 그 여자의 정체가 수상했다. 강세헌은 아무 표정이 없이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중년 여자가 말했다.“푹 쉬세요. 저랑 남편은 포도를 따러 가야 해서요.”말을 마치고 여자는 자리를 떴다. 강세헌도 눈앞에 있던 실루엣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강세헌은 조금 괜찮아질까 싶어서 눈을 꾹 감았다가 떴지만, 여전히 뚜렷하지 못했다. 오히려 흐릿하던 시선이 더 어두워졌다. 방금까지 보이던 희미한 윤곽도 사라지고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지금 다리에도 상처가 있었고 강세헌은 방금 그 여자가 이상하다는 걸 민감하게 느꼈다.여기는 포도밭이 있었다. 강세헌도 포도가 익은 상쾌한 향을 맡을 수가 있었다. 그의 추측이 틀리지 않는다면 여기에는 와인 공장이 있을 것이다. 이런 곳이 전화가 없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방금 그 여자는 왜 자신을 속였고 이 사람들은 무슨 사람들인지 강세헌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하여 더는 누워있지 않고 가만히 주변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방안에는 아주 조용했기에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멀리서 인기척이 들려왔는데 아마 여자가 말한
파일을 열어보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사진 한 장이었다. 진원우와 임지훈이 고개를 돌려 함께 확인했다.“강 대표님.”임지훈이 말했다. 송연아는 사진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지만 아무 움직임이 없었다.송연아와 강세헌이 함께 한 시간이 짧지 않은데 같은 침대에서 같은 이불을 덮고 자는 사이이기에 강세헌의 몸에 대해서는 송연아가 제일 잘 알았다. 사진 속의 남자는 강세헌과 비슷한 키와 체격을 가지고 있었지만 단지 비슷하기만 했다. 송연아는 이 사람이 강세헌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윽고 또 메시지 한 통이 왔다.“강세헌의 사진 보내줬으니 이제 믿겠지?”송연아는 빠르게 메시지에 답장을 보냈다.“이건 절대 강세헌이 아니야!”이 메시지를 보고 임지훈은 의아해졌다.“사모님, 강 대표님 아니에요?”송연아가 부정의 대답을 했다.“아니에요.”“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죠? 이 체격과 옷차림 모두 강 대표님 모습이고 머리에는 검은 두건을 써서 얼굴이 보이지도 않는 데 아니라고 하시면 안 되죠!”송연아는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사진에서 왜 얼굴을 못 보게 했는지 알아요?”심재경과 진원우는 무슨 뜻인지 알았지만, 아직 모르는 듯한 임지훈이 물었다.“왜요?”송연아가 말했다.“이 사람은 세헌 씨가 아니니까요. 그래서 사진 속 남자의 얼굴을 보여주지 못하는 거예요.”이 때문에 체격이 강세헌과 비슷한 남자를 찍어서 송연아가 이 사람이 바로 강세헌이라고 오해를 하게 만들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송연아를 협박하여 그의 요구를 들어주게 할 속셈이었다. 하지만 민호준은 송연아를 너무 얕잡아봤다. 자신의 남자를 송연아는 알아볼 수 있다. 가짜는 그냥 가짜인 것이다. 그쪽도 아마 송연아가 이렇게까지 단호하게 얘기를 하여 의아할 것이다. 하여 어떻게 이 담판을 진행해야 할지 모를 것이다. 송연아는 그들을 보고 말했다.“전에는 세헌 씨가 정말 이 사람의 손에 있을지 몰랐다면 지금은 확신할 수 있겠네요. 세헌 씨는 이 사람 손에 없어요. 만약 이 사람 손에
심재경은 그 물음에 잠시 넋이 나가서 한동안 반응이 없다가 의아하게 송연아를 바라보면서 물었다.“갑자기 그건 왜?”너무 뜬금이 없어서 그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송연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다시 말을 이었다.“당연히 아이를 좋아하지. 근데 연아야.”심재경은 진지하게 송연아를 쳐다보며 말했다.“나한테 기회가 있을까?”송연아가 물었다.“무슨 기회요?”“아빠가 될 기회.”심재경은 어이가 없었다. ‘이것도 몰라? 자기가 묻고도 까먹었나?’“좋은 여자 만나면 소중하게 여겨요.”송연아의 말에 심재경이 대답했다.“알아.”좋은 사람 만난다면 당연히 잘해줄 것이다. 심재경은 웃으며 말했다.“오늘 묻는 말이 되게 이상하네.”송연아는 먼 곳을 보며 말했다.“그저 갑자기 궁금해서요.”심재경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진원우한테 들었어. 안이슬 보러 갔다며. 아이 낳은 거야?”심재경은 잠시 머뭇거렸다.“남자애야, 여자애야? 안이슬 닮았어, 아니면 그 남자를 닮았어?”송연아가 대답했다.“여자애예요. 이슬 언니 닮았어요.”심재경이 말했다.“안이슬 닮으면 좋지. 이쁘니까. 남자를 닮으면 투박해.”차가 들어오고 송연아가 차에 타자 심재경도 함께 탔다. 어차피 여기 집이 커서 그도 리조트에 함께 지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는 리조트에 도착하여 그들은 차에서 내렸다. 찬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와서 송연아는 성큼성큼 빠르게 걸어갔다. 아직 채 낫지 않은 발목에 통증이 몰려와 걸음을 좀 늦췄다. 멀리서는 이영이 찬이를 안고 달래주고 있었다. 이영은 크고 튼실한 남자였고 찬이는 새하얗고 말랑말랑한데 그의 품에 안긴 모습이 어색했지만, 또 이상하게 잘 어울려서 뭐라고 형용할 수가 없었다. 송연아가 물었다.“무슨 일이에요?”이영이 그녀를 보며 대답했다.“넘어졌어요.”송연아는 팔을 뻗었다.“내가 안을게요.”찬이도 손을 뻗자 이영은 찬이를 송연아에게 주면서 물었다.“사모님, 다친 데는 좀 어때요?”심재경이 천천히 걸어와 물었다.“연아야,
여자는 못 들은 척 재촉했다.“얼른 식사하세요.”강세헌은 미간을 찌푸렸다. 여자는 분명히 일부러 말을 돌린 것이다.“궁금해요. 당신들이 저를 여기에 잡아두는 목적이 뭐예요?”강세헌이 묻는 말에 여자가 대답했다.“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그러고는 뒤돌아 나갔고 강세헌은 얼굴을 찌푸렸다. 여자는 음식을 가지고 포도밭에 가서 남편을 찾았다. 남편은 일하던 자리에 앉아 장갑을 벗었고 여자는 남편의 곁에 쪼그려 앉아 말했다.“저 남자, 어떻게 할 거예요?”남편은 고개를 숙이고 식사를 할 뿐 말이 없었다. 어떻게 할지 아직 생각을 못 한 모양이다.“아니면 그냥 풀어줄까요?”여자가 떠보듯 물었는데 남편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밥만 먹을 뿐 대답이 없었다. 그는 밥 한 공기를 비우고 고개를 들더니 말했다.“풀어줘?”여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네, 풀어줘요. 한국 사람이니까 아마 아닐 거예요...”“우리 여기가 이렇게 외진 곳인데 어떻게 여기에 나타난 것인지 이상하지 않아?”남자는 아내를 보며 말했다.“우리 포도밭은 속임수잖아. 그 뒤에 있는 것들은 다른 사람들이 알면 안 되는 거야. 만약 저 사람이 나가서 얘기하면 우리는 어떡해? 우리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잊지 마.”여자는 입을 다물고 더 얘기하지 못했다.“계속 저한테 물어보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여자가 말했다. 남자는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그냥 못 알아듣는 척해.”여자는 계속 이렇게 했다.“풀어주지도 못한다면 그럼 이렇게 계속 가둬두고 있을 거예요? 만약 윗사람들이 와서 발견하면 어떡해요?”“그때면 지하실에 가두면 돼. 살인을 저지를 수는 없잖아.”남자는 밥그릇을 놓더니 다시 고개를 묻고 일을 했고 여자는 식기를 정리해서 돌아갔다.강세헌은 침대에 앉아 있었다. 그는 여기의 음식조차 먹기 두려웠다. 여자가 돌아와서 그대로 있는 음식을 보더니 말했다.“드세요.”강세헌이 여전히 움직이지 않자 여자가 또 말했다.“우리가 만약 당신을 죽이려거든 진작에
강세헌은 의아해서 물었다.“무슨 비밀을 누설해요?”“여기 와서 아무것도 못 봤어요?”여자가 묻는 말에 강세헌이 고개를 저었다.“아무것도 못 봤어요.”여자는 다시 한번 확인했다.“정말 아무것도 못 봤어요?”강세헌은 아주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았다.“맹세코, 아무것도 못 봤습니다.”여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앞으로 가서 강세헌을 부축했다.“나쁜 사람 같아 보이지 않는데 한국 사람 맞죠?”강세헌은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여자는 강세헌을 부축하여 방으로 돌아갔다.“푹 쉬고 있어요!”...저녁에 여자와 남편이 나란히 침대에 누웠다. 여자가 말했다.“그 사람은 아무것도 못 봤다고 해요.”남편이 말했다.“뭔가를 보았다면 순순히 인정할까?”여자가 또 말했다.“한국 사람이라고 하던데 아닐 거예요...”“모르지. 일부러 한국 사람을 보내서 우리를 방심시킨 다음에 조사하려고 할 수도 있지.”남자는 매우 경계가 심했는데 여자는 남편을 이해할 수 없었다.“이럴 줄 알았으면 구하지 말 걸 그랬어요. 거기서 죽게 놔뒀으면 이렇게 번거롭지도 않을 거잖아요.”남편이 말했다,“저 사람이 눈이 멀지 않았다면 나도 구하지 않았을 거야.”이 부부는 여기에서 포도재배를 속임수로 두고 사실은 불법인 동물을 키우고 있었다. 이 동물의 체내에서는 아주 희귀하고 값비싼 물건을 채취할 수 있었다. 이들은 사실 나쁜 사람이 아니었고 핍박 때문에 여기로 왔다. 아들이 돈을 빚졌기에 어쩔 수 없이 부부가 여기로 쫓기다시피 오게 되었다. 만약 그들이 말을 안 듣는다면 그들의 아들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일이 누설된다면 그들 또한 목숨을 잃을 것이다. 그들은 강세헌이 조사를 하러 파견된 사람일까 싶어 두려워서 떠나지 못하게 했던 것이었다.다행히 강세헌은 다리를 다치고 눈도 다쳤다. 만약 눈이 멀쩡하였다면 아마 그를 구하지 않았을 것이고 죽였을 수도 있다.강세헌은 잠이 들지 못했다. 그는 여기가 수상하다고 여겼지만 사실 여기에서 불법적인 일이 행해지고 있다고는 생각하
송연아가 물었다.“네?”“집사님이 오셨었는데 제가 사모님을 깨우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가정교사가 오셨다고 합니다.”송연아는 알았다고 하며 찬이를 안고 거실로 향했다. 찬이는 이제 정말 많이 무거워졌다. 송연아가 찬이를 내려놓자, 집사가 가정교사 몇 명을 데리고 왔는데 남자 2명, 여자 2명이었고 모두 프랑스 사람이었다. 그중 일남일녀는 나이가 들어 보였고 나머지 두 명은 젊었다. 집사가 송연아에게 이력서를 보여주었는데 모두 대학생이었고 그중 3명은 가정교사 경험이 있었다. 송연아는 통통하고 인자한 얼굴의 나이 든 여성이 인내심이 많을 것으로 보였다. 가정교사는 인내심이 많아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송연아가 집사를 불러서 귓속말로 나이 든 여자를 남기자고 얘기하려는데 찬이가 갑자기 젊은 여자를 가리키며 말했다.“엄마, 저는 저분이 좋아요.”송연아는 찬이를 보며 생각했다.‘벌써 예쁜 것만 좋아하다니?’송연아가 젊은 여자를 선택하지 않은 건 아직 젊기도 하고 가정교사 경험도 없었기 때문이다. 송연아가 고개를 저으며 안 된다고 거절하자, 찬이가 말했다.“싫어요. 저는 저분이 좋아요.”송연아는 한참을 침묵하더니 찬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같이 공부도 하기 싫어할까 봐 고민 끝에 찬이의 의견을 접수하여 젊은 여자를 선택했다.집사가 물었다.“언제부터 오라고 할까요?”“우선 며칠 동안 능력이 어떤지 지켜봐요.”젊은 여자를 남기고 다른 사람은 집사가 데리고 나갔다.젊은 가정교사는 먼저 주동적으로 찬이에게 말을 건넸는데 한국어를 할 줄 알아서 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송연아는 이력서를 관심 있게 보지 않았기에 한국어를 하는지 전혀 몰랐다.윙윙…그때 주머니 속 휴대폰 진동이 울려서 보니 임지훈의 전화였다.“여보세요.”“전문가를 찾아서 측정해 봤는데 떨어진 곳이 높아서 착지 가능성이 있는 범위가 넓다고 해요.”송연아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준비하고 이쪽으로 오세요. 회사에도 사람이 없으면 안 되니까 원우 씨와 재경 선배는 여기에 남고
심재경은 의아한 눈길로 송연아를 바라봤다.“연아야, 그런데 왜 그렇게 긴장해?”송연아는 부정했다.“제가요? 아닌데요.”“아니야? 너 혹시 나한테 숨기는 게 있어?”송연아는 심재경의 눈을 피하며 말했다.“제가 선배한테 숨길 일이 뭐가 있겠어요. 참…”심재경은 송연아가 최근에 계속 자기를 피하는 걸 느껴서 대체 왜 그러는지 물었는데 지금 그녀의 반응도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고 뭔가 속이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대체 뭘 숨기는 거지?’심재경은 다시 신중한 눈빛으로 송연아를 보며 물었다.“연아야, 저번에 갑자기 나한테 아이를 좋아하냐고 물었었잖아, 혹시…”“혹시 뭐요?”송연아는 황급히 그의 팔을 잡으며 말을 돌렸다.“선배, 세헌 씨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겠죠? 너무 걱정돼요.”“송연아, 말을 돌리려 하지 말고 내 눈 똑바로 보고 말해봐, 이슬이 아이 내 아이야?”심재경은 우신시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날 밤 안이슬이 분명했었고 시간을 계산해 봐도 맞는 것 같았다. 송연아는 애써 침착한 척하며 말했다.“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예요? 이슬 선배 아이가 어떻게 선배 아이예요.”“나 우신시에 갔었는데 시간이 맞아. 그리고 너도 아무 이유 없이 나에게 애를 좋아하냐고 물어보지 않았을 거 아니야, 맞는 거지?”심재경은 아주 확신하는 어조로 말했다.“그냥 물어본 건데 생각이 너무 많으시네요…”“내 생각이 많은 건지 아닌지는 물어보면 알 수 있겠지.”송연아가 황급히 말했다.“안 돼요.”“왜 안 돼? 아니라며, 이슬이도 두려워할 거 없잖아.”“이슬 선배는 지금 새 삶을 살고 있어요. 그런데 선배가 그런 질문을 하면 이슬 선배를 방해하는 것밖에 더 돼요? 다행히 양명섭 씨가 현명하다고는 하지만 만약 속이 좁은 사람이었다면 이슬 선배 입장이 난감하지 않겠어요?”심재경이 반응하기도 전에 송연아가 말을 이었다.“제가 왜 우신시에 다녀왔는지 알아요?”심재경이 대답했다.“이슬이가 애 낳아서 다녀온 거잖아.”“그렇긴
송연아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만약 저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면 포기할 거예요.”심재경이 또 물었다.“멋지게 눈물도 흘리지 않을 수 있어?”송연아는 눈물까지는 흘리지 않을 자신은 없었는지 침묵했다. 필경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가 포기한다는 건 가슴이 찢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걱정하지 마. 네가 한 말 알아들었고 이슬이 행복 방해하지 않을 거야. 그런데 연아야, 사랑하는 사람이 왜 헤어지는지 알아?”송연아가 말했다.“외적 원인요.”심재경과 안이슬을 봐도 그들 사이에는 수많은 일이 있었고 또한 안이슬이 다시 마음을 돌린다고 해도 최초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힘들었다. 감정이란 아주 귀한 도자기와 같이 한번 깨지면 그 어떤 방법으로도 복구하기 힘든 것이다.“연아야, 가필드 영화 봤어?”심재경이 갑자기 묻자, 송연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어린 시절은 만화를 볼 시간마저 없었다.“가필드 영화에서 가필드가 길을 잃고 애완동물 가게에 팔려 간 적이 있었는데 주인인 존이 자기를 많이 생각할까 봐 마음이 아파했어.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존이 그 애완동물 가계에 들어왔는데 가필드를 보고 너무 기뻐하며 또다시 가필드를 데리고 집에 돌아갔어. 영화 마지막에 가필드는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영원히 존에게 그날 왜 그 애완동물 가게에 들어왔는지 묻지 않을 거라고 말했어. 그리고 존 역시 그날 마지막 희망을 품고 도시의 마지막 애완동물 가게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영원히 말하지 않았어.”심재경의 말이 끝나자, 송연아 뿐만 아니라 차 안 전체가 조용해졌다. 임지훈은 가끔 백미러로 두 사람을 살폈는데 평소 여자 친구가 없다고 진원우에게 놀림을 당하지만 이처럼 힘든 사랑을 할 바에는 싱글이 낫다고 생각했다.‘사랑은 무슨? 우정도, 사업도 모두 사랑보다는 나은 것 같아.’그들은 첫 번째 목적지에 도착해서 호텔에 찾아 며칠 묵으면서 찾아보려고 했다.…부부가 나가려고 할 때 강세헌이 불렀다.“저와 얘기하실 수 있을까요?”“당신하고 할 얘기 없어요. 가만히 있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