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설은 강세욱을 쉽게 구해 낼 수 없다는 것을 예상하였다.그래서 오기 전에 강의건을 찾아갔다.임설은 강의건이 강세헌의 할아버지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강세헌이 아무리 냉혈하고 무자비한 사람일지라도, 그리고 강씨 집안과 등졌다고 해도 강의건은 어쨌든 그의 할아버지였다.임설은 강세헌이 강의건에 대한 옛정이 조금은 남아 있다고 생각해 강의건이 나서면 강세욱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그런데...강세헌은 강의건을 보고도 담담한 표정이었고 긴장한 기색이 일도 없었다.강의건은 지팡이를 짚고 있었고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음을 알 수있었다. 큰 병을 앓고 있어 아무리 의사가 정성껏 간호하고 있어도, 아픈 것은 숨길 수가 없었다. 강의건의 현재 몸 상태는, 초췌한 그의 얼굴에서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세헌아.”강의건은 강세헌 앞에서 몸을 낮췄다.지금은 어른으로서의 기개도 없었다.그저 잘못을 저지른 강씨 집안의 가장으로서 용서를 빌었다.그는 확실히 자신의 잘못된 선택에 후회했다.강세헌에게 싸움을 걸지 않고, 마음으로 보듬어 주었다면, 일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그러나 한 번 엎어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내가 요즘 많이 아파서 이제는 인생의 낙이 없어. 세욱이는 네 사촌 동생이잖아...”강의건이 말하고 있는데 강세헌의 운전기사가 문을 열었고 강세헌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차를 향해 걸어갔다.강의건의 말을 무시해 버렸다.“세헌아...”“도련님, 어르신 말씀 좀 들어보세요.”전 집사가 얼른 앞으로 나서서 강세헌의 차를 막았다.강의건의 건강이 좋지 않은 것을 봐서라도 강세욱을 용서해 줬으면 싶었다.강의건에게 있어서 강세헌도, 강세욱도 모두 아픈 손가락이었다.하지만 더 강자인 강세헌 앞에서 강의건은 어쩔 수 없이 약자의 편을 들어야 했다.강씨 집안의 자손끼리 집안싸움을 하는 것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도련님.”전 집사가 애원하듯 불렀다.강세헌은 아무런 표정변화 없이 무덤덤하게 운전 기사에게 말했다.“운전하세요.”
전 집사는 목소리를 낮췄고 말을 할 때, 바닥에 주저앉아 절망하는 임설을 바라보았다.“어르신은 그저 세욱 도련님이 강씨 집안의 자손이기 때문에 아끼시는 거지만, 세욱 도련님은 송연아를 해쳤습니다.”강의건에게 강세헌이 결코 강세욱을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말 한 셈이었다.그리고 더 이상 강세헌과 맞설 의지나 저력이 없었다.“세욱 도련님이 죽지만 않는다면, 대는 끊기지 않을 겁니다.”전 집사가 말했다.강의건은 순간 그 뜻을 깨닫고 임설쪽으로 시선을 돌렸다.강의건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그것도 방법이긴 하네.”전 집사는 강의건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기 위해 말했다.“윤석 님의 대는 끊길 수 없습니다. 세욱 도련님한테 무슨 일이 생긴다고 해도 아버지는 아직 살아있지 않습니까. 윤석 님은 다리를 못 쓰는 것이지, 신장을 못 쓰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강의건의 주름투성이인 눈가가 떨렸다.“이 늙은 여우 같으니라고.”전 집사가 그를 부축했다.“제 말이 맞지 않습니까?”전 집사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일리가 있었다.손자는 없지만, 아들은 아직 살아있지 않은가.비록 지금 강씨 집안의 모든 것이 강세헌 손아귀에 있지만,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가난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굶어 죽어가는 낙타도 말보다는 크다!강의건 수중에는 아직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재산이 적지 않았고 강윤석에게 여자를 찾아주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만약 강세욱을 정말로 빼낼 수 없다면, 빨리 포기하는 것이 더 나았다.“할아버지, 어떡하죠?”임설이 달려들어 강의건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할아버지, 세욱 씨를 구해주셔야 합니다.”강의건과 전 집사가 눈을 마주쳤고 전 집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세헌 도련님이 누구의 체면도 봐 주지 않으니, 이제는 어르신도 어쩔 수 없네요.”임설이 말했다.“세욱 씨가 이렇게 계속 갇혀 있는 것을 지켜봐야 한다고요? 그 사람은 아직 너무 어리다고요...”강의건은
원장이 주임에게 말했다.“위에서 지시가 내려왔어. 우리의 연구 성과는 절대 한국에 공개해서는 안 돼. 한국에서 이 세미나를 열게 된 것도 새로 지분을 가진 한국인이 우리에 대한 통제권을 가졌기 때문이야. 어쩔 수 없지만, 우리는 미국 사람이고 때문에 이것들도 영원히 여기에 남아야 해. 만약 이번 연구 성과가 공개되면, 우리에게 유리한 점은 하나도 없어.”주임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병원에서만 숨기는 게 아니라 위로 더 깊이 연루되었다는 것을.“그리고 이번에 닥터 제인의 공헌이 크니까 그녀를 세미나에 데려가는 것을 나무랄 수 없지만, 그녀는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마. 그녀의 마음이 궁극적으로 어디를 향할지 잘 알잖아. 너는 분명히 알면서도 왜 제인을 데리고 가겠다고 한 거야. 이 일은 처음부터 닥터 제인에게 숨겼어야 했어, 너 때문에 일만 커졌잖아.”원장은 주임이 일을 잘못했다고 생각했다.주임이 말했다.“저는 그저 닥터 제인이 적임자라고 여겼습니다. 그렇게 깊게까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닥터 제인은 이미 주치의가 되었으니까 너무 나서게 해서는 안 돼. 앞으로 통제하기 어려울 수도 있어. 그리고 제인은 능력이 뛰어나니까 무조건 붙잡아서 우리를 위해 연구하게 해야 해. 그렇다고 또 너무 기세등등하게 하면 안 되는 거 알지? 그렇지 않으면 우린 견제할 수밖에 없어...”“이번에 한국에 가지고 갈 자료를 준비하라고 했는데, 거의 다 준비했을 겁니다.”주임의 목소리는 점점 낮아졌다.원장의 기분이 안 좋아질 것을 예상한 듯했다.아니나 다를까 원장은 미간을 찌푸렸다.“뭐?”원장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도대체 어떻게 생각한 거야? 그녀에게 자료를 정리하라고 하면, 우리의 모든 연구 성과를 한국에 가져가려고 할 거 아니야? 우리가 연구한 것들이 모두 엄청난 비용을 들였다는 거 알아야 할 거야. 너 설마 그 많은 것들을 한국에 무료로 제공하고 싶니?”주임은 여전히 송연아를 데리고 가고 싶다고 말했다.“제가 이미 제인을 데리고 가기로 했는데,
강세헌은 아니꼬운 말투로 말했다.“덤비라고요? 이젠 당신한테 그 무엇도 해야 할 가치가 없는 것 같은데요.”주석민은 갑자기 말이 막혔다.정년퇴직을 앞둔 상태에서 실수로 사람을 죽인 의사로 만들어 버렸고 평생 쌓아온 명예가 강세헌에 의해 전부 훼손되었다.이것들은 모두 강세헌이 바라던 것이 아니었는가?주석민이 말했다.“네가 나에게 그리고 내 가족에게까지 손을 대도 난 말할 수가 없어, 왜냐면 난 아무것도 모르니까.”“죽는 게 두렵지 않나 봐요.”강세헌은 의자를 가져와 다리를 꼬고 앉았고 안하무인의 태도로 주석민을 내려보았다.“원우야, 가서 이 사람 아내 그리고 아이까지 모두 잡아 와.”주석민은 당황했다. 자신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지만, 아내와 아이들에게까지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다.“내가 알면 무조건 너한테 알려주지. 근데 난 진짜 모른다고, 모르는데 어떻게 알려줘”“당신의 수술을 도운 사람들이 이미 실토했어요, 송연아는 아직 살아있고 당신이 불에 탄 시신으로 바꿔치기했다고.”강세헌의 눈매는 매서웠다.“당신은 그 누구보다도 송연아의 행방을 잘 알고 있어요. 근데 지금 나한테 시치미를 떼고 있죠.”주석민은 겁에 질렸지만, 애써 침착한 척했다.“그 사람들이 거짓말을 한 거야, 난 진짜 모른다고.”강세헌은 참을 수 없다는 듯 몸을 뒤로 젖혔다.“너 같은 사람한테 너무 자비를 베풀면 안 돼. 원우야, 빨리 가서 처리해.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책임질게.”“안돼, 제발... 가족은 건드리지 마...”주석민은 젊었을 때, 사업 때문에 아내와 아이들의 곁에 자주 있지 못했다.그러나 지금, 그는 퇴직해서도 패가망신의 최후를 맞았고, 아내만이 힘든 나날들 속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그래서 주석민은 더는 아내가 자신을 위해 고생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아이가 자기 때문에 위험해져 창창한 앞날에 지장을 받게 하는 것도 싫었다.그는 강세헌의 수법을 잘 알고 있었다.왜냐면 몸소 겪어 보았기 때문이다.“말... 말할게, 근데 한 가지
자신이 우위를 차지했다고 생각한 주석민은 웃으면서 말했다.“너무 화내지는 말고. 넌 생긴 건 괜찮지만, 성격이 너무 못됐어. 널 좋아할 여자는 이 세상에서 몇 안 될 거야. 그러니까 좀 고쳐.”강세헌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분노에 휩싸여 있었고 당장이라도 주석민을 발로 차버릴 것 같았다.진원우는 얼른 말렸다.“대표님, 일부러 그러는 거예요. 진정하세요.”“내가 일부러 한 것인지 여부는 네가 송연아를 만나면 답이 나오겠지.”주석민은 자신만만했다.진원우는 주석민을 냉랭하게 바라보았다.“쓸데없는 말은 집어치우고 빨리 어디 있는지 말하세요. 시간을 끌수록 당신한테 이로울 게 없다고요!”이제 거의 끝난 간다고 생각한 주석민은 입을 열었다.“송연아는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으로 올 거야.”이 한마디 말에 강세헌과 진원우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미디브연구센터는 유럽에서 해마다 세미나를 열었다.그러나 올해 처음으로 한국에서 개최한다.“송연아가 미디브에 있다고요?”진원우가 물었다.강세헌도 뭔가 생각난 것 같았다.그러자 주석민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지난번 미국에 갔을 때, 미디브의 배후에 있는 지배주주들과 만났던적이 있었다. 그런데도 송연아가 그곳에 있는지 몰랐다는 사실에 진원우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송연아는 미국에서 제인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어.”진원우는 이름을 듣고 눈이 휘둥그레졌다.“당신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제인이라고요?”바로 그 기괴하기 그지없는 제인 주치의?다시 생각해 보니 그때 송연아의 배가 많이 나온 것 같았다.진원우는 송연아가 설마 진짜 다른 남자가 생겼을가 라는 생각을 하며 무의식적으로 강세헌의 눈치를 살폈다.아니나 다를까 강세헝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있었다!...공항에서.이번에 서원연구대학교에서 세미나 관련 인사들의 초대, 대응, 장소 및 숙소 제공을 담당했다.해외에서 온 사람들은 모두 안내 담당이 있었고 숙소가 마련되어 있었다.송연아는 주임과 또 다른 연구의사와 같이 호텔에 묵었
한 여자가 호텔 앞을 돌아 원형 분수대를 지나 밖으로 걸어가고 있었다.흰색 플라워 스커트에 검은색 앵클부츠를 신고 있었고 겉에는 카키색 롱 트렌치코트를 입고 있었다. 작고 하얀 종아리가 코트와 부츠 사이로 가끔 보였다. 임신 막달이 다가왔지만, 얼굴에는 붓기가 전혀 없었고 긴 머리가 어깨까지 드리워져 있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지만 사람 자체의 부드러움은 가릴 수 없었다.진원우는 차를 세웠고 강세헌은 차에서 내려 송연아를 향해 걸어갔다.송연아는 고개를 숙이고 있어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사람을 발견하지 못했다.갑자기 누군가가 앞을 가로막아 송연아는 오른쪽으로 지나가려고 몸을 오른쪽으로 향했다.그런데 송연아가 오른쪽으로 가니 앞사람도 따라서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다시 왼쪽으로 가면 또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송연아가 가려는 길을 계속 가로막았다.“저기요, 걸으실 때...”눈을 똑바러 뜨고 다니라고 말하려고 고개를 드는 순간 하려던 모든 말들이 목에 걸리고 말았다.송연아는 얼른 고개를 숙였고 목소리는 이미 떨리고 있었다.“비켜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딱 한 번의 눈 맞춤이었지만, 강세헌은 송연아의 눈빛을 알아보았다.송연아가 확실했다.“안 비켜주면?”정수리를 내리치는 것 같은 남자의 목소리는 분노를 억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송연아는 배를 잡고 돌아서려고 했다.그러나 강세헌은 그녀의 가녀린 손목을 붙잡았고 다짜고짜 그녀를 끌고 호텔로 갔다.송연아는 당황했다.귀국하자마자 강세헌에게 알아본 것도 모자라 이렇게 붙잡힐 줄은 상상도 못 했다.“사람 잘못 보신 것 같은데요.”송연아는 돌처럼 꿈쩍하지 않았다.“너 제인 아니지?”송연아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배가 많이 나와서 몸부림칠 엄두도 나지 않아 강세헌 손에 이끌려 말없이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그 사이 강세헌이 송연아를 이끌고 방 앞까지 걸어왔다.“키 내놔.”송연아의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당신, 내가 여기에 묶고 있는 걸 어떻게 알았죠?”강세헌은 더 이상 참지 못할
“강세헌, 날 사랑하지 않아도 되지만, 내 인격을 모욕하는 건 안 돼.”이어 문손잡이를 비틀었고, 잠금장치가 열리려는 순간 강세헌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미안해요.”그는 주석민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있는 말 없는 말 다 하는 주석민이 그에게 했던 말들은 정말 그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게다가 송연아의 배는 정말 많이 불러있었다.그래서 그가...“송연아, 내가 좋아하지 않는 여자가 나를 위해 10명의 아이를 낳아도, 나는 그녀와 함께 있지 않을 거야, 그날 내가 너랑 함께 있는 원인이 찬이 때문이라고 말한 건 강세욱이 널 다치게 할까 봐 두려워서였어. 내가 너를 신경 쓰는 모습을 보일수록 너한테 불리하니까...”송연아는 고개를 들었고 자신의 얼굴에 있는 흉터를 잊은 채, 몸을 떨기만 했다.놀라웠다.강세욱이 그녀를 해치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 말을 한 것이고 그동안 그녀가 오해하고 있었다고?강세헌의 시선은 그녀의 흉터에 닿았고, 눈동자의 색은 점점 짙어졌다...목이 메어서 소리가 나지 않았다.송연아는 그의 눈빛을 발견하고서야 정신을 차렸다.그녀는 황급히 흉터를 가리려고 허둥지둥했다.머리를 풀어 가릴지 옷깃을 잡아당겨 가릴지 몰랐다...어느 여자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이런 추한 모습을 보이고 싶겠는가.송연아는 고개를 숙였다.“보지 마요...”강세헌은 그녀의 얼굴을 감싸 안으며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눈이 마주치자, 한 명은 피하려고 했고 한 명은 애틋하게 바라보았다.얼굴에서 목까지 뻗은 상처, 화상의 흉터, 울퉁불퉁한 주름, 그리고 붉게 물든 그녀의 모습을 정면으로 똑똑히 바라보았다.얼굴은 정말 보기 좋지 않았다.심지어 추하기까지 했다.강세헌을 보는 그녀의 눈에는 섬뜩함과 가슴앓이만 보였다.송연아의 눈가가 촉촉해졌다.“보지 말라고요, 추해요.”그녀는 그가 이렇게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자신이 살면서 가장 못생긴 모습을 그에게 들키고 말았다.강세헌은 그녀를 품에 안은 채, 자기의 얼굴을 그녀의 흉터가 있은
송연아는 누구보다도 자신의 모습을 잘 알고 있었다.“거짓말.”“아니야, 정말이야.”그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얼굴을 만졌다.“많이 아팠지?”강세헌은 송연아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미안해...”강세헌은 자신이 그녀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기에 강세욱에게 잡혔다고 자책했다.그리고 자신이 사려 깊지 못하게 괜한 말을 해서 그녀를 오해하게 했다고 또 자책했다.송연아가 물었다.“내가 여기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어요?”그녀는 강세헌이 어떻게 자신을 발견했는지 의아했다.미국에 있을 때, 그렇게 가까이에 있었는데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 사람이었다.“주석민, 가만두지 않겠어.”강세헌은 이를 갈았다.그는 하마터면 주석민의 말에 넘어갈 뻔했다.이제 진정하고 생각해 보니 당시 주석민의 표정이 떠올랐다.그를 화나게 하려고, 그가 화내는 것을 보려고 고의적으로 그렇게 말한 것이 분명했다.“주석민?”송연아는 의아했다.“그 사람이 네가 다른 남자를 좋아하게 되어서 날 떠났다고 말했어...”“그가 그렇게 말했나요?”송연아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그래서 내가 다른 남자가 생겼고 더 나아가서 아이를 가졌다고 생각한 거예요?”“난... 안 믿었어.”그는 눈길을 피했다.속에 무언가가 켕기는 게 분명했다.비록 그는 그때 당시에 화가 많이 나 있었지만, 정말로 믿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화내지는 않았을 것이다.주석민이 한 말이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주석민은 송연아가 그를 떠난 원인이 그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만약 이것이 진짜라면?어쨌든 송연아가 떠난 진짜 이유를 몰랐던 건 사실이었다.하지만 지금은 다 알았다.그녀는 확실히 자신이 한 말 때문에 오해했다.그래서...“세헌 씨도 마음이 찔릴 때가 있네요?”그가 ‘아이는 누구 거야’라는 말을 꺼냈을 때, 다소 상처를 받았다.“마침 주석민한테 볼 일이 있었는데, 물어봐야겠어요. 왜 그런 말을 했는지. 함께 갈래요?”그녀가 물었다.사실 그녀는 확인하고
결혼식을 마친 후 방유정 아버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회사를 완벽하게 인계하려고 회사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임지훈은 송연아와 강세헌 일행과 같이 먼저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쪽 일을 마무리했다. 비록 임지훈이 회사에 있으면 강세헌은 보다 한가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냥 조금 더 바쁠 뿐이다. 어느 회사든 누가 떠나면 절대 안 되는 건 없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임지훈은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귀국해서 방씨 가문 회사에 들어갔다.임지훈도 국내에 집이 있었지만 방유정과 같이 방씨 가문에 들어갔다. 데릴사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유정 아버지의 병을 알고 방유정이 부모님과 많을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임지훈 역시 사위로서 그럴 의무가 있었다....반년 후, 방유정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방유정 어머니는 그 충격에 순식간에 많이 늙었다.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집안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는데 방유정의 대부분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예전의 임 비서는 이제 임 대표가 되어 그의 능력으로 방씨 가문은 아주 관리가 잘 되었고 3개월 후 방유정 어머니의 상황도 많이 좋아졌다.방유정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면서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간 일도 어느 정도 잊혀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방유정도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방유정 어머니 역시 곧 외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정말로 모두 행복해할 만한 일이었다.방유정이 임신 6개월 때 그들은 프랑스로 갔는데 구애린은 남자아이를 낳았고 심재경의 딸은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샛별이가 유일한 여자아이여서 모두가 예뻐했다. 샛별이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찬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찬이는 샛별이 다리가 짧다고 계속 놀려줬으며 그게 재밌다고 샛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찬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샛별이는 오빠라고 불렀는데 너무 귀여웠다.방유정이 말했다.“저도 딸을 낳고 싶어요.”구애린이 말했다.“그게
비록 손을 놓기 싫었지만, 방유정 아버지는 결국 방유정의 손을 임지훈에게 넘겨줬다.“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방유정도 아버지에게 말했다.“꼭 그렇게 할게요.”이어서 결혼식은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피로연까지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방유정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는데 딸이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을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나니 또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그런가 보다.임지훈은 방유정을 데리고 강세헌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는 비록 모두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모두 방유정을 다시 한번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심재경 친구의 사촌 동생이 아닌 임주훈의 아내로 말이다.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방유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윤이도 어른들 따라 한마디 했다.“축하해요.”방유정은 윤이를 보며 말했다.“너무 귀여워요.”그녀가 손을 뻗어 윤이의 얼굴을 만지자, 윤이가 손을 내밀었다.“안아줘요.”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야, 안 돼.”방유정이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윤이를 안으며 말했다.“무겁지 않아요.”윤이는 그녀의 머리에 있는 금색 비녀를 보고 만지려고 했다. 방유정이 한복을 입고 있었기에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다. 방유정은 아주 시원하게 바로 비녀를 빼서 윤이에게 주었는데 송연아는 윤이를 제지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다.“이러면 안 돼요. 오늘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괜찮아요.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에요. 윤이가 좋아하니 놀게 해요.”방유정은 정말 성격이 좋았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만큼 성품이 좋았다. 가끔 조금 오만하긴 하지만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그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달래려고 했다.“윤이 착하지. 이건...”송연아는 윤이가 방유정을 어떻게 부르면 될지 생각했는데 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호칭일 뿐이니까 편
“지금 막 들었는데 유정 씨와 결혼한다면서요. 지금 방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난리 났어요.”임지훈이 웃었다.“저 이래 봐도 능력 있는 남자예요.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아요. 봐요, 결혼도 금방 하죠?”구애린이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짝이 있네요.”찬이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지훈이 삼촌, 축하해요.”“고마워.”임지훈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심재경이 물었다.“그런데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하던데요?”심재경의 말에 모두 놀라며 시선이 일제히 임지훈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임지훈의 조건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데 말이다.“하긴, 방씨 가문에 가장이 필요하긴 해요.”심재경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마디 했다....임지훈의 결혼식으로 송연아와 강세헌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췄다. 아무도 심재경의 결혼식을 보러 왔다가 임지의 결혼식까지 보게 될 줄을 생각을 못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건 임지훈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듯이 방유정과의 결혼은 정말로 찰나의 결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 역시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임지훈이 진원우에게 말했다.“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진원우가 말했다.“그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방씨 가문은 돈도 많고 유정 씨도 예쁘고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만족해. 다만 너무 빠른 것 같아서 그래.”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결혼식은 방씨 가문에서 모두 준비했는데 방유정 딸 하나이고 또 사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방씨 가문의 친척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록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임지훈 측은 심재경이 준비했는데 심재경 본인도 금방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익숙한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방유정은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값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는
“잠도 잤는데 왜요? 모른 척하려고요?”방유정이 옷을 입더니 침대에서 꼼짝 안 하는 임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 거예요?”임지훈이 말했다.“내 옷을 가져오지 않았잖아요. 나 입을 옷 없어요.”방유정은 그제야 임지훈이 옷이 없다는 걸 생각했다.“가져다 줄게요.”그녀는 곧바로 차에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뭐 입을지는 알아서 찾아서 입고 내려와요.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방유정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지훈은 침대에서 내려 결혼 얘기이니만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방유정은 부모님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임지훈이 건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저기...”“우리 딸 줄게요.”“아니에요. 지훈 씨가 저한테 시집 오는 거예요.”방유정이 정정했다.“...”“...”“...”방유정을 제외한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유정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방유정은 자신이 여자이며 이 집안에 다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병이고 자기는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기에 어찌 보면 자기가 남편을 찾는다기보다는 방씨 가문의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찾는 거였다. 인제야 그녀는 부모가 조급해하는 의도를 이해했고 그녀 역시 가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임지훈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임지훈을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겠는가.“유정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임지훈은 뼈대가 있는 남자로서 데릴사위 할 생각은 없었다.방유정이 말했다.“후회하면 안 돼요!”“왜 안 돼요? 유정 씨가 뭘 원하든지 저 모두 만족시켜 줄 수...”“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방유정이 외치자, 임지훈은 오히려 우스웠다. 한 여자가 나한테 시집오라고 하다니!“우리 유정이가 시집가는 거 맞아요
지금 그녀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으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나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지? 결혼, 그래 결혼해야 해.’그녀는 자기가 결혼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상대도 지금 바로 방에 있지 않겠는가?‘남자 친구인 척을 해줬으니 이제 남편인 척해달라고 해야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도 되니까 결혼하자고 해야겠어.’방유정은 진료 기록부를 다시 원래 위치에 넣고 비틀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임지훈이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침대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자, 임지훈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는데 침대에 자기의 옷이 보이지 않아 방유정의 옆에 서서 물었다.“내 옷은요?”그는 방유정이 잊은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내 옷은 지금 당신 차 트렁크에 있어요.”방유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결혼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약을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었는데 임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울었어요? 누가 괴롭혔어요? 얘기해 봐요. 제가 가서 때려줄게...”임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방유정이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임지훈은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게... 유정 씨...”그가 말하려고 할 때 방유정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손이 아래로 드리는 순간 몸에 걸친 유일한 가운마저 벗겨져서 흘러내렸다.“...”방유정은 워낙 임지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 행동이 충격에 의한 도발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옷의 단추를 벗겨 가슴을 드러내고는 그의 가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저를 좀 봐봐요.”임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목젖을 굴렸는데 이름 모를 불길이 아랫배에서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딱딱해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임지훈도
방유정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하시는 거였다.“화이팅!”방유정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지금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만 좋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선 자리를 만들어주고 남자를 유혹하라고까지 하시다니?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이제 나가야 해.”방유정의 아버지는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나갔고 방유정은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차가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어차피 임지훈이 자고 있었기에 지루할 것 같아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임지훈을 놀려주려고 그가 곤히 자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가져다가 침대 옆에 앉아 임지훈에게 예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임지훈이 깨지 않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 오니 옆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임지훈은 이미 깨어나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언, 언제 깼어요?”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유정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훈의 얼굴은 정말로 오페라 가수 같았는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팠다. 임지훈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물었다.“다 웃었어요?”방유정은 곧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맘대로 제 몸에 손을 대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를 저에게 준다고 해도 거절이에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뭐라고요? 저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면 프랑스까지는 갈 거예요. 그런데 지훈 씨는 내가 싫다고요?”임지훈이 흠칫하자, 방유정이 그를 잡고 물었다.“지금 그
“방유정은 부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알았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어서 지훈 씨 방으로 데려가.”방유정이 물었다.“어느 방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 어떡해. 게스트룸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우선 네 방으로 데려가서 휴식하게 해.”방유정은 어머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아빠, 엄마,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어요? 어떻게 제 방에 술 취한 남자를 데려가라고 하세요?”“네 말대로 취했는데 뭐 어때?”“술김에 어떤 짓도 한다는 말 몰라요?”방유정이 묻자, 그녀의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몰라.”방유정은 철저히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과 임지훈이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임지훈이 그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나를 결혼시키고 싶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만약 진짜로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바로 결혼시킬 거야.”임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바탕 뿜었다. 방유정의 부모님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본인이 천당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귀여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방유정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말이야.’방유정은 역겨워하며 말했다.“지훈 씨,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화장실로 가야지.”“취했잖아.”방유정 어머니가 가정부를 불러 치우게 했다.“그만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어서 방으로 데려다 쉬게 해.”방유정은 혼자서 임지훈을 옮길 수 없어서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임지훈을 침대에 던졌는데 임지훈은 몸이 포근한 세계에 떨어진 듯 따뜻하고 향기로웠다.“무슨 향수를 써요?”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유정이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임지훈은 취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말짱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말했다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해명하지 않아도 화는 나지 않았을 건데, 굳이 해명하니 용서해 줄게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아요. 그럼 좋은 말이 안 나가니까.”“...”임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그때 방유정의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집어 그의 앞접시에 건넸다.“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요리인데 맛봐요.”임지훈이 집어서 입어 넣고 먹어보더니 말했다.“맛있습니다.”방유정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방유정 아버지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평소 주량이 어떻게 돼요?”임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못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잘 마실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네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방유정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아빠, 지훈 씨는 일이 바빠서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요.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술을 많이 주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네. 그러니까 한 잔씩만 해요.”말하면서 방유정은 술을 가져갔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분위기를 깬다.”방유정이 말했다.“두 분의 건강을 생각해서예요.”방유정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임지훈에게 한 잔 따르고 또 남편에게도 한 잔 따랐다.“많이 마시게 되면 우리 집에 방이 많으니 그냥 휴식하면 돼요. 비행기는 내일 타면 되는데 급해 할 거 없잖아요.”방유정은 어머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엄마, 이 사람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서 잠을 자래요?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요?”“걱정하지 마. 조사해 봤는데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방유정과 임지훈이 순간 놀랐다. 방유정은 평생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체면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었다.방유정 아버지는 아내를 힐끗 쳐다
“지훈 씨는 취미가 뭐예요?”방유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임지훈은 방유정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생활을 떠올렸는데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심재경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더구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의 생활이 정말로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내를 맞이해서 함께 서로 보살펴주며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만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방유정을 바라봤는데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유정은 아직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은 모를 것 같았다.“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방유정의 물음에 임지훈이 되물었다.“어디가 이상한데요?”방유정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왜요?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죠?”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당신은 성격도 안 좋고 또 엄청 잘난체하는데 내가 왜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들어가요.”시간을 보며 임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굶었어요?”방유정이 그를 비웃었다.“식사 끝나면 저는 가도 되죠.”방유정은 순간 왠지 서운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여기는 제집이 아닌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방유정은 그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자, 임지훈은 의아해했다.“왜 그래요?”“내가 뭐요?”방유정은 짜증을 냈다.“유정 씨는 정말 변덕이 많네요. 그걸 고쳐요. 남자들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방유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임지훈은 고개를 돌려 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방유정이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만 보였기에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