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장내가 술렁거렸다.학부모들은 썩 내키지 않았다. 반나절이나 열심히 해왔는데 최종 성적을 취소하다니!“왜죠? 우리 아이들이 오후 내내 고생했고 저희도 여기서 반나절이나 기다렸는데 왜 성적을 취소하는 거죠?”“그러게요. 아이 때문에 일부러 반차까지 냈단 말이에요.”“성적 취소라니, 대체 무슨 일이에요? 저희한테 설명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관중석의 학부모들이 흥분하며 뿔뿔이 내려와 현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참가 학생들도 어안이 벙벙해졌다.“다들 진정하세요. 실은 방금 누군가가 심사위원으로 사칭했다는 정보를 입수해서 부득이하게 대회 결과를 취소하게 되었습니다.”아래의 원성이 더욱 거세졌다.“대체 어떻게 된 거죠? 사칭이라니요!”“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거예요? 이런 실수를 범하다니!”장내에 온갖 불만이 끊이지 않았다!방금 송연아와 얘기를 나누던 남자도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그녀에게 다가가 나지막이 물었다.“연아 씨 일이 발각된 거 아니에요?”송연아는 이 모든 게 자신을 겨냥한 일이란 걸 너무 잘 알았다.지금쯤 임설은 아마도 어딘가에 숨어서 그녀가 망신당하는 꼴을 지켜볼 게 뻔하다.송연아는 두려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그럼 어떡해요?”남자가 제안했다.“먼저 나가실래요?”송연아는 못 나간다는 걸 뻔히 알면서 일부러 그의 말에 찬성했다.“좋은 방법이네요.”말을 마친 그녀가 이제 막 나가려 하자 임설이 어느 모퉁이에서 튀어나왔는지 그녀를 덥석 잡더니 불만을 표출하는 학부모들에게 말했다.“바로 이 사람이에요. 이 사람이 심사위원으로 사칭했어요. 춤출 줄은 아예 모르고 심사위원이 될 자격은 더 말할 것도 없죠. 그래서 이번 대회 결과를 취소하기로 했어요. 다들 불만 있으면 이 사람한테 따지세요.”그녀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모든 화살이 송연아를 향했다.송연아는 머리를 숙이고 진짜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저 멀리에서 이제 막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강세헌만이 그녀의 눈가에 스친 냉랭함을 보아냈다.
임설은 무슨 큰 꼬투리를 잡은 듯이 득의양양하게 말했다.“내가 장담하건대 넌 아무것도 모르면서 심사위원으로 사칭하고 있어. 참가 학생들의 노력을 허비했고 학부모님들의 시간도 지체했지. 진짜 너무 궁금해서 묻는 건데 넌 도대체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올라온 거야?”“뭘 어떻게 올라와. 저 가냘픈 꼴 좀 봐, 몸 팔아서 올라온 게 뻔하지...”그 사람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송연아의 싸늘한 눈빛을 마주하더니 순간 쫄아버렸다.줄곧 그녀를 편들던 남자 심사위원마저 송연아의 눈빛에 화들짝 놀랐다.마냥 연약해 보이던 그녀가 갑자기 날카로운 눈빛으로 돌변하다니, 좀 전과 너무 대조적인 모습이었다.“내가 춤을 못 춘다고? 만약 추면 어쩔 건데?”송연아가 물었다.임설은 여전히 안 믿는 눈치였다.“그럴 리 없어. 만약 네가 춤출 줄 알면 내가 맨손으로 스포츠센터를 청소할게.”송연아가 나지막이 되물었다.“약속 지키는 거지?”임설은 이런 송연아의 모습에 아직도 그녀가 켕기는 거라 여기며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당연하지. 여기 있는 사람들이 증인이 돼줄 거야.”아래에서 누군가가 맞장구를 쳐주었다.“그래요, 우리가 증인이 돼줄게요.”사실 다들 기적을 바랐다. 송연아가 춤을 잘 춰야만 참가 학생들도 다시 겨룰 필요가 없으니까.물론 일부 잘하지 못한 학생들의 학부모는 다시 겨룰 기회를 원했다.하지만 대부분 학부모들은 다시 겨루길 바라지 않았다!“어떤 곡으로 하실래요?”남자 심사위원은 송연아가 전에 연약한 척했다는 걸 다 알아챘다!그녀가 감히 이렇게 말한다는 건 충분히 자신감이 있다는 뜻이다. 안 그러면 쉽게 이런 말을 내뱉지 못할 테니까.송연아는 가장 자신 있는 곡으로 선택했다.임설은 문득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네가 감히 춤을 춰?”“못할 게 뭐야?”송연아는 코트 단추를 풀어헤쳤다. 그녀는 안에 춤추기 딱 좋은 치마를 입고 있었다.이를 본 임설은 입이 쩍 벌어졌다.‘진작 준비를 해왔어?! 완전 잘 어울리는 원피스까지 입고 왔잖아!’“아니,
임설은 치가 떨려 목소리까지 떨었다.“네가 일부러 그런 거니까 난 동의할 수 없어.”이 큰 스포츠센터를 그녀 홀로 청소하려면 두 날도 더 걸릴 것이다. 게다가 맨손으로 청소하다니, 이 굴욕을 어떻게 견디란 말인가? 그녀는 앞으로 직장에 다닐 엄두조차 안 났다.남들이 그녀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까?송연아를 해치려 했던 건 그녀에게 먼저 이용당했기 때문이다. 임설은 그녀를 너무 쉽게 믿어버려 강세욱을 해쳤다. 이 수모를 견딜 수가 없어 송연아를 난처하게 만들고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주려고 했는데 정작...임설은 몇 번이고 송연아에게 덮쳐들어 목을 졸라 죽이고 싶었다!송연아가 그녀 가까이 다가갔다.“스포츠센터를 다 청소할 필요 없어. 내 물음에 솔직하게 대답하면 돼.”“그게 뭔데?”임설은 선택의 여지가 있을 줄 몰랐다.“네가 송예걸에게 문자 보냈지? 백수연도 네가 감방에서 빼내서 어딘가에 숨겼지?”송연아는 드디어 원하던 바를 물었다.임설은 어안이 벙벙했다.“송예걸은 뭐고 백수연은 또 누구야?”송연아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가 거짓말하는지 세심하게 관찰했다.“아닌 척하지 마.”“내가 왜 아닌 척해야 하는 건데?”임설은 진짜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지었다.“송예걸, 백수연 그게 다 누구냐고? 내가 왜 그들을 잡아가?”임설이 부정했고 송연아는 그녀의 표정에서 전혀 이상한 낌새를 발견하지 못했다. 순간 송연아도 어쩔 바를 몰랐다.“인정하지 않으면 네가 한 약속 지켜. 스포츠센터를 깨끗이 청소해. 다들 지켜보고 있으니 약속 어기지 마.”말을 마친 송연아는 무대 아래에 내려와 스태프에게 말했다.“시간이 너무 늦었어요. 더는 지체하지 말고 얼른 마지막 라운드를 시작해요.”이젠 바보 멍청이라 해도 누구의 계략인지 눈치챘을 것이다.임설이 송연아를 해치려다가 도리어 제 발등 찍힌 격이 되었다!임설은 멘탈이 나가기 일보 직전이었지만 겉으론 어쩔 수 없이 버텨내야 했다.그녀는 이번 사건의 웃음거리로 전락했다.빨개진 그녀의 얼굴은 곧 터질
다가온 남자는 좀 전의 심사위원이었다. 송연아가 까먹고 옷을 챙기지 않아 옷을 주러 왔는데 마침 그때 임설이 그녀의 머리채를 잡았다. 그 남자가 재빨리 나서서 도와주려고 할 때 누군가가 한발 앞섰다.“여기 코트요.”남자 심사위원이 옷을 건넸다.송연아가 받으려 했지만 강세헌이 먼저 가로채 갔다. 그는 고마운 뜻이 전혀 없고 도리어 차가운 눈길로 심사위원을 째려봤다.송연아가 춤출 때 그는 이 남자가 넋이 나간 얼굴로 송연아를 쳐다보는 걸 주의 깊게 지켜봤다.지금 설마 코트를 돌려주는 빌미로 집적대려는 걸까?송연아는 그런 강세헌이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옷을 까먹고 못 챙긴 건 사실이니까. 송연아는 웃으며 남자 심사위원에게 말했다.“고마워요, 오늘 너무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아니에요.”남자 심사위원이 쑥스럽게 웃으며 물었다.“이분은...”“제 남편이에요.”송연아가 대답했다.오늘 강세헌은 옷에 힘을 좀 뺐다. 남자 심사위원은 그가 평범한 사람인 줄 알고 저도 몰래 위아래로 훑어보았다.‘나보다 키 좀 크고, 살짝 잘생긴 거 말고는 별 볼 거 없는데? 게다가 나처럼 자상하지도 않잖아.’그는 강세헌의 차가운 눈빛을 바라보며 그의 성격이 난폭하다는 걸 알아챘다.“연아 씨...”남자 심사위원이 이제 막 말하려 할 때 강세헌이 아예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우리 이만 가자.”그는 남자 심사위원의 말을 잘랐다.송연아는 그런 강세헌을 힐긋 쳐다볼 뿐 아무 말 없이 순순히 따라갔다.그녀는 차에 타서야 입을 열었다.“기분 나빠 보이는데 혹시 방금 심사위원을 경계하는 거예요?”강세헌은 침묵하며 차에 시동을 걸었다.송연아는 그를 너무 잘 알아 아무 대답 없으니 더 캐묻지도 않았다.그의 성격은 이렇듯 난폭할 따름이니 송연아가 화제를 돌렸다.“내 생각에 이번에 찬이를 해친 사람이 바로 임설인 것 같아요. 어쩌면 배후에 조력자가 있을지도 몰라요.”이건 단지 그녀의 추측일 뿐이다.임설에게 그럴만한 동기가 있으니까.“임설은 백수연을
그는 목소리를 한껏 내리깔았다.송연아는 그런 그가 너무 수상했다.“뭘 웃어요? 내가 우스워요?”“아니.”강세헌이 대답했다.“내가 웃겨서 그래. 아버님 속임수에 홀딱 넘어갔잖아.”송연아는 한참 침묵하다가 그의 뜻을 알아차리고 함께 웃었다.“그럼 이런 내가 좋다는 거죠?”그녀가 물었다.강세헌은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대답했다.“좋아.”그는 또다시 한마디 덧붙였다.“너라서 좋은 거야.”말인즉슨 그녀가 이런 재능이 없어도 여전히 좋아할 거란 뜻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이러한 재능이 있으니 더 눈부신 것도 사실이다.송연아도 더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 어찌 됐든 이게 바로 그녀이니까.그녀는 또다시 임설에게 화제를 돌렸다.“아무튼 이번에 나한테 당했으니 다음에 또 무슨 수작을 부릴지 몰라요.”“임지훈한테 사람을 시켜서 강씨 일가 식구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라고 할게.”강세헌이 말했다.그는 아주 홀가분하게 말했다. 담담하고 흔들림 없는 그 말투는 마치 그들이 중요하지 않은 사람인 것만 같았다.송연아는 자신이 아무런 도움이 못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내가 할 수 있는 건 세헌 씨한테 최대한 폐 끼치지 않는 거겠네요.”그녀는 업무상의 일을 도와주고 싶어도 그럴 능력이 안 됐다.“아 참, 나 병원 다녀와야 해요.”송연아는 아직 병원에 가서 송예걸을 보지 못했다.“예걸이가 찬이한테 약을 탄 일로 당신이 걔를 엄청 미워하는 거 나도 다 알아요. 하지만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에 예걸이를 내게 맡겼으니 상관 안 할 수 없어요.”강세헌은 아무 말도 없었지만 차가 이미 병원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곧이어 병원에 도착했고 송연아는 그가 송예걸을 보고 싶지 않을 거란 생각에 이렇게 말했다.“나 좀 오래 있어야 할 것 같아요. 먼저 돌아가요.”강세헌은 확실히 송예걸을 보고 싶지 않았다.“기사한테 데리러 오라고 할게.”송연아가 대답했다.“네.”그녀는 계단에 서 있다가 강세헌의 차가 사라진 후에야 병원에 들어갔다.그녀는 한혜숙에게 전화
송예걸이 황급히 얼굴을 가렸다.“아니에요. 아무것도...”“정말?”송연아는 그에게 물을 따라주었다.그녀는 동생의 말을 전혀 안 믿었다.송예걸은 눈길을 피하더니 재빨리 핑계를 둘러댔다.“회사 일이에요. 지난번 일이 해결됐거든요.”송연아는 머리를 끄덕였다.“아주 잘했어.”“그렇지만 아이디어는 누나가 준 거예요.”송예걸이 말했다.그는 살짝 질투 났지만 송태범의 안목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송연아가 회사를 경영하는 건 더없이 완벽한 결정이다. 이는 비록 그녀의 강점은 아니지만 그녀는 뭐든지 빨리 배우는 편이다!“난 너보다 몇 살 위라 생각을 좀 더 많이 할 뿐이야. 몇 년 후엔 네가 분명 날 뛰어넘을 거야.”송연아가 그를 격려했다.사실 송태범이 돌아간 이후로 송예걸은 전보다 훨씬 많이 성숙해졌다.송예걸의 얼굴에 모처럼 미소가 번졌다.“난 괜찮으니까 누나도 돌아가서 찬이를 돌봐요.”송예걸이 대답했다.“그래 그럼.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하고.”송연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잊지 말고 물 마셔.”송예걸은 바로 안 다친 손으로 컵을 들었다.“안 잊어요.”송연아는 머리를 끄덕이고 병실을 나와 문을 닫았다.그녀는 복도에서 한혜숙과 마주쳤는데 송예걸에게 먹을 것을 사 왔는지 음식을 들고 있었다.“예걸이 보러 왔어?”한혜숙은 딸을 보니 너무 기뻐 미소를 지었다.송연아는 머리를 끄덕이고 한혜숙이 든 물건을 보며 물었다.“엄마가 만들었어요?”“병원 밥은 맛도 없고 영양도 없잖아.”한혜숙이 대답했다.그녀가 송예걸을 대하는 세심함이 송연아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진짜 송예걸을 제 아들로 생각하는 걸까?한혜숙은 딸의 속내를 파헤치고 사랑스러운 눈길로 지그시 바라봤다.“질투해?”송연아가 머리를 내저었다.“아니요, 어쨌거나 걔는 백수연 아들이잖아요.”백수연 때문에 한혜숙과 송태범의 결혼생활이 파탄 났다.다만 한혜숙은 이젠 다 내려놓았다. 송태범은 죽었고 백수연도 자신이 저지른 죄의 대가를 치르고 있으니까.송예걸은 그저
집에 돌아간 후 송연아는 손부터 씻고 찬이를 보러 갔는데 뜻밖에도 오은화가 아기를 안고 있었다.“아주머니.”송연아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오은화가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도련님께서 오라고 하셨어요. 여기 봐주는 사람이 없으면 안 된다고 하시더라고요.”강세헌은 낯선 사람을 찾는 게 마음이 안 놓여 오은화를 불러왔다.송연아는 아주머니가 돌아오자 매우 기뻤다. 전에 별장에 있을 때 아주머니는 그녀에게 엄청 잘해줬다.아주머니는 참으로 자상한 분이었다.“아주머니가 있으면 제가 훨씬 홀가분하죠.”송연아가 웃으며 말했다.그녀는 오은화의 품에서 아기를 안아왔는데 마침 깨어 있었다.찬이가 표정을 살짝 찡그리자 송연아는 바로 응가 했다는 걸 알아채고 아기의 콧등을 살짝 꼬집었다.“찬이 응가 했구나.”오은화가 말했다.“제가 기저귀 갈게요.”송연아는 스스로 하려 했다.아들에게 늘 빚진 것 같았고 아이를 챙길 시간이 별로 없었는데 인제 드디어 함께할 수 있었다.“그럼 제가 물 받아올게요.”송연아는 머리를 끄덕인 후 찬이를 내려놓았다.그녀는 더러워진 기저귀를 빼서 휴지통에 버리고 물티슈로 아기 엉덩이를 닦아주었다.“세헌 씨는 나갔어요?”그녀가 무심코 물었다.오은화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네, 전화 받고 바로 나가셨어요.”“그래요.”송연아는 아기를 안고 쪼그리고 앉아 엉덩이를 깨끗이 닦아주었다. 찬이도 아마 개운해졌는지 생글생글 웃으며 잠들 기미가 없었다.송연아는 아이와 함께 놀아주었다. 찬이는 이젠 앉을 수 있어 그를 소파에 앉히고 장난감으로 놀아주었다.이때 오은화가 불쑥 한마디 건넸다.“사모님도 참 깊숙이도 숨기셨네요. 별장에 그렇게 오래 지내셨는데 저는 사모님이 임신하신 줄도 전혀 몰랐어요.”그녀는 여기 와서 아기를 보더니 경악을 금치 못했다.송연아가 낳은 아이란 걸 알게 된 후 그녀는 놀라서 한참이나 말을 잇지 못했다!깊숙이도 숨기다니.송연아는 가볍게 웃을 뿐 딱히 해명하지 않았다. 상황이 하도 복잡하니까.“저는 너
“왜 아직도 안 자?”강세헌이 다가왔다.“나 때문에 깼어?”송연아가 대답했다.“아니요, 쭉 당신을 기다렸어요.”그녀는 말하면서 침대에서 내려와 그에게 다가가더니 품에 쏙 안겼다.그녀의 행동에 살짝 놀란 강세헌은 몸이 굳어버렸지만 웃으며 되물었다.“왜 그래?”송연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다.“그냥 안고 싶어서요.”강세헌은 고개 숙여 그녀를 바라봤다.“일단 이거 놔. 씻고 오면 다시 안아 줘. 지금은 너무 더럽단 말이야.”송연아는 놓아줄 기미가 없이 오히려 더 세게 끌어안았다.두 사람은 몸이 바짝 달라붙었다.강세헌이 나지막이 물었다.“너 무슨 일 있지?”왠지 그녀의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았다.송연아는 그의 품에 머리를 비비며 말했다.“앞으론 내가 있는 곳이 바로 우리 집이에요. 세헌 씨를 더 많이 사랑해줄게요.”강세헌은 그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흐릿한 불빛 아래 떨리는 그의 눈빛과 미세하게 움찔거리는 몸까지, 그녀는 다 느낄 수 있었다.강세헌은 목소리를 내리깔고 그녀에게 물었다.“연아야, 오늘 무슨 일 있었어?”“아니요. 그냥 세헌 씨가 보고 싶었고 만나면 꼭 안아주고 싶었어요.”송연아는 고개 들고 발꿈치를 살짝 올려 그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강세헌은 흠칫 놀라더니 곧바로 진한 키스로 응답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어가지 않았다.“가서 씻을게.”송연아도 그가 오늘 이상해 보였다. 예전 같으면 강세헌이 먼저 그녀를 안아줬을 텐데 말이다.이렇게 빨리 그녀에게 흥미를 잃은 걸까?송연아는 불쑥 든 생각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세헌 씨, 이렇게 빨리 나한테 질렸어요?”“허튼소리!”그는 여전히 송연아를 터치하지 않았다.“나 돌아와서 죽은 사람 봤어. 안 좋은 기운을 너한테 주고 싶지 않아서 그래.”송연아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의사로서 죽은 사람을 너무 많이 봐왔으니까.병원에서 매일 사람들이 죽어 나가니 그녀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다만 궁금할 따름이었다.“누군데 밤에 만났어요?”강세헌이 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