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원우가 물었다.“언제부터 사람이 이렇게 좋아졌어요?”구애린이 희번덕거렸다.“나 원우 씨에게는 항상 잘해줬거든. 내가 언제 섭섭하게 한 적이 있어? 있으면 한 번 말해봐.”진원우는 침대에 누워 그녀를 끌어안으며 말했다.“아니에요, 농담한 거예요. 애린 씨가 착하고 따뜻하고 자상한 아내라는 걸 잘 알고 있죠.”말을 마친 후 그는 구애린의 귓가에 뽀뽀했다.구애린은 간지러운지 목을 움츠리고는 말했다.“됐어, 그만해.”진원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뽀뽀 세례를 퍼부었다.“안아주고 싶어요.”구애린이 돌아누워 그의 품에 얌전히 안겼다.두 사람은 서로 껴안은 채 침대에 누워있었는데 이 순간이 그저 평온하고 행복하기만 했다.하지만 기쁨도 잠시, 진원우의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그가 통화버튼을 눌렀는데 심재경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우리 레스토랑에 있으니까 내려와.”진원우가 대답했다.“알겠어.”그가 전화를 내려놓은 후 구애린이 물었다.“식사하러 오라는 전화지?”진원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구애린이 또 말했다.“그럼 얼른 가.”진원우가 옷을 정리하고는 구애린을 바라보며 또 한 번 물었다.“정말 안 갈 거예요?”구애린이 고개를 끄덕였다.“응, 정말 안 가. 너무 피곤해.”진원우는 허리 숙여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될수록 빨리 돌아올게요.”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나 진짜 괜찮아. 원우 씨 안 기다릴 거야. 나 좀 잘 테니까 너무 나 걱정하지 않아도 돼.”그녀가 배려할수록 진원우는 가슴이 아팠다.그는 미련이 가득 남은 채로 방을 나섰다.레스토랑에 도착하니 다른 사람들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임지훈이 그에게 장난치며 말했다.“역시 아내가 생기니까 달라졌어.”진원우는 그의 옆자리에 앉고는 말했다.“많이 부러운가 봐?”“내가 너를 부러워해?”임지훈이 말했다.“장난치지 마. 나 혼자라서 너무 편하거든...”“이 테이블에 앉아 있는 남자들 중에 너만 아빠가 된 기분이 어떤지, 남편이 된 기분이 어떤지 모르는 거잖아.
임지훈이 웃으며 말했다.“심 선생님답지 않게 왜 그렇게 예의를 차려요?”심재경은 일부러 그의 술잔을 가득 채우며 물었다.“제가 평소에는 어떤데요?”임지훈은 한참 고민하는 척하더니 대답했다.“아무튼 좋은 사람은 아니죠.”심재경이 말했다.“저를 모함하면 안 돼요. 아내 될 사람이 옆에 앉아있는데. 만약 지훈 씨 말을 믿고 나와 결혼하지 않으려고 한다면 지훈 씨가 책임지세요.”임지훈이 한숨을 푹 쉬고는 말했다.“나는 여자도 없는데 심 선생님까지 책임져야 하나요? 차라리 저 자신을 내줄게요.”“꺼지세요. 안 받겠습니다.”심재경이 곧바로 사양했다.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사람들은 모두 심재경과 안이슬을 진심으로 축하했다.두 사람이 다시 여기에 오기까지 정말 힘들고 긴 시간을 보냈다. 결코 쉽게 얻은 행복이 아니었다.“자, 앞으로 계속 행복하길 바라요.”임지훈이 술잔을 들어 말하고는 심재경도 술잔을 들어 그와 건배했다.잇따라 진원우도 축하를 건넸다.“꿈을 이룬 걸 진심으로 축하해.”심재경은 다시 술잔에 술을 가득 채우고는 진원우와 건배하면서 술을 쭉 들이켰다.송연아가 주스가 담긴 잔을 들고 말했다.“술 대신 주스로 축하할게요. 두 사람 결국 이뤄져서 축하해요.”심재경이 말했다.“고마워.”두 사람이 건배하고는 쭉 들이켰다.사람들은 저마다 웃고 떠들며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식사가 끝났을 때쯤 심재경은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취해버렸다.안이슬은 송연아와 얘기를 나누고 싶어 심재경을 호텔 방에 데려다 놓고 쉬게 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은 채 안이슬과 함께 호텔을 떠났다.그들은 강변으로 갔는데 저녁에 강변에서 산책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그들도 산들바람을 맞으며 산책을 시작했다.윤이는 스스로 걷겠다면서 내려달라고 했다. 아주 늦게 걸었지만 말이다.안이슬은 윤이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이모 손을 잡아.”윤이가 작고 부드러운 손을 내밀어 안이슬의 손을 잡았다.“애들은 좋겠다, 걱정할 일이 없어서.”안이슬이 탄식하며 말했다.
윤이는 짧은 다리로 씩씩하게 달려갔다.안이슬이 뒤에서 쫓아오며 말했다.“천천히 가, 그러다 넘어져.”윤이는 손을 뻗어 곧바로 바람개비 하나를 집어 들었다.노점 상인은 아이가 워낙 귀여운지라 개의치 않아 했다. 그리고 아이가 집어 들었으니 어른은 분명 돈을 지불할 것이라 걱정할 것도 없었다. 노점 상인은 바로 이런 아이들을 좋아했다.안이슬은 윤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노점 상인에게 물었다.“얼마예요?”“3000원이요.”노점 상인의 말에 안이슬은 돈을 물었다.오늘은 바람이 불었다.바람을 맞으면 바람개비가 신나게 돌아가 윤이는 꺄르륵 웃었다.아이들은 이렇게 순진했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 오랫동안 즐거워하곤 한다.‘사람은 아무래도 어린아이일 때 가장 즐겁겠지? 근심 걱정도 없고 말이야.’...강변에서 돌아간 후 송연아는 챙겨온 선물을 안이슬에게 건넸다.안이슬이 건네받으며 물었다.“축의금이야?”송연아가 눈을 희번덕거렸다.“축의금은 결혼식을 할 때 줄 거예요.”안이슬이 웃었다.“그럼 잘 받을게.”“당연히 받아야죠.”그녀가 정성을 들여 고른 선물인데 말이다.“일찍 들어가서 쉬어요.”송연아가 말했다.“샛별이를 하루 동안 못 봤잖아요. 샛별이도 엄마가 보고 싶을 거예요.”안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심재경은 호텔에서 쉬고 안이슬은 집으로 돌아갔다.이튿날 아침, 심재경은 일찍 집으로 돌아갔는데 안이슬은 혼자 아침을 먹고 있었다.어제 옷을 그대로 입고 있어 쭈글쭈글한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어제 너무 신이 나서 많이 마셔버렸네.”안이슬은 숟가락을 내려놓더니 그에게 다가가고는 거뭇거뭇 자라난 수염을 보며 말했다.“얼른 가서 씻고 와서 아침 먹어.”심재경이 그녀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화났어?”“화 안 났어.”분위기가 워낙 화기애애했기에 심재경은 술을 내뺄 수도 없었다.“다음부터는 술을 많이 마시지 않도록 주의할게.”“응.”안이슬이 대답했다.심재경이 씻는 사이에 안이슬은 주방에서 달걀프라이도 하고 우유도 덥혔다
그는 문에 기댄 채 두 손을 주머니에 꽂았다.따뜻한 햇살은 안이슬과 샛별이 위에 쏟아져 두 사람은 마치 금빛 아우라를 뒤덮은 듯했고, 몽롱한 분위기 때문에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리기도 했다.심재경은 다가가 안이슬을 끌어안았다.그는 이 순간이 꿈일까 봐, 깨어나면 모든 게 사라질까 봐 두려웠다.안이슬은 몸이 경직되었다.그녀는 두려운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말했다.“왜 그래? 나 샛별이 엉덩이 닦아주고 있었는데. 이렇게 나 안으면 기저귀를 어떻게 갈아? 얼른 비켜.”심재경이 그녀를 놓아주기는커녕 오히려 더 꼭 끌어안았다.“이대로 가만히 안고 있으면 안 돼?”그는 팔로 안이슬을 껴안으며 말을 이어갔다.“이슬아.”“응?”안이슬이 고개를 들자 심재경은 웃으며 말했다.“나 지금 꿈꾸고 있는 거 아니지? 네 목소리, 네 숨결, 모두 꿈만 같아.”“아직 술이 안 깬 거 아니야?”심재경이 그녀를 향해 애교를 부리면서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깼어. 깼는데 방금 너와 샛별이를 보니까 너무 행복한 거야.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라면 내가 전에 겪었던 일들은 충분히 가치가 있어.”안이슬은 갑자기 지나간 일들이 머릿속에 하나둘씩 떠올랐다.멀리 느껴지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바로 어제 일처럼 느껴지기도 해 마음이 복잡했다.안이슬이 그에게 또박또박 말했다.“꿈꾸고 있는 거 아니야. 나도 꿈꾸고 있는 거 아니고. 우리 함께 있는 거 맞아.”심재경은 그녀를 껴안으며 이 순간의 행복을 만끽했다.“이대로 평생 살았으면 좋겠다.”안이슬은 창밖을 바라봤다.그녀도 이대로 평생 평범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랐다.샛별이도 마치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걸 아는지 울지도 않고 조용히 눈만 깜빡거렸다.한참 지난 후.샛별이는 잠이 들었고 안이슬은 아이에게 기저귀를 마저 입혀 줬다.심재경은 테이블 앞에 서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나 열어본다?”“오늘 왜 그렇게 궁금한 게 많아?”심재경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는 단지 송연아가
안이슬은 메이크업실에 앉아있었는데 전문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메이크업을 해주고 있었다.오늘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였다.송연아가 그녀의 옆을 지켰다.찬이가 동글동글한 큰 눈을 깜짝이며 말했다.“오늘 이슬 이모 너무 예뻐요.”안이슬이 거울에 비친 찬이를 보며 말했다.“찬이 말을 너무 예쁘게 잘하네.”찬이가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저 진심인데요.”안이슬은 그런 찬이 덕분에 미소를 활짝 지었다.“찬이를 데리고 있으면 윤이는 어떻게 해?”안이슬이 송연아에게 물었다.“윤이는 어려서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세헌 씨에게 맡겼어요.”찬이는 송연아 따라 얌전히 이곳에 있었다. 하지만 윤이라면 얘기가 달랐을 것이다.아이들은 그래도 좀 커야 키우기가 쉬워진다.안이슬이 말했다.“찬이 많이 컸네.”찬이가 뿌듯한 표정을 짓고는 말했다.“당연하죠. 엄마가 그러셨는데요, 제가 이 바닥의 맏이라고요.”“이 바닥?”안이슬은 미처 반응하지 못해 찬이가 설명했다.“윤이가 저를 형이라고 불러야 하잖아요. 고모의 아기도 나보다 어리고. 샛별이도 저를 오빠라고 불러야죠, 모든 아기들이 나보다 어리니까 제가 맏이 아니겠어요?”안이슬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구나, 우리 찬이 맏이가 맞네.”찬이는 듬직하게 말했다.“이슬 이모, 앞으로 샛별이를 돌보는 일은 저에게 맡기세요. 샛별이가 학교를 가도 제가 지켜줄 거예요. 저는 샛별이의 슈퍼맨이 될 거예요.”안이슬이 웃으면서 대답했다.“알겠어.”송연아는 안이슬을 놀렸다.“정말 샛별이를 우리 찬이에게 맡길 생각이에요? 우리 찬이가 샛별이 채가면 어떻게 해요?”“채가면 나야 좋지. 다른 사람이 채갈 바에는 찬이가 채가는 게 좋겠어.”안이슬도 웃으며 말했다.농담조로 한 말이었지만 안이슬의 진짜 속내이기도 했다.찬이는 결코 샛별이를 괴롭히지 않을 거지만 다른 사람이면 몰랐다. 걱정할 바에 차라리 찬이에게 맡기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엄마, 그게 무슨 뜻이에
구애린이 찬이를 확 끌어안고는 말했다.“언니, 너무 조심하는 거 아니에요? 나 진짜 괜찮아요. 찬이도 내가 좋아서 안기는 거잖아요. 어떻게 찬이를 밀어내겠어요?”“그래도 버릇없게 구는 걸 가만히 내버려두면 안 되죠.”“아이가 많은 것도 아니고 찬이랑 윤이, 둘뿐이잖아요. 좀 많이 예뻐하면 뭐 어때요.”구애린이 찬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찬이야, 안 그래?”찬이는 포도알 같은 두 눈을 깜빡이더니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고모 말이 맞아요.”송연아는 찬이의 엉덩이를 툭 쳤다.안이슬도 맞장구를 쳤다.“찬이가 아무리 아이들 중에서 맏이라고 해도 어린애잖아. 많이 예뻐해야지.”“엄마, 들으셨어요? 이슬 이모랑 고모가 저를 많이 예뻐하래요.”송연아가 말했다.“너 솔직하게 말해봐. 엄마가 너를 안 예뻐해?”찬이는 구애린의 품에 숨으며 말했다.“고모가 엄마보다 저를 더 사랑해요.”송연아는 어이가 없어 웃음을 터뜨렸다.“그래, 앞으로 고모 집에서 살아. 나 따라오지 마. 앞으로 나는 아들이 윤이 하나뿐이야.”찬이는 곧바로 겁에 질려 송연아의 품에 안기고는 뽀뽀 세례를 퍼부었다.“엄마, 엄마가 저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해 주시죠.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엄마예요. 저는 엄마를 사랑하고 엄마도 저를 사랑하죠.”“어우.”구애린은 눈을 희번덕거렸다.“오글거려.”송연아는 여전히 사과를 받아주지 않은 척했다.“난 좋은 엄마가 아니야.”찬이가 씩 웃고는 그녀의 얼굴에 얼굴을 대며 말했다.“좋은 엄마 맞아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엄마예요.”안이슬이 말했다.“찬이야, 나 닭살 돋았어.”찬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송연아의 목을 끌어안았다.“엄마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요.”구애린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찬이야, 방금 무슨 얘기 했어? 왜 그렇게 웃은 거야?”찬이가 솔직하게 대답했다.“이슬 이모가 저랑 샛별이를 결혼시켜 준대요.”“어머.”구애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찬이는 아직 어린데 벌써...”
심재경은 이러면서 결혼식 분위기를 느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그는 곧바로 메이크업실로 향해 걸어갔다.그런데 단기문이 갑자기 다가오며 말했다.“재경아, 자리를 어떻게 배치한 거야?”“왜 그래?”심재경이 물었다.“몇몇 사람들의 위치가 적합하지 않은 것 같아서.”단기문이 말의 말에 심재경이 대답했다.“가보자.”단기문이 그에게 리스트를 건네며 말했다.“이 사람들은 메인테이블 옆에 앉히는 게 좋겠어.”심재경도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단기문에게 말했다.“네가 회사 사람들하고 한 상에 앉아. 혹시나 그 사람들이 또 무슨 난리를 칠지 모르니까.”단기문이 대답했다.“알겠어, 걱정하지 마.>”자리를 다시 배치한 후 결혼식 시작 시간이 거의 다 되어 심재경은 홀로 향했다.모든 준비가 끝났다.시간이 되면 결혼식은 곧 시작되었다.찬이가 하염없이 밖을 바라보며 물었다.“엄마, 이슬 이모는 언제 도착해요? 저 못 기다리겠어요.”임지훈이 말했다.“찬이야, 네 결혼식도 아니잖아. 뭐가 그렇게 급해? 급해도 재경 삼촌이 급하겠지.”찬이는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이슬 이모가 오늘 엄청 예뻐요. 빨리 예쁜 신부를 보고 싶어요.”“앞으로 네가 결혼할 때도 이렇게 급해하겠네.”“저는 아직 어리잖아요. 지훈이 삼촌이야말로 언제 결혼해요?”“...”임지훈은 말문이 막혔다.그는 찬이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우고는 말했다.“네 말에 삼촌이 상처받았어.”찬이가 웃으며 말했다.“괜찮아요, 저도 싱글이잖아요.”“...”송연아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넌 아직 어리잖아.”어린애가 스스로 싱글이라고 하다니.구애린도 맞장구를 쳤다.“우리 찬이는 나중에 멋진 어른이 될 거야. 그러면 여자들이 먼저 몰려오겠지. 찬이가 너무 인기가 많으면 어떻게 해?”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그러니까 지금 제가 못생겨서 싱글이라는 거예요?”그는 불쌍한 얼굴을 보이며 말을 이어갔다.“오늘 축복이 가득한 날인데
송연아가 그의 손을 잡고는 허리를 숙이더니 ‘쉿’ 표정을 지었다.찬이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얘기하면 안 되는 거예요?”송연아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우리 그저 조용히 지켜보기만 하면 돼. 소리를 내지 말자고.”찬이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엄마, 이슬 이모가 오늘 정말 예쁘네요.”송연아도 스테이지 위에 선 안이슬을 보더니 활짝 미소를 지었다.그렇다, 오늘의 안이슬은 세상에서 가장 예쁜 신부였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그녀는 그렇게 아름답고 매력적일 수 없었다....결혼식장은 환상적으로 아름답게 꾸며졌고 세련된 꽃과 조명은 로맨틱한 분위기를 자아냈다.하객 테이블 위에는 다양한 꽃들이 놓여 있었는데 화사한 색채를 뽐내며 결혼식에 생기를 더했다.안이슬은 꽃송이를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며 심재경에게 다가갔다.주위의 소리와 공기는 모두 차단되듯이 심재경은 오직 그녀만 보였다.심재경이 손을 내밀자 안이슬은 천천히 손을 들어 그와 손을 맞잡았다.박수가 터져 나왔고 사람들의 축복도 끊이지 않았다.찬이가 제일 열심히 박수를 쳤고, 그다음이 바로 임지훈이었다.구애린이 임지훈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말했다.“지훈 씨가 결혼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흥분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그는 진원우를 보며 말했다.“네 아내를 좀 어떻게 해봐.”진원우는 자기와는 상관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내가 어떻게 하겠어.”임지훈은 서러운 감정이 북받쳤다.“다들 나만 괴롭히지.”찬이가 말했다.“지훈이 삼촌, 저는 지훈이 삼촌 편이에요. 삼촌은 절대 혼자가 아니에요.”임지훈은 감동받아 눈물을 흘릴 지경이었다.그는 찬이를 안아 들고는 말했다.“찬이밖에 없어.”“오늘같이 기쁜 날에 우리는 신랑 심재경 군과 신부 안이슬 양의 결혼식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바쁘신 와중에 귀한 발걸음해 주신 일가친지 및 하객분들, 감사합니다.”사회자가 힘찬 목소리로 또렷하게 말했다.하객들의 시선을 끌자 사회자는 정식으로 결혼식의 시작을 알
결혼식을 마친 후 방유정 아버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회사를 완벽하게 인계하려고 회사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임지훈은 송연아와 강세헌 일행과 같이 먼저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쪽 일을 마무리했다. 비록 임지훈이 회사에 있으면 강세헌은 보다 한가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냥 조금 더 바쁠 뿐이다. 어느 회사든 누가 떠나면 절대 안 되는 건 없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임지훈은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귀국해서 방씨 가문 회사에 들어갔다.임지훈도 국내에 집이 있었지만 방유정과 같이 방씨 가문에 들어갔다. 데릴사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유정 아버지의 병을 알고 방유정이 부모님과 많을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임지훈 역시 사위로서 그럴 의무가 있었다....반년 후, 방유정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방유정 어머니는 그 충격에 순식간에 많이 늙었다.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집안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는데 방유정의 대부분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예전의 임 비서는 이제 임 대표가 되어 그의 능력으로 방씨 가문은 아주 관리가 잘 되었고 3개월 후 방유정 어머니의 상황도 많이 좋아졌다.방유정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면서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간 일도 어느 정도 잊혀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방유정도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방유정 어머니 역시 곧 외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정말로 모두 행복해할 만한 일이었다.방유정이 임신 6개월 때 그들은 프랑스로 갔는데 구애린은 남자아이를 낳았고 심재경의 딸은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샛별이가 유일한 여자아이여서 모두가 예뻐했다. 샛별이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찬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찬이는 샛별이 다리가 짧다고 계속 놀려줬으며 그게 재밌다고 샛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찬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샛별이는 오빠라고 불렀는데 너무 귀여웠다.방유정이 말했다.“저도 딸을 낳고 싶어요.”구애린이 말했다.“그게
비록 손을 놓기 싫었지만, 방유정 아버지는 결국 방유정의 손을 임지훈에게 넘겨줬다.“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방유정도 아버지에게 말했다.“꼭 그렇게 할게요.”이어서 결혼식은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피로연까지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방유정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는데 딸이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을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나니 또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그런가 보다.임지훈은 방유정을 데리고 강세헌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는 비록 모두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모두 방유정을 다시 한번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심재경 친구의 사촌 동생이 아닌 임주훈의 아내로 말이다.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방유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윤이도 어른들 따라 한마디 했다.“축하해요.”방유정은 윤이를 보며 말했다.“너무 귀여워요.”그녀가 손을 뻗어 윤이의 얼굴을 만지자, 윤이가 손을 내밀었다.“안아줘요.”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야, 안 돼.”방유정이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윤이를 안으며 말했다.“무겁지 않아요.”윤이는 그녀의 머리에 있는 금색 비녀를 보고 만지려고 했다. 방유정이 한복을 입고 있었기에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다. 방유정은 아주 시원하게 바로 비녀를 빼서 윤이에게 주었는데 송연아는 윤이를 제지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다.“이러면 안 돼요. 오늘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괜찮아요.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에요. 윤이가 좋아하니 놀게 해요.”방유정은 정말 성격이 좋았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만큼 성품이 좋았다. 가끔 조금 오만하긴 하지만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그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달래려고 했다.“윤이 착하지. 이건...”송연아는 윤이가 방유정을 어떻게 부르면 될지 생각했는데 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호칭일 뿐이니까 편
“지금 막 들었는데 유정 씨와 결혼한다면서요. 지금 방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난리 났어요.”임지훈이 웃었다.“저 이래 봐도 능력 있는 남자예요.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아요. 봐요, 결혼도 금방 하죠?”구애린이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짝이 있네요.”찬이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지훈이 삼촌, 축하해요.”“고마워.”임지훈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심재경이 물었다.“그런데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하던데요?”심재경의 말에 모두 놀라며 시선이 일제히 임지훈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임지훈의 조건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데 말이다.“하긴, 방씨 가문에 가장이 필요하긴 해요.”심재경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마디 했다....임지훈의 결혼식으로 송연아와 강세헌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췄다. 아무도 심재경의 결혼식을 보러 왔다가 임지의 결혼식까지 보게 될 줄을 생각을 못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건 임지훈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듯이 방유정과의 결혼은 정말로 찰나의 결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 역시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임지훈이 진원우에게 말했다.“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진원우가 말했다.“그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방씨 가문은 돈도 많고 유정 씨도 예쁘고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만족해. 다만 너무 빠른 것 같아서 그래.”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결혼식은 방씨 가문에서 모두 준비했는데 방유정 딸 하나이고 또 사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방씨 가문의 친척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록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임지훈 측은 심재경이 준비했는데 심재경 본인도 금방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익숙한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방유정은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값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는
“잠도 잤는데 왜요? 모른 척하려고요?”방유정이 옷을 입더니 침대에서 꼼짝 안 하는 임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 거예요?”임지훈이 말했다.“내 옷을 가져오지 않았잖아요. 나 입을 옷 없어요.”방유정은 그제야 임지훈이 옷이 없다는 걸 생각했다.“가져다 줄게요.”그녀는 곧바로 차에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뭐 입을지는 알아서 찾아서 입고 내려와요.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방유정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지훈은 침대에서 내려 결혼 얘기이니만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방유정은 부모님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임지훈이 건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저기...”“우리 딸 줄게요.”“아니에요. 지훈 씨가 저한테 시집 오는 거예요.”방유정이 정정했다.“...”“...”“...”방유정을 제외한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유정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방유정은 자신이 여자이며 이 집안에 다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병이고 자기는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기에 어찌 보면 자기가 남편을 찾는다기보다는 방씨 가문의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찾는 거였다. 인제야 그녀는 부모가 조급해하는 의도를 이해했고 그녀 역시 가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임지훈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임지훈을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겠는가.“유정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임지훈은 뼈대가 있는 남자로서 데릴사위 할 생각은 없었다.방유정이 말했다.“후회하면 안 돼요!”“왜 안 돼요? 유정 씨가 뭘 원하든지 저 모두 만족시켜 줄 수...”“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방유정이 외치자, 임지훈은 오히려 우스웠다. 한 여자가 나한테 시집오라고 하다니!“우리 유정이가 시집가는 거 맞아요
지금 그녀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으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나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지? 결혼, 그래 결혼해야 해.’그녀는 자기가 결혼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상대도 지금 바로 방에 있지 않겠는가?‘남자 친구인 척을 해줬으니 이제 남편인 척해달라고 해야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도 되니까 결혼하자고 해야겠어.’방유정은 진료 기록부를 다시 원래 위치에 넣고 비틀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임지훈이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침대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자, 임지훈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는데 침대에 자기의 옷이 보이지 않아 방유정의 옆에 서서 물었다.“내 옷은요?”그는 방유정이 잊은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내 옷은 지금 당신 차 트렁크에 있어요.”방유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결혼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약을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었는데 임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울었어요? 누가 괴롭혔어요? 얘기해 봐요. 제가 가서 때려줄게...”임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방유정이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임지훈은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게... 유정 씨...”그가 말하려고 할 때 방유정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손이 아래로 드리는 순간 몸에 걸친 유일한 가운마저 벗겨져서 흘러내렸다.“...”방유정은 워낙 임지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 행동이 충격에 의한 도발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옷의 단추를 벗겨 가슴을 드러내고는 그의 가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저를 좀 봐봐요.”임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목젖을 굴렸는데 이름 모를 불길이 아랫배에서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딱딱해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임지훈도
방유정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하시는 거였다.“화이팅!”방유정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지금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만 좋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선 자리를 만들어주고 남자를 유혹하라고까지 하시다니?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이제 나가야 해.”방유정의 아버지는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나갔고 방유정은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차가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어차피 임지훈이 자고 있었기에 지루할 것 같아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임지훈을 놀려주려고 그가 곤히 자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가져다가 침대 옆에 앉아 임지훈에게 예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임지훈이 깨지 않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 오니 옆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임지훈은 이미 깨어나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언, 언제 깼어요?”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유정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훈의 얼굴은 정말로 오페라 가수 같았는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팠다. 임지훈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물었다.“다 웃었어요?”방유정은 곧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맘대로 제 몸에 손을 대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를 저에게 준다고 해도 거절이에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뭐라고요? 저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면 프랑스까지는 갈 거예요. 그런데 지훈 씨는 내가 싫다고요?”임지훈이 흠칫하자, 방유정이 그를 잡고 물었다.“지금 그
“방유정은 부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알았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어서 지훈 씨 방으로 데려가.”방유정이 물었다.“어느 방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 어떡해. 게스트룸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우선 네 방으로 데려가서 휴식하게 해.”방유정은 어머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아빠, 엄마,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어요? 어떻게 제 방에 술 취한 남자를 데려가라고 하세요?”“네 말대로 취했는데 뭐 어때?”“술김에 어떤 짓도 한다는 말 몰라요?”방유정이 묻자, 그녀의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몰라.”방유정은 철저히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과 임지훈이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임지훈이 그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나를 결혼시키고 싶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만약 진짜로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바로 결혼시킬 거야.”임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바탕 뿜었다. 방유정의 부모님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본인이 천당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귀여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방유정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말이야.’방유정은 역겨워하며 말했다.“지훈 씨,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화장실로 가야지.”“취했잖아.”방유정 어머니가 가정부를 불러 치우게 했다.“그만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어서 방으로 데려다 쉬게 해.”방유정은 혼자서 임지훈을 옮길 수 없어서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임지훈을 침대에 던졌는데 임지훈은 몸이 포근한 세계에 떨어진 듯 따뜻하고 향기로웠다.“무슨 향수를 써요?”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유정이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임지훈은 취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말짱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말했다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해명하지 않아도 화는 나지 않았을 건데, 굳이 해명하니 용서해 줄게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아요. 그럼 좋은 말이 안 나가니까.”“...”임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그때 방유정의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집어 그의 앞접시에 건넸다.“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요리인데 맛봐요.”임지훈이 집어서 입어 넣고 먹어보더니 말했다.“맛있습니다.”방유정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방유정 아버지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평소 주량이 어떻게 돼요?”임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못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잘 마실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네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방유정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아빠, 지훈 씨는 일이 바빠서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요.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술을 많이 주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네. 그러니까 한 잔씩만 해요.”말하면서 방유정은 술을 가져갔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분위기를 깬다.”방유정이 말했다.“두 분의 건강을 생각해서예요.”방유정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임지훈에게 한 잔 따르고 또 남편에게도 한 잔 따랐다.“많이 마시게 되면 우리 집에 방이 많으니 그냥 휴식하면 돼요. 비행기는 내일 타면 되는데 급해 할 거 없잖아요.”방유정은 어머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엄마, 이 사람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서 잠을 자래요?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요?”“걱정하지 마. 조사해 봤는데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방유정과 임지훈이 순간 놀랐다. 방유정은 평생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체면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었다.방유정 아버지는 아내를 힐끗 쳐다
“지훈 씨는 취미가 뭐예요?”방유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임지훈은 방유정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생활을 떠올렸는데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심재경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더구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의 생활이 정말로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내를 맞이해서 함께 서로 보살펴주며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만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방유정을 바라봤는데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유정은 아직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은 모를 것 같았다.“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방유정의 물음에 임지훈이 되물었다.“어디가 이상한데요?”방유정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왜요?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죠?”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당신은 성격도 안 좋고 또 엄청 잘난체하는데 내가 왜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들어가요.”시간을 보며 임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굶었어요?”방유정이 그를 비웃었다.“식사 끝나면 저는 가도 되죠.”방유정은 순간 왠지 서운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여기는 제집이 아닌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방유정은 그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자, 임지훈은 의아해했다.“왜 그래요?”“내가 뭐요?”방유정은 짜증을 냈다.“유정 씨는 정말 변덕이 많네요. 그걸 고쳐요. 남자들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방유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임지훈은 고개를 돌려 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방유정이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만 보였기에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