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경은 이러면서 결혼식 분위기를 느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그는 곧바로 메이크업실로 향해 걸어갔다.그런데 단기문이 갑자기 다가오며 말했다.“재경아, 자리를 어떻게 배치한 거야?”“왜 그래?”심재경이 물었다.“몇몇 사람들의 위치가 적합하지 않은 것 같아서.”단기문이 말의 말에 심재경이 대답했다.“가보자.”단기문이 그에게 리스트를 건네며 말했다.“이 사람들은 메인테이블 옆에 앉히는 게 좋겠어.”심재경도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단기문에게 말했다.“네가 회사 사람들하고 한 상에 앉아. 혹시나 그 사람들이 또 무슨 난리를 칠지 모르니까.”단기문이 대답했다.“알겠어, 걱정하지 마.>”자리를 다시 배치한 후 결혼식 시작 시간이 거의 다 되어 심재경은 홀로 향했다.모든 준비가 끝났다.시간이 되면 결혼식은 곧 시작되었다.찬이가 하염없이 밖을 바라보며 물었다.“엄마, 이슬 이모는 언제 도착해요? 저 못 기다리겠어요.”임지훈이 말했다.“찬이야, 네 결혼식도 아니잖아. 뭐가 그렇게 급해? 급해도 재경 삼촌이 급하겠지.”찬이는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이슬 이모가 오늘 엄청 예뻐요. 빨리 예쁜 신부를 보고 싶어요.”“앞으로 네가 결혼할 때도 이렇게 급해하겠네.”“저는 아직 어리잖아요. 지훈이 삼촌이야말로 언제 결혼해요?”“...”임지훈은 말문이 막혔다.그는 찬이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우고는 말했다.“네 말에 삼촌이 상처받았어.”찬이가 웃으며 말했다.“괜찮아요, 저도 싱글이잖아요.”“...”송연아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넌 아직 어리잖아.”어린애가 스스로 싱글이라고 하다니.구애린도 맞장구를 쳤다.“우리 찬이는 나중에 멋진 어른이 될 거야. 그러면 여자들이 먼저 몰려오겠지. 찬이가 너무 인기가 많으면 어떻게 해?”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그러니까 지금 제가 못생겨서 싱글이라는 거예요?”그는 불쌍한 얼굴을 보이며 말을 이어갔다.“오늘 축복이 가득한 날인데
송연아가 그의 손을 잡고는 허리를 숙이더니 ‘쉿’ 표정을 지었다.찬이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얘기하면 안 되는 거예요?”송연아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우리 그저 조용히 지켜보기만 하면 돼. 소리를 내지 말자고.”찬이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엄마, 이슬 이모가 오늘 정말 예쁘네요.”송연아도 스테이지 위에 선 안이슬을 보더니 활짝 미소를 지었다.그렇다, 오늘의 안이슬은 세상에서 가장 예쁜 신부였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그녀는 그렇게 아름답고 매력적일 수 없었다....결혼식장은 환상적으로 아름답게 꾸며졌고 세련된 꽃과 조명은 로맨틱한 분위기를 자아냈다.하객 테이블 위에는 다양한 꽃들이 놓여 있었는데 화사한 색채를 뽐내며 결혼식에 생기를 더했다.안이슬은 꽃송이를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며 심재경에게 다가갔다.주위의 소리와 공기는 모두 차단되듯이 심재경은 오직 그녀만 보였다.심재경이 손을 내밀자 안이슬은 천천히 손을 들어 그와 손을 맞잡았다.박수가 터져 나왔고 사람들의 축복도 끊이지 않았다.찬이가 제일 열심히 박수를 쳤고, 그다음이 바로 임지훈이었다.구애린이 임지훈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말했다.“지훈 씨가 결혼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흥분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그는 진원우를 보며 말했다.“네 아내를 좀 어떻게 해봐.”진원우는 자기와는 상관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내가 어떻게 하겠어.”임지훈은 서러운 감정이 북받쳤다.“다들 나만 괴롭히지.”찬이가 말했다.“지훈이 삼촌, 저는 지훈이 삼촌 편이에요. 삼촌은 절대 혼자가 아니에요.”임지훈은 감동받아 눈물을 흘릴 지경이었다.그는 찬이를 안아 들고는 말했다.“찬이밖에 없어.”“오늘같이 기쁜 날에 우리는 신랑 심재경 군과 신부 안이슬 양의 결혼식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바쁘신 와중에 귀한 발걸음해 주신 일가친지 및 하객분들, 감사합니다.”사회자가 힘찬 목소리로 또렷하게 말했다.하객들의 시선을 끌자 사회자는 정식으로 결혼식의 시작을 알
하지만 이 사랑은 두 사람에게 모진 비바람을 안겨 주었다.다행히 바람이 멎고 파도가 잔잔해져 무지개가 곧 피게 될 것이다.그녀는 웃으며 진심으로 두 사람을 축복해주었다.무대 위에서 안이슬이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내 인생 가장 현명한 결정이 바로 너와 결혼하는 거야. 다시 선택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 절대 지금까지 안 기다렸을 거야.”그녀는 울먹이며 말했다.“지금 이 순간도 마치 꿈 같아. 모든 게 실감이 나지 않아.”심재경은 그녀의 손을 잡고 제 얼굴을 어루만졌다.“과거는 얘기하지 말고 미래만 바라보자.”안이슬이 머리를 끄덕였다.“알았어.”“두 분 감정이 정말 부럽군요.”사회자가 앞장서 박수 쳤다.“신랑은 아름다운 신부에게 키스합니다.”뜨거운 박수 소리가 울려 퍼지고 심재경이 몸을 살짝 기울여 그녀의 입술에 부드럽게 키스했다.찬이가 두 눈을 막았다.“두 분 뽀뽀해요. 찬이 쑥스러워요.”송연아는 아이의 두 눈을 막아줬다.구애린도 덩달아 감동했다. 마치 저 자신이 떠오른 듯싶었다.그녀와 진원우가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은 진원우의 섬세한 보살핌과 너그러운 아량이 있었기 때문이다.구애린은 진원우의 어깨에 기대어 생각했다.‘네가 있어서 참 좋아. 널 만날 수 있어서 너무 좋아.’진원우도 그녀의 어깨를 감싸안았다.한편 강세헌은 송연아에게 티슈를 건넸고 그녀는 멍하니 강세헌을 쳐다봤다.이때 임지훈이 옆에서 말했다.“나도 꼭 내가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결혼해야지.”현장 분위기가 무르익어가고 다들 감동에 푹 젖어 있었다.이어서 식사 순서이다.고급 뷔페라 그런지 없는 음식이 없었다.찬이는 너무 신났다. 이때 옆에 있던 윤이가 깨났다. 찬이는 윤이가 먹보라며 줄곧 자다가 음식 먹을 때만 깨난다고 했다.어차피 윤이는 못 알아들으니 마음껏 말하라고 하지 뭐.강세헌은 작은아들을 안고서 아이가 자다 흘린 침을 조심스럽게 닦아주었다.아이는 맛있는 음식만 보면 냉큼 손 내밀어 잡으려 한다.먹을 것을 보자마자 바로 잠에서 깬 듯싶다.
인사를 하는 것도 순서가 있다. 우선 메인 석에 앉은 심재경의 가족분들부터 차례대로 내려가며 인사한다.그렇게 쭉 인사해오며 실은 심재경과 안이슬이 일부러 강세헌 테이블을 맨 마지막으로 남겨뒀다.이렇게 하면 여기 남아 함께 식사할 수 있으니까.신랑, 신부의 인사에 강세헌과 임지훈, 진원우 모두 반갑게 맞아주었다.“두 분도 배고프시죠. 얼른 앉아서 좀 드세요.”송연아가 말했다.심재경은 안이슬에게 의자를 빼주고 그녀 옆에 앉았다.임지훈이 그런 심재경을 보며 물었다.“더 드실 수 있겠어요?”이제 막 전복 한 입을 입에 넣으려던 심재경이 그의 말을 듣고 미간을 살짝 구겼다.“내가 왜 못 먹죠? 여긴 내 결혼식 뷔페인데 먹으려면 더 많이 먹어야죠. 말 참 이상하게 하네.”임지훈이 웃으며 답했다.“난 또 너무 행복해서 배가 부르신 줄 알았죠. 사람이 행복에 겨우면 배가 불러 음식도 못 먹는다잖아요.”심재경이 말했다.“그럼 지 씨가 한 번 물만 먹고 버텨봐요. 견딜 수 있을지.”“난 사랑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럴 필요 없지만 재경 씨는 이슬 씨가 옆에 있잖아요.”심재경은 전복 한 입 쑤셔 넣고 주스도 마시며 천천히 음미했다.“음식은 다 정상인데 왜 탄 내가 나죠? 마치 질투에 불탄 냄새랄까.”“...”임지훈은 말을 잇지 못했고 이때 옆에 있던 구애린이 입을 열었다.“재경 씨를 질투할 만도 하죠. 무대에서 그토록 깨가 쏟아지는데 지훈 씨가 속이 남아나겠어요?”임지훈은 재빨리 심재경에게 음식을 집어줬다.“얼른 드세요. 오늘은 재경 씨 결혼식이니 많이 드셔야 해요.”그는 심재경의 입을 가로막고 싶었다.괜히 감당 못 할 말을 하면 안 되니까.하긴, 다들 커플로 왔는데 알콩달콩한다고 투덜대는 건 화를 자초하는 일이지!심재경도 그에게 음식을 집어줬다.“우리 가운데 지훈 씨가 제일 불쌍하니 지훈 씨 많이 드세요. 난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와이프가 집어주는데 지훈 씨는 솔로라 누가 집어줄 사람도 없잖아요.”“...”임지훈은 곧바로 항복
구애린도 당연히 호텔에만 있고 싶지 않았다. 이토록 간절히 돌아오고 싶은 이유는 답답한 게 싫어 바람 쐬며 힐링하기 위해서가 아닌가?진원우는 백미러로 찬이를 바라봤다.“역시 찬이가 고모 마음 잘 아네. 너희 고모 지금 마침 같은 생각이었을 거야.”찬이는 다정하게 구애린의 손을 잡았다.“나랑 고모는 당연히 친하죠.”구애린은 사랑스러운 눈길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녹아내리는 애교에 그녀는 거절할 수가 없다.“말해봐, 어디 가고 싶어? 고모가 데리고 가줄게.”구애린이 말했다.“찬이가 고모라고 불러주니 기분이 날아갈 것 같나 봐요?”진원우의 물음에 구애린은 머리를 번쩍 쳐들었다.“내 마음이야.”진원우는 속절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내가 졌어요. 어디 가고 싶은데요 그래서.”구애린이 고민하다가 대답했다.“놀이공원 갈까?”이런 곳이라면 아이들이 분명 좋아할 것이다.“좋아요, 놀이공원.”찬이가 곧장 대답했다.“뒤차에 전화해서 우리 호텔 안 간다고 말해요 그럼.”진원우가 당부했다.뒤차엔 송연아와 강세헌이 윤이와 함께 앉아있다.윤이는 차에 앉아있는 게 답답했던지 칭얼거리며 울음을 터트릴 것 같았다.아이가 마구 움직이니 송연아는 제대로 안지 못했다.강세헌이 윤이를 안고 그녀에게 물었다.“애가 배고픈 거 아니야?”결혼식에서 윤이는 줄곧 자다 보니 딱히 먹지 못했다. 이제 차에서 깨난 아기는 잠투정이 심했다.송연아는 밖을 내다보며 근처에 레스토랑이라도 있으면 뭐라도 사 먹이려고 했다.우웅...이때 휴대폰이 울렸고 그녀는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전화기 너머로 구애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언니, 우리 호텔 안 돌아가요.”“어디 가는데요?”송연아가 물었다.“찬이가 호텔에만 있으면 답답하다고 해서 아이 데리고 놀이공원 가려고요.”“애린 씨 상태로 그런 곳에 가서 놀면 안 돼요.”송연아가 미간을 살짝 구겼다.구애린의 현재 상황에 만에 하나 사고라도 나면 차라리 안 가기만 못하다.“알아요, 난 안 놀아요. 원우더러
구애린은 시선을 피하며 부인했다.“아니야.”“맞는 것 같은데요.”진원우는 역시 그녀를 잘 안다.평상시에 털털하고 밝은 성격 같아 보여도 가끔 저 자신을 궁지로 밀어붙이며 괴롭히는 경향이 있다.“애린 씨네 오빠랑 새언니 모두 좋은 분들이에요. 다들 그런 거로 켕겨 하는 분들이 아니니 애린 씨도 너무 마음에 두지 말아요.”진원우가 위로했다.“우리 모두 한 가족이에요. 자꾸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아요.”“알았으니까 운전이나 잘해. 방심하지 말고.”구애린이 대답했다. 옆에 있던 찬이가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 맑은 눈망울로 살짝 의아하다는 듯 둘에게 물었다.“고모, 삼촌, 두 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왜 난 못 알아듣겠죠.”구애린이 아이를 품에 안으며 답했다.“고모한테 이렇게 착한 조카가 있어서 기쁘다는 뜻이야.”찬이는 그녀 품에 기댔다.“나도 고모가 있어서 너무 기뻐요. 이젠 엄마, 아빠한테 효도하는 것처럼 고모한테도 똑같이 효도할 거예요. 고모가 날 제일 이뻐하잖아요.”어머...녀석의 달콤한 말에 구애린의 마음이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그녀는 아이의 두 볼을 감싸고 이마에 연신 뽀뽀했다.“적당히 해요.”진원우의 말에 찬이가 반박했다.“고모가 날 사랑한다는데 불만 있어요?”“...”진원우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되물었다.“너희 고모 날 사랑하는 게 아니었어?”“누가 그래요. 고모는 날 사랑한다고요!”찬이가 발끈했다.“그래?”진원우는 웃으며 되물었고 아이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당연하죠. 못 믿겠으면 고모한테 물어봐요, 누굴 사랑하는지.”진원우는 백미러로 구애린을 보면서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애린 씨 누굴 사랑해요?”구애린은 아이를 꼭 끌어안았다.“그거야 당연히 우리 보배둥이 찬이지.”“나 사랑하지도 않는데 내가 왜 놀이공원까지 운전해야 하지? 나 안 해.”진원우가 유턴하려고 하자 구애린이 재빨리 말했다.“원우 씨도 사랑해, 사랑한다고.”진원우는 그제야 만족스러웠다.“삼촌 너무 소심해요.”“고
구애린이 입을 삐죽거렸다.“너나 얌전히 말 잘 들어. 무슨 윤이를 돌본다고 그래. 너만 시끄럽게 안 굴어도 소원이 없겠어.”“고모, 난 윤이의 형이에요. 윤이랑 샛별이 모두 내가 보살펴야 한다고요.”구애린이 샘 난 표정으로 물었다.“그럼 고모 배 속의 아기는 안 보살필 거야?”찬이는 가슴을 두드리며 장담했다.“고모 배 속의 아기도 당연히 보살펴야죠. 내가 맏형이잖아요.”“자, 다들 그만하고 얼른 들어가자.”송연아와 찬이는 윤이의 손을 잡고 나란히 들어갔고 진원우는 입장권을 사러 갔다.윤이가 아직 너무 어려 딱히 놀 수 있는 게 없었다. 송연아는 윤이를 데리고 연못가에서 물고기를 잡기로 했다.“세헌 씨가 찬이 데리고 다녀요.”강세헌은 그녀에게 어디론가 가리켰다. 방향대로 시선을 옮기니 찬이가 어느덧 진원우와 구애린과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찬이는 두 사람한테 맡기지 뭐.”강세헌이 윤이를 쳐다봤다.“우린 여기 남아있자.”송연아는 머리를 끄덕였다....임지훈도 호텔에 돌아가지 않았다. 지금 비록 프랑스에서 일하지만 전에 늘 국내에 있어 핫플레이스를 다 꿰차고 있다. 그는 곧장 술 마시러 클럽으로 향했다.진원우와 구애린, 강세헌과 송연아까지 그들과 함께 있으면 괜히 더 외로워진다. 특히 실랑이를 벌일 때 남들은 다 자기편이 있는데 유독 임지훈만 쓸쓸하게 혼자다.겉으론 괜찮다고 하지만 사실 그도 무척 짝을 찾고 싶다.최소한 매번 말다툼할 때 제 편이 있을 거니까.임지훈은 홀로 술 마시며 마음을 달래러 왔다.미인이 다가와 말을 걸어도 딱히 거절하지 않지만 이런 곳의 여자는 다 별로라는 걸 잘 안다.여기서 돈 많은 남자를 만나거나 혹은 쌓인 스트레스를 풀거나, 절대 이런 곳에서 결혼할 상대를 찾는 사람은 없다!임지훈도 맞춰주며 놀아줄 뿐이다.기분이 우울한 탓인지 그는 점점 더 많이 마셨고 옆에 있던 미녀가 물었다.“너무 많이 마셨네요. 우리 장소 바꿀까요? 차 밖에 있죠?”임지훈이 대답했다.“나 차 없어.”그는 국내에 정
임지훈은 고개 숙여 냄새를 맡아봤는데 확실히 코를 찔렀다. 그는 머쓱한 듯 히죽 웃었다.“미안, 옷에 술을 쏟았어.”강세헌은 썩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임지훈과 오랜 시간 함께 일한지라 이런 사소한 부분쯤은 바로 알아챌 수 있다.다만 그의 인생이 걸린 문제이니 강세헌도 조심스러울 따름이었다.“그럴 것까진.”말인즉슨 여자친구가 없는 걸 너무 전전긍긍하지 말라는 뜻이다.임지훈은 바로 알아듣고 민망해하며 머리를 긁적거렸다.이때 진원우가 말했다.“내가 함께해줄까?”“아니야, 괜찮아.”임지훈이 바로 거절했다.구애린이 임신 중인데 이런 시기에 진원우를 뺏어갈 순 없다.임지훈도 이 정도의 눈치는 있다.찬이가 다가오며 그의 손을 잡았다.“삼촌, 찬이가 함께해줄게요.”임지훈은 고개 숙여 아이를 바라보더니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릴 지경이었다.“찬이 참 착하네.”아이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어쩔 수 없죠. 저도 솔로잖아요.”“...”구애린이 말했다.“네가 왜 솔로야. 넌 샛별이가 있잖아.”임지훈은 아예 말문이 막혔다....구애린은 분위기가 이상해지자 무고한 눈길로 진원우를 쳐다보며 나지막이 물었다.“내가 무슨 말실수 했어?”진원우가 고개를 내저었다.“아니요. 다 맞는 말만 했어요.”그는 구애린의 팔을 부축했다.“우리 이만 방에 돌아가서 쉬어요.”“잠깐만. 아직 여기 사람들 다 있잖아.”진원우는 그런 그녀에게 말했다.“다들 여자는 임신하면 적어도 3년 동안 반응이 느려지고 머리가 나빠진다더니 애린 씨는 이제 고작 첫해네요. 남은 2년은 말을 줄여야겠어요.”구애린은 바로 알아챘다.“내가 말실수했다는 거네?”임지훈은 이런 사소한 일로 화낼 리가 없다.“아니요, 그런 거 없어요. 전부 맞는 말이에요.”구애린이 그를 바라봤다.“난 생각하는 대로 말을 내뱉어서 가끔 말실수해도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네, 알았어요.”임지훈은 그리 속 좁은 사람이 아니다.“그럼 이만 방으로 돌아가죠.”송연아는 찬이를 목욕시켜야 한
결혼식을 마친 후 방유정 아버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회사를 완벽하게 인계하려고 회사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임지훈은 송연아와 강세헌 일행과 같이 먼저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쪽 일을 마무리했다. 비록 임지훈이 회사에 있으면 강세헌은 보다 한가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냥 조금 더 바쁠 뿐이다. 어느 회사든 누가 떠나면 절대 안 되는 건 없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임지훈은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귀국해서 방씨 가문 회사에 들어갔다.임지훈도 국내에 집이 있었지만 방유정과 같이 방씨 가문에 들어갔다. 데릴사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유정 아버지의 병을 알고 방유정이 부모님과 많을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임지훈 역시 사위로서 그럴 의무가 있었다....반년 후, 방유정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방유정 어머니는 그 충격에 순식간에 많이 늙었다.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집안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는데 방유정의 대부분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예전의 임 비서는 이제 임 대표가 되어 그의 능력으로 방씨 가문은 아주 관리가 잘 되었고 3개월 후 방유정 어머니의 상황도 많이 좋아졌다.방유정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면서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간 일도 어느 정도 잊혀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방유정도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방유정 어머니 역시 곧 외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정말로 모두 행복해할 만한 일이었다.방유정이 임신 6개월 때 그들은 프랑스로 갔는데 구애린은 남자아이를 낳았고 심재경의 딸은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샛별이가 유일한 여자아이여서 모두가 예뻐했다. 샛별이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찬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찬이는 샛별이 다리가 짧다고 계속 놀려줬으며 그게 재밌다고 샛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찬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샛별이는 오빠라고 불렀는데 너무 귀여웠다.방유정이 말했다.“저도 딸을 낳고 싶어요.”구애린이 말했다.“그게
비록 손을 놓기 싫었지만, 방유정 아버지는 결국 방유정의 손을 임지훈에게 넘겨줬다.“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방유정도 아버지에게 말했다.“꼭 그렇게 할게요.”이어서 결혼식은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피로연까지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방유정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는데 딸이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을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나니 또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그런가 보다.임지훈은 방유정을 데리고 강세헌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는 비록 모두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모두 방유정을 다시 한번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심재경 친구의 사촌 동생이 아닌 임주훈의 아내로 말이다.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방유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윤이도 어른들 따라 한마디 했다.“축하해요.”방유정은 윤이를 보며 말했다.“너무 귀여워요.”그녀가 손을 뻗어 윤이의 얼굴을 만지자, 윤이가 손을 내밀었다.“안아줘요.”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야, 안 돼.”방유정이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윤이를 안으며 말했다.“무겁지 않아요.”윤이는 그녀의 머리에 있는 금색 비녀를 보고 만지려고 했다. 방유정이 한복을 입고 있었기에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다. 방유정은 아주 시원하게 바로 비녀를 빼서 윤이에게 주었는데 송연아는 윤이를 제지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다.“이러면 안 돼요. 오늘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괜찮아요.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에요. 윤이가 좋아하니 놀게 해요.”방유정은 정말 성격이 좋았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만큼 성품이 좋았다. 가끔 조금 오만하긴 하지만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그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달래려고 했다.“윤이 착하지. 이건...”송연아는 윤이가 방유정을 어떻게 부르면 될지 생각했는데 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호칭일 뿐이니까 편
“지금 막 들었는데 유정 씨와 결혼한다면서요. 지금 방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난리 났어요.”임지훈이 웃었다.“저 이래 봐도 능력 있는 남자예요.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아요. 봐요, 결혼도 금방 하죠?”구애린이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짝이 있네요.”찬이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지훈이 삼촌, 축하해요.”“고마워.”임지훈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심재경이 물었다.“그런데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하던데요?”심재경의 말에 모두 놀라며 시선이 일제히 임지훈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임지훈의 조건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데 말이다.“하긴, 방씨 가문에 가장이 필요하긴 해요.”심재경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마디 했다....임지훈의 결혼식으로 송연아와 강세헌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췄다. 아무도 심재경의 결혼식을 보러 왔다가 임지의 결혼식까지 보게 될 줄을 생각을 못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건 임지훈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듯이 방유정과의 결혼은 정말로 찰나의 결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 역시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임지훈이 진원우에게 말했다.“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진원우가 말했다.“그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방씨 가문은 돈도 많고 유정 씨도 예쁘고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만족해. 다만 너무 빠른 것 같아서 그래.”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결혼식은 방씨 가문에서 모두 준비했는데 방유정 딸 하나이고 또 사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방씨 가문의 친척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록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임지훈 측은 심재경이 준비했는데 심재경 본인도 금방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익숙한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방유정은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값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는
“잠도 잤는데 왜요? 모른 척하려고요?”방유정이 옷을 입더니 침대에서 꼼짝 안 하는 임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 거예요?”임지훈이 말했다.“내 옷을 가져오지 않았잖아요. 나 입을 옷 없어요.”방유정은 그제야 임지훈이 옷이 없다는 걸 생각했다.“가져다 줄게요.”그녀는 곧바로 차에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뭐 입을지는 알아서 찾아서 입고 내려와요.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방유정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지훈은 침대에서 내려 결혼 얘기이니만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방유정은 부모님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임지훈이 건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저기...”“우리 딸 줄게요.”“아니에요. 지훈 씨가 저한테 시집 오는 거예요.”방유정이 정정했다.“...”“...”“...”방유정을 제외한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유정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방유정은 자신이 여자이며 이 집안에 다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병이고 자기는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기에 어찌 보면 자기가 남편을 찾는다기보다는 방씨 가문의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찾는 거였다. 인제야 그녀는 부모가 조급해하는 의도를 이해했고 그녀 역시 가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임지훈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임지훈을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겠는가.“유정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임지훈은 뼈대가 있는 남자로서 데릴사위 할 생각은 없었다.방유정이 말했다.“후회하면 안 돼요!”“왜 안 돼요? 유정 씨가 뭘 원하든지 저 모두 만족시켜 줄 수...”“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방유정이 외치자, 임지훈은 오히려 우스웠다. 한 여자가 나한테 시집오라고 하다니!“우리 유정이가 시집가는 거 맞아요
지금 그녀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으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나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지? 결혼, 그래 결혼해야 해.’그녀는 자기가 결혼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상대도 지금 바로 방에 있지 않겠는가?‘남자 친구인 척을 해줬으니 이제 남편인 척해달라고 해야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도 되니까 결혼하자고 해야겠어.’방유정은 진료 기록부를 다시 원래 위치에 넣고 비틀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임지훈이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침대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자, 임지훈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는데 침대에 자기의 옷이 보이지 않아 방유정의 옆에 서서 물었다.“내 옷은요?”그는 방유정이 잊은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내 옷은 지금 당신 차 트렁크에 있어요.”방유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결혼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약을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었는데 임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울었어요? 누가 괴롭혔어요? 얘기해 봐요. 제가 가서 때려줄게...”임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방유정이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임지훈은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게... 유정 씨...”그가 말하려고 할 때 방유정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손이 아래로 드리는 순간 몸에 걸친 유일한 가운마저 벗겨져서 흘러내렸다.“...”방유정은 워낙 임지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 행동이 충격에 의한 도발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옷의 단추를 벗겨 가슴을 드러내고는 그의 가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저를 좀 봐봐요.”임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목젖을 굴렸는데 이름 모를 불길이 아랫배에서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딱딱해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임지훈도
방유정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하시는 거였다.“화이팅!”방유정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지금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만 좋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선 자리를 만들어주고 남자를 유혹하라고까지 하시다니?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이제 나가야 해.”방유정의 아버지는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나갔고 방유정은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차가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어차피 임지훈이 자고 있었기에 지루할 것 같아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임지훈을 놀려주려고 그가 곤히 자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가져다가 침대 옆에 앉아 임지훈에게 예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임지훈이 깨지 않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 오니 옆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임지훈은 이미 깨어나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언, 언제 깼어요?”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유정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훈의 얼굴은 정말로 오페라 가수 같았는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팠다. 임지훈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물었다.“다 웃었어요?”방유정은 곧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맘대로 제 몸에 손을 대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를 저에게 준다고 해도 거절이에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뭐라고요? 저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면 프랑스까지는 갈 거예요. 그런데 지훈 씨는 내가 싫다고요?”임지훈이 흠칫하자, 방유정이 그를 잡고 물었다.“지금 그
“방유정은 부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알았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어서 지훈 씨 방으로 데려가.”방유정이 물었다.“어느 방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 어떡해. 게스트룸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우선 네 방으로 데려가서 휴식하게 해.”방유정은 어머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아빠, 엄마,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어요? 어떻게 제 방에 술 취한 남자를 데려가라고 하세요?”“네 말대로 취했는데 뭐 어때?”“술김에 어떤 짓도 한다는 말 몰라요?”방유정이 묻자, 그녀의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몰라.”방유정은 철저히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과 임지훈이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임지훈이 그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나를 결혼시키고 싶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만약 진짜로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바로 결혼시킬 거야.”임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바탕 뿜었다. 방유정의 부모님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본인이 천당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귀여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방유정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말이야.’방유정은 역겨워하며 말했다.“지훈 씨,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화장실로 가야지.”“취했잖아.”방유정 어머니가 가정부를 불러 치우게 했다.“그만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어서 방으로 데려다 쉬게 해.”방유정은 혼자서 임지훈을 옮길 수 없어서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임지훈을 침대에 던졌는데 임지훈은 몸이 포근한 세계에 떨어진 듯 따뜻하고 향기로웠다.“무슨 향수를 써요?”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유정이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임지훈은 취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말짱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말했다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해명하지 않아도 화는 나지 않았을 건데, 굳이 해명하니 용서해 줄게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아요. 그럼 좋은 말이 안 나가니까.”“...”임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그때 방유정의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집어 그의 앞접시에 건넸다.“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요리인데 맛봐요.”임지훈이 집어서 입어 넣고 먹어보더니 말했다.“맛있습니다.”방유정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방유정 아버지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평소 주량이 어떻게 돼요?”임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못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잘 마실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네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방유정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아빠, 지훈 씨는 일이 바빠서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요.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술을 많이 주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네. 그러니까 한 잔씩만 해요.”말하면서 방유정은 술을 가져갔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분위기를 깬다.”방유정이 말했다.“두 분의 건강을 생각해서예요.”방유정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임지훈에게 한 잔 따르고 또 남편에게도 한 잔 따랐다.“많이 마시게 되면 우리 집에 방이 많으니 그냥 휴식하면 돼요. 비행기는 내일 타면 되는데 급해 할 거 없잖아요.”방유정은 어머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엄마, 이 사람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서 잠을 자래요?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요?”“걱정하지 마. 조사해 봤는데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방유정과 임지훈이 순간 놀랐다. 방유정은 평생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체면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었다.방유정 아버지는 아내를 힐끗 쳐다
“지훈 씨는 취미가 뭐예요?”방유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임지훈은 방유정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생활을 떠올렸는데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심재경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더구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의 생활이 정말로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내를 맞이해서 함께 서로 보살펴주며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만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방유정을 바라봤는데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유정은 아직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은 모를 것 같았다.“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방유정의 물음에 임지훈이 되물었다.“어디가 이상한데요?”방유정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왜요?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죠?”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당신은 성격도 안 좋고 또 엄청 잘난체하는데 내가 왜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들어가요.”시간을 보며 임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굶었어요?”방유정이 그를 비웃었다.“식사 끝나면 저는 가도 되죠.”방유정은 순간 왠지 서운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여기는 제집이 아닌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방유정은 그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자, 임지훈은 의아해했다.“왜 그래요?”“내가 뭐요?”방유정은 짜증을 냈다.“유정 씨는 정말 변덕이 많네요. 그걸 고쳐요. 남자들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방유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임지훈은 고개를 돌려 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방유정이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만 보였기에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