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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 그리고 사랑
미련, 그리고 사랑
작가: 몬스터미트

제1화

불길이 치솟는 와중에 남편이 초조한 얼굴로 다른 여자를 껴안고 뛰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목숨을 바쳐 구한 아들은 행여나 그녀가 떨어질까 봐 곁에 딱 붙어서 살뜰히 챙겨주었고 가끔 손으로 부축하기도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두 남자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내 속상한 마음에 씁쓸함이 밀려왔다. 진정한 가족은 따로 있는데 생사의 갈림길에서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버림받는 신세가 되다니.

30분 전, 허연서가 우리 집 문을 두드리더니 아들을 데리고 생일을 같이 보내주겠다고 했다.

나는 싸늘한 얼굴로 거절했고, 방에서 숙제하던 육준서가 인기척을 듣고 뛰쳐나와 자기 엄마를 밀치고는 여자의 손을 잡고 행복한 얼굴로 밖으로 걸어 나갔다.

결국 가슴이 미어지는 고통에 어떻게든 막아서려고 기를 썼다.

하지만 나한테 붙잡힌 아들은 팔을 세게 깨물더니 원망이 가득한 눈빛으로 말했다.

“엄마가 뭔데 연서 이모랑 못 가게 막는 거죠? 엄마만 없었더라면 난 연서 이모의 아들이 되었을 텐데, 엄마는 죽어버렸으면 좋겠어요!”

피가 날 정도로 깨문 것만 보더라도 아들이 나를 얼마나 증오하는지 알 수 있다.

그렇게 대치하던 중 복도에서 큰불이 났다.

우리 셋은 갇힌 상태에서 애타게 구조 대원을 기다렸다.

아들은 내가 안중에도 없었고, 허연서의 곁을 지키면서 마치 어른처럼 침착하게 달래주었다.

“연서 이모, 걱정하지 마세요. 아빠가 이모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죠? 아마 제일 먼저 구해주러 현장에 도착할 거예요.”

나는 속상해서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무려 7년이라는 세월은 설령 반려동물을 키우더라도 정이 들기 마련일 것이다.

하지만 아들은 해당되지 않았고, 오로지 나를 향한 증오심뿐이었다.

사실 이유는 별것 없었다. 단지 비싼 장난감을 사주지 않고, 숙제를 다 하기 전까지 휴대폰을 못 만지게 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자발적으로 이혼하면 허연서가 엄마가 되어줄 수 있을 텐데 끝까지 버텨서 불만이 더 컸다.

그런데도 아들의 머리 위로 파편이 떨어지는 순간을 목격하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뛰어가 품에 끌어안았다.

결국 나는 머리를 부딪혀 피가 철철 흘렀다. 하지만 아들은 날 밀어내더니 걱정스러운 얼굴로 허연서의 손을 붙잡고 놀란 가슴을 달래주기 바빴다.

심지어 방독면을 쓴 채 문을 부수고 들어온 육상준도 잽싸게 뛰어와 하나뿐인 방독면을 챙겨서 허연서에게 건네주었다.

“아빠, 몸이 안 좋은 연서 이모부터 구해줘요. 엄마는 다른 아저씨가 구하러 올 테니까.”

나는 눈물을 흘리며 쓴웃음을 지었고, 손에 든 약병을 들고 부자에게 말했다.

“약이 거의 바닥이 나서 연기 속에서 오래 못 버틸 거야.”

7년 전 오늘, 나는 출산 중에 출혈이 심해 수술대에 누워 생사를 오갔다.

그러나 의식을 잃기 직전에도 육상준의 손을 붙잡고 아이만큼은 꼭 지켜달라고 간절히 빌었다.

만에 하나 불상사가 일어난다면 산모 대신 아이를 선택하라고 했다.

그런데 7년이 지난 지금은 목숨을 걸고 낳은 아들이 육상준의 손을 붙잡고 다른 사람부터 먼저 살려달라고 애원하지 않겠는가?

육상준은 무심한 얼굴로 쳐다보더니 허연서를 품에 안고 들어 올렸다. 게다가 얼음장처럼 싸늘한 말투는 등골이 오싹할 지경이었다.

“진라희, 이건 네 업보야. 동료가 곧 도착하니까 조금만 기다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저도 모르게 그의 소매를 붙잡고 애원하다시피 말했다.

“상준아, 나 임신했어. 날 미워해도 상관없지만 배 속의 아이까지 죽게 놔둘 거야?”

남자의 얼굴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동안 집에 들어온 적이 손에 꼽을 정도라서 나도 딱히 언급하지 않았다.

망설이는 아빠를 보자 육준서는 씩씩거리며 내 손가락을 하나씩 떼어냈다.

“엄마는 왜 그렇게 이기적이에요? 아빠를 속이려고 거짓말도 마다하지 않는다니!”

그의 품에 안긴 허연서는 흐느끼며 울었다.

육상준은 찰나의 연민을 끝으로 나를 밀치고 지나가 허연서를 안고 문을 박차고 나갔다.

매캐한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고, 나는 숨이 점점 막혔다.

손에 있던 약병에 천식약도 거의 바닥이 났다.

그리고 마지막 심호흡하고 절망감에 눈을 감았다.

이내 속으로 씁쓸함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애초에 이 악연을 시작조차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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