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용진은 그냥 바보 같았다. 특히 그런 말을 지껄이는 걸 보니 멍청하기 짝이 없었다.‘설마 자기가 멋있고 대단하다고 생각하나?’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경찰에게 다가갔다.“경찰관님, 이 사람 지금 거짓말하는 거예요.”“네? 왜 그렇게 말씀하시죠?”“사건 현장에 저도 있었거든요. 제가 볼 때 고수연 씨는 강요한 게 아니었어요. 두 사람은 서로 좋아서 관계를 맺었거든요.”진용진은 벌떡 일어나더니 노기등등해서 나를 쳐다봤다.“헛소리하지 마! 저 여자가 날 소파 위로 밀쳤다고.”나는 콧방귀를 뀌었다.“부부가 관계를 할 때 원래 침대 아니면 소파 위에서 하지 않나? 설마 서서 하게?”내 질문에 젊은 경찰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진용진은 바로 발끈해서 반박했다.“그런데 난 밀쳐져서...”나도 얼른 맞받아쳤다.“남자가 힘으로 여자 하나 못 밀쳐내는 게 말이 되나? 아예 밀쳐내고 싶지 않았던 거겠지? 밀당하느라. 잇속 챙길 거 다 챙기고 상대를 X폭행으로 고소하다니, 너무 속 보이는 거 아니야?”진용진의 얼굴은 단번에 어두워졌다.“아니야. 아니라고...”“경찰관님, 제가 증명할 수 있어요. 저 사람이 그때 아주 즐거운 표정을 지었거든요. 그리고 소파에 밀쳐진 것 외에 나머지는 저 자식이 더 적극적이었어요.”젊은 경찰관은 붉은 얼굴로 나를 봤다.“무슨 뜻이죠? 혹시 현장에 계속 있었나요?”나는 고개를 저었다.“계속 현장에 있었던 건 아니에요. 하지만 두 사람이 정식으로 관계하기 전에는 계속 있었어요. 진용진 씨는 싫은 척하면서 즐길 거 다 즐겼어요. 부부가 싸우면 그러는 건 정상이잖아요.”“다른 가정들도 부부가 싸워서 화해하고 싶으면 부부관계로 화해하고 그러잖아요. 싸웠다고 여자가 X폭행했다고 단죄하는 건 말도 안 되는 거잖아요.”“네, 알겠습니다.”진용진은 더 변명하려고 했지만 젊은 경찰관은 그의 말을 끊어버렸다.“됐어요. 진용진 씨는 그만 말하세요. 상황은 이미 알겠어요. 입건될지 말지는 우리가 결정하는 게 아니에요. 자료를
“당신 미쳤어? 내가 남자 친구를 사귀는 게 어때서?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처녀를 따져?”고수연은 기가 막히다는 듯 눈 앞의 남자를 바라봤다.두 사람은 결혼한 지 거의 10년이 다 되어 간다. 그런데 고수연은 자기가 결혼한 남자가 이렇게 속내를 꽁꽁 숨기고 있을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흥, 내가 점잖아 보이면 내 감정 따위 무시해도 돼? 다른 놈한테 굴려질 대로 굴려지고 딴 놈이 실증 내니까 나처럼 점잖은 사람 찾아 결혼하려고 했어? 그런 걸 보면 당신도 좋은 사람은 아니네.”고수연은 노기등등해서 성큼성큼 걸어가 진용진의 뺨을 후려 갈겼다.순간 진용진은 너무 놀라 얼빠졌다. 그는 벌떡 일어나 손찌검을 날리려고 손을 번쩍 쳐들었다.그때 나와 형수가 고수연 앞에 막아섰다.진용진은 인수에서 딸리니 결국 막 나가지 못했다.그때 고수연이 울며 말했다.“잘 들어. 나 당신이랑 결혼하기 전에 남지 친구 사귄 거 맞아. 그런데 뭐? 그건 정상적인 연애고, 정상적으로 욕구를 해결한 거야. 난 잘못 없어!”“여자 친구도 못 사귄 당신이 능력 없는 거겠지. 무슨 자격으로 나를 탓해? 내가 처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병 걸린 것도 아니잖아. 다른 남자 애를 밴 채로 당신과 결혼한 것도 아니고. 그런데 왜 나를 뭐라 해?”“당신이 다른 남자랑 잤으니까! 그럼 이미 더러워졌다는 거잖아!”진용진은 악에 바쳐 반박했다.“내가 점잖고 정직하지 않았다면, 우리 집 가정 형편이 안 좋지 않았으면 당신 같은 걸레랑은 결혼 안 했어!”그 말에 고수연은 결국 이성을 잃었다. 그녀는 손톱을 세우고 달려들어 진용진의 얼굴을 마구잡이로 잡아뜯었다. 마음 같아서는 진용진을 할퀴어 죽이고 싶었을 거다.진용진은 얼굴에 얼룩덜룩한 손톱자국과 핏자국이 난 채 고통에 꽥꽥 소리질렀다. 그는 고수연을 덮치려고 했지만, 형수가 뺨을 한 대 갈기는 바람에 다시 소파 위에 철푸덕 넘어졌다.“진용진, 내 동생 손끝 하나라도 건드려 봐!”나도 따라서 앞으로 나갔다.“나도 있다는 거 잊지 마.
형수와 고수연은 안방에서 자고 나는 거실 소파에서 잠을 청했다. 만약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리면 제일 먼저 반응할 수 있게.소파에 누워 오늘 있었던 일을 회상하니 감개무량했다.나는 오늘만 해도 이 집을 세번이나 드나들었다가 결국 잠까지 자게 됐다.운명은 참 신기하다.방에서 여전히 흐느끼는 소리가 은은하게 흘러나왔다. 아마 고수연과 형수는 오늘 밤 잠을 설칠 것 같았다.그에 반해 나는 소파에 한참 누워 있었더니 점점 졸음이 밀려와 결국 잠이 들어 버렸다.한밤중에 잠에서 깬 나는 흐리멍덩한 눈을 한 채 화장실을 찾아 헤맸다.처음에는 내가 남의 집에 있다는 걸 잊는 바람에 낯선 환경에 어리둥절했다.그러다 한참이 지나서야 내가 지금 어디 있는지 알아챘다.나는 머리를 세게 내리치고 화장실로 걸어갔다.배가 좀 아파 변기에 앉아 볼 일을 볼 때였다. 들어올 때 핸드폰을 가져오는 걸 깜빡하는 바람에 너무 어색해 주위를 돌아보는데, 선반에 여자 것으로 보이는 속옷과 팬티가 가득 쌓여 있었다.그런데 갑자기 그 중에서 팬티 하나가 툭 떨어졌다. 순간 나는 너무 난감했다.‘하필 내 발밑에 떨어질 건 또 뭐람? 이걸 주워 말어?”안 줍자니 더러워질 것 같았다.결국 고민 끝에 나는 허리를 숙여 팬티를 집어 들었다.그런데 그때, 화장실 문이 밖에서 열리더니 다음 순간 나는 고수연의 퉁퉁 부은 눈과 마주치고 말았다.서로 맞닿은 시선과 내 손에 들린 팬티. 오해 사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몇 초 지나고 나서야 우리는 정신을 차렸다.나는 얼른 해명했다.“팬티가 떨어져서 주운 것뿐이에요.”고수연은 어색한 얼굴로 중얼거렸다.“수호 씨가 집에 있다는 걸 잊었어요. 평소에 혼자 집에 있다 보니 바로 들어왔네요. 미안해요.”“아, 그럼 우선 나가줄래요. 바로 끝나요.”우리는 갑자기 서로 예의를 차렸다. 마치 손님을 상대하는 듯이.그 때문에 나는 오히려 더 어색해졌다.“내 팬티 제 자리에 놔주면 고맙겠네요.”고수연은 말을 마친 뒤 바로 나갔다.내 손에 들려
“아, 죄송해요.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나는 황급히 손을 떼며 설명했다.‘아까는 팬티를 쥐고 이번에는 가슴을 만지고. 이러다 설마 또 뺨 맞는 거 아니야?’그런데 웬걸? 고수연은 그저 얼굴을 붉혔다.“됐어요. 먼저 가요.”‘나를 탓하지 않는다고?’이 사실을 나는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얼른 옆으로 물러났다.나는 지금 조용히 지내고 싶었다. 다툼은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었다.만약 이렇게 늦은 야밤에 싸운다면 너무 짜증날 것 같았으니까.고수연은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잠시 뒤, 쏴 하는 물소리가 내 귓전을 때렸다.‘뭐야? 이 여자 소변보는 소리가 뭐 이렇게 커?’‘그리고 여기 방음 왜 이렇게 안 돼?’‘집에 사람이라도 오면 얼마나 어색하겠어.’나는 아예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쓰고 자는 척했다.한참 뒤, 고수연이 화장실에서 나왔다. 그녀가 당연히 방으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고수연은 내 쪽으로 걸어왔다.“안 자는 거 알아요. 나랑 얘기 좀 해요.”“지금 새벽 3시예요. 아직도 안 자고 뭐 해요?”나는 이불을 내리고 일부러 흐리멍덩한 눈으로 물었다.고수연은 또 다시 눈시울을 붉혔다.“잠이 안 와요. 이대로 들어가면 언니가 깰 거예요.”나는 결국 자리에 일어나 앉았다.“사실 이럴 필요 없어요. 수연 씨 아직 젊잖아요. 이혼하고 나서 더 좋은 사람 찾으면 되죠.”“안 찾을래요. 이혼하면 다른 사람 안 찾을 거예요. 남자한테 너무 실망했어요. 남자는 다 똑같잖아요. 세상에 좋은 놈은 없어요.”나는 머쓱해서 코를 쓱 만졌다.그러자 고수연이 나를 보며 말했다.“수호 씨도 좋은 사람은 아니에요.”“왜 또 내 얘기예요?”고수연은 나를 보며 물었다.“솔직히 말해요. 우리 언니랑 무슨 사이예요? 두 사람... 잤죠?”나는 고수연의 눈을 쳐다볼 수 없어 고개를 돌렸다.“아니요.”“정말 아니에요?”“정말 아니에요.”“거짓말.”‘헐.’‘내가 이렇게 단호하게 말했는데도 거짓말인 걸 알았다고
고수연은 말하면서 나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그런 그녀에게 너무 꼬집혀 이미 졸음이 날아간 나는 아예 소파에 걸터 앉았다.“그래요. 성공했네요. 말해요. 내가 쓰레기통이 되어 줄게요.”“뭐요? 쓰레기통? 지금 내가 한 말이 쓰레기라는 말이에요?”“그냥 비유잖아요... 됐어요. 그냥 나를 나무라고 생각해요. 그럼 되죠?”고수연은 피식 웃었다.이건 고수연을 만나고 나서 처음 보는 그녀의 미소였다.‘이 여자도 웃으니까 꽤 예쁘잖아.’고수연은 형수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분위기가 달랐다.형수는 고혹적인 축에 속했고 고수연은 우아한 축에 속했다.진용진이 이렇게 예쁜 아내를 놔두고 밖에서 바람피우는 게 이해가 안 될 정도였다.“한의사는 마사지도 잘한다면서요?”고수연이 갑자기 물었다.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담배 한 대를 꺼내 입에 물었다.그러자 고수연이 자발적으로 라이터를 켜 불을 붙여줬다.내 담배에 불을 붙여준 여자는 고수연이 처음이다.나는 약 2초간 멍해 있다가 정신을 차렸다.담배를 한 모금 깊게 들이 마시자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할아버지가 한의사였는데 어릴 때부터 약초 캐러 같이 다니면서 한의학에 관심 갖게 됐어요. 대학 때도 한의학을 정공했고 지금도 한약관에서 일해요.”“우리 언니랑은 그 직업 때문에 만나게 된 거예요?”‘왜 또 대화가 여기로 튀는 건데?’나는 귀찮은 듯 말했다.“왜 자꾸만 나와 그쪽 언니 일을 묻는 건데요? 본인도 돌볼 겨를이 없으면서. 본인 일에나 관심 가져요.”고수연은 팔짱을 끼고 말했다.“나는 이미 이렇게 됐는데 뭐 어쩌겠어요? 이혼해야죠. 진작 내려놨어요. 하지만 언니 일은 예전부터 궁금했어요. 진동성이 안 돼서 언니가 항상 만족하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궁금한데, 대체 우리 언니 문제를 어떻게 해결한 거예요?”나는 담배를 한 모금 들이켜며 말했다.“몰라요. 직접 물어봐요.”“언니는 말 안 할 거예요.”“나도 말 안 할 거거든요. 언니한테 못 물어보면서 왜 나한테 물어요?”“친언니니까 그렇죠
“당장 나가요. 안 그러면 형수 부를 거예요.”나는 진심으로 화가 나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감히 내 집에서 나를 겁주는 거예요? 간도 크네.”고수연이 홉뜬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나는 물러서지 않고 계속 차가운 얼굴로 대꾸했다.“겁주는 거 아니에요. 수연 씨가 너무한 거죠.”“그래요. 자요.”고수연은 말을 마친 뒤 바로 방을 나갔다.그제야 나는 한숨 돌릴 수 있었다.나는 얼른 문을 잠그고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얼마 뒤 무거운 눈꺼풀을 스르르 감았다.이튿날, 날이 밝을 때까지 잠들어 있던 나는 다급한 문소리에 깨어났다.처음에는 그냥 무시할까 했는데, 노크소리가 계속 이어지는 바람에 너무 시끄러워 마지못해 깨어났다.나는 언짢은 표정으로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그런데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안방 문이 열렸지만 형수와 고수연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대체 뭐 하러 갔는지.그리고 지금 들리는 노크소리는 밖에서 들리는 거였다. 급하게 울리는 노크소리만 들어도 문 밖의 사람이 얼마나 조급한지 짐작이 갔다.나는 또 진용진이 찾아온 줄 알고 재떨이를 쥔 채 문 앞으로 다가갔다.그러고는 문을 열고 문 밖의 상대를 향해 와다다 쏘아붙였다.“진용진, 너 언제까지 이럴 거...”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나는 그대로 벙쪘다. 문 밖에 서 있는 사람은 진용진이 아니라 웬 여자였다.그 여자는 형수와 아주 닮았는데 체형은 형수에 비해 좀 말랐다.하지만 커다란 가슴은 사람의 눈길을 끌었다.여자는 섹시하게 차려 입었는데, 특히 붉은 립스틱이 참 매혹적이었다.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예쁜 입술이 있나 하는 생각에 나는 멍하니 상대를 바라봤다.“큰언니, 작은 언니?”“어? 어디 갔지?”나는 그제야 상대가 형수의 셋째 동생 고아연이라는 걸 알아챘다.고아연은 나를 무시한 채 안으로 쳐들어와 방을 샅샅이 뒤졌다.“큰언니와 작은 언니는요?”“저도 몰라요. 이제 막 깨났거든요.”나는 말하면서 여자의 입을 쳐다봤다.정말 볼수록 예쁜 입술이었다.입술
고아연은 나를 보며 매혹적인 미소를 지었다.“내가 잡아먹을까 봐 무서워? 그렇게 긴장할 거 없어. 우리 형부 동생이잖아. 아무 짓도 안 할 테니까 얼른 와. 누나 할 말 있어.”나는 반신반의했지만 결국은 고아연 곁으로 다가갔다.고아연은 손을 뻗어 내 팔을 주물렀다.“근육 느낌 좋은데 단단한 건 아니네. 평소에 운동 잘 안 하지?”“안 하는 편이에요.”나는 약간 불안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 여자 앞에서는 내가 정말 남동생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아연은 이번에 내 다리를 주물렀다.“다리 근육은 더 없네. 운동 부족이구나. 젊은 나이에 이렇게 게을러서 어떡해?”나는 이 여자가 대체 왜 이러나 살짝 의아했다.나는 일부러 옆으로 슬쩍 움직였다. 고아연의 향수 냄새가 너무 심하기도 했고 옷이 너무 파여 가슴이 자꾸만 내 눈에 들어왔으니까. 그것 때문에 나는 온몸이 불편했다.“왜 그렇게 멀리 앉아 있어?”고아연은 말하면서 내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그러고는 말을 이었다.“내가 뭐 하는 사람인지 알아?”나는 머리를 마구 도리질했다.그러자 고아연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클럽 마담이야. 부잣집 사모님들한테 젊고 잘생긴 총각 소개시켜주는.”고아연은 웃으며 나에게 이상한 눈빛을 보냈다.‘에이 설마? 설마 나를 부잣집 사모님들한테 소개해주려는 건 아니겠지?’내가 살짝 겁먹은 눈을 하자 고아연은 박장대소하며 일어섰다.“겁먹기는. 장난이야. 내가 일하는 곳은 합법적으로 운영하는 클럽이야. 절대 그런 지저분한 짓 안 해.”이 순간 내 심정을 어떤 단어로 형용해야 할지 모르겠다.이 여자가 대체 왜 이러는지. 왜 처음만난 사람을 이렇게 놀리는지 이해되지 않았다.‘이게 재밌나?’나는 약간 언짢은 듯 말했다.“앞으로 그런 농담은 하지 마세요. 하나도 재미없어요.”“재미없어? 이봐, 우리 클럽에 호스트 필요한데 정말 생각 없어?”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필요 없어요. 저 제대로 된 직장 다니고 있어요. 그러니까 절대 그쪽이 일하는 그런
“너 미쳤어? 대체 위로하러 온 거야? 염장 지르러 온 거야?”고수연이 말을 하기 전에 형수가 퉁명스럽게 고아연을 쏘아붙였다.그러자 고아연은 바로 이상함을 눈치챘다.“큰언니, 이상한데? 나 지금 작은 언니랑 말하는 건데 언니가 왜 흥분하고 그래? 누가 언니를 말했어?”고수연도 형수를 바라봤다.하지만 형수는 큰언니다운 카리스마를 보여주며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보긴 뭘 봐? 너도 쟤랑 똑같이 굴려고 그래?”고수연은 이내 도리질했다.그 틈에 형수는 바로 화제를 전화했다. 그제야 나도 따라서 한숨을 돌렸다.“형수, 저 담배 좀 사올게요.”나는 이 위험한 곳에서 한시 빨리 도망치고 싶었다.여자 셋 모인 곳에서 무슨 꼴을 당하려고, 이 곳에 계속 있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내가 집을 나서자 마자 형수가 문자를 보내왔다.[수호 씨는 볼 일 보러 가요. 여기는 일은 신경 쓸 거 없어요.]나는 곧바로 형수의 말뜻을 알아차렸다.형수는 셋째 동생이 나를 귀찮게 할까 봐, 나를 얼른 다른 곳으로 보내 버리려는 모양이었다.나는 형수에게 답장을 보내고 근처 가게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그러고는 국민 공원에서 런닝을 하려고 결심했다.아직 몸이 다 낫지 않아 격렬한 운동은 할 수 없기에, 나는 결국 반 바퀴만 뛰고 반 바퀴는 걸었다. 그런데도 온몸은 땀에 흠뻑 젖었다.벤치에 앉아 쉬면서 시간을 보니 벌써 아침 9시였다.출근하지 않는 것도 참 지루했다. 그러고 보니 매일 출근해서 바삐 보내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나는 결국 정 사장님께 전화했다.“사장님. 저 오후에 출근하고 싶어요.”[수호 씨 팔 다친 거 아니었어? 집에서 쉬면서 몸조리하고 와.]“저 한쪽 팔만 다쳤어요. 다른 한쪽 팔은 움직일 수 있어요. 집에 있는 게 너무 심심해서 출근하는 게 더 나은 것 같아요. 마사지는 못해도 다른분께 도움은 드릴 수 있잖아요. 저 돌아가게 해주세요.”정 사장님은 내가 계속 고집하자 결국 마지 못해 동의했다.[그래, 뭐. 와서 약 짓는 거 도와줘. 이
짝!정태곤은 아무 말 없이 다가가 주덕팔의 뺨을 후려갈겨 그를 바닥에 때려눕혔다. 그러고도 끝나지 않았는지 또 성큼성큼 걸어가자, 주덕팔은 경기를 일으키며 연신 뒷걸음쳤다.“뭐, 뭐 하려는 거야? 경고하는데, 다가오지 마. 내가 이 구역 깡패를 알아...”정태곤은 그 말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깡패? 좋아. 이름이 뭔데? 지금 당장 전화해서 여기로 오라고 해.”“당, 당신이 그렇게 대단하면 나한테 전화할 기회라도 줘.”정태곤은 팔짱을 낀 채 느긋하게 말했다.“지금 기회 줄게. 쳐.”주덕팔은 다급히 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해 말했다.“김진호, 당장 사람 불러서 여기로 모여.”김진호라는 이름을 들은 순간, 나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김진호가 주덕팔과 한패가 되었다는 게 분했다.‘정 사장님이 평소 얼마나 잘해줬는데, 이 개자식이 감히 다른 사람과 손을 잡고 정 사장님을 모함해? 역겨워서 원.’나는 주덕팔에게 다가가 핸드폰을 빼앗아 오고는 전화에 대고 소리쳤다.“김진호, 이 개자식아! 이런 짓을 벌인 게 네놈일 줄은 몰랐네.”김진호는 내 목소리를 알아들었는지 피식 웃었다.“정수호, 너였어? 빨리 기어올랐네? 정호섭이 그렇게 되니까 네가 바로 2인자가 된 거야? 너 사모님이랑 잤지?”김진호의 말에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이 개자식이 헛소리 지껄이지 마. 사모님은 그런 분 아니야.”“사모님이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고, 네가 좋은 놈이 아니라는 건 알아. 나한테서 윤 사모님을 빼앗아 간 것도 모자라 그렇게 많은 여자들과 애매모호한 관계를 유지하다니. 넌 여자 등에 빨대 꽂는 등신이잖아.”그 말에 자존심이 단단히 긁힌 나는 이를 악물고 반박했다.“아니야!”“쳇, 네가 아니라고 해서 아닌 게 아니야. 아무튼 태 눈에 넌 그냥 쓸모없는 등신이야.”나는 심호흡을 하며 애써 냉정을 유지했다.그때 소여정이 다가와 내 손에서 핸드폰을 빼앗아 가더니 말했다.“정수호가 여자 덕을 보면 뭐 어때서? 적어도 그럴 자본이 있는데, 넌 있어?
소여정은 항상 이렇다. 그녀는 마치 활짝 핀 꽃들 사이에 가장 예쁘고 화려하게 핀 목단 같은 존재다. 때문에 어디를 가든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소여정은 천수당에 들어오자마자 주덕팔에게 말했다.“팔이 삐끗한 것 같은데, 한번 봐줘요.”주덕팔은 소여정이 화인당 사모님과 아는 사이라는 걸 모른다, 그저 그녀가 아주 예쁘다는 것만 알 뿐. 때문에 치료 명목으로 소여정을 마음껏 만질 생각을 하며 비릿한 미소를 머금은 채 다가갔다.하지만 주덕팔의 손이 소여정 팔에 닿기도 전에, 짝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얼굴이 돌아갔다.주덕팔은 한쪽 얼굴을 감싸 쥔 채 멍한 눈으로 정태곤을 바라봤다.“왜 때려요?”“소여정 씨는 S시 임천호 회장님의 사람이다. 어디서 함부로 그 더러운 손으로 소여정 씨를 만지려 들어?”주덕팔은 임천호가 누구인지는 몰랐으나, 정태곤의 날카로운 눈빛에서 그와 소여정이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걸 알아챘다. 때문에 화가 나더라도 감히 그 화를 겉으로 드러내지 못했다. 주덕팔은 얼른 직원을 시켜 손수건을 가져오게 하고는 그것을 소여정의 팔 위에 덮었다. 다만 답답하고 분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이렇게 예쁜 여자를 눈앞에 두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도 모자라 뺨까지 맞았으니 참 재수 없었다.한참 동안 검사하고 난 뒤, 주덕팔은 소여정의 팔이 아무 문제 없다는 걸 발견했다.“저기요. 환자분 팔은 아무 문제 없어요.”“문제 없다고요? 그런데 팔이 왜 이렇게 아프죠? 혹시 의술이 안 좋아 문제점을 찾지 못하는 거 아니에요?”“아니, 그런 말 함부로 하면 안 되죠. 저 주덕팔이 정형외과 의사로 지낸 세월이 몇십 년인데, 의술은 장담해요.”“아, 그러면 내가 지금 당신을 모함한다는 뜻이에요?”소여정은 커다란 눈망울을 깜빡이며 억울하다는 듯 물었다.주덕팔은 그 말에 아무 말도 못한 채 무의식적으로 정태곤의 눈치를 살폈다.“그럼 다시 한번 봐 드릴까요?”주덕팔은 또다시 검사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아무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
“요즘 천수당 장사가 안된다고 해서 제가 특별히 사람들을 데리고 소비해 주러 왔잖아요.”주덕팔의 안색은 매우 어두웠다.하지만 나는 시종일관 빙그레 웃으며 말썽도 피우지 않고 시비도 걸지 않았다.‘어때? 예상 밖으로 움직이니 대체 못 하겠지?’주덕팔은 결국 화를 내지도 못한 채 진찰하도록 직원들을 다그쳤다.나는 일부러 사람들더러 빈자리를 모두 차지하게 했다. 이렇게 하면 다른 손님들이 들어와도 앉을 자리가 없을 테니까.병 보는 건 내 주요 목적이 아니었다. 상대가 어디 아프냐고 물어볼 때 대충 여기저기 다 아프다고 둘러대며 온몸을 검사하게 했다.만약 상대가 아무 문제도 찾아내지 못하고 나더러 큰 병원에 가보라고 한다면, 난 이 사람들의 의술이 별로라고 큰소리로 떠들어댈 생각이었다.상대가 가게 평판에 신경 쓰지 않는다면, 난 더 상관없었다.한바탕 소동이 끝나자 마침내 내 의도를 파악한 주덕팔이 씩씩거리며 다가왔다.“당신, 나 따라와.”“주 사장님, 저 팔에 아직 깁스를 하고 있어 온몸이 불편해요. 어떻게 환자한테 그렇게 사납게 굴 수 있어요?”어느새 한의원 입구에 구경하는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였다.때문에 주덕팔은 일이 커질까 봐 말을 심하게 하지는 못했다. 그저 분노를 삭이며 이를 악물었다.“나랑 안으로 들어가면 내가 직접 진찰해 줄게요.”“안 돼요. 제가 이틀 전에 갈비뼈도 부러져서 걷지 못하거든요. 사장님이 저를 업고 들어가실래요?”“업긴 무슨...”주덕팔은 하마터면 참지 못하고 욕지거리를 퍼부을 뻔했다.나는 시종일관 눈웃음을 치다가 억울한 듯 입을 열었다.“주 사장님, 왜 사람을 욕하고 그러세요? 저 사장님 명성 때문에 여기 온 거예요. 그러니 저를 실망하게 하지 마세요.”결국 주덕팔은 씩씩거리며 뒤돌아 자리를 떠났다.나는 그를 무시한 채 계속 진찰을 받았다. 직원이 치료를 도와주겠다고 해도 순순히 협조했다. 하지만 모든 치료가 끝난 뒤 나는 여전히 온몸이 아프고 불편하다고 트집을 잡았다.내 목적은 주덕팔이 장사를 접게
천수당이라면 나도 안다. 정형외과 한의원인데, 주로 타박상과 골절 등을 전문적으로 치료하고 있다.그리고 그곳 사장 주덕팔은 뚱뚱한 아저씨인데, 전에 몇 번 만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사람이 화인당을 노리고 있을 줄이야.“다, 다 말했는데, 배상한다던 건 언제 배상할 건데요?”아직도 배상 타령하는 놈을 보니 정말 한 대 쥐어박고 싶었다.“우리 사장님한테 사고가 나자마자 우리 화인당을 모함하러 온 주제에, 어디서 뻔뻔하게 배상을 요구해?”내가 당장 남자를 쥐어박을 것처럼 굴자, 놈은 놀랐는지 허둥지둥 도망쳤다.모태진은 나를 보며 물었다.“수호 씨, 우리도 주덕팔 가게로 가서 결판 내야 하지 않아요?”“증거도 없는데, 상대가 인정할까요?”“그래도 아까 사람이 주덕팔이라고 말했잖아요.”나는 너무 어이없어 모태진을 바라봤다.“주덕팔은 절대 인정하지 않을 거고, 증인도 이미 도망쳤어요.”모태진은 그제야 발견했는지 머쓱하게 말했다.“아, 이럴 줄 알았으면 그 사람을 잡아두는 건데.”사실 잡아 둔다고 해도 소용없다. 주덕팔이 끝까지 인정하지 않으면 뭔 소용이 있나?설령 경찰에 신고한다 해도 결국은 흐지부지해질 거다.이 일은 그렇게 처리하면 안 된다.나는 속으로 악랄한 방법을 생각했다.“눈에는 눈, 이에는 이. 주덕팔이 우리와 화인당을 모함하려고 했으니 우리도 똑같이 돌려주면 돼요.”그때 민우가 바깥 상황을 정리하고 다른 동료들을 데리고 한의관 뒤편으로 왔다.마침 내 말을 들은 동료들은 너도나도 무슨 방법이 있는지 물었다.“간단해요. 주덕팔이 우리를 모함했으니, 우리도 상대를 모함하면 돼요. 우리는 상대보다 더 많은 사람을 찾아야 해요. 지금 바로 움직여요. 주위에 골절 환자거나 타박상을 입은 환자가 있으면 모두 천수당으로 불러요.”모태진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그다음에는요?”민우는 이미 내 계획을 알아챈 듯 싱긋 웃었다.“그다음은 간단하잖아요. 그쪽에서 약을 처방받으면 되죠. 그러고 나서 약이 효과가 없다, 약에 문제가 있
이 사람이 이런 짓을 벌인 건, 급전이 필요해서일 거다. 때문에 나는 일부러 이런 방식으로 상대에게 미끼를 던졌다.아니나 다를까 상대는 잠깐 고민하는가 싶더니 흔쾌히 승낙했다.“그래요. 들어가서 얘기해요. 하지만 적어도 이 정도는 돼야 해요.”상대는 손가락 6개를 내밀었다.나는 여전히 웃는 얼굴을 유지했다.“그래요. 들어가서 얘기해요.”나는 남자에게 어깨동무한 채 안으로 들어가며 민우더러 사람들을 돌려보내라고 눈짓했다.일이 이 정도로 끝났으니 그저 해프닝에 그칠 거다. 만약 일이 커지기라도 했으면 아마 화인당 평판에 영향을 미쳤을 텐데 말이다.나는 남자를 한약관 뒤편으로 데려갔다. 그랬더니 남자는 주위를 경계하며 두리번대다가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나를 따라 나섰다.“여기서 예기해요. 아예 지금 돈 줘요. 돈만 받고 갈게요.”그 말에 나는 이내 돌변해서 기분 나쁜 표정을 지었다.“돈을 달라고? 아주 뻔뻔하네? 화인당이 몇 년 동안 영업했는데, 그동안 한 번도 이런 일 없었어. 누가 지시한 거야? 누구 지시받고 이런 짓 한 거야? 우리를 모함하는 대가로 얼마 받기로 했어?”나는 너무 화가 나 분노한 눈빛으로 상대를 바라봤다. 정 사장님한테 일이 생기자마자 사장님이 피땀 흘려 일궈낸 사업을 망치려 들다니,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남자는 내 생각을 꿰뚫었는지 곧장 뒤돌아 도망쳤다.하지만 그때, 그림자 하나가 그를 가로막았다. 놀랍게도 그 사람은 모태진이였다.모태진은 나를 바라보면서 머쓱해서 말했다.“다른 일은 우선 제쳐두고 나중에 얘기해요. 화인당을 지키려는 건 수호 씨도 나와 같은 마음일 거라고 믿어요.”나는 모태진의 말을 의심하지 않는다.확실히 화인당 내 모든 직원들은 모두 한마음 한뜻이었다.아까 이 사람이 소란을 피울 때도 모든 직원이 나서서 사장님과 이 가게를 옹호했다.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눈앞의 남자를 바라봤다.“여기 들어와서도 제멋대로 굴면 나갈 생각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그 남자는 구석에
“아니야. 전처가 아무리 예뻐도 너만 할까? 넌 젊고 몸매도 끝내주는 데다 온몸에 콜라겐 덩어리라, 보는 것만으로도 욕구가 솟아나는데.”‘개X식.’왕정민의 말을 듣자마자 나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퍼부었다.그런데 간호사도 의외로 고단수였다. 적어도 전소희 보다는 한 수 위였다.간호사는 곧바로 왕정민 품에 기댔다.“역시, 사장님이 제 미모를 마음에 들어 할 줄 알았어요. 이게 내 자본이기도 하죠. 젊고, 예쁘고, 몸매가 좋은 데다 밤일까지 끝내주니 절대 나 놓치지 마요. 안 그러면 후회할 거예요.”그 말은 왕정민한테 역시나 잘 먹혔다. 그는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난 역시 너 같은 여자가 좋더라. 자, 우리 역할극 놀이 더 할까?”두 사람이 노는 방식은 참으로 다양했다. 하지만 지구력이 너무 딸려 아무리 방법이 다양해도 모두 무용지물이었다.나는 녹화된 영상을 한번 확인했다. 오늘 수확이 이렇게 클 줄은 정말 몰랐다.나는 얼른 방금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윤미화에게 보내고 신속히 내 차로 돌아갔다.“직접적인 증거 잡았어요. 고용주한테 보내요.”내 말에 윤미화는 깜짝 놀란 눈치였다.[올, 대단한데. 사흘 줬더니 하루 내로 증거를 확보하다니.]나는 헤실 웃었다.“운이 좋았던 것뿐이에요. 이번 의뢰 완성한 셈이죠?”[잠깐만. 우선 영상 좀 보고.]급할 것 없었기에 나는 차에서 기다렸다.그러다 한참 뒤, 윤미화가 말했다.[이번 증거 아주 쓸모 있겠는데? 됐어. 임무 완성이야. 이제 볼일 봐.]“네, 그럼 전 할 일 하러 갈게요. 별일 없으면 연락하지 마요.”말을 마친 나는 바로 전화를 끊고 한약관으로 향했다.하지만 내가 도착했을 때, 이미 누군가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주위에 몰린 사람이 많이 시끌시끌했는데, 대체 무슨 일인지는 알 수 없었다.나는 얼른 민우 곁으로 다가가 물었다. 그러자 민우가 이를 악문 채 말했다.“저 자식이 여기 약을 먹고 문제가 생겼다면서 손해배상 하라잖아.”그 말에 나는 순간 이상함을 눈치챘다.화인당이
“그래.”민우한테 모든 걸 설명한 뒤에야 나는 비로소 조금 안심이 됐다. 다른 건 몰라도 민우가 또 싸움은 꽤 하니까.왕정민 쪽 증거도 최대한 빨리 완벽하게 수집하여 한의관에 빨리 복귀할 생각이었다.정 사장님이 평소에 나에게 그렇게 잘해주는데, 사장님한테 일이 생긴 마당에 별 도움이 되진 못하더라도 한의관만은 잘 지켜 주고 싶었다.왕정민의 회사 밖에서 한참 동안 진을 치고 기다렸지만 아무 수확이 없었다. 게다가 그 간호사가 떠나자 왕정민은 또다시 애처가 이미지로 돌아왔다.나는 마음이 다급했으나, 일을 시작했으면 완벽하게 할 생각이었다.나는 항상 이렇다.그날 주구장창 회사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더니 저녁때가 되어서야 왕정민의 차가 회사를 떠났다.하지만 왕정민은 곧장 병원으로 가지 않고 그린 파크에 있는 별장으로 향했다.몰래 왕정민을 따라 한 별장 문 앞에 도착했더니, 별장 문이 열리면서 그 간호사가 나타났다.나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 들고 연달아 사진을 찍어댔다.‘오호라. 그 간호사한테 별장까지 사줬어?’‘이러면 빼도 박도 못 하겠지.’하지만 나는 서둘러 떠나지 않고 두 사람이 들어간 뒤 별장 가까이 다가갔다. 창문을 통해 더 자극적인 장면이라도 촬영할 수 있을지 모르니까.두 사람은 며칠을 굶주린 사람 같았다. 두 사람은 집 안에 들어서자마자 서로 부둥켜안고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다가 급기야 옷까지 모두 벗어 던졌다. 그 장면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었다.나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 들고 찰칵찰칵 사진을 찍었다.전에 윤 사장님이 직접적인 증거가 없으면 안 된다고 했는데 마침 잘된 셈이었다. ‘온통 증거네. 아주 굴러들어 오는구먼.’나는 일처리를 완벽하게 하기 위해 동영상까지 찍었다. 하지만 영상을 고작 1분 찍었을 때, 왕정민은 시들어 버렸다.그 순간 하마터면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고작 이 정도면서 집에 여자를 숨겨?’‘몇억짜리 별장에 내연녀를 숨겼는데, 즐길 수 있는 시간이 고작 1분이라니. 대체 뭘 바라고 이러나 몰라.
윤미화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심장이 철렁했다.아까는 그저 왕정민한테 복수할 생각에 눈이 멀어 다른 건 고려하지 못했다.‘역시 아직은 경험이 부족하네.’나는 얼른 말했다.“이번 일을 교훈으로 삼고 다음 번에는 절대 함부로 움직이지 않을 게요.”[그래. 지난 경험을 교훈으로 삼을 줄 알면 됐네. 목표물 잘 주시해. 될수록 증거 더 수집하고.]그 말에 나는 문득 의아했다.“증거는 이미 손에 넣었잖아요?”[고작 사진 몇 장으로 뭘 설명할 수 있는데? 상대가 변호사를 고용하면 빠져나갈 구멍이 많아.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를 잡아서 두 사람이 부적절한 관계라는 걸 증명해야 해.][예를 들면 두 사람이 콘돔을 산다거나, 아니면 침대 위에 있는 사진이면 더 좋고. 직접적 증거는 이런 걸 말하는 거야. 자기가 직은 건 그냥 간접적 증거지. 법정에서 증거로 제출할 수도 없어.]‘이 바닥에도 뭔 요령이 이렇게 많아?’윤미화는 말을 이었다.[이혼 소송은 쉽지 않아. 특히 한쪽이 바람 피운 상황에서 부당한 방법으로 증거를 채택하면 오히려 역으로 고소당할 수도 있어. 시간 날 때 관련 영상 많이 봐 둬. 여기 물 깊어나는 속으로 감개했다. 그래도 애교 누나와 왕정민이 이혼할 때는 깔끔하게 끝날 수 있어 다행이었다.만약 왕정민이 계속 애교 누나에게 질척거리면 애교 누나는 얼마나 고생해야 할지 모른다.“알았어요. 왕정민 뒤는 계속 밟을게요.”통화가 끝난 뒤 나는 차에 올라 또 다시 왕정민 회사로 향했다.그때 마침 전화가 걸려왔다. 상대는 다름 아닌 유미 사모님이었다.나는 얼른 전화를 받았다.“사모님, 무슨 일이예요? 혹시 사장님한테 무슨 일 있어요?”[아니에요. 호섭 씨는 방금 잠들어서 나 혼자 밖에 앉아 있어요.]사모님의 말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깜짝 놀랐어요. 또 무슨 일 있어서 전화했나 하고.”[수호 씨, 호섭 씨가 입원해 있는 동안 한약관 일은 수호 씨가 좀 신경 써 줘요. 사실 호섭 씨한테 자꾸만 시비를 걸어오는 사람이 있는데
전승빈은 왕정민이 그동안 환심을 사려고 했던 사람이기도 하다.왕정민은 자기가 그동안 한 짓을 장인어른이 이미 눈치챘다는 걸 꿈에도 몰랐다.이러고 보니 애교 누나가 왕정민과 이혼하고, 쓰레기한테서 빨리 벗어난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렇지 않으면 지금 상처받은 사람은 오히려 애교 누나였을 테니.내가 왕정민 회사에 온 건 이번이 처음인데, 회사 규모가 의외로 꽤 컸다.사실 회사 직원은 고작 2, 30 명 정도가 끝인데 왕정민이 회사를 너무 으리으리하게 장식한 탓이었다.나는 외진 곳에 차를 세워 두고 회사 방향을 계속 관찰했다.그렇게 한참을 기다렸지만 왕정민의 그림자조차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왕정민의 현 아내 전소희가 모습을 드러냈다.전소희는 확 눈길을 사로잡을 만큼 화려하게 생기지는 않았지만 꽤 예쁘장했다. 전소희가 불룩한 배를 감쌈 회사에서 나오자 나는 얼른 그녀의 뒤를 밟았다.물론 왕정민의 행방을 아는 건 아니지만 전소희를 따라가다 보면 왕정민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었으니까.그렇게 한참 미행하다가 도착한 곳은 병원 산부인과였다. 그렇다는 건 내가 헛걸음을 했다는 뜻이기도 했다.하지만 내가 떠나려고 할 때, 왕정민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품에 미녀 간호사를 안은 채.그 간호사는 늘씬하고 훤칠했으며 얼굴은 전소희를 압살했다.그 순간 왕정민이 전에 동성 형과 여자를 서로 바꿔서 놀자고 했던 게 떠올랐다. 그리고 지금 왕정민 품에 있는 여자는 다름 아닌 동성 형의 바람상대 진소민이었다.나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 연거푸 사진 몇 장을 찍고는 조용히 왕정민 뒤를 밟았다.왕정민은 그 간호사와 함께 근처 호텔로 향했다.나는 두 사람이 들어간 방 번호를 확인한 뒤 곧장 병원 산부인과로 돌아갔다.나는 이 사실을 진소희한테 알려줘, 그녀더러 왕정민을 상대하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진소희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결국 나는 어쩔 수 없이 다시 호텔로 돌아가 문 밖에서 지켰다.아까 두 사람이 함께 호텔로 들어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