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연은 끝내 참지 못하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서에서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와 현재 위치를 묻고 조사에 협조해줄 것을 요구했다.고수연은 울면서 형수를 바라봤다. 그러다가 형수가 이따 함께 가서 편 들어주겠다고 하자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수호 씨, 이따 같이 가 줘요. 수호 씨가 남자라서 그래도 안심이 되거든요.”나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여자 둘이 가는 건, 나도 마음 놓이지 않았다.때문에 우리는 또다시 르엘 빌라로 향했다.진용진과 두 명의 경찰은 이미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리가 들어오는 걸 보자 벌떡 일어서서 소리쳤다.“경관님, 저 여자예요. 저 여자! 저 여자가 저를 X 폭행했어요.”두 경찰은 모두 젊어 보였는데, 두 사람 모두 난처한 표정이었다.하지만 여전히 규칙대로 일을 처리했다.“말해 봐요. 무슨 일이 있었죠?”진용진은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먼저 고자질했다.“제가 이혼하자고 했더니 저 여자가 안 된다고 하면서 저를 X 폭행했어요.”고수연은 그 말을 듣자마자 대뜸 욕설을 퍼부었다.“X 폭행은 무슨. 아까 할 때 넌 안 좋았냐? 좋아서 소리 지른 게 누군데!”두 경찰의 표정은 더욱 난처해졌다.그때 진용진이 뻔뻔하게 말했다.“그래도 처음에는 강제로 한 거잖아. 이건 내 동의 없이 벌어진 일이라, 마음에 깊은 상처가 됐다고!”“상처는 무슨! 그래, 내가 제대로 상처내 줄게...”고수연은 쌩하고 달려가 진용진을 때리려고 했다.그러자 진용진은 얼른 두 경찰 뒤에 숨었고, 경찰은 고수연 앞에 막아섰다.“주의해 주세요. 계속 이러면 서로 가셔야 합니다.”고수연은 또 엉엉 울기 시작했다.“저 인간이 바람피우고 저를 빈털터리로 쫓아내려고 했어요. 저런 놈을 잡아야지, 왜 저를 잡아요?”그때 경찰 한 명이 입을 열었다.“이건 민사 건이라 저희 경찰 소관이 아니에요. 정말 함께 살 수 없으면 이혼하면 되지, 왜 이렇게까지 하세요?”고수연은 여전히 엉엉 울었다.“누구
진용진은 그냥 바보 같았다. 특히 그런 말을 지껄이는 걸 보니 멍청하기 짝이 없었다.‘설마 자기가 멋있고 대단하다고 생각하나?’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경찰에게 다가갔다.“경찰관님, 이 사람 지금 거짓말하는 거예요.”“네? 왜 그렇게 말씀하시죠?”“사건 현장에 저도 있었거든요. 제가 볼 때 고수연 씨는 강요한 게 아니었어요. 두 사람은 서로 좋아서 관계를 맺었거든요.”진용진은 벌떡 일어나더니 노기등등해서 나를 쳐다봤다.“헛소리하지 마! 저 여자가 날 소파 위로 밀쳤다고.”나는 콧방귀를 뀌었다.“부부가 관계를 할 때 원래 침대 아니면 소파 위에서 하지 않나? 설마 서서 하게?”내 질문에 젊은 경찰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진용진은 바로 발끈해서 반박했다.“그런데 난 밀쳐져서...”나도 얼른 맞받아쳤다.“남자가 힘으로 여자 하나 못 밀쳐내는 게 말이 되나? 아예 밀쳐내고 싶지 않았던 거겠지? 밀당하느라. 잇속 챙길 거 다 챙기고 상대를 X폭행으로 고소하다니, 너무 속 보이는 거 아니야?”진용진의 얼굴은 단번에 어두워졌다.“아니야. 아니라고...”“경찰관님, 제가 증명할 수 있어요. 저 사람이 그때 아주 즐거운 표정을 지었거든요. 그리고 소파에 밀쳐진 것 외에 나머지는 저 자식이 더 적극적이었어요.”젊은 경찰관은 붉은 얼굴로 나를 봤다.“무슨 뜻이죠? 혹시 현장에 계속 있었나요?”나는 고개를 저었다.“계속 현장에 있었던 건 아니에요. 하지만 두 사람이 정식으로 관계하기 전에는 계속 있었어요. 진용진 씨는 싫은 척하면서 즐길 거 다 즐겼어요. 부부가 싸우면 그러는 건 정상이잖아요.”“다른 가정들도 부부가 싸워서 화해하고 싶으면 부부관계로 화해하고 그러잖아요. 싸웠다고 여자가 X폭행했다고 단죄하는 건 말도 안 되는 거잖아요.”“네, 알겠습니다.”진용진은 더 변명하려고 했지만 젊은 경찰관은 그의 말을 끊어버렸다.“됐어요. 진용진 씨는 그만 말하세요. 상황은 이미 알겠어요. 입건될지 말지는 우리가 결정하는 게 아니에요. 자료를
“당신 미쳤어? 내가 남자 친구를 사귀는 게 어때서?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처녀를 따져?”고수연은 기가 막히다는 듯 눈 앞의 남자를 바라봤다.두 사람은 결혼한 지 거의 10년이 다 되어 간다. 그런데 고수연은 자기가 결혼한 남자가 이렇게 속내를 꽁꽁 숨기고 있을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흥, 내가 점잖아 보이면 내 감정 따위 무시해도 돼? 다른 놈한테 굴려질 대로 굴려지고 딴 놈이 실증 내니까 나처럼 점잖은 사람 찾아 결혼하려고 했어? 그런 걸 보면 당신도 좋은 사람은 아니네.”고수연은 노기등등해서 성큼성큼 걸어가 진용진의 뺨을 후려 갈겼다.순간 진용진은 너무 놀라 얼빠졌다. 그는 벌떡 일어나 손찌검을 날리려고 손을 번쩍 쳐들었다.그때 나와 형수가 고수연 앞에 막아섰다.진용진은 인수에서 딸리니 결국 막 나가지 못했다.그때 고수연이 울며 말했다.“잘 들어. 나 당신이랑 결혼하기 전에 남지 친구 사귄 거 맞아. 그런데 뭐? 그건 정상적인 연애고, 정상적으로 욕구를 해결한 거야. 난 잘못 없어!”“여자 친구도 못 사귄 당신이 능력 없는 거겠지. 무슨 자격으로 나를 탓해? 내가 처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병 걸린 것도 아니잖아. 다른 남자 애를 밴 채로 당신과 결혼한 것도 아니고. 그런데 왜 나를 뭐라 해?”“당신이 다른 남자랑 잤으니까! 그럼 이미 더러워졌다는 거잖아!”진용진은 악에 바쳐 반박했다.“내가 점잖고 정직하지 않았다면, 우리 집 가정 형편이 안 좋지 않았으면 당신 같은 걸레랑은 결혼 안 했어!”그 말에 고수연은 결국 이성을 잃었다. 그녀는 손톱을 세우고 달려들어 진용진의 얼굴을 마구잡이로 잡아뜯었다. 마음 같아서는 진용진을 할퀴어 죽이고 싶었을 거다.진용진은 얼굴에 얼룩덜룩한 손톱자국과 핏자국이 난 채 고통에 꽥꽥 소리질렀다. 그는 고수연을 덮치려고 했지만, 형수가 뺨을 한 대 갈기는 바람에 다시 소파 위에 철푸덕 넘어졌다.“진용진, 내 동생 손끝 하나라도 건드려 봐!”나도 따라서 앞으로 나갔다.“나도 있다는 거 잊지 마.
형수와 고수연은 안방에서 자고 나는 거실 소파에서 잠을 청했다. 만약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리면 제일 먼저 반응할 수 있게.소파에 누워 오늘 있었던 일을 회상하니 감개무량했다.나는 오늘만 해도 이 집을 세번이나 드나들었다가 결국 잠까지 자게 됐다.운명은 참 신기하다.방에서 여전히 흐느끼는 소리가 은은하게 흘러나왔다. 아마 고수연과 형수는 오늘 밤 잠을 설칠 것 같았다.그에 반해 나는 소파에 한참 누워 있었더니 점점 졸음이 밀려와 결국 잠이 들어 버렸다.한밤중에 잠에서 깬 나는 흐리멍덩한 눈을 한 채 화장실을 찾아 헤맸다.처음에는 내가 남의 집에 있다는 걸 잊는 바람에 낯선 환경에 어리둥절했다.그러다 한참이 지나서야 내가 지금 어디 있는지 알아챘다.나는 머리를 세게 내리치고 화장실로 걸어갔다.배가 좀 아파 변기에 앉아 볼 일을 볼 때였다. 들어올 때 핸드폰을 가져오는 걸 깜빡하는 바람에 너무 어색해 주위를 돌아보는데, 선반에 여자 것으로 보이는 속옷과 팬티가 가득 쌓여 있었다.그런데 갑자기 그 중에서 팬티 하나가 툭 떨어졌다. 순간 나는 너무 난감했다.‘하필 내 발밑에 떨어질 건 또 뭐람? 이걸 주워 말어?”안 줍자니 더러워질 것 같았다.결국 고민 끝에 나는 허리를 숙여 팬티를 집어 들었다.그런데 그때, 화장실 문이 밖에서 열리더니 다음 순간 나는 고수연의 퉁퉁 부은 눈과 마주치고 말았다.서로 맞닿은 시선과 내 손에 들린 팬티. 오해 사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몇 초 지나고 나서야 우리는 정신을 차렸다.나는 얼른 해명했다.“팬티가 떨어져서 주운 것뿐이에요.”고수연은 어색한 얼굴로 중얼거렸다.“수호 씨가 집에 있다는 걸 잊었어요. 평소에 혼자 집에 있다 보니 바로 들어왔네요. 미안해요.”“아, 그럼 우선 나가줄래요. 바로 끝나요.”우리는 갑자기 서로 예의를 차렸다. 마치 손님을 상대하는 듯이.그 때문에 나는 오히려 더 어색해졌다.“내 팬티 제 자리에 놔주면 고맙겠네요.”고수연은 말을 마친 뒤 바로 나갔다.내 손에 들려
“아, 죄송해요.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나는 황급히 손을 떼며 설명했다.‘아까는 팬티를 쥐고 이번에는 가슴을 만지고. 이러다 설마 또 뺨 맞는 거 아니야?’그런데 웬걸? 고수연은 그저 얼굴을 붉혔다.“됐어요. 먼저 가요.”‘나를 탓하지 않는다고?’이 사실을 나는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얼른 옆으로 물러났다.나는 지금 조용히 지내고 싶었다. 다툼은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었다.만약 이렇게 늦은 야밤에 싸운다면 너무 짜증날 것 같았으니까.고수연은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잠시 뒤, 쏴 하는 물소리가 내 귓전을 때렸다.‘뭐야? 이 여자 소변보는 소리가 뭐 이렇게 커?’‘그리고 여기 방음 왜 이렇게 안 돼?’‘집에 사람이라도 오면 얼마나 어색하겠어.’나는 아예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쓰고 자는 척했다.한참 뒤, 고수연이 화장실에서 나왔다. 그녀가 당연히 방으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고수연은 내 쪽으로 걸어왔다.“안 자는 거 알아요. 나랑 얘기 좀 해요.”“지금 새벽 3시예요. 아직도 안 자고 뭐 해요?”나는 이불을 내리고 일부러 흐리멍덩한 눈으로 물었다.고수연은 또 다시 눈시울을 붉혔다.“잠이 안 와요. 이대로 들어가면 언니가 깰 거예요.”나는 결국 자리에 일어나 앉았다.“사실 이럴 필요 없어요. 수연 씨 아직 젊잖아요. 이혼하고 나서 더 좋은 사람 찾으면 되죠.”“안 찾을래요. 이혼하면 다른 사람 안 찾을 거예요. 남자한테 너무 실망했어요. 남자는 다 똑같잖아요. 세상에 좋은 놈은 없어요.”나는 머쓱해서 코를 쓱 만졌다.그러자 고수연이 나를 보며 말했다.“수호 씨도 좋은 사람은 아니에요.”“왜 또 내 얘기예요?”고수연은 나를 보며 물었다.“솔직히 말해요. 우리 언니랑 무슨 사이예요? 두 사람... 잤죠?”나는 고수연의 눈을 쳐다볼 수 없어 고개를 돌렸다.“아니요.”“정말 아니에요?”“정말 아니에요.”“거짓말.”‘헐.’‘내가 이렇게 단호하게 말했는데도 거짓말인 걸 알았다고
고수연은 말하면서 나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그런 그녀에게 너무 꼬집혀 이미 졸음이 날아간 나는 아예 소파에 걸터 앉았다.“그래요. 성공했네요. 말해요. 내가 쓰레기통이 되어 줄게요.”“뭐요? 쓰레기통? 지금 내가 한 말이 쓰레기라는 말이에요?”“그냥 비유잖아요... 됐어요. 그냥 나를 나무라고 생각해요. 그럼 되죠?”고수연은 피식 웃었다.이건 고수연을 만나고 나서 처음 보는 그녀의 미소였다.‘이 여자도 웃으니까 꽤 예쁘잖아.’고수연은 형수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분위기가 달랐다.형수는 고혹적인 축에 속했고 고수연은 우아한 축에 속했다.진용진이 이렇게 예쁜 아내를 놔두고 밖에서 바람피우는 게 이해가 안 될 정도였다.“한의사는 마사지도 잘한다면서요?”고수연이 갑자기 물었다.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담배 한 대를 꺼내 입에 물었다.그러자 고수연이 자발적으로 라이터를 켜 불을 붙여줬다.내 담배에 불을 붙여준 여자는 고수연이 처음이다.나는 약 2초간 멍해 있다가 정신을 차렸다.담배를 한 모금 깊게 들이 마시자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할아버지가 한의사였는데 어릴 때부터 약초 캐러 같이 다니면서 한의학에 관심 갖게 됐어요. 대학 때도 한의학을 정공했고 지금도 한약관에서 일해요.”“우리 언니랑은 그 직업 때문에 만나게 된 거예요?”‘왜 또 대화가 여기로 튀는 건데?’나는 귀찮은 듯 말했다.“왜 자꾸만 나와 그쪽 언니 일을 묻는 건데요? 본인도 돌볼 겨를이 없으면서. 본인 일에나 관심 가져요.”고수연은 팔짱을 끼고 말했다.“나는 이미 이렇게 됐는데 뭐 어쩌겠어요? 이혼해야죠. 진작 내려놨어요. 하지만 언니 일은 예전부터 궁금했어요. 진동성이 안 돼서 언니가 항상 만족하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궁금한데, 대체 우리 언니 문제를 어떻게 해결한 거예요?”나는 담배를 한 모금 들이켜며 말했다.“몰라요. 직접 물어봐요.”“언니는 말 안 할 거예요.”“나도 말 안 할 거거든요. 언니한테 못 물어보면서 왜 나한테 물어요?”“친언니니까 그렇죠
“당장 나가요. 안 그러면 형수 부를 거예요.”나는 진심으로 화가 나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감히 내 집에서 나를 겁주는 거예요? 간도 크네.”고수연이 홉뜬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나는 물러서지 않고 계속 차가운 얼굴로 대꾸했다.“겁주는 거 아니에요. 수연 씨가 너무한 거죠.”“그래요. 자요.”고수연은 말을 마친 뒤 바로 방을 나갔다.그제야 나는 한숨 돌릴 수 있었다.나는 얼른 문을 잠그고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얼마 뒤 무거운 눈꺼풀을 스르르 감았다.이튿날, 날이 밝을 때까지 잠들어 있던 나는 다급한 문소리에 깨어났다.처음에는 그냥 무시할까 했는데, 노크소리가 계속 이어지는 바람에 너무 시끄러워 마지못해 깨어났다.나는 언짢은 표정으로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그런데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안방 문이 열렸지만 형수와 고수연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대체 뭐 하러 갔는지.그리고 지금 들리는 노크소리는 밖에서 들리는 거였다. 급하게 울리는 노크소리만 들어도 문 밖의 사람이 얼마나 조급한지 짐작이 갔다.나는 또 진용진이 찾아온 줄 알고 재떨이를 쥔 채 문 앞으로 다가갔다.그러고는 문을 열고 문 밖의 상대를 향해 와다다 쏘아붙였다.“진용진, 너 언제까지 이럴 거...”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나는 그대로 벙쪘다. 문 밖에 서 있는 사람은 진용진이 아니라 웬 여자였다.그 여자는 형수와 아주 닮았는데 체형은 형수에 비해 좀 말랐다.하지만 커다란 가슴은 사람의 눈길을 끌었다.여자는 섹시하게 차려 입었는데, 특히 붉은 립스틱이 참 매혹적이었다.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예쁜 입술이 있나 하는 생각에 나는 멍하니 상대를 바라봤다.“큰언니, 작은 언니?”“어? 어디 갔지?”나는 그제야 상대가 형수의 셋째 동생 고아연이라는 걸 알아챘다.고아연은 나를 무시한 채 안으로 쳐들어와 방을 샅샅이 뒤졌다.“큰언니와 작은 언니는요?”“저도 몰라요. 이제 막 깨났거든요.”나는 말하면서 여자의 입을 쳐다봤다.정말 볼수록 예쁜 입술이었다.입술
고아연은 나를 보며 매혹적인 미소를 지었다.“내가 잡아먹을까 봐 무서워? 그렇게 긴장할 거 없어. 우리 형부 동생이잖아. 아무 짓도 안 할 테니까 얼른 와. 누나 할 말 있어.”나는 반신반의했지만 결국은 고아연 곁으로 다가갔다.고아연은 손을 뻗어 내 팔을 주물렀다.“근육 느낌 좋은데 단단한 건 아니네. 평소에 운동 잘 안 하지?”“안 하는 편이에요.”나는 약간 불안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 여자 앞에서는 내가 정말 남동생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아연은 이번에 내 다리를 주물렀다.“다리 근육은 더 없네. 운동 부족이구나. 젊은 나이에 이렇게 게을러서 어떡해?”나는 이 여자가 대체 왜 이러나 살짝 의아했다.나는 일부러 옆으로 슬쩍 움직였다. 고아연의 향수 냄새가 너무 심하기도 했고 옷이 너무 파여 가슴이 자꾸만 내 눈에 들어왔으니까. 그것 때문에 나는 온몸이 불편했다.“왜 그렇게 멀리 앉아 있어?”고아연은 말하면서 내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그러고는 말을 이었다.“내가 뭐 하는 사람인지 알아?”나는 머리를 마구 도리질했다.그러자 고아연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클럽 마담이야. 부잣집 사모님들한테 젊고 잘생긴 총각 소개시켜주는.”고아연은 웃으며 나에게 이상한 눈빛을 보냈다.‘에이 설마? 설마 나를 부잣집 사모님들한테 소개해주려는 건 아니겠지?’내가 살짝 겁먹은 눈을 하자 고아연은 박장대소하며 일어섰다.“겁먹기는. 장난이야. 내가 일하는 곳은 합법적으로 운영하는 클럽이야. 절대 그런 지저분한 짓 안 해.”이 순간 내 심정을 어떤 단어로 형용해야 할지 모르겠다.이 여자가 대체 왜 이러는지. 왜 처음만난 사람을 이렇게 놀리는지 이해되지 않았다.‘이게 재밌나?’나는 약간 언짢은 듯 말했다.“앞으로 그런 농담은 하지 마세요. 하나도 재미없어요.”“재미없어? 이봐, 우리 클럽에 호스트 필요한데 정말 생각 없어?”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필요 없어요. 저 제대로 된 직장 다니고 있어요. 그러니까 절대 그쪽이 일하는 그런
심지어 굉장히 체면이 서고 우쭐했다.‘내가 김진호를 제압하고 이 깡패들한테 겁을 줬다니, 너무 대단한걸.’하지만 나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여전히 칼을 김진호의 목에 겨누었다.“네가 절대 그냥 물러서지 않을 줄 알았지만 이렇게 빨리 돌아올 줄은 몰랐어. 정 사장님과 화인당을 노리고, 나를 눈엣가시로 여기는 네가 목적에 달성하지 않은 이상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란 거 난 알아. 하지만 경고할게. 화인당은 건드리지 마. 나도 건드리지 마. 앞으로 화인당 한 번만 더 노리고 날 꼭지가 돌게 하면,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라.”나는 말하면서 손에 힘을 주었다. 그 순간 칼날이 김진호의 살갗을 찢으며 빨간 피가 흘러나왔다.김진호는 목에 통증이 느껴지자 소스라치게 놀라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그래, 네 말대로 할게. 얼른 칼 치워. 나 목에 스크래치 났잖아.”나는 손쓸 때에도 계속 김진호를 주의하고 있어, 대동맥은 피해 공격했다.하지만 사람이 공포에 질리면 머리가 새하얗게 질린다고, 김진호는 그런 것까지 생각할 수 없었다.나는 놈들더러 우리 쪽 사람을 모두 풀어주게 하고, 짐을 챙기게 한 뒤 당장 이곳을 떠나게 했다.김진호는 이번에 정말 놀란 듯 허둥지둥 기어 일어나더니 제 목을 감싸 쥔 채 기사에게 소리쳤다.“병원, 병원으로 가. 얼른! 나 죽기 싫다고.”승합차가 멀어지자 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내가 겨우 한시름 놨을 때, 민우와 모태진이 함께 쳐들어왔다.“수호 씨, 괜찮아요?”“김진호 그 개자식. 아까 분명 가는 척하더니 또 돌아오던데, 역시 너한테 시비 걸러 온 거였구나. 너 어쩌다 이 지경으로 쥐어 터졌어? 그 개자식, 만나기만 해봐라...”나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별일 아니야. 그냥 가벼운 외상이야. 뼈를 다친 것도 아니야. 그 지식 이번에 제대로 놀랐을걸.”“대체 어떻게 된 거야?”나는 방금 있었던 일을 하나하나 설명해 줬다.그러자 민우는 박장대소하며 나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대단한데. 내 전매특허를
김진호는 당한 건 무조건 갚는 성격인 데다 속이 좁고 질투심도 많은 사람이다. 그런 그가 나한테 얻어맞았으니 그대로 넘어갈 리 없었다. 그는 진작 다시 돌아와 제 체면을 바로 세울 계획을 꾸몄다.그리고 아까 수천당에 있을 때, 김진호는 정태곤이 나 때문에 나선 게 아니라 소여정 때문에 나섰다는 걸 이미 눈치챘다. 때문에 소여정이 떠나면 나에게 천천히 갚아줄 생각이었다.그리고 그 기회는 빨리 찾아왔다.소여정과 정태곤이 떠나자마자 김진호는 곧바로 소리치며 다시 쳐들어왔다.나는 놈들이 생각지도 못한 순간 이렇게 갑자기 쳐들어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게다가 김진호 패거리가 들어오자마자 방망이를 휘둘러대는 바람에, 우리 쪽 사람들은 반격할 틈도 없이 하나 둘 쓰러졌다.그때 김진호가 사람들 틈에 서서 나를 삿대질하며 소리쳤다.“다른 사람은 상관하지 말고 저 개자식부터 패!”김진호의 명령에 모든 깡패들은 일제히 나를 봤다.기세등등한 놈들을 본 순간, 상황이 시상치 않다는 걸 깨달은 나는 곧장 도망쳤다.그러자 김진호가 뒤에서 바짝 쫓아오며 소리쳤다.“정수호, 어딜 도망치려고?”나 혼자서 놈들을 상대하기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얼마 가지 못해 잡히고 말았다.놈들은 나를 바닥에 내팽개치더니 두말 없이 나에게 주먹질하며 발길질했다.나는 머리를 감싸려고 다른 곳이 아픈 건 상관할 겨를이 없었다.놈들은 나를 아무 반격도 못 할 정도로 때린 뒤에야 동작을 멈췄다. 그때 김진호가 다가와 내 앞에 멈춰 섰다.난 이대로 당할 수만은 없었다. 김진호 성격에 분명 나를 모욕하고 내 자존심을 깎아내릴 거다. 심지어 이 기회에 정 사장님의 화인당까지 빼앗아 갈 수도 있었다.내가 물론 사회 경험이 부족하지만, 그동안 정태곤과 양동준한테서 배운 게 있다.그건 바로 사람은 반드시 독해야 한다는 거다.사람은 독해야 상대한테 위협을 가할 수 있다.때문에 김진호가 몸을 쪼그려 나에게 다가올 때, 나는 온몸에서 전해지는 고통을 참은 채 그를 공격했다.나는 얼른 부러진 테이
나는 김진호를 호되게 한 방 먹이면 그가 겁을 먹을 줄 알았다. 하지만 김진호는 무서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봤다.아마도 김진호의 눈에 나는 무서워할 가치도 없는 사람인 모양이었다.“그래! 오늘은 실력 있는 사람이 널 도와줬겠지만, 네가 계속 그렇게 운이 좋을까? 앞으로 내 손에 걸리지 않도록 기도하는 게 좋을 거야. 안 그러면 후회하게 될 테니까.”김진호의 눈빛에 나는 저도 모르게 흠칫 몸을 떨었다.오늘 일로 내가 김진호에게 단단히 밉보였다는 걸 알고 있다. 게다가 김진호 성격에 무조건 나에게 복수하려 할 거다.하지만 그렇다고 겁을 먹어야 하나?아니, 난 더 이상 찌질하게 지낼 수 없다. 변하겠다고, 강해지겠다고 한 이상 절대 이대로 물러날 수 없었다.때문에 나는 김진호에게 발길질했다.“네가 그렇게 대단하면 우선 날 잡고나 말해. 꺼져!”나는 놈들을 향해 버럭 소리쳤다.그러자 김진호는 노랑머리 놈의 부축을 받으며 천수당을 떠났다.놈들이 떠난 뒤에도 나는 여전히 불안했다.그때 소여정이 다가와 말했다.“이대로 보내주면 안 됐어.”“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상대가 패배를 인정할 때까지 때려야지! 복종할 때까지 때려야 상대가 다시는 수호 씨를 건드릴 엄두도 내지 못해. 안 그러면 후환을 남기는 거나 다름없어. 상대는 오히려 배로 복수할 거고.”이러고 보니 소여정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역시 나는 이런 방면에서 경험이 적어 누군가의 가르침이 필요하다.“그럼 이제 어떡해요? 지금 쫓아가도 늦지 않았겠죠?”내 말이 끝나기 바쁘게 밖에서 엔진 소리가 들리더니 김진호 패거리가 승합차를 타고 떠나버렸다.이로써 나는 오늘 큰 실수를 한 셈이다.하지만 소여정이 말했다.“내가 왜 막지 않은 줄 알아? 수호 씨는 이쪽 경험이 부족해서 경험 삼을 필요가 있어. 그리고 앞으로 더 큰 문제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처리할지 직접 겪고 느껴 봐야지.”나도 소여정의 결정을 이해한다. 하지만 내 실력으로 어떻게 김진호 패거리를
약 30분 뒤, 김진호는 사람들을 데리고 천수당에 나타났다.원수끼리 만나면 눈에 쌍심지를 켠다고, 나와 김진호는 서로를 못마땅하게 여겼다.김진호와 함께 온 사람은 전에 나에게 시비 걸었던 깡패들이었다.그중 노랑머리 사내는 바로 안명훈이었다. 다만 안명훈 옆에 또 익숙한 얼굴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다름 아닌 한은솔이었다.한은솔을 보자 나는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모태진과 만나는 거 아니었나? 왜 또 저 노랑머리 자식과 어울리지?’‘저 여자는 역시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하지만 내가 생각하고 있을 때, 김진호가 싸늘한 얼굴로 나를 삿대질했다.“정수호, 네 놈이 소란 피웠어? 너 정호섭 개야? 왜 그렇게 목숨 바쳐 충성해?”나는 김진호의 손을 쳐냈다.“배은망덕한 자식. 정 사장님이 그동안 얼마나 잘해줬는데, 이런 짓을 벌이다니. 넌 짐승만도 못해!”김진호는 이를 갈았다.“정호섭이 나한테 잘해줬다고? 잘해준다는 사람이 나를 해고해?”“그건 네가 먼저 잘못했잖아. 네가 계속 네 무덤을 파지 않았다면 사장님이 왜 너를 해고하겠어?”“헛소리 집어치워! 난 그저 돈 벌겠다고 아득바득한 것밖에 없어. 그게 뭐가 잘못된 건데?”김진호는 못마땅한 듯 소리쳤다.그 모습에 나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아무리 돈이 좋아도 정당한 방법으로 벌어야지, 넌 수단 방법 가리지 않았잖아. 너 같은 놈을 두고 미꾸라지 한 마리가 도랑물을 흐린다는 거야. 너를 계속 남겨두면 가게 평판이 곤두박질쳤을걸.”김진호는 귀찮다는 듯 내 말을 잘랐다.“도덕의 잣대로 날 평가하려 하지 마. 넌 가게 이름에 먹칠하는 짓 안 했어? 본인은 늙은 여편네들이랑 애매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무슨 자격으로 나를 말해?”퍽!나는 두말 없이 김진호에게 주먹을 날렸다. 내가 그럴 거라고 예상하지 못한 김진호는 나한테 정통으로 맞아 코피를 흘렸다. 완전히 꼭지가 돌아버린 그는 깡패들을 향해 소리쳤다.“덤벼! 저 자식 족쳐!”놈들이 달려들기 전, 소여정이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짝!정태곤은 아무 말 없이 다가가 주덕팔의 뺨을 후려갈겨 그를 바닥에 때려눕혔다. 그러고도 끝나지 않았는지 또 성큼성큼 걸어가자, 주덕팔은 경기를 일으키며 연신 뒷걸음쳤다.“뭐, 뭐 하려는 거야? 경고하는데, 다가오지 마. 내가 이 구역 깡패를 알아...”정태곤은 그 말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깡패? 좋아. 이름이 뭔데? 지금 당장 전화해서 여기로 오라고 해.”“당, 당신이 그렇게 대단하면 나한테 전화할 기회라도 줘.”정태곤은 팔짱을 낀 채 느긋하게 말했다.“지금 기회 줄게. 쳐.”주덕팔은 다급히 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해 말했다.“김진호, 당장 사람 불러서 여기로 모여.”김진호라는 이름을 들은 순간, 나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김진호가 주덕팔과 한패가 되었다는 게 분했다.‘정 사장님이 평소 얼마나 잘해줬는데, 이 개자식이 감히 다른 사람과 손을 잡고 정 사장님을 모함해? 역겨워서 원.’나는 주덕팔에게 다가가 핸드폰을 빼앗아 오고는 전화에 대고 소리쳤다.“김진호, 이 개자식아! 이런 짓을 벌인 게 네놈일 줄은 몰랐네.”김진호는 내 목소리를 알아들었는지 피식 웃었다.“정수호, 너였어? 빨리 기어올랐네? 정호섭이 그렇게 되니까 네가 바로 2인자가 된 거야? 너 사모님이랑 잤지?”김진호의 말에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이 개자식이 헛소리 지껄이지 마. 사모님은 그런 분 아니야.”“사모님이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고, 네가 좋은 놈이 아니라는 건 알아. 나한테서 윤 사모님을 빼앗아 간 것도 모자라 그렇게 많은 여자들과 애매모호한 관계를 유지하다니. 넌 여자 등에 빨대 꽂는 등신이잖아.”그 말에 자존심이 단단히 긁힌 나는 이를 악물고 반박했다.“아니야!”“쳇, 네가 아니라고 해서 아닌 게 아니야. 아무튼 태 눈에 넌 그냥 쓸모없는 등신이야.”나는 심호흡을 하며 애써 냉정을 유지했다.그때 소여정이 다가와 내 손에서 핸드폰을 빼앗아 가더니 말했다.“정수호가 여자 덕을 보면 뭐 어때서? 적어도 그럴 자본이 있는데, 넌 있어?
소여정은 항상 이렇다. 그녀는 마치 활짝 핀 꽃들 사이에 가장 예쁘고 화려하게 핀 목단 같은 존재다. 때문에 어디를 가든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소여정은 천수당에 들어오자마자 주덕팔에게 말했다.“팔이 삐끗한 것 같은데, 한번 봐줘요.”주덕팔은 소여정이 화인당 사모님과 아는 사이라는 걸 모른다, 그저 그녀가 아주 예쁘다는 것만 알 뿐. 때문에 치료 명목으로 소여정을 마음껏 만질 생각을 하며 비릿한 미소를 머금은 채 다가갔다.하지만 주덕팔의 손이 소여정 팔에 닿기도 전에, 짝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얼굴이 돌아갔다.주덕팔은 한쪽 얼굴을 감싸 쥔 채 멍한 눈으로 정태곤을 바라봤다.“왜 때려요?”“소여정 씨는 S시 임천호 회장님의 사람이다. 어디서 함부로 그 더러운 손으로 소여정 씨를 만지려 들어?”주덕팔은 임천호가 누구인지는 몰랐으나, 정태곤의 날카로운 눈빛에서 그와 소여정이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걸 알아챘다. 때문에 화가 나더라도 감히 그 화를 겉으로 드러내지 못했다. 주덕팔은 얼른 직원을 시켜 손수건을 가져오게 하고는 그것을 소여정의 팔 위에 덮었다. 다만 답답하고 분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이렇게 예쁜 여자를 눈앞에 두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도 모자라 뺨까지 맞았으니 참 재수 없었다.한참 동안 검사하고 난 뒤, 주덕팔은 소여정의 팔이 아무 문제 없다는 걸 발견했다.“저기요. 환자분 팔은 아무 문제 없어요.”“문제 없다고요? 그런데 팔이 왜 이렇게 아프죠? 혹시 의술이 안 좋아 문제점을 찾지 못하는 거 아니에요?”“아니, 그런 말 함부로 하면 안 되죠. 저 주덕팔이 정형외과 의사로 지낸 세월이 몇십 년인데, 의술은 장담해요.”“아, 그러면 내가 지금 당신을 모함한다는 뜻이에요?”소여정은 커다란 눈망울을 깜빡이며 억울하다는 듯 물었다.주덕팔은 그 말에 아무 말도 못한 채 무의식적으로 정태곤의 눈치를 살폈다.“그럼 다시 한번 봐 드릴까요?”주덕팔은 또다시 검사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아무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
“요즘 천수당 장사가 안된다고 해서 제가 특별히 사람들을 데리고 소비해 주러 왔잖아요.”주덕팔의 안색은 매우 어두웠다.하지만 나는 시종일관 빙그레 웃으며 말썽도 피우지 않고 시비도 걸지 않았다.‘어때? 예상 밖으로 움직이니 대체 못 하겠지?’주덕팔은 결국 화를 내지도 못한 채 진찰하도록 직원들을 다그쳤다.나는 일부러 사람들더러 빈자리를 모두 차지하게 했다. 이렇게 하면 다른 손님들이 들어와도 앉을 자리가 없을 테니까.병 보는 건 내 주요 목적이 아니었다. 상대가 어디 아프냐고 물어볼 때 대충 여기저기 다 아프다고 둘러대며 온몸을 검사하게 했다.만약 상대가 아무 문제도 찾아내지 못하고 나더러 큰 병원에 가보라고 한다면, 난 이 사람들의 의술이 별로라고 큰소리로 떠들어댈 생각이었다.상대가 가게 평판에 신경 쓰지 않는다면, 난 더 상관없었다.한바탕 소동이 끝나자 마침내 내 의도를 파악한 주덕팔이 씩씩거리며 다가왔다.“당신, 나 따라와.”“주 사장님, 저 팔에 아직 깁스를 하고 있어 온몸이 불편해요. 어떻게 환자한테 그렇게 사납게 굴 수 있어요?”어느새 한의원 입구에 구경하는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였다.때문에 주덕팔은 일이 커질까 봐 말을 심하게 하지는 못했다. 그저 분노를 삭이며 이를 악물었다.“나랑 안으로 들어가면 내가 직접 진찰해 줄게요.”“안 돼요. 제가 이틀 전에 갈비뼈도 부러져서 걷지 못하거든요. 사장님이 저를 업고 들어가실래요?”“업긴 무슨...”주덕팔은 하마터면 참지 못하고 욕지거리를 퍼부을 뻔했다.나는 시종일관 눈웃음을 치다가 억울한 듯 입을 열었다.“주 사장님, 왜 사람을 욕하고 그러세요? 저 사장님 명성 때문에 여기 온 거예요. 그러니 저를 실망하게 하지 마세요.”결국 주덕팔은 씩씩거리며 뒤돌아 자리를 떠났다.나는 그를 무시한 채 계속 진찰을 받았다. 직원이 치료를 도와주겠다고 해도 순순히 협조했다. 하지만 모든 치료가 끝난 뒤 나는 여전히 온몸이 아프고 불편하다고 트집을 잡았다.내 목적은 주덕팔이 장사를 접게
천수당이라면 나도 안다. 정형외과 한의원인데, 주로 타박상과 골절 등을 전문적으로 치료하고 있다.그리고 그곳 사장 주덕팔은 뚱뚱한 아저씨인데, 전에 몇 번 만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사람이 화인당을 노리고 있을 줄이야.“다, 다 말했는데, 배상한다던 건 언제 배상할 건데요?”아직도 배상 타령하는 놈을 보니 정말 한 대 쥐어박고 싶었다.“우리 사장님한테 사고가 나자마자 우리 화인당을 모함하러 온 주제에, 어디서 뻔뻔하게 배상을 요구해?”내가 당장 남자를 쥐어박을 것처럼 굴자, 놈은 놀랐는지 허둥지둥 도망쳤다.모태진은 나를 보며 물었다.“수호 씨, 우리도 주덕팔 가게로 가서 결판 내야 하지 않아요?”“증거도 없는데, 상대가 인정할까요?”“그래도 아까 사람이 주덕팔이라고 말했잖아요.”나는 너무 어이없어 모태진을 바라봤다.“주덕팔은 절대 인정하지 않을 거고, 증인도 이미 도망쳤어요.”모태진은 그제야 발견했는지 머쓱하게 말했다.“아, 이럴 줄 알았으면 그 사람을 잡아두는 건데.”사실 잡아 둔다고 해도 소용없다. 주덕팔이 끝까지 인정하지 않으면 뭔 소용이 있나?설령 경찰에 신고한다 해도 결국은 흐지부지해질 거다.이 일은 그렇게 처리하면 안 된다.나는 속으로 악랄한 방법을 생각했다.“눈에는 눈, 이에는 이. 주덕팔이 우리와 화인당을 모함하려고 했으니 우리도 똑같이 돌려주면 돼요.”그때 민우가 바깥 상황을 정리하고 다른 동료들을 데리고 한의관 뒤편으로 왔다.마침 내 말을 들은 동료들은 너도나도 무슨 방법이 있는지 물었다.“간단해요. 주덕팔이 우리를 모함했으니, 우리도 상대를 모함하면 돼요. 우리는 상대보다 더 많은 사람을 찾아야 해요. 지금 바로 움직여요. 주위에 골절 환자거나 타박상을 입은 환자가 있으면 모두 천수당으로 불러요.”모태진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그다음에는요?”민우는 이미 내 계획을 알아챈 듯 싱긋 웃었다.“그다음은 간단하잖아요. 그쪽에서 약을 처방받으면 되죠. 그러고 나서 약이 효과가 없다, 약에 문제가 있
이 사람이 이런 짓을 벌인 건, 급전이 필요해서일 거다. 때문에 나는 일부러 이런 방식으로 상대에게 미끼를 던졌다.아니나 다를까 상대는 잠깐 고민하는가 싶더니 흔쾌히 승낙했다.“그래요. 들어가서 얘기해요. 하지만 적어도 이 정도는 돼야 해요.”상대는 손가락 6개를 내밀었다.나는 여전히 웃는 얼굴을 유지했다.“그래요. 들어가서 얘기해요.”나는 남자에게 어깨동무한 채 안으로 들어가며 민우더러 사람들을 돌려보내라고 눈짓했다.일이 이 정도로 끝났으니 그저 해프닝에 그칠 거다. 만약 일이 커지기라도 했으면 아마 화인당 평판에 영향을 미쳤을 텐데 말이다.나는 남자를 한약관 뒤편으로 데려갔다. 그랬더니 남자는 주위를 경계하며 두리번대다가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나를 따라 나섰다.“여기서 예기해요. 아예 지금 돈 줘요. 돈만 받고 갈게요.”그 말에 나는 이내 돌변해서 기분 나쁜 표정을 지었다.“돈을 달라고? 아주 뻔뻔하네? 화인당이 몇 년 동안 영업했는데, 그동안 한 번도 이런 일 없었어. 누가 지시한 거야? 누구 지시받고 이런 짓 한 거야? 우리를 모함하는 대가로 얼마 받기로 했어?”나는 너무 화가 나 분노한 눈빛으로 상대를 바라봤다. 정 사장님한테 일이 생기자마자 사장님이 피땀 흘려 일궈낸 사업을 망치려 들다니,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남자는 내 생각을 꿰뚫었는지 곧장 뒤돌아 도망쳤다.하지만 그때, 그림자 하나가 그를 가로막았다. 놀랍게도 그 사람은 모태진이였다.모태진은 나를 바라보면서 머쓱해서 말했다.“다른 일은 우선 제쳐두고 나중에 얘기해요. 화인당을 지키려는 건 수호 씨도 나와 같은 마음일 거라고 믿어요.”나는 모태진의 말을 의심하지 않는다.확실히 화인당 내 모든 직원들은 모두 한마음 한뜻이었다.아까 이 사람이 소란을 피울 때도 모든 직원이 나서서 사장님과 이 가게를 옹호했다.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눈앞의 남자를 바라봤다.“여기 들어와서도 제멋대로 굴면 나갈 생각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그 남자는 구석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