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연은 끝내 참지 못하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서에서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와 현재 위치를 묻고 조사에 협조해줄 것을 요구했다.고수연은 울면서 형수를 바라봤다. 그러다가 형수가 이따 함께 가서 편 들어주겠다고 하자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수호 씨, 이따 같이 가 줘요. 수호 씨가 남자라서 그래도 안심이 되거든요.”나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여자 둘이 가는 건, 나도 마음 놓이지 않았다.때문에 우리는 또다시 르엘 빌라로 향했다.진용진과 두 명의 경찰은 이미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리가 들어오는 걸 보자 벌떡 일어서서 소리쳤다.“경관님, 저 여자예요. 저 여자! 저 여자가 저를 X 폭행했어요.”두 경찰은 모두 젊어 보였는데, 두 사람 모두 난처한 표정이었다.하지만 여전히 규칙대로 일을 처리했다.“말해 봐요. 무슨 일이 있었죠?”진용진은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먼저 고자질했다.“제가 이혼하자고 했더니 저 여자가 안 된다고 하면서 저를 X 폭행했어요.”고수연은 그 말을 듣자마자 대뜸 욕설을 퍼부었다.“X 폭행은 무슨. 아까 할 때 넌 안 좋았냐? 좋아서 소리 지른 게 누군데!”두 경찰의 표정은 더욱 난처해졌다.그때 진용진이 뻔뻔하게 말했다.“그래도 처음에는 강제로 한 거잖아. 이건 내 동의 없이 벌어진 일이라, 마음에 깊은 상처가 됐다고!”“상처는 무슨! 그래, 내가 제대로 상처내 줄게...”고수연은 쌩하고 달려가 진용진을 때리려고 했다.그러자 진용진은 얼른 두 경찰 뒤에 숨었고, 경찰은 고수연 앞에 막아섰다.“주의해 주세요. 계속 이러면 서로 가셔야 합니다.”고수연은 또 엉엉 울기 시작했다.“저 인간이 바람피우고 저를 빈털터리로 쫓아내려고 했어요. 저런 놈을 잡아야지, 왜 저를 잡아요?”그때 경찰 한 명이 입을 열었다.“이건 민사 건이라 저희 경찰 소관이 아니에요. 정말 함께 살 수 없으면 이혼하면 되지, 왜 이렇게까지 하세요?”고수연은 여전히 엉엉 울었다.“누구
진용진은 그냥 바보 같았다. 특히 그런 말을 지껄이는 걸 보니 멍청하기 짝이 없었다.‘설마 자기가 멋있고 대단하다고 생각하나?’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경찰에게 다가갔다.“경찰관님, 이 사람 지금 거짓말하는 거예요.”“네? 왜 그렇게 말씀하시죠?”“사건 현장에 저도 있었거든요. 제가 볼 때 고수연 씨는 강요한 게 아니었어요. 두 사람은 서로 좋아서 관계를 맺었거든요.”진용진은 벌떡 일어나더니 노기등등해서 나를 쳐다봤다.“헛소리하지 마! 저 여자가 날 소파 위로 밀쳤다고.”나는 콧방귀를 뀌었다.“부부가 관계를 할 때 원래 침대 아니면 소파 위에서 하지 않나? 설마 서서 하게?”내 질문에 젊은 경찰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진용진은 바로 발끈해서 반박했다.“그런데 난 밀쳐져서...”나도 얼른 맞받아쳤다.“남자가 힘으로 여자 하나 못 밀쳐내는 게 말이 되나? 아예 밀쳐내고 싶지 않았던 거겠지? 밀당하느라. 잇속 챙길 거 다 챙기고 상대를 X폭행으로 고소하다니, 너무 속 보이는 거 아니야?”진용진의 얼굴은 단번에 어두워졌다.“아니야. 아니라고...”“경찰관님, 제가 증명할 수 있어요. 저 사람이 그때 아주 즐거운 표정을 지었거든요. 그리고 소파에 밀쳐진 것 외에 나머지는 저 자식이 더 적극적이었어요.”젊은 경찰관은 붉은 얼굴로 나를 봤다.“무슨 뜻이죠? 혹시 현장에 계속 있었나요?”나는 고개를 저었다.“계속 현장에 있었던 건 아니에요. 하지만 두 사람이 정식으로 관계하기 전에는 계속 있었어요. 진용진 씨는 싫은 척하면서 즐길 거 다 즐겼어요. 부부가 싸우면 그러는 건 정상이잖아요.”“다른 가정들도 부부가 싸워서 화해하고 싶으면 부부관계로 화해하고 그러잖아요. 싸웠다고 여자가 X폭행했다고 단죄하는 건 말도 안 되는 거잖아요.”“네, 알겠습니다.”진용진은 더 변명하려고 했지만 젊은 경찰관은 그의 말을 끊어버렸다.“됐어요. 진용진 씨는 그만 말하세요. 상황은 이미 알겠어요. 입건될지 말지는 우리가 결정하는 게 아니에요. 자료를
“당신 미쳤어? 내가 남자 친구를 사귀는 게 어때서?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처녀를 따져?”고수연은 기가 막히다는 듯 눈 앞의 남자를 바라봤다.두 사람은 결혼한 지 거의 10년이 다 되어 간다. 그런데 고수연은 자기가 결혼한 남자가 이렇게 속내를 꽁꽁 숨기고 있을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흥, 내가 점잖아 보이면 내 감정 따위 무시해도 돼? 다른 놈한테 굴려질 대로 굴려지고 딴 놈이 실증 내니까 나처럼 점잖은 사람 찾아 결혼하려고 했어? 그런 걸 보면 당신도 좋은 사람은 아니네.”고수연은 노기등등해서 성큼성큼 걸어가 진용진의 뺨을 후려 갈겼다.순간 진용진은 너무 놀라 얼빠졌다. 그는 벌떡 일어나 손찌검을 날리려고 손을 번쩍 쳐들었다.그때 나와 형수가 고수연 앞에 막아섰다.진용진은 인수에서 딸리니 결국 막 나가지 못했다.그때 고수연이 울며 말했다.“잘 들어. 나 당신이랑 결혼하기 전에 남지 친구 사귄 거 맞아. 그런데 뭐? 그건 정상적인 연애고, 정상적으로 욕구를 해결한 거야. 난 잘못 없어!”“여자 친구도 못 사귄 당신이 능력 없는 거겠지. 무슨 자격으로 나를 탓해? 내가 처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병 걸린 것도 아니잖아. 다른 남자 애를 밴 채로 당신과 결혼한 것도 아니고. 그런데 왜 나를 뭐라 해?”“당신이 다른 남자랑 잤으니까! 그럼 이미 더러워졌다는 거잖아!”진용진은 악에 바쳐 반박했다.“내가 점잖고 정직하지 않았다면, 우리 집 가정 형편이 안 좋지 않았으면 당신 같은 걸레랑은 결혼 안 했어!”그 말에 고수연은 결국 이성을 잃었다. 그녀는 손톱을 세우고 달려들어 진용진의 얼굴을 마구잡이로 잡아뜯었다. 마음 같아서는 진용진을 할퀴어 죽이고 싶었을 거다.진용진은 얼굴에 얼룩덜룩한 손톱자국과 핏자국이 난 채 고통에 꽥꽥 소리질렀다. 그는 고수연을 덮치려고 했지만, 형수가 뺨을 한 대 갈기는 바람에 다시 소파 위에 철푸덕 넘어졌다.“진용진, 내 동생 손끝 하나라도 건드려 봐!”나도 따라서 앞으로 나갔다.“나도 있다는 거 잊지 마.
형수와 고수연은 안방에서 자고 나는 거실 소파에서 잠을 청했다. 만약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리면 제일 먼저 반응할 수 있게.소파에 누워 오늘 있었던 일을 회상하니 감개무량했다.나는 오늘만 해도 이 집을 세번이나 드나들었다가 결국 잠까지 자게 됐다.운명은 참 신기하다.방에서 여전히 흐느끼는 소리가 은은하게 흘러나왔다. 아마 고수연과 형수는 오늘 밤 잠을 설칠 것 같았다.그에 반해 나는 소파에 한참 누워 있었더니 점점 졸음이 밀려와 결국 잠이 들어 버렸다.한밤중에 잠에서 깬 나는 흐리멍덩한 눈을 한 채 화장실을 찾아 헤맸다.처음에는 내가 남의 집에 있다는 걸 잊는 바람에 낯선 환경에 어리둥절했다.그러다 한참이 지나서야 내가 지금 어디 있는지 알아챘다.나는 머리를 세게 내리치고 화장실로 걸어갔다.배가 좀 아파 변기에 앉아 볼 일을 볼 때였다. 들어올 때 핸드폰을 가져오는 걸 깜빡하는 바람에 너무 어색해 주위를 돌아보는데, 선반에 여자 것으로 보이는 속옷과 팬티가 가득 쌓여 있었다.그런데 갑자기 그 중에서 팬티 하나가 툭 떨어졌다. 순간 나는 너무 난감했다.‘하필 내 발밑에 떨어질 건 또 뭐람? 이걸 주워 말어?”안 줍자니 더러워질 것 같았다.결국 고민 끝에 나는 허리를 숙여 팬티를 집어 들었다.그런데 그때, 화장실 문이 밖에서 열리더니 다음 순간 나는 고수연의 퉁퉁 부은 눈과 마주치고 말았다.서로 맞닿은 시선과 내 손에 들린 팬티. 오해 사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몇 초 지나고 나서야 우리는 정신을 차렸다.나는 얼른 해명했다.“팬티가 떨어져서 주운 것뿐이에요.”고수연은 어색한 얼굴로 중얼거렸다.“수호 씨가 집에 있다는 걸 잊었어요. 평소에 혼자 집에 있다 보니 바로 들어왔네요. 미안해요.”“아, 그럼 우선 나가줄래요. 바로 끝나요.”우리는 갑자기 서로 예의를 차렸다. 마치 손님을 상대하는 듯이.그 때문에 나는 오히려 더 어색해졌다.“내 팬티 제 자리에 놔주면 고맙겠네요.”고수연은 말을 마친 뒤 바로 나갔다.내 손에 들려
“아, 죄송해요.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나는 황급히 손을 떼며 설명했다.‘아까는 팬티를 쥐고 이번에는 가슴을 만지고. 이러다 설마 또 뺨 맞는 거 아니야?’그런데 웬걸? 고수연은 그저 얼굴을 붉혔다.“됐어요. 먼저 가요.”‘나를 탓하지 않는다고?’이 사실을 나는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얼른 옆으로 물러났다.나는 지금 조용히 지내고 싶었다. 다툼은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었다.만약 이렇게 늦은 야밤에 싸운다면 너무 짜증날 것 같았으니까.고수연은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잠시 뒤, 쏴 하는 물소리가 내 귓전을 때렸다.‘뭐야? 이 여자 소변보는 소리가 뭐 이렇게 커?’‘그리고 여기 방음 왜 이렇게 안 돼?’‘집에 사람이라도 오면 얼마나 어색하겠어.’나는 아예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쓰고 자는 척했다.한참 뒤, 고수연이 화장실에서 나왔다. 그녀가 당연히 방으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고수연은 내 쪽으로 걸어왔다.“안 자는 거 알아요. 나랑 얘기 좀 해요.”“지금 새벽 3시예요. 아직도 안 자고 뭐 해요?”나는 이불을 내리고 일부러 흐리멍덩한 눈으로 물었다.고수연은 또 다시 눈시울을 붉혔다.“잠이 안 와요. 이대로 들어가면 언니가 깰 거예요.”나는 결국 자리에 일어나 앉았다.“사실 이럴 필요 없어요. 수연 씨 아직 젊잖아요. 이혼하고 나서 더 좋은 사람 찾으면 되죠.”“안 찾을래요. 이혼하면 다른 사람 안 찾을 거예요. 남자한테 너무 실망했어요. 남자는 다 똑같잖아요. 세상에 좋은 놈은 없어요.”나는 머쓱해서 코를 쓱 만졌다.그러자 고수연이 나를 보며 말했다.“수호 씨도 좋은 사람은 아니에요.”“왜 또 내 얘기예요?”고수연은 나를 보며 물었다.“솔직히 말해요. 우리 언니랑 무슨 사이예요? 두 사람... 잤죠?”나는 고수연의 눈을 쳐다볼 수 없어 고개를 돌렸다.“아니요.”“정말 아니에요?”“정말 아니에요.”“거짓말.”‘헐.’‘내가 이렇게 단호하게 말했는데도 거짓말인 걸 알았다고
고수연은 말하면서 나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그런 그녀에게 너무 꼬집혀 이미 졸음이 날아간 나는 아예 소파에 걸터 앉았다.“그래요. 성공했네요. 말해요. 내가 쓰레기통이 되어 줄게요.”“뭐요? 쓰레기통? 지금 내가 한 말이 쓰레기라는 말이에요?”“그냥 비유잖아요... 됐어요. 그냥 나를 나무라고 생각해요. 그럼 되죠?”고수연은 피식 웃었다.이건 고수연을 만나고 나서 처음 보는 그녀의 미소였다.‘이 여자도 웃으니까 꽤 예쁘잖아.’고수연은 형수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분위기가 달랐다.형수는 고혹적인 축에 속했고 고수연은 우아한 축에 속했다.진용진이 이렇게 예쁜 아내를 놔두고 밖에서 바람피우는 게 이해가 안 될 정도였다.“한의사는 마사지도 잘한다면서요?”고수연이 갑자기 물었다.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담배 한 대를 꺼내 입에 물었다.그러자 고수연이 자발적으로 라이터를 켜 불을 붙여줬다.내 담배에 불을 붙여준 여자는 고수연이 처음이다.나는 약 2초간 멍해 있다가 정신을 차렸다.담배를 한 모금 깊게 들이 마시자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할아버지가 한의사였는데 어릴 때부터 약초 캐러 같이 다니면서 한의학에 관심 갖게 됐어요. 대학 때도 한의학을 정공했고 지금도 한약관에서 일해요.”“우리 언니랑은 그 직업 때문에 만나게 된 거예요?”‘왜 또 대화가 여기로 튀는 건데?’나는 귀찮은 듯 말했다.“왜 자꾸만 나와 그쪽 언니 일을 묻는 건데요? 본인도 돌볼 겨를이 없으면서. 본인 일에나 관심 가져요.”고수연은 팔짱을 끼고 말했다.“나는 이미 이렇게 됐는데 뭐 어쩌겠어요? 이혼해야죠. 진작 내려놨어요. 하지만 언니 일은 예전부터 궁금했어요. 진동성이 안 돼서 언니가 항상 만족하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궁금한데, 대체 우리 언니 문제를 어떻게 해결한 거예요?”나는 담배를 한 모금 들이켜며 말했다.“몰라요. 직접 물어봐요.”“언니는 말 안 할 거예요.”“나도 말 안 할 거거든요. 언니한테 못 물어보면서 왜 나한테 물어요?”“친언니니까 그렇죠
“당장 나가요. 안 그러면 형수 부를 거예요.”나는 진심으로 화가 나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감히 내 집에서 나를 겁주는 거예요? 간도 크네.”고수연이 홉뜬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나는 물러서지 않고 계속 차가운 얼굴로 대꾸했다.“겁주는 거 아니에요. 수연 씨가 너무한 거죠.”“그래요. 자요.”고수연은 말을 마친 뒤 바로 방을 나갔다.그제야 나는 한숨 돌릴 수 있었다.나는 얼른 문을 잠그고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얼마 뒤 무거운 눈꺼풀을 스르르 감았다.이튿날, 날이 밝을 때까지 잠들어 있던 나는 다급한 문소리에 깨어났다.처음에는 그냥 무시할까 했는데, 노크소리가 계속 이어지는 바람에 너무 시끄러워 마지못해 깨어났다.나는 언짢은 표정으로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그런데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안방 문이 열렸지만 형수와 고수연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대체 뭐 하러 갔는지.그리고 지금 들리는 노크소리는 밖에서 들리는 거였다. 급하게 울리는 노크소리만 들어도 문 밖의 사람이 얼마나 조급한지 짐작이 갔다.나는 또 진용진이 찾아온 줄 알고 재떨이를 쥔 채 문 앞으로 다가갔다.그러고는 문을 열고 문 밖의 상대를 향해 와다다 쏘아붙였다.“진용진, 너 언제까지 이럴 거...”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나는 그대로 벙쪘다. 문 밖에 서 있는 사람은 진용진이 아니라 웬 여자였다.그 여자는 형수와 아주 닮았는데 체형은 형수에 비해 좀 말랐다.하지만 커다란 가슴은 사람의 눈길을 끌었다.여자는 섹시하게 차려 입었는데, 특히 붉은 립스틱이 참 매혹적이었다.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예쁜 입술이 있나 하는 생각에 나는 멍하니 상대를 바라봤다.“큰언니, 작은 언니?”“어? 어디 갔지?”나는 그제야 상대가 형수의 셋째 동생 고아연이라는 걸 알아챘다.고아연은 나를 무시한 채 안으로 쳐들어와 방을 샅샅이 뒤졌다.“큰언니와 작은 언니는요?”“저도 몰라요. 이제 막 깨났거든요.”나는 말하면서 여자의 입을 쳐다봤다.정말 볼수록 예쁜 입술이었다.입술
고아연은 나를 보며 매혹적인 미소를 지었다.“내가 잡아먹을까 봐 무서워? 그렇게 긴장할 거 없어. 우리 형부 동생이잖아. 아무 짓도 안 할 테니까 얼른 와. 누나 할 말 있어.”나는 반신반의했지만 결국은 고아연 곁으로 다가갔다.고아연은 손을 뻗어 내 팔을 주물렀다.“근육 느낌 좋은데 단단한 건 아니네. 평소에 운동 잘 안 하지?”“안 하는 편이에요.”나는 약간 불안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 여자 앞에서는 내가 정말 남동생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아연은 이번에 내 다리를 주물렀다.“다리 근육은 더 없네. 운동 부족이구나. 젊은 나이에 이렇게 게을러서 어떡해?”나는 이 여자가 대체 왜 이러나 살짝 의아했다.나는 일부러 옆으로 슬쩍 움직였다. 고아연의 향수 냄새가 너무 심하기도 했고 옷이 너무 파여 가슴이 자꾸만 내 눈에 들어왔으니까. 그것 때문에 나는 온몸이 불편했다.“왜 그렇게 멀리 앉아 있어?”고아연은 말하면서 내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그러고는 말을 이었다.“내가 뭐 하는 사람인지 알아?”나는 머리를 마구 도리질했다.그러자 고아연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클럽 마담이야. 부잣집 사모님들한테 젊고 잘생긴 총각 소개시켜주는.”고아연은 웃으며 나에게 이상한 눈빛을 보냈다.‘에이 설마? 설마 나를 부잣집 사모님들한테 소개해주려는 건 아니겠지?’내가 살짝 겁먹은 눈을 하자 고아연은 박장대소하며 일어섰다.“겁먹기는. 장난이야. 내가 일하는 곳은 합법적으로 운영하는 클럽이야. 절대 그런 지저분한 짓 안 해.”이 순간 내 심정을 어떤 단어로 형용해야 할지 모르겠다.이 여자가 대체 왜 이러는지. 왜 처음만난 사람을 이렇게 놀리는지 이해되지 않았다.‘이게 재밌나?’나는 약간 언짢은 듯 말했다.“앞으로 그런 농담은 하지 마세요. 하나도 재미없어요.”“재미없어? 이봐, 우리 클럽에 호스트 필요한데 정말 생각 없어?”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필요 없어요. 저 제대로 된 직장 다니고 있어요. 그러니까 절대 그쪽이 일하는 그런
내가 옷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 갈아입으려고 할 때 고아연이 갑자기 내 앞을 막아섰다.“거실에서 갈아입어.”“뭔가 음모가 있죠?”고아연은 싱긋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이렇게 잘생긴 얼굴에 몸매 좋은 남자를 보기 싫어하는 여자가 어디 있겠어? 솔직히 말할게. 내가 좀 남색을 많이 밝혀.”나는 색을 밝힌다는 걸 이렇게 대놓고 인정하는 여자는 처음 봤다.“그래도 안 돼요. 난 형수 거예요.”나는 농담조로 말하고는 얼른 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몸에 걸친 섹시하고도 색기 넘치는 옷을 보니 나는 저도 모르게 소여정이 나더러 비슷한 옷을 입으라고 했던 때가 떠올랐다.보아하니 여자도 색을 밝히는 모양이다. 그것도 남자 못지않게.내가 문을 열고 방을 나선 순간 고아연은 노골적인 눈빛을 숨길 생각도 없는지 나를 진득하게 바라봤다.“쯧쯧. 역시 젊고 잘생긴 데다 소년미까지 넘치네. 이래서 언니가 그렇게 좋아하던 거였구나. 저녁에 이런 남자를 안고 잠들면 자다가도 웃으면서 일어나겠네. 자, 누나도 한번 안아보자.”고아연은 노골적으로 나를 더듬거렸다.나는 너무 놀라 다급히 고아연을 막았다.“옷만 입어보면 된다면서요? 다른 짓 하지 마요.”고수연도 옆에서 질투하는 듯 말했다.“아연아, 큰 언니 아직 혼수상태인데 네가 이렇게 언니 남자를 만져 대면 나중에 언니 얼굴 어떻게 보려고 그래?”“어쩔 수 없지. 미색이 유혹하면 난 남편도 배신할 사람인데 도덕을 어기는 게 뭔 대수야?”문제는 이 말이 고아연 입에서 나오니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척 어울렸다.고아연은 워낙 색을 밝히는 체질이라 그런지 아무리 이런 말을 해도 충격적이지 않았다.나는 두 사람이 나를 놀리는 거라고 생각했기에 그 말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옷은 문제없어요. 저는 이만 갈아입고 나올게요.”말을 마친 뒤 나는 곧장 내 방으로 향했다.그때 고아연이 다급히 나를 잡아끌었다.“잠깐만. 영상 좀 찍을게.”“무슨 영상이요?”“내가 보여줄게.”고아연은 내 옆에서
“맞아요. 원래는 회장님께 2억을 빌려 하정현 씨 빚 갚아주려고 했는데 두 분이 저한테 4억을 줬어요.”“왜?”“제가 회장님 병을 고쳐줬거든요. 지금 엄청 강하다며 어머님이 엄청 좋아하시며 준 거예요.”윤지은의 얼굴은 순식간에 붉어졌다.“실없긴.”“이건 제가 말한 게 아니라 지은 씨 어머니가 말한 거예요. 지은 씨가 무슨 말 들었는지 물어봐서 제가 말한 거잖아요.”나는 내가 하지도 않은 짓 때문에 그런 평가를 받고 싶지는 않았다.“다른 건 없어? 우리 엄마가 다른 말 안 했어?”윤지은이 나를 보는 눈빛이 왠지 이상했다.그 눈을 보니 이영미가 나한테 했던 말을 솔직히 말해야 하나 싶었다.하지만 내가 솔직하게 말하면 윤지은이 나를 쫓아낼까 봐 두려웠다.결국 고민 끝에 나는 함구하기로 했다.“다른 말은 없었어요. 나중에 우리 가게 영업 시작하면 고객 소개해 주겠다고 했어요.”“아.”윤지은의 표정은 약간 복잡 미묘했다. 하지만 대체 어떤 기분인지 읽어낼 수 없었다.“다른 용건 있어요? 없으면 전 이만 가볼게요.”“가 봐.”나는 뒤돌아 떠나는 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참으로 위험천만한 순간이었다.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10층으로 내려와 형수 집으로 들어갔다.고수연과 고아연도 이미 와 있었다.사실 형수의 현재 상황은 이렇게 많은 사람이 돌볼 필요가 없었다.하지만 친구인 애교 누나도 돕고 있는데 친자매가 안 올 수 없어서 시간 날 때마다 오는 것 같았다.게다가 두 사람 모습을 보니 오늘은 돌아가지 않을 생각인 듯싶었다.애교 누나는 내가 오자마자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누나가 떠나고 나니 집에는 나와 고씨 자매 둘만 남게 되었다.나와 고씨 자매는 워낙 할 말이 없는지라 분위기가 다소 어색해졌다.결국 나는 형수 보러 침실로 들어갔고 그 김에 형수 몸도 닦아주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고아연이 따라 들어왔다.“이봐. 나한테 새 옷이 있는데 대신 좀 입어봐 줄래?”“네? 아연 씨 옷을요?”“아니. 남자들이 입는 옷이야.”고아
윤지은의 집 안.옷을 갈아입은 하정현은 나와 윤지은 앞에 반듯하게 앉았다.그 순간 윤지은이 사람을 꿰뚫어 볼 듯한 눈빛으로 하정현을 훑어봤다.“이제 말해 봐.”윤지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하정현은 말 잘 듣는 고양이처럼 고분고분해졌다.“지은아, 나도 일부러 너 속이려던 건 아니야. 너한테 더 이상 폐 끼치기 싫어서 말 안 했어.”“아. 그러면 내가 오히려 너한테 감사해야겠네?”윤지은은 말을 반대로 하며 비꼬는 걸 참 잘하는 것 같았다. 옆에서 듣는 나도 참지 못하고 웃음이 터져버렸다.다만 하정현은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내가 어떻게 감히 그래. 나도 알아. 이번 일은 내 잘못이야. 앞으로 다시는 안 그럴게.”“끝났어?”하정현은 얌전한 토끼처럼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그 순간 윤지은도 피식 웃더니 나를 바라봤다.“네가 말해 봐. 저 말 진정성 있는 것 같아?”“어. 괜찮은 것 같은데요.”나는 불안함에 조심스럽게 대답했다.그러자 윤지은이 또다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아하, 내가 하마터면 잊을 뻔했네. 둘은 다 알고 있는데 나만 바보였었지? 사랑하는 친구야, 나도 좀 알고 싶네? 너 언제부터 정수호랑 그렇게 친했어? 정수호도 아는 일을 나는 왜 몰라?”나는 겁에 질려 아무 말도 못 했다.나와 하정현의 기세를 합도 윤지은을 이길 수는 없었다.“지은아, 사실은 내가 전에 수호 씨더러 내 파트너가 되어달라고 했잖아. 그때 말한 거야.”하정현은 윤지은 옆에 앉아 다정하게 손을 잡았다.“지은아. 내가 잘못했어. 쉬운 방법으로 돈 벌려고 하면 안 됐는데. 너한테 말 안 한 것도 미안해. 오늘 두 사람 아니면 나 무슨 일 당했을지 몰라. 이제 생각해 보니 너무 무섭네.”윤지은의 표정은 단번에 누그러들었고 말투도 다정해졌다.“이런 일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아. 한 번만 더 이러면 친구고 뭐고 없어. 이거 받아. 안에 2억 있어.”하정현은 카드를 보더니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지은아, 나도 무슨 말을 해야
하정현은 또 안성태의 귀싸대기를 날렸다.“잡지로 만들 거랬지 고객한테 단독으로 보내준다는 말은 없었잖아. 또 나를 속인 거야? 지은아, 그 파이프렌치 잠깐 좀 빌려줘. 이 자식 남자구실 못하게 해줄 테니까.”윤지은은 두말없이 파이프렌치를 건넸다.그 행동에 놀란 안성태는 사색이 되어 갑자기 하정현에게 주먹을 날렸다.그 순간 나는 다급히 하정현의 옷깃을 잡아 그녀를 뒤로 끌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안성태를 잡고 있던 손을 놓치고 말았다.속박에서 벗어난 안성태는 마치 화가 난 사자처럼 으르렁댔다.“개자식. 감히 그곳을 잡아? 내가 오늘 꼭 너를 죽인다.”“두 사람 얼른 도망쳐요!”나는 윤지은과 하정현을 향해 소리쳤다.윤지은은 안성태가 미쳐 날뛰기 시작한 순간 다급히 하정현을 잡고 밖으로 도망쳤다.그리고 나는 안성태의 앞길을 막아섰다.안성태는 나를 보며 이를 갈았고 두 눈은 나를 찢어발길 것 같은 살기를 내뿜었다.나는 일부러 냉소를 지으며 안성태를 자극했다.“아까 어땠어? 앞으로 남자구실 못할까 봐 두려웠지?”“이게 감히 그걸 입에 담아? 너 오늘 죽었어.”나는 계속해서 놈을 자극했다.“와 봐. 내가 놀아줄 테니까.”그 말에 안성태는 주먹을 그러쥔 채로 나에게 달려들었다.이번에는 그래도 대비가 되어 있었는지 쉽게 파고들 기회가 나지 않았다.하지만 나도 서두르지 않았다.변석훈이 그랬는데 상대가 미쳐 날뛸 때는 절대 무리하게 맞서 싸우지 말고 상대의 약점을 찾아 한 방에 맞혀야 한다고 했다.이번 싸움이 나에게는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평소 도관에서 연습하는 건 항상 똑같은 몇 가지 기술이라 이미 몸에 배어 있는데, 이걸 실전에서 사용해 봐야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때문에 나는 오히려 흥분되고 설렜다.나는 줄곧 안성태의 공격을 피하기만 하다가 놈이 완전히 폭주해 약점을 드러낸 순간 공격했다.나는 아예 막대기 하나를 집어 들고 놈의 가슴을 세게 내려쳤다.내 공격에 안성태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나조차도
나와 윤지은은 하이 파이브를 했다. 우리의 합이 이렇게 잘 맞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물론 하정현의 도움도 컸다.우리 셋은 허리를 곧게 세운 채로 안성태와 마주 섰다.그때 하정현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안성태, 너한테 한 번만 기회를 줄게. 네가 그 계약서를 나한테 돌려주고 내 사진을 모두 삭제하면 네 책임을 묻지 않을게.”안성태는 그 말을 듣더니 피식 웃으며 외투를 벗어 던졌다.“너희가 꽤 치는 줄 몰랐네. 마침 잘 됐어. 나도 오랜만에 좀 놀아보자.”그때 나는 즉시 윤지은과 하정현 앞에 막아섰다.“저놈은 내가 상대할 테니 두 사람은 본인 몸이나 잘 지켜요.”무엇보다 안성태는 덩치가 컸기에 나는 절대 그놈이 윤지은이나 하정현을 노리게 둘 수 없었다.“승산은 있어?”윤지은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모르겠어요. 하지만 최선을 다할 거예요.”“그럼 힘내.”나는 안성태 앞으로 다가갔다.내 키도 185라 놈 앞에서 조금도 꿀리지 않았다.비록 안성태의 덩치가 나보다 훨씬 컸지만 나보다 민첩성에서 떨어질 수 있었다.안성태가 나를 먼저 공격했다.하지만 나는 신속히 오른쪽으로 몸을 피했다.변석훈이 전에 말했는데 알 수 없는 상대를 만났을 때는 서둘러 공격하는 것보다 우선 상대의 실력과 잘 쓰는 기술, 그리고 약점을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때문에 초반에 나는 계속 피하기만 했다. 상대가 나를 건드리지 못하게만 하면 그걸로 족했으니까. 그와 동시에 나는 상대를 관찰했다.몇 분 동안 싸우다 보니 s는 안성태가 덩치가 커서 힘만 넘쳐났지 기술과 스피드가 많이 달린다는 걸 발견했다. 나는 순간 마음이 놓였다.“이젠 내가 공격할 차례다, 이 개자식아.”나는 신속히 공격했다.지난 한 달 동안 피하는 법과 공격하는 법을 배운지라 내 현재 속도는 안성태보다 훨씬 빨랐다.나는 단번에 필살기를 쓰겠다는 마음으로 놈의 정가운데를 잡았다.그 순간 안성태는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지르면서 눈을 까뒤집었다.“이 비겁한 자식...”나는 피식
“안성태, 내가 정말 사람 잘못 봤네.”하정현은 순간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하지만 그 모습을 본 안성태는 오히려 깔깔 웃어댔다.“하하하, 나 원래 불법 장사하는 사람이야. 어디서 순진한 척하는 거야? 그러게 순순히 촬영에 협조하면 됐잖아. 왜 그렇게 기어올라? 네가 계약을 위반했으니 위약금을 내는 건 당연하잖아.”“계약서에 명확히 적혀 있어. 촬영에 협조하지 않을 시 위약금을 지불한다.”“그게 1억이라고?”하정현은 후회막심했다.사실 여기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옛 동창이거나 고향 사람들이라서 하정현은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해 촬영에 동의했다. 하지만 이틀 전까지만 해도 정상적인 촬영이라 순조로웠는데, 오늘 갑자기 낯부끄러운 장면을 찍으라고 강요했다. 그것도 못생긴 남자 모델들과 함께.그러니 하정현은 당연히 싫다고 거절했다.그랬더니 이 사람들은 갑자기 본색을 드러내며 하정현더러 위약금을 물어내라며 마구 때렸다.그 순간 하정현은 죽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나와 윤지은 역시 하정현의 몸에서 힘이 점점 빠져나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나는 얼른 윤지은과 함께 하정현을 부축했다.“이건 정현 씨 잘못 아니에요. 탓하려면 쓰레기 같은 저 자식들을 탓해야죠.”“헛소리 그만하고 대답해. 위약금 낼래? 아니면 촬영에 협조할래? 선택하지 않으면 오늘 여기서 한 발짝도 나갈 생각 하지 마.”윤지은은 이내 나를 바라보며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내가 유도를 배운 적 있어서 한두 명은 문제없어. 나머지를 혼자 해결할 수 있겠어?”현장에는 총 6명이었다.윤지은이 2명을 맡는다면 나는 4명을 해결하면 된다는 뜻이었다.나는 솔직히 자신이 없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절대 맥 빠지는 소리를 할 수 없어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문제없어요.”“그럼 왼쪽 둘은 내가 맡을게. 나머지는 네가 해결해.”윤지은은 말을 마치자마자 곧장 왼쪽에 있는 놈에게 돌진했다.이윽고 나 역시 하정현더러 자리를 찾아 숨어 있으라고 하고는 다른 놈에게 달려들었다.하지만 하정현은 숨지
윤지은은 두말없이 파이프렌치를 받아 들었다.그제야 나도 망치 하나를 꺼내 들었다.우리와 멀지 않은 곳에 철제 창고가 하나 있었는데 하정현은 그 안에 있을 가능성이 컸다.그 순간 나는 먼저 관찰하다가 기습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윤지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쪽으로 바로 달려갔다.쾅쾅쾅!철문이 부딪치면서 요란한 소리를 냈다.윤지은의 이런 모습은 너무 용맹스러웠다. 나 역시 그런 그녀에게 탄복할 수밖에 없었다.분명 곱게 자란 부잣집 딸인데 곤란한 상황 앞에서 전혀 당황하지 않는 이런 용기는 정말 기특했다.얼마 뒤, 철제문은 안에서 열리더니 꽃무늬 셔츠를 입은 남자 한 명이 나와 물었다.“뭐 하는 거야?”윤지은은 두말없이 파이프렌치를 들이밀었다. 그 순간 문 앞을 지키고 있던 놈도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하정현 어디 있어?”“젠장. 그 계집애를 찾으러 온 거였어? 센 척하긴.”“잔말 말고. 하정현 어디 있어?”윤지은은 언성을 높이며 싸늘한 얼굴로 물었다.“안에...”윤지은은 두말없이 제 앞을 막은 놈을 밀치고 안으로 쳐들어갔다.창고 안은 아주 간단한 스튜디오였는데 촬영 내용은 어디 내놓기 남사스러운 장면들이었다.그 가운데 하정현이 있었는데 얼굴에 상처가 난 걸 보면 맞은 게 분명했다. 그리고 하정현 여에는 상의를 벗어 던진 못생긴 놈들이 서 있었는데 보아하니 하정현의 촬영 파트너인 것 같았다.나는 하정현을 본 순간 곧장 그쪽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그때 남자 한 명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나는 한주먹으로 놈을 쓰러뜨리고 하정현 옆으로 다가가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괜찮아요?”하정현의 얼굴에는 온통 상처였으며 눈시울은 빨갰다.“괜찮아. 안 죽어.”그때 촬영장 스태프들이 우리 주위로 우르르 몰려들었다.윤지은은 우리 앞에 막아선 채 당장 놈들에게 덤벼들 태세를 취했다.“한 발짝만 더 나서 봐!”그 순간, 긴 콧수염을 가진 남자 한 명이 냉소를 머금은 채 걸어 나왔다.“계집애 주제에 이 많은 인원을 다 묶어둘 수 있을
“어디서 감히! 나 경찰에 신고한다?”나는 마음이 조급하고 걱정이 앞섰다.하지만 내 말에 상대는 오히려 냉소적으로 말했다.“그래. 신고해. 경찰이 도착했을 때면 그 계집애는 죽어 있을 테니까.”“내가 돈 줄 테니까 그 여자 풀어줘.”나는 하정현을 구하고 싶었지만 하정현이 있는 곳이 어딘지 몰랐기에 이런 방법으로 거래할 수밖에 없었다.상대는 돈을 갚는다는 말에 이내 웃었다.“좋아. 그럼 북교 사거리 뒤쪽에 있는 공터로 와.”상대가 말한 곳은 도심과 매우 먼 데다 사고 다발지역이라 택시 기사들도 다니기 싫어하는 일대였다.그렇다고 버스를 타는 건 더욱 불가능했다. 버스는 너무 느려 도착하면 모든 게 끝날 수도 있었다.한참 고민한 끝에 나는 결국 윤지은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지은 씨, 혹시 안 쓰는 차 있으면 좀 빌려줘요.”윤지은은 나를 꿰뚫어 볼 듯 훑으며 물었다.“뭐 하려고?”“그런 건 묻지 말고 한 번만 빌려줘요. 한 번만 쓰고 돌려줄게요.”“이유도 말해주지 않는데 내가 왜 빌려줘야 하지?”나는 너무 조급한 나머지 결국 하정현의 일을 모두 실토했다.자초지종을 들은 윤지은은 즉시 안색이 변하더니 두말없이 외투를 걸치고 나와 함께 밖으로 뛰쳐나갔다.“차고에 차 한 대 있어. 이게 차키야.”윤지은은 BMW 차키를 나에게 던져주며 나더러 운전하라고 했다.그건 조금도 놀랍지 않았다.명색이 윤씨 가문 딸인데, 스포츠카 몇 대 정도 소유하고 있는 건 정상이었으니까.나는 신속하게 시동을 걸고 놈이 말한 주소지로 내달렸다.윤지은의 얼굴은 어느새 잿빛이 되어 있었다.“가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왜 또 간 거야? 돈이 그렇게 부족한가? 왜 나한테 말을 안 했지?”“정현 씨가 이번에 강북에 온 이유가 엄청 성가신 일 때문이라는 거 모르죠?”윤지은은 즉시 나를 돌아봤다.“무슨 성가신 일? 나한테 말한 적 없는데?”“정현 씨 어머니가 정현 씨더러 방법을 대서 아버지를 빼내라고 했대요. 안 그러면 연을 끊겠다고 하면서요.”내 말을
나는 재차 거절하며 말했다.“앞으로 우리 가게 자주 찾아와 주시면 돼요. 그러니 2억은 받을 수 없어요.”“에이, 수호 씨가 마음에 들어서 주고 싶어 주는 건 데도 안 받을 거야? 돈 받고 우리 딸이나 잘 만족시켜 줘.”이영미는 입을 가리고 몰래 웃었다.그에 반해 나는 그 말에 너무 충격을 받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어머님은 제가 지은 씨랑 만나는 거 괜찮아요?”“괜찮지 그럼. 이렇게 잘생기고 몸매도 좋은 남자애가 또 어디 있다고. 수호 씨가 우리 딸 만족시켜 주면 우리 지은이도 좋아할 거야.”“난 개방적인 사람이라 우리 딸만 즐겁고 행복하면 돼. 결혼하고 싶으면 하고 싫으면 잠깐 만나다 헤어지면 그만이야. 어떤 선택을 하든 우리 윤씨 가문은 지은이를 먹여 살릴 수 있어.”처음 들어보는 관점에 나는 크게 놀랐다.하지만 자세히 생각해보면 윤씨 가문은 워낙 재산이 많고 부부가 워낙 개방적이니 결혼이 최종 귀착점이 아닐 수 있었다.게다가 이영미는 자식이라고는 윤지은 한 명뿐이니, 당연히 자기 딸이 행복하기를 바란다.“그렇게 말씀하시니 좀 부끄럽네요. 하지만 어찌 됐든 이 돈은 받을 수 없어요...”“안 받으면 안 돼. 안 받으면 수호 씨가 우리 지은이 만족시켜주지 못할까 봐 걱정돼. 우리 지은이가 불감증인데 수호 씨를 못 잊는 걸 보면 수호 씨가 그쪽 방면으로 꽤 쓸만하다는 뜻이니까.”“콜록콜록...”나는 침에 사레가 들렸다.“어머님이 생각하시는 그런 게 아니에요...”“구체적인 상황이 어떻든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우리 지은이가 수호 씨랑 같이 있고 싶어 하고 나도 수호 씨가 마음에 드니까, 수호 씨는 우리 지은이만 만족시켜. 난 우리 딸이 평생 즐거움을 경험해 보지 못하는 건 바라지 않아. 그러면 돈이 아무리 많아도 뭔 소용이 있어?”역시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는 걸 나는 다시 한번 느꼈다.나는 열심히 돈 벌어 출세하려고 아득바득하고 있는데, 이영미는 벌써 후대의 행복까지 생각하고 있다니. 그것도 이토록 깊숙이.그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