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을 들은 순간 하정현의 아버지가 부패를 저지른 게 고발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의원 아버지를 믿고 얼마나 많은 사람한테 갑질했을지 모르니까.나는 달갑지 않아 대충 얼버무렸다.“안 그럴게요, 됐죠?”“진작 그럴 것이지.”하정현은 다시 소파에 누웠다.평평한 하정현의 가슴을 보니 나는 점점 더 화가 났다.때문에 마사지할 때 일부러 힘을 더 주었다.게다가 혈 자리가 분명 가슴 아래에 있는데 일부러 위을 눌렀다.“음? 뭐 하는 거예요?”하졍현은 이상함을 눈치챘는지 경계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나는 얼른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혈 자리를 마사지해 주고 있잖아요. 여기 이 혈 자리가 효과가 더 뛰어나거든요.”“그래요? 그런데 아까는 왜 여기 안 눌렀어요?”하정현은 막무가내긴 해도 바보는 아니라 쉽게 속일 수 없었다.하지만 이 질문은 나에게 전혀 어렵지 않았다.“지난번에는 급하게 끝내느라 오일도 안 발랐잖아요. 이번에는 오일도 발랐으니 흡수가 더 잘되게 해야죠.”“아.”‘어디서 감히 나한테 덤벼? 넌 아직 어려.’나는 한 편으로 마사지하며 한 편으로 하정현의 가슴을 주물러댔다.하정현의 가슴은 물론 작았지만 촉감은 아주 좋았다.게다가 마사지를 하고 나니 손안에 마침 들어오는 게 너무 귀여워 오히려 그것대로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이봐요, 혹시 매일 몇 명의 여자를 마사지해 줘요? 나보다 가슴 작은 여자 본 적 있어요?”하정현은 궁금한 듯 물었다.그 질문에 생각이 끊겨버린 나는 얼른 고개를 저었다.“없어요. 정현 씨 가슴이 내가 지금껏 본 여자들 중에 가장 작아요. 그런데 꽤 귀여워요.”“어떻게 귀여운데요? 얼른 말해 봐요.”하정현이 갑자기 두 눈을 반짝이며 묻는 바람에 나는 흠칫 놀랐다.“뭐 하는 거예요? 놀랐잖아요.”“지금껏 내 가슴이 귀엽다고 말해준 사람이 없단 말이에요. 그쪽이 처음이에요. 그러니까 어떻게 귀여운지 들어보고 싶어요.”‘그런 거였어? 식겁했네.’나는 솔직히 말
의느님의 의술을 빌려 이것저것 채워 넣은 가짜 얼굴보다는 훨씬 나았다.“갑자기 그쪽 말이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왠지 가슴 크게 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어요.”하정현은 말하면서 오만하게 가슴을 내밀었다.하정현의 모습에서 그녀가 정말 자랑스러워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나는 내 말이 그렇게 큰 역할을 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됐어요, 서비스가 끝났으니 송금해요.”나는 큐알 코드를 하정현에게 쭉 내밀었다.그러자 하정현은 두말없이 나에게 송금했다.오일 마사지와 가슴 마사지는 간단하기에 가격도 너무 비싸지 않았다. 도합 16만 원이다.돈을 받은 나는 곧바로 윤지은의 집을 떠났다.첫째 이유는 하정현이 갑자기 말을 번복할까 봐 두려워서였고, 두 번째 이유는 애교 누나가 방금 영상 통화를 걸어 왔는데 너무 바빠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나는 차에 앉자마자 애교 누나에게 전화 걸었다.애교 누나는 바로 전화 받았다. 하지만 남주 누나가 오늘 기분이 안 좋아 하루 더 같이 있어 달라고 한다고 했다.이건 내가 바라는 결과가 아니었다.나는 당연히 애교 누나가 빨리 돌아오길 바란다.‘남주 누나가 기분 안 좋을 게 뭐가 있어? 어젯밤 남편한테 사랑을 듬뿍 받았으면서.’나는 남주 누나가 일부러 그런 것이라는 의심이 강하게 들었다.내가 푸념하자 애교 누나는 나를 위로해 주었다.“남주가 기분이 안 좋다는 거, 거짓말 아니에요. 남주 아들이 오늘 학교에서 다른 학생과 싸웠거든요. 그래서 남주가 선생님한테 불려 가 한바탕 꾸중을 들었어요.”‘아, 그런 거였네.’나는 무의식적으로 남주 누나와 형수 그리고 애교 누나는 모두 애가 없다고 셍각해 왔다.하지만 남주 누나는 벌써 7살짜리 아들이 하나 있는데, 올해 막 1학년이 되었다.그렇다면 남주 누나가 기분이 안 좋다는 게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남자아이는 워낙 장난기가 심하니까.남주 누나는 노는 걸 즐기긴 하지만 아들한테만큼은 늘 최선을 다하는 듯했다.그런데 아들 때문에 그런 일을 겪었으니 기분이
“내가 증명할게. 이것 봐, 나 지금 노력하고 있잖아.”“어떻게 된 거야? 왜 또 갑자기 되는 거야?”형수의 숨소리는 점점 가빠졌다.형수의 물음에 형은 솔직하게 대답하지 않았다.사실 형수가 돌아온 걸 보자마자 동성 형은 몰래 약을 먹었다. 지금 되는 것도 그 덕분이고.하지만 형은 이 사실은 절대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형수가 절대 안에 사정하도록 동의하지 않을 테니까.“나도 모르겠어. 갑자기 자기가 또 좋아졌나 보지. 태연아, 사랑해. 영원히 잃고 싶지 않아.”점점 격해지는 소리가 고스란히 내 귀에 흘러들었다.형수는 연달아 오르가슴을 느끼며 만족해하는 모습이었다.애초에 형수가 이토록 만족했을 때는 나와 함께했을 때였는데, 이제는 더 이상 내가 필요 없어진 모양이다.그 사실을 인지하니 나는 너무 속상했다.나는 묵묵히 집을 나와 다시 차에 올라탔다. 하지만 기분은 너무 복잡하기만 했다.남주 누나는 남편이 있고, 형수도 남편이 있어 그녀들 남편이 돌아올 때면 나는 아무 쓸모도 없게 된다.이런 느낌은 너무 싫었다.마치 내가 필요할 때는 갖다 쓰고, 필요 없어지면 버려지는 물건이 된 기분이었다.나는 속으로 더 이상 남주 누나와 형수랑 엮이지 말아야겠다고 맹세했다.‘난 애교 누나한테만 잘할 거야. 나한테 잘해주는 사람은 역시 애교 누나뿐이야.’생각을 정리한 뒤, 나는 곧장 화인당으로 향했다.그날 오전, 나는 또 몇 명의 고객을 받아 몇십만 원이나 되는 팁을 받았다.점심시간, 모태진은 또 외식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나는 기분이 꿀꿀해 바로 거절했다.그랬더니 모태진은 내 팔을 잡아당기며 설득했다.“가요, 네? 내가 쏠게요. 내가 처음으로 쏘겠다고 하는 건데, 체면 좀 세워줘요.”모태진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내 기분도 따라서 좋아졌다.“뭐예요? 돈이라도 생겼어요? 왜 갑자기 이렇게 통 커졌는데요?”나는 웃는 얼굴로 농담했다.무엇보다 계속 기분이 안 좋은 채로 있는 것도 방법은 아니기에, 확실히 기분 전환이 필요
내가 모태진과 식사하고 있을 때 노랑머리 놈이 갑자기 여자 친구를 데리고 나타났다.그러고는 모태진의 앞에 다가오더니 노기등등한 모습으로 모태진에게 삿대질했다.“네가 모태진이야? 내 여자를 건드리려 한 놈이 네 놈이냐고?”“난 그 여자분 건드린 적 없어요. 너무 가여워 보여서 그쪽을 떠나라고 했을 뿐이에요.”모태진은 매우 정중하게 대답했다.하지만 다음 순간 노랑머리 놈이 갑자기 모태진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리는 바람에 코피가 흘러내렸다.나는 벌떡 일어나 모태진의 앞에 막아섰다.“뭐 하는 거예요? 계속 이러면 경찰 부를 거예요!”노랑머리는 눈에 뵈는 게 없는지 내가 경찰을 언급했는데도 겁먹지 않았다.심지어 그 말에 오히려 발끈하며 화를 냈다.“난 지금 저 자식이랑 말하는 중이잖아. 그쪽이랑 상관없으니까 넌 빠져.”모태진은 얼굴에 코피를 덕지덕지 묻혔지만, 눈빛을 보니 조금도 물러설 기색이 없어 보였다.어제 똑같은 일을 당했을 때, 모태진은 이런 태도가 아니었다.그런데 여자 한 명 때문에 이렇게 큰 변화가 생기다니.그 여자는 모태진이 맞자 울며 남자 친구한테 애원했다.“안명훈, 그만해. 이 일은 모 선생님과 아무 상관 없어. 내가 너랑 헤어지고 싶은 거야.”짝!안명훈은 두말없이 여자의 뺨을 후려갈겼다.이건 너무 도가 지나쳤다.여자가 남자랑 사귀든 말든 그건 자유인데, 헤어지자고 했다고 사람을 때리다니.나는 참지 못하고 호통쳤다.그러자 안명훈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씩씩거리며 말했다.“경고하는데, 한 마디만 더 지껄이면 너도 같이 때려줄 거야.”나는 순간 분노가 끓어 올라 싸늘하게 말했다.“어디 한번 해 봐. 아주 법이고 뭐고 눈에 뵈는 게 없나 보네? 벌건 대낮에 어디서 주먹질이야? 너 같은 건 경찰에 잡혀가야 돼.”말을 마친 뒤, 나는 곧장 경찰에 신고했다.이번에는 겁만 주는 게 아니라 진짜였다.안명훈이 갑자기 전화를 빼앗으려고 달려들자 나는 가볍게 몸을 피했다.하지만 그놈은 포기하지 않고 또다시 달려들었다.
은솔이라는 여자는 말하면서 모태진의 품에 와락 안겨 그를 꼭 끌어안았다.그 순간 모태진은 어쩔 줄 몰라 쩔쩔맸다. 하지만 그의 눈빛에는 유쾌한 기색이 역력했다.나도 이젠 남녀 문제에 있어서 베테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모태진이 은솔을 좋아한다는 걸 충분히 알 수 있었다.하지만 모태진은 가정이 있는 사람이라 절대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괜찮아요, 별거 아니에요. 앞으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찾아와요.”모태진은 말하면서 두 손으로 여자를 꼭 끌어안았다.그 행동에 나는 내 추측을 더 확신할 수 있었다.하지만 그 모습을 본 안명훈은 화가 나서 펄쩍 뛰었다.“젠장, 그 손 당장 놔! 그 여자는 내 여자라고! 손대지 마!”안명훈은 또다시 모태진을 때리려고 달려들었다.나는 얼른 그놈을 말리며 시선을 끌었지만 놈은 나를 향해 버럭 소리쳤다.“계속 끼어들겠다 이거야? 좋아, 그렇다면 너도 같이 죽여줄게!”우리가 한창 말다툼하고 있을 때 경찰이 도착했다.그러고는 상황을 듣더니 쌍방 폭행이라며 우리를 모두 경찰서로 데리고 갔다.그 사실에 나는 너무 화가 났다.“이게 어떻게 쌍방 폭행이에요? 분명 저 자식이 먼저 폭행했어요. 저는 정당방위라고요.”“잔말 말고 따라와요.”두 경찰은 두말없이 우리를 모두 끌고 갔다.그때 안명훈이 갑자기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그 모습을 본 순간 나는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설마 저 경찰들이 저 노랑머리랑 아는 사이인가?’우리는 얼마 뒤 관할 파출소로 연행되었다.경찰은 우리가 쌍방 폭행이라고 여겼고, 안명훈이 갑자기 나 때문에 중상을 입었다며 병원에서 진단받고 나를 고소하겠다며 길길이 날뛰었다.심지어 중재에 나선 경찰은 아무리 봐도 노랑머리의 편인 듯했다.“상대가 고소하면 나중에 형사적 책임을 져야 할 수도 있으니 되도록 사적으로 합의 보세요.”“그런데 합의금 2천만 원이 말이 돼요? 이건 강도랑 뭐가 달라요?”“그건 여러분이 사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니 사적으로 합의 보세요.”나는 화가 나서 미칠 지
“뭐든 다? 정확하게 뭐야?”소여정은 싱글벙글 웃으며 물었다.이런 상황에서 나를 희롱할 생각뿐인 소여정이 너무 짓궂었지만 나는 숙이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말 그대로, 다 돼요.”나는 소여정이 나를 놀리고 희롱하는 걸 좋아하는 데다 내 몸을 노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떼문에 내가 이렇게 말한 건 뭐든 다 된다는 걸 암시하기 위해서다.앞으로 그걸 들어줄지 말지는 또 다른 문제일 테지만.이 상황에서 벗어나는 게 나한테는 우선이었다.“약속했어? 난 절대 강요한 적 없어.”소여정이 동의하자 나는 가슴이 벅차올라 다급히 대답했다.“모두 내가 원해서 하는 거니까 결과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질게요. 이제 안심이 되죠?”“그래, 기다려 봐. 전화 한 통만 할게.”소여정은 고작 정부이지만 그녀의 남자 임천호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게다가 임천호가 매번 공식 석상에 나갈 때마다 항상 자기 정부를 데리고 다니기에 모든 사람이 소여정을 알고 있다. 심지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소여정을 통해 임천호한테 접근하려고 하고 있다.그때 그 술자리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소여정한테 몰려든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정부라는 이름이 사람들 앞에 내놓기 부끄러운 이름이지만, 그 사람이 높은 위치에 있으면 부끄럽고 말고는 큰 의미가 없게 된다. 심지어 뒤에서 몰래 소여정을 부러워하는 여자가 수없이 많다.어찌 됐든 임천호의 여자가 된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을 테니까.내가 막 전화를 끊고 돌아오자 안명훈이 귀찮은 듯 물었다.“대체 해결한 거야. 만 거야? 해결할 생각이 없으면 구치소에서 지내.”그 말에 경찰은 나를 한번 쓱 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행동에 나는 기가 찼다.경찰은 국민의 지팡이가 되어야 하는데, 지금은 오히려 나쁜 놈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다니.내가 권력이 없는 건 맞지만 나중에 내가 권력을 손에 넣는다면 반드시 이런 부패한 현상을 뿌리 뽑을 거다.“너랑 말하고 있잖아. 귀먹었어?”노랑머리가 나에게 다시
갑자기 변한 정세에 노랑머리는 어리둥절해했다.“무슨 상황이야? 우리 보스께서 미리...”“닥쳐! 당장 들어가.”경찰은 갑자기 다른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매우 강직하고 엄밀해졌다.그러더니 강제로 노랑머리를 구치소로 연행하고 그더러 모태진과 은솔한테 각각 20만 원을 배상하도록 요구했다.모태진도 어리둥절해했다.“무슨 상황이에요? 저 경찰들 아까는 저 노랑머리 편 아니었어요? 왜 갑자기 우리를 도와주는 건데요?”나는 당연히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역시나 권력 있는 사람을 알고 있다는 게 이런 거구나.’우리가 입 아프게 도리를 설명하고 억울함을 호소해도 아무 소용 없더니, 소여정의 전화 한 통에 모든 게 달라지다니.역시나 옛말에 조정 사람을 알면 일이 쉬워진다더니, 그 말이 일리가 있는 듯싶었다.하지만 나는 쓸데없는 말은 일절 하지 않았다.“이왕 일이 해결됐으니 우린 이만 가요.”나는 모태진을 한쪽으로 끌어와 귀띔해 줬다.“선배는 집에 아내가 있다는 걸 잊지 마요. 절대 바보 같은 실수 저지르지 마요, 알았죠? 은솔 씨 일은 되도록 모른 척하고요.”“알아요. 나도 은솔 씨를 동생으로 여기는 거지, 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니에요. 그리고, 난 이제 나이도 있는데 그럴 에너지가 어디 있어요?”“그렇다면 다행이고요.”나도 모태진이 말한 대로 하길 바랐다.은솔은 모태진에게 자꾸만 들어붙는 느낌이었지만 모태진은 그나마 어떻게 해야 할지를 잘 아는 듯했다.“은솔 씨, 일이 해결됐으니 얼른 학교로 돌아가서 열심히 공부해요. 앞으로 다시는 불량배들과 어울리지 말고, 속지도 말고요. 부모님이 얼마나 고생할지만 생각해요.”“은솔 씨가 마음껏 공부하게 해주려고 부모님이 얼마나 노력하고 계신데. 은솔 씨가 나쁜 남자한테 속고 몸도 마음도 다치면 부모님이 얼마나 속상하겠어요.”은솔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우리 부모님은 저 같은 건 상관 안 해요. 저를 딸로 생각하지도 않아요.”“그런 말 말아요. 세상에 어떤 부모가 자기 자식을 사랑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은솔은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계속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그때, 익숙한 그림자가 내 옆을 지나갔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주선영이었다.“후배, 학교 돌아온 거야?”나는 먼저 다가가 인사했다. 물론 어색하긴 했지만 아무 말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았으니까.선영은 나를 향해 싱긋 미소 짓더니 뒷좌석에 앉은 은솔을 바라봤다.“은솔아, 네가 왜 여기 있어?”“두 사람 알아?”“룸메이트예요. 같은 과고요.”‘어쩐지. 지난번에 은솔이 입었던 치마가 눈에 익다 했더니 주선영이 입었던 것과 동일한 옷이었네.’같은 침실에 있는 데다 옷도 나눠 입는 사이라면 관계가 좋다는 뜻이었다.나는 얼른 선영에게 말했다.“네가 은솔이 좀 데려다줘. 요즘 곁에 있어 주고.”“네, 알았어요.”은솔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선영과 함께 학교로 들어갔다. 하지만 겉보기에 여전히 기분이 안 좋아 보였다.그런데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이것뿐이었기에 그저 은솔도 모태진도 모두 정신을 차리고 바보 같은 짓을 저지르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은솔을 바래다주고 난 뒤 나는 다시 화인당으로 돌아왔다.점심시간에 겪은 일 때문에 나는 오후에 또 지각하고 말았다.하지만 모태진이 미리 사정을 설명한 덕에 정 사장님은 오히려 나를 걱정했다.“이제 괜찮아요. 일도 해결됐어요.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정 사장님을 보니 나는 문득 이 선생님이 말씀해 주셨던 사모님 얘기가 떠올랐다.나는 사모님과 일면식도 없기에, 따지고 보면 사모님이 나를 도와줄 이유는 조금도 없다. ‘설마 정 사장님이 사모님한테 말해서 사모님이 나를 도와줬나?’‘그런데 그렇다면 정 사장님이 직접 예기하지 않고 왜 사모님이 나섰지?’나는 이럴 가능성이 적다고 생각했다.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사모님이 나를 도와주셨으니 언젠가는 만날 거야. 그때 직접 인사하면 돼.’“괜찮다면 다행이네요. 가서 일해요.”나는 얼른 내 룸으로 돌아와 물건을 정리했
하지만 형수는 너무 오랫동안 침대에만 누워 있어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에 반해 양춘옥은 힘이 넘쳐나 손쉽게 형수를 제압했다.형수는 순간 폭발해 버렸다.“당, 당신 뭐 하는 거야?”양춘옥은 얼른 아들에게 말했다.“아들, 뭐 해? 얼른 밧줄을 찾아오지 않고. 이 여자 윗몸만 움직일 수 있고 아래는 못 움직여. 너한테 마침 좋은 기회잖아.”양춘옥의 아들은 얼른 벨트를 풀더니 형수의 손을 묶으려고 다가갔다.그 순간 나는 방으로 쳐들어가 그 남자를 발로 걷어찼다.양춘옥은 그 순간까지 현실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때 나는 양춘옥의 머리채를 잡고 그녀의 뺨을 내리쳤다.나는 양춤옥이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뺨을 후려갈겼다.형수는 위험한 순간에 나타난 나를 보자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나 역시 형수가 깨어난 걸 보니 흥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형수!”“수호 씨, 타이밍 너무 좋았어요. 이 둘은 인간도 아니에요! 감히...”형수는 흐느끼며 말을 잇지 못했다.나는 얼른 형수의 두 손을 꼭 잡았다.“알아요. 다 알아요. 형수, 걱정하지 마요. 이 사람들이 한 짓 내가 모두 찍었어요. 지금 경찰에 신고할게요.”양춘옥은 경찰에 신고한다는 내 말에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마구 달려들어 내 손에 있는 핸드폰을 빼앗으려고 했다.나는 또다시 양춘옥의 뺨을 내리쳤다.그러자 이번에는 양춘옥의 아들이 나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모자 둘이 달려들어도 내 상대는 아니었다.양춘옥은 더 이상 방법이 없자 그제야 무릎 꿇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정 사장님, 제발 신고하지 말아 주세요. 제 아들이 이제 막 출소했는데 또 잡히면 이번에는 끝장이에요.”나는 이를 악물며 양춘옥을 바라봤다.“당신 아들 생각하기 전에 우리 형수는 생각했어? 내가 마침 집에 오지 않았다면 당신과 당신 아들이 형수한테 끔찍한 짓을 저질렀을 거잖아.”“내가 아줌마를 얼마나 믿었는데, 이렇게 보답하는 거야? 정말 악독하기도 하지. 오늘 당신도 법의 처벌을 받게 될 거야.”“안 돼요. 정 사장
“뭐요? 너무 까다로운 거 아니에요?”“까다로운 게 아니라 원래부터 얌전하지 않은 여자인 것 같아. 남편과 잘 지내지 않고 별 같잖은 남자랑 바람이 났어. 정수호라는 사람인데, 매일 이 여자 몸을 닦아주러 와서 이 여자를 형수라고 불러...”“너무 막 나가는 거 아니에요? 이런 일이 다 있다니. 이 여자도 참 뻔뻔하네요.”아들의 말에 양춘옥이 말했다.“그러니까 내가 널 불러온 거잖아. 이 여자도 워낙 얌전하지 않은 여자니까 너도 욕구나 풀어보라고. 아들, 너 이제 막 감방에서 나와 많이 쌓였을 거 아니야?”“밖에서 아가씨 찾기보다 이 여자한테 욕구를 푸는 게 더 나아. 적어도 이 여자는 깨끗하잖아.”고태연은 두 모자의 대화를 들으면 들을수록 화가 치밀어 당장이라도 일어나 양춘옥의 뺨을 후려갈기고 싶었다.하지만 결국 그녀가 가장 걱정하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것도 그녀가 혼자 집에 있을 때 말이다.이런 상황에서 당하면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모를 거다.고태연은 너무 무섭고 두려웠다. 심지어 이 두 모자에게 이토록 모욕당할 바에는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리고 그 시각 양춘옥과 아들의 대화를 들은 나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하지만 나는 서둘러 안으로 쳐들어가지 않았다.나는 우선 거실에 설치했던 감시 카메라를 찾았다. 그랬더니 카메라는 어느새 구석으로 옮겨졌다.‘이 아줌마가! 나는 그래도 믿고 매일 카메라를 돌려보지 않았는데, 이런 짓을 하다니.’나는 핸드폰 녹화 기능을 켜고 방 안을 몰래 촬영했다.탐정 사무소에서 일을 하게 된 이후로 나는 뭐든 증거싸움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 남자가 형수 몸에 바짝 붙어 다리에 코를 가져다 대며 냄새를 맡았다.“냄새 좋다. 식물인간한테서 이렇게 좋은 냄새가 나다니. 피부도 이렇게 좋고. 대박, 몸매도 완전 끝내주잖아.”양춘옥은 옆에서 키득거렸다.“당연하지. 그리고 무엇보다 이 여자는 깨끗해. 아들, 얼른 하지 않고 뭐 해?”“헤헤. 그럼 엄마는 밖에서 망 좀 봐...”양춘옥은
“나 그만 놀려요. 내가 보고 싶은데 왜 애교 누나 집에 와서 혼자 술을 마셔요?”나는 아직 어려 정치계 판을 잘 모른다지만 그렇다고 바보는 아니다.남주 누나는 내 말에 피식 웃었다.“우리 푸들 많이 똑똑해졌네? 예전처럼 타격감이 좋지 않아. 하지만 점점 더 귀여워.”나는 자꾸만 내 몸을 타고 올라오는 남주 누나의 손을 덥석 잡았다.“말해요. 대체 무슨 일이에요? 일에 무슨 문제 생겼어요?”“응. 이 세상에서 날 괴롭힐 수 있는 건 일밖에 없어.”“왜죠? 왜 혼인이나 가정 문제는 될 수 없어요?”“헛소리 아니야? 혼인과 가정이 나보다 중요할 리 없잖아.”‘맞다. 누나도 가정보다 자기 지위가 우선인 여자였지. 백연우처럼.’“그래서 일은 해결됐어요?”나는 그 말을 내뱉은 순간 후회했다. 해결되었으면 술로 기분을 달랠 리 없을 테니까.하지만 남주 누나는 의외의 답을 내놓았다.“해결된 셈이지. 하지만 강등됐어.”“얼마나요?”“아무 실권도 없는 말단직으로. 그래도 괜찮아. 이제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내 약점을 잡고 나 협박하는 사람 없을 테니까.”남주 누나는 강등된 건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건 아마도 자기 위로일 수 있었다.“이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시간도 아까운데 계속 즐겨볼까?”남주 누나는 또다시 나에게 다가왔다. 심지어 리듬 있는 음악을 틀어 놓아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며 나에게 또 충격을 안겨주었다.나와 남주 누나는 그사이 애교 누나가 집에 다녀갔다는 사실을 몰랐다.애교 누나는 내가 걱정되어 직접 와 봤다. 하지만 방에서 들리는 나와 남주 누나의 소리에 얼굴을 붉히며 물러났다.“남주였네. 다른데 좀 가지. 왜 우리 집에서 수호 씨를 꼬시는 거야?”애교 누나는 입을 삐죽거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뒤돌아섰다.나와 남주 누나는 한밤중까지 몸을 섞고 피곤한 몸을 한 채 잠이 들었다.오랜만에 푸는 욕구에 우리 둘 다 너무 흥분해 버린 탓이었다.심지어 남주 누나는 열정적이다 못해 심지어 내가 지금 동영상 촬영 현
남주 누나는 헤실 웃으며 말했다.“정수호네. 이리 와, 와서 한잔해.”나는 남주 주나 쪽으로 걸어갔다. 가까이 가봤더니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와인 두 병 중 한 병은 이미 텅 비어 있었고, 남주 누나도 이미 술에 취했는지 얼굴이 발그스름했다.“누나, 혼자 이렇게 마신 거예요?”남주 누나는 똑바로 앉아 내 팔을 감싸안았다.“너 아니면 애교를 불러 곁에 있어 달라고 부탁하려고 했는데 요즘 바쁘다고 해서 안 불렀어. 그런데 마침 이렇게 와 버렸네? 나랑 한잔해.”나는 지난번 남주 누나를 봤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 누나도 기분이 안 좋아 보였는데 아마도 일 때문인 것 같았다.그런데 이번에 이토록 취해 있는 걸 보니 일이 잘 안 풀리는 모양이었다.나는 남주 누나 손에 있는 와인을 빼앗았다.“그만 마셔요. 취했어요. 부축해 줄 테니 방에서 휴식해요.”“정수호, 예전에 너한테 장난치던 때가 그리워. 도 장난칠 테니까 내 장난 받아줘. 응? 나도 기분 좀 좋아지게.”남주 누나는 몽롱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그게 대체 뭐가 그립다는 건지.’나는 그때 너무 단순해 항상 남주 누나한테 농락당했다. 심지어 몇 번이나 나를 유혹하는 남주 누나를 눈앞에 두고 입맛만 다시며 마음을 졸였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가 조금도 그립지 않았다. 나는 하고 싶을 때면 마음대로 하는 지금이 더 좋다.“내가 네 소원 들어줄게.”남주 누나는 내 목을 끌어안고 취한 말투로 말했다.누나의 완벽한 몸매를 보니 나도 솔직히 몸이 달아올랐다. 하지만 남주 누나는 지금 많이 취한 상태고, 기분도 안 좋아 보이니 몸을 섞는다고 즐겁지는 않을 거다.“됐어요. 누나 지금 취했어요. 부축해 줄 테니 방에서 자요.”“나 많이 안 마셨어. 그냥 조금 알딸딸한 정도야. 나도 내가 무슨 짓을 하는지 알아.”“있잖아. 나 요즘 너무 바빠서 남자 만날 시간도 없었어. 그러니 오늘 너 땡잡은 거야.”남주 누나는 말하면서 나를 자기 쪽으로 잡아당겼다.나는 술에 취한
“정 사장님, 물 바꿔드릴까요?”내가 형수의 팔을 닦아주는 동안 양춘옥이 방에 들어와 열정적으로 물었다.그 모습에 나는 간단히 말했다.“아니에요. 거의 다 닦아요.”나는 형수가 뭘 걱정하는지 몰랐다. 무엇보다 양춘옥이 문제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그때 양춘옥이 목적성이 다분한 질문을 했다.“정 사장님, 요즘 안 보이시던데 바쁘셨나요?”“네. 요즘 일이 바빠서 매일 오지 못해요. 그러니 이모님이 우리 형수님 잘 돌봐주세요. 참, 요즘도 제가 바쁘니 부탁드릴게요.”양춘옥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며 싱긋 웃었다.“정 사장님은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무조건 잘 돌봐드릴게요.”“형수, 다 닦았어요. 형수가 깨끗한 걸 좋아하는 거 알고 특별히 피부 관리하는 스킨로션도 발라줬어요.”나는 형수를 돌본 뒤 옆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고아연이 돌아온 뒤에야 떠났다.고아연은 나를 집 앞까지 마중하며 물었다.“요즘 바빠?”“네, 왜 그래요?”“아니, 별 건 아니고. 지난번에 찍는다던 영상을 안 찍었길래 바쁜가 해서.”“요즘 너무 바빠서 정신이 없었어요.”이건 단순한 오락이라 돈을 버는 것에 비하면 당연히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그래. 그럼 앞으로 안 찾을게. 내 연락처 삭제해.”고아연은 갑자기 말투가 날카로워졌다.그 말에 나는 순간 멍해졌다.“여자들은 다 이래요? 심심하면 연락처 삭제하고? 이런 거 엄청 예의 없는 거 알아요?”고아연은 팔짱을 낀 채 웃었다.“우리는 원래부터 아는 사이도 아니었어. 그런데 지금 바빠서 영상 찍을 시간도 없다는데 내가 네 연락처를 왜 남겨? 난 원래 이래. 연락 자주 하지 않는 사람은 삭제해. 수호 씨도 마찬가지야.”나는 일부러 고아연에게 맞섰다.“그럼 형수가 지금 이러니까 형수도 삭제했겠네요?”“그래.”“흥. 누가 믿을 줄 알고.”“믿든 말든.”고아연의 모습은 거짓 같지 않았다.나는 이 순간 고아연을 또다시 봤다.“바쁜 일 다 처리하면 도와줄게요. 연락처 삭제하지 마요. 앞으로 또다시 추가하
애교 누나 얘기를 언급하니 내 기분은 저절로 다운되었다.“난 누구랑 결혼할지도 모르겠어.”“왜? 애교 누나랑 사이가 틀어졌어?”민우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그런 건 아니야. 그냥 애교 누나랑 나는 결혼할 사이가 같지 않아. 애교 누나가 나한테 너무 관대하고 너무 풀어줘. 그래서 너무 진실감이 없어.”“헐. 여자 친구가 풀어주는 게 얼마나 좋은데? 네가 밖에서 다른 여자 만나도 뭐라 안 하고 오히려 응원해 준다며? 그렇게 좋은 여자 손전등 켜고 찾아도 없어.”현성과 민우는 나를 부러워했다.사실 나도 예전에는 똑같은 마음이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애교 누나는 너무 좋고 너무 관대하여 질투도 하지 않아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심지어 가끔 이 모든 게 허상이라는 생각도 들곤 한다.그에 반해 윤지은은 또 나에게 너무 현실을 체감하게 해준다. 좋아할 때도 질투할 때도 있어 오히려 더 커플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정수호, 너 진짜 쓰레기네. 너 설마 애교 누나 버리려고 그래?”현성이 갑자기 물었다.“헛소리. 내가 언제 버린다고 했어?”“그럼 아까 발언 무슨 뜻인데?”“난 그냥 애교 누나가 너무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뜻이지 버리겠다는 뜻 아니야. 함부로 누명 씌우지 마.”나는 바로 현성을 반박했다.하지만 그때 민우가 바로 끼어들었다.“사실 나도 네가 좀 쓰레기 같아. 아마 네가 만난 누나들이 다 너 같은 나쁜 남자를 좋아하나 보다.”“젠장. 내가 너희들한테서 무슨 좋은 말을 듣겠냐?”그날 저녁 퇴근 후 나는 형수네 집에 들렀다.그동안 너무 바빠 형수를 보러 오지도 못하고 몸을 닦아주지도 못했기에, 나는 얼른 따뜻한 물을 담아 형수 몸 곳곳을 닦아주었다.형수는 이렇게 오랫동안 누워만 있었지만 뺌은 여전히 발그스름하고 피부도 백옥 같은 피부에 핑크빛이 감돌았다.아마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그저 잠자고 있다고 생각할 거다.내가 형수의 몸을 닦아주는 동안 형수의 가슴은 사실 콩닥콩닥 북을 쳤다.‘수호 씨가 이제야 날
“이 얘기는 이쯤에서 하고. 말해요, 서나연 씨 일 외에 다른 볼 용건 있어요?”나는 화제를 다시 끌어왔다.그러자 소여정은 내 턱을 잡으며 생글생글 웃었다.“있지 그럼. 너 놀리러 왔어. 내가 너 놀리는 거 오랜만이잖아.”“미쳤어요?”나는 다급히 소여정의 손을 쳐냈다.“날 미친X 취급해? 내가 진짜 너 가만 안 둔다?”“못 믿겠어요. 나 이제 임천호도 안 두려운데 소여정 씨를 두려워하겠어요?”나는 소여정에게 계속 휘둘리고 싶지 않았다.소여정은 대단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오호라. 며칠 새에 많이 컸네? 그런데 그런 모습 점점 더 좋아지는데?”소여정은 정말 역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매번 나타났다 하면 나에게 귀찮은 일을 던져주곤 한다.물론 내가 이제 임천호를 두려워하지 않는다지만 그렇다고 귀찮은 일에 휘말리고 싶지는 않았다.나는 그저 장사를 잘해서 돈을 많이 벌고 싶다.내가 소여정을 무시하자 소여정도 나를 보는 체도 하지 않고 스스로 가게 안을 둘러봤다. 그러다가 결국 몇 가지 선물 세트를 골랐다.소여정이 계산하려고 할 때 나는 다시 그녀에게 다가갔다.“선물 세트 사서 누구한테 주려고요?”“이젠 임천호 안 두렵다며? 내가 누구한테 주든 무슨 상관이야? 아니면 내가 이 선물을 가져갔다가 이 가게에서 샀다는 걸 들킬까 봐 그러는 거야?”소여정은 마치 내 배에서 나오기라도 한 것처럼 나를 빠삭하게 알았다.“찾아오겠으면 찾아오라고 해요. 소여정 씨는 정상적인 소비예요.”나는 말발로 소여정을 이길 수 없다는 생각에 바로 뒤돌아 떠나갔다.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후들거렸다.소여정은 물건을 구매한 뒤 가게에서 택배로 보낼 수 있는지 물었다. 그 질문에 점원 한 명이 가능하다고 대답했다.소여정은 주소 하나를 남기고 직원더러 선물 세트를 주소에 적인대로 보내달라고 당부했다.소여정이 떠난 뒤 나는 그 위에 적힌 주소를 확인했다. 주소는 H시로 되어 있고, 받는 이는 ‘소원규’로 되어 있었다.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이름에 한참을 떠
“누구한테 들었어?”“그건 상관하지 마요. 맞는지 아닌지만 대답해요.”나는 얼렁뚱땅 넘기려고 했다.다행히 소여정은 내 질문을 회피하지 않고 바로 인정했다.“맞아. 나도 예전에 윤지은과 임유미처럼 잘 사는 집 딸이었어. 안 그러면 우리 넷이 왜 친구가 됐겠어?”하긴. 소여정은 나를 바라보더니 갑자기 물었다.“뭐 하나만 물을게. 소씨 가문 사람들이 강북에 있지?”“그걸 어떻게 알아요?”나는 흠칫 놀랐다.그 말에 소여정이 대답했다.“어떻게 알았는지는 알려고 하지 마. 맞는지 아닌지만 말해.”소여정이 이렇게 묻는다는 건 이미 단서를 찾았다는 뜻이기에 나는 사실대로 대답했다.“맞아요. 임천호 아내가 강북에 와서 요즘 유미 사모님과 같은 동네인 백조의 호수에 살아요.”“백조의 호스? 보아하니 나도 그곳에 집을 마련해야겠네.”소여정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그 말에 내 눈은 휘둥그레졌다.“지금 제정신이에요? 소씨 가문 사람들이 그곳에 있는데 멀리 숨지는 못할망정, 같은 동네에 살겠다고요? 대체 무슨 생각인 거예요? 설마 서나연 씨를 쫓아내고 본인이 임천호 아내가 되려고 그래요?”소여정은 생글생글 웃으며 물었다.“안돼? 임천호가 얼마나 대단해. 나한테도 잘해주고.”“대단하긴 무슨. 부시장님과 윤 회장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더만.”나는 내가 임천호 뒷담화를 하는 날이 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소여정은 나를 다시 봤다는 눈빛으로 바라봤다.“정수호, 대단하네. 임천호를 그렇게 말하고. 임천호가 안 뒤 죽이려고 할까 봐 두렵지 않아?”“내가 임천호 산하의 대출 회사도 무너뜨렸는데, 임천호를 무서워하는 거로 보여요?”나도 비록 내가 너무 잘난체 한다는 걸 알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정말 참을 수가 없다.이 세상에 허영심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게다가 이건 내가 평생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닐 일이기도 하다.소여정은 입을 가리며 웃었다.“아주 어깨뽕이 하늘로 치솟는구먼? 그 대출 회사 임천호한테 엄청 중요한 회사인 건
“오, 오빠가 뭘 하려는지 알아요. 만약 하고 싶으면 날 오빠한테 줄 수 있어요.”주선영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옷자락을 잡고 긴장한 표정으로 고백했다.이건 현성에 대한 인정이었다. 현성은 너무 설레어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는 두말없이 주현영을 와락 끌어안았다.그러자 주현영이 이내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여, 여기서는 안 돼요. 우리... 호텔 가요.”“그래, 바로 가자.”나는 현성과 주현영이 손잡고 뛰쳐나오는 걸 본 순간, 현성이 오늘 소원을 이룰 거라는 걸 알았다.나는 싱긋 웃으며 현성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파이팅.”“당연하지.”현성은 헤헤 웃으며 말했다.이윽고 두 사람은 손을 잡고 기쁜 얼굴로 떠나갔다.나는 얼른 이 기쁜 소식을 민우에게 알려주려고 전화했다.[수호야. 왜 그래? 나 지금 바빠.]민우는 목소리를 한껏 낮추고 말했다.그 목소리에 나는 의아했다.“너 지금 뭐 해? 가게 보는 거 아니었어?”[설아가 점심에 나 찾아와서 지금 설아랑 호텔에 있어.]“헐, 너 뭐야? 임설아랑 결실을 보는 거야?”‘왜 친구들한테 버림당해 혼자가 되었다는 느낌이 들지?’민우는 헤실 웃었다.[이만 끊어. 설아가 샤워하러 갔다가 지금 나와. 우리 오늘 마지막까지 갈 거거든.]민우는 말을 마치자마자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이 상황에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대충 음식을 먹고 가게로 돌아가는 것뿐이었다.하지만 혼자 사무실에 앉아 있을수록 기분이 안 좋았다.예전에는 내가 민우와 현성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었는데, 현재는 내가 두 사람을 부러워하는 꼴이 되었으니.하지만 윤지은과 애교 누나한테는 연락할 엄두도 나지 않고 형수는 아직 혼미해 있으니 누구를 찾아야 할지 고민이었다.나는 주위에 여자가 끊이지 않다고 이렇게 외로이 혼자 남는 날이 오게 될 줄은 몰랐다.‘정수호 몰락했네. 몰락했어!’내가 속으로 감개무량해하고 있을 때 아래층에서 직원 한 명이 나를 불렀다.“정 사장님, 누가 찾아왔어요.”“알았어요. 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