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다? 정확하게 뭐야?”소여정은 싱글벙글 웃으며 물었다.이런 상황에서 나를 희롱할 생각뿐인 소여정이 너무 짓궂었지만 나는 숙이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말 그대로, 다 돼요.”나는 소여정이 나를 놀리고 희롱하는 걸 좋아하는 데다 내 몸을 노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떼문에 내가 이렇게 말한 건 뭐든 다 된다는 걸 암시하기 위해서다.앞으로 그걸 들어줄지 말지는 또 다른 문제일 테지만.이 상황에서 벗어나는 게 나한테는 우선이었다.“약속했어? 난 절대 강요한 적 없어.”소여정이 동의하자 나는 가슴이 벅차올라 다급히 대답했다.“모두 내가 원해서 하는 거니까 결과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질게요. 이제 안심이 되죠?”“그래, 기다려 봐. 전화 한 통만 할게.”소여정은 고작 정부이지만 그녀의 남자 임천호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게다가 임천호가 매번 공식 석상에 나갈 때마다 항상 자기 정부를 데리고 다니기에 모든 사람이 소여정을 알고 있다. 심지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소여정을 통해 임천호한테 접근하려고 하고 있다.그때 그 술자리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소여정한테 몰려든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정부라는 이름이 사람들 앞에 내놓기 부끄러운 이름이지만, 그 사람이 높은 위치에 있으면 부끄럽고 말고는 큰 의미가 없게 된다. 심지어 뒤에서 몰래 소여정을 부러워하는 여자가 수없이 많다.어찌 됐든 임천호의 여자가 된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을 테니까.내가 막 전화를 끊고 돌아오자 안명훈이 귀찮은 듯 물었다.“대체 해결한 거야. 만 거야? 해결할 생각이 없으면 구치소에서 지내.”그 말에 경찰은 나를 한번 쓱 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행동에 나는 기가 찼다.경찰은 국민의 지팡이가 되어야 하는데, 지금은 오히려 나쁜 놈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다니.내가 권력이 없는 건 맞지만 나중에 내가 권력을 손에 넣는다면 반드시 이런 부패한 현상을 뿌리 뽑을 거다.“너랑 말하고 있잖아. 귀먹었어?”노랑머리가 나에게 다시
갑자기 변한 정세에 노랑머리는 어리둥절해했다.“무슨 상황이야? 우리 보스께서 미리...”“닥쳐! 당장 들어가.”경찰은 갑자기 다른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매우 강직하고 엄밀해졌다.그러더니 강제로 노랑머리를 구치소로 연행하고 그더러 모태진과 은솔한테 각각 20만 원을 배상하도록 요구했다.모태진도 어리둥절해했다.“무슨 상황이에요? 저 경찰들 아까는 저 노랑머리 편 아니었어요? 왜 갑자기 우리를 도와주는 건데요?”나는 당연히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역시나 권력 있는 사람을 알고 있다는 게 이런 거구나.’우리가 입 아프게 도리를 설명하고 억울함을 호소해도 아무 소용 없더니, 소여정의 전화 한 통에 모든 게 달라지다니.역시나 옛말에 조정 사람을 알면 일이 쉬워진다더니, 그 말이 일리가 있는 듯싶었다.하지만 나는 쓸데없는 말은 일절 하지 않았다.“이왕 일이 해결됐으니 우린 이만 가요.”나는 모태진을 한쪽으로 끌어와 귀띔해 줬다.“선배는 집에 아내가 있다는 걸 잊지 마요. 절대 바보 같은 실수 저지르지 마요, 알았죠? 은솔 씨 일은 되도록 모른 척하고요.”“알아요. 나도 은솔 씨를 동생으로 여기는 거지, 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니에요. 그리고, 난 이제 나이도 있는데 그럴 에너지가 어디 있어요?”“그렇다면 다행이고요.”나도 모태진이 말한 대로 하길 바랐다.은솔은 모태진에게 자꾸만 들어붙는 느낌이었지만 모태진은 그나마 어떻게 해야 할지를 잘 아는 듯했다.“은솔 씨, 일이 해결됐으니 얼른 학교로 돌아가서 열심히 공부해요. 앞으로 다시는 불량배들과 어울리지 말고, 속지도 말고요. 부모님이 얼마나 고생할지만 생각해요.”“은솔 씨가 마음껏 공부하게 해주려고 부모님이 얼마나 노력하고 계신데. 은솔 씨가 나쁜 남자한테 속고 몸도 마음도 다치면 부모님이 얼마나 속상하겠어요.”은솔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우리 부모님은 저 같은 건 상관 안 해요. 저를 딸로 생각하지도 않아요.”“그런 말 말아요. 세상에 어떤 부모가 자기 자식을 사랑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은솔은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계속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그때, 익숙한 그림자가 내 옆을 지나갔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주선영이었다.“후배, 학교 돌아온 거야?”나는 먼저 다가가 인사했다. 물론 어색하긴 했지만 아무 말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았으니까.선영은 나를 향해 싱긋 미소 짓더니 뒷좌석에 앉은 은솔을 바라봤다.“은솔아, 네가 왜 여기 있어?”“두 사람 알아?”“룸메이트예요. 같은 과고요.”‘어쩐지. 지난번에 은솔이 입었던 치마가 눈에 익다 했더니 주선영이 입었던 것과 동일한 옷이었네.’같은 침실에 있는 데다 옷도 나눠 입는 사이라면 관계가 좋다는 뜻이었다.나는 얼른 선영에게 말했다.“네가 은솔이 좀 데려다줘. 요즘 곁에 있어 주고.”“네, 알았어요.”은솔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선영과 함께 학교로 들어갔다. 하지만 겉보기에 여전히 기분이 안 좋아 보였다.그런데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이것뿐이었기에 그저 은솔도 모태진도 모두 정신을 차리고 바보 같은 짓을 저지르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은솔을 바래다주고 난 뒤 나는 다시 화인당으로 돌아왔다.점심시간에 겪은 일 때문에 나는 오후에 또 지각하고 말았다.하지만 모태진이 미리 사정을 설명한 덕에 정 사장님은 오히려 나를 걱정했다.“이제 괜찮아요. 일도 해결됐어요.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정 사장님을 보니 나는 문득 이 선생님이 말씀해 주셨던 사모님 얘기가 떠올랐다.나는 사모님과 일면식도 없기에, 따지고 보면 사모님이 나를 도와줄 이유는 조금도 없다. ‘설마 정 사장님이 사모님한테 말해서 사모님이 나를 도와줬나?’‘그런데 그렇다면 정 사장님이 직접 예기하지 않고 왜 사모님이 나섰지?’나는 이럴 가능성이 적다고 생각했다.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사모님이 나를 도와주셨으니 언젠가는 만날 거야. 그때 직접 인사하면 돼.’“괜찮다면 다행이네요. 가서 일해요.”나는 얼른 내 룸으로 돌아와 물건을 정리했
“흥, 마음에도 없는 말은. 내 생각 조금도 안 했다는 건 못 믿겠는데.”소여정은 역시나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게다가 역시 남녀 사이의 일에서는 베테랑이었다. 그녀에 비하면 나는 어린 애나 다름없었다.소여정은 곧바로 선글라스와 코트를 벗었다. 오늘 소여정이 입은 건 타이트한 원피스였는데, 그 덕에 몸매가 여과 없이 드러났다.그 모습은 우아하고도 기품 있어 사람의 욕망을 자꾸만 건드렸다.나는 아름다운 소여정의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졌다.그때 소여정이 내 앞에서 갑자기 한 바퀴 빙 돌았다.“예뻐? 이 원피스는 내가 특별히 주문 제작한 거야.”이건 양심을 걸고 안 예쁘다고 거짓말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예뻤다.예쁜 정도가 아니라 아름다워 눈을 뗄 수 없었다.나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예뻐요, 명문가 아가씨 같아요.”이 말은 폄하의 뜻이 조금도 없는 순수한 칭찬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소여정도 이런 칭찬에는 매우 약했다.“처음으로 솔직하게 말하네? 참 진심 한번 듣기 쉽지 않네. 이거 옆트임인데, 여기까지 찢어졌어, 예뻐?”소여정은 쫙 찢어진 옆쪽을 나한테 보여주었다.허벅지까지 쫙 찢어진 원피스는 새하얗고 늘씬한 다리가 그대로 드러내 너무 요염하고 섹시했다.심지어 은연중에 속바지까지 어렴풋이 보여 더 매혹적이었다.나는 저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예쁘긴 한데 너무 야헤요. 앞으로 이렇게 입지 마요. 안 그러면 남자들이 뒤에서 음담패설을 늘어놓을지도 몰라요.”“음담패설을 늘어놓고 싶으면 늘어놓으라고 해. 만지지도 못할 거면서. 괴로운 건 그 사람들이지 내가 아니잖아? 내가 상관할 바 아니잖아.”소여정은 남들이 자기 몸을 노리는 걸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왠지 모르게 내가 오히려 신경 쓰였다.이렇게 예쁜 몸은 당연히 혼자 감상하고 싶지, 누군들 다른 남자와 공유하고 싶겠나?때문에 나는 일부러 소여정의 옆으로 다가가 내 몸으로 찢어진 쪽을 가렸다.이렇게 하면 누군가 갑자기 들어온다 하더라도 아무것도 보지 못할 테니까.
나는 생리적인 변화가 오는 걸 막기 위해 속으로 계속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중얼거렸다. 게다가 하체를 소여정과 멀리 떨어지게끔 뒤로 뺐다.소여정은 급하게 나를 놀리지 않고 내 가슴에 엎드려 휴식을 취하는 듯한 자세를 유지했다.“가슴 진짜 단단하고 넓네. 여기 이렇게 누워 자고 싶어.”‘뭐지? 이 여자가 왜 갑자기 나를 희롱하지 않는 거지?’게다가 보아하니 소여정은 확실히 피곤에 찌든 듯한 모습이었다.때문에 나는 귀신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말했다.“자고 싶으면 자요. 편히 잘 수 있을 때 자요.”“그럼 반듯하게 누워. 가슴에 기대서 좀 잘 거니까.”소여정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시종일관 내 가슴에 기대 있었다.이런 요구는 나를 희롱하는 것보다 훨씬 나았기에 못 들어줄 것도 없었다.“그럼 우선 이거 놔 줘요. 그래야 나도 눕죠.”소여정은 내 말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런 게 어디 있어? 나를 안아가야 하는 거 아니야?”“혹시 또 나를 희롱하려는 건 아니죠?”나는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그러자 소여정이 나른한 모습으로 말했다.“어제 밤새도록 카드 게임을 했더니 기운이 없어. 나 좀 잘게.”“그럼 집에서 자지 그래요?”‘집이 더 편한 거 아닌가?’나는 너무 의아했다.그때 소여정이 내 가슴을 가볍게 두드렸다.“뭔 말이 그렇게 많아? 나 저기까지 안고 가 줘. 피곤해서 자고 싶다니까. 전에 말했던 거 잊지 마. 내가 도와주면 나한테 빚지는 거라고 했던 말. 지금 그 빚을 갚을 때야.”나는 소여정을 번쩍 들어 안았다.“그렇게 큰 도움을 주고 고작 이런 거로 갚으라는 건 너무 말이 안 돼요. 오늘 서비스는 무료로 해줄게요. 빚은 나중에 필요할 때 갚을게요.”말하는 사이 나는 소여정과 함께 마사지 침대에 누웠다.소여정은 정말 아무 짓도 하지 않고 조용히 내 가슴에 기대 누웠다.그리고 정말 피곤하긴 한 모양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고른 숨소리가 들렸다.나는 소여정의 머리가 내 가슴에서 떨어질까 봐 어깨를 꼭 안고 있었다.
소여정은 말하면서 일어나 앉더니 기지개를 켰다.“음, 시원하다.”소여정이 기지개를 켜는 동안 원피스도 위로 당겨지면서 속바지가 노출되었다.하얗고 매끄러운 다리를 보니 나는 저도 모르게 마음이 쿵쾅거렸다.나는 다급히 내 옷으로 소여정의 다리를 가려 주었다.“앞으로 조심 좀 해요. 다 보이면 본인만 손해잖아요. 사람들이 뒤에서 욕할지도 몰라요.”“욕하라 그래. 내가 욕먹는 게 어디 한두 번인가? 네가 그랬잖아. 날 욕하는 여자들은 날 부러워하고 질투하는 거라고.”“그건 다르죠, 여자들은 부럽고 질투해서 욕하지만, 남자들은 소여정 씨가 가벼운 여자라고 욕할 가능성이 많단 말이에요. 심지어는 천박하고 경박한 여자라는 말이 돌 수도 있어요.”“그럼 넌 어떤데?”소여정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나는 얼른 고개를 마구 저었다.예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절대 아니다.소여정이 만약 천박한 여자라면 이토록 농염하지 않았을 거다. 게다가 나를 꼬시기만 할 뿐 나와 몸을 섞는 건 계속 피하지 않았을 거다.입장 바꾸어 생각한다면, 소여정이 임천호의 눈에 들었다는 게 바로 그녀가 매력적인 여자라는 반증 아닌가?임천호가 어떤 사람인가? 그런 남자가 천한 여자를 파트너로 공식 석상에 데리고 다녔을까? 임천호가 보는 눈이 그렇게 후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정부로 지내는 내가 천하지 않다고?”소여정은 나를 순순히 놓아줄 생각이 없었는지 몰아붙였다.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왜 다른 사람의 정부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어요. 기껏해야 노는 게 좋고, 사람을 좀 홀릴 줄 아는 것뿐이지 천한 건 말도 안 돼요.”“속으로 나를 그렇게 좋게 평가하고 있었어?”소여정은 갑자기 눈썹을 치켜 올리더니 빙그레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그 말에 부끄러워 나는 얼굴을 붉혔다. 곧이어 다급히 침대에서 내려와 팔을 움직였다.“내가 깔고 누워서 많이 저리지? 내가 주물러줄게.”소여정이 먼저 제안했다. 그러더니
“여기까지 온 게 놀러 온 거라고요?”나는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그러자 소여정이 반문했다.“안돼?”“여정아.”그때, 밖에서 아주 듣기 좋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소여정은 부랴부랴 밖에 대고 소리쳤다.“나 여기 있어.”얼마 뒤, 흰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안으로 들어왔다.여자는 소여정이 입은 것과 똑같은 흰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지만, 소여정보다 더 어울렸다. 그녀는 단아하고 우아했으며 왠지 학자 가문에서 자란 느낌이 물씬 났다. 마치 양반댁 규수처럼.나는 속으로 너무 놀랐다.‘요즘 시대에서 이런 분위기를 풍기는 여자가 있다니.’눈앞의 여자를 처음 봤을 때, 마치 앵커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주 단아하고, 우아하고, 지적이었으니까.심지어 많은 책을 읽어 본 것처럼 기품이 넘쳐흘렀다.“이 사람 누군지 알아?”그때 소여정이 눈웃음을 치며 내게 물었다.나는 고개를 저었다. 눈앞의 여자는 단연코 내가 전혀 모르는 여자다.“얘가 이 가게 사모님, 임유미거든.”그 이름을 듣는 순간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사모님을 본 적 없지만 저네 이미 이 선생님을 통해 이름을 들은 적은 있었으니까.임유미.이름을 들을 때도 지적인 느낌이 들었는데, 역시나 분위기도 그러했다.무엇보다 이 선생님이 그때 분명 사모님이 저더러 나를 돌봐주라고 당부했다고 했다.여태껏 사모님이 왜 이 선생님께 그런 부탁을 했는지 의아했는데, 오늘 보니 소여정 때문인 듯싶었다.“그러니까 여정 씨가 사모님한테 이선생님이 나를 돌봐주게 하라고 부탁했어요?”나는 직접 소여정에게 확인했다.소여정은 예쁘게 미소 지었다.“당연한 거 아닌가? 설마 가게 사모님이 본인을 짝사랑한다고 착각한 건 아니지?”나는 깜짝 놀라 다급히 말했다.“그럴 리가요. 저 그 정도로 자뻑이 심하진 않거든요. 어제 이 선생님이 사모님 부탁으로 잘해주는 거라고 해서 궁금했던 것뿐이에요. 그런데 이제는 그게 다 소여정 씨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오늘 여기 온 것도 나를 찾아온 게 아니라 사모님 찾아온 거
“세상 물정도 모르는 어린애한테 왜 장난쳐? 재밌어? 가자. 쇼핑가려고 했잖아. 벌써 오후 3시 30분이야. 지금 출발하지 않으면 날이 어두워질 거야.”사모님이 손목시계를 보며 재촉했다.그제야 나는 두 사람이 쇼핑하러 가기로 했다는 걸 알아챘다.소여정이 먼저 마사지숍에 찾아온 건 나를 놀리기 위해서일 거다.내 시선은 저도 모르게 사모님에게 향했다.정말 이토록 우아하고 지적인 여자는 처음 본다.게다가 여자로 봤을 때 그 매력도 단연 최고로 꼽힐 수 있었다. 아주 사람의 시선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었으니까.소여정은 내가 사모님한테서 눈을 떼지 못하자 내 가슴을 쿡쿡 찔렀다.“뭘 봐? 이 친구는 네 사장 사모님이야. 설마 사장 와이프까지 눈독 들이는 거야?”소여정의 목소리가 너무 큰 나머지 사모님의 귀에 들어갈까 봐 나는 깜짝 놀랐다.‘이 여자는 어떻게 된 게 아무 말이나 막 해?’‘여기 마사지숍인데, 사장님이 듣기라도 하면 난 망할 거야.’그러니까 제가 다급히 설명했다.“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와도 그럴 일은 없으니 헛소리하지 마요.”“그런데 왜 빤히 쳐다봐?”소여정은 질투하는 것처럼 입을 삐죽거렸다.“사모님이 어떻게 생겼나 잘 눈에 새겨야 나중에 사람 잘못 보고 실수하지 않죠. 저 사람 얼굴 잘 구분 못하거든요.”“그 말이 사실이어야 할 거야. 안 그러면 죽을 줄 알아.”소여정은 내 가슴을 강하게 꼬집으며 말하더니, 코트를 입고 떠나갔다.나는 손으로 내 가슴을 만졌다. 거기에는 아직도 소여정의 손에서 나던 향기가 남아 있었다.아주 향기로웠고 매력적이었다.소여정이 사용하는 향수는 아마 임천호를 꼬시려고 준비한 것을 거다.때문에 어딘가 사람을 끌어당기고 욕망을 자극했다.내가 한창 코를 킁킁대고 있을 때, 소여정이 갑자기 되돌아와 나에게 말했다.“오후에 휴가 내고 우리랑 쇼핑해.”“그건 안 돼요. 그건 무단결근이죠.”“내가 네 사장 사모님한테 얘기했어. 쟤도 이미 동의했고.”소여정은 으쓱한 듯 나에게 혀를 날름거렸다.“그
나는 더 이상 이영미와 한 공간에 있을 엄두가 나지 않아 헐레벌떡 도망쳤다.그 와중에도 이영미는 나더러 자기 남편 꼭 데려오라고, 안 데려오면 가만두지 않겠다며 윽박질렀다.결국 나는 어쩔 수 없이 윤해철에게 전화했다.[수호 군, 나도 마침 자네한테 볼일 있었는데.]“무슨 일인데요?”[회사 일은 내가 이미 다 처리했으니 방법을 대서 우리 마누라한테 좀 전해줘. 내가 요즘 데리러 갈 거라고.]타이밍이 참 기가 막혔다.이영미가 하고 싶다고 할 때 윤해철이 마침 이영미를 데리러 올 생각이었다니.나는 다급히 윤해철에게 말했다.“방금 사모님을 뵀는데 사모님도 회장님을 무척 그리워하셨어요.”[마침 잘됐네. 그럼 지금 당장 데리러 가지.]“윤 회장님, 잠깐만요.”[왜 그러나?]“사모님은 지금 집에 안 계세요. 밖에 있어요...”나는 이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했다.그러다 문득 내가 집을 나올 때 이영미가 보냈던 주소가 떠올라 나는 그 주소를 윤해철에게 보내고 그곳에서 이영미를 찾으라고 했다.어떻게 설명할지는 부부가 만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일이었다.이영미를 그렇게 보내고 나니 내 임무도 완수한 셈이었다.전화를 끊고 얼마 뒤, 나는 마침 장을 보고 온 애교 누나와 마주쳤다.“수호 씨, 왜 여기 있어요?”나는 대충 얼버무려 상황을 무마하면서 애교 누나의 짐을 들어주었다.“애교 누나, 저 마침 가게에 나가볼 참이었어요. 형수는 수고스러운 대로 누나가 좀 돌봐줘요. 제가 가능한 빨리 도우미를 구할게요. 그러면 누나도 이렇게 고생할 필요가 없으니까요.”애교 누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나도 어차피 할 일이 없으니 태연이 돌보는 건 나한테 맡겨요. 내가 어려울 때 태연이도 항상 나를 도왔는데 지금은 태연이가 어려운 시기이니 당연히 내가 도와야죠.”“그런데 일 구하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요?”“일은 뭐 구한다고 바로 구해지는 건가요? 나 공무원 시험 준비하려고요. 나도 아버지 말고 나 스스로 능력을 증명하고 싶어요.”애교 누나
“그럼 얼른 누우세요. 빨리 끝낼게요.”이영미는 두말없이 소파 위에 엎드렸다.나는 먼저 이영미의 허리부터 주물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영미의 입에서 야릇한 신음이 흘러나왔다.“어머님,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나는 흠칫 놀라 손을 뒤로 뺐다.그랬더니 이영미가 발긋한 얼굴로 말했다.“남자가 내 몸 만지는 게 오랜만이라 흥분했나 봐.”“계속 그러면 제가 어떻게 주물러 드려요?”“이거 다 정상적인 반응이잖아. 의사라는 사람이 침착해야지.”나는 이런 목소리를 듣고도 어떻게 침착할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사람 혼을 쏙 빼놓는 듯한 목소리는 아마 내시가 들어도 견디지 못할 거다.“안 돼요. 계속 그러면 마사지 안 해드릴 거예요.”나는 참지 못해 난처한 상황이 생길까 봐 먼저 물러섰다.하지만 이영미는 그것조차도 반대했다.“안돼. 계속 해. 안 그러면 안 갈 거니까. 나도 이것저것 다 겪어본 사람인데 뭔들 못 봤겠어? 그러니 어색하지 마. 내 눈에 수호 씨는 꼬맹이나 다름없으니까. 난 괜찮아.”이영미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나는 괜찮지 않았다.나도 이제 성인이고 혈기 왕성한 나이인데, 어떻게 아무 일 없다는 듯 여길 수 있냔 말이다.하지만 이영미는 한사코 내 팔을 꽉 잡고 어디 가지도 못하게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닿는 피붓결에 나는 마음이 더 콩닥거렸다.“알았어요. 그럼 잘 누워 있어요. 계속 마사지해 드릴게요. 하지만 소리 나지 않게 좀 참아주세요.”“그건 안 되지. 욕망을 억누르는 건 몸에 안 좋아.”이영미의 말은 예전에 남주 누나가 했던 말과 똑같았다.하지만 어쩌겠나? 나는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이영미는 내 마사지를 받으며 한편으론 감탄했다.“여자는 역시 남자의 사랑을 받아야 한다니까. 혼자 하는 건 너무 재미없어. 남자도 마찬가지로 여자의 손길이 필요한 법이지. 안 그러면 조물주가 왜 남녀 성별을 따로 만들었겠어? 그것도 상호 보완할 수 있게. 안 그래?”나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네, 맞아요. 여기 느
이영미는 제비집이며 인삼 등 다양한 보양식을 가져왔다.“어머님, 이거 다 너무 귀한 것들이에요.”“이건 다 수호 씨 형수 주려고 가져온 것들이야. 지금 의식이 없다고 해서 죽만 먹이면 안 돼. 영양소를 많이 공급해 줘야지.”나는 형수 대신 감사 인사를 전했다.“혹시 윤지은 씨는 함께 오지 않았어요?”그때 애교 누나가 불쑥 물어봤다.“그 계집애는 또 무슨 일인지 함께 내려오자고 하니까 기어코 싫다고 하지 뭐야.”이영미는 말을 마친 뒤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혹시 우리 지은이랑 싸웠어?”“아니요.”“못 믿겠는데? 지은이가 말은 독하게 해도 마음씨는 착한 애야. 네 형수 줄 거라니까 이렇게 바리바리 준비해 준 걸 보면 네 형수를 친구로 생각한다는 뜻이거든. 그런데도 기어코 직접 오지 않겠다는 걸 보면 이유는 하나야. 바로 너. 너희 둘 요즘 싸웠지?”나는 더 이상 그 일을 언급하고 싶지 않았다.“어머님, 정말 아니에요.”하지만 이영미는 포기할 줄을 몰랐다.“아니긴 무슨. 두 사람 분명 문제 있는데.”그때 애교 누나는 내가 말 못 할 사정이 있다는 걸 눈치챘는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얘기 나누세요. 저는 내려가서 뭐 좀 사 올게요.”역시 애교 누나는 내가 말하기 부끄러워할까 봐 배려해 주려고 자리를 피한 거였다.애교 누나가 떠난 뒤 이영미는 내 옆에 꼭 붙어 앉았다.“이제 다른 사람도 없으니 말할 수 있지? 대충 얼버무릴 생각하지 마. 솔직히 말하지 않으면 나도 수호 씨 용서 안 할 거니까.”이영미가 계속 꼬치꼬치 캐묻자 나는 할 수 없이 그날 병원에서 싸웠던 일을 솔직히 털어놓았다.“어머님도 제가 쓰레기 같아요?”“응. 조금. 내 딸과 사귀면서 다른 여자와도 사귄다니. 내 딸의 매력이 그렇게 부족해? 한 명으로는 만족하지 못 하는 거야?”이영미의 말에 나는 울 수도 웃을 수도 없었다.“어머님은 저와 지은 씨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잖아요. 우리는 각자 원하는 걸 교환한 것뿐이지 마음을 주고받고 결혼 얘기까지
나는 내가 예전에 살던 방을 들여다보았다.이곳은 내 추억이 너무 많이 깃든 곳이다. 상황만 그렇게 되지 않았어도 이곳을 떠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익숙한 물건들을 보니 나는 문득 형수와 있었던 일들이 하나둘씩 떠올랐고 형수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듯했다. 그 모든 건 어제 벌어진 일처럼 생생했다.“저 잠깐 형수 좀 보고 올게요.”나는 형수 방으로 향했다.혼자 얌전히 누워 곤히 잠든 형수의 모습은 마치 잠자는 숲속의 공주 같았다. 눈을 감고 고른 숨소리를 내며 이불을 덮은 모습은 진짜 그냥 자는 것 같았다.나는 젖은 수건으로 형수의 몸을 닦아준 뒤 면봉에 물을 묻혀 형수의 입을 적셔주었다.형수의 현재 상태는 기껏해야 죽 같은 음식밖에 먹일 수 없고 또 매일 많은 량을 먹을 수도 없다. 나도 당연히 형수가 빨리 깨어나기를 바라지만 그날 밤 이후로 내가 무슨 짓을 해서 자극해도 형수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얼마 뒤, 애교 누나가 죽 한 그릇을 들고 들어왔다.“내가 먹일게요. 수호 씨는 불편하면 가서 쉬어요.”“네. 애교 누나. 그럼 부탁할게요.”사실 나는 너무 아파 더 이상 형수를 돌볼 상황이 아니었기에 곧장 내 방으로 들어갔다.형수는 내 방을 예전 내가 떠나던 그날 그대로 남겨두었다.형수와 이곳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니 왠지 감회가 새로웠다.나는 침대에 누워 한참을 뒤척였지만 끝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첫 번째는 나비 때문이었고 두 번째는 형수의 일 때문이었다.원래 나비 일은 이제 그냥 묻어두려고 했는데 결국 어젯밤 또 그렇게 되어버렸다.솔직히 나 스스로도 내가 헛것을 봤나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게, 용천 호텔에서의 그날 밤 나와 잔 사람이 세 명 중 한 명이라면 아무리 해도 아귀가 들어맞지 않는다.결국 나는 환각이라고 스스로를 달랠 수밖에 없었다.나는 침대에 똑바로 누운 채 눈을 지그시 감고는 30분 동안 얕은 수면을 취했다.고작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잤다고 정신상태는 훨씬 나아졌다.침실에서 나와 보
그 순간 나는 머리가 띵했다. 나는 애써 눈을 뜨려고 했지만 머리가 너무 어지럽고 눈꺼풀이 무거워 도저히 뜰 수 없었다.다만 그 와중에 약간의 의식은 존재했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용천 호텔에서 나와 몸을 섞은 사람이 사모님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사모님 댁에서 지내면서 사모님 다리에 있는 나비 문신을 보고 내 추측을 확신했고.하지만 지금껏 나는 그게 사모님이든 아니든 무조건 사모님과는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최면했다. 무슨 일이 있든 간에 사장님께 미안한 행동은 할 수 없었으니까.하지만 오늘 저녁 나는 또 잠결에 그 나비를 보게 된 거다. 그 순간 나는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뭐지?’오늘 여기 있는 사람 중에 그날 용천 호텔에 있었던 사람은 오직 애교 누나뿐이다.하지만 애교 누나 몸에는 분명 나비 문신이 없다.게다가 나는 애교 누나 몸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데 애교 누나의 피부는 이 정도로 희지 않다.하지만 애교 누나가 아니면 또 누구란 말인가?고아연? 아니면 고수연?그날 밤 나는 이 두 여자를 본 적이 없다.나는 이 상황이 어리둥절했고 상대가 누구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는 게 너무 답답했다무엇보다 오늘 너무 취해 머리가 어지러웠기에 눈을 뜰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나는 정신도 차리지 못한 채로 애써 몸부림쳤지만 결국 의식이 점멸되어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그리고 나는 다음 날까지 푹 잠들었다.내가 바닥에서 일어났을 때 다른 사람들은 이미 모두 깨어났다. 내가 그중 맨 마지막에 깨어난 듯했다.나는 아픈 머리를 문지르다가 테이블을 치우는 애교 누나를 발견했다.“누나, 다른 사람들은요?”애교 누나는 테이블을 정리하면서 대답했다.“다들 일이 있다고 먼저 갔어요. 수호 씨를 방에서 자라고 하려 했는데 너무 깊이 잠들어 아무리 깨워도 깨지 않더라고요.”“애교 누나, 어젯밤 혹시 안 잤어요?”나는 몸부림치며 일어나 의자에 앉았다.그때 애교 누나가 입을 열었다.“늦게 잠들긴 했지만 안 잔 건 아니에요. 나
윤지은은 대체 진동성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그 일이 있은 후 진동성은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다.때문에 우리는 형수를 집으로 모신 뒤 번갈아 가면서 돌보기로 했다. 그러는 게 서로서로 안심이 되기도 했으니까.그 일로 애교 누나는 아버지를 설득해 원래 살던 형수네 옆집으로 다시 이사 오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한테 다시 함께 살자고 초대했다.나는 잠시 고민 끝에 결국 고개를 저었다.“안 돼요. 당분간은 누나랑 같이 살 수 없어요.”“왜요?”애교 누나는 실망스러운 듯 나를 바라봤다.나는 애교 누나의 얼굴을 감싸면서 진지하게 말했다.“이 사실을 누나 아버지가 알게 되면 저를 더 싫어하실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성공하기 전까지 같이 살면 안 돼요. 그래야 누나 아버지를 화나게 하거나 누나 명성에 누가 되지 않을 거예요.”애교 누나는 이내 미소를 되찾았다.“바보. 수호 씨가 나를 이렇게 생각할 줄은 몰랐어요.”“당연하죠. 저는 정말 누나랑 결혼하고 싶어요. 때문에 누나 명성을 제가 망가뜨릴 수는 없어요.”“그래요. 수호 씨 말에도 일리가 있네요. 하지만 월세방에서 지내는 건 너무 머니까 태연이네 집에서 지내는 건 어때요?”애교 누나의 제안에 나는 살짝 어리둥절했다.“왜요?”“예전에도 태연이네 집에서 지냈잖아요. 지금 다시 거기서 지내는 게 당연한 거 아니에요? 그리고 동네 사람들도 태연이 교통사고로 의식이 없는 걸 알고, 진동성은 바빠서 집에 잘 들어오지 않는 것도 아니까 동생이 대신 형수 돌보는 건 당연하잖아요.”애교 누나는 조리 정연하게 분석했다.사실 애교 누나는 내가 자기랑 같이 살든 아니면 형수 집에서 지내든 가까이에 있고 싶은 거였다. 하지만 나도 나름 걱정이 있었다.“진동성과 형수 사이에 이혼 얘기가 오가고 있다는 건 언젠가 소문이 퍼질 거예요. 그런데 제가 형수 집에 무슨 신분으로 있겠어요? 이건 형수의 평판에도 안 좋아요. 차라리 월세방에서 지내면서 매일 보러 갈게요.”애교 누나는 아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하지만
“괜찮아요.”“혹시 불편하지는 않아요? 아까 걸을 때 보니 허리를 짚고 걷던데요.”나는 걱정이 되어 물어봤다. 무엇보다 방금 사모님이 계속 허리를 짚고 걷는 걸 보니 허리가 분명 불편한 것 같아 보였다.아니나 다를까 사모님은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제가 주물러 드릴까요?”“아, 아니에요.”사모님은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어색하게 행동했다.‘대체 왜 이러지?’사모님이 싫다고 하니 나도 더 이상 강요하지 않았다.하지만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려고 할 때 사모님이 갑자기 나를 불러 세웠다.“수호 씨, 그날 밤 일은...”나는 약간 어리둥절했다.‘어느 날 밤을 말하는 거지?’그러다가 사모님이 부끄러워하는 표정을 본 후에야 나는 사모님이 치마가 젖었던 그날을 말한다는 걸 깨달았다.나는 다급히 설명했다.“사모님이 말씀하지 않으면 진작 잊어버렸어요.”“정말요? 거짓말하는 거 아니죠?”“제가 왜 거짓말하겠어요? 저 매일 해야 할 일이 많아서 일일이 기억할 수 없어요.”사모님의 미소는 살짝 이상했다. 그건 아무리 봐도 겉웃음이었다.“그럼 다행이네요. 일 봐요.”나는 뒤돌아 집을 나섰다.그 시각 임유미는 안절부절못하며 치맛자락을 잡은 채 나를 훔쳐보았다.임유미는 요즘 왠지 모르게 저녁만 되면 참지 못하고 핸드폰을 꺼내 몰래 야한 영상을 보곤 한다. 그것도 나이 많은 여자 주인공과 젊고 잘생긴 남자 주인공이 나오는 영상을.영상 속 어린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을 누나라고 부를 때면 임유미는 따라서 흥분하곤 했고 강렬한 오르가슴을 느끼곤 했다.임유미도 자기가 요즘 왜 이러는지 의문이었지만 그렇다고 남편한테 털어놓을 수도 없었다.방금 나를 붙잡은 것도 아무 이유 없이 단순히 내 목소리를 듣고 내 탄탄한 팔뚝을 한 번 더 보기 위해서였다. 가끔 임유미는 자기 마음속에 다른 자신이 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도 그럴 게, 그동안 자기한테 이런 모습이 있을 줄은 몰랐으니까. 심지어 가끔은 자기 친구들과 함께하
“사장님도 이미 최선을 다하셨어요.”나는 정 사장님을 매우 존경한다. 하지만 나더러 정 사장님처럼 하라고 하면 할 자신이 없다.내 생각도 사실은 만건희나 이규민과 다를 게 없다. 장사는 당연히 돈을 버는 게 목적이니까.하지만 이 일은 정 사장님이 나한테 부탁한 일이기에 나는 책임지고 정 사장님을 도와야 한다. 비록 모든 사람은 이미 마음이 변해 내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지만.나는 정 사장님이 자책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어찌 됐든 이건 정 사장님 책임이나 의무가 아니니까.나는 더 이상 정 사장님을 귀찮게 하지 않으려고 방을 나왔다.사실 나는 정 사장님이 왜 이토록 박애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이런 사람이 공무원이 되었다면 분명 아주 훌륭한 사람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사모님이 다가오자 나는 궁금했던 걸 물었다.“사모님, 뭐 하나 물어봐도 돼요?”“뭔데요? 물어봐요.”나는 얼른 궁금한 걸 물었다.“사실 좀 궁금해서요. 정 사장님은 왜 상회를 설립하셨어요?”“그걸 설명하려면 우리 그이 어릴 때부터 이야기해야 해요.”사모님은 나와 함께 소파에 앉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사실 호섭 씨는 고아예요. 나도 들은 거지만 부모님 모두 병으로 돌아가셨대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의학을 파고들었고 커서도 계속 의학 분야에서 일했어요.”“화인당도 사실 돈을 벌려는 목적으로 오픈한 게 아니에요. 그냥 최선을 다해 병을 볼 수 없는 사람들이 병을 볼 수 있게 도와주기 위해서였어요.”그 말에 나는 속으로 감탄했다. 정 사장님이 이토록 위대한 분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호섭 씨는 착한 사람이라 누군가 병으로 고통받는 모습을 가장 싫어해요. 내가 이렇게 말하면 현실성 없다고 하겠지만 이게 사실인걸요. 호섭 씨는 누구한테나 친절해요. 선악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사람도 아니고요. 게다가 부모님께 효도하고 나한테 잘해줘요. 내 눈에 호섭 씨는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남자예요.”나는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나도 깊이 동감하는 바니까.정 사장님은 모
“나는 이 사장을 따를 생각이 없지만, 정 사장 생각이 너무 허황한 건 사실이에요. 우리가 장사하는 목적이 돈 벌기 위해서인 건 맞잖아요. 그런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걸 왜 하지 않으려 하죠?”민건희의 말을 들은 순간 나는 그의 의도를 파악했다.민건희는 겉으로는 정 사장님 뜻에 따르는 척했지만 사실 진작 마음이 변했다.테이블에 거의 엎드리다시피 몸을 앞으로 기울였던 나는 민건희의 말을 듣는 순간 몸을 뒤로 빼 의자에 기댔다.“민 사장님은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민건희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했다.“솔직히 우리끼리 협력할 수 있어요. 강북 약재 시장 자원 대부분 정 사장이 쥐고 있으니 우리는 원가대로 다른 사장한테 팔면 그만이잖아요. 그러면 수호 씨도 정 사장한테 결과를 보여드릴 수 있고요.”“다만 서윤기한테만큼은 약재 가격을 좀 더 쳐줘서 그자가 우리를 도와 더 큰 이익 공간을 만들어줄 수 있게 하면 돼요.”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어떻게 쳐줄 건데요? 진짜 약재를 사용하면 서윤기가 제공하는 가격이 이미 최저 가격이에요. 민 사장님 말대로 하려면 약재를 바꾸는 수밖에 없어요.”민건희은 얼른 자기 생각을 말했다.“약재를 바꾸는 게 안 될 것도 없죠. 그저 품질이 좀 떨어지는 거로 바꿀 생각이지 가짜 약재로 숫자를 채우자는 게 아니잖아요.”나는 속내를 꿰뚫어 볼 것처럼 민건희를 빤히 바라봤다.적어도 민건희는 이규민이나 전광진과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민건희는 그저 다른 방식으로 제 욕심을 채우려 하는 것뿐이었다.나는 싱긋 웃으며 말을 아꼈다.“민 사장님, 오늘 만나지 않았던 거로 해요. 저는 이만 가볼게요.”내가 떠나려고 하자 민건희는 다급하게 일어섰다.“왜요? 싫어요? 내가 말한 방법은 우리 두 사람한테 모두 이로운 방법일 텐데 왜 싫다는 거죠?”“이건 정 사장님이 원하는 게 아니에요.”민건희는 대뜸 물었다.“정 사장 생각은 너무 현실성 없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백성들한테 좋은 일을 하자니, 그게 장사꾼이 할 수 있는 발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