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변한 정세에 노랑머리는 어리둥절해했다.“무슨 상황이야? 우리 보스께서 미리...”“닥쳐! 당장 들어가.”경찰은 갑자기 다른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매우 강직하고 엄밀해졌다.그러더니 강제로 노랑머리를 구치소로 연행하고 그더러 모태진과 은솔한테 각각 20만 원을 배상하도록 요구했다.모태진도 어리둥절해했다.“무슨 상황이에요? 저 경찰들 아까는 저 노랑머리 편 아니었어요? 왜 갑자기 우리를 도와주는 건데요?”나는 당연히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역시나 권력 있는 사람을 알고 있다는 게 이런 거구나.’우리가 입 아프게 도리를 설명하고 억울함을 호소해도 아무 소용 없더니, 소여정의 전화 한 통에 모든 게 달라지다니.역시나 옛말에 조정 사람을 알면 일이 쉬워진다더니, 그 말이 일리가 있는 듯싶었다.하지만 나는 쓸데없는 말은 일절 하지 않았다.“이왕 일이 해결됐으니 우린 이만 가요.”나는 모태진을 한쪽으로 끌어와 귀띔해 줬다.“선배는 집에 아내가 있다는 걸 잊지 마요. 절대 바보 같은 실수 저지르지 마요, 알았죠? 은솔 씨 일은 되도록 모른 척하고요.”“알아요. 나도 은솔 씨를 동생으로 여기는 거지, 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니에요. 그리고, 난 이제 나이도 있는데 그럴 에너지가 어디 있어요?”“그렇다면 다행이고요.”나도 모태진이 말한 대로 하길 바랐다.은솔은 모태진에게 자꾸만 들어붙는 느낌이었지만 모태진은 그나마 어떻게 해야 할지를 잘 아는 듯했다.“은솔 씨, 일이 해결됐으니 얼른 학교로 돌아가서 열심히 공부해요. 앞으로 다시는 불량배들과 어울리지 말고, 속지도 말고요. 부모님이 얼마나 고생할지만 생각해요.”“은솔 씨가 마음껏 공부하게 해주려고 부모님이 얼마나 노력하고 계신데. 은솔 씨가 나쁜 남자한테 속고 몸도 마음도 다치면 부모님이 얼마나 속상하겠어요.”은솔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우리 부모님은 저 같은 건 상관 안 해요. 저를 딸로 생각하지도 않아요.”“그런 말 말아요. 세상에 어떤 부모가 자기 자식을 사랑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은솔은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계속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그때, 익숙한 그림자가 내 옆을 지나갔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주선영이었다.“후배, 학교 돌아온 거야?”나는 먼저 다가가 인사했다. 물론 어색하긴 했지만 아무 말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았으니까.선영은 나를 향해 싱긋 미소 짓더니 뒷좌석에 앉은 은솔을 바라봤다.“은솔아, 네가 왜 여기 있어?”“두 사람 알아?”“룸메이트예요. 같은 과고요.”‘어쩐지. 지난번에 은솔이 입었던 치마가 눈에 익다 했더니 주선영이 입었던 것과 동일한 옷이었네.’같은 침실에 있는 데다 옷도 나눠 입는 사이라면 관계가 좋다는 뜻이었다.나는 얼른 선영에게 말했다.“네가 은솔이 좀 데려다줘. 요즘 곁에 있어 주고.”“네, 알았어요.”은솔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선영과 함께 학교로 들어갔다. 하지만 겉보기에 여전히 기분이 안 좋아 보였다.그런데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이것뿐이었기에 그저 은솔도 모태진도 모두 정신을 차리고 바보 같은 짓을 저지르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은솔을 바래다주고 난 뒤 나는 다시 화인당으로 돌아왔다.점심시간에 겪은 일 때문에 나는 오후에 또 지각하고 말았다.하지만 모태진이 미리 사정을 설명한 덕에 정 사장님은 오히려 나를 걱정했다.“이제 괜찮아요. 일도 해결됐어요.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정 사장님을 보니 나는 문득 이 선생님이 말씀해 주셨던 사모님 얘기가 떠올랐다.나는 사모님과 일면식도 없기에, 따지고 보면 사모님이 나를 도와줄 이유는 조금도 없다. ‘설마 정 사장님이 사모님한테 말해서 사모님이 나를 도와줬나?’‘그런데 그렇다면 정 사장님이 직접 예기하지 않고 왜 사모님이 나섰지?’나는 이럴 가능성이 적다고 생각했다.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사모님이 나를 도와주셨으니 언젠가는 만날 거야. 그때 직접 인사하면 돼.’“괜찮다면 다행이네요. 가서 일해요.”나는 얼른 내 룸으로 돌아와 물건을 정리했
“흥, 마음에도 없는 말은. 내 생각 조금도 안 했다는 건 못 믿겠는데.”소여정은 역시나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게다가 역시 남녀 사이의 일에서는 베테랑이었다. 그녀에 비하면 나는 어린 애나 다름없었다.소여정은 곧바로 선글라스와 코트를 벗었다. 오늘 소여정이 입은 건 타이트한 원피스였는데, 그 덕에 몸매가 여과 없이 드러났다.그 모습은 우아하고도 기품 있어 사람의 욕망을 자꾸만 건드렸다.나는 아름다운 소여정의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졌다.그때 소여정이 내 앞에서 갑자기 한 바퀴 빙 돌았다.“예뻐? 이 원피스는 내가 특별히 주문 제작한 거야.”이건 양심을 걸고 안 예쁘다고 거짓말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예뻤다.예쁜 정도가 아니라 아름다워 눈을 뗄 수 없었다.나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예뻐요, 명문가 아가씨 같아요.”이 말은 폄하의 뜻이 조금도 없는 순수한 칭찬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소여정도 이런 칭찬에는 매우 약했다.“처음으로 솔직하게 말하네? 참 진심 한번 듣기 쉽지 않네. 이거 옆트임인데, 여기까지 찢어졌어, 예뻐?”소여정은 쫙 찢어진 옆쪽을 나한테 보여주었다.허벅지까지 쫙 찢어진 원피스는 새하얗고 늘씬한 다리가 그대로 드러내 너무 요염하고 섹시했다.심지어 은연중에 속바지까지 어렴풋이 보여 더 매혹적이었다.나는 저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예쁘긴 한데 너무 야헤요. 앞으로 이렇게 입지 마요. 안 그러면 남자들이 뒤에서 음담패설을 늘어놓을지도 몰라요.”“음담패설을 늘어놓고 싶으면 늘어놓으라고 해. 만지지도 못할 거면서. 괴로운 건 그 사람들이지 내가 아니잖아? 내가 상관할 바 아니잖아.”소여정은 남들이 자기 몸을 노리는 걸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왠지 모르게 내가 오히려 신경 쓰였다.이렇게 예쁜 몸은 당연히 혼자 감상하고 싶지, 누군들 다른 남자와 공유하고 싶겠나?때문에 나는 일부러 소여정의 옆으로 다가가 내 몸으로 찢어진 쪽을 가렸다.이렇게 하면 누군가 갑자기 들어온다 하더라도 아무것도 보지 못할 테니까.
나는 생리적인 변화가 오는 걸 막기 위해 속으로 계속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중얼거렸다. 게다가 하체를 소여정과 멀리 떨어지게끔 뒤로 뺐다.소여정은 급하게 나를 놀리지 않고 내 가슴에 엎드려 휴식을 취하는 듯한 자세를 유지했다.“가슴 진짜 단단하고 넓네. 여기 이렇게 누워 자고 싶어.”‘뭐지? 이 여자가 왜 갑자기 나를 희롱하지 않는 거지?’게다가 보아하니 소여정은 확실히 피곤에 찌든 듯한 모습이었다.때문에 나는 귀신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말했다.“자고 싶으면 자요. 편히 잘 수 있을 때 자요.”“그럼 반듯하게 누워. 가슴에 기대서 좀 잘 거니까.”소여정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시종일관 내 가슴에 기대 있었다.이런 요구는 나를 희롱하는 것보다 훨씬 나았기에 못 들어줄 것도 없었다.“그럼 우선 이거 놔 줘요. 그래야 나도 눕죠.”소여정은 내 말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런 게 어디 있어? 나를 안아가야 하는 거 아니야?”“혹시 또 나를 희롱하려는 건 아니죠?”나는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그러자 소여정이 나른한 모습으로 말했다.“어제 밤새도록 카드 게임을 했더니 기운이 없어. 나 좀 잘게.”“그럼 집에서 자지 그래요?”‘집이 더 편한 거 아닌가?’나는 너무 의아했다.그때 소여정이 내 가슴을 가볍게 두드렸다.“뭔 말이 그렇게 많아? 나 저기까지 안고 가 줘. 피곤해서 자고 싶다니까. 전에 말했던 거 잊지 마. 내가 도와주면 나한테 빚지는 거라고 했던 말. 지금 그 빚을 갚을 때야.”나는 소여정을 번쩍 들어 안았다.“그렇게 큰 도움을 주고 고작 이런 거로 갚으라는 건 너무 말이 안 돼요. 오늘 서비스는 무료로 해줄게요. 빚은 나중에 필요할 때 갚을게요.”말하는 사이 나는 소여정과 함께 마사지 침대에 누웠다.소여정은 정말 아무 짓도 하지 않고 조용히 내 가슴에 기대 누웠다.그리고 정말 피곤하긴 한 모양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고른 숨소리가 들렸다.나는 소여정의 머리가 내 가슴에서 떨어질까 봐 어깨를 꼭 안고 있었다.
소여정은 말하면서 일어나 앉더니 기지개를 켰다.“음, 시원하다.”소여정이 기지개를 켜는 동안 원피스도 위로 당겨지면서 속바지가 노출되었다.하얗고 매끄러운 다리를 보니 나는 저도 모르게 마음이 쿵쾅거렸다.나는 다급히 내 옷으로 소여정의 다리를 가려 주었다.“앞으로 조심 좀 해요. 다 보이면 본인만 손해잖아요. 사람들이 뒤에서 욕할지도 몰라요.”“욕하라 그래. 내가 욕먹는 게 어디 한두 번인가? 네가 그랬잖아. 날 욕하는 여자들은 날 부러워하고 질투하는 거라고.”“그건 다르죠, 여자들은 부럽고 질투해서 욕하지만, 남자들은 소여정 씨가 가벼운 여자라고 욕할 가능성이 많단 말이에요. 심지어는 천박하고 경박한 여자라는 말이 돌 수도 있어요.”“그럼 넌 어떤데?”소여정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나는 얼른 고개를 마구 저었다.예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절대 아니다.소여정이 만약 천박한 여자라면 이토록 농염하지 않았을 거다. 게다가 나를 꼬시기만 할 뿐 나와 몸을 섞는 건 계속 피하지 않았을 거다.입장 바꾸어 생각한다면, 소여정이 임천호의 눈에 들었다는 게 바로 그녀가 매력적인 여자라는 반증 아닌가?임천호가 어떤 사람인가? 그런 남자가 천한 여자를 파트너로 공식 석상에 데리고 다녔을까? 임천호가 보는 눈이 그렇게 후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정부로 지내는 내가 천하지 않다고?”소여정은 나를 순순히 놓아줄 생각이 없었는지 몰아붙였다.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왜 다른 사람의 정부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어요. 기껏해야 노는 게 좋고, 사람을 좀 홀릴 줄 아는 것뿐이지 천한 건 말도 안 돼요.”“속으로 나를 그렇게 좋게 평가하고 있었어?”소여정은 갑자기 눈썹을 치켜 올리더니 빙그레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그 말에 부끄러워 나는 얼굴을 붉혔다. 곧이어 다급히 침대에서 내려와 팔을 움직였다.“내가 깔고 누워서 많이 저리지? 내가 주물러줄게.”소여정이 먼저 제안했다. 그러더니
“여기까지 온 게 놀러 온 거라고요?”나는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그러자 소여정이 반문했다.“안돼?”“여정아.”그때, 밖에서 아주 듣기 좋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소여정은 부랴부랴 밖에 대고 소리쳤다.“나 여기 있어.”얼마 뒤, 흰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안으로 들어왔다.여자는 소여정이 입은 것과 똑같은 흰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지만, 소여정보다 더 어울렸다. 그녀는 단아하고 우아했으며 왠지 학자 가문에서 자란 느낌이 물씬 났다. 마치 양반댁 규수처럼.나는 속으로 너무 놀랐다.‘요즘 시대에서 이런 분위기를 풍기는 여자가 있다니.’눈앞의 여자를 처음 봤을 때, 마치 앵커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주 단아하고, 우아하고, 지적이었으니까.심지어 많은 책을 읽어 본 것처럼 기품이 넘쳐흘렀다.“이 사람 누군지 알아?”그때 소여정이 눈웃음을 치며 내게 물었다.나는 고개를 저었다. 눈앞의 여자는 단연코 내가 전혀 모르는 여자다.“얘가 이 가게 사모님, 임유미거든.”그 이름을 듣는 순간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사모님을 본 적 없지만 저네 이미 이 선생님을 통해 이름을 들은 적은 있었으니까.임유미.이름을 들을 때도 지적인 느낌이 들었는데, 역시나 분위기도 그러했다.무엇보다 이 선생님이 그때 분명 사모님이 저더러 나를 돌봐주라고 당부했다고 했다.여태껏 사모님이 왜 이 선생님께 그런 부탁을 했는지 의아했는데, 오늘 보니 소여정 때문인 듯싶었다.“그러니까 여정 씨가 사모님한테 이선생님이 나를 돌봐주게 하라고 부탁했어요?”나는 직접 소여정에게 확인했다.소여정은 예쁘게 미소 지었다.“당연한 거 아닌가? 설마 가게 사모님이 본인을 짝사랑한다고 착각한 건 아니지?”나는 깜짝 놀라 다급히 말했다.“그럴 리가요. 저 그 정도로 자뻑이 심하진 않거든요. 어제 이 선생님이 사모님 부탁으로 잘해주는 거라고 해서 궁금했던 것뿐이에요. 그런데 이제는 그게 다 소여정 씨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오늘 여기 온 것도 나를 찾아온 게 아니라 사모님 찾아온 거
“세상 물정도 모르는 어린애한테 왜 장난쳐? 재밌어? 가자. 쇼핑가려고 했잖아. 벌써 오후 3시 30분이야. 지금 출발하지 않으면 날이 어두워질 거야.”사모님이 손목시계를 보며 재촉했다.그제야 나는 두 사람이 쇼핑하러 가기로 했다는 걸 알아챘다.소여정이 먼저 마사지숍에 찾아온 건 나를 놀리기 위해서일 거다.내 시선은 저도 모르게 사모님에게 향했다.정말 이토록 우아하고 지적인 여자는 처음 본다.게다가 여자로 봤을 때 그 매력도 단연 최고로 꼽힐 수 있었다. 아주 사람의 시선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었으니까.소여정은 내가 사모님한테서 눈을 떼지 못하자 내 가슴을 쿡쿡 찔렀다.“뭘 봐? 이 친구는 네 사장 사모님이야. 설마 사장 와이프까지 눈독 들이는 거야?”소여정의 목소리가 너무 큰 나머지 사모님의 귀에 들어갈까 봐 나는 깜짝 놀랐다.‘이 여자는 어떻게 된 게 아무 말이나 막 해?’‘여기 마사지숍인데, 사장님이 듣기라도 하면 난 망할 거야.’그러니까 제가 다급히 설명했다.“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와도 그럴 일은 없으니 헛소리하지 마요.”“그런데 왜 빤히 쳐다봐?”소여정은 질투하는 것처럼 입을 삐죽거렸다.“사모님이 어떻게 생겼나 잘 눈에 새겨야 나중에 사람 잘못 보고 실수하지 않죠. 저 사람 얼굴 잘 구분 못하거든요.”“그 말이 사실이어야 할 거야. 안 그러면 죽을 줄 알아.”소여정은 내 가슴을 강하게 꼬집으며 말하더니, 코트를 입고 떠나갔다.나는 손으로 내 가슴을 만졌다. 거기에는 아직도 소여정의 손에서 나던 향기가 남아 있었다.아주 향기로웠고 매력적이었다.소여정이 사용하는 향수는 아마 임천호를 꼬시려고 준비한 것을 거다.때문에 어딘가 사람을 끌어당기고 욕망을 자극했다.내가 한창 코를 킁킁대고 있을 때, 소여정이 갑자기 되돌아와 나에게 말했다.“오후에 휴가 내고 우리랑 쇼핑해.”“그건 안 돼요. 그건 무단결근이죠.”“내가 네 사장 사모님한테 얘기했어. 쟤도 이미 동의했고.”소여정은 으쓱한 듯 나에게 혀를 날름거렸다.“그
이 차가 어디 부딪치거나 긁히기라도 하면 나를 팔아도 배상할 수 없었다.나는 다리가 후들거려 전전긍긍하며 말했다.“저기요, 이 차는 정말 운전하지 못하겠어요. 다른 기사 찾아봐요.”소여정은 내 모습이 재밌었는지 박장대소했다.“뭐야? 고작 차 한 대 가지고 뭘 그렇게 겁을 먹고 그래?”“이건 보통 차가 아니라 자그마치 포르쉐 911이라고요. 여태껏 이렇게 비싼 차는 처음 보거든요. 그런데 이런 차를 저더러 운전하라니요?”소여정은 아예 차키를 내 손에 밀어 넣었다.“걱정하지 말고 운전해. 어디 부딪혀도 배상하라고 하지 않을 테니까.”이건 실로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수억짜리 차를 이렇게 운전하게 한다고?’나는 마음속으로 별거 아니라고, 운전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며 즐긴다는 생각으로 운전석에 올랐다.하지만 의자에 앉으니 저도 모르게 다리가 후들거려 시동을 걸 엄두가 나지 않았다.소여정은 나를 재촉하지도 않고 적응할 시간을 주겠다며 기다렸다.나는 심호흡을 들이켜면서 마음을 가라앉혔다.무려 30분이나 지나서야 나는 간신히 진정을 되찾았다.“이제 됐지? 됐으면 출발하자고.”소여정은 임유미와 이야기꽃을 피웠다.순간 내가 너무 못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작 차 한 대로 이렇게 겁을 먹다니. 이러니까 내가 큰일을 못하지.’‘이런 나쁜 버릇은 고쳐야 해. 산이 무너져도 침착함을 유지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나는 얼른 시동을 걸었다.엔진이 움직이는 굉음을 들으며 나는 부자들이 고급 차를 운전하는 걸 경험했다.이건 너무 대박이었다.차를 몰고 거리에 나서자 수많은 사람들이 부러운 눈빛을 보내왔다.내가 젊은 나이에 이런 고급 외제 차를 운전하는 것도 한몫했겠지만, 아마 주요 원인은 차에 앉은 두 명의 절세미인들 때문이었을 거다.나는 점차 사람들의 시선을 즐겼다. 이렇게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기분은 꽤 좋았다.나는 내가 마치 차주가 된 것처럼 역할극에 완전히 몰입해 있었다.쇼핑몰에 도착한 뒤, 나는 더 이상 지난번 윤지은과 함께
윤미화가 소리 지르려 할 때 나는 재빠르게 그녀의 입을 막았다.“윤 사장님이 제 방에 들어온 거예요. 게다가 분명 먼저 저를 키스했잖아요. 전 꿈이라고 착각했어요. 이건 제 탓 아니라고요. 소리도 치지 마요. 한밤중에 소리 지르면 사모님이 올 텐데, 이 상황 어떻게 설명할 거예요?”나는 한꺼번에 말을 내뱉었다.‘젠장, 누가 잘 자고 있는데 이 여자가 갑자기 내 이불 속으로 들어올 줄 알았겠냐고?’게다가 나는 진짜 꿈에서 애교 누나를 만난 줄 알았다. 사귀는 사이에 이런 짓을 하는 건 정상 아닌가? 그런데 상대가 윤미화일 줄이야. 진짜 귀신 곡할 노릇이다.윤미화는 얼른 옷을 정리하고는 씩씩거리며 내 등을 찰싹찰싹 때렸다.나는 상대가 더 이상 소리 지르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서고 나서야 손을 풀었다.그랬더니 윤미화가 나를 째려봤다.“아주 땡잡았겠네? 오늘 일 절대 입 밖에 내지 마.”“내가 미치지 않고서야 이걸 왜 말하겠어요? 그리고 왜 갑자기 제 방에 들어와서 이불 속으로 팍 들었는데요? 그것도 모자라 키스까지. 혹시 예전부터 저랑 자고 싶었던 거 아니에요?”윤미화는 어이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내 남편이 수호 씨보다 훨씬 잘생기고 돈도 많은데, 내가 왜 수호 씨를 좋아하겠어? 잠결에 내 집인 줄 알아서 그랬지. 게다가 수호 씨가 내 남편인 줄 알기도 했고...”그렇다면 참 난감해진다나는 상대가 애교 누나인 줄 알고, 상대는 내가 제 남편인 줄 알았다니.그래도 끝까지 가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하지만 왠지 모르게 내 머릿속에는 불을 켰을 때 봤던 윤미화의 나른하고 매혹적인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특히 밖에 훤히 드러난 가슴이 유독 매력적이었다.아마도 내가 자기 전에 너무 참아서 그런지 이 순간 윤미화의 이런 모습을 보니 너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심지어 아무 생각도 없이 이대로 윤미화를 덮쳐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를 제대로 감상하고 싶었다.윤미화는 저를 빤히 쳐다보는 내 눈빛에 너무 당황해했다. 그동안 남편 외의 다른 이성과 이런
나는 영상 하나를 찾아 빨리 내 안의 욕구를 풀 생각이었다.하지만 내가 한창 욕구 해소에 정신이 팔렸을 때, 갑자기 밖에서 들리는 노크 소리에 하마터면 간 떨어질 뻔했다.나는 얼른 영상을 끄고 바지를 올리고는 전전긍긍하며 물었다.“누구세요?”“수호 씨, 나예요.”사모님이었다.‘사장님이랑 끝났나?’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서 문을 열었다.하지만 사모님은 약간 넋이 나간 모습인 데다 기분이 가라앉은 듯했다.“왜 그러세요?”나는 걱정스러워 물었다.‘사모님이 왜 갑자기 기분이 안 좋아지셨지? 표정은 왜 이렇고?’“약욕 시간 다 됐어요. 나랑 같이 호섭 씨 침대에 좀 옮겨요.”사모님은 말을 마치자마자 뒤돌아섰다.사모님은 아무리 봐도 무슨 일이 있는 듯했는데, 먼저 말하지 않으니 나도 물어볼 수 없었다.나는 헐렁한 외투를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하면 부풀어 올라 민망한 내 그곳을 가릴 수 있었으니까.나와 사모님이 욕실로 들어가자 사장님은 난감한 표정으로 사모님을 바라봤다.“유미야, 나...”사장님은 뭔가 말하고 싶은 듯했으나 사모님이 말을 잘랐다.“다 알아. 그러니까 말하지 마. 우선 몸조리부터 잘해.”사장님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두 분 왜 이러지? 설마 사장님이 아까 실패해서 미안해하는 건가?’가끔 어떤 일은 사실을 간파하고 있어도 말하지 않는 게 서로에게 좋다.나는 사모님을 도와 사장님을 방에 옮겼다. 사장님은 침대에 누운 채 시선을 사모님한테서 떼지 못했다.“수호 씨, 오늘 고마웠어. 오늘 더 이상 아무 일 없으니까 가서 쉬어.”“네.”나는 짤막하게 대답하고 객실로 돌아갔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방금 전 일을 생각했다.사모님은 만족하지 못한 게 틀림없다.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실망한 표정을 할 리 없다. 사장님은 지금 몸 건강이 안 좋아 사모님을 만족하게 하는 게 어려울 거다.‘하, 사장님이 얼른 나아서 두 분 백년해로해야 할 텐데.’사모님이 예쁘고 몸매도 좋은 데다 농염하고 관능적이기까지 하다.
나는 애교 누나에 대한 생각을 오래 하지 않았다. 지금은 신경 써야 할 일이 너무 많았으니까.양동준은 나에게 열흘이라는 기한을 줬고, 민우와 함께 따로 나가서 사업해 보려던 계획도 계속 진행해야 하고, 또 사장님 치료도 신경 써야 했다이 중에 중요하지 않은 일은 없었다.특히 열흘 기한 중에 벌써 이틀이나 지났는데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놓치면 나한테 영영 기회가 오지 않을 수 있었다.내가 한창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욕실 쪽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유미야, 이러지 마. 수호 씨 아직 집에 있어...”그건 분명 사장님 목소리였다. 사장님은 내가 듣지 못하게 하려고 일부러 목소리를 내리 깔았다.곧이어 사모님 목소리도 들렸다.“수호 씨는 지금 방에 있어 못 들을 거야. 호섭 씨, 우리 한동안 안 했었잖아. 내가 뭐 다른 거 하자는 게 아니잖아. 그냥 같이 목욕하자.”사모님 목소리는 약간 안달 나 있었다.순간 내 머릿속에 욕실 속 장면이 그려졌다.풍만한 몸매가 얇은 천에 가려졌지만 사모님의 고혹적인 느낌은 가리지 못했다.그 모습을 상상하니 아랫배가 갑자기 뜨거워졌다.그때 사장님은 여전히 거절했다.“안돼. 수호 씨가 들어오면 얼마나 어색해.”“문 잠그면 되지. 호섭 씨, 나 거절하지 마. 나도 정상적인 여자야. 나도 욕구가 있다고. 내가 다른 거 바라는 거 아니잖아. 그냥 나 좀 만져주고 안아주고 키스해 주면 돼.”사모님의 말에 나는 피가 들끓었다.마음 같아서는 내가 나서서 사모님의 욕구를 채워주고 싶었다. 하지만 사장님은 여전히 거절했다.“유미야, 그만 벗어. 계속 이러면 나도 못 참아...”사모님은 약간 넋이 나간 듯 말했다.“못 참겠으면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잖아... 호섭 씨, 나 하고 싶어...”나는 사모님이 이렇게 적나라한 말을 할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아래는 이미 부풀어 올랐다.욕실 안에서는 어느새 말소리가 끊기더니 희미하게 가쁜 숨소리가 들리는 듯했
그랬더니 민우는 고개를 마구 저었다.“난 싸우는 건 괜찮지만 분석하는 건 됐어. 머리는 네가 나보다 더 잘 돌아가잖아.”나는 피식 웃었다. 그렇게 놓고 보면 나와 민우는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사이다. 민우는 싸움 실력이 뛰어나지만 냉정하지 못해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고. 나는 싸움 실력이 달리지만 민우보다 머리가 잘 돌아간다.그 때문에 우리는 함께 협조할 때 호흡이 잘 맞는 거다.“주해진이 무슨 꿍꿍이가 있든 절대 방심하면 안 돼. 1800만 원은 이미 우리 손에 넘어왔으니 도로 가져갈 생각 못 하게 해야지.”이 돈은 우리의 사업 자금이기에 나는 절대 주해진이 도로 빼앗아 가게 둘 생각이 없었다.게다가 이 차가 이렇게 됐는데도 주해진한테서 보상금을 받은 뒤로 마음이 덜 아픈 것 같았다. 나중에 페인트칠 조금 하면 사실 별문제 없으니까.전에 내가 그렇게 흥분한 건 사실 너무 가난해서였다.어렵게 돈 벌어 차를 장만했는데, 할부도 채 갚지 못했는데 엉망이 되면 누구라도 마음이 아플 거다.역시 사람은 돈에 목숨을 건다는 선조들의 말이 맞나 보다.나는 민우를 집에 데려다주고 나서 사모님 댁에 갔다.사모님은 왜 이렇게 늦게 왔냐고 물었지만, 나는 두 분을 걱정하게 하지 않으려고 주해진이 찾아온 일은 말하지 않고 개인적인 일 때문에 지체되었다고만 했다.그러자 사모님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수호 씨, 호섭 씨가 약욕해야 하는데 좀 도와줘요.”“네.”나는 두말없이 사모님을 도왔다.사모님 집 욕실에는 커다란 욕조가 있었는데 마침 약욕을 하기 알맞춤했다.나와 사모님은 헐떡대며 한참을 바삐 돌아친 끝에 겨우 목욕물을 준비했다.뜨거운 물이 증발하면서 욕실 안에 열기가 오른 데다 힘을 썼더니, 나는 어느새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그러다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어 봤더니 얇은 실크 슬립을 입고 있던 사모님 역시 옷이 수증기에 젖어 몸에 찰싹 달라붙었다. 얇은 옷감에 속이 보일락말락 하는 모습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매번 느끼는 거지만 사모님
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 주해진을 바라봤다.“왜 이렇게 쉽게 돈을 주는 거지?”주해진이 오늘 이 사달을 벌이느라 분명 적지 않은 돈을 썼을 텐데, 나한테 2천만 원 가까이 되는 돈까지 배상하니 또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닌지 심히 의심됐다.“이 전에는 이대로 넘어가는 게 도저히 용납이 안 댔는데, 두 사람 실력을 보니 승복했거든. 두 사람 말대로 나도 젊을 때는 이 바닥에서 몇 년을 굴렀는데, 한 번도 두 사람처럼 죽기 살기로 싸우는 사람을 못 봤거든.”사실 주해진은 말을 아꼈다. 그가 가장 두려운 건 우리의 믿기지 않는 전투력이 아니라 궁지에 몰렸으면서 상황을 역전한 거였다. 그거야말로 가장 두려운 거였으니까.주해진은 우리를 맹수라고 느꼈다. 그것도 싸울수록 더 미쳐 날뛰는 맹수. 심지어 궁지로 몰아넣으면 넣을수록 우리는 오히려 피에 굶주린 모습을 드러냈다.주해진은 제 체면을 회복하고 싶어 그동안 승복하지 않은 거였는데, 우리가 절대 건드리면 안 되는 존재라는 걸 알았으니 더 이상 저항할 필요가 없었다. 어쨌든 그는 이미 손을 씻었고, 이제는 그저 장사를 하며 지내기에 어렵게 얻은 걸 망치고 싶지 않았다.나는 여전히 반신반의했지만 민우는 나더러 먼저 돈을 받으라고 계속 눈을 깜박거렸다.나도 민우의 뜻을 알고 있었다. 이걸 나중에 우리의 사업 자금에 보태자는 뜻이었다. 1800만 원이나 되는 돈을 보니 나도 확실히 마음이 동해 결국은 말없이 받았다. 주해진은 김진호와 안명훈더러 우리에게 사과하게 했고, 두 사람은 찍소리 못하고 순순히 사과했다.떠나갈 때 주해진은 제 차를 나에게 주면서 몰고 가라고 했다.그 순간 나는 오히려 경계심이 곤두섰다.“돈도 배상했으면서 차는 왜 주는 거야? 설마 또 해코지하려고?”주해진은 호탕하게 웃었다.“경계심 너무 많은 거 아니야? 그냥 친구 삼고 싶어서 주는 거야.”“그런데 난 그쪽이랑 친구하기 싫은데.”나는 고민도 없이 거절했다.주해진은 여전히 너털웃음을 터뜨렸다.“너무 빡빡하게 굴지 말고. 친
김진호는 속이 좁고 질투심이 강하지만 실력은 별로 없다. 특히 일이 터지면 항상 겁을 먹고 뒤로 물러난다.그런데 주해진이 자기를 내밀자 안명훈보다 더 겁을 먹었다.“싫어요... 안 돼요... 해진 형, 저 자식 차를 망가뜨리라고 한 건 형이잖아요. 저더러 형 대신 뒤집어쓰게 하면 안 되죠.”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김진호는 제가 한 짓에 책임지지 못하고 주해진의 체면을 바닥에 짓밟았다.주해진은 너무 쪽팔려서 김진호의 뺨을 내리치면서 버럭 소리쳤다.“사과하라면 해. 어디서 말이 그렇게 많아? 젠장. 내가 널 돕지 않았다면 수호 동생한테 미움 살 일이 있었겠어?”한창 화를 내고 있던 나는 그 말에 순간 멍해졌다.‘수호 동생? 지금 나를 말하나?’‘젠장, 내가 언제 제 동생이 됐다는 거야?’“어디서 친한 척이야? 너희 셋 다 내려와.”나는 차를 또다시 쾅쾅 내리쳤다.민우 역시 차 위에서 나를 협조해 주었다.승합차가 우리 때문에 완전히 뒤집힐 지경이 되자 주해진은 우리와 연맹을 맺으려는 듯 은근슬쩍 나를 회유했다.“수호 동생, 그만해. 내려갈게. 우리 사이에는 원한이 없잖아. 수호 동생이랑 원한 있는 건 김진호잖아. 그리고 안명훈 저 자식도 자기 여자 친구더러 동생 친구 꼬시라고 했어. 저 둘 중에 좋은 놈 하나 없어. 내가 지금 바로 이 두 놈 내려 보내겠으니까 마음대로 처리해.”주해진은 말을 마치자마자 정말로 김진호와 안명훈을 끌어내 앞에 내팽개쳤다.내 분노는 사실 김진호와 안명훈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가장 큰 원인은 내 차가 박살 난 것 때문이다. 그리고 주범은 바로 주해진이다.때문에 나는 화가 잔뜩 나서 주해진을 향해 파이프를 휘둘렀다.“이 자식들 빚은 내가 천천히 받을 거야. 하지만 내 차를 망가뜨린 건 어쩔 건데?”주해진은 고개를 돌려 내 차를 흘긋 보더니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마도 배상할 수 있는 저렴한 차라 안도한 듯했다.“수호 동생, 저 차는 1600만 정도 하지? 내가 나중에 새 차 하나 뽑아줄게.”주해진이
사실 오늘 안명훈은 이곳에 오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주해진이 기어코 자기 위엄을 보여주겠다고 불러냈다.그런데 주해진의 위엄은 못 보고 오히려 나와 민우의 미친 모습만 보게 된 거다. 그러니 혼비백산이 되지 않을 리가 있나?안명훈은 필사적으로 차 문을 흔들었다.“나 내릴래. 내려줘...”주해진은 안명훈의 뺨을 후려갈기더니 씩씩거리며 욕설을 퍼부었다.“사내자식이 내리긴 어딜 내려? 네가 문을 내리면 저놈들이 올라올 거잖아. 문 열면 안 돼. 얌전히 앉아 있어. 설마 저 자식이 문을 부수겠어?”펑!나는 승합차를 향해 쇠 파이프를 세게 휘둘렀다.그러면서 속으로는 방금 전의 울분을 토해냈다.‘내 자식 같은 새 차, 아직 할부도 안 끝나 얼마나 애지중지했는데. 네놈들 때문에 고물이 됐잖아.’나는 승합차를 내리치면서 욕설을 퍼부었다.“나와. 차 안에 숨어 있는 게 겁쟁이랑 뭐가 달라?”차 안 세 사람 눈에 나는 충혈되어 시뻘게진 눈을 가진 분노한 맹수나 다름없었을 거다.안명훈은 완전히 겁을 먹어 나한테 끊임없이 간청했다.“오늘 밤 일은 나랑 상관없어... 제발 살려줘. 제발...”주해진도 솔직히 속으로는 무서웠지만 안명훈이 저 하나 살려고 자신을 배신한 걸 보자 화가 나서 그를 발로 차버렸다.안명훈은 그 힘에 못 이겨 옆으로 벌러덩 굴러 넘어졌다.그때, 마침 유리창을 깨뜨린 나는 쇠 파이프로 주해진을 가리키며 소리쳤다.“셋 셀게, 당장 내려. 안 그러면 죽이는 수가 있어.”주해진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그럴 필요까지 있어? 내가 사람을 불러 모으긴 했지만 무기는 안 들었잖아. 게다가 저놈들은 겁을 먹고 이미 도망쳤어. 너희 둘도 크게 다치지 않았으먼서 꼭 미친 짐승처럼 나를 그렇게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겠어?”나는 이를 악물었다.“난 짐승처럼 네 놈을 물고 늘어지는 거로 안 끝나. 아주 뼈도 안 남기고 씹어 먹을 거야. 내가 얼마나 어렵게 산 차인데, 평소 아까워서 조심조심 다뤘는데, 네 놈 때문에 폐차하게 생겼잖아. 내 차 물어
나는 여전히 손에 든 쇠 파이프를 필사적으로 휘둘렀다. 분명 이길 수 없다는 걸 알았지만 그렇다고 기죽을 수도 없었다.민우가 말한 적이 있는데, 싸울 때 가장 무서운 건 싸우기 전부터 겁을 먹는 것이라고 했다.하지만 한참 싸우다 보니 나는 점점 힘에 부쳤다. 놈들 인원수가 너무 많아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았다.그렇다고 이대로 쓰러질 수는 없었다.인체에는 자극을 받으면 잠재력을 자극하는 혈 자리가 있는데, 그 혈 자리가 자극을 받으면 잠재력이 폭발했다가 나중에 한동안은 몸이 나른해진다.하지만 이 상화에서 다른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기에 나는 고민 없이 혈 자리를 눌렀다. 그 순간 온몸에 힘이 솟아나면서 내가 마치 거인이 된 느낌이었다.“야! 다 죽었어!”나는 고함을 지르는 동시에 쇠 파이프를 휘두르면서 달려갔다.나를 에워싸고 있던 놈들은 내가 더 이상 전투력이 없다는 걸 보고 모두 긴장을 푼 상태였다. 하지만 나는 갑자기 미친 것처럼 놈들의 코뼈를 하나씩 부러뜨렸다. 심지어 손이 무척 매웠다.나는 피가 들끓어 끊임없는 힘이 솟구치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매번 파이프를 휘두를 때마다 젖 먹던 힘까지 짜냈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는데도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나도 한방에 놈들 뼈를 부러뜨릴 수 있다는 것에 흥분됐다.‘만약 동준 형님이 이 모습을 본다면 나에게 재능이 있다고 여기지 않을까?’싸울수록 피가 끓고 힘이 솟아났다. 놈들은 심지어 나를 보자 연신 뒷걸음쳤다.옆에 있던 민우마저 나를 보면서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물었다.“수호야, 너 대체 어떻게 한 거야? 난 지금 힘들어 죽겠는데...”나는 혈 자리를 가리켰다.그러자 민우는 바로 눈치챘다.민우 역시 의학을 전공한 지라 말하지 않아도 바로 알 수 있었다. 곧이어 민우 역시 스스로 한 대 치더니 갑자기 피가 솟구치는 것처럼 흥분했다.“하하하, 나도 다시 회복했어. 너희들 죽었어.”우리는 서로 협조하면서 놈들한테 달려가 퍽퍽, 주먹을 날렸다.우리를 끝장내버리겠다고 큰소리치던 놈
전에는 누가 와서 소란을 피울까 봐 민우더러 나와 함께 가게에서 지내자고 했지만, 지금 사장님 댁에 머물고 있는데 민우까지 데려올 수는 없었다. 때문에 뭐든 나 혼자 해결해야 했다.민우를 집에 데려다 두는 길에 그는 나에게 함께 사장님 댁에 있어 달라냐며 물었다. 그러면 서로 보살필 사람이 있다면서.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나도 그걸 생각해 보지 않은 적 없어. 하지만 사장님을 돌보려고 그 집에서 지내고 있는데 너까지 데려가면 이상하잖아.”“난 그 개자식들이 또 너한테 무슨 짓 할까 봐 그러지.”“나도 무서워. 하지만 이미 준비해 뒀어.”나는 의자 밑에서 도구 몇 개를 꺼냈다.민우는 그 도구들을 손에 들고 무게를 가늠해 보더니 말했다.“이 도구들은 조금 도움이 될 뿐이야. 그래도 내가 너한테 가르쳐준 방법을 사용해.”민우는 말하면서 손을 움켜쥐는 동작을 했다.그 동작에 나는 풉, 하고 웃음이 터져 버렸다.“그 방법 확실히 좋더라...”우리가 한창 얘기하고 있을 때 백미러에 언뜻거리는 차 한 대가 비쳤다.무의식적으로 뒤에 따라붙은 사람이 운전할 줄 모른다며 투덜거리던 나는 갑자기 이상한 낌새를 챘다. 그도 그럴 게, 뒤에서 달려오는 차는 속도가 아주 빨랐는데 마치 나를 강제로 세울 것처럼 굴었으니까.“잘 앉아.”나는 불안한 예감에 다급히 액셀을 밟아 속도를 냈다.다만 내 차의 유일한 단점은 속도를 너무 빨리 낼 수 없다는 거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뒤 차에 따라잡혔다.놈들은 내 차를 강제로 멈추게 할 작정인 듯했다. 하지만 나는 멈추고 싶지 않았다. 상대방 차량은 승합차였는데, 그런 승합차는 용량이 커 적어도 열댓 명을 태울 수 있었다.만약 차에서 열 몇 명이 우르르 내리면 나와 민우 둘이 대처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때문에 나는 액셀을 밟았다. 하지만 승합차 두 대는 좌우에서 협공하며 내 차를 가운데 몰아 끼긱끼긱, 하며 긁히는 소리가 났다. 분명 차가 내는 소리였지만 내 살점이 뜯겨나가는 기분이었다.아직 차 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