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느님의 의술을 빌려 이것저것 채워 넣은 가짜 얼굴보다는 훨씬 나았다.“갑자기 그쪽 말이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왠지 가슴 크게 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어요.”하정현은 말하면서 오만하게 가슴을 내밀었다.하정현의 모습에서 그녀가 정말 자랑스러워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나는 내 말이 그렇게 큰 역할을 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됐어요, 서비스가 끝났으니 송금해요.”나는 큐알 코드를 하정현에게 쭉 내밀었다.그러자 하정현은 두말없이 나에게 송금했다.오일 마사지와 가슴 마사지는 간단하기에 가격도 너무 비싸지 않았다. 도합 16만 원이다.돈을 받은 나는 곧바로 윤지은의 집을 떠났다.첫째 이유는 하정현이 갑자기 말을 번복할까 봐 두려워서였고, 두 번째 이유는 애교 누나가 방금 영상 통화를 걸어 왔는데 너무 바빠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나는 차에 앉자마자 애교 누나에게 전화 걸었다.애교 누나는 바로 전화 받았다. 하지만 남주 누나가 오늘 기분이 안 좋아 하루 더 같이 있어 달라고 한다고 했다.이건 내가 바라는 결과가 아니었다.나는 당연히 애교 누나가 빨리 돌아오길 바란다.‘남주 누나가 기분 안 좋을 게 뭐가 있어? 어젯밤 남편한테 사랑을 듬뿍 받았으면서.’나는 남주 누나가 일부러 그런 것이라는 의심이 강하게 들었다.내가 푸념하자 애교 누나는 나를 위로해 주었다.“남주가 기분이 안 좋다는 거, 거짓말 아니에요. 남주 아들이 오늘 학교에서 다른 학생과 싸웠거든요. 그래서 남주가 선생님한테 불려 가 한바탕 꾸중을 들었어요.”‘아, 그런 거였네.’나는 무의식적으로 남주 누나와 형수 그리고 애교 누나는 모두 애가 없다고 셍각해 왔다.하지만 남주 누나는 벌써 7살짜리 아들이 하나 있는데, 올해 막 1학년이 되었다.그렇다면 남주 누나가 기분이 안 좋다는 게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남자아이는 워낙 장난기가 심하니까.남주 누나는 노는 걸 즐기긴 하지만 아들한테만큼은 늘 최선을 다하는 듯했다.그런데 아들 때문에 그런 일을 겪었으니 기분이
“내가 증명할게. 이것 봐, 나 지금 노력하고 있잖아.”“어떻게 된 거야? 왜 또 갑자기 되는 거야?”형수의 숨소리는 점점 가빠졌다.형수의 물음에 형은 솔직하게 대답하지 않았다.사실 형수가 돌아온 걸 보자마자 동성 형은 몰래 약을 먹었다. 지금 되는 것도 그 덕분이고.하지만 형은 이 사실은 절대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형수가 절대 안에 사정하도록 동의하지 않을 테니까.“나도 모르겠어. 갑자기 자기가 또 좋아졌나 보지. 태연아, 사랑해. 영원히 잃고 싶지 않아.”점점 격해지는 소리가 고스란히 내 귀에 흘러들었다.형수는 연달아 오르가슴을 느끼며 만족해하는 모습이었다.애초에 형수가 이토록 만족했을 때는 나와 함께했을 때였는데, 이제는 더 이상 내가 필요 없어진 모양이다.그 사실을 인지하니 나는 너무 속상했다.나는 묵묵히 집을 나와 다시 차에 올라탔다. 하지만 기분은 너무 복잡하기만 했다.남주 누나는 남편이 있고, 형수도 남편이 있어 그녀들 남편이 돌아올 때면 나는 아무 쓸모도 없게 된다.이런 느낌은 너무 싫었다.마치 내가 필요할 때는 갖다 쓰고, 필요 없어지면 버려지는 물건이 된 기분이었다.나는 속으로 더 이상 남주 누나와 형수랑 엮이지 말아야겠다고 맹세했다.‘난 애교 누나한테만 잘할 거야. 나한테 잘해주는 사람은 역시 애교 누나뿐이야.’생각을 정리한 뒤, 나는 곧장 화인당으로 향했다.그날 오전, 나는 또 몇 명의 고객을 받아 몇십만 원이나 되는 팁을 받았다.점심시간, 모태진은 또 외식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나는 기분이 꿀꿀해 바로 거절했다.그랬더니 모태진은 내 팔을 잡아당기며 설득했다.“가요, 네? 내가 쏠게요. 내가 처음으로 쏘겠다고 하는 건데, 체면 좀 세워줘요.”모태진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내 기분도 따라서 좋아졌다.“뭐예요? 돈이라도 생겼어요? 왜 갑자기 이렇게 통 커졌는데요?”나는 웃는 얼굴로 농담했다.무엇보다 계속 기분이 안 좋은 채로 있는 것도 방법은 아니기에, 확실히 기분 전환이 필요
내가 모태진과 식사하고 있을 때 노랑머리 놈이 갑자기 여자 친구를 데리고 나타났다.그러고는 모태진의 앞에 다가오더니 노기등등한 모습으로 모태진에게 삿대질했다.“네가 모태진이야? 내 여자를 건드리려 한 놈이 네 놈이냐고?”“난 그 여자분 건드린 적 없어요. 너무 가여워 보여서 그쪽을 떠나라고 했을 뿐이에요.”모태진은 매우 정중하게 대답했다.하지만 다음 순간 노랑머리 놈이 갑자기 모태진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리는 바람에 코피가 흘러내렸다.나는 벌떡 일어나 모태진의 앞에 막아섰다.“뭐 하는 거예요? 계속 이러면 경찰 부를 거예요!”노랑머리는 눈에 뵈는 게 없는지 내가 경찰을 언급했는데도 겁먹지 않았다.심지어 그 말에 오히려 발끈하며 화를 냈다.“난 지금 저 자식이랑 말하는 중이잖아. 그쪽이랑 상관없으니까 넌 빠져.”모태진은 얼굴에 코피를 덕지덕지 묻혔지만, 눈빛을 보니 조금도 물러설 기색이 없어 보였다.어제 똑같은 일을 당했을 때, 모태진은 이런 태도가 아니었다.그런데 여자 한 명 때문에 이렇게 큰 변화가 생기다니.그 여자는 모태진이 맞자 울며 남자 친구한테 애원했다.“안명훈, 그만해. 이 일은 모 선생님과 아무 상관 없어. 내가 너랑 헤어지고 싶은 거야.”짝!안명훈은 두말없이 여자의 뺨을 후려갈겼다.이건 너무 도가 지나쳤다.여자가 남자랑 사귀든 말든 그건 자유인데, 헤어지자고 했다고 사람을 때리다니.나는 참지 못하고 호통쳤다.그러자 안명훈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씩씩거리며 말했다.“경고하는데, 한 마디만 더 지껄이면 너도 같이 때려줄 거야.”나는 순간 분노가 끓어 올라 싸늘하게 말했다.“어디 한번 해 봐. 아주 법이고 뭐고 눈에 뵈는 게 없나 보네? 벌건 대낮에 어디서 주먹질이야? 너 같은 건 경찰에 잡혀가야 돼.”말을 마친 뒤, 나는 곧장 경찰에 신고했다.이번에는 겁만 주는 게 아니라 진짜였다.안명훈이 갑자기 전화를 빼앗으려고 달려들자 나는 가볍게 몸을 피했다.하지만 그놈은 포기하지 않고 또다시 달려들었다.
은솔이라는 여자는 말하면서 모태진의 품에 와락 안겨 그를 꼭 끌어안았다.그 순간 모태진은 어쩔 줄 몰라 쩔쩔맸다. 하지만 그의 눈빛에는 유쾌한 기색이 역력했다.나도 이젠 남녀 문제에 있어서 베테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모태진이 은솔을 좋아한다는 걸 충분히 알 수 있었다.하지만 모태진은 가정이 있는 사람이라 절대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괜찮아요, 별거 아니에요. 앞으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찾아와요.”모태진은 말하면서 두 손으로 여자를 꼭 끌어안았다.그 행동에 나는 내 추측을 더 확신할 수 있었다.하지만 그 모습을 본 안명훈은 화가 나서 펄쩍 뛰었다.“젠장, 그 손 당장 놔! 그 여자는 내 여자라고! 손대지 마!”안명훈은 또다시 모태진을 때리려고 달려들었다.나는 얼른 그놈을 말리며 시선을 끌었지만 놈은 나를 향해 버럭 소리쳤다.“계속 끼어들겠다 이거야? 좋아, 그렇다면 너도 같이 죽여줄게!”우리가 한창 말다툼하고 있을 때 경찰이 도착했다.그러고는 상황을 듣더니 쌍방 폭행이라며 우리를 모두 경찰서로 데리고 갔다.그 사실에 나는 너무 화가 났다.“이게 어떻게 쌍방 폭행이에요? 분명 저 자식이 먼저 폭행했어요. 저는 정당방위라고요.”“잔말 말고 따라와요.”두 경찰은 두말없이 우리를 모두 끌고 갔다.그때 안명훈이 갑자기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그 모습을 본 순간 나는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설마 저 경찰들이 저 노랑머리랑 아는 사이인가?’우리는 얼마 뒤 관할 파출소로 연행되었다.경찰은 우리가 쌍방 폭행이라고 여겼고, 안명훈이 갑자기 나 때문에 중상을 입었다며 병원에서 진단받고 나를 고소하겠다며 길길이 날뛰었다.심지어 중재에 나선 경찰은 아무리 봐도 노랑머리의 편인 듯했다.“상대가 고소하면 나중에 형사적 책임을 져야 할 수도 있으니 되도록 사적으로 합의 보세요.”“그런데 합의금 2천만 원이 말이 돼요? 이건 강도랑 뭐가 달라요?”“그건 여러분이 사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니 사적으로 합의 보세요.”나는 화가 나서 미칠 지
“뭐든 다? 정확하게 뭐야?”소여정은 싱글벙글 웃으며 물었다.이런 상황에서 나를 희롱할 생각뿐인 소여정이 너무 짓궂었지만 나는 숙이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말 그대로, 다 돼요.”나는 소여정이 나를 놀리고 희롱하는 걸 좋아하는 데다 내 몸을 노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떼문에 내가 이렇게 말한 건 뭐든 다 된다는 걸 암시하기 위해서다.앞으로 그걸 들어줄지 말지는 또 다른 문제일 테지만.이 상황에서 벗어나는 게 나한테는 우선이었다.“약속했어? 난 절대 강요한 적 없어.”소여정이 동의하자 나는 가슴이 벅차올라 다급히 대답했다.“모두 내가 원해서 하는 거니까 결과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질게요. 이제 안심이 되죠?”“그래, 기다려 봐. 전화 한 통만 할게.”소여정은 고작 정부이지만 그녀의 남자 임천호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게다가 임천호가 매번 공식 석상에 나갈 때마다 항상 자기 정부를 데리고 다니기에 모든 사람이 소여정을 알고 있다. 심지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소여정을 통해 임천호한테 접근하려고 하고 있다.그때 그 술자리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소여정한테 몰려든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정부라는 이름이 사람들 앞에 내놓기 부끄러운 이름이지만, 그 사람이 높은 위치에 있으면 부끄럽고 말고는 큰 의미가 없게 된다. 심지어 뒤에서 몰래 소여정을 부러워하는 여자가 수없이 많다.어찌 됐든 임천호의 여자가 된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을 테니까.내가 막 전화를 끊고 돌아오자 안명훈이 귀찮은 듯 물었다.“대체 해결한 거야. 만 거야? 해결할 생각이 없으면 구치소에서 지내.”그 말에 경찰은 나를 한번 쓱 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행동에 나는 기가 찼다.경찰은 국민의 지팡이가 되어야 하는데, 지금은 오히려 나쁜 놈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다니.내가 권력이 없는 건 맞지만 나중에 내가 권력을 손에 넣는다면 반드시 이런 부패한 현상을 뿌리 뽑을 거다.“너랑 말하고 있잖아. 귀먹었어?”노랑머리가 나에게 다시
갑자기 변한 정세에 노랑머리는 어리둥절해했다.“무슨 상황이야? 우리 보스께서 미리...”“닥쳐! 당장 들어가.”경찰은 갑자기 다른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매우 강직하고 엄밀해졌다.그러더니 강제로 노랑머리를 구치소로 연행하고 그더러 모태진과 은솔한테 각각 20만 원을 배상하도록 요구했다.모태진도 어리둥절해했다.“무슨 상황이에요? 저 경찰들 아까는 저 노랑머리 편 아니었어요? 왜 갑자기 우리를 도와주는 건데요?”나는 당연히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역시나 권력 있는 사람을 알고 있다는 게 이런 거구나.’우리가 입 아프게 도리를 설명하고 억울함을 호소해도 아무 소용 없더니, 소여정의 전화 한 통에 모든 게 달라지다니.역시나 옛말에 조정 사람을 알면 일이 쉬워진다더니, 그 말이 일리가 있는 듯싶었다.하지만 나는 쓸데없는 말은 일절 하지 않았다.“이왕 일이 해결됐으니 우린 이만 가요.”나는 모태진을 한쪽으로 끌어와 귀띔해 줬다.“선배는 집에 아내가 있다는 걸 잊지 마요. 절대 바보 같은 실수 저지르지 마요, 알았죠? 은솔 씨 일은 되도록 모른 척하고요.”“알아요. 나도 은솔 씨를 동생으로 여기는 거지, 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니에요. 그리고, 난 이제 나이도 있는데 그럴 에너지가 어디 있어요?”“그렇다면 다행이고요.”나도 모태진이 말한 대로 하길 바랐다.은솔은 모태진에게 자꾸만 들어붙는 느낌이었지만 모태진은 그나마 어떻게 해야 할지를 잘 아는 듯했다.“은솔 씨, 일이 해결됐으니 얼른 학교로 돌아가서 열심히 공부해요. 앞으로 다시는 불량배들과 어울리지 말고, 속지도 말고요. 부모님이 얼마나 고생할지만 생각해요.”“은솔 씨가 마음껏 공부하게 해주려고 부모님이 얼마나 노력하고 계신데. 은솔 씨가 나쁜 남자한테 속고 몸도 마음도 다치면 부모님이 얼마나 속상하겠어요.”은솔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우리 부모님은 저 같은 건 상관 안 해요. 저를 딸로 생각하지도 않아요.”“그런 말 말아요. 세상에 어떤 부모가 자기 자식을 사랑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은솔은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계속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그때, 익숙한 그림자가 내 옆을 지나갔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주선영이었다.“후배, 학교 돌아온 거야?”나는 먼저 다가가 인사했다. 물론 어색하긴 했지만 아무 말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았으니까.선영은 나를 향해 싱긋 미소 짓더니 뒷좌석에 앉은 은솔을 바라봤다.“은솔아, 네가 왜 여기 있어?”“두 사람 알아?”“룸메이트예요. 같은 과고요.”‘어쩐지. 지난번에 은솔이 입었던 치마가 눈에 익다 했더니 주선영이 입었던 것과 동일한 옷이었네.’같은 침실에 있는 데다 옷도 나눠 입는 사이라면 관계가 좋다는 뜻이었다.나는 얼른 선영에게 말했다.“네가 은솔이 좀 데려다줘. 요즘 곁에 있어 주고.”“네, 알았어요.”은솔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선영과 함께 학교로 들어갔다. 하지만 겉보기에 여전히 기분이 안 좋아 보였다.그런데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이것뿐이었기에 그저 은솔도 모태진도 모두 정신을 차리고 바보 같은 짓을 저지르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은솔을 바래다주고 난 뒤 나는 다시 화인당으로 돌아왔다.점심시간에 겪은 일 때문에 나는 오후에 또 지각하고 말았다.하지만 모태진이 미리 사정을 설명한 덕에 정 사장님은 오히려 나를 걱정했다.“이제 괜찮아요. 일도 해결됐어요.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정 사장님을 보니 나는 문득 이 선생님이 말씀해 주셨던 사모님 얘기가 떠올랐다.나는 사모님과 일면식도 없기에, 따지고 보면 사모님이 나를 도와줄 이유는 조금도 없다. ‘설마 정 사장님이 사모님한테 말해서 사모님이 나를 도와줬나?’‘그런데 그렇다면 정 사장님이 직접 예기하지 않고 왜 사모님이 나섰지?’나는 이럴 가능성이 적다고 생각했다.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사모님이 나를 도와주셨으니 언젠가는 만날 거야. 그때 직접 인사하면 돼.’“괜찮다면 다행이네요. 가서 일해요.”나는 얼른 내 룸으로 돌아와 물건을 정리했
“흥, 마음에도 없는 말은. 내 생각 조금도 안 했다는 건 못 믿겠는데.”소여정은 역시나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게다가 역시 남녀 사이의 일에서는 베테랑이었다. 그녀에 비하면 나는 어린 애나 다름없었다.소여정은 곧바로 선글라스와 코트를 벗었다. 오늘 소여정이 입은 건 타이트한 원피스였는데, 그 덕에 몸매가 여과 없이 드러났다.그 모습은 우아하고도 기품 있어 사람의 욕망을 자꾸만 건드렸다.나는 아름다운 소여정의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졌다.그때 소여정이 내 앞에서 갑자기 한 바퀴 빙 돌았다.“예뻐? 이 원피스는 내가 특별히 주문 제작한 거야.”이건 양심을 걸고 안 예쁘다고 거짓말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예뻤다.예쁜 정도가 아니라 아름다워 눈을 뗄 수 없었다.나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예뻐요, 명문가 아가씨 같아요.”이 말은 폄하의 뜻이 조금도 없는 순수한 칭찬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소여정도 이런 칭찬에는 매우 약했다.“처음으로 솔직하게 말하네? 참 진심 한번 듣기 쉽지 않네. 이거 옆트임인데, 여기까지 찢어졌어, 예뻐?”소여정은 쫙 찢어진 옆쪽을 나한테 보여주었다.허벅지까지 쫙 찢어진 원피스는 새하얗고 늘씬한 다리가 그대로 드러내 너무 요염하고 섹시했다.심지어 은연중에 속바지까지 어렴풋이 보여 더 매혹적이었다.나는 저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예쁘긴 한데 너무 야헤요. 앞으로 이렇게 입지 마요. 안 그러면 남자들이 뒤에서 음담패설을 늘어놓을지도 몰라요.”“음담패설을 늘어놓고 싶으면 늘어놓으라고 해. 만지지도 못할 거면서. 괴로운 건 그 사람들이지 내가 아니잖아? 내가 상관할 바 아니잖아.”소여정은 남들이 자기 몸을 노리는 걸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왠지 모르게 내가 오히려 신경 쓰였다.이렇게 예쁜 몸은 당연히 혼자 감상하고 싶지, 누군들 다른 남자와 공유하고 싶겠나?때문에 나는 일부러 소여정의 옆으로 다가가 내 몸으로 찢어진 쪽을 가렸다.이렇게 하면 누군가 갑자기 들어온다 하더라도 아무것도 보지 못할 테니까.
그 순간 나는 머리가 띵했다. 나는 애써 눈을 뜨려고 했지만 머리가 너무 어지럽고 눈꺼풀이 무거워 도저히 뜰 수 없었다.다만 그 와중에 약간의 의식은 존재했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용천 호텔에서 나와 몸을 섞은 사람이 사모님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사모님 댁에서 지내면서 사모님 다리에 있는 나비 문신을 보고 내 추측을 확신했고.하지만 지금껏 나는 그게 사모님이든 아니든 무조건 사모님과는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최면했다. 무슨 일이 있든 간에 사장님께 미안한 행동은 할 수 없었으니까.하지만 오늘 저녁 나는 또 잠결에 그 나비를 보게 된 거다. 그 순간 나는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뭐지?’오늘 여기 있는 사람 중에 그날 용천 호텔에 있었던 사람은 오직 애교 누나뿐이다.하지만 애교 누나 몸에는 분명 나비 문신이 없다.게다가 나는 애교 누나 몸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데 애교 누나의 피부는 이 정도로 희지 않다.하지만 애교 누나가 아니면 또 누구란 말인가?고아연? 아니면 고수연?그날 밤 나는 이 두 여자를 본 적이 없다.나는 이 상황이 어리둥절했고 상대가 누구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는 게 너무 답답했다무엇보다 오늘 너무 취해 머리가 어지러웠기에 눈을 뜰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나는 정신도 차리지 못한 채로 애써 몸부림쳤지만 결국 의식이 점멸되어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그리고 나는 다음 날까지 푹 잠들었다.내가 바닥에서 일어났을 때 다른 사람들은 이미 모두 깨어났다. 내가 그중 맨 마지막에 깨어난 듯했다.나는 아픈 머리를 문지르다가 테이블을 치우는 애교 누나를 발견했다.“누나, 다른 사람들은요?”애교 누나는 테이블을 정리하면서 대답했다.“다들 일이 있다고 먼저 갔어요. 수호 씨를 방에서 자라고 하려 했는데 너무 깊이 잠들어 아무리 깨워도 깨지 않더라고요.”“애교 누나, 어젯밤 혹시 안 잤어요?”나는 몸부림치며 일어나 의자에 앉았다.그때 애교 누나가 입을 열었다.“늦게 잠들긴 했지만 안 잔 건 아니에요. 나
윤지은은 대체 진동성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그 일이 있은 후 진동성은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다.때문에 우리는 형수를 집으로 모신 뒤 번갈아 가면서 돌보기로 했다. 그러는 게 서로서로 안심이 되기도 했으니까.그 일로 애교 누나는 아버지를 설득해 원래 살던 형수네 옆집으로 다시 이사 오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한테 다시 함께 살자고 초대했다.나는 잠시 고민 끝에 결국 고개를 저었다.“안 돼요. 당분간은 누나랑 같이 살 수 없어요.”“왜요?”애교 누나는 실망스러운 듯 나를 바라봤다.나는 애교 누나의 얼굴을 감싸면서 진지하게 말했다.“이 사실을 누나 아버지가 알게 되면 저를 더 싫어하실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성공하기 전까지 같이 살면 안 돼요. 그래야 누나 아버지를 화나게 하거나 누나 명성에 누가 되지 않을 거예요.”애교 누나는 이내 미소를 되찾았다.“바보. 수호 씨가 나를 이렇게 생각할 줄은 몰랐어요.”“당연하죠. 저는 정말 누나랑 결혼하고 싶어요. 때문에 누나 명성을 제가 망가뜨릴 수는 없어요.”“그래요. 수호 씨 말에도 일리가 있네요. 하지만 월세방에서 지내는 건 너무 머니까 태연이네 집에서 지내는 건 어때요?”애교 누나의 제안에 나는 살짝 어리둥절했다.“왜요?”“예전에도 태연이네 집에서 지냈잖아요. 지금 다시 거기서 지내는 게 당연한 거 아니에요? 그리고 동네 사람들도 태연이 교통사고로 의식이 없는 걸 알고, 진동성은 바빠서 집에 잘 들어오지 않는 것도 아니까 동생이 대신 형수 돌보는 건 당연하잖아요.”애교 누나는 조리 정연하게 분석했다.사실 애교 누나는 내가 자기랑 같이 살든 아니면 형수 집에서 지내든 가까이에 있고 싶은 거였다. 하지만 나도 나름 걱정이 있었다.“진동성과 형수 사이에 이혼 얘기가 오가고 있다는 건 언젠가 소문이 퍼질 거예요. 그런데 제가 형수 집에 무슨 신분으로 있겠어요? 이건 형수의 평판에도 안 좋아요. 차라리 월세방에서 지내면서 매일 보러 갈게요.”애교 누나는 아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하지만
“괜찮아요.”“혹시 불편하지는 않아요? 아까 걸을 때 보니 허리를 짚고 걷던데요.”나는 걱정이 되어 물어봤다. 무엇보다 방금 사모님이 계속 허리를 짚고 걷는 걸 보니 허리가 분명 불편한 것 같아 보였다.아니나 다를까 사모님은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제가 주물러 드릴까요?”“아, 아니에요.”사모님은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어색하게 행동했다.‘대체 왜 이러지?’사모님이 싫다고 하니 나도 더 이상 강요하지 않았다.하지만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려고 할 때 사모님이 갑자기 나를 불러 세웠다.“수호 씨, 그날 밤 일은...”나는 약간 어리둥절했다.‘어느 날 밤을 말하는 거지?’그러다가 사모님이 부끄러워하는 표정을 본 후에야 나는 사모님이 치마가 젖었던 그날을 말한다는 걸 깨달았다.나는 다급히 설명했다.“사모님이 말씀하지 않으면 진작 잊어버렸어요.”“정말요? 거짓말하는 거 아니죠?”“제가 왜 거짓말하겠어요? 저 매일 해야 할 일이 많아서 일일이 기억할 수 없어요.”사모님의 미소는 살짝 이상했다. 그건 아무리 봐도 겉웃음이었다.“그럼 다행이네요. 일 봐요.”나는 뒤돌아 집을 나섰다.그 시각 임유미는 안절부절못하며 치맛자락을 잡은 채 나를 훔쳐보았다.임유미는 요즘 왠지 모르게 저녁만 되면 참지 못하고 핸드폰을 꺼내 몰래 야한 영상을 보곤 한다. 그것도 나이 많은 여자 주인공과 젊고 잘생긴 남자 주인공이 나오는 영상을.영상 속 어린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을 누나라고 부를 때면 임유미는 따라서 흥분하곤 했고 강렬한 오르가슴을 느끼곤 했다.임유미도 자기가 요즘 왜 이러는지 의문이었지만 그렇다고 남편한테 털어놓을 수도 없었다.방금 나를 붙잡은 것도 아무 이유 없이 단순히 내 목소리를 듣고 내 탄탄한 팔뚝을 한 번 더 보기 위해서였다. 가끔 임유미는 자기 마음속에 다른 자신이 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도 그럴 게, 그동안 자기한테 이런 모습이 있을 줄은 몰랐으니까. 심지어 가끔은 자기 친구들과 함께하
“사장님도 이미 최선을 다하셨어요.”나는 정 사장님을 매우 존경한다. 하지만 나더러 정 사장님처럼 하라고 하면 할 자신이 없다.내 생각도 사실은 만건희나 이규민과 다를 게 없다. 장사는 당연히 돈을 버는 게 목적이니까.하지만 이 일은 정 사장님이 나한테 부탁한 일이기에 나는 책임지고 정 사장님을 도와야 한다. 비록 모든 사람은 이미 마음이 변해 내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지만.나는 정 사장님이 자책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어찌 됐든 이건 정 사장님 책임이나 의무가 아니니까.나는 더 이상 정 사장님을 귀찮게 하지 않으려고 방을 나왔다.사실 나는 정 사장님이 왜 이토록 박애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이런 사람이 공무원이 되었다면 분명 아주 훌륭한 사람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사모님이 다가오자 나는 궁금했던 걸 물었다.“사모님, 뭐 하나 물어봐도 돼요?”“뭔데요? 물어봐요.”나는 얼른 궁금한 걸 물었다.“사실 좀 궁금해서요. 정 사장님은 왜 상회를 설립하셨어요?”“그걸 설명하려면 우리 그이 어릴 때부터 이야기해야 해요.”사모님은 나와 함께 소파에 앉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사실 호섭 씨는 고아예요. 나도 들은 거지만 부모님 모두 병으로 돌아가셨대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의학을 파고들었고 커서도 계속 의학 분야에서 일했어요.”“화인당도 사실 돈을 벌려는 목적으로 오픈한 게 아니에요. 그냥 최선을 다해 병을 볼 수 없는 사람들이 병을 볼 수 있게 도와주기 위해서였어요.”그 말에 나는 속으로 감탄했다. 정 사장님이 이토록 위대한 분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호섭 씨는 착한 사람이라 누군가 병으로 고통받는 모습을 가장 싫어해요. 내가 이렇게 말하면 현실성 없다고 하겠지만 이게 사실인걸요. 호섭 씨는 누구한테나 친절해요. 선악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사람도 아니고요. 게다가 부모님께 효도하고 나한테 잘해줘요. 내 눈에 호섭 씨는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남자예요.”나는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나도 깊이 동감하는 바니까.정 사장님은 모
“나는 이 사장을 따를 생각이 없지만, 정 사장 생각이 너무 허황한 건 사실이에요. 우리가 장사하는 목적이 돈 벌기 위해서인 건 맞잖아요. 그런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걸 왜 하지 않으려 하죠?”민건희의 말을 들은 순간 나는 그의 의도를 파악했다.민건희는 겉으로는 정 사장님 뜻에 따르는 척했지만 사실 진작 마음이 변했다.테이블에 거의 엎드리다시피 몸을 앞으로 기울였던 나는 민건희의 말을 듣는 순간 몸을 뒤로 빼 의자에 기댔다.“민 사장님은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민건희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했다.“솔직히 우리끼리 협력할 수 있어요. 강북 약재 시장 자원 대부분 정 사장이 쥐고 있으니 우리는 원가대로 다른 사장한테 팔면 그만이잖아요. 그러면 수호 씨도 정 사장한테 결과를 보여드릴 수 있고요.”“다만 서윤기한테만큼은 약재 가격을 좀 더 쳐줘서 그자가 우리를 도와 더 큰 이익 공간을 만들어줄 수 있게 하면 돼요.”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어떻게 쳐줄 건데요? 진짜 약재를 사용하면 서윤기가 제공하는 가격이 이미 최저 가격이에요. 민 사장님 말대로 하려면 약재를 바꾸는 수밖에 없어요.”민건희은 얼른 자기 생각을 말했다.“약재를 바꾸는 게 안 될 것도 없죠. 그저 품질이 좀 떨어지는 거로 바꿀 생각이지 가짜 약재로 숫자를 채우자는 게 아니잖아요.”나는 속내를 꿰뚫어 볼 것처럼 민건희를 빤히 바라봤다.적어도 민건희는 이규민이나 전광진과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민건희는 그저 다른 방식으로 제 욕심을 채우려 하는 것뿐이었다.나는 싱긋 웃으며 말을 아꼈다.“민 사장님, 오늘 만나지 않았던 거로 해요. 저는 이만 가볼게요.”내가 떠나려고 하자 민건희는 다급하게 일어섰다.“왜요? 싫어요? 내가 말한 방법은 우리 두 사람한테 모두 이로운 방법일 텐데 왜 싫다는 거죠?”“이건 정 사장님이 원하는 게 아니에요.”민건희는 대뜸 물었다.“정 사장 생각은 너무 현실성 없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백성들한테 좋은 일을 하자니, 그게 장사꾼이 할 수 있는 발상
그날 저녁 나는 형수 옆에 누워 형수를 꼭 안은 채 잠이 들었다.형수의 감각이 아직 남아있다는 걸 알았기에 나는 이런 방식으로라도 형수가 빨리 깨어나기를 바란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그 시각, 형수는 확실히 의식이 있었다. 다만 의식이 뭔가에 속박된 것처럼 마지막 한 층을 뚫고 나올 수 없었다.나와 백연우가 자기 앞에서 꽁냥거릴 때 형수는 솔직히 화가 나 당장이라도 일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눈이 떠지지 않았다. 그러다 나중에 너무 화가 나서 아예 나를 무시해 버렸다.그 뒤, 내가 자기 손을 잡고 방금 전 그랬던 게 자기를 자극하려고 연기를 한거라고 하니 형수의 마음은 또다시 따뜻해졌고 내가 자기 옆에 누워 잠이 들자 서서히 평온을 되찾았다.형수도 내가 자기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신경 쓴다는 걸 알았기에 매우 행복했다.다음 날 아침. 나는 이 좋은 소식을 고아연에게 알려주었다. 그러자 고아연도 매우 기뻐했다.“정말? 그럼 우리 언니가 또 움직이게 할 수 있어?”“그건 좀 어려울 것 같아요. 형수가 반응하는 건 가끔 있는 일이라 자극을 받을 때마다 반응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그래도 형수가 아직 의식이 있으니 외부의 충격에 반응하는 거예요. 얼마 지나지 않으면 정신을 차릴 것 같아요.”“정말 그렇다면 다행인데. 언니, 얼른 눈 떠. 나 언니한테 할 말 있어.”고아연은 형수의 손을 잡고 진심을 털어 놓았다.그 뒤로 며칠 동안 나는 도관과 화인당 그리고 병원을 전전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며 점점 그런 생활에 적응했다.그리던 오늘 민건희 사장이 강북에 돌아왔다며 전화를 걸어왔다. 우리는 찻집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나는 오늘 민건희 사장을 처음 본다. 민건희는 키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얼굴이 서글서글해 보였다.나는 현재 상회의 상황을 민건희에게 설명했다. 그러자 민건희가 말했다.“서윤기는 약재 가격을 올리고 싶어 해요. 이 사장도 똑같은 생각이고요. 약재 가격이 오르면 약재상이 얻을 수 있는 이윤도 증가한다는 뜻이니까요.”“하지만
백연우는 그제야 이상함을 느꼈다.“뭐야? 정말 네 형수 앞에서 하려고?”나는 백연우의 입을 막으며 작은 소리로 형수의 눈을 보라고 눈짓했다.내가 가리키는 대로 눈알을 데구루루 굴린 백연우는 이내 눈이 휘둥그레졌다.“정말 반응하잖아?”나는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해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우리가 스킨십할 때마다 형수가 반응해요. 아마 우리가 한 말이 들리는 것 같아요. 이런 방식으로 자극하면 깨어날지 확인해 보고 싶어요.”“이게 진짜. 그러니까 지금까지 나를 이용했다는 거네?”나는 다급히 설명했다.“이용이라니요. 나도 너무 갑작스러워 설명할 시간이 없어요.”“그럼 어떡해? 나더러 계속 너한테 협조하라고?”나는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백연우는 그제야 목청을 가다듬고 톤을 한껏 높였다.“정수호, 네 입술 키스하기 너무 좋다. 더 할래.”나도 일부로 목소리를 높였다.“저쪽에 빈 침대가 있는데 그쪽으로 가요.”“아주 나빴어. 정말 여기서 하려고? 몰라.”백연우는 배우 하지 않은 게 아까울 정도로 연기를 잘했다. 목소리는 유혹적이었고 표정은 역시 농염했다.나는 계속해서 형수를 관찰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흥분한 듯 속눈썹을 파르르 떨던 형수가 갑자기 움직이지 않았다.“우리가 너무 지나쳤던 건 아니겠죠?”나는 백연우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내가 그럴 어떻게 알아. 난 너한테 협조해 주기만 했어.”백연우는 이내 자기는 책임 없다는 듯 선을 그었다.나는 다급히 형수 앞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형수는 확실히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그 순간 나는 의아함이 생겼다. 하지만 형수가 우리 대화를 들었다는 건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건 좋은 현상이다.형수가 우리 대화를 들었다면 의식이 있다는 뜻이었으니 적당하게 자극하기만 하면 조만간 깨어날 수 있을 거다.그걸 생각하니 나는 여전히 기뻤다.나는 백연우를 끌고 병실 밖으로 나갔다.“오늘 고마웠어요.”“우리 사이에 뭘 고맙긴. 나중에 태연이 깨어나면 나 만나러 학교로 와. 우리
“지금이 어느 때인데 그런 농담을 해요?”나는 조금도 웃기지 않았다.하지만 백연우가 내 가슴을 꼬집으며 말했다.“내가 누구를 위해서 이러는 건데? 호의를 무시하지 마.”“알았어요. 백 쌤 말 대로 됐으면 좋겠네요.”그러던 그때 백연우가 갑자기 내 품에 안겼다.“그동안 나 보고 싶지 않았어?”“저기, 백 쌤. 형수가 옆에 누워 있는데 좀 이러지 않으면 안 돼요?”“내가 보고 싶었냐고 물어본 것뿐이잖아. 내가 뭘 한 것도 아닌데 왜 겁을 먹고 그래?”“형수 앞에서 이러고 싶지 않아요.”“얼씨구. 지난번에 나 찾아왔을 때는 여자를 본 적 없는 남자처럼 달려들더니.”그 말에 나는 일순 난처했다.현재 형수가 의식이 없어 듣지 못하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분명 화부터 냈을 거다.나는 백연우를 내 다리 위에서 내려보내고는 무의식적으로 형수를 바라봤다. 그때 형수의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나는 너무 기뻐 다급히 형수의 손을 잡았다.“형수, 형수. 내 말 들리는 거죠?”백연우도 놀란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뭐야? 반응했어?”백연우는 말하면서 고개를 숙여 형수를 살폈다.“아니잖아.”“제가 분명 봤어요. 형수의 속눈썹이 떨렸어요.”“잘못 본 거 아니야?”“아니에요. 잘못 볼 리 없어요. 똑똑히 봤어요.”이번만큼 나는 형수의 속눈썹이 떨리는 걸 분명히 봤다.백연우는 팔짱을 낀 채 나를 꿰뚫어 볼 듯 노려봤다.“정수호, 아주 소설을 써라.”“거짓말 아니라니까요. 진짜예요.”“헛것을 봤겠지. 그동안 너무 바쁜 데다 욕구가 쌓여 잘못 본 게 틀림없어. 내가 욕구 좀 풀어줄게. 어때?”백연우는 생글생글 웃으며 내 목을 끌어안았다.그 순간 나는 놀랍게도 형수의 손가락이 움직이는 걸 발견했다.나는 그제야 형수가 우리의 대화를 듣고 충격을 받아 반응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그렇다면 내가 이런 방식으로 형수한테 자극을 주면 형수가 깨어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나는 설명할 새도 없이 백연우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임유미는 그동안 밤이 깊어 날이 어두워지면 외로움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어 누군가에게 보살핌받고 싶다는 생각에 지배되곤 했었다. 하지만 자신이 얼마나 사람 받고 싶고 관심받고 싶은지 남편이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남편한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으니까.임유미는 정호섭이 자기한테 미안해 이혼할 생각까지 했다는 걸 알고 있다. 때문에 정호섭이 자기 마음을 알면 또 그런 생각을 할까 봐 두려웠다.그 순간 든 생각은 현재 주변에 아무도 없으니 몰래 해결해도 아무도 모르겠지 하는 생각이었다.임유미는 집에 들어가 화장실에서 몰래 욕구를 해결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정호섭이 도중에 자기를 부르면 흥이 깨질까 봐 걱정되었다.그에 반해 복도는 오히려 사람이 아무도 없어 마음껏 욕구를 해소할 수 있었다.생각이 여기까지 미친 임유미는 몰래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그 순간 그녀의 마음은 더 없이 벅차올랐다.지금껏 임유미는 이런 짓을 해본 적이 없었기에 너무 짜릿하고 두근거렸다.하지만 친구들을 떠올리니 자기도 이제는 좀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여자는 자기 욕구를 너무 억누르면 안 된다. 그랬다가는 병이 올 수 있으니까.최근 들어 소여정과 백연우처럼 자유롭고 멋지게 사는 게 부럽다는 생각이 종종 들었기에 임유미도 자기를 바꿔보고 싶었다. 결국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임유미의 핸드폰은 주인처럼 깨끗하다. 그동안 지저분한 사이트는 한 번도 들어간 적이 없으니까. 때문에 한순간 어떤 사이트에서 영상을 찾아야 할지 막막했다.그러다가 문득 소여정한테서 받았던 노골적인 사진이 떠올라 그걸 찾아냈다. 그 사진은 너무 노골적이라 예전에는 너무 부끄러워 제대로 보지도 못했었다.임유미는 눈을 지그시 감으며 자기와 남편이 예전에 잠자리를 가지던 모습을 떠올랐다. 그렇듯 점점 옛 추억에 빠지는 느낌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다....한편 나는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사모님 집에서 나오자마자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나는 고수연을 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