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형수가 걱정되어 따라 나왔다.“형수, 형수!”나는 형수를 뒤쫓아 가서 걱정스레 물었다.“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집으로 돌아가려고요?”형수는 고개를 저으며 심란한 듯 말했다.“아직 어떻게 할지 생각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도저히 남주랑 같은 공간에 있고 싶지 않아요.”“남주 누나는 원래 그렇잖아요. 말은 그렇게 해도 사실 사람은 좋아요.”형수가 화나 있다는 걸 알기에, 나는 남주 누나 편을 들며 형수의 화를 풀어주었다.그랬더니 형수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이제는 남주 편도 드네요? 이젠 남주와 자고 싶은 거죠?”나는 민망해서 머리를 긁적였다.“아니에요, 형수가 화 풀었으면 해서 그랬어요.”“수호 씨, 남주와 잠깐 재미 보는 건 괜찮지만 절대 좋아하지 마요.”형수가 이렇게 말하는 건 분명 나를 위해서일 거다.때문에 나는 마음속 깊이 새겨두었다.사실 내 마음속에서 가장 중요한 두 여자는 애교 누나와 형수다. 나는 두 사람 외에 다른 사람한테 마음이 흔들린 적이 없다.남주 누나는 순전히 누나가 자꾸만 나한테 매달리는 거다. 그러니 남주 누나와 자는 건 그저 분위기에 이끌리는 일이니 나를 탓하면 안 된다.“형수, 걱정하지 마요. 저도 생각이 있어요.”형수는 웃으며 내 얼굴을 쓰다듬었다.“난 혼자 있고 싶으니까 수호 씨는 볼일 봐요.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할게요.”“그럼 아침 꼭 챙겨 드세요.”“알았어요.”형수는 얼른 뒤돌아 떠났다.형수의 상태가 어젯밤보다는 많이 좋아진 듯하여 나는 더 이상 마음 쓰지 않았다. 곧이어 방에 돌아가 출근하러 가는 일을 애교 누나와 남주 누나한테 말했다.남주 누나는 내가 맹인 마사지사가 되었다는 말을 듣자 바로 놀려댔다.“푸들, 솔직히 말해. 마사지사 일을 하는 거 여자를 마음껏 만지려고 하는 거 아니야?”“저를 변태로 몰아가지 말아 줄래요? 이건 지극히 정상적인 일자리예요. 영업허가증도 있는 곳이라고요.”나는 억양을 높이며 강조했다.“얼씨구, 화났어? 누나가 잘못했어. 사과할게. 됐지?
“젊은 나이에 배우려고 하는 건 좋은 일이네. 난 자네처럼 의욕 넘치는 청년이 좋다니까.”정 사장님이 나에 대한 평가는 아주 높았다. 게다가 워낙 친절한 분이셔서 나를 편하게 대해주셨다.그 때문인지 이곳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우리가 청소를 하고 있을 때, 직원들이 하나둘 출근했다.직원들이 오픈 준비를 시작하자 정 사장님이 말했다.“수호 씨도 이제 그만하고 볼일 보러 가 봐. 여기는 아주머니들이 청소할 거니까.”“이 선생님, 이 선생님이 수호 씨 가르쳐 줘요.”정 사장님의 말에 한 중년 남자가 걸어왔다. 그 사람의 이름은 이형권인데, 맹인 마사지사 중 원탑이었다.이곳에서 일하는 마사지사는 모두 이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은 자들이다.이 선생님은 나한테 매우 친절하게 웃으며 말했다.“수호 씨, 따라오게.”나는 얼른 이 선생님을 따라 룸으로 향했다.그때 이 선생님이 물었다.“인체의 혈 자리와 마사지에 대해서는 다 알고 있나?”“네, 알아요. 대학 때 한의학을 전공했고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한의사여서 혈 자리는 어릴 때부터 외웠어요.”“기초는 있으니 입문하기 쉬울 거네. 그럼 기본기를 가르치는 대신 주의 사항을 알려주지.”이건 내가 확실히 잘 배워야 하는 거다. 어쨌든, 일전에 맹인인 척해본 적은 한 번도 없으니까.나는 이 선생님의 강의를 무척 열심히 들었다.“우리 맹인 마사지사에게 가장 중요한 건, 출근하는 동안 계속 선글라스를 착용해야 하는 거라네. 선글라스 뒤에서 눈을 감건 뜨건 본인 지유지만, 이것만은 꼭 착용해야 하네.”나는 마음속 깊이 새겼다는 걸 표현하려고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이 선생님이 말을 이었다.“그리고 두 번째는, 맹인이기에 정상인처럼 행동하면 안 되네. 물건을 쉽게 잡는다든가, 예쁜 고객을 보고 눈을 반짝인다던가 하는 행동은 금물이야.”“물론 일부 여성 고객은 우리가 맹인인 척하는 거라는 걸 알지만, 대부분 여성 고객은 모르거든. 만약 들키거나, 일이 커지면 우리 가게 명성에도 안 좋을 테니까.”나
“알겠네, 바로 가지.”이 선생님은 호주머니 안에서 선글라스를 꺼내 쓰더니 단번에 맹인으로 변신했다.나는 그런 이 선생님의 연기력에 감탄했다. 어쩜 진짜처럼 연기할 수 있는지.게다가 이제 막 영업을 시작했는데 벌써 손님이 찾아왔다는 게 너무 놀라웠다.‘여기 장사가 이렇게 잘 되나?’나는 신입인지라 찾아오는 단골이 없어 아직은 한가했다.때문에 선글라스를 낀 채로 옆에 서서 열심히 배웠다.맹인 마사지는 침술 치료와 한약 구매보다 장사가 훨씬 잘 되었다.이제 고작 1시간이 지났는데, 벌써 손님이 3명이나 왔으니 말이다.맹인 마사지사는 도합 5명인데, 한 사람이 룸 한 칸씩 차지하고 있었다.그리고 현재는 나와 한 키 큰 중년 남자만 손님이 없었다.어차피 한가하니 나는 상대와 대화를 하며 친해지려고 결심했다.이에 나는 그 사람 룸으로 가서 웃으며 인사했다.“안녕하세요, 저는 새로 온 맹인 마사지사 정수호라고 해요.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나는 예의를 차려 정중하게 물었다.이 사람의 룸은 유난히 향긋하고 여러 가지 꽃과 식물로 꾸며져 엄청 예뻤다.하지만 예쁜 룸과 달리 주인 성격은 좋지 못했다.그 사람은 싸늘한 태도로 말했다.“바닥 금방 닦았는데 그쪽이 밟아서 자국났잖아요.”나는 얼른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바닥에는 발자국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도 그럴 게, 우리는 가게 안에서 미리 준비된 전용 신발을 신기 때문이다. 게다가 청소부 아주머니가 신발 바닥을 매일 닦기에 바닥에 자국이 남을 리가 없다.나는 순간 상대가 나를 못마땅해한다는 걸 깨달았다.그렇다면 나도 이곳에서 상대의 눈치나 보고 있을 필요 없기에 얼른 뒤돌아 떠났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 중년 남자도 바로 손님을 받았다.그 손님은 심지어 귀부인이었는데, 옷차림이 화려한 데다, 보석을 치렁치렁 달고 있고 품에는 귀한 품종의 고양이를 안고 있었다.사모님은 문 앞에 서 있는 나를 보고는 무의식적으로 물었다.“가게에 신입이 들어왔네? 그것도 잘생긴 총각이?”그 말
나는 선글라스 뒤에서 그 기사를 째려보며 속으로 멍청이라고 욕설을 퍼부었다.심지어 고양이도 다시 돌려줄 생각이었다. 내가 마사지해 주는 손님은 사람이지 고양이고 아니니까.하지만 그때, 정 사장님이 걸어 나오더니 웃으며 말했다.“수호 씨, 이분은 성운 호텔 안주인, 윤 사모님이셔. 이 페르시아고양이는 윤 사모님이 해외에서 데려온 거라 무척 비싸.”“수호 씨는 첫 출근이니까 고양이로 연습해. 잘하면 윤 사모님이 팁도 많이 주실 거니까.”내가 아무리 사회 경험이 없는 새내기라도 정 사장님이 나를 위해 나서줬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눈앞에 있는 이 여자의 신분은 절대 무시할 수 없기에, 이분의 심기를 거스르면 분명 호되게 당할 거다.결국 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네, 사장님, 알겠어요.”나는 페르시아고양이를 안고 내 룸으로 향했다.고양이를 침대 위에 눕힌 순간 나는 너무 어이없어 웃음이 나왔다.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참 슬픈 일이었다.고양이가 나보다 더 잘살고 있다는 게 말이다.이 고양이는 몸에 금은 장신구를 주렁주렁 단 것도 모자라 마사지도 받고 있는데, 나는 남자가 돼서 고양이 마사지나 하고 있으니.그때, 정 사장님이 내 룸으로 들어왔다.“윤 사모님이 고양이 마사지를 하라고 해서 기분 안 좋았나?”나는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고객님이 시키는 대로 해야죠. 저는 돈만 벌면 되니까.”정 사장님은 웃으며 옆에 앉았다.“내 앞에서는 숨길 거 없네. 자네처럼 어린 총각들이 뭘 생각하는지 보기만 하면 다 아니까. 나도 자네처럼 젊었을 때가 있었기에 자네 마음을 아네. 이제 막 사회에 나와 아직 경험이 모자라겠지만, 이제 차츰 이 세상을 알게 될 테고, 본인이 너무 불행한 건 아니구나 생각할 걸세.”“열심히 해 봐. 어차피 돈만 벌면 되니까. 게다가 이렇게 돈 많은 사모님들은 돈 씀씀이가 헤프다네. 부자들을 모신다고 생각하지 말고, 부자들 주머니에 있는 돈을 모신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편할 거네.”나는 감사한 눈
내가 한창 고양이를 마사지하고 있을 때, 갑자기 옆 룸에서 여자의 교성이 들려왔다.‘무슨 상황이지?’‘옆에는 김진호와 윤 사모님인데, 두 사람이 설마...’나는 얼른 귀를 벽에 바싹 붙이고 옆방 기척을 엿들었다.그때 윤 사모님, 윤미화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김진호 씨, 너무 나빴어. 일부러 그 혈 자리 누른 거지?”김진호는 헤실 웃으며 말했다.“윤 사모님, 오해하지 마세요. 요즘 혈색이 안 좋은 것 같아 마사지해 드린 거예요. 그런데 의아해서 묻는 건데, 제가 매일 마사지도 해드리고, 평소 보신탕도 드시고 있으니 혈색이 좋아야 하는데 왜 오히려 어둡고 칙칙한가요? 충분한 사람을 받지 못해 기력이 없는 것처럼요.”그 말에 윤미화의 표정은 일순 어색해지더니 다리를 한데 모았다.김진호는 윤미화의 행동을 모두 눈에 새겼다.사실 김진호는 그녀가 욕구 불만이라는 걸 이미 눈치챘다.아마도 남편한테 오랫동안 사랑을 받지 못한 탓일 거다.김진호는 사실 윤미화의 정부가 되고 싶은데, 자기의 신분이 너무 미천한 게 걱정되고 두려워 그녀가 올 때마다 이런 방식으로 은근슬쩍 암시하곤 했다.하지만 윤미화는 매번 걱정이 되는지 김진호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내가 남편 사랑 받았는지 아닌지도 보아낼 수 있다고? 김 쌤이 그렇게 대단해?”윤미화는 언짢은 듯 말했지만 마음이 간질거려 직접적으로 거절하지는 않았다.사실 윤미화의 남편은 벌써 반년 동안 그녀에게 손도 대지 않았다. 그러니 매일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난 뒤, 혼자 집에서 외로울 수밖에 없다.하지만 그렇다고 밖에서 하고 싶은 대로 하지는 못했다. 어찌 됐든 윤미화가 누리는 모든 게 남편 덕이니까.만약 밖에서 함부로 몸을 굴렸다가 발각되기라도 하면 그녀는 끝장이다.하지만 김진호는 좀처럼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진작 윤미화를 제 백으로 둘 꿍꿍이를 꾸미고 있었다.그렇다면 앞으로 고생하면서 마사지사 일을 할 필요도 없으니까.김진호는 윤미화한테 말하면서 한편으로 그
“윤 사모님, 제가 사랑을 듬뿍 줄 수 있게 허락해 주세요.”김진호가 대담하게 말했다.그러자 윤미화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싸늘하게 말했다.“건방진 것! 어디서 감히!”김진호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윤미화를 자기 여자로 만들거나 이곳에서 떠나는 것뿐이었다.이건 그야말로 배짱을 시험하는 기회였다.워낙 윤미화를 자기 여자로 만들고 싶었던 김진호는 현재 더 열이 치밀어 자신을 억제하지 못했다.때문에 아예 달려가 윤미화를 와락 껴안았다.“윤 사모님, 저 정말 사모님을 사모합니다. 사모님 남편이 오랫동안 사모님을 건드리지 않은 걸 압니다. 지금 많이 외로우시죠?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윤미화는 다급히 김진호를 밀어내며 그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그 뺨 한 대에 김진호는 멍해졌다.그때 윤미화가 싸늘한 얼굴로 말했다.“감히 네까짓 게 나를 좋아해?”말을 마친 뒤, 윤미화는 곧장 화가 난 듯 뒤돌아 룸을 나섰다. 그녀는 문 앞까지 나갔다가 문득 자기 고양이가 아직 남아있는 게 생각났는지 다시 내 룸이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나는 얼른 본분을 잊지 않고 고양이를 마사지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조마조마해서 중얼거렸다.‘저 사람도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왔군, 감히 고객을 마음에 두다니.’내가 고양이를 마사지하고 있을 때, 윤미화가 내 룸으로 쳐들어왔다.나는 여자가 뜬금없이 나에게 화를 낼까 봐 두려웠지만, 여자는 오히려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됐으니 그만해. 얼른 우리 애기 안아와.”나는 고양이를 품에 안고 일부러 더듬거리며 조심스럽게 윤미화에게 다가갔다.내 착각일지 모르겠으나 윤미화는 내 왼쪽에 서 있다가 갑자기 오른쪽으로 이동했다.그 결과 내 손이 마침 여자의 가슴에 닿고 말았다.나는 너무 놀라 얼른 손을 뒤로 빼며 다급히 사과를 거듭했다.“윤 사모님, 죄송합니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닙니다.”“뭐 하는 거야? 내가 사장 불러내서 자르라고 하는 수가 있어!”윤미화는 버럭 소리치며 호통쳤다. 하지만
‘부자들 돈 벌기 참 쉽네.’“감사합니다. 윤 사모님.”나는 돈을 받아 들고 일부러 맹인 행세를 하며 한참 동안 만져보고는 그제야 놀란 표정을 지었다.“이렇게 많아요? 사모님, 너무 많은 거 아니에요?”윤미화는 만족스러운 듯 나를 바라봤다.“많은 것도 아니야, 우리 애기가 기분 좋았다면 얼마든 아깝지 않아. 참, 여기 방문 서비스도 받ㅇ냐?”그때 윤미화가 갑자기 물었다.어떻게 답해야 하는지 몰라서 고민중인 때, 정 사장님이 들어와 대답했다.“네, 받습니다. 여기 있는 맹인 마사지사 모두 방문 서비스를 가능합니다. 윤 사모님 고양이도 서비스가 필요하면 언제든 전화 주세요. 제가 집까지 마사지사를 보내드리겠습니다.”윤 사장님의 대답을 아주 완벽하다. 이 대답은 윤미화의 궁금증을 해결했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체면까지 지켜주었다.아니나 다를까, 윤미화는 만족스러운 듯 웃으며 말했다.“그럼 우리 애기가 필요하면 연락할게요.”“네.”정 사장님은 직접 윤미화를 마중했다.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왠지 불안했다.‘방문 서비스가 특별 서비스는 아니겠지? 정 사장님이 직원들한테 이런 일도 시키나?’윤미화가 떠난 뒤 나는 다급히 정 사장님께 물었다.“정 사장님, 방금 그게 무슨 뜻이에요?”내 질문에 사장님은 나를 사람이 없는 뒷마당으로 끌고 가더니 말했다.“수호 씨, 미리 말해둬야 할 게 있네. 우리는 확실히 정상적인 방문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고객님의 집에서 마사지해 주면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우리가 통제할 수 없어.”“어떤 서비스를 제공할지도 본인 의지에 맡기는 거고. 알겠니?”나는 당연히 알아들었다. 정 사장님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했고.방문 서비스는 당연히 일반 서비스보다 돈을 많이 벌 거다. 하지만 고객님의 집에서 어떤 서비스를 제공할지는 사장님은 관여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정 사장님이 나에게 미리 언질을 주는 건 내가 어떤 선택을 할지 미리 선택하라는 뜻이기도 했다.“알겠어요, 사장님.”나는 속으로 안도의
김진호는 두 눈에서 불을 내뿜고 있었지만, 정 사장님이 나서자 경솔하게 행동하지 못했다.하지만 나를 보는 김진호의 두 눈에는 악의가 가득 담겨 있었다.“정 사장님, 이 일은 저를 탓하시면 안 되죠. 가게 방침상, 마사지사들끼리 손님을 빼앗지 말라고 되어 있는데 정수호는 오늘 첫 출근이면서 고참인 제 손님을 빼앗아 갔어요. 첫날부터 이러는데 나중에는 어떻게 하겠어요?”그 말에 정 사장님이 덤덤하게 말했다.“우선 그 고양이는 김 쌤 고객이 아니잖아. 윤 사모님이 그 고양이를 수호 씨한테 맡겼으니, 그 고양이는 수호 씨 고객이야.”“그리고, 윤 사모님이 왜 수호 씨를 선택하고 김 쌤을 선택하지 않았는지 정말 모르겠나? 김 쌤이 고참이라서 말하지 않았는데, 눈치껏 행동해.”“고참이면 고참답게 모범을 보여야지 자네처럼 마음대로 행동하는 게 어디 있어?”정 사장님이 제 편을 들어주기는커녕 오히려 꾸짖어 다른 직원들마저 모여든 바람에, 김진호는 체면이 단단히 깎였다.아무리 그래도 고참인데, 체면이 있지.하지만 상대는 사장이기에 김진호는 모든 화를 나한테 돌렸다.김진호가 나를 죽일 듯 노려보는 눈빛을 본 순간, 나는 이 자식과 단단히 척을 졌다고 짐작했다.문제는 뭐 잘못한 것도 없이, 건드린 적도 없는데 이렇게 되었다는 게 너무 억울했다.김진호가 씩씩거리며 뛰쳐나가자 구경하던 직원들도 서서히 흩어졌다.하지만 나는 너무 답답하고 억울했다.‘앞으로 일할 때 김진호한테 꼬투리 잡히지 않게 조심해야겠네.’“김진호는 내 동창인데 워낙 성격이 안 좋네. 하지만 내가 잘 타이를 수 있으니, 앞으로 또 이런 일이 생기면 나한테 찾아오게.”정 사장님은 내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나도 정 사장님이 참 좋은 분이고, 나에게 관심을 주는 것도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정 사장님을 귀찮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문제만 있으면 고발하는 것 또한 남자다운 행동이 아니고.때문에 나는 얼른 대답했다.“걱정해 주셔서 감사하지만 그러실 필요 없어요. 저 혼자 해결할 수 있어
윤미화가 소리 지르려 할 때 나는 재빠르게 그녀의 입을 막았다.“윤 사장님이 제 방에 들어온 거예요. 게다가 분명 먼저 저를 키스했잖아요. 전 꿈이라고 착각했어요. 이건 제 탓 아니라고요. 소리도 치지 마요. 한밤중에 소리 지르면 사모님이 올 텐데, 이 상황 어떻게 설명할 거예요?”나는 한꺼번에 말을 내뱉었다.‘젠장, 누가 잘 자고 있는데 이 여자가 갑자기 내 이불 속으로 들어올 줄 알았겠냐고?’게다가 나는 진짜 꿈에서 애교 누나를 만난 줄 알았다. 사귀는 사이에 이런 짓을 하는 건 정상 아닌가? 그런데 상대가 윤미화일 줄이야. 진짜 귀신 곡할 노릇이다.윤미화는 얼른 옷을 정리하고는 씩씩거리며 내 등을 찰싹찰싹 때렸다.나는 상대가 더 이상 소리 지르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서고 나서야 손을 풀었다.그랬더니 윤미화가 나를 째려봤다.“아주 땡잡았겠네? 오늘 일 절대 입 밖에 내지 마.”“내가 미치지 않고서야 이걸 왜 말하겠어요? 그리고 왜 갑자기 제 방에 들어와서 이불 속으로 팍 들었는데요? 그것도 모자라 키스까지. 혹시 예전부터 저랑 자고 싶었던 거 아니에요?”윤미화는 어이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내 남편이 수호 씨보다 훨씬 잘생기고 돈도 많은데, 내가 왜 수호 씨를 좋아하겠어? 잠결에 내 집인 줄 알아서 그랬지. 게다가 수호 씨가 내 남편인 줄 알기도 했고...”그렇다면 참 난감해진다나는 상대가 애교 누나인 줄 알고, 상대는 내가 제 남편인 줄 알았다니.그래도 끝까지 가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하지만 왠지 모르게 내 머릿속에는 불을 켰을 때 봤던 윤미화의 나른하고 매혹적인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특히 밖에 훤히 드러난 가슴이 유독 매력적이었다.아마도 내가 자기 전에 너무 참아서 그런지 이 순간 윤미화의 이런 모습을 보니 너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심지어 아무 생각도 없이 이대로 윤미화를 덮쳐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를 제대로 감상하고 싶었다.윤미화는 저를 빤히 쳐다보는 내 눈빛에 너무 당황해했다. 그동안 남편 외의 다른 이성과 이런
나는 영상 하나를 찾아 빨리 내 안의 욕구를 풀 생각이었다.하지만 내가 한창 욕구 해소에 정신이 팔렸을 때, 갑자기 밖에서 들리는 노크 소리에 하마터면 간 떨어질 뻔했다.나는 얼른 영상을 끄고 바지를 올리고는 전전긍긍하며 물었다.“누구세요?”“수호 씨, 나예요.”사모님이었다.‘사장님이랑 끝났나?’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서 문을 열었다.하지만 사모님은 약간 넋이 나간 모습인 데다 기분이 가라앉은 듯했다.“왜 그러세요?”나는 걱정스러워 물었다.‘사모님이 왜 갑자기 기분이 안 좋아지셨지? 표정은 왜 이렇고?’“약욕 시간 다 됐어요. 나랑 같이 호섭 씨 침대에 좀 옮겨요.”사모님은 말을 마치자마자 뒤돌아섰다.사모님은 아무리 봐도 무슨 일이 있는 듯했는데, 먼저 말하지 않으니 나도 물어볼 수 없었다.나는 헐렁한 외투를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하면 부풀어 올라 민망한 내 그곳을 가릴 수 있었으니까.나와 사모님이 욕실로 들어가자 사장님은 난감한 표정으로 사모님을 바라봤다.“유미야, 나...”사장님은 뭔가 말하고 싶은 듯했으나 사모님이 말을 잘랐다.“다 알아. 그러니까 말하지 마. 우선 몸조리부터 잘해.”사장님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두 분 왜 이러지? 설마 사장님이 아까 실패해서 미안해하는 건가?’가끔 어떤 일은 사실을 간파하고 있어도 말하지 않는 게 서로에게 좋다.나는 사모님을 도와 사장님을 방에 옮겼다. 사장님은 침대에 누운 채 시선을 사모님한테서 떼지 못했다.“수호 씨, 오늘 고마웠어. 오늘 더 이상 아무 일 없으니까 가서 쉬어.”“네.”나는 짤막하게 대답하고 객실로 돌아갔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방금 전 일을 생각했다.사모님은 만족하지 못한 게 틀림없다.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실망한 표정을 할 리 없다. 사장님은 지금 몸 건강이 안 좋아 사모님을 만족하게 하는 게 어려울 거다.‘하, 사장님이 얼른 나아서 두 분 백년해로해야 할 텐데.’사모님이 예쁘고 몸매도 좋은 데다 농염하고 관능적이기까지 하다.
나는 애교 누나에 대한 생각을 오래 하지 않았다. 지금은 신경 써야 할 일이 너무 많았으니까.양동준은 나에게 열흘이라는 기한을 줬고, 민우와 함께 따로 나가서 사업해 보려던 계획도 계속 진행해야 하고, 또 사장님 치료도 신경 써야 했다이 중에 중요하지 않은 일은 없었다.특히 열흘 기한 중에 벌써 이틀이나 지났는데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놓치면 나한테 영영 기회가 오지 않을 수 있었다.내가 한창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욕실 쪽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유미야, 이러지 마. 수호 씨 아직 집에 있어...”그건 분명 사장님 목소리였다. 사장님은 내가 듣지 못하게 하려고 일부러 목소리를 내리 깔았다.곧이어 사모님 목소리도 들렸다.“수호 씨는 지금 방에 있어 못 들을 거야. 호섭 씨, 우리 한동안 안 했었잖아. 내가 뭐 다른 거 하자는 게 아니잖아. 그냥 같이 목욕하자.”사모님 목소리는 약간 안달 나 있었다.순간 내 머릿속에 욕실 속 장면이 그려졌다.풍만한 몸매가 얇은 천에 가려졌지만 사모님의 고혹적인 느낌은 가리지 못했다.그 모습을 상상하니 아랫배가 갑자기 뜨거워졌다.그때 사장님은 여전히 거절했다.“안돼. 수호 씨가 들어오면 얼마나 어색해.”“문 잠그면 되지. 호섭 씨, 나 거절하지 마. 나도 정상적인 여자야. 나도 욕구가 있다고. 내가 다른 거 바라는 거 아니잖아. 그냥 나 좀 만져주고 안아주고 키스해 주면 돼.”사모님의 말에 나는 피가 들끓었다.마음 같아서는 내가 나서서 사모님의 욕구를 채워주고 싶었다. 하지만 사장님은 여전히 거절했다.“유미야, 그만 벗어. 계속 이러면 나도 못 참아...”사모님은 약간 넋이 나간 듯 말했다.“못 참겠으면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잖아... 호섭 씨, 나 하고 싶어...”나는 사모님이 이렇게 적나라한 말을 할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아래는 이미 부풀어 올랐다.욕실 안에서는 어느새 말소리가 끊기더니 희미하게 가쁜 숨소리가 들리는 듯했
그랬더니 민우는 고개를 마구 저었다.“난 싸우는 건 괜찮지만 분석하는 건 됐어. 머리는 네가 나보다 더 잘 돌아가잖아.”나는 피식 웃었다. 그렇게 놓고 보면 나와 민우는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사이다. 민우는 싸움 실력이 뛰어나지만 냉정하지 못해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고. 나는 싸움 실력이 달리지만 민우보다 머리가 잘 돌아간다.그 때문에 우리는 함께 협조할 때 호흡이 잘 맞는 거다.“주해진이 무슨 꿍꿍이가 있든 절대 방심하면 안 돼. 1800만 원은 이미 우리 손에 넘어왔으니 도로 가져갈 생각 못 하게 해야지.”이 돈은 우리의 사업 자금이기에 나는 절대 주해진이 도로 빼앗아 가게 둘 생각이 없었다.게다가 이 차가 이렇게 됐는데도 주해진한테서 보상금을 받은 뒤로 마음이 덜 아픈 것 같았다. 나중에 페인트칠 조금 하면 사실 별문제 없으니까.전에 내가 그렇게 흥분한 건 사실 너무 가난해서였다.어렵게 돈 벌어 차를 장만했는데, 할부도 채 갚지 못했는데 엉망이 되면 누구라도 마음이 아플 거다.역시 사람은 돈에 목숨을 건다는 선조들의 말이 맞나 보다.나는 민우를 집에 데려다주고 나서 사모님 댁에 갔다.사모님은 왜 이렇게 늦게 왔냐고 물었지만, 나는 두 분을 걱정하게 하지 않으려고 주해진이 찾아온 일은 말하지 않고 개인적인 일 때문에 지체되었다고만 했다.그러자 사모님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수호 씨, 호섭 씨가 약욕해야 하는데 좀 도와줘요.”“네.”나는 두말없이 사모님을 도왔다.사모님 집 욕실에는 커다란 욕조가 있었는데 마침 약욕을 하기 알맞춤했다.나와 사모님은 헐떡대며 한참을 바삐 돌아친 끝에 겨우 목욕물을 준비했다.뜨거운 물이 증발하면서 욕실 안에 열기가 오른 데다 힘을 썼더니, 나는 어느새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그러다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어 봤더니 얇은 실크 슬립을 입고 있던 사모님 역시 옷이 수증기에 젖어 몸에 찰싹 달라붙었다. 얇은 옷감에 속이 보일락말락 하는 모습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매번 느끼는 거지만 사모님
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 주해진을 바라봤다.“왜 이렇게 쉽게 돈을 주는 거지?”주해진이 오늘 이 사달을 벌이느라 분명 적지 않은 돈을 썼을 텐데, 나한테 2천만 원 가까이 되는 돈까지 배상하니 또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닌지 심히 의심됐다.“이 전에는 이대로 넘어가는 게 도저히 용납이 안 댔는데, 두 사람 실력을 보니 승복했거든. 두 사람 말대로 나도 젊을 때는 이 바닥에서 몇 년을 굴렀는데, 한 번도 두 사람처럼 죽기 살기로 싸우는 사람을 못 봤거든.”사실 주해진은 말을 아꼈다. 그가 가장 두려운 건 우리의 믿기지 않는 전투력이 아니라 궁지에 몰렸으면서 상황을 역전한 거였다. 그거야말로 가장 두려운 거였으니까.주해진은 우리를 맹수라고 느꼈다. 그것도 싸울수록 더 미쳐 날뛰는 맹수. 심지어 궁지로 몰아넣으면 넣을수록 우리는 오히려 피에 굶주린 모습을 드러냈다.주해진은 제 체면을 회복하고 싶어 그동안 승복하지 않은 거였는데, 우리가 절대 건드리면 안 되는 존재라는 걸 알았으니 더 이상 저항할 필요가 없었다. 어쨌든 그는 이미 손을 씻었고, 이제는 그저 장사를 하며 지내기에 어렵게 얻은 걸 망치고 싶지 않았다.나는 여전히 반신반의했지만 민우는 나더러 먼저 돈을 받으라고 계속 눈을 깜박거렸다.나도 민우의 뜻을 알고 있었다. 이걸 나중에 우리의 사업 자금에 보태자는 뜻이었다. 1800만 원이나 되는 돈을 보니 나도 확실히 마음이 동해 결국은 말없이 받았다. 주해진은 김진호와 안명훈더러 우리에게 사과하게 했고, 두 사람은 찍소리 못하고 순순히 사과했다.떠나갈 때 주해진은 제 차를 나에게 주면서 몰고 가라고 했다.그 순간 나는 오히려 경계심이 곤두섰다.“돈도 배상했으면서 차는 왜 주는 거야? 설마 또 해코지하려고?”주해진은 호탕하게 웃었다.“경계심 너무 많은 거 아니야? 그냥 친구 삼고 싶어서 주는 거야.”“그런데 난 그쪽이랑 친구하기 싫은데.”나는 고민도 없이 거절했다.주해진은 여전히 너털웃음을 터뜨렸다.“너무 빡빡하게 굴지 말고. 친
김진호는 속이 좁고 질투심이 강하지만 실력은 별로 없다. 특히 일이 터지면 항상 겁을 먹고 뒤로 물러난다.그런데 주해진이 자기를 내밀자 안명훈보다 더 겁을 먹었다.“싫어요... 안 돼요... 해진 형, 저 자식 차를 망가뜨리라고 한 건 형이잖아요. 저더러 형 대신 뒤집어쓰게 하면 안 되죠.”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김진호는 제가 한 짓에 책임지지 못하고 주해진의 체면을 바닥에 짓밟았다.주해진은 너무 쪽팔려서 김진호의 뺨을 내리치면서 버럭 소리쳤다.“사과하라면 해. 어디서 말이 그렇게 많아? 젠장. 내가 널 돕지 않았다면 수호 동생한테 미움 살 일이 있었겠어?”한창 화를 내고 있던 나는 그 말에 순간 멍해졌다.‘수호 동생? 지금 나를 말하나?’‘젠장, 내가 언제 제 동생이 됐다는 거야?’“어디서 친한 척이야? 너희 셋 다 내려와.”나는 차를 또다시 쾅쾅 내리쳤다.민우 역시 차 위에서 나를 협조해 주었다.승합차가 우리 때문에 완전히 뒤집힐 지경이 되자 주해진은 우리와 연맹을 맺으려는 듯 은근슬쩍 나를 회유했다.“수호 동생, 그만해. 내려갈게. 우리 사이에는 원한이 없잖아. 수호 동생이랑 원한 있는 건 김진호잖아. 그리고 안명훈 저 자식도 자기 여자 친구더러 동생 친구 꼬시라고 했어. 저 둘 중에 좋은 놈 하나 없어. 내가 지금 바로 이 두 놈 내려 보내겠으니까 마음대로 처리해.”주해진은 말을 마치자마자 정말로 김진호와 안명훈을 끌어내 앞에 내팽개쳤다.내 분노는 사실 김진호와 안명훈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가장 큰 원인은 내 차가 박살 난 것 때문이다. 그리고 주범은 바로 주해진이다.때문에 나는 화가 잔뜩 나서 주해진을 향해 파이프를 휘둘렀다.“이 자식들 빚은 내가 천천히 받을 거야. 하지만 내 차를 망가뜨린 건 어쩔 건데?”주해진은 고개를 돌려 내 차를 흘긋 보더니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마도 배상할 수 있는 저렴한 차라 안도한 듯했다.“수호 동생, 저 차는 1600만 정도 하지? 내가 나중에 새 차 하나 뽑아줄게.”주해진이
사실 오늘 안명훈은 이곳에 오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주해진이 기어코 자기 위엄을 보여주겠다고 불러냈다.그런데 주해진의 위엄은 못 보고 오히려 나와 민우의 미친 모습만 보게 된 거다. 그러니 혼비백산이 되지 않을 리가 있나?안명훈은 필사적으로 차 문을 흔들었다.“나 내릴래. 내려줘...”주해진은 안명훈의 뺨을 후려갈기더니 씩씩거리며 욕설을 퍼부었다.“사내자식이 내리긴 어딜 내려? 네가 문을 내리면 저놈들이 올라올 거잖아. 문 열면 안 돼. 얌전히 앉아 있어. 설마 저 자식이 문을 부수겠어?”펑!나는 승합차를 향해 쇠 파이프를 세게 휘둘렀다.그러면서 속으로는 방금 전의 울분을 토해냈다.‘내 자식 같은 새 차, 아직 할부도 안 끝나 얼마나 애지중지했는데. 네놈들 때문에 고물이 됐잖아.’나는 승합차를 내리치면서 욕설을 퍼부었다.“나와. 차 안에 숨어 있는 게 겁쟁이랑 뭐가 달라?”차 안 세 사람 눈에 나는 충혈되어 시뻘게진 눈을 가진 분노한 맹수나 다름없었을 거다.안명훈은 완전히 겁을 먹어 나한테 끊임없이 간청했다.“오늘 밤 일은 나랑 상관없어... 제발 살려줘. 제발...”주해진도 솔직히 속으로는 무서웠지만 안명훈이 저 하나 살려고 자신을 배신한 걸 보자 화가 나서 그를 발로 차버렸다.안명훈은 그 힘에 못 이겨 옆으로 벌러덩 굴러 넘어졌다.그때, 마침 유리창을 깨뜨린 나는 쇠 파이프로 주해진을 가리키며 소리쳤다.“셋 셀게, 당장 내려. 안 그러면 죽이는 수가 있어.”주해진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그럴 필요까지 있어? 내가 사람을 불러 모으긴 했지만 무기는 안 들었잖아. 게다가 저놈들은 겁을 먹고 이미 도망쳤어. 너희 둘도 크게 다치지 않았으먼서 꼭 미친 짐승처럼 나를 그렇게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겠어?”나는 이를 악물었다.“난 짐승처럼 네 놈을 물고 늘어지는 거로 안 끝나. 아주 뼈도 안 남기고 씹어 먹을 거야. 내가 얼마나 어렵게 산 차인데, 평소 아까워서 조심조심 다뤘는데, 네 놈 때문에 폐차하게 생겼잖아. 내 차 물어
나는 여전히 손에 든 쇠 파이프를 필사적으로 휘둘렀다. 분명 이길 수 없다는 걸 알았지만 그렇다고 기죽을 수도 없었다.민우가 말한 적이 있는데, 싸울 때 가장 무서운 건 싸우기 전부터 겁을 먹는 것이라고 했다.하지만 한참 싸우다 보니 나는 점점 힘에 부쳤다. 놈들 인원수가 너무 많아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았다.그렇다고 이대로 쓰러질 수는 없었다.인체에는 자극을 받으면 잠재력을 자극하는 혈 자리가 있는데, 그 혈 자리가 자극을 받으면 잠재력이 폭발했다가 나중에 한동안은 몸이 나른해진다.하지만 이 상화에서 다른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기에 나는 고민 없이 혈 자리를 눌렀다. 그 순간 온몸에 힘이 솟아나면서 내가 마치 거인이 된 느낌이었다.“야! 다 죽었어!”나는 고함을 지르는 동시에 쇠 파이프를 휘두르면서 달려갔다.나를 에워싸고 있던 놈들은 내가 더 이상 전투력이 없다는 걸 보고 모두 긴장을 푼 상태였다. 하지만 나는 갑자기 미친 것처럼 놈들의 코뼈를 하나씩 부러뜨렸다. 심지어 손이 무척 매웠다.나는 피가 들끓어 끊임없는 힘이 솟구치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매번 파이프를 휘두를 때마다 젖 먹던 힘까지 짜냈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는데도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나도 한방에 놈들 뼈를 부러뜨릴 수 있다는 것에 흥분됐다.‘만약 동준 형님이 이 모습을 본다면 나에게 재능이 있다고 여기지 않을까?’싸울수록 피가 끓고 힘이 솟아났다. 놈들은 심지어 나를 보자 연신 뒷걸음쳤다.옆에 있던 민우마저 나를 보면서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물었다.“수호야, 너 대체 어떻게 한 거야? 난 지금 힘들어 죽겠는데...”나는 혈 자리를 가리켰다.그러자 민우는 바로 눈치챘다.민우 역시 의학을 전공한 지라 말하지 않아도 바로 알 수 있었다. 곧이어 민우 역시 스스로 한 대 치더니 갑자기 피가 솟구치는 것처럼 흥분했다.“하하하, 나도 다시 회복했어. 너희들 죽었어.”우리는 서로 협조하면서 놈들한테 달려가 퍽퍽, 주먹을 날렸다.우리를 끝장내버리겠다고 큰소리치던 놈
전에는 누가 와서 소란을 피울까 봐 민우더러 나와 함께 가게에서 지내자고 했지만, 지금 사장님 댁에 머물고 있는데 민우까지 데려올 수는 없었다. 때문에 뭐든 나 혼자 해결해야 했다.민우를 집에 데려다 두는 길에 그는 나에게 함께 사장님 댁에 있어 달라냐며 물었다. 그러면 서로 보살필 사람이 있다면서.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나도 그걸 생각해 보지 않은 적 없어. 하지만 사장님을 돌보려고 그 집에서 지내고 있는데 너까지 데려가면 이상하잖아.”“난 그 개자식들이 또 너한테 무슨 짓 할까 봐 그러지.”“나도 무서워. 하지만 이미 준비해 뒀어.”나는 의자 밑에서 도구 몇 개를 꺼냈다.민우는 그 도구들을 손에 들고 무게를 가늠해 보더니 말했다.“이 도구들은 조금 도움이 될 뿐이야. 그래도 내가 너한테 가르쳐준 방법을 사용해.”민우는 말하면서 손을 움켜쥐는 동작을 했다.그 동작에 나는 풉, 하고 웃음이 터져 버렸다.“그 방법 확실히 좋더라...”우리가 한창 얘기하고 있을 때 백미러에 언뜻거리는 차 한 대가 비쳤다.무의식적으로 뒤에 따라붙은 사람이 운전할 줄 모른다며 투덜거리던 나는 갑자기 이상한 낌새를 챘다. 그도 그럴 게, 뒤에서 달려오는 차는 속도가 아주 빨랐는데 마치 나를 강제로 세울 것처럼 굴었으니까.“잘 앉아.”나는 불안한 예감에 다급히 액셀을 밟아 속도를 냈다.다만 내 차의 유일한 단점은 속도를 너무 빨리 낼 수 없다는 거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뒤 차에 따라잡혔다.놈들은 내 차를 강제로 멈추게 할 작정인 듯했다. 하지만 나는 멈추고 싶지 않았다. 상대방 차량은 승합차였는데, 그런 승합차는 용량이 커 적어도 열댓 명을 태울 수 있었다.만약 차에서 열 몇 명이 우르르 내리면 나와 민우 둘이 대처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때문에 나는 액셀을 밟았다. 하지만 승합차 두 대는 좌우에서 협공하며 내 차를 가운데 몰아 끼긱끼긱, 하며 긁히는 소리가 났다. 분명 차가 내는 소리였지만 내 살점이 뜯겨나가는 기분이었다.아직 차 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