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에 싸인 귀빈? 말을 끝까지 할래?”“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저기 봐, 그 귀빈이 저기 있어.”형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고귀하고 우아한 여자를 가리켰다.나와 형수는 형이 가리킨 여자를 보고 나서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교환했다.형은 아직 형수가 나한테 모든 걸 알려줬다는 걸 모르고 있다.‘이제부터 계획을 실행하려는 건가?’형수는 나를 흘긋거리더니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듯 대신 물었다.“저 여자는 뭐 하는 여자야? 보아하니 대단한 사람 같은데.”“저 여자의 이름은 소여정인데, 저 여자가 오늘 이 술자리를 마련한 주최자야.”형수는 ‘소여정’이라는 이름을 들은 순간 눈을 땡그랗게 떴다.“소여정? LD 건설 회장의 정부?”“쉿, 조용히 해. 듣겠어.”형은 다급히 귀띔했다.그러자 형수도 놀랐는지 얼른 입을 다물었다.‘형수가 이토록 긴장하는 건 또 처음 보네? 고작 정부 하나가 뭐가 두렵다고 이러지?’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하지만 소여정이라는 여자는 확실히 예뻤다. 게다가 옷차림에서 귀티가 났다.나이도 얼핏 보면 30 정도인데, 태생부터 귀족의 분위기를 타고난 것 같았다.“당신이 저 여자는 어떻게 알아?”그때, 형수가 궁금한 듯 다시 물었다.그러자 형이 얼른 대답했다.“사실 전에 우연히 식사 자리에서 만났거든. 그때 대화가 잘 통해서, 소여정 씨가 이번에 파티를 연다며 초대장을 보내줬어.”나와 형수는 형의 말을 믿지 않았다.소여정이 어떤 여자인가? 온몸에 귀티가 흐르고,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존재인 데다, 거리감이 느껴지는 여자다. 그런데 그런 여자와 형이 대화가 잘 통했다고?‘지나가던 개도 웃겠네.’하지만 형과 이 여자가 어떻게 알게 됐는지는 여전히 의문이었다.그때, 형이 형수의 손을 잡더니 나를 흘긋거렸다.“이따가 내가 두 사람한테 소여정 씨를 소개해 줄게. 수호야, 이번이 너한테 엄청 좋은 기회니까 꼭 잘 잡아. 소여정 씨는 발이 엄청 넓어. 네가 만약 소여정 씨랑 친하게 지낸다면 앞으로 너의 미래에
나는 갑자기 불안해 났다.왠지 모르게 소여정과 가까워질수록 내 심장은 더 빠르게 요동쳤다.소여정은 마치 신비로운 힘이 있는 것처럼, 저도 모르게 그녀를 엿보고, 가까이하고, 알고 싶게 했다.‘남의 정부나 하는 여자가 어떻게 밖에서 대놓고 잘생긴 남자들을 만날 수 있지?’이건 너무 아이러니했다.“소여정 씨, 안녕하세요. 저 왔어요.”형은 여자 앞에서 약간 비굴해 보였다.형의 목소리에 여자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방금 전까지 여자는 계속 우리에게 옆모습만 보이고 있었는데, 나는 그때부터 이 여자라 너무 예쁘고 귀티가 난다고 생각했다.특히 몸에 두른 보석마저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것 같았다.하지만 소여정이 고개를 돌린 순간, 나는 그녀의 외모에 넋이 나갔다.‘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예쁜 여자가 있지?’나는 당장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심지어 눈을 깜빡이는 것도 잊은 채 소여정을 빤히 바라봤다.‘와! 너무 아름답잖아.’소여정을 본 순간, 나는 타고난 귀족의 아우라가 뭔지 알 것만 같았다.이 여자는 외모뿐만 아니라 분위기까지 아름다웠다.장담하건대, 이 세상에 이런 분위기를 낼 수 있는 사람은 아마 더 없을 거다.“수호야, 얼른 인사드려.”형의 말에 나는 얼른 인사했다.“소여정 씨, 반가워요.”여정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만족했는지 감탄을 자아냈다.“괜찮네!”‘괜찮네? 뭐가 괜찮다는 거지?’‘얼굴? 아니면 몸매?’하지만 뭐가가 됐든, 이 여자의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나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칭찬 감사합니다.”이 장면을 본 사람들은 득달같이 달려들어 본인들의 얼굴을 알리려 했다.하지만 그때, 소여정이 말했다.“여러분, 저는 피곤해서 이만 쉬러 갈게요. 정수호 씨, 침술과 마사지를 할 줄 안다던데, 나 대신 마사지 좀 해줄래요?”나는 무의식적으로 형을 바라봤다.그랬더니 형은 나를 향해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럼요. 수호야, 얼른 대답해야지.”“네.”나는 멍하니 대답했다.소여정은 싱긋
형수는 나의 안전을 무척이나 걱정했다.하지만 그걸 알 리 없는 나는 소여정과 함께 호텔 위층으로 올라왔다.호텔 방은 매우 컸는데, 불빛이 어두워 약간 야릇한 분위기가 났다.소여정은 겉옷을 벗으며 새하얀 목덜미를 드러냈다. 그녀의 피부는 눈으로 보기만 했는데도 엄청 좋았다. 하얗고 부드러워 마치 백옥 같았다.게다가 몸매는 또 어쩜 그리 좋은지, 완벽한 S라인이었다.오프숄더 드레스는 소여정의 섹시한 몸매를 더욱 부각해 주었다.그때 소여정이 숄을 벗어 던지고 침대에 엎드렸다.“됐으니 이제 시작해요.”여자의 S라인 몸매를 보자, 나는 저도 모르게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이렇게 예쁜 여자가 왜 남의 정부나 하고 있지?’하지만 소여정을 스폰하는 남자는 몸값이 족히 몇백억이 넘는 LD 건설 회장이라고 했으니...‘돈은 엄청 많겠네.’그 정도 사람이 밖에서 정부를 찾을 때, 예쁘고 몸매도 좋은 여자를 찾는 건 당연하다. 얼굴과 몸매가 따라주지 않으면 정부가 될 자격도 없다.나는 여정 쪽으로 걸어가며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아름다운 몸을 보니 나는 어디서부터 손을 내야 할지 막막했다.‘이 여자한테는 쉽게 손을 대지 못하겠네.’그때 여정이 고개를 돌려 물었다.“뭐 하고 있어요? 얼른 시작해요.”“소여정 씨, 방금 여정 씨 안색을 관찰했는데 큰 문제는 없어 보였어요. 마사지는 필요 없지 않나요?”나는 너무 무서워 한발 물러났다.왠지 자꾸만 이 여자한테 손대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으니까.그러자 여정이 침대에서 일어나 앉더니 나를 빤히 바라봤다.“누가 마사지해달라고 했어요?”“네?”‘정말 이렇게 직설적으로 나온다고? 그러면 더 불안하잖아.’‘내가 장난감도 아니고, 이 사람 저 사람한테 보내지는 건 나도 싫다고.’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만약 저한테 그런 걸 요구한다면, 더 이상 얘기할 필요 없겠네요. 전 동의할 생각 없어요.”나는 말을 마치고는 돌아서서 떠날 준비를 했다.“거기 서요! 진동성 씨가 데려오면서 아무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나는 순간 화가 치밀었다.‘젠장. 네 목숨만 목숨이야? 내 목숨은 목숨 아니야?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이기적일 수 있지?’‘얼굴만 예쁘면 뭐 해? 이렇게 이기적인 사람인데.’그때 소여정이 못마땅한 듯 물었다.“내가 뭐요? 내가 뭐 잘못 말했나요?”“잘못 말했냐고요? 네. 사람이 어떻게 본인의 쾌락을 위해 남이 죽든 말든 상관하지 않을 수 있어요? 너무 악독한 거 아니에요?”나는 너무 화가 나서 생각나는 대로 내뱉었다.그러자 소여정의 얼굴은 순간 어두워지더니 싸늘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뭐? 감히 나를 모욕해?”나는 순간 여자의 신분이 범상치 않다는 게 떠올랐다.그런데 그렇게 대단한 여자 앞에서 아무 말이나 내뱉다니, 이건 너무 주제 넘는 행동이었다.때문에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양보였다.하지만 소여정은 기세등등하게 나를 몰아붙였다.“사과해.”“내가 왜 사과해야 하죠? 틀린 말도 아닌데.”“이유 없어. 내가 사과하라고 하면 사과해!”‘이기적인 데다 포악스럽기까지 하네. 정말 얼굴이 아깝네.’‘이렇게 예쁜 얼굴로 왜 사람답지 못한 짓을 하지? 정말 최악이네.’나는 화를 참지 못하고 고집스레 말했다.“사과 안 하면 어쩔 건데요?”소여정은 아무 말 없이 테이블 위에 놓인 폰을 집어 들더니 어디론가 전화했다. 그리고 곧이어 명령조로 말했다.“파티장에 있는 진동성이라는 사람을 당장 쫓아내.”“헐, 꼭 이래야겠어요?”나는 너무 놀라 무의식적으로 달려가 폰을 빼앗으려 들었다.그러자 소여정이 싸늘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봤다.“내 털끝 하나라도 건드려 봐.”나는 다급히 손을 움츠렸다. 이 여자는 건드리기가 무섭다.‘그래도 이건 너무 하잖아.’‘이 여자를 건드린 건 나지 형이 아닌데, 왜 형을 쫓아내라고 하는 거야?’아래에 명망 있는 인물들이 가득한테, 형이 쫓겨나면 얼마나 쪽팔릴까?게다가 분명 형의 사업에까지 안 좋은 영향이 미칠 거다.나
“그런데 아까는 왜 그렇게 말했어요?”“장난친 건데, 정말 몰랐어?”소여정은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나를 바라봤다.그 순간, 나는 이 여자를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여자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정부가 대놓고 다른 남자를 만난다는 건, 죽고 싶다는 뜻이나 다름없다.그런데 방금 여자가 나를 놀리던 걸 생각하니 화가 치밀었다.‘어떻게 그런 장난을 칠 수 있지? 내가 얼마나 놀랐는데.’“그러면 정말 마사지를 부탁하려고 부른 거예요?”나는 이곳에 계속 남아 있을 핑계를 댔다.‘나를 그렇게 희롱했겠다? 이따가 제대로 혼내주지.’소여정은 다시 침대에 누우며 매혹적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맞아. 그게 아니면 내가 왜 당신을 불러들였겠어?”나는 여자에게 다가가며 또 물었다.“그럼 방금 전에 모여든 사람들도 한의사예요?”“아마도. 그중 일부는 한의대생이고, 일부는 갓 졸업한 병원 인턴일 거야. 물론 상세한 건 나도 모르지만, 모두 그쪽처럼 나한테 접근하기 위해 온 사랍들이야.”“그럼 왜 나를 선택했어요?”이건 나도 궁금했다. 그와 동시에 내가 그 사람들보다 특별한 게 뭐였는지 알고 싶었다.“진동성 씨 말로는, 수호 씨가 시골에서 와서 사람이 점잖다고 하더라고.”소여정의 말에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이게 대체 무슨 이유야? 물어보지나 말걸.’나는 불만조로 말했다.“한의사를 찾는다면 점잖고 말고 뭔 상관이에요? 애인 찾는 것도 아니고.”“당연히 상관있지. 점잖아야 함부로 하지 않을 거잖아. 만약 가벼운 사람이라면 분명 미색으로 나를 유혹했을 거야.”“나는 새장에 갇힌 카나리아와 같은 신세거든. 밖에서 함부로 할 수 없어. 그런데 솔직히 그런 게 싫어, 나도 다른 남자를 만나보고 싶어.”나는 들을수록 멍하기만 했다.“본인이 카나리아와 같은 신세라면서요? 여정 씨의 그분이 여정 씨가 다른 남자를 못 만나게 한다면서요? 그런데 어떻게 만나려는 거예요?”“먹지도 만지지도 못한다
자기만 편해지려 하고 내 안위는 안중에도 없는 소여정을 보자 나는 화가 치밀었다.‘어떻게 할 수 없다면 마구 만지면 그만이지.’‘이렇게 말랑한 허리, 이렇게 향긋한 몸은 만지는 것만으로도 즐거울 테니까.’나는 조용히 여자의 나른한 몸을 느끼기 시작했다.그때, 갑자기 소여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힘 좀 팍팍 써. 하나도 못 느끼겠잖아.”나는 소여정의 말대로 손에 힘을 주었다.그랬더니 소여정은 더 높은 소리로 신음을 내기 시작했다. ‘남주 누나랑 겨뤄도 되겠어.’하지만 이 여자가 나한테는 조금 더 매력적이었다.얻기 어려운 것일수록 손에 넣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니까.이런 쪽에서도 마찬가지다.나는 일부러 질문했다.“지금 엄청 굶주린 것 같은데, 맞죠?”소여정은 엉덩이를 살살 흔들었다.동그랗게 탐스러운 엉덩이는 드레스에 가려져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고개를 돌려 나를 보는 소여정의 눈 역시 너무 매혹적이라서 사람의 혼을 빼앗아 갈 것만 같았다.“내가 굶주렸는지 그쪽이랑 무슨 상관이지? 날 건드릴 배짱이나 있고 말하는 거야?”소여정의 말투에는 경멸이 가득 담겨 있었다.그걸 들으니 나는 상처도 받고 자존심도 상했다.전에 나를 불러들인 게 분명 내가 점잖아서라고 했는데, 아까는 일부러 놀려대며 내가 당황한 모습을 비웃기나 하고.이 여자 안중에 나는 고작 장난감에 불과했다.그런데 주제도 모르고 농락했으니 모욕을 들어도 싸다.“못 들은 거로 해요.”나는 너무 후회되어 더 이상 이 여자와 상종하지 않겠다고 속으로 맹세했다.하지만 소여정은 나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그쪽이 못 들은 거로 하란다고 내가 그래야 해?”“그럼 대체 어떻게 하고 싶은데요? 그쪽이 먼저 야한 소리를 냈고 자꾸만 몸을 배배 꼬며 야한 자세를 취하며 오해하게 했잖아요.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물어본 건데, 그것도 안 되나요?”나는 또 이 여자한테 당했다는 생각에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 그랬더니 소여정은 빙그레 웃으며 나를 봤다.“방금 심장 떨렸지?”‘역시
‘내가 정말 점잖은 줄 알아?’‘내가 지금은 이렇게 당하고 있지만, 나도 한 성깔 한다고. 절대 호락호락 당하고만 있지 않아.’나는 차가운 눈빛으로 여자를 훑으며 비아냥거렸다.“대체 정부는 어떻게 된 거예요? 성격도 나쁘고 남을 놀려먹기 좋아하고, 내가 만약 부자라면 절대 그쪽 같은 사람 정부로 두지 않을 거예요.”소여정은 순간 더 요염하게 자세를 바꾸었다. 그 순간 가느다란 허리와 탐스러운 엉덩이가 더 돋보여 나는 너무 괴로웠다.그때 소여정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이 얼굴과 몸매면 말 다한 거 아니야?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 내 얼굴과 몸매를 보고도 반응하지 않았는지?”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솔직하게 말하기도 싫고, 거짓말하고 싶지도 않았으니까. 어떤 말을 해도 이 여자에게 나를 놀릴 거리만 더해주는 셈이었다.소여정은 의자를 가리키며 앉으라는 듯 눈치를 줬다.“이봐, 얼른 여기 똑바로 앉아.”“난 이봐가 아니에요. 정수호예요. 이름 불러요.”나는 화를 냈다.하지만 소여정은 아무렇지 않은 듯 피식 웃었다.“내가 어떻게 부르든 내 마음이지. 얼른 앉아서 여주인 다리 좀 주물러 봐.”나는 화를 참지 못하고 성큼성큼 걸어가 여자의 탐스러운 엉덩이를 힘껏 내리쳤다.그 순간 소여정의 입에서 낮은 신음소리가 터져나왔다.“응. 나빴어. 어떻게 여주인의 엉덩이를 함부로 때릴 수 있어?”나는 제멋대로 하는 여자의 행동에 너무 화가 났는데, 여자의 애교 섞인 목소리에 순간 그 화가 모두 사라졌다.‘대체 뭐 하자는 거지? 설마 나를 화나게 해서 일부러 자기를 때도록 유도한 건가?’‘딱 봐도 즐기는 듯한 표정인데?’나는 소여정의 행동에 어리둥절해졌다.“대, 대체 뭐 하자는 거예요?”“앞으로 다시는 그러지 마요. 와요, 얼른 내 다리나 주물러 줘요.”소여정은 가늘고도 긴 다리를 나에게 쭉 뻗었다.소여정의 다리는 희고도 가늘며 향기롭기까지 했다.게다가 흰색 레이스 스타킹을 신고 있어 청순하면서도 섹시했다.‘흰색 스타킹도 이렇
“지, 지금 나 놀리는 거죠? 도대체 너 같은 여자가 어디 있다고 그래요? 말하는 것마다 어떻게 다 거짓말일 수가 있어요?”나는 소여정의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무의식적으로 또 나를 놀리는 거라고 판단했다.이 여자는 나를 놀리는데 재미라도 붙었는지 자꾸만 놀려댔다. 심지어 시종일관 생글거리는 표정으로 나를 봤다. “그래, 그럼 내가 거짓말했다고 생각하던가. 나를 마음대로 건드려 보던가.”소여정은 또다시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내 가슴에다 발을 비볐다.고개를 숙여 보니 소여정의 발은 뽀얗고 부드러웠으며, 빨간 매니큐어가 칠해 있어 너무 요염했다.게다가 아름답고 예쁘기까지 했다.그걸 보고 있었더니 나는 가슴이 간질거리는 한편 두렵고 불안했다. 하지만 여자의 신분이 떠오른 순간 나는 이내 괜한 일 만들지 말자고 스스로를 설득했다.나는 아예 눈을 감고 마사지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젖 먹던 힘까지 짜내 소여정의 족삼리혈을 꾹 눌렀다.다음 순간, 소여정은 ‘아’하는 비명과 함께 벌떡 일어나 앉았다.여자의 비명소리를 듣자 나는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하지만 곧이어 폭풍우 같은 복수가 찾아왔다.소여정은 자기 핸드폰을 집어 들더니 나를 향해 사진 찍기 시작했다.‘뭐 하는 거야?’여자의 행동에 내가 어리둥절해 있을 때, 소여정이 말했다.“그쪽이 내 발을 끌어안고 있는 사진 다 찍어뒀어. 지금 기회를 줄게, 나한테 사과해. 안 그러면 이사진들 고대로 그분한테 보낼 거야.”나는 너무 놀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이럴 목적이었어?’“하,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악독해요?”나는 이 상황이 너무 어이없었다.‘나를 그렇게 놀려대더니, 내가 장난 한번 쳤다고 이렇게 복수한다고?’‘본인 남자가 얼마나 잔인하고 악랄한 사람인 줄 알면서, 이 사진을 보내겠다는 건 날 죽이겠다는 뜻이잖아?’소여정은 의기양양한 듯 말했다.“그러게 누가 그러랬어? 이건 벌이야. 사과할 거야 말 거야? 안 하면 사진 보낸다?”나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
사모님은 바삐 움직이면서 가끔 어깨와 허리를 주물러댔다. 그 모습만 봐도 그동안 힘들었을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때문에 사장님이 다시 사모님을 설득할 때 나는 반대 의견을 내놓지 않고 협조하며 말했다.“사모님, 보아하니 허리가 불편한 것 같은데. 제가 주물러 드릴게요.”“아, 아니에요.”“유미야. 내 말 좀 들어 봐. 정 싫으면 내가 주물러줄게.”사장님은 마음이 아픈 듯 말했다.하지만 사모님 역시 사장님을 안쓰러워했다.“어떻게 그래? 자기 몸 아직 다 나은 것도 아닌데. 무리야.”사모님은 말하면서 나를 보더니 결국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그럼 수호 씨가 주물러 줘요. 하지만 난 우리 남편 말고 다른 이성이 나한테 닿는 게 싫으니 이따가 담요 덮고 해줘요.”“물론이죠.”나는 흔쾌히 대답했다.사모님은 내가 함부로 하는 걸 막기 위해 일부러 사장님 옆에 있는 소파에 엎드렸다.사장님 앞에서 마사지를 받으면 내가 저를 함부로 대하지 못할 거라고 확신한 모양이다.사실 나도 사모님한테 뭔 짓을 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저 사모님이 너무 고생하는 것 같아 피로를 풀어줄 생각이었다.나는 내 마음이 매우 순수하다고 맹세하라면 할 수도 있었다.하지만 내 손이 사모님 허리에 닿았을 때, 뻣뻣하게 굳은 사모님 몸이 손끝에서 느껴지자 심장이 두근대기 시작했다.내 손은 크고도 두꺼운 데다 힘이 있었다.때문에 가볍게 사모님 허리를 주무르는 순간, 사모님은 남성의 파워를 단번에 느꼈다.그래서인지 너무 오랫동안 남자의 손길을 받아본 적 없는 사모님은 이내 몸에 변화가 일어났다.이에 사모님은 매우 부끄러워했다. 자기 남편이 있는 앞에서 어떻게 이럴 수 있나 하는 죄책감마저 들었다.하지만 허튼 생각 하지 않으려고 애써 노력했지만 내가 마사지하면 할수록 사모님은 점점 편안한 느낌에 매료되었다. 심지어는 은근히 내 손이 등을 타고 올라올 것을 기대했다.그 생각이 뇌리를 스치는 순간 사모님은 깜짝 놀랐다.‘내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 너무
나는 사장님의 생각이 이토록 깊고 이렇게 멀리까지 내다보실 줄은 몰랐다. 그 사실이 너무 놀랍고 존경스러울 따름이었다.나는 사장님 같은 혜안을 가지라면 멀었는데 말이다.나는 아직 평범한 사람이라 아직은 내 한 몸 건사하기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는 신세다. 하지만 정 사장님의 사상은 이미 내가 도달할 수 없는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 평생 노력해도 닿을 수 없을 만큼 높은 곳에.이 순간 정 사장님에 대한 존경심은 더 깊어졌다.“수호 씨, 하고 싶은 일 마음 편히 해. 걱정할 거 없어. 사람이 걱정이 너무 많으면 이것저것 발목을 잡을 거고 겁을 먹어 결국엔 마음껏 뜻을 펼치지 못할 거야. 큰일을 하려면 반드시 무서울 게 없다는 패기로 덤벼야 해. 그래야 원하는 걸 이룰 수 있고 용감하게 전진할 수 있어.”나는 정 사징님이 전수해 준 교훈을 마음 깊이 새겼다. 그때, 사모님이 깨끗이 씻은 과일을 들고나왔다.“수호 씨, 과일 먹어요.”사모님의 새하얗고 늘씬한 다리를 보니 나는 순간 또 그날 본 춤추는 나비가 떠올라 얼른 시선을 피했다.그날 용천 호텔에서 몸을 섞은 상대가 사모님이 옳든 아니든 나는 반드시 사모님과 거리를 유지해야 했다.사모님은 부드럽고 다정하며 강남시 여자들한테만 있는 온화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심지어는 향긋하고 달콤한 밀크티 같아 기분이 우울할 때면 맛보고 싶어질 정도다.비록 사모님을 상대로 무례한 생각을 하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지만 내 몸과 마음은 자꾸만 저도 모르게 사모님께 끌려 나도 너무 곤혹이었다.“수호 씨, 우리 아내가 그동안 나 돌보느라 고생해서 이따 수호 씨가 마사지 좀 해줘.”“싫어!”사모님은 놀란 토끼처럼 예민하게 반응하며 본능적으로 거절했다.나도 썩 내키지 않았는데 사모님 반응이 이토록 클 주은 생각지 못했다.그 모습을 본 사장님은 허허 웃으며 말했다.“여보, 수호 씨는 남 아니야. 우리 친동생이나 다름없다고.”“그, 그래도 안 돼. 내가 이성과 접촉하는 걸 싫어한다는 거 알잖아.”나도 얼른 끼
민우가 되물었다.“수호가 그럴 자격이 왜 없는데요? 얼마 전에 가게에 일이 터졌을 때 가장 먼저 나선 게 누군데요? 위험을 무릅쓰고 가게를 위기에서 구출한 건 또 누군데요? 본인이 그렇게 대단하다면 그때 왜 맨 앞에 나서지 않았어요? 왜 그 사람들과 싸우지 않았는데요?”“맞아요. 수호 씨가 아니면 화인당이 다시 평화를 되찾지 못했을 거예요. 우리는 착실히 일하고 싶고 일자리를 잃고 싶지 않은 것뿐이에요.”“수호 씨가 가게 규칙을 어겼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여자들은 모두 주동적으로 수호 씨를 찾아온 거예요. 준희 씨처럼 특수 서비스니 뭐니 하면서 고객을 꼬신 적 없다고요.”“수호 씨는 정 사장님 목숨도 구해줬어요. 그런데 수호 씨가 가게 이인자가 되는 게 뭐 문제 있어요?”“진짜 문제 있는 건 준희 씨겠죠. 준희 씨는 수호 씨가 부럽고 질투 나는 거잖아요. 그래서 수호 씨가 잘나가는 꼴이 보기 싫은 거잖아요. 하지만 너무 비겁한 거 아니에요?”안준희는 가게 식구들이 모두 내 편을 들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정말 잘못한 사람이 오직 본인이 된 것만 같았다.안준희는 뭐라고 더 변명하려 했지만 민우가 때마침 달려들었다.“당장 나가요. 여긴 당신 반기지 않으니까.”모태진과 오민혁을 포함한 다른 직원들도 한꺼번에 달려들어 안준희를 쫓아냈다. 그러고는 모두 나한테 다가와 너무 마음에 두지 말라고 위로했다.그 순간 나는 밀려오는 감동을 참을 수 없었다.비록 너무 오글거려 말은 하지 못했지만 모두가 나를 어떻게 도와줬는지만은 마음속에 깊이 새겼다.그날 저녁 나는 사모님 댁에 갔다.이번에는 사장님께 드릴 말씀이 있어 찾아간 거였기에 나는 윤지은의 당부를 신경 쓰지 않았다.내가 오지 않은 동안 사장님의 안색은 많이 좋아졌고 이제는 일어서서 걸을 수 있게 되었다.사모님은 사장님을 조심스럽게 부축해 걷기 연습을 하고 있었다. 다만 조금 걷다 지친 사장님은 소파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수호 씨, 얼른 와서 앉아. 여기 앉아.”사장님은
“정수호. 적당히 해. 너는 가게에서 마음대로 하면서 다른 사람은 하면 안 돼? 네가 뭔데?”나는 안준희가 나한테 불만을 품고 있고 그 외 다른 직원들도 안준희를 본받으려 한다는 걸 알고 있다.이런 풍기 문란한 짓은 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단번에 싹을 잘라야 한다. 만약 내가 안준희한테 엄중한 벌을 내리지 않으면 이런 분위기는 가게 전체를 좀먹게 할 거다.이 모든 건 확실히 나 때문이기도 했다. 때문에 나는 직원들 앞에서 큰 소리로 말했다.“다들 나한테 불만이 있는 거 알아요. 정 사장님이 나한테만 특별대우해 준다고 생각하고 있겠죠. 하지만 하나는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어요. 졍 사장님은 나한테만 특별대우해 준 적 없어요.”“사장님은 워낙 착한 분이고 가게 모든 직원에게 평소에도 잘해주세요. 심지어 직원들이 너무 극단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피차 보기 껄끄러울 정도로 일을 심각하게만 하지 않으면 항상 눈감아주셨어요.”“그리고... 평소에 예쁜 여자들이 자꾸만 나를 찾아온다고 내가 여성 고객들한테 뭘 했다고 생각하나 본데요. 나는 고객한테 암시를 준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그 여성분들이 왜 찾아왔는지는 말하기 곤란하지만.”“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가게는 정상적인 영업을 하는 한약방이에요. 뒤에서 불법적인 장사를 하며 제 주머니를 챙기는 행위는 금물이에요.”안준희는 내 말에 ‘흥’하고 콧방귀를 뀌었다.“말은 잘하네. 그 말을 믿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물어봐.”나는 사라들을 한 바퀴 빙 둘러봤다. 그 순간 나는 마음속으로 이미 답을 얻었다.다른 동료들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안준희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규칙을 어긴 사람은 어떻게 되는지 제대로 보여주지 않으면 아마 모두가 요행을 바랄 거다. 때문에 그 본보기를 보여줄 상대를 안준희로 정할 수밖에 없었다.“믿든 안 믿든 상관없어요. 가게 규칙을 위반하는 행동을 한다면 반드시 처벌할 거니까.”“정수호. 그래서 어쩌겠다는 거야? 설마 나를 쫓아내기라도 하겠다고?”“준희 씨 말이
형수는 동생 두 명이 번갈아 가며 돌보고 있기에 나도 시간 내서 화인당에 출근할 수 있었다.현재 천수당은 더 이상 개업을 미루면 안 되는 상황이다.현성이 2억이라는 거금을 투자했는데 친구가 돼서 그에게 손해를 안겨줄 수는 없었으니까.마음을 정한 나는 화인당으로 찾아가 민우에게 내 생각을 말했다.그러자 민우가 걱정되는 듯 말했다.“그럼 정 사장님은 어떡해? 정 사장님이 나한테 잘해주셨는데 회복하기도 전에 내가 가면 너무 미안하잖아.”“네 마음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야. 오늘 내가 직접 사장님을 만나 상황을 말씀드릴 생각이야.”정 사장님이 때리든 욕하든 나 혼자만 감당하면 될 일이었다.“수호야,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어.”“뭔데?”“안준희 씨 일이야.”“안준희 씨가 왜?”안준희는 전에 화인당 규칙을 어기고 손님들에게 특별 서비스를 제공해 한번 경고를 준 적이 있다.그 이후로 나는 안준희가 당연히 좀 수그러들 줄 알았는데 민우가 뜻밖의 얘기를 했다.“안준희 씨가 여성 고객만 보면 특별 서비스가 필요한지 묻는대. 그래서 지금 가게 분위기가 엉망이야. 내가 말하면 귓등으로도 안 들어.”“그래. 알았어. 가서 일 봐.”민우가 떠난 뒤 나는 직접 안준희를 찾아갔다.“하던 일 잠시 멈추고 나 좀 봐요.”“할 말 있으면 여기서 해요. 나 지금 바빠서 시간 낼 수 없어요.”안준희는 내가 안중에도 없었다.안준희가 이렇게까지 건방질 줄은 몰랐기에 나는 어두운 얼굴로 다가가 안준희가 하던 일을 막았다.“나 지금 이 가게 두 번째 주인이나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내 말도 안 듣겠다는 건 무슨 뜻이에요?”안준희는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난 수호 씨랑 싸우고 싶지 않으니까 이만 나가줘요.”“나도 준희 씨랑 싸우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오면 떠나줘야겠어요.”안준희는 입가에 냉소를 띤 채 나를 바라봤다.“왜요? 지금 나 쫓아내겠다는 뜻이에요? 정 사장님 대신 가게 며칠 봤다고 본인이 정말 이인자라도 되는 줄 알아
지난번에 진용진이 형수를 건드리려고 해서 나와 형수가 함께 놈을 골목으로 유인해 흠씬 때려준 뒤, 진용진은 한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때문에 아직도 나에 대한 분노가 끓어올랐다.나는 빙빙 돌려서 말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경고했다.“앞으로 고수연 씨 괴롭히지 마. 고수연 씨도 혼자 아니야. 고수연 씨 뒤에도 사람 있다고.”[설마 너야? 웃겨 정말. 이 여자 저 여자 다 욕심나나 봐? 고태연 하나로는 만족하지 못해서 고수연이랑도 잤냐?]나는 내 결백을 증명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진용진은 나와 고수연 사이에 뭔가 있다고 단언하고 있으니 내가 뭐라고 설명해도 믿지 않을 게 뻔했다.나는 싸늘하게 말했다.“마음대로 생각해. 내가 너한테 전화한 건 경고하기 위해서야. 앞으로 또 고수연을 괴롭히면 절대 가만있지 않아.”할 말을 마친 뒤 나는 이내 전화를 끊어버렸다.아무 생각 없이 주차장에 도착한 나는 그제야 차키를 윤지은에게 이미 돌려줬다는 게 떠올랐다. 나는 결국 다시 큰길로 나가 택시를 잡아타고 도장으로 향했다.최근 나는 매일 도관에 가는 걸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자기를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건 가장 기본적이다. 만약 자기 몸 하나 지키지 못하면 남을 지키는 건 더더욱 불가능해진다.며칠 동안의 단련을 통해 나는 스스로도 큰 변화를 느꼈다. 때문에 끝까지 꾸준히 연습해 한계를 끌어올릴 작정이었다.오후까지 연습하니 나는 어느새 땀에 흠뻑 젖었다. 하지만 몸은 오히려 개운했다.변석훈과 작별한 뒤, 나는 천수당에 들렀다.천수당은 이제 모든 준비가 다 되어 개업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매일 여러 가지 잡다한 일로 바빠 요즘은 민우가 화인당을 맡고 있고 현성이 천수당을 관리하고 있다.다만 부잣집 도련님이라 평소 손가락에 물 한번 묻힌 적 없는 현성이 이런 일에 적응하지 못할까 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하지만 놀랍게도 현성은 천수당을 아주 잘 관리하고 있었다. 그건 너무 놀라울 따름이었다.“의외네
결국 빙 돌아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마치 저주가 우리를 가두어 놓은 것처럼 아무리 높이 뛰어도 그 저주를 타파할 수는 없는 것만 같았다.아마 이건 하늘의 뜻일지도 모른다.“알겠어요. 윤지은 씨 말 대로 할게요.”나는 윤지은과 싸우지 않으려고 고분고분 대답했다.내가 사무실을 나서는 동안 윤지은은 차가운 눈빛으로 내 뒷모습을 바라보더니 이내 일을 계속했다.내가 형수 방에 도착했을 때 고아연은 이미 떠나고 고수연이 와 있었다.“뭐 하러 갔어요?”“아무것도 아니에요.”나는 건성으로 대답했다.“아연이한테서 들었는데, 우리 언니 몸을 닦아줄 때 움찔한 것 같았다면서요?”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고개를 끄덕였다.“네.”“정말이에요? 어떻게 했는데요? 시범해 봐요.”나는 고개를 저었다.“소용없어요. 나도 다시 확인하려고 다시 한번 몸을 닦아줬는데 아무 반응도 없었어요. 내 착각일지도 몰라요.”“사람이 어쩜 그래요? 희망을 줬다가 바로 깨뜨리는 게 어디 있어요?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면서 진짜인 것처럼 말하면 우리는 희망을 품는다고요.”“맞아요. 사람은 희망이 없으면 사람은 투지도 없어져요.”나는 고수연의 말을 반박하는 대신 따뜻한 물을 받아와 어떻게 형수를 닦아줘야 하는지 가르쳐 주었다.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형수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고수연은 실망한 기색 없이 인내심 있게 나를 따라 했다.“언니, 얼른 일어나. 언니가 없으니 진용진 그 인간과 어떻게 싸워야 할지 막막해.”사실 세 자매 중에 큰 언니인 고태연이 평소 고수연을 가장 아꼈다. 막내인 고아연은 매일 자기 일로 바삐 보내 평소 함께 할 시간도 별로 없다. 그런데 현재 고태연이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고수연은 병간호도 해야 하고 아이도 돌봐야 하고 또 진용진과 이혼 소송도 해야 해서 얼굴이 많이 초췌해졌다.사람은 힘들 때면 누구라도 자기를 도와줬으면 한다. 고수연도 지금 딱 그랬다.나는 형수가 평소 자기 둘째 동생을 얼마나 아꼈는지 알기에 형수가 누워 있는 동안만이라도 내가
나는 윤지은의 말을 부인하지 않았지만 내 생각을 설명했다.“사람마다 생각의 차이가 있잖아요. 어떤 사람은 일편단심을 원하고 어떤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즐기려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생각이 더 많을 수도 있고요... 이 세상에는 별의별 사람이 다 있어요. 그래서 다채롭고 다양한 거예요. 모든 사람의 생각이 같을 수는 없어요.”“지은 씨 친구 소여정 씨를 놓고 봤을 때, 지은 씨는 임천호의 정부가 되는 게 치욕스럽다고 생각하지만 소여정 씨가 원해서 한 건지 강요당한 건지 어떻게 확신해요?”“백연우 씨도 마찬가지예요. 백연우 씨처럼 자유롭고 소탈하게 사는 게 안 좋다고 할 수 있어요? 아마 지은 씨 친구 중에 백연우 씨가 가장 자유로울 거예요. 걱정 없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모습을 보면 가끔 저도 부러울 때가 있어요.”윤지은은 얼굴이 잿빛이 되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솔직히 윤지은도 가끔 백연우가 부러울 때가 있었으니까. 심지어 행복한 가정을 꾸린 임유미보다도 백연우가 부러울 때가 더 많았다.임유미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사랑하는 남편이 곁에 있지만 너무 우아하고 고급스럽고 정교하고 무드 있는 일상만 추구한다. 때문에 인간미와 친근한 면이 너무 부족하다.하지만 백연우는 다르다.백연우도 평범한 신분은 아니지만 그녀는 더 영민하고 현실적이고 인간미 넘치는 생활을 하고 있다.백연우는 일도 열심히 하지만 남색을 즐기고, 생활을 즐길 줄 알지만 남자와의 잠자리도 즐길 줄 알고, 의리 있지만 원한을 반드시 갚아주는 성격은 아니다.이런 사람이야 말로 더 생활적이고 살아있는 것 같다.물론 임유미처럼 우아하고 점잖은 여자는 사람 같지 않다는 건 아니다. 다만 임유미처럼 살 수 있는 여성은 너무 적다.“백연우 씨처럼 생활한다고 나쁜 여자라고 할 수 있어요? 백연우 씨는 남의 감정을 갖고 논 적도 없으니 솔직히 말해서 나쁜 여자는 아니죠.”윤지은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는 하고 싶은 말을 모두 얘기했다.“윤지은 씨, 지은 씨. 우리 앞으
“진짜 바람둥이네. 결혼하고 싶은 사람은 애교 씨고 함께 즐기고 싶은 사람은 형수고, 나는 또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가 되어 달라고? 네가 뭔데?”윤지은은 내 손을 뿌리쳤다.“내가 임천호 같은 사람이면 여자 몇 명을 함께 만나도 당연하다고 생각해요?”윤지은은 단번에 반박했다.“무슨! 임천호는 더 얄밉거든? 아내를 버리고 밖에서 애인을 두는 놈은 쓰레기야. 임천호가 이 위치까지 오게 된 건 모두 서씨 가문이 뒤에서 도와준 덕분이야. 그런데 이제 잘나가니까 서씨 가문을 쓰게 보지 않잖아. 이런 인간은 왕정민과 다를 게 뭔데?”나는 피식 웃었다.“그럼 답 나왔네요. 지은 씨가 화나는 건 내 주제에 바람기가 많은 게 아니라 그냥 내가 바람기 많은 사람이라서잖아요.”윤지은은 잠시 멍해 있다가 이내 말했다.“화내는 게 정상 아니야? 이 세상에 좋은 남자는 한 놈도 없어. 하나 같이 다 바람둥이잖아.”“지은 씨 말이 맞아요. 하지만 이런 일은 남자 여자와 상관없이 사람이 단계마다 갖는 느끼는 감정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지은 씨도 평생 한 사람만 좋아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어요?”윤지은은 바로 반박했다.“적어도 난 동시에 여러 사람 만나지는 않아.”“네. 그건 제가 확실히 지은 씨보다 못해요. 하지만 지은 씨든 형수든 모두 저랑 서로 좋아하는 사이잖아요. 애교 누나는 더 말할 것도 없고요. 그러니 내가 바람피운다고 할 수는 없죠.”윤지은은 내 말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비록 모두 애교 누나가 내 여자 친구라고 알고 있지만 애교 누나는 내가 밖에서 다른 여자와 만나는 걸 반대한 적이 없다. 심지어 더 만나라고 응원해 줬다.게다가 내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애교 누나는 지금까지 나와 정식으로 관계를 확정 짓지 않았다.때문에 나는 내가 바람피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누구를 만나든 우리는 각자 원하는 걸 서로 주고받는 거니까.“아, 아무튼 파렴치해!”윤지은은 말로 나를 이기지 못하자 욕설을 퍼부었다.나는 윤지은을 끌어와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