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나는요? 나는 무슨 꽃 같아요?”나는 애교 누나의 이마에 입 맞추고는 대답했다.“누나는 안개꽃 같기도 하고 월계화 같기도 하고 함박꽃 같기도 해요.”“난 왜 그렇게 많아요?”애교 누나가 의아한 듯 물었다.“안개꽃 같다고 한 건, 누나가 흰 눈처럼 맑고 깨끗해서고, 월계화 같다고 한 건 장미처럼 열정적이진 않지만 그만큼 예뻐서고, 함박꽃 같다고 한 건 모란꽃처럼 고귀하고 우아해서예요.”“애교 누나는 제 마음속에서 가장 완벽한 사람이에요. 형수나 남주 누나한테서는 단점을 발견했는데 애교 누나한테서는 발견할 수 없어요. 누나의 단점마저 저한테는 장점처럼 보이니까. 애교 누나 저 누나를 진심으로 사랑해요.”나의 절절한 고백에 애교 누나도 감동했는지 눈시울을 붉혔다.“수호 씨, 내가 수호 씨한테 이렇게 좋아요?”“당연하죠. 누나는 내 마음속에서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여자예요.”애교 누나는 순간 나에게 입 맞췄다.그렇게 한참 동안 입 맞추다가 아쉬워하며 천천히 나를 놓아주었다.“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가 뭔지 알아요?”“뭔데요?”“홍콩 배우 주성치님이 연기한 서유쌍기요. 볼 때마다 펑펑 울어요. 10번을 보든 100번을 보든 언제나 그래요.”“내가 좀 감수성이 풍부하고 판타지를 좋아하는 여자라 어릴 때부터 왕자님 같은 사람과 낭만적인 연애를 하기를 원했거든요.”“그런데 현실은 너무 가혹했어요. 한 번도 그런 남자 만난 적 없었거든요. 그러다가 왕정민을 만났는데 나한테 너무 오랫동안 구애하고 잘해줘서 그게 사랑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그때는 사랑이 뭔지 제대로 몰랐어요.”“하지만 이제 알겠어요. 사랑은 뼈에 사무쳐야 하는 거지 잠시 지속되었다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걸. 남자가 여자에게 잘해주는 건 뭔가 목적이 있다는 걸. 그 목적에 도달하면 잘해주던 것도 식더라고요.”“수호 씨, 나 30년 넘게 살면서 이제야 사랑이 뭔지 실감했어요.”애교 누나는 말하면서 참지 못하고 울기 시작했다.하지만 울다가 다시 웃기 시작하더니 나를
나는 깜짝 놀라 속으로 중얼거렸다.‘헐... 미친 거 아니야? 난 그저 살짝 주무르기만 했는데 왜 이렇게 크게 반응하는 거야?’“너... 너무 자극적이야. 애교야, 네가 주무른 거야? 더 해줘. 응?”남주 누나는 흐리멍덩한 상태에서 깨어나지 않았지만 저를 주무르는 게 애교 누나인 줄 알고 애교 누나의 손을 잡아 제 가슴에 얹었다.“얼른 자기나 해, 남이 만져대는 것도 모르고.”애교 누나는 난감한 듯 말하며 나를 흘긋거렸다.이에 나는 다급히 설명했다.“애교 누나, 저도 이러고 싶지 않았어요, 남주 누나가 너무 화가 나서. 아니면 다시 객실로 옮겨 놓고 우리 하던 거 마저 하는 게 어때요?”“됐어요. 여기 있는 시간이 너무 긴 것 같으니 얼른 돌아가요. 안 그러면 수호 씨 형과 형수가 의심할 거예요.”“애교 누나...”이곳에 더 남기 싶은 마음에 내가 애교 부렸지만 애교 누나는 품에서 고주망태가 되어버린 남주 누나를 보더니 말했다.“남주가 너무 취해서 내가 보살펴야 해요. 수호 씨랑 같이 있을 수 없어요. 화내지 마요. 나중에 왕정민과 이혼하면 내가 한 번 정도는 적극적으로 행동할게요.”“약속한 거예요? 나중에 후회하면 안 돼요.”내가 헤실 웃으며 말하자 애교 누나의 얼굴은 또 붉어졌다.“얼른 돌아가요.”“정말 안아갈 필요 없어요?”“정말 필요 없어요. 얼른 돌아가요.”“알았어요.”나는 결국 아쉬워하며 떠날 수밖에 없었다.형수의 집에 도착하니 방은 어두컴컴했고 형과 형수는 이미 잠이 든 듯했다.하지만 궁금한 마음에 조심스럽게 걸어 형과 형수의 방문 앞에 다가가 기척을 엿들었더니 오직 형의 코골이뿐이었다.‘형이 잠들었네. 형수도 잠들었나?’그렇다면 너무 실망이다.‘형수는 아까 분명 오늘 밤 나랑...’그렇다고 내가 문을 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결국 잠깐 생각하다 말고 뒤돌아 방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형수가 침대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형수는 자지 않고 계속 나를 기다렸던 거다.나는 너무 기뻐 다급히
나는 한참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그게 뭐가 다르죠?”“많이 다르죠. 수호 씨가 나랑만 하고 싶다면 나를 사랑한다는 뜻이고 나랑 한 번만 해보고 싶다면 그냥 다른 여자와 하는 걸 경험해 보고 싶은 거잖아요.”나는 형수의 진지한 말에 조마조마해 다급히 손을 움츠렸다.“그게 무슨 뜻이에요?”내 물음에 형수는 나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갑자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바보, 뭘 그렇게 두려워해요? 내가 수호 씨를 잡아먹는 것도 아니고.”하지만 나는 잘못이라도 한 듯 가슴이 콕콕 찔렸다.“저도 형수가 저 잡아먹지 않는 거 알아요. 하지만 갑자기 그렇게 진지하게 말해서 놀랐어요.”“그럼 웃으면서 물어볼게요. 나랑만 하고 싶어요 아니면 나랑은 그냥 한 번만 경험해 보고 싶어요?”형수가 웃으며 질문했지만 이 질문에 꼭 답변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느껴졌다.이게 형수가 나를 어떻게 볼지와 관련될 지도 모르니까.결국 나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결국 답변했다.“처음에는 그냥 한 번만 해보고 싶었어요. 참는 게 너무 고통스러워 한 번이라도 풀어주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마음이 바뀌었어요.”“어떻게 바뀌었는데요?”형수가 흥미 있는 눈빛으로 물었다.“형수하고만 하고 싶다는 건 너무 거짓말인 것 같아요. 왕정민이 저더러 자기 아내를 꼬시라고 하고, 남주 누나가 매일 저를 꼬시고 있는데 두 사람 모두 예쁘고 몸매도 좋잖아요. 그런 여자에게 아무 마음도 품지 않는다는 건 당연히 거짓이겠죠.”“하지만 세 사람 중에 누구와 가장하고 싶냐고 묻는다면 그건 형수예요.”형수는 미소를 띠며 물었다.“왜요?”“형수와는 특별한 감정이 있으니까요. 안고 싶지만 그러지는 못하고, 하지만 또 매일 함께 살고 있어 그게 너무 괴로워요.”“몸은 점점 더 갈망하지만 머리로는 계속 참아야 한다고 매일 되뇌어요. 그 한 걸음을 내디디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으니까.”내 말을 들은 순간 형수의 얼굴에 드리웠던 미소는 점점 사라졌다.그러다 부드러운 눈빛으로 내 얼굴을 쓰다듬더니 갑자
“그건 나한테 물을 게 아니라 본인한테 물어야죠. 수호 씨는 나한테 어떻게 하고 싶어요?”형수는 손 하나를 내 가슴에 얹으며 나더러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라고 했다.하지만 현재 이런 상황에서 도저히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었다.형수의 매혹적인 몸과 사람을 혼미하게 만드는 냄새에 당장이라도 자빠뜨리고 싶었으니까.나는 무의식적으로 형수의 손을 잡으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형수, 제 마음은 저더러 짐승처럼 굴라고 하는데요?”“그래요? 어떻게 짐승처럼 굴라는데요?”“형수가 형의 아내인 걸 알지만 탐하려고 하는 게 짐승 아니면 뭐예요?”“하지만 수호 씨 형도 이애교가 왕정민의 아내인 줄 알면서 마구 만져댔잖아요. 남주도 그렇고. 남주는 이애교와 가장 친한 친구인데 수호 씨 형은 마구 만져댔잖아요. 그럼 그건 뭔데요?”그 일을 잊고 있다가 형수의 말에 다시 생각나면서 나는 화가 치밀었다.“형이 그런 사람인 줄은 정말 몰랐어요.”“이 세상은 원래 그래요. 수호 씨가 착하다고 믿는 사람은 뒤에서 문란하게 굴고, 수호 씨한테 잘해준다고 생각한 사람이 진심으로 잘해주는 게 아닐 수 있어요.”나는 형수의 말에 뭔가 숨은 뜻이 있다는 걸 느꼈다.하지만 그 암시를 끝내 알아내지 못해 물었다.“형수, 그게 대체 무슨 말이에요?”형수는 웃으며 내 볼을 꼬집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술이 깨서 잠이 안 오던 참에 대화나 할까 해서요.”대화만 하겠다고? 그건 내가 싫었다.나는 형수의 허리를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하지만 화장실에서 형수가 분명 돌아와서 계속하자고 했잖아요.”“내가요? 기억 안 나는데요?”형수는 말을 마치자마자 내 다리 위에서 내렸다.그 행동에 나는 어리둥절했다.집에 돌아와서 형수와 뭔가 할 수 있을까 하고 잔뜩 기대했는데, 형수는 오히려 뜬구름 잡는 얘기만 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이게 대체 뭐란 말인가?나는 아쉬워하며 형수의 손을 꼭 잡았다.“형수, 하지만 저는...”“짐승처럼 굴고 싶다고요? 뒤도 생각하지
여자가 아직 자지 않은 걸 발견한 나는 곧바로 답장했다.[잠시 못 가게 됐어요.][그래서 또 나 생각한 거예요? 나랑 몇 번 더 하고 싶어서?][나를 그렇게 짐승처럼 생각하지 말아 줄래요? 우리가 얘기할 게 그것 말고 없어요?][웃기네요. 우리 원래 원나잇 관계 아니었어요? 그런데 무슨 다른 얘기요?][나 지금 기분이 안 좋은데, 나랑 수다나 떨래요?][아니요. 나도 쉬어야 해요.]나는 어이없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똑같은 문자를 한 번 더 보냈다.하지만 여전히 답장은 돌아오지 않았다.결국 괴로워 잠을 잘 수 없는 처지에 이르자 나는 핸드폰으로 영화 한 편을 찾아 혼자 해결했다.그렇게 해결하고 나니 겨우 편해져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곤히 잠들었다.아침에 알람 소리 때문에 깼을 때 내 정신은 여전히 혼미했다.어제 너무 늦게까지 논 데다 술까지 많이 마셔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결국 세수하여 정신을 좀 차리려고 화장실로 들어갔는데, 형이 변기 위에 앉아 동영상을 보며 자위하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서로 눈이 마주친 순간 우리는 동시에 멍해졌다.형은 다급히 동영상을 껐고 나는 다급히 문을 닫고 나왔지만 마음 한구석은 불편했다.어젯밤 일은 내 추측일지 몰라도 방금 본 건 형수의 말이 사실이라는 걸 증명했으니.내가 어찌할 바를 몰라 답답해할 때, 형이 화장실에서 나와 내 어깨를 감싸 안고 베란다로 향했다.“수호야, 아까 일은 절대 형수한테 말하지 마.”“형, 지금 대체 뭐 하는 거야? 방금 분명 괜찮았으면서 형수하고는 왜 그래?”“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말할게. 나 네 형수랑 있을 때 아무 느낌도 없어. 왼손으로 오른손 만지는 느낌 알지? 네 형수랑 할 때 그런 느낌이야.”“그럴 리가요? 형수 몸매가 얼마나 좋은데.”“하하, 넌 아직 너무 젊어. 남자가 여자한테 관심을 갖는지는 그 여자의 몸매가 얼마나 좋은지가 아니라 자극을 가져다주는지에 달렸어. 나 네 형수랑 벌써 7년이야. 그런 자극은 이미 없어졌어. 시도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물론 형수에게 마음이 있다지만 형 앞에서 형의 여자와 자고 싶다고 하면 형이 기분 상할 게 뻔하다.게다가 내가 이렇게 말하자 경계하던 형의 눈빛은 금세 풀리며 말했다.“네가 나 안 도와주면 계속 가다가 나랑 네 형수 이혼할지도 몰라. 네 형수가 아이를 너무 좋아해서 내가 만약 네 형수 임신하게 하지 못하면 네 형수는 절대 나와 함께 지내려 하지 않을 거야.”“차라리 병원에서 검사해 봐요. 아무래도 심리상의 문제인 것 같은데, 심리상담 한번 받아봐요.”“싫어. 아무 문제도 없는데 왜 심리 상담을 받아?”형이 바로 거절하자 나는 인내심 있게 설명했다.“형이 이러는 것도 방법은 아니잖아. 설마 계속 형수와 이럴래?”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형, 난 형이 왕정민처럼 되길 바라지 않아. 돈과 권력도 중요하지만 행복한 가정도 중요하잖아. 형수 좋은 사람인데 절대 저버리지 마.”내 말에 형은 싱긋 웃으며 나를 보더니 갑자기 물었다.“수호야, 넌 형수가 예쁘다고 생각해?”그 물음에 나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아 조심스럽게 대답했다.“형, 갑자기 그건 왜 물어?”그랬더니 형이 웃으며 말했다.“괜찮아. 그냥 아무렇게나 대화해보자는 거니까. 너랑 내가 친형제도 아니니 네가 여기 있는 걸 네 형수가 싫어할까 봐.”“그 정도는 아니야. 형수가 나 여기서 지내는 거 별로 신경 안 써.”“그럼 형수가 평소에 잘해줘?”“그냥 그래. 너무 좋지도 않은데 그렇다고 나를 일부러 괴롭힌 적은 없으니까.”“네 형수 좋은 사람이야. 네가 내 동생이라고 하니까 본인도 동생처럼 대하겠다더라. 형수가 너 괴롭히지 않았으면 다행이고. 네 형수가 좋은 건 나도 알아. 걱정하지 마, 내가 절대 네 형수한테 미안한 짓 안 할 테니까.”그제야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방금 형이 왠지 나를 떠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으니까.아마도 내가 형수의 일에 너무 관심을 보여 의심이 생긴 모양이다.‘앞으로 더 조심해야겠네. 함부로 말하지 말자.’나는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대담한 생각이 떠올랐다.내가 직접 인사해도 상대가 나를 바로 저와 바람 피던 상대라는 걸 보아내지 못할 거라는 생각.나는 대담하게 여자에게로 걸어갔다.“안녕하세요.”여의사는 고개를 들어 나를 흘긋 보더니 차갑게 대답했다.“누구세요? 저 아세요?”역시나 여자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이에 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저는 한의과 인턴 정수호라고 해요. 그쪽은 이름이 뭐예요?”“그걸 알아서 뭐 하게요?”‘이 여자 낮에는 정말 쌀쌀맞네.’하지만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면 나도 무서울 거 없어 계속 수다를 떨었다.“친해지고 싶어서요.”“나한테 관심 있어요? 아니면 그냥 나랑 자고 싶나?”여자의 직설적인 말에 나는 진지하게 받아쳤다.“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난 정말 그쪽한테 관심 있는 것뿐인데.”그 말에 여의사는 싱긋 웃더니 갑자기 사람들을 향해 높게 소리쳤다.“다들 여기 봐요. 이 사람이 저 꼬시겠대요.”“전장!”‘이 여자도 남주 누나랑 같은 결이잖아?’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너도나도 우리 쪽을 바라보는 바람에 나는 당장에 죽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결국 다급히 얼굴을 가리고 도망치려 할 때 여자가 차갑게 웃으며 중얼거렸다.“고작 그까짓 배짱으로 나를 꼬시겠다고?”한의과로 돌아오는 내내 내 얼굴을 화끈거려 생각할수록 난감하고 민망했다.‘젠장, 그 여자 미친 거 아니야?’‘싫으면 싫은 거지,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나도 참 무덤을 스스로 파네. 왜 갑자기 저 여자는 건드려서. 이러고 어떻게 홍보 책자를 나누지?’“오늘은 왜 나가지 않아?”마동국이 사무실에 오자마자 묻는 바람에 나는 너무 머쓱했다.“오늘 나가기 싫어요.”“그래, 마음대로 해.”마동국은 별로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였다.결국 나는 의서 한 권을 들어 대충 보기 시작했다.생각할수록 억울하고 그 여자에게 당했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핸드폰을 꺼내 들고 다시 그 여자의 카톡을 추가했다.[나 하고 싶어요.]그러고는 아주 직설적
물론 그저 다리 사진이었지만 검은 스타킹을 신은 다리만으로도 충분히 유혹적이었다.검은 스타킹은 가늘고 긴 다리를 소유한 사람한테 어울리는데 여자의 다리가 마침 그런 스타일이었다.과장하지 않고 두 다리만으로도 사람을 흥분하게 할 정도였다.게다가 다리를 겹친 곳이 흰 천으로 가려져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의사 가운이었다.‘설마 이 여자가 출근 중에 찍은 건가? 너무 대담한 거 아니야?’병원 규칙상 의사들은 출근 시간에 검은색 스타킹을 신지 못한다.그렇다는 건 이 여자가 출근 시간을 이용해 몰래 사진을 찍었다는 건데.그 생각을 하니 나는 너무 궁금해 직설적으로 문자를 보냈다.[의사 같네요. 이거 출근할 때 찍은 거예요?][대단하네요. 이렇게 빨리 내 직업도 맞추고. 맞아요. 나 의사 맞아요. 그럼 내가 무슨 과인지도 맞춰볼래요?]이건 나도 예전에 주의하지 못했다.하지만 전에 5층에서 이 여자를 만난 기억이 나기에 나는 마동국에게 물었다.“마 교수님, 혹시 5층은 무슨 과예요?”“아, 남성 비뇨기과지.”“네?”나는 너무 놀라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설마 그 여자가 남성 비뇨기과? 에이 설마.’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얼른 문자를 작성했다.[병원이라면 보통 근무 중 의사가 검은 스타킹을 신는 걸 금할 텐데. 이런 사진을 출근 시간에 몰래 찍었다는 건 일부러 신었다는 걸 말하겠죠. 혹시 남성 비뇨기과라 검정 스타킹 신고 남자를 유혹하려고 한 거예요?][정말 신기 있는 거 아니에요? 이런 것도 다 알고. 설마 나 스토킹했어요?]‘헐, 진짜라고?’‘그렇다면 이 여자가 매일 남자의 그곳을 볼 수 있다는 거잖아?’사실 내가 학교 다닐 때 산부인과를 선택하는 남학생들이 있다는 건 들었지만 남성 비뇨기과를 선택하는 여자는 처음 들어본다.‘정말 세상에 이상한 사람이 많네.’[매일 남자 거기를 그렇게 많이 보는데도 관심이 생겨요?]이 질문은 순전히 여자의 심리가 궁금해서 물어본 거였다.[관심 없어요. 그래서 연애도 별로 안 해요.][
윤미화는 다른 직원들을 먼저 돌려보내고 나와 함께 왕정민 회사로 향했다.얼마 뒤 윤지은도 나타났다.윤지은까지 직접 온 건 매우 의외였다.“왜 왔어요?”“네가 여기서 죽은 것도 모를까 봐.”윤지은은 언제 한번 말을 예쁘게 하는 법이 없다.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이런 농담을 하니 오히려 내 긴장감이 줄어들었다.게다가 윤지은이 나를 도와주러 왔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 용기와 마음에 무척 감사했다.“동준 형님은요? 같이 안 왔어요?”윤지은도 왔는데 양동준이 안 왔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양동준이 나서면 왕정민이 모습을 드러낼까?”보아하니 양동준은 부근에 몸을 숨긴 모양이었다. 양동준이 있다는 걸 생각하니 마음이 든든했다.“고마워요.”나는 진심으로 말했다.윤지은은 내 말에 흠칫 놀라더니 이내 눈을 홉뜨며 말했다.“갑자기 이렇게 예의 차린다고?”나는 너무 무안해서 머리를 긁적였다.“진심이에요. 정말 고마워요. 윤 사장님도 너무 고마워요. 두 분 모두 제 귀인이에요.”윤미화는 매력적인 미소를 지었다.“말로만 고마워하지 말고 나중에 밥 사.”“당연하죠.”나는 흔쾌히 동의했다. 무엇보다 밥 한 끼 같이 하는 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하지만 옆에 있던 윤지은의 낯빛은 매우 어두웠다.“종마.”윤지은의 목소리는 매우 작았지만 내 귀에 콕 박혔다.나는 순간 어이없어 반박했다.“갑자기 왜 또 욕하고 그래요?”“욕하면 뭐?”윤지은은 더 화가 나서 목소리를 높였다.윤지은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아까까지만 해도 살갑게 대하더니 갑자기 기차 통을 삶아 먹었는지 화를 내다니.나는 너무 어이없었지만 이 상황에 끝까지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됐어요. 싸우기 싫어요. 내가 남자니까 참을게요.”나는 결국 양보를 선택했다.옆에 있던 윤미화는 이상한 눈빛으로 우리 둘을 번갈아 봤다.한편 나는 또 실수로 윤지은 심기를 거스를까 봐 그녀와 거리를 두었다. 그때 윤미화가 다가와 내 옆에 앉았다.“저 아가씨가 수호 씨 좋아하는 것
전승빈이 제 딸을 속일 방법은 수백 가지도 더 된다. 왕정민 같은 쓰레기가 딸 옆에 없다면 오히려 더 잘된 일이 아닌가?만약 내가 전승빈이라면 오히려 왕정민이 영원히 사라져서 평생 나타나지 않기를 바랄 거다.전승빈은 내 말에 대답하기 싫은지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쓸데없는 건 묻지 말게. 화를 불러일으킬 테니.”윤미화는 더 이상 말하지 말라는 듯 조용히 내 팔을 잡아당겼다.그제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전승빈에게 말했다.“좋아요. 왕정민을 찾는 걸 도와드리죠. 그러면 제가 빚진 건 없었던 겁니다.”말을 마친 나는 윤미화를 데리고 회사를 나왔다.회사를 나오자마자 윤미화는 나한테 방법이 있는지 물었다.“왕정민은 분명 전승빈이 두려워서 숨었을 거예요. 그러니 찾는 건 쉽지 않을 거예요.”그건 거의 한양에서 김 서방 찾기나 마찬가지다.나는 한참 생각하다가 말했다.“왕정민은 분명 제가 죽도록 미울 거예요. 내가 만나자고 하면 만나줄까요?”“미쳤어? 이 와중에 왕정민을 만났다가 왕정민이 진짜 살의라도 품으면 어쩌려고?”왕정민은 현재 나 때문에 궁지에 몰렸으니 분명 나를 죽이고 싶을 거다. 그런데 내가 지금 그를 만나면 확실히 화를 입을 수 있었다.다만 이게 왕정민을 끌어내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다.“안돼. 그건 너무 위험해. 내가 동의 못해!”나는 한참 생각하다가 갑자기 눈을 크게 떴다.“방법이 떠올랐어요. 지금 왕정민은 버림받은 개나 마찬가지라 분명 진동성을 찾아갈 거예요. 제가 병원에서 진동성만 잘 감시하면 될 거예요.”‘안 되겠어. 지금 당장 병원에 가봐야 해. 안 그러면 늦을지도 몰라.’나는 얼른 윤지은에게 전화했다.“지금 외과 병동으로 가서 진동성이 있는지 봐줄래요?”[그럴 필요 없어. 진동성이 방금 가는 걸 봤거든.]“젠장. 결국 한발 늦었네.”나는 화가 나 이를 갈았다. 그러자 윤지은이 왜 그러냐고 물었다. 나는 이내 전승빈이 나한테 왕정민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는 걸 사실대로 말했다.윤지은은 내 말을 듣고
왕정민은 자기가 고용한 놈들이 저에게 반항할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너희들 뭐야? 이게 무슨 짓이야? 지금 반항해?”왕정민은 버럭 소리치며 다급한 듯 발을 동동 굴렀다.그러자 꽃무늬 셔츠가 콧방귀를 뀌었다.“전 회장님이 오라고 하십니다.”왕정민이 아는 사람 중 전 회장이라 불릴만한 사람은 전승빈뿐이다. 때문에 그는 단번에 전승빈을 떠올렸다.왕정민은 그제야 이 모든 게 처음부터 함정이라는 걸 눈치챘다. 그것도 내가 전승빈과 손을 잡고 판 큰 함정.아쉽게도 왕정민은 그걸 이제야 알아차렸다.왕정민은 자신이 전승빈 손에 들어가면 어떤 신세가 될지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돌아갈 수 없었다. 돌아가지도 않을 거였고.“빌어먹을!”왕정민은 바닥에 있는 벽돌을 집어 들어 꽃무늬 셔츠에게 던지고는 신속히 밴에 뛰어들어 시동을 걸었다.그 누구도 왕정민이 도망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그제야 반응한 꽃무늬 셔츠는 다급히 소리쳤다.“당장 쫓아!”꽃무늬 셔츠는 필두로 한 무리는 다급히 밴을 쫓았다. 다만 사람이 차를 쫓아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 덕에 왕정민은 밴을 몰고 도망쳤다.“젠장.”꽃무늬 셔츠는 곧바로 전승빈에게 전화해 왕정민이 도망쳤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그러고 나서 제 무리를 데리고 떠났다.한참 뒤 내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를 한 사람은 다름 아닌 전승빈이었다.[증거는 입수했나?]“네.”[왕정민은 왜 도망치게 뒀지?]전승빈은 화가 난 듯 따져 물었다.그 말에 나는 미간을 팍 구겼다.“저는 함정을 파서 왕정민이 뛰어들게 하는 것만 책임졌지 사람까지 잡겠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게다가 왕정민이 도망칠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왕정민이 도망치면 우리가 지금껏 한 게 뭔 의미가 있지? 지금 당장 내 부하 놈들과 협력해서 왕정민을 잡아와!]나는 전승빈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내가 제 사람인 줄 아나? 내가 왜 왕정민을 잡는 것까지 도와줘야 하지?’그때 윤미화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봤다.“전 회장
이로써 왕정민의 열등감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당장 저 자식 다리부터 분질러!”왕정민은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놈들에게 소리쳤다.그러자 건달들은 무기를 든 채 하나둘씩 나에게 달려들었다.그때 꽃무늬 셔츠를 입은 놈이 나더러 벽 쪽으로 가라고 눈빛을 보냈다. 그렇게 하면 상처를 줄일 수 있었다.나는 얼른 구석진 벽 쪽으로 달려갔다.건달 놈들은 멋모르고 나에게 달려왔다. 꽃무늬 셔츠는 내 앞에 막아서면서 나와 싸우는 척했지만 사실은 나를 보호해 주고 있었다.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에 나는 반항하기 시작했다.나는 지금껏 쌓아왔던 울분을 모두 건달 놈들에게 풀었다.“아!”나는 소리 지르며 주먹을 날리고 발길질 해댔다.마음 같았으면 놈들을 모두 때려죽이고 싶었다.내 기세에 놀랐는지 기세등등하게 달려들던 놈들이 점차 뒷걸음치기 시작했다.나는 감정이 폭발해 놈들을 향해 소리쳤다.“이봐. 죽일 테면 죽여 봐! 덤벼!”하지만 나에게 덤비는 놈은 한 놈도 없었다.그러자 결국 왕정민이 몽둥이를 들고 달려왔다.“젠장. 쓸모없는 것들! 비켜. 내가 직접 한다.”왕정민은 몽둥이를 들어 내 다리를 내리쳤다.그 기회를 봐 내가 반격하려 할 때 갑자기 그림자 하나가 휙 하고 나타나더니 단번에 왕정민을 걷어찼다.나는 놀란 눈으로 내 앞에 나타난 변석훈을 바라봤다.“석훈 형님, 여긴 어떻게 왔어요?”“넌 윤 회장님 사람이야. 윤 회장님이 널 죽이지 않는 한 다른 놈이 널 죽일 수는 없어.”변석훈은 간단하게 온 이유를 설명했다.그때 윤미화가 탐정 사무소 직원들을 데리고 달려왔다.“수호 씨, 얼른 내려와. 이 증거로 저 자식들 잡을 수 있어.”나는 녹화된 영상을 확인했다. 영상은 매우 완벽했다. 특히 왕정민이 아주 선명하게 나왔다.“좋아요. 우리 가요.”그제야 왕정민은 뭔가를 눈치챘는지 버럭 소리쳤다.“정수호, 거기 서!”왕정민은 내 주변 사람들을 훑어보더니 결국 윤미화에게 시선이 떨어졌다.“윤미화, 감히 날 갖고 놀아?”윤미화는 싸늘
모든 준비가 완벽히 끝났다. 하지만 내 눈에 왕정민은 보이지 않았다.왕정민이 직접 나타나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었다. 때문에 나는 일부러 꽃무늬 셔츠를 입은 놈에게 물었다.“당신들 누구야? 뭐 하는 거야?”“누가 당신의 팔다리를 부러뜨리라네?”꽃무늬 셔츠는 나에게 협력해 정보를 흘렸다.나는 또 물었다.“누가 당신들 보냈어? 죽기 전에 어떻게 죽는지는 알아야 할 거 아니야?”나는 말하면서 밴 쪽을 쳐다봤다. 안에 왕정민이 있는지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았기에 나는 이를 악물며 비아냥거렸다.“그런데 당신들 고용한 놈도 참 쫄보네. 직접 나서지도 못하는 거 보면.”“하. 정수호.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어?”왕정민이 겨우 참지 못하고 차에서 내렸다.그제야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다행히 왕정민도 직접 왔네.’내 걱정은 그제야 말끔히 사라졌다. 나는 왕정민을 차갑게 노려봤다.“왕정민, 뭐 하려는 거야? 벌건 대낮에. 이거 불법이야.”왕정민은 담배에 불을 붙이더니 한 모금 크게 빨아들였다.“불법? 난 원래 법 안 지켜. 어쩔 건데?”“당장 저놈 핸드폰 빼앗아 와.”왕정민은 먼저 내 핸드폰부터 압수하고는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여기 CCTV도 없어. 네가 아무리 신고해도 소용없어. 정수호, 내 말에 대답해. 너한테 왜 내 집 열쇠가 있는 거야?”나는 일부러 왕정민을 자극했다.“당연히 애교 누나가 줬지.”“어디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이태웅이 네 열쇠 압수한 거 다 알아.”“압수한 거 맞아. 하지만 나중에 다시 줬어.”사실 그런 적은 없지만 나는 왕정민을 자극하기 위해 일부러 지어냈다.이태웅한테 계속 무시당해 왔다는 건 왕정민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지뢰 같은 사실이다. 때문에 내가 일부러 이태웅이 나한테 잘해준다고 하면 왕정민은 분명 불만을 품을 게 뻔하다.아니나 다를까 왕정민은 내 자극에 바로 반응했다.“왜 줬는데? 이태웅 그 노인네를 내가 몇 년 동안 모셨는데 지금껏 날 인정하지 않았다고. 그런데 너는 뭔데 인정을 받
나는 겨우 걱정을 덜어내고 윤미화에게 전환해 모든 것을 자백했다.내 말을 들은 윤미화는 고막이 터질 정도로 나에게 욕설을 퍼부었다.“정수호, 미쳤어? 전승빈이 어떤 사람이고 왕정민은 또 어떤 사람인데? 감히 두 사람을 이용하려고 들어?”윤미화는 내가 왕정민이 전승빈 조사를 의뢰했다는 걸 누설했다고 탓하는 게 아니라 내 안위를 걱정했다.그 때문에 나는 윤미화에게 더 미안했다.“윤 사장님, 일은 이미 벌어져서 돌이킬 수 없어요. 제가 전화드린 건 장비 좀 빌려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예요. 오늘 저녁 제가 왕정민 약점을 잡을 거거든요.”“빌리긴 뭘 빌려? 내 직원한테 일이 생겼다는데 내가 설마 모른 척하겠어?”윤미화의 말에 나는 너무 감동하였다.“윤 사장님, 정말 너무 좋은 분이셨군요.”윤미화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알면 됐어. 앞으로 한 번만 더 속였다간 봐. 수호 씨는 내가 스카우트한 사람이니까 난 수호 씨 안전을 책임질 의무가 있어.”“왕정민한테 미움 살까 봐 두렵지 않아요?”“두렵지. 그걸 말이라고. 하지만 내가 탐정 사무소를 차린 건 내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야. 내 소원은 이미 이뤘으니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 내가 돈 벌 방법이 이것뿐인 것도 아니고.”그 말에 나는 더욱 감동했다.“사장님, 저 울고 싶어요.”윤미화는 그런 내가 쪽팔리다니는 듯 말했다.“남자가 울긴 뭘 울어? 난 그런 남자 제일 싫어.”윤미화는 오늘 밤 직접 오겠다면서 주소를 보내라고 했다.내 계획은 왕정민을 아무도 없는 골목으로 끌고 가는 거다. 그렇게 하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으니까.물론 왕정민이 무조건 나타나게 하기 위해 도관에서 나오기 전 나는 일부러 그에게 전화해 자극했다.“왕정민, 네가 뭘 모르는 게 하나 있는데. 나 지금껏 애교 누나네 집 열쇠를 가지고 있었어.”[개자식이 그걸 왜 나한테 말하는데?]왕정민은 분노에 차 버럭 욕설을 퍼부었다.예상했던 반응에 나는 피식 웃었다.“별 건 아니고. 그냥 네가 예전에 샀던 그 집은 지금 내가 살
변석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버렸다.한참 뒤 윤지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도 내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듯했다.“저 자식 얼마나 연습했어?”“아가씨, 벌써 3시간째 저러고 있어요.”“죽으려고 작정했나? 어제도 밤을 새웠으면서 오늘 이렇게 무리하면 어쩌자는 건지.”윤지은은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걸어왔다.“정수호, 지금 당장 휴식해.”나는 윤지은을 흘긋거리고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계속 연습했다.윤지은은 내 행동에 화가 났는지 내 뺨을 후려갈겼다.“네가 이런다고 누가 감동할 것 같아? 넌 지금 스스로 감동에 취해 있는 거야. 전에는 연습을 게을리하고 이제 와서 발등에 불이 떨어졌나 봐? 네가 뭐 소설 주인공인 줄 알아? 지금 당장 휴식해!”나는 화끈거리는 얼굴도 신경 쓸 새 없이 심호흡하며 말했다.“누구 감동하라고 이러는 거 아니에요. 이런 식으로 화를 풀려는 것도 아니고요. 그냥 짬 내서 연습해서 하루빨리 실력을 끌어올리려는 거예요.”변석훈은 나에게 고작 한 달이라는 시간밖에 주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서두르지 않으면 그 시간 안에 다 배우지 못할 거다.윤지은은 씩씩거리며 말했다.“벽석훈이 너 안 가르친다면 내가 양동준더러 너 가르치라고 하면 될 거 아니야. 뭐 그리 큰일이라고 이렇게 네 몸을 가혹하게 대해?”나는 너무 놀라 윤지은을 바라봤다.“뭐라고요? 동준 형님이 저 가르치는 거 동의하는 거예요?”“네가 내 말 잘 들으면.”윤지은의 요구에 나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 지금 당장 휴식할게요.”나는 말을 마치자마자 두말없이 뒤돌아섰다.윤지은은 내가 이렇게 고분고분할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예전에는 항상 개와 고양이처럼 만나면 싸워댔는데 내가 갑자기 고분고분해지니 윤지은은 익숙하지 않은 듯했다.윤지은은 이내 나에게 걸어와 나를 꿰뚫어 볼 것처럼 훑어봤다.“정수호. 너 아무 일 없는 거 맞지?”나는 물을 마시며 땀을 닦았다.“저한테 뭔 일 있겠어요? 보다시피 저 멀쩡해요.”“그렇다면 다행이고. 난
진소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만 봐도 흔들렸다는 걸 알 수 있었다.고작 몇 마디 사탕 발린 말에 흔들린다니, 이 여자가 참 한심했다. ‘머리가 비었나? 하긴, 그러니까 진동성한테 제대로 속았겠지.’하지만 예전의 나도 진소민과 다를 게 없었다.태어날 때부터 계략에 능하고 총명하며 위선과 악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사람은 없다.나는 진소민을 탓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쌍했다. 진동성의 눈빛만 보면 그가 진소민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그저 이 바보 같은 여자를 농락하고 있는 거였다.아니나 다를까 역시나 내가 짐작이 맞았다.진동성이 진소민을 떠나지 못하게 한 건 그가 진소민한테서 만족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진소민은 워낙 민감한 몸이라 진동성의 사이즈가 아무리 작아도 쉽게 절정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런 느낌은 그동안 아내인 고태연한테서 느껴보지 못했다. 때문에 진소민을 만난 뒤에 그는 진정 자기가 남자가 된 것 같았다.진동성은 아직 사업에서도 큰 성공을 이룩하지 못하고 결혼도 실패했는데, 유독 진소민 앞에서만은 성취감을 얻을 수 있고 빈자리가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되든 그가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진동성의 목적은 이 바보 같은 여자를 붙잡는 거였다.나는 더 이상 끼어들지 않았다. 진소민이 떠나든 말든 관심 없었다. 난 오직 이런 방법으로 기름을 부어 진동성이 하루빨리 나를 처리하라고 왕정민을 꼬드기게 하고 싶었다.나는 진동성을 보며 냉소했다.“이 여자는 속이기 쉬워 참 좋겠어. 어디 평생 속여 봐. 하지만 네놈이 한 짓을 부모님이 알면 어떨지 궁금하네.”말을 마친 나는 일부러 깔깔거리며 떠나갔다.이 순간 진동성이 뒤에서 이를 갈며 나를 죽일 듯 노려볼 거라는 걸 알고 있다.이건 바로 내가 원하는 효과였다.진동성은 지금 병원에 입원해 있어 직접 움직일 수 없으니 분명 왕정민한테 연락할 거다.왕정민이 나에게 손을 쓴 순간 내 계획은 성공한 셈이다.나는 아무도 없는 구석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얼마 안 될 때 나는 부모님께 그 의서가 어디 있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부터 의서를 찾지 못했다.아마 그전에 진동성이 이미 몰래 훔쳐 갔을 거다.‘진동성 이 개 같은 자식. 진짜 뼛속까지 악질이네.'우리 가족은 너무 착해서 그놈의 가면에 깜빡 속아 넘어갔다.여진수가 형수의 상태를 확인한 뒤 나는 곧장 외과 병동으로 향했다.진소민이 와서 진동성을 간호하고 있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 진동성의 손은 진동성의 치마 속에 있었다.형수는 아직도 의식불명의 상태인데 이 개자식은 병원에서까지 여자와 꽁냥거리고 있다니. 이런 놈은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라 하는 게 맞다.진동성은 나를 보자마자 비아냥거렸다.“넌 또 왜 왔어? 내 마누라 돌보지 않고 내가 다른 여자랑 즐기는 거 구경 왔어?”나는 피식 웃었다.그러자 진동성의 미간이 푹 파였다.“뭘 웃어?”나는 의자 하나를 끌어와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사실 나는 핸드폰으로 영상을 찍고 있었다.난 형수가 갑자기 교통사고가 난 게 분명 단순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이 함께 교통사고가 났는데 형수는 크게 다쳐 의식불명이 되고 진동성은 고작 피부가 까진 전도로 끝났다는 게 너무 이상하다.게다가 이 자식은 형수가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동안에도 진소민과 어울리고 있다니. 이걸 찍어두면 분명 형수에게 유리한 증거가 될 거다.“네 놈 목숨이 참 질겨서 웃는다. 형수는 저렇게 됐는데 넌 고작 찰과상이라니. 어떻게 했어?”진동성은 이미 대답을 준비한 것처럼 빈틈없이 대답했다.“그걸 나한테 물으면 난 누구한테 물어봐? 교통사고가 갑자기 나서 나도 미처 반응하지 못했어. 내가 깨어났을 땐 이미 병원에 있었고. 그런데 나한테 어떻게 했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당연히 모른다지.”진동성이 이렇게 대답할 거라는 걸 난 진작 예상했다.때문에 나는 방법을 바꾸어 진소민을 바라봤다.“그럼 당신한테 묻지. 그쪽은 대체 무슨 신분으로 그 남자를 돌보는 거야?”진소민은 워낙 말주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