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경릉은 우문호의 말에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너 모비(母妃)를 뵈면 어떻게 해?”“문안인사를 드리지.”“그리고 또?”“다른 거 없는데? 모비께서는 다 가지고 있으니, 난 그저 인사만 드려.”우문호가 머리를 긁적였다.“그녀의 환심을 사려고?” “환심? 태자 자리를 오르려면 환심을 사야겠지. 내 생각엔 안부인사를 제외하고는 뭐든 과한 것 같아. 그런 가식은 불필요해.”원경릉은 그의 말에 어느 정도 동의했다. 현비는 우문호를 태자로 만드려고 혈안이 돼있다. 그녀는 은근 우문호에게 미안했다. 다른 친왕의 부인들은 집안이 좋아서 친왕들에게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는데, 정후부는 그럴 힘도 돈도 없기 때문이다. “날 잡고 입궁해서 부황과 장기도 두고 술도 마시고 곁에 있어드려. 그게 가장 큰 효도야.” 원경릉이 말했다.“그럼 부황께서는 내가 당신 비위를 맞춘다고 생각하겠지.” 우문호가 한숨을 내쉬었다.“그가 뭐라고 생각하든 네가 해야 할 일만 하면 돼! 만약에 네 아들이 너랑 데면데면하고 관계가 소원해진다면 넌 기분이 어떻겠어?” 원경릉이 발끝으로 우문호를 한 번 찼다.“아들은 그러든지 말든지 상관없는데, 딸은 절대 그럼 안 돼.”“참 나.”“경릉아, 나 결심했어. 우리는 세 딸을 낳는 거야. 아들들은 말썽만 피우고 크면 야심이 커서 무슨 사건을 일으킬 줄 몰라.”“그걸 네가 결심해서 뭐 해?” 원경릉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우문호의 시큰둥한 반응에 우문호가 툴툴거렸다. “세 명이니까 공주가 하나쯤은 있겠지.”“물론 그럴 수 있지. 근데 남아 3명 또는 여아 3명일 가능성이 훨씬 높아.”“남자, 여자가 섞일 수는 없는 거야?” 우문호의 눈이 동그래졌다.“그럴 가능성도 있긴 한데 지극히 적어.”“남자 셋이면 정말 눈물 날 것 같은데…… 공주 하나는 있어야지!”“우리가 이렇게 논해도 소용없어. 성별은 이미 정해졌어.”원경릉의 말에 우문호는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내 아이를 내가 결정하지! 누가 결정해
기왕은 감옥에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이 모든 것이 우문호의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전에 기왕부에서 우문호와 싸움이 일어났을 때, 자신이 기왕부 부병을 동원해 그를 공격했던 것에 앙심을 품고 자신을 모함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심문을 하는 관리가 기왕부에서 일어난 싸움에 대해 묻자 그는 끝까지 함구하다가 우문호와 의견충돌이 있었다고 말했다. 명원제는 계속해서 심문을 하라고 했고 관리들은 더 이상 심문할 내용이 없어 난감해했다.‘단죄하든지 처벌하든지 해야 하는데…….’명원제도 계속 심문하라고 지시했지만, 그 역시도 기왕을 더 어떻게 심문해야 할지 몰랐다. 그는 머릿속으로 어떻게 이 사건을 처리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했고, 시간을 조금 더 가지고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리하여 기왕은 감옥에 다시 갇혔다.기왕은 중죄를 저지른 죄인이었지만 면회가 제한되지는 않았다. 그는 면회 소식만 기다리며 줄곧 주명양이 오길 바랐다. 주수보가 몇 마디 해주는 게 다른 사람이 백 마디 하는 것보다 낫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주명양은 오지 않았다. 감옥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는 조바심이 났다. 예전에는 무슨일이 생겨도 밖에서 자신을 빼내줄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기왕의 심복과 외가를 제외하고는 기왕을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초엿새날, 기왕의 모친인 진비(秦妃)와 기왕비가 기왕의 면회를 왔다. 진비는 그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멍청한 것! 왜 그런 일을 저지른 것이야! 부황께서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기왕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모비, 소자 참으로 억울합니다. 소자를 믿어주십시오. 범인은 제가 아닙니다! 모비께서 부황께 잘 말씀드려 주세요.”라고 말했다.“본궁이 부황께 부탁을 해봤자 소용없어! 기왕비가 본궁에게 말하길 네가 했다는 것을 증명할 증인도 있다고 하더라! 네가 한 것이 확실해졌다고! 너는 부황이 어떤 처벌을 내려도 할 말이 없다는 말이야!”모친의 말에 기왕은 충격을 받았다. “그럼 주수보를 부를까요
“그럼 저는 밖에서 모비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말을 마친 기왕비가 기왕을 쳐다보지도 않고 휙- 밖으로 나갔다. 기왕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한없이 바라보았다.‘가라고 했다고 진짜 간다고?’눈물을 흘리던 진비도 기왕비의 매몰찬 태도에 기왕을 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지금 저거 제정신이 아닌 게지? 그렇지 않고서는 저렇게 쌩 나가버린다고?”기왕은 주명양과 짜고 기왕비를 폐비시키려고 했다는 사실을 진비에게 말하지 못했다.“명양이가 입궁한 이후로 기왕비가 좀 이상합니다.”“너는 후궁 주명양은 애지중지 여기면서 정비는 왜 푸대접을 한 거야? 그건 왕부가 망하는 길이다. 절대 그러면 안 돼. 넌 지금 동씨 집안의 힘이 필요하다고!” 진비는 인상을 쓰며 그를 보았다.“언제 적 동가(佟家)입니까? 더 이상 이용가치가 없습니다. 동씨 집안도 부황에게 푸대접을 받고 있다고 하던데요?” 기왕이 말했다.“넌 참 근시안적이구나! 동씨 집안사람들이 궁 안에 얼마나 많은데 그런 말을 하는 거야? 그리고 동씨 집안은 태생부터 돈이 많다고! 넌 기왕비를 잘 달래 보거라. 그리고 기왕비의 큰 오빠인 동안(佟安)이 얼마나 많은 공을 세웠는지 너도 잘 알지 않느냐? 부황께서 시국이 이러니 동안을 냉대하겠지만 그의 능력은 높게 사고 계셔.”진비의 말을 들은 기왕이 창백한 얼굴로 우물쭈물했다.“그럼 모비께서 기왕비를 좀 설득해 주세요. 동씨 집안사람들 중에 조정에서 일하는 관리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상소문을 써달라고 해주세요.”“이래서 집에 여자가 잘 들어와야 한다니까? 후궁이 들어오자마자 그 계집에게 눈이 돌아서 정비를 홀대하다니…… 옥에 있는 동안 잘 생각해 봐. 네가 온전히 네 힘으로 기왕부를 이끌었는지 말이야. 기왕비가 없었으면 넌 그저 황제의 큰 아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것이야.”모비의 말을 듣기 싫었던 기왕은 인상을 썼다. “모비께서는 소자를 참 우습게 보십니다. 그럼 제가 여자 치마폭에 쌓여있기라도
기왕비는 진비의 말을 듣고 고개를 저었다.“모비, 그건 불가능합니다. 오라버니께서 기왕부의 일은 일절 관여하지 않겠다고 딱 잘라 말했습니다.”“그게 무슨 뜻이냐? 기왕부의 일을 관여하지 않겠다니? 혹시 네 오빠가 조정에서 줄을 갈아탄 것이냐? 설마 새로 줄을 탄 것이야?” 진비의 눈빛이 싸늘했다.“모비, 그 말씀은 좀 이상하네요. 오라버니는 줄곧 황상을 모셨습니다. 모비의 뜻은 제 오라버니가 조정을 배반하고 외세와 결탁했다는 뜻입니까?”“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네 남편이 감옥에 있으니 어떻게 해서든 그를 빼내!” 진비가 분노했다.기왕비는 마차 밖을 보며 “며느리가 최선은 다해보겠습니다.”라고 말했다.그 말을 듣고 진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노력은 해보겠으나 기왕을 빼줄 수 있을 만한 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모르겠네요.’진비는 기왕비의 속내를 모른 채 그녀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노력했다.“너처럼 머리가 좋은 사람이 기왕의 억울함을 모를 리 없지 않느냐. 이 일은 우문호가 기왕을 모함하려고 판을 짠 거야. 사람을 시켜 우문호가 했다는 증거만 찾는다면 기왕은 혐의를 벗을 수 있을 거야.” “모함을 당했건, 정말 기왕이 저질렀건 모두 중요하지 않습니다. 현장에서 잡은 두 자객 모두 기왕의 사주를 받았다고 자백했고, 그들이 쓴 휘어진 칼도 기왕부 것이 맞습니다. 만일 자객의 진정한 배후가 기왕을 모함하려고 했다면, 아주 철저하게 준비했을 겁니다. 지금 상황에선 기왕이 결백을 주장해도 믿어줄 사람 하나 없을 겁니다.”“그럼 어떻게 하냐고! 설마 황상께서 기왕을 처리해 버리기 위해 일부러 이런다는 거야?”“음…… 폐하께서는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생각 중이실 겁니다. 이때 누구든 이 이야기를 꺼내면 판단하는 데 해가 될 겁니다.”“어째서 해가 된다는 거야?”기왕비는 진비를 비웃었다.“모비께서는 제 말 뜻을 이해하지 못하시는 겁니까? 범인이 기왕이라는 증거가 확실한데 그가 어찌 빠져나오겠습니까?”“……”기왕비는 놀라서 입을 다물지
진비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아이를 낳지 못한다면 앞으로 아들을 낳을 수도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북당을 빼앗기게 될 텐데.’진비는 기왕비의 말을 애써 무시했다. 기왕비는 전부터 누군가에게 기왕의 오랜 비밀을 발설하고 나면 속이 시원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이의 치부를 발설하고 나니 예상과 반대로 마음에 돌덩이라 들어앉은 듯 무거웠다. 하지만 기왕비는 기왕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진 지 오래이기에 돌덩이 같은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녀의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딸이었다. 만약 기왕이 중죄인으로 처벌을 받게 된다면 딸마저도 죄인의 딸로 낙인이 찍히게 된다. 마음 같아서는 기왕이 죽든 살든 관여하고 싶지 않았지만, 딸 때문이라도 처벌은 막아야 했다. *제왕의 상태는 점점 나아졌지만 상처 부위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서 보름 넘게 밖에 나가지 못했다.원용의는 제왕 곁을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지극정성으로 수발을 들었다. 제왕은 그런 원용의에게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불편했다. 제왕은 수차례 어의의 진료를 받았다.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이 아프다고 거짓말한 것을 혹시 원용의가 알았을까 걱정이 되었다. 사실 원용의도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를 모른척했다. 날이 갈수록 제왕은 더 불안해졌다. 결국 제왕은 용기를 내어 원용의에게 마음을 털어놓았다.“용의야, 본왕이 너에게 할 말이 있다. 여기 앉아서 내 말을 듣거라.”제왕은 그녀가 준비해 온 약을 마시며 원용의를 바라보았다.원용의는 침상 옆에 앉아 의아한 표정으로 제왕을 보았다.제왕은 그녀의 맑은 눈동자에 죄책감이 물밀듯 밀려왔다.“본왕이 병을 앓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던 건 너를 속이기 위한 것이지만,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어.”“저를 속이려고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설마…… 내가 널 속인 거 몰랐니?” 제왕은 깜짝 놀랐다.“몰랐는데……” 원용의가 쏟아지는 눈물을 참아
제왕은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치는 감정에 눈물이 흘렀다. ‘이래서 주수보가 하루 만에 백발이 되었구나……’늘 있던 사람이 곁에 없자 제왕의 마음은 괴로웠다.*다음날 아침. 잠깐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억겁의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제왕이 비몽사몽 한 정신으로 눈을 뜨자 어떤 여인이 문을 열고 들어오고 있었다. 밤새 잠을 잘 못 잔 그는 눈앞이 뿌옇게 보였다. 정신이 몽롱하니 제왕은 자신이 꿈을 꾸는 건가 싶었다.그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이게 꿈이 아니라 현실이구나 깨달았다. “잘 잤습니까?”그녀의 한 마디에 그의 코끝은 시큰해졌고, 눈물이 터질 뻔했다.원용의는 따끈따끈한 죽을 침상 옆 탁자에 놓고 “왜 울려고 그래요? 어디 아픕니까?”라고 물었다.“왜 여기 있어? 친정에 갔다고 하던데……”그의 목소리는 하루사이에 많이 쉬어있었고 눈에는 눈물이 대롱대롱 매달려있었다.“조모님 생신이라 어제 오후에 갔다가 밤늦게 돌아왔습니다. 그나저나 이것 보십시오! 조모께서 저랑 제왕에게 선물을 준비해 주셨다니까요? 이게 당신 겁니다!”그녀는 싱그럽게 웃으며 소매주머니에서 복주머니를 꺼내 그 안에 손을 넣어 기다란 금괴를 꺼냈다.“조모님의 생신이라고? 그걸 내가 왜 몰랐지?” 제왕은 눈을 비볐다.“다치고 경황이 없었잖아요. 저도 깜빡했다가 어제서야 생각이 났습니다. 죽만 준비하고는 금방 또 가봐야 합니다.”원용의는 죽을 후후 불어서 제왕에게 줬다. “참, 방금 상궁이 그러던데, 어젯밤에 탕약도 안 마셨다면서요? 왜 그랬어요?”“그건…… 상궁이 약과를 준비해주지 않아서 안 마셨어.”“은근히 까다롭다니까?” 원용의가 웃으며 그에게 죽을 먹였다. 제왕은 두어 술 먹고는 그녀를 조심스레 쳐다보았다.“난 네가 친정으로 갔다길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줄 알았어.”“왜 그렇게 생각했죠? 제 물건들이 아직 여기 있는데 제가 돌아오지 않을 수 있겠어요?”“전에 나를 떠나서 여기저기 여행하며 살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제왕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
제왕의 시간은 자객의 습격을 받았을 때에서 멈춘 것 같았다. 기왕이 범인이라는 모든 증거물을 제출하였으나 그는 아직 처벌받지 않았고 명원제 쪽에서 별다른 소식이 없었다. 수사에는 진전이 없는 듯했고, 자객 검거에 힘을 쓰지 못했다며 우문호는 또 면직을 당했다. 두 번의 면직에 우문호는 조정에 웃음거리가 되었다. 짓궂은 사람들은 우문호를 보고 복직 후 최단 면직 기록을 세웠다며 조롱하기도 했다. 임신한 부인도 지키지 못하고 안왕에게 구박을 받다 못해 두 번째 면직이라는 수치를 겪다니.그런 말들은 쉬이 당사자의 귀에 흘러들어 갔다. 우문호는 하도 욕을 먹어서 자신이 장수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그의 실직은 원경릉에게 행복이었다. 원경릉은 속으로 명원제가 우문호의 안전을 위해 일부러 그를 면직시킨 게 아닌가 생각했다. 출산까지 두세 달 남은 순간 매일 우문호와 붙어있을 생각에 그녀는 너무나도 행복했다.*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벌써 2월 중순이 되었다. 조어의는 원경릉에게 누워만 있어야 한다고 당부했고, 그 때문에 원경릉은 방에서 꼼짝하지 못했다. 최대인이 소개해준 산파는 이미 경중에 도착했고, 그들은 왕비 뱃속의 아이가 셋이라는 말을 듣고 기함을 토했다. 탕양은 산파들에게 궁중에서 대기하라고 했으며 어떤 상황이 일어날지 모르니 각종 상황에 대비할 수 있도록 대응방법을 가르쳤다.원경릉은 우문호를 불러 왕부 안에 수술실을 만들어놓았다.수술실 안에 밤에도 빛을 낼 수 있는 야광주(夜光珠)를 4개 박아 두고, 외부 공기가 쉽게 통하지 못하도록 공기가 통하는 구멍은 4개만 뚫었다. 원경릉은 수술실이 완성되는 동안 수술침대, 들것, 휠체어, 아기 침대, 유모차 등 직접 도면을 그려 기술 관리에게 만들도록 했다.모든 것이 순리대로 준비되고 있는 이 순간에도 원경릉은 최악의 상황을 그렸다. 아이가 달을 다 못 채우고 나올 경우. 그녀는 첫 출산이고, 세 쌍둥이이기에 조산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태어난 아이들이 저체중일 가능성이 높은데, 산파들이 아이를
다시 말해서 그날 제왕과 원경릉의 암살 작전은 소규모 집단의 행동이 아니라 사전에 계획된 행동이었다.만약 금군과 부병의 도움이 없었다면 제왕과 원경릉은 그 자리에서 죽었을 것이다.이를 알고 있음에도 명원제는 여전히 아무 결정도 내리지 못했다.친왕들도 조정의 신하들도 그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기왕은 옥중에서 만언서를 써서 명원제에게 올렸다. 하지만 그 만언서(萬言書)는 명원제의 심기를 건드렸고 그는 만언서를 갈기갈기 찢으며 “개소리를 열심히도 적어놨네.”라고 말했다.진비는 그 사실을 알고 두려움에 떨었고 그 길로 곧장 기왕비를 보러 갔다.“이게 다 너 때문이야! 무슨 생각으로 만언서를 쓰라고 해서 황상을 분노하게 만든 게냐!”기왕은 한 달 동안 옥에 갇혀있었고, 만언서를 쓰기에는 돌아가는 정세를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부황께서 화가 나셨나요? 제가 의도하던 바입니다.”기왕비가 대답했다.“의도했다고? 황상을 실망시킨 게 네 의도였다고? 넌 기왕을 사지로 몰아넣을 셈이야?”“모비, 부황께서 기왕에게 실망을 해야 기왕이 풀려날 수 있습니다. 만언서 내용을 보고 부황께서는 기왕의 머리로는 절대 제왕과 초왕비를 해칠 계획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아셨겠죠.”기왕비의 말을 듣고 진비가 가만히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왕비는 진비를 안심시킨 후 초왕부로 가서 원경릉을 만났다.*초왕부.우문호는 아침 일찍부터 주지스님을 마중하기 위해 나갔다. 그는 원경릉이 왜 주지스님을 만나려고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최대한 그녀의 심기를 건드리리 않으려고 그녀의 말에 토 달지 않고 순순히 따랐다.‘내가 아이를 낳아봤어야 알지…… 내가 모르는 일이니 경릉이의 말을 따르는 수밖에.’우문호는 원경릉의 안정을 위해 바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일언반구 말이 없었다.그래서 기왕비가 때가 되면 원경릉을 찾아와 바깥 소식을 전해주는 역할을 했다.초왕부에 도착한 기왕비는 원경릉에게 인사 몇 마디를 건네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